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양친의 장례식 준비. 어제는 장례식이었다. 난 거의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장례식은 모두 하인츠를 중심으로 한 법률 사무소 사람들이 행했다. 제국과 동맹이 전쟁을 시작한 이래 150년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모두, 장례식엔 익숙하다. 양친의 관이 묘 아래로 들어갈 때엔 눈물이 나왔다.


  내가 장래에 대해서 하인츠와 대화를 나눈 것은 장례식 이후, 내 집에서 였다. 하인츠의 아내, 엘리자벳도 함께였다.


  "조기졸업하고, 사관학교에 편입 시험을 보려고해."

  "조기졸업? 에리히의 성적이라면 힘들지는 않겠지만, 군인이 된다고?"

  "응."


  조기졸업이라는 건, 단위를 취득하고 반년 먼저 졸업하는 제도다. 전쟁에 의해 인적 자원 부족이 만성적인 지금, 사회로 나가는 인적 자원을 보급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학생이라는 예비 전력을 내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들어가는 곳도 거기에 대응한다. 사관학교의 편입 시험 제도다. 반년 먼저 졸업한 학생을 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신입생은 반년 전에 입학하고 있지만, 반년 정도라면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편입시험을 받는 것은 반년 먼저 졸업한 학생이다. 딱 좋다. 이 제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에리히. 넌 아직 아이다.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건 그만둬라."

  "그래요. 에리히. 하인츠가 하는 말 대로야. 사관학교는 무리야. 그보다 우리들과 함께 살지 않겠어?"

  "너만 좋다면, 우리들의 아들이 되어줬으면 하지만."

  "미안, 아저씨. 아주머니. 하지만 결심했으니까."

  "에리히. 그건 복수를 위해서인가?"

  "아니야. 아저씨.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잠시동안 말이 오갔지만, 결국 내 의견이 통했다.


  "알았다. 에리히.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하거라. 단, 반드시 행복해져라."

  "응. 고마워. 아저씨."

  "아쉽네. 모처럼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생길거라 생각했는데."

  "미안. 아주머니."


  그 뒤, 난 하인츠에게 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장을 부탁했다. 사관학교의 편입시험을 받기 위해선, 단지 성적이 좋기만 해서는 안된다. 본인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물의 아들, 혹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물에게서 받은 추천장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엔 아버지가 변호사고, 귀족의 고문 변호사도 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일을 위해서라도 준비해두고 싶다. 하인츠는 쾌히 승락했다.


  지금 있는 집은 셋집으로 쓰기로 했다. 수속, 관리는 하인츠가 해주기로 했다. 물론 거기에 대한 대가도 내기로 했다. 하인츠는 처음엔 받을 수 없다고 했지만, 내가 공적으로 부탁하고 싶다고 말하며 억지로 넘겼다. 일단 마친 뒤, 하인츠가 지긋이 말을 꺼냈다.


  "에리히. 부탁할 게 있는데."

  "뭔데?"

  "응. 리메스 남작이 너와 만나고 싶다고 말하시더군. 어때? 만나주지 않겠어?"

  "리메스 남작인가……. 좋아. 만나도."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

  "어서오게나. 에리히. 칼 폰 리메스다. 이런 모습이라서 미안하군. 좀 더 이쪽으로 오게."


  날 반긴 것은 침대에 누어있던 노인이었다. 지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대에게 미안하군. 설마 녀석들이 그런 짓까지 할 줄이야. 전례성에 수속만 끝난다면 녀석들도 포기할거라 생각했지만. 정말로 미안하네. 용서해주게."


  리메스 남작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남작 각하는 괜찮으신가요?"

  "내가 죽는다면, 전례성에서 검시관이 온다. 사체에 이상이 발견되면 당연히 조사가 시작된다. 맨 처음 의심당하는 건 녀석들이야. 그건 녀석들도 알고 있다. 배가 아파도 아무짓도 할 수 없어. 오히려 뭔가 해주면 좋았을 것을. 난 이제 늙어서 앞으로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되면 콘라트도 헬레네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미안하네."

  "각하. 하인들은 믿을 수 있습니까?"


  하인츠가 물으니, 남작은 천장을 보면서


  "이제 이 집 하인들에게 흥미를 가지는 사람은 없다네.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관심도 없어지니까."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자네는 정말 헬레네와 닮았구만. 꼭 닮았다. 자주 자랑스런 아들이라고 말했었지."

