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력 796년 7월 14일. 자유행성동맹 총기함 아이네이아스. 양 웬리



  경순양함이 이제르론 요새로 들어갔다. 동맹군은 요새 주포, 토르 해머의 사정거리 밖에서 기다린다. 제국군에선 경순양함을 격침시키지 못해 미련이 남는 것처럼 보이겠지. 여기까지는 예정대로라고 해도 좋다. 총기함 아이네이아스의 함교에는 기대에 찬 분위기가 풍기고 있다.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의 표정도 밝다.

  제국군은 함대를 내보내지 않았다. 요새 내부에는 1만 5천 척 정도의 주류함대가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선 적 함대가 출격할 수도 있겠지. 그걸 배제하고 요새를 공략한다. 요새 주포, 토르 해머만 없다면 결코 불가능하진 않다. 쇤코프 대령, 로젠리터가 어디까지 해줄 것인가. 요새 공략은 거기에 달려 있다.

  "이제르론 요새에서 통신입니다!"
  오퍼레이터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함교가 활기를 띄었다. 이곳저곳에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과 탄성이 올랐다. 아무래도 잘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화면에 비춰주게."
  그린힐 참모장의 지시로 스크린에 영상이 떴다. 한 명의 제국 군인이 비추자 이곳저곳에서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자는…….

  「1년만이군요. 그린힐 참모장.」
  "귀, 귀관은……."
  말을 잃은 그린힐 참모장에게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린힐 참모장, 그는."
  다들 말을 잃은 와중,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이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이군요. 소관은 제국군 장갑척탄병 제21사단장,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중장입니다.」
  "뤼네부르크……."
  사령장관이 신음하자 뤼네부르크 중장이 씨익하고 웃었다.

  「본래 자유행성동맹군을 칭하는 반란군에서 로젠리터 제11대 연대장을 역임하고 있었지요."
  "귀관, 역망명자인가……."
  아연한 사령장관에게 뤼네부르크 중장이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유감스럽지만 쇤코프와 로젠리터는 정체를 간파 당해 어쩔 수 없이 이쪽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작전은 실패로군요.」
  "……."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 한숨소리가 들렸다. 이 자가 이제르론 요새에 있었다면 실패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째서 여기에…….
  「쇤코프는 당신들을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그쪽의 작전은 이미 간파 당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그건."
  그린힐 참모장이 엄격한 목소리로 묻자 뤼네부르크 중장이 큰 목소리로 웃었다.

  「슬슬 궁지에 몰린 반란군이 이제르론 요새를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공략하려할 거라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예측한 겁니다. 그 때 잠입하는 건 제국어에 능숙한 로젠리터일 거라고. 그래서 공작은 소관에게 마중할 것을 명령한 겁니다. 최선을 다해 대접하라고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경악, 실망. 이쪽의 작전은 이미 간파 당한 뒤였다……. 늦었다. 역시 늦었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의 설립과 뤼네부르크 중장의 배치는 세트였던 거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쪽이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실시할 것도 요새 내부에 사람을 침투시킬 것도 예측하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 인사 발령에 소관의 이름은 없었을 겁니다. 이유는 이미 알고 계시겠죠. 소관이 이름이 있으면 당연히 작전은 실시되지 않았을 겁니다.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숨겨둔 겁니다.」
  "……."

  「경순양함이 나타났을 때는 너무나도 예상대로라 우스울 정도였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뿜을 뻔했습니다.」
  뤼네부르크 중장이 소리 내어 웃는다. 다시 함교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굴욕, 분노…….

  "……우롱하는 건가. 우리들을!"
  억누른 목소리는 분노를 품고 있었다.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이 굴욕에 떨고 있다. 사령장관이 되어 최초의 군사행동이었다. 작전에도 자신이 있었다.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는 게 아닌가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실패하고 비웃음을 당했다…….

  「아뇨. 감사하고 있습니다. 재미를 주셨으니까. 여기에선 오락이 적습니다. 사례로서 한 가지 충고하지요. 제국군의 증원부대, 4개 함대가 이제르론 요새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후퇴하시는 게 좋겠지요. 확실히 전했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
  스크린의 영상이 끊겼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함교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풍겼다. 증원부대 4개 함대가 이제르론 요새로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최소한 5만 척은 넘는 대군이겠지. 주류함대와 합류하면 6만 척을 넘는 대군이 될 것이다. 이쪽은 3개 함대. 사령장관의 직솔 함대를 포함해도 5만 척…….

  "허세다! 정말로 증원부대가 다가오고 있다면 오히려 감췄을 것이다. 사령장관 각하.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합시다!"
  포크 중령이다. 뺨이 경련하고 있다. 포크 중령은 동의를 구하듯이 주변을 돌아봤지만, 아무도 시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증원부대가 오는 게 허세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혹시 정말 증원이 있다면 동맹군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일부러 이쪽을 머무르게 하기 위해 말했을 가능성도 있겠지. 증원부대가 근처까지 와 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쓰디쓴 목소리로 중령을 가로막은 것은 그린힐 참모장이었다. 그렇다. 확실히 그 가능성은 있다. 상대방은 이쪽의 움직임을 예측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대로는……."
  "게다가 공략이라 해도 단순히 힘으로 밀어 붙인다고 떨어뜨릴 수 있는 요새가 아니야. 그건 다들 알고 있을 테지."

  그린힐 참모장이 더욱 요새 공략을 주장하려는 포크 중령을 나무랬다. 분하다는 듯이 중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의 얼굴은 굳어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철수를 선언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역시 감정적으로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지. 참모장이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런이런. 미움 받는 역할은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철수를 진언합니다."
  모두가 날 돌아봤다. 강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자.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자. 제각각이다.
  "이제르론 요새는 외부에서 공략하기가 극히 어려운 철옹성입니다. 공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작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엔 내부에서 공략하려 했고……. 그것이 실패한 이상, 유감스럽지만 철수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

  "지금 철수하면 손해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공격을 실시하면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게 당연합니다. 요새 공략이 성공할 가망이 없는 이상, 손해는 가능한 한 적게 해야 합니다."
  싫은 역할이다. 쇤코프 대령과 로젠리터를 버리자는 말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전투를 실행하면 그 수천 배, 수만 배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냉혹, 비정하다고 불려도 진언하지 않을 수 없다.

  "각하. 소관도 양 준장의 의견과 같습니다. 철수해야 합니다."
  그린힐 참모장이 내 의견에 동의하자 모두가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을 봤다. 사령장관의 얼굴은 굳어 있다. 시선의 집중을 받아 압박감을 느낀 거겠지. 함교 분위기가 싫을 정도로 긴박해졌다…….

  "……철수한다."
  쥐어 짜는 듯한 어조였다.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일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의 선택은 옳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긴장된 함교의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어지고 이곳저곳에서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제국력 487년 7월 14일. 뮈젤 함대 기함, 브륀힐트. 라인하르트 폰 뮈젤



  오딘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오딘을 출발하고 아직 4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르론 요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반란군이 요새 근처까지 왔다는 통신이 그저께 있었지만, 대규모 공격이 벌어졌나……. 화면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서로 경례를 나누고 공작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란군이 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했으나 철수했다고 합니다. 방금 전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로부터 연락이 있었습니다.」
  "철수?"
  공격하러 와서 철수? 어떻게 된 건가? 영문을 알 수 없어 케슬러, 키르히아이스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그들도 의아한 표정이다. 그 놈들, 대체 무슨 생각인가?

  「이번에 그들은 이제르론 요새를 내부에서 공략하려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네. 제국군인으로 위장한 사람을 경순양함으로 요새에 들여보냈으나, 뤼네부르크 중장에게 정체를 간파 당했습니다. 그들은 로젠리터였다더군요.」

  그렇군. 그런 건가. 뤼네부르크 중장은 본래 반란군에서 로젠리터의 지휘관이었다고 들었다. 그 당시의 부하가 위장한 사람 중에 있었다는 건가. 그걸로 정체를 들켜 잡혔다…….
  "그럼 내부에서의 공략을 실패하여 반란군은 철수했다. 그런 겁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대로 공략을 하려 했다면 적들을 소모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만 얌전히 물러난 모양입니다. ……크브르슬리 사령장관도 꽤 만만찮습니다. 방심할 수 없겠군요.」
  공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만만찮다. 이익이 없는 게 보이자 가볍게 등을 돌렸다. 간단한 듯 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반란군이 물러난 이상 우리들도 오딘으로 돌아가야 하나. 유감이다. 모처럼 4개 함대의 지휘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는데…….
  「뮈젤 제독은 그대로 4개 함대를 이끌고 이제르론 요새로 가주십시오.」
  "네? 그래도 됩니까?"

  나도 모르게 한심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걸 듣고 공작이 쿡쿡 웃었다. 이런. 얼굴이 붉어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실례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 있습니다. 일단 먼저 군수뇌부는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를 전면적으로 지원하겠다 약속했습니다. 그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군. 이번엔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격퇴했다. 하지만 본래라면 우리들이 증원하여 격퇴할 예정이었다. 그에 대한 증명인가…….

  「두 번째로 이번 방어전으로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에 뭔가 문제가 없었는지, 개선점은 없었는지, 제 대리로서 그걸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란?"
  내가 묻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미세하게 표정이 진지해졌다. 헌데, 너무 서둘렀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나…….

  「다음 달 중순 쯤이 되겠습니다만, 제국에서 정치 개혁이 시작됩니다.」
  "!"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어조였지만, 이곳의 분위기가 긴장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정치 개혁……. 언젠가는 시작될 거라 생각했지만…….

  「경우에 따라선 제국 내부에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란군이 그 혼란을 틈탈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죠…….」
  "……."
  그렇군. 우리들의 함대가 그걸 막는다는 게 세 번째 이유인가.

  「잠시 동안, 뮈젤 제독과 3개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에서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기간이 될까요? 어느 정도 상정해두고 싶습니다만……."
  「대체로 1개월에서 2개월로 보고 있습니다.」
  "1개월에서 2개월……. 알겠습니다. 이제르론 요새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끄덕였다.


  "개혁입니까…….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케슬러 참모장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속삭인 것은 통신이 끝나고 잠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동감이다. 공작이 제국을 바꾸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정말로 시작될 줄이야……. 키르히아이스도 몇 번인가 끄덕이고 있다.

  "개혁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케슬러, 키르히아이스의 말에 나도 동감한다. 우리들이 이제르론에 있는 건 1개월에서 2개월. 혼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끝날 거라 공작은 생각하고 있다. 조금씩 바꿔간다. 그런 생각이겠지.

  "이렇게 되면 반란군이 얌전히 물러난 것이 오히려 불안하군요. 공작이 우려하는 대로, 재차 습격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음."
  케슬러의 말이 맞다. 반란군이 무리하게 공격하여 소모하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여기서 숫자를 줄여뒀다면 개혁에 의해 혼란이 일어나도 반란군은 바로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었다……. 만사가 바라는 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어중간한 형태로 끝나고 말았다. 공작이 말한 대로 방심할 수 없다.

  "뤼네부르크 중장에 대한 것입니다만, 우연이었을까요?"
  키르히아이스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글쎄, 어떨까? 답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욱 뒷말이 이어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만."
  케슬러도 생각에 잠겨 있다.

  "예측했다. 키르히아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로군."
  "예."
  케슬러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가 무겁게 숨을 내뱉는다.
  "아마도 그 말이 맞겠죠. 분명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의 인사발령에는 뤼네부르크 중장의 이름은 없었을 겁니다. 반란군을 방심하게 만들어 유인하기 위해서였겠죠."

  "공작의 목표는 반란군의 공략을 실패하게 만들고, 그 뒤에 무리하게 공략을 시도하게 만들어 손해를 크게 만든다. 그에 의해 개혁 혼란을 기회 삼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거였겠군……."
  내 말에 키르히아이스와 케슬러가 끄덕였다.
  "오딘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호출 받았을 때, 반란군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공작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가……."

  무서운 자들이다. 반란군의 목적을 미리 읽고 그걸 오히려 이용하려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에 휘말리지 않고 얌전히 물러나고 기회를 살피는 반란군. 제국이 우세하게 전국을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코 방심할 순 없다. 하나의 미스가 일어나면 간단히 뒤집힐 위험도 있다. 한숨이 나왔다…….
  "일단은 예정대로 이제르론 요새로 서두르자."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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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7월 12일. 이제르론 요새,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2시간 정도 전부터 요새 주변 통신이 극심하게 착란하고 있다. 아무래도 자유행성동맹에서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사령관."
  "역시 반란군이 근처에 온 거겠죠."
  "음."

  "하지만 요새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이 출격하는 걸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도발인가. 둘러싸서 두들기려는 거려나."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그라이프스, 메르카츠 두 대장의 대화에 다들 끄덕였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 새로이 설립된 최전선의 사령부 구성은 이렇다.
  사령관 : 그라이프스 대장
  부사령관 : 메르카츠 대장
  참모장 : 슈타덴 중장
  작전참모 : 뷘세 대령, 슈트라우스 대령
  정보참모 : 오벨슈타인 대령, 니들리히 대령
  후방지원참모 : 레폴트 대령, 이에나 대령
  그리고 장갑척탄병 제21사단장인 나,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중장.

  "오딘에서는 늦어도 열흘 정도로 반란군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연락이 있은 뒤 3일인가……."
  뷘세 대령, 슈트라우스 대령의 말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며칠 전, 오딘의 우주함대사령부는 반란군이 이제르론 요새로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그 지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예정보다 일주일 빠르군. ……역시 페잔은 동맹으로 기울어진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조가 없는 목소리로 오벨슈타인 대령이 지적하자 다들 떫은 표정을 지었다. 파울 폰 오벨슈타인. 얼굴색이 좋지 않은 애교 없는 자지만, 이 자만큼은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 평소 그대로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사령부 요원으로 골랐다고 하지만, 공작도 묘한 자를 선발했다.

  "이 사령부가 만들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르론 요새를 지켜야만 한다."
  그라이프스 사령관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사령부 구성원 전부가 이 사령부가 만들어진 이유를 이해하고 있다. 그 필요성도 포함해서.

  "반란군은 최소한 3개 함대, 제5, 제10, 제12함대……. 아군의 증원부대는 4개 함대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제르론에 도착하기까지 약 40일 정도는 걸린다고 봐야만 하겠죠."
  슈타덴 참모장의 지적에 오벨슈타인 대령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40일 동안 단독으로 버텨야만 한다. 게다가 반란군은 정예부대를 보내왔다. 그것이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주류함대 상태는 어떤가?"
  "역시 출격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지요. 간단한 적이 아니라는 건 인식하고 있습니다. 방면군 사령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체면을 위해 출격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방면군 사령부의 성과, 라고 볼 수 있겠구만."
  그라이프스 사령관과 메르카츠 부사령관의 대화에 다들 서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한 사람만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일단은 오딘, 그리고 뮈젤 제독에게 연락을 보내도록 하지. 잘 도착하면 좋으려만……. 그리고 주류함대는 언제든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게. 부탁하지."
  그라이프스 사령관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일단은 이걸로 끝이려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슈타덴 참모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뮈젤 제독이 증원군의 총사령관이라 들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아직 젊은데다 대군을 지휘한 경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령부 구성원이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무리도 아니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은 아직 20세도 되지 않은 대장인 거다. 불안을 가지지 말라는 게 더 어렵겠지.

  "걱정할 필요 없겠죠. 이전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뮈젤 제독을 천재라고 평했던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관도 한 번 실전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만 극히 유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슈타덴 중장은 불만스러워 보인다. 이유는 알고 있다. 아마도 질투겠지. 자신보다도 젊은 인간이 자신보다도 높은 자리에 있다. 그 점이 재미 없는 거다. 뮈젤 제독에 대한 질투, 그리고 공작에 대한 질투. 이전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에서도 두 사람에 대해 꽤나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공작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양자가 되었기에 공작에 대해선 반감을 향할 수가 없어졌다. 그런 만큼 뮈젤 제독에 대해 적의를 향하고 있는 거겠지. 이상한 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그런 그를 한직으로 돌리지 않고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의 참모장에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오벨슈타인도 그렇고, 슈타덴도 그렇고, 공작도 묘한 짓을 한다.

  "참모장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뮈젤 제독이 개인적으로 친하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공작이 감정이나 사적인 인연으로 인사를 행한 적이 있다고는, 소관은 소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겠죠."
  내 말에 그라이프스 사령관이 끄덕였다.

  "뤼네부르크 중장의 말대로다. 애초에 그런 시시한 인물이라면 이 사령부를 만들고자 하지도 않았을 테지. 뮈젤 제독을 신용하도록 하세."
  그라이프스 사령관의 말에 슈타덴 중장이 "실례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런이런.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움직이는 이상 삐걱거릴 수밖에 없나…….
  빨리 반란군이 처들어왔으면 좋겠다. 시시한 감정 따위 반란군이 날려버려주겠지…….



우주력 796년 7월 14일. 자유행성동맹군 총기함 아이네이아스. 양 웬리



  동맹군 총기함 아이네이아스의 함교는 침통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제국군은 나오지 않는군. 역시 방면군 사령부 때문인가."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의 말에 사령부 구성원이 각각의 표정으로 끄덕였다. 어떤 자는 역시라는 표정, 그리고 어떤 자는 저주스럽단 표정을 짓고 있다.

  지금까지 이제르론 요새 주류함대는 극히 호전적이었다. 요새와 협력하는 것보다 공적을 겨루기 위해 항상 적극적으로 출격했다. 우리들이 통신방해를 시작한 것이 이틀 전. 저쪽도 이제르론 회랑 내부 어딘가에 우리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출격해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 주류함대를 유인하기 위해 어느 통신을 보냈지만 이제르론 요새에서 함대 출격은 보이지 않는다.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의 말대로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 때문이겠지. 그게 없다면 주류함대는 벌써 출격했을 것이다.

