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7년 12월 25일. 이제르론 요새. 양 웬리.


  조인식이 끝나고 난 뒤, 발렌슈타인 원수를 응접실로 초대했다. 응접실에는 카젤느 선배와 그린힐 대위가 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겠지. 나에겐 홍차, 발렌슈타인 원수에겐 코코아, 메크링거 제독과 카젤느 선배에겐 커피.


  응접실에선 지구의 건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메크링거 제독과 함께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 그 뒤에는 제국의 호위병과 로젠리터가 붙었다. 제국의 호위병과 로젠리터는 서로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런이런.


  발렌슈타인 원수와 만나는 건 제 6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이래다. 그로부터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땐 굉장히 상태가 나빠보였지만, 오늘은 온화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저도 모르게 뭔가 말을 걸려고 해서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속지마라. 이 남자의 두려움을 잊어선 안 된다. “호각의 병력으로 싸우지 마라. 양 제독과 싸우려면 세 배의 병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제국군 지휘관을 상대로 3분의 1의 병력으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호각의 병력이라도 이기는 건 쉽지 않겠지……. 그런데 세 배의 병력을 준비하라고 한다. 상냥해 보이는 외견으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기기 위해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냉혹하며 틈을 보이지 않는 사내……. 그것이 에리히 발렌슈타인이다. 방심할 순 없다.


  응접실에 들어가자 거기엔 카젤느 선배만이 아니라 쇤코프 준장도 있었다. 이쪽을 보고 히쭉하고 대담한 웃음을 보였다. 카젤느 선배가 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쇤코프. 부탁이니까 안에서 소란은 피우지 말아달라고. 밖에 있는 호위들도다. 지금쯤 문 밖에서 서로 노려보고 있겠지.


  카젤느 선배와 쇤코프가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인사를 하고 적당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카젤느 선배에게 흥미를 가진 듯하다. 카젤느 선배에게 “저도 후방지원을 전공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카젤느 선배와 원수의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됐다. 보급이야말로 전쟁의 기본이라고 두 사람이 말하고 있다. 메크린거 제독이 “각하의 지론이군요.”라고 말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양 제독. 포로교환이 무사히 끝나서 안심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내게 말을 건 것은 카젤느 선배와의 대화가 끝난 뒤였다.


  “헌데, 예의 건. 동맹정부에게는 전하셨습니까?”

  “확실하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나와 원수의 대화에 모두가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원수 각하의 추론대로, 동맹정부가 페잔의 성립에 관여했던 건 틀림없다고 합니다.”

  “!”

  모두의 의심쩍은 표정이 경악으로 변했다. 무리도 아니다. 페잔의 성립에 동맹이 관여하고 있다니. 지금까지 누구도 주장한 적 없는 설이다. 침착한 건 나와 원수뿐이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만일을 위해서 확인한다는 듯이 질문했다.

  “그건 동맹정부가 인정한다는 겁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카젤느 선배와 쇤코프가 질문하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메크링거 제독도 마찬가지다.


  “과연. 그래서 지구에 대해선 어떻습니까?”

  “거기에 대해선 확증을 잡지 못했습니다.”

  “잡지 못했습니까…….”

  발렌슈타인 원수가 중얼거렸다. 조금 표정이 그늘졌다. 아무래도 이쪽의 조사에 꽤나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에게도.”

  카젤느 선배가 말을 걸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오른손을 들어 끊었다.

  “카젤느 소장, 쇤코프 준장. 이야기를 시작하면 길어집니다. 상세한 건 나중에 양 제독에게서 들어주시겠습니까? 메크링거 제독에겐 제가 말합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고 끄덕였다. 그걸 보고 발렌슈타인 원수가 “면목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세 사람이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지구의 관여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렇다면 동맹정부의 협력은 어렵다. 그런 겁니까?”

  “지금 시점에선 그렇습니다. 지구교는 주전파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범죄라곤 할 수 없습니다.”

  내 대답에 발렌슈타인 원수는 말없이 끄덕였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주전파와 친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전에는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 건에서 의장이 지구교를 감싸는 일은 없습니다. 각하의 추론이 올바르다면, 이번 건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의장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이쪽의 말에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트류니히트의 변호를 하다니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샌포드 전직 의장 같은 페잔의 괴뢰에 비하면 몇 천배나 낫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의 트류니히트는 협력하는 데에 인색하진 않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이쪽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구는 제국령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지구를 조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 시점에선 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군요. 동맹정부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지구를 조사해보죠. 결과는 그쪽에게도 전하겠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한숨 섞어 답했다. 지구의 조사에 그다지 마음이 가질 않는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해선 이걸로 괜찮겠지. 일단 볼은 제국으로 던졌다. 나머진 어떤 볼이 돌아올지다.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거겠지. 카젤느 선배가 입을 열었다.

