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90년 6월 15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각하, 코코아를 드릴까요? "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트류니히트 일행이 돌아가자 발레리가 코코아를 만들어 주었다. 달콤한 향기가 집무실에 퍼졌다. 한 모금 마신다. 솔직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메이드 인 동맹의 코코아도 나쁘지 않다. 페잔에 천도하면 이 코코아를 마실 기회도 늘어나겠지.

 

  레벨로의 정권이 출범하면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동맹에 있을 날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피츠시몬즈 대령."

  "예."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 걸 확인하면 귀국합니다. 슬슬 귀국 준비를 시작해주세요."

  "각 함대에 통지하겠습니다."

 

  발레리가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뭐라 해도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부관이니까. 의원, 군인, 관료, 일반시민이 정보를, 편의를 얻기 위해 접촉하고 있는 것 같다.

  뤼네부르크에게는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지만. 역시 여자니까 가볍게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뤼네부르크의 인덕, 아니 부덕인가…….

 

  돌아가는 건 페잔 경유로 돌아가자. 강화 조약으로 간다르바 성역은 제국령이 되었다. 행성 우르바시의 상황도 봐야만 한다. 앞으로 제국의 최전선은 거기가 될 테니까.

  페잔에 도착하면 루빈스키가 접촉하려 올 것이다. 마음껏 환영해주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니까. 감동의 부자 상봉도 준비해주마. 루퍼트가 기뻐하겠지. 자신의 손으로 루빈스키를 죽일 기회가 찾아왔다고.

  힘내라고, 루퍼트. 상대는 인기가 많다. 경쟁률은 높으니까.

 

  ……납득하지는 않았었지. 반론은 하지 않았지만, 트류니히트 일행은 납득은 하지 않았다.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걸로 황제권력을 검사하게 한다. 이상은 그렇겠지. 제국에서도 리히터, 브라케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지. 어떤 정치 제도도 운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의회제 민주주의 같은 걸 도입하면 혼란이 일어날 뿐이겠지.

  인정되는 건 지방자치까지다. 행성 단위라면 인정해도 좋다. 단 제약은 걸어 두겠지만.

 

  라인하르트는 통치에는 공평한 세금 제도와 공평한 재판이 있으면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덧붙이자면 충분한 식량과 인프라가 정비되면 완벽하겠지.

  국민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할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의회제 민주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인류는 민주제도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 판단력이 없는 아이에게 대량살상무기의 스위치를 맡기는 짓은 해선 안 된다.

 

  중요한 건 주권자인 황제의 권력을 제한하는 일이다. 이건 헌법 제정으로 실행하면 된다. 그리고 정치 계급을 고정하지 않는 것. 고정하게 되면 내부적으로 특권계급화하여 부패하기 쉽다. 그건 문벌귀족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항상 새로운 피를 넣는 것으로 통치 계급에 유연성과 혁신성을 가지게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브라케나 리히터가 평민 계급을 대표하는 식으로 정권에 참가하고 있다. 문제는 없다.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지금부터겠지. 어떤 제도로 유연성과 혁신성을 유지, 운용할 것인가.

 

  의회라는 것은 정부 각료 후보자의 인재풀이기도 하지만, 그걸 만들지 않는다면 그걸 대신할 기관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추밀원이다. 황제의 고문관으로 조직되는 자문기관, 추밀원을 설립한다. 거기에는 관료, 군인, 재계인, 그리고 지방자치에서 성과를 올린 정치가를 황제 고문관으로 참가하게 한다. 그에 따라 인재풀로 운용한다…….

  세습이 아니니까 특권계급도 되기 힘들 것이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말해 볼까. 할아범도 의회제 민주주의에는 반대였다. 어느 정도 나하고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헌법 제정도 포함해 상담해보자.

  뭐라 해도 이런 종류의 문제는 이상주의자에겐 맡길 수 없다. 할아범과 같은 방심할 수 없는 능구렁이의 생각이 가장 참고가 된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묘하게 만나고 싶어졌다.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만…….

 

 

 

우주력 799년 6월 2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가버렸는가? 호안."

  "그래. 가버렸지. 자네에게 안부를 전하더군."

  "……그런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는데……."

  "업무가 우선이다. 그건 트류니히트도 이해하고 있어."

  발렌슈타인 원수가 제국으로 귀환 길에 올랐다. 트류니히트도 거기에 동행하고 있다. 하이네센에선 트류니히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다.

  지금도 최고평의회 빌딩 앞에서 시위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빌딩에서 둘이서 함께 보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겠지.

 

  "호안, 트류니히트가 잘 해줄 거라 생각하나? "

  "글쎄. 어떨까. 상대는 꽤나, 아니 무척이나 강적이야."

  그 회담에서 알게 된 것, 그것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군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꽤나 정치적인 식견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명확한 국가 비전을 가지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신뢰가 두텁다는 것도 군인으로서의 능력만이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능력도 인정 받은 거겠지. 아마도, 앞으로의 제국은 그가 이끌게 될 것이다…….

 

  "지난 회담이지만. 나는 굳이 의회의 설치를 제안해봤다. 그를 화나게 만들고 싶었던 거지. 화를 낸다면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보였나? "

  옆에 앉은 호안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꽤나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인간불신이 강한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망명자를 중용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아. 개인은 신용해도 집단, 아니 군중으로서의 인간은 신용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민주공화정 같은 건 논외겠지."

  그렇군. 군중인가. 집단이 되면 인간은 부화뇌동하기 쉬운 특성을 가진다.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는 루돌프의 재래라고 생각하네. 루돌프도 대중은 믿지 않았지. 일부의 엘리트가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돌프와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의 강약, 냉철함이겠지."

  "……루돌프 만큼 자신을 과신했다면? "

  호안이 고개를 저었다.

  "찬탈을 도모했을 거다. 그리고 냉철함을 잃으면 루돌프 그 자체가 되겠지."

  "……그럼 지금 이대로라면? "

  이번엔 쓴웃음을 띄웠다.

  "전제군주제 국가의 유능한 집정관이 되겠지. 어차피 어찌 되든 우리들에겐 위험한 상대다."

  한숨이 나왔다. 호안이 소리 내어 웃었다. 어째서 웃는 걸까?

 

  "트류니히트도 고생이겠군."

  "각오한 바겠지. 애초에 새로운 국가 건설이다.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는 것 아닐까. 바라던 바는 아니라고는 해도."

  "……그렇겠지. 저건 근본적인 낙천가, 아니 향락주의자니까."

  "너무하는군."

  호안이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오히려 큰일인 건 우리들이겠지"라고 걱정하는 듯이 말했다. 거기에 관해선 완전히 동감이지만, 나를 걱정하는 건가?

 

  "호안, 해야하는 일이라면? "

  "일단 대사관의 설치. 그리고 제국으로 보낼 대사, 그리고 실무진의 인선이로군. 그리고 영토가 축소되었다. 이주희망자는 동맹령 내에 거두어 들여야만 해. 그 준비로군."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고맙네 호안, 성가신 안건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간단한 안건도 넣어줘서, ……정말 고마워.

 

  제국과의 강화 조약으로 이제르론 방면, 페잔 방면의 영토를 꽤 많이 제국에 할양하게 되었다. 하기야 본래 변경 성역이라 불렸던 지역이다. 발전도 없고 인구도 적다. 동맹 경제에 대한 영향은 적을 것이라는 건 이미 계산이 끝났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짐덩이가 사라져서 몸이 가벼워졌다고 해도 좋다. 지방 양여세도 적어지겠지. 하지만 그것도 약자 잘라내기라고 평판이 나쁘다.

 

  "게다가 군축과 인원 감축. 실업자가 넘쳐나겠군."

  "공공사업도 대규모로 행한다. ……군인 천하에서 건설업자의 천하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권 다툼이 발발하겠지. 하지만 전사자가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그에 대해 말하자 호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실업자는 군인뿐만이 아니야. 군 관계의 기업도 마찬가지다. 군수에서 민수로 전환이 순조롭지 않으면 경영이 기울겠지."

한숨이 나왔다.

  "호안, 밝은 화제는 없는 건가? "

  "아까 자네가 말했잖나? 이 이상 전사자는 나오지 않는다고."

  "고맙네. 알려줘서. 잊고 있었어. 끔찍한 화제가 너무 많아서."

  전도다난이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제국력 490년 7월 1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폐하로부터 장미정원으로 오라는 부르심이 있었다. 서둘러 장미정원으로 가자 폐하는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과 함께 있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자 편히 있으라는 말씀이 있어 일어서는 것이 허락되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

  "음. 조금 상담할 것이 있네. 발렌슈타인이 돌아온다고 하더군."

  "예. 페잔 회랑을 거쳐 돌아옵니다. 늦어도 10월이 되기 전에 돌아오겠죠."

  내가 답하자 폐하가 끄덕였다. 헌데,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이 계신다는 것은 공적인 일이 아니군. 사적인 일인가.

 

  "그 뒤에 천도인가. 내년일까?"

  "예. 페잔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문제가 없다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건국인가."

  "예. 그렇게 됩니다."

  폐하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황제도 새롭게 하는 게 어떠한가? "

  "예? "

  황제도 새롭게 한다? 잘못 들었는가?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헌데…….

 

  "퇴위를 생각하고 있네만."

  "폐하! "

  "아버님!" "

  나와 황녀 분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폐하가 소리 높여 웃었다. 퇴위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폐하."

  "장난이 아닐세. 짐은 진심으로 아말리에에게 황제위를 물려주려 생각하고 있네."

  아말리에 님이 "아버님! "하고 소리를 높였지만 폐하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이다.

  "제국이 변한다는 걸 여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선 세대교체야말로 가장 적당하겠지. 게다가 죽을 때까지 황제를 맡는 것도 고생이야. 이제 30년 이상 황제를 맡고 있던 걸세. 이미 충분하겠지."

 

  30년 이상……. 제위 기간은 역대 황제 중에서도 상위에 들어가는 건 틀림 없다. 지치신 건가……. 하지만 퇴위라니, 지금까지 퇴위하신 분은 없었지만…….

  "하지만 아버님. 저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의 아내였습니다. 본의가 아니긴 했습니다만, 남편은 반역자가 되었습니다. 그 배우자였던 제게 황제가 될 자격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폐하가 고개를 저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리텐하임 후작도 어쩔 수 없이 반역자가 되었지. 그 일은 너희들에게 어떠한 흠도 되지 않아. 하지만 확실히 그 일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자도 있겠지. 그렇기에 짐이 건재할 때에 황위를 넘겨주는 거다. 새로운 제국의 황제에 어울리는 기량을 가진 자로서 말이지."

  과연, 폐하께서도 에르빈 요제프 전하에 대한 걸 우려하고 계신 건가……. 그렇게 되면 단지 반대하기만 할 수는 없겠군.

 

  "황송합니다만 폐하, 폐하의 생각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신하로서도 어찌 판단하면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도 같은 마음이시겠지요."

  둘에게 시선을 향하자 두 사람 모두 끄덕였다.

 

  "퇴위는 페잔에 천도한 뒤가 될 걸세. 시간은 충분히 있어. 천천히 생각하는 게 좋겠지. 발렌슈타인에게도 상담해 보게."

  "예, 반드시. 그렇기에 부탁할 것이 있사온데."

  "음. 무엇인가?"

  "그건 비밀로 하고 싶기에. 밖에 흘러가면 다들 혼란할 것입니다."

  폐하가 "알겠다"라고 끄덕였다. 그걸 계기로 어전에서 물러가는 허락을 받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에 빠져선 안 된다. 냉정해져야지.

  ……확실히 하나의 구분 점이긴 하다. 병합까지 앞으로 30년이라고 하지만 제국은 페잔, 자유행성동맹을 물리치고 사실상 우주를 통일했다. 천도에 의해 과거의 제국과 결별하여 신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한다. 누구나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이해할 터다.

  그걸 실적으로서 퇴위, 그야말로 폐하야말로 은하제국 중흥, 아니 신제국 건립의 명군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건국을 행하게 된다면 여러가지 문제도 나올 것이다. 아말리에 님보다도 폐하가 황제인 편이 좋지는 않을까. 황제로서의 무게는 아말리에 님으로는 폐하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페잔인, 동맹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불안이군.

 

  황제 계승에 혼란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폐하가 황제에 머무르고 아말리에 님을 황태녀로 한다는 수단도 있겠지. 실무를 황태녀 아말리에 님이 행하고 폐하가 후견을 본다. 다들 안심할 것이다.

  ……발렌슈타인은 어찌 생각할까. 퇴위에 찬성할까, 시기상조라고 반대할까.

 

  녀석의 문관 전직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부의 혼란은 피해야만 할 것이고, 문관들의 혼란도 피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퇴위 문제와 연동될 법한 사태는 좋지 않다. 혼란이 더욱 가중될 테지.

  역시 아말리에 님을 황태녀로 하고 발렌슈타인을 국무상서로 하는 게 좋을까. 그리고 시기를 봐 아말리에 님이 황제에 즉위, 발렌슈타인을 재상 취임, 이라는 것이 좋겠지…….

 

 

 

제국력 490년 8월 5일. 페잔,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페잔에 도착하자 키슬링이 보임러를 데리고 찾아왔다. 아무래도 이쪽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천도 전에 대청소라도 하는 거겠지. 함교가 아니라 개인실에서 대화하기로 했다.

  참가자는 나, 키슬링, 보임러, 발레리, 그리고 트류니히트. 꽤나 호화로운 면면이다. 트류니히트 군, 자네에게 제국의 뒷세계를 보여주도록 하지.

  그러니 다들, 그런 수상쩍은 표정으로 트류니히트 군을 보지 말아주게. 그는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그리고 자네들의 소중한 친구도 될 수 있겠지.

 

  다행히 트류니히트는 좌담의 명수였다. 긴장이 풀어지기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나와 키슬링이 편하게 대화하는 것에 트류니히트는 놀란 모양이다. 기억의 메모에 키슬링을 중요인물로 기록했겠지.

  "에리히, 루빈스키가 죽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래. 누군가가 그를 죽였다는 건 알고 있어."

 

  일주일 정도 전에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페잔의 은신처에서 죽은 것이 발견되었다. 예의 정부 소유의 비밀지하 셸터의 더욱 밑에 숨겨져 있던 은신처에서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루빈스키의 호위도 함께 살해된 걸 보면 범인은 단독범은 아닌 것 같다. 유감이로군. 루퍼트. 부자 상봉은 물 건너 갔어. 복수도.

 

  "훌륭한 솜씨야. 귄터."

  내가 내가 놀리자 키슬링이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이 건에 헌병대는 연관되어 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키슬링과 보임러를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의문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보다도 트류니히트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재밌었다. 트류니히트 군, 발레리를 보고 배우게.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있잖아.

 

  "헌병대가 아니야. 그럼 지구교인가? 혹은 페잔인? 배신 당한 것을 분노하여 루빈스키를 죽였는가."

  "범인은 루빈스키를 꽤나 집요하게 괴롭힌 뒤에 죽였습니다. 현장에 남은 지독한 흔적을 보면, 참상이라고 해도 좋겠죠."

  보임러가 나의 추리를 인정했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꽤나 처참했겠지. 구토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숨어있는 루빈스키를 찾아내 죽였는가. 그 은신처를 찾아내는 게 아마추어 집단에게 가능할까? 그야 무리겠지. 그렇다면 지구교인가. 골수에 사무친 원한으로 필사적으로 찾아낸 거겠지. 그리고 루빈스키를 죽일 때는 너무 기쁜 나머지 실컷 저지르고 말았다는 거다.

  ……예상 외의 결말이지만 나쁘지 않다. 제국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끝난 걸 생각하면 만만세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구교에 감사했다. 세상사 재밌네. 신기한 일로 가득 차 있어.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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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5월 25일. 하이네센. 율리안 민츠.

 

  예상 외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

  뭔가 시끄럽다, 라고 생각하며 밖을 보니 고급 지상차와 장갑차가 관사 앞에 잔뜩 모여 있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지금, 원수와 부관인 피츠시몬즈 대령, 양 제독, 그리고 나, 4명이 홍차를 마시고 있다.

  사실은 나 같은 건 사양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발렌슈타인 원수가 자리를 초청해주었다. 굉장히 기쁘다. 원수에게 감사했다.

 

  넷이서 홍차를 마시고 있지만, 무척이나 고요하다. 조금 긴장된다. 컵을 접시에 두려고 하자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위험하다. 굉장히 소리가 울린다. 고개를 드니 원수가 싱글벙글하고 있다. 부끄러웠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양 제독, 제독은 30년 후의 통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탄 없는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온화한 어조였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혼란을 막는다는 의미로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몹시 교활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엥, 그런 말을 해도 좋은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양 제독은 조용히 홍차를 마시고 있다. 일부러 화를 부채질하려한 걸까나. 하지만 발렌슈타인 원수와 피츠시몬즈 대령은 서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확실히 몹시 교활하다고 보여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진심은 혼란을 막고 싶다, 는 데에 있습니다. 제국과 동맹은 너무나도 상대방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0년 동안 무지에서 오는 적의나 반감, 멸시를 없애고 싶습니다."

  "……."

 

  "가족을 전쟁으로 잃은 건 동맹 시민만이 아닙니다. 제국에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노나 슬픔이 사라지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30년 평화가 계속되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인류 사회를 통일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굉장한 열기를 느꼈다.

 

  "제국에 의한 통일입니까?"

  제독이 질문했다. 조금은 비아냥처럼 들렸지만, 제독은 비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원수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제국에 의한 통일입니다. 하지만 제국인만이 만드는 제국은 아닙니다. 앞으로 제국은 페잔으로 천도합니다."

  "천도……."

 

  양 제독이 중얼거렸다. 페잔으로 천도, 굉장한 이야기를 들어버렸지만 좋은 걸가. 양 제독은 그렇다쳐도 나에게까지 말해버리는 건.

  하지만 피츠시몬즈 대령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거다. 이 사람, 동맹의 망명자라고 들었지만, 굉장히 신뢰 받고 있는 것 같다.

 

  "페잔에 자리를 잡고 제국과 동맹을 통치한다. 정치적인 입지에 손색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중요하고, 군사적으로는 페잔 회랑을 직접 통치하게 된다. 이 이상 신제국의 수도로서 어울리는 장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동의합니다."

  양 제독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제국을 만든다. 제국인만이 아닙니다. 페잔인, 동맹인도 참가하도록 합니다."

