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7년 12월 1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군인도 편하지 않다. 아니, 처음부터 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부상을 입어도 쉬지 못한다는 건 괴롭다. 부상 입어서 쉬고 있습니다, 라고 해도 적은 찾아온다. 조금은 사양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몸이 다 나았을 때쯤을 가늠해서 찾아온다던가. 뭐, 그럴 리 없지.
발렌슈타인 함대 1만 5천척은 슈타덴들을 요격하기 위해 향하고 있다. 적은 슈타덴이 중앙에 1만 1천척, 슈타덴의 오른쪽에 라트부르흐 남작이 1만척, 왼쪽에 세츨러 자작이 9천척을 이끌고 진군하고 있다.
완전히 아스타테 회전의 재현이지만, 이 세계에선 아스타테 회전이 없었으니 재현이라고 하는 건 이상할지 모른다, 승리조건은 조금 다르다. 라인하르트의 경우 적을 격파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내 경우엔 오딘 방어라는 추가조건이 있다.
적의 함대가 오딘에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2일 정도다. 다시 말해 2일 이내에 3개 함대를 격파해야만 한다. 기습을 걸면 대충 4, 5시간 정도로 적을 격파할 수 있겠지.
나머진 이동시간이지만, 이것도 대략 5시간 전후는 걸리리라 보면 된다. 다시 말해 1개 함대를 정리하고, 이동하는 데에 10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3개 함대를 정리하는 데에 24시간은 걸리게 되겠지.
약 24시간의 예비시간이 있지만, 전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게다가 일단 뒤처지면 쫓는 건 힘들다. 쓸데없이 쓸 시간은 없다. 조건은 아스타테보다 엄하다고 해도 좋겠지.
슈타덴의 분진합격은 날 격파한다는 점에 관해선 그다지 좋은 수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로 뭉쳐서 힘으로 밀고오는 편이 승률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오딘 공략이라는 점에선 분진합격은 반드시 나쁜 수는 아니다. 순찰부대의 발견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이쪽에서 손쓸 도리가 없었겠지.
하긴, 내겐 슈타덴이 분진합격을 채용하는 데에 그렇게까지 생각했으리라 보지 않는다. 아마 그는 내가 오딘 근역에서 방어전을 행하리라 예측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배후에서 오는 메르카츠들과 힘을 합쳐 협공하려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겠지.
원래는 정면에서 돌파하여 오딘으로 진격하고 싶었을 것이다. 날 부수고, 오딘을 공략한다. 그 무훈은 다른 이의 추종을 불허하겠지. 2배의 병력이다. 잔재주를 부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기 멋대로 하려는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을 억누를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일부러 나뉘어 진격하여 목표를 주는 것으로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생각했다. 다곤 성역 섬멸전의 재현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을 납득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각하. 이제 곧 적과 접촉합니다.”
발트하임이 긴장한 모습으로 말을 걸어왔다. 슈마허, 키르히아이스, 남작부인, 발레리, 그리고 뤼네부르크가 회의책상에 앉아있다.
눈앞의 스크린에는 아직 적군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술 컴퓨터가 모니터에 비추는 의사전장 모델엔 적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세츨러 자작이 이끄는 9천척의 함대다. 이대로 가면 적의 전방 비스듬하게 공격하게 된다.
모두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뤼네부르크만이 전황보다도 키르히아이스를 주의하고 있다. 로키에 승함하기 전에 뤼네부르크에겐 예의 건을 이야기했다. 이 싸움이 끝나고 슈마허에게도 이야기 해둘 필요가 있겠지.
“참모장. 방해전파는 나오고 있습니까?”
“예.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내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일단 퍼스트 스트라이크를 쥔다. 난 가슴의 아픔을 참으며 오른손으로 들었다가 내린다.
“공격개시! 급속접근하여 적을 격파하라!”
...
제국력 487년 12월 15일. 세츨러 함대 기함, 멜렌바흐. 세츨러 자작.
“적함대 급속접근, 규모, 약 1만 5천!”
“무슨 말이냐! 적이라니 무슨 소리냐!”
오퍼레이터가 적이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바보 같은. 잘못 본 거겠지. 적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다. 슈타덴이 적은 오딘 근경에서 이쪽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하지 않았나. 삼면에서 포위해서 격멸할 거라고.
스크린에 비추는 광점이 조금씩 커져간다. 저건, 저건 적인 건가…….
“각하. 어떻게 합니까?”
부하가 질문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건가? 이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어. 슈타덴에게 속았다. 그래. 슈타덴이다!
