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7월 20일. 키포이저 성역. 순양함 배커니아. 칼스텐 키아.


  키포이저 성역에 대군이 모여 있다. 적발의 함대가 약 5만 척. 리텐하임 후작의 함대가 약 5만 척. 두 군세를 합쳐서 10만 척을 넘는 함대가 키포이저 성역에 결집하여 싸우려 하고 있다. 이런 거 처음 본다고. 순양함 배커니아 함교는 조용히 흥분에 휩싸여 있다. 두목님이 있으니 다들 조용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큰 소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흑공주 일가의 함대는 약 2백 척. 두 군세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당초 알레멘트후벨에서 보급을 했던 때, 전투를 관전하고 싶다고 두목님이 말하자 수염을 기른 적발의 부하가

  “우리들은 싸우게 하고 해적은 관전인가. 신분 참 좋군.”

  이라고 했다. 웃기고 있어.


  하기야 두목님이 한수 위였지만.

  “질 것 같으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해적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힘내세요.”

  수염 녀석, 새빨개져서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적발이 말려서 분해하는 것 같았지. 꼴 좋다. 수염. 너 따위가 두목님에게 비아냥이라니 100년은 이르다고. 최소한 한쪽 발은 관속에 집어넣고 난 다음에 오라고. 그럴 경우엔 내가 나머지 한쪽 발도 접어서 관속에 때려 넣어 줄 테다.


  뭐, 마지막엔 적발이 관전을 허가해줬지만 말이야.

  “흑공주 두령의 손을 번거롭게 하지 않도록 힘내겠씁니다.”

  라고 웃으면서 말했지. 역시 위에 선다면 이 정도의 도량이 필요하지. 적발대장, 꽤나 하잖아. 우리들 사이에서도 인기 급상승 중이라고.


  “두목님. 적발대장 진영말입니다만. 이상한 형태네요.”

  내 말에 두목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이라고 하세요. 실례가 아닙니까.”

  “죄송함다. 그래서, 그 적발의 키르히아이스 제독 말인데요…….”

  “…….”


  두목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어이없단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잖슴까. 정말로 이런 요상한 진영, 처음 봤다니까요. 전술 컴퓨터를 봐도 화면을 봐도 이상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뭐야 이거? 이대로 적에게 들이박는 건가? 어떤 싸움이 될 건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는다.


  “칼스텐 키아. 적발은 필요 없습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입니다.”

  “아, 예.”

  “…….”

  “하지만 두목님. 적발은 친근함을 표시하는 별칭이라구요. 그걸 빼는 겁니까?”

  “……키아, 칼스텐 키아. 키르히아이스 제독입니다.”

  “네…….”


  그런걸까나. 내겐 적발의 키르히아이스 쪽이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인사 같은 것도

  “여어, 적발. 건강한가?”

  같은 풍으로 하는 쪽이 멋지다고. 두목님도 다른 두령들에게서 흑공주라고 불리니까 알 것 같은데도 두목님은 묘한 곳에서 고집이 있으니까 말이야. 부두령 앞에선 두들겨 맞으니까 말할 수 없지만, 곤란하다구.


  “키아. 저건 사선진형이라고 하는 겁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군대는 일단 좌익이 적과 교전하고, 그 뒤 시간을 두고 우익이 적과 교전합니다.”

  뭐야, 그거. 잘 모르겠는데. 시간을 둔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을 돌아봤지만 역시 이상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지. 모르겠지? 두목님은 아는 걸까.


  “잘 모르겠는데. 그 시간을 둔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아마 다들 의문스럽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르만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두목님에게 말했다. 우르만의 말 대로다. 다들 갸웃하고 있다. 두목님이 힐끔하고 우르만을 봤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 됩니다. 잘 봐두세요.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영상, 녹화하고 있습니까?”

  “예.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진영, 리텐하임 후작의 진영, 양쪽 모두 촬영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두목님이 묵묵히 끄덕였다.


...


제국력 488년 7월 20일. 키포이저 성역. 순양함 배커니아. 에리히 발렌슈타인.


  두 군세가 움직였다. 원작 대로군. 주위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선 한 번 방영되었던 방송을 재차 보는 듯한 기분이다. 이상하지. 원작에서 보고 만화로도 보고 현실에서도 보는가……. 도저히는 아니지만 흥분이라든가 피가 끓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단지 이상한 기분이다.


  리텐하임 후작의 군대는 심하구만. 함열이 엉망진창이다. 말하자면 귀족 단위로 뭉쳐 있다. 그것뿐이겠지. 게다가 그 귀족이 함열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배열이 엉망진창인 함대가 이리저리 뭉쳐 있다. 그게 리텐하임 후작의 군대다.


  루츠의 함대가 공격을 시작했군. 아직 본격적인 공격이라 할 순 없지만 리텐하임 후작의 함대에는 손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반대로 리텐하임 후작의 함대는 아직 유효사격거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조하겠지. 이건. 겨우 닿았나 싶더니 이번엔 바렌과 키르히아이스가 공격을 가한다. 어느 쪽을 공격할까 망설이는 중에 키르히아이스에게 돌파 당한다…….


  그 뒤에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키르히아이스에게 돌입을 허용하여 공포에 빠진 리텐하임 후작이 패주. 그 도주로를 후방에서 온 수송부대가 막는 형태가 됐다. 그리고 더욱 공황상태에 빠진 리텐하임 후작은 수송부대를 공격하여 자신의 도주로를 확보했다. 수송부대는 아군에게 공격을 받아 괴멸. 비참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 결과다.


  책에서 읽었을 때엔 비참하기도 하고 동시에 너무 멍청하다고 경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되면……. 결과를 알고 있었는데도 막을 수 없다. 적어도 뷔로나 베르겐그륀 정도의 입장이었다면.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었을 테고 다른 방식으로 싸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해적이다. 발언력 따윈 거의 없다. 애초에 전투에 참가조차 할 수 없으니까. 도움이 될만한 전력도 아니고, 참가해도 전사자가 나올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후방지원에 전념하는 것이 분수에 맞는 거겠지. 수송선을 나포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런 짓을 하면 키르히아이스의 작전 그 자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해적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작전을 망쳤다고 비난까지 받겠지…….


  잠자코 볼 수밖에 없지. 그리고 거기에서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는 행동을 취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해먹을 수 없다. 하지만 말이지. 그건 오벨슈타인과 완전 똑같은 짓이다. 의안은 적극적으로, 나는 싫어하면서. 하지만 이용하고 이득을 취하는 것은 같다…….


  그 자를 싫어하면서 같은 짓을 한다. 애궂은 일이지. 아니, 악독해진 걸까. 녀석이 인간 쓰레기라면 나도 인간 쓰레기다. 최근엔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웃음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해적다워졌네. 좋은 일이겠지. 나는 해적의 두령이니까.


  “두목님. 뭐가 우스운 겁니까? 아까부터 쿡쿡하고 웃고 있습니다만.”

  키아가 이상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키아만이 아니다. 다들 그렇다. 내가 쓰레기인 것을 알았으니까, 라곤 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조금은 폼을 잡고 싶은 기분이긴 하다. 헌데, 어떻게 답할까…….


  “……군인이라는 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일입니다. 저는 군인을 그만두고 해적이 됐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일 아닙니까.”

  키아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다들 끄덕이고 있다.


  “그렇군요. 그 대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꼴을 잠자코 보고 있게 됐습니다. 서로 죽이는 것과 그걸 잠자코 보는 것. 어느 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까? 꽤나 웃기는 상상이죠?”

  내가 소리 내어 웃자 다들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웃기는 일이다.


  “두, 두목님.”

  “시작합니다. 키아.”

  다들 화면을 봤다. 바렌이, 키르히아이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빠르군. 키르히아이스의 순양함 800척은 호를 그리며 리텐하임 후작에게 접근하지만 그래도 빠르다. 그리고 바렌이 좋은 타이밍에 공격을 걸었다. 리텐하임 후작을 망설이게 하는 데엔 충분하다. 그 한 순간의 망설임이 승패를, 생사를 나눈다……. 비극의 시작이다…….


...


제국력 488년 7월 20일. 키포이저 성역. 순양함 배커니아. 칼스텐 키아.


  “쩌, 쩔어!”

  “뭐야, 저거.”

  “믿을 수 없어!”

  이곳저곳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쩐다고 할 수밖에 없다. 뭔가 갑자기 1,000척 정도의 함대가 날아간다고 생각했더니 순식간에 리텐하임 후작의 함대를 옆구리에서 파먹듯이 격파했다.


  “두목님, 저거.”

  말을 걸자 두목님이 힐끔하고 나를 봤다. 거짓말이지. 믿을 수 없어. 흥분하는 모습이 전혀 없어.

  “리텐하임 후작은 한 순간이지만 저 소부대를 상대할지 정면에서 오는 부대를 상대할지 망설였습니다. 그게 저 결과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은 아주 조금 시간차이를 두는 것으로 상대방을 혼란하게 만든 겁니다.”


  허어, 그런 건가. 뭔가 흥분하고 있는 것이 바보 같아졌다. 다들 같은 생각이 든 거겠지. 갑자기 조용해졌어.

  “그렇다 해도 키르히아이스 제독도 바렌 제독도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대단하군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뭔가 두목님은 너무 쿨해서 반응하기 어렵단 말이지. 아, 옆구리를 파먹은 소부대가 밖으로 나왔다! 어이어이, 또 안으로 파고 들었어!

  “슬슬 끝이겠군요. 정면의 루츠, 바렌 함대가 전면공세에 나올 겁니다. 안과 밖, 양쪽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겁니다. 리텐하임 후작으로선 참을 수 없겠죠.”


  정말이다. 밖의 함대가 굉장한 기세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리텐하임 후작의 군대는 혼란에 빠질 뿐 아무 짓도 하지 못한다. 안되겠네. 이건……. 사람도 배가 아플 땐 싸움 따위 불가능하다. 순식간에 맞고 누워버린다. 이쪽도 마찬가지네.


  “두목님. 도망치기 시작했슴다!”

  우르만의 말에 두목님은 반응하지 않았다. 잠자코 화면을 보고 있다. 듣지 않아도 안다. 그런 느낌이다. 멋지다니까. 눈썹 한번 꿈틀하지 않는다는 말은 두목님을 위해서 있는 것 같다.


  “어라? 도망치는 방향에 수송선이 있는뎁쇼.”

  “어이, 저거.”

  “어쩌려는 거야. 저거.”

  어이어이, 함대가 도망치는 방향에 수송선단이 있다. 저대로 가면 도망치는데 방해물이다. 어떻게 할 거야? 이미 늦었다고.


  두목님을 봤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두목님, 저 대로 가면 수송선이……, 두목님?”

  두목님이 우리들을 봤다. 차가운 눈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잠자코 보고 있어요.”

  “…….”


  도망치는 함대가 수송선을 포격했다. 아군을 쏘는 거냐고……. 수송선 따위 무장도 없으면서 장갑도 빈약하다. 순식간에 폭발했다. 그리고 그 잔해를 발로 걷어차듯이 리텐하임 후작이 도망친다. 적을 걷어차는 게 아니다. 아군을 걷어차고 도망친다……. 두목님의 말대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순양함 배커니아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에게 통신을 연결하세요.”

  “아, 예.”

  연결해서 어떻게 하려고? 추격이라도 참가하는 건가? 아니면 축하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말하기 힘들겠지. 다들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적발이 나왔다.


  “공격을 정지해주세요. 수송선의 부상자 구출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런가. 그렇지. 아직 살아있는 놈들이 있을 거다. 그 녀석들을 도와야. 아마도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무슨 말인가. 여기선 추격하여 전과를 확대해야 한다.”

  대답한 것은 수염이었다. 또 한 명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적발은 말이 없다.


  “그들은 아군에게 공격을 당한 겁니다. 우리들이 구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구한다는 겁니까. 한 사람이라도 많이 구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구조를 시작해야 합니다.”

  “…….”

  다들 조용하다. 적을 죽일 텐가, 적을 구할 텐가…….


  “리텐하임 후작은 가르미슈 요새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희들은 지금 있었던 전투를 녹화했으니 그걸 통신으로 흘리겠습니다. 자신들의 지휘관의 정체를 알면 병사들은 뭘 위해서 싸우는지 의문스럽게 생각할 테죠. 경우에 따라선 항복한다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격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두목님의 말에 적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신호도 나오고 있습니다. 흑공주 두령의 진언을 받아들이죠. 가르미슈 요새 공략에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구조를 우선합니다.”

  수염도 또 한 사람도 적발이 정한 일엔 반대하지 않았다.


  통신이 끝나자 우리들의 함대도 구조에 참가했지만, 두목님은 계속 말이 없었다. 안타까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잠자코 보고 있어요.”

  그 때 두목님은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저거, 일부러였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차가운 눈으로 우리들의 입을 막은 거다. 두목님, 우리들이 소란 피우는 걸 보고 괴로웠던 거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은 적발의 완승으로 끝났다. 리텐하임 후작이 이끌던 5만 척, 그 중 1만 5천 척이 완전히 파괴됐다. 가르미슈 요새로 도망친 것은 약 5천 척. 그 외에 5천 척 정도가 행방불명이 됐다. 나머지 2만 5천 척은 나포되거나 항복했다.


  리텐하임 후작은 가르미슈 요새에서 포로가 됐다. 두목님이 말한 대로다. 아군을 죽이고 도망친 걸로 다들 리텐하임 후작에게 정이 떨어진 것 같다. 덧붙여 후작은 술로 도피하여 만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바보 같아서 싸울 기분도 사라지겠지. 병사들은 후작을 포로로 삼고 항복했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이 있고 이틀 뒤였다.


  두목님은 적발에게서 꽤나 감사를 받았다. 괜히 싸우지 않고 끝났다고 말이야. 하지만 두목님은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비참한 싸움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뒷맛이 좋지 않은 싸움이었고, 싫을 정도로 자신들의 무력함을 알게 된 싸움이기도 했다. 두목님은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조차 기뻐할 수 없어.


  두목님의 말대로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것과 그걸 잠자코 보는 것, 어느 쪽이 편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애초에 답이란 게 있을지 없을지……. 두목님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물어볼 수가 없다. 묻는 것이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 싸움에서 유일한 위안은 리텐하임 후작이 참패한 것으로 변경성역의 패권은 로엔그람 후작의 것이 됐다는 점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열세인 것 같고, 만회는 불가능하겠지. 두목님이 한 말이니까 말이야. 분명 틀림없다. 적발은 변경성역 평정이 끝나면 금발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가다. 그다지 나중 일은 아니겠지.


  아마 우리들도 동행하게 되겠지. 금발에게 우리들의 공적을 평가 받아야지. 렌넨캄프, 슈타인메츠의 권유도 있고, 보급에 의한 지원, 거기에 이번 요새공략. 뭐, 저번처럼 큰돈은 받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럭저럭 받을 수 있겠지. 적발도 우리들을 평가해줄 테니까. 빨리 내란 따위 끝났으면 좋겠다. 입안이 써서 참을 수 없으니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5월 10일. 키르히아이스 함대 기함, 바르바롯사.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흑공주 일가의 발렌슈타인에게서 방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앞으로의 일을 상담하고 싶다고…….”

  뷔로 준장의 말에 저도 모르게 표정이 움직일 것 같아서 서둘로 고쳤다. 하기야 준장도, 그리고 그걸 듣고 있는 베르겐그륀 준장도 표정은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루츠, 바렌 두 제독과 함께 만나고 싶다고…….”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두 사람의 준장이 안됐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상담 따위 필요 없다고 거절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상대는 우리들의 보급을 지원해주고 있는 조직이다. 양호한 관계를 쌓는 것은 이번 군사활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고 해도 좋다. 보급에 문제가 생긴 군대가 어떤 꼴이 되는지는 암리처에서 반란군이 보여주고 있다.