  굉장하다. 망연하고 있으니 원수가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장난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트류니히트 전 의장도 참가합니다."

  양 제독과 같은 검은 눈동자. 그리고 빛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부럽다고 생각했다.

 

  "어떤가? 민츠 군. 자네도 페잔으로 오지 않겠어? 새로운 국가 창립에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

  "네? 하지만 저는 아직 아이라……."

  갈팡질팡하면서 답하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명랑하게 웃었다.

 

  "제국은 30년 걸려 나라를 만든다. 아니, 실제로는 더 오래 걸리겠지. 통일이 될 때까지 30년이다. 자네는 계속 아이인 채일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원수가 또 낭랑하게 웃었다. 뭔가 능숙하게 조종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뺨이 뜨거워졌다.

 

  "페잔에서 공부하면서 세상의 움직임을 본다. 그리고 자네의 힘을 시험해보지 않겠나?"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양 제독과 떨어지는 건…….

  "양 제독과 떨어지는 건 불안할까?"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내 표정이 그렇게 읽기 쉽나? 조금 분하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양 제독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떻습니까? 양 제독. 당신도 페잔에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환영하겠습니다."

  "……."

  "동맹에서 떨어지는 건 신경이 쓰이십니까?"

  "다소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약간 망설이면서 제독이 답하자 원수가 응응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과 동맹은 인적 교류를 적극적으로 도모합니다. 그 안에는 관료들도 포함됩니다. 동맹의 관료들은 제국에서 국가 건설에 참가하게 될 거고, 동맹으로 간 제국의 관료들은 동맹의 사회제도를 충분히 배우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견식을 높이면 새로운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겠죠. 그걸 알게 되면 동맹 시민도 새로운 제국에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목소리가 밝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책략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눈 앞에 있는 원수에게선 성실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편견이나 교만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신기한 느낌이다. 이런 사람이 제국에 있다니 조금 믿겨지지 않는다.

 

  양 제독은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이렇게나 열심히 초대하고 있는데……. 양 제독을 봤다. 제독은 표정이 없다. 아마도 마음을 눌러 죽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발렌슈타인 원수가 나를 페잔으로 초대한 것도 양 제독을 권유하기 위한 것일 터다. 조금 분하다. 나도 이런 식으로 권유 받고 싶다.

 

  "양 제독, 외부에 있는 것만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야 비로소 바꿀 수 있는 겁니다. 평론가로 만족할 수 있다면 외부에 있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없다면 당신은 불평가가 됩니다. 장래성이 있는 젊은이를 키우는 데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 제독의 입가가 경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내고 있는 건가?

 

  발렌슈타인 원수와 피츠시몬즈 대령이 돌아갔다. 양 제독은 결국 원수에게 대답을 하지 않았고, 원수도 무리하게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양 제독은 계속 생각에 잠긴 채였다. 나도 대답을 묻지 않았다. 어떻게 되는 걸까…….

 

 

 

제국력 490년 5월 25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양에게 갔다가 호텔에 돌아오니 그라이프스가 와 있었다. 군복이 아니었다. 동맹 시민이 입을 법한 정장을 입고 있다. 온화한 표정의 참모 타입의 남자다. 부자연스럽게는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호출에 응해준 것을 감사하자 그라이프스가 승전을 축하해주었다. 아부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 점이 느낌이 좋았다.

 

  "동맹군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내가 묻자 그라이프스가 얇은 미소를 보였다.

  "권유는 받았습니다만 거절했습니다. 정보 제공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응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겠죠. 여기에 사는 이상 집세 정도는 내야 하니까요."

  "집세입니까. 뭐, 그렇지요."

  이번엔 쓴웃음을 띄웠다. 곤란하군. 별로 재미 없었나?

 

  "그라이프스 대장이 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의뢰로 귀족연합군에서 이탈한 건 알고 있습니다. 꽤나 괴로운 일이셨겠죠. 그 마음,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그라이프스도 고개를 숙였다. 좀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명예를 버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의뢰에 응한 것이다.

  나라면 할 수 있었을지……. 어지간한 신뢰 관계로는 불가능하겠지. 그라이프스에게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점, 그것만으로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어리석은 인물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덕분에 엘리자베트 님, 사비네 님을 무사히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폐하도, 그리고 아말리에 님, 크리스티네 님도 그 점을 굉장히 기뻐하고 계시고, 대장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도 발할라에서 감사하고 계시겠죠."

  내가 말하자 그라이프스가 눈을 감고 뭔가를 참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최후의 최후에서 도망치는 걸로 도움이 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흘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우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감겨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위로는 하지 않는다. 그걸 할 수 있는 자는 발할라로 가버리고 말았으니까.

 

  "이 후에 비준서를 교환하면 강화가, 그리고 제국에 의한 통일이 약속 됩니다. 제국은 그걸 축하하기 위한 특사를 보낼 예정입니다. 그라이프스 대장이 제국으로 돌아가도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

  "모두들, 대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4세, 부인, 따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리자 그라이프스가 눈을 떴다.

  "……감사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묘 앞에서 보고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라이프스는 성실하고 사려 깊은 자다. 제국에 돌아가면 시종 무관에라도 추천해보자. 그리고 궁중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유족 곁에 있도록 한다.

  분명 좋은 시종 무관이 될 터다. 그녀들을 성심 성의껏 지켜주겠지. 프리드리히 4세도 안심할 것이 틀림 없다.

 

  서로 대사를 교환하게 되면 다른 망명자도 돌아오게 되겠지. 고향에 돌아가면 얌전해질 터다. 괜히 있을 곳을 없애버리면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것보다는 좋다.

  하지만 란즈베르크 백작 알프레드, 녀석은 아니다. 반드시 잡아서 모든 걸 말하게 만든다. 그 뒤에 어떻게 할지는 피해자들에게 맡기도록 하자. 딸을 납치당한 어머니. 남편을, 아버지를 잃게 된 그녀들에게…….

 

 

 

우주력 799년 6월 1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호안과 함께 최고평의회 의장실로 향하자 트류니히트가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었다.

  "축하하네. 레벨로. 언젠가는 자네가 최고평의회 의장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나와 자네 사이에 인수인계를 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이런 시기에 최고평의회 의장이 되는 게 축하할 일이라곤 생각하기 어렵군."

  "그렇게 말하지 말게. 자네들 중 한 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야."

  뭐, 그것도 그렇지. 호안을 돌아보자 어깨를 으쓱이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내가 의장으로서 제국과의 절충을, 호안이 의회대책을, 옳았던 걸까, 이 선택은…….

 

  강화 조약의 비준 후, 트류니히트가 의장 사임을 표명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의장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려나 생각했지만, 거의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간단하게 내가 의장이 되는 걸로 정리 됐다.

  30년 자유행성동맹은 존속한다, 라고 해도 제국의 보호국으로서 30년이다. 제국의 태도가 불투명한 지금, 의장이 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이후, 제국의 태도가 온건하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면 의장직은 매력적인 자리가 되겠지만, 각박하다면 매력이 없는 자리가 된다. 후보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게 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인수인계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것이다. 두세 마디라곤 할 수 없지만 단시간에 끝났다.

  "그럼 우리들의 새로운 주인에게 가보도록 할까? 인사를 해야만 하겠지. 응, 큰일이구만. 우리들은 동맹 시민 외에 제국이라는 주인을 가진 거다. 이건 양다리라고 해야 하려나?"

  호안이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다.

 

  "호안, 즐겁다는 듯이 말하지 말아주게."

  "안 되는가? 나는 꽤나 기대 된다네. 자네도 만나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건 그렇지만 조금 더 좋은 입장에서 만나고 싶은데."

  내가 투덜거리자 트류니히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욕심이 과하군. 레벨로. 나에 비하면 훨씬 괜찮은 입장이겠지."

  트류니히트의 말에 호안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니겠지. 두 사람 모두. 하지만 트류니히트의 입장보다 괜찮은 건 틀림 없다.

 

  셋이서 호텔 캐프리콘으로 향하자 바로 발렌슈타인 원수의 집무실로 안내 되었다. 조금 안심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은, 저쪽은 이쪽에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 같다.

  방으로 들어가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웃음을 띄며 마중해주었다. 검은 망토와 군복, 하지만 온화한 표정에서 볼 때 군부의 실력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서오세요. 트류니히트 의장. 그쪽 두 사람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미 전 의장입니다. 원수. 제 후임이 되는 죠안 레벨로와 그를 보좌할 호안 루이입니다. 제 정권에선 재정위원장과 인적자원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나와 호안을 보고 있다. 이상한 표정이다. 확인하는 듯이 우리들을 보고 있다. 소파에 앉아 홍차를 마시면서 환담했다. 홍차를 내온 부관은 방에서 나갔다. 방에는 우리들 네 사람밖에 없다. 3 대 1, 신용 받고 있다는 걸까.

 

  "제국으로선 동맹을 몰아 붙일 생각은 없습니다. 무리 없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무리 없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통일 그 자체가 동맹을 몰아 붙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호안이 묻자 발렌슈타인 원수는 끄덕였다.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동맹 정부가 뛰어 넘어주길 바랄 수밖에…….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제국이 고의로 동맹을 몰아 붙이는 일은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

  "……."

  고의인가. 고의로 몰아 붙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시민은 폭발하고 혼란이 일어난다. 혹은 강제적으로 통일이 빨라질 가능성도 있겠지. 대립이나, 원한이 남은 채 통일인가. 확실히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불만족스럽습니까?"라고 물었다. 불만족인가. 이쪽 입장을 배려하고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대답하겠지.

 

  "자유행성동맹은 루돌프 대제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존재했습니다. 지금의 제국은 루돌프 대제의 악습과 유산을 청산하고 있습니다. 문벌귀족은 힘을 잃고 열악유전자 배제법은 폐지되었습니다. 동맹 정부가 말하는 포학한 은하제국은 과거로 사라진 겁니다. 안티 테제인 자유행성동맹도 그 존재 의의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존재의의입니까. 말씀하시는 의미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감정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30년을 사이에 둔다는 겁니다. 지금 바로 납득할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만만찮다고 생각했다. 트류니히트의 저항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같은 생각인 거겠지. 호안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국체는 어떻게 됩니까? 주권은……."

  "물론, 황제 주권입니다. 레벨로 의장. 그렇다고 해서 황제는 모든 것이 허락된다는 형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헌법을 만드는 걸로 제국과 황제, 정부, 신민의 관계를 규정하고 칙령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시민의 권리를 중시하는 동맹인의 견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젊은이는 제국을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이행시키려 하고 있는 건가.

  "의회를 만들 생각은 없으십니까? 황제권력의 검사 기관으로서."

  호안이 제안하자 원수가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의회제 민주주의를, 특히 선거에 의한 의회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무리입니다. 도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원수의 눈이 차갑게 우리들을 응시하고 있다. 아까 전까지 보였던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냉철한 눈과 분위기다. 이게 이 자의 본질이겠지. 그리고 이 자는 입헌군주제는 목표로 하고 있어도 의회제 민주주의에는 부정적이다.

 

  "30년 후, 통일국가 신제국에서 반제국 감정에 넘치는 구 동맹 시민과 반동맹 감정에 넘치는 구 제국 신민이 입에서 거품을 물며 다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인류가 품고 있는 정치 제도에 의한 대립을 해소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위해 30년 걸려 통일하고자 합니다. 그 점을 이해해주세요."

  "……."

 

  "정치제도에 고집하는 건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인류는 150년이나 그것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고 많은 전사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저는 샨타우 성역에서 1,000만 명 이상의 동맹 시민을 죽였습니다. 이번 원정에선 가능한 한 전사자를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피를 적게 흘려 적대감과 증오를 부채질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당신들로선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시겠습니까?"

  "……."

 

  우리들은 답할 수 없었다. 자유행성동맹은 앞으로 30년의 수명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동맹은 국가로서의 명운을 다 써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제도, 이상은 남기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헛된 고집인 걸까?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사상이 인간의 대립을 낳는다. 그리고 서로 죽이게 되는 거라면……. 우리들 인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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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5월 3일. 하이네센. 율리안 민츠

 

  드디어 하이네센에 돌아왔다. 나는 어젯밤, 양 제독은 3일 전이다. 우주함대가 항복하고 양 제독들이 포로가 된 건 수송선 안에서 알았다. 무척이나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하이네센으로 돌아와 양 제독과 만났을 때엔 정말로 안심했다.

  제국군은 동맹이 항복한 시점에서 포로를 해방했다는 것 같다. 동맹정부는 항복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양 제독과 떨어졌을 때만큼 불안하다 생각하진 않는다.

 

  「안녕하세요. 율리아 크라운입니다. 어젯밤 늦게 제국과의 강화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부가 발표했으므로 알려드립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있으니 TV전화에 보이는 아나운서가 꽤나 흥분한 표정으로 강화조약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건 아나운서 혼자가 아니다. 함께 있는 캐스터, 패널들도 흥분하고 있다. 그리고 양 제독은 조용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

  ●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다.

  ●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은 전쟁 상태를 종결한다.

  ● 은하제국, 그리고 자유행성동맹은 인류가 양분된 상태를 비정상인 것으로 인정하며 30년 후에 통일국가를 창설한다.

  ● 자유행성동맹은 인류통일을 위해 모든 면에서 협력한다.

 

  "30년 후에 통일인가요?"

  "응. 그렇다는 것 같네."

  내가 말하자 양 제독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나운서의 말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식탁에 아침 식사를 옮기는 와중에도 인적교류, 경제적교류의 촉진, 영토 할양, 군축, 그리고 안전보장비를 제국에 지불한다는 조건이 낭독되었다.

 

  "어째서 바로 통일하지 않는 걸까요?"

  "그러게. ……율리안은 3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을까?"

  "30년 후인가요? ……지금의 양 제독보다도 15살 정도 연상이 되네요. 명실상부한 아저씨인가요. ……조금 생각하기 어렵네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양 제독이 "그거야"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동맹이 사라지는 게 되면 동맹시민은 강하게 반발하며 항의하겠지. 동맹은 혼란에 빠질 것이 틀림 없어. 하지만 30년 후가 되면 그다지 현실감이 없지. 특히 고령자에게 있어선 자유행성동맹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수명이 다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항의를 할까?"

 

  으음, 어떨까? 조금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말하자 양 제독이 "그렇지"라고 말하며 끄덕였다.

  "게다가 제국은 동맹을 국가로서 인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자유행성동맹은 더 이상 반란군이 아니야. 그런 부분에서도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그렇군요. 확실히 그래요."

 

  "변함 없이 만만찮은 상대다. 제국이 두려워하는 건 동맹시민이 하나로 뭉쳐 반제국운동을 일으키는 거겠지. 그걸 막고 있어. 동맹시민을 혼란시켜 분단시킨 뒤 각개격파한다……."

  "전쟁 같네요."

  양 제독이 크게 끄덕였다.

  "그 말대로야. 외교는 형식을 바꾼 전쟁이지. 율리안."

  그렇구나. 아직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거다. 그럼 일단은 보급을 섭취해야겠지…….

  "식사하도록 하죠. 제독."

 

 

 

제국력 490년 5월 7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행성 하이네센에선 매일 반제국, 강화조약 비준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최고평의회 빌딩, 호텔 캐프리콘, 하이네센 기념 경기장 등에서.

  하지만 어느 곳이든 참가자도 그렇게 많지 않고 기세도 오르지 않는다. 역시 30년 후에 통일한다는 것, 다시 말해 제국은 동맹시민의 불안이 해소된 뒤에 통일하려 하고 있다. 동맹시민을 배려하면서 통일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매스컴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 비준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제국은 지금 당장 동맹을 멸망시키고 통일하려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상황은 지금 이상으로 나빠지겠지. 시위 참가자는 그 부분을 알고 있느냐며……. 그 때문에 시위 참가자로부터는 차라리 지금 당장 동맹을 멸망시키겠다고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라며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 원수 각하는 성격이 음험하다. 어째서 이렇게나 시커먼 걸까.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우주를 통일하는 건 불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그 원수 각하는 개인실에서 파자마 위에 가운을 입고 홍차를 마시며 재미 없다는 듯이 TV를 보고 있다. 어제 열을 내고 드러누웠었다. 오늘 체온은 돌아왔지만 업무는 금지. 요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뤼네부르크 대장이 설득했다.

  당연하지만 원수가 열을 내고 쓰러진 건 함구령이 떨어져 공표되어 있지 않다. 함대사령관들조차 모른다. 이런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어떤 소란이 일어날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뤼네부르크입니다"라는 목소리와 함께 대장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떠십니까? 몸 상태는."

  "보는 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한가하네요."

  재미 없다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에 뤼네부르크 대장이 쓴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도발하지 말아주세요. 대장. 보급 장교의 착오로 코코아 적재를 적게 한 탓에 떨어졌단 말이에요.

 

  "외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뭐, 시위대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선 경비에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기야 방심은 금물입니다만."

  뤼네부르크 대장에 대답에 발렌슈타인 원수가 "그런가요"라고 말하며 끄덕였다.

 

  "문제는 이제부터겠죠. 기한은 3주 간, 조금씩 기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게 동맹시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반발할 것인가. 동맹시민이 30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로 알게 되겠지. 지금은 아직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30년 후의 통일, 지금으로선 실감이 나지 않겠죠. 솥에서 개구리가 천천히 삶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려나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목이 죄어지겠죠. ……역시나 심술이 궂습니다."

  뤼네부르크가 복잡한 웃음을 흘리자 발렌슈타인 원수가 뷸쾌하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걸 보고 대장이 더욱 소리 높여 웃었다.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30년 걸려 합병 준비를 합니다. 거기에는 동맹 시민, 페잔 시민도 참가하게 할 겁니다. 겉모습만 보면 합병에 의한 통일입니다만, 이건 새로운 제국, 아니 국가의 건설입니다. 그건 트류니히트 의장에게도 말했죠."

  조금 빠직하고 화난 듯하다. 약간이지만 귀엽다. 진심이겠지만 동맹 시민이 이해하기는 어려우려나.

 

  "뭐 우리들은 각하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만, 동맹 시민에게 있어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겠죠. 너무 간단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있으니까요. 강화조약은 불공정한 것이 당연. 동맹이 소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헌데 이래서야……."

  다시 뤼네부르크 대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쯤 해주지 않겠습니까. 대장 각하. 원수 각하께서 표정을 찡그리고 계십니다. 나중에 고생하는 건 다름 아닌 나니까…….