  "어떻게 합니까? 주류함대 출격은 없다고 보고 작전을 개시합니까?"
  그린힐 참모장이 묻자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이 약간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조금 더 기다려보지. 적이 망설이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시간을 두고 몇 번인가 통신을 보내주게."
  사령장관의 말에 몇 사람인가가 끄덕였다.

  "어느 정도 기다리실 건지?"
  "그렇군. 6시간 더 기다려 보지. 작전 개시는 6시간 후로 한다. 로젠리터. 순양함 준비를 시작해주게."
  "알겠습니다."
  6시간인가……. 적당하겠지. 그 이상 기다리면 상대방이 의심하기 시작한다. 함대가 출격해주는 편이 성공률이 높겠지만 어쩔 수 없다.

  ……역시 시기를 놓친 걸지도 모르겠다. 함교의 침통한 분위기를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가슴을 채우고 만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가 없었다면 주류함대가 출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작전 실시는 더욱 쉬워졌을 거다. 반년, 아니 3개월 빨랐다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력 487년 7월 14일. 이제르론 요새,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기묘한 연락이 들어왔다. 방해전파 때문에 드문드문 끊긴 통신이지만 오딘에서 중요한 연락사항을 가지고 브레멘급 경순양함 한 척이 이제르론 요새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회랑 내부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 현재 도주 중. 이제르론 요새의 구원을 요청한다고…….

  통신은 함정일 거라는 결론이 바로 나왔다. 열흘 전에 증원군을 보낸다고 오딘에서 연락이 있었다. 오딘은 반란군이 처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순양함 한 척을 파견했다면 거기에 대해서 설명했을 테지. 이 통신은 주류함대를 유인하여 요새와 분단한 뒤 공격하려는 반란군의 책략임이 틀림 없다.

  운이 좋았다고 보는 게 옳겠지. 페잔의 연락이 있었기에 반란군의 함정을 간파할 수 있었다. 혹시 페잔의 연락이 없었다면 이쪽도 망설이고 있었을 것이다. 출격하자는 제안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아군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만큼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도 없다.

  다들 출격을 유인하려는 함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와중, 나는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브레멘급 경순양함이 실제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 때 사령부는 혼란에 빠지겠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는가, 정말 아군이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아닌가…….

  사령부는 도망쳐 온 경순앙햠을 받아들이자는 사람과 함정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나뉘겠지. 하지만 도움을 요청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우려가 맞다면 경순양함 안에 있는 것은 로젠리터일 것이다…….

  당연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적다. 그렇다면 그들의 노림수는 사령부 중심을 점령하여 제국군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 틈을 타서 요새를 공략한다. 그런 계획이겠지. 아마도 작업도구도 준비했을 거다.
  슬슬 나도 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할까. 한 번 어깨를 나란히하고 싸웠든 놈들이다. 나름대로 경의를 표해줘야겠지…….



우주력 796년 7월 14일. 이제르론 요새. 발터 폰 쇤코프



  "함장인 폰 라켄 소령이다! 어떻게 된 거냐! 주류함대는 어째서 원군을 보내지 않았나! 우리들을 죽게 내버려둘 셈이었나!"
  소리 높여 고함 치자 마중한 젊은 장교가 우물우물 말을 더듬었다. 이쪽은 부상 당한 것처럼 변장하고 있다. 상대방은 죄악감 때문인지 제대로 시선을 맞추고 있지 못하다. 좋은 상황이다. 더욱 시선을 강하게 하자 상대방이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였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관과 만나고 싶다! 우리들은 제도 오딘에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이번 사태에 대해 묻고 싶은 것도 있다. 반드시 사령관 각하와 만나야만 한다!"
  "아,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서둘러 안내를 시작했다. 아마도 방면군 사령관으로 데려가서 자신은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마중으로 나온 걸 후회하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복도를 잰걸음으로 나아간다. 내 뒤를 린츠, 브룸하르트, 크라프트, 클로네커가 따라왔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좋다. 이곳저곳이 손상된 순양함으로 이제르론 요새로 도망쳐왔다. 후방에서 쫓아오는 동맹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포격이 맞을 리는 없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한 때가 몇 번이나 있었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를 제압한 뒤 외부의 동맹군에게 연락한다. 요새 주포, 토르 해머를 쓰지 못하게 만들면 단숨에 동맹군이 달려들겠지. 요새 공략은 불가능하지 않다.

  정면에 문이 보였다. 꽤나 커다란 문이다. 당연하지만 내부 공간도 넓겠지. 아무래도 거기가 사령부인가……. 안내를 해준 장교가
  "이쪽으로. 정면의 방에서 더욱 안쪽이 사령부입니다."
  라고 말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뒤를 이어 방으로 들어갔다. 사방 20미터 정도의 방이다. 정면에 또 하나 문이 있었다. 좌우 벽에도 문이 하나씩 있다.

  안내역의 장교가 정면 문으로 다가간다. 린츠, 브룸하르트에게 시선을 향하자 희미하게 끄덕였다. 여기부터가 승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자 양쪽 문에서 제국병이 다수 나타났다! 의심을 샀는가?

  안내역 장교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 자는 한 순간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떻게 하지? 망설이지 마라. 전진하라! 여기에 머무르는 건 위험하다.
  "린츠, 블룸하르트, 따라와라."
  "예."
  먼저 들어간 장교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제국력 487년 7월 14일. 이제르론 요새,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쇤코프 일행이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아마도 양쪽 문에서 제국병이 나타나 서둘러 내가 기다리고 있는 이쪽 방으로 들어온 거겠지. 이걸로 그들은 앞뒤가 막히는 형태가 되었다. 이 방에는 40명. 그리고 저쪽 방에도 40명의 제국병이 있다.

  "이, 이건."
  "오랜만이군. 쇤코프."
  "네 놈, 뤼네부르크! 어째서 여기에……."
  망연한 표정을 지은 쇤코프가 우스웠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네 놈이 여기에 올 거라고 예측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마중하러 온 거다. 기쁘지? 아니, 그립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
  쇤코프가 입술을 깨물고 있다.

  "보는 대로 이쪽은 블라스터와 십자궁을 준비했다. 제플 입자는 쓸 수 없어. 얌전히 투항해라."
  "……."
  "개죽음을 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다고, 쇤코프. 지휘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해라."
  이상하군. 어찌된 건지 간원하는 듯한 어조가 되었다. 그걸 눈치 채고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쇤코프도 눈치챈 거겠지. 녀석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알겠다. 항복하지.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말해 봐라."
  "남겨진 녀석들에 대한 거다. 네 놈이라면 알겠지. ……아니, 우리들을 버린 네 놈은 알지 못하려나……."

  비아냥인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쇤코프는 이 남자치곤 드물게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겨진 부하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내가 망명했을 때 무척이나 괴로운 상황에 처했던 거겠지. 망명한 것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슴이 아팠다.

  "반란군에는 내가 연락을 하도록 하지. 너희들이 배신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의 정체를 간파했다고 말이야. 그걸로 됐나?"
  "그걸로 좋아. 배신자보다 정체를 간파 당한 얼간이가 차라리 낫다."
  쇤코프가 자조하고 있다. 심한 말이군. 포로가 된 것 때문에 낙담하고 있나. 조금은 위로해줄까.

  "그리고 네 놈들의 처우지만, 안심해도 좋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서 용사에게 걸맞는 대우를 하라고 들었으니까 말이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조금 놀란 것 같군, 쇤코프. 린츠, 블룸하르트들도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조금 더 놀라게 해줄까.

  "공작은 너희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
  "거짓말이 아니야. 진짜다."
  "그 애송이가 말인가?"
  입이 험한 놈이다. 제국 제일의 권력자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애송이라니……. 조금 놀려줄까. 나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능력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지만 조금 괴짜인 면이 있어서 말이야. 뭐라고 해야 할지, 색다른 것, 아니 악취미인 걸 좋아한다. 다행이군. 쇤코프. 공작의 마음에 들어서."
  쇤코프가 아연해하고 있다. 그리고 녀석들의 부하들, 내 부하들이 웃음을 참고 있다. 꼴 좋다. 하기야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쇤코프. 슈타덴, 오벨슈타인을 발탁하는 걸 보면 어떻게 봐도 취미가 나쁘다고밖에 할 수 없겠지.
  덧붙여 나까지 이상한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 나중에 주의해두록 하자. 공작에겐 위에 서는 자로서 조금 더 조심하도록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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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7월 9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라인하르트 폰 뮈젤



  휴가 중에 시급히 우주함대사령부로 출두하라는 호출이 들어왔다. 호출한 것은 우주함대 총참모장 메크링거 중장이다.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반란군이 이제르론 요새에 쳐들어왔다는 것, 두 번째로 높은 건 어느 바보 귀족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대충 그런 정도겠지.
  그렇다면 내 역할은 이제르론 요새를 향한 원군, 혹은 반란 진압……. 헌데, 둘 중 어느 것일런지…….

  키르히아이스와 함께 우주함대사령부로 향하자 그대로 사령장관실로 직행이었다.
  도중에 몇 사람인가 군인과 만났지만 다들 경례를 보내고 있다. 예전엔 눈치 채지 못한 척을 하며 만나지 못한 것처럼 날 피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적어졌다.
  군인만이 아니다. 귀족 중에서도 일부지만 목례를 보내는 사람이 생겼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무슨 일에서건 날 신경 써주고 있기에 날 무시하는 건 득책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로선 경의를 받는 건 기쁘지만 서두르고 있을 때 답례하는 건 성가시므로 예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이란 참 제멋대로다. 무시 당하면 열받고 경의를 받으면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그런 생각이 더욱 절절하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령장관실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메크링거 총참모장, 슈트라이트 부참모장이 있었다. 다들 엄격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만이 날 보고 희미하게 웃음을 띄우는 것이 보였다.
  "뮈젤 대장, 출두했습니다."
  "뮈젤 제독. 휴가 중에 죄송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정중하게 휴가 중에 호출한 점을 사과했다. 이런 건 조금 간지럽다. 뭔가 일이 터졌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공작은 이런 점에선 성실하니까…….
  "아뇨.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네. 조금……. 조금 더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곧 세 사람이 더 옵니다. 함께 듣는 것이 좋겠죠."

  세 사람? 함대사령관인가……. 그렇다면 바보 귀족의 반란은 아니겠군. 아마도 이제르론 요새에 반란군이 쳐들어온 거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켐프, 렌넨캄프, 파렌하이트 세 사람이 사령장관실로 날아들어왔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날아들어오는 것처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달려온 것 같다. 미세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다.

  "다 모인 것 같군요. 그럼 시잘할까요? 실은 페잔에서 조금 곤란한 연락이 있었습니다."
  페잔에서? 조금 곤란한 연락? 생각치 못한 말이다. 이제르론 요새에 반란군이 쳐들어왔다는 건 아닌가……. 켐프, 파렌하이트, 렌넨캄프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작이 시선을 메크링거 총참모장에게 향했다. 메크링거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최근 2주일 정도 전부터 반란군의 함대 중에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함대가 있다고, 페잔 자치령주, 아드리안 루빈스키에게서 렘샤이트 백작에게 연락이 있었다고 합니다."
  켐프, 파렌하이트, 렌넨캄프의 얼굴에서 아까 전부터 보였던 의아한 표정이 사라졌다. 세 사람 모두 긴장하고 있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훈련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란군의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로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주일입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열흘 정도면 이제르론 요새에 도착하겠군."
  켐프, 렌넨캄프, 두 사람이 속삭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보고가 사실이라면 그들이 말한 대로겠지. 오딘에서 이제르론 요새까지 약 40일. 한 달 저도는 이제르론 요새는 단독으로 방어전을 강요받게 된다…….

  "하지만 2주일이라니……. 페잔에서의 보고가 꽤나 늦어졌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묻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웃음을 터트렸다.
  "페잔의 변명으로는 확인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던가……. 참 그럴싸한 변명입니다."
  웃고 있는 건 공작뿐이다. 다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역시 페잔은 제국의 패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각하. 웃을 일이 아닙니다. 렌넨캄프 제독의 말대로, 앞으로 열흘이면 반란군이 이제르론 요새로 처들어옵니다."
  파렌하이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나무랬지만 공작은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좀 더 빠를지도 모릅니다. 파렌하이트 제독. 2주일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페잔의 변명입니다. 내일 이제르론 요새가 반란군의 대군에 포위당해도 저는 놀라지 않을 겁니다."
  공작의 지적에 켐프가 신음소리를 냈다. 그렇군. 낙관은 할 수 없다. 공작은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 기분 좋아 보이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메크링거 총참모장이 곤란하단 시선을 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수 각하. 파렌하이트 제독의 말이 맞습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아니. 페잔의 지혜도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고 감탄했을 뿐입니다. 꽤나 즐겁게 해주네요."
  다시 총참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미 이제르론 요새에는 경고를 냈습니다. 오딘에서도 원군을 보냅니다."

  "그럼 우리들이."
  "네. 뮈젤 제독께선 증원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켐프 제독, 렌넨캄프 제독, 파렌하이트 제독을 이끌고 이제르론 요새로 향해주시길 바랍니다."
  메크링거 총참모장의 말에 몸 속에 열기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증원군의 총사령관, 4개 함대의 지휘권이 나에게 있다. 이 정도의 대군을 이끄는 건 처음이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고양되는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있으니 내 귀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뮈젤 제독, 동향을 파악할 수 없는 반란군의 함대입니다만, 제5, 제10, 제12함대의 3개 함대라고 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지나가는 듯이 말했지만, 사령장관실 분위기는 단숨에 굳어졌다. 제5, 제10, 제12함대……, 모두 반란군의 정예부대다. 방심할 수 없다.

  "반란군 중에서도 정예부대라 해도 좋겠죠. 방심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그 외에도 동원 중인 함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페잔이 일부러 제5, 제10, 제12함대의 이름만 알려줘서 그쪽에만 주의가 쏠리도록 꾸몄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작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다.

  "그렇군요."
  "저쪽에 도착하면 그라이프스 방면군 사령관과 협력하여 반란군을 격퇴해주세요. 유의해야 할 점은 이제르론 요새의 유지를 우선하여 생각할 것, 무의미하게 전선을 확대하지 않을 것, 두 가지입니다. 그 외엔 뮈젤 제독에게 일임합니다. 질문이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내 대답에 공작이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에게도 시선을 향했다. 누구도 말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다시 한 번 끄덕였다.
  "그럼 뮈젤 제독, 나머진 부탁합니다. 출발이 언제가 될 지,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사령장관실에서 물러나고, 켐프, 렌넨캄프, 파렌하이트와 1시간 후에 브륀힐트에서 회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때까지 그들은 자신의 함대가 출격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확인해주겠지. 나도 대체적인 건 알고 있지만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브륀힐트에선 케슬러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사령장관에게 불렸다는 건 키르히아이스가 모두에게 전해주었기에 이야기는 빨랐다. 출격을 상정하여 준비에 들어갔던 것 같다. 보급, 그리고 함선에서 멀어져 있던 장병을 불러들이는 데엔 대략 24시간 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타당하다고 봐도 좋겠지.

  사령장관실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에게 이야기하자 브륀힐트 함교에는 흥분의 목소리가 흘러 넘쳤다.
  "최소한 그 3개 함대가 움직이고 있는 건 사실이겠죠. 정예부대로군요. 반란군도 꽤나 각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심할 수 없겠습니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4개 함대의 지휘관입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각하를 신뢰하고 있군요."
  "……그렇게 생각하나? 케슬러."
  내가 묻자 케슬러가 묘한 표정을 보였다. 케슬러만이 아니다.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사령장관실에선 이제르론 요새 유지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무의미하게 전선을 확대하지 말라고 들었다. 우주함대는 아직 편성 중에 있는 이상, 당연한 이야기지. 하지만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는데……."
  나는 신용이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애 취급 받고 있다. 그 때 그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케슬러가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놀라 지켜보는 와중 한 사람 케슬러가 웃는다. 애 같다고 생각했는가? 불쾌감이 몸을 감쌌다.
  "뭐가 웃긴가!"
  나로서도 꽤나 험한 목소리가 나왔다 생각했다. 케슬러는 웃음을 멈췄지만 웃기단 표정을 짓고 있다. 찌릿하고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걱정한 건 뮈젤 제독에 대한 게 아니라고 소관은 생각합니다."
  "……."
  "공작이 걱정한 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제독 세 사람에 대한 것이었겠죠."
  세 사람? 켐프, 렌넨캄프, 파렌하이트? 어떻게 된 일이지?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어딘지 모르게 납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키르히아이스도 그렇다. 그들에겐 뭔가 짐작 가는 부분이 있는 건가…….

  "무슨 뜻이냐?"
  "켐프 제독, 렌넨캄프 제독, 파렌하이트 제독, 세 사람 모두 공작에게 발탁되어 소장에서 중장으로 승진한 함대사령관입니다. 그걸 꽤나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훈련도 다른 제독들에 비해 꽤 일찍 끝내고 있습니다. 초조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아……."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그런 건가. 케슬러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다들 뭘 납득하고 있는 건지, 이제야 알았다. 공작은 그 때, 내게 방침을 전하면서 세 사람에게 시선을 향하며 확인했다. 그건…….

  "이제 아셨습니까?"
  "그래. 경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아."
  케슬러의 웃음이 커졌지만 내 분통은 잠들었다.

