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7년 11월 23일. 길베르트 파르머.


  “평민에게 아양 떠는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등은 ‘선택된 자’의 긍지를 잃은 배신자일 따름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을 폐하여 우리들의 손으로 제국을 올바른 모습으로 돌리는 거다! 대신 오딘은 우리들을 수호하실 것이다. 정의의 승리는 그야말로 의심할 것 없다. 지크 라이히! 일어나라, 귀족들이여!”


  “백부님…….”

  스크린에서 사자후하는 백부님이 있다. 위엄과 힘에 가득 찬 모습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당주에 어울리는 모습이겠지. 귀족이라면, 아니 귀족이 아니더라도 그 모습을 동경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암담할 뿐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백부님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이 죽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영지 변경 안은 어떻게 되었는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은, 백부님은 저 영지 변경 안을 발렌슈타인을 방심하게 만들 함정으로 이용했다는 거겠지. 결과적으로 난 저 남자를 죽이는 걸 도왔다는 건가……. 혹은 달리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아니, 이제 와서 이유를 생각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백부님에게 승산이 있는지 어떤지다. 군부는 로엔그람 백작, 혹은 메르카츠 제독을 중심으로 행동하겠지. 귀족연합은 정규군에게 이길 수 없다. 이기기 위해선 군부를 분열하게 만들어야…….


  어떻게 할까. 이대로 페잔에 있어야 되는 건가. 백부님에게 갈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죽은 내가 돌아가면 오히려 백부님의 민폐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사고의 미로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신을 구한 건 TV전화 수신음이었다.


  “발렌슈타인. 경, 살아있었는가?”

  “예. 살아있습니다.”

  스크린에 나온 건 암살되었을 터인 발렌슈타인이었다. 백부님은 실패했다. 군의 분열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고통스러운 마음이 가슴에 가득 찼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영지 변경은 어떻게 됐어?”

  내 질문에 발렌슈타인은 쓴맛에 가득 찬 목소리를 냈다.

  “……면목 없습니다. 프로이라인들을 란즈베르크 백작들에게 빼앗겼습니다.”

  “!”


  빼앗겼다? 프로이라인들? 다시 말해 엘리자베트만이 아니라 사비네도 빼앗겼다는 건가…….

  “백모님들은 어떠신가? 백모님들도 납치되셨나?”


  “아뇨. 두 분은 무사하십니다.”

  백모님들은 무사. 처음부터 엘리자베트와 사비네를 노렸다. 백부님과 리텐하임 후작의 약점을 잡는 게 목적인가…….


  “경비는 어쩌고 있었던 거냐. 신무우궁에 침입하여 유괴라니,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근위에 협력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방 먹었습니다.”

  발렌슈타인의 얼굴이 그늘졌다.


  “그럼 백부님은 협박받은 거로군.”

  “예. 일어나지 않으면 프로이라인을 맹주로 반역을 일으키겠다고.”

  백부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찌른 건가. 란즈베르크 백작 알프레드. 하찮은 시를 만들 뿐인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엘리자베트, 사비네를 납치했나. 그걸로 백부님도 리텐하임 후작도 바라지 않더라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겠지. 애처로운……. 백부님의 심경을 생각하니 달랠 길 없을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경의 암살에 실패하다니. 백부님도 운이 없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주 조금이면, 안톤에게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가. 아주 조금이었나. 역시 백부님은 운이 없으시군.”

  내 말에 발렌슈타인은 희미하게 웃음을 보였다. 쓴웃음인 걸까.


  “안톤들은, 공작의 곁으로 도망치게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암살자를 도망치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발렌슈타인.


  “자세하게 말할 순 없습니다만, 프로이라인들을 란즈베르크 백작에게서 되찾을 것을 부탁했습니다.”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은 구할 수 없습니다만, 프로이라인들은 어떻게든 구하고 싶습니다.”

  “저 백부님들의 격문은 경이 꾸민 건가?”

  “…….”

  발렌슈타인은 말없이 끄덕였다.


  “그런가. 에르빈 요제프 전하는 도움이 되질 않는가.”

  “프로이라인들을 구하고자 하는 건 저 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두 원수의 합의사항입니다.”

  발렌슈타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믿어도 좋겠지. 그들에게 있어서도 엘리자베트, 사비네는 필요하다. 버릴 수는 없을 거다. 그녀들 두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백부님에게 있어서, 리텐하임 후작에게 있어서 그나마 구원이 되겠지.


  “경들도 고생하는군.”

  비아냥거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비아냥거리는 말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에르빈 요제프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엘리자베트를 차기 황제로서 하면 좋았다. 하지만 그래서야 귀족들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발렌슈타인들이 목표로 하는 새로운 제국을 만들 수 없다. 국가란 이 무슨 귀찮고 번거로운 것인지…….


  “헤르 파르머. 지금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혹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곁으로 가실 생각이시면 그만 두십시오.”


  “…….”

  “가면 이번에야말로 당신은 죽게 되겠죠. 반역자로서. 그리고 죽었다고 제국을 속인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확실히 그렇게 되겠지. 죽었을 터인 사람이 살아있고, 게다가 반란에 참가한다는 것이 용서될 리가 없다.

  “발렌슈타인. 나는…….”