 

 

 

우주력 799년 5월 8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은 호텔 캐프리콘으로 가봤다. 굉장히 경비가 엄중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뭐, 들어갈 생각도 없었지만.

  호텔 주변에도 많은 숫자의 제국군 병사가 있어 심각한 표정으로 경비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발렌슈타인 원수가 머물고 있으니까.

 

  경비병 앞에서 시위대가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그리 박력은 없었다. 저 정도라면 그냥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호텔 캐프리콘에 머물고 있는 건 발렌슈타인 원수 외에는 경비병과 원수의 막료, 몇 명의 함대사령관과 그 막료뿐인 것 같다. 다른 사령관들은 다들 우주에 있다고 들었다.

 

  그 때문일까, 하이네센에선 그리 제국군의 병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점령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기에 때때로 점령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다.

  의회의 강화조약에 대한 논의을 TV에서 방송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하이네센은 점령 중인 게 맞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친구들도 다들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TV에서 말한 걸 들은 거지만, 그것도 제국의 책략 중 하나라는 것 같다. 말하자면 강화조약을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적은 숫자의 병사만을 둔 것이라던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뭐라 해도 조약 상대가 우주에서 가장 교활한 발렌슈타인 원수니까.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들은. 강화조약은 비준되는 걸까? 30년 후에 합병이라니 정말 그렇게 되는 걸까?

  23일이 의회 토의 최종일이지만, 의회는 강화조약을 승인하는 걸가. 아니면 기각하는 걸까. 기각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주력 799년 5월 12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경악했다. 발렌슈타인 원수 주위에는 동맹의 망명자가 있다는 것 같다.

  호텔 캐프리콘을 지키고 있는 건 제국의 장갑척탄병이지만, 그 지휘관인 뤼네부르크 대장은 동맹에서 망명한 자라고 한다. 제국풍의 이름이니까 눈치 채지 못했다.

  정확히는 어린 시절에 제국에서 동맹으로 망명한 뒤 어른이 되고서 제국으로 역 망명했다고 한다. 동맹에선 로젠리터의 제11대 연대장이었다.

 

  지금은 장갑척탄병총감의 지위에 있으며 제국의 육전부대의 탑이라던가. 믿을 수 없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호위를 맡기다니.

  동맹에선 망명자는 결코 환영 받지 못한다. 출세라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뤼네부르크 대장에 대한 발렌슈타인 원수의 신뢰는 무척이나 두텁다고 한다. 그 증거로 제국에서 대장까지 출세하고 있다.

 

  부관인 피츠시몬즈 대령도 동맹에서 망명한 자다. 부관이라니 측근 중의 측근, 심복이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부관이라고 한다면 제국군의 기밀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부관이 망명자였다니……. 믿을 수 없다. 배신 당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한 걸까? 동맹인에 대한 편간이라든가 없는 걸까? 음모를 좋아하며 교활한 녀석,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것만인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주력 799년 5월 20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 엄마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TV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거리에 나와 쇼핑을 했다고 한다. 서점에서 책을 9권.

  쇼핑은 오늘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슈퍼에서 코코아를 대량으로 샀다고 한다. 원수는 코코아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재고를 전부 털었다고 한다.

  일부러 스스로 구입하지 않아도 좋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TV에선 아무래도 원수 스스로 거리에 나와 동맹 시민의 상태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게 아닐까 하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엄마도 끄덕이고 있었다.

 

  참고로 원수가 구입한 책은 "자유행성동맹 건국사", "은하연방사, 그 시작에서 종언까지", "정치사상의 변천. 은하연방의 종언에서 은하제국의 건국까지", "지워진 목소리, 평화론에 대해 생각한다", "다곤 성역회전기", "올트리치 제독 회고록", "바라트 성역의 개발에 대하여", "성계별 경제 격차와 인구 문제", "군사비 증대와 재정 파탄"

 

  군사 관계의 책일까 생각했지만 역사, 정치, 경제의 책을 샀다. 게다가 "다곤 성역회전기", 라니 제국이 패배한 전쟁의 기록이고 "자유행성동맹 건국사"는……, 괜찮은 건가? 원수의 입장에서. 아니, 강화조약이 비준되면 동맹은 반란군이 아니게 되니까 문제는 없는 걸까?

 

  의회에선 여전히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승인을 요구하고 의원들은 기각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 소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 주변 어른들은 반쯤 포기한 상태다. 의원들은 기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각이 과연 가능할까 라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군대는 이미 항복했고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도 없다. 기각이라니 가능한 거야? 아니, 기각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쪽이 더 걱정이다.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데 거부한다. 그래? 그럼 너네들은 노예, 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전쟁이 사라지니까 좋은 게 아닌가, 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전쟁터가 되는 무서운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라지는 거다.

  게다가 전쟁이 사라지면 개발이 진행되어 삶이 나아진다고 한다. 나는 하이네센에 있으니까 잘 몰랐지만, 지방에선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꽤나 불편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제국이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배신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전쟁에 나가지 않고 끝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어차피 이제는 제국에 이길 수 없으니까 얌전히 강화조약을 승인하고 통일을 향해 준비하는 편이 좋다고.

  민주공화정이 사라져도 좋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져버렸잖아.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다. 그야 패배한 건 확실하니가. 어쩔 수 없는 걸가…….

 

 

 

제국력 490년 5월 24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트류니히트 의장이 비준서를 가지고 왔다. 어젯밤 24시 5분에 동맹평의회는 강행채결로 강화조약을 승인했다. 찬성이 약간 반대를 넘기는 정도라는 미묘한 평결이었다.

  하기야 일종의 사기라는 것 같지만. 의원들은 처음부터 부결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한심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런 사정으로 옥신각신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던가. 아무래도 뒤에선 누가 반대하고 누가 찬성할지 분배하는 문제로 마지막까지 다퉜다는 것 같다.

  정치로 연극을 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비준서는 두 장. 이걸 내가 가지고 돌아가 프리드리히 4세가 서명하고, 한 장을 동맹에 반환한다. 그걸로 강화조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거다.

 

  "발렌슈타인 원수."

  "왜 그러시나요?"

  "저는 최고평의회 의장을 사임하려고 합니다. 동맹에서의 제 정치 인생은 이제 끝난 거라고 해도 좋겠죠."

  "……그렇습니까.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트류니히트는 상처 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단 지금은 애도하도록 하자.

 

  "그래서, 각하의 도움이 되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네. 그렇습니다. 30년 후, 동맹과 제국의 통일을 위한 도움을."

  트류니히트는 진지한 표정이다. 그렇군. 제국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건가. 목적은 권력? 정치가로서의 임무? 혹은 민주공화정일까?

 

  "알겠습니다. 협력을 받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트류니히트가 기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뭐, 좋다. 동맹에 대한 중요한 정보원이라 생각하자. 사용처는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신분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미도 있다. 트류니히트가 혹시 살해 당하기라도 한다면 제국에 협력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되어질 것이다. 이후의 일에도 영향이 나올 것이다.

  그건 그렇고 트류니히트라. 왜일까. 내 주변에는 멀쩡한 놈이 모이질 않네. 뭐, 사람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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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29일. 하이네센, 호텔 캐프리콘. 에리히 발렌슈타인

 

  눈앞의 남자가 한 명 서있다. 이 자가 욥 트류니히트인가. 지금까지 몇 번인가 홀로그래피로 본 적은 있다.

  호감 가는 미소를 한 사람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트류니히트에게도 웃음은 없어도 호감 가는 표정, 분위기를 띄고 있다. 그리고 정장 차림에도 한 치의 빈틈도 없다. 항복한 국가의 원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만만찮구나. 뭐, 간단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트류니히트 의장, 이쪽으로."

  소파에 안내하자 트류니히트는 가볍게 인사하고 소파에 앉았다. 옆 머리 둘레에 희미하게 백발이 있다. 상당히 고생한 거겠지.

  둘이서 마주하는 형태로 앉자 바로 발레리가 음료수를 가져왔다. 홍차다. 코코아는 달콤한 향이 너무 강하니까 말이지. 손님을 대접할 때엔 피하고 있다는 것 같다.

 

  발레리가 떠나고 트류니히트가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메르카츠 원수로부터 동맹시민에 대해선 생명 안전, 재산 보장을 약속하겠다고 들었습니다만. 틀림 없는 것일까요?"

  "물론입니다. 정부 관계자, 군 관계자에 대해서도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의장 각하도 포함해서 입니다."

  "감사합니다."

  트류니히트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전이 보장되어 기쁜 모양이다. 어쩌면 메르카츠가 항복시키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걸까?

 

  "감사하고 있습니다. 트류니히트 의장."

  "?"

  의아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의장이 군대에 항복을 명령해준 것 말입니다. 그 덕분에 무의미한 사상자를 내지 않고 끝났습니다."

  트류니히트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겨우 웃었구만.

  "처음이군요. 그 판단을 칭찬 받은 건."

  목소리가 밝다. 자조는 아니었다. 응. 잘난 척을 좋아하는 트류니히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나. 조금 더 아첨 해둘까.

 

  "의장 각하의 결단으로 제국, 동맹을 합해 수십 만, 아니 백 만 이상의 장병이 죽지 않고 끝났습니다. 지금은 이해 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만, 그 결단이 옳았다고 이해 받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가족이 이해하고 감사하겠지요."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군이 아니라 적에게 평가 받는다. 단순히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인가.

  아첨은 그만뒀다. 감사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좋다. 실무에 들어가자.

 

  "강화교섭은 내일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저희도 이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말해둡니다만, 지금 시점에서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를 소멸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트류니히트가 조용히 이쪽을 응시했다. 내 말을 고씹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선, 입니까."

  "그렇습니다."

  "……장래적으로는 어떻게 될런지요."

  "30년 후에 제국과 병합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트류니히트가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찌를 것 같은 시선이 아니다. 재고 있는 듯한 시선이다. 나를 가치 판단하고 있다.

 

  "제국인도 동맹인도 서로를, 서로의 국가를 잘 모릅니다. 지금 시점에서 병합해도 혼란이 일어날 뿐이겠죠. 게다가 제국은 국내에 있어 개혁하는 도중입니다. 가능하면 당분간은 국내 개혁에 전념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한 30년입니까."

  "네. 30년에 걸쳐 통일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어도 무방할 거라 생각합니다."

 

  30년,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먼저 페잔 천도, 그리고 화폐 통일, 달력 통일. 헌법을 제정하고 형법, 민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법을 정비하고 동맹시민 입장에서 봐도 납득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직접 제국과 동맹이 교역한다. 같은 표준을 가지고 같은 규제, 규격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업제품, 기술, 식품안전, 농업, 의료……. 국내 정비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서로 언어가 달라도 상관 없다. 정치신조가 달라도 좋다. 하지만 우주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인식은 가지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인류의 번영과 안정을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면 불만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

 

  "민주공화정은 어떻게 됩니까? 동맹시민에게 있어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권리입니다. 지방자치 레벨에서 보장해주신다면 합병도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생각합니다만?"

  트류니히트는 합병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 않다. 겉으로라도 반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는다는 건 반대해도 의미가 없다, 쓸모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나를 불쾌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상황파악능력이 높은데. 아니면 적응능력이 높은 걸까…….

 

  게다가 꽤나 만만찮다. 구 동맹령에서 민주공화정을 인정하게 되면, 제국령내에서도 인정하는 게 되겠지. 언젠가는 중앙정부에서도, 라는 목소리가 올라올 것이다.

  목표는 입헌군주제일까. 군림은 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의회제 민주주의에 의한 통치로 이행인가……. 지방자치 수준에서 인정해도 좋다. 하기야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하지만 중앙정부는 무리가 아닐까.

 

  "대국의 통치에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트류니히트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고대 그리스, 아테네 태생 역사가의 평가다. 그 역사가의 이름은 잊었다.

  하지만 무서운 말이긴 하다. 잊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 발생지인 아테네를 아테네 태생의 역사가가 평가한 것이다. 중우정치에 무척이나 질린 거겠지.

 

  "하지만 시민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시키는 것은 필요할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폭정, 악정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래도 억지기능을 가지는 기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그렇습니다."

  무심코 웃고 말았다. 독제군주정만이 악정을 일으킨다는 것인가? 의회제 민주주의 국가도 악정, 폭정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게 아니다. 주권자에 있다. 어째서 그 부분을 보지 않는 건지.

 

  "민주공화정에선 주권자의 질보다 양에 무게를 두기 쉽습니다. 그걸 아직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제로는 아무리 더해도 제로입니다."

  "……."

  "유감입니다만 인류는 민주공화정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숙하고 있었다면 저와 의장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일도 없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트류니히트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주권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권자는 자신이 가진 주권의 무게를 느끼기 어렵게 된다.

  100명 중의 1표와 100억 명 중의 1표, 같은 무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1표의 무게따위 대단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겠지.

  그렇게 되면 주권의 행사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회의적이 되고 만데. 다시 말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무시무시한 사태가 일어나는 거다.

  그리고 통치자들은 주권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주권자에 영합하는 행동을 취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통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냉철함을 잃는다.

  그렇다. 인류는 민주공화정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는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있지 않은 거다.

 

  "시민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시킬 필요성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민주체제를 취한다는 건 다른 문제겠죠. 민주체제를 취하지 않아도 시민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시키는 건 가능할 터입니다."

  "……."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여론조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거다. 그 뒤에 통치에 어느 정도까지 여론을 반영시킬까 검토하면 된다. 제로의 경우도 있고 100의 경우도 있겠지.

  그리고 그걸 판단 이유와 함께 국민에게 공표하면 된다. 국민은 자신들의 의지를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통치에 적용하고 있다고 이해할 것이다. 트류니히트는 시선을 땅에 떨어뜨린 채였다.

 

 

 

우주력 799년 4월 29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최고평의회 빌딩의 의장 집무실에는 세 명의 남자가 모였다. 트류니히트, 호안, 그리고 나. 트류니히트는 평소와 모습이 다르다. 침통한 표정을 짓고 의자에 앉아 있다. 발렌슈타인 원수와의 회담으로 꽤나 지친 모양이다.

  "어떠했나? 발렌슈타인 원수와의 회담은."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음"하고 말했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아직 젊은데 말이지. 꽤나 먼 곳까지 보고 있어."

  묘한 표현이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아픈 꼴을 당했으니까.

  하지만 "아직 젊다", 상대방을 야유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먼 곳까지 보고 있다", 가 되면 야유는 아니다. 호안도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 의아하게 생각한 거겠지.

 

  "발렌슈타인 원수는 지금 당장 동맹을 합병시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트류니히트."

  "그는 30년 후에 동맹과 제국을 합병하겠다고 말했어. 호안."

  "30년 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호안을 돌아봤다. 그도 의심쩍은 표정이다.

 

  "무슨 뜻인가?"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동맹령을 합병해도 혼란이 일어날 뿐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30년이라는 기간을 둔다고?"

  "그렇다. 그 사이에 제국은 한층 더 내정 개혁을 행한다. 그리고 동맹과 제국 사이에 교역을 시작으로 갖가지 교류를 도모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신음소리가 들렸다. 호안이 신음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 30년으로 동맹시민의 제국에 대한 반발을 경감시킨다는 건가."

  "그런 거다. 30년 후에는 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여도 문제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려는 거겠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숨이 나왔다.

  "트류니히트, 그 30년 동안, 동맹의 정치적 지위는?"

  "보호국."

  호안이 묻자 트류니히트가 간략하게 답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집무실에 가득찼다.

 

  보호국인가. 다시 말해 자주독립국가는 아니라는 건가. 그건 그렇고 병합까지 30년이란 시간을 둘 줄이야…….

  나라면 기다릴 수 없다. 연령적으로도 성과를 바라게 되고 말겠지. 하지만 발렌슈타인 원수는 기다린다. 그리고 제국의 지도자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꽤나 신뢰를 받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제국은 진심이다. 단지 정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주통일을 생각하고 있다.

 

  "민주공화정은 어떻게 되는가?"

  "30년은 보장된다."

  "그 뒤엔?"

  호안이 묻자 트류니히트가 "알 수 없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국민의 목소리를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도입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민주공화정에 대해 꼭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트류니히트의 목소리는 침통하다고 해도 좋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국의 통치는 민주체제와 맞지 않다고."

  "그건……."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지. 인류는 민주공화정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

  호안과 서로를 돌아봤다. 단순히 민주공화정이 싫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꽤나 깨어있다.

 

  "내일 있을 강화교섭이지만, 자네들은 삼가해주게. 나와 관료들만 가도록 하지."

  "무슨 뜻인가? 우리들 셋이서 갈 계획이었을 텐데."

  "레벨로의 말대로다. 납득할 수 없군."

  나와 호안이 항의하자 트류니히트가 웃었다. 이런 때에 웃다니 무슨 생각인가!

 

  "감사를 표하지. 자네들은 나에게 있어 진정한 맹우다."

  "어이, 장난치고 있는 건가?"

  "장난이 아니야. 레벨로. 한번 더 말하지. 내일 강화교섭, 자네들은 삼가해주길 바라네."

  강한 목소리였다. 호안과 서로를 돌아봤다. 트류니히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이번 강화교섭에서 내 정치생명은 끝나겠지. 자네들을 거기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

  "30년, 보호국이 된 동맹이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지에 따라 제국의 민주공화정에 대한 평가가 정해지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나는 생각하네. 안정된 번영을 30년 계속하면 제국도 민주공화정을 어느 정도 인정할 가능성이 나올 수 있겠지. 교섭의 여지도 나올 터다. 하지만 혼란이 일어나면 그것도 불가능해져."

 

  "잘 모르겠군. 그것과 내일 교섭에 우리들이 나가지 않는다는 게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관련 있지"라고 말했다.

  "자네들에게 30년을 맡기고 싶다. 특히 처음 10년이지만, 이 10년을 잘 보내게 되면 동맹시민도 침착해지겠지. 그 방향키를 맡기고 싶은 거다. 나와 함께 실각하게 되어 버리면 곤란해."

  "……."

  "어려운 임무지만, 자네들 이외에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부탁하네."

  그렇게 말하고 트류니히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우주력 799년 5월 2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지쳤는가?"

  "그래, 조금은."

  호안의 말에 트류니히트가 답했다. 조금이 아닐 것이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나타난 걸 보면 트류니히트가 꽤나 소모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3일에 걸친 강화 교섭이 꽤나 어려웠던 거겠지.

 

  "잘 해주었군. 트류니히트."

  "그렇게 생각하는가? 레벨로."