  "공적을 올리기 위해 서두른 나머지 무리할지도 모른다, 뮈젤 제독의 지휘도 얌전히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신 거겠죠.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 기본방침을 전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소관도 참모장의 말대로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혼란을 일으키면 오히려 반란군에게 빈틈을 보이게 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나는 그렇게나 믿음직하지 못하게 보였는가? 그들을 통제하지 못할 거라 생각될 정도로……."
  케슬러, 뮐러의 말은 지당하다. 하지만 그래도 불만은 남는다. 역시 애 취급 받고 있다. 나이가 어려서 가볍게 보이고 있는가……. 분통은 사라졌지만 불만은 남았다. 공작에게, 그리고 세 사람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뮈젤 제독이 계급도 위고 최종적으로는 그들도 제독의 지시에 따를 테지요. 하지만 반발은 했을 테고 응어리가 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중의 일을 생각하면 결코 좋은 일은 아닙니다. 아마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그걸 고려한 거겠죠."

  케슬러의 말에 다들 끄덕이고 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공작이 내 입장을 고려해준 거라는 것도. 하지만 그래도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건 아집인 거겠지."
  내 말에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키르히아이스도 그렇다. 알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불만이다…….

  "그 말이 맞습니다. 아집입니다."
  "케슬러……."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케슬러도 어이가 없겠지. 구제불능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심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불편한 분위기가 풍겼지만, 케슬러는 표정을 바꾸는 일 없이 말을 계속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빼면 우주함대에서 최상급자는 뮈젤 제독입니다. 이를테면 공작의 부대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뮈젤 제독이 젊고 경험이 적은 탓에 많은 자들이 제독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케슬러 참모장!"
  키르히아이스가 소리를 높였지만 케슬러는 손을 들어 그 발언을 막았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당연하지만 그 점을 알고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뮈젤 제독에게 4개 함대를 맡기고 원군 총사령관에 임명했습니다. 제독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혹시 신뢰하지 않는다면 공작 스스로 함대를 이끌고 이제르론으로 향했을 겁니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뮐러가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키르히아이스조차 케슬러를 더 이상 막으려 하지 않는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4개 함대를 뮐러 제독에게 맡기는 것으로 제독이 우주함대의 넘버2라는 것을, 자신의 부대장이며 복수의 함대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주변에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

  "그렇기에, 제독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소관은 생각합니다. 결코 제독을 얕본 것이 아닙니다. 이후의 군부를 생각한 것입니다. 거기에 불만을 품어서야, 이번엔 뮈젤 제독이 주변에서 부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난을 받게 되겠죠."
  "……."

  냉엄한 말이다. 하지만 마음에 저며들어왔다. 케슬러는 내 걱정을 해주고 있다. 예전엔 무시 받는 것에 익숙했다. 그걸로 나 자신을 분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받아 들어지고 배려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 걸로 새로운 불만을 품으려 하고 있다. 케슬러의 말대로 아집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케슬러 참모장. 경의 말이 맞다. 내 실수였다."
  내가 사과하자 케슬러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뇨. 이해해주셔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말이 지나쳤던 점, 사과 드립니다."
  "아니, 경의 조언. 마음에 저며들었다. 감사를 표하지. 앞으로도 내 잘못이 있다면 사양 없이 말해주게."
  "예."

  주변에서 다행이란 분위기가 흘렀다. 다들 안심한 거겠지.
  "예전 일이 생각나는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서 준엄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개인의 공적이 아니라 군대의 승리를 위해 행동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고립되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끝난다고……. 지금 케슬러 참모장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 진보가 없군. 나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공작에게 맞서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군대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승리를 위해, 그걸 우선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그 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황제가 될 것을 목표로 하는가, 아니면 포기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협력하는가……. 나도 키르히아이스도 그 문제에서 고의로 눈을 피하고 뒤로 미루고 있다…….
  그렇기에 공작의 호의를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각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케슬러 참모장의 조언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진보가 없다며 자책하실 일이 아닙니다."
  "뮐러……."
  뮐러가 나를 위로하는 눈으로 보고 있다.

  "단지 신경쓰셔야만 합니다.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주변의 주목을 받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한 마디, 생각 없는 한 마디가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각하께선 이미 그런 입장에 있다는 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케슬러 참모장의 조언도 그런 의도라고 소관은 생각합니다."

  케슬러를 봤다. 뮐러의 말에 끄덕이고 있다.
  "그런가……. 뮐러 소장. 잘 알았다. 이후엔 신경 쓰도록 하지."
  조심하자. 그리고 답을 내자. 언제까지나 문제에서 눈을 돌리고 있어선 안 된다. 이대로는 불안정해질 뿐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우주통일력 원년 2월 3일. 오딘, 신무우궁. 라이너 폰 게르라흐

 

  "이게 동맹 정부가 제출한 국채 사용 내역인가."

  "예."

  "총액 250억 디나르, ……조금 많은 게 아닌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의문을 표하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조금 많다. 재무성에서도 그 점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다. 부적당하게 많다는 건 아니다.

 

  "재무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금 많이 계상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깎을 것을 상정하고 있는 거겠죠."

  내가 답하자 후작이 "흠"하고 재미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 원수에게 시선을 향한다. 다시 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겠죠. 어느 나라라도 재무 관료의 업무는 세금을 뜯어내는 일과 타인이 만든 예산안을 삭감하는 일입니다. 덤으로 지갑 주머니를 꽉 쥐고 있는 일."

  이번엔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경은 심한 말을 하는군."

  "제가 틀린 소릴 했습니까?"

  "아니. 나도 재무상서를 역임한 적이 있으니 그 부분은 이해하고 있네. 부정할 순 없지. 예산 절충은 흥정이나 마찬가지니. 지금 생각해도 지긋지긋하군."

  옛일을 생각한 거겠지. 후작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 말대로다. 예산 절충 시기는 위가 아파온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받아들일 건가?"

  후작이 나와 원수를 돌아봤다.

  "재무성에선 받아들여도 좋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호오, 드문 일이군."

  리히텐라데 후작이 재미있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않아도 말이지…….

 

  "이 예산안에 대해 하이네센의 엘스하이머 대사에게서 디나르 통화 가치가 하락 경향에 있다는 점, 이대로 가면 군축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렇군."

  "게다가 경기부양책은 어중간하게 해선 효과가 없습니다."

  "어차피 할 거라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건가."

  "예."

 

  동맹령이라면 지금까지도 이제부터도 1디나르는 1디나르지만, 페잔 마르크, 제국 마르크와 비교하게 되면 그렇게만 말하고 있을 순 없다.

  경기부양책이라고 한다면 공공사업이겠지만, 변경 개발에는 페잔의 협력이 필요하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비용이 커지게 되겠지.

 

  그리고 동맹의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한 동맹군의 군축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동맹군 군축은 제국군의 재편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맹군 해체가 진행되지 않는 한 제국군 재편도 있을 수 없는 거다. 다시 말해 재무성은 군사비 삭감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미 제국령내의 변경성역에선 개발이 노동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까지 진척되어 있다. 아니 필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군대에서 민간으로 인원을 돌리고 동시에 군사비를 깎아 변경 개발로 돌린다. 그에 의해 더욱 개발을 진행시키고 변경을 개발한다. 제국의 재무 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하며 변경을 개발하기 위해선 시급하게 실시해야만 한다.

  동맹의 경기부양책은 제국의 안전보장, 재무문제, 경제문제 그 자체인 것이다. 재무 관료가 동맹에게서 받은 제안에 다소 눈썹을 찡그려도 목소리 높여 반대하지 않는 건 그것 때문이다.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령장관."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디나르의 화폐 가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화폐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볼테크로부터 우려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리고 화폐 통일은 국가 통합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급히 동맹의 경제를, 디나르를 안정시켜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필요합니다."

  그렇군. 그게 있었나. 리히텐라데 후작이 크게 끄덕였다.

 

  "알았다. 동맹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원수가 고개를 숙였기에 서둘러 나도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통일이라니 성가신 일이다. 저쪽의 일까지 고려해야만 하니까 말이야. ……단순 계산으로 부담이 2배로군."

  정말이지 동감이다. 군사비의 증대, 유족연금의 증가, 세수 감소에서 겨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우주통일력 원년 2월 17일. 하이네센. 양 웬리

 

  "군대를 그만 뒀다고? 퇴역이 받아들어졌다고 카젤느에게서 들었다."

  "지금의 동맹군에서 저 같은 사람은 필요 없겠지요. 지금 필요한 건 카젤느 선배 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답하지 시톨레 전 본부장이 희미하게 끄덕였다. 아무래도 걱정하여 방문한 것 같다. 혹은 카젤느 선배에게서 부탁을 받았던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인가?"

  "3월까진 이 관사에서 나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엔?"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닙니다만, 페잔이라도 가볼까 하고……."

  "페잔인가."

  "예."

  시톨레 전 본부장이 다시 끄덕였다.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율리안은 페잔으로 가고 싶어하고 있다. 율리안이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일반인으로 끝날 것인지, 혹은 국가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하지만 가능성을 생각하면 하이네센에 있는 것보다 페잔으로 가는 편이 좋겠지. 지금부터 우주는 틀림 없이 페잔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안에서 율리안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지…….

 

  "우연이군. 실은 나도 페잔으로 가게 되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동맹의 대사로서 페잔에 취임하게 됐어."

  "그건……."

  "바로 얼마 전까진 아무도 대사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시톨레 전 본부장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레벨로 의장 곁에 스스로 대사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제국이 동맹이 제시한 국채안을 삭감하는 일 없이 승인했지. 그것 때문에 제국을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한 것 같아. 당연하지만 제국에는 제국의 생각이 있다. 국채안을 승인한 것도 그 생각에 의한 거다. 제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양. 자네라면 알겠지?"

  "예."

  알고 있다. 호의나 선의만으로 제국이 움직일 리가 없다. 그들은 극히 냉철하다. 동맹의 요구를 받아들인 건 거기에 제국에게 있어서도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이해하는 사람은 대사가 되려 하지 않아. 어려운 임무가 될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대사에 필요한 사람은 그 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각하께서?"

  "그래. 레벨로에게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각하가 웃음을 지었다.

 

  "양. 어떤가? 자네도 함께 가지 않겠나? 날 도와주길 바라네만."

  "돕는다……?"

  "내 실무자로서 페잔으로 함께 가주길 바라네."

  "……."

  "방금 전 자네는 동맹군에는 자신이 필요 없다고 말했었지. 그럴지도 모르네. 하지만 페잔에는 자네가 필요하네. 적어도 나에겐 자네가 필요해."

  내가 필요하다?

 

  "각하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시톨레 전 의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자네에게 권하기 위해 왔네."

  "……."

  "양, 제국에선 중앙은 전제군주제지만 지방자치에선 민주공화정을 도입해도 좋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있는 것 같아."

  "지방자치에서 민주공화정을……."

  시톨레 전 의장이 끄덕였다. 그런가. 지방자치라면 정치사상에 의한 대립은 적다. 그리고 영향도 한정된다.

 

  "그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아. 트류니히트 전 의장에게서 레벨로 의장에게 보고가 있었다."

  트류니히트 전 의장에게서…….

  "민주공화제를 끊어지게 해선 안 되네. 설령 지방자치라도 시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킨다. 그 이상을 남겨야만 하네. 아닌가?"

  "……."

 

  "그러기 위해선 우리들은 제국의 신뢰를 쟁취해야만 하네. 지방자치에 민주공화제를 도입해도 문제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거야. 도와주지 않겠나? 다들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다들?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질문하자 전 본부장이 끄덕였다.

 

  "제국에선 트류니히트 전 의장이 민주공화제를 남기기 위해 싸우고 있네. 동맹에선 레벨로, 호안이다. 우리들은 국가를 존속시키기 위한 싸움에 패배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민주공화제를 남기기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시톨레 전 본부장이 날 보고 있다. 강한 시선이다. 전 본부장에게 있어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거다. 아니, 전 본부장만이 아니다. 트류니히트, 레벨로, 호안, 그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멘주공화정 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제를 남기기 위한 싸움…….

 

  "알겠습니다.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네. 잘 부탁하지."

  "페잔에는 언제까지?"

  "6월에는 저쪽에 도착할 필요가 있어. 하이네센은 늦어도 4월 말에는 출발할 생각이야."

  그렇다면 2개월은 어딘가에서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나…….

 

  "주거가 필요한가?"

  "네."

  "이대로 4월까지 여기에 있으면 되네."

  "하지만."

  전 본부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자네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정부 직원이다. 관사에서 지내도 아무 문제 없어. 레벨로에겐 말해두었네. 샤논 국방위원장에게도."

  "그렇군요."

  아무래도 내가 페잔으로 가는 건 기정사실이었던 것 같다. 손바닥 위에서 춤췄단 느낌이 들지만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우주통일력 원년 3월 1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어떤가? 그쪽 상황은.」

  "나쁘지 않네. 이쪽이 제출한 국채 요청을 제국이 무조건으로 수용해줬으니까. 조금씩이지만 경제 상황은 향상되고 있어."

  「아직 실제로는 아무 것도 나아진 게 없지 않나? 」

  "선전 효과라는 거지. 제국은 동맹을 억압하려 하지 않는다고, 동맹 시민은 안심한 모양이다. 은연 중에 신제국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화면에 비춘 트류니히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제국이 이쪽의 제안을 무조건으로 받아준 것엔 솔직히 놀랐다. 엘스하이머의 조언도 있었다고 하지만, 제국 정부에도 동맹을 필요 이상으로 억압하려는 의사는 없는 거겠지. 물론 거기에는 동맹이 30년 후의 통일에 협력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럼 조금은 자네 입장도 괜찮아졌는가? 」

  "그렇지도 않아. 동맹 시민의 나에 대한 평가는 제국의 얼굴마담이자 배신자라고 하더군."

  「탄핵 운동이라도 일어나고 있는가? 」

  트류니히트가 걱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유감이지만 그런 게 일어날 정도로 최고평의회 의장 자리는 매력적이지 않아. 경제 공황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내 지위는 반석이라네."

  「그런가.」

  조금 쓸쓸한 표정을 트류니히트가 보였다. 그런 표정을 짓기 말게. 트류니히트. 정권이 반석인 건 좋은 일이니까.

 

  "그쪽은 어떤가? 트류니히트."

  트류니히트가 웃음을 보였다.

  「바쁘네. 이쪽은. 헌법 제정, 게다가 천도도 준비해야 하니까.」

  "그런가."

  「천도 때문에 가장 바쁜 건 궁내성이군. 황제 주거를 어떻게 할 건지 때문에 난리법석이야. 게다가 지금의 신무우궁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문제도 있어.」

  "그렇군."

  개인의 이사도 큰일인데 천도쯤 되면……. 잘 상상이 안 가는군.

 

  "그래서 신무우궁은 어떻게 되는가?"

  「처음엔 별궁으로서 유지한다는 게 궁내성의 생각이었네만. 유지비가 무지막지해서 말이야. 페잔에 천도하면 오딘의 별궁따위 15년에 한 번 쓸까 말까겠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판매하는 것도 어려워. 내무성은 골치를 썩히고 있어. 상담을 받은 재무성은 도망쳤다.」

 

  "그 판단은 올바르겠지. 나라도 재무상서였다면 도망쳤다."

  트류니히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동감이다. 궁내성 내부에는 일부를 별궁으로 하고 나머지를 해체하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어. 하지만 그 해체할 비용도 막대하고 신무우궁은 역사적인 가치도 있으니까. 해체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해.」

  그렇군. 제국은 500년 동안 이어져왔다. 신무우궁은 500년 동안 제국의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해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한 건 당연하겠지.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가?"

  「그대로 박물관으로서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건 어떤가라는 의견이 나와있어. 영화 회사의 촬영지로서 이용한다든가. 그 수익으로 지금 상태대로 유지 관리하는 거다.」

  "그러군. 재밌는 생각이다. 영화 촬영에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겠지. 흑진주의 홀이라든가."

  트류니히트가 "그럼, 그럼"이라며 기분 좋게 끄덕였다.

 

  「참고로 발안자는 나다. 정부가 천도하면 오딘은 활기를 잃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신무우궁만이 아니라 정부 관계의 건물이 여러 채 있어. 관광도시로서 재탄생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네. 궁내성은 싫은 표정이지만 재무성은 양손을 들고 찬성하고 있지.」

  "뭐야. 자기 자랑인가."

  「뭐, 그런 걸세.」

  둘이서 소리 높여 웃었다. 이렇게 웃은 건 오랜만인 기분이 든다. 기분이 좋았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주변의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네. 그렇게 되면 이런저런 정보도 들어오니까 말이야.」

  "수고하는군. 트류니히트."

  트류니히트가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쳐를 취했다.

  「걱정 없네. 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어. 게다가 이제 곧 시톨레 원수, 양 제독과도 만나게 되겠지.」

  "그렇겠군."

 

  「자네야말로 무리하지 말게. 조금은 휴식도 취해.」

  "노력하라곤 말하지 않는 건가?"

  「말하지 않아도 노력하고 있겠지? 」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성격이라서."

  「조심하게. 발렌슈타인 원수도 자네를 걱정하고 있어. 진지한 건 좋지만 자신을 너무 몰아 세우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그런가."

  발렌슈타인이…….

 

  「냉철하긴 하지만 의외로 사람을 돌보는 구석도 있어.」

  "의외? 그렇게 말해도 좋은 건가?"

  「정정하지. 무척이나, 라고 말이야.」

  다시 둘이서 웃었다.

  「지금은 내가 통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직접 대화하는 것도 좋겠지. 적이라면 만만찮지만, 아군이라면 든든한 상대다.」

  "아군인가……."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얼굴에 웃음기는 없다.

 

  「아군으로 삼아야 하네. 레벨로. 적대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면서 민주공화제의 존속을 목표로하는 거야.」

  "그렇군."

