제국력 490년 4월 16일. 제국군 비텐펠트 함대 기함 쾨니히스티겔. 프린츠 요제프 비텐펠트
"긴장을 놓지 마라. 이대로 밀어 붙인다! "
"예!"
명령을 내리자 오퍼레이터들이 그에 따랐다. 나쁘지 않군. 장병의 사기는 높다. 허를 찔려 생각치 못한 형태로 전투에 들어갔지만, 다들 당황하는 일 없이 대처하고 있다. 평소의 훈련 성과가 나오는 것 같다.
나중에 바렌에게 사례라도 해야겠구만. 술이라도 한 잔 사도록 할까.
뮐러 함대의 응원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대로 밀어 붙여 반란군 본대의 후방으로 빠져 나가면 녀석들은 금새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에 덩달아 사령장관이 이끌고 있는 제국군 본대가 전진하면 반란군은 통째로 무너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 전투의 최대 공로자는 나, 내가 이끄는 흑색창기병대라는 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반란군과의 마지막 전투. 나로서도 함대로서도 이 이상의 영광은 없다…….
"각하, 반란군 본대에서 증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이겐이 걱정하는 어조로 반란군의 증원을 지적했다. 이런이런,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군.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반란군도 필사적이다.
"……이렇게 되면 뮐러 함대의 응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내가 답하자 오이겐이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은 뭐야? 반란군의 증원보다 내 반응이 더 걱정되었단 건가? 나는 공격을 좋아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고, 오이겐. 아무리 그래도 1개 함대로 3개 함대를 격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물며 분산되어 있다면 각개격파도 가능하겠지만, 반란군은 한 곳에 모여 있다. 여기선 뮐러 제독과 협력하여 반란군을 격파한다. 그것이 용병술의 기본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전투가 벌어질 줄이야. 사령장관도 본의가 아니었겠죠."
"반란군도 필사적인 거다. 이대로 가면 본대와 부사령장관이 이끄는 별동대에 협공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니까 말이야. 여기서 우리들을 격파하고 별동대를 기다린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디르크젠, 그레브너의 대화에 오이겐이 끄덕였다.
뭐, 대충 그런 거겠지. 하지만 어떻게든 전투를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반란군에게 있어서 상황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전황은 굳이 말한다면 제국군 쪽이 우세하겠지. 흑색창기병대가 상대하고 있는 2개 함대는 명백히 움직임이 나쁘다. 아마도 새로 편성한 함대이기에 훈련도가 떨어지는 거겠지.
본대도 우세하게 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쯤 반란군의 사령장관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제국군은 반란군 영역 깊숙이 침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력이 충분히 있다. 뭐라 해도 지금까지 전투다운 전투가 없었으니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 공략한 걸로 손해가 없다.
양 웬리를 잡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걸 실책이라고 말하는 건 사치다.
여기서 전투가 일어난 걸 사령장관 각하는 본의가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 공략한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싸우게 된 것에 만족한다. 아마도 다른 함대사령관도 같은 마음이겠지. 손해를 적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장병들을 위하는 마음이란 것도 이해한다.
나도 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를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반란군, 증원 부대가 합류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함교에 울렸다. 이걸로 정면에 3개 함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 곧 이쪽도 뮐러 함대가 합류한다. 움직인 것은 뮐러 함대가 더 빨랐지만, 우회하는 만큼 늦어졌다. 지금쯤 뮐러 제독은 안달복달하고 있겠지.
"이제 곧 뮐러 제독이 온다. 당황하지 말고 대응하라."
"예!"
내가 말하자 오퍼레이터들이 웃음을 띄우고 끄덕였다. 믿음직스런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이라면 뮐러 함대가 오기까지 문제 없이 견뎌내겠지.
다음은 공세로 전환하여 반란군을 분쇄할 뿐이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별동대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단숨에 결판을 내는 거다.
제국력 490년 4월 17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반란군, 후퇴합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의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하다. 뭐, 보통은 후퇴라는 이름의 유인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문제 없겠지.
이유는 간단하다. 비텐펠트와 뮐러를 막고 있는 부대의 판세가 나쁘기 때문이다. 3개 함대를 돌리고 있지만,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동맹군은 본대도 후퇴하여 전선을 하나로 뭉치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전군이 단숨에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제국군이 도망치고 만다. 그것 때문에 동맹군의 움직임은 제약을 받고 있다.
뭐,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걸까. 전선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그만큼 메르카츠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거리와 시간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인 걸지도 모른다.
제국군에겐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다. 동맹군이 가장 싫어하는 선택이다. 후퇴하고 있는 동맹군은 이쪽에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일 거다. 허를 찔러 급속 후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그리고 서로 견제하며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현실적이지도 않다. 전황은 우세하고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여 메르카츠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 다소 희생은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섵불리 놓치게 되면 또 무슨 짓을 할 것 같아서 무섭다. 피해도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황이 우세하단 점도 있겠지만, 모두 사기가 높다.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나와 발레리 뿐인 것 같다.
그렇게나 싸우고 싶었을까. 승리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전투가 없었어도 승진은 확실했을 텐데…….