“슈타덴 대장에게 연락이다. 응원을 요청해라.”
“안됩니다. 연결되지 않습니다.”
쓸모없는 오퍼레이터 녀석. 어째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거냐!
“무슨 말이냐. 어째서 연결되지 않아!”
“적의 방해전파가 심해서 통신은 불가능합니다.”
“에에잇. 쓸모없는 것! 난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어째서 아무도 날 도우려하지 않는가. 어째서! 슈타덴에게 속았다. 그 남자는 날 미끼로 하고 자신이 오딘을 공략하려 하는 것이다. 분명 그런 게 틀림 없다. 자신만 공적을 독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스크린에 새하얗게 빛났다.
“뭐냐. 무슨 일이냐!”
“각하. 적이 공격합니다. 반격합니까? 아니면 퇴각합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고, 공격이다. 공격해라! 적을 쫓아내는 거다!”
“공격하라. 전함, 총력전 준비!”
총력전? 이길 수 있는가. 나는. 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
주, 죽고싶지 않다. 아직 죽고 싶지 않다. 항복하면 살 수 있을까……. 난 슈타덴에게 속은 거다. 그렇게 말하면 살려줄까…….
...
제국력 487년 12월 1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막달레나 폰 베스트팔레.
전투를 개시하고 2시간이 지났다. 초보인 내가 봐도 아군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발트하임 참모장, 슈마허 부참모장,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전황을 보면서 지시를 내리고 있다.
지금 할 일이 없어 무료한 건 나와 뤼네부르크 중장뿐이다. 중장은 아까 전까지 사령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지금은 지시를 내리는 참모장들을 보고 있다. 합격점을 줄 수 있을지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제독석에 앉아 있는 사령장관을 봤다. 사령장관은 잠자코 전황을 보고 있다. 그는 작전을 개시하고 1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지휘를 발트하임 참모장들에게 맡겼다. 경험을 쌓게 만들려는 건가. 아니면 지휘를 잡는 것이 힘든 건가…….
발트하임 참모장들이 우위에 진행되고 있는 전황에 흥분하고 있는 데에 반해 사령장관은 냉정 그 자체였다. 때때로 얼굴을 찡그릴 때가 있다. 상처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 제독석에 느긋하게 앉아 모포를 덮고 있는 모습은 도저히 군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뭔가 남작부인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게 있었습니까?”
“아뇨. 죄송합니다. 각하가 너무나도 침착하셔서 무심코 보고 말았습니다.”
사령장관의 말에 무심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스크린에서 나로 옮겨왔다. 내가 사령장관을 보고 있는 걸 눈치 챈 것 같다. 저도 모르게 뺨이 뜨거워졌다. 사령장관은 미세하게 웃음을 띠고 있다.
“뭔가 제게 듣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괜찮은가요?”
내 질문에 사령장관은 끄덕였다. 시선은 다시 스크린으로 향하고 있다.
“예상보다 빨리 전투가 끝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앞으로 1시간 정도는 걸리겠죠. 그 사이에 할 일이 없습니다.”
“남작부인. 너무 장시간은 곤란합니다. 사령장관을 지치게 하지 말아주세요. 사실은 아직 입원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피망과 리버만 없었으면 좀 더 입원해도 좋았을 테지만요.”
피츠시몬즈 중령의 걱정하는 말에 사령장관이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피망과 리버? 싫어하는 걸까. 마치 어린아이 같다. 무심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각하. 슈타덴 대장은 이 뒤에 어떻게 할까요?”
“그렇군요. 이쪽의 움직임을 알고 라트부르흐 남작과 합류하는 걸 우선하든지. 혹은 눈치 채지 못하고 이대로 진격하든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이대로 진격하겠죠. 그리고 각개격파당합니다.”
“…….”
그럴까.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진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었는지, 사령장관은 스크린을 보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슈타덴 대장은 실전경험은 있습니다만, 실전지휘 경험은 없습니다. 거의가 참모, 막료임무 뿐입니다. 이렇게 경력을 쌓아온 사람에겐 많든 적든 어떤 종류의 버릇이 있습니다.”
“버릇, 입니까.”
“예. 작전을 신경 써서 세우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작전대로 움직일 땐 굉장히 강합니다. 하지만 한 번 의표를 찔리면 동요하고 말아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슈타덴 대장에겐 그런 버릇이 다분히 있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예. 전장에서 중요한 건 주도권을 쥐는 일입니다. 망설이고 있으면 주도권은 쥘 수 없습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으려다가 오히려 상대의 움직임에 맞추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주도권을 쥐기는커녕 상대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말게 됩니다.”
