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광역조사국 제6과. 안톤 페르너.


  “알프레이트 벤델.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회의실로 가지 않겠나? 나도 바로 가지.”

  내 부름에 “예”라고 답하고 벤델이 일어선다. 힐끗 이쪽을 봤지만 벤델은 그대로 회의실로 향했다.


  그가 회의실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스바흐 준장의 시선을 느낀다. 시선을 향하자 그가 희미하게 끄덕였다. 이쪽도 주변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살짝 끄덕인다. 알프레트 벤델……. 지구교에 포섭되었을 터인 남자. 광역조사국 제6과에 보내진 이중 스파이…….


  일부러 미소를 띠우며 회의실로 들어간다. 주위에선 내가 기분이 좋은 걸로 보이겠지. 회의실에 들어가자 깊숙한 자리에 벤델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라면 회의실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겠지. 우연히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고른 것인지. 가장 가까운 옆자리에 앉는다. 벤델은 이쪽을 살피는 듯한 표정이다.


  “미안하군. 호출해서.”

  “아뇨. 그래서 제게 무슨?”

  좋은 기분, 좋은 기분. 자신에게 반복하여 되새긴다. 말을 낮추고 벤델에게 속삭인다.

  “놀라지 말라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가 경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사령장관이?”


  벤델이 놀라서 날 보고 있다. 목소리에는 의심하는 빛이 있다. 하기야 갑자기 에리히가 만나고 싶다고 전하면 누구나 “어째서”라고 생각하겠지.

  “아아, 예의 지구에 대한 건이지만. 경에게 듣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저기, 그건. 무슨 뜻입니까? 어째서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호오, 의심쩍은 표정이군. 아무래도 에리히가 광역조사국 제6과의 진정한 최종책임자라는 건 모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히의 파일을 조사했다……. 역시 지구교의 표적은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렇게 봐야 하는가…….


  “그런가. 경은 몰랐나. 광역조사국 제6과의 진정한 최종책임자가 사령장관이라는 걸.”

  “아뇨. 모릅니다. 그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놀라고 있군. 음. 좋은 느낌이다.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공안사건에 관해선 우리들 광역조사국 제6과가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제국의 안전보장에 관해선 책임자를 통일하는 편이 좋다고 해서 말이야.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최종적인 책임자가 되어 있어.”

  “루게 사무상서 각하도 그걸 인정하고 있다는?”


  “물론이다. 일단 보고는 사무상서 각하에게도 들어가고 있지만 책임자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다.”

  “…….”

  신사실 발견. 그런 거겠지. 벤델의 눈이 붕 떠있다. 호기심의 눈이 아니다. 곤혹스런 눈이다.


  “아, 그렇지. 이 사실은 극비다. 우리 과에도 어렴풋하게 눈치 챈 인간이 있겠지만 외부에 알려지면 위험해. 사령장관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되면 좋지 않으니까 말이야. 경도 입밖에 내지 말라고.”

  “예.”

  벤델이 끄덕이자 나도 응응하는 듯이 끄덕였다.


  “그래서 사령장관께선 제 보고에 의문스런 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불안한 듯한 목소리군. 날 살피는 듯한 눈빛이다. 여기선 오히려 낙천적인 목소리를 내는 편이 좋겠지.


  “어이어이, 착각하기 말라고. 그렇지 않아. 경의 보고는 이미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 보고가 끝났다. 지구에 관해선 문제없다는 걸로 각하께서도 납득하고 있어.”

  “그럼 대체…….”


  “조금 전에 다른 일 때문에 사령장관과 만났는데 말이야. 그 때 지구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사령장관이 물어보신 거다. 그러다가 경에 대한 걸 말하자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시더군.”

  “…….”

  고민하고 있군.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좋아 좋아. 여기서 조금 정에 호소해 볼까.


  “공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사람이니 평소엔 그런 말을 좀처럼 하지 않지만……. 뭐, 사령장관은 나와 사관학교 동기생이니까 그렇겠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렇습니까.”

  아직 납득하지 않고 있군. 조금만 더. 이번엔 조금 침통한 표정을 하는 편이 좋겠군.


  “게다가 조금 지친 것 같더군.”

  “지쳤다?”

  “그래. 군대만이 아니라 변경 개발, 거기에 부정부패 적발 등등 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어. 지치기도 했겠지.”

  “그렇겠군요.”

  조금은 믿었나…….


  “뭐, 기분전환이 된다면, 그렇게 생각해서 말이야. 경에게 있어선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사령장관을 알아두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야. 어떨까? 무리하게 강요하진 않겠지만.”

  “……알겠습니다. 만나겠습니다.”

  “그런가. 그럼 6월 10일이다. 나와 함께 우주함대 사령부로 가지. 비워둬.”


  “10일입니까. 꽤 나중이군요…….”

  “일정이 쌓여 있어서 시간을 비우기 힘든 거야. 시간은 아침 10시, 오전 전체다. 경우에 따라선 점심식사도 함께 할지도 몰라. 기대 되는군.”

  “예…….”


  벤델을 두고 앞서 회의실에서 나왔다. 벤델이 회의실을 나온 것은 내가 나오고 1분 30초 정도 뒤였다.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보인다. 보통이라면 제국 최대의 권력자와 만난다. 출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흥분, 혹은 불안을 보이게 되겠지만……. 헌데, 벤델. 어떻게 움직일지…….


...


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얼마 전에 메르카츠가 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고 하더군.”

  “네. 원래는 제게 온 의뢰였습니다만, 그런 건 연장자가 하는 편이 경험도 풍부하고 능숙하리라 생각했기에 메르카츠 제독을 추천했습니다. 분명 3월 보름쯤에 갔을 겁니다만…….”

  “과연.”


  장인어른이 2번, 3번하고 끄덕이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서 장인어른과 유스티나는 커피를, 나는 코코아를 마시고 있다. 헌데, 무슨 일이 있었나?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 어제 사관학교에서 묘한 말을 들어서 말이지.”

  “어제, 입니까.”


  어제엔 장인어른이 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것이다. 묘한 말을 들었다는 건 학생에게 질문을 받았다는 것일 테지. 하지만 묘한 말? 우주함대 사령장관까지 했던 자에게 묘한 말인가…….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장인어른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꼭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스티나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짐작 가는 데는 없는 듯하다.


  “묘하다면 대체 무슨 말을 들으신 겁니까?”

  “그게 젊을 적과 나이를 먹고 나서를 비교하면 전쟁에 대한 생각, 기분, 행동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과연…….”


  “본래라면 너에게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강의에 나오는 건 나나 메르카츠 같은 늙은이들 뿐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면목 없습니다. 아무래도 민폐를 끼친 것 같군요.”

  내가 사과하자 장인어른이 손을 흔들며

  “아니, 민폐는 아니야. 신경 쓰지 마라.”

  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도 그건 신경 쓰입니다. 장인어른께선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알고 싶은가?”

  “제가 들을 수 있다면.”

  장인어른이 커피컵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렇군, 말해볼까.”하고 중얼거렸다.


  “젊을 적에는 전쟁에 대해서 진중하게 생각했지. 나이를 먹고 나선 대담해졌다. 그렇게 학생에겐 대답했다. 이상하단 표정을 짓더군. 그 이상은 질문하지 않았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반대가 아니겠습니까. 젊을 적이 대담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내 곁에서 유스티나도 끄덕이고 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젊을 적에 스스로 세웠던 작전, 자신의 지휘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고민도 많이 했다.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은지, 희생을 적게 만들 수 있지 않을지.”