  "그래, 그렇게 생각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했어. 가슴을 피게."

  트류니히트가 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일방적인 패전, 교섭의 카드 따위 하나도 없는 상태의 교섭이다. 제국측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최선이겠지. 하지만 그 안에서 트류니히트는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해도 좋았다.

 

  "일단은 교섭이 채결된 일을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렬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

  "그래그래. 결렬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나와 호안이 말하자 트류니히트가 "자네들은 끔찍한 소리를 하는군"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겨우 소리를 내어 웃었군. 트류니히트. 그러는 편이 너 다워서 좋다.

  그리고 결렬보다 훨씬 좋다는 건 사실이다. 결렬 되었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지면 나빠졌겠지 좋아질 일은 없다.

 

  "내일 강화조약 내용을 발표하네."

  "나머진 동맹평의회에서 비준하는 일 뿐이군."

  "그래. 어떻게든 3주 간의 유예를 받았다."

  토의기간은 3주 간인가. 트류니히트와 호안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당초 일주일을 제국 측은 제시해왔다. 하지만 비준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트류니히트가 항의했다. 제국 측도 나중에 토의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는 건 내키지 않을 거라며. 발렌슈타인은 마지 못해서였지만 동의한 것 같다.

 

  "의회는 받아들일까? 트류니히트. "

  "불평은 나오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동맹은 즉시 소멸이다. 받아들이면 30년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니까."

  "나도 걱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동맹이 사라지면 의원들도 실직자니까. 급료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려. 귓가에 그런 말을 속삭여주면 최종적으론 받아들이겠지."

  트류니히트가 날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호안, 여전히 심한 말을 하는군.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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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9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럼 하이네센 공략은 저희 함대가 실행하는 겁니까.」

  "네. 행성 시리유나가르에서 준비를 한 후 하이네센으로 향하시길 바랍니다. 이쪽은 포로를 데리고 뒤에서, 그렇군요. 72시간 뒤에 하이네센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들에게는 하이네센을 공략하는 장면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패배자를 모욕할 필요는 없다. 화면에 비춘 메르카츠가 "그렇지요"라고 끄덕였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한 뒤엔 동맹 정부에 대해 항복을 권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저쪽이 자신들의 생명 안전, 재산 보장을 구할지도 모릅니다만, 그 경우엔 어떻게 합니까? 」

  "패전의 죄를 물어 누군가를 처벌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전해도 상관 없습니다. 신분, 지위에 상관 없이 말입니다. 그들도 안심하겠죠."

  「경우에 따라선 하이네센에 강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조금 염려하는 듯한 표정이다. 가장 먼저 하이네센에 발을 내리는 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데…….

 

  "문제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재량껏 처리해주세요. 중요한 건 하이네센에 혼란이 없을 것입니다."

  「예.」

  "당연합니다만 동맹시민에 대한 폭행, 횡포, 약탈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군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벌합니다. 그 점은 모두에게 철저히 주지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메르카츠가 크게 끄덕였다. 천성이 무인이니까 말이지. 약탈, 횡포 따위 극혐이겠지. 이런, 잊을 뻔했다.

 

  "그리고 점령 뒤의 하이네센은 경제적으로도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사재기나 물가 상승에도 조심해주세요. 시민의 일상 생활을 위협하는 행위는 용서하지 말도록. 일상 생활이 보장되면 시민도 침착해질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부사령장관도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

  「아뇨. 딱히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서로 경례를 나누고 통신을 끝냈다.

 

  하이네센을 공략하면 메르카츠의 군인으로서의 평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 틀림 없다. 이제르론 요새 공략, 동맹군의 항복은 나와 이제르론 방면군의 공적이다. 이건 크다.

  그에 반해 메르카츠와 페잔 방면군의 공적은 페잔 공략 뿐이다. 이대로 가면 메르카츠는 날 띄워주는 역할이 되고 만다. 그건 좋지 않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 공략, 자유행성동맹의 항복, 메르카츠와 페잔 방면군에게 있어선 충분한 공적이 되겠지.

 

  동맹 정부는 항복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적은 희생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고마운 이야기다. 민주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시민을 희생 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메르카츠도 큰 트러블 없이 하이네센을 공략할 수 있을 터다.

 

  트류니히트가 결단해준 것 같지만, 원작과는 꽤나 인물상이 달라진 것 같다. 뭐, 레벨로와 호안이 협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제국과의 교섭에 있어서도 꽤나 강점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선동 정치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항복을 결단해줬다면 허례허식이 아니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상대라고 할 수 있겠지..

 

  하이네센 공략 후엔 강화교섭이다. 이제야 겨우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사라진다. 아니, 30년 후, 자유행성동맹을 병합할 때에 다시 한 번 원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정 개혁을 제대로 해둔다면 병합을 불만스럽게 생각해도 불안해하는 사람은 적을 터다. 그렇게 되면 저항은 경미한 것이 될 테고, 원정도 대규모로 할 필요는 없어지겠지.

 

 

 

제국력 490년 4월 26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국채인가. 꽤 되는군."

  "예."

  "내가 재무상서를 역임하고 있을 때에도 다소 신경 쓰였지만……, 12조 제국 마르크인가……. 꽤나 늘어났다."

  "통계를 보면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멈춘 건 최근 일입니다."

  잘도 여기까지 빚을 졌다. 재무상서 게르라흐 자작은 조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심 어이없어하고 있겠지. 국정책임자인 내 앞이 아니었다면 비아냥 한 마디, 욕설 한 마디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반란군의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예. 이쪽도 15조 디나르 정도 됩니다."

  한숨이 나왔다. 제국도 동맹도 빚을 져가며 분별 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는가…….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빚으로 국가가 파산하여 인구 감소로 붕괴했겠지. 제국도 반란군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르라흐 자작도 끄덕이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발렌슈타인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문벌귀족을 제거하고 우주를 통일한다. 그것만이 제국이 살아남을 길이었다. 단지 아무도 그 길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눈을 돌리고 말았다…….

 

  "각하, 주식 문제도 있습니다."

  "주식인가. 그것도 있었지."

  제국, 페잔, 반란군, 꽤 많은 기업의 주식을 페잔 자치령주 정부가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령 회사까지 이용하여 은밀하게 취득하고 있었다. 뭘 위해서인지 물을 필요도 없다. 그 지긋지긋한 유물 놈들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게르라흐 자작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헌데…….

  "지금 상황으로선 제국 정부가 주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영기업이라는 게 됩니다만……."

  "문제가 있는가?"

  내가 묻자 게르라흐 자작이 끄덕였다.

 

  "다소 경영이 기울어도 정부가 어떻게 해줄 거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기업의 건전성을 잃게 되겠죠. 이 건으로 제국은 아픈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경험?"

  "문벌귀족입니다."

  "그렇군."

 

  그런 건가. 게르라흐 자작이 뭘 우려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대로 가면 새로운 짐덩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건가."

  "예. 그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주식을 소유한 기업은 모두 제국, 반란군, 페잔에서 경제, 사회, 군사 면에 있어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로도 문벌귀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브라케, 리히터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관료들의 낙하산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관료들의 낙하산인가. 그렇게 되면 더욱 성가신 일이 되겠지. 브라케, 리히터가 우려하고 있다는 건 벌써 관료들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걸지도 모른다.

  저놈들은 이권에 민감하니까. 침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을 하나 넘었나 싶으니 또 하나의 산인가. 성가신 일은 끊이지 않는군.

  "제국의 것은 방출하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페잔, 반란군의 것은 어떠한가? "

  게르라흐 자작이 "저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며 끄덕였다.

 

  제국은 페잔으로 천도한다. 천도에 의한 혼란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면 페잔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을 제국 지배하에 두는 편이 좋다. 그리고 반란군, 이쪽도 허튼 짓을 하지 못하게 하려면 기업을 지배하에 두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양쪽 모두 반발할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짐 덩어리인가……. 장래적으로 통일할 것을 생각하면…….

 

  "흠, 발렌슈타인에게 물어 볼까?"

  내가 확인하자 게르라흐 자작이 "네"하고 끄덕였다. 역시 마지막엔 거기로 귀결 되는가.

  "불편한 일이다. 이제 슬슬 저 놈을 이쪽으로 끌고 와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군인인 채 있으면 곤란해."

  게르라흐 자작이 "그렇지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띄웠다.

  이 자는 재무상서까지로군. 재상, 국무상서는 될 수 없다. 앞으로의 재상, 국무상서는 우주 전체를 조망하며 제국의 방향키를 잡아야만 한다. 이 자에게 있어선 짐이 무겁겠지. 다행이라면 본인도 그걸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곧 그것도 이루어지겠죠. 반란군의 우주함대는 항복했습니다. 지금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하이네센을 공략하고 있을 겁니다."

  "음."

  올해 안에는 돌아오겠지. 곧바로는 안 되겠지만 페잔 천도가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다. 하기야 헤드헌팅에는 군부가 반대할 테지만……. 머리 아픈 일이다.

 

  집무실 문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바이츠 보좌관이 고개를 내밀었다. 표정에 다소 흥분하는 기색이 있다.

  "무슨 일인가?"

  "에렌베르크 군무상서,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장, 두 각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시급히 각하를 뵙고 싶다고."

  그 두 사람이 직접 보로 왔다는 건, 내게 보고한 뒤 그대로 폐하께 상소하겠다는 건가. 폐하도 기뻐하시겠지. 게르라흐 자작의 웃음이 커졌다. 생각하는 건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제국력 490년 4월 28일. 하이네센. 에리히 발렌슈타인

 

  "지크 라이히! "

  "지크 카이저 프리드리히! "

  "지크 마인 오베르베펠스하버!" "

  발이 멈췄다. 총기함 로키를 하이네센의 우주항에 강하시키고, 트랩으로 지상에 내려가려는데 폭풍 같은 함성이 나를 감쌌다. 우주항은 내 경비를 위한 거겠지만, 많은 숫자의 제국 군인이 주변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마중 나온 군인들, 그들이 함께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엄중하게 하지 않아도 좋은데 말이지. 나는 라인하르트가 아니다. 날 죽여도 동맹에겐 아무런 이득도 주어지지 않는다. 역으로 보복이 심해질 뿐이다. 동맹인도 바보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것이다.

  "각하, 손을 흔들어 주시겠습니까? "

  "손? "

  뤼네부르크가 웃음을 띄우고 있다.

  "예. 다들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뤼네부르크의 말대로 오른손을 들어 답하자 함성이 더욱 커졌다.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마음은 이해한다. 그야 기쁘겠지. 뭐라 해도 적의 본거지를 점령했다. 대승리다. 평생 자랑할 수 있는 일일 테고 인생 최고의 추억이 되겠지.

  하지만 말야. 나는 그닥 기쁘지 않다. 조금 부끄러울 정도다. 뺨이 뜨겁다. 역시 나는 소시민이로구만. 빨리 내려가자.

 

  프리드리히 4세가 황제라서 정말 다행이다. 다른 녀석, 특히 시기심이 강한 녀석이 황제였다면, 그리고 이 현장을 봤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

  찬탈의 의사가 보인다, 라고 죄상을 날조하여 눈 깜짝한 사이에 반역죄로 사형 당했겠지. 그 점에 있어선 그 할배라면 웃으면서 황제위를 물려주겠다거나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신하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트랩을 내려가자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가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마중 나왔다. 서로 경례를 나누고 두 사람이 자유행성동맹의 항복을 축하해줬다.

  기쁘구나. 이런 거. 하지만 원작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이 두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건 조금 간지럽다. 부끄럽네.

  "고맙습니다. 로이엔탈 제독, 미터마이어 제독."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에게 안내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지상차에 탑승한다. 동승자는 발레리와 뤼네부르크다. 어딜 봐도 긴장하고 있다. 호위일 셈인 거겠지.

  로이엔탈, 미터마이어의 선도로 우주항을 빠져나와 하이네센 시내로 향했다. 행선지는 호텔 캐프리콘, 메르카츠는 거기를 제국군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우주항에서는 30분 정도로 호텔에 도착했다. 상당히 빠른 도착이다.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꽤나 과속한 탓이겠지.

  도중에 지상차에서 본 시내에 혼란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침착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하자 로비에서 메르카츠를 시작하여 우주함대의 함대사령관들이 자세를 바로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가자 일제히 경례해왔기에 답례했다. 그 뒤에 한 사람씩 수고의 말을 전하면서 메르카츠가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자유행성동맹을 항복시킨 것, 잘 해주었습니다. 폐하도 크게 기뻐하시겠죠."

  "황송합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 공략법은 알고 있었으므로 편하게 끝났습니다."

  미세하게 메르카츠가 허리를 굽히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연장자에게 그런 몸짓을 보이게 만드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하이네센도 침착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관 혼자만의 힘이 아닙니다. 다들 잘 해주었습니다."

  케슬러, 클레멘츠들이 기뻐하는 것 같다. 메르카츠가 칭찬을 받고 있다는 건, 간접적으로 자신들이 칭찬 받는다는 거다. 그리고 메르카츠는 자신들의 활약을 충분히 평가하고 있다. 만족이겠지.

 

  "상의가 없었습니다만, 각하의 집무실, 거주실을 호텔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를 끼쳤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집무실을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에서 하이네센의 상황을 설명하고 싶다 생각합니다만."

  "알겠습니다."

  상황을 확인한 뒤 트류니히트와 회담이다. 그리고 강화교섭. 빨리 끝내고 귀국하자. 장병들도 그걸 바라고 있겠지.

 

 

 

우주력 799년 4월 26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져버렸어. 이렇게 싱겁게 져버리고 말다니 믿을 수 없다.

  일주일 전에 우주함대가 항복했다. 동맹군 7개 함대가 항복한 걸로 하이네센을 지키는 건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만 남게 되었다.

  자유행성동맹이 승리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하지만 목걸이가 적에게 손해를 주어 강화교섭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정부는 말했는데…….

 

  동맹정부는 목걸이가 파괴되자 항복했다. 정부는 가능한 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고 있다. 특히 야간에는 절대로 나오지 말라는 공지가 있었다. 제국군의 병사와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학교에 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실은 동맹 시민이 모여서 소란을 피우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TV의 아나운서가 말하고 있었다. 그런 걸지도 모른다.

 

  목걸이 따위 아무 소용도 없었구나. 단숨에 파괴되어 버렸다.

  게다가 파괴한 건 발렌슈타인 원수가 아니다. 부사령장관인 메르카츠 원수. 발렌슈타인 원수 입장에선 자신이 나설 일도 아니라는 거겠지.

  목걸이에 의지하고 있던 우리들을 바보 같은 놈들이라고 코웃음이라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강화교섭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그건 발렌슈타인 원수가 온 뒤인 것 같다.

  동맹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역시 제국의 영토가 되는 걸까. 그렇게 되면 우리들, 노예가 되어버리는 걸까? 엄마도 굉장히 불안한 눈치다.

  제국에선 개혁도 이뤄지고 있고 평민의 지위가 향상되고 있으니까 심한 일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들리고는 있지만…….

 

 

 

우주력 799년 4월 29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오늘 발렌슈타인 원수가 하이네센에 도착했다. 칠흑의 총기함 로키가 하늘에서 내려와 하이네센의 우주항에 착륙했다. 그러자 제국군의 병사들이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국 만세", "황제 프리드리히 만세", "사령장관 만세" 굉장했다.

 

  매스컴은 멀리서 촬영하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기에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발렌슈타인 원수가 로키에서 나와서 모두에게 손을 흔들다 더욱 함성이 커졌다.

  TV로 보고 있어도 압도 되었다. 원수는 제국군의 병사들에게서 굉장히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동맹을 항복하게 만들었으니까 당연한가. 분하지만 멋있었다.

 

  제국군에게 점령되어 3일이 지났지만, 그들은 규율이 엄격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제국 병사가 마을에 나와 동맹시민에게 폭행을 저지르거나 약탈을 한다는 등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국 영토가 되어도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동맹 정부에 항복을 권고할 때 패전의 죄를 묻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 같다. 그 점도 모두를 안심하게 만들고 있다.

 

  포기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국군은 강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이제르론 요새도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주함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져버렸다.

  주전파라고 불렸던 사람들도 낙담하고 있다. 나도 실망이다. 이렇게나 동맹군과 제국군의 차이가 컸다니……. 마치 어른과 아이가 싸운 것 같다.

 

  오늘 트류니히트 의장이 발렌슈타인 원수와 회담했다. 회담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바란 것 같다. 강화교섭 전에 상대방을 잘 알고 싶다는 것 같다.

  회담 후에 트류니히트 의장은 매스컴에 "동맹시민의 생명 안전과 재산 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될까? 강화교섭은 내일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힘내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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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6일. 제국군 비텐펠트 함대 기함 쾨니히스티겔. 프린츠 요제프 비텐펠트

 

  "긴장을 놓지 마라. 이대로 밀어 붙인다! "

  "예!"

  명령을 내리자 오퍼레이터들이 그에 따랐다. 나쁘지 않군. 장병의 사기는 높다. 허를 찔려 생각치 못한 형태로 전투에 들어갔지만, 다들 당황하는 일 없이 대처하고 있다. 평소의 훈련 성과가 나오는 것 같다.

  나중에 바렌에게 사례라도 해야겠구만. 술이라도 한 잔 사도록 할까.

 

  뮐러 함대의 응원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대로 밀어 붙여 반란군 본대의 후방으로 빠져 나가면 녀석들은 금새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에 덩달아 사령장관이 이끌고 있는 제국군 본대가 전진하면 반란군은 통째로 무너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 전투의 최대 공로자는 나, 내가 이끄는 흑색창기병대라는 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반란군과의 마지막 전투. 나로서도 함대로서도 이 이상의 영광은 없다…….

 

  "각하, 반란군 본대에서 증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오이겐이 걱정하는 어조로 반란군의 증원을 지적했다. 이런이런,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군.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반란군도 필사적이다.

  "……이렇게 되면 뮐러 함대의 응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내가 답하자 오이겐이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은 뭐야? 반란군의 증원보다 내 반응이 더 걱정되었단 건가? 나는 공격을 좋아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고, 오이겐. 아무리 그래도 1개 함대로 3개 함대를 격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물며 분산되어 있다면 각개격파도 가능하겠지만, 반란군은 한 곳에 모여 있다. 여기선 뮐러 제독과 협력하여 반란군을 격파한다. 그것이 용병술의 기본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전투가 벌어질 줄이야. 사령장관도 본의가 아니었겠죠."

