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90년 9월 25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남편이 돌아왔다. 현관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녀왔어."

  "어서오세요. 수고하셨어요. 자 안쪽으로."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뻔한 말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도 남편이 기뻐해주고 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버님, 지금 돌아왔습니다."

  언제부턴가 아버님이 뒤에 서 있었다.

  "수고했다. 그 모습은 편하지 않겠지. 어서 환복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스티나, 환복을 돕도록 하거라. 거실에서 차라도 마시자."

  "예."

 

  탈의실로 가서 남편의 옷 갈아입기를 돕는다. 망토를 벗기고 군복을 벗겼다.

  "와이셔츠도 벗을까요?"

  "아니, 이대로가 좋아. 바지를 가져와주지 않겠어? 그리고 얇은 가디건을."

  "이걸로 좋다면."

  밝은 회색의 바지와 엷은 녹색의 가디건을 넘기자 남편이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옷을 정리하고 거실로 향하자 이미 차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님이나 슈테판 부인이 준비해준 모양이다. 나와 남편이 아버님과 마주 보는 형태로 소파에 앉았다.

  "수고했다. 그건 그렇고 기어코 반란군을 쓰러뜨렸는가……. 이상한 기분이다. 네겐 미안한 소리지만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아."

  아버님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자 남편이 가볍게 웃음을 띄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버님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국과 동맹은 150년이나 전쟁을 계속해 왔습니다. 실감이 나게 되는 건 이제부터겠지요."

 

  "그건 그렇고 늦지 않았는가? 폐하께 보고가 길어졌던 건가."

  "아뇨. 보고 후에 리히텐라데 후작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기에."

  침묵이 찾아왔다. 남편이 살짝 눈을 내리고 코코아를 마시고 있다. 아마도 정치에 대한 걸로 대화를 하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 바빠지는 것일까?

 

  "조금은 느긋하게 지낼 수 있게 될까요?"

  "……아니, 어려울 거라 생각해. 내일도 리히텐라데 후작, 게르라흐 자작과 대화를 나누기로 되어 있으니까."

  "내일? 하지만 내일은."

  "전승 기념식은 저녁부터니까 그전에는 이곳에 돌아올 거야. 전승 기념식은 다들 함께 가도록 하자."

  남편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다. 그리고 "미안해, 유스티나."하고 말했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이 피곤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라……."

  "괜찮아. 나는. 우주에 있을 동안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지. 너무 한가해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곤란할 정도야."

남편이 소리 높여 웃었지만 아버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그걸 보고 남편이 "정말로 괜찮으니까"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좋겠지만…….

 

 

 

제국력 490년 9월 26일. 오딘, 신무우궁. 라이너 폰 게르라흐

 

  "주식, 입니까?"

  "그리고 국채다. 그렇겠지? 게르라흐 자작."

  "예."

  내가 긍정하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후우하고 숨을 내쉬었다. 귀한하자마자 성가신 문제를 가져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일단 주식입니다만, 제국의 주식은 전부 방출한다. 동맹, 페잔의 것에 대해선 당분간은 소지하는 편이 좋다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지만,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수가 작게 갸웃했다.

  "……당분간 소지하는 편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건, 동맹, 페잔의 혼란을 억지하기 위해서입니까? 경제 면에서 둘의 목줄을 잡아둬야 한다는."

  "뭐, 그런 것이겠지"라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답했다. 아무래도 원수의 반응은 좋지 않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반대입니까?"

  "그렇지요. 페잔은 상관 없지만 동맹의 주식을 제국이 소지하는 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성가신 일이 생기게 되겠죠."

  리히텐라데 후작이 "흠"하고 코를 울리자 원수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거참 침착하기도 하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 때문에 동맹뿐만이 아니라 제국에서도 경제 면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리히텐라데 후작과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그렇군. 전쟁이 끝났는가. 무기가 팔리지 않게 되겠구먼."

  원수가 끄덕였다. 확실히 무기는 팔리지 않게 되겠지. 다시 말해 이후 군사비는 어느 정도 절감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전쟁을 전제로 한 생산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후에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무기 이외의 것을 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군대를 상대로 한 장사는 어려워집니다. 잘 전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

  원수가 말을 중간에 끊었다. 엄한 표정이다. 군수에서 민수로 변환인가. 확실히 어려울지도 모른다.

 

  "경영이 기운다. 그런 거로군?"

  "그렇습니다. 특히 동맹은 군대를 감축하기 때문에 제국보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거라 생각합니다. 군수산업만이 아닙니다. 어떤 기업도 그 영향을 피해갈 순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도산할 경우도 있겠죠. 그렇게 되었을 때, 제국이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래저래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제국이 고의로 도산시켰다 할 거란 소린가."

  "그건……."

  내가 후작에게 항의하려 하자 원수가 고개를 저었다.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게르라흐 자작. 동맹 정부는 둘째치고 동맹 시민에게 있어선 진실보다도 제국의 책임을 묻는 걸 우선할 테죠."

  "……."

  "제국에게 있어선 거저 얻은 주식이 휴짓조각이 될 뿐입니다. 실질적인 손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고통을 받는 건 직원과 그 가족. 그리고 그 기업과 거래하던 기업 뿐입니다. 연쇄 도산이란 것도 일어나겠죠. 경제 위기란 것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역 악화를 주주이면서 고의로 방치했다. 동맹의 힘을 약하게 만들어 병합하기 쉽게 만드려 했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제국의 원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올지도 모르지. 혼란에 빠뜨려 병합을 앞당기려 하고 있다. 그렇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구먼."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질린 표정이다.

 

  "팔까?"

  리히텐라데 후작이 나와 원수를 교대로 봤다.

  "막대한 금액입니다. 판다고 해도 구매자가 있을지 어떨지……. 오히려 혼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비난의 표적이 되겠죠."

  "재무상서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혼란이 일어날 뿐이겠죠. 오히려 동맹 정부에 양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양도! "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가 겹쳤다. 하지만 원수는 "네. 양도입니다"하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가지고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팔 수도 없다면 넘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양도해 버리면 이상한 트집이 잡히지 않아도 되고, 동맹 정부, 시민이 제국은 동맹을 괴롭히고 있다고 비난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오히려 정부는 정치적인 입장을 강화할 수 있게 되겠죠. 좋은 일만 가득하네요. 감사장도 받을지 모릅니다."

  웃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이 없단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사내로고. 동맹 정부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폭탄을 넘겨주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언젠가 눈치채겠지. 당했다고 말이야."

  비난을 받자 원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비난이라니 의외입니다. 동맹 시민의 생명 안전과 재산 보전은 동맹 정부가 할 일입니다. 제국 정부의 일이 아니죠. 앞으로 30년은 책임을 지고 업무를 해줘야만 합니다."

 

  한숨이 나왔다. 원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홍차의 향을 즐기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곤란한 녀석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나에겐 대답할 말이 없다.

  확실히 너무한다고도 생각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그가 말한대로 양도하는 게 최선의 대응책이겠지. 이익도 없지만 손해도 없다.

  단지 아깝다는 감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성가신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다. 게다가 그게 동맹 정부가 할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이 건은 게르라흐 자작 쪽에서 동맹 정부와 이야기 해주게."

  "알겠습니다. ……또 하나, 국채에 대한 것 말입니다만. 이쪽도?"

  "그랬었지."

  리히텐라데 후작과 내가 원수에게 시선을 향하자 말없이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정신을 차리자 목이 말랐다. 나도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마찬가지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있었다. 원수는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

  "국채 말입니까. ……제국 정부가 소지하고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걸까? 동맹과의 관계를 양호하게 하기 위해 넘겨야 한다고 말할 거라 생각했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을 봤지만 후작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괜찮습니까? 국채를 제국이 쥐고 있으면 어떻게도 할 수 없습니다. 동맹에서 반발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만."

  "……반응이 없다. 아직 생각하고 있는 건가?

 

  "국채를 가지고 있는 건 우리들만이 아닙니다. 동맹 시민, 페잔 시민도 소지하고 있을 겁니다."

  "……."

  "제국이 상환을 요구하는 건 무리겠죠. 금액이 너무 큽니다. 제국이 상환을 요구하면 다들 동맹에게 국채 상환을 요구할 겁니다. 거기에 응할 힘은 지금의 동맹에는 없습니다. 눈 깜짝한 사이에 국가 파산입니다. 시민이 국채를 팔려고 해도 구매자가 없습니다. 폭락이겠지요.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겁니다."

  "……."

 

  "제국 측에 동맹을 멸망시킬 각오가 없다면 국채는 교섭 카드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상환이라는 선택지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답하자 원수가 웃음을 띄웠다.

  "가치가 없다면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리히텐라데 후작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째서 웃는 걸까? 나는 왠지 오한이 든다.

 

  "또 악독한 짓을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후작이 야유했지만 원수는 웃음을 띄운 채다. 그리고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모두 비운 후엔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지금에 동맹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국가의 수명이 30년밖에 없죠. 국가로서의 연속성, 지속성, 성장성이 없는 겁니다. 다시 말해, 국가로서의 신용이 없습니다."

  "……."

 

  "이 상황에서 동맹은 경제 면에서 혼란에 빠집니다. 그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시겠습니까?"

  "필요한 것인가……. 재무상서, 경은 알겠는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물었지만……, 곤란하군…….

  "돈, 이 아니겠습니까?"

  흔하디 흔한 대답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실망시킬 것을 각오했지만, 원수는 "그렇지요"라고 끄덕였다. ……정답인가. 안심했다.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동맹 정부는 혼란을 회피하기 위해 수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뭘 하려고 해도 필요한 건 돈, 다시 말해 재원이겠죠. 그 재원이 부족할 것입니다. 기업의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그 경향은 강해질 겁니다."

  "군사비는 절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질문하자 원수가 고개를 저었다.

  "안전보장비를 지불하고 있으니까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군인 대다수가 실업자가 됩니다. 세수는 확실히 감소하겠지요."

  그렇군. 그게 있었는가. 국무상서도 끄덕이고 있다.

 

  "재원이 없다고 한다면 국채를 발행하여 재원을 보충한다는 수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30년밖에 수명이 남지 않은 동맹의 국채를 살 기업, 인간이 있을거라 생각합니까? 게다가 지금 시점에서 상당한 양의 국채를 발행했고 상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말입니다."

  "어렵겠지."

  "장기 국채는 물론이고 단기 국채조차 구매자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새삼스럽지만 동맹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이걸로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게 무리겠지. 리히텐라데 후작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30년 후의 통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원수가 쿡하며 웃었다.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거지?

 

  "동맹 정부도 머리가 아플 테지요. 국가의 신용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하고. ……거기에서 제국이 그 신용을 부여합니다."

  "부여라고 하지만 어떻게?"

  "제국 정부가 동맹 정부의 보증인이 되는 겁니다."

  "보증인?"

  나와 리히텐라데 후작의 목소리가 겹쳤다. 무심코 서로가 돌아봤지만……, 보증인? 발렌슈타인 원수는 나쁜 장난을 생각해낸 아이와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동맹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30년 이내에는 동맹 정부가, 그 이후로는 제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상환한다. 동맹 정부의 신용에 불만을 품는 사람은 없어질 것입니다."

  "……."

  "지금 제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채는 동맹에 반환하지 않습니다. 만약 반환한 뒤 그게 매물로 나왔다간 제국의 부담이 증가할 테니까요."

  "하지만, 무제한으로 국채를 발행했다간……."

  내가 항의하자 원수가 빙그레 웃었다.

 

  "네. 큰일나겠죠. 그렇기에 동맹의 예산안은 제국의 승인을 받을 것을 의무로 하게 합니다. 국채를 얼마나 상환하고 얼마나 발행할 것인가, 30년 후, 제국이 받아들일 분량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예산안으로 확인 받게 합니다.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퇴짜입니다."

  "그건……."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원수에게 물었다.

 

  "동맹 정부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제국 정부는 보증인이 될 것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은밀히 동맹 정부에 대해 제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채의 상환에 응하도록 교섭합니다."

  "……은밀하게 인가."

  후작이 묻자 원수가 웃음을 띄웠다.

  "네. 은밀하게 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섭은 자연스레 흘러가기 마련이죠. 눈 깜짝할 사이에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원수를 힐끗 노려본 후에 소리 높여 웃었다.

 

  "지독한 사내로고. 재정 면에서 동맹을 지배할 생각인가. 민주공화정이라 지껄여도 제국이 말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거역할 수 없을 테지. 이상 따위 돈 앞에서 날아가 버리겠군. 무시무시한 이야기야."

  "그렇지요."

  "페잔인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악랄함이구만. 동맹 정부따위 경에게 걸리면 갓난아기 손 비틀기보다 쉬운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더욱 웃었다. 원수는 웃음을 띄우고 있지만 후작이 웃기를 멈출 쯤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국채만이 아닙니다. 연금도 제국이 이어 받습니다. 동맹 정부가 동맹 시민에게 보장하고 있던 금전 면에서의 권리를 제국이 전부 계승합니다. 그렇게 하여 동맹 시민을 안심 시키는 겁니다. 제국은 군사 면에서 동맹을 압도했습니다. 정치 면, 경제 면에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면 반제국 운동은 작아질 것입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크게 끄덕였다.

 

  "다시 말해 그것이 헌법 제정과 국채, 연금인가……."

  "그렇게 됩니다."

  "헌법, 입니까?"

  내가 묻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음"하고 끄덕였다.

  "놀라게 했는가? 신제국을 만들기 위해선 국가의 형태를 규정해야만 하네. 근 시일 내에 각의를 열어 헌법 제정을 상의할 생각이야. 각의 결정을 가지고 폐하의 윤허를 얻는다. 헌법 제정을 위해, 일단은 초안을 작성해야겠지만, 그건 발렌슈타인 원수가 맡기로 했네."

  원수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놀라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선 결정 사항인가. 대체 어떤 헌법을 만들 건지…….

 

  "안심하세요. 게르라흐 자작. 황제 주권은 변함 없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깜짝 놀랐다. 마음 속을 읽힌 걸까. 원수가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다. 차가운 시선은 아니지만 압도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이 울린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원수의 입가가 희미하게 풀어졌다.

 

  "민주공화정도 도입하지 않습니다."

  "아, 네."

  리히텐라데 후작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째서 웃을 수 있는 거지? 서운했다. 정치 면에서 대우를 보장하면서 경제 면에서 밀어붙여 따르게 만드는 건가. 당근과 채찍이로군. 이후 동맹 대책은 강온 양면을 쓰게 되겠지…….

  리히텐라데 후작과 발렌슈타인 원수를 봤다. 이 두 사람의 당근과 채찍인가. 동맹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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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9월 25일. 오딘. 에리히 발렌슈타인

 

  오딘으로 귀환하자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두 원수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얼굴 근육이 망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웃고 있다.

  괜찮은 거냐? 설마 동맹이 항복한 걸로 전쟁이 사라져 갑자기 치매가 온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덧붙여 발걸음이 가볍다.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나와 메르카츠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반란군을 쓰러뜨렸군. 발렌슈타인. 훌륭했다."

  "수고했네. 메르카츠. 잘 해주었네."

  입을 모아 나와 메르카츠의 노고를 치하했다. 기쁘기도 하겠지.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승리를 얻어왔지만, 전쟁 종결로는 이어지지 않고 전투의 승리로만 끝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쟁의 승리인 거다. 가슴을 피고 이겼다고 말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고전했습니다. 슈타인호프 원수, 작전의 총지휘를 잡아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메르카츠도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아니,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네. 게다가 20만 척의 함대를 움직이는 일은 처음 있는 일. 전쟁터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군인으로서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었네. 평생의 추억이 되겠지. 감사할 사람은 이쪽일세."

  슈타인호프가 즐겁다는 듯이 말하자 에렌베르크가 "부럽군"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슈타인호프도 웃었다.

 

  리히텐라데 후작, 프리드리히 4세가 기다리고 있다며 신무우궁으로 향하게 되었다. 지상차는 4대. 각각 따로, 그리고 시간을 두고 호위를 받으며 공항에서 나왔다.

  테러 대책이라고 하지만 성가신 일이다. 나는 세번째다. 네 사람의 서열로 그렇게 된다. 군대는 계급사회니까 이런 점은 빡빡하다. 발레리와 함께 신무우궁으로 향했다.

 

  신무우궁에 있는 리히텐라데 후작의 집무실에서도 싱글벙글 얼굴의 할배들이 환영해주었다. 괜찮은 거냐? 조금 걱정되는구만.

  "수고가 많았네. 두 사람 모두. 실로 잘 해주었네. 폐하께서도 크게 기뻐하고 계시네."

  나와 메르카츠가 고개를 숙이자 리히텐라데가 기분 좋게 소리 내어 웃었다. 더욱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아. 하지만 오늘은 폐하께 보고를 끝낸 뒤에 편히 쉬도록 하게. 내일은 승전 축하 연회일세. 어려운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

  조금 안심했다. 치매가 온 건 아닌가 보다. 승리를 기뻐해주고 있다. 그런 거겠지.

 

  동맹령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제국군이 귀환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반제국 운동, 반정부 운동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 같다. 동맹 정부의 행정력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

  나중에, 라고 리히텐라데 후작은 말했지만 이 이야기는 빠른 편이 좋겠지. 루빈스키에 대한 건도 있다. 알현 후, 조금 말을 꺼내보도록 할까.

  ……알고 있겠지? 이 이야기.

  ……아무래도 불안해졌다. 전쟁은 끝났는데 말이지…….

 

 

 

제국군 490년 9월 25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폐하께 드리는 보고는 온화한 담소 시간으로 끝났다. 이제르론 요새 함락, 페잔 공략, 하이네센 공략의 과정이나 전투의 진퇴를 발렌슈타인, 메르카츠에게서 즐겁다는 듯이 듣고 계셨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이 코코아가 떨어진 것, 하이네센에서 코코아를 스스로 구입한 것을 이야기하자 소리 내어 웃으셨다. 동맹산의 코코아가 꽤나 맛있었다고 발렌슈타인이 말하자 폐하는 페잔에 천도하면 짐도 맛볼까 하고 말씀하셨다. 천도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어난 모양이다.

 

  보고가 끝나고 퇴출하자 발렌슈타인이 상담할 것이 있다고 말하며 집무실로 찾아왔다. 성실한 자다. 오늘쯤은 느긋하게 지내도 될 터인데.

  하기야 내 쪽에서도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사실. 바라던 바이기는 하다. 그러나 뮈켄베르거 부녀도 이 자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 일찍 끝내야 할 텐데…….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그래서, 이야기라 함은?"

  "동맹령에 대한 겁니다. 폭동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반제국 운동, 반정부 운동이 발생하고 있는 듯합니다."

