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90년 4월 14일. 잠시드 성역, 제국군 총기함 로키.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반란군, 추격을 멈췄습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의 목소리에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전 함대에 정지명령을 내렸다.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는 분명하게 후퇴하는 동맹군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맹군의 후퇴를 인정한 사령장관은 전 함대에 동맹군을 쫓도록 지시를 내렸다.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벌써 8시간 정도 제국군과 동맹군은 술래잡기와도 같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단 양군이 실제로 포화를 나눈 건 한 번도 없다.

  공격이 적에게 명중하기 위해선 앞으로 3시간 정도 서로를 향해 접근할 필요가 있겠지.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단좌식 전투정에 의한 공격도 불가능하다. 공격대를 발진시켜도 적진에 도착하기 전에 그 대부분이 적의 단좌식 공격정에 요격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사실은 동맹군은 무척이나 제국군을 쫓고 싶을 터,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동맹군이 쫓아오면 제국군은 잠시드에서 시바 성역 방향으로 후퇴한다. 하지만 동맹군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이끌고 있는 별동대에 대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바라트 성역 근처에서 싸우고 싶다. 그렇기에 도중에서 추격을 멈추고 후퇴한다.

  그리고 제국군은 그런 동맹군을 쫓는다. 이건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동맹군은 후퇴하면서 제국군이 깊게 쫓아오기를 기다린다. 한 순간의 틈을 찔러 교전하여 제국군을 격파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거다.

 

  지금까지는 그 노림수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동맹군이 이대로 패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사령장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각하는 전투식을 먹으면서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와 전면 화면을 보고 있다. 때때로 인상을 찌푸리지만 원인은 전황이 아니라 전투식이 맛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에 불안을 느끼게 만들만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각하, 이 상태가 계속될 거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만, 이 뒤의 전개는 어떻게 될까요? "

  사령장관 각하가 나를 힐끔 봤다. 그리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각하가 전투식에 불평을 흘린 적은 내가 알기로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맛에 까다로운 건 알고 있다. 제국의 전투식은 동맹의 것보다 확실히 맛에 있어 뒤처진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뤼네부르크 대장도 같은 의견이다. 대장도 사령장관 곁에서 무뚝뚝한 얼굴로 전투식을 먹고 있다.

 

  "하이네센 방면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전군이 하이네센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됩니다. 단 이 경우 우리들의 추격을 받을 테니까 꽤나 손해가 나올 것을 각오할 필요가 있겠죠.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후퇴가 아니라 패주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령장관이 전투식을 한입 먹고 얼굴을 찡그렸다. 피망, 간, 전투식, 이 중에 뭘 가장 싫어할까. 언젠가 한 번 셋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해보고 싶다.

 

  "그걸 피하기 위해 몇 개 함대를 남겨 우리들의 발목을 잡게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뭐, 본대는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만, 의미는 없겠군요. 본대도 그다지 시간은 벌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그 경우 발을 잡는 부대를 철저하게 두들긴다는 건가. 단시간에 무너뜨리고 본대를 추격한다.

 

  "메르카츠 제독과 협공이라는 방법도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전투는 피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

  뤼네부르크 대장이 질문하자 사령장관이 끄덕였다.

  "무의미한 전투는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입니다. 동맹군에게 행동의 자유를 허락할 순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쪽의 통제 하에 둡니다. 그 안에서 전투를 피하는 겁니다. 통제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걸 저지합니다."

  쿨하네. 뷰코크 사령장관이나 그린힐 총참모장, 양 제독이 이 사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한숨을 내쉬지는 않을까.

 

  "동맹군은 처음부터 하이네센에서 이쪽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길 수는 없었겠지만, 싸울 수는 있었겠죠."

  "동맹군이 이길 가능성은 있었을까요? "

  내가 묻자 사령장관이 나를 지긋이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없네요. 저는 반드시 이기도록 준비했습니다. 정략, 전략에 있어 압도적인 우위를 구축하여 동맹군의 2배 이상의 전력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지탱할 수 있을만한 보급체제와 경제력도 갖췄습니다. 그러기 위해 문벌귀족을 쳐부수고 로엔그람 백작을 배제한 겁니다. 동맹군에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

  이만큼의 대가를 지불한 거다. 이기는 건 당연하다. 라고 사령장관은 말하고 있다.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뒤에 싸운다. 승패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승배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싸운다. 이번 전투는 그런 전투입니다. 동맹군도 자신들이 패배했다는 건 알고 있겠죠. 단지 그걸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점 자신들이 졌다는 걸 인정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전투 중의 군인이라기 보다도 실험결과를 지켜보는 과학자 같은 어조였다.

 

 

 

우주력 799년 4월 14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안 되겠군요. 제국군은 우리와의 전투를 피하고 있습니다."

  무라이 참모자이 한숨 섞인 말로 상황을 평가했다. 어조에는 울분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사령부 모두가 같은 마음이겠지. 안색도 좋지 않고 분위기도 좋지 않다. 마음 속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 분노, 안타까움, 무력감으로 가득할 것이 틀림없다.

 

  제국군은 동맹군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다. 우리들을 견제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사이에 별동대로 하이네센을 공략하려는 거겠지. 그리고 우리들은 그걸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제국군의 술수에 빠져 있다.

  ……졌다, 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입 밖으로 내보내고 있지 않을 뿐이다.

 

  "각하, 뭔가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이대로 가면 하이네센이……."

  그린힐 대위의 질문에 "글쎄"라고 애매하게 답했다. 2개 함대 정도 남겨 제국군의 진격을 막은 뒤 하이네센으로 향한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각개격파 당하는 걸로 끝나겠지.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 가는 편이 무익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라리 낫다.

 

  졌구만, 이라고 생각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샨타우 성역, 아니 이제르론 요새 공략, 그게 실패였다. 거기서 로엔그람 백작을 쓰러뜨리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실각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르론 요새가 이쪽에 있다면 방어에 전념할 수 있다.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책략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동맹시민은 제국령 침공을 선택하여 원정군은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대패했다. 그걸로 동맹의 명운은 결정되고 말았다.

  역사상 이겨선 안 될 전투에서 이겨버려 국가가 멸망한 경우가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한 짓이 그거였다. 동맹을 멸망으로 이끈 건 제국이 아니다. 나다.

 

  혹시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지 않았다면 그 바보 같은 제국령 침공은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동맹군은 큰 손해를 입지 않고 끝났겠지. 동맹군이 건재하다면 제국의 내란도 없었을 거다. 문벌귀족도 건재했을 거다. 다시 말해 제국은 이 정도 규모의 군사작전을 일으킬만한 여유는 없었을 거다.

 

  "각하, 총사령부에서 통신이."

  그린힐 대위의 표정이 밝다. 전국의 타개에 기대하고 있는 거겠지.

  "알았다. 화면에 비춰줘."

  화면에 뷰코크 사령장관과 그린힐 총참모장의 모습이 비춰졌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심각하다. 그린힐 대위, 기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로 경례를 나누고 뷰코크 사령장관이 말문을 열었다.

  「통합작전본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시급히 하이네센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함교가 술렁거려 정숙하라고 주의했다.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고 그린힐 총참모장이 뒤를 이었다.

  「제국군의 별동대가 하이네센으로 접근하고 있다. 상선이 버밀리온 성역 근처에서 제국군의 별동대와 조우했다.」

  다시 함교가 술렁거렸다. 올 것이 왔다.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충격이 있었다.

 

  「하이네센에선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대규모의 시위도 일어났다는 것 같다. 하이네센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되돌리라고 시민들은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어.」

  총참모장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울분이 섞여 있다. 제멋대로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여기에서 철수라니,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허락할 상대도 아니다.

 

  "정부의 대응은? "

  질문하자 뷰코크 사령장관이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들은 제국군과 싸우지도 못하고 있어. 시민들의 철수 요구에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

  다시 한숨이 들려왔다. 이번 한숨에는 힘이 없었다.

 

  「하이네센으로 철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게 되겠지.」

  "……."

  「양 제독은 우란푸 제독과 함께 최후미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어려운 임무다. 잘 될 가능성은 낮다. 제국군의 별동대와 본대에 협공 당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이 사태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나니까.

 

 

 

제국군 490년 4월 14일. 오딘, 통수본부. 슈타인호프

 

  "그럼 반란군은 하이네센을 향해 후퇴하고 있는 거로군? "

  「예.」

  "함정일 가능성은 없나? 경의 함대를 유인하려는 거란 가능성도 있겠지."

  내가 묻자 발렌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동맹군은 전력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흠, 화면에 비춘 발렌슈타인에게 망설임은 없다. 믿어도 좋겠지. 평소에도 그렇지만 귀여움이 없구만. 조금은 전공을 탐낸다든가 치기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반란군은 메르카츠가 이끄는 별동대가 하이네센으로 접근하고 있기에 황급히 돌아가고 있다. 그런 건가."

  「아마도.」

  "어떻게 할 건가? 메르카츠에겐 그대로 하이네센을 공략하게 할 건가? 아니면 반란군의 함대를 협공할 건가? "

  「양쪽 다 가능하겠지요.」

  내게 선택하게 만들 셈인 것 같다. 아니면 시험하고 있는 건가?

 

  "안전책을 취한다면 함대를 무력화하는 거겠지."

  「소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부하들도 기뻐하겠죠. 이제야 겨우 전투를 할 수 있을 테니.」

  희미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다. 쓴웃음일까? 아무래도 부하들을 통제하는 데에 꽤나 고생한 것 같다. 다소는 인간미가 보이는군.

 

  "그렇군. 확실히 제대로 된 전투가 없었구만."

  「예.」

  "좋겠지. 일단 반란군의 함대전력을 무력화한다. 메르카츠에겐 내가 전하도록 하지. 경은 반란군을 따라잡아라. 놓치지 말도록."

  「예.」

 

  서로 경례를 나누고 통신이 끝났다. 본대 6개 함대와 별동대 7개 함대에 의한 협공인가. 반란군의 명운을 정하는 전투다. 그에 걸맞는 큰 전투가 되겠지.

 

 

 

제국력 490년 4월 14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과 통신이 끝나자 함교 분위기는 단숨에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제야 겨우 동맹군을 공격할 수 있다. 협공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전술 컴퓨터에 보이는 동맹군은 후퇴하고 있다. 그걸 쫓도록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함대의 속도를 올리도록 명령했다.

 

  "추격하면서 함대의 배치를 재편합니다. 전방에 3개 함대, 후방에 3개 함대. 전방 3개 함대는 중앙에 본함대, 좌익에 렌넨캄프, 우익에 아이제나흐 함대. 후방 3개 함대는 중앙에 뮐러, 우익에 비텐펠트, 좌익에 켐프 함대. 서두르도록! "

명령이 이어진다.

 

  "스스로 선두에 선다는 겁니까? "

  발트하임 참모장이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령장관은 개의치 않았다.

  "지시는 어떻게 됐습니까? "

  "예."

  참모장이 서둘러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뤼네부르크 대장이 씨익 웃는 게 보였다.

 

  동맹군과는 아직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다. 함대 배치를 재편하면서 추격해도 문제는 없다. 동맹군에게 역습을 받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선두에 선다? 혹시 서두르고 있나? 사령장관의 표정에 흥분은 보이지 않는다. 의심쩍게 보고 있자 사령장관이 날 봤다. 그리고 쓴웃음을 띄웠다. 아무래도 내 의문을 눈치 챈 것 같다.

 

  "추격전이라는 건 무질서하게 되기 쉽지요. 그리고 무질서하게 되면 역습을 받기 쉬워집니다. 특히 이번엔 충분한 전투가 없었으니까 다들 불만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만큼 위험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선두에 선다는 건가요? "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뒷마무리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됩니다. 우리들은 질서를 갖추고 추격합니다. 목적은 동맹군의 후미를 잡는 것. 적 전력을 깎아내는 건 부산물이군요."

  하아, 한숨이 나올 것 같다. 뤼네부르크 대장은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령장관 각하가 나와 대장을 보고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보였다.

 

 

 

우주력 799년 4월 16일. 동맹군 총기함 리오 그랑데. 드와이트 그린힐

 

  총기함 리오 그랑데의 함교는 무거운 분위기에 싸여 있다. 다들 표정이 심각하다. 뷰코크 사령장관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후퇴를 결단하고 이미 이틀이 지나려 하고 있다. 동맹군은 철수하고, 제국군이 그걸 뒤쫓는다. 그런 전개가 40시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양측의 거리는 조금씩이긴 하지만 줄어들고 있다.

 

  최후미를 맡고 있는 제10함대의 우란푸 제독과 제13함대의 양 제독이 세 번 제국군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제국군은 두 함대를 격파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면에서 동맹군을 견제하며 한 부대를 우회하여 후방을 차단하려 했다. 제10함대, 제13함대는 협공을 두려워하여 제국군의 발을 잡지 못했다. 지금은 후퇴에 전념하고 있다.

 

  제10함대, 제13함대에 큰 손해는 없다. 두 함대 모두 1,000척에도 미치지 않는 손해를 받았을 뿐이다. 제국군은 동맹군을 격파하는 것보다도 뒤를 잡아 추격하는 것을 우선하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적과 아군 13개 함대가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제국군의 목적은 알고 있다. 별동대와의 협공이다. 그렇기에 2개 함대의 격파보다도 동맹군 전체의 추격을 우선하고 있다. 아마도 제국군의 별동대는 이쪽을 향하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몇 차례 논의했다. 이대로 가면 협공 당할 가능성이 높다. 뒤돌아 제국군으로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별동대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다. 잘 하면 각개격파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격하고 있는 제국군은 신중하다. 허를 찔러 반전해도 잡을 수 있을지 어떨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웠다. 결국 별동대의 진로를 예측하고 그를 피하는 항로를 취한다고 결론이 났지만…….

 

  "슬슬 좋을까."

  뷰코크 사령장관이 중얼거리고 나를 봤다. 표정에는 웃음이 있다.

  "총참모장, 제국군에게 반격을 시작하지."

  "반격입니까? 하지만……."

  잘 될 거라 생각하기 힘들다. 우물거리자 뷰코크 사령장관이 알고 있다는 듯이 끄덕였다.

 

  "양 제독과 우란푸 제독에게 발을 잡도록 만든다."

  "……."

  "제국군은 한 부대를 우회시켜 후방을 찌르려 하겠지. 그렇게 하는 걸로 그 두 사람을 철수시켰다. 이번에는 그걸 노린다."

  "……제국군의 한 부대를 끌어들여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거군요."

  내가 확인하자 뷰코크 사령장관이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목적은 알겠다. 하지만 그게 잘 될까? 제국군도 거기에는 경계하고 있을 거다. 게다가 정부의 명령을 거역하게 된다. 그에 대해 묻자 사령장관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미 40시간 가까이 도망치고 있어. 제국군이 우리들의 철수가 확실하다고 생각해 준다면……."

  "그렇군요. 찌를 구석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령장관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제국군의 방심을 찌르자는 건가. 지금이라면 잘 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겠지.

 

  "게다가 이대로 가면 제국군에게 협공 당하길 기다릴 뿐이다. 하이네센에 돌아갈 수도 없어져. 정부의 명령에 응하지 못하게 된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잘 되면 제국군을 각개격파할 수 있겠죠. 그게 무리라도 여기서 제국군에게 일격을 가해두면 협공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음. 하이네센에 돌아가 최후의 일전을 기대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

 

  "무엇보다도 이대로 당하기만 해선 병사의 사기도 오르지 않아. 게다가 나에게도 오기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급료 도둑이라느니 허수아비 사령장관이라느니 불리는 건 사양이다."

  사령장관이 표정을 찡그리고, 그리고 웃었다.

  "소관도 같은 마음입니다. 이 쯤에서 급료만큼의 일을 하도록 할까요."

  "음."

  기회는 한 순간이다. 두 번이나 같은 수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작전을 적에게 감청되어선 안 되기에 연락정으로 지시를 내리게 되겠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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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9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반란군은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습니까."

  양아버지의 말에 저도 모르게 안심했다.

  "하기야 반란군에게 있어서 후퇴는 예정된 행동이겠지. 2개 함대로는 3배의 병력을 가진 놈에겐 이길 수 없어."

  양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다. 불안 따위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남편의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마음 깊이 신뢰하고 있다. 상사와 부하로 있을 때 키워진 신뢰인 거겠지.

 

  부럽다고 생각한다. 나로선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남편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실적도 충분할 정도로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무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위험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하고 만다. 반란군과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전력차가 있다고 해도 괜찮을까 생각하고 만다.

  남편이 전쟁터에 있다는 게 이렇게나 불안할 줄이야…….

 

  "반란군의 별동대가 움직이고 있다더군."

  "괜찮을까요? "

  "문제 없다. 이쪽도 별동대가 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반란군이 합류한다 해도 전력은 에리히와 거의 호각이야. 뒤처지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 걱정은 필요 없다."

  "네."

  양아버지가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나로선 "네"라고 대답하는 게 겨우였다. 호각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빠르면 이달 중에 반란군은 항복하게 되겠지."

  "이번 달……."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한 것이 컸다. 저걸로 반란군의 방어태세가 엉망진창이 되었으니까. 반란군은 발버둥치고 있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승부가 난 거지."

  양아버지가 느긋하게 커피를 입으로 옮긴다.

 

  남편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옮겨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했다는 소식은 오딘에서 널리 퍼지고 있었다. 반란군이 이길 수 없다 생각하고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했다는 것도.

  다들 남편이 반란군을 쓰러뜨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두에게 있어 남편은 무패, 무적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겐 괴롭다…….