  “방문을 환영한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루츠, 바렌 제독에게 초청을.”

  “예.”

  사람, 최저한의 겉치레는 필요하다. 아무리 싫은 상대라도 웃으면서 대응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하물며 그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숨이 나온다.


  루츠, 바렌 제독에게 흑공주가 온다는 것을 전하자 두 사람 모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제독들에게 있어서도 흑공주는 뭐라 말로 하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저번 싸움에선 라인하르트님에게서 무공 제1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군인으로서 그걸 받아들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겠지.


  흑공주……, 검은 공주. 해적들이 그에게 붙인 이름이다. 흑은 악, 강함을 표현하고 공주는 여성을 나타낸다. 강하고 악한 여성……. 마성, 최악의 존재겠지. 무뢰한, 폭한이 많은 해적사회에서 흑공주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그리고 교활한 페잔 상인조차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작년 카스트로프 동란에선 페잔 상인도 얼굴이 새파래질 정도로 벌었다고 한다.


  흑공주가 온 것은 루츠, 바렌 제독이 오고 나서 보다 10분 정도 지난 뒤였다. 혼자서가 아니었다. 부하를 한 명 데리고, 거기에 군인을 두 사람 데리고 왔다. 본 적이 있다. 이 두 사람은……. 또 한숨이 나올 뻔했다. 아무래도 또 한방 먹은 것 같다.


  “오랜만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 저번에 뵙고서 반년 이상 지났군요. 시간 참 빠릅니다.”

  흑공주가 빙그레 웃고 있다. 화사하고 가련한 신체. 구김살 없는 웃음. 도저히 해적으로는, 흑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이 웃음은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속임수인 거다. 이 자의 본질은 피에 굶주린 상어다. 탐욕스럽고 영악하며 교활, 한 번 먹이를 물면 그 날카로운 이빨로 용서 없이 찢어발긴다…….


  “오랜만입니다. 흑공주 두령.”

  기왕이면 계속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원수 각하의 아군이 되고 싶다는 두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은 이미 면식이 있었죠? 헬무트 렌넨캄프 제독과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제독입니다.


  흑공주가 옆으로 비켜 자리를 양보하자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경례를 하기에 이쪽도 답례한다.

  “헬무트 렌네캄프 소장입니다. 휘하의 일익에 넣어주시면 영광입니다.”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소장입니다. 소관도 렌네캄프 소장과 같은 마음입니다.”


  “두분을 마음 깊이 환영합니다. 원수 각하도 기뻐하시겠죠.”

  “기뻐해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두 분의 함대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습니다. 각하의 오해를 사선 안 된다 생각하여 여기엔 제 배로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이런저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흑공주가 빙그레 웃고 있다. 렌넨캄프, 슈타인메츠 제독도 기뻐 보인다.


  이 두 사람이 참가한 것은 틀림없이 기쁘다. 라인하르트님도 기뻐하시겠지. 하지만 거기에 흑공주가 얽혀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아마도 표정을 찡그릴 것이 틀림없다. 또 점수를 뺏겼다…….


  “괜찮습니다. 렌넨캄프 제독, 슈타인메츠 제독.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얼굴색이 좋지 않은 것은 두 분 때문이 아닙니다. 제 때문이죠. 그렇잖습니까?”

  깜짝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날 보고 있다. 그리고 흑공주가 우습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무슨, 대체.”

  “제가 두 분을 로엔그람 후작의 아군으로 권유했다. 다시 말해 제가 공적을 올렸다. 그게 좋지 않은 거죠. 로엔그람 후작은 군인으로선 굉장히 훌륭한 분이시고 저도 존경하고 있습니다만. 금전에 관해선 조금…….”

  그렇게 말하고 흑공주는 쿡쿡 웃었다. 루츠, 바렌, 뷔로, 베르겐그륀. 다들 찔리는 표정이다. 그리고 흑공주의 부하는 경멸하는 듯한 시ᅟᅥᆫ으로 날 보고 있다.


  “저희들은 해적이므로 보수는 돈으로 받습니다만. 저번 싸움에서 굉장히 미움을 샀습니다. 두 분은 괜찮습니다. 군인이니까요. 승진, 훈장, 지위로 충분히 보답을 받으시겠죠. 평가도 정당하게 받으실 겁니다. 해적이라도 공적을 올리면 제1위라 인정하시는 분이니까요.”

  렌넨캄프, 슈타인메츠가 미묘한 표정으로 끄덕이고 있다. 안 된다. 정신을 차려야지. 라인하르트님을 쩨쩨하다거나, 그릇이 좁다는 듯이 주변에 보여선 안 된다.


  “흑공주 두령.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두령이 두 사람을 아군으로 불러주신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원수 각하께 반드시 보고하겠습니다. 원수 각하도 분명 두령의 활약에 기뻐하시겠죠.”

  내 말에 흑공주가 빙그레 웃음을 띠웠다. 웃지마! 네가 웃으면 좋은 일이 없다.


  “무례한 말을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흑공주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 넌 무례하다. 흑공주가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흑공주가 고개를 올렸다. 빠르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은 로엔그람 후작의 소꿉친구며 심복이라고 들었습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이 기뻐하시니 로엔그람 후작도 분명 기뻐하시리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이상의 보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흑공주의 말에 다들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베르겐그륀 준장과 뷔로 준장이 신경 쓰는 듯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미운 놈이다. 제대로 속아 넘어갔다. 이걸로 나는 라인하르트님에게 이 자의 공적을 인정하게 만들어야만 하게 됐다……. 그러지 못한다면 거짓말쟁이라고 불리고, 심복이라 불려도 영향력 따윈 조금도 없다고 경멸 당하게 되겠지…….


  필사적으로 웃음을 띠우지만 뺨이 굳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안에서 마음에서 웃는 사람은 흑공주와 그 부하들뿐이겠지. 또 당했다……. 이걸로 몇 번째일까. 이후엔 실무에 대한 이야기가 됐지만, 30분 정도로 끝났다. 흑공주와 렌넨캄프, 슈타인메츠가 떠났다. 두 사람의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함류하게 됐다. 지쳤다……. 한숨이 나왔다.


  “괜찮습니까? 총사령관 각하.”

  내 한숨을 보고 루츠 제독이 신경 써줬다.

  “괜찮습니다. 조금 지쳤을 뿐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건 피곤하군요…….”

  “아뇨. 그게 아니라 로엔그람 후작에 대한 보고 말입니다만…….”

  말하기 힘든 듯한 표정과 어조였다. 또 한숨이 나왔다.


  “그 두 사람이 아군이 된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내란만이 아니라 내란 후의 일을 생각해도……. 흑공주가 공적을 세운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건 평가를 해줘야……. 로엔그람 후작도 이해를 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라인하르트님은 흑공주의 공적에 불만을 표할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불만스럽게 생각하시겠지…….


  하지만 이해는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해하시면 평가도 해준다. 렌넨캄프, 슈타인메츠, 그 두 사람은 이후 라인하르트님을 위해서 큰 활약을 하겠지. 흑공주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을 평가한다. 그렇게 생각해 달라고 설득하자…….


  “그렇다 해도 밀고 당기기가 능숙하군. 놀랄 정도로 강하다. 저러지 않으면 해적 두령은 할수 없는 거겠지.”

  “그렇겠지. 저 나이에 지금은 3만 5천명의 부하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루츠, 바렌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다.


  “제 실수입니다. 무심코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표정으로 나왔습니다. 그걸 제대로 찔렸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런 언질을 뺏기지 않았습니다만…….”

  “…….”

  “흑공주도 불쾌했겠죠. 그의 부하는 저를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공적을 세웠는데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흑공주는 일절 그런 감정을 보이지 않았죠. 냉혹하게 자신의 공적을 저에게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사를 제대로 구분하는 거겠죠.”

  내 말에 이번엔 그들 두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라인하르트님도 결코 주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은 것도, 공적을 인정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 괴로움, 아픔, 답답함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위가 올라가서 감정의 제어가 풀린 걸지도 모른다. 혹은 어딘가 그를 해적이라고 멸시하고 있었든가……. 흑공주도 내심 답답하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해적이라 멸시를 받는 것도, 3만 5천 명의 부하를 지키기 위해서 참고 있다…….


  “만만찮은 상대군요.”

  “방심도 빈틈도 없는 상대지만, 적어도 적은 아니다. 그걸 기뻐해야겠지.”

  “그렇군요. 적인 것보단 낫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죠.”

  서로를 돌아보며 세 명이서 쓰게 웃었다. 확실히 적인 것보단 낫다…….


...


제국력 488년 7월 3일. 순양함 배커니아. 칼스텐 키아.


  이야, 굉장한 소란이야. 제국도 반란군도 국내에서 내란 소동이다. 상대방에 대한 건 제쳐놓고 엉망진창 싸우고 있다. 뭐, 집안싸움 중에 밖으로 나가서까지 싸울 바보는 없으니까 말이야. 제국이 둘로 갈라지고 반란군이 둘로 갈라져서 페잔을 포함하면 우주는 다섯 개로 갈라진 것이 된다. 이런 영문도 모를 사태는 전대미문이다.


  반란군에선 5월에 양 웬리가 도리아라는 장소에서 쿠데타에 참가한 1개 함대를 격파했다고 한다. 거의 전멸 직전까지 쳐부쉈다든가. 무서운 상대야. 암리처에선 보급이 오지 않아서 충분히 싸우지 못했지만, 보급이 충분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오한이 든다.


  저번 달에는 하이네센에서 군과 주민 사이에서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주민이 약 2만 명 죽었다고 하고, 병사도 천 명 이상이 죽었다. 양이 도라아에서 이긴 탓에 쿠데타를 일으킨 녀석들은 궁지에 몰린 것 같다. 그게 원인으로 충돌이 일어난 거겠지. 엉망진창이군.


  제국에선 금발의 군대가 순조롭게 이기고 있다. 내란이 일어난 것은 4월이지만, 그 달 안에 알테너 성역에서 이기고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이겼다. 이 두 개가 컸지. 상대방은 역적군이고 불리나 보지만(반란군이라면 자유행성동맹과 구분이 가지 못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 역적군 중에서도 행동대장인 슈타덴이라는 놈과 야만인 오프레서가 졌으니까 말이야. 역적군으로선 뼈아팠겠지. 그 이후에도 금발의 군대는 순조롭게 이기고 있다는 것 같다.


  한편 변경에선 적발의 키르히아이스 대장의 함대가 변경성역에 있는 역적군의 세력을 평정하고 있다. 이쪽도 순조롭다고 해도 좋겠지. 금발처럼 큰 싸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30회 이상의 싸움에서 완승하고 있다. 적발이란 꽤 강하구나. 두목님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웃으셨지. 카스트로프는 우연이 아니라고.


  그렇지. 적발은 카스트로프 반란을 순식간에 진압했으니까. 두목님에게 듣고서 생각났어. 나치고도 얼간이 같은 소리다. 적발의 군대에는 렌넨캄프와 슈타인메츠 아저씨들도 힘내고 있는 것 같다. 그 두 사람, 꽤나 나이가 많으니까. 금발이 있는 데에선 젊은 애들이 많다. 그런 곳에서 더더욱 힘내야 한다고 필사적인 거겠지.


  두목님도 기뻐하고 있다. 뭐라 해도 두목님이 스스로 데려온 사람들이다. 그 두 사람이 공적을 세우면 세울수록 두목님의 주가도 오른다는 거지. 부탁한다고, 두 사람. 그건 그렇고 적발 녀석. 처음엔 두목님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는데 최근엔 조금은 제대로 된 표정이 됐지. 착실히 두목님에게 예의를 표하게 됐어. 금발과 마찬가지로 얼굴만 좋은 얼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다들 전황에 일희일비하는 와중에 두목님은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렌넨캄프와 슈타인메츠 아저씨들이 공적을 세우면 기뻐하지만 그것도 거의 조금 미소 짓는 것에 그친다. “그거 다행입니다.”, 그런 정도겠지. 그래도 감정을 보이는 편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다. 때때로 부두령과 조용히 대화하고 있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부두령에게 물어도 노려볼 뿐 대답해주지 않는다. 전혀 모르겠다. 뭐랄까.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두목님. 키르히아이스 제독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는데요.”

  바이트링의 말에 두목님이 끄덕였다. 정면 스크린에 적발이 나타났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역시 이 녀석 최근 바뀌었지. 전보다 느낌이 좋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다.


  “흑공주 두령. 로엔그람 후작에게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저의 부맹주, 리텐하임 후작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의 불화 끝에 5만 척의 함대를 이끌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5만 척. 그 숫자에 다들 웅성거린다. 두목님이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큰 목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다들 침묵했다.


  “놀랍지 않으신 것 같군요.”

  “그 두 사람은 사이가 나쁩니다. 이겨도 져도 언젠가는 분열하겠죠. 그래서 로엔그람 후작도 키르히아이스 제독도 그 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두목님의 말에 적발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흑공주의 두령은 두려운 분입니다. 두령이 적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이번엔 두목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이쪽이 할 말입니다. 저는 후작과 키르히아이스 제독을 적으로 돌릴 용기따위 없으니까요.”


  적발의 말대로다. 두목님은 때때로 오싹할 정도의 무서움을 보일 때가 있다. 뭐, 그런 점이 좋은 거지만 말이야. 두령은 그 정도가 아니면 해먹을 수 없다. ……적발, 너는 쓴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나 따윈 그런 여유 어디에도 없으니까. 너도 이 세계에 오면 두령 정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금발은 어떨까? 녀석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감정이 너무 겉으로 나온다. 뭐, 단련에 따라서 달라질지도? 두목님을 보고 배우면 바뀔지도.


  “표면적으론 변경회복을 외치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분파행동이겠죠. 로엔그람 후작에게선 이걸 격파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과연.”

  “싸우기 전에 보급을 끝내고 싶습니다만.”

  “합류장소는 알레멘트후벨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부탁하겠습니다.”


  적발과의 통신이 끝나자 두목님은 보급 준비를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배커니아 안은 다들 흥분하고 있다. 뭐라 해도 5만 척의 적이니까. 게다가 리텐하임 후작이 나온다. 지금까지 있었던 작은 싸움이 아니다. 대회전은 당연하겠지. 어떤 싸움이 될지…….


  “두목님. 전장은 어디쯤이 될까요?”

  베넬트가 조금 뺨에 홍조를 띄고 두목님에게 말하자 두목님은 힐끔 베넬트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별 수 없는 녀석, 그런 식으로 보인 걸지도 모른다.


  “키포이저 성역이 되겠죠. 리텐하임 후작은 가르미슈 요새를 근거지로 하여 키포이저 성역에서 변경제압을 노릴 것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은 리텐하임 후작을 키포이저 성역에서 격파하고 그대로 가르미슈 요새를 공략하겠죠…….”


  으음, 과연. 그래서 알레멘트후벨에서 보급하는 건가. 역시 군인으로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두목님에겐 술술 흐름이 보이고 만다. 적발이 알아들었다는 건 적발에게도 보였다는 건가. 내게는 전혀, 들어도 뭔 소린지, 니까 말이야……. 조금은 보고 배워야…….

  “키포이저 성역에는 저희들도 갑니다.”


  두목님의 말에 다들 놀랐다. 우리들은 이번 내란, 지금까지 전장에 나선 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보급지원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전장에 나간다. 다들 서로 돌아보고 있다…….

  “싸우는 겁니까? 두목님.”

  우르만의 질문에 두목님이 쿡쿡 웃었다. 두목님. 부탁한다구요. 웃지 말아주세요. 오한이 들어서 참을 수 없습니다. 또 말도 안 되는 일을 생각하는 거죠?