  "역시 그건가.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재미 없는 이야기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힘이 들어갔다. 발렌슈타인도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반제국 운동, 반정부 운동이 아주 없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건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빈발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이후 30년에 걸쳐 병합하는 데에 방해가 됩니다."

  "거기에 대해선 나도 동의하네. 어느 정도 안정은 필요하다. 단념을 못하는 놈들이라 생각하지만, 국가에 대한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네. 성가신 일이군."

  발렌슈타인이 끄덕였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놈들이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각하는 지구교를 의심하고 계십니까?"

  내가 끄덕이자 발렌슈타인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단언은 할 수 없습니다. 동맹 정부에게 주의를 주도록 하죠."

  "성가시군."

  홍차를 즐기며 마시는 날이 오는 건 아직 먼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루빈스키가 없는 것만은 다행인가. 잘 해주었네.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도 칭찬하더군."

  놀려보자 발렌슈타인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젊은 것을 놀리는 건 꽤나 즐겁다.

  "그건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묘한 말을 하는군.

 

  "달리 범인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누가……."

  발렌슈타인이 고개를 저었다.

  "짐작가는 데는 있습니다만 확증은 없습니다. 언젠가 확인이 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알겠다."

  묘한 이야기군. 대체 누가……. 확증은 없다고 했으나…….

 

  "그보다도 동맹에 대한 겁니다만, 위험한 건 정부의 움직임입니다. 초조한 나머지 강경책을 취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만……."

  "말도 안 되네.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민중을 반발하도록 만들겠지. 이곳저곳에서 폭동이 일어날 거야. 자칫 잘못하면 동맹이 분열할 걸세. 그 정도의 판단도 하지 못할 정도로 하이네센 놈들은 멍청이인가?"

  발렌슈타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무슨 말이냐. 발렌슈타인이 지긋이 이쪽을 보고 있다. 압도 되는 느낌이 들었다. 싫은 예감이 든다. 이 자가 이런 눈을 할 때는 언제나 괜찮은 일이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혼란이 심해지면 제국 정부는 동맹 정부에 통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합병을 취소할지도 모른다는……."

  "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렇군. 그게 있었나……. 예감이 맞았다. 괜찮은 일이 아니다.

  "있을 수 있군. ……그렇다면 혹은, 그게 제국의 목적이라 억측할 수도 있겠어."

  발렌슈타인이 "그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도 컵을 입가에 옮겼다. 향이 엷다. 기분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다음은 좀 더 향이 강한 걸로 하자. 한 모금 홍차를 마셨다.

 

  150년 가까이 상대를 멸시하며 전쟁을 계속했다. 이후 30년 걸려 통일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묘한 일이로군. 우리들이 반란군, 아니 동맹 정부의 걱정을 하게 될 줄이야…….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발렌슈타인도 웃었다.

  "신은하제국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쓴웃음은 멈췄다.

 

  신은하제국. 인류를 통치하는 유일한 성간국가. 제국인 중에는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의지가 개인 차는 있어도 다들 가지고 있겠지. 따라서 30년 걸려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걸 다들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30년도 살지 못하겠지. 신은하제국의 탄생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국이 나아갈 방향을 보는 건 가능하다. 정치가로서 과실을 맛보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일은 가능하다.

  충분하다. 만족스럽게 죽을 수 있겠지. 하지만 동맹은 어떠할까?

 

  "동맹인 중에는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생각은 없을지도 모르지. 있다고 한다면 정복 당했다는 굴욕뿐인가……."

  "그렇지요. 자신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헌데, 어떻게 할 건가?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선 보증이 있어야만 하네. ……헌법을 만들까? 생각하고는 있겠지?"

  발렌슈타인의 눈을 들여다 보자 희미하게 눈이 웃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뭘 이제와서 내숭인가. 브라케나 리히터 놈들에게도 헌법이 필요하다고 말했겠지? 눈치 채지 못했다고 생각했는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만만찮은 자다. 그 두 사람을 통해 이쪽에 자신의 생각을 흘렸다. 하지만 헌법,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가? 확인해야만 한다. 이번엔 내가 발렌슈타인을 지긋이 봤다. 발렌슈타인도 시선을 보내고 있다.

 

  "헌법에 의해 국가 형태를 제시하면 동맹인도 납득하려나."

  "헌법을 제정한다고 제국 정부가 말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기야 기대와 불안, 그 양쪽 전부겠죠. 하지만 절망은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가. ……주권은 어찌하는가?"

  "황제주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오, 국민주권으로는 하지 않는가?"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동맹인들이 의회제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하겠지요."

  "흠. 반대인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발렌슈타인이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강한 눈빛으로 날 돌아보고 있다.

 

  "유감입니다만 민주공화정은 운용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인류에 적합한 정치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그럼 누구에게 적합한 건가?"

  "글쎄요. 신님이라든가 그런 존재겠죠. 하기야 그런 자가 존재한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만."

  나도 모르게 뿜고 말았다. 변함 없이 입이 험한 자다. 그래서야 써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발렌슈타인은 내가 웃는 게 불만인 모양이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책망했다.

 

  "신제국이 안정되면 인구도 늘어납니다. 전성기에는 6천 억. 아뇨, 1조를 넘을지도 모릅니다. 주권자가 늘어난다는 건 책임이 분산된다는 겁니다. 1조 인이 책임을 나눠 가진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합니까? 주권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다시 말해 번영하면 번영할수록 책임 소지가 애매해집니다. 인류는 우중 정치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군. 확실히 그러하네. 그렇게 되면 은하연방이 번영 끝에 우중 정치에 몰락하게 된 것도 당연한가."

  내 말에 발렌슈타인이 끄덕였다.

  "민주공화정을 지지하는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은하제국이, 루돌프 대제가 태어난 거겠죠. 연방 시민은 책임 소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을 포기했다. 누구라도 책망을 받는 건 싫으니까요. 편하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좋지요."

  "노골적인 말을 하는구먼."

  사람은 누구나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가. 한숨이 나왔다. 발렌슈타인도 지긋지긋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이렇게 말하기는 뭐합니다만, 루돌프 대제가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만들지 않았다면, 신민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한다고 선언했다면 민주공화정은 과거의 유산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유감이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지."

  그렇게 되었다면 자유행성동맹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확실히 발렌슈타인이 말한 대로다. 민주공화정은 잊혀졌겠지.

 

  "황제 권력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황제가 주권의 무거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혹은 그 무게에 짓눌린다면 권력이 폭주합니다. 민주공화정은 그 병폐를 막기 위해 주권의 분산을 생각한 거겠습니다만……."

발렌슈타인이 입술을 깨물고 있다. 주권과 주권자의 관계인가. 집중할 것인가 분산할 것인가. 결국은 주권자의 질에 의해 시비가 갈린다. 정답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무슨 불안정한 일인지.

 

  발렌슈타인은 지금 상황에선 신민은 주권에 동반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할 거라 보고 있다. 그렇기에 대우는 개선해도 주권은 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겠지.

  헌법의 핵심은 황제주권과 기본적 인권의 존중인가. 엄격하군. 평민들은 이 자를 지지하고 있겠지만, 어떤 면에 있어선 이 자는 문벌귀족 같은 것들 보다도 훨씬 엄격한 평가를 평민에게 내리고 있어.

  문벌귀족들은 무지하기에 평민들에겐 주권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자는 잘 생각했기 때문에 주권 따위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써먹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다.

 

  "경, 맡길 수 있겠는가?"

  "헌법 제정말입니까?"

  "음, 일단 초안 작성이겠지."

  "시간이 걸릴 겁니다만?"

  "어쩔 수 없네. 근시일 헌법 제정을 각의에 걸도록 하지. 그 뒤 폐하의 재가를 얻어 공표하네."

  "알겠습니다."

 

  발렌슈타인이 가볍게 인사했다. 본인도 자신이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망설임은 없었다. 이 자라면 문제 없을 거다. 개혁을 외치며 민주공화정에 호의적인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전제군주정을 무조건으로 신봉하는 것도 아니다.

  브라케나 리히터에게 이 자의 절반이라도 냉철함이 있다면……. 그 두 사람은 개혁만을 생각하기에 발이 땅에 닿고 있지 않다. 현실을 보고 있지 않다…….

 

  "다른 이야기를 하지. 황송하옵게도 폐하께서 퇴위를 생각하고 계시네."

  "퇴위?"

  조금은 놀라는 게 어떤가. 그러니 귀여움이 없다는 소릴 듣는 거다.

  "신제국의 시작에는 새로운 황제가 어울린다고 하셨네. 페잔 천도 후에 황위에서 물러나시겠다고."

  "아말리에 님입니까?"

  "음.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발렌슈타인이 작게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상정 외엿던 모양이다. 내심 놀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조금은 겉으로 드러내도 좋을 것을…….

 

  "그것 뿐입니까?"

  "……."

  "구분을 확실하게 짓고 싶다. 그것 뿐이라고?"

  "아니, 후계를 확실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듯하다."

  "그렇군요. ……그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시기상조라 생각하는가."

  발렌슈타인이 "네"하고 끄덕였다.

 

  "10월 15일의 칙령은 폐하의 이름으로 발령되었습니다. 신제국의 기틀을 짜는 건 폐하의 치세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5개조의 칙서가 있었는가."

  개혁에 의한 새로운 건국을 선언하신 건 폐하. 신제국 창설은 그 집대성인가. 기틀을 짜는 걸 폐하의 치세에 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향력 이전에 단계의 문제가 있다는 거로군. 여기서 퇴위는 무책임하다고 불릴 수밖에 없는가.

 

  "발렌슈타인, 그 기틀 짜기는 언제까지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지요. 역시 헌법 제정, 발포가 하나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페잔 천도로는……."

  발렌슈타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그리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지."

  폐하께선 아직 조금 더 기다리시도록 해야 하겠군…….

  이런, 이 자를 빨리 돌려보내야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절반도 끝나지 않았나. 일이 너무 많구만! 어쩔 수 없다. 내일도 출근하도록 해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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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8월 5일. 페잔,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건 그렇고 유감이었네. 루빈스키. 내 보좌관이 되어 제국에서 권력을 잡는다는 꿈은 무너졌다. 최후의 최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단지 지구교, 혹은 페잔인이 범인이라고 하기엔 의문이 남습니다."

  "……."

  의문? 키슬링과 보임러는 여전히 괴로운 표정이다.

  "범행이 너무 깨끗해."

  "……귄터, 나는 방금 현장이 지독한 참상이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모순을 지적하자 두 사람이 더욱 더 표정을 찡그렸다.

 

  "확실히 지독한 참상이었지. 하지만 범인으로 이어지는 물증, 목격 증언이 없어. 현장에 남아 있던 흉기, 이건 나이프였지만 대량 제조된 것이었다. 범인의 특정에는 연결되지 않아."

  그렇군. 성대하게 저질러 놓은 것 치고는 조잡함이 없다는 건가. 그건 그렇고 흉기가 나이프였냐. 스플래터 영화 뺨치는 참상이었겠지.

 

  "……다시 말해 감정에 맡긴 범행이 아니다. 참상은 위장이라는 거로군?"

  "그럴 가능성이 있어. 적어도 나와 보임러 준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범인은 초보가 아니야. 프로다."

  복수가 아니라 냉철하게 계산된 살인인가. 트류니히트의 얼굴이 굳었다. 응, 성대하기 짝이 없는 환영이네. 평생 기억에 남겠지.

 

  "이상한 건 루빈스키의 호위가 블라스터를 쓴 흔적이 없다는 거다.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마도 재플 입자를 뿌려서 화기를 쓸 수 없게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 ……남아 있던 유체의 대부분에는 몸을 지키려다 입은 상처가 있었다. 손이나 손가락이 없는 사람도. 아마 일방적으로 베였겠지."

  "……."

  "게다가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어. 익명으로 말이야. 그게 없었다면 유체를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키슬링의 표정이 떫다. 재미 없다는 감정이 가슴 속에 몰아치고 있는 것 같다. 뭐, 당연하긴 하다. 사냥감을 옆에서 빼앗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범행을 숨긴다면, 단지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신고할 필요는 없다. 신고한 건 루빈스키의 시체를 발견하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루빈스키의 죽음을 공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행방불명으로 죽었다고 생각되면 곤란하다는 건가. 루빈스키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 대체 누굴까? 침묵이 계속된다. 나쁜 침묵이다. 의심암귀가 방 안을 떠돌아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 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시체는 사후 약 한 달을 경과한 상태였습니다."

  "한 달?"

  "예."

  보임러가 입을 닫자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어떻게 된 일이야? 살인자와 신고자는 타인, 무관계인 건가? 그렇다면 시체의 발견은 우연? ……뭔가가 이상하다. 부자연스럽다.

 

  "조사 상황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아졌다.

  "페잔 경찰에 맡기고 우리들은 뒤로 빠졌어."

  어떻게 된 일이야? 프로 청부업자를 방치하는 건가? 스스로도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짐작가는 데가 있는 거로군?"

  두 사람이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이 방치한다는 건 위험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군이다. 하지만 대체 누구일까? 발레리도 생각하고 있다. 트류니히트만이 따라오지 못하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광역조사국 제6과가 움직였다. ……고 생각하고 있어."

  "……."

  "1년 전 일이지만, 비밀리에 50명 정도가 페잔에 침투했다고 해."

  50명? 제6과의 책임자는 나지만,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안톤인가?"

  키슬링이 고개를 저었다.

  "안스바흐 준장?"

  "아니야. 사법상서 루게 백작이다."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 근엄 성실한 노인이 살인 명령?

 

  청렴결백, 근엄 성실한 것으로 이름 높은 루게 백작이 암살 지시를 내렸다? 믿을 수 없네. 발레리도 눈이 점이다. 트류니히트도 놀라고 있다. 그야 놀라겠지. 정부 각료가 암살에 연류되어 있는 거니까.

  "루빈스키의 시체가 발견된 뒤, 안톤과 안스바흐 준장에게서 잘 해주었다는 놀림을 받았다. 헌병대는 무관계라고 말하니……."

  "50명에 대한 걸 알려주었나."

  "그래. 두 사람 모두 얼굴이 굳어 있었지."

  "……믿을 수 없군."

  내 말에 키슬링이 "나도 믿을 수 없어"라며 끄덕였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 루빈스키가 죽은 건 하이네센에서 비준이 끝난 뒤다. 혹시 그 이전에 암살을 실행했을 경우, 루빈스키의 살해가 발각되면 비준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신고가 있었던 것이 일주일 전. 경의 도착 전에 불안을 제거한 거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혹시 비준 전에 루빈스키가 죽었다면 큰 소란이 벌어졌을 것은 틀림 없다. 하이네센의 매스컴은 제국에 대한 불신감을 부채질했겠지.

 

  "그 50명이지만, 당초엔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 헌병대의 백업을 위해서 페잔으로 보내진 모양이다."

  "……."

  "하지만 실제로는 안스바흐 준장도 안톤도 그 행동을 파악하고 있지 않아. 루게 백작이 직접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1년 전부터 말이지."

  다시 말해 작년 여름부터 루빈스키를 탐색하고 있었다는 건가. 광역조사국은 헌병대에 비하면 경시되기 쉽다. 루빈스키도 방심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페르너도 안스바흐도 놀랐겠지. 광역조사국 제6과가 루빈스키 암살의 실행범이라고 생각이 미쳤을 때는.

 

  그 할배, 내 양친의 살인 사건 때문에 묘하게 내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은 그게 방아쇠였겠군. 내게 이 이상 부담을 줄 순 없다고.

  곤란한 일이다. 할배에게 어울리는 업무가 아니잖아. 깔끔하게 결정을 내린 건 놀랐지만 말이지. 오딘에서 만났을 때는 뭐라 말할까? 수고를 끼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딱 와닿지 않네.

 

  "뭐, 좋아. 중요한 건 루빈스키가 죽었다는 거고, 누가 죽였냐는 게 아니야. 공식 발표로는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걸로 미해결 사건이로군. 최유력 용의자는 지구교라는 게 되겠지만, 다른 의견도 나오겠지. 후세의 역사가, 추리작가에 오락을 줬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쪼록 즐기도록 하라고."

  키슬링이 "나도 의심 받겠지"라며 중얼거렸다. 신경 쓰지마. 최대 흑막은 나 혹은 리히텐라데 후작일 테니까. 그 점을 말하자 키슬링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신경 쓰지 말라니까. 키슬링. 죄인은 원한을 너무 많이 쌓은 루빈스키다.

 

  "루빈스키는 야심도 너무 강하고 뒷공작도 너무 많아. 다루기가 어려워. 게다가 페잔인의 원한도 너무 많이 샀지. 페잔 천도를 생각하면 그를 받아들이는 건 메리트보다 디메리트가 더 많아."

  키슬링, 보임러, 발레리가 끄덕였다. 트류니히트는 곤혹스런 표정이다. 설마 제국에 몸을 던진 걸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날 실망시키지 말라고.

 

  "원수 각하?"

  "뭔가요? 헤르 트류니히트."

  "각하의 일은 대체……,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 겁니까?"

  그렇군. 의문을 가졌는가. 그렇긴 하지. 나 스스로도 기묘한 존재라고 생각해. 동맹에선 나 같은 사람은 없겠지.

 

  "이것저것 있습니다.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변경성역 개발의 책임자, 제국령의 치안 유지, 국정개혁에도 얽혀 있습니다. 말하자면 뭐라도 시키는 대로 다 해결하는 해결사입니다. 나이가 젊으니까 쓰기 쉽다고 하네요."

  "허어."

  "어느 분야에서 협력을 할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두세요. 어느 분야에서 협력해주셔도 상관 없습니다."

  트류니히트가 "알겠습니다"라며 끄덕였다. 얼굴색이 좋지 않네. 조금 지쳤나?

 

  "헌데 내년에는 천도를 행할 생각이지만, 페잔의 치안은 유지되고 있다고 봐도 좋을까?"

  내가 질문하자 키슬링과 보임러가 서로를 돌아보고 끄덕였다.

  "문제는 없습니다. 구속된 장로위원회 멤버에게서 지구교 잔당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꽤 무너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대규모 테러는 불가능하겠죠. 페잔인들에게서도 놈들 때문에 페잔은 멸망했다고 미움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민간 협력자를 얻는 것도 어려워졌다는 건가.

 

  "나와 보임러 준장은 이대로 페잔에서 지구교 대책에 종사한다. 걱정할 필요 없어. 게다가 광역조사국 50명도 있으니까."

키슬링이 비아냥 섞인 웃음을 띄웠다.

  "아직 페잔에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아. 안톤에게선 그렇게 들었다."