  “…….”

  “나이를 먹고 나선 그러한 고민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건 아니군. 고민이 적어지지…….”


  “익숙해 진다, 그런 걸까요.”

  “그런 거겠지.”

  “…….”

  장인어른이 커피를 마시려고 하다가 손을 멈췄다. 뭔가 생각하고 있다.


  “……희생을 치루는 데에 익숙해진다. 아니, 그렇지 않군. 둔해진다고 해야 하나. 희생을 치루는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용병가로선 성숙했다고 해야 하겠지. 그만큼 전투에 집중할 수 있고, 침착하게 지휘를 할 수 있으니까…….”

  “과연. 무서운 일이군요……. 아, 실례했습니다.”

  안 되겠군.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나왔다. 서둘로 사과했지만 장인어른은 화내지 않았다.


  “아니, 네가 말한 대로다. 무서운 일이지. 손해가 2천척을 넘기면 10만에서 20만 명의 희생자가 나온 것이 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아아, 2천척인가’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사람으로선 어딘가 이상해진 거겠지…….”

  “…….”


  확실히 장인어른의 말은 이해할 수 있다. 10만척 이상의 군대가 싸우는 와중에 2천척의 손해라고 해도 그만한 아픔은 느끼지 않겠지. 손해율은 전체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10만명 이상이 죽은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인으로서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게 만든다. 이전엔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겠지. 군대를 그만 두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꽤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죄 깊은 일이다…….”

  “장인어른…….”

  “아버님…….”

  장인어른이 날 봤다. 쓴웃음을 띄고 있다.


  “현역의 사령장관인 너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을까?”

  “아뇨. 바란 것은 저입니다.”

  “……뭐, 너라면 무익한 희생자를 내는 일은 없겠지.”

  “충분히 신경 쓰고자 생각합니다.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음.”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불편하군. 그렇게 생각했을 때, TV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구원을 받은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번호를 확인하자 페르너에게서 온 전화였다. 예의 건이겠지. 좋은 타이밍에 연락하지 않는가. 과연 나의 친구다. 보류상태로 하고 장인어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통신실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TV전화 수신버튼을 누르자 페르너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다리게 했나?”

  “아니, 그렇지 않아. 대화할 수 있나?”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살았어.”

  내 말에 페르너가 흥미 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싸우기라도 했나?”

  “그렇지 않아. 그건 아니지만 불편한 때도 있어.”

  “호오, 흥미 깊군. 그건.”

  “그보다도 이야기를 들을까? 어땠나?”

  페르너가 조금 유감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나와 유스티나가 부부싸움이라도 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바움러 준장에게서 연락이 있었다. 예의 첩보원이 조금 전 지구교도와 접촉했다고 한다.”

  “틀림없나?”

  “틀림없어. 교단지부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접촉했다고 하더군. 꽤나 고전적이지?”

  페르너가 비아냥에 가득찬 웃음을 보였다.


  “별 수 없겠지. 녀석들은 오래된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니까. 전통적인 방식을 좋아하는 거야.”

  페르너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에게 너무한 말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웃고 있는 너도 공범이겠지.


  “그래서 그 외에는?”

  “접촉한 지구교도는 시급히 교단지부로 돌아갔다. 꽤나 서두르는 모습이더군.”

  “…….”

  “그 뒤 교단지부장인 고드윈 대주교도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유죄, 라는 건가…….”

  “그렇겠지.”

  페르너가 끄덕였다.

  “바움러 준장과 6월 9일의 준비를 진행해주길 바래.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고. 안톤.”

  “아아, 충분히 주의할 거야. 기다리기 힘들군. 그 날이.”

  동감이다. 이걸로 페잔, 지구, 하이네센, 모든 곳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지구교의 꼬리를 잡아 해가 닿는 곳으로 끌어내게 되겠지.


...


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다행이란 표정을 짓고 있더군. 아무래도 불편했던 것 같아.”

  “아버님.”

  아버님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군대의 일은 알지 못한다. 전쟁터도 전쟁도……. 하지만 승리를 얻기 위해선 극히 힘든 결단이나 괴로움이 있으리라는 건 알 수 있다. 아버님이 말한 것은 무겁고 괴로운 내용이었다. 남편에게 있어서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걱정할 필요 없어. 옛날부터 저것을 보고 있으나 장병에게 쓸데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가 아니니까. 출세욕이나 야심과는 인연이 없는 자다. 걱정할 필요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아버님은 같은 말을 두 번 썼다. 안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심이겠지.


  “아버님은 괴로우신 건가요.”

  “응?”

  “아까 전의 말을 하실 때 아버님이 괴로워 보이셨으니까…….”

  내 말에 아버님은 잠시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괴로운 것이 아니다. 무거운 거지.”

  “무겁다?”

  “자신이 죽게 한 사람들, 죽인 사람들. 그 죽음이 쓸데없지 않았다는 증거를 세우지 않으면 안 돼. 그게 무거운 것이다.”

  아버님이 날 보고 있다. 그리고 말을 계속한다.


  “그 무게를 누구보다도 느끼고 있는 것의 너의 남편이겠지. 그러니 지금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어. 아무리 괴롭다 하더라도 던져버리는 일 없이 걷고 있지. 다들 저것을 칭송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게야. 저것에게 있어선 의무이며 속죄이며 서약이기도 하니…….”


  “의무이며 속죄이며 서약……. 아버님, 저 사람은 언제 거기에서 해방될까요?”

  “……그걸 정할 수 있는 건, 저 자 뿐이다.”

  “…….”


  아버님은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질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편은 평생 그걸 짊어지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나는 계속 그 모습을 보고 살아가야 할 것이 틀림없다. 그게 얼마나 괴롭든지…….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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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신무우궁. 안톤 페르너.


  신무우궁 남원에 있는 한 일실. 어둠침침하고 음침한 방이지만 거기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세 남자가 마주하고 있다. 내가 한 명, 내 정면에 두 명……. 역시나 조금 하기 힘들다.

  “그래서, 어떤가? 페르너 과장보좌.”


  그 과장보좌라는 칭호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준장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지만 무리인가……. 상대방은 군인이 아니다. 사무상서 루게 백작, 내 상사다. 안경을 쓴 초로의 남자. 나는 아직 이 노백작이 소리 높여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잿빛의 실무가. 그런 느낌이다.


  “알프레트 벤델. 그가 지구에서 돌아온 뒤 이미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구교와의 접촉은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노백작이 말없이 옆을 봤다. 하기 힘들겠지. 흥이라든가 쳇이라든가 혹은 눈으로 뭔가 반응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무표정하게 옆에 있는 에리히를 보고 있다. 누구와 닮았지. 누구일까.


  어이어이, 뭔가 말하라고. 에리히. 너까지 침묵하지 마. 내가 하기 힘들잖아. 애초에 너희들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다고. 루게 백작은 형식상, 나의 상사. 에리히는 사실상, 나의 상사. 안스바흐 준장이 나에게 이 일을 넘길만 하다.


  “페르너 준장. 그의 행동에 수상한 점은?”

  그거라고. 과장보좌보다 훨씬 좋다. 역시 경은 친구로군.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사이옥신 마약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집중한다. 닮았지. 이 두 사람의 시선. 사실만을 알려고 하는 눈. 영리한 빛을 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변호사 자격을 지니고 있다. 법에 관여하는 인간이란 건 이런 눈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의 모발을 채취했습니다. 사이옥신 마약 상습자 특유의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끄덕였다. 증거를 보이라는 건가.