  “키포이저 성역 회전은 리텐하임 후작에게 있어서 최후의 싸움이 되겠죠. 그렇기에 저희들은 리텐하임 후작의 분전을 관전하러 가는 겁니다. 관전자는 저희들 정도 밖에 없을 테니까요. 기억에 남을 싸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명승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두목님은 또 쿠국하고 웃었다. 추, 추워……. 다들 얼굴이 굳었다구요. 두목님…….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2월 22일. 오딘, 에리히 발렌슈타인.


  “처음 뵙겠습니다.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

  “칼 브라케입니다.”

  “오이겐 리히터입니다.”

  으음, 안 되겠네. 인사는 했지만 그 뒤가 이어지질 않는다. 브라케도 리히터도 이쪽을 살피기만 하는 태도다. 어째서 우리를 만나러 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겠지.


  뭐, 별 수 없는 점도 있지만. 우리들은 오딘에 있는 어느 호텔의 로비에서 만나고 있지만, 주변을 우리쪽 사람들이 경계하고 있다. 너무나도 뻔한 경계. 다시 말해 주변을 향해 경고하고 있는 거다. 하기야 이들은 미끼다. 그 외에도 눈에 띄지 않게 나를 경호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말이야. 안슐츠를 필두로 다들 안 된다는 거다. 로엔그람 원수부에서도 나에 대한 취급은 결코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다들 꽤나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내무성의 경찰인지 혹은 사회질서유지국, 그리고 페잔의 변무관 사무소의 사람처럼 보이는 자들이 나를 마크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미행당하고 있다고 한다.


  브라케도 리히터도 진정할 수 없겠지. 두 사람 모두 소파 끝에 걸터 앉아서 어딘가 두려움에 떠는 듯한 표정을 가끔씩 보인다. 눈앞의 커피에 손을 대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 복잡한 기분이다. 여기까지 두려워할 줄이야……. 뭐, 이러고 있어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시작할까.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브라케, 조금 더 마음을 열어 달라고. 리히터, 침묵하지 마.

  “이제 곧 내란이 일어나겠네요.”


  내 말에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이번엔 리히터가 답했다.

  “그렇다는 군요.”

  “어느쪽이 이기리라 생각합니까?”

  또 서로 돌아본다. 이야기가 진행되질 않는군. 참자. 참는 거다.


  “헌데, 저희들은 잘…….”

  브라케가 어미를 흐린다. 안 되겠네. 언질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나쁜 녀석, 아니 무서운 녀석인가? 별 수 없네. 이야기의 방향을 좀 바꿀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들이 이기면 제국은 변하지 않겠죠. 딱히 무슨 준비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들이 패배하면 문벌귀족은 힘을 잃습니다. 제국은 변할 수밖에 없겠죠. 아닙니까?”

  “…….”


  또 침묵이냐. 그럼 멋대로 말해버릴 거라고. 이 성가신 얼간이들이!

  “문벌귀족이 힘을 잃으면 그를 대신하여 대두하는 자가 나옵니다. 그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

  “군인, 이겠죠.”


  두 사람이 한 순간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사라졌다. 군인이라고 말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거겠지. 멍청이. 그래서 너희들이 지금까지 개혁을 하지 못한 거다. 개혁에는 힘이 필요하다. 힘이 없이는 개혁 따위 불가능. 그걸 이 두 사람은 이해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군인의 거의 대부분이 평민과 하급귀족 출신입니다. 다시 말해 문벌귀족이 힘을 잃으면 평민과 하급귀족 출신자가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겨우 반응이 보였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군대라는 건 지휘관만으론 싸울 수 없는 겁니다. 병사들이 있고 나서야 겨우 싸울 수 있죠. 그들의 힘에 의해 내란에 이긴 경우, 당연하지만 병사들은 보답을 요구하겠죠. 자신들의 출신계급에 대한 대우개선을 말입니다. 혹은 지휘관이 승리의 보답을 표명하는 것으로 병사의 사기를 올리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겠죠.”

  브라케가 겨우 소리 내어 말했다. 이걸로 대화가 가능하겠군.

  “문제는 변경입니다. 변경에선 많은 귀족들이 로엔그람 후작이 승리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작 편에 붙을 것을 결정했죠. 이 경우 변경에선 귀족의 권리를 지키면서 평민의 권리를 확대한다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여기까지 틀린 점이 있습니까?”


  “아뇨. 그렇게 되겠군요.”

  “확실히.”

  브라케, 리히터가 내 생각에 동의했다. 좋아좋아. 좋은 느낌이 됐다. 애초에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 빛 뜰 날이 없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굶주려 있었을 것이다.


  “귀족의 권리를 축소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경은 비교적 빈궁했기에 귀족에 의한 착취가 어려웠죠. 중앙처럼 대귀족에 의한 착취는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귀족, 아니 지방영주의 지휘 하에 영지 개발을 해왔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걸 무시하면 변경은 혼란에 빠집니다.”


  “확실히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원래 루돌프 대제가 귀족에 의한 토지소유를 허락한 것은 비교적 개발이 안 된 토지에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을 배치함으로서 개발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히터가 대답했다. 겨우 대화가 되겠군.


  “어떻게 해야 공존이 가능한가, 보다 효율적으로 변경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이서 생각해주지 않겠습니까? 중앙정부와의 관계, 행정, 사법, 세금 징수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봤다. 표정에 곤란함이 떠있다.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곤란함이다.


  “어째서 그걸 저희들에게?”

  “언젠가 새로운 정부가 발족했을 때. 무리한 정책을 발표할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대해 이론무장을 해두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정책이 정부의 정책보다 훌륭하다. 그러니 받아들어주기 바란다고…….”


  “과연. 재밌군요. 그렇지 않나? 브라케.”

  “아아. 확실히 재밌어.”

  “그럼 받아들어 주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고 확인한 뒤, 승인했다. 보수는 한 사람 당 10만 제국 마르크. 선불이다. 그들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변경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까 보수를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고 설득했다.


  뭐, 이 두 사람은 이제 곧 라인하르트에게 불려가서 개혁안을 작성하게 된다. 그때, 당연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경의 현실을 고려한 정책안을 만들겠지. 뭐라 해도 말을 건 것은 이쪽이 먼저다.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선 자신들을 평가한 것은 내가 먼저가 된다. 불우한 녀석일수록 어느 쪽이 먼저 말을 걸었는지가 꽤나 크니까 말이야. 게다가 얼굴을 익힌다는 의미도 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안슐츠를 불러서 곁에 앉혔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그러는 편이 주변에 들리지 않는다.

  “무슨 일입니까? 두목님.”

  작은 목소리의 질문이다. 알고 있잖아. 그래. 이건 비밀 이야기다.

  “오딘에 사무소를 열고자 생각합니다.”

  “……거점을 만든다, 는 겁니까. 하지만 그건…….”


  안슐츠가 말을 어무렸다. 눈썹을 모으고 있다. 그가 뭘 생각하는지는 안다. 오딘은 제국의 수도다. 거기에 사무소를 열면 이런저런 억측을 부를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덧붙여 오딘은 어느 조직의 지배하도 아니다. 제도라는 이유에 내무성이 시끄러운 거다. 어느 조직도 그걸 싫어하여 피하고 있다. 겨우 큰 몇몇 조직이 사무소를 열고 있는 정도다. 거기에 사무소를 연다……. 안슐츠도 고민이겠지.


  “위험하리라 생각합니까?”

  안슐츠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 정도의 조직 정도라면 오딘에 거점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이상할 정돕니다. 하지만…….”

  또 어물거리고 있다. 말하기 어렵나 보다. 재촉해보자.

  “하지만?”

  안슐츠가 힐끔 나를 봤다. 곤란한 표정이지만 눈이 웃고 있다.


  “작년에 우리는 너무 많이 벌었으니까요…….”

  “그렇지요. 조금 너무 했습니까…….”

  “뭐…….”

  두 사람이서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지금 오딘에 사무소를 열면 많은 조직이 경계하겠지. 내무성, 군부, 페잔, 귀족, 해적……. 특히 성기산 것이 내무성과 군부겠지. 라인하르트가, 그리고 오벨슈타인이 묘한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두목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

  “두목님은 하찮은 명예나 체면 때문에 사무소를 열려고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란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으음, 그렇게 살펴보지 말라고. 나도 확실하게 뭐가 보이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 아니, 보이는 건 보이지만, 확실하게 형태가 있는 건 아니다. 굉장히 막연한 것들이다. 단지 방치해 두면 위험하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두목님. 변경에선 귀족, 평민의 구분 없이 꽤 많은 사람들이 로엔그람 후작에 불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기아지옥에 떨어졌을 뻔했으니 말입니다. 무리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필두로 한 문벌귀족도 믿을 수 없으니.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을 로엔그람 후작 지지로 뭉친 것은 두목님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로엔그람 후작이 아닙니다. 두목님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 신뢰가 무겁다고. 그것 때문에 곤란하고 있다. 안슐츠에겐 말해두자. 혹시 그걸로 뭔가가 보인다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

  “……내란이 일어나면 일단 100퍼센트 로엔그람 후작이 이기겠죠. 어떻게 이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제국의 패권을 쥐는 건 틀림없습니다.”

  “…….”


  “그를 상대로 중립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중간한 건 오히려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아군으로 붙을 수밖에요.”

  “과연.”

  안슐츠가 흠흠하는 느낌으로 끄덕인다.


  “문제는 그가 승리를 거둔 뒤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엔그람 후작은 정치를 쇄신할 겁니다. 그 와중에 변경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변경이 빈궁한 채였다면 문제는 없었겠죠. 혹 있다고 하더라도 작은 문제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부도 변경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테고, 변경도 정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우리들이 오기까지 변경은 가난했습니다. 계속 방치됐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점점 그게 변하고 있습니다. 변경은 윤택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런 변경을 어떻게 생각할지…….”

  “…….”

  내가 한숨을 내쉬자 안슐츠도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 둘이서, 뭐하는 건지…….


  문벌귀족이 몰락하면 그 재산을 몰수하여 국가재산을 건전하게 만드는 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이다. 상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제대로 된 원천이 필요하다. 문벌귀족의 사유지, 이건 당연하겠지. 그리고 점점 풍요로움을 보이기 시작한 변경……. 재무관료들의 검지가 움직이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변경 주민은 변경이 풍부해진 것은 자신들의 노력과 우리들의 협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정부에게선 어떤 은혜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죠. 아니 오히려 무시당해 왔다는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곤란하게도 부두령이 말했듯이 변경 주민은 다소 차이는 있어도 로엔그람 후작에 대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죠…….”


  “……정부는 변경을 착취하려고 하고 변경은 거기에 반발한다, 입니까.”

  “정부가 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금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남자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대귀족에게서 착취 당해온 토지는 많다. 다소 새로운 세금이 얹어져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세금은 가벼워지겠지. 하지만 착취당하지 않은 토지는 어떨까. 과장을 포함하자면 통치자에 대한 불신감이 있으니 가혹한 정책이라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래서 아까 그 두 사람입니까?”

  “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변경과 정부 사이에 알력이 생기겠군요.”

  그렇게 눈썹을 모으고 복잡한 표정을 짓지 말라고. 침울해지잖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딘에 사무소를 두고 싶은 겁니다. 정부의 생각을 빠르게, 그들이 말로 하기 전에 알고 싶습니다…….”

  안슐츠가 나를 지긋이 봤다. 아플 정도로 강한 시선이다.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우에 따라선 반란, 독립입니까?”

  “설마…….”

  이런, 생각보다 어미가 약했다. 안슐츠의 시선이 아프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짓을 해도 변경이 황폐해질 뿐입니다. 의미가 없어요.”


  정부에게 있어서도 변경에게 있어서도 전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제는 이성보다도 감정으로 흘러가기 쉽다. “어째서 우리들을 따르지 않는가.”라는 생각과 “너희들의 말 따위 듣겠냐.”라는 생각……. 우리들은 그 양쪽의 감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머리 아픈 문제다.


  “반란군, 아니 자유행성동맹은 이용할 수 없습니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마음은 알겠다. 반년 전이라면 가능했겠지. 하지만 녀석들을 얼마나 신용할 수 있을지……. 지지율 상승을 위해서 출병하는 놈들이다. 도저히 의지할 수 없다. 고개를 저었다.


  “무리입니다. 난파선에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침몰하는 게 겨우겠죠. 게다가 변경 주민은 동맹을 믿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전의 싸움, 마지막엔 한 번 배포된 식량을 빼앗겼죠…….”

  “그런 일이 있었죠. 거기엔 얼이 빠졌었습니다. 숨겨둔 식량이 무사했으니 다행입니다만. 그것까지 뺏겼다면 폭동이 일어났겠죠.”

  “그렇지요…….”


  사면초가인가……. 변경에는 아군이 없다. 내가 가진 병력 따위 정규함대에 비하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전력이다. 도저히는 아니지만 독립도 반란도 무리겠지. 하지만 변경이 불만에 차있다. 그것 자체를 위험시, 혹은 이요하려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일단 오벨슈타인이겠지. 제국의 변경이 중앙에 대한 불만을 가진다. 그 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용서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원수부에서 만났을 때에도 꽤나 이쪽을, 아니 변경과 나를 붙여놓고 경계하고 있었다. 할 법한 짓은, 어떠한 수단으로 나를 제거, 그리고 그것에 분기한 변경을 친다. 혹은 변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분열하게 만들어 나를 도발한다. 그리고 격발하면 뭉갠다……. 로이엔탈과 같은 운명인가…….


  그리고 양 웬리……. 이 세계에서도 양은 이제르론 요새에 있다. 제국군에 의한 동맹령 대침공이 있다고 한다면 양이 생각하는 건 페잔에서의 반제국 운동, 그리고 변경의 불만을 안다면 변경에서의 반란 유도를 생각하겠지. 변경이 혼란에 빠지고 페잔이 혼란에 빠지면 동맹령을 침공한 제국군은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제국군은 침공을 무르고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귀환한 라인하르트가 제일 처음 할 일은 변경 토벌이겠지…….


  오벨슈타인이 변경을 위험시하는 것은 그게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맹을 정복하고자 한다면 국내의 불안정 요소는 재차 제거해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벨슈타인에게 있어선 변경과 나는 불안정요소라는 거다. 양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


  방해물이란 말이지. 오벨슈타인과 양 웬리. 변경에게 있어선 극히 위험한데다 방해물이다……. 그 두 사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수단을 고르지 않는 면이 있으니까. 한쪽은 적극적, 또 한쪽은 싫은 기색 만면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두목님. 왜 그러십니까? 괜찮습니까?”

  정신을 차리니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안슐츠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아무래도 사고의 늪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도다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리하게 웃음을 띠우자 안슐츠가 안심하는 듯이 숨을 내뱉었다.

  “두목님의 생각은 알았습니다. 오딘에 사무소를 열도록 하죠. 장소를 물색해 보겠습니다.”

  오딘과 이제르론인가……. 위험한 건 또 하나 있군.


  “그리고 페잔에도 사무소를 열고 싶군요.”

  “페잔입니까……. 과연, 좋은 생각입니다. 오딘만이라면 말이 많겠습니다만, 페잔도 함께 열면 주변에도 우리쪽은 사업확장 중이라고 말해둘 수 있습니다.”

  안슐츠가 만족스럽게 끄덕이고 있다. 사업확장인가……. 겉으로는 그렇게 숨기고서 루빈스키의 움직임을 살펴야겠지.


  4월이 되면 내란이 일어난다. 슬슬 변경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 돌아가기 전에 칼과 피아에게 선물을 사둬야……. 라인하르트는 동맹에도 내란이 일어나도록 공작했을 것이다. 4월이 되면 제국도 동맹도 상대방에 대한 건 잊고 국내 평정에 전력을 다하게 되겠지…….