  헌병대가 움직인다. 그 그림자에서 광역조사국 제6과가 지구교에 숨어든다……. 무서운 이야기네.

 

  지금 상황에서 치안에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천도로 향하는 제1관문은 돌파했다고 판단해도 좋겠지. 그럼 렘샤이트 백작과 만나도록 할까. 행정 면에서 문제가 없다면 오딘으로 돌아가서 천도로군.

 

 

 

제국력 490년 8월 10일. 페잔, 은하제국 고등변무관저. 길베르트 파르마.

 

  "의외로 들키지 않는 법이군."

  "뭐가 말입니까?"

  "아니, 여기까지 오는 길에 아무도 날 눈치 채지 못하길래."

  내 말에 발렌슈타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그에 이끌리듯 나도 웃고 말았다. 묘한 일이다. 은하제국 고등변무관저 응접실에서 우리들이 서로 마주 앉아 웃고 있다니…….

 

  "전혀 다릅니다. 헤어 스타일도 그렇지만, 인상이 다릅니다. 옛날엔 눈썹을 찌푸리고 언제나 불쾌하단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의 온화한 표정에서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무례하군. ……위엄을 갖추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거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무리를 하고 있었던 거겠지."

  "어깨가 저리지는 않았습니까?"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군."

  발렌슈타인이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를 내서. 정말로 무례한 자다.

 

  "하지만 정말로 통일할 줄이야……, 페잔에 천도한다고 들었네만."

  "알고 계셨습니까."

  "페잔인 사이에선 꽤나 화두가 되고 있어."

  내가 답하자 발렌슈타인이 눈을 깜빡인 뒤 웃었다. 페잔인의 소문 속도에 감탄한 모양이다.

 

  "내년에는 그러할 예정입니다. 페잔인들은 그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군. ……절대 반대라고 말하는 자는 적지. 어느 쪽인가 한다면 환영하는 삶이 많다고 생각하네. 제국이 우주를 통일했다. 페잔이 그 수다가 된다면 지금 이상으로 번영할 거라 생각하고 있어."

  발렌슈타인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라가 멸망한 것이니 반발이 크리라 생각한 거겠지.

 

  "모르겠는가? 페잔인의 마음을. ……페잔인 중 적지 않은 자가 지구교에 대한 걸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들 이 나라가 무시무시한 음모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야.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협력하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지."

  "그렇군요. 그런 겁니까."

  발렌슈타인이 끄덕였다. 납득한 모양이다.

 

  많은 페잔인에게 있어서 지구교의 음모는 악몽일 뿐이었다. 그 악몽을 뿌리치기 위해 새로운 제국의 수도가 되는 일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제국이 빛나면 빛날수록 제도 페잔도 빛난다. 과거의 오명 따위 아무도 생각하지 않게 되겠지. 페잔인은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지구교의 악몽을 신제국의 영광으로 덮어 씌우는 거다.

 

  루빈스키의 죽음조차 아무도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루빈스키가 지구교와 이어져 있었던 점, 그리고 배신하고 제국에 붙은 점은 다들 알고 있다. 죽인 것은 아마도 제국일 거란 것도 눈치 채고 있다.

  하지만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걸로 흉측한 진실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아무도 루빈스키의 시체가 악취를 풍기는 걸 바라고 있지 않다. 오히려 루빈스키가 영원이 사라진 걸 마음 속 어딘가에서 환영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페잔인은 신제국의 건설에 협력해준다는 거로군요."

  "그렇겠지."

  "당신도 어떻습니까?"

  "나? 그건 무리겠지. 내 정체를 눈치채는 자도 나올 터다. 큰 소란이 일어나겠지. 그러므로, 나는 페잔 상인답게 모쪼록 돈이 되는 일만 할 생각이다."

  내가 웃자 발렌슈타인도 웃었다.

 

  "폐하께 알현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길베르트 파르마로서."

  "폐하께?"

  "네. 폐하께서 당신을 길베르트 파르마로 인정한다면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죠."

  "그렇군."

  "아말리에 님, 엘리자베트 님도 당신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숙모님과 엘리자베트인가. 폐하 밑에서 보호 받고 있다 들었지만……. 만나 볼까.

 

 

 

제국력 490년 8월 2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페잔을 출발하여 벌써 열흘이 지났다. 앞으로 한 달 정도로 발할라 성역에 도착한다. 항행은 지나칠 정도로 순조로워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교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다. 이유는 발렌슈타인 원수가 몸상태가 좋지 않아 틀어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장병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하기야 한 달에 한 번은 이러니까 놀랄 일도 아니다. 그렇게 기쁜 일도 아니지만…….

 

  욥 트류니히트 전 의장도 의자에 앉아 한가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있으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화상대 정도는 해주지만…….

  하긴 장병들이 그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일부에선 일국을 대표하는 정치가로서 조금 무게가 부족한 건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애교가 있고 호감이 가는 아저씨. 그것이 전 의장에 대한 모두의 평가다.

  무익한 싸움을 멈추고 장병의 목숨을 지켰다는 부분도 평가가 높다. 단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그런 망설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시선이 마주쳤다. 전 의장이 웃음을 띄며 "잠깐 괜찮나?"라며 말을 걸어왔다.

  "피츠시몬즈 대령. 자네가 발렌슈타인 원수의 부관이 되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었나? 제국에선 여군이 전선에 나가지 않는다. 아니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네만."

  "그렇지요. 본래 여군은 전선에 나서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관은 예외적인 존재입니다."

  "흠"하고 전 의장이 끄덕였다. 시선이 그 앞을 알고싶어 한다. 무시해서 괜한 추측을 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다. 문제 없는 범위 내에서 답하도록 하자.

 

  "소관이 망명자라는 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래, 그렇게 들었네. 피츠시몬즈라는 성에서도 그 점은 알 수 있지."

  "동맹에서 사관 교육을 받았기에 능력적으론 어디에 배속되어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망명자라는 건 어디든지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겠지. 동맹에도 로젠리터가 있으니까 그 점은 알고 있네."

  외인부대라는 건 어디에나 있는 법이겠지. 동맹이 보호국이 된 지금, 망명자는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망명한 함대 참모장이 발렌슈타인 원수 각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당시 각하는 아직 대령에서 전공에 의해 준장으로 승진하리라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5년 전인가."

  전 의장이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국군의 실력자. 우주 통일의 공헌자가 5년 전에는 대령이었다. 확실히 신기한 느낌이 든다. 5년 전, 만났을 당시엔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장성이 되면 부관을 두는 게 인정됩니다. 하지만 각하께선 부관을 둘 수 있을지 없을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건 어째서인가?"

  "계급은 준장, 출신은 평민, 연령은 20세. 부관으로서 섬기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전 의장이 "그렇군"하고 끄덕였다.

 

  지금이라면 출신에 의한 차별은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귀족들의 전성기였다. 눈썰미 있는 자라면 귀족 출신 장성의 부관이 되길 바랬겠지.

  그에 비하면 평민 출신 장성의 부관은 한 단계 아래로 보인다. 하물며 자신보다 젊은 상관이라니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원수 각하는 부관이 될 사람이 없었고 대령은 편입될 곳이 없었는가……."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소관이 부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군."

  전 의장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예상 외의 대답이었던 거겠지. 나 스스로도 신기하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무리도 아니다.

 

  "대령에게 있어 원수 각하는 어떤 분이신가?"

  지나가는 어조의 질문이었다. 불만 유무의 조사? 날 끌어들이려고 생각하는 걸까? 본래 동맹인이었으니 동맹의 지금 상황을 동정하기라도 한다는?

  가볍게 보지 말아주면 좋겠네. 원수 각하의 부관이 되어 5년, 아주 작은 실수가 목숨을 빼앗게 되는 일을 지금까지 싫을 정도로 나는 봐왔다.

  은하제국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전 의장. 특히 권력자의 옆에 있는 사람은. 덧붙여 말하자면 이 5년, 민주공화정이 그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뛰어난 동생 같은 분입니다."

  "호오, 동생……."

  "네. 능력도 뛰어나고 주위에서 신뢰도 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동생이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 뭔가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의장이 감탄했다는 듯이 끄덕이고 있다.

 

  이건 경고야. 트류니히트. 날 이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도 조금이라도 원수 각하의 도움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길.

  ……그렇게 되면 알게 되겠지. 사실은 때때로, 아니 빈번히 무리를 하니까 걱정 때문에 눈을 뗄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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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6월 15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각하, 코코아를 드릴까요? "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트류니히트 일행이 돌아가자 발레리가 코코아를 만들어 주었다. 달콤한 향기가 집무실에 퍼졌다. 한 모금 마신다. 솔직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메이드 인 동맹의 코코아도 나쁘지 않다. 페잔에 천도하면 이 코코아를 마실 기회도 늘어나겠지.

 

  레벨로의 정권이 출범하면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동맹에 있을 날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피츠시몬즈 대령."

  "예."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 걸 확인하면 귀국합니다. 슬슬 귀국 준비를 시작해주세요."

  "각 함대에 통지하겠습니다."

 

  발레리가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뭐라 해도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부관이니까. 의원, 군인, 관료, 일반시민이 정보를, 편의를 얻기 위해 접촉하고 있는 것 같다.

  뤼네부르크에게는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지만. 역시 여자니까 가볍게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뤼네부르크의 인덕, 아니 부덕인가…….

 

  돌아가는 건 페잔 경유로 돌아가자. 강화 조약으로 간다르바 성역은 제국령이 되었다. 행성 우르바시의 상황도 봐야만 한다. 앞으로 제국의 최전선은 거기가 될 테니까.

  페잔에 도착하면 루빈스키가 접촉하려 올 것이다. 마음껏 환영해주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니까. 감동의 부자 상봉도 준비해주마. 루퍼트가 기뻐하겠지. 자신의 손으로 루빈스키를 죽일 기회가 찾아왔다고.

  힘내라고, 루퍼트. 상대는 인기가 많다. 경쟁률은 높으니까.

 

  ……납득하지는 않았었지. 반론은 하지 않았지만, 트류니히트 일행은 납득은 하지 않았다.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걸로 황제권력을 검사하게 한다. 이상은 그렇겠지. 제국에서도 리히터, 브라케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지. 어떤 정치 제도도 운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의회제 민주주의 같은 걸 도입하면 혼란이 일어날 뿐이겠지.

  인정되는 건 지방자치까지다. 행성 단위라면 인정해도 좋다. 단 제약은 걸어 두겠지만.

 

  라인하르트는 통치에는 공평한 세금 제도와 공평한 재판이 있으면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덧붙이자면 충분한 식량과 인프라가 정비되면 완벽하겠지.

  국민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할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의회제 민주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인류는 민주제도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 판단력이 없는 아이에게 대량살상무기의 스위치를 맡기는 짓은 해선 안 된다.

 

  중요한 건 주권자인 황제의 권력을 제한하는 일이다. 이건 헌법 제정으로 실행하면 된다. 그리고 정치 계급을 고정하지 않는 것. 고정하게 되면 내부적으로 특권계급화하여 부패하기 쉽다. 그건 문벌귀족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항상 새로운 피를 넣는 것으로 통치 계급에 유연성과 혁신성을 가지게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브라케나 리히터가 평민 계급을 대표하는 식으로 정권에 참가하고 있다. 문제는 없다.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지금부터겠지. 어떤 제도로 유연성과 혁신성을 유지, 운용할 것인가.

 

  의회라는 것은 정부 각료 후보자의 인재풀이기도 하지만, 그걸 만들지 않는다면 그걸 대신할 기관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추밀원이다. 황제의 고문관으로 조직되는 자문기관, 추밀원을 설립한다. 거기에는 관료, 군인, 재계인, 그리고 지방자치에서 성과를 올린 정치가를 황제 고문관으로 참가하게 한다. 그에 따라 인재풀로 운용한다…….

  세습이 아니니까 특권계급도 되기 힘들 것이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말해 볼까. 할아범도 의회제 민주주의에는 반대였다. 어느 정도 나하고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헌법 제정도 포함해 상담해보자.

  뭐라 해도 이런 종류의 문제는 이상주의자에겐 맡길 수 없다. 할아범과 같은 방심할 수 없는 능구렁이의 생각이 가장 참고가 된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묘하게 만나고 싶어졌다.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만…….

 

 

 

우주력 799년 6월 2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가버렸는가? 호안."

  "그래. 가버렸지. 자네에게 안부를 전하더군."

  "……그런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는데……."

  "업무가 우선이다. 그건 트류니히트도 이해하고 있어."

  발렌슈타인 원수가 제국으로 귀환 길에 올랐다. 트류니히트도 거기에 동행하고 있다. 하이네센에선 트류니히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다.

  지금도 최고평의회 빌딩 앞에서 시위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빌딩에서 둘이서 함께 보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겠지.

 

  "호안, 트류니히트가 잘 해줄 거라 생각하나? "

  "글쎄. 어떨까. 상대는 꽤나, 아니 무척이나 강적이야."

  그 회담에서 알게 된 것, 그것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군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꽤나 정치적인 식견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명확한 국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신뢰가 두텁다는 것도 군인으로서의 능력만이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능력도 인정 받은 거겠지. 아마도, 앞으로의 제국은 그가 이끌게 될 것이다…….

 

  "지난 회담이지만. 나는 굳이 의회의 설치를 제안해봤다. 그를 화나게 만들고 싶었던 거지. 화를 낸다면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보였나? "

  옆에 앉은 호안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꽤나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인간불신이 강한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망명자를 중용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아. 개인은 신용해도 집단, 아니 군중으로서의 인간은 신용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민주공화정 같은 건 논외겠지."

  그렇군. 군중인가. 집단이 되면 인간은 부화뇌동하기 쉬운 특성을 가진다.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는 루돌프의 재래라고 생각하네. 루돌프도 대중은 믿지 않았지. 일부의 엘리트가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돌프와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의 강약, 냉철함이겠지."

  "……루돌프 만큼 자신을 과신했다면? "

  호안이 고개를 저었다.

  "찬탈을 도모했을 거다. 그리고 냉철함을 잃으면 루돌프 그 자체가 되겠지."

  "……그럼 지금 이대로라면? "

  이번엔 쓴웃음을 띄웠다.

  "전제군주제 국가의 유능한 집정관이 되겠지. 어차피 어찌 되든 우리들에겐 위험한 상대다."

  한숨이 나왔다. 호안이 소리 내어 웃었다. 어째서 웃는 걸까?

 

  "트류니히트도 고생이겠군."

  "각오한 바겠지. 애초에 새로운 국가 건설이다.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는 것 아닐까. 바라던 바는 아니라고는 해도."

  "……그렇겠지. 저건 근본적인 낙천가, 아니 향락주의자니까."

  "너무하는군."

  호안이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오히려 큰일인 건 우리들이겠지"라고 걱정하는 듯이 말했다. 거기에 관해선 완전히 동감이지만, 나를 걱정하는 건가?

 

  "호안, 해야하는 일이라면? "

  "일단 대사관의 설치. 그리고 제국으로 보낼 대사, 그리고 실무진의 인선이로군. 그리고 영토가 축소되었다. 이주희망자는 동맹령 내에 거두어 들여야만 해. 그 준비로군."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고맙네 호안, 성가신 안건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간단한 안건도 넣어줘서, ……정말 고마워.

 

  제국과의 강화 조약으로 이제르론 방면, 페잔 방면의 영토를 꽤 많이 제국에 할양하게 되었다. 하기야 본래 변경 성역이라 불렸던 지역이다. 발전도 없고 인구도 적다. 동맹 경제에 대한 영향은 적을 것이라는 건 이미 계산이 끝났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짐덩이가 사라져서 몸이 가벼워졌다고 해도 좋다. 지방 양여세도 적어지겠지. 하지만 그것도 약자 잘라내기라고 평판이 나쁘다.

 

  "게다가 군축과 인원 감축. 실업자가 넘쳐나겠군."

  "공공사업도 대규모로 행한다. ……군인 천하에서 건설업자의 천하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권 다툼이 발발하겠지. 하지만 전사자가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그에 대해 말하자 호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실업자는 군인뿐만이 아니야. 군 관계의 기업도 마찬가지다. 군수에서 민수로 전환이 순조롭지 않으면 경영이 기울겠지."

한숨이 나왔다.

  "호안, 밝은 화제는 없는 건가? "

  "아까 자네가 말했잖나? 이 이상 전사자는 나오지 않는다고."

  "고맙네. 알려줘서. 잊고 있었어. 끔찍한 화제가 너무 많아서."

  전도다난이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제국력 490년 7월 1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폐하로부터 장미정원으로 오라는 부르심이 있었다. 서둘러 장미정원으로 가자 폐하는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과 함께 있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자 편히 있으라는 말씀이 있어 일어서는 것이 허락되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

  "음. 조금 상담할 것이 있네. 발렌슈타인이 돌아온다고 하더군."

  "예. 페잔 회랑을 거쳐 돌아옵니다. 늦어도 10월이 되기 전에 돌아오겠죠."

  내가 답하자 폐하가 끄덕였다. 헌데,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이 계신다는 것은 공적인 일이 아니군. 사적인 일인가.

 

  "그 뒤에 천도인가. 내년일까?"

  "예. 페잔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문제가 없다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건국인가."

  "예. 그렇게 됩니다."

  폐하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황제도 새롭게 하는 게 어떠한가? "

  "예? "

  황제도 새롭게 한다? 잘못 들었는가?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헌데…….

 

  "퇴위를 생각하고 있네만."

  "폐하! "

  "아버님!" "

  나와 황녀 분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폐하가 소리 높여 웃었다. 퇴위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폐하."

  "장난이 아닐세. 짐은 진심으로 아말리에에게 황제위를 물려주려 생각하고 있네."

  아말리에 님이 "아버님! "하고 소리를 높였지만 폐하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이다.

  "제국이 변한다는 걸 여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선 세대교체야말로 가장 적당하겠지. 게다가 죽을 때까지 황제를 맡는 것도 고생이야. 이제 30년 이상 황제를 맡고 있던 걸세. 이미 충분하겠지."

 

  30년 이상……. 제위 기간은 역대 황제 중에서도 상위에 들어가는 건 틀림 없다. 지치신 건가……. 하지만 퇴위라니, 지금까지 퇴위하신 분은 없었지만…….

  "하지만 아버님. 저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의 아내였습니다. 본의가 아니긴 했습니다만, 남편은 반역자가 되었습니다. 그 배우자였던 제게 황제가 될 자격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폐하가 고개를 저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어쩔 수 없이 반역자가 되었지. 그 일은 너희들에게 어떠한 흠도 되지 않아. 하지만 확실히 그 일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자도 있겠지. 그렇기에 짐이 건재할 때에 황위를 넘겨주는 거다. 새로운 제국의 황제에 어울리는 기량을 가진 자로서 말이지."

