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이른 아침, 졸려서 멍한 길을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학교로 나아간다.

  신 선배와 야마토군만으론 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와 모모카씨, 소라군도 일찍 등교하여 학생회 업무를 돕게 된 것이다.

  키리오군만은 예능 활동이 바빠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하고 있기에 나의 부장 권한으로 면제했다.

  무리해서 몸을 망쳤다간 큰일이니까 말이야. 일과 공부가 최우선이야.


  오늘 업무는 소풍에 대해서다.

  이 학교는 1학년과 2학년의 합동 소풍이 있다.

  목적지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화앵산과 유원지, 동물원 세 장소. 반 다수결로 행선지를 결정하고 버스로 목적지까지 향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화앵산이다. 다함께 바비큐를 할 수 있다면 즐거울 것이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을 테니까.

  다수결 결과 유원지와 한 표차로 우리 반은 화앵산에 갈 것으로 결정 됐다. 소라군의 1반도 또한 화앵산이다.


  신 선배의 반은 동물원이었다. 단 신 선배는 학생회장이기에 교장선생이나 교감선생과 함께 3개 장소를 순회할 예정이 짜여있다.

  반 친구들과도 놀 수 없다니, 학생회장이란 큰일이네…….


  예비종이 울림과 동시에 일을 중단하고 서둘러 학생회실을 나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간다.

  나, 모모카씨, 도중에 일에 참가해준 키리오군, 학생회 부회장 야마토군 네 사람은 1학년 2반 교실로, 소라군은 1반으로다.

  “아, 좋은 아침. 야마토군.”

  “좋은 아침입니다.”

  교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은 야마토군이 우노군과 인사를 나눈다.

  야마토군은 신 선배에게서 받은 ‘원숭이라도 알 수 있는 경어독본’으로 공부한 덕분인지 교실 안에선 완벽한 경어를 쓰고 있다.

  출석번호가 가장 뒤인 우노 쇼타군(신장 153cm에 목소리가 작은 안경 남자)이라는 친구도 생겨서 야마토군이 바라던 성실하고 얌전한 학생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다. 모모카씨가 지적했듯이 경어이기에 괜히 더 눈에 뜬다는 건 비밀이지만 말이야.


  “안녀엉, 키리오구운!”

  “안녕.”

  키리오군은 여전히 교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다. 여학생 중에는 쿠몬씨도 섞여 있어서 교차한 팔을 키리오군 책상 위에 올리고 즐겁게 말을 하고 있다. 여학생만이 아니라 교복을 개조하고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피어스를 달고 있는 화려한 남학생들도 모여서 뭔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모모카씨도 앞자리 여학생과 대화를 시작하고――――.


  헉!!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눈치 채고 말았다.


  나, 친구가 없어!!!


  입학식 날, 배가 너무 고파 쓰러져서 자기소개도 못했으니까 반 친구들과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했다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곤 모모카씨밖에 없잖아! 나(악역)의 가장 친한 친구가 모모카씨(히로인)이라니……!

  이건 큰일이다. 제대로 친구를 만들어서, 적어도 교실 안에서라도 모모카씨와 행동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면.

  이대로 가면 체육 시간에 ‘두 명이서 짝을 지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간 모모카씨와 짝지을 수밖에 없어……. 그건 둘째치고 모모카씨가 없으면 외톨이다! 나, 여자친구, 만들어야……!!


  “저기, 야쿠오지씨.”


  내 한자리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성이 희안한 여학생, 야쿠오지씨다.

  사요코씨와 닮은 보브숏의 흑발을 하고 있고, 눈이 가려질 정도로 앞머리를 길게 하고 있다. 언제나 혼자고 다른 여학생과 함께 있지 않으니 딱 좋아! 아무리 지금의 내가 여자라곤 해도, 많은 여자들과 대화하는 건 긴장하니까 말이야.


  “……왜?”

  야쿠오지씨는 어깨 너머로 고개만을 돌려 대답을 했다.


  “자리가 가까운데 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 야쿠오지씨는 어디에서 등교하고 있어? 나, 오우사키인데.”

  “……카노사키에서.”

  “카노사키? 그거, 어디에 있어? 지리 잘 몰라서 전혀 모르겠다니까.”

  “……전철로 2시간.”

  “에!? 그렇게 멀리서 다니는 거야!? 등교 고생하겠네.”

  “……별로.”


  선생님이 들어오기까지 불과 2, 3분간, 야쿠오지씨와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친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진짜 여자아이가 아니니까 대화의 맥이 다른 거겠지.


  언제나 마찬가지로 체육복 차림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칠판에 커다랗게 ‘소풍에 대해서’라고 썼다.