  ……그런가. 내란이 시작 되면 라인하르트도 양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겠군. 서로 자신의 일만으로 가득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겠지. 그리고 내란이기에 더더욱 가능한 일이다. 위험하긴 하다. 타이밍도 어렵다. 하지만 걸어볼 가치는 있다. ……해볼까…….


  “……부두령.”

  “예.”


  안슐츠가 나를 봤다. 어떻게 할까? 멈출까. 위험이 크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군……. 크게 숨을 내쉬었다.


  “……200명 정도 퇴역군인을 모아주세요. 비교적 젊고, 실전에 익숙한 퇴역군인을.”

  “……퇴역군인 말입니까.”

  “그리고 우리 쪽 사람을 2천 명 정도. 제대로 된 사람을 준비해주세요.”

  “두목님. 그건…….”

  아직 가능성이 보였을 뿐이다. 실행하고자 정한 것이 아니다. 일단은 준비다…….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안슐츠를 보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가능성이 보였을 뿐이라고…….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1월 5일. 클라인겔트 자작령. 칼스텐 키아.


  오늘 우리들은 두목님과 함께 클라인겔트 자작령에 왔다. 클라인겔트 자작, 발트바펠 남작, 뮌처 남작, 뤼데리츠 백작과 두목님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들은 타고 온 두 대의 차량 옆에서 대기, 주변 경계다.


  오늘 의제는 아마도 제국에서 내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성가신 일이지. 권력 다툼이라니 다른 데에서 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지금 바쁘다고. 농담이 아니야. 정말로 바빠. 다들 빠릿빠릿 일하고 있다.


  작년 반란군의 제국령 침공으로 우리 조직은 큰 벌이를 했다. 금발에게서 15억 제국 마르크도 받아냈고, 그 외에도 물자를 수송선 그대로 받았다. 우리 조직은 이걸 팔아치워 그 돈을 써서 변경 이곳저곳에 투자하고 있다. 덕분에 변경은 꽤나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 페잔에서도 상선이 꽤나 오게 됐고 말이야. 좋은 일이야.


  그 외에도 변경 성역에는 전투로 부서진 반란군의 함선, 제국군의 함선이 잔뜩 있다. 그 녀석들을 끌어 올려 쓸 수 있는 녀석은 받고, 쓸 수 없는 녀석은 해체해서 팔고 있다. 이게 말도 안 될 정도로 벌린다. 정말 그대로 삼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고 안슐츠 부두령이 웃었다.


경기가 좋아지면 우리들에게도 일이 돌아온다. 진짜 바쁘다고. 조직 사람들은 사람이 부족해서 다들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모집은 걸어놓고 있지만 제때 사람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뭐라 해도 대형 수송선 200척도 받았고 호위함도 66척 받았다. 7천 명 정도는 새로운 인원이 필요하다구.


  고용한다 해도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교육해서 현장에서 훈련을 하고 그 다음에 배치다. 순양함 배커니아에도 10명 정도 실습생을 받고 있다. 여기에도 두 사람 데려왔다. 교육하면서 사람을 쓴다는 건 큰일이라고. 일이 배가 되는 기분이야. 경기가 좋아지는 것과 신입 교육으로 우리는 엉망진창이다. 나포한 수송선, 호위함도 절반은 잠들어 있다. 아까워라.


  그 외에도 반란군에게서 오래된 구축함이라든가 순양함을 30척 정도 받았다. 반란군 녀석들도 종반엔 위험하다고 생각했겠지. 오래된 배로는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부순 뒤 사용할 수 없어요 라며 이제르론 요새로 돌아가 버린 녀석이 있는 거다. 사실은 수리해야만 하지만 전쟁터에서 부서졌다고 치고 방폐해버린 거지. 그래서 우리들은 그걸 착실히 받았다는 거다. 그것도 잠들어 있는 상태다. 움직이기 위해선 2천 명 정도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고 두통이야.


  배를 받은 대신 우리들은 이제르론 요새에 부서진 함선의 승무원을 데려다 줬다. 뭐, 요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 덕분에 우리들이 전선과 이제르론 요새 사이를 활동한다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덕분에 꽤나 하기 쉬워졌지…….


  “저기, 우리 조직은 어디에 붙을까요? 로엔그람 후작입니까? 아니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질문한 건 알프레드 바이트링이였다. 이 녀석과 오토 베넬트는 신입이다. 두 사람 모두 불안한 표정이다. 나도 잘 모르지만 상대는 해줄까.


  “신경 쓰이나? 바이트링.”

  “네에.”

  “넌 어디에 붙었으면 좋다고 생각하냐?”

  “그야, 로엔그람 후작입니다. 제 집은 귀족에게 쫓겨서 변경에 왔으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변경에 있는 놈은 그런 놈이 많다.

  “바이트링. 솔직히 나도 잘 몰라. 아마도 지금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 거겠지.”

  “…….”

  “단지 말이야. 다른 해적 조직 중에는 귀족들과 강한 연대가 있는 조직도 있어. 그 중에는 우리와 관계가 깊은 조직도 있다고.”


  바그너 일가는 어떻게 할까? 조금 그게 걱정이지. 뭐, 그 외에도 걱정은 있지만…….

  “게다가 말이야. 우리 조직은 로엔그람 후작과 저번에 조금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우르만의 말대로다. 그 녀석들 성격 나쁘다고. 두목님을 말이야. 바보 취급이나 하고. 누구 덕분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 두목님이 나왔다. 칼을 안고 있군. 그렇단 건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는 건가. 곁에는 피아씨도 있다. 즐겁게 대화하고 있구만. 우리들 앞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두목님도 극히 평범한 청년이란 말이지. 특별한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다.


  “이봐, 우르만. 두목님은 칼을 귀여워한단 말이지.”

  “그렇지. 칼도 두목님을 잘 따르고.”

  “그걸까? 두목님은 피아씨를 좋아하는 걸까.”

  내 질문에 우르만은 으음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루델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피아씨는 두목님보다 다섯 살 연상이지. 두목님은 연상 취향인 걸지도. 젊은 아가씨가 아까워 하겠군.


  두목님이 칼을 안은 채로 다가오고 있다. 피아씨도 함께다.

  “이번에 만나는 건 3월의 보름 정도일까? 오딘까지 가야하니까.”

  “뭐어?”

  “선물 사올 테니까.”

  “응.”


  두목님이 칼을 내려놓았다.

  “그럼, 저는 이걸로.”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부인.”

  두목님과 피아씨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좋지. 뭔가 어울린다니까.


  바이트링과 베넬트가 두목님에게 다가갔다.

  “두목님, 수고하셨습니다.”

  “아, 바보. 두목님의 얼굴이 굳었잖아. 피아씨도 굳었다. 나중에 우리들까지 혼나잖아. 이 바보놈들이!


  당황하며 바이트링과 베넬트를 뒤로 밀었다.

  “죄송합니다. 발렌슈타인씨. 이 두 사람, 조금 착각을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까.”

  “예에. 그럼 부인. 우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두목님이 차에 오르자 우르만이 운전석, 루델이 조수석에 탔다. 나와 바이트링과 베넬트는 다른 한 대에 탄다. 운전석은 나다.

  “알겠냐? 바이트링, 베넬트. 칼 앞에선 두목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두 사람이 수상쩍은 얼굴을 하고 있다. 뭐, 모르는 건 아니지만.

  “피아씨가 말이야. 칼에 악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어.”

  “…….”

  “해적은 평판이 나빠. 우리들은 범죄에 손을 대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조직은 적지 않다고. 그러니 말이야. 칼 앞에선 두목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네. 알겠습니다.”


  두목님, 오딘으로 간다고 했었지? 그럼 금발에게 가는 건가. 아무래도 우리는 금발에게 붙는 것 같다. 뭐, 전쟁이라면 녀석이 이기겠지. 하지만 놈들 성격이 나쁘단 말이야. 예의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고. 두목님이 안 좋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


제국력 488년 2월 20일. 오딘, 로엔그람 원수부. 칼스텐 키아.


  오딘은 분주한 소란스러움에 휩싸여 있다. 어제, 이제르론 요새에서 포로교환식이 있었으니까. 이제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돌아온다. 그게 가족이라면 기쁘겠지. 남편이나 연인이 포로가 됐던 사람이라든가 있을까?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다든가. 그런 이야기는 괴롭지.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다…….


  오딘에는 순양함 10척으로 왔다. 두목님은 배커니아만으로 좋다고 했지만 그럴 순 없다. 흑공주 두령이 배 한 척으로 행동하다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꽤나 유복한 조직으로 보이고 있다. 거기다가 두목님은 초유명인. 돈 목적으로 유괴를 생각하는 바보 같은 놈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작년 제국 10대 뉴스 중, 3개가 두목님의 뉴스였다. 제1위는 은하사상 최대 몸값, 흑공주 일가 3억 제국 마르크를 요구. 제2위는 무공 제1위, 흑공주 일가 반란군 격파에 활약. 황제 붕어, 이제르론 요새 함락을 누르고 1위와 2위가 됐다. 제7위에 흑공주 일가, 카스트로프 동란에서 거금을 챙기다. 덧붙여 작년 유행어 대상은 “우리들은 해적입니다.”였다. 페잔에선 두목님을 모델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이미 두목님은 살아있는 전설이야.


  로엔그람 원수부에는 두목님, 안슐츠 부두령, 우르만, 루델, 나 다섯 명이서 향했다. 일단 몸가짐은 정돈했지. 어딜 봐도 양간의 자제다. 뭐, 조금 돈은 들었지만 준비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최근 우리는 임시보수나 초과근무 수당이 굉장하니까. 올해 내 연수입이 10만 제국 마르크를 넘었다고. 원천징수표를 봤을 땐 눈이 튀어나왔다고.


  원수부의 접수녀는 처음엔 우리들을 기묘한 시선으로 봤지만 두목님이 이름을 말하자 노골적으로 피하는 태도를 취했다. 금발 녀석, 대체 어떻게 교육을 한 거야? 그래도 케슬러 대장이 우리들을 찾아와서 용건을 물었다. 두목님이 변경성역 귀족들의 대표로서 왔다고 하자 당황하며 금발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우리들이 안내 되어 금발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자 녀석은 집무석에서 서류를 결제하던 도중이었다. 옆에는 음침해 보이는 얼굴색 나쁜 30대 남자가 있다. 그대로 두목님을 눈앞에 세우고서 이야기에 들어갔다. 손님을 세워둔 채라니 무슨 짓이야? 제국 원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예의를 모르는 데에도 정도가 있다고. 거기다가 엄청 싫은 표정이고.


  “그래서 용건은?”

  “변경성역 귀족들의 대표로서 왔습니다. 언젠가 일어날 내란에서 각하의 아군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두목님은 아군이 될 귀족들의 일람, 그리고 위임장을 제출했다.

  “……과연.”

  뭐야. 아군이 늘어난 게 기쁘지 않은 거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실례잖아.


  “단지 그들은 고유의 군사력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후방지원으로 협력하겠다고 합니다. 수송에 대해선 저희들이 행합니다.”

  “……그런가.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보답은?”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걸까? 뚜껑 날라가겠구만, 이 녀석. 부두령도 뺨이 굳어있다. 태연해 보이는 건 두목님뿐이다.


  “이들 귀족에 대한 가문과 영지를 보장한다. 그것을 보증하는 공문서를 받고 싶습니다.”

  “호오, 공문서를?”

  뭐야. 이상한 눈으로 두목님을 보고.


  “원수 각하의 많은 귀족들을 물리치고 제국의 재정을 건전화하고 싶다는 생각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경성역 귀족들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다지 재정 건전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변경성역은 큰 짐이 되겠죠. 귀족들에게 개발을 맡기고 주민의 권리를 법에 의해 지킨다. 그러는 편이 효율이 좋을 겁니다.”

  과연. 그렇겠지. 역시 두목님. 대단해.


  “경에게 있어서도 그러는 편이 좋다. 그렇지 않은가?”

  듣기 나쁜 목소리네. 전혀 억양이 없다. 뭐야 이 죽은 사람 같은 녀석. 금발이여. 조금 더 사람을 골라 쓰라고. 네 주변엔 제대로 된 놈이 없구만. 너, 사람을 보는 눈이 절대 없다고.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뭔가 문제라도? 오해하지 마시길. 저희는 범죄조직이 아닙니다.”

  쩔어, 두목님. 얼굴도 표정도 침착한 그대로야. 연기의 격이 다르구만. 누군가도 좀 배웠으면 좋겠어. 손톱의 때라도 끓여줄까?


  “좋겠지. 공문서를 준비하지. 그래서, 경에 대한 보수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싸움이 끝나고 각하께서 승리하신 뒤, 우리들의 활동을 평가해주십시오. 그에 의해 보수를 정합시다. 어떻습니까?”

  어이어이. 그렇게 두목님을 노려보지 말라고. 금발. 두목님은 적이 아니라고? 너 무슨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좋다. 하지만 이번엔 저번처럼 되리라 생각하지 말라고.”

  뭘 떽떽거리는 거야? 너, 괜찮냐? 적과 아군의 구별이 안 되고 있다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를. ……그리고 바그너 일가의 두령, 아돌프 바그너가 이번 내란에선 중립을 지킨다고 합니다.”

  “…….”


  “거기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세력권이니까요. 공연히 아군이 될 순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겠지요. 이해해주십시오.”

  “……알았다. 중립으로 충분하다. 적을 쳐부수는 건 나의 역할이다.”

  힘내라고.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방을 나와 돌아가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낯익은 놈들 뿐이구만. 그 하얀 배에서 만난 녀석들이잖아. 뭐야. 두목님이 나오자 모두 시선을 피하고. 무례한 놈들이네. 어째서 이렇게 오딘엔 예절을 모르는 놈들만 있는 거야? 변경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고.


  두목님이 목소리를 내어 말한 것은 그 때였다.

  “나이트하르트, 나이트하르트 아냐.”

  “여, 여어. 에리히.”

  두목님, 굉장히 기뻐 보인다. 아마도 옛날 친구겠지. 하지만 상대방은 조금 곤란해 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을 사양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이네. 나이트하르트. 그런가. 로엔그람 후작 원수부에 있었나……. 다행이다. 여기라면 경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

  “아아, 고마워.”

  두목님, 불쌍하네. 옛날 친구라도 두목님을 피하는 걸까.


  “괜찮아. 나이트하르트. 나는 악명 높은 해적이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날 아는 사람들이니까. 전우이기도 하지. 그렇지요? 비텐펠트 제독.”

  “…….”

  어이어이, 거기 오렌지색 머리의 큰 놈. 어째서 고개를 돌리는 거야? 두목님이 우리들을 힐끔 봤다. 악당 같은 미소를 띠우고 있어. 추워, 진짜로 춥다…….


  “설마 수송선을 강탈했을 뿐이라곤 말하진 않겠지요? 원수 각하도 무공 제1위라고 평가해주셨고.”

  “…….”

  아아, 두목님이 쿡쿡 웃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무례한 태도를 취하니까 그런 거야. 두목님이 화났잖아. 안슐츠 부두령도 우르만도 루델도 다들 얼굴이 굳었다. 아니, 녀석들도 얼굴이 굳어있네.


  “미터마이어. 갈까?”

  “아아, 그렇군. 로이엔탈.”

  뭐야, 그거. 키가 큰 놈과 작은 놈이 떠나려고 한다. 거기에 맞춰서 다른 녀석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남은 건 나이트하르트라고 불린 친구뿐이다.


  “경은 가지 않는 거야? 나이트하르트.”

  “바보.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만.”

  두목님이 가볍게 웃음을 띠웠다. 나이트하르트라 불린 쪽도 웃는다.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다.


  “건강해 보여서 안심했다. 걱정했다고.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별 수 없었어. 어느 귀족이 목숨을 노려서 말이야.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 그 도망처가 지금의 조직이었고…….”

  “…….”