전투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없는 것도 문제인가. 나와 라인하르트를 더해 둘로 나누는 정도가 딱 좋을까. 군인이란 그런 생물일지도 모른다.
동맹군의 후퇴는 계속된다. 이쪽은 그를 쫓으며 공격한다. 내 오른쪽에는 아이제나흐, 왼쪽에는 렌넨캄프, 그 왼쪽에는 켐프.
꽤나 호화로운 진용이다. 다소 용병에 유연성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공격력에는 문제 없다. 내 정면에 우란푸, 렌네캄프의 앞에는 양이다. 거기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군에 전해주세요.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라고. 이대로 전선을 유지하여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원군을 기다립니다."
"예."
'적은 훈련 부족이다. 단숨이 밀어붙여라.' 그렇게 말하는 편이 사기는 더 오르겠지. 다들 그걸 바라고 답답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인 건 양도 마찬가지겠지. 주변이 너무 발목을 잡는다.
그런가. 양과 싸울 때엔 집단전 쪽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일 대 일이라면 양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다 대 다라면 누군가 양의 발목을 잡는 놈이 나타난다. 혹은 주변을 신경 쓰느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양의 무서움이 감소한다.
양 웬리가 집단전에서 120%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양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 필요하겠지. 예를 들면 라인하르트,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뷰코크, 메르카츠……. 거기에 양이 참가한다.
음, 드림팀이네. 아니면 프로 야구의 올스타전인가? 어떤 전투를 할지 보고 싶을 정도다.
"각하? "
발레리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입니까? 피츠시몬즈 대령."
"아뇨. 뭔가 즐거워 보였기에."
주변을 둘러보자 뤼네부르크, 발트하임, 슈마흐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가요. ……전황은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것 때문이겠죠."
내가 답하자 발레리는 애매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거 참, 조금 더 긴장해야겠군.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집중, 집중.
……뤼네부르크, 뭐가 웃긴 거냐. 히쭉히쭉 웃지 말라고. 우리들은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니까. 좀 더 진지하게 해라.
우주력 799년 4월 19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는 침통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참가자는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적극적으로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빌딩 밖에는 많은 동맹시민이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쪽은 각각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겠지. 자신들을 지키라고.
"그래서 전황은 어떤가? 아일랜즈 국방위원장."
호안이 묻자 아일랜즈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좋지 않습니다. 군대는 제국군의 본대를 어떻게든 잡아 전투에 들어갔습니다만, 열세입니다. 새로이 편성한 함대가 훈련도 부족이라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합니다. 제국군에게 그 점을 찔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곧 페잔 방면에서 제국군의 별동대가 오겠죠. 그렇게 되면 동맹군은 협공 당하게 됩니다. 승산은 없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에게서도 형세를 역전시키는 건 어렵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다시 한숨이 들려왔다. 아무도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크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트류니히트였다. 최근 며칠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한 거겠지. 눈이 충혈되어 있다.
"어쩔 수 없군. 우주함대에게 항복하도록 전하게."
다들 트류니히트를 봤다. 이곳저곳에서 "하지만", "그건"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젓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싸워도 희생이 커질 뿐이다. 승산이 없는 이상, 무의미한 전투는 멈춰야만 하겠지. 국방위원장. 항복하도록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에게 전하겠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충격은 없었다. 와야 할 것이 왔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거겠지.
아니, 나 혼자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부는 어떻게 할 건가? 항복하는 건가? "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표정을 찡그렸다.
"아니,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으니 무리겠지. 지금 시점에서 항복하면 동맹시민이 폭동을 일으킬 거야."
"그럼? "
"제국군이 목걸이를 파괴한 뒤에 항복한다. 그러는 편이 무난할 거라 생각한다."
확실히 그렇다. 동맹시민도 포기하겠지.
"제국이 동맹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알 수 없어.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기했다는 점, 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한 취급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확증은 없다. 우리들은 동맹시민의 생명, 재산을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민주공화정……. 각 위원장도 동맹시민을 지키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의견을 모아주길 바란다. 자유행성동맹은 멸망할지도 모르지만, 강화조약에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끈기 있게 교섭할 생각이다."
힘있는 목소리였다.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듯한 울림이 있었다.
제국력 490년 4월 18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총기함 로키의 함교는 폭발할 것 같은 소란에 싸여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어깨를 두들기거나 악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제국군함정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일어나고 있겠지.
뭐, 마음은 이해한다. 동맹군이 항복했다. 그리고 동맹에겐 더 이상 우주전력이 없다. 이걸로 동맹의 명운은 다한 거나 마찬가지다. 다들 기뻐하는 건 알겠지만…….
"각하, 축하드립니다."
발트하임이 축하를 시작하자 다들 입을 모아'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발레리도 축하해주었다.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양군 모두 그리 피해는 크지 않다. 일단은 안심할 수 있겠지.
"고마워."
어떻게든 웃을 수 있었다. 기왕이면 조금 더 빨리 항복해주면 고마웠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하면 희생은 좀 더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맹 정부는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뭔가 어중간하다. 전투도, 항복도.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황급히 참았다.
