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하렘군들과 모모카씨를 붙이는 일에 초조해진 나머지 내 눈은 이러저러 흐려져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모모카씨가 복도에서 신 선배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신경 쓰여서 무심코 시선을 향하자 딱하고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신 선배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서 나도 손을 흔들었지만……분명 저거, ‘방과 후 쇼핑에 갈 테니까 와줘(하트) 사쿠라코에겐 비밀이야.’ ‘좋아. 저녁밥은 네 수제 요리를 먹게 해줘(☆)’스런 소녀만화적 대화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신 선배와 모모카씨는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네.


  “……레이센인씨.”

  앞자리의 야쿠오지씨가 불러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왜?”

  “……리본, 줘.”

  리본? 아, 머리카락을 묶고 있는 리본 말인가.

  예비 리본을 사요코씨에게서 받았던가. 가방 안에서 주머니를 꺼낸다.

  주머니 안에는 배가 고플 때를 대비한 사탕(고양이 밥을 뺏어먹으려고 했다고 쥐어졌다)와 작은 거울과 접이식 빗. 그리고 내가 덜렁거린다며 반창고까지 들어있다.

  엉키지 않도록 나비 모양으로 묶어둔 리본을 꺼내서 야쿠오지씨에게 건낸다.


  “자, 여기.”


  리본 같은 걸 어디에다 쓰는 걸까? 이상하게 여기고 있자 야쿠오지씨는 자신의 머리를 투 사이드 업 모양으로 묶었다.


  “……어울려?”

  “응! 어울려.”


  야쿠오지씨는 꽤나 등이 굽었다.

  허리를 쭉 피면 좀 더 어울릴 테지만, 역시 그렇게까지 지적하는 건 실례일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우리들, 쌍둥이 같네.”

  “그렇네.”


  갑자기 주머니를 뺏어서 내용물을 책상 위에 뿌린다.

  뭐, 뭐야!?

  “……이 빗, 어디서 산 거야? 이 거울은? 사탕은? 주머니는?”

  아아, 뭐야. 그런 게 듣고 싶었던 건가…….

  “전부 100엔샵이야. 우리 집, 가난하니까.”

  “사쿠라코.”

  아, 모모카씨가 돌아왔다.


  “신이 말이야. 소풍날 딱 점심쯤에 화앵산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밥은 함께 먹자는데. 괜찮지?”

  “그것뿐?”

  “? 그것뿐인데?”


  모모카씨는 의외로 부끄럼쟁이구나.

  내 상상이 완벽하게 맞는다곤 할 수 없지만, 꽤 긴 시간 대화했는데 소풍에 대한 것만 이야기 했을 리가 없잖아. 두 사람만의 비밀을 소중히 하고 싶은 걸까?


  체력 테스트 결과가 남자보다도 높고, 유행가보다 엔카를 좋아하고, 펀칭 머신으로 280kg의 기록을 내놓지만, 역시 모모카씨도 여자인 거네. 히로인답게 행동해 달라고 생각해서 미안. 모모카씨는 멋진 히로인입니다.


  기쁜 마음에 싱글벙글 웃고 있자 모모카씨가 갑자기 안아 올려서 내 몸을 조였다.


  “꾸엑――”


  괴로운 나머지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파닥파닥 몸부림 친다.

  “어, 어째서.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꾸짖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하네? 라며 모모카씨가 팔짱을 끼고 머리 위에 ? 마크를 띄운다.


  “하츠키씨, 사쿠라코와 이야기 하지 말아줘.”

  야쿠오지씨가 창밖을 향한 채로 모모카씨에게 중얼거렸다.


  “네?”

  “에??”


  나도 모모카씨도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사쿠라코와 나는 쌍둥이 자매야. 나 혼자만의 친구야……. 그 증거로, 봐봐. 머리 모양이 같잖아? 이제부터 소지품도 전부 맞출 테니까.”


  모모카씨가 굳었다.


  대단해! 야쿠오지씨!

  내가 아무리 괴렵혀도 꿈쩍도 안하던 최강의 여자아이를 말 한마디로 경직하게 만들다니!


  “모모카, 학생회실로 가자. 오늘도 일이 많으니까 빨리 가지 않으면 점심 식사도 못 할거야.”

  키리오군이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모모카씨의 어깨를 두드린다. 모모카씨는 겨우 헉하고 정신을 차렸다.


  “으, 응. 가자. 사쿠라코.”

  일어나려는 내 손을 야쿠오지씨가 꽉하고 잡았다.

  “……사쿠라코는 나하고 같이 먹을 거야…….”

  어! 이건 실로 기쁜 제안이라고.

  내가 없어지면 역하렘군들과 모모카씨만의 식사가 되는 거잖아.

  그 말에 따라 자리에 돌아가려 하자 야마토군이 옆에 서서 말했다.


  “지금은 학생회 업무가 바쁜 시기이기에 한시라도 아까운 상황입니다. 학생회 부회장 권한으로 지시합니다. 보좌부 부장, 레이센인 사쿠라코씨. 점심은 학생회 휴게실에서 부탁합니다.”

  “윽. 아, 알겠습니다…….”


  확실히 쉬는 시간에도 일거리가 들어오는 상황인걸. 고집은 부릴 수 없나.


  복도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교실과 꽤 떨어지게 되자 야마토군이 내숭을 벗고서 나를 갈책했다.