  해적사회에선 유명한 이야기다. 귀족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두목님을 선대가 구했다. 군인에서 해적이 되는 사람은 적지 않다. 하지만 1년 미만으로 조직의 두령이 된 건 두목님뿐이다. 그리고 일가는 지금 제국에서도 굴지의 해적조직이 되었다.


  “상대는 누구야.”

  “……카스트로프 공작. 이미 죽었어.”

  “……어이, 설마.”

  “내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흐르고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내가 아니야. 맥시밀리언의 반란에도 관여하지 않았어. ……덕분에 돈을 벌었을 뿐이지.”

  “에리히…….”


  두목님, 벌기도 왕창 벌었으니까 말이야. 그 전쟁이 끝난 뒤의 이야기지만, 두목님이 너무 잘 벌었다는 소리가 올랐다. 카스트로프 사건도 두목님이 어딘가 관여하지 않았냐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목님, 귀족의 생사에는 묘하게 날카로우니까 말이야. 무례한 소문이야. 두목님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잠시 침묵한 뒤 두목님이 웃음을 띠고 말을 걸었다.

  “나는 미움 받고 있는 것 같네.”

  “미움도 받고 있고, 인정도 받고 있어. 로엔그람 후작은 양 웬리보다도 경을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어라어라? 나는 아군인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건 경뿐이야.”


  또 두 사람이 웃었다. 좋은 느낌이네. 두목님도 즐거워 보이고.

  “15억 제국 마르크나 바가지를 씌워서다.”

  “이래 뵈도 싸게 해준 건데 말이야.”

  “원수 각하는 게르라하 재무상서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했다더군. 꽤나 싫은 경험을 하셨다나봐.”

  “내란이 끝났을 때엔 더 큰 것을 받아 갈 거야. 기대하고 있으라고. 또 보지.”


  그렇게 말하고 두목님은 발을 옮겼다. 우리들도 뒤를 따른다.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즐거워 보이는 웃음을 띠고 있다.

  “부두령, 즐거워 보이네요.”

  “그렇지. 기대 된다.”

  부두령과 우르만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다. 그렇지. 나도 기대 된다. 두목님이 뭘 받아 갈지……. 또 두목님이 전설을 만든다고. 우주를 뒤흔드는 흑공주의 전설을 말이야.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9월 28일. 로엔그람 함대 기함, 브륀힐트.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괜찮겠습니까? 라인하르트님.”

  “해적 말인가?”

  “네.”

  라인하르트님이 내 질문에 조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괜찮겠지. 놈들의 연락은 약속대로 내게 오고 있어. 그에 의하면 반란군은 확실히 보급 유지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 같다. 부양가족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고 라인하르트님은 악당 같은 미소를 보였다. 안네로제님에겐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미소다.


  “문제는 수송선단의 위치입니다만.”

  “그렇군. 잘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뭐, 이쪽에서도 반란군의 상황은 살피고 있어. 걱정은 없겠지.”

  낙관적인 라인하르트님이지만 나는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잘 될 것인가. 저 해적은 신용할 수 있을 것인가…….


  라인하르트님은 변경성역에 초토작전을 행하는 것으로 반란군의 보급을 파탄시키고자 하고 있다. 그걸 받아들인 케슬러 중장이 변경성역에서 식료품을 징발하려고 했지만 변경성역에는 열흘치의 식량 외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변경 주민들에 의해 식량은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변경성역 주민들에게 식량을 숨기도록 지시를 내린 것은 그 근처를 영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해적조직, 흑공주 일가였다. 그들은 반란군이 대거 공세를 걸어올 것이라는 것, 그에 대응하기 위해 라인하르트님이 초토작전을 실시하리란 것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두령인 에리히 발렌슈타인, 흑공주라는 별명을 지닌 그가 케슬러 제독을 통하여 라인하르트님에게 제안해왔다. 반란군 격퇴를 위해서 협력하겠다고……. 협력 내용은 반란군 보급상황에 대한 보고, 그리고 보급 파탄의 방아쇠가 될 수송선단의 정보, 출항일시, 위치, 항로 라인…….


  “어째서 협력하는 건가.”

  그렇게 질문한 라인하르트님에게 발렌슈타인은 답했다.

  “변경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식량을 전부 뺏기게 되면 주민은 굶주리게 됩니다. 앞으로 열흘이면 반란군이 옵니다. 주민이 가지고 있는 식량을 뺏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떻게 반란군의 신용을 얻을 것인가?”

  “클라인겔트, 발트바펠, 뮌처, 뤼데리츠에 식량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변경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고…….”

  침묵하는 라인하르트님에게 더욱 발렌슈타인은 말을 덧붙였다.


  “변경 전체로 보자면 미미합니다. 작전에 저어되는 일은 없겠죠. 그리고 발렌군으로선 반신반의일지도 모르지만,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해적조직이 아군으로 붙어주는 건 큽니다. 이용하려고 생각할 것입니다.”

  “과연. ……그대들이 요구하는 보수는?”


  “싸움이 끝나고 각하가 승리하신 뒤, 우리들의 활동을 평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의해 보수를 정하지요.”

  예상외의 말이었다. 보수를 사전에 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쌓은 공적에 의해 결정하라니……. 라인하르트님이 웃었다.


  “보수가 없다는 가능성도 있겠군.”

  “공적이 없다면 그렇게 됩니다. 보수를 원한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적을 세우면 된다. 그렇지 않습니까?”

  라인하르트님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초토작전을 실시하면 변경 주민에 큰 괴로움을 주게 되겠지. 그걸 생각하면 발렌슈타인의 제안은 바라마지 않던 바다. 하지만 그를 믿어도 좋은 걸까…….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 순서대로라면 수송선단의 정보가 틀린다면……, 아니 함정이라면…….


  수송선단을 치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내 함대는 기다리고 있던 반란군에 두들겨 맞고, 반격을 개시한 아군은 보급을 끝낸 반란군에 의해 두들겨 맞게 되겠지. 어디까지 저 해적을 믿어도 좋을 것인지…….


  “원수 각하.”

  억양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모장, 오벨슈타인 대령이 라인하르트님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좋아할 수 없다……. 용모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사고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초토작전도 그가 생각했던 일이다. 혹시 극히 평범하게 끌어들여 치는 작전이었다면 발렌슈타인이 얽혔을까…….


  “발렌슈타인에게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반란군이 이제르론 요새에서 대규모 수송선단을 전선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반격할 때가 다가온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고 오벨슈타인 대령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라인하르트님이 받아 그걸 읽는다. 하얀 뺨이 홍조로 물들었다.


  “해적놈. 약속을 지켰군. ……키르히아이스. 네게 주어진 모든 병력을 이끌고 이걸 쳐라. 세부 운용은 너의 재량에 맡긴다.”

  “알겠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이 내게 메모를 건냈다. 확실히, 수송선단의 정보가 적혀있다.


  “키르히아이스. 정보, 조직, 물자, 뭐든지 좋을대로 써도 좋다.”

  “예.”

  경례하고 라인하르트님에게서 떨어진다. 출격이다.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송선단인가. 아니면 적인가……. 방심은 할 수 없다…….


...


제국력 487년 10월 8일. 키르하이스 함대 기함, 바르바롯사.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아직도 보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각하, 이제 곧 색적부대가 수송함대를 발견할 터입니다.”

  “……그렇군요.”

  베르겐그륀 대령의 말에 동의했다.


  어쩌면 대령도 초조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침착하고자 말을 걸었던 걸지도……. 확실히 이제 곧 찾을 것이다. 그 정보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이제 곧 색적부대가 수송선단을 발견하겠지.


  함대는 여기에 오기까지 딱히 반란군과 만나는 일도 없이 진출했다. 지금에 와서, 그 해적이 배신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배신했다면 반란군과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머진 수송선단을 발견하여 격파하면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침착하자.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면 된다…….


  “사령관 각하. 색적부대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수송선단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말에 함교 이곳저곳에서 환성이 올랐다. 베르겐그륀 대령도 기뻐하고 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저 해적은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우스워졌다. 대체 자신은 뭘 그렇게 걱정한 것인가.


  “바로 공격…….”

  “기다려 주십시오. 색적부대에서 공격할 필요는 없다고…….”

  공격명령을 내리려 하는 나에게 오퍼레이터가 곤혹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공격할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냐? 베르겐그륀, 뷔로 두 사람도 곤란하고 있다.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 거냐.”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통신?”

  내가 되묻자 오퍼레이터가 끄덕였다.

  “스크린에 비춥니다. 괜찮겠습니까?”

  “부탁하지.”


  화면에 남성이 나타났다. 발렌슈타인? 어째서 그가? 곤혹스러워 하는 내게 그가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이군요. 키르히아이스 제독.”

  “그렇군요. 오랜만입니다.”

  “수송선단입니다만. 공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나포했습니다.”


  나포……. 과연. 그들 쪽이 수송선단에 가깝다. 정보만이 알아내면 수송선단에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하물며 반란군은 그들을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베르겐그륀 대령이 나를 힐끔 봤다.


  “수고했다. 그럼 우리들이 수송선단을 넘겨받도록 하지.”

  대령의 말에 발렌슈타인은 웃음을 띠웠다.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뭐라고? 그건 무슨 말이냐. 약속을 깨겠단 건가. 해적.”


  베르겐그륀 대령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쿡쿡 웃었다.

  “약속은 지켰습니다. 베르겐그륀 대령. 제대로 수송선단의 정보를 그쪽에 보냈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에 있는 거죠. 아닙니까?”


  저도 모르게 베르겐그륀, 뷔로 두 사람을 돌아봤다. 두 사람도 아연해하고 있다. 확실히 약속은 정보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수송선단을 넘겨주는 게 아니다…….


  “수송선단 정보는 제대로 연락했습니다. 그 뒤엔 빠른 사람이 승자지요.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여러분이 오는 것이 조금 늦었습니다. 우리들이 먼저 도착해서 수송선단을 나포했습니다. 그런 겁니다.”

  “하, 하지만 나포한 물자를 은닉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뷔로 대령이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이번엔 발렌슈타인이 소리 내어 웃었다. 웃지 마라! 네가 웃으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군의 규칙에선 그렇겠죠. 하지만 아까 전에 베르겐그륀 대령도 말했듯이 저희들은 해적입니다?”

  “!”


  “군율따위 관계없습니다. 하물며 저희들은 협력자이며 부하가 아니죠. 명령 받을 의리도 없습니다.”

  “…….”

  베르겐그륀 대령이, 뷔로 대령이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아니면 저희들에게서 나포선을 강탈하겠습니까? 군이 해적의 공적을 뺏는다……. 세상도 말세군요. 군이 해적행위라니.”

  “…….”

  발렌슈타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웃고 있다. 밉살스런 놈이다. 오벨슈타인 참모장보다 더 심하다. 그 웃음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수송선단은 그쪽 것입니다. 협력에 감사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운을 빕니다. 키르히아이스 제독.”

  빙그레 웃으며 발렌슈타인이 내 무운을 빌었다. 오한이 든다……. 너 같은 악당의 기도 따위 받고 싶지 않다. 빨리 여기서 떨어지자…….


...


제국력 487년 10월 14일. 로엔그람 함대 기함, 브륀힐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각 함대가 반란군의 패잔병을 소탕하고 돌아왔다. 브륀힐트 함교에는 함대사령관들이 모이고 있다. 키르히아이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켐프, 메크링거.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승진을 약속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다들 모이겠지.


  반란군은 괴멸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패배를 맛보고 퇴각했다. 보급이 끊긴 뒤, 우리 군의 각개격파에 의해 퇴각한 반란군은 겨우 병력분산의 어리석음을 깨달았겠지. 암리처 성역에 집결, 재반격의 기회를 찾았다.


  제국군은 키르히아이스를 별동대로 하여 반란군의 배후로 돌아 내가 정면에서 공격에 임했다. 별 볼일 없었다. 반란군은 충분한 보급을 받지 못한 거겠지. 제대로 싸운 건 처음 한 순간이고 나머진 무너지듯이 퇴각했다. 키르히아이스가 전장에 도착하기 전에 승패가 정해진 거다.


  양 웬리가 다소 분투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이쪽은 거의 손해도 없이 반란군을 격파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제르론 요새로 철퇴했으면 좋았을 것을. 반란군의 총사령관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정말이지 구제할 길 없는 어리석은 놈들이다.


  대승리였다. 당분간 반란군은 군사행동을 일으키지 못하겠지. 이 정도의 승리를 어은 거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틀림 없을 것이다. 유감이군. 키르히아이스가 암리처에 제때 도착했으면 부사령장관으로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반란군이 약하다면 전군을 이끌고 정면에서 공격해야 했었다. 실패였다…….


  유일하게 맘에 들지 않는 건 그 해적에 대한 것뿐이다. 잔꾀를 부려 수송선단을 강탈하다니……. 뭐 좋다. 약속은 약속이다. 수송선단은 해적에게 주지. 보수로선 그걸로 충분하겠지. 최후의 한 사람, 비텐펠트의 손을 쥔다. 전공을 칭찬하며 승진을 약속하자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승리는 좋다.


  오퍼레이터가 발렌슈타인의 방문을 고한 것은 그 직후였다. 다들 그 해적이 뭘 했는지는 알고 있다.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재밌다. 여기에 오도록 하자. 자신이 얼마나 우리들을 화내게 했는가. 제대로 알려주지. 당연하지만 보수 따위 없다. 해적 놈이. 본때를 보여주지.


...


제국력 487년 10월 14일. 로엔그람 함대 기함, 브륀힐트. 칼스텐 키아.


  뭔가 편하지 않구만. 이 배. 우리들이 평소 타고 있는 순양함과 달리 크고 게다가 다들 무서운 눈으로 나와 두목님을 보고 있다. 혹시 이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해적이란 평판이 나쁜 걸. 흑공주 일가는 나쁜 짓은 하지 않지만, 범죄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걱정스럽지만 두목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괜찮을까? 괜찮, 겠지…….


  “원수 각하. 이번의 대승리. 축하드립니다.”

  “…….”

  뭐야, 이 녀석. 두목님이 축하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않다니. 해적 사회에선 인사도 못하는 놈은 대우도 받지 못한다고. 얼굴만 좋은 허당이구만.


  “반란군은 강했습니까?”

  “별 볼일 없었다. 뭘 위해서 암리처에 결집한 건지.”

  점점 더 싫어졌다. 오만하게 웃으면서. 덧붙여 두목님을 내려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다.


  “그거 다행입니다. 저희들도 협력한 보람이 있군요.”

  “경이 뭘 협력한 건가? 수송선을 강탈했을 뿐이 아닌가.”

  경멸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한 놈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로엔그람 원수도 웃고 있다. 싫은 놈이다.


  두목님은 조금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주변의 웃음 소리가 잠잠해지자 평소대로의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예에. 수송선을 강탈했을 뿐입니다. 두 번 말이죠.”

  다들 이상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로엔그람 원수가 “두 번?”이라고 중얼거렸다.


  두목님이 쿡쿡 웃기 시작했다. 아, 난 이제 몰라. 어떻게 되도 모른다고. 책임 못 진다고. 두목님을 화나게 했어. 너희들. 틀림없이 지옥을 보게 된다.

  “암리처 반란군이 별 볼일 없었던 건 어째서라고 생각합니까?”

  다들 깜짝 놀라고 있다. 로엔그람 원수가 “설마”하고 말하고 있다. 너희들 눈치 채는 게 늦다고.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이제르론 요새에서 암리처로 향하던 수송선 100척, 호위함 40척을 나포했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이 된다고. 금발. 얼굴이 굳었는데?


  “간단했습니다. 먼저 나포한 선단에는 호위선이 있었으니까요. 그걸 써서 아군인 척하여 접근한 겁니다. 별 볼일 없이 나포됐죠.”

