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3월 31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발렌슈타인.


  내가 웃자 뮐러의 얼굴이 굳었다. 굳은 건 뮐러 혼자가 아니다. 전부다. 바보 놈들. 나는 두들겨 맞는 데 익숙하다고. 조금은 반성하도록.

  “에, 에리히.”

  “농담이야. 나이트하르트. 제대로 이렇게 상대를 해주고 있으니까 감사하고 있어. 원수 각하에게도 그렇게 말할 테니 안심해도 좋아.”


  “그, 그런가.”

  뮐러가 휴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안심하지 말라고. 나도 모르게 놀리고 싶어지잖아.

  “뛰어난 자가 정을 맞는 건 별 수 없으니까. 이런 일엔 익숙해.”

  “에, 에리히.”


  어라어라, 이번엔 다들 얼굴에 힘이 들어갔다. 화가 난 건가? 어째서 화내는 거야?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너희들 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고 평가한 건 라인하르트다. 불만 있냐?

  “해적 놈. 우쭐대는 것도 지금뿐이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닿았다, 같은 느낌의 목소리를 낸 것은 젊은 사관 중 한 명인 좀바르트였다. 일단 초대면이란 말이지. 모르는 척을 해둬야.

  “처음 보는 분이군요. 메크링거 제독, 그쪽 분들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내 부탁에 메크링거는 내키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이놈들은 반흑공주파의 최선봉이다. 그리고 정규함대 사령관들, 그들은 날 인정하곤 있지만 호의는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인리히 리스너의 보고다.


  “소개하지. 투르나이젠 중장, 알트린겐 중장, 마이포허 소장, 좀바르트 소장, 쿠를리히 소장, 자우켄 소장이다.”

  어조에 활기가 없다. 소개를 받은 쪽도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지적하는 목소리도 없다. 다시 말해 여기는 적진지다.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


  이놈도 저놈도 흥, 이라는 소리가 들릴 듯한 태도다. 귀엽구만, 너희들. 나중에 천천히 놀아주지. 하지만 일단 라인하르트의 등장이다. 일단 그쪽에 시선을 향해야지. 일시 휴전인 셈으로 치자고.


  라인하르트가 등장하자 환성이 올랐다. 인기가 있단 말이지. 보기에도 좋고 화려하기도 하다. 키르히아이스, 힐더, 페르너, 슈트라이트와 뤼케가 함께 있다. 라인하르트가 손을 들어 환성에 답한다. 환성이 보다 커졌다. 뭔가 프로레슬링 같은 분위기군. 슈퍼스타 등장! 이라면 미움 받는 역할의 정점은 극악무도, 흉악무도한 변경의 대해적, 흑공주인가. 뜨겁구만. 악역이 빛나야만 드라마가 성공한다.


  흑진주 홀에는 커다랗고 둥그런 테이블이 몇 개나 놓여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요리가 놓여있다. 뷔페형식으로 친목회를 한다는 거다. 나라면 자리를 고정시키고 문관과 무관을 적당하게 흩어놓겠지만. 그러는 편이 친목을 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뭐, 편히 있어라, 는 거겠지.


  내가 아까 전까지 있던 장소도 테이블 근처였지만,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꽤나 사람들이 있다. 내가 사라지는 걸 기다린 걸까. 불쾌한 놈들이야. 라인하르트의 인사가 끝나고 환담의 시간이다. 젊은 사관들이 요리로 향한다. 너무 달라붙지 말라고. 꼴불견이니까.


  투르나이젠들이 돌아왔다. 테이블 위에 요리를 놓고 간다. 과연. 자신들의 것만이 아니다. 뮐러들, 상급자들 것인가. 군대는 완전한 계급사회니까 말이야. 일단은 상위자들의 것을 조달하는 건가……. 그야 서둘러 요리를 가지러 갈만하다. 달라붙지 말라고 해도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군인이 아닌 내 것은 가지고 오지 않는다. 알기 쉽단 말이지. 정말 귀여워.


  “에리히, 같이 먹자.”

  뮐러가 곤란한 듯한 웃음으로 내게 권한다. 좋은 놈이란 말이야. 너는.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여기에 오기 전에 식사하고 왔으니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거짓말이 아니다. 적당한 때에 라인하르트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가, ……그럼, 잘 먹을게.”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조금 먹을 걸 그랬나. 뮐러가 외로워 보인다……. 다른 놈들도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다. 기뻐하고 있는 건 투르나이젠 주변 놈들이로군. 뭐, 정규함대 사령관급과 비교하면 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떨어지지만 인간으로서도 떨어지나. 먹는 걸로 차별이라니 인간으로서의 품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군.


  “흑공주 두령. 메르카츠 제독은 건강한가?”

  마음을 써준 걸까. 파렌하이트가 말을 걸었다.

  “건강하십니다. 파렌하이트 제독. 지금은 우리 함대를 단련하고 계십니다.”

  “그런가……. 내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메르카츠 제독에게 전할 말은 없습니까?”

  “……아니, 없어.”

  “…….”


  빌리바르트 요아임 폰 메르카츠. 자유행성동맹에 망명하려고 했지만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되어 갈 곳이 없어진 쯤에 흑공주 일가에 잡혔다. 라인하르트에게로 가면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마음을 잡지 못한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라인하르트에겐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 쪽에 출장이라는 형태로 맡고 있다……. 파렌하이트는 메르카츠와 인연이 있다. 신경 쓰이는 거겠지.


  “헌데 흑공주 두령. 이제르론 회랑에서 함선 잔해를 제거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언제쯤 끝날까?”

  이번엔 바렌이다. 뭐, 이 중에선 비교적 친한 편이니까……. 내 착각일까?

  “당분간 끝날 것 같지 않군요. 잔해라고 해도 큰 걸로 치면 전함이 동강난 것까지 있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죠. 작은 것은 그런 것들의 몇 배, 몇 십 배나 있겠죠. 끝이 없습니다.”

  내 말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꽤 벌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 벌이가 되는 건가?”

  “그렇다고 하더군.”

  루츠와 파렌하이트다. 과연 대닪나군. 파렌하이트. 거길 물고 늘어지나. 나를 향해 ‘진짜인가?’라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다.


  “사실입니다. 벌이가 됩니다. 벌기 위해서 시작한 건 아니지만요.”

  이번엔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역시 인간, 돈에는 흥미가 있는 법이지.

  “마치 청소부로군. 암리처에서도 비슷한 짓을 했었지.”

  자우켄인가. 무척이나 내가 맘에 들지 않는가보군. 조소가 들려왔다. 바보들이 다함께 웃고 있다.


  “그쯤 해둬라.”

  어라어라? 비텐펠트가 날 감싸고 있다. 뭐라도 잘못 먹은 건가? 아니면 배가 차서 멧돼지의 성격이 둥글어졌나?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에겐 필요 없다. 나는 바보 놈들을 상대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렇게 싫은 기색을 풀풀 풍기면서 제지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 모두 합쳐서 싸움을 걸어주마. 여기엔 싸우러 온 거다.


  “그 말대로입니다. 청소부지요. 최근엔 어지럽히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곤란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곳 분들의 엉덩이만 닦고 있어요. 조금은 자신의 엉덩이 정도 스스로 처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도 웃었다. 다들 얼굴이 굳었다. 내 곁에서 뮐러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구만, 뮐러…….


  “네놈, 우리들을 모욕하는 건가!”

  바로 그거다. 바보. 이제 와서 눈치 챘냐? 둔한 놈.

  “진정하세요. 자우켄 소장. 친목회에서 큰 소리를 내서 어쩔 생각입니까? 주위사람들도 놀라고 있다구요.”


  주변 시선이 이쪽을 향한 것을 눈치 챘겠지. 자우켄 이 바보가 있는 힘 없는 힘 다해 평정을 다하려고 하고 있다. 귀여운 녀석. 괴롭히는 보람이 있구만. 어라어라, 메크링거와 바렌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비텐펠트와 아이제나흐는 식사에 집중하고 있다. 아니, 식사에 집중하는 척인가? 너희들 진짜 손님을 접대하는 법을 모르는 구만. 자우켄이 차라리 낫다고? 바보지만 즐겁게는 해주고 있으니.


  웨이터가 곁을 지나가기에 불러 세웠다. 손에 든 쟁반 위에 마실 것이 놓여 있다. 알콜 없는 것을 확인하자 자몽주스와 진저에일이 쟁반에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자몽주스를 쥔다. 그걸 보고 어딘가의 바보가 ‘어린애로군’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애는 너잖아?


  “술은 마시지 않는 건가?”

  파렌하이트가 질문했다.

  “네. 그다지 마시지 않습니다. 게다가 블라스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술에 취하기라도 해서 손이 미끄러지면 위험하죠.”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뭐, 경비 이외의 인간은 비무장일 거다. 아무래도 내가 블라스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몰랐던 것 같다. 루츠가 말을 걸었다.

  “괜찮다면 블라스터를 보여줄 수 있겠나?”

  “괜찮습니다.”

  루츠는 사격의 명수니까. 흥미가 있는 거겠지. 분위기를 바꾸고자 하는 생각도 있을지도 모른다. 블라스터를 패들 홀스터에서 꺼내 루츠에게 건내자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이런 때, 남자란 어린아이로 돌아간단 말이지. 파렌하이트나 바렌, 메크링거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아이제나흐와 비텐펠트도 그렇다. 뮐러에게선 조금 멀군. 유감이다.

  “이건 무슨 가죽인가?”

  “가오리입니다.”


  나는 미끄럼 방지를 위해서 가오리 가죽을 손잡이에 감고 있다. 예전, 카스트로프의 부하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부상당한 곳을 오른손으로 만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손잡이가 피로 끈적끈적하게 되어 제대로 쥘 수 없어졌다. 그 이후로 가오리 가죽을 쓰게 되었다. 선대 두령이 권한 일이다. 그 때 말하기를, “자주 쓰는 팔은 항상 쓸 수 있도록 해둬라. 가오리 가죽도 그걸 위해서다.” 요령이 없긴 했지만, 간지가 넘치는 두목이었다…….


  “과연. 손에 잘 붙는군……. 게다가 꽤나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수입도 좋고. 가오리 가죽인가. 나도 써볼까?”

  “루츠 제독. 나도 만져도 될까?”

  루츠의 말에 바렌이 반응했다. 그리고 바렌에게 건내주려다가 조금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나를 봤다. 눈치 챘나…….


  바렌은 총을 받아들고 손잡이를 강하게 쥔 뒤 “과연. 감촉이 좋군.”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텐펠트도 “그런가”하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군에서도 가오리 가죽이 유행할지도 모르겠군. 가오리가 멸종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이제나흐도 손을 뻗었다. 그 손으로 바렌에게서 블라스터를 받는다. 이 녀석도 고개를 기울였다.


  정규함대사령관들이 한바탕 보고 난 뒤 바보 놈들에게 블라스터가 넘어갔다. 뭐랄까,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좀바르트 소장이 블라스터를 쥐고 나에게 총구를 향했다. 비틀어진 웃음을 짓고 있다.

  “흑공주, 목숨이 아까우면 밴플리트 성역을 제국에 넘기도록.”

  바보 놈들은 빙글빙글 웃고 있다. 정규함대사령관들은 눈썹을 찌푸렸을 뿐이다. 대체적으로 예상대로다. 바보 놈들. 너무 예상대로라서 하품이 나왔다. 조금은 의표 정도는 찌르라고. “밴플리트 성역을 제국에 넘기지 않으면, 네 블라스터로 자살하겠다.”라든가, “다른 놈을 쏘겠다.”라든가.


  “무슨 하품 따윌 하고 있나! 죽고 싶은 건가?”

  “쏘고 싶으면 쏘지 그러십니까? 사양할 필요 없습니다.”

  응. 나로서도 대단한 실속 투구다. 우스워져서 웃음소리가 나왔다.

  “그만둬. 에리히. 좀바르트 소장도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게.”

  뮐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른 녀석들도 곤란하고 있군. 어차피 좀바르트는 쏘지 못한다고 보고 있는 거겠지. 다른 테이블에서도 이쪽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이건 물러나려고 해도 물러날 수 없겠구만. 좀바르트. 얼굴이 경직되어 있다고? “네놈”이라든가 중얼거리고 있는데, 괜찮나?


  루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좀바르트 소장, 그 블라스터에 에너지 캡슐은 들어 있나?”

  “앗.”

  깜짝 놀란 좀바르트가 당황하며 블라스터를 열어 확인했다. 에너지 캡슐은 들어있지 않다. 아연하고 있다. 아마도 수송부대를 양에게 격파 당했을 때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얼빠진 놈.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정말로 즐겁게 해주고 있다. 에너지 캡슐은 여기에 오기 전에 빼놨다고.


  “이리 줘라. 바보 놈이.”

  루츠가 적확한 평가를 내리고 블라스터를 좀바르트에게서 뺏어 내게 넘겼다.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루츠만이 아니다. 다른 놈들도 그렇다. 의외로군. 좀바르트가 바보 짓한 것이 내 탓인가? 에너지 캡슐이 들어있는 편이 좋았던 건가? 내가 죽는 편이. “미안하다.”라는 말도 없다. 거 좋다. 너희들이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다고.


  블라스터를 받아 들고 주머니에서 에너지 캡슐을 꺼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손 안에 집중했다. 블라스터에 캡슐을 집어넣고 닫는다. 모두를 둘러봤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잠자코 블라스터를 내밀었다. 총구는 나를 향해있다.


  “좀바르트 소장, 이번엔 에너지 캡슐이 들어 있습니다. 나를 죽일 수 있어요.”

  “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날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아연하고 있는 좀바르트를 보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어이어이, 떨고 있다고? 이 녀석.


  “무슨 생각이냐.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둬.”

  “그래. 에리히. 메크링거 제독의 말대로다.”

  메크링거와 뮐러가 막으려고 한다. 유감이군. 이미 늦었어.

  “좀바르트 소장은 로엔그람 공작에게 날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겁니다. 그렇죠?”


  다들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날 본다.

  “말도 안 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어.”

  “숨기지 않아도 좋습니다. 좀바르트 소장. ……평소엔 변경에 있을 눈에 거슬리는 해적이 오딘에 왔다. 좀처럼 없는 기회지만, 부하들이 주변을 경호하고 있다. 따라서 친목회에 초대했다. 흑진주 홀에는 혼자서 올 것이다. 놈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를 뺏어 사고로 위장하여 죽여라……. 실수로라도 목숨의 은인을 모살했다는 걸 들키지 말아라…….”


  다들 얼굴이 굳었다. 좀바르트는 땀이 굉장하다. 괜찮냐? 이 녀석. 조금 안심하게 해줄까.

  “괜찮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사고라고 해줄 겁니다. 나이트하르트를 빼면 다들 날 싫어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요. 지금이라면 로엔그람 공작을 비방했다고 하며 죽이는 것도 가능하죠. 받으세요. 원하던 거잖아요? 이것이.”


  내가 블라스터를 내밀자 좀바르트는 뒷걸음질 쳤다. 뒤에 있던 쿠를리히와 부딪쳤다.

  “적당히 해라! 장난이 심하다고!”

  “그래. 비텐펠트의 말대로다.”

  비텐펠트의 노성에 바렌이 뒤를 이었다.


  “장난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

  말을 잃은 놈들을 둘러봤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어이어이, 다들 얼굴이 굳었다고?


  “로엔그람 공작에게 초대를 받았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환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예상대로입니다. 좀바르트 소장이 날 죽이려고 했다. 말리려고 한 것은 나이트하르트 뿐이었습니다. 밑사람이라는 건, 윗사람의 바람을 민감하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로엔그람 공작이 날 눈엣가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바르트 소장을 말리지 않았다. 아닙니까?”

  “…….”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죽일 수 있습니다. 자, 누가 당기실 겁니까?”

  “…….”

  “자.”

  주위를 둘러본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다들 얼굴이 굳어서 침묵한다. 바보 놈들이. 전원 여기서 얼어붙어 있어라. 나는 너희들에게 맹렬하게 화가 났다고.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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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3월 31일. 오딘, 볼프산체 호텔. 칼스텐 키아.


  “오늘은 덕분에 살았다. 흑공주. 아무 문제도 없이 총회가 끝난 건 네 덕분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아니. 진짜 살았다. 네가 모두의 앞에서 내게 협력하겠다고 말해줘서 말이야.”


  바그너 두령과 두목님이 대화하고 있다. 장소는 볼프산체 1층에 있는 라운지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다. 하기야 목소리도 낮추고 있지 않으니 서로 얼마나 친한지 과시하는 거겠지. 주위엔 우리 쪽 사람과 바그너 일가 사람이 경계하고 있다. 나는 두목님 옆에 비스듬히 서서 지키고 있기에 목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 내 옆에는 바그너 일가 사람이 마찬가지로 경계하고 있다.


  총회는 30분 정도 전에 끝났다. 두령 이외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총회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의 총회였으니 바그너 두령의 말대로 딱히 문제는 없었겠지. 총회가 있는 사이, 우리들은 대기실에서 바그너 일가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놀고 있던 게 아니다. 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바그너 일가와 흑공주 일가의 인연은 두령들만의 것이 아니다. 아랫사람들 사이에서도 강한 연결이 있다. 그렇게 주위에 보이기 위해서다. 당연하게도 말을 먼저 건 것은 바그너 일가였지만, 괜히 거들먹거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 짓은 두목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다. 다른 조직은 돌아갔지만, 지금쯤 바그너 일가와 흑공주 일가의 연결은 꽤 강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베렌스와 슈발츠코프의 일도 그래. 네가 일을 돌려줘서 어떻게든 해갈 수 있는 거지. 그러지 않았다간 진짜 해적이 될 뻔했어. 그렇게 됐다면 이번 총회에서도 문제가 됐을 거다. 놈들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이야.”

  “우리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도 내란이 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두목님의 질문에 바그너 두령이 끄덕였다.

  “우리 쪽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가 상대였으니까 말이야. 어느 쪽에도 깊게 관여하진 않았다. 그래서 살았어. 게다가 네가 로엔그람 공작에게 이쪽이 중립이라고 해줬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

  “…….”


  “심했던 것이 베렌스와 슈발츠코프였지만. 그 외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더군. 내란 중에는 귀족들도 수송선을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대신 배를 움직여 물건을 움직인 것이 우리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럭저럭 벌고는 있지만, 총합으로 보면 수입은 줄어들었겠지. 그만큼 귀족과 얽힌 벌이가 맛있었단 거다…….”

  “과연.”


  “그런가. 너희는 변경이라 그다지 그런 일은 없었던 거군.”

  “네.”

  과연. 다른 조직은 귀족이 사라져서 꽤 큰 영향이 나왔나 보다. 우리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은 건 그만큼 변경 귀족이 빈곤했다는 거지. 이렇게 되고 보면 뭔가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위로는 된다.


  “지금은 다들 정신 차리고 어떻게든 하려고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겠지. 상황 좋고 구미 땅기는 벌이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것만은 뭐라고도 할 수 없으니까.”

  바그너 두령이 표정을 찡그렸다. 두목님도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앞으로 개혁이 진행될 테고 경기도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만…….”

  “나도 거기에 기대하고 있어. 로엔그람 공작은 전쟁 따위 보다 내정에 힘을 넣어줬으면 한다구. 경기가 나쁘면 뭣도 안 돼. 뭐, 너희 쪽하곤 관계 없나…….”

  두목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변경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그 밖에서도 좋아지지 않으면…….”

  바그너 두령도 두목님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해적사회의 실력자 두 사람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예.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바그너 두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배웅하며 두목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목님?”

  “어떻게든 경기가 좋아졌으면 좋겠군요. 경기가 나쁘면 무리를 하는 사람이 나오니까요…….”

  뭐, 그렇단 말이지. 무리를 하는 사람이 성가신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바그너 두령이 고생하게 될 것은 당연하지만, 두목님도 고생하게 될 것이다.


  호텔을 나와 돌아가고자 했던 때였다. 밖에 한 사람의 군인이 있고, 두목님을 보고 웃음을 띠고 손을 올렸다.

  “에리히.”