 

  "빠르면 가을에는 돌아올지도 모른다. 뭐, 늦어도 올해 안에는 돌아오겠지."

  "네."

  "새해는 모두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네요."

  빨리 돌아와줬으면, 이라기 보단 올해를 넘겨도 상관 없으니까 무사히 돌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뿐만이 아니다. 출정 중인 장병의 가족은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 나에겐 기도하는 일밖에 할 수 없다. 대신 오딘의 가호가 그이에게 있기를…….

 

 

 

제국력 490년 4월 12일. 잠시드 성역,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제국군 이제르론 방면군 6개 함대는 잠시드 성역에 도착했다. 서둘렀다면 10일 쯤에는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급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이동했기에 오늘에야 도착했다.

  지연 작전 덕분에 약 30시간의 거리에 자유행성동맹군 7개 함대가 집결하고 있다. 내일 쯤에는 육안으로 볼 수도 있겠지. 뭐, 바라던 바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양, 칼센과의 전투 중에 뷰코크가 등장하는 거였다. 그걸 피할 수 있었으니 예정대로다.

  방심은 하고 있지 않다. 동맹군에 대해선 항상 정찰대가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동맹군에 이상한 움직임은 없다. 저쪽도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함교는 긴장에 둘러싸여 있다. 발트하임, 슈마흐는 억누르려 하고 있지만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싸울 생각은 없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눈앞에 적을 보게 되면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이번엔 눈앞에 있는 것이 적의 주력이다. 그리고 결사의 각오로 임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흥분하지 말라는 게 무리겠지.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발레리와 뤼네부르크 정도다.

 

  내 함대조차 이런데 비텐펠트, 렌넨캄프, 켐프, 그들의 함대에선 더욱 흥분하고 있겠지. 어쩌면 뮐러 함대도 흥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면에 비춘 적 함대를 보고 군침이라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 더 전 함대에 주의를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발트하임 참모장."

  "예."

  "전 함대에 통신을. 함부로 총구를 열지 마라. 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르도록."

  "예."

  발트하임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발트하임도 싸우고 싶다고 생각한 거겠지. 유감이지만 그걸 허락할 생각은 없다.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거다. 쓸데 없는 손해를 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나는 저 녀석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능력면에서 위험한 녀석들이고, 감정적으론 꽤나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 지시를 내리자 오퍼레이터가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으나 바로 조금 기운 빠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싸우지 않고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평문으로 보내세요."

  내가 말하자 발트하임이 "괜찮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가? 적은 당연하지만 이쪽 통신을 감청하고 있을 거다. 전의가 부족하다. 제대로 싸울지 의심스럽다고 판단하겠지.

  헌데, 동맹군은 어떻게 할까? 재차 전투를 걸어올런지, 아니면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메르카츠 함대를 요격하기 위해 하이네센 방면으로 향할지…….

  적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쪽이 우위에 서게 된다. 뷰코크는 어떻게 할까? 나라면 하이네센으로 돌아가겠지만…….

  뤼네부르크가 씨익하고 웃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성격 나쁘구만. 너. 상관의 마음을 읽지 않는 것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읽는 것도 문제다.

 

 

 

우주력 799년 4월 12일. 동맹군 총기함 리오 그랑데. 드와이트 그린힐

 

  "총참모장, 제국군은 시간 벌이를 할 생각인 것 같다."

  "예."

  오퍼레이터가 제국군의 통신을 감청했다. 내용을 들은 뷰코크 사령장관의 표정은 떫다. 예측된 일이지만 제국군은 역시나 시간 벌이를 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별동대의 하이네센 공략을 쉽게 하기 위해서겠지.

 

  "통신은 평문으로 쓰여져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런 거겠죠. 이쪽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서일까? "

  "예."

  "불쾌한 짓을 하는군. 그만큼이나 만만찮은 상대지만……. 친구로 삼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총참모장."

  이런 상황이긴 하지만 뿜고 말았다. 사령장관도 웃고 있다. 좋은 사령장관이다. 좀 더 빠른 시기에 이 노인을 사령장관으로 삼지 않았던 게 동맹의 불행이겠지.

 

  사실은 제국군이 양 제독, 칼센 제독과 싸우고 있는 와중에 참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국군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꽤나 가혹한 공격을 두 사람에 대해 행한 것 같다. 양 제독은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멈추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동맹군을 제국군은 추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쪽을 합류시키기 위해서다.

 

  각개격파는 용병의 상식이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걸 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싸울 생각이 없기 때문이겠지. 지금의 통신도 그걸 뒷받침하고 있다. 제국군은 명백히 시간 벌이를 하려 하고 있다. 별동대의 하이네센 공략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제국군을 억지로라도 싸움으로 끌어낸다. 그러기 위해 여기에 온 거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하이네센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제국군에게 뒤에서 공격 받게 되겠지. 발렌슈타인 원수의 의도대로 말이야. 여기서 망설일 이유가 없어. "

  단호한 어조였다. 말 그대로 뷰코크 사령장관에게 망설임은 없다.

 

  "그럼 서둘러야만 하겠군요."

  "그렇지. 전진하여 제국군과 교전한다. 병력은 이쪽이 더 많아. 두려워하지 말고 싸우도록 명령하라."

  "예."

  오퍼레이터에 지시를 내리자 함교 분위기가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 일전을 통해 제국군을, 발렌슈타인 원수를 격파한다. 그리고 하이네센으로 돌아가 제국군의 별동대를 친다. 거기에 동맹의 운명을 거는 거다.

 

 

 

제국군 490년 4월 13일. 잠시드 성역,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지긋지긋하네. 만사 무슨 일이든 대체로 바라던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동맹군이 진격을 서둘러 이쪽으로 향하여 오고 있다.

  어째서 이쪽으로 오는 걸까? 보통은 수도를 지키려 하겠지. 나는 라인하르트가 아니라고.

  그리고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괴뢰가 아니다. 나를 쓰러뜨려도 제국군의 패배로는 이어지지 않고, 제국군은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제국인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이미 제1급 전투태세는 발동했다. 덕분에 총기함 로키의 함교는 싫을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 흥분하지 마라. 조금은 침착해지라고.

  "반란군과의 거리, 100광초."

  오퍼레이터가 잔뜩 눌린 목소리로 동맹군이 접근했다는 걸 보고했다. 아, 텐션 오르지 않는구만.

 

  "전 함대에 명령. 현재 거리를 유지. 후퇴하라."

  "예. 전 함대에 명령, 현재 거리를 유지, 후퇴하라."

  내 명령을 발레리가 복창했다. 그걸 들은 오퍼레이터가 각 함대에 명령을 내린다. 조금 지나 함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반란군, 속도를 올렸습니다! 접근하고 있습니다! "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함대에 울린다. 함교의 분위기가 웅성거렸다. 싸우고 싶어하는 건가……. 발레리가 날 봤다. 내가 끄덕이자 발레리도 끄덕였다.

  "현재 거리를 유지, 후퇴 속도를 올려라."

  좋아. 발레리는 침착한 상태다. 아니, 역시 동맹군과는 싸우고 싶지 않은 걸까.

  하지만 묘한 이야기다. 사령장관과 부관이 적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니. 이런 일은 제국 역사 속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겠지.

 

  "상대방은 필사적이군요."

  "그렇네요. 하지만 이쪽도 필사적입니다."

  내가 답하자 뤼네부르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참 좋은 일입니다."라며 지껄이고 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진심인데.

  우주 통일이 걸린 한판승부다. 진심으로 도망치고 있고, 도망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정당당따위 스포츠만으로 충분하다! 이건 전쟁이다. 당연히 싸우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국력 490년 4월 13일. 하이네센 성역, 메르카츠 함대 기함 뇌르틀링겐.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각하, 버밀리온 성역입니다."

  메르카츠 각하가 화면에 비춘 버밀리온 성역을 응시하며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군이 여기까지 진출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바라트 성역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나? "

  "5일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5일인가."

  각하는 인생의 대부분을 반란군과의 전쟁으로 보냈다. 그 반란군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감개무량한 마음이 있겠지.

 

  페잔 방면군은 당초 13개 함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페잔 공략 후에는 제1군, 슈무데, 린테렌, 루크너, 루디게의 4개 함대가 분리했다.

  그리고 간다르바 성역의 행성 우르바시를 보급기지로 하기 위해 루츠, 바렌 함대가 우르바시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페잔 방면군은 7개 함대로 하이네센 공략에 향하고 있다.

 

  "시리유나가르에 경유하여 하이네센……. 일주일 정도일까. 중령."

  "예."

  시리유나가르와 바라트 성계 제6행성이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하이네센을 지키고 있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공략하기 위핸 재료를 조달한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순식간에 부서질 터다.

 

  "문제는 반란군의 방해가 있을지 없을지입니다만……."

  메르카츠 각하가 가볍게 웃음을 띄웠다.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에 의하면 반란군은 잠시드 성역에서 사령장관과 대치하고 있다고 하더군. 이쪽을 향할 정도의 여력은 없겠지."

  "예."

  반란군의 동향을 각하는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다. 각하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 대한 신뢰는 크다. 그리고 사령장관도 메르카츠 각하를 신뢰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13개 함대나 맡길 리가 없을 거다.

 

  "걱정인가? 슈나이더 중령."

  "걱정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나도 순조롭기에……, 전투다운 전투도 없었고……."

  뭐라고 해야 좋을까? 망설이며 어물거리고 있자 메르카츠 각하가 드물게도 소리내어 웃었다.

 

  "현실감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변변한 전투도 없었는데 반란군은 패배 직전입니다. 150년 계속된 전쟁이 이런 식으로 끝나다니……, 이상한 기분입니다."

  각하가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다.

  "뭐,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각하가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샨타우 성역 회전이 컸던 걸까요? "

  각하가 내게 시선을 향했다.

  "확실히 그게 컸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페잔을 반란군에 넘겼던 것이 컸다고 난 생각한다."

  "페잔, 입니까……."

  메르카츠 각하가 날 보며 끄덕였다.

 

  "얻은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페잔을 얻었기 때문에 반란군은 적은 병력을 더욱 둘로 나눠야만 했지."

  "……."

  "본래 적은 병력은 집중하여 써야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거다. 따라서 효과적인 방어전도 할 수 없었지. 우리가 변변한 싸움 한 번 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정확히는 반란군이 전투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봐야만 한다."

  "과연."

 

  페잔이 중립으로 있었다면 반란군은 전력을 이제르론 방면으로 집중할 수 있었겠지. 요새를 잃어도 이제르론 회랑 출구 근처에서 요격도 할 수 있었을 거다. 혹은 반란군 영역 깊숙이 유인하여 결전을 벌이는 것도 가능했다. 그 전부가 페잔을 얻었기 때문에 무너졌다.

 

  "그 당시엔 반란군에 페잔을 넘기는 것에 꽤나 놀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의 심모원려였다."

  메르카츠 각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각하가 날 봤다. 엄격한 눈빛이었다.

  "슈나이더 중령. 이제 조금이다. 조금만 더 하면 우주에서 전쟁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최후까지 마음을 풀지 말고 싸워야 한다."

  "예."

  내가 답하자 각하가 가볍게 끄덕였다. 눈은 엄격한 채였다. 방심하지 말라고 눈이 말하고 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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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4월 6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레벨로, 제13함대와 제15함대가 합류했다는 것 같군."

  "아아, 그렇다고 들었네."

  시톨레가 내 집무석에 머그컵을 두었다. 커피가 향기를 풍겼다. 시톨레도 근처에 있는 의자에 허리를 내렸다. 그도 손에 머그컵을 쥐고 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려는 것 같다.

 

  "일단은 안심이야. 양 웬리라면 다소 시간을 벌 수 있겠지. 뷰코크 제독이 돌아오기 전까지 제국군을 붙잡아둘 수 있을 거다."

  시톨레가 안심 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게 가슴 아프다.

  "결국 자네들이 한 말이 옳았군. 처음부터 제국군을 동맹령 안으로 끌여들어 싸워야 했었다. 그렇게 했으면 혼란 없이 끝났겠지."

  시톨레가 머그컵을 입으로 옮겼다. 생각할 시간을 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네가 결정한 일이 아니야. 모두 함께 충분히 의논하여 결정한 일이다. 군인들도 납득했기에 따른 거고."

  "하지만 자네들이 말한대로 했다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싸울 수 있었다."

  "……결과론일 뿐이야. 제국군이 그런 수단을 쓸 줄이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 외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 혼란의 원인이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없어."

  시톨레가 "훗"하고 웃었다.

  "자네의 나쁜 버릇이군. 스스로를 지나치게 책망한다는 것."

  과연 그럴까? 나는 남에게 엄격하다는 소리를 더 자주 듣는데…….

 

  "시톨레, 민주공화정이라는 건 전쟁을 수행하는 데엔 적합하지 않은 정치 제도일까?"

  "그게 무슨 말인가? 레벨로."

  시톨레가 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시민에게 선택 받는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시민의 반응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 다시 말해, 그런 만큼 군사적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거다. 그건 민주공화정의 결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방위체제의 붕괴는 우리들 정치가가 시민의 반응을 과도하게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싸울 상대보다 국민감정을 우선하고 말았다……. 시톨레가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 제국이라면 국민감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방위체제를 갖출 수 있었을 거라는 건가."

  "실제로 3년 전에 동맹군이 침공했을 때엔 제국군은 이쪽을 제국령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네들이 취하고 싶었던 작전이다. 제국은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동맹은 그렇게 할 수 없었지."

  "……병력차의 문제도 있어. 그 때 제국은 병력에 있어 동맹에 뒤처지지 않았다.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시톨레가 머그컵을 입으로 옮겼다.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인가, 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침공작전은 어땠는가? 선거 대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부는 국민감정에 영합하여 출병하고 말았다. 그 때,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출병을 멈췄다면……."

  입 안이 썼다. 내 정치 경력에 있어 가장 후회가 남는 일이다.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설령 잊으려 한다 하더라도.

 

  "자네가 하려는 말은 알겠어. 하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아. 동맹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잘못을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치제도의 잘못으로 뒤집어 씌워선 안 된다. 왜냐하면 군주독재정이 꼭 전쟁수행에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주변의 반대에도 군주 혼자만의 생각으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 혹은 계속할 수 있다. 그것이 군주독재정이다."

  "……."

  강한 어조였다. 분노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치제도에 있는 게 아니야. 주권자가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는지 아닌지다."

  "……."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다면, 그렇게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진지하게 마주한다인가…….

 

  "제국에선 황제의 소수의 신하로 끝난다. 하지만 동맹은 100억 이상의 국민이 대상이 된다. 그들의 과반수 이상이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시톨레."

 

  "마주해야 하는 거다. 레벨로."

  "……."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공화정은 작동하지 않아. 이건 전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을 거다. 아닌가?"

  "……."

  확실히 시톨레가 하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시톨레가 웃었다.

 

  "비관적이 되지는 마라. 자네의 결점이야. 문제가 일어난 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지나치게 자신을 책망한다. 결국엔 절망하고 비관적이 되어버리지. 옛날부터 변하지 않아."

  "나는 지금 비관적인가?"

  "그래, 비관적이야."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런 결점이 있었을 줄이야……. 시톨레가 웃음을 멈췄다.

 

  "상황은 어려워. 하지만 패배가 결정된 건 아니야. 약해지지 말게. 레벨로."

  "그래, 그렇군. 절망하는 건 패배한 뒤에 하기로 하지."

  "전쟁에 패배해도 외교가 있어. 강화 교섭으로 만회할 수도 있겠지."

  "강화 교섭인가……."

  그렇군. 그게 있었지. 전쟁은 군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정치가는 강화 교섭에 대비해 준비를 해야만 한다. 트류니히트와 상담해야하겠지…….

 

 

 

제국력 490년 4월 7일. 시바 성역, 제국군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럼 우르바시는 점령한 거군요."

  「음, 이미 페잔에서 우르바시를 향해 보급물자를 보내고 있다.」

  "호위는?"

  「린테렌 제독이 이끌고 있는 1개 함대다. 충분하겠지.」

  화면에 비치는 슈타인호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 원작과는 다르다. 동맹군은 이곳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보급을 칠 수 있을 여유는 없다. 충분하겠지.

 

  「지금 시점에서 작전에 중대한 지장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 통수본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이대로 작전을 실행하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도 예정대로인가요?"

  「예정대로다. 문제는 없어.」

  슈타인호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다음은 니플헤임이군요."

  「그렇게 되겠지.」

 

  니플헤임은 북유럽 신화의 9개 세계 중에 하층에 존재한다는 얼음의 나라다. 그리고 이 침공작전에선 시리유나가르의 암호명이기도 하다.

  메르카츠는 시리유나가르로 향하고 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하기 위한 얼음을 얻기 위해서…….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에겐 방심하지 말도록 전해주세요. 반란군은 이쪽에 오리라 생각합니다만, 만일의 경우도 있으니까요."

  「알겠다. 그렇게 전하지.」

  "잘 부탁합니다."

 

  내가 부탁하자 슈타인호프 원수가 "음"하고 끄덕였다.

  「그럼 충분히 조심하도록.」

  "예. 감사합니다."

  통신이 끊겼다. 조심하라니, 답지 않잖아. 슈타인호프. 괜히 불안해지네.

 

  동맹군에는 드디어 양 함대가 합류했다. 눈 앞에는 2개 함대가 모여 있다. 통신 감청에 의하면 다른 한 개 함대를 이끌고 있는 건 칼센인 것 같다.

  지장 양 웬리와 맹장 랄프 칼센인가. 그다지 기뻐할만한 조합은 아니네. 여기에 페잔에서 함대가 돌아오면 뷰코크, 우란푸가 모인다.

