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하고 있어?

  내가 모두를?

  “협박 같은 거 하고 있지 않아요?”


  이미지가 중요한 키리오군은 상관없다고 치고, 마이페이스스런 신 선배,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손이 나가는 야마토군, 방만한 소라군 세 사람이 협박하는 정도로 하는 말을 들을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럼 어째서 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 곁에 있는 거죠? 그 정도의 얼굴로 총애 받고 있다고 하지 마세요.”

  “에? 저 네 사람이 좋아하는 건 모모카씨에요.”


  “에?”


  “하츠키 모모카씨에요. 언제나 네 사람과 함께 있는 여학생.”

  아직 네 사람 모두 자각은 없는 것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모모카씨에게 끌리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기는, 만화의 세계지만 현실세계라는 모순된 세계니까.

  만화의 스토리에선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은 훌륭하게 이어져서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있다. 모모카씨가 ‘피치 매직’의 주역이며, 역하렘군들이 남주인공인 이상, 다섯 명이 끌리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 말하자면 운명적 사랑.


  악역으로서 전생한 나 같은 이레귤러가 있는 모순된 세계지만, 단 하나 진실이 있다.

  그건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사랑이다.


  저는 소녀만화 읽은 적이 없으니까, 소년만화로 치환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만화의 클라이맥스, 싸움은 점입가경에 접어들어, 주인공들이 서있는 곳은 푹 파인 대지와 붕괴한 빌딩 무리의 중앙.

  하늘에는 비구름처럼 몰아닥치는 수만의 적, 적, 적!

  신 선배, 야마토군, 키리오군, 소라군 네 사람은 모모카씨를 뒤돌아 보면서 말하는 거다.

  “내가 죽어도 너만은 지키겠어…….”

  모모카씨는 눈에 눈물을 글성이며 답한다.

  “나, 언제까지나 기다릴게……. 다들 반드시 돌아와……!!”

  그런 모모카씨에게 네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싸움에 나선다――――!


  엄청 타오르는 전개다!! 네 사람은 엉망진창이 되지만 모모카씨 곁으로 돌아가서 웃는 거다. “돌아온다고 했지?”라고! 모모카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바보.”라고 말하며 끌어안는다! 그야말로 왕도!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인연은 앞으로도 강고한 것이다!


  지금은 모모카씨와의 접점보다도 나와의 접점이 많으니까 내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고, 모모카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자각할 것이 틀림없다.


  애당초 날 좋아하는 건 야마토군뿐이라고.


  키리오군은 내 고백을 받아 들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푸치와 만난 기쁨에, 나를 하나님처럼 생각한 순간적 텐션의 결과물이다.

  만난 그 날에 고백을 해온 신 선배는 고백이 여자에 대한 인사 같은 거일 테고, 소라군에 이르러선 싫다든가 바보라든가 그런 소리를 들은 기억밖에 없다.

  이런 거 좋다 싫다 그런 레벨조차 도달하지 않았다고.


  “흐응.”


  누나가 심술궂은 웃음을 띄운다.

  “날 적으로 돌리는 게 무서운 거예요? 모모카라면 당신의 친구겠죠? 친구에게 밀어붙이다니 최악이네요.”


  에?


  “남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우쭐거리는 당신 같은 여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날 텐데, 그 친구에게 팔리기까지 하다니.”


  에?


  “모모카라는 사람, 가여워.”


  서, 설마……이 사람이――――!!


  “도우미씨! 도우미씨죠!?”

  나는 덤성 다가가 누나를 올려다 봤다.

  “하아? 갑자기 무슨? 내 이름은 줄리아에요. 노구치 줄리아.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


  아차! 여기는 현실이니까 도우미라고 말해도 자각 같은 게 있을 리 없나. 역하렘군들도 아직 자신이 역하렘요원이라는 자각 없을 정도니까 말이야. 여주인공도 그렇지만.


  “역시 도우미씨도 무척 예쁜 사람이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서류를 가슴에 품은 채 90도 가까이 고개를 숙인다.