  “오늘은 소풍에서 함께 다닐 반을 정하도록 하자. 기본적으로 남자 세 명, 여자 세 명이다. 사람 수가 맞지 않으면 남녀 수는 달라져도 상관없지……만, 철판 수가 정해져 있으니까 한 반의 사람 수는 여섯 명이야. 시간은 10분 이내로. 정하지 못한 녀석들은 선생님이 맘대로 반을 짤 테니까 다들, 힘내라!”


  힘내라 라니, 뭘 힘내면 되는 걸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가. 이 기회에 야쿠오지씨와 친해지자!

  “저기, 야쿠오지씨. 함께 반을 짜지 않을래?”

  모모카씨의 초청을 받기 전에 서둘러 야쿠오지씨의 등을 두드린다.

  “……상관 없는데.”

  좋아. OK를 받았어.


  나머지 한 명, 함께 행동할 여자가 있으면 꼭 동료로――라고 생각하며 교실을 둘러보는 나에게 모모카씨가 속 시원하게 고했다.

  “그럼 나와 사쿠라코와 야쿠오지씨네. 딱 세 명!”

  그, 그렇겠지요…….

  뭐, 거절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모카씨와 떨어지는 건 포기합니다.

  “사쿠라코씨, 모모카씨, 괜찮다면 우리들과 함께 반 꾸리지 않겠습니까?”

  야마토군이 우노군을 데리고, 조용하고 얌전하게 제안한다.

  물론 대환영이다. 모모카씨는 요리를 잘 하니까, 이 소풍을 계기로 좀 더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식당 아들인 야마토군이 모모카씨의 식칼부림에 반한다든가!

  좋아. 남은 한 사람은 물론 역하렘군들 중 한 명인 키리오군밖에 없다.


  키리오군은 여러 반에서 초청을 받아서 곤란하고 있다.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쉽게 무시할 순 없는 거겠지.

  아이돌은 꿈을 파는 직업이다.

  차가운 말 한 마디, 차가운 거동 하나가 팬을 환멸하게 만든다.

  키리오군은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서 조차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도록 행동이 제약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레이센인 사쿠라코의 ‘그 일에 대해서 밝혀도 괜찮아?’라는 뻔히 보이는 협박에 걸릴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고. 솔직히 말해서 나 같은 일반 시민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생이야.


  하지만!


  악역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장인 나의 명령은 최우선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 이런 곳에서 보좌부의 권력이 도움이 될 줄은! 신 선배의 착각이 발단이라고 해도 보좌부 부장이 되어서 다행이야.


  “키리오군.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학생회 보좌부 부장의 명령이야!!”

  딱하고 손가락을 향하며 키리오군에게 명령한다.


  “――응.”

  키리오군은 초청하고 있던 반 친구들에게 야유를 받으면서도 우리들 반으로 들어왔다. 물론 옆에서 키리오군을 뺏은 나에게도 무지막지한 야유가 날아왔지만, 그림자 캡짱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방해하는 것이 사명이니까 말이야. 뭐라고 해도 좋아.

  이걸로 6명의 반이 결정됐다.

  “나도 함께 들어가고 싶어.”

  쿠몬씨가 통하고 나에게 부딪혔다.

  “무, 무리야! 맴버 전부 정해졌는걸. 다른 사람과 반을 짜.”

  “에!? 너무해! 우리들 친구인데!”

  어, 언제부터 친구가 됐던가요??

  의문표를 날리는 나는 상관없이 쿠몬씨는 야쿠오지씨에게 달려들었다.

  “야쿠오지씨. 부탁해! 물러나줘! 나 사쿠라코와 같은 반을 하고 싶으니까!”

  이봐!

  “먼저 정해진 사람을 밀어내는 짓을 하면 안돼!”

  “나도 사쿠라코와 모모카와 같은 반을 하고 싶은걸! 친구인데 다른 반이라니 괴롭힘이야!”

  괴롭혀지고 있는 건 이쪽이라고!

  우노군이 가져와준 반 결정 용지에 쿠몬씨가 이름을 쓰려고 펜을 잡는다. 안된다니까!

  “쿠몬씨.”

  말리려는 날 신경도 쓰지 않는 쿠몬씨를, 모모카씨가 불렀다.


  “중간에 끼어들면, 안 돼.”


  모모카씨는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다.

  성모와도 같은 자애에 가득찬 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쿠몬씨의 몸에 수천 개나 되는 살의라는 이름의 화살이 꽂히는 것을.


  “………….”


  쿠몬씨는 말도 없이, 살짝 펜을 두고 물러났다.

  내가 달려들면서까지 저지해도 멈추지 않았던 쿠몬씨를 미소 하나로 뿌리치다니……. 역시 모모카씨. 굉장한 안력이다.