  “안톤! 안톤 페르너.”


  두목님이 기뻐하며 외쳤다. 아무래도 옛날 지인인 것 같다. 페르너라 불린 자가 다가온다. 좀 멋을 부린 괜찮은 자다. 이 녀석, 준장이다. 아직 젊을 텐데 꽤 출세했다. 꺽다리 뮐러도 대장이 됐다고 들었지만, 두목님의 지인들은 다들 출세했네. 두목님도 군대에 있었으면 출세했겠지…….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곳에서.”

  “경을 만나러 온 거다.”

  두목님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여유가 있는 건가? 바쁘지 않아?”

  “뭐, 조금은 말이지.”

  어이어이, 꽤나 뻔뻔하잖아. “뭐, 조금은 말이지.”라니, 우리들도 한가하지 않다고.


  “로엔그람 원수부의 사무장이 되었다고 들었어. 총참모장 대리로 말이야. 굉장하잖아. 축하해.”

  켁. 이 녀석 대단하네. 그 반시체의 후임이냐. 어라?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네. 쓴웃음을 짓고 있어.


  “반향이 엄청나다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밑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원수부 사무장, 총참모장 대리다.”

  “잘 됐잖아. 빚은 돌려줬다.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

  “빚 변제 한 번 너무하는군.”

  두 사람 모두 웃고 있다. 과연. 이 녀석인가. 두목님이 고개를 숙이고 부탁했다는 것이.


  “오벨슈타인 중장은 헌병총감이 됐다고 하네.”

  “신경 쓰이나?”

  “능력은 있지만 버릇이 나쁘니까. 내버려 두는 건 위험해. 감시를 붙여둬야겠지.”

  “감시?”

  “예를 들자면, ……하이드리히 랭.”


  어이어이, 놈이 놀라고 있다고. 하이드리히 랭. 들은 적이 있네. 부두령을 보자 부두령도 놀라고 있다. 누구였지…….

  “사회질서 유지국인가.”

  “이름을 바꾸고 일 내용도 바꿔야겠지. 그리고 그 안에 헌병대 감시도 임무로서 집어넣는다. 뭐하면 랭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우두머리로 삼아도 좋아. 신선미가 나오겠지.”


  그런가. 사회질서 유지국인가. 그야 놀라겠지. 나도 깜짝이다.

  “하지만 말이지…….”

  “국내의 지안유지를 담당할 기관은 필요해. 사회질서 유지국이 넌더리가 났다고 해서 내버려 둘 순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

  응. 망설이겠지. 그건 너무 심한 조직이었다. 누구도 그 조직의 부활 따위 기뻐하지 않는다. 두목님이 쓴웃음을 띄웠다.


  “뭐, 됐어. 그래서. 내게 무슨 용무야?”

  “초대장을 가져왔다.”

  어이어이. 뭔가 싫은 미소를 짓고 있다고? 나쁜 꿍꿍이 속이 있구만.

  “초대장?”

  “오늘 밤, 신무우궁 흑진주 홀에서 친목회가 있어. 거기에 출석해줬으면 한다.”


  뭐어? 친목회? 두목님보고 뻔뻔한 놈들이랑 파티라도 하라는 건가? 봐. 두목님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잖아.

  “로엔그람 공작도 파티 따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최근 군인과 문관 사이에 알력 다툼이 있어서 말이야. 대립 해소의 일환으로 행하는 거다.”

  “과연. 다들 싫어하는 자가 출석하면 하나로 뭉친다는 건가…….”

  두목님이 웃었다. 이 페르너라는 놈, 나쁜 녀석이네. 제대로 된 생각이 아니다.


  “그게 아니야. 경이 오딘에 있다고 듣고서 로엔그람 공작이 모처럼 왔으니 초대를 하자고 한 거다.”

  “호오. 희한한 일도 다 있군.”

  어이어이, 웃으면서 말해도 신빙성이 없다고. 두목님도 아직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무공 제1위,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한 경을 부르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경은 공작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뭐, 그건 그렇겠지. 금발은 금발 나름대로 일단 예의를 다했다. 라는 건가……. 두목님, 어떻게 하실까? 거절하는 건 위험하지만, 가는 것도 또 성가시다. 두목님은 이런 건 싫어하니까 말이야.


  “……알았다. 초대를 받아들이지. 일부러 그걸 말하려고 온 거니까 말이야. 게다가 나도 로엔그람 공작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응.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 같네. 어지간히 강하게 금발에게 들은 건가. 데려 오라고. 그렇다 해도 두목님, 금발과 만나고 싶다니. 무슨 일 있는 건가?


  “단, 총의 휴대는 인정해줘야겠어. 그리고 친목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은지지 않아. 나는 얌전하게 있고 싶지만, 주위가 그걸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오딘에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잖아?”

  두목님의 말에 페르너가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어. 내 역할은 경을 친목회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 뒤의 책임은 없지.”

  이 녀석, 꽤 좋은 근성이네. 군인보다도 해적이 더 어울려. 아마도 멀쩡한 해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페르너가 두목님에게 초대장을 건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떠나간다.

  “두목님, 저 사람. 꽤 좋은 근성이군요.”

  내 말에 안슐츠 부두령이 “키아!”하고 주의했지만 두목님은 웃었다.

  “네. 좋은 근성이지요. 어떤 때라도 자신만은 살아 남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자, 돌아갈까요.”


...


제국력 489년 3월 31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발렌슈타인.


  19시부터 친목회다. 단, 접수는 18시 반부터 하게 되어 있다. 이런 파티에 가는 경우, 19시에 딱 맞춰 가는 건 그다지 좋은 수가 아니다. 접수가 밀려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18시 반부터 가는 것도 좀 얼빠진 짓이다. 친한 사람도 없으니 혼자서 멍하니 서있게 된다.


  사실은 10분 정도 늦어서 가는 편이 좋다. 접수도 비어 있을 테고, 어차피 호스트역의 인사도 시작하지 않았을 테니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나처럼 환영 받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조금 미묘하다. 늦어서 가면 그만큼 소란을 피우는 놈이 나온다. 그런 이유로 18시 45분에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는 아무 문제 없이 끝났다. 내가 총을 가지고 있어도 경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페르너가 새삼 나에 대한 것을 전한 것 같다. 단지, 명부에 발렌슈타인 총합경비대표라고 적었더니 접수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지. 해적 흑공주 일가 두령이라고 적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흑진주 홀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큰 회랑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 뭐, 말을 걸 상대는 되지 않겠지. 정면에서 봐서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섰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누군지는 다들 아는 것 같다. 들어오는 놈은 반드시 내가 있는 쪽을 본다. 그리고 나를 피하듯이 장소를 찾는다. 지긋지긋하다. 나는 무슨 병원균인가?


  19시가 되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있는 곳에만 사람이 없다. 깨끗하게 반경 5미터 정도의 공백지대가 생겼다. 웨이터를 잡아서 진저에일을 부탁했지만, 노골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과연 악명 높은 흑공주다. 여기까지 공포의 대상이 되면 오히려 쾌감이군. 하지만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했던가?


  라인하르트가 이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꼴 좋다, 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위험할까……. 여기까지 오면 부디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장신의 군인이 다가왔다. 뮐러다. 얼굴에 쓴웃음이 떠있다.

  “에리히. 심심해 보이네.”

  “그렇지도 않아. 충분히 즐기고 있어. 로엔그람 공작이 이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꽤나 기대 되지 않아?”


  뮐러의 쓴웃음이 더욱 커졌다.

  “그런 말을 하니까 경이 두려움이 대상이 되는 거야. 이쪽으로 와라.”

  “그만두는 편이 좋아. 날 데려가면 미움을 받을 테니. 아니, 두려움을 받을까?”

  “괜찮다.”

  “내 기분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 아마도 말이야.”


  뮐러가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좋은 놈이지. 나이트하르트 뮐러. 하지만 말이지. 주변 시선이 아플 정도로 집중되어 있다고. ……그런가. 이제르론 요새가 제국측에 있다. 그렇다는 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쓴 제8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작년 흑공주 일가가 요새를 함락한 그것이 제8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이 되는 건가…….


  아니, 그건 군의 작전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제8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은 이상한가? 전쟁이 아니라면 사건? 이제르론 요새 강탈 사건? 잘 모르겠네. 나중에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그만 두는 편이 좋을까. 비아냥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뮐러는 부상을 입지 않았고, 켐프도 살아 있다. 샤프트도 그대로인가……. 황제 유괴, 라그나로크,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러저러 생각하며 뮐러의 뒤를 따라 걷자 한 무리의 군인이 있었다. 메크링거, 아이제나흐, 루츠, 파렌하이트, 바렌, 비텐펠트. 그 외에 젊은 사관이 몇 사람인가 있다. 쌍벽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다. 렌넨캄프, 슈타인메츠, 켐프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소하고 있다.


  “데려왔습니다.”

  “…….”

  다들 침묵하고 있다. 그래서 말한 건데. 싫어할 거라고. 나이트하르트 뮐러는 좋은 녀석이지만, 때때로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때가 있다. 악의가 없는 건 알고 있으니 불만을 토할 순 없지만. 별 수 없지. 여기선 내가 먼저 입을 열까.


  “다들, 오랜만이군요. 건강하셨습니까?”

  “…….”

  미소, 미소. 노려라 우주에서 가장 애교가 넘치는 해적. 흑공주가 보내는 안녕하세요. ……어째서 다들 침묵인 거야. 분위기 좀 읽으라고. 나조차 참고 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건강해.”정도는 말하라고.


  “경이 걱정하지 않아도 건강하다. 경이 혼자 외로워 보여서 말이야. 불러준 거다. 알았나?”

  내뱉는 듯한 어조였다. 그러니 나는 널 좋아한다. 비텐펠트! 잘도 싸움을 걸어줬다. 기뻐하며 받아치지! 나는 지금 최고로 기분이 나쁘다. 아마도 너도 그렇겠지?


  “보신 바대로, 외로워서 죽을 뻔했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로엔그람 공작에겐 손님을 대접할 줄도 모르는 센스 없는 부하들 뿐이라 큰일이겠군요, 라고 동정할 뻔했습니다.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누구의 체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말하는 도중 우스워져서 웃음이 나왔다. 뮐러, 그렇게 얼굴을 경직하지 말라고. 내가 나쁜 게 아니고, 너도 나쁘지 않아. 아마 뱃속의 벌레 때문에 그런 거겠지. 누구의 벌레인지는 모르겠지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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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3월 30일. 오딘. 테오도르 아룬트.


  오딘 우주항의 도착출구에 많은 이용객이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늦군요. 소장.”

  “그렇군.”


  초조하다. 순양함 배커니아가 우주항애 도착한 것이 40분이나 전이다. 평소대로라면 10분 전에는 두목님들이 도착출구에 나타났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여기에는 나를 포함하여 열 명이 마중을 나와 있지만, 다들 슬슬 초조해지고 있다…….


  “진정해라. 아룬트.”

  “하지만.”

  “진정하라고 했다. 아룬트만이 아니야. 다른 놈들도 침착해라. 여기에 있는 건 우리들만이 아니야. 우리 주위에 보는 눈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꼴불견을 보였다간 간파 당한다.”


  낮은 목소리로 리스너 소장이 억눌렀다. 하인리히 리스너. 오딘에 있는 흑공주 일가의 사무소 소장이다. 두목님의 대리인으로서 100명 이상의 사람을 오딘에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진 뤼데리츠에서 인프라 설비를 담당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아직 30대 중반인데도 냉정침착한 인물이라고 일가 안에서도 평가가 자자하다. 두목님의 신뢰도 두텁다.


  “안심해라. 다행히 이상한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어. 아마도 뭔가 사정으로 발이 묶인 거겠지.”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뭐하는 놈들일까요?”

  “글쎄. ……너무 힐끔힐끔 보지 말라고.”


  도착출구 근처에는 우리들 외에도 사람들이 있다. 친구, 가족, 애인을 마중하러 온 거겠지. 하지만 그것과 명백히 종류가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일부러 눈에 띄려고 하는 자, 은근슬쩍 배경에 묻혀 있는 자, 사복, 군복, 남자, 여자……. 누군가를 마중하러 온 게 아니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두목님이겠지.


  “경찰과 군대일까요. 그렇다 해도 조금 많은 느낌이 듭니다만.”

  내가 묻자 리스너 소장이 힐끔하고 날 봤다.

  “일단 경찰이겠군. 사회질서 유지국은 고맙게도 활동정지다. 군대라면 헌병대와 정보부겠지. 나머진 동업자와 페잔인가…….”


  경찰, 정보부, 헌병은 내게도 보인다. 하지만 동업자와 페잔은 눈치 채지 못했다. 아직 멀었군.

  “군복을 입고 있는 건 헌병대와 정보부입니까?”

  “저건 군복을 입고 있을 뿐이다. 군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어. 선입견만으로 보지 마라.”

  리스너 소장이 또 힐끔 나를 봤다. “예‘하고 답했지만, 얼굴이 붉어졌다. 한심한 소리다. 전혀 소장에게 미치지 못한다.


  “두목님입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틀림없다. 두목님은 숨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안슐츠 부두령, 키아, 우르만, 루델이 보인다. 겨우 안심했다. 그렇다 해도 변함없이 두목님은 적은 숫자로 움직인다. 주변에는 열 사람 정도밖에 없다. 원래라면 최소한 그 두 배인 20명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주변을 살펴라. 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놈은 없나.”

  리스너 소장이 낮은 목소리로 주의했다.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두목님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묘한 움직임은 없다.

  다들 입을 모아 이상이 없다는 걸 보고하자 리스너 소장이

  “그대로 주변을 경계해라. 천천히 움직인다.”

  라면서 걷기 시작했다.


  소장의 지시에 따라 주변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놈들은 두목님 보다 우리들을 주목하고 있다. 당황하며 시선을 피하는 놈도 있다. 과연. 이렇게 경고하는 방법도 있나……. 두목님들이 도착출구에서 나왔다. 선두엔 안슐츠 부두령이다. 리스너 소장이 곁에 다가가 인사를 했다.


  “수고하십니다.”

  “그쪽이야말로 수고하는군. 기다리게 했나. 리스너.”

  “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부두령.”

  “경찰이다. 검문을 하더군. 괴롭힘인가.”


  안슐츠 부두령이 표정을 찡그렸다. 확실히 괴롭힘이겠지. 내일 해적이 오딘에서 총회를 여는 건 경찰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두령은 이미 모여 있다. 일부러 두목님들을 검문할 필요는 없다.

  “괴롭힘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죠. 로엔그람 공작이 실권을 쥐고 난 뒤 공무원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들에 대한 것도 통상임무로서 행한 걸지도 모릅니다.”


  “두목님. 저희들은 범죄자가 아닙니다만.”

  안슐츠 부두령이 항의하자 두목님이 쿡하고 웃었다.

  “하지만 범죄자보다 악명이 높지요.”

  두목님의 말에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을 거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와 소장이 선두에 선다. 그 뒤를 두목님들이 잇고 그 뒤를 우리 사람이 막는다. 밖의 주차장에는 차가 6대. 운전수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


  6대의 차가 사무소를 향한다. 나는 리스너 소장과 함께 3번째 차에 탄다. 두목님도 함께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두목님과 리스너 소장이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저희가 건너편과 거래하고 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군인, 상인, 경찰, 정치가, 다들 저희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아군은 개혁자뿐입니다. 하지만 결코 목소리는 크지 않습니다.”

  두목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이런.”

  “오늘도 꽤나 구경꾼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약점을 잡아 흔들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죠.”

  “과연. ……헌병은 어떻습니까?”

  “구경하러 왔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외에 이렇다 할만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두목님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나보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까?”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저번에도 저희들 건으로 군 내부에서 싸움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일부러 방치해 두고 있다…….”

  “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좀처럼 알 수 없는 대화로군. 여러 곳에서 우리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헌병이 움직이고 있지 않다고 했었지. 두목님은 좋게 보지 않는 것 같지만, 그걸 잘 모르겠다. 헌병 따위 움직이지 않는 편이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무소에 도착하자 두목님은 부두령, 리스너 소장과 회의에 들어갔다. 일단 우리들은 대기실에서 대기다. 키아나 우르만들과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다. 커피를 타와 모두와 함께 마신다. 우주항에서 긴장했던 탓이겠지. 맛있다. 키아가 말을 시작했다.

  “아룬트. 꽤나 큰 건물이네. 내란으로 몰락한 귀족의 저택이라고?”

  “아아. 소유주는 전사했다네. 정부가 경매해서 말이야. 우리가 어느 부동산업자에게 사게 해서 구입했다. 직접 우리가 사면 시끄러우니까 말이야.”


  “그 외에도 그런 저택이 많은 건가?”

  “소유주가 사라져서 병원이라든가 복지시설, 학교가 된 저택은 꽤 있어. 여기 옆의 병원도 그렇고, 그 옆은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을 위한 직업훈련학교다.”

  “헤에. 제국도 변했구만. 실감이 들어.”

  키아가 감탄하자 우르만, 루델, 바이트링, 베넬트가 끄덕였다.


  잠시 잡담을 한 뒤, 신경 쓰이고 있던 점을 물었다.

  “하나 물어도 돼? 마테우스씨가 추방 됐다는 소릴 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다들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우르만이 내뱉었다.

  “아룬트. 이제 마테우스씨가 아니야. 마테우스다. 우리와 관계 없으니까 말이야.”

  “…….”


  프란츠 마테우스. 나나 키아들보다 열 살은 연상인 구성원이었다. 저번 달의 보름쯤, 돌연히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조직에서 추방당했다. 두목님들이 여기로 향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약에 손을 대려고 한거야.”

  “약? 설마 사이옥신 마약인가?”

  “아니. 좀 더 가벼운 놈이지만.”


  믿을 수 없다. 우리 조직은 그런 종류의 약은 금지되어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멍하게 있자 루델이 뒤를 이었다.

  “변경성역도 경기가 좋아져서 묘한 놈이 늘어났어. 금발이 개혁을 시작하고 중앙의 치안이 엄격해졌다. 그에 반해 변경이라면 경기가 좋고 치안도 엄격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외부인인가……. 거기에 걸려들었다. 라는 건가.”

  “묘한 놈이 보여서 그걸 조사하는 와중이었다. 그런 때에 마테우스와 놈의 동료가 접촉한 거다. 아무래도 약을 파는 걸 돕는 것 같았지. 우리들과 손을 잡으면 변경에서 크게 벌 수 있다.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바보 같구만…….”

  “바보라니까.”


  내가 중얼 거리자 키아가 엄한 소리로 말했다. 이쪽을 강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변경은 우리의 영역이다. 여기까지 일가가 크게 된 건 변경 주민과 협력해왔기 때문이야. 그걸 모르고 있어. 약 따윌 흘렸단 봐. 우리들은 영역을 잃게 된다고.”

  “……그래서 추방인가…….”


  “놈들을 잡아서 배를 조사했지. 꽤 많은 양의 약이 나왔어. 잡화와 섞여서 말이야. 놈들은 경찰에게 넘겼다. 마테우스와 그 동료들은 추방이다. 미수니까 말이야. 다른 조직에도 변경의 주민들에게도 추방은 통보했다.”

  “…….”

  “우리는 두목님의 이름으로 변경성역 주민에게 사죄문을 보냈다. 자칫 잘못하면 폐를 끼칠 뻔했다고 말이야.”

  “……그런가.”


  마테우스는 추방 당했다. 조직에서가 아니다. 변경에서다. 변경에선 어디의 주문도 마테우스를 상대하지 않겠지. 변경 이외의 어딘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해적은 될 수 없다. 어디의 해적조직도 추방당한 인간 따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물며 추방한 것이 흑공주의 두령이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와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어딘가의 기업에서 일하든가, 군대에 들어가든가. 혹은 토지를 일구던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범죄자겠지……. 앞으로 5년,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어떨지…….


  “바보 같은 놈이야. ……아룬트. 놈이 오딘에 나타나도 관여하지 말라고. 단, 감시는 붙여둬. 우리 이름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아아. 그렇게 할게. 키아. 그 땐 그쪽에도 알리지.”