  아아, 여기저기에서 신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두목님만이 웃고 있다. 이봐. 아직 끝이 아니라니까? 아직 뒤가 있다고. 각오해. 귀를 틀어 막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진짜.


  “어려웠던 건 그 뒤였습니다. 암리처에선 보급은 아직이냐고 몇 번이나 재촉하니까 말이죠. 조금만 더 기다리라며 다독였던 겁니다. 모두에게 전공을 세우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녀석들, 다들 도망쳤겠죠……. 별 볼일 없는 적이었겠죠? 저는 꽤 친절한 남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칼스텐 키아.”

  “아, 그, 그렇습니다. 두목님은 친절한 두목님입니다.”


  제발 부탁한다구요. 두목님. 어째서 내게 말을 돌리는 겁니까? 거기다가 풀네임으로 부르다니. 지금 꼭지가 나갔어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니까……. 아, 또 신음 소리. 그보다도 신음 소리가 전보다도 더 커졌다. 아니, 그보다도 금발. 몸이 약간 떨리고 있다고. 추운가? 춥겠지. 나도 지금 추워. 부두령. 어째서 와주지 않은 겁니까? 저 혼자선 너무 춥슴다.


  “원수 각하. 흑공주 일가의 공적, 평가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않으면 보수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까요. 이번 싸움에 있어 저희들의 공적은 대체 몇위입니까?”

  아, 다들 굳었다. 잠자코 금발을 보고 있다. 괜찮냐? 금발. 몸이 덜덜 떨리고 있고 얼굴이 새파랗다고. 솔직하게 두목님에게 사과하라고. 그러는 편이 절대 좋다니까?


  “……무훈, 제, 1위…….”

  짜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렇게나 우리들의 공적을 인정하는 게 싫냐? 귀엽지 않구만. 하지만 말이야. 두목님은 그런 건 상관하지 않는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답했다. 무섭지. 나중에 모두에게 알려야.


  “감사합니다. 그럼 보수로서 흑공주 일가 구성원 3만 명에 대하여 한 사람 당 4만 제국 마르크는 어떻습니까? 합계 12억 제국 마르크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12억!”이라는 비명도 들렸다. 뭐야. 불만 있어? 우리들 흑공주 일가의 모토는 말이야.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마구 번다.”라고. 너희들에게 있어선 12억 제국 마르크 따위 돈도 아니잖아? 대승리도 했는데 불만 토하지 말라고. 누구 덕분에 이긴거야?


  “……알았다. 12억이다.”

  금발이 승인하자 다들 침묵했다. 아플 정도의 조용함이구만. 두목님이 계약서를 꺼내어 금발에게 내밀었다. 금발은 뺏어 들 듯이 계약서를 받아들고 끔찍하다는 듯이 사인했다. 그리고 흥하고 콧방귀를 끼는 듯한 느낌으로 두목님에게 계약서를 돌려준다. 감사합니다. 폭리 탐탐, 폭리 탐탐…….


  “헌데, 원수 각하. 한 가지 구입하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만?”

  두목님이 금발에게 말하자 녀석, 노골적으로 수상쩍단 표정을 지었다. 너 말이야. 두목님에게 실례잖아? 이야기 정돈 들으라고. 두목님을 봐라. 너희들이 미운 얼굴을 해도 두목님은 평소대로 대응하고 있잖아. 인간의 격이란 건 말이지, 이런 데에서 드러난다고.


  “이번 수송선을 나포하여 반란군의 병사를 잡았습니다…….”

  “……그걸 사라, 는 건가.”

  “네. 지금이라면 전승 축하 세일로 한 사람 당 5만 제국 마르크로 어떻습니까?”

  또 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되는”이라든가 “무슨 생각이냐”라든가. 너희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보통 아무리 싸도 몸값은 10만 제국 마르크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축하 세일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상대는 인간이라고? 그걸 사라고.”

  금발이 내뱉었다. 얼굴이 일그러져있다. 너도 모르는 구만. 금발. 두목님은 호의로 말하는 거라고. 솔직하게 받아들여.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은 해적입니다. 범선시대부터 해적에 잡힌 포로는 몸값을 받는 것이 전통입니다.”

  “…….”


  “게다가 파는 것은 반란군 병사입니다? 제국인이 아니니까 인신매매 법에도 저촉되지 않습니다.”

  “…….”

  그렇지. 우리들은 해적이라고. 평소엔 하지 않지만 이번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돈이 된다면 기쁘게 하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마구 번다.”다. 아, 두목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교섭실패인가……. 유감이구만. 상대가 바보라면 어쩔 수 없나…….


  “알겠습니다. 유감이군요.”

  “……어쩔 생각인가. 포로를 죽일 건가?”

  금발이여. 너 제국 원수라고 해서 웃기지 말라고. 거절하고 나서 죽일 거냐고? 두목님이니까 그렇지, 다른 두령이었으면 한 대 맞았다고. 너하곤 관계없겠지만.


  “설마. 그런 돈도 안 되는 일은 하지 않아요. 페잔으로 가져가서 반란군에 팔 겁니다. 페잔 상인에게 10퍼센트의 중개료로 중개 받을 겁니다. 최저 한 사람 당 10만 제국 마르크, 중개료로 페잔에 1만 제국 마르크, 우리가 9만 제국 마르크로군요.”

  두목님이 또 쿡쿡 웃었다. 거봐. 화났잖아. 대체 어째서 그렇게 바로 화나게 할까.


  “페잔이라고…….”

  그렇게 아연해하지 말라고. 너, 전쟁은 할 수 있어도 그 이외엔 꽝이구만. 우리 쪽으로 오라고. 두목님 밑에서 1년만 있어도 꽤나 다르다니까.

  “네. 반란군과 직접 교섭하는 건 위험하니까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페잔에 매매를 부탁하는 형태가 됩니다.”


  뭘까? 또 뭔가 소란스럽다.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아. 우리들은 말이야. 너희들처럼 적이라면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적이니까 벌 수 있다. 안 된다면 죽인다.

  “렘샤이트 백작에겐 제대로 말할 겁니다. 원수 각하께 거절 당해서 죽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여 페잔으로 데려왔다고. 렘샤이트 백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라? 금발, 안색이 나쁜데?

  “자칫 잘못하면 페잔 상인이 제국과 반란군을 상대로 저울질을 할지도 모르겠군요. 뭐, 우리는 손해만 없으면 아무래도 좋지만. 기대 됩니다.”

  두목님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산다! 내가 그들을 산다. 한 사람 당 5만 제국 마르크. 축하 세일이었지? 발렌슈타인.”

  어이, 괜찮나? 눈이 올라갔다고? 금발.

  “네. 5만 제국 마르크입니다.”

  “내가 산다!”


  금발의 말에 두목님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계약서를.”

  두목님이 계약서를 꺼내자 금발이 사인했다. 해냈네. 포로는 대충 6천 명. 3억 제국 마르크를 벌었다.


  “그럼 저희들은 이걸로 실례하지요. 키아. 돌아갑니다.”

  “예.”

  “또 용무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다시 만날 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그렇게 말하고 두목님은 우아하게 인사한 뒤 금발 앞에서 물러났다. 멋있지. 두목님. 그건 그렇고 녀석들, 금발도 그렇지만 다른 녀석들도 인사 없냐? 무례하네. 뭐, 녀석들과 함께 일을 하는 일은 일단 없을 테니까. 신경 쓸 필요 없나. 그보다도 오늘 일을 모두에게 알려야지……. 뭐라고 해도 오늘 하루로 15억 제국 마르크를 번 거니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5월 15일. 순양함 버카니어. 칼스텐 키아.


  “여어, 오랜만이구먼. 흑공주.”

  두목님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누군가 생각했더니 바그너의 두령이다. 불뚝 솟아오른 어깨에 커다랗고 험상궂은 얼굴이 올라와 있다. 오른뺨에는 한눈에 띠는 커다란 칼에 베인 상처가 있다. 옛날, 적대하는 조직의 암살자에게 입은 상처라는 소문이다.


  바그너 두령은 척 봐도 해적 같은 풍모의 두령이다. 벌써 50대 후반일 텐데도 생기가 넘쳐흐른다. 부인 외에도 애인이 3명 있다고 들었지만 아무렴 그렇겠지 라는 느낌이다. 분명 올해 2월에 7명 째 자식이 태어났던가……. 여자아이라고 했지.


  “오랜만입니다. 바그너 두령. 언제나 우리 조직에 협력해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두목님이 빙그레 웃으며 인사하자 바그너 두령은 쓰게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화면에 커다랗고 두툼한 손이 휘적휘적 비친다.


  “좀 봐달라고, 흑공주. 감사하단 말을 해야 하는 건 이쪽이다. 네가 그런 소릴 했다간 이쪽 입장이 난처해.”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아니. 진짜라니까. 이건. 이번에도 꽤나 폐를 끼쳤군…….”

  “말도 안 됩니다. 폐를 끼친 건 이쪽이라구요.”


  굉장하네. 두목님. 바그너 두령이 저자세로 나오고 있다. 게다가 표정이 진심이라고. 바그너 일가라고 한다면 우리보다도 격이 높은 조직이다. 이 제국에서도 위에서 세면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겠지. 구역도 브라운슈바이크를 중심으로 리텐하임, 알테나 주변과 제국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 같은 변경이 아니다. 그런 두령이 두목님을 신경 쓰고 있다! 근데 폐라니?


  “어이, 리펜슈타르. 이쪽으로 오라고. 흑공주 두령에게 인사라도 해야지.”

  바그너 두령의 말에 30대 중반의 콧수염을 가지런히 정돈한 남성이 화면에 나왔다. 이 사람이 리펜슈타르인가. 분명 바그너 일가의 넘버 4로 조직의 금고 관리였었지. 굉장하다니까. 바그너 일가의 넘버 4라니. 덧붙여 조직의 금고 관리자. 능력도 있는데다 신뢰도 받고 있는 거다.


  “발렌슈타인 두령.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네요. 리펜슈타르씨. 건강해보여 다행입니다.”

  해적 사회에선 엄격한 규칙이 몇 가지 있다. 그 하나, 두령 이외의 인간은 잘못해도 다른 두령의 면전 앞에서 이명을 불러선 안 된다. 이건 굉장히 무례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바그너 두령은 두목님을 흑공주라고 부르고 있지만 리펜슈타르가 그렇게 불러선 안 된다. 물론 두목님이 없는 장소라면 다르다. 하지만 두목님과 리펜슈타르는 아는 사이였던 건가. 몰랐다. 바그너 일가에게 일을 의뢰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친해진 걸까. 하지만 보통 어떤 조직이라도 자신의 금고 관리자가 다른 두령과 친해지는 걸 싫어할 텐데……. 바그너 두령,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네…….


  “제가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발렌슈타인 두령 덕분입니다. 그때, 두령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 바그너 보스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 뻔 했습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리펜슈타르씨 때문이 아닙니다. 별 수 없었던 겁니다…….”


  규칙 그 둘, 다른 조직의 인간 앞에선 자신의 두령은 이름을 붙여 보스라고 불러야만 한다. 내 경우라면 발렌슈타인 보스다. 하지만 뭔가 굉장한 이야기구만. 우리 두목님이 리펜슈타르를 구했다? 게다가 바그너 두령의 체면을 지켰다는 거? 그야 바그너 두령도 저자세로 나오겠지. 우르만과 루델을 봤지만 두 사람 모두 눈이 점이다. 나도 같은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천동지다.


  “리펜슈타르의 말대로라고. 흑공주. 너에겐 신세만 졌다. 이번도 카스트로프 건도 그랬지. 듬뿍 이득을 보게 됐지. 말을 걸어준 것, 감사하고 있다고.”

  “그거야 말로 감사해야 하는 건 우리 쪽입니다. 매점매석에 도움을 받게 됐으니까 말이죠. 바그너 일가의 협력이 없었다면 잘 되지 않았을 겁니다.”

  “네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쁘구만.”


  두목님의 말에 바그너 두령이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 카스트로프 반란에선 확실히 한몫 챙겼다. 그런 막벌이는 흑공주 일가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페잔 상인이었다면 금년 신밧드 상은 따 논 당상이겠지. 페잔 상인들에게서도 해적들이 너무 벌었다고 비난이 일어났을 정도다. 전설의 상인, 밸런타인 카우프도 두목님 앞에선 어린애라고 말이지. 해적에겐 너무 아깝다고 한다.


  재무상서 카스트로프 공작이 사고사한 직후부터 흑공주 일가와 바그너 일가는 카스트로프 성계, 마린돌프 성계의 특산물을 매점매석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클라인겔트 자작가, 발트하펠 남작가, 뮌처 남작가, 뤼델리츠 백작가의 협력을 받아 특산물을 사들였다.


  거의가 중금속, 경금속, 희소금속의 금속류였지만, 드문드문 천연가스, 냉동 참치도 사들였지. 마린돌프 산의 참치라고 하면 맛있기로 유명하다. 황제폐하의 진상품으로도 되어 있다. 일반 서민에겐 좀처럼 손에 들어오지 않는 물건이다. 나도 먹어본 적은 없다. 변경에서라면 근방의 싼 보덴산 참치가 기껏이다.


  카스트로프 특산물의 대부분은 우리들이서 매점매석했을 것이다. 극히 일부분만을 페잔 상인이 사들였다. 잘 이해할 수 없는 건 마린돌프다. 어째서 거기까지 매점매석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두목님에게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말이야. 아마도 마린돌프 백작이 병인가 뭔가로 남은 목숨이 짧은 걸 거라고 생각했다.


  카스트로프의 특산물의 가격이 올라가고 슬슬 팔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더니, 카스트로프 공작가의 후계자가 뭔가 저지른 것 같아서 반역을 일으켰다. 경악했었지. 재무상서의 후계자가 반역? 덧붙여 카스트로프는 오딘에서 가까우니 큰 소란이 일어났다. 카스트로프의 특산물은 순식간에 폭등했지. 엄청나게 폭등했다고 생각해서 대흥분했지만 두목님은 팔지 않았다.


  토벌군이 조직되면 카스트로프의 반란은 끝나리라 페잔 상인들은 봤던 거겠지. 특산물을 팔아치웠지만 두목님은 팔지 않았다. 시장도 반란이 중결 되리라 봤다. 특산물의 가격은 눈 깜짝한 사이에 하락했다. 우리들도 새파랗게 질린데다가 바그너 두령에게서도 “어떻게 할 거냐.”라며 질문을 받았지만 두목님은 반대로 팔린 특산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나 따윈 두목님, 정신이라도 나간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토벌군이 카스트로프의 반란군에게 패배하자 특산물의 가격은 다시 올라갔다. 덧붙여 카스트로프의 반란군은 마린돌프까지 세력을 확대하려고 했기에 마린돌프의 특산물까지 가격이 급상승했다. 경악했다니까. 두목님이 어째서 마린돌프의 특산물까지 샀는지 그때서야 알았다. “두목님, 쩔어.”라면서 다들 소란을 피웠었다.


  특산물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다들 두목님에게 언제 팔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협력해준 사람들만이 아니야. 페잔 상인이나 내무성 직원들까지 물어왔다. 하지만 두목님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조금만 더”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직원은 “너무 얌체짓은 하지 마라.”고 말했었지.


  두목님이 특산물을 판 것은 키르히아이스 소장이 토벌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직후였다. 또 경악했지. 키르히아이스 소장이라면 계급도 낮고 나이도 젊다. 게다가 병력도 적었다. 이래서야 진압은 실패하리라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나 혼자만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반란은 아직 계속 이어진다고. 그런데도 두목님은 전부 팔아치웠다. 나 따윈 두목님, 이번에야말로 정신이 나갔나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두목님은 옳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키르히아이스 소장은 반란을 진압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10일만에 진압했다. 이것도 경악했다. “두목님, 쩔어.”라고 또 다들 소란을 피웠지. 정말로 쩔었다고. 우리들은 대박이 났고, 두목님은 모두에게 감사를 받았다. 신이 내린 듯한 예측이었다고 다들 상찬을 했지. 나는 두목님에게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지만, 두목님은 웃을뿐 알려주지 않았다. 두목님은 언제나 그렇단 말이지. 웃기만 할뿐이지 알려주질 않아…….