  슈타인호프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뭐, 나로서도 불만은 없다. 앞뒤로 나뉘어져 움직여지는 것보다 하나로 뭉친 쪽이 대처하기 편하다는 거다.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는 거겠지. 이쪽으로선 뷰코크가 하이네센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 돌아가게 되면 메르카츠의 하이네센 공략이 어렵게 된다.

 

  이곳에 뷰코크를 붙잡아 두고 제국군의 각개격파를 노리게 하여 하이네센을 텅 빈 상태로 만들기 위해선, 역시 잠시드까지 밀어 붙일 필요가 있겠지. 거기까지 밀어 붙이면 뷰코크도 이쪽을 막는 걸 우선할 것이다. 실제로 이쪽으로 향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양이 칼센과 합류한 건 이곳에 진격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명백히 하이네센 근교에서 각개격파를 노리고 있다. 잠시드로 유인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너구리와 여우의 속임수 대결이군.

 

  어떻게 해서 양과 칼센을 잠시드까지 밀어 붙일까. 전력을 다해 단번에 밀어 붙일까? 그만 두는 편이 좋겠지. 양이 위험을 느끼고 진심을 내게 될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손해를 입을 것 같다.

  천천히 진격하면 멋대로 물러나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지만 전투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예단하는 건 위험하겠지.

 

  전투가 발생할 것을 전제로 행진해야만 할 것이다. 혹은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하는 편이 좋겠지.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게 좋겠군. 그걸로 가자. 생각보다 편하게 될 수도 있다. 잘 되면 말이지만…….

 

 

 

우주력 799년 4월 7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이런이런, 파고 들 틈이 없네."

  내가 한숨을 내쉬자 무라이 참모장이 기침소리를 냈다.

  "각하, 한탄하고 있어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엔 기침 대신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을 내쉬고 싶은 건 이쪽인데……. 아아, 아까 내쉬었던가? 이거 위험하구만.

 

  제13함대와 제15함대가 합류한 뒤, 제국군은 진격을 재개했다. 이쪽 입장에서도 적을 잠시드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문제는 없다.

  문제는 눈앞의 광경이다. 화면에는 두 배의 병력으로 공격을 걸어오고 있는 제국군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6개 함대 중 4개 함대이 공격에 임하고 있고, 2개 함대는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3시간마다 시계 방향으로 자리를 옮기며 2개 함대씩 교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국군은 6시간 싸우고 3시간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거다. 탱크 베드 수면이나 식사를 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지.

  하지만 동맹군에는 휴식이 없다. 이미 전투 상태에 들어가 18시간이 지나고 있다…….

  두 배의 병력을 상대로 싸우는 거다. 육체적 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도 축적되어 가겠지.

 

  병력차를 살린 전투 방식이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작은 기술을 거는 것보다 정공법을 걸어오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잠시드 방면으로 후퇴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장병의 피로는 축적되어갈 뿐이다. 피로가 계속 축적되면 결전 시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실패했구만. 노골적으로 물러나면 제국군도 경계하리라 생각하고 다소 전투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바로 후퇴하는 편이 좋았다. 칼센 제독도 익숙하지 않은 후퇴전에 고생하고 있겠지. 무라이 참모장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후퇴에 집중하도록 하자. 이 이상 질질 지연전투를 벌이는 건 위험하다. 손해만 늘고 제국군의 의도에 말려들 뿐이겠지.

  이 상황에서 철수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제국군에게 뒤를 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출혈로 사망하는 것보단 낫다.

  "철수한다. 무라이 참모장, 칼센 제독과 통신을 연결해줘."

  "예."

 

 

 

제국력 490년 4월 7일 제국군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동맹군이 철수합니다."

  발레리가 "반란군"이라고 말하지 않고 "동맹군"이라고 말했다. 하기야 아무도 그걸 책망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책망하지 않는데다 때때로 나도 동맹군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다들 책망하기 어렵겠지.

  발레리는 괜찮은 걸까. 동맹군과 싸우는 거다. 부담이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너무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도록 할 생각이니까.

 

  "진격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그들의 뒤를 쫓도록 하죠."

  발트하임은 조금 불만스러워 보인다. 전과를 확대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다.

  "슬슬 페잔 방면에서 반란군의 주력함대가 돌아올 것입니다. 눈앞의 함대와 전투 중에 나타나면 성가신 일이 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가도록 하죠."

  발트하임도 납득한 거겠지. 끄덕이고 오퍼레이터들에게 지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양과 칼센이 지연작전이 아니라 철수를 시작했다. 손해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거겠지. 결전 전에 필요 이상으로 손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렇겠지. 나를 쓰러뜨린 뒤에 메르카츠와도 싸워야 한다. 가능하면 손해는 적은 편이 좋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잠시드에 접근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번엔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오게 되겠지. 뷰코크가 오기 전에 도망쳐버리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는 놈들을 하이네센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후퇴 작전을 해야만 한다.

  이거 라이헨바흐 작전이구만. 차이점이 있다면 본래는 프랑스군의 격파가 목적이었지만, 이쪽은 후퇴가 목적이라는 거겠지. 편하게 승리하는 게 최고다.

 

  적의 주력군을 격파하지 않아도 적의 본거지를 점령하면 전쟁은 끝난다. 원작에서 라인하르트가 양에게 당할 뻔했던 건 그 부분을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이기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양보다도 자신이 위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는 마음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본래 양보다도 자신이 위라는 생각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결전에는 흥미가 없다. 약하다, 열등하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한 다툼 없이 끝난다. 뭔가 자기합리화 같아서 싫어지기도 하지만.

 

 

 

우주력 799년 4월 7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제국군은 추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라이 참모장의 목소리엔 안도의 기색이 있었다. 다른 이들도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실패했나. 이래서야 잠시드 전투에 유인할 수 있을지 확정할 수 없다. 조금 더 붙어 오리라 생각했지만. 손해를 각오하고 지연작전을 펼치면서 제국군을 잠시드로 끌어들어야 했었나…….

 

  아무도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최선책은 잠시드 성역에서 제국군과 전투하는 중에 뷰코크 사령장관이 이끄는 동맹군이 전장에 도착 배후, 혹은 측면에서 제국군을 공격하는 거다. 제국군에 큰 손해를 입힐 수가 있겠지. 단시간에 괴멸에 가까운 상황까지 몰아 넣을 수 있을 거다.

 

  그 뒤에 태세를 정비하여 페잔 방면에서 오는 제국군을 기다린다. 혹은 하이네센으로 급행하여 제국군과 싸운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패퇴했다고 알려지면 제국군에도 동요가 생기겠지. 병력 면에서는 다소 열세지만 격퇴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잠시드 성역에서 전투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발렌슈타인 원수는 후퇴할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 없이 후퇴하겠지. 다시 말해 전선은 서로 노려보는 채로 교착 상태에 빠진다는 거다.

  이걸로는 각개격파는 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하이네센은 제국군의 별동대 손에 공략된다. 우리들은 무의미하게 잠시드 성역을 떠돌고 있었단 게 된다.

 

  잠시드에서의 결전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차라리 바라트 성역까지 물러날까? 제국군은 반드시 바라트 성역으로 올 것이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합류하여 제국군을 기다린다. 그렇게 되면 제국군의 확실한 보충과 전력의 집중을 꾀할 수 있다.

  ……안 되겠군. 그 시점에서 제국군도 합류하고 있을 거다. 이쪽의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진 제국군을 상대하게 된다.

 

  오합지졸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제국군은 정예다. 오히려 훈련도로 다지면 동맹군이 뒤처진다. 숫자에서 밀리고 훈련도에 뒤떨어지면 도저히 승산이 없다.

  역시 각개격파를 노려야만 한다. 잠시드까지 물러나, 전투에 끌어들인다. 어렵지만 해야만 한다…….

 

 

---

 

ps.

  오랜만입니다.

  끝내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참고로 이 소설은 294화(2016년 6월 18일)로 사실상 연중되었습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6월 8일. 오딘,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리히텐라데 후작 저택을 방문하니 응접실로 안내 받았다. 딱히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리히텐라데 후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휴일일 텐데 평소 궁중에서 보던 대로 정장을 하고 있다. 이대로 궁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국무상서인 이상 휴일에 불리는 일이 꽤나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에서도 편안한 복장을 입지 않는다는 건가. 높아지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군.

 

  “쉬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아니, 상관없네. 궁중에선 말할 수 없는 내용이니.”

  시녀가 마실 것을 가져왔다. 홍차가 둘. 전에 궁중에서도 홍차를 받았었지. 이 노인, 홍차를 좋아하는 건가…….

 

  “국무상서 각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든 하고 싶다고 생각하네. 제국 국정은 결코 좋지만은 않아. 어떠한 개혁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미를 흐렸다.

 

  저번에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국내 개혁에 대해 상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듣고 싶지 않다곤 하지 않았다. 이 노인은 귀족들의 오만방자함을 완전히 납득하고 있진 않다. 오히려 어떤 족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어떤 족쇄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노인이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혼란이다.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개혁에 의해 국내가 혼란에 빠지는 건 곤란하다. 그런 거군요.”

  “그래. 평민들 사이에선 꽤나 불만이 쌓인 것 같더군. 그걸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하겠지. 하지만 그에 의해 국내에서 혼란이 일어나면 곤란하다. 어렵구먼.”

  “과연.”

 

  꽤나 속편한 소리이긴 하다. 하지만 국정 책임자로선 국내 혼란은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겠지. 전쟁에서 유리한 상황인 이상, 그걸 수포로 돌릴 수도 있는 혼란은 곤란하다. 그렇게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 리히터나 브라케와 이야기할 때엔 그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단적인 말을 하자면 귀족 따위 절반 정도 없애버려도 좋으리라 생각할 때도 있네. 저렇게나 멋대로 구는 녀석들이니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쟁터에 데려가서 총알받이 대신 써주겠다고 생각할 정돕니다.”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순간 깜짝 놀라고 바로 소리 내며 웃었다. 그리고 “자네도 너무하는군.”이라고 날 평했다.

 

  제국 국내 치안정세는 무척 나쁘다. 경제, 재정은 엉망진창이다. 제국과 동맹 인구를 비교하자면 제국은 2백 5십억, 동맹은 1백 30억 정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과 동맹의 국력 비율은, 어느 경제학자에 의하면 48대 40이다. 인구가 2배 가까이 차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국력 비율은 거의 같다. 얼마나 제국이 비효율적인 국가운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잘도 동맹 상대로 150년이나 전쟁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제국이 유리하게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 그 자체에 대해 평민들에선 큰 불만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동맹 상대로 패배가 계속되면 혁명이 일어나겠지. 나 따윈 제일 먼저 길로틴에 뎅겅이다. 평민이면서 제국 최대의 권력가에 양자로 들어간 거니까. 평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 제 1호라고 해도 좋다. 살아남기 위해서도 개혁은 피할 수 없다.

 

  “헌데, 군부는 어떤가?”

  “지금 우주함대를 재편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함대가 외정이 가능하기 까진 앞으로 2개월 정도 걸리겠죠. 그때까진 뮈젤 대장의 함대만 믿어야 합니다.”

  “흠. 앞으로 2개월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곰곰이 생각에 빠진다. 이야기를 돌린 것이 아니다. 군부의 사령관들은 평민, 하급귀족 출신이다. 당연하게도 개혁에 찬성하겠지. 2개월 후엔 귀족들이 소란을 벌여도 여차 하면 힘으로 누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평민들의 불만을 삭히기 위해선 역시 세금과 재판을 어떻게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발과 발전은 그 다음 단계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세금과 재판, 어느 쪽도 귀족들은 싫어할게다.”

  노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세금입니다. 귀족들에게 세금을 걷으라곤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걷지 말라고는 할 수 없습니까?”

  “세금을 걷지 말라?”

  리히텐라데 후작이 묘한 표정을 한다. 무슨 말인지 어려운가.

 

  “네. 상한을 정하면 어떤지?”

  “으음.”

  “간접세에 의한 수입도 증가하리라 생각합니다만.”

  “……과연. 그런 건가.”

 

  귀족들은 영지를 가지고 그 안에서 징세권, 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제국 안에 지방왕국이 있는 셈이다. 귀족에게 부여된 징세권은 직접세뿐이지만, 세율은 딱히 정해져있지 않다. 그 때문에 심한 곳은 70퍼센트를 넘는 직접세를 받는 곳도 있다.

 

  70퍼센트라 해도 그걸 영내 개발을 위해서 쓴다면 좋다. 병원을 만든다, 우주항을 새로이 만들어 교역을 진흥한다 등등. 하지만 실제론 그들, 귀족의 유흥과 사설함대 유지비로 쓰고 만다. 제국 발전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녀석들을 총알받이로 쓰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겠지.

 

  제국 정부는 직할령에서 직접세, 더불어 제국 전토에서 간접세를 칭수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70퍼센트나 세금을 착취하면 물건을 살 여유가 있을까? 도저히는 아니지만 그런 여유는 없다. 소비는 계속 줄어들 뿐이다. 넓고 얕은 것이 간접세의 취지지만, 도저히 그 취지가 살아있다곤 생각할 수 없다. 결국 믿을 것은 술, 담배, 소금 따위를 정부 전매로 하여 부족분을 충분하고 있다.

 

  심한 꼴이다. 귀족이 영주민을 위해서 돈을 쓰지 않는 이상, 영주민의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는다. 농업, 공업에 있어 생산성은 계속 떨어질 뿐이다. 우주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중세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바보 같은 광경이 발생한다. 그리고 제국 정부는 전쟁을 위해서 직할령 개발 따위 다음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제국 전토에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동맹 인구가 제국의 약 절반임에도 불구하고 국력 비율은 동등하단 상황이 여기서 발생한다. 악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귀족에 대해 직접세 상한을 정하면 영주민들도 소비를 할 만한 여력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간접세에 의한 세금 징수도 늘어나겠지. 그리고 직할령에 대한 직접세 비율도 낮출 수 있다. 세금이 가벼워지면 그것만으로도 정부에 대한 불만은 줄어드리라 생각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대공에겐 말했는가? 리텐하임 후작에겐?”

  “이야기 했습니다. 대략 합의를 받았습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대공과 리텐하임 후작도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현실 문제로서 어떠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최종적으론 내 생각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

 

  “재무상서에게 이야기해볼까…….”

  “카스트로프 공작입니까.”

  “음.”

  “찬성할까요?”

  오이겐 폰 카스트로프 공작. 악명 높은 재무상서다. 내 양친을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궁중에서도 제대로 인사조차 한 적 없다. 나부터 피하고 있다. 하기야 그 사내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 따위 본 적 없지만…….

 

  “하지 않겠지. 상한을 정하다니 귀족들의 반발을 살 것이 당연하니. 할 리가 없어.”

  “…….”

  영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엷은 웃음을 보니 멀쩡한 생각은 아니겠지. 오한이 인다.

 

  “슬슬 때가 온 것 같군.”

  “…….”

  “카스트로프 공작을 처리하여 평민들의 불만을 잠재운다. 그리고 개혁에 반대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그렇게 귀족들에게 선전포고하는 거지. 힘을 과시하지 않으면 개혁 따위 잘 될 리가 없으니…….”

  그렇군. 슬슬 그동안의 수고를 수확할 때인가……. 확실히 개혁엔 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선 때가 왔다는 건 틀림없다. 그렇다 해도 생각 참 사악하다.

 

  “그렇다면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이야기하는 건 좀 더 나중입니까?”

  “그렇겠지. 앞으로 두 달인가.”

  “네.”

  “기대되는구먼. 저 자의 얼굴을 보는 것도 슬슬 질렸으니.”

  그렇게 말하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소리 내여 웃었다…….

 

...

 

우주력 796년 6월 10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어떤가? 작전 준비는.”

  “순조. 그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에게서도 그렇게 들었네. 문제는 없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겠지.”

  만족스럽게 시틀레 원수가 끄덕이고 있다. 양팔을 책상에 대고 손을 깍지낀 다음 그 위에 턱을 올린다. 특기 포즈다.

 

  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리고 나의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하이네센을 떠나는 건 15일이었지?”

  “예.”

  “이제르론에 도착하는 건 7월 10일 전후, 15일엔 공략 여부가 확실해지겠군.”

  “네.”

 

  원수가 쿡하고 웃었다.

  “불안한가? 자네가 제안한 작전이네만.”

  “솔직히 불안은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제르론 방면군이 편성되기 전에 실시해야할 작전이었습니다. 시기를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시틀레 원수가 끄덕였다.

 

  “확실히 방면군이 편성되기 전에 했다면 성공률이 높았겠지. 하지만 지금도 성공률은 결코 낮지 않네. 난 그렇게 생각하네만.”

  “……그렇지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단…….”

  시틀레 원수가 이번엔 소리 내며 웃었다. 나는 웃을 수 없다. 반대로 한숨이 나왔다.

 

  “대체 뭐가 불안인가?”

  “일단은, 동원하는 함대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5, 제 10, 제 12, 3개 함대입니다. 이 작전은 동원을 얼마나 숨길 수 있는가, 적의 의표를 찌를 수 있는가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가능하면 페잔에겐 알리고 싶지 않다. 제국에 통보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거로군?”

 

  시틀레 원수의 질문에 끄덕였다. 그렇다. 처음엔 1개 함대의 작전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상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어지지 않았다……. 이제르론 요새로 1개 함대로 향한다. 그 것 자체가 위험하다며 받아들어지지 않았다.

 

  “주류함대를 끌어들이고 그 틈을 타 공략한다. 그것이 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쪽 동원병력이 불투명한 편이 좋죠. 하지만…….”