  “그렇게 해줘.”

  그렇게 말하고 키아는 지긋하다는 듯이 큰 숨을 내쉬었다…….


...


제국력 489년 3월 31일. 오딘. 에리히 발렌슈타인.


  “볼프산체 호텔입니까. 꽤나 기합이 들어갔네요. 오딘에서도 일류 호텔이라구요.”

  총회가 열리는 볼프산체 호텔로 향하는 와중, 차 안에서 키아가 말했다.


  “간사가 바그너 두령이니까요. 실력을 보일 기회겠죠.”

  내 말에 키아가 끄덕인다. 총회 준비는 간사가 행한다. 간사의 임기는 3년. 그리고 간사는 총회에서 의장을 임하게 된다. 바그너는 올해부터 간사가 됐다. 기합을 넣고 있겠지.


  “2년만 지나면 두목님에게도 간사 이야기가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성가시네요. 다른 사람이 해주는 편이 좋은데. 조직 간의 알력 다툼을 조율하다니. 싫다구요…….”

  “그렇게 말한다고 도망칠 수 있을까요? 바그너 두령은 두목님을 의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간사는 조직 간의 알력을 조율하는 역할도 맡는다. 기본적으로 그런 알력은 당사자 끼리 해결하는 것이 규칙이지만, 알력을 일으킨 조직이 간사, 혹은 유력자에게 조정을 의뢰하는 일도 있는 거다. 유력자는 거절할 수 있지만 간사는 거절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조정에 꽤나 고생한 간사도 있다고 들었다.


  말하자면 간사는 해적조직의 조율역이다. 조율역에게는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간사에는 해적조직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대조직의 장이 뽑히게 되어 있다. 흑공주 일가는 제국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대조직이 되었다. 간사의 자격은 충분하다. 의욕은 제로지만…….


  간사에겐 당연하게도 맛있는 부분도 있다. 총회에 나오는 조직은 간사에게 회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뭐, 말하자면 1년 간의 활동비 같은 거다. 한 조직이 내는 금액은 20만 제국 마르크. 총회에 참가하는 조직이 50 가까이 된다. 아무런 알력도 없으면 거저 바치는 돈이다. 총회에 참가하지 않는 조직도 있다. 당연하지만 회비도 내지 않는 이상 다툼이 일어나도 간사에게 의지할 수 없다. 총회에 나온 조직에 비하면 약한 입장이 된다.


  경찰이 총회를 묵인하는 것도 이 총회가 알력다툼의 조정기관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잡아들이는 것보다 이용하는 편이 치안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오딘에서 총회를 여는 건가. 바그너도 기합이 들어가 있네. 슬슬 볼프산체 호텔이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하는데.


...


제국력 489년 3월 31일. 오딘. 칼스텐 키아.


  볼프산체 호텔에 도착하자 두목님과 함께 회장으로 향한다. 8층의 회의실이다. 나 외에 안슐츠 부두령과 우르만, 루델, 이렇게 세 사람. 모두 합쳐 다섯 명이다. 시간은 오후 2시. 총회 개시는 2시 반이지만, 회장은 2시부터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로 8층으로 향하자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다.


  우리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다들 우리들을 향해 시선을 향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지.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시선이 강해진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부끄럽잖아? 여기부터는 두목님이 선두다. 인사를 받게 되니까 말이야. 우리들이 회장으로 향하자 슥하고 다가온 자가 두 사람 있다. 한 사람은 중간 체격에 중간 키. 40대 후반. 또 한 명은 장신, 30대 전반. 베렌스 일가의 두령과 슈발츠코프 일가의 두령이다.


  “수고하십니다. 흑공주 두령.”

  “뵙게 되어 기쁩니다. 흑공주 두령.”

  “수고하십니다. 베렌스 두령. 슈발츠코프 두령. 일찍 오셨군요.”

  베렌스 두령과 슈발츠코프 두령에게 있어서 우리 두목님은 소중한 손님이다. 그리고 해적조직의 실력자이기도 하다. 인사는 빼놓을 수 없겠지.


  “언제나 저희들에게 일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렌스 두령이 말하자 옆에서 슈발츠코프 두령도 끄덕였다. 뭐, 내란 때문에 꽤 위험한 상황까지 몰렸다고 하니까 말이야. 지금도 아직 충분히 회복했다고 할 순 없겠지. 앞으로도 일을 줘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그런 거겠지.


  “아뇨. 이쪽이야말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페잔에 무장선을 두는 건 조금 문제가 있으니까요.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그거야 뭐.”

  “기쁘게.”

  “규모는 작습니다만, 새로이 수송회사를 손에 넣었기에 그쪽도 부탁드리게 되겠습니다.”


  아아, 두 사람 모두 기뻐하고 있다고. 두목님. 변함없이 능숙하다니까. 그랴 이쪽도 곤란하고 있지만 말이야. 곤란 하는 정도가 전혀 다르다. 바보 같은 놈이라면 자기 콧대나 세우고 있겠지만, 두목님은 상대방을 오히려 추켜 세우니까 말이야……. 뭐, 페잔의 목구멍에 있는 성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이니까 말이야. 우리는 페잔과 좋지 않은 관계에 있고, 아군으로 붙여 두면 이러저러 마음 든든한 건 사실이다.


  새로운 수송회사는 소유 수성선이 40척 정도니까 확실히 크진 않다. 글라스코 수송회사, 혈족회사로 오너 일족이 좋을 대로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와 가격 경쟁에 패배해서 어쩔 도리가 없어졌다. 오너 일족이 자신들의 이득만 줄이고 가격을 낮추면 될 텐데, 선장들의 이득까지 줄였으니까 말이야.


  당연하게도 선장들은 계약위반이라며 항의했다. 그런 트러블을 안고 있는데 일은 할 수 없다. 순식간에 회사가 기울었지. 나머진 우리가 매수하고 끝이다. 우리가 매수하고 선장의 이득을 계약대로 해주니 선장들은 다들 항의를 취소했다…….


  “여어, 흑공주. 왔나.”

  두터운 목소리에 덩치 큰 남자가 다가왔다. 바그너 두령이다. 변함없이 한 건강 한다는 느낌이지. 얼굴에는 웃음이 떠있다. 그 때문에 왼뺨의 칼자국이 더욱 눈에 띤다고. 간사니까 말이야. 기쁜 걸까.


  “간사역, 수고하십니다. 바그너 두령.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잘 부탁해야 하는 건 우리쪽이지. 베렌스 두령, 슈발츠코프 두령. 미안하지만 흑공주 두령을 좀 빌리겠어.”

  두 사람 모두 웃으며 끄덕였다. 뭐, 바그너 두령이 말하면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겠지.


  …….그런가. 베렌스와 슈발츠코프 두령들이 두목님과 관계를 쌓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일 때문만은 아닌가. 바그너 두령에 대한 것도 있나……. 앞으로 3년은 바그너 두령이 간사다. 우리 두목님은 바그너 두령과 친하다. 이건 뭐라해도 마음이 든든하지.


  바그너 두령이 두목님을 인적 적은 장소로 불렀다. 두 사람 모두 대화하기 시작했지만, 목소리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겠지. 주변엔 들리지 않는다. 다들 주목하고 있네. 뭐, 무리도 아니다. 바그너 일가와 흑공주 일가. 모두 제국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조직이니까. 이 두 조직이 앞으로도 협력할지 어떨지. 그 협력 정도는 어느 정도가 될지. 흥미 만만하겠지.


  바그너 두령은 기분 좋게, 두목님은 때때로 쓴웃음을 짓고 있다. 바그너 두령에게 “의지하고 있다.”라는 말이라도 듣고 있는 걸까. 두목님, 그런 식의 말을 듣으면 어색해 하니까……. 아, 이쪽으로 돌아왔다.


  “바그너 두령. 제 힘이 필요한 때엔 사양 없이 말해주세요. 기쁘게 협력하겠습니다.”

  “그런가. 네가 그렇게 말해주면 사람 백 명을 얻은 거나 마찬가지야. 뭐라 해도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한 남자니 말이야.”

  바그너 두령이 호쾌하게 웃었다. 그 옆에서 두목님이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정해졌군. 두목님이 주변에 들리도록 말한 것은 진심으로 바그너 두령을 지지하겠단 거다. 총회에서 시끄럽게 말하는 놈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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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3월 10일. 하이네센. 율리안 민츠.


  우주항의 도착 출구에 카젤느 소장의 모습이 보였다.

  “카젤느 선배.”

  “카젤느 소장.”

  소리를 듣고 눈치 챈 거겠지. 카젤느 소장이 손을 들어 다가왔다. 정장을 입고 있다. 군복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


  “양, 율리안. 건강해 보이는군. 두 사람 모두.”

  “건강합니다. 저희들은. 선배야말로 건강하십니까?”

  “보는 대로 건강하다고.”

  기뻐하며 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양 제독도 다행스럽단 표정을 짓고 있다.


  “소장은 언제 엘 파실로 돌아갑니까?”

  “그 소장이라는 건 그만 두라고. 난 은퇴했으니 말이야. 카젤느씨면 돼. 단, 아저씨는 붙이지 말라고.”

  내가 양 제독을 보자 제독이 쓴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카젤느씨라고 부르겠습니다.”

  “내일 모레에 있는 배를 타고 돌아간다. 오늘도 내일도 밤은 비워뒀다고. 율리안.”

  “삼월토정에 예약을 넣어뒀습니다. 가죠. 선배. 내일은 아텐보로도 옵니다.”

  “그거 기대 되는군.”


  양 제독의 말에 따라 무인 택시장으로 향한다.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5분 정도 기다리자 택시에 탈 수 있었다. 택시에 타자 카젤느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미안하군. 양.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게 됐다.”

  “그렇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 나쁜 기억을 만들게 했군.”

  “그런 일은, ……그보다 저야말로 카젤느 선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양 제독의 말에 카젤느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나는 제국령 침공작전에서 한 번 실패했었다. 그런 나를 네가 이제르론 요새로 불러줬다. 날 믿고 요새를 맡겨준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신뢰에 답하지 못했다.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지 못한 거다. 군을 그만 둔 건 당연하지.”

  “…….”

  양 제독이 침묵하는 걸 보고 카젤느씨가 웃었다.


  “그런 표정하지 말라고. 나는 이대로 민간에서 빠릿하게 일하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오히려 네가 더 걱정이다.”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트레 원수가 말렸습니다. 레벨로 의장도……. 또 그만둘 타이밍을 놓쳤어요.”

  “……그런가.”

  양 제독도 카젤느씨도 잠시 말이 없었다.


  “시틀레 원수는 레벨로 의장에게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나에 대한 것도 의장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솔직히 나는 네가 군대에 남아줘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네가 앞으로 고생할 것은 알고 있으니까…….”

  “…….”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내란을 진압한 것은 양 제독이었다. 본래 대로라면 양 제독은 반란을 진압하여 민주공화정을 지킨 구국의 영웅이라 불려도 좋았다. 실제로 도중까진 그렇게 불렸지만, 이제르론 요새 함락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의 파괴, 제11함대의 섬멸. 이제르론 요새를 잃은 동맹은 이 모두를 치명적인 손실이라고 받아들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부관, 그린힐 대위의 아버지, 그린힐 대장이라는 것까지 책잡힐 이유가 되었다.


  양 제독이 제13함대의 사령관의 직위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도손 대장이 이제르론 요새를 비우고 내란을 진압하라고 명려했던 점, 그리고 뷰코크 제독의 명령서 덕분이었다. 양 제독은 어디까지나 명령에 따라서 행동했다. 이제르론 요새 함락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그렇게 판단 된 것이다.


  “양 웬리의 군사적 재능이 동맹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양 제독을 그렇게 비판한다. 비판만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대장까지 승진한 양 제독에 대한 질투심도 있겠지. 꼴 좋다. 그런 감정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 제독은 굉장히 곤란해하고 있다. 자신이 한 일이 전부 안 좋은 결과로 나왔다. 민주공화정을 반란에서 지켰지만, 제국에선 지킬 수 없는 게 아닌가 고민하고, 아니 절망하고 있다…….


  그 절망은 제독만의 것이 아니다. 민주시민 전부가 공유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 매스컴은 “동맹붕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그리고 제국의 개혁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동맹시민의 관심도 높다.


  침묵이 떨어졌다. 오늘 양 제독은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사복 차림이다. 군복을 입으면 자신이 양 웬리라고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이 나온다. 카젤느 선배에겐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뼈아픈 추가타가 되겠지……. 집을 나오기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뒤를 이었다. 내가 군인다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눈물이 나올 뻔했다.


  삼월토정에 도착했다.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택시에서 내려 삼월토정으로 들어갔다. 갑사하게도 실내엔 조명이 흐릿하다. 이거라면 양 제독에 대한 건 모르겠지. 나이 많은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모두 고기 요리를 메인으로 한 코스를 부탁한다. 음료수는 760년산 적포도주와 진저에일 한 잔.


  카젤느씨가 새로운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지금은 엘 파실에 있는 군수물자를 취급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퇴역 후, 카젤느씨의 취직은 빠르게 정해졌다. 사관후보생 시절에 썼던 조직공학에 대한 논문이 평가 받았다고 한다. 양 제독은 카젤느씨가 하이네센을 떠나는 건 두 사람의 딸을 위해서가 아닌가하고 말하고 있었다. 정신없는 사람들이 카젤느씨의 가족까지 비난했다고 한다. 한심하다…….


  식사를 하는 와중, 양 제독과 카젤느씨가 대화하기 시작했다.

  “선배, 엘 파실은 어떻습니까?”

  “활기가 있지. 하이네센보다 훨씬 활기차. 이유는 알겠지?”

  카젤느씨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흑공주 일가입니까. 교역을 위해서 꽤나 엘 파실을 오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지. 엘 파실에게 있어서도 그들은 소중한 손님이다. 광물자원을 파는 데다 생산재를 대량으로 사가니까. 녀석들, 밴플리트 4=2의 기지를 수복해서 쓴다고 하더군. 그러기 위한 자재도 대량으로 사가고 있어. 지금의 엘 파실은 잠깐의 버블이라는 느낌이다.”


  “저기, 다들 무섭지 않습니까? 해적이죠? 맘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휘두른다든가…….”

  내가 질문하자 카젤느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다른 것 같아.”

  “다르다?”

  양 제독도 이상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다르다니 뭘까. 카젤느씨가 양 제독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녀석들에게 해적이냐고 물으면 해적이라고 답하지. 하지만 범죄자는 아니라고 하는 거야.”

  “?”

  “해적이라고 해도 이러저러 종류가 있다는 것 같더군. 진짜 해적도 있는가 하면 자경단 같은 것도 있어. 제국에선 모두 합쳐서 해적이라고 하네.”

  “자경단…….”

  양 제독이 중얼 거렸다. 그리고 한 모금 와인을 마신다.


  “흑공주 일가는 제국 변경 지역을 영역으로 하는 자경단이고 상인이기도 한다는 것 같아. 나도 녀석들과 직접 만났지만, 굉장히 평범했어. 딱히 특별하지도 않았지. 내가 이제르론 요새에 있었다고 하니까 미안하단 듯이 행동하더군. 묘한 기분이었지.”

  그렇게 말하고 카젤느씨가 또 쓰게 웃었다.


  “용병이 아닌 겁니까?”

  “아닌 것 같더군. 녀석들, 전투에는 직접 참가하진 않는 것 같아.”

  이상하네. 흑공주 일가란 2년 연속으로 로엔그람 공작에게 무공 제1위라고 칭찬을 받았는데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양 제독도 카젤느씨도 요령부득한 표정이다.


  “애초에 무장선은 1500척 정도 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 같으니까. 전투에선 크게 활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암리처에선 수송선을 나포했고, 내란에선 보급 지원을 했다고 들었다.”

  “과연…….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는 공략했습니다만.”

  양 제독의 말에 카젤느씨가 끄덕였다.


  “놀라더군.”

  “놀라다?”

  “아아. 내가 만난 녀석은 몰랐다는 것 같아. 흑공주 일가 중에서도 극비작전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흑공주 자신이 작전에 참가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작전은 흑공주가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시선을 마주치거나 피하거나 하고 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요. 그 작전은 그 타이밍이 아니면 실행할 수 없습니다. 주류함대가 이제르론 요새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로엔그람 공작도 내전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도 적이 공격하리라 생각하지 못할 상황이죠. 그리고 귀족연합이 패배하여 망명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한 순간의 빈틈을 찔렸습니다. 보고를 받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랐을 정도에요.”


  카젤느씨가 끄덕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요새를 뺏어도 통행권과 바꿔 로엔그람 공작에게 넘기고 말았지. 6천억 제국 마르크의 몸값도 동맹과의 고역 권리와 밴플리트 성역 할양으로 방폐……. 내 생각으론 녀석들은 돈보다도 교역을 바라는 듯이 보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양.”

  양 제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곤란한 걸까.


  “시틀레 원수에게서 들었습니다만. 그들은 그다지 몸값에 고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배가 하는 말대로. 교역을 더 원했던 거겠죠.”

  “그런가…….”

  “첫 교섭 때부터 동맹정부에 돈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2억 제국 마르크를 현금으로 준다면 나머지는 돈이 아니라도 좋다 했다고 합니다.”

  “묘한 이야기군.”


  카젤느씨가 하는 말대로다. 6억 제국 마르크를 요구하고서 현금은 2억 제국 마르크면 된다니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게다가 첫 교섭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뭔가 돈 따위 필요 없다. 다른 물건을 내놓아라, 라고 하는 것 같다.


  “거기에 동맹령 안에서의 교역권과 교역의 계속성을 보장하라든가……. 밴플리트를 할양하여 그들에게 개발을 하게 만든다는 건 거기서 나왔습니다만. 아무래도 상대방에게 유도된 느낌이 듭니다. 시틀레 원수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어요. 묘한 놈들이다. 정말로 해적인가, 라며. 상인이라고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만.”

  “…….”

  “왠지 위구르족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위구르족?”

  나와 카젤느씨가 질문하자 양 제독이 “네”하고 끄덕였다.


  “인류가 지구를 유일한 거주지로 삼고 있었던 일입니다만. 칭기스칸과 그 자손이 몽골 제국을 세웠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지상의 약 4분의 1을 지배하에 뒀습니다만. 그들의 발흥은 강력한 국가에 의한 교역활동의 보호를 기대하는 위그르족의 협력이 있었던 겁니다.”

  “…….”


  “그들은 교역활동으로 얻은 정보, 재산을 몽골에게 제공하고 관료, 군인으로서도 협력했습니다. 그에 대해 몽골 제독은 관세를 철폐하고 상업을 진흥하는 것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교역이 융성해지고, 몽골에게 정복되지 않은 국가들까지 육료, 해로를 통해 그들의 교역 네트워크에 흡수되었습니다.”


  카젤느씨가 양 제독의 말에 끄덕이고 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군. 페잔은 어디까지나 제국과 동맹을 분리하여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지만, 흑공주는 양쪽을 붙이고 이득을 취하려는 듯이 보여. 네가 하는 말대로. 위구르족이다.”


  “그들이 로엔그람 공작의 아군이 된 것도 귀족연합으로는 제국이 활성화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로엔그람 공작은 정권을 잡음과 동시에 개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선 상업하기 좋은 환경인가…….”

  “네.”


  잠시 침묵이 있었다. 양 제독도 카젤느씨도 와인을 마시면서 뭔가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흑공주에 대해서겠지.

  “선배. 흑공주와 페잔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나빠.”

  한 마디였다. 너무나 단정 짓는 말에 저도 모르게 양 제독과 서로를 돌아보고 웃고 말았다. 카젤느씨도 함께 웃고 있다.


  “페잔에게 있어선 중계무역의 독점이 무너진 거니까. 맘에 들지 않은 거겠지.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피해도 보고 있어.”

  “피해?”

  내가 묻자 카젤느씨가 끄덕였다.


  “페잔을 통해서 제국의 물자를 사는 일이 있지만. 이전에 비하면 꽤나 싸졌어. 녀석들, 그걸로 꽤나 벌고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흑공주가 싸게 제공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페잔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아마도 동맹에서 제국으로 가는 물건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단 건, 흑공주는 상인으로선 양심적입니까.”