  과연, 폐하께서도 에르빈 요제프 전하에 대한 걸 우려하고 계신 건가……. 그렇게 되면 단지 반대하기만 할 수는 없겠군.

 

  "황송합니다만 폐하, 폐하의 생각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신하로서도 어찌 판단하면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도 같은 마음이시겠지요."

  둘에게 시선을 향하자 두 사람 모두 끄덕였다.

 

  "퇴위는 페잔에 천도한 뒤가 될 걸세. 시간은 충분히 있어. 천천히 생각하는 게 좋겠지. 발렌슈타인에게도 상담해 보게."

  "예, 반드시. 그렇기에 부탁할 것이 있사온데."

  "음. 무엇인가?"

  "그건 비밀로 하고 싶기에. 밖에 흘러가면 다들 혼란할 것입니다."

  폐하가 "알겠다"라고 끄덕였다. 그걸 계기로 어전에서 물러가는 허락을 받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에 빠져선 안 된다. 냉정해져야지.

  ……확실히 하나의 구분 점이긴 하다. 병합까지 앞으로 30년이라고 하지만 제국은 페잔, 자유행성동맹을 물리치고 사실상 우주를 통일했다. 천도에 의해 과거의 제국과 결별하여 신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한다. 누구나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이해할 터다.

  그걸 실적으로서 퇴위, 그야말로 폐하야말로 은하제국 중흥, 아니 신제국 건립의 명군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건국을 행하게 된다면 여러가지 문제도 나올 것이다. 아말리에 님보다도 폐하가 황제인 편이 좋지는 않을까. 황제로서의 무게는 아말리에 님으로는 폐하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페잔인, 동맹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불안이군.

 

  황제 계승에 혼란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폐하가 황제에 머무르고 아말리에 님을 황태녀로 한다는 수단도 있겠지. 실무를 황태녀 아말리에 님이 행하고 폐하가 후견을 본다. 다들 안심할 것이다.

  ……발렌슈타인은 어찌 생각할까. 퇴위에 찬성할까, 시기상조라고 반대할까.

 

  녀석의 문관 전직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부의 혼란은 피해야만 할 것이고, 문관들의 혼란도 피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퇴위 문제와 연동될 법한 사태는 좋지 않다. 혼란이 더욱 가중될 테지.

  역시 아말리에 님을 황태녀로 하고 발렌슈타인을 국무상서로 하는 게 좋을까. 그리고 시기를 봐 아말리에 님이 황제에 즉위, 발렌슈타인을 재상 취임, 이라는 것이 좋겠지…….

 

 

 

제국력 490년 8월 5일. 페잔,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페잔에 도착하자 키슬링이 보임러를 데리고 찾아왔다. 아무래도 이쪽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천도 전에 대청소라도 하는 거겠지. 함교가 아니라 개인실에서 대화하기로 했다.

  참가자는 나, 키슬링, 보임러, 발레리, 그리고 트류니히트. 꽤나 호화로운 면면이다. 트류니히트 군, 자네에게 제국의 뒷세계를 보여주도록 하지.

  그러니 다들, 그런 수상쩍은 표정으로 트류니히트 군을 보지 말아주게. 그는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그리고 자네들의 소중한 친구도 될 수 있겠지.

 

  다행히 트류니히트는 좌담의 명수였다. 긴장이 풀어지기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나와 키슬링이 편하게 대화하는 것에 트류니히트는 놀란 모양이다. 기억의 메모에 키슬링을 중요인물로 기록했겠지.

  "에리히, 루빈스키가 죽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래. 누군가가 그를 죽였다는 건 알고 있어."

 

  일주일 정도 전에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페잔의 은신처에서 죽은 것이 발견되었다. 예의 정부 소유의 비밀지하 셸터의 더욱 밑에 숨겨져 있던 은신처에서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루빈스키의 호위도 함께 살해된 걸 보면 범인은 단독범은 아닌 것 같다. 유감이로군. 루퍼트. 부자 상봉은 물 건너 갔어. 복수도.

 

  "훌륭한 솜씨야. 귄터."

  내가 내가 놀리자 키슬링이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이 건에 헌병대는 연관되어 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키슬링과 보임러를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의문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보다도 트류니히트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재밌었다. 트류니히트 군, 발레리를 보고 배우게.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있잖아.

 

  "헌병대가 아니야. 그럼 지구교인가? 혹은 페잔인? 배신 당한 것을 분노하여 루빈스키를 죽였는가."

  "범인은 루빈스키를 꽤나 집요하게 괴롭힌 뒤에 죽였습니다. 현장에 남은 지독한 흔적을 보면, 참상이라고 해도 좋겠죠."

  보임러가 나의 추리를 인정했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꽤나 처참했겠지. 구토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숨어있는 루빈스키를 찾아내 죽였는가. 그 은신처를 찾아내는 게 아마추어 집단에게 가능할까? 그야 무리겠지. 그렇다면 지구교인가. 골수에 사무친 원한으로 필사적으로 찾아낸 거겠지. 그리고 루빈스키를 죽일 때는 너무 기쁜 나머지 실컷 저지르고 말았다는 거다.

  ……예상 외의 결말이지만 나쁘지 않다. 제국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끝난 걸 생각하면 만만세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구교에 감사했다. 세상사 재밌네. 신기한 일로 가득 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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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5월 25일. 하이네센. 율리안 민츠.

 

  예상 외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

  뭔가 시끄럽다, 라고 생각하며 밖을 보니 고급 지상차와 장갑차가 관사 앞에 잔뜩 모여 있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지금, 원수와 부관인 피츠시몬즈 대령, 양 제독, 그리고 나, 4명이 홍차를 마시고 있다.

  사실은 나 같은 건 사양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발렌슈타인 원수가 자리를 초청해주었다. 굉장히 기쁘다. 원수에게 감사했다.

 

  넷이서 홍차를 마시고 있지만, 무척이나 고요하다. 조금 긴장된다. 컵을 접시에 두려고 하자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위험하다. 굉장히 소리가 울린다. 고개를 드니 원수가 싱글벙글하고 있다. 부끄러웠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양 제독, 제독은 30년 후의 통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탄 없는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온화한 어조였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혼란을 막는다는 의미로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몹시 교활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엥, 그런 말을 해도 좋은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양 제독은 조용히 홍차를 마시고 있다. 일부러 화를 부채질하려한 걸까나. 하지만 발렌슈타인 원수와 피츠시몬즈 대령은 서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확실히 몹시 교활하다고 보여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진심은 혼란을 막고 싶다, 는 데에 있습니다. 제국과 동맹은 너무나도 상대방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0년 동안 무지에서 오는 적의나 반감, 멸시를 없애고 싶습니다."

  "……."

 

  "가족을 전쟁으로 잃은 건 동맹 시민만이 아닙니다. 제국에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노나 슬픔이 사라지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30년 평화가 계속되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인류 사회를 통일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굉장한 열기를 느꼈다.

 

  "제국에 의한 통일입니까?"

  제독이 질문했다. 조금은 비아냥처럼 들렸지만, 제독은 비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원수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제국에 의한 통일입니다. 하지만 제국인만이 만드는 제국은 아닙니다. 앞으로 제국은 페잔으로 천도합니다."

  "천도……."

 

  양 제독이 중얼거렸다. 페잔으로 천도, 굉장한 이야기를 들어버렸지만 좋은 걸가. 양 제독은 그렇다쳐도 나에게까지 말해버리는 건.

  하지만 피츠시몬즈 대령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거다. 이 사람, 동맹의 망명자라고 들었지만, 굉장히 신뢰 받고 있는 것 같다.

 

  "페잔에 자리를 잡고 제국과 동맹을 통치한다. 정치적인 입지에 손색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중요하고, 군사적으로는 페잔 회랑을 직접 통치하게 된다. 이 이상 신제국의 수도로서 어울리는 장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동의합니다."

  양 제독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제국을 만든다. 제국인만이 아닙니다. 페잔인, 동맹인도 참가하도록 합니다."

  굉장하다. 망연하고 있으니 원수가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장난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트류니히트 전 의장도 참가합니다."

  양 제독과 같은 검은 눈동자. 그리고 빛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부럽다고 생각했다.

 

  "어떤가? 민츠 군. 자네도 페잔으로 오지 않겠어? 새로운 국가 창립에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

  "네? 하지만 저는 아직 아이라……."

  갈팡질팡하면서 답하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명랑하게 웃었다.

 

  "제국은 30년 걸려 나라를 만든다. 아니, 실제로는 더 오래 걸리겠지. 통일이 될 때까지 30년이다. 자네는 계속 아이인 채일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원수가 또 낭랑하게 웃었다. 뭔가 능숙하게 조종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뺨이 뜨거워졌다.

 

  "페잔에서 공부하면서 세상의 움직임을 본다. 그리고 자네의 힘을 시험해보지 않겠나?"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양 제독과 떨어지는 건…….

  "양 제독과 떨어지는 건 불안할까?"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내 표정이 그렇게 읽기 쉽나? 조금 분하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양 제독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떻습니까? 양 제독. 당신도 페잔에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환영하겠습니다."

  "……."

  "동맹에서 떨어지는 건 신경이 쓰이십니까?"

  "다소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약간 망설이면서 제독이 답하자 원수가 응응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과 동맹은 인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도모합니다. 그 안에는 관료들도 포함됩니다. 동맹의 관료들은 제국에서 국가 건설에 참가하게 될 거고, 동맹으로 간 제국의 관료들은 동맹의 사회제도를 충분히 배우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견식을 높이면 새로운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겠죠. 그걸 알게 되면 동맹 시민도 새로운 제국에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목소리가 밝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책략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눈 앞에 있는 원수에게선 성실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편견이나 교만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신기한 느낌이다. 이런 사람이 제국에 있다니 조금 믿겨지지 않는다.

 

  양 제독은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이렇게나 열심히 초대하고 있는데……. 양 제독을 봤다. 제독은 표정이 없다. 아마도 마음을 눌러 죽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발렌슈타인 원수가 나를 페잔으로 초대한 것도 양 제독을 권유하기 위한 것일 터다. 조금 분하다. 나도 이런 식으로 권유 받고 싶다.

 

  "양 제독, 외부에 있는 것만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야 비로소 바꿀 수 있는 겁니다. 평론가로 만족할 수 있다면 외부에 있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없다면 당신은 불평가가 됩니다. 장래성이 있는 젊은이를 키우는 데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 제독의 입가가 경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내고 있는 건가?

 

  발렌슈타인 원수와 피츠시몬즈 대령이 돌아갔다. 양 제독은 결국 원수에게 대답을 하지 않았고, 원수도 무리하게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양 제독은 계속 생각에 잠긴 채였다. 나도 대답을 묻지 않았다. 어떻게 되는 걸까…….

 

 

 

제국력 490년 5월 25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양에게 갔다가 호텔에 돌아오니 그라이프스가 와 있었다. 군복이 아니었다. 동맹 시민이 입을 법한 정장을 입고 있다. 온화한 표정의 참모 타입의 남자다. 부자연스럽게는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호출에 응해준 것을 감사하자 그라이프스가 승전을 축하해주었다. 아부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 점이 느낌이 좋았다.

 

  "동맹군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내가 묻자 그라이프스가 얇은 미소를 보였다.

  "권유는 받았습니다만 거절했습니다. 정보 제공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응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겠죠. 여기에 사는 이상 집세 정도는 내야 하니까요."

  "집세입니까. 뭐, 그렇지요."

  이번엔 쓴웃음을 띄웠다. 곤란하군. 별로 재미 없었나?

 

  "그라이프스 대장이 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의뢰로 귀족연합군에서 이탈한 건 알고 있습니다. 꽤나 괴로운 일이셨겠죠. 그 마음,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그라이프스도 고개를 숙였다. 좀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명예를 버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의뢰에 응한 것이다.

  나라면 할 수 있었을지……. 어지간한 신뢰 관계로는 불가능하겠지. 그라이프스에게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점, 그것만으로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어리석은 인물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덕분에 엘리자베트 님, 사비네 님을 무사히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폐하도, 그리고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도 그 점을 굉장히 기뻐하고 계시고, 대장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도 발할라에서 감사하고 계시겠죠."

  내가 말하자 그라이프스가 눈을 감고 뭔가를 참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최후의 최후에서 도망치는 걸로 도움이 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흘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우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감겨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위로는 하지 않는다. 그걸 할 수 있는 자는 발할라로 가버리고 말았으니까.

 

  "이 후에 비준서를 교환하면 강화가, 그리고 제국에 의한 통일이 약속 됩니다. 제국은 그걸 축하하기 위한 특사를 보낼 예정입니다. 그라이프스 대장이 제국으로 돌아가도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

  "모두들, 대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4세, 부인, 따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리자 그라이프스가 눈을 떴다.

  "……감사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묘 앞에서 보고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라이프스는 성실하고 사려 깊은 자다. 제국에 돌아가면 시종 무관에라도 추천해보자. 그리고 궁중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유족 곁에 있도록 한다.

  분명 좋은 시종 무관이 될 터다. 그녀들을 성심 성의껏 지켜주겠지. 프리드리히 4세도 안심할 것이 틀림 없다.

 

  서로 대사를 교환하게 되면 다른 망명자도 돌아오게 되겠지. 고향에 돌아가면 얌전해질 터다. 괜히 있을 곳을 없애버리면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것보다는 좋다.

  하지만 란즈베르크 백작 알프레드, 녀석은 아니다. 반드시 잡아서 모든 걸 말하게 만든다. 그 뒤에 어떻게 할지는 피해자들에게 맡기도록 하자. 딸을 납치당한 어머니. 남편을, 아버지를 잃게 된 그녀들에게…….

 

 

 

우주력 799년 6월 1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호안과 함께 최고평의회 의장실로 향하자 트류니히트가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었다.

  "축하하네. 레벨로. 언젠가는 자네가 최고평의회 의장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나와 자네 사이에 인수인계를 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이런 시기에 최고평의회 의장이 되는 게 축하할 일이라곤 생각하기 어렵군."

  "그렇게 말하지 말게. 자네들 중 한 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야."

  뭐, 그것도 그렇지. 호안을 돌아보자 어깨를 으쓱이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내가 의장으로서 제국과의 절충을, 호안이 의회대책을, 옳았던 걸까, 이 선택은…….

 

  강화 조약의 비준 후, 트류니히트가 의장 사임을 표명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의장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려나 생각했지만, 거의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간단하게 내가 의장이 되는 걸로 정리 됐다.

  30년 자유행성동맹은 존속한다, 라고 해도 제국의 보호국으로서 30년이다. 제국의 태도가 불투명한 지금, 의장이 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이후, 제국의 태도가 온건하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면 의장직은 매력적인 자리가 되겠지만, 각박하다면 매력이 없는 자리가 된다. 후보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게 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인수인계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것이다. 두세 마디라곤 할 수 없지만 단시간에 끝났다.

  "그럼 우리들의 새로운 주인에게 가보도록 할까? 인사를 해야만 하겠지. 응, 큰일이구만. 우리들은 동맹 시민 외에 제국이라는 주인을 가진 거다. 이건 양다리라고 해야 하려나?"

  호안이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다.

 

  "호안, 즐겁다는 듯이 말하지 말아주게."

  "안 되는가? 나는 꽤나 기대 된다네. 자네도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건 그렇지만 조금 더 좋은 입장에서 만나고 싶은데."

  내가 투덜거리자 트류니히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욕심이 과하군. 레벨로. 나에 비하면 훨씬 괜찮은 입장이겠지."

  트류니히트의 말에 호안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니겠지. 두 사람 모두. 하지만 트류니히트의 입장보다 괜찮은 건 틀림 없다.

 

  셋이서 호텔 캐프리콘으로 향하자 바로 발렌슈타인 원수의 집무실로 안내 되었다. 조금 안심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은, 저쪽은 이쪽에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 같다.

  방으로 들어가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웃음을 띄며 마중해주었다. 검은 망토와 군복, 하지만 온화한 표정에서 볼 때 군부의 실력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서오세요. 트류니히트 의장. 그쪽 두 사람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미 전 의장입니다. 원수. 제 후임이 되는 죠안 레벨로와 그를 보좌할 호안 루이입니다. 제 정권에선 재정위원장과 인적자원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나와 호안을 보고 있다. 이상한 표정이다. 확인하는 듯이 우리들을 보고 있다.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면서 환담했다. 홍차를 내온 부관은 방에서 나갔다. 방에는 우리들 네 사람밖에 없다. 3 대 1, 신용 받고 있다는 걸까.

 

  "제국으로선 동맹을 몰아 붙일 생각은 없습니다. 무리 없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무리 없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통일 그 자체가 동맹을 몰아 붙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호안이 묻자 발렌슈타인 원수는 끄덕였다.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동맹 정부가 뛰어 넘어주길 바랄 수밖에…….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제국이 고의로 동맹을 몰아 붙이는 일은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

  "……."

  고의인가. 고의로 몰아 붙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시민은 폭발하고 혼란이 일어난다. 혹은 강제적으로 통일이 빨라질 가능성도 있겠지. 대립이나, 원한이 남은 채 통일인가. 확실히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불만족스럽습니까?"라고 물었다. 불만족인가. 이쪽 입장을 배려하고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대답하겠지.

 

  "자유행성동맹은 루돌프 대제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존재했습니다. 지금의 제국은 루돌프 대제의 악습과 유산을 청산하고 있습니다. 문벌귀족은 힘을 잃고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폐지되었습니다. 동맹 정부가 말하는 포학한 은하제국은 과거로 사라진 겁니다. 안티 테제인 자유행성동맹도 그 존재 의의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존재의의입니까. 말씀하시는 의미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감정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30년을 사이에 둔다는 겁니다. 지금 바로 납득할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만만찮다고 생각했다. 트류니히트의 저항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같은 생각인 거겠지. 호안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국체는 어떻게 됩니까? 주권은……."

  "물론, 황제 주권입니다. 레벨로 의장. 그렇다고 해서 황제는 모든 것이 허락된다는 형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헌법을 만드는 걸로 제국과 황제, 정부, 신민의 관계를 규정하고 칙령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시민의 권리를 중시하는 동맹인의 견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젊은이는 제국을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이행시키려 하고 있는 건가.

  "의회를 만들 생각은 없으십니까? 황제권력의 검사 기관으로서."

  호안이 제안하자 원수가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의회제 민주주의를, 특히 선거에 의한 의회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무리입니다. 도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원수의 눈이 차갑게 우리들을 응시하고 있다. 아까 전까지 보였던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냉철한 눈과 분위기다. 이게 이 자의 본질이겠지. 그리고 이 자는 입헌군주제는 목표로 하고 있어도 의회제 민주주의에는 부정적이다.

