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7년 12월 29일. 페잔. 아드리안 루빈스키.
“동맹의 대답은 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루퍼트가 어딘지 재밌어하는 어조로 말을 걸었다. 곤란한 녀석이다. 조금 더 내심을 숨길 수 있으면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래서야 너무 뻔해서 조금 재미가 없다.
“그렇군. 동맹이 함대를 파견한 건 어디까지나 동맹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 현재 동맹에는 제국과 사이를 틀만한 여유가 없다고……. 내게도 반제국활동을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
스스로 말하고 무심코 쓴웃음이 나왔다. 트류니히트는 무척이나 성실한 표정으로 날 걱정하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반제국활동을 그만 두라고. 역시 동맹에서 최고 자리에 설만하다. 적어도 루퍼트보다도 재밌게 해준다.
“과연. 동맹은 제국 사이에 화평의 길을 찾겠다는 겁니까. 웃긴 일이군요. 차라리 녀석들에게 알려주는 게 어떻습니까? 발렌슈타인은 동맹과의 공존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고.”
루퍼트가 트류니히트를 조소했다.
“쓸데없겠지.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내가 동맹과 제국을 이간질하려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글세. 어떻게 해야 할까?”
집무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루퍼트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몸을 숨깁니까?”
“…….”
아직 젊구만…….
루퍼트를 잠자코 응시한다. 내가 응시하자 루퍼트는 자리가 불편한 듯하다. 루퍼트. 네겐 세 가지가 부족하다. 하나는 참는 일이다. 그리고 참는 일을 배우기 위해선 시간과 경험이 필요해.
네게는 그 세 가지가 부족하다. 네가 날 뛰어넘기 위해선 적어도 앞으로 15년은 걸리겠지. 그걸 알면 길게 살 수 있겠지만, 넌 모를 거다. 유감스러운 일이군. 네게 있어서도, 내게 있어서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동맹은 필사적으로 제국 사이의 관계개선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국이 페잔 회랑을 자유롭게 쓰게 만드는 건 불안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3개 함대를 파견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도망치는 건 하책이군. 가능한 한 오래 버텨서 제국군을 페잔으로 침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는 편이 제국과 동맹의 관계를 긴장하게 만들 수 있겠지. 내기에 거는 것은 내 목, 꽤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루퍼트. 너도 이 게임에 참가하도록 해라.
문제는 그 뒤다. 도망친 후, 어디에 자신의 기반을 둘까……. 지구교인가? 하지만 페잔을 잃은 지구교는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지겠지. 그렇다면 언젠가 그 정체가 겉으로 나온다.
지구교의 강점은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크다. 그 정체가 알려지면 강점이 사라진다. 적당한 곳에서 인연을 끊어야겠지. 그리고 이용해준다. 일단 거기까지로군. 그 앞은 불확정요소가 너무 많다.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지.
음모, 모략도 세련되면 예술과 다를 바 없다. 아무래도 제국에는 날 뛰어넘는 남자가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은하를 통일하여 우주를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말도 안 된다. 혼란 속에서야말로 음모와 모략이 빛나는 거다. 내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 평화 따위 내겐 필요 없다. 철저하게 저항해주지.
...
제국력 487년 12월 30일. 오딘, 군무성, 군무상서실.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이제 곧 올해도 끝나겠구먼.”
“그렇군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꽤나 일이 많은 1년이었던 기분이 드는군요.”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가 감탄 깊게 일 년을 되돌아봤다. 확실히 일이 많았지. 그런 주제에 일 년이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의 말대로구먼.
“작년 이맘쯤이군요. 제 3차 티아매트 회전에서 원정군이 돌아온 건.”
“그런가. 그건 작년의 일이었는가. 좀 더 이전에 일어난 일인 기분이 들었네만…….”
“경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세. 봄에는 제 7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에서 대패를 맞았지. 그리고 여름엔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대승리를, 가을에는 칙령을 포고하여 겨울엔 제국을 둘로 나누는 내란이 일어났네. 이 무슨 바쁜지…….”
“내년엔 어떻게 될까요.”
“바빠지지 않을까. 군무상서. 3년 안에 페잔 경유로 반란군을 침공하겠다고 하니까 말이야.”
“슈타인호프 원수의 말대로일세. 사람을 쓰는 게 험한 애송이니 말이야. 편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말게나.”
모두 서로를 돌아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바쁜 건 맞지만, 일하는 보람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구먼. 괴롭다고 생각한 일은 없다.
“그래서 예의 플로토라는 자, 뭔가 불었는가? 소문에는 아무 것도 불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하네만.”
“플로토 대령은 모두 불었습니다.”
모두 불었다? 그렇다면 소문은 헌병대가 고의로 흘린 건가…….