  “이제르론 방면군이 생긴 이상, 제국군은 함대를 쉽게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네.”

  시틀레 원수가 끄덕였다. 이제 웃지 않는다.

 

  “그 경우엔 이제르론 요새 내부에 사람을 들어보내, 요새주포 토르 해머를 제압한다. 토르 해머가 없으면 이제르론 요새 공략은 어렵지 않아. 요새를 밖에서 강습하여 그 시점에서 출격할 주류함대를 배제한다……. 그렇다면 함대 병력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내겐 이상한 생각이 아니라고 보이네만…….”

 

  “네. 그렇지요. ……생각이 지나친 걸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강습이 전제가 되어 있는 작전이다. 아니,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작전이다. 한 수 뒤쳐져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선수를 뺏겼던 경험이 몇 번이나 다시 생각난다. 역시 이제르론 방면군이 성가시다. 작전 실시 시기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

 

제국력 487년 7월 12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오늘도 더워질 것 같다. 7월이 되어 오딘은 나날이 더워지고 있다. 에리히님은 더운 것이 싫은 것 같다. 이 시기만은 함선에 타고 있는 편이 지내기 편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드물게도 정원에 나가셨다. 산보는 아닌 것 같다. 아까부터 통풍 좋은 나무그늘에 아래에 서있다. 내게 보이는 건 등 뿐…….

 

  “에리히님.”

  마음잡고 말을 걸어보니 에리히님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날 보고 싱긋 웃음을 띠웠다. 방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에리히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내 질문에 에리히님이 하늘을 올려봤다.

  “우주 저편에 대해서.”

  “우주 저편? 반란군에 대해서 말인가요?”

 

  에리히님이 끄덕였다. 전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또 전장에 나가시는 건가요?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니 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가능하면 전쟁터로 보내고 싶지 않다.

 

  “반란군이라니, 어떤 사람들인가요?”

  내 질문에 에리히님이 쿡하고 웃었다.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울거나 웃거나, 화내거나 슬퍼하거나…….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죠. 피츠시몬즈 중령을 보면 알겠죠? 그녀는 저쪽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니…….”

  중령에 대해선 알고 있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반란군에 있을 수 없어서 제국으로 온 게 아닐까?

 

  “하지만 나쁜 사람들이라고 들었어요. 루돌프 대제를 반역한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들었는데요.”

  에리히님은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하면서 내게 말한다.

  “……그들은 루돌프 대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대제는 그걸 용서할 수 없었죠. 그리고 그들도 대제의 생각을 용서할 수 없었고…….”

 

  “나쁜 사람들은 아닌가요?”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범죄자들이라면. 그들은 제국을 탈출하여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제국과 150년이나 싸우고 있어요. 그들의 나라엔 1백 30억 명이나 살고 있어요. 그만한 나라를 만들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나쁘다기 보단 유능하고 위험한 사람들일까요?”

 

  “칭찬하는 듯이 들리는데요.”

  내 말에 에리히님이 소리 내어 웃었다.

  “칭찬하는 말로 들렸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곤란한 겁니다. 간단하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던 참입니다.”

  “…….”

 

  에리히님은 웃음을 멈추고 날 봤다.

  “지금 제국은 문제를 품고 있습니다.”

  “문제를?”

  “네. 반란군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문제를 품고 있어요. 방치해두면 말도 안 되게 커지겠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걸 눈치 채려고 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해야겠죠…….”

  그렇게 말하고 에리히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동안 둘이서 잠자코 서 있었다. 에리히님은 뭔가를 생각하고 난 에리히님을 보고 있다. 문제라니 뭘까? 나중에 페르너 대령에게 물어보자. 대령은 에리히님과 친하니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슬슬 저택으로 돌아갈까요?”

  그렇게 말하고 에리히님은 내 손을 쥐고 걷기 시작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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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5월 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아무래도 자리가 불편하다.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은 몸치장을 한 귀부인과 귀족, 군인으로 넘치고 있다. 화려함에 숨이 막힌다. 그리고 그들이 때때로 날 보는 걸 알 수 있었다. 호의적인 시선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건지 알고 있다. 솔직히 성가셨다.

 

  그 성가심을 뿌리치듯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 저택에서 제공된 와인이다. 상등품이겠지만, 맛을 느낄 수 없다.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있자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온화한 표정의 남자가 날 보고 있다.

 

  “왜 그러나? 한숨이나 내쉬고.”

  “아아, 경인가. 루츠. 아니,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으니까 긴장하게 되는군.”

  “호오. 경이 긴장이라니. 희안한 일도 있구만.”

  “놀리지 말라고, 루츠.”

  내가 노려보자 코르네리아스 루츠가 소리 내며 웃었다.

 

  “모두 경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런가.”

  “와라. 이런 곳에서 있어도 재미없을 뿐이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팔을 잡으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코르네리아스 루츠, 사관학교 동기생이다. 외유내강.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남자다. 다들 참모보다도 지휘관에 어울리는 사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은 정규함대 사령관이 되었다. 있을 곳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스쳐가며 루츠의 뒤를 쫓아가니 일단의 군인 집단이 있었다. 우리들을 발견한 거겠지. 이쪽을 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날 보고 있는 거겠지.

  “파렌하이트 제독을 데려왔다고.”

  루츠의 말에 다들 이름을 말했다.

 

  메크링거, 클레멘츠, 바렌, 비텐펠트, 슘무데, 루크너, 린텔렌, 루디게, 아이제나흐……. 아이제나흐는 싱글벙글하고 있을 뿐이고 스스로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말해준 건 루츠였다. 그 외에 켐프, 렌넨캄프…….

 

  총참모장에 취임한 메크링거를 빼면 이번에 새로이 우주함대의 정규함대 사령관에 임명된 자들이다. 그리고 나도 이번, 정규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게 되었다. 이후엔 이 자들과 일을 하게 되겠지.

 

  “아무래도 불편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거 아닌가?”

  루츠가 날 보며 웃고 있다. 그렇게나 감정이 겉으로 보이고 있었나…….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뭐, 그렇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이라니, 처음이니까 말이야. 여기보다도 신무우궁이 훨씬 익숙하다.”

 

  내 말에 모두가 소리 내며 웃었다.

  “확실히 거기에 관해선 동감이다. 아마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공작은 이런 식의 파티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총차모장인 메크링거 중장이다. 더욱 웃음소리가 커졌다. 클레멘츠 제독이 “경은 심한 말을 하는군.”이라며 웃으면서 책망하고 있다.

 

  오늘, 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서 공작이 원수로 승진하여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한 것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고 있다. 궁중, 군부의 중진이 여는 파티다. 당연하게도 참가자가 많다. 정규함대 사령관으로 새로이 임명된 우리들도 출석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입으로 옮기는 와인은 쓰디쓴 채다.

 

  “그렇다해도, 이런 일은 처음이겠지?”

  내가 질문하자 다들 웃음을 거두고 끄덕였다. 서로 돌아보고 있다. 이번 새로이 함대사령관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모두 하급귀족, 평민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다들 우리들을 경원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망설이고 있는가?”

  두터운 목소리로 켐프 제독이 말을 걸었다. 내가 끄덕이자 그대로 말을 계속했다.

  “파렌하이트 제독의 마음은 알겠네. 나도 렌넨캄프 제독도 경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중장으로 승진하여 함대사령관이 되었으니 말이야. 기쁨보다도 망설임이 크지. 정말로 괜찮은 건가. 하고 말이야.”

 

  그런 거다. 무훈도 올리지 않았는데 중장으로 승진하여 우주함대의 정규함대 사령관이 되었다. 그 때문에 주변 시선도 필요 이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경만이 아니야. 우리들은 모두 많든 적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괜찮은가. 하고 말이지.”

  “총참모장은 그렇게 말씀하셔도…….”

 

  “귀족들 중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정규함대 사령관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한 자도 있다고 하더군. 최근 승전이 계속되고 있으니. 전쟁이란 간단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공작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지. 총알받이로는 쓸 수 있지만 지휘관으로선 쓸 수 없다고 말이지. 하기야 본인들에겐 말하지 않았다고 하네만…….”

  총참모장의 말에 다들 쓴웃음을 띄웠다. 총알받이라니 또 그런 심한…….

 

  “신경 쓰인다면 직접 공작에게 말해보게나.”

  총참모장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였다. 총참모장의 시선을 쫓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웃음을 띄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다. 뮈젤 대장도 함께다.

 

  “어떻습니까. 즐기고 있습니까?”

  온화한 어조로 공작이 말을 걸었다. 곁에 있는 뮈젤 대장과 비교하니 정말 정반대다. 흑색과 금색,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뮈젤 제독은 군인다움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공작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두 사람, 사이가 좋다고 들었지만 사실이냐고 묻고 싶어진다.

 

  다들 입을 모아 즐기고 있다고 하자 공작은 쿡하고 웃었다.

  “사실은 이런 곳보다도 제아들러쪽이 좋지만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시선이 오갔다. 다들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실제론 공작의 말대로라곤 해도 “이런 곳”이라고 들어버리면 대답이 곤란하겠지. 공작만이 싱글벙글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기분은 있습니다만.”

  비텐펠트 제독이 답하자 공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몇 사람이 곤란하단 듯이 쓴웃음을 짓고 있다. 공작과 비텐펠트, 두 사람 모두 곤란할 따름이다. 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는 상사와 그 질문에 답하고 마는 부하. 주변을 곤란하게 만든다…….

 

  “어떻습니까. 진정하기 어렵습니까. 켐프 제독, 렌넨캄프 제독, 파렌하이트 제독.”

  “……뭐,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렌넨캄프 제독이 뒤를 이었다.

  “저희들 세 사람은 무훈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선발된 일에 곤란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천한 평민과 빈곤한 귀족이 무훈도 올리지 않았는데 승진하여 함대사령관이 됐다. 입니까?”

  공작의 말에 얼굴이 굳는다. 나 혼자가 아니다. 다들 표정이 굳었다. 그 말대로다. 생각도 못한 비방은 아니지만 부정할 수 없다. 그걸 공작이 입에 담았다.

 

  “제가 경들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전쟁터에서 안심하고 일군을 맡길 수 있는 지휘관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안심하고? 안심하고라는 건 뭘까? 능력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신뢰할 수 있다는 건가?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전 평민으로서 태어나 공작이 되었습니다. 작위 따위라는 것이 전쟁터에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건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걸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은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잖습니까?”

  확실히 그렇다. 전쟁터에서 작위 따위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바보 같은 지휘관을 기용했다간 병사들에게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입니다. 전쟁터에서 무의미하게 병사가 죽어가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될 겁니다. 저는 그런 불합리한 일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경들을 고른 겁니다.”

  공작이 엄한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있다. 아까 전까지 온화함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짜부라질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경들은 지휘관으로서 본분을 다할 것만을 생각하세요. 할 수 있을 겁니다.”

  “본분, 말입니까.”

  내 질문에 공작이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기는 것과 부하를 한 사람이라도 많이 데리고 돌아오는 것.”

  “…….”

 

  “지휘관은 그 이외의 것에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병사의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공작은 표정을 풀고 “오늘은 마음대로 즐겨주세요.”라고 말을 남기고 곁에서 떨어졌다. 뮈젤 대장이 뒤따른다.

 

  “꽤나 엄격한 말씀을 하시는군.”

  켐프 제독이 중얼거리자 메크링거 총참모장이 답했다.

  “답답하셨던 거겠지.”

  “답답하다?”

  켐프 제독의 말에 메크링거 총참모장이 끄덕였다.

 

  “공작은 평민이면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양자가 되었지. 제국 최고 귀족의 당주가 된 것이다. 역풍이 우리들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겠지. 그렇지 않은가?”

  “과연. 확실히 그렇군.”

 

  다들 끄덕이고 있다. 평민이나 빈곤귀족이 정규함대 사령관이 된 것만으로 이런 소란이다. 총참모장의 말대로다. 공작이 되었을 때엔 얼마나 소란이었을지……. 이 정도의 하찮은 일로 고민하고 있는 건가. 공작의 입장에선 답답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들이 선택 됐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된 이상, 응할 수밖에 없지.”

  총참모장과 켐프 제독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을 다들 보고 있다.

 

  “그럼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망설이지 않고 지휘관으로서 본분을 다할 것, 이겠지.”

  “망설이지 않고 인가……. 그럼 우리들은 앞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다.”

  메크링거 총참모장이 다른 주변을 둘러봤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

 

제국력 487년 5월 3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꽤나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만. 괜찮은 겁니까?”

  라인하르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목례하고 있다. 거기에 답하면서 라인하르트에게 답했다.

  “저는 비난이 있을 것을 알고서 그들을 고른 겁니다. 그들도 각오를 해주지 않으면…….”

 

  라인하르트가 끄덕였다.

  “의미가 없습니까.”

  “예.”

  “……엄격하군요. 공작은. 옛날, 밴플리트에서 분노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밴플리트인가……. 개인의 무훈을 우선하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었지. 그리운 일이다. 내가 “그런 일도 있었지요.”라고 말하자 라인하르트가 끄덕였다. 둘이서 가볍게 웃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들을 돌아봤다. 일일이 성가신 일이다.

 

  “페잔을 신용할 수 없는 이상, 반란군의 병력을 확정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되면 색적활동을 늘려야 할 필요가 발생합니다. 조우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그렇군요. 함대사령관의 판단력을 묻게 될 것이다. 공작이 하신 말씀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뮈젤 제독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라인하르트가 가볍게 웃음을 띄웠다. 묘한 느낌이다. 라인하르트에게 격려를 받다니.

 

  “로이엔탈들에 대한 건, 괜찮으십니까?”

  “네. 그들의 말도 지당하니까요. 뮈젤 제독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은혜를 갚아야죠.”

  “……알겠습니다. 그때가 기대되는군요.”

  라인하르트가 웃음을 띄며 끄덕였다.

 

  “보내고 싶지 않아질지도 모르겠군요. 뭐라해도 그들은 유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라인하르트가 웃는다. 나도 소리를 맞춰 웃었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뮐러 세 사람도 함대사령관으로 하고자 생각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거절했다.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는 한 번도 라인하르트와 함께 싸우지 않은 채로 떨어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코르프트 대위의 건에서 라인하르트의 도움을 받았다. 또 코르프트 자작 건에서도 안네로제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었다. 그 빚은 전장에서 갚고 싶다. 그렇게 말했다.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좋겠지. 미터마이어 같은 사내에겐 마음에 걸리는 것을 남기지 않는 편이 좋다. 뮐러도 자신만 승진하여 이동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렇겠지. 그는 그런 녀석이다. 하지만 덕분에 탑클래스의 세 사람이 라인하르트의 밑에 있는 채다.

 

  뭐,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군부는 조금씩이긴 하지만 바라는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론 내정이로군. 국내를 안정하게 만든다……. 우선 귀족의 횡포를 막고 평민의 불만을 해소한다. 그리고 재정상태를 개선하여 장기출병에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만든다. 개혁파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생기겠군. 슬슬 브라케와 리히터를 부를까…….

 

...

 

우주력 796년 5월 5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통합작전본부의 본부장실로 들어가자 본부장 외에 카젤느 선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소파에 마주앉아 있다.

  “수고했네. 양 준장. 카젤느 옆에 앉게나.”

  “네.”

  이야기 내용은 상상할 수 있었다. 마음이 무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카젤느 선배 옆에 앉았다.

 

  “제국군의 방위 체제가 변경됐네. 이야기는 들었는가?”

  “5월 1일에 사령에 대해선 우주함대 사령부에도 정보가 돌았었습니다.”

  시트레 본부장의 질문에 답하자 카젤느 선배가 내게 A4용지의 보고서를 건냈다. 보고서를 받아 둘러봤다. 생각대로 신체제 내용이다. 내가 본 것보다 다소 자세하다. 페잔 경유로 새로이 정보가 들어왔나. 혹은 정보부가 조사했는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당황하며 참았다.

 

  “이제르론 방면군인가. 어떻게 생각하나?”

  “그다지 좋지 않군요.”

  “좋지 않은가.”

  “예.”

  내가 답하자 시트레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이제르론은 요새 사령관과 주류함대 사령관 사이가 나쁜 걸로 유명했지. 제국에서도 몇 번인가 지휘계통을 통일화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네만…….”

  “실현화됐다. 그런 거군요.”

  “그런 거지.”

  본부장과 카젤느 선배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 실제 문제로서 어느 정도 영향이 있으리라 생각하나?”

  “지금까지는 요새와 함대가 각자 동맹군과 싸우자는 요소가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은 최소한의 것이었겠죠. 저희들이 파고들 틈도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개편에 의해 지휘계통이 통일됐습니다. 이제르론 요새와 주류함대 연계는 이전에 비해서 꽤나 좋아졌을 겁니다. 이후, 대군을 이끌고 요새를 공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제르론 요새는 공략불가능, 그런 건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였다.

  “가령 제국 모르게 요새를 포위하는데 성공한다고 친다면, 이쪽의 병력은 3개 함대, 약 5만 척일 겁니다. 하지만 40일 후엔 제국군에게서 원군이 도착합니다. 저희들은 40일 이내에 서로 협력하는 함대를 배제하고 요새를 함락해야만 합니다…….”

 

  “실제론 제국군의 증원은 좀 더 빨리 오겠지. 불가능에 가깝군……. 이제르론 요새는 진실로 난공불락이 되었다……. 양 준장. 우주함대 사령부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

  “우주함대 사령부에서도 공략은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기간에서 공략하기 위해선 대군을 운용하여 요새를 함락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더욱 손해를 입을 뿐인가…….”