  "어머니와 친하셨나요? 일 외에도."

  "친했다네. 딸이었으니까."

  "딸?"


  난 얼빠진 소리를 내며 남작을 봤다. 그리고 하인츠를. 하인츠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거짓말이 아니라네. 이걸 보게나."


  노인은 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사진에는 남녀들이 찍혀 있었다. 남성은 40~50대 정도. 여성은 20~30대 정도인가. 부녀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여성의 팔에는 아기가 안겨 있었다.

  그리고 남성은 아마도 리메스 남작이겠지. 약 30년에서 40년 전의 사진이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은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 할머니인가? 할머니인 프레이아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을 테지만……. 난 또다시 하인츠와 얼굴을 마주봤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리메스 남작은 내 할아버지였던 건가?


  "나와 프레이아는 40년 전에 만났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여 태어난 것이 헬레네였다."

  "어째서 헬레네를 남작가의 영애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가요?"

  "프레이아가 그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부친이 남겨준 유산이 있었고, 헬레네를 키우는 데 어려움도 없었다. 거기에 그녀는 귀족을 싫어했지."


  "귀족을? 하지만 각하도 귀족이잖습니까?"

  "하인츠.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귀족인 줄 몰랐다네. 뭐, 나도 신분을 숨기고 있었고. 당시의 난 아내를 잃은 홀몸이었으니까. 그녀와 결혼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귀족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고민했다네. 마치 첫사랑 같았어. 그래도 결심하고 신분을 밝힌 뒤 결혼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더군. 나중에 굉장히 불평했다네. 귀족은 역시 믿을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남작의 얼굴에는 아까전의 지친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즐거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결국 결혼은 할 수 없었다네. 그대를 사랑하고 있긴 하지만,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들어서 말일세. 아무래도 그녀의 친구가 귀족의 아내였던 듯 하네. 하지만 그녀는 귀족 사회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남편도 그녀를 충분히 돕지 못해, 마지막에 끔찍한 결과가 되었다고 하더군."

  "끔직한 결과라면?"


  그렇게 내가 말하니, 남작은 슬프다는 듯이 말했다.


  "자살했다고 들었네."


  우리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귀족과 평민 사이엔 당연하게도 벽이 있다. 귀족이 평민을 깔보는 이상으로, 평민이 귀족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 벽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 것인지.


  "헬레네를 리메스 남작가의 딸로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혹시 그랬다면 에리히도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버지는 알고 있었나요?"

  "물론이네. 리메스 남작가의 고문 변호사를 하고 있던 것에 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네. 난  실제로, 그의 성실함, 능력을 평가하고 고문 변호사로 고용했지만. 두 사람 모두 자주 자네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 해 주었네. 행복하다는 걸 알고 기뻣다네."


  "프레이아씨에 대해선 주변에선 몰랐던건가요?"

  "알고 있던 건 게오하르트 뿐이었다네."


  내가 눈으로 하인츠에게 물어보니,


  "죽은 집사다."


  하고 답했다.


  "에리히. 이걸 받아주게나."


  그가 내놓은 것은 페잔에 본사가 있는 대은행의 카드였다.


  "받을 수 없어요. 그런걸로 사죄받고 싶지 않아요."

  "에리히!"


  질책하는 하인츠를 손을 들어 진정시키고, 남작은 내게 계속 말했다.


  "아니야. 에리히. 이건 사죄가 아니라네. 너의 행복을 위해 내놓은 것이니까. 리메스 남작가의 재산은 모두 제국에 반환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정도, 미련을 남겨도 좋겠지."

  "……감사합니다. 소중히 쓰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이것도 받아두게나."


  그는 사진을 내놓았다.


  "에리히.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라고 불러주지 않겠나?"

  "예. 할아버지. 오늘은 만나서 기뻤습니다."

  "고마우이. 이제 다시 널 만날 일은 없을거야. 만나서 좋았다네. 넌 나의 자랑스런 손자다. 발하라에 가서 콘라트와 헬레네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린 것을 자랑할 수 있겠어."


  코 끝이 찡했다. 남작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남작도 마찬가지겠지. 남작은 나를 끌어 안고, 내 머리에 뺨을 비볐다. 잠시동안, 숨을 쉬는 소리만이 방 안을 울렸다.