  “헌데 흑공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가? 이제르론이 함락 됐으니 이제 변경이 전장이 될 거다. 일하기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렇군요. 그다지 편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다. 흑공주 일가는 곤란에 빠졌다. 이제르론 요새가 반란군의 손에 떨어졌다……. 앞으론 반란군이 이제르론 회랑에서 공격해 들어온다. 변경이 전쟁터가 된다. 구역이 불안정해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뭐하면 이쪽으로 오는 게 어떤가? 너라면 환영한다고. 네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겠지.”

  “…….”

  에, 그건 무슨 말……. 두목님에게 부하가 되라는 거?

  “카스트로프는 그 반란으로 무법지대가 되어버렸어. 그 주변을 장악하던 녀석들은 반란에 휘말려 몰락하고 말았으니까 말이야. 네가 이끌어주면 이쪽도 다행이지. 오딘 주변이 소란스러운 건 뭐든지 위험하단 말이지. 정부도 시끄러우니까 말이야.”


  과연. 그런 건가. 조금 안심했지만, 정말 그것뿐?

  “감사합니다. 하지만 바그너 두령. 우리는 변경 사람들에게 꽤나 신세를 졌습니다. 지금 와서 내버려두는 건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해나갈 거에요.”

  두목님의 말에 바그너 두령이 크게 두, 세 번 끄덕였다.


  “그런가……. 뭐 별 수 없지. 확실히 세상일엔 의리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야.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라. 네겐 빚이 있어. 언제든지 힘이 되어주지.”

  “감사합니다. 그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목님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바그너 두령이 “어이어이, 그것만은 좀 봐달라고.”라며 소리 높여 웃었다.


  통신이 끊기자 안슐츠 부두령이 두목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카스트로프에서 잔뜩 벌었으니 무장선을 늘리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만.”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보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두목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조금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동의하지 않을 때 두목님의 버릇이다.


  “100척이나 200척 늘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카스트로프에서 다들 잘해줬습니다. 급료 1개월분을 임시보수로 내주세요. 사실은 좀 더 내주고 싶지만 앞이 보이지 않으니. 현금은 어느 정도 남겨두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수속을 취하도록 하죠.”


  해냈다! 급료 1개월분의 임시보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얼굴을 피고 있다. 여기저기서 환성이 올랐다. 두목님이란 이런 데에 신경을 잘 쓴다니까. 이걸로 뤼데리츠 백작령의 안네에게 생일 선물을 줄 수 있다. 분명 6월 말이었었지. 충분히 여유가 있다. 두목님, 감사합니다. 임시보수는 1개월분으로 충분하다구요.


  “그리고 클라인겔트 자작, 발트바펠 남작, 뮌처 남작, 뤼데리츠 백작에게 이후에 대한 것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장소는, 그렇군요. 발트바펠 남작령으로 부탁하고 싶다고.”

  유감. 뤼데리츠 백작령이라면 직접 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별 수 없지. 통신 판매로 부탁할까. 나중에 뭐가 좋을지 봐야지…….


  두목님은 지시를 끝내고 조금 생각할 것이 있다며 방으로 돌아갔다. 두목님이 없다. 찬스로군. 아까 전에 들었던 걸 물어봐야지.

  “부두령.”

  “뭐냐. 키아.”

  “바그너 두령이 카스트로프에 오지 않겠냐고 했었는데. 저거 바그너 일가의 산하로 들어오란 말입니까?”


  내 질문에 안슐츠 부두령은 힐끔하고 시선을 향했다. 윽, 무섭다구요. 부두령. 하지만 신경 쓰인단 말이지. 다른 사람들도 끄덕이고 있다.

  “바그너 일가는 우리와 손을 잡고 크게 벌었겠지. 저기는 오딘과도 가깝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옆에 있어. 바그너 일가는 뭐라해도 눈에 띄기 쉬운 자리다.”

  에, 그러니까. 그거 무슨 의미일까. 잘 모르겠네. 주변에도 곤란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두령이 혀를 찬다. 윽, 그러니까 무섭다니까요.

  “변경 조직과 손을 잡고 한탕 해먹다니 무슨 일이냐. 어째서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그런 목소리가 있다는 거지. 억지에 가깝지만 우리가 카스트로프로 이사하면 그런 목소리도 작아질 거다. 바그너 두령은 우리와도 앞으로 협력하고 싶다고 하는 거다. 뭐, 부하로 만들고 싶다. 그런 마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지.”


  더더욱 모르겠다. 바그너 두령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녀석이란 게 있어? 내 의문을 우르만이 소리 내어 말했다.

  “바그너 두령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녀석이란 게 있습니까? 아니, 있으니까 녀석이라고 말하면 안 되나. 말할 수 있는 분? 그런 사람이 해적 중에 있습니까?”


  “해적이 아니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를 오가는 상인, 귀족, 군인이다. 이권을 노리고 모인 녀석들이 있으니까. 그런 녀석들에게 있어 이번 건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겠지.”

  부두령이야말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데. 혀를 차는 데다가 입이 시옷자로 변했다. 뭐, 분명 귀족이란 게 성가시지. 힘이 있으면 있을수록 이상한 녀석이 붙어온다.


  “그래서 바그너 두령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녀석들, 간단히는 물러나지 않았을 텐데요.”

  우르만의 말대로다. 그런 녀석들은 간단히 물러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 두목님이 해결했다.”

  슬쩍 흘리는 듯한 부두령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목소리가 올랐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부두령을 보고 있다. 나조차 믿을 수 없다.

  “두목님의 지인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이라서 말이야. 두목님이 그 사람에게 부탁해서 녀석들을 물리친 거다.”


  “대단해!”

  내가 크게 외치자 이곳저곳에서 “대단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닥치고 있어! 뭘 떠들고 있냐!”

  부두령이 무서운 눈으로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다. “뭘 떠드는 거냐. 애새끼들이.” 부두령이 이번엔 낮은 목소리로 우리들을 질책했다. 어째서? 두목님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과 아는 사이라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은 말이다. 사관학교에서 두목님과 동기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저쪽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측근, 두목님은 변경성역의 해적……. 두목님에게 있어서 부탁하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말이다. 바그너 두령을 못 본 척 넘어가면 흑공주 일가에도 악역향이 나올 수밖에 없어. 그래서 두목님은 숙이고 싶지 않은 머리까지 숙이면서 부탁한 거다. ……바그너 두령도 그걸 알고 있어. 그래서 저렇게 우리 조직에 신경을 써주는 거다.”

  “…….”


  부두령의 눈이 우리들을 찌릿하고 노려봤다.

  “알았나? 알았으면 뭣도 모르고 떠들지 마! 밖에서 어쩌고저쩌고 말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일이나 해라. 그게 두목님을 위한 거다. 두목님을 상처 입히는 짓은 하지 말라고.”

  다들 잠자코 끄덕였다…….


제국력 487년 9월 5일. 클라인겔트 자작령. 울리히 케슬러.


  “이제 곧 반란군이 이곳으로 옵니다. 군의 명령으로 식료품을 징발하게 되었습니다. 클라인겔트 자작. 군에 협조를 부탁합니다.”

  싫은 역할이다. 감정을 싣지 않고 군의 명령만을 전했다. 아마도 분노, 아니 책망의 목소리를 듣게 되겠지. 힐문을 들을 것이 틀림없다.


  “과연. 역시 그렇습니까.”

  “?”

  “유감스럽지만, 군에 협력은 할 수 없겠군요.”

  역시 반대가 나왔다. 하지만 묘한 느낌이다. 자작은 부드러운 표정을 띠우고 있다.


  “하지만.”

  “케슬러 중장. 그렇게 말했던가요?”

  “예.”

  “유감스럽지만. 이 클라인겔트 자작령의 주민들은 열흘치의 식량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열흘치?”

  “그렇습니다. 열흘치 말입니다. 반란군이 올 때쯤이면 식량은 전혀 없겠군요. 징발할 식량 따위 어디에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냐. 열흘치밖에 식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작은 웃음을 띠우고 있다. 뭔가가 이상하다.


  “클라인겔트만이 아닙니다. 변경성역 주민은 모두 열흘치의 식량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도 안 돼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클라인겔트 자작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실례. 만나주셨으면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만났으면 하는 인물?”

  “예에. 이쪽으로.”

  자작이 먼저 걷기 시작했다. 뒤를 따라 작고 깨끗한 방으로 들어갔다. 선객이 있었다. 몸집이 작고 검은 머리를 한 젊은 남성이다. 이 남자가 만났으면 하는 인물이겠지. 그리고 이 기묘한 사태를 일으킨 인물일 것이다…….


  “클라인겔트 자작. 만났으면 하는 인물이라는 건 이 사람입니까?”

  “예에. 그렇습니다.”

  나와 클라인겔트 자작의 대화를 들어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미울 정도로 침착한 태도다.


  “소개해주시겠습니까? 그를.”

  “에리히 발렌슈타인. 악명 높은 해적조직, 흑공주 일가의 두령입니다.”

  “……흑공주 발렌슈타인…….”

  놀란 나머지 흘린 목소리에 그가 웃음을 띠웠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3월 19일. 순양함 버카니어. 칼스텐 키아.


  “오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이 아스타테 성역 회전 승리에 의해 원수로 승진, 동시에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으로 착임했습니다.”

  정면 스크린에 나타난 남성 아나운서가 무표정하게 로엔그람 백작의 원수 승진을 보도하고 있다. 생기가 없단 말이지. 페잔이었다면 젊은 미인 누님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보도했을 텐데…….


  “대단함다. 20세에 원수라니.”

  “뭐, 황제가 총애하는 아가씨의 동생이니까 말이야. 누님의 치맛바람이지. 키아.”

  “하지만 전쟁에선 이겼다구요. 우르만.”

  “우연이라는 것도 있지.”


  우리들이 말하는 와중, 두목님은 잠자코 코코아를 마시면서 스크린을 보고 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두목님은 참 쿨하단 말이지. 당황한다든가 흥분한다든가 전혀 본적이 없으니까. 스크린에 나온 로엔그람 백작도 대단하지만 두목님도 대단해.


  이 금발씨는 20세인가……. 두목님, 지금은 21세지만, 4월엔 22세였었지. 크게 되는 인간이란 건 젊었을 때부터 어딘가 다르구만. 두목님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어떻게든 보고 배웠으면 한다. 두목은 무리지만 선단장 정도는 되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리게 될지…….


  “두목님, 두목님은 로엔그람 백작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말을 걸자 두목님은 잠자코 나를 봤다. 아, 표정이 없구만. 아무래도 또 그걸 시작할 모양이다. 이제 적당히 두목님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곤란한데…….


  “……칼스텐 키아. 그 두목님이라는 건 그만두세요.”

  “예에.”

  역시 시작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거다.


  “나에 대해선 사령이라고 부르도록.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슴다만……. 우리들, 해적이라구요? 게다가 두목님은 해적 흑공주 일가의 두령임다. 옛날부터 두령은 두목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들의 불문율임다만…….”

  이거, 몇 번째 말하는 걸까. 내가 항의하자 두목님은 애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좀 봐달라고, 두목님. 나야말로 한숨을 내쉬고 싶은 사람이니까.


  나, 나쁘지 않잖아? 하지만 말이야. 두목님은 화사하고 얼굴 생김새가 부드러우니까 말이야. 그런 두목님이 애절하게 한숨을 내쉬면……. 뭔가 내가 엄청 악당 같아서 울고 싶어진다고. 나뿐만이 아니다. 다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제발 좀 봐달라고, 두목님. 우리들, 두목님에 비하면 훨씬 착한 사람들이니까.


  두목님은 지금 한창 잘 나가는 우주해적 ‘흑공주의 두령’이라구요. 이 업계에선 팔팔한 유명인임다. 어디의 두령이라도 두목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자는 없슴다. 저번 총회에서도 제국 안의 해적들이 모였지만, 다들 두목님을 꽤나 신경 쓰던 모습이었지. 우는 아이도 그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두목님을 깔보는 바보는 없슴다. 옛날에 그걸로 아픈 꼴을 당한 바보가 있으니까 말이죠.


  옛날, 두목님을 공주님 같다느니 여자 얼굴이라느니 말한 바보 같은 해적이 있었다. 100척 정도의 무장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영역권에 끼어든다든가, 근역 성역에서 약탈을 반복한다든가, 해적 동료들 중에서도 꼴불견인 놈이었다. 하지만 두목님이 전투로 끌고 들어와 녀석들 전원을 블랙홀 속으로 처넣어버렸다.


  다들 안색이 시퍼렇게 되었지만, 두목님만은 태연했다. “이걸로 우주도 조금은 깨끗해졌겠죠. 음식물 쓰레기는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썩으니까 말이죠…….” 그것이 모든 걸 정리한 뒤의 두목님의 말이었다. 덧붙여 쿡쿡 웃으면서 말이다. 그땐 자칫 잘못했다간 소변을 지릴 뻔했다.


  그 이후로 어떤 영문인지 다른 해적들이 두목님을 “흑공주의 두령”이라고 부르게 됐다. 별명으로 불리는 해적이란 좀처럼 없다. 두목님은 틀림없이 훌륭한 해적이다. 다들 그걸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두목님이라고 부르지 마’라니…….


  보다 못했는지 안슐츠 부두령이 구원선을 보냈다.

  “키아의 말대로입니다. 그야 두목님은 본래 군인이었죠. 사령이라든가 함장이라고 불리고 싶을지도 모릅니다만, 우리들은 해적이란 말입니다. 배를 움직이는 건 선장, 선단을 움직이는 건 선단장, 일가의 두령은 두목님. 여기에 익숙해지시지 않으면……. 다른 조직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겁니다.”


  또 두목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익숙해지도록 하죠. ……전 클라인겔트에 도착하기까지 방에서 쉬겠습니다. 안슐츠 부두령, 뒤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도착 1시간 전까지 돌아오십시오.”

  두목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한다. 우리들은 자세를 바로하고 두목님을 배웅했다.


  “익숙해지겠다고는 해도 말이지…….”

  “아마 또 그만두라고 하겠지…….”

  “저러지만 않으면 좋은 두목님인데…….”

  내가 중얼거리자 안슐츠 부장에게 있는 대로 아구창을 후둘겨 맞았다. 나 혼자가 아니다. 우르만, 루델도 함께 맞았다.


  “개자식들! 저러지만 않으면 이라니 무슨 말버릇이냐! 두목님을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

  “알고 있는 건가. 네놈들.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도 두목님 덕분이라는 걸……. 키아.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안슐츠 부두령이 무서운 눈으로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다. 알고 있다구요. 부두령.

  “알겠나? 두목님이 이 일가에 가담했을 때, 일가는 무장선 100척, 수송선 50척 정도의 작은 세력이었던 거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는 데다가, 다른 녀석들에게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지. 지금은 어떤가? 무장선은 500척, 수송선은 300척을 넘을 정도의 세력이 됐다. 이 제국에서도 흑공주 일가 위에 서는 조직은 발가락까지 쓸 필요도 없어. 양손만으로 충분히 셀 수 있다. 두목님 덕분이다. 알고 있는 건가. 이 자식들아!”


  “알고 있다구요. 부두령. 예전에 비해서 급료도 올랐고, 대우도 좋아졌슴다. 두목님에겐 감사하고 있다구요.”