  트류니히트는 제국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혼자에게만 맡겨둬선 안 되겠지. 제국과 협력 체제를 강화한다. 그걸로 제국의 신뢰를 얻는다. 설령 동맹 시민에게서 배신자라고 경멸을 받는다 하더라도…….

 

 

---

 

 

ps.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본편은 최종 갱신 2016년 6월 18일, 294화를 끝으로 사실상 연중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코코아가 우주를 통일할 것이라 믿으며!

Posted by 추리닝백작
,

우주력 799년 11월 6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어제, 레벨로 의장이 제국이 제안한 신력을 받아들이고 내년부터 실행할 것을 제국에 요청한다고 의회에서 발표했다. 의회는 난리가 났다. 의원들은

  "납득할 수 없다."

  "루돌프 대제 탄신기념일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다."

  면서 의장에게 달려들었지만 의장은 완전 무시. 전날까지는 의장도

  "수용은 신중하게"

  라며 말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의원들도 레벨로 의장이

  "자유행성동맹은 제국의 동의 없이 국채 하나 만족스럽게 발행할 수 없는 보호국이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시민의 생활을 희생할 각오가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제국의 요청은 기본적으로 수용하는 방침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라고 말하자 반대하지 못했다.

 

  그래도 의장에게 사임하라고 말하는 의원도 있었지만 의장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자네들이 자리를 대신해준다면 얼마든지 기쁘게 사임하도록 하지. 하지만 자유행성동맹 평의회 의장 자리가 얼마나 불편한 자리인지 이해하고 있는가? 그걸 이해하고 자네들은 그 자리에 앉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동맹에선 최고의 지위일지도 모르지만 제국에서 보면 신하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목을 칠 수 있는 신하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끝. 한심하다.

 

  하지만 레벨로 의장이 말한 것도 사실이다.

  제국이 그럴 마음이 있다면 의장의 목을 날리는 것 정도야 간단하겠지. 뭐라 해도 동맹 정부는 제국의 동의 없이는 예산 하나도 만들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간다르바에는 제국군 2개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지금의 동맹에는 제국군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은 어디에도 없다.

 

  심야 뉴스에는 신력에 대한 것과 레벨로 의장의 변모에 대한 것으로 난리법석이었다.

  하지만 신력을 수용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왜냐하면 자유행성동맹 건국기념일이라든가 은하연방 건국기념일이라든가 들어 있으니까 루돌프 대제 탄신기념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렇긴해도 말이야. 루돌프 대제 탄신기념일에 축하따위 하고 싶지 않은 걸. 학교가 쉬는 건 기쁘지만.

 

  오히려 뉴스 아나운서들이 놀라고 있는 건 레벨로 의장의 변모였다. 나도 놀랐다. 레벨로 의장이 갑자기 제국의 대리인처럼 되어 버렸으니까.

  그야 제국이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뭔가 납득할 수 없다. 아나운서들은 레벨로 의장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겠냐고 말하고 있다.

 

  제국군은 귀환했다. 동맹 시민은 동맹이 제국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제국의 요청을 반대하려 한다. 아마도 의장은 제국에게서 심한 갈책을 받은 거겠지. 그렇기에 서둘러 신력 수용을 발표했다.

  다시는 제국에게 갈책을 받지 않도록 동맹 시민에게 현실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동맹 시민에, 의회에게 엄격하게 나왔다…….

  아나운서가 말한 거지만 의장에게 있어선 제국보다도 동맹 시민 쪽이 더 성가신 존재라는 것 같다. 이상하네.

 

 

 

우주력 799년 12월 12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어제 TV에서 이상한 방송이 있었다. 페잔에서 이뤄진 토론회를 촬영한 방송이었다.

  토론회 같은 건 재미 없기에 채널을 바꾸려고 했더니 엄마에게 "바꾸면 안돼"라고 혼났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방송이라는 것 같다.

  어른들 사이에선 중요한 문제라 이걸 보지 않으면 대화에 따라갈 수 없다며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시청했지만, 출연자는 은하제국, 페잔의 정치학자, 역사학자였다.

  페잔에도 정치학자라든가 역사학자가 있구나.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토론 내용은 조금 알기 어려웠다.

  엄마가 설명해준 거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의 은하제국은 루돌프가 만든 은하제국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골덴바움 왕조의 이름으로 부르는 건 옳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다른 왕조, 신왕조라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골덴바움 가문이 황제를 배출하고 있으니까 골덴바움 왕조가 아닌가, 라는 토론이었다.

 

  나도 골덴바움 왕조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신왕조로 취급해야 한다는 사람의 주장도 꽤나 논리정연해서 재미있었다.

  본래 루돌프가 만든 왕조라는 건 긴 세월 동안 부적합한 구석이 나오기 시작하여 어쩔 도리가 없어졌다. 사실은 붕괴하든가 분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정치적 부패, 혼란이었다.

  정말로 분열하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면 동맹이 제국을 지배하여 우주를 통일할 수 있었을 거다.

 

  프리드리히 4세는 신뢰할 수 있는 신하들과 함께 제국의 재건을 실행했다.

  하지만 그 때 프리드리히 4세가 재국 재건의 이념으로 한 것은 루돌프가 내건 이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그게 3년 전의 5개조 칙령문이었다. 이념이 다른 이상 같은 은하제국이라고 할 수 없다.

  혁명 없이 같은 일족이 황제로서 군림하고는 있지만 같은 왕조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신왕조라 해야 하지 않은가, 라고.

  반론하는 사람은 골덴바움 왕조는 골덴바움 왕조이며 신왕조론 같은 건 어차피 과거의 악행에서 도망치기 위한 뻔한 수작이라고 비판하고 있었다.

 

  엄마는 신왕조론에 "그렇네"라며 몇 번이나 끄덕이고 있었다.

  신왕조론에 찬성하는 거냐고 물으니 "실제로 심한 취급은 받고 있지 않잖아?"라고 되물었다. 루돌프 제국이었다면 우리들은 다들 반역자의 말예로 심한 취급을 받고 있었을 거라며. 합병에 30년의 유예를 준 것은 동맹 시민에 대해서 고려해준 것이라며.

  뭐, 엄마는 친제국파니까.

 

  오늘 학교에 가니 토론회를 봤던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나와 마찬가지로 가족이 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시청한 것 같다. 하지만 좋은 내용이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신왕조론을 다들 꽤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말한 거지만 신왕조론을 주창한 제국의 학자는 제국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 학자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건 학자의 의견이 아니라 제국의 의견이라고 봐야 한다고.

 

  제국은 동맹의 반 골덴바움 감정이 강하기에 그걸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의 신왕조론도 그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제국도 루돌프 때문에 고생이라고 말했더니 다들 웃었다. 자손에게서도 고생거리 취급을 받다니 불쌍하단 생각도 들지만, 심한 짓을 했으니까 자업자득일까.

 

  친구가 내년 여름에 「로엔그람 백작」이라는 영화가 상영된다고 했다. 걔네 아빠가 영화 회사에서 일하니까 틀림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로엔그람 백작? 제국에서 반역자로 처형된 사람인데, 그런 영화를 만들어서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누가 볼 사람이 있는 걸까?

 

 

 

우주통일력 원년 1월 1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부터 새로운 달력이다.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지만 그런 기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렸다. 아마도 동맹 시민은 다들 나와 같은 기분이겠지.

  오늘 제국이 신왕조 성립을 선언했다. 은하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과거의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과 결별하고 새로운 왕조, 신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한다고 말한 거다.

  경악했다. 평범한 신년 인사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작년부터 나오고 있던 신왕조론은 오늘을 위해서였구나. 그리고 페잔으로 천도하여 거기에서 우주를 통치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알고 있던 거지만 황제가 선언한 거니까 정말 페잔으로 천도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천도인가. 조금 상상하기 어렵다.

  오딘에선 폭동이라든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이네센에서 페잔으로 천도한다고 말했다간 하이네센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동맹에선 신왕조론에 대해 토론회라든가 강연회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특집이라든가 꾸리고 있는 신문도 많다. 조금씩 신왕조론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오늘 선언으로 단숨에 늘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의회에서 의원이 레벨로 의장에게 신왕조론에 찬성이냐고 질문했지만 레벨로 의장은 "물론"이라고 답했다. 제국은 헌법을 만들어 시민의 권리를 지키려 하고 있다. 어딜 봐도 다른 왕조겠지, 라며. 그걸로 끝이었다.

 

  신왕조론은 제국을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동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국에 협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맹인에게 있어 루돌프가 만든 제국을 인정하는 거냐는 비난은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4세가 만든 신제국, 신왕조라면 그런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런 거겠지.

 

  교활하다. 방식이. 아마도 발렌슈타인 원수다. 우주에서 가장 교활한 책략가. 비겁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모가.

  조금씩이긴 하지만 동맹인을 거미줄로 칭칭 올가매듯이 자신의 아군으로 만들고 있다. 정말이지 비겁하고 음침한 녀석이다. 다들 속고 있지만 나는 속지 않을 테니까.

 

 

 

우주통일력 원년 1월 10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눈앞에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국인이 있다.

  "율리우스 엘스하이머입니다. 이번에 자유행성동맹 주재 대사로 임명 받았습니다. 이게 제국 정부의 신임장입니다."

  임명장을 받아 내용을 확인한다. 확실히 율리우스 엘스하이머를 은하제국 대사로 자유행성동맹에 파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신자에는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 죠안 레벨로 님이라 쓰여 있었다. 그리고 서명은 은하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의 이름도 적혀 있다.

 

  "틀림 없군요. 잘 오셨습니다. 엘스하이머 대사.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 죠안 레벨로입니다."

  악수를 하자 격렬할 정도의 플래시가 집무실을 덮쳤다. 매스컴에게 있어서도 세기의 순간이다. 내일 1면은 이 사진이겠지. 우주통일 원년을 대표하는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

 

  은하제국의 황제가 자유행성동맹의 최고평의회 의장에게 신임장을 쓴다. 재차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앞으로 30년이면 그것도 끝난다고 쓸쓸하게 생각했다.

  좀 더 빠른 시점에서 동맹과 제국 사이에 강화를 맺을 수 있었다면……. 어느 시점이라면 양국 간에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

 

  매스컴을 내보내고 소파에 앉아 새삼 마주 앉았다. 젊다, 라고 생각했다. 트류니히트의 말로는 개명파 중 한 사람으로 발렌슈타인 원수의 신뢰가 두텁다고 한다.

  그리고 간다르바 성역에 있는 제국군의 지휘관, 코르넬리우스 루츠 원수의 매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도 고려하여 대사로 발탁한 거겠지.

 

  "대사관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대단찮은 일입니다. 마음에 드시면 좋겠습니다만."

  동맹 정부가 준비한 대사관이다. 일단은 도청기 탐색이 대사관 직원의 첫 업무가 되겠지. 하기야 그런 건 설치하지도 않았지만.

 

  "동맹 정부에서 제국으로 대사를 파견하는 건 언제쯤이 되겠습니까?"

  "처음엔 오딘으로 보내려 생각했습니다만 제국이 페잔으로 천도하는 게 되어 직접 페잔으로 보내기로 되었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이쪽에서 요청했다. 좀처럼 대사가 정해지지 않는다. 머리 아픈 일이다.

 

  "7월에는 천도가 끝날 거라 들었습니다. 준비 같은 것도 포함해서입니다만, 그 1개월 전에는 페잔에 도착할 필요가 있겠죠. 늦어도 4월 말에는 하이네센을 출발하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엘스하이머가 응응하고 끄덕였다.

 

  "제가 뭔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아뇨. 지금으로선 없습니다. 그보다도 제국으로 보낼 대사 인선도 이제부터 정해야하는 것이라……."

  "그렇게나 어려운 상황이십니까?"

  표정이 어둡다.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니까요. 동맹과 제국 사이에서 등만 터지는 자리가 아닌가, 불안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엘스하이머가 끄덕였다. 제국과 동맹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 제국은 승자, 동맹은 패자. 제국에서 동맹의 대사가 어느 정도 존중될 것인가,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발렌슈타인 원수는 동맹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취급을 받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유감이지만 동맹인 대다수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곤란한 일입니다."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니군. 그렇게 생각했다. 제국은 나름대로의 인재를 보낸 것 같다.

 

  "동맹 정부로선 시급히 군인을 민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경기부양책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말씀이 맞습니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게 되는 사태는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 정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엘스하이머가 끄덕였다.

 

  "국채 발행이군요."

  "말씀대로입니다. 협력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자유행성동맹군의 군축은 제국 정부도 바라고 있는 바입니다. 시급히 동맹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을 돕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가까운 시일 내에 검토회를."

  "알겠습니다."

  일단은 말을 우물가까지 끌고 오는 것까진 할 수 있었다. 나머진 말이 이쪽이 내미는 물을 마실지 아닐지로군…….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90년 11월 3일. 오딘,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드문 일이군. 경이 자기 발로 방문하다니."

  "조금, 겉으로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일을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그런 거라고 생각했네."

  할아범이 웃었다. 뭐, 그렇겠지. 나도 할배도 업무 외에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극히 무미건조한 관계지만 나는 싫지 않다. 할배도 마찬가지겠지.

  언젠가 취미에 대한 이야기라도 해볼까. 하지만 이 할배, 어떤 취미가 있는 걸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음모 꾸미기?

 

  응접실로 안내되어 홍차를 받았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신다. 11월 밤 정도가 되면 역시 서늘하다. 따뜻한 홍차가 몸을 따뜻하게 한다.

  "안사람이 기다리지는 않는가."

  "조금 늦어질 거라 말해뒀습니다."

  "그런가."

  또 한 모금, 홍차를 마시고 컵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조금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반란군 때문인가."

  "리히텐라데 후작. 그 단어는……."

  "그렇군. 실수했나?"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반란군이라 부르며 지낸 거다. 그리 간단하게 고쳐지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다.

 

  "후작의 눈에서 보실 때 지금의 제국과 10년 전의 제국, 같은 왕조의 제국으로 보이십니까?"

  "아니, 그렇게 볼 수 없겠지. 잘도 뭐, 이렇게나 바뀌었구먼."

  후작이 감탄했다. 진심이겠지. 나도 잘도 바뀌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렇지요. 제국인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동맹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작이 흠, 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코방귀를 끼면 국가의 중진이라기 보단 인상 나쁜 할배가 되는구만.

 

  "골덴바움의 악명이 조금 너무 강한 모양입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눈을 부릅 떴다.

  "경, 어처구니 없는 소릴 하는구먼. 5년 전이라면 불경죄로 치안유지국이 경을 체포했을 걸세."

  "네. 그것입니다. 동맹인이 가지고 있는 제국의 인상은."

  "그렇군."

  후작이 크게 끄덕였다.

 

  "우리들이 아무리 제국이 변했다고 인식하고 있어도 동맹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폐지되고 치안유지국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인이 가진 제국의 인상은 그 옛날 제국의 모습인 채입니다."

  "좀처럼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

  "변하지 않는 건지, 변하는 걸 거부하고 있는 건지……."

  "150년, 포학한 은하제국이라 비난해온 것이야. 간단히 바뀌지 않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불쾌한 가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들어주십시오. 가령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하고 동맹을 쓰러뜨려 30년 뒤에 통일한다고 선언했을 경우, 과연 동맹인이 제국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어떠했을까요? 지금과 같았을까요?"

  후작이 다시 흠하고 콧방귀를 꼈다.

 

  "로엔그람 백작을 예시로 들다니, 꽤나 심한 예시로구먼. 하지만 경이 하고 싶은 말은 알겠네. 당연히 다르겠지. 로엔그람에겐 경이 말하는 악명은 없어."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그건 그렇고, 라인하르트의 이름을 거론하는 순간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싫은 모양이다.

 

  "폐하께서 하신 일은 골덴바움 왕조, 아니 루돌프 대제와 결별을 하신 거라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정치, 사회체제는 근본부터 변했습니다. 이제 같은 왕조라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왕조의 명칭은 골덴바움입니다. 가문의 내용물은 바뀌었으나 외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맹인은 그 외견밖에 보질 못합니다."

  "그렇군. 악명 높은 골덴바움인가. 경이 말한 대로다."

  "……."

  "생각해 보면 찬탈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과거의 악명과 결별할 수 있으니까."

 

  어이어이,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거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리히텐라데 후작이 씨익하고 웃었다. 이 할배, 즐기고 있구만. 뭐, 나 정도의 상대가 아니면 이런 불경한 소리는 할 수 없나. 다른 녀석들은 어딘지 모르게 골덴바움의 이름을 사양하게 된다. 그건 그렇고 만만찮은 할배다.

 

  "유감입니다만. 제국은 찬탈이 아니라 개혁을 택했습니다. 뭐, 개혁이라기 보단 혁명에 가깝습니다만, 왕조 교체는 없습니다. 왕조의 시조는 루돌프 대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과거의 악명을 이어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가신 일이로고. ……그래서, 어찌할 건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여기에 온 것은 아닐 테니."

 

  "신왕조 성립을 선언하는 건 어떤가 하고."

  "이제 곧 신년인가. 실행한다고 한다면 그 때로군. 하지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그리고 역사학자, 정치학자를 이용하여 지금의 제국은 앞선 제국과 다르다는 걸 발표하게 하는 겁니다. 골덴바움 왕조는 개혁에 의해 전혀 다른 제국으로 재탄생했다.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낸 왕조도 앞선 왕조와 다른 새로운 왕조다, 라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웃었다.

 

  "경,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군. 신왕조 성립을 이론으로 만드는 건가."

  "그렇습니다. 학자들에게 루돌프 대제에 대한 비판을 하게 해도 좋겠죠. 그것 자체가 신왕조 성립을 돋보이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강연회, 토론회를 제국, 페잔, 동맹 이곳저곳에서 대대적으로 실행하는 겁니다. 당연하지만 제국 정부 주최로서."