  사랑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둔감 히로인, 모모카씨의 사랑을 도와주세요!


  나는 바로 도우미씨――가 아니라, 노구치 줄리아씨를 데리고 학생회실로 돌아갔다.


  “보좌부에 한 사람 부원을 추천합니다! 2학년 10반의 노구치 줄리아씨에요!”

  긴 탁자 위에서 서류나 컴퓨터 상대로 격투하고 있던 보좌부 3명+학생회장+부회장+회계 선배 2명+서기 선배 2명이 고개를 든다.


  “처음뵙겠어요~ 줄리라고 불러주세요. 신하고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 이번엔 여기서 잘 부탁해. 1학년 애들도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네.”


  줄리아씨는 내가 말하던 때보다 2옥타브 높은 목소리와 멋진 미소로 모두에게 인사한다.

  과연 사랑의 도우미씨! 남심을 확실하게 잡는 완벽한 인사다.


  “와아. 어려운 서류네요. 1학년인데도 작업할 수 있다니, 과연 니노마에군. 이오리군도 학년 2위라고 들었어요. 굉장하네. 나 2학년이지만 절대로 질거야~”

  줄리아씨가 야마토군과 소라군의 수중을 훔쳐보며 놀라움에 입가를 손바닥으로 누른다. 핑크색의 긴 손톱이 성인 여성 같아서 멋있네.

  “타카나시군, 이상한 여자애가 귀찮게 하지 않아? 언제나 상담해줘. 나, 여자친구 많으니까 힘도 될 수 있고.”

  키리오군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귓가에 속삭인다. 어라? 지금 줄리아씨가 날 노려봤는데? 아, 내가 키리오군을 협박하고 있다느니 말했었지. 날 경계하는 건 당연한가.

  그 상태로 ‘악역, 레이센인 사쿠라코’에서 모두를 지켜주세요!


  “하츠키씨도……,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줄리는 하츠키씨의 아군이니까…….”

  줄리아씨가 모모카씨에게 다가간다.

  우와아아.

  모모카씨도 줄리아씨도 예쁘니까 엄청 멋있네!!


  저도 모르게 서류를 쥐고 마는 내 앞에 신 선배가 의자를 울리며 일어섰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인원이 맞으니까. 인원이 부족해지면 부를테니 자, 나가나가.”

  “에? 잠깐, 어째서!?”

  신 선배가 눈 깜짝한 순간에 줄리아씨를 교실에서 내보내고 만다. 그리고 지친 표정으로 내게 향한다.


  “사쿠라코. 이상한 생물체를 주워오지 말라구. 아무리 여자애들에게 상냥한 오빠라도, 이런 바쁜 시기에 상대하는 건 귀찮으니까. 오빠와의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만다.

  “친구 좀 골라서 사귀라고 말한지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이겁니까…….”

  야마토군이 쿵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친다.


  “이상한 생물체라니 그런……! 저 사람은 모모카씨의 사랑을 응원해줄 소중한 사람이에요!”

  “하아? 내 사랑? 저 사람 모르는 사람인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어째서 내 사랑을 응원하는 거야??”

  “이제부터 알아가는 거야. 분명 모모카씨와 줄리아씨는 친구가 되리라 생각해!”


  역설하는 내 이마에 모모카씨가 손바닥을 대고 자신의 이마와 열을 비교한다.


  “열은 없는데……. 사쿠라코, 요새 피곤한 거 아냐? 조퇴할래? 이상한 헛소리 하고 있고.”

  헛소리가 아니야! 모모카씨에겐 모를지도 모르지만, 줄리아씨는 너에게 진정한 연심을 알려줄 소중한 사람이라고.

  “줄리아와 모모카는 물과 기름 정도로 타입이 다르다고. 친구가 되는 건 힘들지 않아?”

  “응. 저런 아이는 조금 상대하기 어려워.”

  신 선배의 말에 모모카씨가 곤란하단 미소로 끄덕였다.

  모모카씨는 줄리아씨에 대해서 좋게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이건 친구가 될 플래그임이 틀림없다.