  양 제독이 묻자 카젤느씨가 쓰게 웃었다.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만 페잔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흑공주는 악독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이라는 것이 되지.”

  “하아. ……상인으로서 페잔인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건 칭찬 아닐까요.”

  양 제독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왠지 우스워져서 웃고 말았다. 카젤느씨도 웃고 있다.


  “흑공주가 조직의 장이 되었을 때, 그의 조직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조직이었다. 하지만 불과 수 년 만에 제국에서도 굴지의 조직으로 확대한 거다. 평범한 수단으론 어렵겠지.”

  “범죄에 관여했다는 겁니까?”

  카젤느씨가 작게 갸웃거리고 있다. “어떨까?”하고 중얼거린다.


  “소문은 이러저러 들었지만. 확증은 없다고 하더군. 비방, 중상 종류라는 것도 있겠지. 단지, ……귀족의 상속 쟁탈이나 반란이 있을 때엔 반드시 흑공주의 그림자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 소란을 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고 하니. ……흑공주가 움직일 때 귀족이 죽는다. 흑공주는 죽음의 사자……. 페잔인은 그렇게 말하며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무서운 이야기지.”

  “…….”


  “제국에는 흑공주 일가 외에도 해적조직이 있지만. 흑공주 일가는 다른 해적조직에서 봐도 돋보이는 존재라고 하더군. 그 중에는 진짜 해적도 있어. 페잔 상인만이 아니야. 해적들에게 있어서도 흑공주는 두려움의 존재다……. 나도 그 두려움은 알고 있어.”

  카젤느씨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지요. 저도 그를 두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로엔그람 공작. 대체 무슨 일을 생각하고 있을지…….”

  이번엔 양 제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샌가 식사가 끝났다. 맛있었을 텐데 좀처럼 맛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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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3월 1일. 페잔. 보리스 코네프.


  우주항 빌딩의 사무실로 가자 마리네스크가 이쪽을 봤다. 표정이 밝다. 아무래도 일을 찾은 것 같다.

  “사무장. 일을 찾은 건가?”

  “찾았습니다. 사람을 옮기는 일입니다.”

  “……또 지구인가…….”

  “또 지구입니다.”


  한숨이 나왔다. 녀석들을 지구로 옮기는 일은 기분이 우울해진다. 어째서 그런 아무것도 없는 시골로 가고 싶어 하는 거지? 전혀 모르겠다. 덧붙여 화물 취급이다. 옮기는 쪽의 기분도 알아달라고. 사람을 화물 취급하는 것이 즐거우리라 생각하는 건가? 모포를 둘둘 만 난민 따위 봐도 전혀 즐겁지 않다고. 어딘가 마음이 들뜨는 일은 없는지…….


  “한숨을 내쉬지 마세요. 꽤나 이게 벌린단 말입니다. 갈 때도 올 때도 화물이 만땅이니까요.”

  “알고 있다고. 사무장. 불만이란 건 아니야. 하지만 그 화물이라는 말은 그만둬. 상대는 인간이니까.”

  내 말에 마리네스크가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조심하도록 하죠. 하지만 함장도 한숨은 그만 두세요. 빚도 없어졌고 정보부원도 아니게 된 겁니다. 좋은 일이 잔뜩 아닙니까. 뭐 연료는 걱정해야 하겠습니다만. 이걸로 불만이 있다면 벌 받을 거라구요.”

  “그건 말하지 말라고.”

  저도 모르게 쓴 어조로 말했다. 어조만이 아니다. 표정도 그렇다. 자신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페잔 자치령주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나를 정보부원으로 하려고 했던 것은 작년 일이었다. 목적은 하나. 자유행성동맹군 대장, 양 웬리와 내가 소꿉친구라는 점을 이용하려던 거겠지. 보수는 빚 변제와 연료의 무상공급이었다. 꼭지가 도는 일이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목줄을 잡힌 것이다. 하지만 루빈스키의 예상은 뒤집어졌다.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된 것이다.


  루빈스키에게 있어서 양의 중요도는 단숨에 떨어졌다. 그리고 본래 할 의욕을 보이지 않은 나에 대한 이용가치는 더욱 적어졌다고 본 거겠지. 나의 정보부원으로서의 가치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좋다. 내 고용주는 감사하게도 목줄을 풀어주고 갈고 싶은 데로 가라고 했다.


  주인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은 것은 고마웠다. 뭐, 저쪽 입장에서 보자면 내 빚 따위 돈도 아니겠지. 왠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니 목줄도 사라지고 빚도 사라졌다. 세상사 때론 이런 이상한 일도 있는 것 같다. 3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양 녀석.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제13함대사령관으로서 유임하고 있다고 하지만. 입장은 꽤나 나빠졌겠지. 뭐라 해도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박살냈고 이제르론 요새도 빼앗겼으니까. 하이네센은 벌거숭이나 마찬가지다. 주위에서 책임을 묻는 소리도 있었다고 하는데, 용케 군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렇다 쳐도, 저 이제르론 요새가 그렇게나 간단히 함락될 줄이야…….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함장.”

  마리네스크가 나를 지긋이 보고 있다. 이런이런, 마리네스크는 믿음직한 사무장이지만. 좀처럼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어이어이. 그런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어디 경기 좋은 이야기는 없나 생각한 거다. 금속 라듐이라든가. 다이아 원석이라든가. 올해 신밧드 상을 받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쁠 거 없잖아? 트로피는 받고 싶지.”

  그렇게 말하고 경쾌히 마리네스크의 어깨를 두드리자 어이없단 표정으로 날 봤다.


  “그렇게 경기 좋은 이야기를 찾고 싶으면 흑공주에게라도 가시지요.”

  “변경 말인가? 내게 해적이 되라는 건가? 마리네스크.”

  마리네스크가 어깨를 움츠렸다.

  “딱히 변경에 가지 않아도, 해적이 되지 않아도 일은 있다구요. 이 페잔에서도.”

  “뭐어?”


  마리네스크가 휴대용PC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굵은 손이 솜씨 좋게 움직인다. 그리고 화면을 내게 보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겁니다.”

  “……하만 수송주식회사 아니야.”

  “네.”


  하만 수송이라고 하면…….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그건 작년 일입니다. ……뭐, 선장은 그때 썩은 내가 날 정도로 술에 쩔어 살았으니까요.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죠.”

  ……그렇게 경멸하는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나도 일단 선장이라고? 마리네스크.


  하만 수송주식회사는 50척 정도의 수송선을 보유한 소규모의 성간수송회사였을 것이다. 배를 가지지 못한 선장과 1년, 혹은 다년간의 계약을 맺고 하만 수송회사가 소유하는 수송선의 운용을 맡긴다. 일 자체는 하만 수송주식회사가 알선하지만, 때로 선장 스스로 일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럴 때엔 함장과 하만 수송주식회사 사이에서 조율한다. 페잔에선 딱히 특별할 일도 없는 극히 평범한 성간수송회사다.


  이런 종류의 수송회사와 계약하는 건 젊은 선장이 많다. 돈도 없고 경험도 없다. 배를 가지지 못한 선장이다. 배를 움직이는 선원조차 수송회사에서 소개 받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수송회사가 알선하는 일을 해결하면서 경험과 동료와의 신뢰를 쌓아간다. 그렇게 한 사람 몫의 선장이 되는 거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배를 사서 스스로의 힘으로 우주로 나간다.


  수송회사는 선장에게 일을 알선하니까 일을 채올 만한 역량이 필요하다. 신용, 교섭력, 재력, 수송회사, 연고……. 하만 수송회사는 어느 문벌귀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귀족의 영지에서 산출되는 산물을 독점하여 옮기고, 동시에 그 영지에 대해 필요한 물자를 옮기고 있었다. 하만 수송회사를 통하는 일은 5할은 되었겠지. 하만 수송회사는 비교적 안정된 일을 선장에게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젊은 함장들에게 있어선 안심할 수 있는 수송회사였던 거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가 죽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규모 내란이 일어나면 일이 끊긴다. 하만 수송회사는 필연적으로 안정된 파트너를 찾으려 했다. 혹은 전시물자 조달을 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란이 시작되고 귀족에게서 일이 끊겼다. 무기, 식량 등의 조달은 대규모 수송회사에게 뺏겼다. 그리고 최악이었던 것이 귀족연합의 패배에 의해 연결되어 있던 귀족이 몰락했던 점이다. 경영이 기울어 처참한 꼴이 됐다고 들었는데……. 다시 한 번 화면을 보고 화물을 확인했다. 리튬, 몰리브덴……, 레어메탈인가……. 꽤 구미가 땅기는 일이군. 그에 비하면 나는……. 한숨이 나올 것 같다.


  “하만은 다시 일어선 건가? 마리네스크.”

  내 질문에 마리네스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닌가……?

  “무리였습니다. 작년 말에는 하만의 주가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종잇조각이나 다름없어졌죠.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대로 가면 하만의 도산은 확실했었죠.”

  그대로 가면……. 그대로 가지 않았다는 거로군.


  “……다시 말해, 그건가. 흑공주가 자금원조라도 했다는?”

  “아닙니다. 하만 수송회사 주식의 90퍼센트 가까이 흑공주가 산 겁니다. 그 회사는 지금은 흑공주의 회사라구요. 사장은 페잔인이지만요.”

  “잘 모르겠는데. 그걸로 일이 오는 건가? 아니 오는 거겠지. 이걸 보면.”

  내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마리네스크가 “네”라고 끄덕였다.


  묘한 이야기다. 흑공주 일가는 페잔에선 전혀 받아들어지지 않는다. 작년 내란이 일어나기 전에 흑공주 일가가 사무소를 열었다.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지만, 그들에게 일을 의뢰하는 사람도, 기업도 나타나지 않았다. 명백히 페잔의 따돌림이었다. 누구의 상대도 되지 않는 흑공주 일가에 대해 페잔인은 냉소를 품었던 것이다.


  흑공주 일가가 페잔에서 받아들어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약탈 등의 해적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흑공주 일가가 그런 수의 만행을 저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흑공주 일가는 해적조직이긴 해도 범죄자 집단은 아니었다. 흑공주 일가가 페잔에서 받아들어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페잔 상인조차 새파래질 정도로 벌어들어 미움을 받았다. 올해 신밧드 상을 받은 상인조차 흑공주 앞에선 먼지에 불과하다. 발렌타인 카우프조차 한발 양보할 수밖에 없겠지.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그들은 벌어댔다. 페잔인은 흑공주의 상재를 질투하고 시기한 것이다. 무리도 아니겠지. 변경의 작은 해적조직을 불과 몇 년만에 제국 굴지의 해적조직으로 만든 거다. 평범한 수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대로 흑공주 쪽은 페잔을 거절한 적이 없다. 그들의 영역이기도 한 제국변경에는 페잔 상선이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흑공주에게 보급이나 거래 면에서 방해를 받거나 거절되는 일은 없다. 페잔 상선에 있어서 제국변경은 축복받은 곳은 아니지만, 극히 안전하고 상업하기 쉬운 지역일 것이다.


  정당하다곤 할 수 없다. 흑공주 일가가 뭔가 항의, 혹은 실력으로 경고를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내란으로 바빳다는 점도 있겠지. 또 흑공주 일가는 비교적 업적이 좋다고도 듣고 있다. 그 때문이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건가……. 그들은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마리네스크. 어째서 녀석들에게 일이 있어?”

  윽. 조금 삐뚤어지게 말했나. 마리네스크가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르론 회랑 때문입니다.”

  “이제르론 회랑?”

  “네.”


  마리네스크가 설명을 시작했다. 작년, 페잔의 흑공주 일가 사무소에 일을 의뢰하는 기업, 인간이 나타나지 않았던 건 페잔이 비공식적으로 흑공주 일가와 거래를 하면 동맹에서의 생산물 제공을 멈추겠다고 통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입장의 인간이 통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흑공주와 거래하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던 걸 보면 그럭저럭 입장 있는 사람이 했던 일이겠지.


  생산재의 품질은 제국제보다도 동맹제 쪽이 품질이 좋다. 아주 조금만 품질에 차이가 나도 이득면에선 크게 차이가 나온다. 무엇보다 현재 쓰이고 있는 생산재가 고장을 일으키면 어떻게 될지. 제국제와 바꿀 텐가……. 이득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기업에게 있어서 선택지는 없었겠지. 기업이 당기면 사람도 거기에 따른다. 그렇기에 흑공주와 거래하는 기업도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의도하는 바는 명백하다. 흑공주 일가는 변경의 일개 해적조직이면 된다. 페잔까지 진출하여 대규모로 활동하는 건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거겠지.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되고, 회랑의 통행권을 얻은 흑공주 일가가 동맹과 밴플리트 할양조약을 맺으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동맹의 생산재는 페잔의 독점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게 이유인 건가…….”

  “그런 겁니다.”

  협박은 통하지 않게 됐다. 페잔이 제공하지 않으면 흑공주가 제공하면 된다. 흑공주의 영향력은 더더욱 커지게 되겠지.


  “그 외에도 이유가 있다구요. 함장.”

  “?”

  “기업은 변경으로 진출한 겁니다. 이제르론 요새가 합락되어 변경의 안전성이 높아졌죠. 요즘 몇 년, 흑공주 일가가 투자했기 때문에 변경은 기업이 진출하기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변경으로 진출한다면 흑공주와의 협조관계는 필수불가결하게 됩니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죠…….”


  “그래서 하만을 쓰는 건가.”

  “표면적으론 수송비가 싸니까, 라고 합니다만. 거기의 사장은 얼굴마담이나 마찬가지니 흑공주가 주는 급료를 받아 사장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너인 흑공주는 거의 이득을 취하고 있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 만큼 수송비가 싼 겁니다.”


  이득을 도외시한다……. 변경에서 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군. 일단은 페잔에서의 입장을 확립하고자 하는 거겠지. 부러운 이야기다. 나에게도 그만큼의 여유가 있다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돈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배를 움직이고 싶다.


  내가 한숨을 내뱉자 마리네스크가 “함장”하고 말을 걸었다.

  “하만만이 아닙니다. 흑공주는 그 외에도 가루다, 판론, 멘델의 세 수송회사를 손에 넣었습니다.”

  “호오.”


  모두 하만과 마찬가지로군. 귀족과 깊은 관계가 있던 회사다. 특기 분야를 쉽게 바꾸지 못한 거겠지. 도산 직전에 흑공주가 싸게 산 거라는 거다. 하지만 네 개 회사나 된다면 수송선은 200척을 넘을지도 모르겠군.

  “지금에 와서 흑공주는 페잔의 수송회사를 써서 동맹과 제국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대단하잖습니까?”


  “과연. 이제르론 회랑만이 아니라 페잔 회랑도 말인가……. 그렇게 되면 윗사람들이 뭔가 방해를 하려고 할 것 같은데 말이지.”

  내 말에 마리네스크가 또 어깨를 으쓱했다.

  “흑공주를 따돌린 결과가 밴플리트 할양조약이니까요. 방해를 하려고 해도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평범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이제르론 요새를 포획하여 로엔그람 공작의 전승 축하 선물이라며 진상한다. 몸값 대신 밴플리트 성계를 받는다. 우주를 무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 호쾌하단 말이지. 그야말로 우주해적이라 할 수 있겠지……. 한 손엔 술잔, 한 손엔 미녀.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흑공주 일가는 해적조직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바그너 일가인가.”

  내 말에 마리네스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베렌스 일가와 슈발츠코프 일가도 그렇습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베렌스 일가는 아이젠후트 성계, 슈발츠코프 일가는 에카트 성계를 영역으로 하고 있을 거다. 모두 중규모 조직이고 페잔과 가깝다. 하지만 흑공주가 그들과 친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흑공주가 친한 건 바그너 일가였을 거다. 카스트로프 동란에선 협력하여 엄청 벌었다고 했지…….


  “녀석들도 내란으로 꽤나 아픈 꼴을 당했으니까요. 귀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니. 거기에 손을 뻗어준 것이 흑공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페잔에서 제국영토로 들어가는 수송선의 호위를 그들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녀석들에게 있어 흑공주는 소중한 손님이라구요.”

  “…….”


  “페잔이 방해를 해서 흑공주가 수송선을 보내지 않으면 녀석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

  마리네스크의 목소리에 한숨이 섞였다.

  “화물을 뺏는단 건가.”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자신들 근처에서 보급하라든가, 통행세를 내라든가 하는 일은 있을 수 있겠네요.”

  “뭔 일이야 이게. 목덜미에 칼이 붙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네.”


  한숨이 나왔다. 마리네스크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놈이냐. 흑공주는.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 페잔을 쥐어짜고 있는 건가. 호쾌할 뿐만이 아니다. 이 무슨 음험하고 교활한 놈이냐.

  “……둘이서 한숨을 내쉬어도 별 수 없군. 지구로 갈까.”

  “그렇지요. 그게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마리네스크. ……나도 해적이 되는 편이 좋을까?”

  “…….”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농담이야. 농담. 그러니 한숨을 내쉬는 건 그만 두라고. 마리네스크…….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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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2월 10일. 암리처. 칼스텐 키아.


  오늘은 흑공주 일가의 최고간부회의가 열리고 있다. 암리처의 클라인겔트 자작령의 일각에 있는 흑공주 일가의 사무소는 아침부터 사람들의 출입이 많다. 조금 좁아졌지. 이 사무소. 나를 포함하여 젊은 녀석들은 대기실에서 대기중이지만 아무래도 진정할 수가 없다. 두목님에게 개축하자고 말해볼까. 여기만이 아니지. 그 외에도 발트바펠, 뮌처, 뤼데리츠도 개축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커졌단 말이지. 우리 조직. 내란이 끝나고 또 커졌다. 뭐라 해도 이제르론 요새를 포획한 것이 컸다. 요새 안에 있던 배라든가 물자는 우리 조직의 것이 됐지만, 수송선이 200척, 무장선이 300척 정도 있었던 거다. 그 외에도 공작선이 10척, 병원선이 15척 있었다.


  게다가 내란으로 귀족연합에 참가했다가 도망치고 우리에게 붙잡힌 무장선이 500척 정도 있다. 지금 와선 우리 조직은 수송선 700척, 무장선 1400척을 넘는 대소대가 되었다. 2년 전하고 비교하면 2배라고. 2배. 아니 3배에 가깝다. 조직원도 8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 제국 최대의 해적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이제르론 요새에 있던 무장선은 아무래도 그 전에 있었던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배들이었던 것 같다. 이 이상 전투는 무리이기에 요새로 돌아와 수리를 밭고 있었던 거지. 그게 통째로 조직의 것이 됐다. 신조함도 있다. 꽤 기뻤다고. 받아도 되는 거냐 이거, 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물자도 꽤나 맛있었고. 뭐라 해도 500만 명 분량의 물자가 있었던 거다. 큼지막하지.


  뭐, 통째로 가져간 건 무기였다. 반란군이 쓰던 총 같은 무기는 제국군에선 쓸 수 없으니까 말이야. 남겨놔도 의미가 없다. 식량 같은 건 절반만 받았다. 나중에 제국군이 왔을 때 곤란한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두목님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적발 대장은 꽤나 송구했던 것 같지만. 뭐, 괜찮지 않나? 우리도 그렇게 악독한 짓만 하는 게 아니라고 이제 알았겠지.


  묘한 부분에선 의료품과 의복을 받았다. 이야, 반란군의 의료품과 의복은 꽤 좋네. 붕대, 마스크 따윈 제국의 것과 전혀 다르다고. 제국제는 조잡하니까. 피부에 좋지 않다. 특히 현저한 것이 생리용품이지. 반란군에서 쓰고 있는 생리용품은 뤼데리츠의 안네에게 선물했는데, 굉장히 감사 받았다고. 전혀 다르다니까 말이야. 시험 삼아 속옷도 선물 했는데 이쪽도 기뻐했다. 감촉도 다른데 멋도 있다고 말이야.