  카젤느 선배의 말대로다. 그리고 현 상황에선 동맹군에게 그런 손해를 허락할 여유는 없다. 패전이 계속되어 군의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싸울 수 있는 함대가 적어지고 있다. 함대에 숫자는 채울 수 있어도 신병이나 경험이 부족한 병사가 차지하는 부분이 커지고 있다…….

 

  “머리 아픈 일이군.”

  시트레 원수가 괴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최근, 동맹군은 제국군 앞에서 패배를 더하고 있다. 그 건으로 정부, 시민의 군부에 대한 비난은 심해질 뿐이다. 저번 싸움에서 동맹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해 두 배 이상의 병력을 준비했다. 공작을 두려워했다기 보다는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상의 패배는 군부에 대한 신뢰의 실추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고 말았다…….

 

  그 이후 정부내부에서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군부에 타진하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소리 높여서가 아니다. 비밀리에다. 군 상층부에서도 그걸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면 제국군의 공세를 억누를 수 있다. 군부의 재편에도 여유가 생기겠지. 지금이라면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에 의해 그 가능성도 극히 줄어들었다.

  “이번 조직 개편, 진행한 것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라 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군. 페잔의 보고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네. 어려운 상대다. 이쪽의 수를 미연에 막고 있어…….”

 

  시트레 원수의 말대로다. 어렵고 성가시다고 할 수 있다. 전임자였던 뮈켄베르거 원수는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숨이 막힌다. 목을 조금씩 졸리며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무서움이 있다.

 

  이제르론 요새 공략인가……. 가능하다면 최선의 선택이겠지. 하지만 대군을 움직여도 공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양, 왜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 카젤느 선배와 시트레 원수가 날 보고 있었다.

 

  ……말해볼까? 시험해 보고 싶은 작전이 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 우주함대 사령부에 상담해봐야겠지. 쿠브르슬리 사령장관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우주함대 사령부 안에서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만만찮음은 다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일단 그쪽에 검토하고 나서다. 시트레 원수에게 말하면 그게 결정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사령장관을 제쳐놓고 작전본부장에게 직접 호소하게 된다. 그건 피해야만 한다. 일단 우주함대 사령부에 상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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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4월 25일. 오딘, 군무성 상서실.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어제, 군무성 상서실로 4월 25일 아침 10시까지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 정도 전부터 새로운 인사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내 이름이 새로운 인사에 올라갔다는 것도 말이다. 아마 그에 대한 설명일 것이란 건 간단하게 상상할 수 있다. 정시 5분 전에 상서실로 가자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여 별실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메르카츠 대장. 경도 불렸는가.”

  “음. 여기에 10시까지 오라고 들었다. 아무래도 경도 마찬가지인가보군. 그라이프스 대장.”

  “음. 같은 것 같다.”

 

  역시 있었나……. 그의 이름도 소문으로 들었다. 여기에 있을 것이란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특별히 친하지도 않다. 다소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서 이번 일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르론 방면군인가.”

  내가 이야기를 돌리자 그라이프스는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제르론 요새 방위 지휘를 통일하는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검토되었지만, 실현되는 일은 없었지. 그게 실현될 줄이야…….”

 

  “생뚱맞아 믿을 수 없다. 그런 기분이군.”

  “대충 그런 거지.”

  그렇게 말하고 그라이프스가 큭하고 웃었다. 이쪽도 거기에 이끌린 듯이 마찬가지로 웃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열심히 추진했다고 들었네만. 경, 이전에 공작과 함께 일했던 적이 있다고 들었네만.”

  “483년 말에서 84년 초까지였다. 제 359유격부대였지.”

  “아레스하임 성역 회전이로군.”

  “음.”

 

  거기서 벌써 3년인가……. 유능하지만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 젊은이라고 생각했다. 그 젊은이가 지금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다. 요 3년은 내게 있어서 별 볼일 없는 3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일을 생각하면 눈 깜짝한 사이에 지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부하를 가지고 있었군. 경은.”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군.”

  웃으면서 그라이프스가 말했다. 확실히 어처구니없는 부하였다. 나도 그에 맞춰 웃었다.

 

  의외로 마음이 맞는 사내다. 이제르론에선 잘 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자 군무상서의 부관이 우리들 두 사람을 부르기 위해 왔다. 부관은 웃고 있는 우리들을 보고 희미하게 눈썹을 올렸다. 어이없어 하는 걸지도 모른다. 확실히 여기서 웃고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 시간은 10시 5분. 우리들은 10분 정도 여기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부관을 따라가자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에렌베르크 군무상서만이 아니었다.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 브라운슈바이크 우주함대 사령장관. 다시 말해 제국군 3장관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싫어도 몸이 경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대장입니다. 출두했습니다.”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대장입니다. 마찬가지로 출두했습니다.”

  우리들의 말에 군무상서가 끄덕였다.

 

  “음. 수고했네. 이번 여기에 오도록 한 것은 다른 일이 아닐세. 이번 이제르론 방면의 방위체제를 변경하게 되었지. 새로이 이제르론 방면군을 편성하여 이제르론 요새, 주류함대를 통일된 지휘하에 두도록 할 것일세.”

  “예.”

  소문대로였다. 그렇다면 방면군 사령관은 그라이프스, 부사령관은 나인가.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관은 그라이프스 대장, 부사령관은 메르카츠 대장. 그라이프스 대장은 요새사령관을, 메르카츠 대장은 주류함대 사령관을 겸임하도록 하게.”

  “예.”

 

  확실히 좋은 수다. 지금까지 통일안이 받아들어지지 않았던 것은 사령관직이 하나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에 통괄하는 직위를 둔다면 사령관직이 줄어드는 일도 없다……. 거기에 겸임하는 것으로 요새 사령관과 함대 사령관의 서열을 만드는 건가…….

 

  “방면군 사령부에는 참모장 외, 작전, 정보, 후방지원 담당 참모를 각각 2명씩 보낼 걸세.”

  의외의 말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라이프스를 돌아봤다. 그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방면군 참모는 요새 사령부, 주류함대 사령부가 겸임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이 놀라고 있다는 걸 눈치 챘겠지.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이 낮게 소리 내며 웃었다.

  “놀란 것 같군. 하지만 방면군 사령부를 요새 사령부, 주류함대 사령부가 겸임하면 그들의 불화가 방면군 사령부에까지 들어올 뿐이야. 그래서야 지휘 통일의 의미가 없어.”

 

  “요새 사령부와 주류함대 사령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동격의 사령부로서 존재한다. 이제르론 방면에 있어 방위방침은 방면군 사령부가 결정하며, 요새 사령부와 주류함대 사령부는 그 실행조직이라는 거다. 그거라면 요새 사령부와 주류함대 사령부의 불화가 이제르론 요새 방위에 영향을 주는 일은 꽤나 경감되겠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라이프스가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다. 그라이프스의 마음은 알겠다. 실제로 지휘를 잡는 우리들의 입장은 극히 미묘하다. 오히려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부는 사령관, 부사령관도 따로 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경들의 불안한 마음은 알겠네. 경들은 사령관직을 겸임하게 될 것일세. 아무래도 하기 힘든 부분이 있겠지. 하지만 경들의 뒤에는 우리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게나. 우리들은 언제라도 경들의 힘이 되어줄 걸세.”

  우리들의 불안을 씻으려는 듯 군무상서가 말했다. 갈책하는 것도 격려하는 것도 아니다. 부탁하는 듯한 어조였다.

 

  이런 말까지 듣고서 저항할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라이프스가 내게 시선을 향했다. 눈이 어떻게 할까 묻고 있다. 혹은 괜찮은가 묻는 것일까. 말없이 끄덕였다. 그라이프스도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희들 두 사람, 반드시 기대에 응하겠습니다. 결코 반란군 마음대로 두지 않겠습니다.”

  그라이프스의 대답에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이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제대로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고쳤다.

 

  “정식 사령은 5월 1일에 발령된다. 오늘, 여기에 전한 사항은 내시라 받아들어주게.”

  “알겠습니다.”

  군무상서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봤다. 공작이 끄덕이고 말을 시작했다.

 

  “제국은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있다.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침통하다고 해도 좋을 어조였다. 표정도 결코 밝지 않다. 이전엔 좀 더 온화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말 내용에 놀랐다. 위험한 상황? 대체 무슨 일인가…….

 

  “저번 싸움에서 페잔은 반란군의 정보를 제국에 통지하지 않았습니다. 명백히 고의라고 생각합니다. 페잔은 제국과 반란군의 세력관계가 제국측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라이프스를 봤다. 복잡한 표정이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 거겠지.

 

  “열세에 있는 반란군과 제국, 동맹의 세력균형을 바라는 페잔이 협력하여 제국에 대항한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메르카츠 제독. 저만이 아닙니다.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하는 조직개혁인 겁니다.”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이 엄한 표정으로 끄덕이고 있다.

 

  “오딘, 이제르론 요새 사이는 40일 정도 걸립니다. 페잔이 반란군의 군사행동을 제국에게 알리지 않으면 이제르론 요새는 단독으로 40일을 버텨야만 합니다. 지금처럼 내부분쟁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는 겁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대로다.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변했다. 페잔을 신용할 수 없는 이상 방심할 수 없어. 저 요새가 함락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공작, 그리고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이 위험성을 고했다. 확실히 생각했던 이상으로 상황이 엄하다.

 

  “경들의 힘이 되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요새 사령부, 주류함대 사령부 안에서 협력하는 것에 불복하는 인간이 있다면 이쪽에 말해주게. 바로 경질한다. 최전선에서 내부분쟁을 일으키는 바보는 제국군에 필요 없다.”

  에렌베르크 군무상서의 불쾌하단 듯한 어조에 그라이프스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지금까지 어느 사령관들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 같다…….

 

...

 

제국군 487년 4월 25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점심을 먹고 개인실로 돌아가자 오프레서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변함없는 악인상 때문에 소화가 나빠질 것 같다. 날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어조로 지금 바로 우주함대 사령부로 가라고 들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

 

  사령부로 가자 바로 사령장관실로 안내되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웃음을 띄며 마중했다. 이런 부분은 발렌슈타인이라 불렸던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고마운 일이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듣기를 원하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함께 응접실로 들어갔다.

 

  공작이 하얀 망토를 신경 쓰면서 자리에 앉는다. 옅은 청색의 띠를 두르고 있다. 이전에 두르고 있던 분홍색 띠는 황제가 귀엽다고 말해서 그만둔 것 같다. 뭐, 청색도 색이 옅으니까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다. 원래 외견에서 날카로움이 보이지 않는 사내다.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지.

 

  “헌데, 소관을 여기에 부른 이유는? 게다가 시급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내 질문에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르론 요새로 가줬으면 합니다. 장갑척탄병 제 21사단과 함께.”

  “이제르론 요새…….”

  다시 공작이 끄덕였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실례합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발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음료수를 가져온 것 같다. 공작에게 코코아를, 내게는 커피를 두고 방을 나갔다. 나와 공작은 그 사이에 말이 없다. ……이제르론 요새인가……, 무슨 일일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맛있군. 좋은 콩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유감스러운 것은 향이다. 공작이 코코아를 마시고 있기에 커피향을 좀처럼 알 수 없다. 아쉬운 일이다. 공작은 맛있게 코코아를 마시고 있다. 제국 굴지의 실력자로는 보이지 않는군……. 헌데, 이렇게 커피만 즐기고 있어서야 소용이 없다. 이야기를 계속할까…….

 

  “가는 건 상관 없습니다만 무슨 생각이신지 알려주셨으면 하군요.”

  이제르론 요새로 배치.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묘한 전장으로 보내져서 총알받이로 쓰이는 것이 아닌 거다. 능력, 신용, 그 어느 것이라도 부족하면 이제르론 요새 배치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공작은 내가 로젠리터와 불필요하게 얽히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최전선이라고 한다면 만날 가능성이 크다. 공작은 냉철하긴 해도 냉혹하진 않다. 가라고 한다면 뭔가 목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요새를 지키라는 것만은 아니겠지. 대체 내게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이번, 이제르론 방면군이 새로이 편성됩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소문으로 들은 거긴 합니다만.”

  “방면군 사령관은 그라이프스 대장, 부사령관은 메르카츠 대장이 취임합니다. 그리고 그라이프스 대장은 요새 사령관을, 메르카츠 대장은 주류함대 사령관을 겸임합니다…….”

  과연. 그라이프스 대장이라고 한다면 참모로서 직무가 길었다고 들었다. 한편 메르카츠 대장은 실전지휘관으로서 명성 높은 인물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아가 강한 인물이라는 소문은 드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이라면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하지만 곤란하게도, 방면군 사령부 밑에 이제르론 요새 사령부, 주류함대 사령부가 오게 됩니다만. 이 두 곳의 사이가 극히 좋지 않습니다.”

  공작이 쓴웃음을 흘리고 있다. 나도 거기에 이끌려 쓴웃음을 지었다. 최전선에서 동격의 사령부가 둘 존재한다.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쥘 것인가, 공적을 세울 것인가, 다투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둘의 사령부 사이가 나쁜 건 지금까지의 전통이며, 전설 같은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방면군 사령부의 명령을 경시, 혹은 무시할 위험성도 있군요.”

  “그렇지요. 그라이프스, 메르카츠 두 대장을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막아줬으면 하는 겁니다.”

  “…….”

  아까 전까지의 쓴웃음은 이제 없다. 공작은 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은 방면군 사령부의 직속부대가 됩니다. 요새 사령부, 주류함대 사령부의 참모들, 혹은 그 장병이 바보 같은 짓을 했을 경우엔…….”

  “저희들이 그 버릇을 고쳐주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엄격하게. 두 번 다시 착각하지 말도록.”

  “과연.”

 

  간단히 말해서 경비견, 혹은 보디가드인가……. 아니, 감시라는 측면도 있겠지. 독자적인 군사력을 가지지 않은 방면군 사령부에게 있어서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은 유일한 무기가 된다. 항상 두 사령부에 압력을 가하여 “협력을 잊지 마라.”고 경고를 계속하라는 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에 잇듯이 공작도 코코아를 머금었다.

 

  “그것, 뿐입니까?”

  “……아시겠습니까?”

  “가볍게 보시지 말았으면 합니다만.”

  반쯤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기뻐하며 될 수 있는 대로 평범한 목소리로 말했다. 쓴웃음을 띄운 공작에게 어쩐지 모를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것뿐이라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일부러 나를 여기에 부를 필요도 없다…….

 

  “자유행성동맹군은 구석에 몰린 상황입니다.”

  “그렇지요.”

  확실히 동맹군은 몰렸다. 요즘 최근 패전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저번 싸움, 두 배 이상의 병력을 준비하고서도 공작 앞에서 패배했다. 초조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

 

  “단숨에 만회하기 위해서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생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그리고 성가시게도 페잔이 동맹에 협력적인 상황이죠. 동맹의 군사행동을 고의로 제국에게 알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연. 조직 개혁은 그걸 위해서라는 겁니까.”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연다.

  “동맹군이 정공법으로 공격해 온다면 막을 수 있을 만한 수는 써놨습니다. 협력만 할 수 있다면 다소의 병력차는 문제 없겠죠. 문제는 동맹군이 기책을 썼을 경우입니다.”

 

  “기책,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군인척 들어와서 요새를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공격하는…….”

  “……안에서…….”

  “침입에는 제국어가 능숙한, 그리고 용맹한 인물을 고르겠죠. 그리고 가능하면 잃어도 아깝지 않은 자를…….”

 

  공작이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과연. 그런 건가…….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을 이제르론 요새로 배치하는 것은 사령으로 내지 않습니다. 적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요.”

  “……매복이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기간은 어느정도입니까?”

  “길어도 2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인가……. 길어도 2년 안에 동맹군이 이제르론 요새 공략으로 움직인다. 혹은 그렇게 만든다. 그런 거겠지. 쇤코프. 아무래도 너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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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4월 16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좀처럼 정하기 힘들군요.”

  “확실히.”

  나와 슈트라이트 소장의 말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말없이 끄덕였다. 공작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다. 불쾌하다기 보단 우울하단 느낌이다.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가능하면 일찍 끝내야 할 텐데…….

 

  나와 슈트라이트 소장은 군복 차림이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파자마에 가운을 두른 모습이다. 사실 공작은 군복을 입으려고 했지만 슈트라이트 소장이 막았다고 한다. “원래는 쉬어주셨으면 합니다만, 어떻게든 일어나셔야 한다면 적어도 몸에 부담이 없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는 듯하다.

 

  말로도 했지만 우주함대 진용이 좀처럼 정해지지 않는다. 일단은 총참모장에 나, 부참모장에 슈트라이트 소장, 그리고 사령부 참모에 베르겐그륀, 뷔로 정도가 들어갔을 정도다. 저번 원정에 참가했던 사람을 그대로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군무성 인사부에 우수하고 젊은 사관을 배속해달라고 부탁하여 핵슈타인 준장, 레링거 대령, 페르데베르트 대령 세 사람이 사령부로 배속되게 되었다.

 

  핵슈타인과 레링거는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기야 공작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으니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참고로 페르데베르트 대령은 공작과 사관학교에서는 동기생이었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겠지…….

 

  후방지원을 담당할 사람도 겨우 정해졌다. 리첼 준장, 구스만 대령, 슐츠 소령 세 사람이다. 그 밑에 사무를 담당할 여성 부사관을 배치하면 후방지원은 일단 안심할 수 있겠지. 여성 부사관은 병참통괄부에서 선발할 것이다.