  “또 하나는 뭔가. 과장보좌.”

  “그는 광역조사국이 소유하는 개인정보 파일에 접속하려고 했습니다. 대상자는 에리히 발렌슈타인 우주함대 사령장관입니다. 파일에는 최고기밀로 지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그가 가진 접속허가등급으로는 관람할 수 없지만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접속을 시도한 모양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건 내가 대지구교 최종책임자라는 걸 알았다는 걸까?”

  “아뇨. 거기에 대해선 알 수 없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거는 지금 현재 어디에도 없습니다.”

  에리히가 말없이 끄덕인다. 백작은 잠자코 보고 있다.


  광역조사국의 전신, 사회질서유지국이 수집한 에리히에 관한 자료는 막대한 양이었다. 그리고 최고기밀로 지정된 부분도 꽤나 있다. 나도 파일의 전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갱신이력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질서유지국은 제국력 483년 9월경부터 에리히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사이옥신 마약사건이 발각된 직후다. 그리고 그 당시부터 최고기밀 취급의 정보가 있다.


  그 이후 에리히의 정보는 매년 갱신되고 있다. 그 외에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정보를 모으고 있던 인간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뿐이었다. 백작의 파일도 꽤 많은 부분이 최고기밀로 지정되어 있다. 관람 가능한 자는 사법성에서도 상서, 차관, 그 외 몇몇 국장에 불과하다.


  “그 외에 내 파일에 접속하려고 한 인간은?”

  “없습니다. 파일에 접속하면 관람은 할 수 없어도 접속이력이 남습니다. 임무 이외에 접속하면 주변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정보관계의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입니다.”

  내 대답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루게 백작의 파일은 어떤가?”

  “지금 현재 수상쩍은 접속이력은 없습니다.”

  “내가 목표인가…….”

  속삭이는 듯한 어조지만 불쾌감이나 혐오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은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게 되면 싫은 표정도 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것 같군. 경이 이 사건의 책임자라는 걸 알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명백하게 경이 목표다.”

  두 사람이 끄덕이고 있다. 흥분도 없으며 감정의 흔들림도 없다. 담담하게 사실만을 쌓아가고 있다. 하기 힘들구만.


  “헌병대에선 뭐라고 하던가?”

  “헌병대의 바움러 준장에게선 아무것도. 딱히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지구교가 감시를 눈치 챈 흔적은?”


  “지금 현재로선 그러한 흔적은 없습니다. ……조심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만…….”

  바움러 준장은 광역조사국의 의뢰를 받아 오딘의 지구교 지부를 감시하고 있다. 벌써 1주 이상이 되지만 항상 보고는 이상 없음이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에리히가 시선을 낮추고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시선을 올렸다.

  “……시험해 보지. 오늘에라도 알프레트 벤델에게 전해주길 바래. 내가 지구에 대한 건으로 듣고 싶은 것이 있다고. 지금은 바쁘기에 6월 10일에 우주함대 사령부에서 경과 함께 만나기로 했다고.”


  서두르고 있군. 자신을 미끼로 삼는 것은 에리히의 버릇이다. 단지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때, 각하께서 본 건의 최고책임자라는 걸 전해도 괜찮겠습니까?”

  내 말에 루게 백작이 한쪽 눈썹을 희미하게 올렸다. 드디어 인간다운 반응을 봤다.


  “상관없어. 그러는 편이 확실해서 좋아. 지구교에 압력을 걸게 되는 일이 되겠지.”

  확실히 그 말이 맞다. 책임자가 루게 백작이라는 것과 에리히라는 것은 상대에 주는 충격이 전혀 다르다. 받는 압력도 꽤나 다르겠지.


  “움직임을 보이리라 생각하는가?”

  “네. 뭔가 움직임을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설마하고 생각하지만. 그가 폭발하여 경을 습격하길 기다린다고?”

  루게 백작이 희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이 노인의 감정은 눈썹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대발견이군.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접촉한 시점에서 유죄입니다. 전날 6월 9일에 그를 체포하여 교단을 강제조사합니다.”

  “꽤나 과격하군.”

  비아냥인가 생각했지만 꽤나 진지한 표정이다. 그런가. 오벨슈타인이다. 그와 어딘가 닮았다…….


  “이제 슬슬 기다리기만 하는 건 질렸습니다. 잠시 난폭하게 움직일까 생각합니다. 녀석들이 싫어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도록…….”

  “과연. 그것도 좋은가.”

  루게 백작이 끄덕인다. 그리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어떤가? 페르너 과장보좌. 문제가 있을까?”

  “아뇨. 찬성입니다. 녀석들은 무척이나 신중하니까요. 난폭한 편이 의표를 찌를지도 모릅니다.”

  나도 이제 슬슬 움직이고 싶어졌다.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오딘이 움직이면 페잔에서도 움직임이 보이겠죠. 그리고 하이네센에서도 움직임이 보일 것입니다. 각각의 움직임이 새로운 사태를 발생한다. 막힌 물을 뒤섞어 보자고 생각합니다.”

  “알았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겐 제가 말하겠습니다.”

  “음. 부탁할까.”

  “바움러 준장에겐 페르너 준장. 경이 말해줘.”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지시를 끝내고 에리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게 백작과 함께 에리히가 떠나는 걸 배웅한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직후였다. 루게 백작이 내게 말했다.


  “페르너 과장보좌. 아니, 페르너 준장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까.”

  “……아, 아뇨.”

  “과장보좌라고 부를 때마다 희미하게 불편한 표정이 눈에 보인다. 아직 멀었군.”

  “…….”

  싫은 소리를 하는 노인장이다. 대체 무슨 용무냐.


  “그를 지키게. 죽게 놔두면 안 돼.”

  “…….”

  “부탁하지. 페르너 준장. ……그런 기분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각하.”

  “그럼 나는 이걸로 실례하지.”

  그런 기분? 떠나가는 루게 백작을 망연하게 배웅했다.


...


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신무우궁에서 우주함대 사령부로 돌아오자 이미 오후 3시 5분을 넘기고 있었다. 지각이다. 실수했군. 상대가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와 있습니까?”

  발레리에게 묻자 “응접실로 들어가셨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선에 이쪽을 책망하는 빛이 희미하게 있다. 일부러 늦은 거 아니라고.


  응접실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인물이 일어나 경례를 했다. 이쪽도 답례를 돌려준다. 소파에 앉도록 권하고 나도 자리에 앉았다.

  “면목 없습니다. 앞선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아뇨.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눈앞의 초로의 남자가 있다. 60세는 아직일 테지만 60세라고 해도 위화감은 없겠지. 인생에 지친 듯한 표정이고 몸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신품 정장을 입고 있을 테지만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 항상 자금에 곤란하고 있는 영세기업 사장, 그렇게 소개 받으면 납득하고 말 것 같다.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온정 덕분에 이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두터운 간호를 수배하여 주신 점,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목소리에 탁함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병원에서도 그런 보고를 받았다. 하기야 알코올을 입에 넣는 순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아서 린치 소장. 엘 파실에서 민간인을 버리고 도주한 동맹의 지휘관. 양 웬리의 상관이기도 했다. 장래가 기대된 사관이기도 했지만 엘 파실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원작에선 라인하르트의 모략 실행자로서 하이네센으로 돌아가 내란을 일으켰다. 마지막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린힐 대장을 죽인 뒤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에게 죽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살아 있다…….


