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1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막달레나 폰 베스트팔레.


  제국력 488년 이틀째가 시작하고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발렌슈타인 함대의 사령부 요원에게 긴급히 집합명령이 내려왔다. “시급, 총기함 로키로 집합하라.”. 악담을 뱉으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위안 정도로 대충 화장을 하고 함교로 향한다.


  방을 나오니 옆방에서 마찬가지로 피츠시몬즈 중령이 나오는 중이었다. 마침 좋다. 이걸로 혼자 늦게 가는 일은 없어졌다. 서둘러 옆으로 다가가 중령에게 말을 걸었다.

  “중령, 대체 뭐가…….”

  “서둘러요. 남작부인.”


  중령은 내 말을 끊고 바삐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리지는 않나요?”

  “밤중에 사령부요원이 달리면 주변이 불안해합니다.”


  침착한 어조였다. 과연. 확실히 그렇겠지. 중령은 벌써 몇 번이나 이런 경험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서두른 발걸음으로 걷는 중령의 뒤를 뒤처지지 않도록 쫓았다. 답답한 마음을 참으며 함교로 향한다.


  함교에 도착하니 사령장관을 중심으로 이미 전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이 곁으로 가니 몇 명이 날카로운 눈빛을 향했지만, 중령은 주눅드는 일 없이 침착하게 말했다.

  “늦었습니다.”


  사령장관은 무표정으로 끄덕인다. 무거운 공기로 싸여있다. 사령장관의 옆에는 잔이 놓여 있다. 아름다운 와인글라스다. 안은 투명하니까 아마도 물이겠지. 사령장관이 무표정하게 물을 마시고 있다……. 주변의 무거운 공기도 그렇고,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닌 게 확실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원 모였지요?”

  “아직 키르히아이스 준장이 오지 않았습니다만.”

  사령장관의 말에 크루젠슈텔른 부사령관이 주의를 구하는 듯이 말했다. 긴장해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지크가 없다. 어떻게 된 걸까. 지각을 할만한 애는 아닐 텐데…….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오지 않습니다.”

  사령장관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고했다. 모두 의심쩍은 시선을 교환하는 중, 뤼네부르크 중장과 슈마허 준장만이 누구와도 시선을 교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여기에 우리들이 모인 것도 그게 관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크는 어떻게 된 걸까.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독방에 있습니다.”

  “!”

  “그는 날 죽이려고 했습니다. 저번 장미정원의 습격사건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모두 얼어붙었다. 꿈쩍도 할 수 없는 와중, 사령장관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담담히 말을 계속했다. 정말로 죽을 뻔한 걸까…….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가.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선 내가 방해가 되니까. 그런 거였습니다.”


  지크, 어째서 그런 짓을……. 가슴이 옥죄이는 듯이 아팠다. 사령장관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령장관이 와인글라스의 물을 마셨다. 설마, 지크는 함정에 빠졌다? 암살은 날조?


  “로엔그람 백작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무거운 분위기 중, 발트하임 참모장이 곤혹해하는 듯한 어조로 사령장관에게 질문했다.


  “백작이 어디까지 사건에 얽혀있는 지는 모릅니다. 일단 일절의 권한을 박탈하고 오딘으로 돌려보냅니다. 나머진 헌병대의 일이겠죠.”

  “…….”

  “각 함대사령관에 대한 연락을 준비해주세요. 제가 직접 이야기합니다. 제일 먼저 별동대를. 단, 브륀힐트는 빼주세요. ……질문은?”


  질문은 없었다. 모두, 각자의 준비를 위해서 자리를 떠난다. 남은 건 사령장관, 뤼네부르크 중장, 피츠시몬즈 중령, 나……. 사람 수가 줄어들어도 무거운 분위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각하.”

  조금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령장관이 날 본다. 그리고 바로 시선을 와인글라스로 향했다. 한 순간이었지만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 시선이었다. 말을 건 것을 후회했지만, 그래도 듣고 싶은 일이 있다.


  “지크를, 키르히아이스 준장을 함정에 빠뜨린 건가요?”

  “남작부인!”

  뤼네부르크 중장이 낮은 목소리로 날 갈책했다. 하지만 사령장관은 오른손을 들어 중장을 막았다.


  “예. 싱거웠습니다. 그는 모략에 어울리지 않아요.”

  “알고 계신다면 어째서 그런 짓을.”