 

  클레멘츠, 루츠, 바렌, 아이제나흐, 비텐펠트, 슘무데, 루크너, 린텔렌, 루디게……. 현 시점에서 함대사령관으로 정해진 아홉 명이다. 겨우 18개 함대의 절반이 정해졌지만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달리 적임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뮈젤 대장과 메르카츠 대장, 그라이프스 대장 정도입니다만…….”

  “하지만 그 중에 최소한 한 사람은 이제르론 요새로 가야만 할 겁니다. 달리 적임자가 없습니다. 일단 그걸 정해야 하지 않을지…….”

 

  나와 슈트라이트 소장의 대화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한숨을 내쉬고 끄덕였다.

  “그렇지요. 게다가 그라이프스 대장은 총참모장까지 역임했던 분입니다. 이제 와서 함대사령관이 되어달라고 하는 건 어렵겠죠…….”

 

  이번 승리와 함께 몇 사람이 이동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컸던 것이 뮈켄베르거 원수가 퇴임했던 것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했던 것이었다. 거기에 잇는 것이 제국의 최전선,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주류함대 사령관의 인사다.

 

  요새 사령관 슈톡하우젠 대장, 주류함대 사령관 젝트 상급대장은 후임자가 정해지면 이동하게 된다. 젝트 주류함대 사령관은 저번 승리에서 상급대장으로 승진했지만, 슈톡하우젠 대장도 이동과 함께 상급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참고로 젝트 상급대장은 통수본부차장, 슈톡하우젠 대장은 군무차관으로 내정되어 있다.

 

  두 사람 모두 약 4년간 최전선에서 제국을 지켜왔다. 평시의 4년이 아니다. 전시의 4년이다. 교대할 시기겠지. 재임 중 두 사람에겐 특별히 큰 과실이 없었다. 제 6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에선 반란군을 격퇴했었다. 이동도 승진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후임인사가 우주함대 사령관 인사와 함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일임되었다. 물론 공작이 군무상서에게 인사안을 제출하게 되겠지만, 웬만한 일이 없는 한 거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안을 만드는 우리들에겐 책임이 무겁게 걸려있다.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건 요새사령관에 그라이프스 대장, 주류함대 사령관에 메르카츠 대장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우주함대엔 젊은이들만 있게 됩니다. 평균연령은 20대 후반이라구요. 총참모장.”

  “총참모장은 그만두게. 슈트라이트 소장. 내가 총참모장이 된 건 인사안 안에서일 뿐이니.”

  내 대답에 공작과 슈트라이트 소장이 희미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르론 방면군의 건도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뮈젤 대장을 이제르론 방면으로 보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는 편이 자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확실히 그렇네만…….”

 

  이제르론 방면군, 공작이 새로이 만들려고 하는 군의 일부다. 현재 제국의 최전선, 이제르론 요새에는 두 사람의 사령관이 있다. 요새 사령관과 주류함대 사령관이지만, 동격의 사령관이기에 서로 다투는 일이 잦고 통일된 지휘를 취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게 때때로 제국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제 5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에선 그 폐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 싸움에서 반란군에 의한 병행추격작전에 의해 요새 공방전이 혼전으로 치달았다. 혼전을 이용하여 요새에 침입하려는 반란군을 제국군은 요새주포에 의해 아군채로 소멸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격퇴했다.

 

  반란군을 격퇴하긴 했지만 아군도 날려버린 격퇴였다. 결코 기뻐해야 할 승리가 아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이 전쟁 때에 이제르론 요새에 있었다고 하지만, 처참한 싸움이었다고 획하고 있다. 공작이 이제르론 요새에 좋은 추억이 없다는 건 이 때의 경험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전후, 당연하지만 아군 사살이 문제시되어 당시의 요새 사령관 클라이스트 대장, 요새주류 사령관 발텐베르크 대장이 경질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승진하는 일 없이 이동하게 됐다. 제국군 상층부가 두 사람에게 얼마나 크게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이 폐해를 없애려 생각하고 있다. 이제르론 방면군은 이제르론 요새 및 이제르론 주류함대를 통괄한다. 그에 의해 양쪽을 통일적으로 운용한다는 것이 공작의 생각이다. 이미 이제르론 방면군에 대한 건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에게 상담했다고 한다. 이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인사안이 일임된 것도 이제르론 방면군의 안까지 생각해서 검토하라는 의미가 포횜되어 있다.

 

  “소관은 요새 사령관에 그라이프스 대장, 주류함대 사령관에 뮈젤 대장을 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라이프스 대장에게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관을 겸임하게 합니다. 메르카츠 대장에겐 우주함대에 들어와 부장적인 입장에서 공작을 보좌하도록 했으면 합니다만…….”

  슈트라이트 소장의 의견에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만두는 게 좋겠죠. 뮈젤 대장은 타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요. 오히려 통일적인 지휘운용이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막료들이 그걸 이용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거긴 사령관보다도 막료들의 반발이 심한 것 같으니까요…….”

 

  공작이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슈트라이트 대장을 돌아봤다. 소장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확실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대로 거긴 막료들의 반발이 범상치 않은 것 같다. 저번 원정에서도 어이 없는 일을 당한 적이 몇 번 있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게다가 뮈젤 대장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동생입니다. 대장 각하가 그걸 악용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주변에서 그걸 의식하는 일도 있겠죠. 확실히 밑에 두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내 말에 슈트라이트 소장도 끄덕였다. 소장은 지긋지긋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성가신 양반이다. 원래라면 가장 밑에 둬야할 사람인데 갖가지 요인이 그걸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공작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뮈젤 대장을 이제르론 방면군 사령관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질문하면서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공작과 뮈젤 대장은 극히 친한 사이다. 뮈젤 대장의 밑에 있는 케슬러 소장, 로이엔탈 소장, 미터마이어 소장 모두 공작이 배치를 수배해준 자들이다. 그리고 뮐러 소장은 공작과 사관학교에서 동기생이었다. 공작과 뮈젤 대장의 연결은 굉장히 강하다.

 

  과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만이 아니군. 뮈젤 대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한 것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더욱 더 누군가의 밑에 붙이는 데엔 부적절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공작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건 위험하겠죠. 능력은 문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기질이 조금…….”

  그렇게 말하고 공작이 쓴웃음을 흘렸다.

  “기질, 입니까.”

  “예. 기질이 방위전에 맞지 않아요…….”

 

  곤란하단 듯한 어조였다. 헌데, 무슨 의미일까. ……설마하고 생각하지만, 공작은 그 일을 위험시하고 있는 걸까? 슈트라이트 소장을 돌아보니 소장도 곤란해하고 있다.

 

  “패기가 너무 강한 겁니다. 전의가 높아요. ……뮈젤 대장의 용병가로서의 역량은 제국 제일. 일단 싸우면 질 일은 없을 겁니다만. 패기가 강한 걸 이용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

  공작은 이미 웃음을 거둔 뒤였다. 오히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르론 방명군 임ㅁ는 기본적으로 요새를 중심으로 한 방위전이 됩니다. 방위전 지휘관은 전의가 조금 낮은 편이 딱 좋습니다. 뭐, 너무 낮아도 곤란합니다만. 넘쳐 흐르는 것보다는 좋죠. 뮈젤 대장에겐 적합하다고 할 수 없어요.”

 

  과연, 그런 의미인가……. 듣고 보면 생각나는 일이 몇 가지 있다. 그렇다면 그 건은 어떨까. 이참에 물어보도록 할까.

  “공작. 혹은 이제르론 요새를 뮈젤 대장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공작은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찍이 공작을 적대하던 귀족들도 공작을 야심가로는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궁중에선 뮈젤 대장의 눈을 위험한 야심가의 눈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반역하는 건 아닐까 보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공작은 그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방 안에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슈트라이트 소장도 얼굴이 굳었다. 위험한 질문을 했는가……. 하지만 한 번은 물어야만 할 일이었다. 그에 따라 뮈젤 대장에 대한 대응도 생각할 수 있다.

 

  쿡하고 공작이 웃었다. 그와 함께 방 안의 분위기가 풀리고 슈트라이트 소장도 안심하는 표정을 보였다.

  “메크링거 중장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뮈젤 대장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몸에 위험이 있을 짓은 하지 못할 겁니다. 안심해도 좋겠죠.”

 

  과연. 백작부인인가. 그렇다면 그런 이유도 있기 때문에 공작이 베네뮌데 백작부인에 대한 건으로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지키는 입장에 선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의미로는, 백작부인은 인질인가…….

 

  “게다가 뮈젤 대장이 이제르론 요새에 틀어박혀 반역을 한다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상한 말을 한다. 요새는 난공불락. 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제르론 요새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함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반역한 사람은 요새 근처에서 움직일 수 없죠. 반역 규모는 이제르론 회랑 안으로 한정되게 됩니다.”

  “…….”

  과연. 반역을 확대할 수 없다. 규모는 작을 것이라는 건가. 제국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견해도 있는가…….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는 난공불락입니다. 반역이 오래갈 가능성이 있겠죠. 그렇다면 극히 성가신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슈트라이트 소장이 질문했다. 곤혹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르론 요새를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공이긴 해도 불락은 아닙니다.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빤히 공작을 봤다. 침착한 표정이다. 농담하는 걸까.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슈트라이트 소장에게 시선을 향하니 소장도 아연한 표정이다. 판단할 수 없는 거겠지.

 

  “뮈젤 대장도 그 부분은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하드웨어에 의지해서 반역 따윌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예에.”

  우리들의 반응이 우스웠던 걸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실은 이제르론 방명군 구상을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에게 말했을 때, 처음엔 반대를 받았습니다.”

  공작이 날 보고 있다. 나쁜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내 반응을 즐기고 있는 거겠지. 꽤나 사람이 나쁜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이제르론 요새 지휘계통을 통일하려던 것을 몇 번인가 검토했습니다만, 전부 각하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지휘권이 나눠져 있어도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만, 사실은 사령관 직이 하나 줄어들면 곤란하단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소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내 곁에 슈트라이트 소장도 끄덕이고 있다. 그걸 보고 공작이 우습다는 듯이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반란을 일으키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란이 무서워서 지휘계통을 합치지 못한다고 말할 순 없지요…….”

 

  “그래서 지휘권이 나눠져도 지장이 없다. 지휘관 직이 하나 줄어들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각하했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공작이 또 소리내어 웃었다.

 

  다시 말해, 이번 조직개혁이 행해져 지휘계통이 통일된다는 건 반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건가. 반란을 일으켜도 진압할 수 있다.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할 수 있다고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도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르론 요새에는 그라이프스 대장과 메르카츠 대장이 가도록 하죠. 그라이프스 대장에겐 방면군 사령관도 겸임하도록 합니다.”

  “그럼 뮈젤 대장은 우주함대에.”

 

  내 말에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공작의 맡에 있는 편이 안심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라면 괜한 사양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함대는 모조리 젊은이들만 가득 차게 된다. 나조차 연장자에 들어가겠지.

 

  “그럼 나머지 함대사령관을 정하도록 하죠. 이 이상 지연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

  공작의 말대로다. 이 이상의 지연은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무슨 머리 아픈 일인지. 대체 누구를 뽑아야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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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4월 16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발레리 폰 피츠시몬즈.

 

  “에리히는 직장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공작은 직무에 힘쓰고 계십니다만…….”

  “그렇습니까.”

 

  브라운슈바이크 대공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프로이라인도 신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 곁에 앉은 페르너 대령에게 힐끗 시선을 향했다. 대령도 신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마치 네 명이서 장례식장에라도 있는 듯한 분위기다.

 

  “오늘은 대체 무엇을?”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습니다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되어 우주함대 사령부를 새로이 편성하게 되었습니다. 공작은 지금 신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검토하고 계십니다.”

 

  내 말에 공작부인과 프로이라인이 서로를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 두 사람을 보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어처구니없는 악인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해 근본이 썩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경우 공작에게 책임을 물어도 될지 어떨지……. 좀처럼 판단할 수 없다.

 

  우리들 네 사람은 응접실에 있다. 하지만 응접실엔 미묘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무겁다기 보다는 불편하단 분위기다. 나는 눈앞의 커피에 손을 대는 것조차 망설이고 있다. 페르너 대령도 마찬가지다. 허락된다면 토끼마냥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다.

 

  “열이 있는데?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저희들에게, 그, 아시죠?”

  대공부인의 어조는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망설이는 듯하다. 프라이라인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오늘 열이 났다. 원래라면 느긋하게 침대에서 쉬어야 하지만, 공작은 메크링거 중장, 슈트라이트 소장과 함께 서재에서 회의를 행하고 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대공부인에게 잡혀서 응접실에서 대화다.

 

  “우주함대 사령부의 신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재 제국군이 품고 있는 최우선 과제입니다. 반란군 우주함대도 신체제가 되어 아직까진 적극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 이상의 지연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국의 안전보장도 걸려 있습니다. 저번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소관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공부인과 프로이라인은 납득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무리도 아니겠지. 나도 오늘은 쉬어야 한다고 공작에게 충고했었다. 확실히 우주함대 사령부 신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최우선 과제이긴 하다. 하지만 병든 몸을 이끌고 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하루 느긋하게 쉬고 내일 일하면 된다. 하지만 공작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번 일로 화내고 계시냐고 물었지만, 공작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미 지난 일이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본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향이 전혀 없다곤 말할 수 없겠지.

 

  부관으로 일하고 있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공작은 자신이 허약하다는 것에 꽤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체격이 가냘프다는 데에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혹시 그 사건이 없었다면 오늘은 얌전히 쉬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은 틀림없이 공작의 역린을 쓸었던 것이다.

 

  혹시 페르너 대령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표정으로 잠자코 있는 대령을 보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이 장소에서 말할 순 없다. 그런 짓을 하면 대공부인과 프로이라인을 더욱 슬프게 만들 것이다. 당신들은 양자를, 약혼자를 격노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프로이라인은 울겠지.

 

  “게다가 전쟁터에선 열이 나와도 지휘해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저번 싸움에서도,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에서도 공작은 병든 몸을 이끌고 지휘를 잡았습니다.”

  “…….”

  으음. 아직 납득하지 않는가……. 무리도 아니긴 하다. 나도 설득력 없는 설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 최근, 제국은 유리하게 전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전쟁에서 이긴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소관이 아는 한 제국에서도 굴지의 용병가입니다. 하지만 공작조차도 승리를 얻기 위해서 굉장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공부인이 또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저희들에겐 남자아이가 없었고, 여동생에게도 없었고……. 아들이 생겨서 기뻤던 거죠. 우수하고 믿음직하고, 게다가 귀엽잖아요? 저도 모르게 꾸며주고 싶어져서…….”

  “네에.”

 

  힐끔 페르너 대령을 봤다. 대령은 무표정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뭐라고 말좀 해보라고. 당신, 친구잖아? 애초에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어찌 된 거야? 꽤나 여유잖아. 넉살 좋은 건 미덕이 아니라고. 대령.

 

  “그래서 무심코 아버님에게도 귀엽다고 말해버려서……. 설마 그런 일이 될 줄이야……. 그 아이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고, 굴욕을 줄 생각도 없었어요……. 단지 조금 꾸며주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

 

  그 마음은 잘 알겠다. 어느 집이든 어머니라면 비슷하겠지. 아들이 귀여우면 귀여울수록 꾸미고 싶어진다. 하물며 그 아들이 유능하고 무대포인데도 허약하고 귀엽다면 더욱 꾸미고 싶어지겠지. 싫어하는 얼굴을 보는 것조차 즐거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공작 각하는 귀엽다고 불리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한다. 공작은 어머니와 닮았다고 한다. 어머니에 대해 그리워하고 있기에 얼굴에 대해선 불만이 없지만, 그걸 귀엽다고 하면 참을 수 없어한다……. 뭐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번, 13일에 행해진 원수봉 수여식. 그건 비참한 결과로 끝났다. 아마도 그 식전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작을 귀엽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뭐라해도 상대방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제국원수며 우주함대 사령장관인 것이다. 궁중, 군부의 실력자를 귀엽다고 하며 놀릴 순 없다.

 

  하지만 그 제약에 단 한 사람,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 있었다. 황제 프리드리히 4세다. 황제는 공식 행사 중에 공작을 귀엽다고 평하고 말았다. 나쁜 마음은 없었겠지. 아마도 딸이기도 한 대공부인에게 듣던 대로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황제가 공식 장소에서 귀엽다고 말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공작을 귀엽다고 해도 무례한 일은 아니게 된다.

 

  게다가 듣자하니 공작이 황제 곁에서 내려갈 때, 다들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작은 분노에 떨면서 그 속을 지나갔다던가……. 나는 페르너 대령과 함께 자수정 홀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몰랐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일었다.

 

  식전이 끝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바로 우주함대 사령부로 돌아갔다. 지상차 안에서 공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말을 걸 수 없을 정도였다. 사령부에 도착해서 결재서류에 사인을 시작해도 불편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처음 2, 3장의 서류엔 너무 힘을 줘서 사인을 망쳤을 정도였다.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점이 되어 공작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걸 기억하고 있다.

 

  페르너 대령이 사령장관실로 구르듯이 들어온 것이 30분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대령은 얼굴이 경직된 채로 공작에게 말했다. 아마도 나도 듣고 있는 동안에 얼굴이 굳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작과 페르너 대령, 그리고 나 세 사람만이 사령장관실에서 얼어붙었다.

 

  “아, 그, 공작?”

  “에리히면 돼.”

  “아니, 하지만.”

  “에리히라고 불러. 안톤.”

 

  낮게 바닥을 기는 듯한 목소리였다. 공작은 불쾌한 표정으로 결재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대령쪽으론 한 번도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폭할 정도의 기세로 문서에 사인을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사인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페르너 대령이 창백한 얼굴로 날 봤지만, 절대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잠자코 보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침착하라고. 저기, 그건 나쁜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야.”