  "반란군도 필사적인 거다. 이대로 가면 본대와 부사령장관이 이끄는 별동대에 협공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니까 말이야. 여기서 우리들을 격파하고 별동대를 기다린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디르크젠, 그레브너의 대화에 오이겐이 끄덕였다.

 

  뭐, 대충 그런 거겠지. 하지만 어떻게든 전투를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반란군에게 있어서 상황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전황은 굳이 말한다면 제국군 쪽이 우세하겠지. 흑색창기병대가 상대하고 있는 2개 함대는 명백히 움직임이 나쁘다. 아마도 새로 편성한 함대이기에 훈련도가 떨어지는 거겠지.

  본대도 우세하게 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쯤 반란군의 사령장관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제국군은 반란군 영역 깊숙이 침공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력이 충분히 있다. 뭐라 해도 지금까지 전투다운 전투가 없었으니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 공략한 걸로 손해가 없다.

  양 웬리를 잡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걸 실책이라고 말하는 건 사치다.

 

  여기서 전투가 일어난 걸 사령장관 각하는 본의가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 공략한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싸우게 된 것에 만족한다. 아마도 다른 함대사령관도 같은 마음이겠지. 손해를 적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장병들을 위하는 마음이란 것도 이해한다.

  나도 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를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반란군, 증원 부대가 합류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함교에 울렸다. 이걸로 정면에 3개 함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 곧 이쪽도 뮐러 함대가 합류한다. 움직인 것은 뮐러 함대가 더 빨랐지만, 우회하는 만큼 늦어졌다. 지금쯤 뮐러 제독은 안달복달하고 있겠지.

 

  "이제 곧 뮐러 제독이 온다. 당황하지 말고 대응하라."

  "예!"

  내가 말하자 오퍼레이터들이 웃음을 띄우고 끄덕였다. 믿음직스런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이라면 뮐러 함대가 오기까지 문제 없이 견뎌내겠지.

  다음은 공세로 전환하여 반란군을 분쇄할 뿐이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별동대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단숨에 결판을 내는 거다.

 

 

 

제국력 490년 4월 17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반란군, 후퇴합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의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하다. 뭐, 보통은 후퇴라는 이름의 유인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문제 없겠지.

  이유는 간단하다. 비텐펠트와 뮐러를 막고 있는 부대의 판세가 나쁘기 때문이다. 3개 함대를 돌리고 있지만,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동맹군은 본대도 후퇴하여 전선을 하나로 뭉치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전군이 단숨에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제국군이 도망치고 만다. 그것 때문에 동맹군의 움직임은 제약을 받고 있다.

  뭐,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걸까. 전선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그만큼 메르카츠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거리와 시간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인 걸지도 모른다.

 

  제국군에겐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다. 동맹군이 가장 싫어하는 선택이다. 후퇴하고 있는 동맹군은 이쪽에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일 거다. 허를 찔러 급속 후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그리고 서로 견제하며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현실적이지도 않다. 전황은 우세하고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여 메르카츠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 다소 희생은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섵불리 놓치게 되면 또 무슨 짓을 할 것 같아서 무섭다. 피해도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황이 우세하단 점도 있겠지만, 모두 사기가 높다.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나와 발레리 뿐인 것 같다.

  그렇게나 싸우고 싶었을까. 승리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전투가 없었어도 승진은 확실했을 텐데…….

  전투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없는 것도 문제인가. 나와 라인하르트를 더해 둘로 나누는 정도가 딱 좋을까. 군인이란 그런 생물일지도 모른다.

 

  동맹군의 후퇴는 계속된다. 이쪽은 그를 쫓으며 공격한다. 내 오른쪽에는 아이제나흐, 왼쪽에는 렌넨캄프, 그 왼쪽에는 켐프.

  꽤나 호화로운 진용이다. 다소 용병에 유연성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공격력에는 문제 없다. 내 정면에 우란푸, 렌네캄프의 앞에는 양이다. 거기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군에 전해주세요.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라고. 이대로 전선을 유지하여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원군을 기다립니다."

  "예."

  '적은 훈련 부족이다. 단숨이 밀어붙여라.' 그렇게 말하는 편이 사기는 더 오르겠지. 다들 그걸 바라고 답답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인 건 양도 마찬가지겠지. 주변이 너무 발목을 잡는다.

  그런가. 양과 싸울 때엔 집단전 쪽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일 대 일이라면 양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다 대 다라면 누군가 양의 발목을 잡는 놈이 나타난다. 혹은 주변을 신경 쓰느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양의 무서움이 감소한다.

 

  양 웬리가 집단전에서 120%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양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 필요하겠지. 예를 들면 라인하르트,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뷰코크, 메르카츠……. 거기에 양이 참가한다.

  음, 드림팀이네. 아니면 프로 야구의 올스타전인가? 어떤 전투를 할지 보고 싶을 정도다.

 

  "각하? "

  발레리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입니까? 피츠시몬즈 대령."

  "아뇨. 뭔가 즐거워 보였기에."

  주변을 둘러보자 뤼네부르크, 발트하임, 슈마흐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가요. ……전황은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것 때문이겠죠."

  내가 답하자 발레리는 애매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거 참, 조금 더 긴장해야겠군.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집중, 집중.

  ……뤼네부르크, 뭐가 웃긴 거냐. 히쭉히쭉 웃지 말라고. 우리들은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니까. 좀 더 진지하게 해라.

 

 

 

우주력 799년 4월 19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는 침통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 참가자는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적극적으로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빌딩 밖에는 많은 동맹시민이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쪽은 각각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겠지. 자신들을 지키라고.

 

  "그래서 전황은 어떤가? 아일랜즈 국방위원장."

  호안이 묻자 아일랜즈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좋지 않습니다. 군대는 제국군의 본대를 어떻게든 잡아 전투에 들어갔습니다만, 열세입니다. 새로이 편성한 함대가 훈련도 부족이라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합니다. 제국군에게 그 점을 찔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곧 페잔 방면에서 제국군의 별동대가 오겠죠. 그렇게 되면 동맹군은 협공 당하게 됩니다. 승산은 없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에게서도 형세를 역전시키는 건 어렵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다시 한숨이 들려왔다. 아무도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크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트류니히트였다. 최근 며칠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한 거겠지. 눈이 충혈되어 있다.

  "어쩔 수 없군. 우주함대에게 항복하도록 전하게."

  다들 트류니히트를 봤다. 이곳저곳에서 "하지만", "그건"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젓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싸워도 희생이 커질 뿐이다. 승산이 없는 이상, 무의미한 전투는 멈춰야만 하겠지. 국방위원장. 항복하도록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에게 전하겠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충격은 없었다. 와야 할 것이 왔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거겠지.

  아니, 나 혼자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부는 어떻게 할 건가? 항복하는 건가? "

  내가 묻자 트류니히트가 표정을 찡그렸다.

  "아니,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으니 무리겠지. 지금 시점에서 항복하면 동맹시민이 폭동을 일으킬 거야."

  "그럼? "

  "제국군이 목걸이를 파괴한 뒤에 항복한다. 그러는 편이 무난할 거라 생각한다."

 

  확실히 그렇다. 동맹시민도 포기하겠지.

  "제국이 동맹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알 수 없어.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기했다는 점, 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한 취급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확증은 없다. 우리들은 동맹시민의 생명, 재산을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민주공화정……. 각 위원장도 동맹시민을 지키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의견을 모아주길 바란다. 자유행성동맹은 멸망할지도 모르지만, 강화조약에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끈기 있게 교섭할 생각이다."

  힘있는 목소리였다.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듯한 울림이 있었다.

 

 

 

제국력 490년 4월 18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총기함 로키의 함교는 폭발할 것 같은 소란에 싸여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어깨를 두들기거나 악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제국군함정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일어나고 있겠지.

  뭐, 마음은 이해한다. 동맹군이 항복했다. 그리고 동맹에겐 더 이상 우주전력이 없다. 이걸로 동맹의 명운은 다한 거나 마찬가지다. 다들 기뻐하는 건 알겠지만…….

 

  "각하, 축하드립니다."

  발트하임이 축하를 시작하자 다들 입을 모아'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발레리도 축하해주었다.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양군 모두 그리 피해는 크지 않다. 일단은 안심할 수 있겠지.

 

  "고마워."

  어떻게든 웃을 수 있었다. 기왕이면 조금 더 빨리 항복해주면 고마웠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하면 희생은 좀 더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맹 정부는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뭔가 어중간하다. 전투도, 항복도.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황급히 참았다.

 

  투덜거려도 변하는 건 없다.

  "피츠시몬즈 대령, 오딘에 연락을. 반란군의 우주함대는 항복, 메르카츠 부사령장관과 합류한 뒤 하이네센 공략으로 향한다고."

  "예."

  "참모장, 반란군의 뷰코크 사령장관과 회담을 합니다. 24시간 후, 총기함 로키에 방함을 희망한다고 전해주세요. 또한, 소정의 절차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길 바란다고."

  "예."

 

  발레리와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각각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24시간 정도면 미사일의 폐기나 레이저 발사구의 폐쇄도 끝나겠지. 일단 만약을 위해 방심하지 말라고 전군에 전달하는 게 좋겠네.

  조금 지쳤다. 시간은 있다. 한숨 자도록 할까…….

 

 

 

제국력 490년 4월 19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드와이트 그린힐

 

  제국군 총기함 로키의 함내는 부드럽고 밝은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칠흑의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함내 이곳저곳에서 나와 뷰코크 사령장관에 호기심의 시선이 향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속삭이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구경거리가 된 듯하여 기분이 나빴다.

 

  항복 후, 24시간이 지났다. 이 주역에는 제국군의 별동대도 집결하여 동맹군은 15만 척을 넘는 제국군에게 포위되어 있다.

  정부의 항복 명령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소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15만 척을 넘는 제국군에 포위되어 있는 걸 생각하면 정부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트류니히트 의장의 판단이라고 들었지만, 좋은 결단이었다.

 

  한 명의 사관이 다가왔다. 아직 젊다. 연령은 20대 중반 정도에서 후반이겠지. 군복 계급장으로 판단하기로 중장이다. 중간 몸집에 중간 키, 총명해 보이는 인상이다. 1미터 정도 거리에서 멈춰 경례를 올렸다.

  "소관은 클라우스 발트하임이라 합니다. 동맹군의 숙장인 뷰코크 사령장관과 그린힐 총참모장을 만나 영광입니다."

 

  비꼬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솔직한 성격인 걸지도 모른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함께 경례를 돌려줬다.

  "패장에게는 과분한 말씀이로군. 부끄러울 따름이오."

  뷰코크 사령장관이 대답하자 발트하임 중장이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모욕하고 말았다고 생각한 걸까.

 

  "발렌슈타인 원수에게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수고를 끼치네."

  발트하임 중장의 안내로 함내를 걷는다. 잠시 뒤 한 사람의 사관이 기다리는 문 앞에 도착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로젠리터, 뤼네부르크……. 말 없이 경례를 나눴다.

  발트하임 중장이 문을 열며 "들어가시죠"라고 말했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머리의 젊은 장교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몸집이 작고 가녀린 몸을 검은 망토가 덮고 있다.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 이쪽을 향해 다가와서 경례를 하고 "에리히 발렌슈타인입니다"라고 이름을 밝혔다. 이쪽도 이름을 밝히며 경례를 나누고 소파로 안내되었다.

  자리에 앉자 바로 여성 장교가 홍차를 가져왔다. 이 장교도 기억에 있다. 이름은 잊었지만 그 때, 뤼네부르크와 함께 있던 여성 장교다. 그녀는 홍차를 나누고 경례한 뒤 방에서 나갔다.

 

  "패잔의 몸을 각하께 위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처분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단지 부하 장병에게는 배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뷰코크 사령장관의 말에 발렌슈타인 원수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일까.

  "안심하시길. 우리들은 용감히 싸운 적을 칭찬 할 지언정 모욕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이 이상 의미 없는 피가 흐르는 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제대로된 언질을 받아 안심했다. 말투에서도 성실함을 느꼈다. 믿어도 좋을 것 같다. 홍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맛있다. 꽤나 좋은 찻잎을 쓴 거겠지.

  "항복해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아냥이 아닙니다. 본심입니다. 이 이상 적도 아군도 희생을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번인가 항복 권고를 낼가 생각했습니다만, 모욕이라 받아들어지면 오히려 희생이 늘어나리라 생각하고 그만뒀습니다."

  오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희미하긴 하지만 어조에는 안도의 울림이 있었다.

 

  "항복은 정부의 명령이었습니다."

  내가 말하자 발렌슈타인 원수는 "정부의"라고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에도 표정에도 놀람이 있었다.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의 명령입니까? "

  "아뇨. 트류니히트 의장의 명령입니다. 이 이상 무익한 전투는 피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자유행성동맹 정부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만? "

  발렌슈타인 원수는 이상하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어리단 느낌이 들었다. 그 점이 이상했다. 상대방은 이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일 텐데. 뷰코크 사령장관도 같은 걸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조금 쓴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습니다. 그게 쓸모 없을 거란 걸 우리들도 알고 있습니다만, 시민은 모릅니다. 현 시점에서 항복하는 건 동맹시민에게 혼란을 일으키게 되겠죠. 경우에 따라선 그에 따라 정부 자체가 와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질서한 저항이 일어나 희생이 늘어날 뿐입니다."

  "그렇군요."

  발렌슈타인 원수가 두 번, 세 번 끄덕였다.

 

  "트류니히트 의장입니다만, 이전부터 생각했습니다만 역시나 단순한 선동 정치가는 아닌 것 같군요."

  "……."

  "만남이 기대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 원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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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6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반란군 최후미 2개 함대가 이쪽을 기다리는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양과 우람푸인가, 발목 잡기를 하려는 거군. 아군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리 의미는 없지만 말이지…….

  "비텐펠트 제독에게 후방을 위협하도록 전할까요?"

  발트하임이 내게 확인을 취하기에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비텐펠트도 수고가 많다. 계속 후방을 위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협할 뿐이고 싸우지는 못하고 있으니 재미가 없겠지. 다음엔 켐프에게 부탁하도록 할까.

  15분 정도 지나자 비텐펠트 함대가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전술 컴퓨터 모니터에 비춰졌다. 제국군 본대와 양, 우란푸 함대가 접촉하기까지 앞으로 1시간 정도일까.

  비텐펠트 함대는 앞으로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적의 후방으로 나오는 움직임을 보여야만 한다. 우회와 동시에 해야 하니까 꽤나 바쁜 작업이다.

 

  비텐펠트 함대가 우회를 시작했다. 점점, 점점 양, 우란푸의 후방으로 향하고 있다. 양, 우란푸의 함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역시 후방을 찔리는 건 다들 싫어하지.

  하지만 두 함대 모두 제국군의 정면을 향하고 있고, 후퇴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철수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이쪽 발목을 잡으려는 것 같다. 무척이나 시간을 벌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쩌면 메르카츠가 근처에 있는 걸까? 저쪽 정찰부대에라도 접촉했을까.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하지만……. 비텐펠트가 더욱 후방으로 향하고 있다.

 

  함교는 침착한 상태다. 발레리도 전투는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평온한 상태인 것 같다. 발레리는 가능하면 개인실로 돌아가 줬으면 좋겠다.

  확실히 말해 거북하다. 옆에서 딱딱하게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이쪽이 괴로워진다. 하지만 뭐,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그녀의 각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깨닫지 못한 척을 하는 정도다.

 

  항복권고라도 해볼까. 메르카츠가 접근하고 있다면 동맹군이 항복할 가능성은 있겠지. 설령 항복하지 않아도 망설이게 하는 건 가능하다. 상대방의 사기를 꺾는 일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만하다고 느껴 역정을 내며 달려들까? 그렇게 된다면 역효과겠지만…….

 

  전쟁터에선 일종의 독특한 심리상태가 되니까 말이지.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거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아니, 오히려 합리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할 행동을 한다. 하지만 본인들은 그 때엔 그게 유일한 정답이라고 믿으며 싸운다. 그 때문에 터무니 없는 희생이 생겨난다.

 

  "적 함대, 급속 접근! "

  엥? 뭐야? 양과 우람푸가 접근하고 있다. 바보냐, 비텐펠트에게 후방을…….

  "비텐펠트 함대에 반란군 2개 함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

  뭐냐? 어떻게 된 일이야? 비텐펠트 함대에게도 측면에서 적 함대 2개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이래선 후방을 찌를 수 없어! 어느새? 어떻게 된 일이야?

  함교가 시끄럽다! 조금은 조용히 해라.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후퇴할까? 안 된다. 내가 후퇴하면 비텐펠트는 적군 한 가운데 고립된다. 최악의 경우 양, 혹은 우란푸에게 측면을 찔려 궤멸하겠지.

 

  "각하! "

  표정이 딱딱하네. 발트하임. 예상 외의 사태따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겠지. 진정해라! 발레리도 그렇다. 그렇게 얼굴을 굳히지 마!

  "렌넨캄프, 아이제나흐 함대에게 연락! 접근하는 적 함대를 칩니다. 속력을 올려! "

  "예!"

 

  내 명령을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전한다. 함교에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소음이 사라졌다. 대신 각 함대에게 명령을 전하는 목소리와 상황을 보고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동맹군은 전군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고 오퍼레이터가 보고를 했다.

  여기서 결전을 할 생각인가! 마음을 바꿔라. 여기서 결전이다! 망설이면 적군의 기세에 삼켜버리고 만다. 여기서 싸우는 거다. 이건 내 의지다!

 

  "반란군, 속력을 올리고 있습니다! 비텐펠트 함대가 지시를 구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할까? 비텐펠트를 물러나게 하고 대열을 정비할까?

  ……무리겠지. 물러나면 동맹군의 기세를 살려주는 꼴이 된다. 적은 이쪽이 후퇴할 거라 보고 있을 터다. 그렇다면 한 발 더 나아가 싸워야 한다! 적의 의표를 찔러라!

  "지금 상태에서 적 함대를 저지하라. 뮐러 함대를 지원으로 보낸다. 협력하여 적 함대를 격파하라!" "

  "예!"

  얕보지 말라고. 이쪽 비텐펠트는 원작과 다르다. 역습에 약한 얼간이가 아니야. 흑색창기병대는 제국군 굴지의 정예부대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로 말이지.