  우리들은 리메스 남작가에서 나왔다. 어디까지나 죽은 고문 변호사의 관계자로서. 리메스 남작이 죽은 것은 그 뒤 1주일 뒤였다. 장례식에 나온 것은 나와 게러 부처 외 몇명 뿐. 리메스 남작가의 친족은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조용히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조부로부터 받은 카드에는 20만 제국 마르크가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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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츠는 나 혼자 두는 것이 걱정됐나보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난 거절했다.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곁에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은 밤 7시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식사는 도중에 끝냈다. 서로 아무말도 나누지 않고, 단지 담담히 요리를 먹었다.


  "에리히, 난 이제 돌아갈게. 정말로 혼자 있어도 되겠어?"

  "아저씨. 아빠와 엄마를 죽인 건 귀족이지?"


  하인츠의 얼굴이 굳는다. 유체 안치소에선 하인츠도 경찰도 범인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범인이 잡혔다면 경찰은 가슴을 피고 그렇게 말하겠지. 범인을 알 수 없었다면 반드시 잡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알고 있지만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귀족. 그것도 꽤 높은 대귀족일 것이다.


  "아저씨. 내겐 알 권리가 있을거야. 우리 아빠와 엄마에 대한 것이니까."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지친 표정으로 하인츠는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칼 폰 리메스 남작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럭저럭 유복한 귀족이었다. 연령은 84세. 요즘 반년 정도 전부터 몸 상태가 안좋아서 침대에 누워있을 때가 많아졌다. 아들은 10년 전에 사망이라는 불효를 저질렀지만, 손자가 2명 있어 상속 걱정은 없었다. 장남인 테오도르는 가문을 잇기 위해 조부와 함께 살고 있고, 차남인 아우구스트는 군에 들어갔다. 장남은 가문을 잇고, 상속권이 없는 차남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은 귀족사회의 상식이기 때문에, 리메스 남작가도 극히 평범한 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개월 정도 전, 테오도르가 죽었다. 사고였다. 승마중에 장해를 뛰어넘는 중에 낙마. 목이 부러져 즉사였다. 노인에게 있어선 큰 충격이었겠지. 하지만 손자는 또 한 명 있다. 리메스 남작은 이젤론 요새에 배속되어 있던 차남 아우구스트에게 장례식에 출석하여 리메스 남작가를 이으라고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아우구스트는 기뻤다. 언제 전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군인보다는 남작가를 잇는 쪽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 기분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너무 기뻐했다. 연락을 받은 날 밤, 아우구스트는 주점에서 축배를 들었다. 주변에도 크게 축하해준 듯 하다. 하지만 같은 주점에 아우구스트와 사이가 안좋은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는 아우구스트를 비꼬았다. "자신의 형이 죽은 것이 그렇게 기쁜가? 누가보면 경이 죽인건 줄 알겠군." 아우구스트는 의외였겠지. 그는 남작가를 잇는 것만을 기뻐했을 뿐이지, 형인 테오도르의 죽음을 기뻐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둘은 싸움을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꽤나 마셨었던 듯 하다. 주변이 말려도 부리치고 싸웠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아우구스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숙취인가 하고 주변은 생각했지만, 저녁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방에 연락을 넣어도 반응이 없다. 걱정한 동료가 그의 방에 가니, 아우구스트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급성뇌출혈이었다. 리메스 남작가를 잇는다는 기쁨을 안은 채로 죽은 것이다. 행복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1개월 간 가문을 이을 자가 모두 사라지고, 당주가 빈약한 노인이 된다면, 남작가의 계승을 노린 하이에나들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 경우 하이에나들이란 리메스 남작가의 친족이다. 리메스 남작에겐 여동생이 세 명 있었다. 각각 발데크 남작가, 콜비츠 자작가, 하일만 자작가에 시집가고 있었지만 모두 하이아네가 되었다. 음밀하고 참혹한 상속 쟁탈전이 발생한 것이다. 자신이 남작가를 손에 넣기 위해서 하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가문을 추천하게 한다. 다른 가문의 유언비어를 퍼트린다. 리메스 남작의 생각을 알기 위해 도청한다. 일기를 훔쳐서 본다. 리메스 남작가의 집사는 남작과 70년 이상 종주관계에 있었다. 주종이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까웠겠지. 하인들을 심하게 감시하고, 남작가에 해가 된다고 보이면 용서없이 내쫓았다. 그리고 어느날, 시체가 발견되었다. 남작이 죽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탐욕 덕분이었다. 리메스 남작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으면, 남작가의 재산은 3등분되어, 작위는 반환된다. 리메스 남작가는 그럭저럭 유복한 집이긴 했지만, 3분의 1로는 너무나도 양이 적었다. 그들은 전부를 원했다.