  "동맹에서도인가."

  "그렇습니다. 엘스하이머의 첫 업무가 되겠죠."

  "마치 세뇌와도 같군. 반발할 걸세."

  다시 웃었다. 나도 웃었다. 확실히 세뇌에 가깝다.

 

  "상관 없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어선 동맹인의 의식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설사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제국은 자신들의 왕조가 과거의 골덴바움 왕조와 다르다며 말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겠죠."

  "알겠다. 제펠 학예상서에게 말해두지. 적당히 학자를 골라두라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왕조론. 적어도 동맹 내부에서 제국에 협력하려는 사람들에겐 받아들어지기 쉬운 이론이다. 그리고 그들 입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좋은 이론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퍼뜨린다. 그에 의해 점점 받아들이게 만든다.

 

 

 

우주력 799년 11월 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제국의 대사가 도착하는 건 1월이었지. 호안."

  "그래. 오딘과 하이네센은 멀다. 그 정도는 걸리겠지. 왜 그러나?"

  "그가 오지 않으면 국채 발행을 마무리 지을 수 없어."

  "그래, 그랬었지."

  호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군인을 민간으로 되돌린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상황의 안정이 필요하다. 경기부양대책을 취해야만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실직자를 늘릴 뿐이겠지. 지금은 일단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이런이런. 실직자가 무서워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재정 적자가 늘어날 뿐이로군."

 

  그 말대로다. 재정 적자가 늘어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실업자의 증가는 단순한 경제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실업자의 존재는 커다란 사회 불안을 일으킨다. 지금 정권 기반이 약한 정부에게 있어 사회 불안은 너무 위험하다. 반제국 운동, 반정부 운동으로 간단히 연결 되겠지. 받을 그릇 없이 군대에서 방출하는 건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TV전화의 수신음이 울렸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 트류니히트의 얼굴이 비췄다. 약간은 기분 전환이 되겠지. 조금 표정이 굳어 있지만. 무슨 일이 있었나?

  "무슨 일인가? 트류니히트."

  「무슨 일이라니 내가 묻고 싶군. 자네들은 언제쯤이 되어야 신력에 동의할 건가? 제국에선 동맹이 지금까지 동의하지 않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네.」

  호안을 돌아봤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아니, 새로운 책력이 필요하단 건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공휴일이 말이지. 루돌프 대제 탄신기념일이라니. 의회의 반발이 심해. 자네도 알고 있잖은가?"

  트류니히트가 얼굴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네들이야말로 알고 있는 건가? 공휴일에는 자유행성동맹 건국기념일, 은하연방 건국기념일도 포함된다고.」

  "……아니, 그건 알고 있지만."

  호안이 말하자 트류니히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건가? 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강화조약을 채결했다. 그리고 책력에도 그 이름을 공휴일을 넣으려 하고 있어. 이제부터 앞으로도 은하연방, 자유행성동맹이란 국가가 있었다고 사실을 남길 것이라는 거다. 이 우주에 민주공화정 국가가 존재했던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

  그렇군. 그런 의미가 있었나. 호안이 두세 번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레벨로, 호안. 제국에선 지방자치에는 민주공화정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아. 자네들은 조금 그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극단적인 말을 하자면 목적은 민주공화정의 존속이며 자유행성동맹은 그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럴 정도의 각오를 가져야만 해.」

 

  "대담한 발언이군."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걸세. 레벨로. 자네들은 버티는 걸로 제국의 양보를 받으려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아무리 그래도 루돌프의 탄생일이 공휴일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 하지만 의회가 시끄러운 거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내가 답하자 트류니히트가 "아무 것도 모르는구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제국은 내년부터 새로운 책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페잔으로 천도한 뒤 신제국 성립을 선언한다. 알잖은가? 새로운 국가에 새로운 수도, 새로운 책력. 전 우주에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선언할 셈인 거야. 그걸 자네들이 망가뜨리는 걸세. 제국에선 신력은 내후년부터 쓰게 될 거라고 포기하고 있어.」

  "……."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게. 제국은 스케줄을 공표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자네들은 당연히 눈치 챘어야 한다. 만약 깨닫지 못했다면 자네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자유행성동맹이 제국의 보호국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지 않아. 너무나도 무신경하다.」

  "……."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지. 동맹 정부에는 두 명의 주인이 있다고. 하나는 동맹 시민, 그리고 또 하나는 제국이다. 그 사실을 자네들은 잊고 있지 않은가? 」

  "그럴 생각은 없지만……. 동맹의 내부 사정을 지나치게 우선하고 제국과의 관계에 둔했다는 점은 있을지도 몰라."

  내심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제국으로 떠난 걸로 다소 제국을 경시했을지도 모른다. 트류니히트가 다시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건을 진행하고 있는 건 발렌슈타인 원수다. 자네들은 멋지게 그의 얼굴에 먹칠을 했어.」

  "그럴 생각은 정말로 없었다. 트류니히트. 그렇지? 호안."

  "그래."

  「그렇다면 제대로 인식하길 바라네. 자네들은 그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는 것을.」

  분노하고 있다. 혹은 트류니히트는 발렌슈타인 원수에게서 갈책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자네들이 아무리 싫어해도 그는 제국 최대의 권력자다. 아마도 앞으로 몇 년 뒤에 정치가로 전직하여 리히텐라데 후작의 후임자가 될 거라고 여겨지고 있어. 그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제국의 일인자다.」

  "……."

  「그리고 그 정도로 동맹을, 민주공화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제국에 없다. 그는 자네들의 가장 큰 이해자이자 보호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얼굴에 먹칠을 해서 어떻게 할 건가? 재차 시민에게 주권 같은 걸 주면 안 된다고 확신하게 만들 뿐이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가장 큰 이해자이며 보호자. 트류니히트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를 적대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무시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곤란해지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교섭을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제국의 개혁파 대부분이 그의 지지자다. 그들은 민주공화정에 호의를 가지고 있지만, 자네들이 발렌슈타인 원수의 얼굴에 먹칠을 계속 하면 틀림 없이 민주공화정에서 등을 돌리게 되겠지. 제국 최대 권력자의 얼굴에 계속 먹칠한다. 그런 바보 짓을 하는 정치 제도를 지방자치에 도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아니, 어렵겠지."

 

  「그 말대로다. 그런 짓을 하면 제국은 중앙과 지방 사이에 어처구니 없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거다. 알겠는가? 자네들의 행위는 민주공화정의 존속을 위험하게 하고 있는 거야.」

  그렇군. 자유행성동맹의 내부 사정에 고집하는 건 위험한가. 우선해야 할 것은 민주공화정의 존속…….

 

  "알겠다. 바로 의회를 설득하여 새로운 책력을 받아들이게 하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동맹 정부가 나서서 결정의 지연을 사죄하고 내년부터 실행하기를 희망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 하네. 호안.」

  항의하려 하는 호안을 트류니히트가 막았다.

 

  「한 번 제대로 동맹 시민에게도 이해하게 만드는 게 좋아. 제국의 요청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찮은 감정론으로 반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야.」

  "……."

  「제국은 30년 후의 통일을 목표로 착착 진행하고 있어. 동맹도 그 움직임에 맞춰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맹을 보는 제국의 시선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말 거야.」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보는 눈도 점점 더 안 좋아진다…….

 

  "알겠다. 트류니히트. 자네 말대로 하지.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전해주게. 죠안 레벨로가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하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재차 동맹 정부에서 신력의 수락과 내년부터 실행되길 정식으로 요청한다는 것도."

  내 말에 트류니히트가 "알겠다"며 끄덕였다.

 

  트류니히트의 통신이 끊어지자 집무실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풍겼다.

  "호안, 자유행성동맹국은 제국의 보호국인가……. 어려운 현실이군."

  "여기에 있으면 잊을 것 같지만, 트류니히트는 제국에 있다. 싫어도 그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겠지. 괴로운 건 녀석도 마찬가지인가. 아니, 괴로움은 우리들 이상인가."

  그런 와중에 트류니히트는 민주공화정 존속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에게 있어 우리들의 행동은 답답하게 보이겠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니 호안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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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10월 31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대사 업무로 수고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건강에 주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각하. 분에 넘치는 중책, 성심을 다하여 임하겠습니다."

  신임 대사, 율리우스 엘스하이머가 온화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렇게 감사받아도 곤란한데. 신혼 아내를 데리고 하이네센으로 가야 하다니. 나라면 절대로 싫다.

  어쩌면 아내 분이 가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민수품은 동맹 쪽의 품질이 더 좋으니까. 패션에 있어서도 제국보다 풍부하고 다양하다.

 

  "대사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30년, 동맹 정부를 제국에게 협력하게 하며 합병까지 이끌고 가야만 하니까요."

  "예.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강제가 아니라 납득시키면서 입니다."

  엘스하이머가 표정을 굳히며 끄덕였다. 어려운 역할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엘스하이머는 이성적이고 또한 담력도 있다. 적임이겠지.

 

  "대사에 군인이 아니라 문관인 경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군인이라는 인종은 아무래도 무력을 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엘스하이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겁니다. 대사관이 상대하는 건 정부만이 아닙니다. 130억 명의 동맹 시민도 그 대상입니다. 그들은 꼭 이성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발언 하나가 그들을 분개하게 만들어 폭발시킬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주의하세요."

  "예."

 

  엘스하이머가 긴장하고 있다. 겁을 줄 생각은 없다. 나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라인하르트가 행한 인사 중에 렌넨캄프를 고등변무관으로 한 것은 실패였다. 적임자가 아니었다는 게 그 평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군인을 고른 것, 그 시점에서 실패라고 생각한다. 군대는 상명하복이다. 그리고 무력적인 결단을 내리기 쉽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부는 군대라는 힘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주 쓰던 방법을 쓰길 좋아한다. 문관이 변무관이라면 그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덧붙여 말하자면 로이엔탈을 신영토 총독으로 임명한 것도 좋지 않았다. 결과적으로가 아니다. 처음부터 틀렸다고 생각한다.

  렌넨캄프의 경우와 같은 이유다. 아마도 군인을 탑으로 세우는 편이 만약의 경우 동맹 내에서 대규모 반제국 운동이 일어나도 대응하기 쉬울 거라 생각한 거겠지만, 신영토 총독에는 문관을 임명하고 그 밑에 치안유지군으로서 2개 함대 정도 배치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했다면 제국군끼리 서로 쏴대는 반란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사관에는 호위 병력은 있어도 군사력은 없습니다. 우르바시의 제국군에게 출동 요청은 할 수 있지만 명령은 할 수 없습니다. 하이네센에 도착하기 전에 우르바시에서 루츠 제독, 바렌 제독과 충분히 대화를 나눠주세요."

  "알겠습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엘스하이머가 인사하고 사령장관실을 나갔다. 안심해라. 엘스하이머. 네 안전은 누구보다도 동맹 정부가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지.

  제국은 동맹과의 화합을 원하고 있지만 얻어 맞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네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경우, 그 패널티는 동맹 정부의 등골을 휘어버리게 만들 정도의 것이 된다. 그에 대해선 이미 동맹 정부에게 통지한 상황이다.

 

  이 시기에 출발하면 하이네센에 도착하는 건 올해가 지난 뒤겠군.

  저쪽에 도착하면 확인해줘야 할 일은 잔뜩 있다. 군축에 동반한 함선 폐기, 그리고 내년의 예산 편성 방침, 세수 현황 등이다. 특히 세수는 국채 발행에도 관계가 있다. 엘스하이머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겠지.

 

  엘스하이머에겐 충분한 직원을 붙여줬지만 괜찮으려나. 참사관, 주재무관, 서기관, 이사관, 외무서기, 번역관, 경비대책관, 조사관.

  여러 명목으로 사람을 붙였다. 군대는 당연하지만 재무, 민생, 내무에서도 사람을 보냈다. 잘 해주면 좋겠지만……. 두 달에 한 번 정도 확인해야겠지.

 

  "각하. 슬슬 시간이 됐습니다."

  발레리가 날 보고 있다. 시간? 무슨 시간?

  "군무성에서 상서 각하, 통수본부장 각하와 만날 시간이십니다."

  "알겠습니다."

  그랬지. 군무성에서 제국군 3장관 회의다. 이제르론 요새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대한 걸 정해야지. 그리고 이제르론 회랑 청소에 대한 것도 있다.

  ……발레리. 그런 책망하는 눈으로 날 보지 말라고. 예정을 잊는 일도 있을 수 있잖아. 그러기 위해 네가 있는 거고. 준비를 할까.

  자료는……. 어라? 어디에 뒀더라?

 

  페잔 천도가 정식으로 발표됐다. 딱히 혼란은 없었다. 뭐, 발표하기 전에 동맹에는 말해두고 있었고, 페전에서도 어느 정도 소문이 흐르고 있었으니 소란은 없었던 것 같다.

  공연한 비밀이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그뿐인 이야기겠지. 페잔에는 6월 중에 이동하여 7월 1일에 신제국 성립 선언을 한다.

 

  새로운 책력도 그 때부터 쓰고 싶지만 아직 동맹 측과 조율 중이다. 신력을 사용하는 건 내후년이 되려나. 단 신력 원년은 내년부터라는 걸로 하자. 조금 변칙이지만 어쩔 수 없다.

  ……동맹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모르고 있다. 황제탄신일이 싫다던가 루돌프 대제 탄생 기념일이 싫다던가,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자유행성동맹의 건국기념일을 공휴일로 넣어주는 거다. 그 부분도 생각해주면 좋겠네. 신제국은 동맹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는 걸 어째서 이해하지 않는가.

  ……자료, 책상에는 없네. 어디에 뒀더라? 침착해라. 발레리가 묘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이제부터도 동맹의 역사, 정치사, 사회사, 경제의 변천을 학문으로서 연구해도 전혀 상관 없다고 말하는 거다. 민주공화정도 연구해도 상관 없다. 그 뒤에 어째서 제국이 민주공화정을 부정했는가, 주권재민을 부정했는지도 연구하면 더욱 좋다.

  루돌프의 연구를 해도 전혀 상관 없다. 공식 장소에서는 경의를 표하게 한다. 실수로라도 루돌프 개새끼라곤 말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학문의 대상으로서는 비평해도 상관 없다. 루돌프는 현명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전혀 상관 없다.

 

  프리드리히 4세는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했다. 치안유지국은 사라지고 일찍이 부당하게 체포되어 죄인이 되었던 사람들의 명예회복도 이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루돌프는 잘못되었었다고 제국은 인정한 거다. 제국은 오랜 껍질을 깨고 나와 새로운 국가로 재탄생하려 하고 있다.

  새로운 주머니에 오래된 술을 넣어선 안 된다. 새로운 술을 넣어야 한다. 거기에는 자유행성동맹이라는 효소도 넣겠다고 하는 거지만…….

  어째서 찾지 못하는 거지? 한숨이 나올 것 같다.

 

  역시 원작과 달리 왕조 교체가 없으니까 신제국이라는 개념이 침투하지 못하는 걸까. 골덴바움 왕조의 시조는 루돌프다. 골덴바움 왕조가 계속되는 한 아무래도 신성시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구제국과 신제국은 다른 거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왕조 교체 없는 국가의 교체. 루돌프는 구제국의 시조지만 신제국의 시조는 아니다.

  신제국의 시조는 프리드리히 4세다. 거길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 있었네. 자료는 가방 안에 있었다. 넣었던 걸 잊고 있었다.

 

  "그럼, 가보도록 할까요? "

  "예."

  내가 자리에 일어서자 발레리가 뒤를 따랐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발레리가 "각하"하고 불렀다. 뭐야? 아까 전의 그거 때문에?

  "제국에선 장성이 되면 연수가 있습니까? "

  "아아, 그거 말이군요. 그러고 보니 있었습니다."

  발레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각하께서 그런 연수를 받으셨던 기억이 없습니다만……."

  그런가. 발레리가 부관이 된 건 내가 준장이 됐을 때였지. 그런 발레리가 지금 준장인가. 세월이 흘러가는 게 빠르다.

  "저는 면제 받았습니다. 당시 우주함대사령부의 작전참모였으니까요. 출병도 임박했었고. 임무를 우선시하여 면제가 허락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다.

 

  "연수, 힘내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안심해라.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부관을 탈락시킬 바보는 없으니까. 극히 평범한 성적을 얻으면 문제는 없다. 합격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장성 연수도 받지 않았고 함대사령관 연수도 받지 않았네. 특례 중의 특례로군. 그다지 기쁘지 않다. 기분을 바꾸자.

 

  역시 신제국 설립 선언이군. 그 안에 신제국은 구제국과는 다른 것이며 시조는 프리드리히 4세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혹은 루돌프의 잘못을 부정하고 사죄한다는 방법도 있다.

  어려우려나? 골덴바움 왕조의 시조를 부정, 자칫 잘못하면 왕조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거기까지 동맹을 배려할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나올 게 틀림 없다…….

 

  루돌프를 대신할 권위를 만들어내는 게 먼저인가. 프리드리히 4세를 새로운 시조로 하는 신 골덴바움 왕조 성립을 선언한다. 이제까지의 왕조를 구 골덴바움 왕조라 이름 붙이고 결별을 선언하는 거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4세를 새로운 왕조의 시조로서 대제라 부르며 숭배한다.

  말하자면 신왕조 성립, 혹은 왕조 교체 선언이로군.

 

  그렇게 되면 내년, 신년 축사에 맞춰 신왕조 성립을 선언하는 게 최선인가. 책력을 내년부터 새롭게 하는 근거도 된다. 그 반년 후에 페잔 천도를 하면서 신제국 성립 선언을 한다.