 

  "뮐러 함대에게 명령! 우회하면서 전방으로 나아가, 비텐펠트 함대를 바깥에서 원호하라. 켐프 함대는 렌넨캄프 함대의 좌측으로 이동하라. 서둘러!" "

  "예!"

  "통수본부에 연락! 우리, 반란군과 교전중. 이 곳에서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을 기다린다."

  "예!"

  좋아. 함교가 열을 띄기 시작했다. 겨우 침착해졌군. 싸울 마음가짐이 생겼다.

 

  "반란군, 비텐펠트 함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접촉까지 약 20분."

  20분인가. 괜찮다. 비텐펠트라면 대처할 수 있겠지. 뮐러가 원호 할 수 있을 때까지 40분은 더 걸리겠지. 문제 없다. 비텐펠트와 뮐러, 공세와 수세, 각각 제국 굴지의 실력을 가진 사나이들이다. 그들을 믿는 거다.

 

  "정면의 반란군, 옐로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양도 우란푸도 빠르다! 벌써 다가왔는가! 비텐펠트보다도 이쪽이 먼저 포화를 나누게 될 것 같다.

  무척이나 내 목이 탐나는 것 같다. 등줄기에 찌릿찌릿하고 싫은 감각이 느껴졌다. 얼마든지 좋다. 무너뜨려주지! 이 목, 간단히 가져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노려진 목이지만 노린 놈들은 모두 때려부쉈다. 너희들도 반대로 쓰러뜨려주지.

 

  "전 함대에 명령! 포격전 준비! 주포 일제사격 준비! "

  "전 함대에 명령! 포격전 준비! 주포 일제사격 준비! "

  발레리가 내 명령을 복창했다. 함교 분위기가 단숨에 긴장되었다. 전술 컴퓨터 모니터에는 내게 접근하는 양, 우란푸 함대,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동맹군 3개 함대가, 그리고 비텐펠트에게 접근하는 2개 함대가 보였다. 그리고 이쪽에는 뮐러, 켐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에 모이는 육식동물 무리와도 같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뤼네부르크가 목소리에 웃음을 띄우며 말을 걸었다. 주위가 눈을 부릅 떴다. 불경한 놈, 그런 느낌이다.

  "네. 한 방 먹었습니다."

  그래, 한 방 먹었지. 동맹군이 뭘 한 건지. 이제야 나도 알게 됐다. 애교란 추호도 없는 놈들이다.

 

  비텐펠트를 공격하려 하고 있는 2개 함대는 철수하는 동맹군의 선두에 있던 2개 함대겠지. 도중에 시계방향으로 이동한 거다. 한바퀴 돌아 비텐펠트 함대에 접근했기에 지근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함대가 지금 양, 우란푸의 뒤를 쫓고 있는 함대겠지. 정말이지, 멋지게 제대로 박힌 카운터 펀치다.

  양의 아이디어일까? 이 전쟁 애호가의 위선자 놈. 소설로 봤을 때는 좋았지만 적이 되니 짜증날 뿐이다.

 

  "뤼네부르크 대장. 저는 반란군에게 항복권고를 보낼까 생각했습니다. 웃긴 이야기죠? "

  뤼네부르크가, 모두가 눈을 부릅 뜨며 놀랐다.

  "정말입니까? 그건."

  "네. 정말입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뤼네부르크가 "그건"하고 입을 다물고 웃기 시작했다. 이 녀석, 배꼽 빠지게 웃고 있다. 그걸 보고 발레리가 가볍게 노려봤다.

 

  나도 웃었다. 다들 기가 막힌 표정이지만 웃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부턴가 뇌 속에 꽃밭을 만들고 있었던 거다. 덧붙여 예쁜 꽃들이 잔뜩 피어 있다.

  문벌귀족을 비웃을 수 없구만. 전쟁이다. 죽이냐 죽느냐의 세계에서 싸우고 싶지 않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하물며 지금 상황에서 병력은 거의 호각. 상대방이 그리 간단하게 포기할 리가 없다.

  결혼한 뒤로 조금 멍청해졌나. 전쟁터에선 이상한 심리상태가 된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의 체험으로 말이지.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이길 수 있습니까? 반란군 쪽이 병력은 많습니다만."

  묻지 말라고, 뤼네부르크. 나도 자신이 없어.

  "뭐, 무리하지 말고 싸우도록 하죠."

  뤼네부르크가 씨익 웃었다. 내 마음 같은 건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런 느낌이로군. 그렇기에 넌 주위에서 눈 밖에 난 사람처럼 된 거야. 나 혼자라고? 널 재밌어 하는 건, 아니 악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곁에 두고 있는 건.

 

  "반란군, 옐로존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금 쉰 것처럼 들린다. 지금쯤 침을 삼키고 있겠지. 처음 30분이 승부처다. 이쪽에는 나, 렌넨캄프, 아이제나흐의 3개 함대. 저쪽은 양과 우란푸의 2개 함대다. 때려 눕혀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켐프가 공격에 참가한다. 혼란은 더욱 커지겠지.

 

  나중에 3개 함대가 접근하겠지만 정리되지 못한 전열이다. 각각 두들겨 교착 상태로 만든 뒤엔 메르카츠가 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승산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

  살짝 유스티나에 대해 생각했다. 상냥한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 황급히 머리에서 내쫓았다. 전쟁터에서 여자에 대해 생각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는 건 이길 수단이겠지. 이 얼간이가! 일단은 우란푸다. 이 녀석을 친다!

 

 

 

우주력 799년 4월 16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프레데리카 그린힐

 

  조금씩, 조금씩 제국군이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휘 탁자 위에 앉아 있던 양 제독이 오른손을 슬슬 올렸다.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제국군이 전진해온 것에 양 제독은 놀랐었다. 제독은 제국군이 후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경우 후방을 차단하려고 한 적 함대를 협공할 터였다. 그리고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는 제국군의 본함대를 유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국군은 전진해왔다. 아군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겠지만, 순식간에 방침을 결전으로 바꾼 것은 본래 발렌슈타인 원수에게도 결전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양 제독은 말했다. 이쪽은 잘도 그 심리를 이용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완전히 사정거리에 들어왔습니다! "

  "쏴라! "

  명령과 함께 양 제독의 오른손이 내려 쳐졌다. 양 함대에서 수십 만 개의 광선이 발사된다. 우란푸 함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사되었다. 그리고 제국군에서도 빛의 다발이 쏟아져 동맹군을 덮쳤다…….

 

  이곳저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양 제독도 "이건"하고 말한 채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좌측에 위치한 우란푸 제독의 제10함대가 심각한 손해를 입어 혼란에 빠졌다.

  대체 무슨 일이? 공격을 제10함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 해도 혼란이 너무 심하다.

  "우란푸 제독에게 후퇴하도록 전해줘. 이쪽도 타이밍을 맞춰 후퇴한다."

 

  "괜찮습니까? 이쪽이 후퇴하면 제국군도 후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선 놓치고 맙니다만."

  무라이 참모장이 물었지만 양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제국군은 우리 쪽의 배후를 노린 함대, 흑색창기병대를 방치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도망치고 있었겠지. 그보다도 이 이상 피해를 입으면 제국군이 급진하여 제10함대를 격파하려 하겠지. 그게 더 위험해. 후퇴하여 제3, 제9, 제11함대와 합류하는 걸 우선한다. 총사령부에도 전달해줘."

 

  오퍼레이터가 제10함대, 총사령부에 연락을 취하는 도중에도 제국군의 공격을 받은 제10함대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제국군, 후방의 1개 함대가 전면으로 나옵니다! "

  오퍼레이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로 제국군의 정면 전력은 4개 함대, 이쪽의 2배가 되었다. 이제 곧 애플턴, 호우드, 쿠브르슬리 제독이 응원으로 오겠지만, 그래도 겨우 호각이겠지.

 

  제10함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그에 맞춰 제13함대도 후퇴한다. 하지만 제국군이 맹렬하게 거리를 좁혀 공격해왔다.

  "제14, 제15함대, 제국군과 전투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

  오퍼레이터가 보고했지만 아무도 그쪽을 확인할 여유는 없다. 그 정도로 정면의 제국군의 압력이 강하다. 제10함대에선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제13함대는 제10함대와 연계를 취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애교가 없구만."

  놀라서 양 제독을 보자 제독이 날 눈치 채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 제10함대의 혼란에 대해 알려주었다. 개전 시, 제국군은 3개 함대, 동맹군은 2개 함대였다. 그리고 제국군 3개 함대의 최초 일격은 제10함대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제10함대는 3배 병력의 적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제2격부터는 2개 함대가 제10함대를 공격하고, 1개 함대가 우리들을 공격했다. 혼란에 빠진 제10함대라면 2개 함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우리들을 견제하기 위해 1개 함대에게 공격하도록 했다. 방치할 수는 없을 테니까."

  "3개 함대가……. 하지만 그렇다해도 혼란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요."

  "그래. 혼란이 심해진 건 제국군이 조준점을 통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준점을 통일? "

  "제국군의 레이저는 한 지점을 집중했다. 그런 만큼 제10함대의 손해는 커진 거지."

 

  당황하며 화면을 봤다. 확실히 제10함대에 대한 공격은 일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 만큼 폭발의 빛이 격렬하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양 제독도 같은 공격법을 사용하지만, 그걸 몇 개 함대로 실시하다니……. 양 제독이 애교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해한다. 정말이지 만만치 않다.

  "전체 전력은 동맹군이 더 많다. 하지만 여기선 제국군 쪽의 병력이 더 많았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그걸 최대한 이용한 거지. 적보다도 많은 병력을 준비하고 집중하여 쓴다. 공격 레벨에서도 실천할 줄이야. 정말이지……."

 

  동맹군은 결전으로 적을 끌어들여 기뻐하고 있지만, 결전을 가장 기뻐하고 있는 건 발렌슈타인 원수일지도 모른다. 사나운 짐승이 기쁨에 떨며 이를 갈고 있다. 그리 생각했다.

 

 

 

우주력 799년 4월 16일. 동맹군 총기함 리오 그랑데. 드와이트 그린힐

 

  "제10함대는 꽤나 공격 받고 있구만."

  화면을 보는 뷰코크 사령장관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섞여 있다. 사령장관을 나무랄 수는 없다. 나도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각하. 우란푸 제독의 좌측에 제3함대를 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제국군의 공격을 조금은 돌릴 수 있겠지."

  "나머지 2개 함대는 양 제독의 우측에."

  "음."

 

  그렇게 되면 전선 병력은 동맹군이 5개 함대, 제국군이 4개 함대, 다소는 이쪽이 유리하게 된다.

  "아니, 총참모장. 그것도 안 될 것 같군."

  "예? "

  뷰코크 사령장관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있는가?

 

  "저쪽이 위험해."

  사령장관이 화면 한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제14함대와 제15함대를 비추고 있다. 그렇군. 적의 1개 함대에 밀리고 있다. 상황은 좋지 않다.

  "제14, 제15는 급조된 함대다. 아무래도 흑색창기병대의 상대를 하기엔 짐이 무거웠던 것 같아."

  사령장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결전으로 적을 끌어들일 수 있었는데 상황은 좋지 않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군요. 외측에서도 적의 1개 함대가 접근하는 것이 보입니다. 제11함대의 애플턴 제독에게 제14, 제15함대에 협력하도록 전하겠습니다."

  "음, 그렇게 해주게."

  이걸로 정면에 4개 함대가 되었다. 제국군과 같은 병력이다. 약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완전히 호각, 아니 제10함대가 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 걸 생각하면 조금 불리라고 해야 하려나.

  제국군의 별동대가 오기까지 승부를 내야만 한다.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사실은 일단 전군을 물리고 진을 재편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렇게 하면 제국군은 또 도망치겠죠. 게다가 이제 시간도 없습니다."

  사령장관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구만. ……그건 그렇고, 애교가 없다. 조금은 허를 찔렸으니 당황해도 좋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되면 조금 더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을 것을……."

  뷰코크 사령장관이 화면을 노려봤다. 화면은 후퇴하는 동맹군과 맹렬하게 추격하는 제국군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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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14일. 잠시드 성역, 제국군 총기함 로키.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반란군, 추격을 멈췄습니다."

  발트하임 참모장의 목소리에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전 함대에 정지명령을 내렸다.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는 분명하게 후퇴하는 동맹군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맹군의 후퇴를 인정한 사령장관은 전 함대에 동맹군을 쫓도록 지시를 내렸다.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벌써 8시간 정도 제국군과 동맹군은 술래잡기와도 같은 전투를 벌이고 있다. 단 양군이 실제로 포화를 나눈 건 한 번도 없다.

  공격이 적에게 명중하기 위해선 앞으로 3시간 정도 서로를 향해 접근할 필요가 있겠지.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단좌식 전투정에 의한 공격도 불가능하다. 공격대를 발진시켜도 적진에 도착하기 전에 그 대부분이 적의 단좌식 공격정에 요격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사실은 동맹군은 무척이나 제국군을 쫓고 싶을 터,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동맹군이 쫓아오면 제국군은 잠시드에서 시바 성역 방향으로 후퇴한다. 하지만 동맹군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이끌고 있는 별동대에 대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바라트 성역 근처에서 싸우고 싶다. 그렇기에 도중에서 추격을 멈추고 후퇴한다.

  그리고 제국군은 그런 동맹군을 쫓는다. 이건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동맹군은 후퇴하면서 제국군이 깊게 쫓아오기를 기다린다. 한 순간의 틈을 찔러 교전하여 제국군을 격파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거다.

 

  지금까지는 그 노림수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동맹군이 이대로 패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사령장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각하는 전투식을 먹으면서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와 전면 화면을 보고 있다. 때때로 인상을 찌푸리지만 원인은 전황이 아니라 전투식이 맛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에 불안을 느끼게 만들만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각하, 이 상태가 계속될 거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만, 이 뒤의 전개는 어떻게 될까요? "

  사령장관 각하가 나를 힐끔 봤다. 그리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각하가 전투식에 불평을 흘린 적은 내가 알기로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맛에 까다로운 건 알고 있다. 제국의 전투식은 동맹의 것보다 확실히 맛에 있어 뒤처진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뤼네부르크 대장도 같은 의견이다. 대장도 사령장관 곁에서 무뚝뚝한 얼굴로 전투식을 먹고 있다.

 

  "하이네센 방면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전군이 하이네센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됩니다. 단 이 경우 우리들의 추격을 받을 테니까 꽤나 손해가 나올 것을 각오할 필요가 있겠죠.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후퇴가 아니라 패주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령장관이 전투식을 한입 먹고 얼굴을 찡그렸다. 피망, 간, 전투식, 이 중에 뭘 가장 싫어할까. 언젠가 한 번 셋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해보고 싶다.

 

  "그걸 피하기 위해 몇 개 함대를 남겨 우리들의 발목을 잡게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뭐, 본대는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다만, 의미는 없겠군요. 본대도 그다지 시간은 벌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그 경우 발을 잡는 부대를 철저하게 두들긴다는 건가. 단시간에 무너뜨리고 본대를 추격한다.

 

  "메르카츠 제독과 협공이라는 방법도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전투는 피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

  뤼네부르크 대장이 질문하자 사령장관이 끄덕였다.

  "무의미한 전투는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입니다. 동맹군에게 행동의 자유를 허락할 순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쪽의 통제 하에 둡니다. 그 안에서 전투를 피하는 겁니다. 통제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걸 저지합니다."

  쿨하네. 뷰코크 사령장관이나 그린힐 총참모장, 양 제독이 이 사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한숨을 내쉬지는 않을까.

 

  "동맹군은 처음부터 하이네센에서 이쪽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길 수는 없었겠지만, 싸울 수는 있었겠죠."

  "동맹군이 이길 가능성은 있었을까요? "

  내가 묻자 사령장관이 나를 지긋이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없네요. 저는 반드시 이기도록 준비했습니다. 정략, 전략에 있어 압도적인 우위를 구축하여 동맹군의 2배 이상의 전력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지탱할 수 있을만한 보급체제와 경제력도 갖췄습니다. 그러기 위해 문벌귀족을 쳐부수고 로엔그람 백작을 배제한 겁니다. 동맹군에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

  이만큼의 대가를 지불한 거다. 이기는 건 당연하다. 라고 사령장관은 말하고 있다.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뒤에 싸운다. 승패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승배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싸운다. 이번 전투는 그런 전투입니다. 동맹군도 자신들이 패배했다는 건 알고 있겠죠. 단지 그걸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점 자신들이 졌다는 걸 인정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전투 중의 군인이라기 보다도 실험결과를 지켜보는 과학자 같은 어조였다.

 

 

 

우주력 799년 4월 14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안 되겠군요. 제국군은 우리와의 전투를 피하고 있습니다."

  무라이 참모자이 한숨 섞인 말로 상황을 평가했다. 어조에는 울분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사령부 모두가 같은 마음이겠지. 안색도 좋지 않고 분위기도 좋지 않다. 마음 속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 분노, 안타까움, 무력감으로 가득할 것이 틀림없다.

 

  제국군은 동맹군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다. 우리들을 견제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사이에 별동대로 하이네센을 공략하려는 거겠지. 그리고 우리들은 그걸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제국군의 술수에 빠져 있다.

  ……졌다, 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입 밖으로 내보내고 있지 않을 뿐이다.

 

  "각하, 뭔가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이대로 가면 하이네센이……."

  그린힐 대위의 질문에 "글쎄"라고 애매하게 답했다. 2개 함대 정도 남겨 제국군의 진격을 막은 뒤 하이네센으로 향한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각개격파 당하는 걸로 끝나겠지.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 가는 편이 무익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라리 낫다.

 

  졌구만, 이라고 생각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샨타우 성역, 아니 이제르론 요새 공략, 그게 실패였다. 거기서 로엔그람 백작을 쓰러뜨리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실각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르론 요새가 이쪽에 있다면 방어에 전념할 수 있다.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책략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동맹시민은 제국령 침공을 선택하여 원정군은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대패했다. 그걸로 동맹의 명운은 결정되고 말았다.

  역사상 이겨선 안 될 전투에서 이겨버려 국가가 멸망한 경우가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한 짓이 그거였다. 동맹을 멸망으로 이끈 건 제국이 아니다. 나다.

 

  혹시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지 않았다면 그 바보 같은 제국령 침공은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동맹군은 큰 손해를 입지 않고 끝났겠지. 동맹군이 건재하다면 제국의 내란도 없었을 거다. 문벌귀족도 건재했을 거다. 다시 말해 제국은 이 정도 규모의 군사작전을 일으킬만한 여유는 없었을 거다.