  이런 상황은 리메스 남작에게 있어서 지옥이었겠지. 손자 두 명을 잃고, 친구인 집사까지 잃고, 주변엔 믿을 수 없는 하인들이 넘쳐난다. 그는 자신을 지옥에 떨어뜨린 친족을 저주하고, 복수를 맹세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는 작위 및 재산을 국가에 돌려주는 것 뿐이었다. 여기서 그의 양친이 등장한다. 그의 아버지는 리메스 남작가의 고문 변호사를 하고 있었다. 유력귀족의 고문 변호사 쯤 되면 그럭저럭 평가된다. 하인츠와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가 그렇게까지 번성하고 있었던 것도 리메스 남작가와 마찬가지로 고문 변호사를 하고 있던 가문이 달리 몇 가문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하이에나들은 아버지에 대해 여러가지 뇌물을 주고 협력을 의뢰했지만, 아버지는 남작의 의향에 따라 뇌물에 상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도 리메스 남작이 죽지 않고 살아 있던 하나의 이유겠지. 고문 변호사가 뇌물에 눈이 돌아 멋대로 양자결연의 수속을 하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리메스 남작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남작은 아버지에게 전례성에 작위, 재산을 반환하는 수속을 해 달라고 의뢰했다. 물론 극비였다. 그리고 하이에나들이 눈치챘을 때엔 모든 수속이 끝났었다. 그들은 리메스 남작의 판단을 저주하고 자신들이 받을 상속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평민 따위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인가. 하고.


  "그래서 아빠와 엄마를 죽인거야?"

  "아마도. 아니, 틀림없을 거다."

  "어느 가문이 한거야?"


  "그건……모르겠다. 가장 수상한건 발테크 남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어째서?"

  "발테크 남작가는 작년 사업을 실패하고, 꽤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거기가 가장 리메스 남작가에 집착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니까.


  에리히. 억울하겠지만, 복수는 그만둬라. 귀족을 적으로 돌리는 건 위험하다. 콘라트도 헬레네도 네 행복을 바라고 있겠지. 이런 말도 있어. 최고의 복수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라고. 알겠지?"


  "……응. 고마워요. 아저씨."

  "내일, 또 올게. 이제부터 어떻게 할 지 생각해보자."

  "알았어. 이제부터 어떻게 할 지 말이지……."


  하인츠는 안심한 표정을 하고 돌아갔다. 말하고 나서 안심한 것도 있겠지. 하인츠가 말한 대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녀석들을 몰락시키고,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로엔그람 체제가 세워지고, 문벌귀족들이 몰락하기 까지 앞으로 11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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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았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였다.


그 소식을 듣기 전 까지는…….


  "에리히 발렌슈타인."

  수업도 끝나고, 귀가하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던 날 불러 세운 것은, 배크 교장의 목소리였다. 교장의 곁에는 본 적 없는 남자가 있었다. 40대 후반 정도인가. 나를 잠자코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 있나요? 교장 선생님."

  "아아, 그렇다네. 그, 진정하고 들어주기 바란다만……."


  교장은 말을 줄이고 곁에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도 함게 남자를 본다. 남자는 한 발 내 앞으로 걸음을 옮긴 후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에리히군이지? 난 자우릿슈 경부. 경찰에서 왔다. 자네의 양친이 돌아가셨다. 나와 함께 오길 바란다."

  "무슨 말 하는거에요? 아저씨. 거짓말은 그만둬요."

  "거짓말이 아니야. ……적어도 내가 경찰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정장 안쪽 포켓에서 신분증명서를 꺼냈다.


  "나와 함께 오길 바란다. 괜찮겠지?"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단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나와 자우릿슈 경부)가 향한 곳은 감찰의병원이었다. 차 안에서 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말했다간 양친이 죽은 것이 사실이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절대 거짓말이다. 사람을 잘못 본거다. 반드시 그런거다.


  병원에 도착하고, 유체안치소로 끌려갔다. 안치소에는 이미 사람이 세 명 있었다. 두 명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마도 경찰이겠지. 하지만 뒤의 한 명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인츠 게러. 아버지와 함게 법률사무소를 경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인츠 아저씨."