  나도 반란군이 쓰고 있던 와이셔츠를 써 봤지만, 역시 제국제하곤 피구 감촉이 다르다니까. 우리 조직은 변경에서 제국제보다 조금 싸게 팔고 있지만,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귀찮은 것이 군복이었다. 재킷은 그대로 팔 수 없다. 반란군과 헷갈리지 않도록 조금 색을 바꿔서 팔았지만, 이것도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덕분에 내 주변엔 비슷한 재킷을 입고 있는 녀석이 남녀 상관없이 잔뜩 있다. 이것도 일종의 유행인가?


  이번 내전에서 가장 경악한 것은 밴플리트 성계를 받아버린 것이었지. 돈을 지불할 수 없다고 영토를 건내도 되는 거냐고 생각했지. 덧붙여 채굴한 광물자원의 절반을 자신들이 사가다니, 명백히 이쪽을 이용하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말이지. 덕분에 건너편과의 교역이 가능하다.


  건너편에서 여러 가지 가져와서 이쪽에서 팔고 있지만, 다들 기뻐하며 사간다. 공작기계라든가 토목기계라든가. 내 주변에도 꽤나 건너편 물건이 많아졌다. 전기포트라든가 오븐 토스터라든가. 제국제보다 훨씬 좋으니까. 최근엔 변경 밖에서 와서 사가기도 한다. 변경에서 흘러간 평판을 들은 거겠지. 날아가듯이 팔리고 있다고. 모든 것이 잘 돼가고 있다. 이대로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키아, 뭘 히쭉거리고 있어?”

  “그래그래. 아까 전부터 얼굴이 완전 풀렸구만.”

  “그렇지 않아.”

  테오도르 아룬트와 루돌프 예링인가. 시끄러운 녀서들이지. 윗사람들하고 같이 돌아온 건가…….


  “그런가? 나도 히쭉 거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안네라도 생각한 거 아니야?”

  어디의 바보냐. 이 자식. 켁. 프란츠 마테우스. 이 놈, 이제르론 회랑에서 돌아온 거야? 히쭉거리고 있는 건 너잖아.


  아룬트와 예링이라면 무시할 수 있지만, 마테우스는 위험하군. 일단 내 형님이고, 근성도 나쁘니까 말이야. 덧붙여 이 자식, 안네에게 치근덕거리다가 퇴짜 맞은 것 같으니까, 잘못 대응하면 나중에 귀찮아질 것 같다. 여기선 얌전하게 대할까.


  “그게 아닙니다. 이 사무소도 좁아졌다고 보여서요. 조직도 커졌구나, 하고 생각한 거죠.”

  “확실히 커졌지. 하지만 네가 크게 한 게 아니라고.”

  “그야 그렇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놈.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덧붙여 말하자면 네가 크게 만든 것도 아니라고. 그런 하찮은 비아냥밖에 못하니까 안네에게 미움을 받는 거지. 그녀는 너보다도 내가 더 좋다네요. 내가 선물한 속옷을 입고 나와 데이트 해줬다고.


  “마테우스씨. 이제르론 회랑 청소는 벌써 끝났슴까? 꽤나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니, 아직이다. 큰 것만으로도 일곱 번, 자잘한 것까지 더하면 전투는 몇십 번, 아니, 백 번은 넘었을지도 모르니까. 쓰레기는 간단히 사라지지 않아. 정리하는 것도 꽤나 큰일이라고.”


  그럼 빨리 쓰레기나 회수하러 가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슴까. 큰일이네요.”라고 말하고 아룬트와 예링에게 시선을 향했다. 녀석들은 솔직하게 감탄하고 있다. 본심에서 그러는 거겠지. 보통 아룬트는 오딘, 예링은 페잔 사무소에 있다. 이쪽 사정은 잘 모르는 거다.


  변경에서 밴플리트에 가기까지는 이제르론 회랑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게 꽤나 큰일이었다. 전투로 파괴된 배의 잔해가 굉장한 거다. 지긋지긋해질 정도로 많다. 수송선은 짐을 옮기니까 그다지 세세한 조타는 불가능하다. 잔해와 부딪치면 당연히 손상이 나온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회랑의 중앙을 통해 충돌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회랑은 군과의 공동이용이니까. 이쪽이 고집만 부릴 순 없다. 그렇다는 걸로 가능하면 잔해를 치우고 회랑을 넓게 이용하자는 말이 나왔다.

  “꽤 벌고 있다고 하잖습니까. 다들 대단하다고 하던데요.”

  내가 말하자 아룬트와 예링이 “아, 그렇슴까?”하고 소리를 높였다. 마테우스의 얼굴이 풀어진다. 단순한 놈이다…….


  “아아, 벌린단 말이지 이게. 함선의 잔해니까 말이야. 희소금속을 쓰고 있어. 해체상에 가져가면 꽤나 높게 팔리지. 그 좁은 회랑에 뒹굴뒹굴 보물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야.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고 얼마나 벌고 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이야기를 한 뒤에 “너희들도 착실히 벌라고”말하며 웃으며 떠났다.


  “굉장하네. 그렇게 벌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어.”

  “아아. 마테우스씨 힘내고 있네.”

  “……아룬트, 예링, 잠깐 밖에 나가자. 우르만. 우리들은 잠깐 밖에 있을게. 기분전환이다.”

  우르만은 말없이 끄덕였다. 아룬트와 예링은 이상하단 표정이지만 얌전히 따라왔다. 비어 있는 방을 찾아 안으로 들어간다.


  “뭐야, 키아.”

  아룬트가 말을 걸었다.

  “마테우스씨가 이제르론에서 힘내고 있다든가, 윗사람 앞에서 말하지 말라고.”

  내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위험한 거냐?”라고 예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말이야. 싫어했단 말이지. 군이 어지러 놓은 걸 우리들이 정리해야 하냐고. 투덜투덜 불만스럽게 말했다고. 두목님에게 한 소리 들어도 불만족스럽게 말이야. 태도가 변한 건 최근에 와서 돈이 벌린다는 걸 알고 난 뒤다.”

  “……하지만, 돈이 벌리면 기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예링. 그 일은 말이야. 벌린다든가 벌리지 않는다든가 관계 없어.”

  “…….”

  “우리들은 말이지. 이제르론 회랑을 이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런 우리들이 말이야. 뻔뻔한 얼굴로 길 한 가운데를 지나가면 군대 입장에서 보기 좋지 않겠지? 아닌가?”

  내 말에 두 사람이 마지못해 끄덕인다. 아직 모르고 있구만.


  “하지만, 로엔그람 공작에게서 사용권을 얻었잖아?”

  “그래서 어쨋는데? 아룬트. 그런 건 금발이 그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고. 회랑에서 약간의 사고라도 일어나 봐라. 흑공주는 쓸 수 없다. 그렇게 말하지 않을 보증이 있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

  “불만스런 표정 짓지 말라고. 우리들은 약자 입장이야. 군대를 상대로 싸움 걸 수 있나”

  두 사람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흑공주 일가는 이제르론 회랑을 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군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정도면 쓰게 해줘도 좋지 않은가. 우리들은 녀석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


  “그 회랑을 쓰게 되어 우리들은 굉장한 이득을 얻고 있어. 광물자원도 그렇지만, 반란군에게서 일용품을 잔뜩 사오고 있으니까. 그게 변경 사람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발전하게 만들고 있어. 변경이 발전하지 않으면 우리들도 끝이야.”

  “……그렇지. 다들 풍족하게 됐지.”

  “응.”

  겨우 알아줬나.


  “너희들은 밖에 있으니까 모를지도 몰라. 하지만 말이야. 이건 두목님이 언제나 말하는 내용이라고. 해적으로선 커졌지만, 군대에 비하면 쓰레기 같은 거라고 말이야. 덧붙여 어디서나 호의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야. 살아남기 위해선 제국을 위해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게 인정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

  “…….”


  “우리들만 벌 수 있으면 된다. 그런 생각은 안 된다고. 그걸 저 바보 자식, 전혀 모르고 있어. 조만간 부두령 쯤에서 묻어버릴 거다. 너희들도 불똥 튀고 싶지 않으면 윗사람 앞에서 조용히 하라고. 충고했다. 모르는 사이가 아니니까.”


  “아아, 고맙다. 키아.”

  “조심할게. 몰랐던 일이야.”

  아룬트와 예링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줄줄이 세 사람이서 돌아가는 것도 뭐하다. 두 사람을 먼저 방 밖으로 내보냈다. 손이 가는 놈들이야.


  마테우스 바보는 회랑 건밖에 모른다. 밴플리트 4=2에 대한 것도, 가고 싶지 않다고 소란을 피워 윗사람들 눈밖에 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반란군이 만든 기지. 지금은 제국군이 파괴하여 폐허가 된 곳이지만. 우리가 그걸 개수하여 쓰려고 하고 있다. 밴플리트에도 근거지는 필요하니까 말이야. 예정 대로 가면 앞으로 한 달 정도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방으로 돌아가자 우르만이 말을 걸어왔다.

  “주의했나.”

  “아아.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네가 하지 않았으면 내가 했을 거다. 들떠 있을 때가 아니니까. 루델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한숨이 나왔다. 조직이 커진 거다. 변경은 발전하고 있다. 좋은 일이 잔뜩이다. 그 때문에 다들 들떠 있고, 마테우스 같은 바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윗사람들의 두통거리기도 하다. 아마도 오늘 최고간부회의에서도 그 일이 떠오를 것이다. 아마도, 조직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고 할 것이다. 어떻게 될지…….


  “금발은 어떻게 나올까? 키아.”

  “일단 녀석은 두목님에게 빚이 있으니까 말이야. 문제는 놈의 부하겠지. 두목님에게 체면을 구겼으니까.”

  “아아. 그렇지. 두 번이나 무공 제1위를 빼앗겨서야 설 자리가 없어. 덧붙여 이제르론도 있지. 놈들 입장에서 보자면 빌린 집에서 사는 기분일지도 몰라.”


  이번엔 우르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직 사람 중엔 두목님은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많다. 조만간 해적조직을 통일하여 해적왕이 되는 게 아니냐는 놈까지 있다. 뭐, 농담이겠지만. 하지만 근처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이 보자면 그렇지 않다. 두목님은 꽤나 고생하고 있다.


  “키아. 이번 달은 총회가 있지.”

  “아아. 장소는 오딘이다. 불길한 예감이 든단 말이지.”

  “나도 그래.”

  최고간부회의가 끝났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간부들이 모습을 보인다. 다들 표정이 엄하다. 전도다난, 이란 말이지. 한숨을 참을 수 없다고…….


...


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재상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눈앞에 오이겐 리히터, 칼 브라케가 있다. 내 부탁으로 사회경제 재건계획을 만들어 준 개혁파라 불리는 자들이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저희들의 계획에 큰 문제는 있었습니까?”

  “아니. 딱히 없군. 세세한 점에서 문제는 있지만. 큰 줄기가 틀리지 않았다면 수정하긴 쉽다.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브라케의 질문에 답하자 두 사람 모두 기쁘게 웃었다. 문제는 없다. 성과는 나오고 있다. 이 두 사람에게 부탁한 건 실수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보다도 먼저 그 자가 이 두 사람을 만났다는 거다.

  “조사해 보니 변경에서 징수되는 세금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군.”

  내 질문에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본래 가난하다는 점도 있습니다만. 중앙에 비하면 인구가 적습니다. 별 수 없는 일이겠죠.”

  “그래도 요즘 2, 3년간 변경에서 징수되는 세금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직접세, 간접세 모두 그렇습니다. 다른 지역에선 이런 일은 없습니다.”

  “과연. 그런가…….”


  거기까진 보지 않았다. 직접세, 간접세에 의한 징수가 늘었다. 다시 말해 수입이 늘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건가. 불안하다면 소비를 멈추고 저축을 할 것이다. 변경 주민은 앞일에 대해 그다지 불안을 느끼고 있지 않다……. 두 사람에게 그 점을 확인하자 그 말대로라고 리히터가 답했다.


  “그리고 법인세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업 진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라는 거지요.”

  “과연.”

  제국 전토에서 귀족들이 좋을 대로 행동하여 평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와중, 변경만이 건전한 상태에서 번영하고 있었다는 건가……. 제국이면서도 제국이 아니다. 그런 느낌이군.


  “변경에선 어떤 말이 오고 있습니까?”

  브라케가 이쪽의 표정을 살피듯이 질문했다. 저쪽 일이 신경 쓰이나…….

  “의료와 교육면에서 도움을 청하더군. 의사와 교육자의 수가 부족하다고 말이야. 그 자라도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은 있는 것 같다.”

  “……그렇습니까. 사람은 아무래도 편리성이 좋은 장소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변경은 불리하군요.”

  “음.”

  정말 불리한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지만 말이야.


  두 사람이 돌아가고 프로이라인 마린돌프가 말을 걸었다.

  “각하는 흑공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

  자칫 잘못했으면 “어째서 그런 싫은 질문을 하는 거지.”라고 할뻔했다.

  “아까 전에 야유하는 듯한 말씀을 ㅎ셨기에……. 그 두 사람도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수한 용병가다.”

  “…….”

  “……행정관으로서도 일류겠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악독하고 탐욕스러운 사기꾼이기도 하지만. 답답하게도 놈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며 내 주위에 바보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위인이기도 하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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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1일.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 욥 트류니히트. 내란 및 이제르론 요새 함락의 책임을 지고 사임.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5일.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에 죠안 레벨로 취임. 레벨로 의장, 해적 흑공주 일가와 포로해방에 대한 교섭을 개시.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10일.

  제국군 최고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 제국 재상 리히텐라데 공작을 역적군과의 내통, 스스로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의 주범으로서 체포.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18일.

  제국 재상 리히텐라데 공작.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자결. 리히텐라데 공작 일가 중 20세 이상의 남자는 사형. 그 외는 변경으로 유배가 결정.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20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 제국 재상으로 취임. 또한 내란 진압의 공적에 의해 공작으로 작위를 올림.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25일.

  제국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대장.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9월 30일.

  자유행성동맹, 흑공주 일가 사이에 포로해방을 포함한 조약(별칭, 밴플리트 할양조약)을 체결함.


제국력 488년(우주력 797년) 11월 15일.

  이제르론 요새사령관 겸 함대사령관 울리히 케슬러 대장, 이제르론 요새에 착임.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에게서 이제르론 요새 방위 임무를 인계 받음.


  포로해방을 포함한 조약(별칭, 밴플리트 할양조약)에 대하여.

  자유행성동맹은 에리히 발렌슈타인을 장으로 하는 자경단, 흑공주 일가 사이에 이하의 내용으로 조약을 맺는다.


  하나. 흑공주 일가는 이제르론 공략에 있어 포로로 삼은 병사, 민간인 323만 5627명을 동맹에 반환한다.

  둘. 자유행성동맹은 그에 대해 이하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에 동의한다.

    (하나) 자유행성동맹은 흑공주 일가에 대하여 동맹령에서의 통상의 자유, 안전을 보장한다.

    (둘) 자유행성동맹은 몸값의 일부로서 흑공주 일가에게 2억 제국 마르크를 지불한다.

    (셋) 자유행성동맹은 몸값의 일부로서 흑공주 일가에게 밴플리트 성계를 할양하여 그 주권이 흑공주 일가에 있음을 인정한다.

  셋. 자유행성동맹은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흑공주 일가가 밴플리트 성계에서 행하는 개발행위를 방해하지 않는다.

  넷. 흑공주 일가는 밴플리트 성계에서 얻은 광물자원 중 절반을 자유행성동맹에게 매각한다.

  다섯. 흑공주 일가는 밴플리트 성계의 주권 및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 매각하지 않는다.


...


제국력 489년 2월 10일. 이제르론 요새.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이제르론 요새에 입항한 배에서 내리자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케슬러 제독. 일부러 마중 나온 건가.”

  “오랜만이군. 메크링거 제독.”

  “아아, 오랜만이다.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4개월만인가…….”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그의 안내로 그의 개인실로 향했다. 하릴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불편한 일이다. 옛날과 달리 주변의 눈, 귀를 신경 써야만 한다는 건. 그의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는다. 그가 꺼내온 백포도주를 입에 머금는다. 조금 산미가 있지만 나쁘지 않다. 상쾌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일부러 회랑까지 와서 훈련이라니. 수고하는군.”

  어조에 웃음이 있다. 내가 어째서 여기에 왔는가. 대충 예상은 하고 있겠지.

  “원수 각하의 명령이다. 변경에서 훈련을 하며 경에게 이런저런 확인을 하고 오라고 하시더군.”

  “역시 신경 쓰이나?”

  “그런 것 같군. 뭐, 당연한 일이지만.”


  내 말에 케슬러 제독이 끄덕였다.

  “여기에 오는 도중, 암리처에서 그와 만났다. 경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군.”

  “그건…….”

  케슬러 제독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어째서 변경에 왔는지. 대충 짐작은 갔을 텐데 온화한 웃음을 짓고 있더군.”

  “꽤나 내심을 읽게 해두질 않아……. 만만찮은 상대지 않나?”

  “아아. 만만찮지.”


  서로 누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더라도 안다. 에리히 발렌슈타인. 흑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해적이다. 용병가로서도 모략가로서도, 그리고 상인으로서도 그가 만만찮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다들 놀라는 건 그 자제심이다. 어떤 때에도 자신의 입장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 없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항상 우위에 서 있다.


  케슬러 제독이 이제르론 요새를 맡게 된 것은 흑공주가 반란군과 맺은 조약이 원인이었다. 흑공주가 이제르론 회랑의 사용권을 가지는 이상, 단지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흑공주와의 협조도 불가결한 일이 된다. 그리고 감시도. 그걸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케슬러 제독이 선발됐다. 반란군의 군사력이 쇠퇴한 지금, 주된 임무는 그쪽이다.


  “메크링거 제독. 그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듣고 싶은 일이 있는데.”

  “뭔지?”

  “오벨슈타인이 헌병총감이 됐다는 건 대체 무슨 일인가?”

  케슬러 제독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전임자인 오펜하이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로엔그람 공작에게 뇌물을 바쳤다. 그걸 이유로 경질. 후임자가 오벨슈타인이 된 것이다.”

  “뇌물……. 바보 같은.”

  케슬러 제독이 고개를 젓고 있다. 정말 동감이다. 이쪽도 고개를 젓고 싶은 기분이다.


  “오벨슈타인을 헌병총감으로 하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사람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몇 번이나 공작은 경이 있었으면 하고 한탄했지. 하기야 이제르론 요새를 맡길만한 사람도 경뿐이라고 했지만…….”


  “그렇다 해도 오벨슈타인이 헌병총감인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괜히 폭주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베스타란트인가.”

  “음.”


  립슈타트 전역 이후, 오벨슈타인은 몇 개의 의혹으로 취조를 받았다. 리히텐라데 공작과 내통했다는 의혹은 풀렸지만, 그가 베스타란트를 보고도 못 본 척 했다는 것, 그 일로 로엔그람 공작을 속이는 듯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참모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비난을 받고, 공작의 판단으로 총참모장의 직위에서 내려왔다…….


  “뭐, 잘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네만……. 헌데, 메크링거 제독. 작년 9월 말에 반란군과 흑공주가 밴플리트 할양조약을 맺었는데. 정부는 그걸 어떻게 보고 있는가? 유효하다고 보고 있나? 아니면 묵인하고 있을 뿐인가…….나는 그 조약이 체결된 직후에 오딘을 나와서 그 부분을 잘 모르는데…….”

  케슬러 제독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 같다.


  작년 9월 말, 반란군과 흑공주 일가 사이에 어느 조약이 맺어졌다. 밴플리트 할양조약. 이제르론 요새의 포로 320만 명을 반란군에게 돌려주는 대신 반란군은 몸값 2억 제국 마르크를 지불하고 밴플리트 성계를 흑공주 일가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황이군. 반란군과의 교역을 인정한 것은 로엔그람 공작 자신이다. 밴플리트 할양조약은 교역에 대한 부분도 있어. 할양은 통상 조건의 일부라고 주장하면 부정은 할 수 없지. 실제로 밴플리트에서 산출된 광물자원은 반란군과의 교역에 쓰이고 있으니.”