  “동맹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걸로 포로 교환 후, 제국에 망명을 희망했다. 그런 형태로 대응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계급은 제국군 소장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고맙습니다. 저와 같은 자에게 과분한 배려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동맹정부에게도 그렇게 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린치 소장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후에 대한 일입니다만. 희망이 있으십니까? 소장은 전선만이 아니라 데스크워크도 유능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양하지 않고 말씀하십시오.”

  안 되겠군. 린치가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나는 딱히 나쁘게 말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는 받아 들어주지 않는가…….


  “군인으로선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소관은 민간인을 버리고 도망친 비겁자니까요…….”

  쥐어 짜는 듯한 목소리다. 괴로웠겠지…….

  “그렇게 비하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

  역시 어려운가……, 별 수 없군.


  “그럼 제 일을 돕는 건 어떻습니까?”

  “각하의 일입니까.”

  “저는 지금 변경성역 개발의 책임자입니다. 그 일을 도와줬으면 합니다.”

  “…….”

  별로 끌리진 않나.


  “어딘가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꿈틀하고 린치의 어깨가 움직였다. 정곡인가.

  “하지만 그래선 또 알코올로 도망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린치가 신음하고 있다. 몸이 작게 떨리고 있다.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 그래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지옥이로군. 린치에게 있어서 살아간다는 건 지옥일지도 모른다.


  ‘그 때엔 죽어라. 지금 너에게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보 놈들이……. 나는 그린힐의 명예를 지켜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살아서 재판을 받는 것보다, 녀석은 죽는 편이 좋겠지……. 후후후, 명예인가. 하찮군.’


  하찮다고 말하면서도 누구보다도 명예에 고집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누군가를 자신과 같은 자리에 떨구고 싶다고 생각했다. 혼자선 괴로우니까. 그리고 구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괴로우니까……. 능력도 있고 출세도 했던 남자다. 긍지가 없었다곤 생각할 수 없다. 라인하르트의 수하가 되어 활동하면 도달하는 곳은 파멸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원작의 린치는 어딘가에서 죽음을,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린치는 그렇게나 자신을 책망해야만 할까? 엘 파실의 린치는 불운했다고 난 생각한다. 혹시 같은 입장이 되었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린치와 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까. 민간인을 구하여 도망치는 일이 불가능한 이상, 차선의 책은 구원을 불러 민간인을 탈환하는 일이다. 봉쇄를 돌파하여 아군을 데리고 돌아온다. 이상한 발상이 아니다.


  혹시 양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린치는 돌파에 실패하여 민간인도 전부 포로가 되었다. 동맹군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린치 소장은 아군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봉쇄를 돌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운이 없어 포로가 되었다…….’ 민간인을 죽게 내버려 뒀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다른 수가 있었냐는 말을 들으면 침묵할 수밖에 없겠지.


  양이 기적을 일으킨 덕분에 린치는 심한 비난을 받았다. 양을 책망할 생각은 없다. 그 상황에서 민간인을 구한 것은 분명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영웅이라든가 천재라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 가져오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관여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바뀐다.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린치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도 라인하르트도 대체 몇 사람의 인생을 바꿨는지……. 그리고 나는 또 어떤지…….


  “제국의 변경성역에는 괴로워하는 사람, 곤란에 빠진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돕지 않겠습니까. 동맹시민과 제국신민의 차이는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사람을 구하는 일이 혹시 자신의 삶에 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하지 않겠습니까.”


  린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용서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제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 있을 순 있지 않겠습니까.”

  “함께 있다…….”

  “네. 당신이 있기에 지금의 자신들이 있다. 그건 살아가기 위한 양분이 되지 않겠습니까.”


  “함께 있다…….”

  매달리는 듯한 눈이었다. 눈앞의 초로의 남자는 용서 받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용서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린치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을 타인이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린치에게 다른 구원을 제시하는 일이다.


  “나와 함께 변경성역 사람들을 돕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네.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다…….”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하고 린치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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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5월 25일. 페잔. 길베르트 파르머.


  세 번, 네 번하고 수신음이 울린다.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째 콜에 상대가 수신했다. 화면에 상대방이 나타난다. 군복이 아니다. 사복차림이다. 자택에서 편히 쉬고 있던 것 같다. 웃음을 띠고 있지만 조금 지친 듯이 보인다. 발렌슈타인. 경은 여전히 바쁜 것 같군…….


  “오랜만이군. 발렌슈타인.”

  “네.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헤르 파르머.”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발렌슈타인은 내 말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보입니까?”

  “아니, 인사치레다. 바쁜 것 같군. 조금 지친 듯이 보이지만, 괜찮은가?”

  더더욱 쓴웃음이 커졌다.


  “지치기도 했지요. 매일처럼 부정부패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요.”

  “부정부패?”

  “네. 바보 놈들이 모여서 단 것을 탐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긋지긋해요.”

  이번엔 얼굴을 찡그린다. 꽤나 곤란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부정부패?


  “……나쁜 짓을 할 만한 귀족은 없어졌을 텐데.”

  “그 만큼 자신들의 몫이 늘어났다. 그렇게 생각하는 평민 출신의 악당들이 있다는 겁니다.”

  “……과연.”


  과연, 그런 건가……. 귀족들이 몰락했다. 그것이 정치, 경제, 군사만이 아니라 범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주역교체. 그런 거로군. 지금까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살던 소악당들에게 대악당이 될 찬스가 왔다는 건가……. 어쩐지 발렌슈타인이 지긋지긋한 듯한 목소리를 낸다 했다.


  “지금 제국이 가장 원하는 직업이 뭔지 아십니까?”

  비아냥이 넘치는 목소리다. 목소리만이 아니다. 화면에 보이는 발렌슈타인에겐 비웃음이 보이고 있다. 어쩌면 냉소도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아니, 모르겠는데.”

  “변호사입니다. 그것도 돈만 주면 뭐든지 해주는 악덕변호사……. 혼자서 세, 네 건의 재판을 맡고 있는 녀석이 있습니다. 의뢰인은 다들 부정부패 용의자로 체포된 쓰레기입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에요.”

  처음엔 냉소였지만 마지막엔 내뱉는 듯한 어조였다. 분노하는 발렌슈타인을 보고 있자 왠지 실소가 흘러나왔다.


  “좀처럼 잘 안 되는군.”

  “네. 잘 안됩니다. 제도가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왜곡되어 있는 건 제도만이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였던 거죠.”

  이번엔 한숨이 나왔다. 꽤나 치명상이군. 조금 용기를 붙여줄까. 하지만 내가 이 남자의 용기를 북돋는다니. 이 세상은 자극과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비관할 일은 아니겠지. 페잔에선 다들 제국의 개혁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경기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 덕분에 우리들도 크게 벌고 있다. 감사하고 있어.”

  내 말에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띄웠다. 위로를 받았다는 걸 눈치 챘는가…….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습니다. 범죄 없는 세계 따위 없을 텝니다만, 범죄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 세계를 만드는 것도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들 범죄를 저지르게 되겠죠. 그러는 편이 편하니까요.”

  “확실히, 그렇군.”

  화내는 듯한 어조다. 역시 눈치 챘는가.


  “단, 그렇게 됐을 때엔 심각한 인간불신이 사회에 만연하게 됩니다. 사람을 보면 도둑이라고 생각한다, 로군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지금보다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불행의 극치에요. 뭘 위해서 내란을 일으키기까지 해서 국정을 바꿨는지…….”