  "에리히, 왔는가. 콘라트와 헬레네가……."


  말을 잇지 못하며, 내 양 어깨에 손을 올린 하인츠의 눈은 새빨갰다. 거짓말이 아니구나. 내 가슴을 절망이 덮친다. 난 도움을 청하듯 방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몇 개의 침대를 이제와서 눈치챘다. 그 안의 두 개의 침대에 유체가 있었다. 유체에는 시트가 씌워져 있다. 나는 하인츠의 손을 놓고 유체를 향해 다가갔다.


  "에리히. 보지 말아라."


  날 말리려는 듯한 하인츠를 뿌리치고 시트를 뒤지었다. 아버지의 유체였다. 눈이 어질거렸다. 얼마동안 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니 또 하나의 유체 앞에 있었다. 난 시트를 뒤집었다. 어머니의 유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일리가 없다. 그럴리가 있을까보냐. ……어머니였다.


■ 하인트 게러


  에리히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헬레네의 유체를 보고 있었다. 말리지 않으면 안된다. 두 사람의 유체는 무참했다. 콘라트는 심한 폭력을 받아, 목이 부러져 있었다. 다른 곳에도 어깨나 손발,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가슴은 총으로 맞은 흔적이 있다. 헬레네도 심했다. 명백히 성적 폭력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도 맞은 자국이 있다. 그리고 역시 가슴을 총으로 맞았다. 두 사람 모두 얼굴엔 공포와 절망으로 굳어있다. 에리히를 말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 전에 에리히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누가 그런거야. 누가 아빠와 엄마를 죽였어. 누가 죽인거야."


  묻고 나서 에리히는 조용히 뒤돌았다.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구나? 아저씨."


  침착한,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내겐 에리히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어린아이인데도.


  "에리히. 침착해라."

  "누구야!"


  말을 잃은 나를 노려본 에리히는 이윽고 신음소리를 울리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감샀다. 그리고 마루에 쓰러지더니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바닥을 치며, 콘라트와 헬레네를 부르고, 범인을 향해 복수를 맹세했다. 통곡, 그리고 복수의 맹세.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지 거기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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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사에키 타카시라고 한다. 연령은 25세. 독신. 뭐, 애인도 있다. 지방 공무원으로 시청에서 일하고 있다. 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고보니 이 세계에서 태어나, 아기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패닉이었지만 말야.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다. 말을 하려고 해도 "응야, 응야"라고. 뭐야 이거, 하고 생각하고 손발을 바둥바둥하니,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인과 사람 좋아보이는 흑발 흑안의 백인 남성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째서 집에 외국인이 있는거야? 하고 또 다시 패닉했지만, 두 사람은 내 몸을 만지면서 무언가 대화했다.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어는 전혀 모른다. 너희들 대체 누구냐. 어째서 내 집에 있는거냐고 항변(실제론 응갸응갸 울었을 뿐이지만)하고 있으니, 갑자기 여자 쪽이 가슴을 내놓고 나를 끌어 안았다.


  어이어이, 잠깐 기다려.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수유입니다. 정신을 차리니 무야무중으로 빨고 있습니다. 아니, 이거 치유되네요. 배도 부르고, 무엇보다 안심된다. 자신이 아기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그것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이가 되었다는 건 이해했지만, 어디에 있는 지 잘 몰랐다. 내 양친(나는 이 두 사람의 아이로서 태어났다는 건 어찌어찌 이해했다)이 이야기 하는 말이 독일어라는 건 바로 알았으니까, 유럽인가 하고 처음엔 생각했다. 그 때 당시, 자신이 가장 불안하게 생각했던 것은 원래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가 였다.


  살아있는 건가. 죽은 건가. 아마도 죽었을 테지만. 자연사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살해 당했는가. 설마 애인에게 독살 당한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도 했었다. 자신의 사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꽤나 기분 나쁜 거구만.


  자신이 은영전의 세계에 전생했다는 걸 안 것은 3살 정도 된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난 은영전 매니아였기 때문에, 그야 몇 번인가, 아니 몇십 번인가 은영전의 세계에 있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건 당연하겠지.


  내 생년은 제국력 465년, 로엔그람 왕조가 앞으로 20년 조금으로 탄생하고, 라인할트는 이미 이 세계에 탄생한 것이 된다. 한숨이 나왔다.


  뭐, 이 세상은 이제부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마음을 바꾸고 살아가기로 했다. 바보처럼 망설여도 아무일도 되지 않는다고.