  처음엔 헐뜯던 두 사람이 서로 주먹을 나누고 사이가 좋아진다는 건 만화의 정석이니까!


  “좋아. 완성……이고, 오늘 일은 일단 끝났으니까. 보좌부의 방과후 활동은 패스다. 도와줘서 고마워. 수고했어.”

  신 선배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학생회실을 나왔다. 아, 나, 서류를 전부 보내지 않았어. 5교시 후에 쉬는 시간에라도 배달해둬야지.


  줄리아씨는 방과후에도 우리들의 교실까지 찾아왔다.


  “아, 줄리아씨!”

  복도에서 작게 손을 흔드는 줄리아씨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뒤에서 있는 힘껏 뒷목을 잡혔다.

  모모카씨다.

  “솔직하게 자백해. 저 여자에게 어떤 과자로 길들어 진거야.”

  “과, 과자? 아무것도 받지 않았는데.”

  “거짓말. 사쿠라코가 이렇게 반기다니, 맛있는 과자를 받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이 먹보.”

  “우.”

  볼을 있는 대로 잡힌 아픔에 바둥바둥하고 만다.


  “모모카씨. 그만두세요. 사쿠라코씨는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요. 아마도 의미불명의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당신과 친구가 될거라든가 말하고 있고.”

  “응. 나도 야마토군과 같은 의견일까.”

  “착각 같은 거 아니야! 모모카씨. 오늘은 세 사람이서 타코야키 먹으러 가자. 사요코씨가 맛있는 가게 알려줬어.”


  타코야키 먹으면서 사랑이야기다. 줄리아씨라면 모모카씨의 연심을 잘 끌어내줄 것이 틀림없다.


  “정말!? 응. 둘이서 가자! 갓 튀김타코 3팩~”


  응?


  모모카씨는 가방도 없이 복도로 나가서 줄리아씨와 마주섰다. 나도 당황하며 뒤를 쫓는다. 한손에는 내 가방, 또 한손에는 모모카씨의 가방을 가지고.

  “민폐니까 어장관리 하고 싶으시면 보좌부와 관계없는 장소에서 하세요. 자, 지금이라면 저 두 사람을 낚든지 덮치든지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아요.”

  모모카씨가 키리오군과 야마토군을 가리키며 시원하게 말한다.

  줄리아씨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덧붙여 내 미소도 얼어붙었다.

  먼저 냉동상태에서 빠져나온 건 줄리아씨였다.

  “뭐어어? 영문 모를 소리 하지마. 덮칠 리가 없잖아! 보좌부도, 당신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저는 보좌부 부부장이에요.”

  “부, 부부장이라서 뭐가? 줄리는 부장인 사쿠라코에게 입부 허가를 받았으니까!”

  “보좌부 인원 증감에 대해서 결정하는 건 저에요. 사쿠라코의 의견 따위 손톱만큼도 통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쿠라코의 생사여탈권도 저에게 있습니다.”


  나, 나의 생사여탈권이 모모카씨에게 있었다니!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생사여탈의 의미를 찾아보고 만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주는 것도 뺏는 것도 마음대로 타인을 다루는 것.“

  히이이이익. 공포로 몸이 떨린다. 나나, 나, 나, 악역이라든지 말하고 있었지만, 모모카씨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사형당하는 거 아닐까. 아니, 괜찮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바이올런스 히로인은 아니겠지? 소녀만화고.


  “남자 놈들은 굽든지 삶든지 맘대로 해도 좋으니까. 사쿠라코와 보좌부는 관여하지 말아주세요. 자, 돌아가자. 사쿠라코. 마요타코 5팩~”


  생사여탈의 충격으로 아직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짰다.


  “모모모모모모카씨, 저저저점심시간에도 말했지만, 줄리아씨는 모모카씨의 친구가 되리라 생각해요! 함께 타코야키를 먹으러 가요.”

  “싫엉.”

  모모카씨가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귀여운 포즈와 목소리로, 하지만 확실하게 거부한다.