  “…….”

  “넋두리뿐이군요. ……헌데, 오늘은?”


  “얼마 전에 라트부르프 남작과 만났다.”

  “…….”

  “우연이었지. 상대방이 먼저 눈치 채서 말이야. 조금 대화를 했다.”

  “……그렇습니까.”

  당혹스러워 보이는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희안한 일도 있군.


  “경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두번째라고. 그런 말을 들은 건. 그 외엔 없는 건가?”

  발렌슈타인이 쓴웃음을 띄웠다.


  “그렇군요. ……민폐를 끼치진 않았습니까?”

  “아니. 그런 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즐거웠다. 경에 대해서 좋은 상사라고 하더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라트부르프 남작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한 상사에요.”


  발렌슈타인은 시선을 피하고 있다. 겸손이 아니다. 본심에서 말하는 것 같다. 완전히 비정해지진 못하는군. 이 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하기야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이 자의 무른 부분 덕분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생각할 수 있다.


  “란즈베르크 백작에 대해서 말이지만. 라트부르프 남작에게서 들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이야기로군.”

  “네.”

  “서툰 시작이나 하던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종하기 쉬운 거겠죠.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듯합니다…….”

  좋지 않다는 듯한 어조다. 란즈베르크 백작에겐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으니까. 무리도 아닌가…….


  “신경 쓰여서 조사해 봤다.”

  “…….”

  “그런 표정 하지 마라. 걱정할 필요 없어. 대단한 조사는 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약간 조사해본 정도다. 상대가 눈치 챌 일도 없어.”


  안 되겠군. 발렌슈타인의 표정이 딱딱하다. 날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자금 면에서 곤란한 것 같지 않더군.”

  “우주선을 팔았다고 합니다. 당분간 돈 걱정할 일은 없겠죠.”


  “아니야. 주변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녀석은 아직 우주선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가 원조하고 있는 것 같다.”

  “뭐라구요…….”

  “누군가가 자금원조를 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발렌슈타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역시 몰랐는가…….


  내란이 끝나고 많은 귀족들이 전쟁터에서 이탈하여 페잔으로 망명했다. 망명한 귀족들의 재산은 제국정부가 압수했다. 반란을 일으켰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귀족들이 페잔의 금융기관, 투자기관에 맡겨둔 자금도 압수 대상이 되었다.


  페잔으로선 거절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국정부와의 관계악화를 피하기 위해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관계악화를 두려워한 동맹정부의 의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거지만……. 페잔 정부에서 각 금융기관, 투자기관에 대하여 제국에 자금을 반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실행되었다. 다시 말해 망명한 귀족들은 거의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우주선을 팔아치워 금전을 얻는 일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제국에선 귀족이 몰락했기 때문에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있었다. 교역선의 수요가 늘어나니 우주선 판매가 퇴짜를 맞는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팔렸겠지. 지금 망명귀족들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그것이 이유다.


  란즈베르크 백작 알프레드는 우주선을 팔지 않았다. 생활비만이 아니다. 우주선의 유지비도 있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자금면에서 곤란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원조를 받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란즈베르크 백작은 다른 사람들에겐 우주선을 팔았다고 말하며 후원자가 있다는 걸 숨기고 있다.

  “후원자가 있다면 큰 목소리로 떠벌리고 싶을 터다. 다른 이들의 용기를 북돋는 일도 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후원자는 고상한 분인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거겠죠. 백작에게 입막음을 했나봅니다.”

  농담을 하고 있을 땐가. 발렌슈타인.


  “반란군 주전파가 쿠데타에 실패하여 붙잡혔다. 백작의 자금원이 그거라면 백작에게도 조사가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백작에겐 그걸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곤란한 모습도 보이지 않아. 뒤에 있는 건 다른 손이겠지.”

  발렌슈타인이 쿡쿡하고 웃었다.


  “반란군입니까. 그건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헤르 파르머. 정체를 들키고 맙니다.”

  “확실히 그렇군. 평소엔 이런 단어는 쓰지 않지만……. 아무래도 경과 이야기하고 있다 보면 제국인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 같다.”

  이런이런.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동안 둘이서 웃었다. 묘한 일이다. 이 자와 이런 식으로 웃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이 더욱 우스워서 웃었다.


  “자유행성동맹이 아니라고 하면…….”

  “그 이상은…….”

  “위험한가.”

  “네.”

  진지한 표정이다.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는 것인가……. 그리고 위험한 상대이기도 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군…….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먼 날은 아니겠죠.”

  발렌슈타인이 웃음을 띠웠다. 부드러운, 온화한 웃음이다.

  “그런가. 멀지 않았나. 기대되는군.”

  “그렇지요.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통신을 끊었다. 그렇게 먼 날은 아닌가……. 아무래도 제국군의 페잔 침공은 앞으로 1, 2년 안에 실행되는 것 같다……. 만날 날이 기대되는군…….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


제국력 489년 5월 25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직장에 연락하자 바로 연결되었다. 밤 8시를 넘겼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여어, 귄터. 아직 일이야?”

  “아니. 돌아가려던 참이다. 무슨 일 있나?”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쪽으로 오지 않겠어?”

  내 말에 키슬링은 조금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건 상관없지만. 괜찮나? 신혼가정에 실례해도.”

  진지한 표정이다. 농담을 말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상관없어. 식사는?”

  “아니, 아직이다.”


  “알았다. 준비해두지.”

  “괜찮은 건가?”

  “사양하지 않아도 돼. 기다리고 있겠어.”

  시간이 없군. 있는 재료로만 해도 좋겠지. 어디, 오랜만에 요리라도 할까…….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살펴보자 유스티나와 슈테판 부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키슬링이 온다는 걸 전하고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하자 자신들이 만들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기분전환으로 스스로 만들겠다고 말하며 포기하게 했다. 무척이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시금치, 콩나물, 감자, 양파를 꺼낸다. 그리고 버섯이다. 슈타인필츠와 꾀꼬리 버섯이 있군. 좋겠지. 충분하다. 그 외엔 소시지가 있다. 이걸 쓸까. 저 녀석은 야채를 그다지 섭취하고 있지 않겠지. 오늘은 듬뿍 먹여주마. 그리고 계란을 두 개와 고형 콩소메를 꺼낸다. 이걸 잊으면 안 되지.


  그 외엔 인스턴트 치킨도리아를 꺼낸다. 이 집에서 인스턴트 식품?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도 뮈켄베르거도 군인이다. 휴일에도 급한 호출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배가 고파선 일도 할 수 없다. 인스턴트라면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는 사이에 준비할 수 있다. 때론 지상차 안에서 먹을 때도 있다. 인스턴트 식품은 필수불가결이라고 해도 좋다.


  시금치는 다섯 포기, 콩나물은 적당히 두 줌, 감자 하나, 양파 반개, 버섯은 다량으로 준비한다. 야채를 잘 씻어서 시금치, 감자, 양파, 버섯을 적당히 잘랐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꺼내어 알루미늄 호일을 깐다.


  프라이팬에 물을 약 250cc 넣어 조미료를 적당히 넣는다. 그리고 고형 콩소메를 절반 넣는다. 그 위에 시금치, 감자, 양파, 버섯을 적당히 올린다. 소시지를 식칼로 칼집을 내어 야채 위에 올린다. 소금, 후추를 뿌려 한 번 뚜껑을 닫는다. 불은 중불이다. 1, 2분 정도로 완성 될 테니 그 사이에 인스턴트 치킨도리아를 데운다. 키슬링이 온 것은 모든 것이 끝나고 응접실에 요리를 옮긴 직후였다.