  시조 황제인 프리드리히 4세의 은퇴는 당분간 무리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상담해볼까. 프리드리히 4세, 황녀 분들에게도 말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될지. 머리가 아프군…….

 

 

 

제국력 490년 10월 31일. 오딘, 신무우궁. 엘리자베트 폰 골덴바움

 

  "걱정했습니다. 언젠가 만날 날이 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만."

  "걱정을 끼친 점, 황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을 여러분에게서 빼앗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라이프스 대장이 고개를 숙이자 어머님, 숙모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장에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도망쳐준 덕분에 딸도 엘리자베트도 무사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의뢰라고 해도 괴로웠을 테죠."

  "누이의 말대로입니다. 남편은 당신에게 사과해주길 바란다고 모두에게 부탁했다 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숙모님, 그리고 나와 사비네가 그라이프스 대장에게 감사를 표하자 이번엔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됩니다. 소관을 귀족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삼아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지 못했습니다. 신뢰에 응하지 못했던 저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명령을 내려주신 점, 공작님에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내란에 대한 건 지금도 꿈에 나타날 때가 있다. 숙부님이 전사했을 때의 혼란, 아버님의 "와선 안 된다"라는 말, 그리고 떠나가는 뒷모습…….

  두 번 다시 아버님을 보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 모습…….

 

  "그리고 지금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 그 때 공작님의 명령이 옳았다는 걸 새삼 확신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묘 앞에서 좋은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라이프스 대장의 어조에는 절절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들을 상냥한 눈으로 보고 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머님과 숙모님, 그리고 사비네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후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해져있습니까? "

  숙모님이 묻자 그라이프스 대장이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시종무관은 어떤가하고 발렌슈타인 원수에게서 타진을 받았습니다. 단지 저와 같은 반란에 참가한 자가 궁중 깊숙이 있어도 좋을지……. 솔직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숙모님이 서로를 돌아보고 끄덕였다.

 

  "받아들어주지 않겠습니까? "

  "아말리에 님……."

  "실은 폐하께서 퇴위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 무슨……."

  "그리고 뒤를 저에게 맡기시겠다고."

  "그건……."

 

  그라이프스 대장이 놀라고 있다. 어머님은 본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부인, 반역자의 배우자였다. 본래 황위 같은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나도 아직 믿겨지지 않는다.

  "사실입니까? "

  "네. 사실입니다."

  대장이 깊게 숨을 내뱉었다.

 

  "내년, 페잔으로 천도합니다만, 그 뒤 퇴위하시고 형님에게 황위를 양위하신다는 게 폐하의 생각이십니다. 들은 것은 저희 자매와 리히텐라데 후작입니다. 그 장소에서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폐하는 발렌슈타인 원수에게도 상담하도록 이라며……."

  황위계승 문제에 원수를 더한다. 할아버님의 발렌슈타인 원수에 대한 신뢰는 굉장히 두텁다.

 

  "그래서, 원수는? "

  "시기상조……. 최소한 헌법 발포까지는 퇴위는 해선 안 된다고.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숙모님의 답에 그라이프스 대장이 끄덕였다.

  "그렇지요. 앞으로 잠시동안은 동맹령에서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제국에도 영향이 나올 테지요. 시기상조라는 건 틀리지 않았다고 소관도 생각합니다. 불만이십니까? "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머님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자 대장이 안심했다는 듯이 작게 숨을 내뱉었다.

  어쩌면 어머님이 황위를 바라고 있다, 지금 상황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우려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어머님도 숙모님도 권력의 무시무시함을 내전 속에서 싫을 정도로 이해했다. 그건 나와 사비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황태녀가 되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제국의 정치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소관에게 시종무관이 되라는 건 아말리에 님을 도우라는? "

  "그렇습니다. 민폐일지도 모릅니다만 받아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신뢰하실 수 없으십니까? 지금의 정치가들을? "

  대장의 질문에 어머님과 숙모님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단지? "

  어머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들은 한 번 반역자가 됐었습니다. 그 일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크리스티네."

  "네. 우리들은 두 번 다시 실수할 수 없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과 숙모님의 표정이 어둡다. 우리들은 아버님과 숙부님에 대한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님과 숙부님이 반역자, 우리들은 그 가족이라는 과거는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 외에 신뢰할 수 있는 분은 없습니까? 안스바흐, 슈트라이트, 페르너는 어떻습니까? 브라울러, 감리히는? "

  "다들 각각의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우리들을 신경 써주고 있습니다만……. 항상 곁에 둘 수는 없습니다."

그라이프스 대장이 "그렇군요"라며 끄덕였다.

 

  "원수가 소관에게 시종무관을 권한 건 여러분에 대한 걸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할 일은 여러분의 상담역이 될 것. 그리고 정부 분들과 여러분의 윤활제가 될 것. 그걸로 괜찮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렇지요? 형님."

  "네. 감사합니다. 대장."

  어머님과 숙모님이 기뻐하자 그라이프스 대장이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러나 성심성의껏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 숙모님이 서로를 돌아보고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다. 정말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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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10월 25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은하제국 우주함대사령부에는 기묘한 방이 있다. 신영토점령통치 연구실. 별칭 사회경제재건 연구실이라고 불리는 방이다.

  꽤 넓은 방이다. 100명 이상이 쓸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고 서류 정리를 위한 캐비넷도 잔뜩 있다. 복합기능인쇄기와 세절기, 개인용 컴퓨터. 급탕기와 냉장고, 식기장, 대형 스크린을 가진 TV전화도 있다.

 

  그다지 군인 냄새가 나지 않는 방이다. 군대에, 그것도 실전부대의 통괄조직인 우주함대사령부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방을 이용하는 사람의 면면도 이상하다. 브룩도르프 보안상서, 그룩 운송상서, 리히터 자치상서, 실버베르히 공부상서, 브라케 민생상서, 그리고 장래의 무역상서가 될 것이 내정된 니콜라스 볼테크…….

 

  정부 각료가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그 외에도 개혁파, 개명파라 제국에서 불리는 사람들이 대거 이 방을 이용하고 있다. 서류를 정리한다거나 의논을 한다거나. 때때로 큰 목소리로 고함치는 듯이 토론하기도 하고, 속닥속닥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귓속말을 하기도 한다.

  군대에서도 나 외에 뤼네부르크 상급대장이 때때로 참가한다. 나와 뤼네부르크 상급대장의 역할은 옵저버 같은 거다.

 

  오늘은 이 방에 8명이 모여 있다. 남자 7명, 여자 1명.

  리히터 자치상서, 브라케 민생상서, 마린도르프 내무상서, 루게 사법상서, 욥 트류니히트 심의관(제국 정부에서 새로이 임명되었다), 아서 린치 심의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 그리고 나,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준장.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우리들 7명을 불렀다.

 

  8명이 모인 와중, 트류니히트 심의관이 때때로 린치 심의관을 의심쩍은 시선으로 봤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린치 심의관은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제국풍의 일반복이다. 그리고 외견은 60세 가까운 풍모와 지친 표정을 하고 살짝 눈을 내려깐 노인. 생각해내는 건 어렵겠지.

 

  브라케 민생상서가 마지막으로 나타나 8명이 모이자 사령장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헌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정부에서 발표가 있었다.

  "책임자는 저입니다. 초안을 작성하여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제출합니다. 후작이 각의를 열어 승인을 얻으면 폐하의 윤허를 받아 발포하게 됩니다."

  또 모두가 끄덕였다.

 

  "초안 작성을 이곳에 모인 8명이서 합니다."

  "8명, 인가요? "

  마린도르프 내무상서가 묻자 사령장관이 끄덕였다.

  "일단은 이 8명입니다. 민생상서와 자치상서는 이전부터 신제국의 정치체제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걸 기반으로 작성하도록 하죠. 하나부터 만드는 건 큰일이니까요."

 

  트류니히트 심의관과 린치 심의관이 민생상서와 자치상서에게 시선을 향했다. 놀라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여기의 8명, 망명자는 나를 포함하여 3명, 군인은 2명, 귀족이 2명, 개혁파가 2명.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몇 가지 지켜주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일단 주권입니다만, 이건 황제 주권으로 합니다. 그리고 제국 신민의 기본적 인권의 존중. 이건 설령 황제라 할지라도 침범해선 안 됩니다."

 

  "주권재민은 아니로군요."

  루게 사법상서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을 했다. 다짐을 받으려는 거겠지. 사령장관이 끄덕였다.

  "주권을 분산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주권자는 적은 편이 정치 책임의 소지가 확실해집니다. 권력 행사에 대해서도 자각을 가지기 쉬워지겠죠."

  트류니히트 심의관이 끄덕였다. 단지 표정은 밝지 않다. 주권재민이 아니라는 게 불만인 걸까. 아니면 동맹에서의 혼란을 생각한 걸까…….

 

  "그렇군요. 주권은 주지 않지만 인권은 존중한다. 그에 의해 평민들을 지키자는 겁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민생상서. 리히텐라데 후작과는 합의를 마친 사항입니다."

  "그렇군요."

  브라케 민생상서가 리히터 자치상서와 마주보며 끄덕였다. 리히텐라데 후작과 합의를 마쳤다는 건 결정사항이라는 거다. 그걸 새삼 이해한 거겠지.

 

  제국인이 주권에 대해 질문하는 데에 반해 린치 심의관도 트류니히트 심의관도 주권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주권에 대해, 민주공화정에 대해 꽤나 엄격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놀랄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런 뒤의 부정이다.

  두 사람 모두 그에 대해선 이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은하연방은 자멸하고 자유행성동맹은 패배한 거다. 민주공화제는 전제군주제에 두 번이나 패배했다. 그 사실은 무겁다.

 

  동맹령에서 반제국 운동에 의한 혼란이 일어나는 걸 보면 동맹 시민은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스럽게 생각할 때가 있다. 동맹 안에서 살면 주권재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겠지.

  하지만 제국에서 살면 주권재민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제국 신민은 딱히 불만을 품고 있지 않다. 주권에 어디에 있는가와 정치의 좋고 나쁨은 다른 문제인 거다. 민의가 반영되지 않아도 선정을 베푸는 일은 있다.

 

  "그리고 행정, 사법, 입법, 이른바 통치에 관한 부분에 있어 황제가 보유하고 있는 권리, 이걸 명문화하여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폭주하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의회는 어떻게 합니까? 아니, 물론 각하가 선거에 의한 의원 선출에 부정적인 건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상태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만…….

  브라케 민생상서가 사령장관에게 묻는다. 의회제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사령장관을 신경 쓰면서.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의회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삼권을 분립하여 각각에 있어 황제의 권력이 폭주하는 걸 막는다. 저는 입법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히터 자치상서가 발언하자 사령장관이 끄덕였다.

  "의회가 필요하다는 점에 반대하진 않습니다. 그것이 제국의 통치에 도움이 된다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여기에는 동맹 출신으로 의회라는 걸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혼란이 없을지, 그걸 검토하면서 진행하도록 하죠."

  사령장관의 말에 다들 끄덕였다.

 

  제국 신민은 정치적 성숙도가 낮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그들은 누가 정치를 하든지 그닥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어떠한 정치를 펼치느냐다. 황제든지 총희든지 조정 대신이든지, 선정을 베풀면 제국 신민은 기뻐하며 받아들이겠지.

  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결과를 중시한다. 어떤 의미로는 능력 있는 자가 정치를 하는 걸 인정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그걸 정치적으로 미숙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런 눈으로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보고 있으면 무척이나 제국풍의 엘리트라는 걸 알 수 있다. 냉철하며 권력 행사에 주저가 없다. 그리고 군대의 실전부대 지휘관이면서 극히 광범위하게 권력을 가지고 있다.

  민주공화정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사령장관이 제국 신민에게 비난을 받는 일은 없다. 그들은 사령장관이 가져온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

 

  사령장관이 제국 건국 시기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루돌프 대제의 신뢰를 받아 대귀족이 되었겠지. 하기야 작위따위 필요 없다고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사위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황녀의 남편이 평민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대제는 작위를 거절한 사령장관과 상대방이 평민인 이상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황녀, 황후 사이에서 머리가 아팠을지도.

 

  의외로 황녀가 사령장관에게 호의를 품고 사랑의 도피 같은 걸 했을지도 모른다. 제국 건국 시기 최대의 스캔들이네. 그렇게 되면 제국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평민들의 대우도 개선되고, 귀족들이 그렇게나 자유방만하게 특권의식을 가지게 될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준장."

  "예."

  "뭔가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

  사령장관이, 다들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혹시 나 웃고 있었어?

  "아뇨. 보람 있는 일이 주어진 것이 기쁜 나머지."

  안되겠다. 일단 일부터 해야지. 즐거운 망상은 나중으로 미루자.

 

 

 

우주력 799년 10월 27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재정위원회에서 올라온 보고서에는 돈의 가격이 진정되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다. 주가도 안정되고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도 안정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남은 건 공기부양책을 실시하여 고용 확보를 꾀하고 군축에 동반한 실업자 증가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이 보고서에는 자유행성동맹은 경제면에 있어 몇 가지 문제는 있지만 해결 가능하며 미래는 극히 밝다고 쓰여 있다.

  위안도 되지 않는다. 보고서를 던져버렸다.

 

  다음 보고서, 법질서위원회에서 올라온 보고에는 각지에서 빈발하고 있던 반정부 운동은 진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제국과의 협력 관계에는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며 제국, 동맹, 그 어느쪽이 경솔한 행동을 하면 반정부 운동이 격렬해지고 동맹 정부는 불안정해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단, 제국 정부는 최근 동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동맹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보고서에는 쓰여 있다.

  ……이것도 또한 다행인 일이다. 동맹 정부는 안정되고 있다. 그리고 동맹 정부는 신뢰 가능한 정치적 파트너를 얻었다는 거겠지. 제국 정부는 페잔과 다르다는 거다.

  짜증나는군! 세절기로 갈아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TV전화의 수신음이 울렸다. 고마운 일이다. 이 짜증나는 보고서에서 도망칠 수 있다니. 수신 버튼을 누르자 호감 가는 인상의 낯익은 얼굴이 비춰졌다. 보고 싶은 얼굴인지 어떤지는……. 한숨이 나올 것 같다.

  「이야, 레벨로. 건강한가? 」

  "그다지 건강하단 느낌은 아니야. 이 의자는 착석감이 굉장히 좋지 않아."

  최고평의회의장 집무실에 있는 의자에 앉자 트류니히트가 곤란하단 웃음을 띄우며 끄덕였다. 이건 분명 연기일 거라고 왠지 모르게 생각했다. 최근 성격이 나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은 아니겠지.

 

  「미안하군. 레벨로. 자네와 호안에게 성가신 일을 떠넘기고 말았어.」

  "신경쓰지 말게. 트류니히트. 이 의자에 앉기 위해선 나름대로 각오가 필요해. 무책임한 녀석에겐 맡길 수 없지. 네가 말한대로다."

  「…….」

  "10년이 승부처라고 말했었지? 트류니히트. 그 말은 빗나간 모양이군. 아마도 5년이 승부처다."

  트류니히트가 떫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제국의 움직임이 굉장히 빠르다……. 동맹은 우롱당하고 있을 뿐이다. 트류니히트도 놀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벨로, 이번에 제국은 헌법을 제정한다. 그 초안 작성 멤버에 내가 선발되었어.」

  "그게 정말인가?"

  「그래. 나 외에 7명이서 초안을 작성한다.」

  "합해서 8명인가."

  좋은 일이겠지. 8명 중에 1명. 그 발언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트류니히트는 그럭저럭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신뢰 받고 있는 것 같다.

 

  「황제주권, 기본적 인권의 존중, 이 두 가지가 헌법의 골자가 된다.」

  "역시 그렇게 되나."

  「그래. 그런거지.」

  주권재민이 아닌 헌법. 그것이 발포되었을 때, 동맹 시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한숨이 나올 것 같다.

 

  「단지 의회 설치는 인정될 것 같다.」

  "호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의회제 민주주의에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의회의 설치 그 자체는 인정하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민의를 의회에 반영시킬지로군.

 

  「그리고 헌법 제정 멤버에는 개혁파 정치가들도 있어. 그들과 조금 대화했지만, 의회제 민주주의에 호의적이라 놀랐다.」

  "정말인가? "

  무심코 웃고 말았다. 트류니히트도 웃으면서 "정말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찬미에 가까웠지. 민주공화정 국가의 전직 수장으로서 조금 낯뜨거울 정도로 말이야.」

  더욱 웃었다. 오랜만이다. 이런 식으로 웃은 건.

 

  「문벌귀족 전성기 때의 정치는 심각했던 모양이야. 전제군주제 국가의 나쁜 면만이 드러났던 거겠지. 그렇기에 민주공화정이 아름답게 보였던 거라 생각하네.」

  "그렇군."

  「지금은 그들도 의회제 민주주의 도입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30년 후, 동맹 시민이 자신을 제국 신민으로서 제국의 번영을 위해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냐고 질문을 받았지. 그들의 우려를 부정할 수는 없다.」

  웃음이 그치고 트류니히트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렵겠지."

  「그래, 나도 어렵다고 생각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의회제 민주주의 도입은 위험하다고 발렌슈타인 원수가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동맹과 제국은 150년에 걸쳐 싸워왔어. 그 사실을 가볍게 볼 수는 없지. 가볍게 보면 인류는 혼란에 빠질 것이야.」

  유감스럽지만 그 말대로다. 정치 제도를 고집해선 안 된다고 했던 발렌슈타인 원수의 말이 정확하겠지.

 

  "……민주공화정의 종언인가."

  「라고도 할 수 없네.」

  "무슨 뜻인가? "

  「행성 레벨의 지방자치에선 민주공화정을 인정해도 좋지는 않냐고 개혁파는 생각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런가. 지방자치가 있었나.