“그래서, 어땠는가? 군무상서.”
“플로토들은 카스트로프를 떠난 후, 바로 내무성 사회질서유지국과 접촉했다고 합니다.”
“…….”
카스트로프? 설마하고 생각하네만, 15년 전의 일, 그 자들의 짓이라는 건 아니겠지?
“플로토들은 카스트로프 공작의 명령으로 증거인멸 공작, 혹은 범죄행위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내무성에는 그 범죄 기록이 있었습니다. 경찰조직을 쥐고 있는 겁니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사회질서유지국은 자신들에게 따르지 않으면 기록을 공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
“그 이후 그들은 내무성의 뒷일을 행하게 됐습니다.”
“기다려라. 사회질서유지국이 아닌 겐가?”
“일은 반드시 사회질서유지국만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플로토들은 사회질서유지국이 아니라 내무성의 재산이 됐다는 거겠죠.”
에렌베르크가 혐오를 담아서 말한다. 군인이면서 범죄에 손을 물들이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내무성의 뜻대로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에렌베르크에게 있어서 화딱지 나는 마음이 있겠지…….
“유괴사건은 랭 사회질서유지국 국장의 명령으로 행해졌습니다. 플로토의 이야기로는 사전에 궁내성, 근위병 사이에 유괴사건의 협력체제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플로토들은 어떤 걱정도 없이 유괴를 실행했다고…….”
“…….”
“어제 아침 일찍, 내무성 국장 이상의 직에 있는 자를 일제히 체포했습니다. 내무상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렌베르크가, 슈타인호프가 눈으로 답을 보충했다.
“좋겠지. 실수가 없게 하게나.”
“예.”
아무래도 일 년 마지막 날까지 바빠지겠구먼. 이래서야 신년도 바쁠 것이 확실하겠고.
“헌데, 플로토 대령은 내무성과 로엔그람 백작의 연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었는가?”
“아뇨. 거기에 대해선 아무 것도.”
“…….”
어차피 단순한 도구인가. 도움이 되질 않는군.
“헌데, 리히텐라데 후작은 카스트로프 공작이 10년 전, 발렌슈타인의 양친을 죽인 걸 알고 계셨습니까?”
에렌베르크가 이쪽을 추궁하듯이 질문했다. 역시 범인은 플로토였는가. 악연이구먼…….
“……알고 있네.”
“그럼, 발렌슈타인은.”
“저것도 알고 있네. 에렌베르크 원수.”
방에 침묵이 떨어졌다.
“후작이 알려준 겁니까?”
“아니. 이미 알고 있었네. 어느 인물에게서 진상을 들었다고 했네만. 누구에게서 들었는지는 상상이 가네.”
“발렌슈타인이 황제의 어둠의 왼손이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까?”
슈타인호프가 망설이는 어조로 질문했다. 과연. 그걸 묻고 싶었는가. 에렌베르크와 슈타인호프도 반신반의하는 정도겠지…….
“나도 한 때 의심했던 일이 있네. 하지만 아닐세. 황제의 어둠의 왼손은 그림자에서 움직이는 걸세. 눈에 띠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 아마도 저것에게 알려준 자가 어둠의 왼손인 건 아닌가하고 생각하고 있네.”
“그건 대체…….”
“경들은 몰라도 좋네. 나도 확증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
아마도 그 노인이겠지만. 장본인이 죽은 지금에 와선 모든 게 어둠 속이구먼. 무리하게 파낼 필요도 없겠지. 그러한 짓을 해도 어떤 도움도 되질 않아…….
...
제국력 487년 12월 31일. 렌텐베르크 요새.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지크. 미안해요. 당신도 바쁠 텐데.”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무슨 일 있었습니까?”
스크린에 나타난 안네로제님의 표정엔 고민하는 듯이 그림자가 있다. 조금 헬쑥해보이기도 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일을 끝내고 렌텐베르크 요새에 있는 개인실로 돌아가니 안네로제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락해 줬으면 한다고. 안네로제님에게서 연락을 바라다니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오늘, 내무성에 헌병대가 일제 수사에 들어갔어요.”
“!”
“저번에 있었던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의 유괴에 내무성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해요.”
헌병대가 내무성을 일제 수사……. 유괴사건의 조사. 그것만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어째서 안네로지님은 내게 그걸 알리려고 하는 건가…….
“그렇습니까. 제도도 소란스럽군요. 안네로제님도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지크. 난 괜찮아요. 그보다도 라인하르트의 일인데…….”
“라인하르트님이 무슨?”
안네로제님이 시선을 숙였다. 무슨 일일까. 라인하르트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
“2주일 전부터 오딘에 어느 소문이 흐르고 있어요.”