  “그거라는 건 뭘 말하는 거지? 안톤.”

  “아니, 그러니까, 그. 폐하가, 경을, 귀엽다고 했다는 일 말이다.”

  “…….”

 

  쭈뼛거리는 어조였다. 난 페르너 대령을 황당하단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대령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날 돌아봤던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서둘러 대령에게서 시선을 돌렸던 것도……. 아마도 난 마음 속에서 황제를 꾸짖고 있었을 것이다. 입으로 내뱉었다간 불경죄로 잡혀갔을 것이 틀림없다.

 

  “에리히?”

  “……난 침착해. 경이야말로 진정하는 게 어때?”

  “그, 그러지. 알겠어. ……저건 나쁜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야. 이해해주겠지?”

 

  간청하는 듯한 어조였다. 뺨에서 땀이 흐르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조용히 소리 내어 웃었다. 시선은 문서에 떨어뜨린 채다. 싫어도 화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둥번개가 다가온다. 그런 느낌이었다.

 

  “이해하고 있고말고. 그래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잖아? 아니었으면 쿠데타 준비라도 하고 있었겠지. 만인 앞에서 창피를 당한 거니까. 그렇지? 안톤 페르너.”

  “에리히!”

  대령이 비명처럼 소리질렀다.

 

  “엘리자베트를 괴뢰의 여제로서 내가 모든 걸 잡는다. 다행히 정규함대 사령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이 오딘에서 최강의 무력집단을 이끄는 것은 나와 뮈젤 대장이다. 이야기에 따라선 쿠데타는 가능.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마!”

 

  그 목소리에 공작은 겨우 시선을 대령에게 향했다. 날카로운 시선이다. 도저히 농담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니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가? 바보 같은 짓일까? 지상전력에는 뤼네부르크 중장의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이 이쪽의 아군이 되겠지. 선수를 치면 오딘을 점령하는 건 어렵지 않아. 헌병대는, ……헌병대는 찢어지겠지. 하지만 그거라면 녀석들은 움직일 수 없어. 쿠데타는 충분히 가능하다.”

  “……어이, 너.”

 

  떨림이 점점 심해졌다. 페르너 대령과 내가 굳은 와중, 공작이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의 웃음 소리다.

 

  “후세의 역사가는 뭐라고 할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반역한 것은 귀엽다는 한 마디가 원인이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바보 같은 이유로 반역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는가. 일까? 아니면 이렇게나 바보 같은 행동으로 신하를 반역하게 만든 황제가 있었는가. 일까?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에리히.”

 

  “결의의 한 마디는 참을 수 없다. 일까? 차라리 이런 일, 지금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할까……. 어느 쪽이든 반역자다운 대사다. 역사가들이 기뻐하겠지. 에리히 발렌슈타인은 용의주도하게 반역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는 거기에 구실을 주고 말았다…….”

  “…….”

 

  “안심해도 돼. 쿠데타 따위 하지 않아. 난 권력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지금 쿠데타를 일으켜도 불안정한 정권이 만들어질 뿐이야. 제대로 흘러갈 리가 없지.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로 난 침착해. 하지만 조금은 상상해도 되잖아? 내게도 이정도 즐거움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날 놀렸구만.”

 

  페르너 대령의 항의에 대령이 어깨를 으쓱했다.

  “놀렸다? 아니. 충고야, 이건. 안톤, 지금 당장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으로 돌아가. 그리고 모두에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반역을 생각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고 전하도록 해.”

  “내게 그런 걸 말하라는 건가?”

 

  “말해줘야겠어. 경은 내 친구니까. 날 가장 알고 있는 인간이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날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

  “빨리 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진심으로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생각하기 전에. 쿠데타는 언제라도 일으킬 수 있으니까…….”

 

  공작의 목소리에는 웃음 성분이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페르너 대령도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서두르지 말라고.”라고 말하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공작은 그걸 눈으로 배웅하고 재미없다는 듯이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

 

  공작이 페르너 대령을 협박한 효과는 바로 나왔다. 그날 밤, 궁중에서 행해진 전승축하 파티. 많은 출석자가 힐끔힐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보며 웃음을 참는 와중에 황제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은 공작이었다.

 

  “점심에 공작에게 걸었던 말은 결코 공작을 모욕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세.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 같네만. 용서하게.”

  “예.”

  “공작은 황가의 중신. 이후로도 제국의 번병으로서 기대해도 되겠는가?”

  “예. 기대에 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 우선 축하하도록 하지. 듣자하니 엘리자베트와 정식으로 약혼했다고 하더군. 경사가 끊이지 않는구먼. 공작이라면 우리 손녀딸을 줄 수 있지. 이후 공작은 황족과도 같은 몸일세. 잘 부탁하지.”

  “예.”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점심에 있었던 일을 사죄하고 공작을 황제의 번병으로 인정한 다음 프로이라인과의 약혼을 축하했다. 그리고 황족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인간 따위 제국에 없겠지.

 

  황제이라 할지라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어딘가에서 평민에서 벼락출세했다. 어차피 양자다. 라고 공작을 가볍게 보던 사람들도 새삼 공작이 제국의 최중요인물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너무 신경쓰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으니까요. 공작의 입장은 이전보다도 훨씬 강해졌을 겁니다.”

  “그런가요? 중령의 말대로라면 좋겠습니다만…….”

  “…….”

 

  대공부인은 회의적이다. 아마 그 일에 가장 회의적인 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자신이겠지. 페르너 대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대령, 당신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가신으로서 실격이야. 프로이라인도 대공부인도 어이없단 표정으로 당신을 보고 있어. 나중에 갈굼이나 당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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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4월 13일. 오딘, 신무우궁, 흑진주 홀.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에리히, 괜찮아?”

  “괜찮지 않아.”

  내 대답에 페르너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다. 이 녀석은 걱정하는 척하면서 즐기고 있는 거다. 그런 녀석이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 싫을 정도로 알고 있다.

 

  제국군인 안톤 페르너는 우주에서 가장 악질에 못된 놈이다. 이 녀석 덕분에 사관학교 시절엔 심한 꼴을 당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좋은 키슬링이 심한 꼴을 당했고, 돌보기 좋아하는 내가 뒤처리역이었다. 전혀 수지가 맞지 않는다. 내 성격에 뒤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이 녀석 때문이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잘 어울린다고.”

  “어울리지 않아.”

  어디가 어울린다는 거냐. 이 멍청이! 히죽거리지 마! 네 눈은 옹이구멍이냐. 아니면 유리구슬이라도 들어간 거냐. 난 결코 이런 옷 입고 싶지 않았다고!

 

  “이제 곧이야. 이제 곧 폐하께서 출석하신다. 그 다음 식전관이 경의 이름을 부를 테니까, 그때 나가는 거라고.”

  “알고 있어.”

  “도망치지 말라고. 모두 이걸 위해서 모인 거니까.”

  “딱히 모여 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

 

  밉살스런 녀석이다. 페르너는 어깨를 움츠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다 나가버려도 전혀 상관없다고. 식전 따위 딱 질색이다. 중요한 거니까 한 번 더 말한다. 식전 따위, 딱 질색이다! 원수봉 같은 건 우체국 택배로 보내도 전혀 상관없다. 전표를 받아서 사인까지 철저하게 해주지!

 

  “그럼 난 이만 갈 테니까.”

  “…….”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무슨 얼굴.”

  “싱글벙글 웃으라곤 하지 않을 테니까, 평범하게 말이야. 평범하게.”

  “평범해.”

 

  페르너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기실에서 나갔다. 평범하게 할 수 있을까보냐. 이 바보자식이. 내 의지가 아니다. 이건 전혀 내 뜻에 맞지 않다. 요 일주일 간, 나는 방해의 신에게 지배와 열애를 듬뿍 받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정말이지 되먹지 못한 일주일이었다.

 

  제국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 책임이 중대하겠지. 감사하게도 뮈켄베르거는 이미 정규함대 사령관들을 자신의 퇴역과 함께 사령관직에서 물러나도록 전부 설득했다고 했다. 새로운 사령장관은 새로운 사령관을 기용한다. 그것이 뮈켄베르거의 생각이었다.

 

  정말 고개를 들 수 없다. 뭐, 사령관들 중에는 나 같은 벼락출세한 애송이를 따를 수 있을까보냐. 그럴 바에야 그만두겠다. 그런 마음인 녀석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뮈켄베르거가 설득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고생했겠지.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뮈켄베르거에겐 정말 감사하고 있다.

 

  새로운 함대사령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 페잔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런 걸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다들 전혀 관계 없다는 것 같다. 대공부처, 엘리자베트, 슈트라이트, 안스바흐, 페르너……. 모두 잔치다 파티다하며 소란이다. 약혼 발표라니 대체 뭐냐고. 난 전혀 납득하지 않았어.

 

  일단 내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리히텐라데 후작들의 설명에 의하면 페잔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닌가 싶다는 것 같다. 제국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방해물인가. 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거기서 엘리자베트와의 약혼을 발표하는 것으로 내 입장을 강화한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아니면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야 언젠가 엘리자베트와 결혼하게 되리란 건 알고 있었고 납득도 하고 있다. 엘리자베트는 그렇게 성격이 나쁜 아이가 아니니까. 극히 평범한 여자아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 굳이 고르라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쪽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난 라인하르트와 다르다. 결혼상대로 힐더 같은 뛰어난 여자는 바라지 않는다. 극히 평범한 여자면 된다. 그보다도 힐더의 경우엔 저건 아무리 봐도 연애음치에 정서라곤 파편도 없는 타입이잖아. 공략방면에만 능력이 치중되어 있다. 그런 것에 24시간 붙어 다녔다간 쉴틈이 전혀 없다. 과로사한다.

 

  ……그런가. 라인하르트의 사망 원인은 혹시 그것인가……. 황제병이라고 했지만, 그 진짜 원인은 힐더 곁에서 받는 육체적, 정신적 과로인가.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 한 것도 힐더 곁에서 떨어지기 위해서……. 으음, 새로운 가설이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게 유감이다. 다같이 즐길 수 있을 텐데…….

 

  뭐, 힐더는 차로 말하자면 평범한 승용차가 아니라 포뮬러카나 월드랠리카 같은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 운전수도 평범한 승용차엔 만족할 수 없는 특수한 인간이어야 한다. 차를 보면 여자 타입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도 승용물이고 돈이 드는 것도 비슷하다……. 맘에 들지 않으면 바꿔 타는 것도.

 

  평범이 최고다. 생각해보면 공작가 영애면서 평범하다는 것은 꽤나 희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15살 여자아이와 약혼하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번 공작은 로리콤이다. 전쟁에 이긴 보상으로 15세 소녀와 약혼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겠지. 이제부터 나는 “그 로리콤 공작, 로리콤 원수”라고 불리며 그때마다 웃음거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약혼을 하는 진짜 이유는 알고 있다. 엘리자베트의 질투인 거겠지. 내가 안네로제를 은밀하게 생각하고 있다. 안네로제도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파악한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어느 세계에 황제가 아끼는 총희에게 마음을 두는 바보가 있냐. 금단의 사랑?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귀족 영애들 사이에선 나와 안네로제는 서로 은밀하게 마음이 있는 사이라고 하는 것 같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에게 내가 안네로제에 대해서 칭찬한 것이 퍼진 것 같다. 진원지는 리히텐라데 후작이겠지. 그 장소에 있었던 건 영감과 나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런 일은 없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xx백작가의 xx가 말했다든가, oo자작가의 oo도 말했다든가. 엘리자베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여자는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믿는 거지? 머리가 아프다. 내가 울고 싶어졌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 성가신 짓을 한다. 덕분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엔 M9의 대지진이다. 난 공작 저택에서 나와서 어딘가 긴급피난이라도 하고 싶어졌었다. 영감은 전생에 메기였군. 대왕메기다. 앞으로 메기할아범이라고 불러주지. 만악의 근원보단 낫겠지.

 

  덧붙여 내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됐다는 걸 알게 된 바보 귀족들이 정규함대사령관이 되고 싶다고 소란을 피웠다. 요즘 계속 이기고 있으니까 말이야. 전쟁 따위 간단히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어디까지 바보에 멍청이인 건지……. 도슨보다도 못하다.

 

  네 놈들 같이 바보에 무책임한 쓰레기 놈들에게 함대사령관을 할 수 있을 것 같냐! 일개 병졸로 최전선에서 총알받이라면 써주지. 네 놈들 따위 다스 단위, 아니 사단 단위로 전사해도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뭐하면 내가 이 손으로 갈아 버려주지.

 

  “이럴 리가 없다~”라든가 네놈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큰 목소리로 웃어주마. 녹화해서 평민들에게 팔아주지. 날개돋힌 듯 팔릴 것이 틀림없다. 기록적인 대히트 상품이다. 평민들의 불만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내 울분도 절반 정도는 풀릴 것이 틀림없다. 꼴 좋다. 케케케.

 

  아, 지긋지긋하다. 원수봉 수여식이 끝나면 궁중주최의 승전축하 파티,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에서 승전축하 겸 약혼발표. 그게 끝나면 우주함대 사령장관 취임식……. 그 전부가 내가 주역이니까 말이야. 훈련이라든가 일이라든가 바쁘다고 하고 빠져나올 수도 없다. 지옥이다……. 다시 태어나면 양자 따위 절대로 안한다. 절대로다.

 

  그렇다 해도 맘이 무겁다고. 원수가 되었으니 망토와 띠를 두르게 되었지만. 그게 흰색 망토라니 뭐야 대체. 늙은이들은 회색 망토를 달고 있다. 그런데 애송이인 내가 흰색 따위 달 수 있을까보냐! 애초에 흰색은 라인하르트의 색깔이겠지. 난 검은색이 좋다. 검은색이!

 

  덧붙여 이 띠의 색깔……. 핑크라고.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뭐, 이상한 핑크가 아니라 고급스런 주홍색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차분한 색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런 거 창피해서 달고 다닐 수 없다고.

 

  대공부인도 엘리자베트도 내 희망은 무시다. 검은색은 운이 좋지 않다든가, 다들 무서워한다든가 말하며 하얀 망토와 주홍색 띠를 달고 말았다. 양자란 정말 입장이 약하지. 눈물이 다 나온다. 내가 정장을 마치자 귀엽다고 말하기까지. 귀여워서 미안하군! 난 어머니쪽을 닮은 얼굴이라고. 신경 쓰고 있다고. 이래뵈도.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귀엽다니 대체 무슨 농담이야!

 

  침착해라. 일단 일주일이다. 일주일 동안 이 흰색 망토와 핑크 띠를 두르자. 그 다음 더러워졌다고 말하고 띠를 흑색 계통으로 바꾼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망토도 검은색으로 바꾼다. 조금씩, 조금씩 기정사실로 만드는 거다. 이런 문제는 서두르면 안 된다. 하물며 여자 상대라면…….

 

  식전관이 무슨 소리를 내고 있군. 프리드리히 4세가 왔나. 기왕이면 숙취로 안네로제 품에서 잠꼬대나 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별 수 없다. 슬슬 준비할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리히 님!”

  알았다. 알았다고. 지금 간다…….

 

...

 

제국력 487년 4월 13일. 오딘, 신무우궁, 흑진주 홀. 나이트하르트 뮐러.

 

  고풍스런 나팔 소리가 흑진주 홀에 울린다. 그 소리와 함께 참가자는 모두 태세를 바로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서 불경죄로 잡히고 싶지 않다.

 

  “전 인류의 지배자시며 전 우주의 통치자. 천계를 지배하는 질서와 법칙의 수호자. 신성하며 불가침한 은하제국 프리드리히 4세 폐하의 입장이시오.”

  식전관이 목소리를 뽑아내자 제국국가의 장대한 음악이 흑진주 홀에 흘렀다. 그리고 참가자는 모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슬슬 괜찮은가? 고래를 숙인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 아직 고개를 숙인 채다. 조금 더 있어야 하나……. 슬슬 다들 고개를 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나도 고개를 올리자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멀리서 호화로운 의자에 앉아있다. 저 의자는 어떤 느낌일까…….

 

  흑진주 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황제의 옥좌 근처일수록 제국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대귀족, 고급문관, 무관이 서있다. 그들은 폭 6미터의 붉은 융단을 사이에 두고 문관과 무관으로 나눠져 열을 짓고 있다.

 

  한쪽 열에는 문관이 있다.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 카스트로프 재무상서, 프레겔 내무상서, 룸프 사법상서, 빌헬미 과학상서, 노이케른 궁내상서, 킬만제크 내각서기관장.

  반대측 열에는 무관이 있다.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 크라젠 원수, 오프레서 상급대장, 람즈도르프 상급대장.

 

  브라운슈바이크 대공은 명목만으로 하자면 원수위를 얻고 있기에 무관측에 서 있다. 그리고 오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또 한 명 제국원수가 탄생한다.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리히 님!”

  식전관이 낭랑한 목소리로 에리히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와 함께 융단을 밟으며 조용하게 에리히가 폐하에게 다가간다.

 

  검은 군복으로 몸을 감싸고, 원수로 승진하기에 견장, 망토, 띠를 두르고 있다. 망토 색은 흰색이다. 그리고 희미고 고급스런 분홍색 띠와 금색 견장을 달고 있다……. 꽤 익살스럽군. 군인이라기 보단 어디 귀족 애송이 같은 모습이다. 화사하고 날씬한데다가 얼굴 모양이 상냥하니 젊은 아가씨들이 좋아하겠지.