 

  "각하, 총사령부에서 통신이."

  그린힐 대위의 표정이 밝다. 전국의 타개에 기대하고 있는 거겠지.

  "알았다. 화면에 비춰줘."

  화면에 뷰코크 사령장관과 그린힐 총참모장의 모습이 비춰졌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심각하다. 그린힐 대위, 기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로 경례를 나누고 뷰코크 사령장관이 말문을 열었다.

  「통합작전본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시급히 하이네센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함교가 술렁거려 정숙하라고 주의했다. 조용해지기를 기다리고 그린힐 총참모장이 뒤를 이었다.

  「제국군의 별동대가 하이네센으로 접근하고 있다. 상선이 버밀리온 성역 근처에서 제국군의 별동대와 조우했다.」

  다시 함교가 술렁거렸다. 올 것이 왔다.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충격이 있었다.

 

  「하이네센에선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대규모의 시위도 일어났다는 것 같다. 하이네센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되돌리라고 시민들은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어.」

  총참모장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울분이 섞여 있다. 제멋대로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여기에서 철수라니,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허락할 상대도 아니다.

 

  "정부의 대응은? "

  질문하자 뷰코크 사령장관이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들은 제국군과 싸우지도 못하고 있어. 시민들의 철수 요구에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

  다시 한숨이 들려왔다. 이번 한숨에는 힘이 없었다.

 

  「하이네센으로 철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게 되겠지.」

  "……."

  「양 제독은 우란푸 제독과 함께 최후미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어려운 임무다. 잘 될 가능성은 낮다. 제국군의 별동대와 본대에 협공 당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이 사태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나니까.

 

 

 

제국군 490년 4월 14일. 오딘, 통수본부. 슈타인호프

 

  "그럼 반란군은 하이네센을 향해 후퇴하고 있는 거로군? "

  「예.」

  "함정일 가능성은 없나? 경의 함대를 유인하려는 거란 가능성도 있겠지."

  내가 묻자 발렌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동맹군은 전력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흠, 화면에 비춘 발렌슈타인에게 망설임은 없다. 믿어도 좋겠지. 평소에도 그렇지만 귀여움이 없구만. 조금은 전공을 탐낸다든가 치기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반란군은 메르카츠가 이끄는 별동대가 하이네센으로 접근하고 있기에 황급히 돌아가고 있다. 그런 건가."

  「아마도.」

  "어떻게 할 건가? 메르카츠에겐 그대로 하이네센을 공략하게 할 건가? 아니면 반란군의 함대를 협공할 건가? "

  「양쪽 다 가능하겠지요.」

  내게 선택하게 만들 셈인 것 같다. 아니면 시험하고 있는 건가?

 

  "안전책을 취한다면 함대를 무력화하는 거겠지."

  「소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부하들도 기뻐하겠죠. 이제야 겨우 전투를 할 수 있을 테니.」

  희미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다. 쓴웃음일까? 아무래도 부하들을 통제하는 데에 꽤나 고생한 것 같다. 다소는 인간미가 보이는군.

 

  "그렇군. 확실히 제대로 된 전투가 없었구만."

  「예.」

  "좋겠지. 일단 반란군의 함대전력을 무력화한다. 메르카츠에겐 내가 전하도록 하지. 경은 반란군을 따라잡아라. 놓치지 말도록."

  「예.」

 

  서로 경례를 나누고 통신이 끝났다. 본대 6개 함대와 별동대 7개 함대에 의한 협공인가. 반란군의 명운을 정하는 전투다. 그에 걸맞는 큰 전투가 되겠지.

 

 

 

제국력 490년 4월 14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과 통신이 끝나자 함교 분위기는 단숨에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제야 겨우 동맹군을 공격할 수 있다. 협공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전술 컴퓨터에 보이는 동맹군은 후퇴하고 있다. 그걸 쫓도록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함대의 속도를 올리도록 명령했다.

 

  "추격하면서 함대의 배치를 재편합니다. 전방에 3개 함대, 후방에 3개 함대. 전방 3개 함대는 중앙에 본함대, 좌익에 렌넨캄프, 우익에 아이제나흐 함대. 후방 3개 함대는 중앙에 뮐러, 우익에 비텐펠트, 좌익에 켐프 함대. 서두르도록! "

명령이 이어진다.

 

  "스스로 선두에 선다는 겁니까? "

  발트하임 참모장이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령장관은 개의치 않았다.

  "지시는 어떻게 됐습니까? "

  "예."

  참모장이 서둘러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뤼네부르크 대장이 씨익 웃는 게 보였다.

 

  동맹군과는 아직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다. 함대 배치를 재편하면서 추격해도 문제는 없다. 동맹군에게 역습을 받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선두에 선다? 혹시 서두르고 있나? 사령장관의 표정에 흥분은 보이지 않는다. 의심쩍게 보고 있자 사령장관이 날 봤다. 그리고 쓴웃음을 띄웠다. 아무래도 내 의문을 눈치 챈 것 같다.

 

  "추격전이라는 건 무질서하게 되기 쉽지요. 그리고 무질서하게 되면 역습을 받기 쉬워집니다. 특히 이번엔 충분한 전투가 없었으니까 다들 불만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만큼 위험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선두에 선다는 건가요? "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뒷마무리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됩니다. 우리들은 질서를 갖추고 추격합니다. 목적은 동맹군의 후미를 잡는 것. 적 전력을 깎아내는 건 부산물이군요."

  하아, 한숨이 나올 것 같다. 뤼네부르크 대장은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령장관 각하가 나와 대장을 보고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보였다.

 

 

 

우주력 799년 4월 16일. 동맹군 총기함 리오 그랑데. 드와이트 그린힐

 

  총기함 리오 그랑데의 함교는 무거운 분위기에 싸여 있다. 다들 표정이 심각하다. 뷰코크 사령장관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후퇴를 결단하고 이미 이틀이 지나려 하고 있다. 동맹군은 철수하고, 제국군이 그걸 뒤쫓는다. 그런 전개가 40시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양측의 거리는 조금씩이긴 하지만 줄어들고 있다.

 

  최후미를 맡고 있는 제10함대의 우란푸 제독과 제13함대의 양 제독이 세 번 제국군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제국군은 두 함대를 격파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면에서 동맹군을 견제하며 한 부대를 우회하여 후방을 차단하려 했다. 제10함대, 제13함대는 협공을 두려워하여 제국군의 발을 잡지 못했다. 지금은 후퇴에 전념하고 있다.

 

  제10함대, 제13함대에 큰 손해는 없다. 두 함대 모두 1,000척에도 미치지 않는 손해를 받았을 뿐이다. 제국군은 동맹군을 격파하는 것보다도 뒤를 잡아 추격하는 것을 우선하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적과 아군 13개 함대가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제국군의 목적은 알고 있다. 별동대와의 협공이다. 그렇기에 2개 함대의 격파보다도 동맹군 전체의 추격을 우선하고 있다. 아마도 제국군의 별동대는 이쪽을 향하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몇 차례 논의했다. 이대로 가면 협공 당할 가능성이 높다. 뒤돌아 제국군으로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별동대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다. 잘 하면 각개격파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격하고 있는 제국군은 신중하다. 허를 찔러 반전해도 잡을 수 있을지 어떨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웠다. 결국 별동대의 진로를 예측하고 그를 피하는 항로를 취한다고 결론이 났지만…….

 

  "슬슬 좋을까."

  뷰코크 사령장관이 중얼거리고 나를 봤다. 표정에는 웃음이 있다.

  "총참모장, 제국군에게 반격을 시작하지."

  "반격입니까? 하지만……."

  잘 될 거라 생각하기 힘들다. 우물거리자 뷰코크 사령장관이 알고 있다는 듯이 끄덕였다.

 

  "양 제독과 우란푸 제독에게 발을 잡도록 만든다."

  "……."

  "제국군은 한 부대를 우회시켜 후방을 찌르려 하겠지. 그렇게 하는 걸로 그 두 사람을 철수시켰다. 이번에는 그걸 노린다."

  "……제국군의 한 부대를 끌어들여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거군요."

  내가 확인하자 뷰코크 사령장관이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목적은 알겠다. 하지만 그게 잘 될까? 제국군도 거기에는 경계하고 있을 거다. 게다가 정부의 명령을 거역하게 된다. 그에 대해 묻자 사령장관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미 40시간 가까이 도망치고 있어. 제국군이 우리들의 철수가 확실하다고 생각해 준다면……."

  "그렇군요. 찌를 구석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령장관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제국군의 방심을 찌르자는 건가. 지금이라면 잘 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겠지.

 

  "게다가 이대로 가면 제국군에게 협공 당하길 기다릴 뿐이다. 하이네센에 돌아갈 수도 없어져. 정부의 명령에 응하지 못하게 된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잘 되면 제국군을 각개격파할 수 있겠죠. 그게 무리라도 여기서 제국군에게 일격을 가해두면 협공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음. 하이네센에 돌아가 최후의 일전을 기대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

 

  "무엇보다도 이대로 당하기만 해선 병사의 사기도 오르지 않아. 게다가 나에게도 오기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급료 도둑이라느니 허수아비 사령장관이라느니 불리는 건 사양이다."

  사령장관이 표정을 찡그리고, 그리고 웃었다.

  "소관도 같은 마음입니다. 이 쯤에서 급료만큼의 일을 하도록 할까요."

  "음."

  기회는 한 순간이다. 두 번이나 같은 수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작전을 적에게 감청되어선 안 되기에 연락정으로 지시를 내리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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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90년 4월 9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반란군은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습니까."

  양아버지의 말에 저도 모르게 안심했다.

  "하기야 반란군에게 있어서 후퇴는 예정된 행동이겠지. 2개 함대로는 3배의 병력을 가진 놈에겐 이길 수 없어."

  양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다. 불안 따위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남편의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마음 깊이 신뢰하고 있다. 상사와 부하로 있을 때 키워진 신뢰인 거겠지.

 

  부럽다고 생각한다. 나로선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남편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실적도 충분할 정도로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무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위험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하고 만다. 반란군과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전력차가 있다고 해도 괜찮을까 생각하고 만다.

  남편이 전쟁터에 있다는 게 이렇게나 불안할 줄이야…….

 

  "반란군의 별동대가 움직이고 있다더군."

  "괜찮을까요? "

  "문제 없다. 이쪽도 별동대가 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반란군이 합류한다 해도 전력은 에리히와 거의 호각이야. 뒤처지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 걱정은 필요 없다."

  "네."

  양아버지가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나로선 "네"라고 대답하는 게 겨우였다. 호각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빠르면 이달 중에 반란군은 항복하게 되겠지."

  "이번 달……."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한 것이 컸다. 저걸로 반란군의 방어태세가 엉망진창이 되었으니까. 반란군은 발버둥치고 있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승부가 난 거지."

  양아버지가 느긋하게 커피를 입으로 옮긴다.

 

  남편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옮겨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했다는 소식은 오딘에서 널리 퍼지고 있었다. 반란군이 이길 수 없다 생각하고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했다는 것도.

  다들 남편이 반란군을 쓰러뜨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두에게 있어 남편은 무패, 무적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겐 괴롭다…….

 

  "빠르면 가을에는 돌아올지도 모른다. 뭐, 늦어도 올해 안에는 돌아오겠지."

  "네."

  "새해는 모두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네요."

  빨리 돌아와줬으면, 이라기 보단 올해를 넘겨도 상관 없으니까 무사히 돌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뿐만이 아니다. 출정 중인 장병의 가족은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 나에겐 기도하는 일밖에 할 수 없다. 대신 오딘의 가호가 그이에게 있기를…….

 

 

 

제국력 490년 4월 12일. 잠시드 성역,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제국군 이제르론 방면군 6개 함대는 잠시드 성역에 도착했다. 서둘렀다면 10일 쯤에는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급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이동했기에 오늘에야 도착했다.

  지연 작전 덕분에 약 30시간의 거리에 자유행성동맹군 7개 함대가 집결하고 있다. 내일 쯤에는 육안으로 볼 수도 있겠지. 뭐, 바라던 바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양, 칼센과의 전투 중에 뷰코크가 등장하는 거였다. 그걸 피할 수 있었으니 예정대로다.

  방심은 하고 있지 않다. 동맹군에 대해선 항상 정찰대가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동맹군에 이상한 움직임은 없다. 저쪽도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함교는 긴장에 둘러싸여 있다. 발트하임, 슈마흐는 억누르려 하고 있지만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싸울 생각은 없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눈앞에 적을 보게 되면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이번엔 눈앞에 있는 것이 적의 주력이다. 그리고 결사의 각오로 임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흥분하지 말라는 게 무리겠지.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발레리와 뤼네부르크 정도다.

 

  내 함대조차 이런데 비텐펠트, 렌넨캄프, 켐프, 그들의 함대에선 더욱 흥분하고 있겠지. 어쩌면 뮐러 함대도 흥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면에 비춘 적 함대를 보고 군침이라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 더 전 함대에 주의를 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발트하임 참모장."

  "예."

  "전 함대에 통신을. 함부로 총구를 열지 마라. 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르도록."

  "예."

  발트하임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발트하임도 싸우고 싶다고 생각한 거겠지. 유감이지만 그걸 허락할 생각은 없다.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거다. 쓸데 없는 손해를 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나는 저 녀석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능력면에서 위험한 녀석들이고, 감정적으론 꽤나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 지시를 내리자 오퍼레이터가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으나 바로 조금 기운 빠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싸우지 않고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평문으로 보내세요."

  내가 말하자 발트하임이 "괜찮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가? 적은 당연하지만 이쪽 통신을 감청하고 있을 거다. 전의가 부족하다. 제대로 싸울지 의심스럽다고 판단하겠지.

  헌데, 동맹군은 어떻게 할까? 재차 전투를 걸어올런지, 아니면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메르카츠 함대를 요격하기 위해 하이네센 방면으로 향할지…….

  적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쪽이 우위에 서게 된다. 뷰코크는 어떻게 할까? 나라면 하이네센으로 돌아가겠지만…….

  뤼네부르크가 씨익하고 웃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성격 나쁘구만. 너. 상관의 마음을 읽지 않는 것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읽는 것도 문제다.

 

 

 

우주력 799년 4월 12일. 동맹군 총기함 리오 그랑데. 드와이트 그린힐

 

  "총참모장, 제국군은 시간 벌이를 할 생각인 것 같다."

  "예."

  오퍼레이터가 제국군의 통신을 감청했다. 내용을 들은 뷰코크 사령장관의 표정은 떫다. 예측된 일이지만 제국군은 역시나 시간 벌이를 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별동대의 하이네센 공략을 쉽게 하기 위해서겠지.

 

  "통신은 평문으로 쓰여져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런 거겠죠. 이쪽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서일까? "

  "예."

  "불쾌한 짓을 하는군. 그만큼이나 만만찮은 상대지만……. 친구로 삼고 싶지 않은 타입이다. 총참모장."

  이런 상황이긴 하지만 뿜고 말았다. 사령장관도 웃고 있다. 좋은 사령장관이다. 좀 더 빠른 시기에 이 노인을 사령장관으로 삼지 않았던 게 동맹의 불행이겠지.

 

  사실은 제국군이 양 제독, 칼센 제독과 싸우고 있는 와중에 참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국군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꽤나 가혹한 공격을 두 사람에 대해 행한 것 같다. 양 제독은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멈추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동맹군을 제국군은 추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쪽을 합류시키기 위해서다.

 

  각개격파는 용병의 상식이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걸 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싸울 생각이 없기 때문이겠지. 지금의 통신도 그걸 뒷받침하고 있다. 제국군은 명백히 시간 벌이를 하려 하고 있다. 별동대의 하이네센 공략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제국군을 억지로라도 싸움으로 끌어낸다. 그러기 위해 여기에 온 거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하이네센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제국군에게 뒤에서 공격 받게 되겠지. 발렌슈타인 원수의 의도대로 말이야. 여기서 망설일 이유가 없어. "

  단호한 어조였다. 말 그대로 뷰코크 사령장관에게 망설임은 없다.

 

  "그럼 서둘러야만 하겠군요."

  "그렇지. 전진하여 제국군과 교전한다. 병력은 이쪽이 더 많아. 두려워하지 말고 싸우도록 명령하라."

  "예."

  오퍼레이터에 지시를 내리자 함교 분위기가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 일전을 통해 제국군을, 발렌슈타인 원수를 격파한다. 그리고 하이네센으로 돌아가 제국군의 별동대를 친다. 거기에 동맹의 운명을 거는 거다.

 

 

 

제국군 490년 4월 13일. 잠시드 성역,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지긋지긋하네. 만사 무슨 일이든 대체로 바라던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동맹군이 진격을 서둘러 이쪽으로 향하여 오고 있다.

  어째서 이쪽으로 오는 걸까? 보통은 수도를 지키려 하겠지. 나는 라인하르트가 아니라고.

  그리고 황제 프리드리히 4세는 괴뢰가 아니다. 나를 쓰러뜨려도 제국군의 패배로는 이어지지 않고, 제국군은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 건 제국인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이미 제1급 전투태세는 발동했다. 덕분에 총기함 로키의 함교는 싫을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 흥분하지 마라. 조금은 침착해지라고.

  "반란군과의 거리, 100광초."

  오퍼레이터가 잔뜩 눌린 목소리로 동맹군이 접근했다는 걸 보고했다. 아, 텐션 오르지 않는구만.

 

  "전 함대에 명령. 현재 거리를 유지. 후퇴하라."

  "예. 전 함대에 명령, 현재 거리를 유지, 후퇴하라."

  내 명령을 발레리가 복창했다. 그걸 들은 오퍼레이터가 각 함대에 명령을 내린다. 조금 지나 함대가 후퇴를 시작했다.

 

  "반란군, 속도를 올렸습니다! 접근하고 있습니다! "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함대에 울린다. 함교의 분위기가 웅성거렸다. 싸우고 싶어하는 건가……. 발레리가 날 봤다. 내가 끄덕이자 발레리도 끄덕였다.

  "현재 거리를 유지, 후퇴 속도를 올려라."

  좋아. 발레리는 침착한 상태다. 아니, 역시 동맹군과는 싸우고 싶지 않은 걸까.

  하지만 묘한 이야기다. 사령장관과 부관이 적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니. 이런 일은 제국 역사 속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겠지.

 

  "상대방은 필사적이군요."

  "그렇네요. 하지만 이쪽도 필사적입니다."