  내 비난에 사령장관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와인글라스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다. 시선도 와인글라스에 향한 채다. 이제 물도 남아있지 않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가 날 죽이려고 한 건 사실이고, 그들이 찬탈을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남작부인도 희미하게 눈치 채고 있었겠죠? 비난이라니. 의외입니다.”

  “!”


  뤼네부르크 중장과 피츠시몬즈 중령이 숨을 삼키는 걸 알았다. 눈치 채고 있었겠죠. 그 말이 귓가를 울린다. 확실히 그렇다.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겠지. 라인하르트의 행동이 모두에게 의심쩍게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암살 따위를 할 비겁함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지크가…….


  “키르히아이스 준장처럼 비겁하다는 둥, 재미없는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전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가 죽었을 수도 있었겠죠. 아니, 실제로 한 번은 죽을 뻔 했습니다. 하지만 난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단지 그런 겁니다.”


  사령장관이 어렴풋이 웃음을 띠며 날 보고 있다. 어딘가 요염한, 무서운 웃음이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이쪽을 가늠하는 듯이 차갑게 빛나고 있다. 넌 그들의 야심을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너도 그들의 일당 중 한 명이다. 그렇게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엔그람 백작이 각하를 암살하라고 명령한 걸까요?”

  “아뇨. 그건 아니겠죠. 그는 그런 비겁함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백작을 구속이라니……. 그렇게까지 그가 방해인 건가요?”

  “남작부인.”

  이번엔 피츠시몬즈 중령이 날 책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라인하르트를 감싸는 것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난 마음 어딘가에서 이 사람이라면 라인하르트를 능숙하게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인하르트는 타인에게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


  “방해?”

  사령장관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날 봤다. 그리고 쿡쿡 웃더니 마지막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고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남작부인. 로엔그람 백작은 패자입니다. 패자는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아요. 제가 그를 방해라고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가 저를 방해라고 생각한 겁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그 마음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충실하게 말이죠.”

  “…….”


  로엔그람 백작은 패자. 사령장관의 말이 귀에 남았다.

  “저는, 정점에 서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언제나 그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라인하르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저건 언제의 일이었을까. 확실히 샨타우 성역 회전 다음이었다. 내 소원 따위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바보 같은 소원이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추억에 빠져있던 날 사령장관의 목소리가 깨웠다.

  “남작부인. 이 건에 관해서 불만을 가지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표현하는 건 그만두세요. 이건 제국의 총의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총의?”


  사령장관이 날 신경써주고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총의? 총의라는 무슨 말일까. 사령장관이 시선을 내게 향했다. 어딘지 애처로운 시선이다.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 그리고…… 저. 저희들 사이에서 로엔그람 백작은 제국의 불안정요소였습니다. 이번 내란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를 이용하려 하고 있지요.”

  “…….”


  “제국은 이제부터 페잔, 자유행성동맹을 포함하여 은하를 통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 내부의 불안정요소를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


  “문벌귀족도 로엔그람 백작도 제국의 불안정요소인 이상 배제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정을 걸었습니다.”

  “그럼 지크를 함정에 빠뜨린 건 역시…….”


  내 말에 사령장관은 끄덕였다.

  “예. 진짜 목적은 로엔그람 백작의 배제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만을 배제해도 어떤 의미도 없으니까 말이죠.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도 이 건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


  탄식이 나올 것 같았다. 곁에 있는 피츠시몬즈 중령이 숨을 삼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인하르트가 우주함대 내부에서 미묘한 입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함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야심적이고 패기에 넘치는 창빙색 눈동자. 그 눈동자는 주변에서 위험시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배제되려고 하고 있다. 사령장관은 내게 그들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알고 있다. 사령장관은 이전부터 내게 그들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래도 들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안네로제,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은 어떻게 됩니까?”

  “이제 그만하시오. 남작부인.”

  뤼네부르크 중장이 나를 제지했지만 무시하고 사령장관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됩니까?”

  “…….”

  사령장관은 또 와인글라스를 보고 있다.

  “알려주세요. 각하!”


  내 질문에 사령장관은 탄식을 뱉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 불행한 분입니다. 백작부인만 없었으면 로엔그람 백작의 급격한 대두도 없었겠죠. 키르히아이스 준장도 평온한 일생을 보냈을 것을…….”


  시선을 피하며 타인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사령장관에게 무심코 버럭했다.

  “각하! 얼버무리지 마세요. 그녀는 어떻게 됩니까?”

  “이제 그만두세요!”