  “그럼 두목님이 없는 곳에서 험담이나 지껄이지 마라. 의견이 있으면 직접 말해. 두목님은 그런 걸로 화내거나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좀처럼 그런 인물은 없다. 똑똑히 가슴에 새겨두라고.”

  “예.”


  안슐츠 부두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실수로구만. 조금 혀가 미끄러졌다. 부두령 앞에서 “저러지만 않으면”은 괜한 말이었다. 다들 나를 책망하는 눈으로 보고 있다. 불똥이 튀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미안하다고 눈으로 사과했지만, 분명 나중에 한소리 또 듣겠지…….


  “정시연락 시간이 지났군, 키아. 유하임, 니마이어 선단에서 연락은 있었나?”

  “유하임 선단장에게선 이상 없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만, 니마이어 선단장에게선 아직 없습니다.”

  내 대답에 안슐츠 부두령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자식, 무슨 생각이냐. 선단장 주제에 정시연락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두목님 뚜껑이 열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도 하는 짓인가? 웃으면서 블랙홀로 처넣어 버린다고! 키아, 그 바보 자식을 불러라. 흑공주의 두령이 웃기 전에 내가 놈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다!”


  아, 위험하구만. 이거. 엉덩이를 걷어차겠다는 건 안슐츠 부두령의 뚜껑이 열렸을 때의 대사다. 니마이어 선단장, 그 사람 착실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빠졌지. 부두령에게 제대로 욕먹는다고. 하지만 부두령의 말대로 두목님의 뚜껑이 날아가는 것보단 낫지만……. 그로부터 30분, 안슐츠 부두령의 호통 소리와 한결같이 사과하는 니마이어 선단장의 목소리가 순양함 버카니어의 함교에 울렸다.


...


제국력 487년 3월 19일. 클라인겔트 자작령. 에리히 발렌슈타인.


  “오랜만이군. 흑공주 두령.”

  “그 흑공주 두령이라는 건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클라인겔트 자작.”

  내 한숨 섞인 항의에 자작이 즐겁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높였다. 본의가 아니란 말이지. 흑공주라니. 나이를 먹으면 흑노파인가?


  “실례. 오랜만이군. 헤르 발렌슈타인.”

  “정말로 그렇군요. 클라인겔트 자작.”

  “어떤가? 요즘 경기는.”

  “그럭저럭입니다.”

  “그거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들도 그럭저럭 하고 있네.”


  클라인겔트 자작이 유쾌하다는 듯이 웃는다. 나도 소리 내어 웃었다. 이상하지. 해적이 변경 귀족의 저택에 초대되어 차를 마시면서 즐겁게 웃고 있다. 나조차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었겠지. 아니, 지금도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고 있다. 몇 가지의 우연이 없었다면 어딘가에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제국력 482년, 중위로 막 진급했을 때였다. 병참통괄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폭한에게 습격을 당해 죽을 뻔했다. 습격을 한 것은 재무상서 카스트로프 공작의 부하였다. 내 양친을 죽인 것도 카스트로프 공작이라고 말했지. 아마도, 어디 귀족의 상속문제라도 걸려있었던 거겠지. 심야까지 잔업 했기 때문에 귀갓길에 인적도 없었다. 본래라면 거기서 죽었을 터였다…….


  내가 구사일생을 한 것은 마침 거기를 지나가고 있던 노인 덕분이었다. 어째서 나까지 죽이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스트로프 공작이 얽혀 있다면 오딘에 있는 건 위험하다. 겨우 살아난 나는 노인의 배에 타고 오딘을 떠났다. 그 노인의 선대 두령이었다. 두령은 친절하게 내 퇴역신청 같은 걸 전부 처리해줬다.


  멍청한 소리지만 난 생명의 은인이 해적이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퇴역신청을 무난하게 처리해주는 걸 보니 옛날엔 군인이고 지금은 어딘가 기업의 높으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녀석들도 전혀 해적 같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노인이 해적, 그것도 두령이라는 걸 알았을 때엔 마음 깊이 경악했다고. 몇 번이나 되물었을 정도다. 선대는 그때 소리 내어 웃었었지. 나중에 그걸 소재로 몇 번이나 선대에게 놀림을 받았다.


  내가 선대를 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내가 해적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적이라고 하면 선단이나 혹성을 습격하여 약탈하는 범죄자, 파락호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아니, 그런 녀석들도 있지만 기업이나 귀족의 의뢰를 받고 선단 호위나 혹성 경호, 물자 수송을 맡는 해적도 있다.


  다시 말해서 폭력단도 있다면 경비회사, 운송회사도 있다는 거다. 전부 겸업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런 것들 전부 합쳐서 사설 무장집단을 제국정부는 해적이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뭐, 당연하긴 하다. 제국은 그런 무장집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해적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선대는 경비전문이었다.


  “자네들 조직도 꽤나 커졌구먼.”

  “듣고 보니 그렇군요.”

  서로가 차분한 어조였다. 왠지 급속히 나이를 먹은 듯한 기분이다. 이 영감님, 때때로 날 상냥한 눈으로 본단 말이지. 날 아들처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네가 두령이 되고서 4년인가. 대단한 일이다.”

  “……눈 깜짝한 새였죠. 정신을 차리니 4년이 지났습니다.”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영감님에겐 꽤나 신세를 졌다. 아니, 클라인겔트 자작령도 꽤나 번영하고 있다. 서로 마찬가진가……. 자작과 대화를 나눈 뒤엔 피아와 만나 칼과 놀고 나서 저택을 떠났다. 최근엔 칼과 노는 것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다들 날 무서워하니 말이야…….


  내가 조직에 들어갔을 때, 그 당시의 바우어 일가 (선대의 이름이 리하르트 바우어였다)는 극히 작은 조직이었지만 그래도 7천명 정도의 부하가 있었다. 그 7천명을 먹이는 데에 선대는 꽤나 고생했던 것 같다. 큰손이라면 몰라도 약소의 경비회사다. 주변에선 신용이 조금 부족했다. 근거지조차 없었으니 심하다. 가정을 가지는 것도 힘들고 배의 수리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부하들 중에선 불만이 나온다. 조직의 넘버 투가 경비회사를 그만두고 폭력단이 되자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위험은 있지만 지금보다 이득은 나올 테고 어딘가의 조직 밑으로 들어가면 근거지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선대를 도와 어떻게든 소득을 높이려고 했다. 그 대책이 변경성역이었다. 변경에는 제대로 된 수송선을 가지지 못한 귀족이 있다. 거기에 주목했다.


  그들을 위해서 수송선을 움직이고 경비를 행한다. 하나의 귀족만으론 귀족에게 있어서도 조직에게 있어서도 비효율, 낭비다. 몇몇 귀족을 공동으로 계약을 맺는다……. 클라인겔트 자작가, 발트바펠 남작가, 슐처 남작가, 뤼데리츠 백작가가 응했다…….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잘 되었다. 클라인겔트 자작들의 신용도 얻었다. 그걸 보고 다른 변경의 귀족들도 바우어 일가에게 일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조금씩이긴 했지만 조직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넘버 투는 그게 재미없었던 것 같다. 은밀히 쿠데타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놈은 폭력단이 하고 싶었던 거였겠지. 굵고 짧다는 녀석이지. 실제로 짧아졌지만.


  나와 선대는 카운터 쿠데타를 노리고 놈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쿠데타는 실패하고 녀석은 자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대가 그 한달 뒤에 인플루엔자와 폐염으로 죽었다. 한달만 더 기다렸다면 녀석이 뒤를 이었을지도 몰랐다……. 선대는 죽기 직전 “뒤는 발렌슈타인에게”라며 날 후계자로 지명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아무도 납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어떤 반대도 없이 승인됐다. 당황하며 거절하려고 생각했을 때엔 이미 선대는 죽은 뒤였다……. 해적업계에 발을 담그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난 두령이 되었다. 거짓말 같은 진실이다. 이 업계에선 전설이 되었다는 것 같다.


  일가를 잇고 나서 모두를 먹이기 위해서 엉망진창으로 일했다. 수송, 경비는 물론이고 영지 개발에도 협력했다. 나는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쪽 상담도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4가의 영지에 각각 일가의 근거지가 있다. 부하 중에는 영지민과 결혼해서 배에서 내린 사람도 있고 반대로 우주를 동경하여 배에 오른 녀석도 있다. 교류는 극히 활발하다.


  하지만 흑공주 일가(이 이름, 어떻게든 했으면 좋겠는데 업계에선 발렌슈타인 일가라고 해도 통용하지 않는다고…….)가 크게 된 것은 귀족의 생사, 몰락에 관련되어 있는 바가지 상술 덕분이었다. 원작에서도 나온 밸런타인 카우프의 방법을 나도 답습했다.


  반역을 일으키는 귀족의 영지 특산물을 사전에 독점한다. 반역으로 폭등했을 때 판다. 혹은 귀족의 당주가 죽으면 당연하지만 혼란이 일어난다. 특히 후계자가 없으면 장기화 된다. 거기에 올라 타고 이득을 챙긴다. 콜프트 자작, 그림멜스하우젠 자작, 할텐베르크 백작, 헬크스하이머 백작, 베네뮌데 후작부인, 클롭슈토크 후작, 그 외에도 체포 당한 슈테거 남작…….


  그야말로 하이에나로군. 그 중에서도 콜프트 자작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됐다. 거기엔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양쪽에 연이 있는 데니까 말이야. 두 가문이 유산 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나 수습이 되질 않았던 거다. 뭐 나도 거기엔 조금 얽혔었지만, 후계자 후보 사이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의 참혹한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콜프트 자작가는 단절. 그 영지는 제국정부에 반환 됐다.


  단 콜프트 자작령에 있었던 광산 소유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인 한스 폰 콜프트(콜프트 자작의 종형제였다)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도박광이라 빚더미에 앉아 있었지만, 그 빚의 상대라는 것이 내 동업자, 바그너 일가의 넘버 포, 헬무트 리펜슈타르였다.


  리펜슈타르도 이대로 가면 강등되는 데다가 빚도 짊어지게 된다고 곤란해 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한스에게 금품이 될 만한 걸 가지고 오면 교섭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랬더니만 녀석, 무인위성에 있는 광산의 권리권을 가지고 왔다. 경악했지. 제정신이냐고 생각했지만 놈은 빚을 처리하지 않으면 후계자가 될 수 없다고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후계자가 되면 다시 교섭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전당 잡히는 감각이었던 거겠지.


  그런고로 권리서의 수정을 행하여 한스가 콜프트 자작가의 대표로서 광산의 권리를 내게 양도하는 식이 됐다. 그 뒤에서 리펜슈타르에게 가서 빚을 청산했다. 단, 원금만이다. 이자는 리펜슈타르에게 뒤집어 씌웠다. 페널티 없이 끝날 이야기가 아니니까 말이야. 녀석도 거기엔 납득했다. 감사하고 있었지.


  이자는 한스에게 넘겼다. 후계자 싸움이 치열해졌으니 다소 군자금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거다. 녀석도 기뻐했지만, 일주일 뒤에 죽었다. 그 외에도 빚이 있었던 것 같아서 그게 원인으로 살해당한 것 같다. 리펜슈타르에게 돈을 갚고서 나에겐 왜 갚지 않는 거냐. 그런 일이었던 것 같다.


  후에 콜프트 자작 친족에게서 내가 광산 권리서를 훔쳤다고 경찰에게 신고가 있었다. 경찰이 사정청취를 위해서 왔지만, 권리서는 한스가 콜프트 자작가의 대표로서 양도했던 거다. 수속에 문제는 없다. 친족은 한스가 멋대로 가져갔으니 무효라고 우겼다. 정말이지 그 말대로지만 딱 거절했다. 한스에게 수속을 맡겼기에 이제와선 모른다고 해서 말이야.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악덕이 다 되었군…….


  그러는 사이에 너무 심한 후계자 싸움에 정부는 실증이 나서 콜프트 자작가는 단절이라는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해 친족은 청구권을 잃은 것이다. 당연하지만 내게 대한 고소도 사라졌다. 광산은 내 것이 되어 안정된 이득을 내고 있다. 광산 경비는 바그너 일가에게 부탁했다.


  우리는 변경이 홈이니까 말이야. 자기 쪽에서 경비를 내보내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싸게 먹히고, 광산을 습격하면 우리와 바그너 일가 양쪽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안전 면에도 효과가 크다. 바그너 일가의 두령인 아돌프 바그너에게서 꽤나 감사를 받았다. 조직 손실은 경감되었고 새로운 일도 들어왔다.


  “흑공주의 두령도 꽤나 인물이다.” 바그너의 나에 대한 평가다. 바그너의 견해에 의하면 나는 한스를 잘 이용하고 속여먹어 광산의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필요 없어진 한스를 다른 사람을 부채질하여 처리한 냉혹비정한 대악당이라는 것 같다. 굉장하게도 나는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어 콜프트 자작가를 단절까지 몰고간 장본인이라는 것 같다.


  심한 오해지. 하지만 업계 녀석들은 다들 그걸 믿고 있다. 내 부하조차 믿는 면이 있다. 부두령의 안슐츠는 내게 진지한 얼굴로 “두목님, 우리들의 모르는 데에서 수를 쓰신 겁니까.”라고 질문하는 꼴이다. 바보 같아서 할 말을 잃고 있자 “그렇습니까. 물어선 안되는 일이었군요.”라고 말한다. 영문을 모르겠어.


  제국정부 내무성의 발표에 의하면 흑공주 일가는 광역지정 해적집단으로 지정되어있다. 광역지정 해적집단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이하의 3항목의 어딘가에 해당하고 복수의 성역에 있어 활동을 하고 있는 해적집단을 광역지정 해적집단이라 부른다.

  - 해적이 그 해적의 위력을 이용하여 생계의 유지, 재산의 형성 또는 사업의 수행을 위한 자금 수확을 쉽게 하고 있는 단체일 것.

  - 해적의 간부 또는 소속구성원 중에 약탈, 살인 등 해적특유의 범죄 전과를 가진 자가 일정 비율 이상 소속되어 있을 것.

  - 그 해적 조직을 대표하는 자, 또는 그 운영을 지배하는 지위에 있는 자의 통제 하에 계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체일 것.


  뭔가 어디선가 본 듯한 문언이지. 인간이 생각하는 건 다 거기에서 거기란 거겠지. 하지만 우리가 해당하는 건 마지막 항목뿐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어떤 기업이라도 계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도 우리는 광역지정 해적집단이라고 한다. 뭐, 조금 하는 짓이 야비한 부분이 있었으니 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페잔의 등급 평가 회사에 의하면 우리 일가는 제국에서도 9번째로 큰 해적조직이라고 한다. 소유 함정은 무장선 500척, 수송선 300척. 무장선은 순양함, 구축함, 경항모가 전력의 중심이다. 흑공주 일가에 대한 평가는 지적 무투파. 가능한 한 범죄는 피하며 합법적인 이득추구를 노린다. 고 되어 있다. 특질은 귀족의 생사, 몰락에 극히 민감하고 그걸 이용한 경제활동에 굉장히 열심히라는 것. 페잔의 상인들 사이에선 “흑공주가 움직일 때 귀족이 죽는다. 흑공주는 죽음의 사자.”라는 것 같다.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 말대로다…….


  슬슬 카스트로프 반란이로군……. 엄마와 아빠의 원수는 키르히아이스가 갚도록 놔둔다. 난 조직을 위해서 야비한 술수로 돈을 벌어야……. 뭐라 해도 흑공주 일가는 구성원이 3만 명 이상 있다. 가족을 넣으면 그 두 배 가까이 되겠지. 탐욕적으로 나가야…….


  카스트로프와 마린돌프의 특산물을 독점하자. 거긴 오딘에서 가까우니까 물건 부족 영향은 클 것이다. 일단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게 독점에 나서야만…….

Posted by 추리닝백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