 

  안톤 말로는 본인은 검은 망토와 검은 띠를 바랬다고 하지만, 그건 좀 너무 수수하겠지. 대공부인과 프로이라인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 마음은 모를 것도 아니다. 뭐, 분홍색 띠는 조금 심하게 귀엽지만 흰색 망토는 잘 어울린다. 본인은 흰색 망토를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성실하게 보이고 맑은 느낌이다.

 

  다들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많은 귀족들에게 있어서 보자면 적대하고 있던 에리히가 자신들의 탑이 되는 거니까 확실히 곤란하겠지.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20세가 막 지났을 뿐인 에리히가 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다. 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곤혹스러움도 있겠지.

 

  에리히가 옥좌 앞에 섰다. 그리고 겸손하게 한쪽 무릎을 꿇는다. 황제는 잠시 동안 에리히를 보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이번 무훈. 훌륭했네.”

  “소신 혼자의 공적이 아닙니다. 이제르론 요새 주류함대 사령관, 젝트 대장을 시작하여 많은 이들의 협력의 결과물입니다.”

 

  “그런가. 그대는 겸손하구먼.”

  “황송합니다.”

  “희귀한 색의 띠일세. ……핑크인가.”

  “…….”

 

  보통 대답하지 않는 건 불경죄로 취급되지만, 이건 어쩔 수 없군. 대답하라는 건 너무 심한 말이겠지.

  “아말리에와 엘리자베트의 말대로일세. 잘 어울리는 구먼. 아주 귀여워.”

  “……황송합니다.”

 

  다들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그 중에는 이를 꽉 깨물고 웃음을 참고 있는 자도 있다. 아마 에리히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겠지. 귀엽다는 말을 듣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니까. 잠시 곁에는 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 놀리다니 나도 목숨이 아깝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 중에 하나라도 화나게 만들면 위험한데 지금 에리히는 세 가지를 겸하고 있다. 화나게 만들다니 자살행위다. 난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쿠와바라, 쿠와바라.

 

  황제 폐하는 기분 좋게 웃고서 식전관이 건내 준 사령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제르론 회랑에서 반란군 토벌의 공적에 의해, 그대,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제국 원수에 임명함. 제국력 487년 4월 13일. 은하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

 

  에리히는 일어서서 계단을 오른 뒤 경례와 함께 사령서를 받았다. 덧붙여 폐하에게서 원수봉을 받아들어 그대로 뒤로 돌아 계단을 내려간다. 조심하라고. 넘어지지 말고. 계단을 다 내려가고 난 다음 황제 프리드리히 4세에 대해 경례를 했다.

 

  그 뒤 몇 발자국 물러나 화사한 몸을 돌린다. 몸을 두르고 있는 흰색 망토가 희미하게 부풀고, 분홍색 띠가 나타났다. 그대로 아주 수초 간, 에리히는 흑진주 홀을 둘러봤다. 화내고 있겠지. 아마도. 다들 고개를 숙이고 에리히를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웃느라 어깨가 떨리고 있는 녀석도 있다.

 

  황제 프리드리히 4세를 배후에 두고 흑진주 홀 궁신을 둘러본다. 궁신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에리히의 위엄에 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공적 있는 무관을 찬송하는 노래. 발퀴레는 그대의 용기를 기뻐하니. 그 음악과 함께 에리히는 걷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뺨이 굳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분간 근처에는 가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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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7년 4월 4일. 오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택. 라인하르트 폰 뮈젤.

 

  “그건 그렇고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라니 다행이구만. 미터마이어.”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로이엔탈. 긴장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

  응접실에 웃음소리가 오르고, 미터마이어가 쑥쓰러워한다. 화제를 바꾸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헌데 페잔에서 반란군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한바탕 미터마이어를 놀린 다음 케슬러가 공작에게 물었다. 다들 웃음을 거두고 두 사람을 보고 있다. 페잔에 대한 건 나도 듣고 싶었던 일이다.

 

  “보통, 페잔에서 자유행성동맹군의 정보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동맹군에겐 제국군의 정보가 갑니다. 하지만 이번엔 동맹군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페잔은 고의로 정보를 차단한 것 같아요.”

  공작의 대답에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제국의 패배를 바랐다, 그런 겁니까?”

  “그런 겁니다. 케슬러 소장. 요즘 최근 전쟁에서 제국군이 우세합니다. 제국과 동맹의 세력균형을 바라고 있는 페잔에 입장에선 이 이상 동맹이 패배하면 균형이 부서질 수밖에 없다.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죠.”

 

  담담한 어조, 온화한 표정이지만 내용은 중대하다. 모두 엄한 표정을 짓고 생각에 잠겨있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공작이 쿡하고 웃었다.

  “이기면 이길수록 이기기 위한 조건이 어려워진다. 그런 거겠죠. 어느 게임이든 그렇습니다. 현실도 마찬가지로군요.”

 

  다들 웃었다. 약간이지만 방의 분위기가 다시 온화해졌다. 공작과 뮐러가 옛날에 했었던 게임 이름을 내놓자 로이엔탈, 미터마이어도 “그건 재밌었지.”라고 말했다. 케슬러와 슈타인메츠가 끄덕이고 있는 걸 보니 두 사람도 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없다. 아마도 키르히아이스도 없겠지. 이번에 키르히아이스와 한 번 해볼까…….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슈타인메츠가 공작에게 물었다.

  “이번 건, 우연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뇨, 그럴 리는 없겠죠. 슈타인메츠 대령. 이번 출병은 제국측의 사정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딱히 출병정보를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페잔은 고생하지 않고 출병정보를 얻어 동맹군에게 전했을 겁니다. 당연합니다만, 동맹군은 우리들을 요격하기 위해서 출병을 했겠죠. 페잔이 그걸 몰랐으리라 생각하기 힘듭니다. 하물며 이번에 동맹은 5만 척 가까이 되는 대군을 움직였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감이다.

 

  “함대 동원을 일부 숨기는 건 가능할지도 몰라도, 모든 걸 은폐하는 건 무립니다. 명백히 고의, 로군요.”

  공작의 말에 몇 사람인가가 “으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공작의 말대로 모든 걸 은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일부 병력을 숨기는 거라면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페잔에게 항의는 했습니까?”

  “아니. 하지 않았어. 나이트하르트. 소용없으니까.”

  “소용없다?”

  “눈치 채지 못했다. 동맹군이 은밀하게 함대를 움직였다. 변명거리는 얼마든지 있어.”

  공작의 말에 모두가 쓴웃음을 띄웠다.

 

  “앞으로 올바른 정보가 들어오는 일도 있겠죠. 하지만 제국과 동맹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페잔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페잔이 보내는 정보를 무조건 신용하는 건 위험합니다. 그대로 삼켜버리면 언젠가 아픈 꼴을 당하게 되겠죠.”

  “…….”

 

  역시 공작도 그렇게 생각했는가……. 앞으로 몇 번인가 올바른 정보가 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방심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일부 함대를 고의로 숨겨서 이쪽에 정보를 흘린다……. 특히 반란군이 동원을 고의로 숨겼을 경우가 위험하다. 그 숨겨진 함대가 별동대로서 나타나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다들 입을 다문채로 있다가 잠시 뒤 케슬러가 입을 열었다.

  “적의 전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싸우게 된다는 겁니까……. 꽤나 어렵군요.”

 

  케슬러의 목소리에 심각한 울림이 있다. 그리고 다들 굳은 표정이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반란군은 이쪽의 전력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쪽은 반란군의 전력을 알지 못한다. 눈가리개를 하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번 싸움에서 발퀴레가 꽤나 무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싸움이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

  “과연. ……색적을 전문으로 하는 발퀴레 부대, 경공모가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기체 자체를 색적에 특화하든지…….”

  내 말에 다들 끄덕이고 있다.

 

  “뮈젤 제독의 말대로군요. 전투상세보고에 제독이 말한 것과 같은 걸 적었습니다. 대공에게 들은 겁니다만, 제국군 3장관도 이 건에 대해서 극히 위험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혹은 이미 무슨 수를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확인해보죠.”

 

  공작이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식기 시작한 것 같다. 내 커피도 미지근해졌다. 그렇다 해도 내가 한 말과 같은 걸 전투상세보고에 썼는가. 생각하는 건 다들 마찬가지군. 문제는 상층부가 받아들이나 마느냐인가…….

 

  “만날 예정이 있으신 겁니까?”

  “내일, 방문할 예정입니다.”

  아마 이후 체제에 대한 상담이겠지. 원수,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인가……. 뮈켄베르거 원수와 분담은 어떻게 될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색적에 대한 것도 나오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제안이라면 제국군 3장관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색적, 군부의 움직임은 꽤나 빨라질 것이다. 나쁘지 않다. 군사에 밝은 인물이 궁중의 실력자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헌데 포르세티는 어떻습니까?”

  곰곰이 생각하는 와중에 미터마이어가 공작에게 물었다. 공작의 기함에 대해서다.

  “좋은 함선입니다. 꽤나 쓰기 편하더군요. 앞으로 익숙해지면 더욱 애착이 들겠죠.”

 

  공작이 기쁘게 포르세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공작치고 드문 일이다. 어딘지 우스웠다. 포르세티인가. 신조함이긴 하지만 의외로 수수한 함선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걸 싫어하는 공작답다고 할 수 있겠지. 확실히 동형함이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뮈젤 제독의 브륀힐트는 어떻습니까?”

  “맘에 들었습니다. 이 이상의 함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을 피고 말했다. 남 말은 할 수 없군. 아무래도 나도 이미 브륀힐트에 애착을 가진 것 같다. 말이 끝나고 쓴웃음이 나왔다.

 

  “부럽군요. 저희들도 빨리 승함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로인엔탈의 말에 미터마이어, 뮐러가 끄덕였다. 케슬러, 슈타인메츠도 끄덕이고 있다. 함대사령관이 되어 승함을 받는다. 군인으로서의 꿈이로군.

 

  “이제 곧 받게 될겁니다. 어떤 함선이 될지 기대되는군요.”

  바로 받게 된다. 출병도 무훈을 세울 판도 있을 거라는 거겠지. 공작의 말에 다들 기쁘게 끄덕였다. 그리고 각자 함선 취향을 말했다.

  “속도가 빠른 함선이 좋다.”, “아니 방어에 뛰어난 함선이 좋다.”, “나는 공격력이 높은 함선이 좋다.”, 즐거운 시간이다.

 

  “반란군의 우주함대 사령장관말입니다만…….”

  로이엔탈이 공작에게 질문한 건, 한바탕 미래의 승함에 대한 취향을 말하고 난 뒤였다.

 

  “쿠브르슬리라는 인물이 취임했습니다만. 뭔가 알고 계십니까? 그다지 듣지 못한 이름입니다만…….”

  그렇다. 들은 적이 없다. 반란군의 지휘관이며 제국까지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면 시트레, 로보스, 뷰코크, 보로딘, 우란푸겠지. 그 중에 로보스는 이미 제일선에서 물러났다.

 

  전임자인 도슨도 몰랐지만 이번 쿠브르슬리도 낯설다. 대체 어떤 자인가……. 공작도 약간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에 빠져있다. 이런 일엔 공작이 자세하리라 말한 건 뮐러였지만…….

  “……그러고 보니 그다지 듣지 못한 이름이군요.”

  “예. 그래서 저희들도 조금 곤란해하고 있습니다만…….”

 

  케슬러의 말에 공작도 끄덕이고 있다.

  “아마 제 1함대 사령관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제 1함대는 수도경비, 국내치안이 임무니까요. 거의 해적토벌과 항로 안전확보에만 일하고 있었을 겁니다. 전선에 나오지 않았던 건 그때문이겠죠.”

  “과연.”

  케슬러가 맞장구를 치면서 내게 시선을 향해왔기에 끄덕였다. 과연. 전선지휘관으로서 듣지 못한 건 그때문인가.

 

  “무능하진 않을 겁니다. 제 1함대는 수도경비를 담당하니까요. 적어도 전임자인 도슨 대장보다는 위일겁니다. 단지 어떤 용병가인가, 버릇이 있는가는 모르겠군요. 주의하는 편이 좋겠죠.”

  그렇게 말하고 공작은 다시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

 

제국력 487년 4월 5일. 오딘, 군무성 상서실. 에리히 폰 브라운슈바이크.

 

  “수고했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얻다니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군무상서의 치하에 대답하자 제국군 3장관이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상서실엔 제국군 3장관이 모여있다. 아니, 세 명이 다 모이면 박력도 있고 위압감도 있지만 뭐라해도 악덕스러움이 파워업이구만. 높아지면 그러한 악한 부분도 필요하다는 건가. 솔직히 감탄했다. 나 같은 초보에 마음 상냥한 평범한 인간에겐 무리야.

 

  “페잔은 뭐라고 했습니까?”

  “음. 렘샤이드 백작의 연락이 있었다고 하네. 이번 건은 실수였다고 하더군. 전해주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고.”

  루빈스키라는 녀석은 사악한 지혜만이 아니라 유머 센스도 있구만. 뮈켄베르거의 답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나뿐만이 아니다 3장관도 웃고 있다. 뮈켄베르거가 말을 계속했다.

 

  “경에 대해서 칭찬했다고 하네. 과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얻다니 훌륭하다, 라고 말이야.”

  이번엔 인사다. 다음은 좀 더 다른 수를 쓴다. 그런 거겠지. 조심해야…….

 

  하기야 신경 써야하는 것도 루빈스키, 너도 마찬가지다. 싸움을 건건 그쪽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검은 여우. 언젠가 가죽을 벗겨서 머플러로 만들어주마. 페잔제품은 평가가 좋으니까 말이야. 엘리자베트도 기뻐하겠지.

 

  “전투상세보고는 읽었네.”

  “예.”

  그렇게 괴로운 표정을 짓지 말라고. 슈타인호프. 이 인원에서 전투상세보고라고 하면 예의 이제르론 요새의 병행추격을 생각난단 말이지. 아마 슈타인호프도 동감일 것이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다. 그 사건으로 내 인생이 잘못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병력이 적다는 점도 있지만, 꽤나 색적에 고생했구먼.”

  “예.”

  “페잔 정보가 도움이 되지 않다면 현장에서 정보수집을 할 수밖에 없다. 색적에 힘을 들여야 한다는 건 알겠네. 군무상서, 사령장관도 같은 의견이다.”

 

  슈타인호프의 말에 에렌베르크, 뮈켄베르거가 끄덕였다.

  “그럼.”

  “음, 경의 제안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네. 단지 신형색적기 개발에는 시간이 걸리겠지. 잠시 동안은 발퀴레에 의한 색적부대의 편제, 경공모 건조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

 

  충분하다. 나도 지금 바로 신형색적기가 개발되어 배치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군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문제없다. 다음 전투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진 어느 정도 색적용 부대가 편제되어 있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르다.

 

  에렌베르크가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변할 것 같다. 내가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 되는 건에 대해서군. 뮈켄베르거와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문자 그대로 부사령장관으로도 좋은데 말이지. 함대를 둘로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헌데 이번 승리로 경은 제국원수,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승진하게 되었네.”

  “……죄송합니다만, 부사령장관이 아닙니까?”

  제국군 3장관이 서로 돌아봤다. 어라라. 아무래도 실수가 아닌 것 같지만,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무슨 일이야? 뮈켄베르거는 어떻게 하고?

 

  “발렌슈타인, 아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네.”

  “공작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취임하네. 틀림없어.”

  “…….”

  “실은 난 심장에 이상이 있네. 협심증이다.”

  “설마…….”

 

  설마……, 농담이겠지. 아연해하며 뮈켄베르거에게,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누구 한 명 내 시선에 응하지 않는다. 뮈켄베르거는 웃음을 띠고 다른 두 사람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제도 발작을 일으켰네. 이젠 최전선에서 지휘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머진 공작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

  “그런 표정을 짓지 말게. 나는 공작이 있어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퇴역할 수 있는 거다. 기뻐할 일이겠지. 단지 부사령장관이 된 공작과 함께 싸울 수 없었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각하…….”

 

  뮈켄베르거가 웃음을 띠고 있다. 전사의 웃음이 아니다. 어딘가 패기가, 위엄이 없다. 상냥하고 온화한 봄날의 햇빛 같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다. 이전엔 이런 웃음을 띠는 자가 아니었다…….

 

  함대결전을 바랐다. 승리를 얻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아스타테 성역 회전에서 프리드리히 4세만 쓰러지지 않았다면 동맹군을 끝장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국사상 최고의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렇게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기고, 이기고, 계속 이겨서, 그리고 앞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한 발자국이 닿지 않았다. 실력이 닿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운이 이 남자에게 없었다. 승운이 없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겠지……. 실력이 없었다면 포기하기도 쉽다. 하지만 실력 이외의 문제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면……. 운명을 저주하고 절망을 속삭였을 것이 틀림없다. 이 웃음을 띠우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나는 어찌해도 뮈켄베르거를 정면에서 볼 수 없었다. 오열이 흘러나왔다. 울지 마라. 눈물만은 흘리면 안 된다.

 

  “뒷일을 부탁하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네, 네.”

  “내란을 막기 위해서라곤 해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에 양자로 들어간 건 본의가 아니었겠지.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공작을 도와야 할 내가 공작에게 모든 걸 맡기고 퇴역하게 됐네……. 미안하네. 고생하게 하는군…….”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생하는 데엔 익숙합니다.”

  “그런가……. 익숙한가……. 확실히 그렇군. 공작에겐 고생만 시켰네.”

  나의 밉살스러운 말에도 뮈켄베르거는 상냥하게 웃는다.

 

  뮈켄베르거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장신의 원수가 양손으로 내 어깨를 잡는다.

  “부탁하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예.”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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