2주일 전, 우리들이 오딘을 빠져나간 뒤인가…….
“소문, 입니까.”
안네로제님은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저번에 일어난 발렌슈타인 원수 습격사건인데, 군부의 일부가 가담한 자가 있다는, 그런 소문이에요.”
“!”
“모두가 그러더군요. 발렌슈타인 원수를 방해라고 생각하는 건 라인하르트라고. 라인하르트가 발렌슈타인 원수를 암살하려 한 것이 아닌가하고…….”
“…….”
“이번 헌병대가 노리는 것도 사실은 라인하르트가 아닐까요? 동생이 유괴사건에도 관여하고 있었다고 하면…….”
안네로제님의 안색은 창백하다. 이 소문에 심하게 떨고 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이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
“리히텐라데 후작이 라인하르트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리히텐라데 후작……, 그럼 소문은 고의로 흘린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이 건은 발렌슈타인 원수도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리히텐라데 후작의 독단? 노리는 건 라인하르트님의 배제…….
“지크. 정말 라인하르트는 괜찮을까요? 전 그게 걱정이라…….”
“괜찮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이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믿어주세요. 그보다도 이 건을 라인하르트님에게 말씀하셨나요?”
“아뇨. 말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까. 라인하르트님은 변경성역 평정으로 바쁘실 겁니다. 이런 소문으로 마음을 어지럽히면 안 되겠죠. 안네로제님도 그다지 신경쓰지 마시길.”
안네로제님이 날 보고 있다. 간절한 시선이다. 가슴이 아프다.
“믿어도 좋은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 라인하르트님이 그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네로제님의 얼굴에 겨우 안심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크. 동생을 부탁해요. 저 아이가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없도록 지켜봐주세요. 혹시 그런 징조가 보이면 꾸짖어주세요. 라인하르트는 당신의 충고라면 받아들일 거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안네로제님. 라인하르트님에 대한 제 충성심을 믿어주세요.”
“고마워요. 지크. 미안해요. 무리한 부탁만해서. 하지만 당신 이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내게도 동생에게도 없어요. 용서해주세요…….”
“…….”
그렇지 않습니다. 전 두 사람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무심코 그런 말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네로제님은 분명 괴로운 표정을 짓겠지.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소문이 흐른 시기, 리히텐라데 후작의 움직임, 그리고 헌병대가 내무성을 일제 수사……. 각각이 독립한 움직임이 아니다. 연동해서 움직이고 있다. 확실하게 상대는 이쪽을 압박하고 있다.
아마도 발렌슈타인 원수는 저 사건의 진상을 눈치 챘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님에 대한 삼가를 버리려는 걸까? 아니면 리히텐라데 후작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어느 쪽이든 이대로는 라인하르트님이 위험하다.
라인하르트님은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니, 저 사건에는 우리들 중 누구도 관여하고 있지 않다. 모두 미발인 채로 끝났다. 증거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내무성 사람이 나나 오베르슈타인 준장의 관여를 증언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괜한 트집이라고 뿌리쳐버리면 된다.
다소의 의심이 라인하르트님에게 쏠릴지도 모르지만, 라인하르트님은 무관계인 거다. 나를 물고 넘어지는 일은 가능하다. 아니, 물고 넘어지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발렌슈타인 원수가 방해다.
원수가 있으면, 군의 지휘관은 원수와 메르카츠 제독으로 충분하다고 모두 생각하겠지. 하지만 원수가 없으면 후임은 메르카츠 제독이던가 라인하르트님 중 어느 쪽이 선발된다. 메르카츠 제독은 저번 프레이아 성역 제압에서도 슈타덴 대장의 함대를 놓치는 등, 실태를 범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메르카츠 제독과 라인하르트님 어느 쪽이 사령장관에 어울리는지. 모두 고민하겠지. 설령 메르카츠 제독이 사령장관이 되어도 라인하르트님을 배제할 수 있을까.
망설이겠지. 만일의 경우를 위해 온존하지 않을까? 여차할 때엔 안네로제님에게도 힘을 빌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님이 죄를 면할 가능성은 꽤 높을 것이다.
발렌슈타인 원수만 없으면 라인하르트님이 이 제국에 두려워할 상대는 없다. 일시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되어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망설이면 안 되겠지. 라인하르트님을 지키기 위해서…….
'번역 : 새로운 조류 시리즈 > 본편(연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91 화. 와인글라스 (0) | 2015.02.12 |
---|---|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90 화. 가면의 미소 (0) | 2015.02.12 |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88 화. 무기 없는 싸움 (0) | 2015.02.12 |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87 화. 악연 (0) | 2015.02.12 |
새로운 조류(에리히 발렌슈타인 전) 제 186 화. 용사 중의 용사 (0) | 2015.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