  “과연.”

  목이 말랐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내 쪽에서도 듣고 싶어. 교역은 꽤나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내 질문에 케슬러 제독이 끄덕였다.

  “사실이다. 흑공주 일가는 밴플리트에서 채굴한 광물자원의 절반을 반란군에 팔고, 일용품을 사서 변경으로 가져가고 있어. 일용품의 품질은 제국보다도 저쪽이 좋으니까 말이야. 꽤나 팔리고 있다고 하더군. 변경의 발전에도 꽤 도움이 되고 있지.”


  “하지만 반란군에게 있어서 흑공주는 적이겠지? 간단히 교역이 가능한 일인가? 아무래도 그 부분을 잘 모르겠는데.”

  내 질문에 케슬러 제독이 웃었다.


  “메크링거 제독도 군인이군. 경제는 모르는 것 같다. 정치라는 건 이치로 움직인다. 하지만 경제라는 건 이익으로 움직인다. 누구나 손해는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흑공주와 반란군은 서로의 교역으로 이익을 얻고 있어.”

  이익인가……. 하는 말은 알겠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제르론 요새 함락 직후, 최고평의회 의장 욥 트류니히트가 사임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하지만, 사실상 도망이나 마찬가지지. 당시의 반란군은 3개 함대밖에 없는 실전부대 중 한 함대는 내란으로 격멸 됐지. 거기에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잃은데다가 이제르론 요새까지 잃은 거다. 국방에 자신을 잃은 거겠지.”

  “과연. 심한 이야기군. 그 자는 주전파라고 들었다. 그게 도망치다니……. 마치 리텐하임 후작 같군.”

  내 말에 케슬러 제독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뒤를 이은 죠안 레벨로에겐 인질해방 문제와 함대재건 문제가 들이닥쳤지. 인질해방에 돈을 쏟으면 함대재건은 어려워져. 그렇다고 해서 인질을 죽게 내버려둘 순 없지. 머리가 아팠을 거다.”

  “음.”


  “흑공주는 교섭 와중에 교역을 인정한다면 몸값을 내리겠다고 한 것 같다. 레벨로 의장은 거기에 주목했다. 상대방이 교역을 인정한다면, 그걸 이용해야 한다고. 혹은 흑공주가 그러한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을지도 몰라.”

  “그게 밴플리트 할양인가.”


  이제르론 요새 공략으로 얻은 포로는 약 320만 명. 그에 대해 반란군이 최종적으로 지불한 몸값은 2억 제국 마르크. 한 사람 당 계산해 보면 60 제국 마르크에 불과하다. 정가가 10만 제국 마르크라고 보자면 영점 이하의 퍼센트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거래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흑공주는 그만큼 이익이 있으리라 봤다…….


  “정확하겐 흑공주에게 밴플리트를 개발하게 만들어 교역 상대로 한다, 라는 걸까. 밴플리트는 항성이 불안정하고 8개 있는 행성 전부가 열악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그 때문에 이주는 행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광물자원은 그럭저럭 있는 것 같다. 개발이 되지 않은 건 제국령에 가까워 위험했기 때문이겠지.”

  “한 번 싸움이 있었지.”


  내 말에 케슬러 제독이 끄덕였다. 제국력 485년에 밴플리트에서 반란군과의 전투가 있었다. 지금부터 4년 전의 일이다. 나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심한 혼전이었다는 말은 들었다.


  “밴플리트는 동맹 개발에 아무런 기여도 하고 있지 않다. 레벨로 의장은 그렇게 말한 것 같다. 그런 밴플리트를 흑공주에게 할양하여 개발하게 한다. 광물자원의 절반을 반란군에게 팔게 한다. 반란군은 우주함대를 급히 재건해야 하지. 광물자원은 아무리 있어도 충분하지 않아. 반란군은 새로운 자원공급원을 확보하고 흑공주는 반란군에게 있어 새로운 자원공급자가 됐다는 거다.”

  “과연. 그게 이득인가…….”

  내가 중얼거리자 케슬러 제독이 끄덕였다.


  “밴플리트 할양은 이치로 생각하면 굴욕일 뿐이다. 반란군 내부의 주전파는 꽤나 레벨로 의장을 비난했다더군. 하지만 이익으로 생각하자면 굴욕도 아무것도 아니야. 구미가 땅기는 거래일 뿐이지. 반란군에게 있어서도, 흑공주에게 있어서도, 제국에 있어서도 그렇다.”

  “제국에 있어서도?”

  잘 모르겠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자면 반란군과 흑공주, 변경에 이익이 있는 건 알겠지만……. 케슬러 제독이 날 보고 웃었다. 이런, 질리게 했나.


  “밴플리트에서 채굴된 광물자원의 절반은 변경성역으로 간다. 제련되어 일용품, 군용품에 이용되지. 군용품은 이제르론 요새와 흑공주 일가가 챙기고, 민생품은 변경에서 쓰이고 있다.”

  “과연…….”

  끄덕이는 나를 보고 또 케슬러 제독이 웃었다.


  “오딘에서 오는 것보다 훨씬 빠르지. 가까우니까 말이야. 그만큼 단가도 싸. 병참통괄부도 적극적으로 변경을 이용하려고 하더군. 변경은 최전선이기도 한 이제르론 요새에게 있어서 중요한 보급기지가 되어가고 있는 거다.”

  “…….”


  케슬러 제독이 내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있다.

  “알겠지? 언젠가 제국군은 이제르론 요새에서 반란군 영역으로 침공한다. 1년 후인지, 2년 후인지……. 그때, 변경성역은, 흑공주 일가는, 후방지원의 핵심을 맡게 될 거다.”

  “과연……. 하지만 변경에 그런 산업시설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변경이라고 하면 농업, 수산업이 주체가 아니었나……. 게다가 생산량은 낮았을 것이다. 옛날 유년학교에서 그렇게 배운 기억이 있지만…….


  “요즘 최근, 변경은 굉장한 기세로 발전하고 있어. 흑공주 일가가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니까.”

  “그건 들었지만…….”

  “녀석들이 투자하고 있는 건 우주항의 설비나 발전소, 거기에 도로, 상하수도 설비, 주로 인프라 설비로군. 그걸 보고 중앙에서도 기업이 진출하고 있다. 이제르론에 군용품을 납품하는 것도 그거다.”

  “변경은 변경이 아니게 되고 있다는 건가…….”

  케슬러 제독이 끄덕였다.


  “이제르론 요새가 양 웬리에게 함락되었을 때, 기업 진출이 멈췄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한 이후, 기업의 진출이 더욱 늘었다고 하더군.”

  “……설마하고 생각하네만, 놈이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한 것은…….”

  “그 설마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변경의 발전을 위해선 변경의 안정이 필요했다. 이제르론 요새가 제국에 있을 필요가 있다고 흑공주는 판단했지…….”


  방에 침묵이 떨어졌다. 아까 전까지 케슬러 제독은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겁고 괴로운 침묵을 뿌리치듯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믿을 수 없는 자로군.”


  “흑공주에게 있어선 몸값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고 생각하네. 변경이 안정될 것, 그에 의해 변경이 발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변경이 발전하지 않으면 흑공주 일가도 커질 수 없으니까 말이야……. 반란군과의 교역을 바란 것도 아마도 그게 이유겠지. 그에게 있어선 몸값보다도 교역 쪽이 변경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본 거다.”

  “…….”

  케슬러 제독이 와인을 입으로 옮겼다.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다.


  “장래적으로는 변경성역과 반란군 영역을 이어 하나의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추측을 하고 있어. 건너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자유행성동맹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리고 제국 변경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보인 거다. 이제르론 회랑을 해방해 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도 안 되는 자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케슬러 제독이 잔에 와인을 따라줬다.

  “변경은 이런 느낌이다. 말도 안 되는 자를 상대하고 있지만, 적이 아니라 아군으로 삼으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네. 이번엔 오딘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


  화제를 바꾸자는 거겠지. 유감이군. 케슬러 제독. 오딘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변경에 대한 거다.

  “지금 오딘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밴플리트 성계는 제국령의 일부인가, 아니면 흑공주 일가가 독점한 영역인가, 라는 거다.”

  “그거 또 성가신 문제군.”


  케슬러 제독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성가신 문제다. 케슬러 제독은 쓴웃음을 짓고 있지만 오딘에선 이 일로 골치를 썩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다. 제국도 동맹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간의 교류는 없이 포로교환도 군부가 주체가 되어 행했을 정도다.


  밴플리트 할양조약에는 제국이라는 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조약은 어디까지나 반란군과 흑공주 일가 사이에서 맺어진 것이다. 그리고 조약은 밴플리트 성계의 주권은 흑공주 일가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밴플리트 할양조약을 인정한다면 그 주권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말로 하자면, 흑공주가 밴플리트의 왕이라고 자칭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흑공주 일가의 주권을 무시하고 제국령의 일부라고 선언하여 군대를 파견하면 어떻게 될까? 그 시점에서 밴플리트 할양조약은 효력을 잃는다. 다시 말해 흑공주 일가와 반란군과의 교역이 끊어지게 된다. 당연하지만 흑공주는 교역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방해하는 행동을 하다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항의하겠지. 내가 그렇게 설명하자 케슬러 제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군부 내에는 강경론을 세우는 인간도 있다. 밴플리트 성계를 제국령으로서 접수해야 한다. 불만을 토한다면 흑공주도 반란군과 내통했으므로 토벌해야 한다. 고 말이야.”

  “바보 같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그를 적으로 돌린다는 건가……?”

  케슬러 제독이 어이없단 듯이 말했다.


  “젊은 자들이 많은 거다. 흑공주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가. 전쟁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혐오하고 있어.”

  “……경은 어떻게 생각하나?”

  케슬러 제독이 날 보고 있다. 꾹 숨을 참고 확인하는 듯한 시선이다.


  “나는 반대다. 그러한 짓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신의에 반하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위험하다. 경과 이야기를 하고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아군으로서 이용해야한다. 그러는 편이 훨씬 이득이야.”

  “…….”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안심한 거겠지.


  “흑공주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괜찮다. 그런 단순한 인간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아마도 그는 반란 따위 일으키지 않아. 싱거울 정도로 쉽게 물러나겠지. 그리고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제국에게 복수할 기회를. 그 복수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겠지……. 나 혼자가 아니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들?”


  “함대사령관은 전부다. 항상 우리들의 위에서 행동하는 자다. 제국과 반란군 사이를 파고들어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한 자다. 감정으로 반란 따위 일으키지 않겠지. 반란을 일으킬 때는, 제국을 멸망시킬 각오가 됐을 때다.”

  케슬러 제독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반란 전에 변경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케슬러 제독…….”

  “변경의 발전에 흑공주의 힘은 불가결했다. 그건 변경성역 주민이라면 다들 알고 있어. 밴플리트 할양조약도 변경성역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거라는 것도 말이야. 조약을 부정하고 흑공주를 부정하면 어떻게 될지…….”


  침통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어조와 표정이다.

  “변경은 제국이 자신들을 박해한다고 받아들이겠지. 그들은 립슈타트 전역 이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연계를 강화하고 있어. 틀림없이 변경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겠지. 독립운동의 지도자는 흑공주일 테고…….”

  심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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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8월 31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칼스텐 키아.


  두목님이 블라스터를 총집에 넣었다. 더 이상 위험은 없다는 걸까? 우리들도 블라스터를 거뒀다. 계속 쥐고 있어서겠지. 조금 손바닥이 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원수 각하. 슬슬 보수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희들의 활동에 대하여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겨우 왔다고. 이 시간이. 길었다니까. 우르만도 루델도 다행이란 표정을 짓고 있다.


  “하나,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변경성역 진압에 있어 보급을 지원한 일. 둘, 렌넨캄프, 슈타인메츠 제독을 아군으로 삼은 일. 셋,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 있어 리텐하임 후작의 추태를 녹화하여 방송, 귀족연합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일…….”

  어라? 다들 얼굴 표정이 굳어가는데……. 금발도 조금 변했다고. 아까 전과 표정이 다르다. 좀 봐달라고. 또 쫀쫀하게 굴려고……?


  “넷, 베스타란트의 핵공격을 막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폭거를 밝혀냄과 동시에 귀족연합군의 사기를 재차 꺾은 일. 다섯, 안스바하 준장에 의한 로엔그람 후작 암살을 미연에 방지한 일. 여섯, 리히텐라데 후작의 음모를 밝히고, 숙청의 대의명분을 얻은 일. 이에 의해 제국에 있어 로엔그람 후작의 패권이 확립됐습니다. 이상입니다.”


  식장이 조용하다. 뭔가 묘하게 조용한데 말이야. 어째서? 우리들 뭔가 나쁜 짓이라도 했나? 단지 힘냈을 뿐이고. 힘내는 건 나쁜 일이 아니잖아. 칭찬 받아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조금 너무 심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하지만 두목님이 막지 않았으면 금발은 죽었을 테고, 안스바하의 죽음은 유효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아깝잖아. 두목님이 한 일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들의 활동. 어떻게 평가해주시겠습니까? 답해주세요.”

  두목님이 빙그레 웃으며 금발에게 말하자 금발은 얼굴이 굳었다. 너 말이야. 부탁이니까 자신의 목숨 값을 깎지 말라고. 남자로서 가치가 떨어지잖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해적사회에서 그런 놈은 대우도 받지 못한다. 아니, 여자라도 마찬가지겠지. 넌 역시 두령 그릇이 아니야.


  “……무공 제1위라 인정한다.”

  무뚝뚝한 얼굴로 금발이 답한 것과 주변에서 한숨이 들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어이어이, 뭐야 그거? “잘 했다.”라든가 “훌륭하다.”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희들 근성이 썩었다고. 찜찜한 표정이나 짓고. 뭐가 하아냐. 이 얼간이. 애초에 금발, 네가 한숨을 내쉬면 어쩌냐고. 무례하잖아?


  두목님을 보라고. 싱글벙글 전혀 싫은 내색이 없다. 대단하잖아. 이런 남자는 말이야.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우리들은 다들 두목님을 좋아하고, 여자들도 두목님을 좋아한다. 클라인겔트의 베르타 할멈이 자신이 스무살만 젊었으면 두목님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고 농을 할 정도니까. 60살 넘은 할멈이 말이야. 내가 스물은 부족하지. 그 두 배인 40은 필요하다고 하자 빗자루로 머리를 있는 대로 맞았다고. 나이를 밝히지 말라면서 말이야. 대단한 할멈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대가로서 세 가지 받아가고자 합니다.”

  “세 가지인가.”

  “예.”

  뭘까나. 금발은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데.


  너 말이야. 그렇게 경계할 거면 처음부터 거절하면 좋잖아. 흑공주의 협력 따위 필요 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는 이것만. 너는 그 만큼만 일해. 그렇게 말하면 된다. 너 같은 손님은 가장 미움 받는 타입이라고. 일을 하게 해놓고 뒤에서 투덜투덜 불만이나 말하고. 우리들의 세계에선 그런 놈을 투덜이라고 한다고. 투덜투덜거리니 말이야.


  “일단 하나는 변경성역에 대한 부탁입니다. 이후 5년 간, 정부에 있어 변경성역에 관한 정책을 집행할 경우, 사전에 변경성역 주민의 협의를 필요한다. 는 거죠. 받아들어주시겠습니까?”

  에, 뭐야 그거. 처음부터 돈이 아니야? 우르만도 루델도 눈이 점이다. 거기에 뭐야. 갑자기 식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고. 이것저곳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사전에 협의? 어찌된 거냐. 그건.”

  “그 정책이 변경성역 주민에게 있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해 달라는 겁니다.”

  어이어이. 더더욱 웅성거림이 커진다고. 뭐, 무리도 아니겠지.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나조차 경악이라고. 아마도 두목님은 변경성역의 실력자들과 상담하고 있겠지만, 변경만이 아니라 제국 전토에서도 사전에 협의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지금까지 없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만, 그들은 원수 각하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변경은 지금까지 항상 무시 당해왔으니까요. 그들이 의견을 말할 자리를 받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두목님의 말에 식장이 조용해졌다. 금발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들이 반대의견을 표명했을 경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정책을 수정해야 하나?”

  “무시하든, 정책을 수정하든, 각하 스스로의 판단으로 정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금발이 두목님을 보고 있다. 생각하고 있군. 깊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좋은 느낌이야. 근본은 성실한 걸까? 쫀쫀하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단 말이지. 이 녀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쫀쫀한 걸지도 모른다. 뭐, 개인적으로는 그걸로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조직의 정점에 서는 사람으로선 말이야. 낭비하라곤 말하지 않겠지만, 지불 정도는 제대로 해달라고.


  “다시 말해 내가 어떻게 판단할지로 그들은 나의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판단한다는 것인가……. 꽤나 엄격한 조건이군.”

  금발이 쓴웃음을 지었다. 두목님도 웃음을 띠웠다.

  “각하께 있어서도 통치의 판단재료가 손에 들어오는 겁니다.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금발이 소리 내어 웃고 이번엔 두목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금발이 웃음을 거뒀다. 두목님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위험해. 긴장한다. 숨 쉬기 괴롭다고.

  “5년인가……. 계속 하라고 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좋겠지. 받아들이겠다.”

  “감사합니다.”

  이곳저곳에서 숨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다들 숨쉬기 괴로운 느낌이었겠지.


  “그럼 두 번째 요구로서 우리들, 흑공주 일가에게 반란군과의 교역을 행할 권리를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역? 반란군과 말인가.”

  “예. 페잔에게 중계교역의 이점을 독점하게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목님, 돈은? 그건 마지막? 마지막에 내치겠다는 걸까? 분명 한소리 나올 거라고. 그건. 금발은 돈에 시끄러우니까…….

  “그건 상관없지만, 페잔이 그걸 허락하리라 생각하나? 아니, 허락한다 해도 반란군이 경들을 받아들일지. 암리처에선 꽤나 고배를 마셨으니까 말이야.”

  웃지 말라고, 금발. 네가 웃으면 다른 놈들도 웃잖아. 잘 될 리가 없지. 웃기지 말아라. 그런 식으로 들린다고.


  “그건 이쪽의 영업 노력으로 어떻게든 하고자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단 제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자 하는 겁니다.”

  영업 노력인가. 두목님. 절대로 쉽지 않을 거라구요. 페잔 사무소의 녀석들에게서 때때로 이야기를 듣지만, 페잔 녀석들은 우리들을 꽤나 싫어한다든가. 페잔의 자치령주부도 페잔의 상인도 우리들에게 좀처럼 일을 돌리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런 걸 받아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되리라 생각하는데……. 애초에 반란군 영내에 들어가면 우리들은 전부 모가지 뎅겅 아니야.


  “좋겠지. 인정한다.”

  “감사합니다.”

  두목님이 금발을 향해 인사했다. 아아, 인정해 버렸다. 뭐, 인정하겠지. 금발에게 있어선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이야기니까……. 헌데, 여기부터가 진짜야. 금발도 표정을 굳히고 있다. 쫀쫀하단 말이지. 우리는 정당한 대가밖에 받지 않는다고. 너는 자신의 목숨, 얼마나 낼 수 있어?


  “그럼 마지막으로 각하에게서 흑공주 일가에 대한 감사장을 받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장?”

  금발이 눈을 크게 끔뻑거리고 있다. 아니 나도 그렇고, 우르만, 루델도 마찬가지다. 돈은? 두목님, 돈, 우리들의 급료……. 금발의 부하들도 여우에게 홀린 듯한 표정이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건 두목님뿐이다.


  “예. 감사장입니다. 작년에 받는 것을 잊었기에 두 장, 흑공주 일가의 활동에 감사한다. 자자손손 대를 이어 잊지 않겠다, 고 각하의 친필로 감사장을 받고 싶습니다. 저희들에게 있어서도 가보로 해도 좋은 물건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두목님, 금발의 감사장이라니 뭡니까? 그런 걸 받아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돈을 받자구요. 돈. 한 사람 당 4만 제국 마르크는 받을 수 있다구요.


  “자자손손인가……. 과연. 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단지 감사장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다고 봅니다만.”