  피츠시몬즈 중령이 목소리를 올렸다. 강한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안네로제는 내 친구인 거다.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일도 있을 수 있겠죠.”

  조용한 목소리가 흘렀다.

  “그런…….”

  항의하는 날 사령장관은 손을 올려 막았다.


  “백작부인이 제 암살에 가담했다는 일은 없겠죠. 하지만 로엔그람 백작이 찬탈을 바랬다고 한다면 당연히 백작부인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녀의 처우에 대해선 최종적으로는 폐하가 판단을 내리게 되겠습니다만, 리히텐라데 후작의 의견이 크게 영향을 미치겠죠.”

  “…….”


  리히텐라데 후작……. 엄한 눈빛을 가진 노인. 후작은 안네로제를 어떻게 할까.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일이 생각났다. 사령장관이라면 후작에게 안네로제의 목숨을…….

  “소용없습니다.”


  놀라서 사령장관을 봤다. 사령장관은 또 와인글라스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에 대한 제 첨언을 기대하고 있다면 소용없습니다. 후작은 제가 로엔그람 백작에게 무르다고 화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첨언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겠죠. 그 무른 부분을 때려 고쳐주겠다면서 말입니다.”


  “무른 겁니까?”

  “예. 너의 그 무른 부분 때문에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화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말대로입니다. 저의 무름이 싫어질 정도입니다.”

  사령장관이 어렴풋이 웃음을 띠웠다. 어둡고 어딘가 자신을 조소하는 듯한 웃음이다. 무심코 가슴을 때리고 싶어졌다. 이 사람이 물러? 대체 리히텐라데 후작은 얼마나 엄하다는 걸까…….


  “……그럼 폐하에게 직접 부탁하면.”

  “설령 총희라 할지라도 동생이 대역죄에 얽혀 있다고 하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처벌이든 내려지겠죠. 게다가 키르히아이스 준장, 오베르슈타인 준장이 관여하고 있었던 건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슨 일입니까?”

  내 질문에 사령장관은 무표정해졌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그들은 궁중에서 일어난 유괴사건, 쿠데타 사건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저 사건에는 내무, 궁내, 그리고 근위과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나 사람이 죽었습니다.”

  “…….”


  “근위병총감 람스도르프 상급대장은 자살, 노이켈른 궁내상서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도 딸을 빼앗겨 본의가 아닌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괴된 두 사람은 폐하의 혈족이십니다.”

  “본의가 아닌?”


  내 질문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겠지. 사령장관은 한 순간 놀란 표정을 내게 보였다. 그리고 생각났다는 듯이 한 번 끄덕였다.


  “아아, 남작부인은 몰랐지요. 그들은 사실 반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승산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예의 유괴사건 때문에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 모든 것에 저 두 사람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내무성, 궁내성과 짜고 혼란을 크게 만들어, 거기에 편승하여 제국의 권력을 쥐려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로엔그람 백작을 위해서입니다.”


  “…….”

  “로엔그람 백작의 소원은 제 2의 루돌프 대제가 되는 것. 그리고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되찾는 것…….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이번의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백작부인은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에게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죠…….”

  마지막은 극히 사무적인 어조가 됐다. 너무나도 싸늘해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령장관이 와인글라스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강하게 밀었다. 와인글라스가 쓰러지고 그 충격으로 마른 소리를 내며 굴렀다.


  “아름답고, 단단하며, 그리고 위험합니다. 유연함 따위 어디에도 없지요. 사용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깨지고 맙니다……. 불편하네요. 성가시기도 합니다. 전 좀 더 튼튼하고 부서지기 어려운 머그컵을 좋아합니다.”


  사령장관은 지긋이 구르고 있는 와인글라스를 보고 있다. 아니,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이쯤으로 해두지요. 전 다시 개인실로 돌아가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불러주세요.”


  결코 강한 어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이상 질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목소리, 사람의 위에 설 수 있는 인간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뤼네부르크 중장이 뒤를 쫓듯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리를 일어서려고 한 피츠시몬즈 중령에게 고개를 저어 말렸다. 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지만, 중령은 어깨를 떨어뜨리고 얌전히 자리에 앉고, 뤼네부르크 중장이 사령장관의 뒤를 쫓았다.


  피츠시몬즈 중령이 떠나가는 사령장관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한 순간 강한 시선으로 날 노려본 뒤, 한숨을 내쉬고 와인글라스를 봤다. 중령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아름다운 잔이라고 생각한다. 평소라면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만이 들었다. 이런 잔,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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