투덜거려도 변하는 건 없다.
"피츠시몬즈 대령, 오딘에 연락을. 반란군의 우주함대는 항복, 메르카츠 부사령장관과 합류한 뒤 하이네센 공략으로 향한다고."
"예."
"참모장, 반란군의 뷰코크 사령장관과 회담을 합니다. 24시간 후, 총기함 로키에 방함을 희망한다고 전해주세요. 또한, 소정의 절차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길 바란다고."
"예."
발레리와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각각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24시간 정도면 미사일의 폐기나 레이저 발사구의 폐쇄도 끝나겠지. 일단 만약을 위해 방심하지 말라고 전군에 전달하는 게 좋겠네.
조금 지쳤다. 시간은 있다. 한숨 자도록 할까…….
제국력 490년 4월 19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드와이트 그린힐
제국군 총기함 로키의 함내는 부드럽고 밝은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칠흑의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함내 이곳저곳에서 나와 뷰코크 사령장관에 호기심의 시선이 향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속삭이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구경거리가 된 듯하여 기분이 나빴다.
항복 후, 24시간이 지났다. 이 주역에는 제국군의 별동대도 집결하여 동맹군은 15만 척을 넘는 제국군에게 포위되어 있다.
정부의 항복 명령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소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15만 척을 넘는 제국군에 포위되어 있는 걸 생각하면 정부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트류니히트 의장의 판단이라고 들었지만, 좋은 결단이었다.
한 명의 사관이 다가왔다. 아직 젊다. 연령은 20대 중반 정도에서 후반이겠지. 군복 계급장으로 판단하기로 중장이다. 중간 몸집에 중간 키, 총명해 보이는 인상이다. 1미터 정도 거리에서 멈춰 경례를 올렸다.
"소관은 클라우스 발트하임이라 합니다. 동맹군의 숙장인 뷰코크 사령장관과 그린힐 총참모장을 만나 영광입니다."
비꼬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솔직한 성격인 걸지도 모른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함께 경례를 돌려줬다.
"패장에게는 과분한 말씀이로군. 부끄러울 따름이오."
뷰코크 사령장관이 대답하자 발트하임 중장이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모욕하고 말았다고 생각한 걸까.
"발렌슈타인 원수에게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수고를 끼치네."
발트하임 중장의 안내로 함내를 걷는다. 잠시 뒤 한 사람의 사관이 기다리는 문 앞에 도착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로젠리터, 뤼네부르크……. 말 없이 경례를 나눴다.
발트하임 중장이 문을 열며 "들어가시죠"라고 말했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머리의 젊은 장교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몸집이 작고 가녀린 몸을 검은 망토가 덮고 있다.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 이쪽을 향해 다가와서 경례를 하고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라고 이름을 밝혔다. 이쪽도 이름을 밝히며 경례를 나누고 소파로 안내되었다.
자리에 앉자 바로 여성 장교가 홍차를 가져왔다. 이 장교도 기억에 있다. 이름은 잊었지만 그 때, 뤼네부르크와 함께 있던 여성 장교다. 그녀는 홍차를 나누고 경례한 뒤 방에서 나갔다.
"패잔의 몸을 각하께 위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처분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단지 부하 장병에게는 배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뷰코크 사령장관의 말에 발렌슈타인 원수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일까.
"안심하시길. 우리들은 용감히 싸운 적을 칭찬 할 지언정 모욕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이 이상 의미 없는 피가 흐르는 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제대로된 언질을 받아 안심했다. 말투에서도 성실함을 느꼈다. 믿어도 좋을 것 같다. 홍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맛있다. 꽤나 좋은 찻잎을 쓴 거겠지.
"항복해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아냥이 아닙니다. 본심입니다. 이 이상 적도 아군도 희생을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번인가 항복 권고를 낼가 생각했습니다만, 모욕이라 받아들어지면 오히려 희생이 늘어나리라 생각하고 그만뒀습니다."
오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희미하긴 하지만 어조에는 안도의 울림이 있었다.
"항복은 정부의 명령이었습니다."
내가 말하자 발렌슈타인 원수는 "정부의"라고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에도 표정에도 놀람이 있었다.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의 명령입니까? "
"아뇨. 트류니히트 의장의 명령입니다. 이 이상 무익한 전투는 피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자유행성동맹 정부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만? "
발렌슈타인 원수는 이상하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어리단 느낌이 들었다. 그 점이 이상했다. 상대방은 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일 텐데. 뷰코크 사령장관도 같은 걸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조금 쓴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습니다. 그게 쓸모 없을 거란 걸 우리들도 알고 있습니다만, 시민은 모릅니다. 현 시점에서 항복하는 건 동맹시민에게 혼란을 일으키게 되겠죠. 경우에 따라선 그에 따라 정부 자체가 와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질서한 저항이 일어나 희생이 늘어날 뿐입니다."
"그렇군요."
발렌슈타인 원수가 두 번, 세 번 끄덕였다.
"트류니히트 의장입니다만, 이전부터 생각했습니다만 역시나 단순한 선동 정치가는 아닌 것 같군요."
"……."
"만남이 기대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 원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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