  “제국에선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직 시작한 참입니다만, 동맹 분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힘내고 있습니다.”


  원수의 어조는 온화했다. “동맹 분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조도 그렇고 표현도 그렇고,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화평을 바라고 있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망명자에게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제국은 동맹을 정복하기 위해서 개혁을 행하고 있다는 게 된다. 과연 진실인가. 망명자의 반제국감정을 부채질하기 거짓말이라는 가능성도 있겠지. 확인해야만 한다.


  “동맹과 제국 사이에서 화평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발렌슈타인 원수.”

  어떻게 답할까……. 가능하다고 답할까. 아니면 얼버무릴까……. 모두가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시선을 향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양 제독.”

  “…….”

  역시 얼버무리나…….

  “전 우주는 제국의 손으로 통일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는 동맹의 존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망명자들의 정보는 진실이었다. 응접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카젤느 선배와 쇤코프는 강한 시선으로 발렌슈타인 원수를 보고 있다. 그리고 메크링거 제독은 그런 두 사람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양 제독. 전 이 우주에서 전쟁을 없애고 싶습니다.”

  맑은 눈이었다. 의욕도 야심도 없다. 정말로 마음 깊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혹시 원수가 야심 때문에 통일을 바란다면 반발심을 가졌겠지.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겐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화평으로도 그게 가능하지 않습니까?”

  발렌슈타인 원수가 쓴웃음을 띠웠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맹시민의 대부분의 반제국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화평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합니까?”


  받아들일까?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제국이 변했다는 걸 시민이 인정하면 화평은 가능할 것이다. 눈앞의 남자가 그걸 인정하면 동맹은 존속할 수 있다. 쓸데없는 피를 흘리지 않고 말이다.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국이 변했다고 동맹시민이 이해할 수 있으면, 불가능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또 쓴웃음을 띠웠다.


  “시간이 지나면 동맹은 국력을 회복합니다. 그때 그들이 ‘샨타우 성역의 원수를 갚아라.’라고 외치지 않겠습니까? 또 전쟁이 일어납니다. 양 제독. 국력이 떨어지면 화평을, 충실하면 전쟁을, 괜히 더 전쟁이 길어질 뿐입니다.”

  “……인간이 거기까지 어리석다고 전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150년간이나 전쟁하고 있는데 말입니까?”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150년이나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다. 동맹과 제국 사이의 증오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거대할지도 모른다. 아니, 거대하겠지. 동맹시민을 모른다. 트류니히트에게 그렇게 들었던 게 생각났다.


  “양 제독. 전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1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제가 한 일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니 그 희생을 쓸모없는 것으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얼거리는 듯한 어조였다. 마음은 알겠다. 나도 몇 번이나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주를 통일한다. 우주에서 전쟁을 없앤다. 그러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귀족을 처리했습니다. 로엔그람 백작도 잘라버렸습니다…….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겁니다.”

  “…….”


  답할 수가 없었다. 우주를 통일하기 위해서, 우주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 발렌슈타인 원수는 피를 흘려왔다. 난 어떨까. 어딘가 도망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한 뒤, 퇴역하려고 했다. 그때 사실은 화평을 위해서 뭔가 해야하지 않았을까. 정치가의 일이라고 어딘가 도망치고 있지 않았을까?


  “메크링거 제독. 슬슬 실례할까요. 너무 오래있으면 모두 걱정합니다.”

  “그러는 게 좋으리라 소관도 생각합니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메크링거 제독의 말에 끄덕이고 “잘 마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크링거 제독이 뒤를 따른다. 카젤느 선배와 쇤코프도 막으려 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응접실을 나가기 직전, 발렌슈타인 원수는 이쪽으로 돌아섰다.

  “양 제독. 자유행성동맹을,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으면 절 쓰러뜨리세요. 단, 절 쓰러뜨린 뒤 당신이 뭘 얻을지……. 아마도 동맹을 지킨 영웅의 이름과 전쟁이 격화된 우주겠죠. 기대되는 군요…….”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 원수는 응접실을 나갔다. 배웅해야겠지. 하지만 난 그의 뒤를 쫓지 못했다. 그가 말한 말의 무게에 움직일 수 없었다. 동맹을,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가가 전쟁이라고 한다면, 난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평화를 구해야하는가. 동맹을, 민주주의를 지켜야하는가…….