 

  "30년 후, 통일국가 신제국에서 반제국 감정에 넘치는 구 동맹 시민과 반동맹 감정에 넘치는 구 제국 신민이 입에서 거품을 물며 다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인류가 품고 있는 정치 제도에 의한 대립을 해소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위해 30년 걸려 통일하고자 합니다. 그 점을 이해해주세요."

  "……."

 

  "정치제도에 고집하는 건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인류는 150년이나 그것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고 많은 전사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저는 샨타우 성역에서 1,000만 명 이상의 동맹 시민을 죽였습니다. 이번 원정에선 가능한 한 전사자를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피를 적게 흘려 적대감과 증오를 부채질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당신들로선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시겠습니까?"

  "……."

 

  우리들은 답할 수 없었다. 자유행성동맹은 앞으로 30년의 수명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동맹은 국가로서의 명운을 다 써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제도, 이상은 남기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헛된 고집인 걸까?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사상이 인간의 대립을 낳는다. 그리고 서로 죽이게 되는 거라면……. 우리들 인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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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5월 3일. 하이네센. 율리안 민츠

 

  드디어 하이네센에 돌아왔다. 나는 어젯밤, 양 제독은 3일 전이다. 우주함대가 항복하고 양 제독들이 포로가 된 건 수송선 안에서 알았다. 무척이나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하이네센으로 돌아와 양 제독과 만났을 때엔 정말로 안심했다.

  제국군은 동맹이 항복한 시점에서 포로를 해방했다는 것 같다. 동맹정부는 항복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양 제독과 떨어졌을 때만큼 불안하다 생각하진 않는다.

 

  「안녕하세요. 율리아 크라운입니다. 어젯밤 늦게 제국과의 강화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부가 발표했으므로 알려드립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있으니 TV전화에 보이는 아나운서가 꽤나 흥분한 표정으로 강화조약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건 아나운서 혼자가 아니다. 함께 있는 캐스터, 패널들도 흥분하고 있다. 그리고 양 제독은 조용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

  ●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

  ●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은 전쟁 상태를 종결한다.

  ● 은하제국, 그리고 자유행성동맹은 인류가 양분된 상태를 비정상인 것으로 인정하며 30년 후에 통일국가를 창설한다.

  ● 자유행성동맹은 인류통일을 위해 모든 면에서 협력한다.

 

  "30년 후에 통일인가요?"

  "응. 그렇다는 것 같네."

  내가 말하자 양 제독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나운서의 말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식탁에 아침 식사를 옮기는 와중에도 인적교류, 경제적교류의 촉진, 영토 할양, 군축, 그리고 안전보장비를 제국에 지불한다는 조건이 낭독되었다.

 

  "어째서 바로 통일하지 않는 걸까요?"

  "그러게. ……율리안은 3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을까?"

  "30년 후인가요? ……지금의 양 제독보다도 15살 정도 연상이 되네요. 명실상부한 아저씨인가요. ……조금 생각하기 어렵네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양 제독이 "그거야"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동맹이 사라지는 게 되면 동맹시민은 강하게 반발하며 항의하겠지. 동맹은 혼란에 빠질 것이 틀림 없어. 하지만 30년 후가 되면 그다지 현실감이 없지. 특히 고령자에게 있어선 자유행성동맹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수명이 다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항의를 할까?"

 

  으음, 어떨까? 조금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말하자 양 제독이 "그렇지"라고 말하며 끄덕였다.

  "게다가 제국은 동맹을 국가로서 인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자유행성동맹은 더 이상 반란군이 아니야. 그런 부분에서도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그렇군요. 확실히 그래요."

 

  "변함 없이 만만찮은 상대다. 제국이 두려워하는 건 동맹시민이 하나로 뭉쳐 반제국운동을 일으키는 거겠지. 그걸 막고 있어. 동맹시민을 혼란시켜 분단시킨 뒤 각개격파한다……."

  "전쟁 같네요."

  양 제독이 크게 끄덕였다.

  "그 말대로야. 외교는 형식을 바꾼 전쟁이지. 율리안."

  그렇구나. 아직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거다. 그럼 일단은 보급을 섭취해야겠지…….

  "식사하도록 하죠. 제독."

 

 

 

제국력 490년 5월 7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행성 하이네센에선 매일 반제국, 강화조약 비준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최고평의회 빌딩, 호텔 캐프리콘, 하이네센 기념 경기장 등에서.

  하지만 어느 곳이든 참가자도 그렇게 많지 않고 기세도 오르지 않는다. 역시 30년 후에 통일한다는 것, 다시 말해 제국은 동맹시민의 불안이 해소된 뒤에 통일하려 하고 있다. 동맹시민을 배려하면서 통일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매스컴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 비준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제국은 지금 당장 동맹을 멸망시키고 통일하려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상황은 지금 이상으로 나빠지겠지. 시위 참가자는 그 부분을 알고 있느냐며……. 그 때문에 시위 참가자로부터는 차라리 지금 당장 동맹을 멸망시키겠다고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라며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 원수 각하는 성격이 음험하다. 어째서 이렇게나 시커먼 걸까.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우주를 통일하는 건 불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그 원수 각하는 개인실에서 파자마 위에 가운을 입고 홍차를 마시며 재미 없다는 듯이 TV를 보고 있다. 어제 열을 내고 드러누웠었다. 오늘 체온은 돌아왔지만 업무는 금지. 요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뤼네부르크 대장이 설득했다.

  당연하지만 원수가 열을 내고 쓰러진 건 함구령이 떨어져 공표되어 있지 않다. 함대사령관들조차 모른다. 이런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어떤 소란이 일어날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뤼네부르크입니다"라는 목소리와 함께 대장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떠십니까? 몸 상태는."

  "보는 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한가하네요."

  재미 없다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에 뤼네부르크 대장이 쓴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도발하지 말아주세요. 대장. 보급 장교의 착오로 코코아 적재를 적게 한 탓에 떨어졌단 말이에요.

 

  "외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뭐, 시위대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선 경비에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기야 방심은 금물입니다만."

  뤼네부르크 대장에 대답에 발렌슈타인 원수가 "그런가요"라고 말하며 끄덕였다.

 

  "문제는 이제부터겠죠. 기한은 3주 간, 조금씩 기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게 동맹시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반발할 것인가. 동맹시민이 30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로 알게 되겠지. 지금은 아직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30년 후의 통일, 지금으로선 실감이 나지 않겠죠. 솥에서 개구리가 천천히 삶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려나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목이 죄어지겠죠. ……역시나 심술이 궂습니다."

  뤼네부르크가 복잡한 웃음을 흘리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뷸쾌하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걸 보고 대장이 더욱 소리 높여 웃었다.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30년 걸려 합병 준비를 합니다. 거기에는 동맹 시민, 페잔 시민도 참가하게 할 겁니다. 겉모습만 보면 합병에 의한 통일입니다만, 이건 새로운 제국, 아니 국가의 건설입니다. 그건 트류니히트 의장에게도 말했죠."

  조금 빠직하고 화난 듯하다. 약간이지만 귀엽다. 진심이겠지만 동맹 시민이 이해하기는 어려우려나.

 

  "뭐 우리들은 각하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만, 동맹 시민에게 있어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겠죠. 너무 간단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있으니까요. 강화조약은 불공정한 것이 당연. 동맹이 소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헌데 이래서야……."

  다시 뤼네부르크 대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쯤 해주지 않겠습니까. 대장 각하. 원수 각하께서 표정을 찡그리고 계십니다. 나중에 고생하는 건 다름 아닌 나니까…….

 

 

 

우주력 799년 5월 8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은 호텔 캐프리콘으로 가봤다. 굉장히 경비가 엄중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뭐, 들어갈 생각도 없었지만.

  호텔 주변에도 많은 숫자의 제국군 병사가 있어 심각한 표정으로 경비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발렌슈타인 원수가 머물고 있으니까.

 

  경비병 앞에서 시위대가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그리 박력은 없었다. 저 정도라면 그냥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호텔 캐프리콘에 머물고 있는 건 발렌슈타인 원수 외에는 경비병과 원수의 막료, 몇 명의 함대사령관과 그 막료뿐인 것 같다. 다른 사령관들은 다들 우주에 있다고 들었다.

 

  그 때문일까, 하이네센에선 그리 제국군의 병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점령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기에 때때로 점령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다.

  의회의 강화조약에 대한 논의을 TV에서 방송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하이네센은 점령 중인 게 맞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TV에서 말한 걸 들은 거지만, 그것도 제국의 책략 중 하나라는 것 같다. 말하자면 강화조약을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적은 숫자의 병사만을 둔 것이라던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뭐라 해도 조약 상대가 우주에서 가장 교활한 발렌슈타인 원수니까.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들은. 강화조약은 비준되는 걸까? 30년 후에 합병이라니 정말 그렇게 되는 걸까?

  23일이 의회 토의 최종일이지만, 의회는 강화조약을 승인하는 걸가. 아니면 기각하는 걸까. 기각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주력 799년 5월 12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경악했다. 발렌슈타인 원수 주위에는 동맹의 망명자가 있다는 것 같다.

  호텔 캐프리콘을 지키고 있는 건 제국의 장갑척탄병이지만, 그 지휘관인 뤼네부르크 대장은 동맹에서 망명한 자라고 한다. 제국풍의 이름이니까 눈치 채지 못했다.

  정확히는 어린 시절에 제국에서 동맹으로 망명한 뒤 어른이 되고서 제국으로 역 망명했다고 한다. 동맹에선 로젠리터의 제11대 연대장이었다.

 

  지금은 장갑척탄병총감의 지위에 있으며 제국의 육전부대의 탑이라던가. 믿을 수 없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호위를 맡기다니.

  동맹에선 망명자는 결코 환영 받지 못한다. 출세라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뤼네부르크 대장에 대한 발렌슈타인 원수의 신뢰는 무척이나 두텁다고 한다. 그 증거로 제국에서 대장까지 출세하고 있다.

 

  부관인 피츠시몬즈 대령도 동맹에서 망명한 자다. 부관이라니 측근 중의 측근, 심복이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부관이라고 한다면 제국군의 기밀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부관이 망명자였다니……. 믿을 수 없다. 배신 당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한 걸까? 동맹인에 대한 편간이라든가 없는 걸까? 음모를 좋아하며 교활한 녀석,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만인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주력 799년 5월 20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 엄마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TV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거리에 나와 쇼핑을 했다고 한다. 서점에서 책을 9권.

  쇼핑은 오늘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슈퍼에서 코코아를 대량으로 샀다고 한다. 원수는 코코아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재고를 전부 털었다고 한다.

  일부러 스스로 구입하지 않아도 좋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TV에선 아무래도 원수 스스로 거리에 나와 동맹 시민의 상태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게 아닐까 하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엄마도 끄덕이고 있었다.

 

  참고로 원수가 구입한 책은 "자유행성동맹 건국사", "은하연방사, 그 시작에서 종언까지", "정치사상의 변천. 은하연방의 종언에서 은하제국의 건국까지", "지워진 목소리, 평화론에 대해 생각한다", "다곤 성역회전기", "올트리치 제독 회고록", "바라트 성역의 개발에 대하여", "성계별 경제 격차와 인구 문제", "군사비 증대와 재정 파탄"

 

  군사 관계의 책일까 생각했지만 역사, 정치, 경제의 책을 샀다. 게다가 "다곤 성역회전기", 라니 제국이 패배한 전쟁의 기록이고 "자유행성동맹 건국사"는……, 괜찮은 건가? 원수의 입장에서. 아니, 강화조약이 비준되면 동맹은 반란군이 아니게 되니까 문제는 없는 걸까?

 

  의회에선 여전히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승인을 요구하고 의원들은 기각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 소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 주변 어른들은 반쯤 포기한 상태다. 의원들은 기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각이 과연 가능할까 라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군대는 이미 항복했고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도 없다. 기각이라니 가능한 거야? 아니, 기각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쪽이 더 걱정이다.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데 거부한다. 그래? 그럼 너네들은 노예, 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전쟁이 사라지니까 좋은 게 아닌가, 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전쟁터가 되는 무서운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라지는 거다.

  게다가 전쟁이 사라지면 개발이 진행되어 삶이 나아진다고 한다. 나는 하이네센에 있으니까 잘 몰랐지만, 지방에선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꽤나 불편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제국이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배신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전쟁에 나가지 않고 끝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어차피 이제는 제국에 이길 수 없으니까 얌전히 강화조약을 승인하고 통일을 향해 준비하는 편이 좋다고.

  민주공화정이 사라져도 좋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져버렸잖아.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다. 그야 패배한 건 확실하니가. 어쩔 수 없는 걸가…….

 

 

 

제국력 490년 5월 24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트류니히트 의장이 비준서를 가지고 왔다. 어젯밤 24시 5분에 동맹평의회는 강행채결로 강화조약을 승인했다. 찬성이 약간 반대를 넘기는 정도라는 미묘한 평결이었다.

  하기야 일종의 사기라는 것 같지만. 의원들은 처음부터 부결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한심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런 사정으로 옥신각신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던가. 아무래도 뒤에선 누가 반대하고 누가 찬성할지 분배하는 문제로 마지막까지 다퉜다는 것 같다.

  정치로 연극을 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비준서는 두 장. 이걸 내가 가지고 돌아가 프리드리히 4세가 서명하고, 한 장을 동맹에 반환한다. 그걸로 강화조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거다.

 

  "발렌슈타인 원수."

  "왜 그러시나요?"

  "저는 최고평의회 의장을 사임하려고 합니다. 동맹에서의 제 정치 인생은 이제 끝난 거라고 해도 좋겠죠."

  "……그렇습니까.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트류니히트는 상처 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단 지금은 애도하도록 하자.

 

  "그래서, 각하의 도움이 되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네. 그렇습니다. 30년 후, 동맹과 제국의 통일을 위한 도움을."

  트류니히트는 진지한 표정이다. 그렇군. 제국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건가. 목적은 권력? 정치가로서의 임무? 혹은 민주공화정일까?

 

  "알겠습니다. 협력을 받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트류니히트가 기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뭐, 좋다. 동맹에 대한 중요한 정보원이라 생각하자. 사용처는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신분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미도 있다. 트류니히트가 혹시 살해 당하기라도 한다면 제국에 협력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되어질 것이다. 이후의 일에도 영향이 나올 것이다.

  그건 그렇고 트류니히트라. 왜일까. 내 주변에는 멀쩡한 놈이 모이질 않네. 뭐, 사람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자.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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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29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눈앞의 남자가 한 명 서있다. 이 자가 욥 트류니히트인가. 지금까지 몇 번인가 홀로그래피로 본 적은 있다.

  호감 가는 미소를 한 사람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트류니히트에게도 웃음은 없어도 호감 가는 표정, 분위기를 띄고 있다. 그리고 정장 차림에도 한 치의 빈틈도 없다. 항복한 국가의 원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만만찮구나. 뭐, 간단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트류니히트 의장, 이쪽으로."

  소파에 안내하자 트류니히트는 가볍게 인사하고 소파에 앉았다. 옆 머리 둘레에 희미하게 백발이 있다. 상당히 고생한 거겠지.

  둘이서 마주하는 형태로 앉자 바로 발레리가 음료수를 가져왔다. 홍차다. 코코아는 달콤한 향이 너무 강하니까 말이지. 손님을 대접할 때엔 피하고 있다는 것 같다.

 

  발레리가 떠나고 트류니히트가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메르카츠 원수로부터 동맹시민에 대해선 생명 안전, 재산 보장을 약속하겠다고 들었습니다만. 틀림 없는 것일까요?"

  "물론입니다. 정부 관계자, 군 관계자에 대해서도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의장 각하도 포함해서 입니다."

  "감사합니다."

  트류니히트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전이 보장되어 기쁜 모양이다. 어쩌면 메르카츠가 항복시키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걸까?

 

  "감사하고 있습니다. 트류니히트 의장."

  "?"

  의아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의장이 군대에 항복을 명령해준 것 말입니다. 그 덕분에 무의미한 사상자를 내지 않고 끝났습니다."

  트류니히트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겨우 웃었구만.

  "처음이군요. 그 판단을 칭찬 받은 건."

  목소리가 밝다. 자조는 아니었다. 응. 잘난 척을 좋아하는 트류니히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나. 조금 더 아첨 해둘까.

 

  "의장 각하의 결단으로 제국, 동맹을 합해 수십 만, 아니 백 만 이상의 장병이 죽지 않고 끝났습니다. 지금은 이해 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만, 그 결단이 옳았다고 이해 받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가족이 이해하고 감사하겠지요."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군이 아니라 적에게 평가 받는다. 단순히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인가.

  아첨은 그만뒀다. 감사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좋다. 실무에 들어가자.

 

  "강화교섭은 내일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저희도 이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말해둡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를 소멸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트류니히트가 조용히 이쪽을 응시했다. 내 말을 고씹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선, 입니까."

  "그렇습니다."

  "……장래적으로는 어떻게 될런지요."

  "30년 후에 제국과 병합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트류니히트가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찌를 것 같은 시선이 아니다. 재고 있는 듯한 시선이다. 나를 가치 판단하고 있다.

 

  "제국인도 동맹인도 서로를, 서로의 국가를 잘 모릅니다. 지금 시점에서 병합해도 혼란이 일어날 뿐이겠죠. 게다가 제국은 국내에 있어 개혁하는 도중입니다. 가능하면 당분간은 국내 개혁에 전념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한 30년입니까."

  "네. 30년에 걸쳐 통일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어도 무방할 거라 생각합니다."

 

  30년,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먼저 페잔 천도, 그리고 화폐 통일, 달력 통일. 헌법을 제정하고 형법, 민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법을 정비하고 동맹시민 입장에서 봐도 납득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직접 제국과 동맹이 교역한다. 같은 표준을 가지고 같은 규제, 규격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업제품, 기술, 식품안전, 농업, 의료……. 국내 정비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서로 언어가 달라도 상관 없다. 정치신조가 달라도 좋다. 하지만 우주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인식은 가지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인류의 번영과 안정을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면 불만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

 

  "민주공화정은 어떻게 됩니까? 동맹시민에게 있어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권리입니다. 지방자치 레벨에서 보장해주신다면 합병도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생각합니다만?"

  트류니히트는 합병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 않다. 겉으로라도 반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건 반대해도 의미가 없다, 쓸모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나를 불쾌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상황파악능력이 높은데. 아니면 적응능력이 높은 걸까…….