  “너 적당히 하라고! 성가신 여자에게 너무 잘 얽힌다고입니다. 모모카씨도 그렇고 저 야쿠오지도 그렇고. 친구 정도는 가려 사귀어라입니다!”

  “같은 취급하지 말아줘어어어!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싸이코는 아니야. 나는!”

  모모카씨가 한 손을 있는 힘껏 휘두르면서 항변한다.

  “사쿠라코씨를 감금한다고 했잖아. 충분히 같은 레벨입니다!”


  성가셔?

  “별로 야쿠오지씨 싸이코가 아니야? 여자아이가 흉내 내는 거 보통 있는 일이고……. 모모카씨도 감금하겠다는 거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언제까지나 그거 가지고 툴툴 거리면 안 돼. 야마토군.”

  “이거라고.”

  야마토군이 마음 깊이 싫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사쿠라코는 정신을 차리면 스토커한테 찔려 있을 타입이네. 나 진심으로 걱정이야.”

  키리오군이 내 팔을 잡았다. 잠깐, 아파. 아프다고!

  “나……. 야쿠오지씨 같은 사람은 어떻게 취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여자아이니까 때릴 수도 없고……!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 거야!? 투망으로 잡아서 창문에다 걸어두면 되는 거야!?”

  모모카씨가 머리를 잡으며 으갹하고 기성을 지른다.


  그건 둘째치고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학교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지만, 야마토군이 말한 대로 최근 우리들은 어쨌든 바쁘다. 느긋하게 대화할 여유도 없이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고, 서류나 컴퓨터 화면 상대로 격투한다.


  오늘 내 일은 반 위원장들에게 보낼 서류를 배포하는 일이었다. 나는 컴퓨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서류도 잘 분류하지 못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포 정도 밖에 없단 말이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휴대폰 걸라고. 바로 달려 갈 테니까.”

  “부탁합니다.”

  모모카씨와 야마토군, 키리오군이 강조해서 말했다. 첫 심부름을 나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같아서 흐뭇하다.

  그렇다 해도 여자아이 상대로 걱정이 심하다고. 정말…….


  “레이센인씨.”


  서류를 손에 쥐고 학교를 돌고 있으니 뒤에서 이름을 불렸다.

  있는 대로 걱정을 받은 뒤이기에 조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평범한 두 사람의 여학생이었다.

  본 적 없는 학생이었기에 무심코 실내화 색을 확인하고 만다. 1학년이었다.

  누구였더라?


  “레이센인씨가 키리오군의 강아지를 보호했다며. 정말?”

  뭐야. 키리오군의 팬인가.

  “응. 정말이야. 진짜 머리 좋고 귀여운 강아지였어.”


  “사진, 있어?”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가지고 있던 푸치의 사진을 두 사람에게 보였다. 바보 같은 얼굴로 자는 모습은 언제 봐도 뿜을 정도로 재밌다.

  “에―” “아―”

  두 사람은 미묘한 표정으로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웃을 거라 생각했는데 빗나갔다.


  “혹시, 키리오군의 메일 주소……안다든가 그래?”

  “알고 있지만…….”

  ““알려줘!!!””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압박하고 들어왔다.

  “무, 무리야. 타인의 메일 주소를 멋대로 알려주다니…….”

  “괜찮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테니까! 부탁해!!”

  “미안. 그럴 수 없습니다.”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고 이 이상 무슨 말을 듣기 전에 뒤꿈치를 돌린다.

  날카롭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뭐야 저거. 꼴깝.”이라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서 등줄기를 떨고 만다.

  무무무, 무섭다고!


  재빨리 도망쳐서 다행이다. 저 상태로 계속 압박이 들어왔으면 절대로 거절하지 못했을 거야. 집에 걸려오는 세일즈 전화도 좀처럼 끊을 수 없어서 계속 말을 하게 될 정도로 근성 없고.

  키리오군. 아이돌이니까 개인 정보 취급에는 신경을 쓰고 있을 텐데. 내가 흘리거나 해선 헛수고가 될 테니까.


  휴대폰에 잠금 설정도 해놓지 않았었네. 나중에 설정해 두자.


  “아, 미안합니다.”

  휴대폰을 신경 쓰던 탓에 키가 큰 여자와 어깨를 부딪치고 만다.

  “기다려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사과하고 곁을 지나려고 했더니 또 불려졌다.

  이번엔 뭐야? 키리오군의 메일 주소라면 알려줄 수 없어.

  와.

  예쁜 사람이네. 내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모모카씨에게지지 않을 정도로 예쁜 누나였다.

  어딘가 졸린 것 같은 눈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부드러울 것 같은 갈색 머리카락, 도톰한 입술과 입술 끝의 점이 무척 섹시하다.


  “할 이야기가 있어. 잠깐 와요.”

  “네, 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앞을 걷는 누나를 따라간다.


  누나가 향한 곳은 부활 건물이었다.

  점심 시간이기에 당연히 아무도 없다.


  “당신, 키리오군, 소라군과 함께 등교하고 있다는 것 같네요.”

  빙글 돌면서 선배가 갑자기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것만이 아니라 신군이나 야마토군도 알쫑거린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들 사이에 있는 거죠? 맞춰 볼까요. 그들의 약점을 잡고 협박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같은 빈약한 여자를 상대할 리가 없는 걸.”


  딱하고 내게 손가락을 세운다.


  “어떤 수를 써서 협박했는지 자백하세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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