  나는 마지막까지 말할 수 없었다. 발렌슈타인은 내 말을 중간에 끊고 말하기 시작했다.

  “헤르 파르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이 이상 괴롭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괴롭게?”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백부님을 괴롭게 한다. 내가 백부님의 곁으로 가는 건 백부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스크린에 비춘 남자는 말하고 있다.


  “저는, 플레겔 남작을 처단하고자 결심했던 때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봤습니다. 그 때 공작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공작은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간다면, 당신을 휘말리게 했다고 괴로워하겠죠.”

  “…….”


  “당신이 플레겔 남작이고자 한다면 죽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길베르트 파르머라면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자중하십시오.”

  발렌슈타인이 간청하고 있다. 이 남자는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다.


  “……어째서냐. 어째서 그렇게까지 나와 백부님을 걱정하는 거냐. 엘리자베트를 납치되게 한 속죄인가? 발렌슈타인.”

  “그것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미워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곤란하다는 듯한 웃음을 띠웠다. 항상 온화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 남자가 어딘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저는 공작이 오만방자하고 욕심이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제 앞에서 공작이 보인 얼굴은 아들의 불상사를 한탄하며, 아들을 잃게 되어 슬퍼하는 아버지의 그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


  “당신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가면, 공작은 또 그 날의 얼굴을 하겠죠. 부탁합니다. 페잔에 머물러 주세요.”

  “……발렌슈타인. 경은 너무한 남자로군.”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양친을 잃었다. 그 이후로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자란 거다. 그를 좋아했다. 언젠가 그의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레겔 남작은 죽고, 길베르트 파르머는 페잔에서 움직일 수 없어. 난 대체 뭘 위해서 태어난 건가…….”


  스크린에 비춘 발렌슈타인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이 남자가 어째서 내게 연락을 했는지 알겠다. 이 남자는 날 멈추기 위해서 연락한 것이다. 그게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를 알면서, 그래도 날 멈추기 위해 연락을 해왔다…….


  이 남자를 책망할 수 없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 이 사태를 만든 거다. 책망해야 할 건 나 자신이다. 이 남자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


  “발렌슈타인. 경의 충고에 따르지. 난 페잔에서 움직이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심중을 살피겠습니다.”

  “음. 경도 바쁘겠지. 자신의 일로 돌아가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합니다.”


  아무 것도 비추지 않게 된 스크린을 보면서 백부님에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 망설였다. 만날 순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하고 싶다. 내란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 백부님과 이야기 할 여유는 없어지겠지. 말한다면 지금밖에 없다.


  스크린에 백부님이 나왔다. 설마 나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뭘 말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백부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헤르 파르머인가. 페르너에게서 경에 대해서 들었네. 내가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다.”

  낮고, 굵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리운 목소리…….


  백부님…….

  “길베르트 파르머입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

  “…….”

  나는 백부님을, 백부님은 날 보고 있다.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경과는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네만. 마침 좋은 때에 이야기할 수 있었네. 이제부터 바빠질 것 같으니까 말야.”

  “…….”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 나는 이번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했네. 하찮은 반란이네만. 이래도 문벌귀족으로서의 의지가 있어서 말이야. 나로서도 참 미친 짓이다.”

  꽤나 자조하는 듯한 어조였다. 무리도 아니다. 백부님 스스로, 본의가 아닌 반란인 거겠지.


  “제가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무심코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니, 없다. 이건 귀족들만의 잔치다. 유감스럽지만 경의 협력은 필요 없어. 마음만 감사히 받아두지.”

  “…….”


  백부님이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

  “헤르 파르머. 내겐 조카가 있었네. 바보 같은 조카이긴 했지만, 귀여운 조카이기도 했지. 병으로 죽고 말았지만, 그가 죽었을 때엔 굉장히 슬펐었네.”

  “…….”


  “하지만 지금은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이런 바보 같은 반란에 휘말리게 할 순 없으니까 말이야.”

  “…….”


  “살아 있다면 경과 비슷한 나이네. 어딘지 모르게 경과 닮았구먼. 뭐, 기량은 경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백부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옛날의 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 말대로다. 옛날의 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자였다.

  

  “헤르 파르머. 좀 더 빨리 경과 만나고 싶었네.”

  “저도 좀 더 빨리 공작과 만났으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사 잘 되지 않는군.”


  잘 되지 않는다……. 곁에 있을 때엔 어쩔 도리 없는 어리석은 자로 민폐만 끼쳤다. 조금 괜찮아 지니 이제는 곁에 있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대체 난 뭘하고 있는 건가……. 어리석은 건 변하지 않는다는 건가…….


  “…….”

  말이 끊겼다. 생각 탓인지 백부님의 눈이 젖어있는 듯이 보인다. 아니면 젖어있는 건 내 눈인 것일까.


  “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네. 경과 말할 수 있어서 여한은 없어. 마음껏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헤르 파르머. 잘 살게나. 내게 무운이 있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 잘있게.”

  “공작 각하도 몸조심 하십시오.”


  백부님이 느긋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스크린이 컴컴해진다. 이제, 만날 수 없겠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것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이 무슨 어리석음인지…….


  “백부님……. 용서하십시오. 백부님…….”

  새카만 스크린을 향하여 난 단지 사과하고, 단지 울고 있었다. 어리석은 내겐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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