  오늘은 반을 정할 뿐이고, 식재료나 바비큐 자리를 결정하는 건 내일로 미뤘다.


  바쁜 대화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하여, 아무 일 없이 끝난 뒤 짧은 쉬는 시간에 소라군이 2반 교실에서 찾아왔다.


  “소풍, 모모카씨의 반에 들여보내줘. 나, 반에 친구 없으니까. 외로워.”

  소라군은 어두운 얼굴로 모모카씨의 소매를 잡는다.


  오오, 대환영이야! 역하렘군들이 얽혀오다니 무척이나 감사하다.

  내가 기쁨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복도 창문에서 화사한 여학생 두 명이 소라군을 불렀다.


  “여기 있네. 소라군. 바비큐 리퀘스트 없어? 지금까지 마시멜로하고 파인애플하고 사과가 정해졌어.”


  모모카씨가 짙은 시선으로 소라군을 노려본다.

  “친구 있잖아.”

  소라군은 눈을 피하며 팔짱을 끼며 모모카씨에게 달라붙는다.

  “여자들밖에 없는걸. 누나 반에 들어가게 해줘.”

  “짱나. 죽어.”

  하지만 모모카씨는 가볍게 잘라버렸다.


  “모모카는 돼지.”

  소라군도 간단하게 본성을 드러내며 모모카씨를 매도한다.


  다음 순간, 모모카씨가 소라군에게 용서 없는 프론트 초크를 걸었다. 남자 상대로 프로레슬링 기술을 거는 모모카씨에게, 교실 안은 질색의 폭풍이 분다.

  “포, 폭력은 안 된다고 그랬잖아. 모모카씨!”

  소라군의 반 친구 여학생들이 굉장한 형색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잠깐, 그만둬!”라고 모모카씨를 멈추려고 힘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필사적으로 모모카씨의 팔을 파닥파닥 때려서 소라군을 구출한다.


  소라군은 개방된 태세 그대로 내 책상에 엎어져서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혼자만 언제나 따돌림…….”

  “반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됐으니까 그만 꺼져. 방해니까. 너희들 이거. 끌고 가라고.”

  마치 물건처럼 소라군의 목덜미를 잡아 옆의 여자들에게 들이민다.


  순간 번뜩인 생각에 나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그래! 소라군. 우리 반 옆자리에 앉아! 옆자리라면 모두 함께 먹을 수 있어! 저기, 괜찮지?”

  소라군과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확인하자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에―…….”

  소라군의 반은 여자들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소라군을 노리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 소라군이, 다른 사이좋은 여학생 근처에 있는 건 재미없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반에는 최종병기스런 아이돌군이 재적하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모으고 있는 여학생에게 살며시 속삭인다.


  “이쪽 반에, 키리오군이 있어요. 사이좋게 될 찬스에요.”

  “!!!!!”

  여학생이 눈을 빛내며 손을 건낸다. 굳게 악수하고, 어디 자리를 잡을까 획책한다.

  좋아. 이걸로 역하렘군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어! 스스로 생각해도 해냈다. 나!


  “……사쿠라, 고마워.”


  소라군이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


  “천만에요.”

  그러고 보니 소라군이 웃는 얼굴은 처음 보네.


  “헤에, 소라가 솔직하게 웃다니 처음 봤어.”

  아무래도 모모카씨도 소라군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희한하다는 듯이 얼굴을 훔쳐본다.

  순식간에 소라군은 토라져서 고개를 돌렸지만, 모모카씨가 히쭉하고 웃고――――입 좌우에 손바닥을 세우고 교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니노마에 소라가 웃었다!!”

  “뭐, 그만.”

  소라군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습으로 하얀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 모모카씨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둬. 모모카!”

  “니―노―마―에―소―라―가―웃―었―다―

  “모모카씨!” “모모카!”

  나도 당황하며 모모카씨의 입을 막는다.

  아무리 그래도 소라군이 불쌍하잖아.

  모모카씨는 여자아이니까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웃거나 쑥쓰러워 하는 걸 놀림 받으면 꽤나 부끄럽다고!


  “윽…….”

  소라군은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교실에서 도망친다. 그 소라군이 한 마디도 없이 사라지다니.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거겠지. 불쌍하게도…….


  “모모카씨, 지금 그건 너무했어!”

  “말했지. 사쿠라코. ‘날 돼지라고 부른 거, 뼛속 깊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라고. 조금이지만 마음이 풀렸어.”


  모모카씨가 실로 즐겁다는 듯이 가슴을 폈다.

  정말, 조금만이라도, 히로인스러운 행동을 해주지 않을까나…….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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