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알았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 대신 나도 하나 부탁이 있는데. 이오리군, 내 망상에 협력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없었던 일로 해주지 않겠어?”

  모처럼 생긴 동료지만, 모모카씨의 역하렘 멤버이기도 하고, 이 만화 세계의 주요등장인물이기도 한 ‘이오리 야마토’군의 손을 빌릴 수는 없다.


  안경을 쓰고 흑발 스트레이트라서 엑스트라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겉모습에 속아버렸다.

  소라군이 은발에, 키리오군이 금발이니까, 다음은 적발이나 청발, 혹은 레인보우의 기묘한 머리색이 올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흑발로 원점회귀할 줄이야.


  “어째서입니까? 협력은 할 겁니다. 학생회장과 귀국자녀와 아이돌을 일단 당신에게 붙인 다음에, 당신을 차게 만들면 되는 거지? 너, 얼굴은 귀여우니까 평범하게 고백해 버리라고. 십중팔구 오케이해 줄 테니까. 글고, 그 뒤에 내가 가서 ‘내 여친에게 손대지 말라고!’라며 한 방 때려눕히고 헤어지게 만들면 그걸로 끝이지?입니다.”


  잠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너……, 문제 일으키면 퇴학당할 거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아! 그, 그랬지 참……! 학생회장이라도 때렸다간 문제가 될 게 뻔하잖아.”

  “누굴 때려도 문제는 문제야!”


  “위험해. 나, 기본적으로 성장환경이 나쁘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때리고 보자는 생각을 하고 말아……! 사쿠라코씨. 혹시 내가 싸움이라도 했다간 말리세요. 부탁합니다.”

  “그 정도라면 맡겨줘. 힘내서 말릴테니까.”


  이오리군에게 무척 맛있는 탕수육을 받았으니까.

  싸움을 말리는 정도는 해야겠지.


  불량군들의 등장으로 중단된 식사를 재개한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탕수육을 먹고 야키소바빵도 평정한 뒤, 나는 이오리군과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키리오군의 주변엔 여학생들이 무리지어 모여있었다. 모모카씨도 또한 즐겁게 반 친구들과 대화중.

  평화로운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가능하면 모모카씨와 키리오군이서 즐겁게 대화하고 있어줬으면 하지만, 사치스러운 말은 할 수 없다.


  “아, 어서와. 그림자 캡짱.”

  “어서와아.”

  교실에 들어가자 숏컷에 눈매가 늘어진 차색머리의 여학생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주변에 앉은 애도 즐겁다는 듯이 인사한다.


  “다, 다녀왔어……!”

  역시 내가 악역이라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구나……!

  기뻐서 저도 모르게 눈이 빛나고 만다.


  “어이, 반짝반짝하지 말라고. 평범하게 바보 취급 당하고 있으니까, 너.”

  이오리군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악역 따위, 바보 취급당해도 싼걸.


  나는 재빨리 이 사명을 해결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다.

  빨리 하지 않으면 아빠와 엄마의 기일이 지나고 만다.


  “그치.”

  “응, 확실히.”


  나도 모르게 멈춰 선 내 앞에서, 여학생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끄덕였다.

  “이오리군, 이거 벗어봐.”

  숏컷을 한 애가 이오리군이 답하기도 전에 안경을 뺏는다.


  “아, 저기.”

  날카롭게 찢어진 눈이 겉으로 드러난다. 눈은 삼백안이고 불량군들을 노려볼 때에 보인 박력은 엄청났지만, 보통 때엔 눈매가 조금 나쁠 뿐인 착한 사람으로 보인다. 눈이 크고, 짧긴 하지만 밀도가 높은 속눈썹 때문에, 바싹하고 눈 주변에 테두리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어중간하게 험한 얼굴이니까,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여 큰일을 겪은 거겠지.

  겉보기가 완전히 야쿠자였다면, 오히려 그런 식으로 얽히는 일은 적었으리라 생각하고.


  “역시, 이오리군은 안경이 없는 편이 좋아.”

  “안경 캐릭터가 아니라는 느낌이고. 렌즈로 하는 편이 좋다니까. 아까워.”

  “안경 돌려주세요.”


  이오리군이 미간을 찌푸린다. 왠지 모르게 엄청 믿음직스럽지 못한 얼굴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겠지.

  때려서 돌려 받을 수도 없고 말이야.


  헌데 이 여학생, 이오리군이 실은 선배 불량배들에게 경어로 인사를 받을 정도의 본격파 불량이라는 걸 알았다간 허리가 빠지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렌즈로 하라니까.”

  장난 치는 여자의 손에서 나는 안경을 뺏었다.


  “네, 안경 몰수.”

  “아.”

  “남의 물건을 뺏으면 안 된다고.”

  “아아, 방해하지 말라니깐.”

  “나는 그림자 캡짱이니까. 귀여운 여자아이를 방해하는 것이 사명인 것이다.”

  “뭐야 그거 진짜 짱나. 내가 사쿠라코를 괴롭혀 버릴까~”


  허리까지 내려와서 거치적 거릴 정도로 긴 내 머리카락을, 숏컷 여자가 당긴다.

  “아우.”

  가볍게 당긴 것일 뿐이지만, 머리카락을 잡히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기에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고 만다.


  “어이, “스톱!” “그만둬.””

  이오리군과 나와――모모카씨의 목소리가 겹쳤다.

  이오리군이 여자의 손을 강하게 때려서 떨구려는 기세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당황하며 내가 막는다. 그 사이에 모모카씨가 찰싹하고 가볍게 숏컷 여자의 손을 때렸다.


  “사쿠라코를 괴롭히면 안 돼. 사쿠라코를 괴롭혀도 좋은 건 나뿐이니까.”

  모모카씨가 내 어깨에 손을 대고 머리 위에 턱을 올렸다.

  그 상태로 딱딱 이빨을 울리는 거니까, 턱이 머리를 때려서 정수리가 은근히 아프다.

  이빨이 울릴 때마다 “아우, 아우.”하고 바다사자처럼 울고 만다.


  “그게, 사쿠라코가…….”

  “남의 안경을 뺏은 쪽이 나빠. 쿠몬씨도 내가 쿠몬씨의 눈을 뭉개버리면 곤란하겠지? 안경을 쓴 사람에게 안경을 뺏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거, 곤란하단 수준이 아닌데…….”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눈높이까지 올리고, 빙글빙글 돌리는 모모카씨에게 숏컷 여자――쿠몬씨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마침 그 때, 수업종이 울렸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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