  “호오, 호일구이인가. 경이 만든 건가? 오랜만이군.”

  프라이팬을 보고 바로 안 것 같다. 기쁘단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걸 뮐러와 페르너에겐 자주 만들어 줬었지. 레시피도 줬지만 과연 스스로 만들어 먹은 적이 있었을는지…….


  “이야기는 나중이다. 우선 먹어둬. 식으면 맛없으니까 말이야.”

  호일구이를 프리이팬에 올린대로 가져온 것도 그것이 이유다. 식으면 맛없다.

  “알았다.”

  그렇게 말하고 키슬링은 바로 프라이팬의 뚜껑과 알루미늄 호일을 벗겼다. 좋은 향기가 응접실에 풍긴다. 야채와 버섯 냄새다. 바로 키슬링이 먹기 시작했다.


  “맛있군. 이 스프, 버섯의 맛국물이 뭐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소시지의 육즙이 참을 수 없어. ……제길! 이 콩나물, 맛이 배여 있어! ……하지만 어째서 백합 뿌리가 없는 거냐? ……난 그걸 좋아하는데.”

  요리비평가, 귄터 키슬링의 탄생이다.


  “나도 좋아하지만 말이야. 우리 집 냉장고에는 백합 뿌리가 없더라고.”

  “안 되겠군. 그건. ……경답지 않은 실책이야. ……백합 뿌리는 건강에도 좋다고?”

  올려다보는 눈으로 날 보지 마라. 우리 집 냉장고는 내 냉장고가 아니야. 별 수 없잖아.


  “그보다 도리아도 먹어 보라고.”

  “도리아 따위 언제든 먹을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여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고. ……제길, 이 감자가 백합 뿌리였다면 완벽했을 텐데!”

  감자와 백합 뿌리를 비교하는 놈이 있겠냐. 이 얼간이가!


  “감자는 필수다! 양파가 백합 뿌리였다면 완벽했어.”

  “……아무튼 백합 뿌리가 없는 건 용서하기 힘든 실책이다.”

  “알았다. 알았어. 이 다음엔 백합 뿌리를 냉장고에 넣어둘게.”

  겨우 납득해줬나. 키슬링은 도리아를 먹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도리아를 다 먹고 한숨 쉬고 나서니 대략 20분 뒤인가. 나중에 슈테판 부인에게 백합 뿌리를 상비해 주도록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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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5월 10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안톤 페르너.


  “소용 없어.”

  “응?”

  “보안서ㅇ도 광역조사국도 이 건에 대해선 관여할 수 없어.”

  “……그런 건가.”

  귄터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이런, 읽혔는가……. 최근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이유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부정부패에 관여되어 있는 성청이 문제다. 주로 운송, 공부, 자치……, 알겠지?”

  “구 내무성인가…….”

  내 대답에 귄터가 끄덕였다. 더 이상 웃고 있지 않다.


  “보안성도 광역조사국도 구 내무성이다. 한통속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어.”

  “대체로 상상할 수 있군. 변경성역이겠지?”

  “그것도 있지. 그들은 구 내무성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거기서 에리히에게 보안성도 광역조사국도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내무성은 다른 성청을 압도하는 거대성청이었다. 그런 만큼 유력귀족은 내무성과의 우호관계를 무엇보다도 중시했다. 그리고 내무성도 유력귀족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했다. 서로 협력하는 것으로 힘을 강하게 했다. 거기서 나온 불합리한 처우를 받은 것이 평민, 하급귀족, 그리고 변경 귀족들이었다. 에리히의 양친이 죽은 사건을 경찰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 좋은 예다.


  “에리히는 변경성역 개발의 책임자니까 말이야.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건가.”

  귄터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이 아니야. 사태는 좀 더 심각하다. 확실히 변경성역 개발 건도 있지만, 본래라면 항의할 터인 루게 사법상서, 브룩도르프 보안상서도 동의하고 있어. 이 조사에는 보안성도 광역조사국도 관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게 되고 있어…….”

  귄터가 고개를 저었다. 사법성, 보안성에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지금 두 사람은 과거, 내무성 관활 하의 경찰조직에서 일어난 누명 사건, 부정 사건 등을 극비리에 조사하고 있어. 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평민들에게서 그런 요구가 올라오고 있는 거야. 수상쩍은 사건의 재조사를 행하여 명예회복, 보상을 행한다. 거기에 맞춰 부정에 관련된 직원도 처벌하려고 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말해서 심각하다. 부정부패 조사 같은 건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정신이 멍해졌다. 어떻게 생각해도 제대로 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농담, 이겠지.”

  조심조심,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묻지만 귄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고 있자 귄터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보안성 내부 감찰, 사법성에서 사람을 보내어 재조사와 부정 적발을 행하게 되어 있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후 부정부패를 막는 데에는 효과가 있겠지……. 농담이라면 좋았겠지만 말이야. 안톤…….”


  동감이다. 농담인 편이 좋았다. 그렇다 해도 내무성 관활 하의 경찰조직? 언젠가 우리 쪽에도 온다는 것인가……. 나나 안스바흐 준장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주변은……. 이런이런.


  “내무성은 재무, 법무, 군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행정을 한손에 쥐고 있었지. 경찰도 쥐고 있었으니 그럴 마음만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 부정을 저지르는 일도, 숨기는 일도……. 이걸로 부정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하면 믿을까? 부정을 저지르는 놈과 부정을 숨기는 놈, 현장은 어쨌든 상층부는 연결되어 있어. 모두 한통속이 되어 꿀을 빨고 있던 거지. 그게 내무성이다.”

  귄터가 냉소를 띄우고 있다.


  “내란 시, 내무성이 에리히를 적대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겠지. 평민의 권리 같은 걸 확대해 봐라. 부정을 저지르기 힘들어 진다. 꿀을 빨 수 없게 된다. 그런 거겠지.”

  “……심한 이야기군.”

  “심한 이야기다.”


  귄터가 끄덕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린다. 그 뒤를 따르는 건 아니지만 나도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맛없다. 화두가 너무 심하다. 적어도 커피만이라도 맛있었다면.


  “귄터. 맛없군.”

  “아아, 맛없다.”

  “한 잔 더 마시지, ……아직 늦지 않았어. 사령장관실에서 훔쳐올까…….”

  “나쁘지 않군. 그거.”

  서로를 돌아보며 웃는다. 웨이트리스를 불러 커피를 추가 주문했다.


  “내란이 끝나고 내무성은 해체되어 몇 개의 성청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사람이 바뀐 건 아니야. 연결은 유지되어 있어. 하지만 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평민의 의식도 변한다. 지금까지처럼 부정부패 앞에 울기만 하지는 않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사람의 의식도 변했다.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놈은 좋겠지만…….”

  “대응할 수 없는 녀석이 있다는 건가.”

  “아아. 부정을 저지르는 일에 익숙해져버린 놈들이 말이야.”


  귄터가 내게 시선을 향했다.

  “이제 알겠지? 광역조사국도 보안성도 쓸 수 없는 이유가. 예전 연결에 의해 부정부패가 숨겨지고 말거야.”

  “……보안성은 알겠다. 하지만 사회질서유지국은 광역조사국으로 이행할 때에 꽤 많은 사람들이 선별되었다고 들었어. 심각한 놈은 배제되었을 터인데…….”