  금발이여. 그런 이상한 눈으로 두목님을 보지 말라고. 네가 쫀쫀하니까 두목님은 감사장 같은 걸 요구하잖아. 여기선 한발, 네가 먼저 돈을 내겠다고 해보라고……. 무리겠지…….


  “좋겠지. 하지만 나는 경들을 위해 특별한 일은 하지 않을 거다.”

  “감사합니다. 흑공주 일가는 앞으로도 각하의 충실한 협력자일 것을 약속합니다.”

  어떻게 된 거야? 두목님. 돈을 받지 않다니. 뭐, 우리는 요즘 경기가 좋으니까 무료봉사라는 건가. 하지만 말이야. 금발이 버릇 잘못 들면 어떻게 하려고? 장래적으론 좋을 것 같지 않단 말이지.


  두목님이 계약서를 꺼내자 금발이 사인했다. 아아, 이걸로 이번 거래는 끝인가. 이 뒤엔 감사장을 두 장 받을 뿐인가……. 금발 놈, 거저 먹기구만. 우리들을 공짜로 부려먹다니. 웃음이 멈추지 않겠지. 기쁜 표정이나 짓고 있고. 금발 부하들도 기쁜 표정이다. 이쪽은 울고 싶다고. 두목님은 금발에게 약하단 말이지.


  “이번 승리를 축하하여 저희들 흑공주 일가가 원수 각하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즐겁게 받아주시리라 생각합니다.”

  “호오, 선물인가?”

  에엥? 두목님, 공짜로 일한 것도 모자라 선물이라니. 제발 좀 봐달라구요. 뭡니까? 그거. 애초에 금발도 그 부하도 이상하단 표정이라구요. 우리들에게서 선물이라니 기뻐하지 않을 거라니까요.


  “이제르론 요새입니다.”

  “…….”

  에, 뭐야 그거. 이제르론 요새라니. 그 이제르론 요새? 설마. ……새로운 페잔의 장난감인가? 몇 만 분의 1 사이즈의 모형이라든가. 다들 굳어있다. 금발도 이상한 얼굴이다. 우르만도 루델도 이상한 얼굴이다. 아마도 나도 이상한 얼굴이겠지. 이제르론 요새라니 뭐야?


  “이제르론 요새, 라고 했는가?”

  “예. 이제르론 요새라고 했습니다.”

  어이어이, 뭔가 소란스럽다고. 금발 부하들이 이곳저곳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고, 얼굴도 굳었다. 금발, 너도 얼굴이 굳었다고. 괜찮냐? 태연한 건 두목님뿐이다. 두목님. 정말로 이제르론 요새를 선물하는 겁니까? 그건 반란군의 것이라구요.


  “그걸, 공략한 건가?”

  목소리가 갈라졌다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예. 공략했습니다.”

  에? 공략했어? 진짜? 우르만도 루델도 흥분하고 있다. 그보다 흥분하지 않은 건 두목님과 부두령만이다. 어, 정말이야?


  “제국도 반란군도 국내가 내란 상태에 있어 상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르론 요새의 양 제독은 국내 내란 진압을 위해 요새에서 떠나 있었죠. 이제르론 요새는 무방비한 상태였던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하게 함락될 리가 없지. 하물며 경들에겐 제대로 된 병력은 없을 거다.”


  금발의 말에 놈의 부하들이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저희들에겐 많은 병력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밖에서 공략하는 것으론 요새를 함락할 수 없습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가. 하지만.”

  금발의 말에 두목님이 끄덕였다.


  “간단하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양 제독은 제국군인으로 위장하여 병사를 요새 안으로 침입하게 했습니다. 당연하지만, 같은 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반란군의 병사로 위장해도 신원증명에 의해 순식간에 정체를 들키게 되겠죠…….”

  “…….”


  아무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잠자코 두목님의 말을 듣고 있다. 멋지다고. 두목님. 내겐 두목님이 하는 말은 절반도 이해할 수 없지만, 다들 두목님의 말을 듣고 있는 거다. 쩐다고.


  “위장이 불가능하다면, 제국인으로서 잠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그게 가능합니다.”

  “가능?”

  금발이 의심쩍은 소리로 말했다. 금발만이 아니다. 다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대규모 내란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능한 수단. ……망명 희망자로서 요새 내부에 잠입하는 겁니다.”

  “그런가!”

  금발이 외치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올랐다. 다들 흥분하고 있다. 두목님은 그런 녀석들을 조용히 보고 있다. 쿨하다니까. 진짜 쩐다.


  “양 제독은 사령부의 관제기능을 세 장소로 나눴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머리를 세 개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만. 이제르론 요새의 심장은 하나…….”

  “그건.”

  “렌텐베르크 요새와 같습니다. 핵융합로를 제압했습니다. 그 뒤엔 세 머리를 향해 항복하지 않으면 심장을 날려버리겠다고 하면 됩니다…….”


  아까 전까지 보였던 흥분은 없었다. 다들 두목님을 보고 있다. 두목님이 웃음을 띠웠다.

  “거기에는 병사들의 가족, 아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방사능의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겠죠. 얌전히 투항했습니다.”


  식장이 조용하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웃음을 띠우고 있는 두목님을 보고 있다……. 금발도 그렇다. 잠시 뒤 두목님이 금발에게 말했다.

  “원수 각하. 이제르론 요새.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금발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감사히, 받도록 하지. 흑공주 일가의 후의에 감사한다.”


  이곳저곳에서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나도 숨을 뱉었지. 뭔가 굉장히 긴장했다.

  “단지, 건내는 데에 있어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음. 듣도록 할까.”

  “원수 각하께 드리는 것은 요새뿐. 요새가 소유하는 함선, 포로, 물자는 흑공주 일가의 것으로 합니다.”

  에, 그거 혹시, 엄청 좋은 거 아냐?


  “좋겠지. 이쪽은 주문을 붙일 만한 입장이 아니다.”

  “또 하나는, 흑공주 일가에 대하여 이제르론 회랑의 통행을 인정해주십시오. 그에 의한 반란군과의 트러블에 대해선 국가에 울며 사정할 일은 없습니다.”

  두목님의 말에 금발이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반란군과의 교역 권리를 구한 것은 그런 이유인가. 페잔이 페잔 회랑 사용을 독점 한다면, 경은 이제르론 회랑을 독점하겠단 건가……. 재밌군. 반란군 사이의 교역이 성립하는 건가. 그렇게 되면 페잔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겠군…….”

  금발이 웃고 있다.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다. 그리고 두목님도 웃고 있다.


  “언젠가 반란군은 사라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이번 내란에서 반란군은 일개 함대를 잃었습니다. 약체화 된 군사력이 더욱 약해졌죠. 그리고 이제르론 요새를 잃어 그들의 영토를 향한 문이 열린 겁니다. 국내 태세가 정돈 되면 언제든지 공략할 수 있습니다.”

  금발이 두목님을 보고 있다. 더 이상 웃지 않는다. 금발도 두목님도 그렇다.


  “은하통일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슬슬 150년이나 계속 된 전쟁을 누군가가 끝내야하겠죠.”

  두목님의 말에 금발이 웃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오가는 구만. 은하통일? 금발이 하는 건가? 난 쫀쫀한 점을 고치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한다구.


  “그렇군. 끝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제국의 패권을 쥐도록 할까. 다행히 경에게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할 대의명분을 받았으니.”

  그렇지. 이것도 두목님이라고. 진짜, 두목님은 대단하다니까. 군에 남았으면 원수가 되어 금발을 부하로 삼아 데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기분 좋은 원수였겠지. 떨떠름한 일은 절대 없었을 거다.


  “그럼 저희들은 변경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딘엔 오지 않는 건가?”

  의심쩍은 금발의 말에 두목님이 답했다.


  “이제르론 요새에는 약 300만 명의 포로가 있습니다. 몸값을 받고 가족의 곁으로 돌려보내야지요.”

  “300만…….”

  “한 사람 당 20만 제국 마르크로 6천억 제국 마르크는 받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6천억…….”

  6천억! 대, 대단해. 우르만도 루델도 눈이 휘둥그레하게 변했다. 아니, 이곳저곳에서 6천억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발이 갑자기 웃었다.

  “흑공주 일가가 악독하다 듣는 이유를 알겠다. 몸값으로 6천억 제국 마르크인가. 정가의 2배가 아닌가. 폭리로군.”

  어이어이, 정가라니.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몸값의 정가를 기억해서 어쩌려고? 싫은 놈이구만.


  “이쪽에선 1 제국 마르크도 받지 않았으니까요. 그 만큼은 더 뜯어내야죠.”

  또 금발이 웃었다.

  “내 몫도 거기에 들어가 있다는 건가. 반란군도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로군.”

  네가 쫀쫀하니까 그런 거잖아. 두목님도 네게 돈을 요구하는 걸 포기한 거라고. 너, 나중에 반란군에게 사과하라고. 쫀쫀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나중에 점령할 텐데, 그것도 미안하다고 말이야.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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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8월 31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칼스텐 키아.


  “진실도 사실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쩔었다. 진짜로 쩔었다고. 쇠방망이로 정수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두목님의 말대로야. 진실이라든가 사실이라든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이것이 역사다. 그리고 우리들은 해적 흑공주 일가인 거다. 어디까지나 두령인 두목님을 따라간다. 그걸로 충분하잖아? 진실이라든가 사실이라든가 하찮은 것을 질질 고민할 필요는 없어.


  두목님이 금발을 향해서 걸어간다. 안스바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시체를 지나가서 천천히. 부두령도 뒤를 따른다. 우리들도 뒤를 따랐다. 오른손에는 블라스터를 가진 채인데, 괜찮은 건가? 위험하단 생각도 들지만 두목님도 블라스터를 뽑은 채다. 두목님이 집어 넣든지, 우리들에게 집어 넣으라고 하기 전까지 가지고 있어도 괜찮은 거겠지.


  두목님이 금발에서 5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멈췄다. 부두령이 두목님의 뒤에, 우리들이 더욱 그 뒤에 멈췄다. 주변의 시선이 아프다고. 뭔가 불만 있어? 금발을 구한 건 우리들이라고. 너희들이 아니야.

  “구해준 점, 감사하지. 경이 없었다면 분명 나는 죽었겠지. 위험했다.”


  꽤나 솔직하네. 역시 목숨의 은인이라는 것이 큰가. 금발이여. 좀 더 말하라고. 좀 더. 네가 우리들을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우리들의 점수가 오른다. 다시 말해 보수도 오른다는 거겠지? 네 한 마디에 한 사람당 5만 제국 마르크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에, 안 끝난 거야? 두목님의 말에 놀랐다고. 위험해. 정신을 다시 차려야지. 금전 이야기는 나중이다. 주위도 웅성거리고 있다. 두목님이 블라스터를 뽑은 채인 건 그 때문인가. 블라스터의 손잡이를 강하게 쥔다. 몸이 긴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냐. 끝나지 않았다니.”

  금발이 의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외에도 리히텐라데 공작의 숨이 닿았다고 보이는 인물이 있다. 그런 말입니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그렇겠지. 이 안에도 적이 있다는 거다. 다들 서로를 의심하게 될 거다. 금발도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나도 경악 중이다.


  “누구냐. 그건. 확증은 있는 거겠지?”

  어이어이, 금발. 그런 무서운 얼굴로 두목님을 노려보지 말라고. 구해줘서 고맙다고 한 직후가 이거니까 말이야. 그야 너에게 있어선 본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네 성의가 모자라다고. 이래서야 친구도 없겠지. 불쌍한 녀석.


  “총참모장, 파울 폰 오벨슈타인 중장입니다.”

  웅성거렸다. 총참모장이라면 금발의 군사겠지? 그게 리히텐라데 공작의 스파이? 그 시체처럼 얼굴색이 나쁜 놈이? 기분 나쁜 놈이긴 하지만 그 녀석이? 놈을 봤지만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이다. 이 녀석, 자신이 의심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


  “말도 안 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농담이라도 할 생각인가?”

  금발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두목님을 보고 있다. 뭐, 그렇겠지. 자신의 군사가 스파이라니 조금 믿을 수 없겠지. 그 마음은 잘 알겠어. 금발. 하지만 두목님은 “그렇습니다. 재밌는 농담입니다. 이 뒤를 들어주세요.”라고 말하고 말을 계속했다. 두목님, 부탁이니까 그만 웃으세요. 나, 오한이 든다니까요.


  “각하가 원수가 되었을 쯤의 일입니다만. 국무상서였던 리히텐라데 공작에겐 큰 불안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등 외척이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제국의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점. 또 하나는 로엔그람 후작. 각하입니다.”

  “……나?”

  금발이 눈썹을 찡그리자 두목님이 끄덕였다. 주변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총참모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인가. 녀석들, 힐끔힐끔 두목님을 보고 있다.


  “20세의 원수. 이대로 가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어쩌면 찬탈을 생각하는 건 아닌가……. 각하는 그렇게 위구시하는 리히텐라데 공작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뭐냐. 그건.”

  어라? 뭔가 즐거워 보이는데. 금발은 이런 걸 좋아하는 건가. 하지만 말이야. 네가 언제까지 즐거워 할지 의문이야. 애초에 이런 건 마지막에 얼굴이 굳고서 끝난단 말이지.


  “하급귀족, 평민 출신의 제독을 발탁하여 정규함대사령관으로 했던 일입니다. 리히텐라데 공작에게 있어선 각하가 하급귀족, 평민을 통합하여 새로운 세력을 만들려 한다는 걸로 보였죠. 그리고 카스트로프 동란. 키르히아이스 제독이 불과 열흘 만에 진압했습니다. 리히텐라데 공작의 불안은 더욱 커졌을 겁니다. 부정할 수 있습니까? 각하.”

  “……아니, 부정은 하지 않아.”

  금발이 중얼거렸다. 뭔가 생각하고 있구만. 옛날 일을 생각하는 건가? 금발의 부하도 다들 생각에 잠겨있다. 말하는 녀석은 없다.


  “그런 때, 오벨슈타인 총참모장이 이제르론 요새에서 아군을 버리고 적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리히텐라데 공작은 총차모장에게 각하의 곁으로 가라고 명령했죠…….”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금발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 총참모장은 각하께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금발이 두목님을 봤다. 뭐야. 이상한 표정이네. 망설이는 건가? 그리고 잠시 간격을 두고 말했다.

  “……골덴바움 왕조를 증오하고 있다고.”


  또 주위가 웅성거렸다. 어이어이. 그런 말을 해도 좋은 거야? 우리들을 신뢰했기 때문인가? 뭐, 누구든지 적든 많든 제국을 증오하고 있지만. 문벌귀족들이 좋을 대로 행동했으니까 말이야. 아무 생각도 없는 건 문벌귀족들 정도뿐이겠지.


  “역시 그렇습니까……. 리히텐라데 공작이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이 그거였겠죠. 각하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반응 하는가……. 그리고 각하는 총참모장을 받아들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금발이 신음하며 말했다. 어이, 금발. 얼굴이 굳었다고? 괜찮냐? 그에 비하면 반쯤 죽은 듯한 총참모장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녀석. 정말로 살아 있는 건가? 사실은 죽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고. 기분 나쁜 녀석이다.


  “리히텐라데 공작은 각하를 배제하고자 마음을 굳혔을 테죠.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반란군에 의한 제국령 침공입니다.”

  “…….”

  “각하, 변경에 초토작전을 제안한 것은 누구입니까?”

  “……오벨슈타인이다.”

  두목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가 변경에 초토작전을 실행했다면 변경에서 강한 불만, 아니 원망의 목소리가 올랐겠죠. 리히텐라데 공작은 그걸 이유로 각하를 배제하려 했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각하는 반란군을 격파했다고? 대승리를 얻은 거다. 그걸 배제라니.”


  오렌지색 머리털을 한 놈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 이 녀석 뭔가 두목님에게 적대적이란 말이지. 아, 두목님이 웃었다. 바보 녀석. 두목님을 웃게 만들다니. 한 번 죽고 와라.

  “반란군에 큰 타격을 가했다면 유능하긴 해도 위험한 지휘관 따위 필요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


  “반란군을 격파하는 것이 제국을 지키는 일이라면, 국내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도 제국을 지키는 일입니다. 숙청인가 실각인가. 어느 쪽이든 좋았겠죠. 무엇보다도 평민들에게 로엔그람 후작은 승리를 위해서 변경 주민을 죽게 내버려 뒀다. 후작은 평민들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릴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론 주살한 거나 마찬가지죠. 지지기반을 잃는 거니까요.”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금발도 안색이 창백하다. 그 바보 같은 오렌지색 머리카락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떨고 있다. 바보. 거기서 잠시 떨고 있어라. 두목님을 화나게 한 벌이다. 흑공주 두령을 얕보는 게 아니라고. 두목님은 말이지. 너희들처럼 싸움밖에 못하는 바보놈들하곤 다르다고. 잠자코 듣고 있어.


  “하지만 그땐 잘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때문에 변경주민들은 그렇게까지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죠. 리히텐라데 공작에게 있어선 예상외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작에게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황제 폐하가 돌아가시고, 제국은 후계자의 자리를 둘러 싼 전쟁이 일어났으니까요.”

  “…….”


  “리히텐라데 공작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에 비해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거기서 각하의 무력과 용병가로서의 재능을 필요로 했습니다. 각하를 처리하는 것은 내란이 끝난 뒤. 그렇게 생각을 바꿨을 겁니다. 그리고 각하께 함께 싸울 것을 제안했죠.”

  “말도 안 되는…….”


  속삭이는 듯한 어조다. 평소의 금발이 아니구만. 명백하게 약해졌다. 아니, 망설이는 건가?

  “베스타란트를 내버려 두라고 한 것은 누구입니까?”

  두목님의 말에 식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몰랐던 거구만. 그렇다면 역시 금발이나 총참모장 둘 중에 하나인가. 하지만 묘한 녀석이야. 반시체 총참모장은. 표정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그를 보고 있는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오벨슈타인이다.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설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공격 시간을 앞당길 줄은…….”

  조금 변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거짓말은 아니겠지. 실제로 어떤 판단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죽게 내버려 뒀는가. 막았는가…….


  “누군가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통보했겠죠. 각하가 군을 베스타란트로 파견할지도 모른다고. 혹은 공격 시간을 속여서 각하께 보고했든가…….”

  금발이 신음하고 있다. 아니, 신음하고 있는 건 금발만이 아니다. 다들 신음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너무한 이야기다. 윗사람을 기만하고 200만 명을 죽게 내버려 두는 건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잖아. 구토가 나올 것 같다고.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 이제 아시겠죠. 변경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각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실각의 명목이 되겠죠. 베스타란트의 200만 명을 죽게 내버려 뒀다는 건…….”

  “……그런 건가. 오벨슈타인.”


  억누른 목소리였다. 금발이 반시체의 총차모장을 노려보고 있다. 놈의 뱃속은 끓어 오르고 있겠지. 하지만 반시체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리히텐라데 공작의 스파이라는 증거는 있는가? 흑공주.”

  억양 없는 목소리다. 전에도 들었지만 굉장히 싫은 느낌이다. 이런 때에 이런 목소릴ㄹ 낼 수 있다니, 일종의 괴물이구만.


  “없군요. 하지만 그럼 당신이 리히텐라데 공작의 스파이가 아니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

  “서로 증거는 없다. 그리고 상황증거라면 당신은 유죄다.”


  두목님도 반시체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노려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상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다들 침묵하고 있다. 금발도 그렇다……. 말을 걸만한 분위기가 아니야. 노려보고 있다면 “그만둬.”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냥 단지 조용하게 바라볼 뿐이다. 조용하지만 엄청 분위기가 무겁다. 위가 아파온다. 언제까지 지속됐을까? 적어도 3분은 지났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나머진 로엔그람 후작에게 맡기겠습니다. 총참모장은 스파이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는 위험합니다. 각하의 입장을 나쁘게 하는 짓밖에 하지 않아요.”

  안심했다고. 다른 사람 모르게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 이외에도 같은 짓을 하는 녀석이 있겠지.