“…….”
사령장관이 날 봤다. 온화한 표정이다. 전장의 지휘관으론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일입니다만, 참모와 지휘관은 다릅니다. 참모의 임무는 작전을 세우고 지휘관을 보좌하는 일입니다만, 지휘관의 임무는 결단하는 일입니다. 간단하게 보입니다만,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결단해야만 합니다. 그 결단으로 적과 아군이 몇 십만, 몇 백만이나 죽게 됩니다.”
“…….”
사령장관의 말은 담담했지만 묵직한 무게가 있었다. 지금까지 몇 백만, 아니, 몇 천만 이상의 적과 아군을 죽게 한 사람의 말이다.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백만 명의 적을 죽인다는 결단의 무게는 어떤 것인가 하고.
지금까지 군인과의 접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라인하르트나 키르히아이스도 무훈을 올리는 기쁨이나, 승진한 기쁨은 알려줬다. 하지만 그 기쁨의 뒤에 있는 결단의 무게는 아려주지 않았다. 아니면 느끼지 못했든가…….
“각하. 혹시 슈타덴 대장이 라트부르흐 남작과 합류했을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말에 사령장관은 희미하게 웃음을 띠웠다.
“그 경우엔 함대를 오딘과 슈타덴 대장 사이에 두고 방어전을 전개합니다. 적은 약 2만 척, 이쪽은 1만 5천. 메르카츠 제독이 오기까지 충분히 대처 가능하겠죠. 그 뒤엔 협공하면 됩니다.”
“…….”
사령장관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힐더의 말을 생각했다. 서류를 결제하고 있는 사령장관은 전장의 무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군관료로 보인다……. 지금 내 눈에 비추는 사령장관은……. 역시 전장의 무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힐더가 말한 대로 군관료로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왜 그러십니까? 이제 지휘를 하는 건 질렸습니까?”
“면목 없습니다. 각하와 남작부인의 말에 흥미가 있어서 무심코 신경을 뺏겼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발트하임 참모장들이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사령장관의 질문에, 아니 혹은 갈책인 걸까. 참모장들은 입을 모아 사죄했다. 사령장관은 한 순간만 쓴웃음을 짓고 스크린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제 곧 적의 조직적인 저항은 끝나겠죠. 소탕전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슈타덴 대장의 함대를 공격하도록 이동해주세요.”
“예.”
“키르히아이스 준장.”
“예.”
“어떻습니까? 작전참모로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부관과는 꽤 다르리라 생각합니다만.”
사령장관의 말에 지크는 희미하게 긴장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각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까. 기대하겠습니다. 앞으로도ㅡ.”
사령장관은 어렴풋이 미소를 띠우며 모포를 조금 고치려고 했지만, 상처가 아픈 거겠지. 얼굴을 찡그리고 손을 멈췄다. 피츠시몬즈 중령이 곁에서 모포를 고친다. 사령장관은 안심한 표정으로 중령이 하는 대로 두고 있다. 마치 엄마와 아들 같다.
내가 모포를 고쳐주려고 했으면 사령장관은 어떻게 했을까? 부끄러워하며 싫어했을까?
...
제국력 487년 12월 1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슬슬 전투가 끝나겠지. 생각보다 빨리 정리할 수 있었다. 지휘관이 세츨러 자작이라서 효과적인 반격을 할 수 없었다는 것도 있지만, 병사의 훈련도도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발트하임을 시작한 참모들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 딱히 문제는 없다. 그들은 충분히 유능하다. 하지만 남작부인에게 말한 슈타덴의 약점은 발트하임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슈타덴 만큼은 아니더라도 발트하임에게도 지나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이번 싸움도 그가 처음부터 지휘를 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딘의 방어를 지나치게 생각한 나머지 슈타덴의 작전에 휘말리고 말아 포위섬멸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싸움에서 그 부분을 수정하면 좋겠지만…….
키르히아이스가 분함대 사령관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능력은 있다. 본인도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유감이야. 키르히아이스. 네게 남겨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그러기 위한 찬스는 몇 번인가 주도록 하겠어. 네가 라인하르트의 장신구가 아니라는 걸 주변에 증명하도록 해. 그리고 죽어. 반역자로서…….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적이 항복했다. 세츨러 자작은 포로가 됐다. 일단 퍼스트 스트라이크는 취했다. 세컨드 스트라이크는 슈타덴이다. 사관학교 이래의 인연이로군. 슬슬 결판을 내도록 할까? 슈타덴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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