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일 정도로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 것은, 안톤 페르너였다. 목소리만 듣는다면 아무런 악의도 느껴지지 않지만, 이 녀석의 얼굴엔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이 있다. 불쾌한 녀석이다. 난 이 녀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작에서 알고 있을 뿐인, 대화를 해 본적도 없는 상대를 싫어하는 건 어떨까 싶지만, 싫다. 난세를 즐기는 듯한, 아니 기뻐하며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 같은 부분을 싫어한다.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말을 걸어 온 이상 어쩔 수 없다. 도망치는 걸로 보이는 것도 기각이다. 난 근처의 시청각용 부스에 앉아 적당히 전자서적을 선택했다. "제국 경제에 대한 페잔의 영향력의 범위와 그 한계" ……묘한 타이틀의 책이지만, 페르너 상대를 하는 것 보다는 좋겠지. 읽기 시작했지만, 어째서 도망치지 않았는지 바로 후회했다. 재미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상대가 3명이 되어 있었다. 뮐러와 키슬링이 참전한 것이다.


  "교장 선생이 불렀다는 듯 하지만, 무슨 용건이었나? 한번 맞춰볼까? 내년도 진로에 대한 것이겠지?"


  이 책은 꽤 재밌다. 눈 앞에 시끄러운 녀석이 한명 있지만 무시하자.


  "정곡이었나보군. 그렇게 무시하지 않아도 좋잖아?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인데."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 라는 말을 들어서 말이야."


  그렇다. 이 녀석들은 아직 자기소개도 하지 않았다. 불량한 녀석들이다.


  "아아, 미안하군. 내가 잘못했다. 내 이름은 안톤 페르너. 저쪽이 나이트하르트 뮐러. 귄터 키슬링이다. 전략과를 전공하고 있어."

  "귄터 키슬링이다."

  "나이트하르트 뮐러, 잘부탁해."

  "에리히 발렌슈타인, 병참과."


  가르쳐준건지, 내뱉은건지, 알 수 없는 말투가 되었다. 안되겠군, 조심하자. 너희들도 공기 읽고 빨리 돌아가.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네게 흥미가 있을 뿐이니까. 넌 콘라드 발렌슈타인 변호사의 아들이지?"

  "그렇습니다만. 아버지를 아시나요? 페르너시."

  "안톤이면 돼. 그야, 알고 있지. 영웅 콘라드 발렌슈타인 변호사니까 말이지."

  "영웅……."

  "아아, 영웅이지. 발데크 남작가, 콜비츠 자작가, 하일만 자작가를 상대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서, 리메스 남작을 지킨 것이다. 모두가 영웅이라고"불쾌하군"……."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멋대로 아버지를 영웅시하며 즐기는군요."


  난 일어나서 페르너를 노려보며 말했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페르너는 죽어 있겠지.


  "아니, 난 그다지."

  "불쾌합니다! 이야기가 그것뿐이라면 돌아가주지 않겠습니까? 저도 꽤 바쁜 사람입니다. 오늘 안에 이 책을 읽어야 하니까 말이죠."


  너희들이 뭘 알아! 아버지가 영웅이라고? 아버지가 그런게 되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버지는 그저 변호사로서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다. 어머니를 위해서 리메스 남작을 지켰을 뿐이다. 아버지의 시체는 심한 폭행을 당해 원형조차 남지 않았었다. 아팠겠지, 괴로웠겠지. 아버지의 변해버린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버지는 괴로웠을 것이 틀림없다. 팔불출로 보일 정도로 날 사랑해 준 아버지가, 날 혼자 놔두게 되어, 나와 두번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각오했을 때, 얼마나 큰 절망과 원한이 아버지를 잡았을 것인지. 너희들이 뭘 알아! 외치고 싶어 질 정도였다. 눈 앞의 페르너를 때려 눕히고 싶었다. 난 필사적으로 분노를 가라앉혔다. (참는거다. 참는거다 에리히. 그러니까 좀 더 화내라. 좀 더 화내서 끊어져서 눈 앞의 이 바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라.)

  "기다려주게. 발렌슈타인."

  뮐러인가. 꺼지라고. 날 방해하지마!


■ 나이트하르트 뮐러


  눈 앞에서 페르너를 노려보는 발렌슈타인은 작은 몸을 조금씩 떨어가며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한편 페르너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아연해하고 있었다. 이런, 멈추지 않으면 싸움이 시작된다.


  "기다려주게. 발렌슈타인."


  난 무아무중에 외쳤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할 말이 있는 건 내쪽이다. 발렌슈타인. 부탁이니까 페르너를 용서해주게."

  "뮐러의 말대로다. 진정해주게."


  나와 키슬링의 말에 발렌슈타인이 겨우 이쪽을 바라봤다. 기기기기기긱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천천히.


  "미안하네. 할 말이 있는 건 나다. 그, 자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으니 페르너가 자신이 말을 걸어보겠다고 말한 거라네. 자네를 화내게 하고 말았지만, 결코 자네나 자네의 아버지를 모욕하려는 생각은 없었네. 불쾌한 과거를 생각나게 해버린 것은 사과하지. 그러니 페르너를, 우리들을 용서해주게."