  “주, 줄리도 싫어! 이런 여자와는 절대――”

  꾹, 하고 내 몸이 무거워진다. 헉, 하고 줄리아씨가 말을 삼킨다.


  “트러블?”


  소라군이 등 뒤에서 날 안고 있다. 이마에 턱을 올리고 있어서 아프다. 이 자세, 모모카씨에게도 당한 적 있다고. 소라군과 모모카씨, 혈연은 없지만 역시 남매구나.

  점점 키가 줄어들 것 같으니까 하지 말아줬으면 하지만.


  줄리아씨는 아직 굳어있지만, 빙글하고 뒤꿈치를 돌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사라지고 만다.

  아아아아……. 모처럼 찾은 도우미씨가…….


  “어이, 소라. 여자에게 달라붙지 말라입니다.”

  야마토군이 교복을 당겨서 나에게서 소라군을 떨어뜨린다.

  “야마토의 경어, 아직도 이상해.”

  “네놈의 끊어 말하기 보단 낫습니다.”


  “자, 사쿠라코. 타코야키 먹으러 가자.”

  다투는 소라군과 야마토군, 말리려고 하는 키리오군을 내버려 두고, 모모카씨는 나를 끌고 타코야키 가게로 향했다――라니, 내가 여주인공과 사이가 좋아지면 어쩌라고……정말…….


  사요코씨가 추천해준 타코야키 가게는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었다. 오래된 외견의 가게에 타코야키라고 적힌 간단한 간판이 걸려있다.

  “헤. 타코야키 전문점이네. 가게 안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희안하네.”

  “어서오세요.”

  안에 들어감과 동시에 아주머니가 미소로 마중했다.


  가게는 비어있었기에 4인석에 앉는다. 내가 문을 등지고, 모모카씨가 그 정면에. 동시에 내 옆자리에 휘청하고 사람그림자가 앉았다.


  “히익!”


  모모카씨가 꿈틀하고 몸을 떨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은 야쿠오지씨였다.

  “까, 깜짝 놀랐다……! 야쿠오지씨, 따라왔었구나…….”


  여, 역시 대단해 야쿠오지씨! 선배인 줄리아씨 상대로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모모카씨를 놀라게 하다니.

  하지만 정말 언제부터 따라왔던 걸까. 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


  야쿠오지씨는 역시나 고개를 돌린 채 모모카씨에게 답했다.


  “……사쿠라코가 불렀으니까.”

  응? 불렀던가?

  ……?

  사람이 많은 편이 좋으니까 아무래도 좋은가.

  “아가씨들, 무슨 타코로 먹을래?”

  아주머니가 벽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메뉴가 적힌 종이가 걸려있다.

  카레, 치즈, 참치, 소힘줄 등등 종류가 풍부하다!


  뭘로 할까!

  “튀김타코하고 마요타코하고 소힘줄타코하고 소세지타코 3접시씩 주세요.”

  모모카씨가 망설임 없이 주문한다.

  “집에 가져가니?”

  “전부 여기서 먹을 거에요.”

  나는 치즈로 할까.

  “치즈 주세요.”

  “……나도 치즈.”


  손을 들어 주문하자 야쿠오지씨도 나와 같은 식으로 손을 들어 주문했다.


  역시나 사요코씨가 추천해준 만큼 타코야키는 무척 맛있었다!

  안에 든 치즈는 말랑말랑하고, 표면에 흐르는 치즈에서 풍성한 향기가 나서 참을 수 없어. 오코노미야키의 치즈도 맛있지만, 타코야키도 맛있네.

  모모카씨가 하나 교환해 달라고 해서, 나는 무척 고민한 뒤 소세지와 교환하기로 했다.

  도중에 야쿠오지씨기 모모카씨의 허락도 없이 소세지를 뺏어서 치즈를 준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 가게에는 또 오기로 하자.

  이번엔 역할렘군도 불러서. 라니, 오늘도 부르면 됐잖아. 이제와서 눈치 챈 나. 정말 바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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