  사회질서유지국은 내란에 있어 가장 에리히를 적대했던 조직이다. 당연하지만 내란 뒤의 처벌은 엄격했다. 본래 사회질서유지국은 내무성 내부에서도 가장 힘있는 위치였다. 초대국장을 내무상서 에른스트 폰 팔스트롱 백작이 겸임한 걸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질서유지국의 국장을 거쳐 내무차관이 되는 것은 내무성 내부의 출세 코스 중 하나다. 본래라면 보안성 내부에 남을 터인 조직이었지만 이름까지 광역조사국으로 바뀌어 사법성으로 이관되었다. 게다가 그 때 당연하다는 듯이 인원도 감축되었다. 광역조사국은 사법성에선 이방인이다. 꽤나 냉대를 받고 있다.


  “주위에선 그렇게 보고 있지 않아. 예전 인상이 너무 강하니까 말이야. 안톤. 사회질서유지국이 평민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루돌프 대제가 만든 조직이라는 걸 잊어선 곤란해.”

  “과연.”


  한 번 붙은 딱지를 떼어내는 건 쉽지 않다는 거로군. 말도 안 되는 곳으로 이동했다. 혹은 그렇기에 더더욱 에리히는 외부에서 나와 안스바하 준장을 들여보낸 건가……. 한숨이 나올 뻔했다. 웨이트리스가 새로운 커피를 가져왔다. 한 모금 마신다. 역시 맛없다. 귄터를 본다. 그가 날 보며 웃고 있다. 저도 모르게 이쪽도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가볍게 둘이서 웃은 뒤, 귄터가 말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는 부정부패에 군부가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겠지. 군부를 경찰이 조사하다니 무리다. 전쟁이 일어나게 돼. 그렇다고 해서 군부와 성청을 다른 조직이 조사하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말이야.”

  귄터가 내 말에 끄덕이며 커피를 마셨다. 맛없단 표정을 짓고 있다.


  “부정부패의 주력은 병참통괄부다.”

  “정말인가?”

  “아아.”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우수한 녀석들이 꽤나 배치되어 있지 않나? 부정부패도 꽤나 줄었다고 들었어.”


  예전엔 낙오자들이 배치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에리히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그것도 변했을 것이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사관후보생의 의식도 변하기 시작하여 병참통괄부를 배속처로 희망하는 우수한 생도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귄터가 쓴 표정으로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런 표정이다.

  “거기에 쓸만한 녀석들이 배치된 건 최근 2, 3년 사이다. 사람 수도 적고 계급도 낮아. 병참통괄부 전체로 보자면 어처구니 없는 놈들이 훨씬 높고 많아.”

  “과연. 그것도 그런가…….”


  “변경성역 개발에는 병참통괄부를 활용한다고 에리히가 결정했어. 그 병참통괄부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머리 아픈 이야기군.”

  귄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처구니 없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머리가 아파? 말도 안돼. 격노하고 있어.”

  “…….”

  “에리히가 병참통괄부에 있던 때엔 그를 두려워하여 눈에 띄는 부정부패는 없었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소란이 될 정도의 부정부패는 없었다. 그래서 에리히는 병참통괄부를 변경성역에 쓰는 데에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귄터가 고개를 젓고 있다.


  “그런데 그가 병참통괄부에서 떠나자 부정부패가 늘어났어. 처음엔 조심스럽게 했지만 반란군과의 싸움, 그리고 내란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에리히가 오딘에 부재했다…….”

  “찬스라고 본 거군.”

  귄터가 끄덕였다.


  “그 말대로야. 무서운 고양이가 사라져서 더러운 시궁쥐가 늘어난 거지. 병참통괄부 출신자로서 옛날 동료들이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변경성역 개발책임자로서 배신 당한 기분이겠지.”

  “원래 그런 종류의 부정을 싫어하고 말이야.”


  “아아. 그 부패를 일소하지 않는 한 변경성역 개발 같은 걸 해봐야 의미가 없어. 관료들의 부업을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언하더군.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이야. 루게 사법상서, 브룩도르프 보안상서가 조사는 자신들이 하겠다고 말해도 납득하지 않았겠지.”


  한숨이 나왔다. 이쪽이 지구교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에 오딘에선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화내고 있는가……. 조금 지쳐보였는데 말이야.”

  “지치기도 했겠지.”

  툭 던지는 듯한 어조였다.


  “계속 싸워왔지. 새로운 제국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군인도, 개혁파 정치가들도 다들 녀석이 끌고 왔다.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어. 단지 선두에 서서 끌고 온 거야. 그리고 지금 겨우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시작하고 있어. 이제 겨우다. 그런데도 주변에는 녀석의 발을 잡아당기는 놈들뿐……. 이걸로 편하게 쉴 수 있겠나?”

  “……아니, 힘들겠지.”


  속삭이는 듯한 어조지만 목소리엔 분노가 묻어있다. 귄터는 줄곳 에리히의 곁에 있었다. 나나 나이트하르트보다도 더욱 가까운 곳에서 에리히를 봐왔다. 그렇기에 느끼는 것도 있겠지.


  “녀석이 말하더군. 국가로서의 제도, 체제가 피폐되어 있다고. 일그러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걸 시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 그 자체가 피폐되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건…….”


  좋지 않군. 에리히가 인간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고 한다면 좋지 않다. 아니, 위험하다.

  “귄터. 그 녀석, 절망하고 있나?”

  “…….”

  “위험하다고. 알고 있나? 에리히는 국가의 지도자라고. 그 지도자가 절망하면 통치에도 영향이 나올 수밖에 없어. 절망과 분노는 곧 국민에게 향하겠지. 에리히를 폭군으로 만들 생각인가!”

  정신을 차리니 몸을 내밀고 숨죽이는 듯이 속삭이고 있었다.


  “안심해도 좋아. 그렇겐 되지 않아.”

  “하지만.”

  “녀석에게 물어봤어. 절망하고 있냐고.”

  “…….”

  귄터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슬픈 건가, 아니면 괴로운 건가…….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더군.”

  “…….”

  “자신은 지금까지 2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죽였다. 앞으로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나겠지. 되돌아갈 수도 도망칠 수도 내던질 수도 없다. 앞으로 나아가 은하를 통일하여 전쟁이 없는 세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라고 말이야…….”

  “…….”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은 절망을 안고 죽었다. 자신은 살아있다. 살아있는 한, 절망을 품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귄터…….”

  슬픈 것도 아니다. 괴로운 것도 아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이다. 제국 최대의 실력자가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며, 그래도 간절하게 절망에서 눈을 돌려 희망을 보려고 하고 있다…….


  “에리히를 보고 있으면 루돌프 대제에 대해서 생각했어. 대제의 충신, 에른스트 폰 팔스트롱 백작도 말이야.”

  “무슨 말이야.”

  내 질문에 귄터는 조금 어물거렸다. 시선을 피하며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마약, 범죄, 부정부패, 대제가 당면했던 문제는 지금 에리히가 상대하고 있는 문제와 같다.”

  “과연. 그렇다면 경은 충신 에른스트 폰 팔스트롱 백작인가.”

  내 말에는 비아냥이 어려있었겠지. 하지만 귄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나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제는 강권으로서 범죄를 박멸했다. 그 대제를 도운 것이 내무상서 팔스트롱 백작이었다. 그는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제정되고 나서 사회질서유지국의 국장을 겸임하여 40억 명이나 되는 인간을 탄압했더.”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귄터가 날 봤다.