 

  게다가 꽤나 만만찮다. 구 동맹령에서 민주공화정을 인정하게 되면, 제국령내에서도 인정하는 게 되겠지. 언젠가는 중앙정부에서도, 라는 목소리가 올라올 것이다.

  목표는 입헌군주제일까. 군림은 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의회제 민주주의에 의한 통치로 이행인가……. 지방자치 수준에서 인정해도 좋다. 하기야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하지만 중앙정부는 무리가 아닐까.

 

  "대국의 통치에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트류니히트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고대 그리스, 아테네 태생 역사가의 평가다. 그 역사가의 이름은 잊었다.

  하지만 무서운 말이긴 하다. 잊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 발생지인 아테네를 아테네 태생의 역사가가 평가한 것이다. 중우정치에 무척이나 질린 거겠지.

 

  "하지만 시민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시키는 것은 필요할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폭정, 악정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래도 억지기능을 가지는 기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그렇습니다."

  무심코 웃고 말았다. 독제군주정만이 악정을 일으킨다는 것인가? 의회제 민주주의 국가도 악정, 폭정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게 아니다. 주권자에 있다. 어째서 그 부분을 보지 않는 건지.

 

  "민주공화정에선 주권자의 질보다 양에 무게를 두기 쉽습니다. 그걸 아직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제로는 아무리 더해도 제로입니다."

  "……."

  "유감입니다만 인류는 민주공화정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숙하고 있었다면 저와 의장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일도 없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트류니히트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주권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권자는 자신이 가진 주권의 무게를 느끼기 어렵게 된다.

  100명 중의 1표와 100억 명 중의 1표, 같은 무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1표의 무게따위 대단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겠지.

  그렇게 되면 주권의 행사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회의적이 되고 만데. 다시 말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무시무시한 사태가 일어나는 거다.

  그리고 통치자들은 주권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주권자에 영합하는 행동을 취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통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냉철함을 잃는다.

  그렇다. 인류는 민주공화정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는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있지 않은 거다.

 

  "시민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시킬 필요성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민주체제를 취한다는 건 다른 문제겠죠. 민주체제를 취하지 않아도 시민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시키는 건 가능할 터입니다."

  "……."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여론조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거다. 그 뒤에 통치에 어느 정도까지 여론을 반영시킬까 검토하면 된다. 제로의 경우도 있고 100의 경우도 있겠지.

  그리고 그걸 판단 이유와 함께 국민에게 공표하면 된다. 국민은 자신들의 의지를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통치에 적용하고 있다고 이해할 것이다. 트류니히트는 시선을 땅에 떨어뜨린 채였다.

 

 

 

우주력 799년 4월 29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최고평의회 빌딩의 의장 집무실에는 세 명의 남자가 모였다. 트류니히트, 호안, 그리고 나. 트류니히트는 평소와 모습이 다르다. 침통한 표정을 짓고 의자에 앉아 있다. 발렌슈타인 원수와의 회담으로 꽤나 지친 모양이다.

  "어떠했나? 발렌슈타인 원수와의 회담은."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음"하고 말했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아직 젊은데 말이지. 꽤나 먼 곳까지 보고 있어."

  묘한 표현이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아픈 꼴을 당했으니까.

  하지만 "아직 젊다", 상대방을 야유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먼 곳까지 보고 있다", 가 되면 야유는 아니다. 호안도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 의아하게 생각한 거겠지.

 

  "발렌슈타인 원수는 지금 당장 동맹을 합병시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트류니히트."

  "그는 30년 후에 동맹과 제국을 합병하겠다고 말했어. 호안."

  "30년 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호안을 돌아봤다. 그도 의심쩍은 표정이다.

 

  "무슨 뜻인가?"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동맹령을 합병해도 혼란이 일어날 뿐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30년이라는 기간을 둔다고?"

  "그렇다. 그 사이에 제국은 한층 더 내정 개혁을 행한다. 그리고 동맹과 제국 사이에 교역을 시작으로 갖가지 교류를 도모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신음소리가 들렸다. 호안이 신음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 30년으로 동맹시민의 제국에 대한 반발을 경감시킨다는 건가."

  "그런 거다. 30년 후에는 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여도 문제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려는 거겠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숨이 나왔다.

  "트류니히트, 그 30년 동안, 동맹의 정치적 지위는?"

  "보호국."

  호안이 묻자 트류니히트가 간략하게 답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집무실에 가득찼다.

 

  보호국인가. 다시 말해 자주독립국가는 아니라는 건가. 그건 그렇고 병합까지 30년이란 시간을 둘 줄이야…….

  나라면 기다릴 수 없다. 연령적으로도 성과를 바라게 되고 말겠지. 하지만 발렌슈타인 원수는 기다린다. 그리고 제국의 지도자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꽤나 신뢰를 받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제국은 진심이다. 단지 정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주통일을 생각하고 있다.

 

  "민주공화정은 어떻게 되는가?"

  "30년은 보장된다."

  "그 뒤엔?"

  호안이 묻자 트류니히트가 "알 수 없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국민의 목소리를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도입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민주공화정에 대해 꼭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트류니히트의 목소리는 침통하다고 해도 좋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국의 통치는 민주체제와 맞지 않다고."

  "그건……."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지. 인류는 민주공화정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

  호안과 서로를 돌아봤다. 단순히 민주공화정이 싫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꽤나 깨어있다.

 

  "내일 있을 강화교섭이지만, 자네들은 삼가해주게. 나와 관료들만 가도록 하지."

  "무슨 뜻인가? 우리들 셋이서 갈 계획이었을 텐데."

  "레벨로의 말대로다. 납득할 수 없군."

  나와 호안이 항의하자 트류니히트가 웃었다. 이런 때에 웃다니 무슨 생각인가!

 

  "감사를 표하지. 자네들은 나에게 있어 진정한 맹우다."

  "어이, 장난치고 있는 건가?"

  "장난이 아니야. 레벨로. 한번 더 말하지. 내일 강화교섭, 자네들은 삼가해주길 바라네."

  강한 목소리였다. 호안과 서로를 돌아봤다. 트류니히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이번 강화교섭에서 내 정치생명은 끝나겠지. 자네들을 거기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

  "30년, 보호국이 된 동맹이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지에 따라 제국의 민주공화정에 대한 평가가 정해지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나는 생각하네. 안정된 번영을 30년 계속하면 제국도 민주공화정을 어느 정도 인정할 가능성이 나올 수 있겠지. 교섭의 여지도 나올 터다. 하지만 혼란이 일어나면 그것도 불가능해져."

 

  "잘 모르겠군. 그것과 내일 교섭에 우리들이 나가지 않는다는 게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관련 있지"라고 말했다.

  "자네들에게 30년을 맡기고 싶다. 특히 처음 10년이지만, 이 10년을 잘 보내게 되면 동맹시민도 침착해지겠지. 그 방향키를 맡기고 싶은 거다. 나와 함께 실각하게 되어 버리면 곤란해."

  "……."

  "어려운 임무지만, 자네들 이외에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부탁하네."

  그렇게 말하고 트류니히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우주력 799년 5월 2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지쳤는가?"

  "그래, 조금은."

  호안의 말에 트류니히트가 답했다. 조금이 아닐 것이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나타난 걸 보면 트류니히트가 꽤나 소모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3일에 걸친 강화 교섭이 꽤나 어려웠던 거겠지.

 

  "잘 해주었군. 트류니히트."

  "그렇게 생각하는가? 레벨로."

  "그래, 그렇게 생각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했어. 가슴을 피게."

  트류니히트가 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일방적인 패전, 교섭의 카드 따위 하나도 없는 상태의 교섭이다. 제국측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최선이겠지. 하지만 그 안에서 트류니히트는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해도 좋았다.

 

  "일단은 교섭이 채결된 일을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렬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

  "그래그래. 결렬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나와 호안이 말하자 트류니히트가 "자네들은 끔찍한 소리를 하는군"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겨우 소리를 내어 웃었군. 트류니히트. 그러는 편이 너 다워서 좋다.

  그리고 결렬보다 훨씬 좋다는 건 사실이다. 결렬 되었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지면 나빠졌겠지 좋아질 일은 없다.

 

  "내일 강화조약 내용을 발표하네."

  "나머진 동맹평의회에서 비준하는 일 뿐이군."

  "그래. 어떻게든 3주 간의 유예를 받았다."

  토의기간은 3주 간인가. 트류니히트와 호안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당초 일주일을 제국 측은 제시해왔다. 하지만 비준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트류니히트가 항의했다. 제국 측도 나중에 토의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는 건 내키지 않을 거라며. 발렌슈타인은 마지 못해서였지만 동의한 것 같다.

 

  "의회는 받아들일까? 트류니히트. "

  "불평은 나오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동맹은 즉시 소멸이다. 받아들이면 30년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니까."

  "나도 걱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동맹이 사라지면 의원들도 실직자니까. 급료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려. 귓가에 그런 말을 속삭여주면 최종적으론 받아들이겠지."

  트류니히트가 날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호안, 여전히 심한 말을 하는군.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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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9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럼 하이네센 공략은 저희 함대가 실행하는 겁니까.」

  "네. 행성 시리유나가르에서 준비를 한 후 하이네센으로 향하시길 바랍니다. 이쪽은 포로를 데리고 뒤에서, 그렇군요. 72시간 뒤에 하이네센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들에게는 하이네센을 공략하는 장면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패배자를 모욕할 필요는 없다. 화면에 비춘 메르카츠가 "그렇지요"라고 끄덕였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한 뒤엔 동맹 정부에 대해 항복을 권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저쪽이 자신들의 생명 안전, 재산 보장을 구할지도 모릅니다만, 그 경우엔 어떻게 합니까? 」

  "패전의 죄를 물어 누군가를 처벌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전해도 상관 없습니다. 신분, 지위에 상관 없이 말입니다. 그들도 안심하겠죠."

  「경우에 따라선 하이네센에 강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조금 염려하는 듯한 표정이다. 가장 먼저 하이네센에 발을 내리는 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데…….

 

  "문제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재량껏 처리해주세요. 중요한 건 하이네센에 혼란이 없을 것입니다."

  「예.」

  "당연합니다만 동맹시민에 대한 폭행, 횡포, 약탈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군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벌합니다. 그 점은 모두에게 철저히 주지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메르카츠가 크게 끄덕였다. 천성이 무인이니까 말이지. 약탈, 횡포 따위 극혐이겠지. 이런, 잊을 뻔했다.

 

  "그리고 점령 뒤의 하이네센은 경제적으로도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사재기나 물가 상승에도 조심해주세요. 시민의 일상 생활을 위협하는 행위는 용서하지 말도록. 일상 생활이 보장되면 시민도 침착해질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부사령장관도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

  「아뇨. 딱히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서로 경례를 나누고 통신을 끝냈다.

 

  하이네센을 공략하면 메르카츠의 군인으로서의 평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 틀림 없다. 이제르론 요새 공략, 동맹군의 항복은 나와 이제르론 방면군의 공적이다. 이건 크다.

  그에 반해 메르카츠와 페잔 방면군의 공적은 페잔 공략 뿐이다. 이대로 가면 메르카츠는 날 띄워주는 역할이 되고 만다. 그건 좋지 않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 공략, 자유행성동맹의 항복, 메르카츠와 페잔 방면군에게 있어선 충분한 공적이 되겠지.

 

  동맹 정부는 항복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적은 희생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고마운 이야기다. 민주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시민을 희생 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메르카츠도 큰 트러블 없이 하이네센을 공략할 수 있을 터다.

 

  트류니히트가 결단해준 것 같지만, 원작과는 꽤나 인물상이 달라진 것 같다. 뭐, 레벨로와 호안이 협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제국과의 교섭에 있어서도 꽤나 강점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선동 정치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항복을 결단해줬다면 허례허식이 아니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상대라고 할 수 있겠지..

 

  하이네센 공략 후엔 강화교섭이다. 이제야 겨우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사라진다. 아니, 30년 후, 자유행성동맹을 병합할 때에 다시 한 번 원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정 개혁을 제대로 해둔다면 병합을 불만스럽게 생각해도 불안해하는 사람은 적을 터다. 그렇게 되면 저항은 경미한 것이 될 테고, 원정도 대규모로 할 필요는 없어지겠지.

 

 

 

제국력 490년 4월 26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국채인가. 꽤 되는군."

  "예."

  "내가 재무상서를 역임하고 있을 때에도 다소 신경 쓰였지만……, 12조 제국 마르크인가……. 꽤나 늘어났다."

  "통계를 보면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멈춘 건 최근 일입니다."

  잘도 여기까지 빚을 졌다. 재무상서 게르라흐 자작은 조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심 어이없어하고 있겠지. 국정책임자인 내 앞이 아니었다면 비아냥 한 마디, 욕설 한 마디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반란군의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예. 이쪽도 15조 디나르 정도 됩니다."

  한숨이 나왔다. 제국도 동맹도 빚을 져가며 분별 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는가…….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빚으로 국가가 파산하여 인구 감소로 붕괴했겠지. 제국도 반란군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르라흐 자작도 끄덕이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발렌슈타인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문벌귀족을 제거하고 우주를 통일한다. 그것만이 제국이 살아남을 길이었다. 단지 아무도 그 길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눈을 돌리고 말았다…….

 

  "각하, 주식 문제도 있습니다."

  "주식인가. 그것도 있었지."

  제국, 페잔, 반란군, 꽤 많은 기업의 주식을 페잔 자치령주 정부가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령 회사까지 이용하여 은밀하게 취득하고 있었다. 뭘 위해서인지 물을 필요도 없다. 그 지긋지긋한 유물 놈들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게르라흐 자작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헌데…….

  "지금 상황으로선 제국 정부가 주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영기업이라는 게 됩니다만……."

  "문제가 있는가?"

  내가 묻자 게르라흐 자작이 끄덕였다.

 

  "다소 경영이 기울어도 정부가 어떻게 해줄 거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기업의 건전성을 잃게 되겠죠. 이 건으로 제국은 아픈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경험?"

  "문벌귀족입니다."

  "그렇군."

 

  그런 건가. 게르라흐 자작이 뭘 우려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대로 가면 새로운 짐덩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건가."

  "예. 그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주식을 소유한 기업은 모두 제국, 반란군, 페잔에서 경제, 사회, 군사 면에 있어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로도 문벌귀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브라케, 리히터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관료들의 낙하산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관료들의 낙하산인가. 그렇게 되면 더욱 성가신 일이 되겠지. 브라케, 리히터가 우려하고 있다는 건 벌써 관료들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걸지도 모른다.

  저놈들은 이권에 민감하니까. 침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을 하나 넘었나 싶으니 또 하나의 산인가. 성가신 일은 끊이지 않는군.

  "제국의 것은 방출하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페잔, 반란군의 것은 어떠한가? "

  게르라흐 자작이 "저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며 끄덕였다.

 

  제국은 페잔으로 천도한다. 천도에 의한 혼란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면 페잔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을 제국 지배하에 두는 편이 좋다. 그리고 반란군, 이쪽도 허튼 짓을 하지 못하게 하려면 기업을 지배하에 두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양쪽 모두 반발할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짐 덩어리인가……. 장래적으로 통일할 것을 생각하면…….

 

  "흠, 발렌슈타인에게 물어 볼까?"

  내가 확인하자 게르라흐 자작이 "네"하고 끄덕였다. 역시 마지막엔 거기로 귀결 되는가.

  "불편한 일이다. 이제 슬슬 저 놈을 이쪽으로 끌고 와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군인인 채 있으면 곤란해."

  게르라흐 자작이 "그렇지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띄웠다.

  이 자는 재무상서까지로군. 재상, 국무상서는 될 수 없다. 앞으로의 재상, 국무상서는 우주 전체를 조망하며 제국의 방향키를 잡아야만 한다. 이 자에게 있어선 짐이 무겁겠지. 다행이라면 본인도 그걸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곧 그것도 이루어지겠죠. 반란군의 우주함대는 항복했습니다. 지금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하이네센을 공략하고 있을 겁니다."

  "음."

  올해 안에는 돌아오겠지. 곧바로는 안 되겠지만 페잔 천도가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다. 하기야 헤드헌팅에는 군부가 반대할 테지만……. 머리 아픈 일이다.

 

  집무실 문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바이츠 보좌관이 고개를 내밀었다. 표정에 다소 흥분하는 기색이 있다.

  "무슨 일인가?"

  "에렌베르크 군무상서,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장, 두 각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시급히 각하를 뵙고 싶다고."

  그 두 사람이 직접 보로 왔다는 건, 내게 보고한 뒤 그대로 폐하께 상소하겠다는 건가. 폐하도 기뻐하시겠지. 게르라흐 자작의 웃음이 커졌다. 생각하는 건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제국력 490년 4월 28일. 하이네센. 에리히 발렌슈타인

 

  "지크 라이히! "

  "지크 카이저 프리드리히! "

  "지크 마인 오베르베펠스하버!" "

  발이 멈췄다. 총기함 로키를 하이네센의 우주항에 강하시키고, 트랩으로 지상에 내려가려는데 폭풍 같은 함성이 나를 감쌌다. 우주항은 내 경비를 위한 거겠지만, 많은 숫자의 제국 군인이 주변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마중 나온 군인들, 그들이 함께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엄중하게 하지 않아도 좋은데 말이지. 나는 라인하르트가 아니다. 날 죽여도 동맹에겐 아무런 이득도 주어지지 않는다. 역으로 보복이 심해질 뿐이다. 동맹인도 바보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것이다.

  "각하, 손을 흔들어 주시겠습니까? "

  "손? "

  뤼네부르크가 웃음을 띄우고 있다.

  "예. 다들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뤼네부르크의 말대로 오른손을 들어 답하자 함성이 더욱 커졌다.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마음은 이해한다. 그야 기쁘겠지. 뭐라 해도 적의 본거지를 점령했다. 대승리다. 평생 자랑할 수 있는 일일 테고 인생 최고의 추억이 되겠지.

  하지만 말야. 나는 그닥 기쁘지 않다. 조금 부끄러울 정도다. 뺨이 뜨겁다. 역시 나는 소시민이로구만. 빨리 내려가자.

 

  프리드리히 4세가 황제라서 정말 다행이다. 다른 녀석, 특히 시기심이 강한 녀석이 황제였다면, 그리고 이 현장을 봤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

  찬탈의 의사가 보인다, 라고 죄상을 날조하여 눈 깜짝한 사이에 반역죄로 사형 당했겠지. 그 점에 있어선 그 할배라면 웃으면서 황제위를 물려주겠다거나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신하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트랩을 내려가자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가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마중 나왔다. 서로 경례를 나누고 두 사람이 자유행성동맹의 항복을 축하해줬다.