 

  "중앙에서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감정적인 의견 대립만 일어날 위험이 있지. 하지만 지방자치라면 그 폐해가 있어도 작게 끝나나."

  「그런 거다. 제국 중앙에 있어선 황제주권이지만, 지방자치에 있어선 그 주권의 일부를 신민에게 이양하는 형태로 민주공화정을 인정한다. 그러는 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정치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는가, 그들은 생각하고 있어.」

  중앙은 황제주권에 의한 군주제 전제정치, 지방은 국민주권에 의한 민주공화정치인가……. 이중통치체제에 의한 제국 운영…….

 

  "포기하는 건 아직 이르군. 트류니히트."

  「그래. 아직 이르다.」

  "주권이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정치책임 소지가 애매해진다. 그런 의미에선 확실히 대국 통치에 민주체제는 부적합하다. 발렌슈타인 원수의 말대로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방자치라면……."

  「주권 확산은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민주체제는 부적합하다곤 할 수 없어.」

  한정적인 주권의 이양……. 아이러니하게도 발렌슈타인 원수가 한 말 자체가 지방자치에서의 민주정치 실시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 젊은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이제부터로군. 트류니히트."

  「그래. 지금부터다. 그걸 위해서라도 자유행성동맹은 안정된 통치를 행할 필요가 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 말이야.」

  그 말대로다. 여기서 혼란에 빠지면 지방정치로 향한 도입조차 부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민주공화정은 완전히 부정당하게 된다.

 

  "괜찮은가? 그런 내부 비밀을 흘려도. 이제 넌 제국에서 쫓겨나면 갈 곳도 없다고?"

  내가 신경 쓰자 트류니히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문제 없어. 원수에게서 자네에게 은밀히 연락하도록 지시 받았네. 그는 동맹 정부가 의심암귀가 되어 폭주할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어.」

  "호오."

  폭주인가.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이다.

 

  「묘한 소리지만 동맹의 안정을 가장 바라고 있는 사람은 발렌슈타인 원수겠지. 그는 합병까지의 여정을 연착륙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하네.」

  "그렇군."

  확실히 묘한 소리다. 동맹에선 가장 신용할 수 없다 불리고 있는 인물이 가장 우리들에 대한 걸 신경쓰고 있고 신뢰할 수 있다니……. 세상사 신기한 일로 가득 차 있다.

 

  「헌데, 묘한 사내와 만났네만? 」

  "묘한? "

  「아서 린치. 기억하고 있는가? 」

  "아서 린치? "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구지? 트류니히트는 묘하게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모르겠나? 엘 파실에서 민간인을 두고 도망친……」

  "그 린치 소장인가! "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만났다? 그럼 린치 소장은 제국에 있는 건가?

  「그는 지금 제국에서 발렌슈타인 원수의 업무를 돕고 있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설마."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그 설마다. 그는 헌법 초안 작성의 멤버 중 한 사람이야.」

  "……믿기지 않는군."

  한숨이 나왔다. 화면 너머로 트류니히트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정말이지, 세상사 신기한 일 투성이다. 그보다도 제국은 대체 어떤 상황인 거냐?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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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10월 15일. 오딘, 제아들러(바다독수리).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꽤나 사람이 많군. 클레멘츠."

  "그래. 확실히."

  점내에 들어가자 밝은 분위기가 나와 클레멘츠를 감쌌다. 이곳 저곳에서 담소하는 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다들 표정이 밝다. 승진을 축하하고 있는 거겠지만,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은 적지 않게 있다. 이제야 겨우 전쟁이 끝났다.

 

  웨이터의 안내로 자리에 앉는다. 백포도주와 치즈 모듬, 그리고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잡다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바로 포도주와 치즈 모듬이 나왔다. 웨이터가 첫잔을 따른다. 투명한 액체가 잔을 채웠다.

 

  둘이서 잔을 올렸다.

  "원수 승진, 축하하네."

  "고맙네. 메크링거. 경도 축하하네."

  서로의 승진을 축하하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다. 맛있다. 풍부한 향과 은은한 산미가 기분 좋았다.

 

  "그럼, 이제 색을 정해야 하는가."

  클레멘츠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윙크했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성가신 문제로군. 그건 그렇고 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장래에 자신의 색을 정해야 한다고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동감이다."

  클레멘츠도 소리 높여 웃었다. 치즈를 한 조각 먹었다. 블루 치즈, 백포도주와 어울린다.

 

  이상한 일이다. 나도 클레멘츠도 평민 계급으로 태어났다. 사관후보생이었을 당시 장래 제국 원수가 될지도 모르는데 망토 색을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했다면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겠지.

  "그래서, 무슨 색으로 할 건가?"

  "청색이나 녹색 계통으로 할 생각이다. 메크링거, 경은?"

  "흠. 보라색을 생각하고 있다. 짙게 할 것인가 옅게 할 것인가. 고민 되는군."

  "그런가. 색의 농도인가. 그에 따라서 꽤나 느낌이 달라지니까. ……밝은 색으로 할까."

  클레멘츠가 끄덕이면서 치즈를 입으로 옮겼다. 밝은 색인가. 잔디색, 혹은 하늘색을 생각하는 거겠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생각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검은색 망토와 진한 파란색 띠. 군복도 포함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검은색을 소화하고 있다.

  지금은 그 이외의 색을 생각할 수 없지만 원수로 승진했을 당시, 밝은 색을 고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승진은 정해졌지만, 직위는 어떻게 될까? 뭔가 들었는가?"

  클레멘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페잔 천도가 내년이다. 천도 후에 발표하겠지. 그 때까지 최소한의 이동으로 끝나는 것 같아."

  "과연. 제국만이 아니라 동맹령에 대한 것도 생각해야만 할 테니."

  클레멘츠가 두세 번 끄덕였다.

 

  "그것도 있지만……."

  "뭔가?"

  웨이터가 샐러드와 감자 튀김을 가져왔다. 테이블에 요리를 배치하고 그가 인사한 뒤 떠나갔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이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작은 목소리로 "귀를 대라"고 말하자 클레멘츠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귀를 가까이 댔다.

 

  "놀라지 마라. 사령장관을 정부 각료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속삭이자 클레멘츠가 눈을 부릅 떴다. 눈을 좌우로 움직이며 주변을 보고 있다. 안심해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어.

  "정말인가?"

  "며칠 전, 케슬러 제독에게서 들었다. 어디까지나 그런 이야기가 있는 정도라고 했지만."

  클레멘츠가 신음소리를 울렸다.

 

  "출처는 리히텐라데 후작인 것 같다. 후작도 고령이시지. 지금부터 제대로 된 후계자를, 그런 이야기인 것 같아."

  "그렇군. 이제부터 30년 걸려 신제국을 만든다. 그걸 위해서인가……. 하지만 지금도 변함 없지 않은가? 일부러 군인에서 정치가로 전직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군."

  클레멘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유행성동맹에선 군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지. 그 부분도 관계가 있는 것 아닐까."

  클레멘츠가 다시 "그렇군"이라고 말하며 끄덕였다.

 

  "아마도 군부, 정부의 상층부에서 갈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체제가 정해지지 않는 거지."

  "그건 이해하지만 간단히 정해질 문제도 아니겠지. 길어지는 건 좋지 않아. 지금은 간다르바에 루츠와 바렌이 있지만, 그 두 사람에게 동맹령 전체를 맡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부담이 너무 커."

  클레멘츠의 말대로다. 지금 상황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다. 계속 지속되는 건 문제가 있다.

 

  "가이에스부르크에 대한 건도 있어. 그걸 어떻게 할지."

  "페잔으로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지만……."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다. 또 하나 요새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말이지."

  또 하나? 어떻게 된 일이야?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자 클레멘츠가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군"이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페잔 회랑의 제국측, 동맹측 출구에 각각 요새를 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 같아."

  "그렇군. 하나는 가이에스부르크, 또 하나를 새롭게 만든다는 건가. 새로운 제국의 안전보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게다가 전쟁이 없어졌으니까. 군사비는 당연히 삭감되겠지. 군수산업이 곤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는듯 해."

 

  클레멘츠가 작은 목소리로 알려줬다. 그렇군. 군수산업 구제인가. 평화롭게 되어 불황, 묘한 이야기다. 앞선 원정에서 꽤나 벌었을 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갑작스러운 불황에 견딜 수 없다는 건가.

  잠깐, 페잔 천도가 있는 거다. 이후로는 페잔의 기업이 꽤나 달라붙게 되겠지. 그것도 생각한 건가.

 

  "이겼다고 하지만 문제가 잔뜩 쌓여 있군."

  내가 말하자 클레멘츠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떤 때에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지. 게다가 패배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뭐, 그렇긴 하지."

  확실히 패배하는 것보다는 낫다. 나도 클레멘츠도 고민하면서도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으니까.

 

 

 

우주력 799년 10월 1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겨우 조용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동맹령 이곳저곳에서 반정부 운동, 반제국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꽤나 격렬한 시위였다. 매일매일 어딘가에서 소동이 일어나고 그런 뉴스만 나오고, 지긋지긋했다.

  이 하이네센에서도 시위대와 경찰이 몇 번이나 충돌했다. 부상자가 몇 사람이나 나왔고 체포 당한 사람도 나왔다. 죽은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뉴스에서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저께, 제국 정부가 헌법을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그걸로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도 얌전해졌다. 아직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안심은 할 수 없지만, 시민의 권리는 지켜지지 않을까 다들 말하고 있다.

  시위를 일으킨 사람들은 자신들의 승리다, 제국에게서 양보를 얻어냈다며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가 사온 주간지에 쓰여져 있던 거지만, 제국은 이전부터 헌법을 제정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헌법 제정 책임자는 발렌슈타인 원수, 이것도 의미심장하다. 원수가 제국으로 돌아간 즉시 헌법 제정을 발표한 거니까.

  이래도 자신들이 이겼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게다가 어떨까? 제국군이 있을 때는 잠자코 있다가 제국군이 돌아간 즉시 소란을 피운다. 비겁하다고 제국은 생각하지 않을까.

  간다르바에는 2개 함대가 있는 것 같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엔 어떨까? 굉장히 불안하다. 뉴스에서도 너무 지나치면 제국에게서 보복을 받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의기양양하다. 제국 따위 별거 아니다. 좀 더 목소리 높여 자신들의 주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겁쟁이라고. 정말 그런 걸까?

 

 

 

우주력 799년 10월 9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한 방 먹었다. 역시 제국은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

  어제, 제국이 중대 발표를 했다. 동맹 정부가 발행한 국채, 그리고 연금에 관해 동맹 정부가 사라진 뒤엔 제국이 책임을 지고 지불한다는 합의를 했다고.

  우리 아버지도 전쟁에서 죽었으니까 유족 연금을 받고 있다. 그래서 연금에 대해선 대체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국채에 대해선 잘 몰랐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국채는 국가가 진 빚이라고 한다. 그게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그 대부분을 제국이 소유하고 있다. 무려 10조 디나르를 넘는다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본래 페잔이 가지고 있던 거였지만 제국이 페잔을 정복했기에 제국의 것이 되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제국은 동맹의 기업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도 페잔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정말이지 페잔 녀석들, 도움 되는 일이 없다.

 

  만약 이걸 전부 사 가라고 제국이 말한다면 동맹은 파산한다고 한다.

  돈의 가치가 없어져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터진다. 그 날부터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어 생활이 불가능해진다고 뉴스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하루라도 빨리 제국에게 합병하도록 부탁하여 제국령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제국은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주식은 공짜로 돌려줬고 빚도 30년 후엔 제국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연금도 지불해준다. 동맹 시민의 생활을 보장해준다는 거다.

  하지만 그 대신 정부의 예산안, 어디에 얼마나 쓸지에 대해서지만, 제국의 승인이 없이는 만들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제국이 시키는대로 돈을 쓰라는 소리다.

 

  뉴스에서도 아나운서나 평론가가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경제는 안정되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동맹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제 완전히 제국의 괴뢰국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괴뢰국가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누군가가 말하는대로 움직이는 국가라고 알려줬다. 분하다. 하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니까 말하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어제까지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은 제국을 비겁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할 거냐고 반론을 들으면 다들 입을 다물어 버린다.

  결국 엄마가 하는 말대로였다. 다들 가난해지고 싶지 않고 좋은 삶을 살고 싶다. 동맹 정부는 그걸 할 수 없고 제국 정부는 그걸 할 수 있다. 그게 전부인 거다. 분하네.

 

 

 

우주력 799년 10월 13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또 제국에게 당했다.

  오늘 발표된 주간지에 굉장한 기사가 쓰여 있었다. 제국은 책력 통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동맹 정부에게 타진하고 있다던가.

  타진이라고 해도 아마도 명령이겠지. 오늘 하이네센은 그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동맹평의회에선 의원들이 레벨로 의장에게 싸움을 거는 듯이 기사 내용이 사실이냐고 확인하고 있었다.

  그거, 확인이었을까? 어느 쪽인가 한다면 요구, 명령 같은 느낌이었는데…….

 

  의원들은 책력을 통일한다면 우주력으로 해야 한다고 레벨로 의장에게 말했다. 제국에게도 그렇게 요구해야 한다고.

  우주력 쪽이 먼저 있었으니까 이상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제국력따위 동맹 시민이라면 아무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의원들의 요구는 실현은 어려울지도 몰라도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레벨로 의장이 질문에 답한 내용을 들으면 조금 다른 것 같다.

 

  제국이 생각하는 책력 통일은 우주력도 제국력도 아니라 새로운 책력을 만들어서 다함께 쓰자는 것인 것 같다. 제국에서도 우주력, 제국력 어느 쪽으로 통일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당연하겠지. 게다가 제국에서는 대합병(최근 뉴스에서는 30년 후의 합병에 대한 걸 대합병이라고 말하고 있다)을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건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책력도 새롭게 하는 거라고.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건국이라면 새로운 책력을 써도 이상하지 않다. 엄마도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라며 말하고 있다.

  의원들도 조금 예상 외였던 것 같아서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제국은 하는 짓이 능숙하다. 동맹이 반대하기 어렵도록, 할 수 없도록 행동하고 있다.

 

  그 때문에 최근 동맹에는 친제국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제국에 협력하여 새로운 건국을 함께 하자는 사람들이다.

  엄마는 제국이 연금과 국채 보장을 해주고 난 다음부터는 절반 이상 친제국파다. 반제국파는 묵과해선 안 될 문제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묵과가 무슨 뜻일까?

 

  그 외에도 굉장한 발표가 레벨로 의장에게서 있었다. 제국은 천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수도, 오딘은 제국 깊숙한 곳에 있어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제국의 정치가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수도를 옮긴다. 그 새로운 수도가 페잔…….

 

  경악했다. 새로운 수도가 페잔이라니. 다들 경악하고 있다. 평론가들도 굉장히 흥분하고 있다.

  페잔이라면 페잔 회랑을 직접 통제할 수 있고 동맹령으로 출병하기도 쉽다. 경제 면에서도 굉장히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국은 진심으로 신제국을 만들려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어쩐지 제국은 착착 새로운 건국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쪽은 전혀 이겨낼 수 없다. 제국이 하는 대로 따라갈 따름이다.

  괴뢰국가라는 의미를 겨우 알 것 같다. 나는 친제국파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지만 굉장히 비참했다. 앞으로 동맹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제국력 490년 10월 20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깊게 숨을 마셨다. 옅게 비누 냄새가 났다.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 것도."

  내가 답하자 남편은 등 뒤로 손을 돌려 내 몸을 상냥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다시 한 번 숨을 마셨다. 꿈이 아니다. 남편은 여기에 있고 날 안아주고 있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편이 바쁜 건 변함이 없다. 아침 일찍 출근하지만 귀가는 항상 이르지만은 않다. 식사도 밖에서 해결하고 오기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하고는 있다. 하지만 외롭다는 감정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있어 침실의 이 때만이 남편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에게 있어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

 

  남편의 가슴에서 고동 소리가 두근두근하고 들렸다. 틀림 없이 남편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게 정말 기쁘다.

  "무슨 일 있어? 뭔가 말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뇨. 아무 것도."

  "정말로?"

  신경 써주는 게 기뻤다. 하지만 이렇게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그리고 남편의 손이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사양할 필요 없어. 부부니까."

  "하지만 피곤하시겠죠?"

  "괜찮아. 그렇게까진 아니니까."

  얼굴을 올려 남편을 보자 상냥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부끄러워서 바로 얼굴을 내리고 말았다. 남편은 곤란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벌써 며칠이나 비슷한 대화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곤란하다.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이 이상 바랄 것도 없으니까.

 

  "……이번에 제국과 동맹은 책력을 통일할 거야. 들었을까?"

  "네.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해?"

  어쩌지. 남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곤란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말하지 않으면…….

  "저기, 휴일은 어떻게 하실 거에요?"

  "휴일? ……아아, 공휴일인가."

  남편이 응응하고 끄덕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심했다.

 

  "제국과 동맹의 공휴일을 각각 적당하게 넣을 거야. 비슷한 건 합치고 말이지."

  "동맹의 것도 넣는 거에요?"

  "그래. 자유행성동맹 건국기념일이라든가 은하연방 건국기념일이라든가."

  "괜찮은가요?"그런 걸 해서."

  놀라서 남편의 얼굴을 봤다. 남편은 즐겁다는 듯한 웃음을 띄웠다.

 

  "괜찮아. 자유행성동맹은 이제 반란군이 아니야. 제국이 인정한 국가지. 그리고 30년 후엔 합병할 국가이기도 하고. 동맹의 공휴일을 넣는 건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그대신 제국의 공휴일도 넣을 거야. 은하제국 건국기념일, 루돌프 대제 탄생기념일, 황제탄생일이라든가."