  다들 금발을 보고 있다. 어떤 판단을 할지를 무언으로 묻는 거겠지. 위에 서는 녀석은 언제나 이렇게 시험 당한다. 편하지 않단 말이지.

  “오벨슈타인.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있나?”

  “없습니다.”

  “……경의 신병을 구속한다. 경에 의혹이 있는 이상, 그걸 방치할 순 없다. 심문 장소에서 자신의 무실을 증명하는 것이 좋겠지. 또한, 혐의가 풀리기 전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한다.”


  조금 간격이 있었다. 금발은 분노하고 있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는 거겠지. 놈은 태연한 모습이니까. 나라도 망설일 것이다. 저런 건 해먹기 힘들겠지. 경비병이 두 사람 와서 총참모장을 데려간다. 이것도 전혀 저항하지 않았지. 보통 이런 때엔 저항이라든가 무고함을 호소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듯이 걸어 나갔다. 이상한 놈이다.


  오벨슈타인 총참모장이 끌려 나가고 식장에서 사라지자 금발이 두목님에게 말했다.

  “경은 정말로 오벨슈타인이 스파이라고 생각하나? 그에 대해서 분노하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좀처럼 나는 확신을 가지기 힘든데…….”


  “저도 모릅니다. 단지 오벨슈타인 총참모장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잘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군 내부에 불안이 퍼지겠죠.”

  금발이 “그렇군.”이라고 끄덕이고 있다.


  “그가 무죄였을 경우엔 그 사용법을 조심하시길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를 멀리하라곤 하지 않겠습니다. 유능한 인물입니다. 곁에 두는 것도 좋겠죠. 단지 그의 위험성을 이해한 뒤에 쓰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위험성인가.”

  금발이 눈썹을 모았다. 알고 있는 건가? 이 녀석.


  “그가 제안하는 작전은 아군을, 약자를 잘라 버리고 희생하는 작전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초토작전과 베스타란트인가…….”

  금발이 중얼거리자 두목님이 끄덕였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말로를 보면 명백하겠죠. 각하는 이미 제국군 최고사령관의 지위에 있습니다. 제국인 250억 명이 각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하의 기반은 군에 있으며, 장병의 대부분이 평민이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걸 잊으면 순식간에 각하의 패권은 무너지리라 생각하비다.”


  “경의 말대로다. 나는 자칫 잘못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뻔했다는 건가. 그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었지만, 나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다. 부끄러울 따름이군.”

  금발이 크게 끄덕이고 있다. 응. 이렇게 보니 금발도 꽤 좋은 녀석이야. 자신의 결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그건 그렇고 과연 두목님이야. 제국군 최고사령관에게 뭔가를 가르치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다른 이들도 모두 끄덕이고 있다. 감복한 걸까? 평소엔 해적이라고 멸시 받고 있지만, 두목님은 제문에도 합격했다고. 너희들보다 훨씬 가방끈이 길다니까?


  이야기도 일단 정리된 시점에 슬슬 보수 이야기를 하자 구요. 두목님. 나 이제 슬슬 참을 수 없다니까요. 최후의 최후에 큰일을 했고. 금발도 쫀쫀하게 굴지 않을 터.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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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8월 2일. 가르미슈 요새. 에리히 발렌슈타인.


  “대체 무슨 일입니까? 두목님.”

  “무슨 일이라니. 바보 같은 일입니다. 도망치게 해달라는 거지요.”

  “도망치게 해달라?”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슐츠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일이죠?”

  “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군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지금에 와서 내란을 일으킨 것을 후회한다네요.”

  “어리석군요.”


  키포이저 성역 회전 후, 우리들은 키르히아이스의 승인을 받고 가르미슈 요새에 있다. 그런 나에게 포로로서 요새에 머물고 있는 리텐하임 후작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귀족연합의 부맹주와 만난다. 조금 위험한가 생각했지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키르히아이스, 렌넨캄프, 두 사람의 승인도 받고 만났지만…….


  도망치게 해달라. 그것뿐이니까 말이야. 돈은 나중에 낸다고 하지만 놈의 재산 따위 위험해서 받을 수도 없다. 애초에 말이야. 놈의 도망 따윌 도우면 이쪽까지 휘말리게 되잖아. 흑공주 일가는 해적일지도 모르지만 범죄자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할 가치도 없지. 조금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예를 들어 리히텐라데 공작의 약점이라든가, 골덴바움 왕조의 숨겨진 재보라든가…….


  키포이저 성역 회전 후, 가르미슈 요새는 항복했다. 키르히아이스는 가르미슈 요새에 렌넨캄프를 주둔사령관으로서 남겨두고 자신은 변경평정으로 향했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 후엔 잔탕토벌 같은 거다. 토벌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너무 순조로워서 조금 위험한 일이 됐다. 내가 흘린 키포이저 성역 회전 영상 말이지만, 그게 생각 이상으로 효력을 발휘한 것 같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본거지로 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군대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탈주병이 속출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 예상보다도 빨리 내란이 종결할 가능성이 있다. 있다기 보단 틀림없이 빨리 끝나겠지…….


  다시 말해서, 키르히아이스가 돌아가기 전에 내란이 끝난다. 립슈타트 전승기념식전에 키르히아이스가 제때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아니, 식전 그 자체는 키르히아이스를 기다려도 포로 처우는 미리 끝내둘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라인하르트 곁엔 무기를 소유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게 된다.


  안스바하의 테러를 막을 수 없다는 거지. 라인하르트 사망인가……. 좋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오벨슈타인 따윈 라인하르트가 있고 나서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입이겠지. 라인하르트의 기생충 같은 거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다. 변경이나 나를 필요 이상으로 적대시하는 놈은 사라진다…….


  그 뒤엔 어떻게 될까? 리히텐라데 후작의 숙청까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엔 어떻게 될지……. 키르히아이스가 라인하르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어렵군. 녀석은 권력욕이 없다. 허리를 빼다가 끝날 가능성도 있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가 주도권을 쥔다?


  불안하구만……. 권력을 쥐게 된 사람이 손에 쥔 권력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또 한 번 내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동맹의 군사력이 저하된 지금, 내란을 일으킬 만한 여력이 제국에는 있다. 제국의 분열인가. 그렇게 되면 변경의 미래는 밝다고는 할 수 없군…….


  역시 라인하르트인가. 그를 구하고 오벨슈타인을 무력화한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도 변경에 있어서도 최선이다. 재료는 많은 편이 좋지만, 그 재료 중 하나. 베스타란트의 비극, 이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


  여기에 있는 편이 대응하기 좋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중이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자신의 일로 벅차기에 베스타란트에 관여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설령 있다고 해도 키포이저 만으로 충분. 베스타란트를 죽게 내버려둘 필요는 없다고 라인하르트, 오벨슈타인이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언제 샤이드 남작이 베스타란트에서 쫓겨날지다. 몇 번인가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벌써 8월 2일이다. 시기적으로는 조금 더 나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다……. 키아를 위시한 젊은 녀석들에겐 귀족의 사유지에 대해서 상황을 조사하라고 말해뒀다. 답답해하면서도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베스타란트 외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겠지. 전혀 읽을 수가 없다.


  “헌데, 예의 건. 어떻게 합니까? 언제라도 실행할 수 있다고 영감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빌헬름 칸. 영감님이라고 불리는 자……. 선대가 신뢰하던 친구이며 부하이기도 했다. 선대의 사후,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여 배에서 내린 뒤 후방에서 일하고 있다.


  “잘 되리라 생각합니까?”

  내가 질문하자 안슐츠가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고…….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려면 지금 밖에 없겠죠. 영감님도 지금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려면 지금 밖에 없다. 하지만 말이지. 망설이게 된다고.

  “어려운 임무가 된다, 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위험을 범할 필요가 있을지……. 스스로 계획한 일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두목님은 운이 좋으시니까요.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안슐츠. 웃으면서 말해도 전혀 자신감이 들지 않는다고. 이 운이라는 것을 의지할 수 없단 말이지. 이걸 믿고서 실패한 놈은 셀 수 없이 많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어디까지를 운에 맡길지,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과연. 깊이가 있군요.”

  정말 그렇다. 너무 깊어서 나는 전혀 모르겠다. 어디까질 운에 맡겨야 좋은 거야? 내가 아는 것은 자포자기는 위험하다, 라는 정도다.


  “영감님은 두목님답다고 하더군요. 쪼잔한 짓은 하지 않는다. 크게 휘두르고 크게 번다. 두목님다운 도박이라고.”

  “저는 도박은 하지 않아요.”

  “뭐, 그렇지만 말입니다.”


  판단력이 없단 말이지. 나는. 고민할 뿐이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두목님, 큰일임다!”라며 외치며 키아가 날아왔다. 하치라고 부르고 싶어지는군.

  “바보 녀석! 노크 정도도 못하냐!”

  “죄송함다. 부두령. 큰일이.”

  “쳇. 무슨 일이냐.”


  “베스타란트에서 반란이, 샤이드 남작이 죽었다고.”

  “죽었다?”

  “예. 샤이드 남작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라고 합니다.”

  안슐츠가 나를 보고 있다. 원작보다도 명백히 빠르다. 그리고 과격해졌다. 나 때문이다. 그 영상 때문이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라인하르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나갑니다. 베스타란트로 갑니다. 준비를.”

  내 말에 키아가 “알았슴다.”라고 외치고 방을 나갔다.

  “부두령. 빌헬름 칸에게 전해주세요. 8월 20일. 작전을 개시하라고.”

  “알겠습니다.”

  안슐츠가 인사하고 나간다. 해보자. 변경을 지키기 위해서다. 자신의 운을 믿어보자…….


...


제국력 488년 8월 31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칼스텐 키아.


  뭔가 순식간이었지. 순식간에 귀족연합이 무너졌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는 듯이 사라져버렸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이 있었던 것이 7월 20일. 그 2일 뒤에는 리텐하임 후작이 포로가 됐다. 거기서 한 달 뒤에 이번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죽었다. 싱거운 일이구만.


  역시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 샤이드 남작이 베스타란트의 주민에게 죽었을 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베스타란트에 핵공격을 가하려고 했던 거다. 그걸 두목님이 막았다. 공격을 하려는 함선을 포획하고 승무원에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베스타란트를 핵공격 하라고 명령했다 진술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걸 영상으로 편집하여 방송했다.


  이야, 굉장한 소란이었지. 이런저런 놈들이 두목님에게 연락해왔다. 귀족연합군의 병사도 있었고 토벌군의 병사도 있었다. 베스타란트의 주민들의 것도 있었다. 주민들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기뻤다고. 좋은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금발…….


  금발 녀석. 다행이란 표정을 하고 있었지. 그렇게 몇 번이나 두목님을 찔러가더니 이번엔 솔직하게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말이야. 그래선 끝나지 않는다고. 우리들이 포획한 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파견한 함선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토벌군의 함선도 포획했다고.


  녀석들은 말이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파견한 배가 베스타란트에 핵공격을 가하는 걸 녹화하고 오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한다. 멈출 필요는 없다. 녹화하고 오라고 말이야. 명령한 것은 오벨슈타인 총참모장. 그 시체 같은 얼굴색을 한 놈이다. 두목님이 그렇게 말했더니 금발 녀석, 얼굴이 굳었었지.


  금발 녀석, 몰랐던 걸까? 한 번 대화하고 싶다고 했지만, 두목님은 내란이 종결하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가겠다고 답했다. 녀석들의 증언을 녹화해뒀으니 묘한 일은 생각하지 말라고 하며. 금발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화냈지만, 두목님이 오벨슈타인에게 침을 박아 놓으라고 하자 침묵해버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최후는 불쌍했다. 병사들이 모두 도망쳐 버리고 싸울 방법 조차 없었다고 한다. 귀족 중에는 장래를 비관하고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최후의 싸움을 걸었지만 함대 안에서 평민출신의 병사가 귀족 사관을 죽이거나 해서 제대로 된 싸움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크게 지고 요새로 돌아갔지만, 어떻게도 하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두목님은 이제부터 금발에게 만나러 간다. 금발은 오늘 포로를 만나 처우를 정한다고 한다. 뭐, 쓸 수 있는 녀석은 부하로 삼겠다는 거겠지. 사실은 전승기념식전에서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적발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언제까지 포로를 포로인 채로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원래 제국인이고, 사정이 있어서 적이 된 놈도 있을 테니.


  두목님은 거기에 입회하고 싶다고 금발에게 말하고 금발이 승인했다. 아마도, 그 이야기를 하고 흑공주 일가의 보수도 정하겠지. 금발에게 있어서도 전승기념식전은 그런 귀찮은 일을 끝내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축하 정도는 괜히 찜찜한 일 없이 축하하고 싶다. 그런 거겠지.


  요새 안에서 식장을 향해 간다. 두목님과 부두령, 나, 우르만, 루델, 바이트링, 베넬트, 이렇게 일곱 명이다. 두목님의 앞을 나와 우르만, 뒤를 루델, 바이트링, 베넬트가 지킨다. 부두령은 두목님 곁이다. 문제는 없겠지만, 만일을 위해서다. 뭐라 해도 주변 벽이나 기둥에도 총격 흔적이 있다. 여기서도 싸움이 있었다는 거다. 싫어도 긴장이 된다고. 아마도 요새 안에서 평민과 귀족이 싸운 흔적이겠지. 심한 싸움이었다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


  식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경비병이 무기를 가져가지 말라고 했다. 맡을 테니까 넘기라고. 무슨 생각이야? 이 바보 자식. 우리들 해적에게 무기를 넘기라고? 해적 세계에선 무기를 넘기라는 건 너희들을 믿을 수 없다는 거라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야. 다시 말해서 언제라도 죽여보자는 거다.


  결국 우리들은 무기를 휴대한 채로 식장으로 들어갔다. 설득한 게 아니야. 아니, 그것도 일종의 설득일까? 두목님이 놈에게 블라스터를 꽂아놓고 협박한 거다. 놈, 마지막엔 신음하며 울었지. 무리도 아니야. 나조차 두목님이 놈을 죽이는 건 아닌가 쫄았을 정도다. 두목님은 무섭단 말이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협박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두목님 정도다.


  우리들이 들어가자 다들 묘한 눈으로 이쪽을 봤다. 유일하게 우리들을 호의적인 눈으로 본 것은 꺽다리뿐이었지. 놈씨는 두목님의 친구라고 하니까. 기쁘구만. 두목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장 구석으로 향했다. 납득할 수 없단 말이지. 녀석들은 식전 중앙이고 우리들은 구석이야? 하지만 뭐, 두목님이 정한 거니까. 별 수 없나.


  금발이 들어오자 좌우로 갈라진 군인들이 다들 경례했다. 이런 걸 보면 군인들도 멋있단 말이야. 우리들도 뭔가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두목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잠자코 보고 있었지. 금발 녀석, 우리들을 보고 조금 표정이 굳었지. 변함없이 쫀쫀한 남자야. 두목님을 보라고. 키는 작지만 인간이 크다니까.


  포로가 차례로 들어오고 금발이 처분을 정했다. 사형이라는 소리를 듣고 울면서 달라붙다가 끌려 나가는 놈도 있었고, 부하가 되어 식장에 머무르게 된 놈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금발도 대단하단 말이지. 여기서 조금 더 마음이 넓으면 말이야. 쫀쫀한 것이 결점이야. 그것만 없으면 두목님과도 잘 될 텐데.


  몇 사람인가 처분이 내려진 뒤, 식장에 들어온 것은 묘한 녀석이었다. 검은 머리에 음침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특주 유리 케이스와 함께 들어온 거다. 뭐야? 하고 생각하자 두목님이 탁탁하고 허리의 블라스터를 때렸다.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고. 두목님이 블라스터를 때렸다는 건 주의하라는 거다.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고. 당황하여 정신을 차리고 봤다.


  주변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중년 남성을 비웃는 거겠지. 뭔가 싫은 느낌이야. 중년 남성이 우리들 앞을 지나려고 했던 때였다. 두목님이 블라스터를 뽑고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거기까지입니다. 안스바하 준장. 멈추세요.”


  남자가 발을 멈추고 두목님을 봤다. 두목님은 블라스터를 남자에게 향하고 있다.

  “무슨 짓이냐.”

  낮고 침착한 목소리다. 블라스터를 향하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녀석, 꽤 위험하다고.


  “전원 블라스터를 뽑으세요.”

  두목님의 지시에 당황하며 블라스터를 뽑아 그 자에게 향했다. 그래도 녀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무표정한 채로 이대로 이쪽을 보고 있다.

  “무슨 일이냐? 흑공주.”


  금발이 말했다. 녀석의 부하들도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보고 있다. 두목님, 괜찮슴까? 블라스터를 향한 건 틀림없는 거죠.

  “안스바하 준장은 항복 따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여기에 온 것은 각하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식장 안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금발의 부하도 뭔가 말하면서 두목님과 안스바하를 보고 있다.

  “나는 보는 대로 맨몸이다. 경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무기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유체 안에 숨겼다. 그렇겠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럼 저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유체인가. 거기에 무기를 숨겼다? 정말인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그럼 여기서 부턴 나 혼자서 가도록 하지. 그럼 각하는 안전하겠지.”


  안스바하가 두목님에게 제안했지만 두목님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습니다. 안스바하 준장. 당신의 반지입니다만. 그것이 레이저 총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근거리가 아니면 명중률이 떨어지죠. 확실을 기하기 위해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만. 소용없습니다.”


  소란스러운 식장 안에서, 안스바하의 표정이 변했다. 아까 전까지와 같은 무표정이 아니야. 두목님을 노려보고 있다. 분노라는 건 이런 얼굴을 말하는 거겠지.

  “……어떻게 알았나.”

  낮고 숨죽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에 다들 동요했다. 정말이었던 거다. 두목님의 말대로였던 거다.


  “오딘에 있는 우리 쪽 사무소가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부하와 리히텐라데 공작이 은밀히 연락하고 있다고.”

  에, 그랬어? 오딘에 우리 쪽 사무소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정보가 들어왔다니 전혀 몰랐다. 나 혼자가 아니다. 우르만도 루델도 묘한 표정이다. 처음 듣는 소리겠지.


  “공작의 부하가 제시한 조건은 하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존속. 리히텐라데 공작이 존속의 대가로 요구한 것은 로엔그람 후작의 죽음. 그렇지요?”

  “말도 안 되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어라? 뭐야. 안스바하 녀석. 묘한 표정이다.


  “이번 내란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는 힘을 잃었다. 아가씨 한 사람 살려 놓아도 문제는 없다. 언젠가 폐하를 쓰기 힘들어지면, 대신 그녀를 여제로 해도 좋다. 그 때엔 리히텐라데 일족의 남성이 여제 부군이 된다. 권력은 영구히 리히텐라데 일족의 것…….”


  두목님이 말을 끝내자 침묵이 떨어졌다. 다들 말을 잃었다. 이윽고 안스바하가 웃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런 건가! 무서운 자로군. 흑공주. 나를 이용하여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하는 건가……. 설마 해적이 그런 생각을 할 줄이야…….”

  에, 그건 다시 말해서, 날조라는 건가? 두목님을 봤다. 무표정하게 웃고 있는 안스바하를 보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용서하십시오. 이 무능한 놈은 맹약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금발 애송이 놈이 지옥에 떨어지기까지 앞으로 몇 년은 더 남은 것 같습니다. 역량부족이나마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몇 사람인가가 “독을 먹었다.”, “말려!”라고 말하며 행동했지만 두목님이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블라스터를 그쪽으로 향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와중, 안스바하가 유리 케이스에 쓰러졌다. 거창한 소리와 함께 케이스도 함께 쓰러지고 안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유체가 튀어나왔다. 핸드 캐논도 말이지. 두목님이 없었다면 금발은 틀림없이 죽었을 거다.


  누군가가 “진짜인가.”라고 중얼 거렸다. 다들 두목님을 보고 있다. 두목님 때문에 진상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실제로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나도 전혀 모르겠다.


  “필요 없습니다. 진실도 사실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두목님이었다. 두목님은 그대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시선을 마주치면 고개를 숙였다. 두목님이 금발을 향해 다가갔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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