  기쁘구나. 이런 거. 하지만 원작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이 두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건 조금 간지럽다. 부끄럽네.

  "고맙습니다. 로이엔탈 제독, 미터마이어 제독."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에게 안내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지상차에 탑승한다. 동승자는 발레리와 뤼네부르크다. 어딜 봐도 긴장하고 있다. 호위일 셈인 거겠지.

  로이엔탈, 미터마이어의 선도로 우주항을 빠져나와 하이네센 시내로 향했다. 행선지는 호텔 캐프리콘, 메르카츠는 거기를 제국군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우주항에서는 30분 정도로 호텔에 도착했다. 상당히 빠른 도착이다.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꽤나 과속한 탓이겠지.

  도중에 지상차에서 본 시내에 혼란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침착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하자 로비에서 메르카츠를 시작하여 우주함대의 함대사령관들이 자세를 바로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가자 일제히 경례해왔기에 답례했다. 그 뒤에 한 사람씩 수고의 말을 전하면서 메르카츠가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자유행성동맹을 항복시킨 것, 잘 해주었습니다. 폐하도 크게 기뻐하시겠죠."

  "황송합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 공략법은 알고 있었으므로 편하게 끝났습니다."

  미세하게 메르카츠가 허리를 굽히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연장자에게 그런 몸짓을 보이게 만드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하이네센도 침착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관 혼자만의 힘이 아닙니다. 다들 잘 해주었습니다."

  케슬러, 클레멘츠들이 기뻐하는 것 같다. 메르카츠가 칭찬을 받고 있다는 건, 간접적으로 자신들이 칭찬 받는다는 거다. 그리고 메르카츠는 자신들의 활약을 충분히 평가하고 있다. 만족이겠지.

 

  "상의가 없었습니다만, 각하의 집무실, 거주실을 호텔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를 끼쳤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집무실을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에서 하이네센의 상황을 설명하고 싶다 생각합니다만."

  "알겠습니다."

  상황을 확인한 뒤 트류니히트와 회담이다. 그리고 강화교섭. 빨리 끝내고 귀국하자. 장병들도 그걸 바라고 있겠지.

 

 

 

우주력 799년 4월 26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져버렸어. 이렇게 싱겁게 져버리고 말다니 믿을 수 없다.

  일주일 전에 우주함대가 항복했다. 동맹군 7개 함대가 항복한 걸로 하이네센을 지키는 건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만 남게 되었다.

  자유행성동맹이 승리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목걸이가 적에게 손해를 주어 강화교섭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정부는 말했는데…….

 

  동맹정부는 목걸이가 파괴되자 항복했다. 정부는 가능한 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고 있다. 특히 야간에는 절대로 나오지 말라는 공지가 있었다. 제국군의 병사와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학교에 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실은 동맹 시민이 모여서 소란을 피우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TV의 아나운서가 말하고 있었다. 그런 걸지도 모른다.

 

  목걸이 따위 아무 소용도 없었구나. 단숨에 파괴되어 버렸다.

  게다가 파괴한 건 발렌슈타인 원수가 아니다. 부사령장관인 메르카츠 원수. 발렌슈타인 원수 입장에선 자신이 나설 일도 아니라는 거겠지.

  목걸이에 의지하고 있던 우리들을 바보 같은 놈들이라고 코웃음이라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강화교섭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그건 발렌슈타인 원수가 온 뒤인 것 같다.

  동맹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역시 제국의 영토가 되는 걸까. 그렇게 되면 우리들, 노예가 되어버리는 걸까? 엄마도 굉장히 불안한 눈치다.

  제국에선 개혁도 이뤄지고 있고 평민의 지위가 향상되고 있으니까 심한 일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들리고는 있지만…….

 

 

 

우주력 799년 4월 29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 발렌슈타인 원수가 하이네센에 도착했다. 칠흑의 총기함 로키가 하늘에서 내려와 하이네센의 우주항에 착륙했다. 그러자 제국군의 병사들이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국 만세", "황제 프리드리히 만세", "사령장관 만세" 굉장했다.

 

  매스컴은 멀리서 촬영하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기에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발렌슈타인 원수가 로키에서 나와서 모두에게 손을 흔들다 더욱 함성이 커졌다.

  TV로 보고 있어도 압도 되었다. 원수는 제국군의 병사들에게서 굉장히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동맹을 항복하게 만들었으니까 당연한가. 분하지만 멋있었다.

 

  제국군에게 점령되어 3일이 지났지만, 그들은 규율이 엄격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제국 병사가 마을에 나와 동맹시민에게 폭행을 저지르거나 약탈을 한다는 등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국 영토가 되어도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동맹 정부에 항복을 권고할 때 패전의 죄를 묻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 같다. 그 점도 모두를 안심하게 만들고 있다.

 

  포기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국군은 강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이제르론 요새도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주함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져버렸다.

  주전파라고 불렸던 사람들도 낙담하고 있다. 나도 실망이다. 이렇게나 동맹군과 제국군의 차이가 컸다니……. 마치 어른과 아이가 싸운 것 같다.

 

  오늘 트류니히트 의장이 발렌슈타인 원수와 회담했다. 회담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바란 것 같다. 강화교섭 전에 상대방을 잘 알고 싶다는 것 같다.

  회담 후에 트류니히트 의장은 매스컴에 "동맹시민의 생명 안전과 재산 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될까? 강화교섭은 내일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힘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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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6일. 제국군 비텐펠트 함대 기함 쾨니히스티겔. 프린츠 요제프 비텐펠트

 

  "긴장을 놓지 마라. 이대로 밀어 붙인다! "

  "예!"

  명령을 내리자 오퍼레이터들이 그에 따랐다. 나쁘지 않군. 장병의 사기는 높다. 허를 찔려 생각치 못한 형태로 전투에 들어갔지만, 다들 당황하는 일 없이 대처하고 있다. 평소의 훈련 성과가 나오는 것 같다.

  나중에 바렌에게 사례라도 해야겠구만. 술이라도 한 잔 사도록 할까.

 

  뮐러 함대의 응원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대로 밀어 붙여 반란군 본대의 후방으로 빠져 나가면 녀석들은 금새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에 덩달아 사령장관이 이끌고 있는 제국군 본대가 전진하면 반란군은 통째로 무너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 전투의 최대 공로자는 나, 내가 이끄는 흑색창기병대라는 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반란군과의 마지막 전투. 나로서도 함대로서도 이 이상의 영광은 없다…….

 

  "각하, 반란군 본대에서 증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이겐이 걱정하는 어조로 반란군의 증원을 지적했다. 이런이런,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군.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반란군도 필사적이다.

  "……이렇게 되면 뮐러 함대의 응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내가 답하자 오이겐이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은 뭐야? 반란군의 증원보다 내 반응이 더 걱정되었단 건가? 나는 공격을 좋아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고, 오이겐. 아무리 그래도 1개 함대로 3개 함대를 격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물며 분산되어 있다면 각개격파도 가능하겠지만, 반란군은 한 곳에 모여 있다. 여기선 뮐러 제독과 협력하여 반란군을 격파한다. 그것이 용병술의 기본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전투가 벌어질 줄이야. 사령장관도 본의가 아니었겠죠."

  "반란군도 필사적인 거다. 이대로 가면 본대와 부사령장관이 이끄는 별동대에 협공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니까 말이야. 여기서 우리들을 격파하고 별동대를 기다린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디르크젠, 그레브너의 대화에 오이겐이 끄덕였다.

 

  뭐, 대충 그런 거겠지. 하지만 어떻게든 전투를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반란군에게 있어서 상황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전황은 굳이 말한다면 제국군 쪽이 우세하겠지. 흑색창기병대가 상대하고 있는 2개 함대는 명백히 움직임이 나쁘다. 아마도 새로 편성한 함대이기에 훈련도가 떨어지는 거겠지.

  본대도 우세하게 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쯤 반란군의 사령장관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제국군은 반란군 영역 깊숙이 침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력이 충분히 있다. 뭐라 해도 지금까지 전투다운 전투가 없었으니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 공략한 걸로 손해가 없다.

  양 웬리를 잡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걸 실책이라고 말하는 건 사치다.

 

  여기서 전투가 일어난 걸 사령장관 각하는 본의가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 공략한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싸우게 된 것에 만족한다. 아마도 다른 함대사령관도 같은 마음이겠지. 손해를 적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장병들을 위하는 마음이란 것도 이해한다.

  나도 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를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반란군, 증원 부대가 합류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함교에 울렸다. 이걸로 정면에 3개 함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 곧 이쪽도 뮐러 함대가 합류한다. 움직인 것은 뮐러 함대가 더 빨랐지만, 우회하는 만큼 늦어졌다. 지금쯤 뮐러 제독은 안달복달하고 있겠지.

 

  "이제 곧 뮐러 제독이 온다. 당황하지 말고 대응하라."

  "예!"

  내가 말하자 오퍼레이터들이 웃음을 띄우고 끄덕였다. 믿음직스런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이라면 뮐러 함대가 오기까지 문제 없이 견뎌내겠지.

  다음은 공세로 전환하여 반란군을 분쇄할 뿐이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별동대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단숨에 결판을 내는 거다.

 

 

 

제국력 490년 4월 17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반란군, 후퇴합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의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하다. 뭐, 보통은 후퇴라는 이름의 유인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문제 없겠지.

  이유는 간단하다. 비텐펠트와 뮐러를 막고 있는 부대의 판세가 나쁘기 때문이다. 3개 함대를 돌리고 있지만,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동맹군은 본대도 후퇴하여 전선을 하나로 뭉치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전군이 단숨에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제국군이 도망치고 만다. 그것 때문에 동맹군의 움직임은 제약을 받고 있다.

  뭐,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걸까. 전선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그만큼 메르카츠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거리와 시간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인 걸지도 모른다.

 

  제국군에겐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다. 동맹군이 가장 싫어하는 선택이다. 후퇴하고 있는 동맹군은 이쪽에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일 거다. 허를 찔러 급속 후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그리고 서로 견제하며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현실적이지도 않다. 전황은 우세하고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여 메르카츠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 다소 희생은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섵불리 놓치게 되면 또 무슨 짓을 할 것 같아서 무섭다. 피해도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황이 우세하단 점도 있겠지만, 모두 사기가 높다.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나와 발레리 뿐인 것 같다.

  그렇게나 싸우고 싶었을까. 승리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전투가 없었어도 승진은 확실했을 텐데…….

  전투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없는 것도 문제인가. 나와 라인하르트를 더해 둘로 나누는 정도가 딱 좋을까. 군인이란 그런 생물일지도 모른다.

 

  동맹군의 후퇴는 계속된다. 이쪽은 그를 쫓으며 공격한다. 내 오른쪽에는 아이제나흐, 왼쪽에는 렌넨캄프, 그 왼쪽에는 켐프.

  꽤나 호화로운 진용이다. 다소 용병에 유연성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공격력에는 문제 없다. 내 정면에 우란푸, 렌네캄프의 앞에는 양이다. 거기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군에 전해주세요.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라고. 이대로 전선을 유지하여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원군을 기다립니다."

  "예."

  '적은 훈련 부족이다. 단숨이 밀어붙여라.' 그렇게 말하는 편이 사기는 더 오르겠지. 다들 그걸 바라고 답답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인 건 양도 마찬가지겠지. 주변이 너무 발목을 잡는다.

  그런가. 양과 싸울 때엔 집단전 쪽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일 대 일이라면 양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다 대 다라면 누군가 양의 발목을 잡는 놈이 나타난다. 혹은 주변을 신경 쓰느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양의 무서움이 감소한다.

 

  양 웬리가 집단전에서 120%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양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 필요하겠지. 예를 들면 라인하르트,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뷰코크, 메르카츠……. 거기에 양이 참가한다.

  음, 드림팀이네. 아니면 프로 야구의 올스타전인가? 어떤 전투를 할지 보고 싶을 정도다.

 

  "각하? "

  발레리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입니까? 피츠시몬즈 대령."

  "아뇨. 뭔가 즐거워 보였기에."

  주변을 둘러보자 뤼네부르크, 발트하임, 슈마흐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가요. ……전황은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것 때문이겠죠."

  내가 답하자 발레리는 애매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거 참, 조금 더 긴장해야겠군.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집중, 집중.

  ……뤼네부르크, 뭐가 웃긴 거냐. 히쭉히쭉 웃지 말라고. 우리들은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니까. 좀 더 진지하게 해라.

 

 

 

우주력 799년 4월 19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는 침통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참가자는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적극적으로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빌딩 밖에는 많은 동맹시민이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쪽은 각각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겠지. 자신들을 지키라고.

 

  "그래서 전황은 어떤가? 아일랜즈 국방위원장."

  호안이 묻자 아일랜즈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좋지 않습니다. 군대는 제국군의 본대를 어떻게든 잡아 전투에 들어갔습니다만, 열세입니다. 새로이 편성한 함대가 훈련도 부족이라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합니다. 제국군에게 그 점을 찔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곧 페잔 방면에서 제국군의 별동대가 오겠죠. 그렇게 되면 동맹군은 협공 당하게 됩니다. 승산은 없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에게서도 형세를 역전시키는 건 어렵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다시 한숨이 들려왔다. 아무도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크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트류니히트였다. 최근 며칠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한 거겠지. 눈이 충혈되어 있다.

  "어쩔 수 없군. 우주함대에게 항복하도록 전하게."

  다들 트류니히트를 봤다. 이곳저곳에서 "하지만", "그건"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젓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싸워도 희생이 커질 뿐이다. 승산이 없는 이상, 무의미한 전투는 멈춰야만 하겠지. 국방위원장. 항복하도록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에게 전하겠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충격은 없었다. 와야 할 것이 왔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거겠지.

  아니, 나 혼자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부는 어떻게 할 건가? 항복하는 건가? "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표정을 찡그렸다.

  "아니,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으니 무리겠지. 지금 시점에서 항복하면 동맹시민이 폭동을 일으킬 거야."

  "그럼? "

  "제국군이 목걸이를 파괴한 뒤에 항복한다. 그러는 편이 무난할 거라 생각한다."

 

  확실히 그렇다. 동맹시민도 포기하겠지.

  "제국이 동맹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알 수 없어.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기했다는 점, 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한 취급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확증은 없다. 우리들은 동맹시민의 생명, 재산을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민주공화정……. 각 위원장도 동맹시민을 지키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의견을 모아주길 바란다. 자유행성동맹은 멸망할지도 모르지만, 강화조약에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끈기 있게 교섭할 생각이다."

  힘있는 목소리였다.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듯한 울림이 있었다.

 

 

 

제국력 490년 4월 18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총기함 로키의 함교는 폭발할 것 같은 소란에 싸여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어깨를 두들기거나 악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제국군함정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일어나고 있겠지.

  뭐, 마음은 이해한다. 동맹군이 항복했다. 그리고 동맹에겐 더 이상 우주전력이 없다. 이걸로 동맹의 명운은 다한 거나 마찬가지다. 다들 기뻐하는 건 알겠지만…….

 

  "각하, 축하드립니다."

  발트하임이 축하를 시작하자 다들 입을 모아'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발레리도 축하해주었다.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양군 모두 그리 피해는 크지 않다. 일단은 안심할 수 있겠지.

 

  "고마워."

  어떻게든 웃을 수 있었다. 기왕이면 조금 더 빨리 항복해주면 고마웠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하면 희생은 좀 더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맹 정부는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뭔가 어중간하다. 전투도, 항복도.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황급히 참았다.

 

  투덜거려도 변하는 건 없다.

  "피츠시몬즈 대령, 오딘에 연락을. 반란군의 우주함대는 항복, 메르카츠 부사령장관과 합류한 뒤 하이네센 공략으로 향한다고."

  "예."

  "참모장, 반란군의 뷰코크 사령장관과 회담을 합니다. 24시간 후, 총기함 로키에 방함을 희망한다고 전해주세요. 또한, 소정의 절차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길 바란다고."

  "예."

 

  발레리와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각각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24시간 정도면 미사일의 폐기나 레이저 발사구의 폐쇄도 끝나겠지. 일단 만약을 위해 방심하지 말라고 전군에 전달하는 게 좋겠네.

  조금 지쳤다. 시간은 있다. 한숨 자도록 할까…….

 

 

 

제국력 490년 4월 19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드와이트 그린힐

 

  제국군 총기함 로키의 함내는 부드럽고 밝은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칠흑의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함내 이곳저곳에서 나와 뷰코크 사령장관에 호기심의 시선이 향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속삭이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구경거리가 된 듯하여 기분이 나빴다.

 

  항복 후, 24시간이 지났다. 이 주역에는 제국군의 별동대도 집결하여 동맹군은 15만 척을 넘는 제국군에게 포위되어 있다.

  정부의 항복 명령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소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15만 척을 넘는 제국군에 포위되어 있는 걸 생각하면 정부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트류니히트 의장의 판단이라고 들었지만, 좋은 결단이었다.

 

  한 명의 사관이 다가왔다. 아직 젊다. 연령은 20대 중반 정도에서 후반이겠지. 군복 계급장으로 판단하기로 중장이다. 중간 몸집에 중간 키, 총명해 보이는 인상이다. 1미터 정도 거리에서 멈춰 경례를 올렸다.

  "소관은 클라우스 발트하임이라 합니다. 동맹군의 숙장인 뷰코크 사령장관과 그린힐 총참모장을 만나 영광입니다."

 

  비꼬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솔직한 성격인 걸지도 모른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함께 경례를 돌려줬다.

  "패장에게는 과분한 말씀이로군. 부끄러울 따름이오."

  뷰코크 사령장관이 대답하자 발트하임 중장이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모욕하고 말았다고 생각한 걸까.

 

  "발렌슈타인 원수에게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수고를 끼치네."

  발트하임 중장의 안내로 함내를 걷는다. 잠시 뒤 한 사람의 사관이 기다리는 문 앞에 도착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로젠리터, 뤼네부르크……. 말 없이 경례를 나눴다.

  발트하임 중장이 문을 열며 "들어가시죠"라고 말했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머리의 젊은 장교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몸집이 작고 가녀린 몸을 검은 망토가 덮고 있다.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 이쪽을 향해 다가와서 경례를 하고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라고 이름을 밝혔다. 이쪽도 이름을 밝히며 경례를 나누고 소파로 안내되었다.

  자리에 앉자 바로 여성 장교가 홍차를 가져왔다. 이 장교도 기억에 있다. 이름은 잊었지만 그 때, 뤼네부르크와 함께 있던 여성 장교다. 그녀는 홍차를 나누고 경례한 뒤 방에서 나갔다.