...


제국력 488년 12월 2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이제르론 요새가 조금씩 멀어져간다. 요새에 있었던 건 불과 2시간 정도겠지. 사인을 하나 했을 뿐이지만, 이걸로 2백만이라는 포로가 제국으로 돌아온다. 나머진 군무성에게 맡겨두면 포로가 돌아오겠지.


  양과 교환한 펜을 손에 쥐고 봤다. 좋은 물건일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각하. 그 펜에 무슨 문제라도?”

  발레리가 물었다. 그녀는 이번에 총기함 로키 안에서 빈집 지키기였다. 역시 동맹군 앞에서 데리고 걸을 순 없으니까 말이야. 뤼네부르크는 오딘이다. 장갑척탄병총감이 전쟁도 아닌데 세 달이나 일을 버려두고 산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발레리에게 펜을 넘기고 이번 포로교환의 조인식에서 양과 교환했다고 했다. 그녀는 펜을 받아들고 지긋이 보고 있다. 그리고 내게 펜을 돌려주고 “싼 물건이네요.”라고 말했다. 뭐, 양이니까. 그렇겠지. 내가 넘긴 펜도 그렇게 좋은 물건이 아니다. 피장파장인가…….


  동맹은 의외로 정부와 군부의 연계가 좋은 것 같다. 전부터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번 건으로 그게 확실해졌다. 덧붙여 양이 트류니히트를 감쌌다. 처음엔 무슨 농담인가 생각했지만, 양이 한 말이 맞다면 트류니히트는 주전파에서 떨어져 나왔다. 다시 말해, 트류니히트에겐 주전파 이외의 믿음직한 아군이 있다는 거다. 양을 포함한 현재의 군 상층부겠지. 성가신 이야기다.


  페잔 성립에는 역시 동맹이 관여하고 있었나……. 그것도 동맹 측에 그 증거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구의 관여에 대해선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뭐, 그렇게 간단하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단 동맹이 이쪽의 이야기에 응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지구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기만 하면 동맹의 협력을 얻는 건 어렵지 않다.


  지구에 사람을 파견하도록 안스바하에게 부탁해볼까…….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 세뇌라든가 사이옥신 마약이라든가. 영문도 모를 짓을 하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미라를 잡으러 간 사람이 미라가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


  지구교도 중에 사이옥신 마약의 상습자가 없을까? 거기서 교단 내부로 강제수사를 들어간다. 표면적으론 어디까지나 포로 용의가 아니라 약물 조사다. 사이옥신 마약 근절은 이전부터 제국에서 엄하게 임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구교에 의혹이 있다면 강제수사는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안스바하와 페르너에게 상담해보자.


  양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했던 말을. 민주주의를 제일로 생각할까. 아니면 평화를 제일로 생각할까……. 내 입장에서 보자면 민주주의에 집착하는 양을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지만, 양에게 있어선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주의주장 따위 살아가기 위한 방침, 그렇게 구별하면 양도 살아가는 게 편해질 텐데…….


  만나봐서 다행이다. 생각대로의 인물이었다. 군인으로는 보이지 않고, 온화하고 총명하며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다. 속일 생각은 없었지만, 저쪽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와는 싸우고 싶지 않네. 강적이니까가 아니라 전쟁은 하고 싶지 않다.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상대다.


  이제부터 변경성역 시찰로 향해야만 한다. 특히 귀족의 사유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성가신 일이지만 리히터나 브라케에게 부탁받았고, 리히텐라데 후작도 변경성역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딘에 도착하는 건 2월 중순에서 하순이 되겠지. 유스티나를 외롭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돌아가면 결혼식이다. 늙은이 녀석들이 또 성가시게 굴 테고, 함대사령관들도 소란이겠지. 이런이런.


  헌데, 그럼 메크링거에게 예의 건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놀라겠지. 쉽게 믿어주진 않겠지만, 오딘까지는 한 달 이상 걸린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있겠지. 입을 막아둘 필요도 있겠군. 뭐, 입을 막아도 클레멘츠와 케슬러에겐 전하겠지. 이 녀석들 묘하게 연대가 강하니까 말이야. 곤란한 일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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