  "어머. ……동맹 사람들, 화내겠네요. 게다가 제국 사람들도……."

  남편이 소리 내어 웃었다.

 

  "불만이라고? 공휴일이 늘어나서 화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 외에도 헌법을 제정하면 헌법기념일, 페잔에 천도하면 신제국 성립 기념일을 제정할 거야. 동맹을 병합한 후엔 통일기념일이 생기겠지. 동맹시민도 싫다고는 말하지 못해."

  남편은 나쁜 장난을 하는 것처럼 즐거워 보인다.

 

  "질렸어요. 정말 사람이 나쁘다니까."

  "그럴리가. 공휴일은 적은 것보다 많은 쪽이 더 좋아. 다들 기뻐하며 함께 축하해주겠지."

  남편이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오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남편과 함께 있을 시간도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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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10월 7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조금은 안정 됐는가? 호안. "

  "그렇군. 다소 진정됐다는 느낌은 든다. 이렇게 집무실에서 자네와 커피를 마실 시간도 생겼으니까 말이야."

  이렇게 소파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것도 오랜만인 듯한 느낌이 든다. 제국 정부가 헌법 제정을 공표하고 이미 일주일이 지났다. 동맹령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반정부 운동, 반제국 운동은 다소 진정되고 있다.

 

  "방심할 순 없지. 지금의 동맹 시민은 언제 활성화하여 폭발할지 모르는 극히 위험한 활화산과 같은 거다. 일단은 지진 정도에서 머물고 있지만……."

  "부럽기도 하군. 무책임하게 폭발할 수 있으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면 그런 짓은 할 수 없을 텐데……."

 

  나도 모르게 푸념, 아니 원망이 나왔다. 호안이 나를 안타깝다는 듯이 보고 있다. 곤란하군. 지도자는 가벼이 약한 소리를 내선 안 된다.

  트류니히트는 언제나 낙천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그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편한 일보다도 괴로운 일이 많았을 텐데도. 그건 연기였던 걸까? 조금은 배워야 하겠지…….

 

  "지구교에 대한 건, 어떻게 되고 있나? 레벨로. "

  "군부 쪽에서 조사하고 있어. 하지만 보로딘 본부장은 반신반의하고 있었지. 거의 대부분이 페잔으로 도망쳤을 터. 동맹에서의 영향력은 생각하기 어렵다. 있다 하더라도 미미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지금의 혼란과 관계는 보이지 않는가. ……동맹보다도 제국 쪽이 지구교에 대한 위기감은 강하군. 발렌슈타인 원수를 몇 번이나 암살하려고 했기 때문인가……."

  "그렇겠지."

 

  군부는 이번 패전에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군부가 제국군을 유인하여 일전을 생각하고 있던 것에 반해 정부가 배수의 방어를 명령한 거다. 우주함대의 항복은 정부의 명령이기도 했던 것도 동맹 시민의 군부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이어졌다. 동맹 시민은 군대가 충분히 싸우지 못했다고 보고 있는 거다.

  군 상층부의 큰 인사 이동은 뷰코크 노인이 퇴역하고 우란푸 부사령장관이 사령장관으로 취임한 것 정도다. 그리고 국방위원장이 아일랜즈에서 샤논으로 바뀌었다.

 

  "그보다도 예의 건, 어떻게 할 건가? 제국의 제안이지만……."

  호안이 몸을 내밀었다.

  "주식과 국채인가. 머리가 아프군."

  내가 투덜거리자 호안이 한숨을 토했다. 심각하군. 호안도 꽤나 곤란해하고 있다. 설마 그렇게나 막대한 주식과 국채가 페잔에, 그리고 제국으로 흘러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경제가 문제될 거라 생각했기에 의장과 재정위원장을 겸임했지만, 그게 좋은 선택이었는지……. 지금 상황에선 극비로 되어 있지만 공표되면 말도 안 되는 소란이 일어나겠지. 그야말로 화산의 대분화다. 정부는 거기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머리가 이픈 일이다…….

 

  "재정위원회에 검토하게 했는가?"

  "비밀리에 검토하게 했지만. 예상대로, 아니 예상 이상으로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돌아왔어. 듣고 싶은가?"

  "들려준다면 말이지."

  호기심이 왕성하군. 호안. 후회해도 모른다. 한 모금 커피를 마셨다. 입안이 쓰다. 아까 전까진 느끼지 못했는데…….

 

  "주식을 취득할 경우, 이걸 매각할 수 있을지 어떨지가 문제가 된다. 매각할 수 있다면 상당한 이익이 동맹 정부의 주머니에 들어가겠지. 정부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소리다."

  "좋은 이야기군. 그래서, 매각할 수 있는가?"

  "그건 묻지 말게. 호안."

  호안이 표정을 찡그렸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어려울 거라 재정위원회는 생각하고 있어. 재원이 확보되어 있다면 몰라도, 매각 이익을 재원으로 할 테니까 주식을 사달라고 한다면 동맹 시민이 얌전히 주식을 사줄지 판단할 수 없는 것 같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불안정하고 장래가 너무 불투명하다.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민 사이에서 주식을 사기는커녕 수중의 자산을 현금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는 것 같아. 은행에서도 예금이 감소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이고 있어."

 

  "사실인가? 그건."

  호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꽤나 놀라고 있다.

  "사실이다. 아직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일어나고 있어. 그리고 조금씩이긴 하지만 돈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고. 의미는 알고 있겠지?"

  질문하자 호안이 끄덕였다.

 

  "그래. 동맹 시민의 일부는 경제적인 혼란이 발생할 거라 보고 있다. 그렇기에 통화가치가 폭락할 거라 생각한 거지. 그런 거로군."

  "그런 거다. 다시 말해 재정위원회는 둘러 말하고는 있지만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매각은 무리겠지."

  "그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한숨이 나왔다. 의사가 환자에게 수명 선고를 하는 듯한 기분이다. 혹은 가족에게 설명한다던가.

 

  "기업의 실적이 호조라면 주식의 소유는 아무 문제 없다. 하지만 일단 그럴 리가 없겠지. 아마도 경영 실적 악화, 경영 부진으로 정부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될 거다. 최대 주주이기도 한 이상 싫다고는 말할 수 없어. 재원 부족에 더해 지원 요청이라. 악몽이야."

  "……."

  호안, 그런 표정을 짓지 마라. 아직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이건 입구일 뿐이야.

 

  "말하는 걸 잊었지만 정부가 주식을 파는 건 그런 사태를 우려하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보여지게 될 가능성도 있어. 그 경우 심각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재정위원회는 경고하고 있다."

  호안이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기업 도산과 실업자 증가로 이어지겠지. 머잖아 혁명이 일어날 거다. 제국에 병합되기 전에 동맹이 소멸할 지도 몰라."

호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파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다.

 

  "……혹시, 주식이 팔린다면?"

  "만에 하나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재원이 생기겠지. 단, 뭘 위한 재원이 될지가 문제가 된다. 쟁탈전이 일어날 거야."

  "경기 부양인가 국채 상환인가. 그런 거로군?"

  "그래."

  "꿈도 희망도 없구만."

 

  앞날이 보이지 않는 지금, 동맹 시민 대다수가 자산을 현금, 혹은 귀금속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재원은 경기 부양보다도 국채 상환에 쓰라는 목소리는 반드시 나오겠지. 그 경우 실업자와 국채 소유자 사이에 재원 쟁탈전이 일어날 것이 틀림 없다. 다시 말해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싸움이다. 심각한 대립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들이 주식 양도를 거절할 경우는?"

  "최악이지. 동맹은 자멸할 수밖에 없어. 일단 동맹 정부가 기업을 버렸다는 소릴 듣게 되겠지. 심각한 정치 불신이 발생할 거다. 반정부 운동이 빈발해질 것은 틀림 없다. 그리고 경영이 악화된 기업은 어쩔 수 없이 제국에 지원을 요청하게 될 거다. 제국이 그걸 거절하면 기업은 도산한다. 경제공황의 시작이지."

 

  "제국이 수락할 경우엔?"

  "그 경우엔 기업만이 아니라 동맹 시민도 동맹 정부보다 제국 정부를 신뢰하게 되겠지. 병합이 더 빨라질지도 몰라. 제국 정부의 반단이 아니라 동맹 시민의 간원에 의해서 말이야."

  침묵이 찾아왔다. 잠시 지난 뒤 호안이 고개를 격렬히 저었다. 달라붙으려 하는 무거운 침묵을 털어내려하는 것 같다.

 

  "국채는 어떤가?"

  "국채인가. ……제국 정부의 지적대로다. 신규 발행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거라고 재정위원회도 보고 있어. 다시 말해 주식이 팔리든 팔리지 않든 상관 없는 거다. 경기 부양책따위 쓸 수 없고, 빚 변제를 위해 긴축재정을 쓸 수밖에 없어."

  호안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대형 불황의 발생이 되겠군."

  그 말대로다. 게다가 이 불황,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동맹의 힘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

 

  "결국은 동맹 정부에는 신용이 없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이건 정치, 경제, 재정 전부에 걸쳐서 말이지만, 그게 상황을 악화하고 있어."

  "30년 후에는 나라가 사라지는 거다. 신용따위 있을 리가 없지."

  "그 말대로다. ……제국의 제안은 그 신용을 제국이 동매에 부여하겠다는 거다. 받아들이면 자산 현금화도 막을 수 있겠지. 틀림 없이 경제 면에서의 효과는 있어. 바로는 아니라도 주식 매각도 가능하게 될 테지. 고마운 이야기야."

  마지막엔 내뱉는 듯한 어조였다. 제구은 이쪽의 약점을 잡고 있다. 불쾌했다.

 

  "제안을 거절할 건가?"

  호안이 살피듯이 날 보고 있다.

  "거절한들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아."

  "그럼 받아들이는 거군."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듯한 어조였다. 내가 거절하리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각오를 확인한 걸까? 안심해라. 호안. 불쾌하지만 통치를 던져버리는 짓은 하지 않아.

 

  "받아들이면 적어도 재정 면에선 안정된다. 그 영향은 커."

  "하지만 제국에 대한 종속도가 강해지겠지. 정치 면에서의 혼란이 일어날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호안."

  "그게 제국의 노림수겠지. 경제 면에서의 안정과 정치 면에서의 독립성, 그 어느 쪽을 고를 것인지……. 그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어."

  과연.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빵이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불만을 토하기 전에 배를 채울 것을 생각해라. 현실을 똑바로 봐라. 대충 그런 거겠지…….

 

  TV전화의 수신음이 울렸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얼굴이 화면에 비췄다.

  「이야, 건강한가? 두 사람.」

  낙천적인 목소리에 한숨이 나왔다……. 이건 연기인가? 아니면…….

  분풀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제국력 490년 10월 10일. 오딘, 구 페잔 고등변무관저. 에리히 발렌슈타인.

 

  "어떻습니까. 조금은 안정 됐습니까?"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군요."

  나와 볼테크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의미 같은 건 거의 없다. 인사치레 같은 거지만 따끈따끈하다. 상대방은 페잔인인데 말이지. 묘한 느낌이다.

  아마도 볼테크가 내준 코코아 때문이겠지. 오렌지 향이 은은히 풍기는 코코아다. 이게 무척이나 맛있다. 굉장히 치유된다.

 

  제국으로 돌아온 뒤 꽤 시간이 지났지만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다. 이제야 겨우 이번 원정의 전투 보고가 끝나고 논공행상이 행해진다. 뭐, 이건 기본적으로 전원 승진이니까 문제는 없다.

  문제는 군의 편성과 배치다. 동맹에게서 영토를 할양 받았으니 그것들을 포함하여 방어 태세를 어떻게 할 지를 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인사 이동, 이것도 성가신 이야기다. 이제르론 요새사령관을 정해야만 하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만 한다. 페잔 회랑의 출입구에 둘 것인가. 혹은 동맹 쪽의 영역에 둘 것인가다. 동맹 쪽 영역에 두게 되면 페잔 회랑과 이제르론 회랑 중간 쯤이려나. 검토가 필요하다.

 

  "동맹 정부는 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더군요."

  "네. 레벨로 의장이 결단해줬습니다."

  응응하는 풍으로 볼테크가 끄덕였다.

  "올바른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습니다만, 시민의 생활을 생각하면 틀리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안정하겠죠. ……그건 그렇고 훌륭한 솜씨군요. 감탄했습니다. 주식과 국채를 써서 동맹을 지배 하에 둘 줄이야."

  볼테크가 쾌활하게 웃었다.

 

  "지배 하에 두다니, 듣기에 좋지 않군요. 예산 편성에 관해 거부권을 가졌을 뿐입니다."

  볼테크가 다시 웃었다.

  "저는 페잔인입니다. 돈줄을 잡힌다는 것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지요."

  곤란하군. 나도 웃을 수밖에 없다. 확실히 조금 지나친 감은 있으려나. 리히텐라데 후작, 게르라흐 자작도 기가 질린 것 같았다. 레벨로도 분통을 터트렸겠지.

 

  "트류니히트 전 의장이 레벨로 의장과 연락을 취했습니다만, 그가 설득하기 전에 이쪽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었던 것 같습니다."

  "호오, 트류니히트 전 의장이 말입니까. ……곁에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 거였습니까. 헌법 제정, 변경 개발의 두뇌만이 전 의장의 업무인 건 아닌 거로군요."

  흥미진진, 이란 느낌이다.

 

  "뭐, 그렇습니다. 저희로서는 가능한 한 혼란을 적게 하고 합병을 진행하고 싶습나.ㄷ 그를 위해선 최소한도의 신뢰관계를 동맹 정부 사이에 만들어두고 싶습니다. 동맹 정부가 폭주하게 되면 곤란한 겁니다. 동맹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국도 막대한 불이익을 입게 됩니다."

  "과연, 맞는 말입니다."

 

  "서로 대사를 교환할 거고 인적교류도 꾀합니다. 하지만 뭐라 해도 양국의 최고 레벨에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게 가장 좋지요. 설령 제국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주변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서 제국의 진심을 알 수 있다. 혹은 교섭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꽤나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각하께선 신중하시군요."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설령 조롱이라고 해도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원작을 읽으면 바라트 조약 이후 동맹의 폭주, 혼란은 비참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라인하르트에게 있어서도 예상 외의 일이었겠지. 물론 거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레벨로의 판단 미스, 오벨슈타인의 암약, 렌넨캄프의 개인적인 원한, 양 웬리의 반격…….

 

  권력자는 고독하다. 레벨로만이 아니다. 라인하르트도 고독했을 거라 생각한다. 오벨슈타인이나 렌넨캄프의 움직임을 알았다면 틀림없이 라인하르트는 쓸데 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두 사람을 꾸짖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가능성은 있었던 거다. 호안이 지적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로는 라인하르트에게 접촉하지 않았다…….

  결국 레벨로와 라인하르트 사이에 신뢰관계가 없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레벨로에겐 좋은 의미로 넋살이나 뻔뻔함이 없었다. 지나치게 진지했던 거다. 그게 그를 궁지에 몰았다.

 

  같은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된다. 실수를 저지르면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그런 만큼 동맹 시민과 제국 신민 사이에 증오가 피어나겠지. 합병이 앞당겨져도 그래선 의미가 없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한다.

  욥 트류니히트는 지금까진 나의 신뢰 두터운 브레인 중 한 사람이다. 헌법 초안 작성에 관여하게 할 셈이고, 변경성역 개발에도 관여하고 있다.

 

  트류니히트도 내 생각을 이해하고 협력해주고 있다. 민주공화정에 관해선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앞으로도 날 설득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선 성가시긴 하다.

  하지만 동맹의 폭주가 백해무익하다는 점에선 나와 같은 생각이다. 제국과 동맹 사이에서 충분한 윤활유 역할을 해주겠지. 제국에 와준 것에 감사한다.

 

  동맹 시민, 아니 제국 신민도 트류니히트를 배신자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지, 루빈스키와는 다르다고. 사리사욕 때문에 제국으로 온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으로 제국으로 온 것이다. 어떠한 비난을 받을지라도 자신은 아직 동맹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제국으로 왔다.

  그러니 내가 써준다. 동맹을 위해서도 제국을 위해서도 아니다.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 깊이 나의 협력자가 되게 한다.

 

  "내년, 페잔으로 천도합니다."

  "……그렇습니까. 페잔은 안정되었나 보군요."

  "네.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꿈이 이뤄지겠군요."

  "예."

  볼테크가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이상하군요. 천도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건 3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그랬습니까."

  "네. 그 5일 후에 10월 15일 칙령이 있었죠…….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랬습니다. 벌써 꽤나 옛날 일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로부터 3년입니까……."

  이상한 이야기다. 나는 3년 지난 뒤 그 날의 대답을 듣기 위해 온 셈인가.

 

  "그 때엔 대답하지 못했지요. 신제국의 각료로 무역 관계를 돕는다고."

  "협력해주시겠습니까?"

  "기쁘게."

  "감사합니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감동은 없었다. 기쁨도 없다. 단지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라는 달성감이 있었다.

 

  안 되겠군.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페잔으로 천도하는 동시에 무역성을 설립하여 볼테크를 무역상서로 취임하게 한다. 볼테크에겐 지금부터 준비하도록 해야만…….

  페잔이라는 중계 국가가 사라진 걸로 제국과 동맹은 직접 무역을 행하게 된다. 지금은 아직 예전과 같지만 천도 후에는 직접 제국 정부가 관리하게 된다. 상업 규칙, 관행의 차이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

  그리고 화폐 통일, 이것도 볼테크에게 부탁하게 되겠지. 아직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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