  "아버지나 어머니를 흥미본위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아. 물론이다. 약속하지. 그리고, 말하고 싶다고 한 건 잊어주"내일 1700에 여기서"…괜찮은건가? 발렌슈타인."


  발렌슈타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시청각용 부스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우리들은 도서관을 나와 공원에 있는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로 모였다.


  "놀랐다. 저렇게까지 화낼줄이야."

  그렇게 말한 키슬링은 한숨을 내쉬었다.

  "놀란 건 이쪽이라고."

  페르너는 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싸우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지만."

  "싸움이 됐을까?"

  "됐어."

  나와 키슬링의 말이 겹쳤다.

  "위험했다고. 페르너."

  "응. 뭐랄까."

  "한발 잘못됐다면, 우리들은 수를 무기로 발렌슈타인을 모욕한 꼴이 됐었다고."


  "어이어이, 과장이 심하군. 뮐러."

  "과장이 아냐. 알겠나? 우선 애초에 우리들은 정식 입학생이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은 편입생. 다음으로 우리들은 16살이고 발렌슈타인은 12세. 그리고 우리들보다 발렌슈타인 쪽이 성적이 좋아. 이 정도 모이면 우리들 세명이 질투 때문에 몸도 작은 발렌슈타인을 린치, 혹은 모욕하려고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렇지 않아도 페르너는 교관과 싸우고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눈 밖에 난 존재인 것도 사실이다.

  "……위험했구마안."


  우리들인 세명이서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다고 생각한다. 사관학교에는 정식입학생과 편입생이 있다. 이 둘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반년의 차라는 건 그 정도로 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편입생을 모욕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사관 후보생이라고 해도 군인인 것이다. 군에 소속한 인간이 국가의 제도를 모욕하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 그것이 원인으로 "조기 졸업 제도", "편입제도"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제도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은 다른데도 아닌 군대인 것이다. 당연히 군은 모욕할 듯한 행동조차도 용서하지 않겠지. 이미 군 내부에는 편입생은 우수하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이 정식 입학생과 편입생의 군적에 대한 하나의 기록이 되고 있지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으니 키슬링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봐, 페르너. 발렌슈타인 변호사라는 건 그렇게 유명한건가?"

  "발렌슈타인 변호사가 없었다면 리메스 남작은 모살당하고, 리메스 남작가의 재산을 두고 친족들 간의 쟁탈전이 벌어졌겠지. 오딘의 사교계에선 모두 그렇게 말하며 발렌슈타인 변호사를 찬미하고 있어. 당연히 군에서도 알고 있는 사람은 많겠지."

  우리들은 또 세명이 모여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뮐러. 내일 만날건가?"

  "아아. 모처럼 저쪽이 긍정한거다. 만날 생각이다."


  그런가. 하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니, 조금 낮은 목소리로 페르너가 말하기 시작했다.


  "실은 말이지. 이건 어제 어떤 루트에서 들은거지만. 에리히 발렌슈타인이 사관학교에 들어온 것은, 암살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있다."


  나와 키슬링은 얼굴을 마주했다. 암살? 무슨 소리냐.

  "부모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죽이려는 건가. 지독한 녀석들이군."

  키슬링이 내뱉듯이 말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제대로 된 방식으로 죽이지도 않겠지."

  "리메스 남작가가 작위와 재산을 반환했을 때, 현금이 묘하게 적었던 듯 하다. 재무성 사람이 그렇게 말한듯해."

  "적었다니. 어느정도 말야?"


  귀족의 작다고 하는 것은 어느정도일지. 난 그런 걸 생각해보며 물었다.


  "딱 20만에서 30만 제국 마르크는 적다고 했다."

  "20만에서 30만, 어이, 그거 정말이냐?"


  질려하면서 키슬링이 묻는다.


  "어디까지 정말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었단 건 사실인듯 해."

  "너, 그 이야기 믿을 수 있냐? 어떤 루트라니, 무슨 루트야?"

  루머인건 아니냐고 의심하면서 물어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대귀족의 루트다. 신빙성은 높을 거라고 생각해."

  라는 신묘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곤 생각하기 힘들다.


  "그 돈이 발렌슈타인에게 있다고?"

  "알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암살 운운도 실제론 그런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거기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해. 자신들에게 들어올 돈이 관계도 없는 평민에게 넘어갔다, 라고 말이지. 그가 양친의 사후, 리메스 남작과 만났단 것도 사실인 것 같고 말이지. 뭐, 자신 때문에 양친을 잃은 아이와 만났다고 해도 뭘 하나. 거기다 자신은 더 이상 길지 않다고 안다면……나중을 이을 사람도 없었다면."


  우리들 세 명은 또 얼굴을 마주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대체 몇번째일가. 한숨이 겹치는 하루다.


  나는 발렌슈타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대체 뭘 알고, 뭘 짊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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