  내 새로운 가족을 소개하지.


  아버지는 콘란드 발렌슈타인. 변호사였다. 친구와 공동으로 사무소를 열고 있었다. 그럭저럭 번성하고 있는 듯 하다. 어머니는 헬레네 발렌슈타인. 미인이었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귀여운 느낌의 미인이었다. 사법서기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아버지의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것이 계기로 결혼했다고 한다.


  난 이 두 사람으로서 꽤나 사랑받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것이다. 처음 호흡이 멈춰서 큰 소동이 있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전생한 것도 그것이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전생하고 나서도 몇 번인가 체질 불량으로 병원에 신세진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소중하게 자랐다. 나도 이 두 사람이 좋았다. 커서는 변호사가 되어, 함께 일을 하자고 말해서, 양친을 기쁘게 했다.


  실제로 그 걸 위해서 공부도 했다. 원래부터 어느 정도 지식도 있었고, 의욕도 있었다. 난 순식간에 초등학교를 넘겨 12살엔 중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자주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어머니는 상냥하게 끌어안아 뺨에 키스해 주었다. 행복했다. 그대로, 계속 행박한 날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다. 계속.


  어리석게도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엔 문벌귀족이라는 사람의 목숨을 벌레처럼도 여기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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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력 489년 7월

  은하 제국 황제, 엘윈 요제프 2세, 유괴되다.


  제국력 489년 8월

  은하 제국 정통 정부 수립

  은하 제국 재상 겸 제국군 최고 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 동맹 정부에 선전포고.


  제국력 489년 9월

  은하제국군 "신들의 황혼" 작전 발동 결정.

  엘윈 요제프 2세 폐위.

  카제린 케트헨 1세 즉위.


  제국력 489년 11월

  은하 제국군 이젤론 방면으로 공략군을 파견.


  이젤론 방면군 총기함 "로키" 기함.


  "각하, 이제 곧 렌넨캄프 제독이 이젤론 회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가…. 전 함대에 통달. 이제부터 적의 제주권에 들어간다. 충분히 주의하도록."

  "옛."


  총사령관 에리히 발렌슈타인 원수와 창모장 클라우스 왈트하임 중장의 회화를 부관인 루만 오펜하이머 소장이 잠자코 듣고 있었다.


  '침착하구나. 전군으로 5만척을 넘는 대군을 이끌고, 이젤론 요새를 눈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 나와 한 살 정도 차이가 날 뿐인데, 너무나 큰 차이다.


  제국 원수 에리히 발렌슈타인. 전략가로서는 로엔그람 공에 필적하고, 모장으로서의 재능은 총참모장 오벨슈타인을 위협한다는, 실전지휘관으로서도 다수의 무훈을 올리고, 로엔그람 공의 신임을 받는 제국군 No.2인가…. 양 웬리와의 공방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소장.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고 에리히는 곁에 있는 오펜하이머에게 묻는다.


  "옛. 죄송합니다. 각하. 각하가 너무나도 침착하시기에 무심코 감탄하였습니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사죄하는 오펜하이머에 대하여


  "양 웬리를 상대하는 것이니까 말야.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더욱 얼굴을 붉히는 오펜하이머는 눈을 숙인다.


  "굉장히 멀리까지 와버렸군."


  하고 에리히가 중얼거린다.


  "예. 이제 곧 이젤론 요새입니다."


  에리히는 힐끗 한살 아래의 부관을 보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봤다.


■ 에리히 발렌슈타인


  멀리까지 왔다는게 이젤론을 말하는게 아니지만 말야. 그보다 이젤론 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모두 흥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양은 요새를 방폐할 테니까. 서두를 필요 없다니까. 뭐, 그런걸 말할 수 있는 것도 원작 지식이 있기 때문이지만….


  내가 멀리까지 왔다는 건, 원래라면 난 일본에 있을 터니까 하는 말이다. 어째서 은영전 세계에 있는거야? 이거 대체 무슨 일? 현실? 꿈이 아니야?


  일단 내가 이젤론 공략 방면군 총사령관이라니 뭔일?? 원래라면 이거, 로이엔탈이 할 일이잖아. No.2 라니 뭐야 그거. 붉은 머리의 꼬맹이는 어쨋냐고!!


  뭔가 나, 사망 플래그 서 있지 않아???

  꿈이라면 빨리 깨달라고.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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