  내가 답하자 뤼네부르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참 좋은 일입니다."라며 지껄이고 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진심인데.

  우주 통일이 걸린 한판승부다. 진심으로 도망치고 있고, 도망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정당당따위 스포츠만으로 충분하다! 이건 전쟁이다. 당연히 싸우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국력 490년 4월 13일. 하이네센 성역, 메르카츠 함대 기함 뇌르틀링겐.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각하, 버밀리온 성역입니다."

  메르카츠 각하가 화면에 비춘 버밀리온 성역을 응시하며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군이 여기까지 진출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바라트 성역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나? "

  "5일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5일인가."

  각하는 인생의 대부분을 반란군과의 전쟁으로 보냈다. 그 반란군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감개무량한 마음이 있겠지.

 

  페잔 방면군은 당초 13개 함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페잔 공략 후에는 제1군, 슈무데, 린테렌, 루크너, 루디게의 4개 함대가 분리했다.

  그리고 간다르바 성역의 행성 우르바시를 보급기지로 하기 위해 루츠, 바렌 함대가 우르바시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페잔 방면군은 7개 함대로 하이네센 공략에 향하고 있다.

 

  "시리유나가르에 경유하여 하이네센……. 일주일 정도일까. 중령."

  "예."

  시리유나가르와 바라트 성계 제6행성이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하이네센을 지키고 있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공략하기 위핸 재료를 조달한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순식간에 부서질 터다.

 

  "문제는 반란군의 방해가 있을지 없을지입니다만……."

  메르카츠 각하가 가볍게 웃음을 띄웠다.

  "슈타인호프 통수본부총장에 의하면 반란군은 잠시드 성역에서 사령장관과 대치하고 있다고 하더군. 이쪽을 향할 정도의 여력은 없겠지."

  "예."

  반란군의 동향을 각하는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다. 각하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 대한 신뢰는 크다. 그리고 사령장관도 메르카츠 각하를 신뢰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13개 함대나 맡길 리가 없을 거다.

 

  "걱정인가? 슈나이더 중령."

  "걱정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나도 순조롭기에……, 전투다운 전투도 없었고……."

  뭐라고 해야 좋을까? 망설이며 어물거리고 있자 메르카츠 각하가 드물게도 소리내어 웃었다.

 

  "현실감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변변한 전투도 없었는데 반란군은 패배 직전입니다. 150년 계속된 전쟁이 이런 식으로 끝나다니……, 이상한 기분입니다."

  각하가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다.

  "뭐,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각하가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샨타우 성역 회전이 컸던 걸까요? "

  각하가 내게 시선을 향했다.

  "확실히 그게 컸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페잔을 반란군에 넘겼던 것이 컸다고 난 생각한다."

  "페잔, 입니까……."

  메르카츠 각하가 날 보며 끄덕였다.

 

  "얻은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페잔을 얻었기 때문에 반란군은 적은 병력을 더욱 둘로 나눠야만 했지."

  "……."

  "본래 적은 병력은 집중하여 써야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거다. 따라서 효과적인 방어전도 할 수 없었지. 우리가 변변한 싸움 한 번 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정확히는 반란군이 전투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봐야만 한다."

  "과연."

 

  페잔이 중립으로 있었다면 반란군은 전력을 이제르론 방면으로 집중할 수 있었겠지. 요새를 잃어도 이제르론 회랑 출구 근처에서 요격도 할 수 있었을 거다. 혹은 반란군 영역 깊숙이 유인하여 결전을 벌이는 것도 가능했다. 그 전부가 페잔을 얻었기 때문에 무너졌다.

 

  "그 당시엔 반란군에 페잔을 넘기는 것에 꽤나 놀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의 심모원려였다."

  메르카츠 각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각하가 날 봤다. 엄격한 눈빛이었다.

  "슈나이더 중령. 이제 조금이다. 조금만 더 하면 우주에서 전쟁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최후까지 마음을 풀지 말고 싸워야 한다."

  "예."

  내가 답하자 각하가 가볍게 끄덕였다. 눈은 엄격한 채였다. 방심하지 말라고 눈이 말하고 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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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9년 4월 6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레벨로, 제13함대와 제15함대가 합류했다는 것 같군."

  "아아, 그렇다고 들었네."

  시톨레가 내 집무석에 머그컵을 두었다. 커피가 향기를 풍겼다. 시톨레도 근처에 있는 의자에 허리를 내렸다. 그도 손에 머그컵을 쥐고 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려는 것 같다.

 

  "일단은 안심이야. 양 웬리라면 다소 시간을 벌 수 있겠지. 뷰코크 제독이 돌아오기 전까지 제국군을 붙잡아둘 수 있을 거다."

  시톨레가 안심 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게 가슴 아프다.

  "결국 자네들이 한 말이 옳았군. 처음부터 제국군을 동맹령 안으로 끌여들어 싸워야 했었다. 그렇게 했으면 혼란 없이 끝났겠지."

  시톨레가 머그컵을 입으로 옮겼다. 생각할 시간을 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네가 결정한 일이 아니야. 모두 함께 충분히 의논하여 결정한 일이다. 군인들도 납득했기에 따른 거고."

  "하지만 자네들이 말한대로 했다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싸울 수 있었다."

  "……결과론일 뿐이야. 제국군이 그런 수단을 쓸 줄이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 외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 혼란의 원인이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없어."

  시톨레가 "훗"하고 웃었다.

  "자네의 나쁜 버릇이군. 스스로를 지나치게 책망한다는 것."

  과연 그럴까? 나는 남에게 엄격하다는 소리를 더 자주 듣는데…….

 

  "시톨레, 민주공화정이라는 건 전쟁을 수행하는 데엔 적합하지 않은 정치 제도일까?"

  "그게 무슨 말인가? 레벨로."

  시톨레가 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시민에게 선택 받는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시민의 반응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 다시 말해, 그런 만큼 군사적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거다. 그건 민주공화정의 결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방위체제의 붕괴는 우리들 정치가가 시민의 반응을 과도하게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싸울 상대보다 국민감정을 우선하고 말았다……. 시톨레가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 제국이라면 국민감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방위체제를 갖출 수 있었을 거라는 건가."

  "실제로 3년 전에 동맹군이 침공했을 때엔 제국군은 이쪽을 제국령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네들이 취하고 싶었던 작전이다. 제국은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동맹은 그렇게 할 수 없었지."

  "……병력차의 문제도 있어. 그 때 제국은 병력에 있어 동맹에 뒤처지지 않았다.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시톨레가 머그컵을 입으로 옮겼다.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인가, 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침공작전은 어땠는가? 선거 대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부는 국민감정에 영합하여 출병하고 말았다. 그 때,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출병을 멈췄다면……."

  입 안이 썼다. 내 정치 경력에 있어 가장 후회가 남는 일이다.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설령 잊으려 한다 하더라도.

 

  "자네가 하려는 말은 알겠어. 하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아. 동맹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잘못을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치제도의 잘못으로 뒤집어 씌워선 안 된다. 왜냐하면 군주독재정이 꼭 전쟁수행에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주변의 반대에도 군주 혼자만의 생각으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 혹은 계속할 수 있다. 그것이 군주독재정이다."

  "……."

  강한 어조였다. 분노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치제도에 있는 게 아니야. 주권자가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는지 아닌지다."

  "……."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다면, 그렇게 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진지하게 마주한다인가…….

 

  "제국에선 황제의 소수의 신하로 끝난다. 하지만 동맹은 100억 이상의 국민이 대상이 된다. 그들의 과반수 이상이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시톨레."

 

  "마주해야 하는 거다. 레벨로."

  "……."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공화정은 작동하지 않아. 이건 전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을 거다. 아닌가?"

  "……."

  확실히 시톨레가 하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시톨레가 웃었다.

 

  "비관적이 되지는 마라. 자네의 결점이야. 문제가 일어난 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지나치게 자신을 책망한다. 결국엔 절망하고 비관적이 되어버리지. 옛날부터 변하지 않아."

  "나는 지금 비관적인가?"

  "그래, 비관적이야."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런 결점이 있었을 줄이야……. 시톨레가 웃음을 멈췄다.

 

  "상황은 어려워. 하지만 패배가 결정된 건 아니야. 약해지지 말게. 레벨로."

  "그래, 그렇군. 절망하는 건 패배한 뒤에 하기로 하지."

  "전쟁에 패배해도 외교가 있어. 강화 교섭으로 만회할 수도 있겠지."

  "강화 교섭인가……."

  그렇군. 그게 있었지. 전쟁은 군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정치가는 강화 교섭에 대비해 준비를 해야만 한다. 트류니히트와 상담해야하겠지…….

 

 

 

제국력 490년 4월 7일. 시바 성역, 제국군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럼 우르바시는 점령한 거군요."

  「음, 이미 페잔에서 우르바시를 향해 보급물자를 보내고 있다.」

  "호위는?"

  「린테렌 제독이 이끌고 있는 1개 함대다. 충분하겠지.」

  화면에 비치는 슈타인호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 원작과는 다르다. 동맹군은 이곳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보급을 칠 수 있을 여유는 없다. 충분하겠지.

 

  「지금 시점에서 작전에 중대한 지장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 통수본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이대로 작전을 실행하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도 예정대로인가요?"

  「예정대로다. 문제는 없어.」

  슈타인호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다음은 니플헤임이군요."

  「그렇게 되겠지.」

 

  니플헤임은 북유럽 신화의 9개 세계 중에 하층에 존재한다는 얼음의 나라다. 그리고 이 침공작전에선 시리유나가르의 암호명이기도 하다.

  메르카츠는 시리유나가르로 향하고 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하기 위한 얼음을 얻기 위해서…….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에겐 방심하지 말도록 전해주세요. 반란군은 이쪽에 오리라 생각합니다만, 만일의 경우도 있으니까요."

  「알겠다. 그렇게 전하지.」

  "잘 부탁합니다."

 

  내가 부탁하자 슈타인호프 원수가 "음"하고 끄덕였다.

  「그럼 충분히 조심하도록.」

  "예. 감사합니다."

  통신이 끊겼다. 조심하라니, 답지 않잖아. 슈타인호프. 괜히 불안해지네.

 

  동맹군에는 드디어 양 함대가 합류했다. 눈 앞에는 2개 함대가 모여 있다. 통신 감청에 의하면 다른 한 개 함대를 이끌고 있는 건 칼센인 것 같다.

  지장 양 웬리와 맹장 랄프 칼센인가. 그다지 기뻐할만한 조합은 아니네. 여기에 페잔에서 함대가 돌아오면 뷰코크, 우란푸가 모인다.

  슈타인호프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뭐, 나로서도 불만은 없다. 앞뒤로 나뉘어져 움직여지는 것보다 하나로 뭉친 쪽이 대처하기 편하다는 거다.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는 거겠지. 이쪽으로선 뷰코크가 하이네센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다. 돌아가게 되면 메르카츠의 하이네센 공략이 어렵게 된다.

 

  이곳에 뷰코크를 붙잡아 두고 제국군의 각개격파를 노리게 하여 하이네센을 텅 빈 상태로 만들기 위해선, 역시 잠시드까지 밀어 붙일 필요가 있겠지. 거기까지 밀어 붙이면 뷰코크도 이쪽을 막는 걸 우선할 것이다. 실제로 이쪽으로 향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양이 칼센과 합류한 건 이곳에 진격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명백히 하이네센 근교에서 각개격파를 노리고 있다. 잠시드로 유인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너구리와 여우의 속임수 대결이군.

 

  어떻게 해서 양과 칼센을 잠시드까지 밀어 붙일까. 전력을 다해 단번에 밀어 붙일까? 그만 두는 편이 좋겠지. 양이 위험을 느끼고 진심을 내게 될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손해를 입을 것 같다.

  천천히 진격하면 멋대로 물러나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지만 전투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예단하는 건 위험하겠지.

 

  전투가 발생할 것을 전제로 행진해야만 할 것이다. 혹은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하는 편이 좋겠지.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게 좋겠군. 그걸로 가자. 생각보다 편하게 될 수도 있다. 잘 되면 말이지만…….

 

 

 

우주력 799년 4월 7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이런이런, 파고 들 틈이 없네."

  내가 한숨을 내쉬자 무라이 참모장이 기침소리를 냈다.

  "각하, 한탄하고 있어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엔 기침 대신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을 내쉬고 싶은 건 이쪽인데……. 아아, 아까 내쉬었던가? 이거 위험하구만.

 

  제13함대와 제15함대가 합류한 뒤, 제국군은 진격을 재개했다. 이쪽 입장에서도 적을 잠시드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문제는 없다.

  문제는 눈앞의 광경이다. 화면에는 두 배의 병력으로 공격을 걸어오고 있는 제국군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6개 함대 중 4개 함대이 공격에 임하고 있고, 2개 함대는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3시간마다 시계 방향으로 자리를 옮기며 2개 함대씩 교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국군은 6시간 싸우고 3시간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거다. 탱크 베드 수면이나 식사를 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지.

  하지만 동맹군에는 휴식이 없다. 이미 전투 상태에 들어가 18시간이 지나고 있다…….

  두 배의 병력을 상대로 싸우는 거다. 육체적 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도 축적되어 가겠지.

 

  병력차를 살린 전투 방식이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작은 기술을 거는 것보다 정공법을 걸어오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잠시드 방면으로 후퇴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장병의 피로는 축적되어갈 뿐이다. 피로가 계속 축적되면 결전 시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실패했구만. 노골적으로 물러나면 제국군도 경계하리라 생각하고 다소 전투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바로 후퇴하는 편이 좋았다. 칼센 제독도 익숙하지 않은 후퇴전에 고생하고 있겠지. 무라이 참모장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후퇴에 집중하도록 하자. 이 이상 질질 지연전투를 벌이는 건 위험하다. 손해만 늘고 제국군의 의도에 말려들 뿐이겠지.

  이 상황에서 철수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제국군에게 뒤를 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출혈로 사망하는 것보단 낫다.

  "철수한다. 무라이 참모장, 칼센 제독과 통신을 연결해줘."

  "예."

 

 

 

제국력 490년 4월 7일 제국군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동맹군이 철수합니다."

  발레리가 "반란군"이라고 말하지 않고 "동맹군"이라고 말했다. 하기야 아무도 그걸 책망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책망하지 않는데다 때때로 나도 동맹군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다들 책망하기 어렵겠지.

  발레리는 괜찮은 걸까. 동맹군과 싸우는 거다. 부담이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너무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도록 할 생각이니까.

 

  "진격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그들의 뒤를 쫓도록 하죠."

  발트하임은 조금 불만스러워 보인다. 전과를 확대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다.

  "슬슬 페잔 방면에서 반란군의 주력함대가 돌아올 것입니다. 눈앞의 함대와 전투 중에 나타나면 성가신 일이 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가도록 하죠."

  발트하임도 납득한 거겠지. 끄덕이고 오퍼레이터들에게 지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양과 칼센이 지연작전이 아니라 철수를 시작했다. 손해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거겠지. 결전 전에 필요 이상으로 손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렇겠지. 나를 쓰러뜨린 뒤에 메르카츠와도 싸워야 한다. 가능하면 손해는 적은 편이 좋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잠시드에 접근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번엔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오게 되겠지. 뷰코크가 오기 전에 도망쳐버리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는 놈들을 하이네센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후퇴 작전을 해야만 한다.

  이거 라이헨바흐 작전이구만. 차이점이 있다면 본래는 프랑스군의 격파가 목적이었지만, 이쪽은 후퇴가 목적이라는 거겠지. 편하게 승리하는 게 최고다.

 

  적의 주력군을 격파하지 않아도 적의 본거지를 점령하면 전쟁은 끝난다. 원작에서 라인하르트가 양에게 당할 뻔했던 건 그 부분을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이기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양보다도 자신이 위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는 마음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본래 양보다도 자신이 위라는 생각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결전에는 흥미가 없다. 약하다, 열등하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괜한 다툼 없이 끝난다. 뭔가 자기합리화 같아서 싫어지기도 하지만.

 

 

 

우주력 799년 4월 7일. 제13함대 기함, 히페리온. 양 웬리

 

  "제국군은 추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라이 참모장의 목소리엔 안도의 기색이 있었다. 다른 이들도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실패했나. 이래서야 잠시드 전투에 유인할 수 있을지 확정할 수 없다. 조금 더 붙어 오리라 생각했지만. 손해를 각오하고 지연작전을 펼치면서 제국군을 잠시드로 끌어들어야 했었나…….

 

  아무도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최선책은 잠시드 성역에서 제국군과 전투하는 중에 뷰코크 사령장관이 이끄는 동맹군이 전장에 도착 배후, 혹은 측면에서 제국군을 공격하는 거다. 제국군에 큰 손해를 입힐 수가 있겠지. 단시간에 괴멸에 가까운 상황까지 몰아 넣을 수 있을 거다.

 

  그 뒤에 태세를 정비하여 페잔 방면에서 오는 제국군을 기다린다. 혹은 하이네센으로 급행하여 제국군과 싸운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패퇴했다고 알려지면 제국군에도 동요가 생기겠지. 병력 면에서는 다소 열세지만 격퇴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잠시드 성역에서 전투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발렌슈타인 원수는 후퇴할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 없이 후퇴하겠지. 다시 말해 전선은 서로 노려보는 채로 교착 상태에 빠진다는 거다.

  이걸로는 각개격파는 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하이네센은 제국군의 별동대 손에 공략된다. 우리들은 무의미하게 잠시드 성역을 떠돌고 있었단 게 된다.

 

  잠시드에서의 결전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차라리 바라트 성역까지 물러날까? 제국군은 반드시 바라트 성역으로 올 것이다. 뷰코크 사령장관과 합류하여 제국군을 기다린다. 그렇게 되면 제국군의 확실한 보충과 전력의 집중을 꾀할 수 있다.

  ……안 되겠군. 그 시점에서 제국군도 합류하고 있을 거다. 이쪽의 2배 이상의 병력을 가진 제국군을 상대하게 된다.

 

  오합지졸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제국군은 정예다. 오히려 훈련도로 다지면 동맹군이 뒤처진다. 숫자에서 밀리고 훈련도에 뒤떨어지면 도저히 승산이 없다.

  역시 각개격파를 노려야만 한다. 잠시드까지 물러나, 전투에 끌어들인다. 어렵지만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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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랜만입니다.

  끝내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참고로 이 소설은 294화(2016년 6월 18일)로 사실상 연중되었습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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