 

  "패잔의 몸을 각하께 위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처분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단지 부하 장병에게는 배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뷰코크 사령장관의 말에 발렌슈타인 원수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일까.

  "안심하시길. 우리들은 용감히 싸운 적을 칭찬 할 지언정 모욕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이 이상 의미 없는 피가 흐르는 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제대로된 언질을 받아 안심했다. 말투에서도 성실함을 느꼈다. 믿어도 좋을 것 같다. 홍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맛있다. 꽤나 좋은 찻잎을 쓴 거겠지.

  "항복해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아냥이 아닙니다. 본심입니다. 이 이상 적도 아군도 희생을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번인가 항복 권고를 낼가 생각했습니다만, 모욕이라 받아들어지면 오히려 희생이 늘어나리라 생각하고 그만뒀습니다."

  오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희미하긴 하지만 어조에는 안도의 울림이 있었다.

 

  "항복은 정부의 명령이었습니다."

  내가 말하자 발렌슈타인 원수는 "정부의"라고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에도 표정에도 놀람이 있었다.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의 명령입니까? "

  "아뇨. 트류니히트 의장의 명령입니다. 이 이상 무익한 전투는 피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자유행성동맹 정부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만? "

  발렌슈타인 원수는 이상하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어리단 느낌이 들었다. 그 점이 이상했다. 상대방은 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일 텐데. 뷰코크 사령장관도 같은 걸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조금 쓴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습니다. 그게 쓸모 없을 거란 걸 우리들도 알고 있습니다만, 시민은 모릅니다. 현 시점에서 항복하는 건 동맹시민에게 혼란을 일으키게 되겠죠. 경우에 따라선 그에 따라 정부 자체가 와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질서한 저항이 일어나 희생이 늘어날 뿐입니다."

  "그렇군요."

  발렌슈타인 원수가 두 번, 세 번 끄덕였다.

 

  "트류니히트 의장입니다만, 이전부터 생각했습니다만 역시나 단순한 선동 정치가는 아닌 것 같군요."

  "……."

  "만남이 기대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 원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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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6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반란군 최후미 2개 함대가 이쪽을 기다리는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양과 우람푸인가, 발목 잡기를 하려는 거군. 아군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리 의미는 없지만 말이지…….

  "비텐펠트 제독에게 후방을 위협하도록 전할까요?"

  발트하임이 내게 확인을 취하기에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비텐펠트도 수고가 많다. 계속 후방을 위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협할 뿐이고 싸우지는 못하고 있으니 재미가 없겠지. 다음엔 켐프에게 부탁하도록 할까.

  15분 정도 지나자 비텐펠트 함대가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전술 컴퓨터 모니터에 비춰졌다. 제국군 본대와 양, 우란푸 함대가 접촉하기까지 앞으로 1시간 정도일까.

  비텐펠트 함대는 앞으로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적의 후방으로 나오는 움직임을 보여야만 한다. 우회와 동시에 해야 하니까 꽤나 바쁜 작업이다.

 

  비텐펠트 함대가 우회를 시작했다. 점점, 점점 양, 우란푸의 후방으로 향하고 있다. 양, 우란푸의 함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역시 후방을 찔리는 건 다들 싫어하지.

  하지만 두 함대 모두 제국군의 정면을 향하고 있고, 후퇴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철수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이쪽 발목을 잡으려는 것 같다. 무척이나 시간을 벌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쩌면 메르카츠가 근처에 있는 걸까? 저쪽 정찰부대에라도 접촉했을까.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하지만……. 비텐펠트가 더욱 후방으로 향하고 있다.

 

  함교는 침착한 상태다. 발레리도 전투는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평온한 상태인 것 같다. 발레리는 가능하면 개인실로 돌아가 줬으면 좋겠다.

  확실히 말해 거북하다. 옆에서 딱딱하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이쪽이 괴로워진다. 하지만 뭐,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그녀의 각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깨닫지 못한 척을 하는 정도다.

 

  항복권고라도 해볼까. 메르카츠가 접근하고 있다면 동맹군이 항복할 가능성은 있겠지. 설령 항복하지 않아도 망설이게 하는 건 가능하다. 상대방의 사기를 꺾는 일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만하다고 느껴 역정을 내며 달려들까? 그렇게 된다면 역효과겠지만…….

 

  전쟁터에선 일종의 독특한 심리상태가 되니까 말이지.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거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아니, 오히려 합리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할 행동을 한다. 하지만 본인들은 그 때엔 그게 유일한 정답이라고 믿으며 싸운다. 그 때문에 터무니 없는 희생이 생겨난다.

 

  "적 함대, 급속 접근! "

  엥? 뭐야? 양과 우람푸가 접근하고 있다. 바보냐, 비텐펠트에게 후방을…….

  "비텐펠트 함대에 반란군 2개 함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

  뭐냐? 어떻게 된 일이야? 비텐펠트 함대에게도 측면에서 적 함대 2개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이래선 후방을 찌를 수 없어! 어느새? 어떻게 된 일이야?

  함교가 시끄럽다! 조금은 조용히 해라.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후퇴할까? 안 된다. 내가 후퇴하면 비텐펠트는 적군 한 가운데 고립된다. 최악의 경우 양, 혹은 우란푸에게 측면을 찔려 궤멸하겠지.

 

  "각하! "

  표정이 딱딱하네. 발트하임. 예상 외의 사태따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겠지. 진정해라! 발레리도 그렇다. 그렇게 얼굴을 굳히지 마!

  "렌넨캄프, 아이제나흐 함대에게 연락! 접근하는 적 함대를 칩니다. 속력을 올려! "

  "예!"

 

  내 명령을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전한다. 함교에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소음이 사라졌다. 대신 각 함대에게 명령을 전하는 목소리와 상황을 보고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동맹군은 전군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고 오퍼레이터가 보고를 했다.

  여기서 결전을 할 생각인가! 마음을 바꿔라. 여기서 결전이다! 망설이면 적군의 기세에 삼켜버리고 만다. 여기서 싸우는 거다. 이건 내 의지다!

 

  "반란군, 속력을 올리고 있습니다! 비텐펠트 함대가 지시를 구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할까? 비텐펠트를 물러나게 하고 대열을 정비할까?

  ……무리겠지. 물러나면 동맹군의 기세를 살려주는 꼴이 된다. 적은 이쪽이 후퇴할 거라 보고 있을 터다. 그렇다면 한 발 더 나아가 싸워야 한다! 적의 의표를 찔러라!

  "지금 상태에서 적 함대를 저지하라. 뮐러 함대를 지원으로 보낸다. 협력하여 적 함대를 격파하라!" "

  "예!"

  얕보지 말라고. 이쪽 비텐펠트는 원작과 다르다. 역습에 약한 얼간이가 아니야. 흑색창기병대는 제국군 굴지의 정예부대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로 말이지.

 

  "뮐러 함대에게 명령! 우회하면서 전방으로 나아가, 비텐펠트 함대를 바깥에서 원호하라. 켐프 함대는 렌넨캄프 함대의 좌측으로 이동하라. 서둘러!" "

  "예!"

  "통수본부에 연락! 우리, 반란군과 교전중. 이 곳에서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을 기다린다."

  "예!"

  좋아. 함교가 열을 띄기 시작했다. 겨우 침착해졌군. 싸울 마음가짐이 생겼다.

 

  "반란군, 비텐펠트 함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접촉까지 약 20분."

  20분인가. 괜찮다. 비텐펠트라면 대처할 수 있겠지. 뮐러가 원호 할 수 있을 때까지 40분은 더 걸리겠지. 문제 없다. 비텐펠트와 뮐러, 공세와 수세, 각각 제국 굴지의 실력을 가진 사나이들이다. 그들을 믿는 거다.

 

  "정면의 반란군, 옐로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양도 우란푸도 빠르다! 벌써 다가왔는가! 비텐펠트보다도 이쪽이 먼저 포화를 나누게 될 것 같다.

  무척이나 내 목이 탐나는 것 같다. 등줄기에 찌릿찌릿하고 싫은 감각이 느껴졌다. 얼마든지 좋다. 무너뜨려주지! 이 목, 간단히 가져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노려진 목이지만 노린 놈들은 모두 때려부쉈다. 너희들도 반대로 쓰러뜨려주지.

 

  "전 함대에 명령! 포격전 준비! 주포 일제사격 준비! "

  "전 함대에 명령! 포격전 준비! 주포 일제사격 준비! "

  발레리가 내 명령을 복창했다. 함교 분위기가 단숨에 긴장되었다. 전술 컴퓨터 모니터에는 내게 접근하는 양, 우란푸 함대,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동맹군 3개 함대가, 그리고 비텐펠트에게 접근하는 2개 함대가 보였다. 그리고 이쪽에는 뮐러, 켐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에 모이는 육식동물 무리와도 같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뤼네부르크가 목소리에 웃음을 띄우며 말을 걸었다. 주위가 눈을 부릅 떴다. 불경한 놈, 그런 느낌이다.

  "네. 한 방 먹었습니다."

  그래, 한 방 먹었지. 동맹군이 뭘 한 건지. 이제야 나도 알게 됐다. 애교란 추호도 없는 놈들이다.

 

  비텐펠트를 공격하려 하고 있는 2개 함대는 철수하는 동맹군의 선두에 있던 2개 함대겠지. 도중에 시계방향으로 이동한 거다. 한바퀴 돌아 비텐펠트 함대에 접근했기에 지근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함대가 지금 양, 우란푸의 뒤를 쫓고 있는 함대겠지. 정말이지, 멋지게 제대로 박힌 카운터 펀치다.

  양의 아이디어일까? 이 전쟁 애호가의 위선자 놈. 소설로 봤을 때는 좋았지만 적이 되니 짜증날 뿐이다.

 

  "뤼네부르크 대장. 저는 반란군에게 항복권고를 보낼까 생각했습니다. 웃긴 이야기죠? "

  뤼네부르크가, 모두가 눈을 부릅 뜨며 놀랐다.

  "정말입니까? 그건."

  "네. 정말입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뤼네부르크가 "그건"하고 입을 다물고 웃기 시작했다. 이 녀석, 배꼽 빠지게 웃고 있다. 그걸 보고 발레리가 가볍게 노려봤다.

 

  나도 웃었다. 다들 기가 막힌 표정이지만 웃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부턴가 뇌 속에 꽃밭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덧붙여 예쁜 꽃들이 잔뜩 피어 있다.

  문벌귀족을 비웃을 수 없구만. 전쟁이다. 죽이냐 죽느냐의 세계에서 싸우고 싶지 않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하물며 지금 상황에서 병력은 거의 호각. 상대방이 그리 간단하게 포기할 리가 없다.

  결혼한 뒤로 조금 멍청해졌나. 전쟁터에선 이상한 심리상태가 된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의 체험으로 말이지.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이길 수 있습니까? 반란군 쪽이 병력은 많습니다만."

  묻지 말라고, 뤼네부르크. 나도 자신이 없어.

  "뭐, 무리하지 말고 싸우도록 하죠."

  뤼네부르크가 씨익 웃었다. 내 마음 같은 건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런 느낌이로군. 그렇기에 넌 주위에서 눈 밖에 난 사람처럼 된 거야. 나 혼자라고? 널 재밌어 하는 건, 아니 악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고 있는 건.

 

  "반란군, 옐로존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금 쉰 것처럼 들린다. 지금쯤 침을 삼키고 있겠지. 처음 30분이 승부처다. 이쪽에는 나, 렌넨캄프, 아이제나흐의 3개 함대. 저쪽은 양과 우란푸의 2개 함대다. 때려 눕혀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켐프가 공격에 참가한다. 혼란은 더욱 커지겠지.

 

  나중에 3개 함대가 접근하겠지만 정리되지 못한 전열이다. 각각 두들겨 교착 상태로 만든 뒤엔 메르카츠가 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승산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

  살짝 유스티나에 대해 생각했다. 상냥한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 황급히 머리에서 내쫓았다. 전쟁터에서 여자에 대해 생각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는 건 이길 수단이겠지. 이 얼간이가! 일단은 우란푸다. 이 녀석을 친다!

 

 

 

우주력 799년 4월 16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프레데리카 그린힐

 

  조금씩, 조금씩 제국군이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휘 탁자 위에 앉아 있던 양 제독이 오른손을 슬슬 올렸다.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제국군이 전진해온 것에 양 제독은 놀랐었다. 제독은 제국군이 후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경우 후방을 차단하려고 한 적 함대를 협공할 터였다. 그리고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는 제국군의 본함대를 유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국군은 전진해왔다. 아군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겠지만, 순식간에 방침을 결전으로 바꾼 것은 본래 발렌슈타인 원수에게도 결전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양 제독은 말했다. 이쪽은 잘도 그 심리를 이용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완전히 사정거리에 들어왔습니다! "

  "쏴라! "

  명령과 함께 양 제독의 오른손이 내려 쳐졌다. 양 함대에서 수십 만 개의 광선이 발사된다. 우란푸 함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사되었다. 그리고 제국군에서도 빛의 다발이 쏟아져 동맹군을 덮쳤다…….

 

  이곳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양 제독도 "이건"하고 말한 채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좌측에 위치한 우란푸 제독의 제10함대가 심각한 손해를 입어 혼란에 빠졌다.

  대체 무슨 일이? 공격을 제10함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 해도 혼란이 너무 심하다.

  "우란푸 제독에게 후퇴하도록 전해줘. 이쪽도 타이밍을 맞춰 후퇴한다."

 

  "괜찮습니까? 이쪽이 후퇴하면 제국군도 후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선 놓치고 맙니다만."

  무라이 참모장이 물었지만 양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제국군은 우리 쪽의 배후를 노린 함대, 흑색창기병대를 방치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도망치고 있었겠지. 그보다도 이 이상 피해를 입으면 제국군이 급진하여 제10함대를 격파하려 하겠지. 그게 더 위험해. 후퇴하여 제3, 제9, 제11함대와 합류하는 걸 우선한다. 총사령부에도 전달해줘."

 

  오퍼레이터가 제10함대, 총사령부에 연락을 취하는 도중에도 제국군의 공격을 받은 제10함대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제국군, 후방의 1개 함대가 전면으로 나옵니다! "

  오퍼레이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로 제국군의 정면 전력은 4개 함대, 이쪽의 2배가 되었다. 이제 곧 애플턴, 호우드, 쿠브르슬리 제독이 응원으로 오겠지만, 그래도 겨우 호각이겠지.

 

  제10함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그에 맞춰 제13함대도 후퇴한다. 하지만 제국군이 맹렬하게 거리를 좁혀 공격해왔다.

  "제14, 제15함대, 제국군과 전투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

  오퍼레이터가 보고했지만 아무도 그쪽을 확인할 여유는 없다. 그 정도로 정면의 제국군의 압력이 강하다. 제10함대에선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제13함대는 제10함대와 연계를 취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애교가 없구만."

  놀라서 양 제독을 보자 제독이 날 눈치 채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 제10함대의 혼란에 대해 알려주었다. 개전 시, 제국군은 3개 함대, 동맹군은 2개 함대였다. 그리고 제국군 3개 함대의 최초 일격은 제10함대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제10함대는 3배 병력의 적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제2격부터는 2개 함대가 제10함대를 공격하고, 1개 함대가 우리들을 공격했다. 혼란에 빠진 제10함대라면 2개 함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우리들을 견제하기 위해 1개 함대에게 공격하도록 했다. 방치할 수는 없을 테니까."

  "3개 함대가……. 하지만 그렇다해도 혼란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요."

  "그래. 혼란이 심해진 건 제국군이 조준점을 통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준점을 통일? "

  "제국군의 레이저는 한 지점을 집중했다. 그런 만큼 제10함대의 손해는 커진 거지."

 

  당황하며 화면을 봤다. 확실히 제10함대에 대한 공격은 일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만큼 폭발의 빛이 격렬하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양 제독도 같은 공격법을 사용하지만, 그걸 몇 개 함대로 실시하다니……. 양 제독이 애교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해한다. 정말이지 만만치 않다.

  "전체 전력은 동맹군이 더 많다. 하지만 여기선 제국군 쪽의 병력이 더 많았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그걸 최대한 이용한 거지. 적보다도 많은 병력을 준비하고 집중하여 쓴다. 공격 레벨에서도 실천할 줄이야. 정말이지……."

 

  동맹군은 결전으로 적을 끌어들여 기뻐하고 있지만, 결전을 가장 기뻐하고 있는 건 발렌슈타인 원수일지도 모른다. 사나운 짐승이 기쁨에 떨며 이를 갈고 있다. 그리 생각했다.

 

 

 

우주력 799년 4월 16일. 동맹군 총기함 리오 그랑데. 드와이트 그린힐

 

  "제10함대는 꽤나 공격 받고 있구만."

  화면을 보는 뷰코크 사령장관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섞여 있다. 사령장관을 나무랄 수는 없다. 나도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각하. 우란푸 제독의 좌측에 제3함대를 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제국군의 공격을 조금은 돌릴 수 있겠지."

  "나머지 2개 함대는 양 제독의 우측에."

  "음."

 

  그렇게 되면 전선 병력은 동맹군이 5개 함대, 제국군이 4개 함대, 다소는 이쪽이 유리하게 된다.

  "아니, 총참모장. 그것도 안 될 것 같군."

  "예? "

  뷰코크 사령장관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있는가?

 

  "저쪽이 위험해."

  사령장관이 화면 한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제14함대와 제15함대를 비추고 있다. 그렇군. 적의 1개 함대에 밀리고 있다. 상황은 좋지 않다.

  "제14, 제15는 급조된 함대다. 아무래도 흑색창기병대의 상대를 하기엔 짐이 무거웠던 것 같아."

  사령장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결전으로 적을 끌어들일 수 있었는데 상황은 좋지 않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군요. 외측에서도 적의 1개 함대가 접근하는 것이 보입니다. 제11함대의 애플턴 제독에게 제14, 제15함대에 협력하도록 전하겠습니다."

  "음, 그렇게 해주게."

  이걸로 정면에 4개 함대가 되었다. 제국군과 같은 병력이다. 약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완전히 호각, 아니 제10함대가 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 걸 생각하면 조금 불리라고 해야 하려나.

  제국군의 별동대가 오기까지 승부를 내야만 한다.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사실은 일단 전군을 물리고 진을 재편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렇게 하면 제국군은 또 도망치겠죠. 게다가 이제 시간도 없습니다."

  사령장관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구만. ……그건 그렇고, 애교가 없다. 조금은 허를 찔렸으니 당황해도 좋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되면 조금 더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을 것을……."

  뷰코크 사령장관이 화면을 노려봤다. 화면은 후퇴하는 동맹군과 맹렬하게 추격하는 제국군을 비추고 있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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