  “어째서 그런 짓이 가능했다고 생각해? 출세욕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정신병자라서?”

  “…….”

  “경은 아까 전 에리히는 절망하고 있냐고 물었지.”

  “그래.”

  “에리히는 절망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루돌프 대제는 인류의 어리석음에 절망했던 거라고 난 생각해.”

  “…….”


  “팔스트롱 백작은 내무상서였다. 당시 인류사회의 문제인 마약, 범죄, 부정부패의 박멸을 책임지고 있던 거야. 부정을 용서할 수 없는 진지하고 직무에 열심인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제의 오른팔이 되고 나서 그걸 박멸하면서 인류의 어리석음을, 거기에 절망하는 대제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던 건 그였을 것이다.”

  “…….”

  그리고 지금 에리히의 가장 가까이에서 인류의 어리석음을 보고 있는 건 귄터 키슬링…….


  “은하제국의 황제가 제국신민의 어리석음에 절망하고 있다. 팔스트롱 백작은 대제에게 공감한 것이 아닐까? 대제 이상으로 인류의 어리석음에 절망하고, 그 어리석음을 증오했다. ……그는 출세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정신이상자도 아니었어. 단지 대제와 마찬가지로 절망을 알고 말았던 거야…….”


  “팔스트롱 백작이 테러로 죽은 뒤, 대제는 2만 명 이상의 인간을 용의자로서 처형했다. 너무한 이야기지. 하지만 대제에게 있어서 팔스트롱 백작은 신하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자신의 절망을 알아준 이해자였지. 대제에게 있어선 같은 절망을 알고 있는 동료였을 거다. 그런 동료가 어리석은 자들에게 죽었다…….”


  “경의 말대로다. 혹시 에리히가 루돌프 대제가 되었다면, 나는 에른스트 폰 팔스트롱 백작이 됐겠지.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몇억이나 되는 인간을 죽였을 것이 틀림없어.”

  “귄터…….”

  내 탄식에 귄터가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에리히는 루돌프 대제가 되지 않아. 그러니 나도 귄터 키슬링인 채로 있을 수 있다…….”

  “…….”

  “안톤,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하고 있어.”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긍지와 기쁨에 찬 미소였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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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5월 10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안톤 페르너.


  시간은 14시 55분. 약속 시간 5분 전이지만, 우주함대 사령부의 사령장관실에 에리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피츠시몬즈 대령에 의하면 앞선 회의가 조금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에리히의 집무석 옆 소파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여성부사관이 내준 커피를 즐기며 10분 정도 기다리자 응접실 문이 열리고 에리히와 사관 4명이 들어왔다. 4명이 에리히에게 인사하고 있다. 두 명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뒤의 두 사람은 브라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었다.


  헌데, 브라울러 대령은 통수본부에 있을 것이다. 분명 페잔 방면 침공작전을 짜고 있다고 듣고 있다. 그리고 감리히 중령은 정보부에 있다……. 그 두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어느 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둘이 같이 있다면 간단히 납득하긴 힘들다. 두 사람은 에리히에게 인사를 끝내고 가볍게 내게 목례한 뒤 떠나갔다.


  에리히가 내게 웃어보였다.

  “미안해. 기다리게 했나 보네. 회의가 의외로 길어졌어.”

  “아니. 대단찮은 일이야.”

  에리히가 피츠시몬즈 대령에게 음료수 준비를 부탁하고 내게 응접실로 들어가길 권했다.


  에리히를 따라 응접실에 들어가자 거기에는 귄터 키슬링이 있었다. 에리히는 귄터 옆자리에 앉는다. 묘한 기분이다. 아까 전까지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앉은 거겠지만, 에리히와 귄터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이대로 라면 내가 두 사람 정면에 앉게 된다. 이런이런. 면접 같구만.


  귄터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끄덕였다. 이쪽으로 와라. 정면에 앉아라는 거겠지. 이런이런. 오래 보다 보면 말로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이 있다. 두 사람의 정면에 앉았다.


  소파에 앉자 응접실 문이 열리고 새삼 여성부사관이 음료수를 가져왔다. 에리히에겐 코코아, 나와 귄터에겐 커피. 코코아 향기와 커피 향기가 섞여 뭐라 할 수 없는 향기가 응접실을 채웠다.


  “아까 전에 브라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을 봤지. 대령은 통수본부, 중령은 정보부 소속이라고 들었는데…….”

  내 질문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네 말대로야. 안톤.”


  내가 의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에리히가 귄터에게 시선을 보낸다. 한 순간이지만 두 사람이 눈으로 대화했다. 변함없이 사이가 좋군. 에리히가 이쪽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통수본부에선 페잔 방면 침공작전을 입안하고 있지만, 불확정요소가 몇가지 있어…….”

  “불확정요소…….”

  내 질문에 에리히가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한입 코코아를 마시고서 말을 계속했다.


  “오늘 회의를 한 것은 제국이 페잔을 침공했을 때, 페잔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확인하기 위해서야.”

  “그건 페잔이 제국에게 협력적인가, 아니면 비협력적인 태도를 취할까, 라는 건가?”

  “그런 거지.”


  과연. 페잔 침공은 반란군 제압작전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작전이다. 반란군 세력권에 침공하게 된다면 페잔은 그 후방이 된다. 보급물자 조달, 그 운송, 통신 중계지, 그리고 통로로서 어느 정도 쓸 수 있을지는 페잔이 얼마나 협력적인지에 따른다.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커피를 입으로 옮긴다. 음. 좋은 향이다.


  “그 정도에 따라 작전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통수본부 참모와 정보부, 그리고 헌병대가 여기에 모여서 확인, 검토한 거야.”

  “그래서 상황은?”

  내 질문에 귄터가 답했다.


  “좋지 않아……. 정보부도 헌병대도 독자적으로 페잔에 사람을 보내고 있어. 서로의 정보를 맞춰봤지만 생각한 것만큼 페잔에선 반동맹 감정이 강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리던 것이 엇나갔지.”

  귄터의 말에 에리히가 얼굴을 찡그렸다. 흔찮은 일이다. 아무래도 노리던 것이 다른 정도가 꽤나 큰 것 같다.


  “동맹이 페잔을 점령하면 상황에 따라 페잔을 착취하리라 생각했지만, 그게 없어. 아무래도 그들은 다이어트 중인 것 같아. 단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어.”

  에리히의 말에 다들 웃었다. 하기야 웃음을 만든 장본인은 얼굴을 찡그린 채다. 코코아를 마셔도 얼굴이 낫지 않는다. 그거 정말로 코코아인가?


  “페잔 해방은 침공의 대의명분이지만, 페잔인의 마음에 울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페잔인의 마음에 호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이제부터 그걸 찾지 않으면…….”

  마지막엔 한숨 섞인 말이었다. 아무래도 웃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에리히는 꽤나 곤란해하고 있다. 그리고 지쳐있다.


  “차라리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좋았겠지만…….”

  “그 주전파가 일으킨 것 말인가.”

  “음.”

  나와 귄터의 말에 에리히도 끄덕이고 있다.


  “주전파라면 페잔을 착취했겠지. 우리도 그걸 이유로 페잔을 침공할 수 있었어. 페잔도 우리들을 환영했겠지, ……생각대로 되질 않아……. 덧붙여 동맹과 페잔은 정치적 연계를 강화하고 있어. 생각보다 성가신 상대야. 이만큼이나 만만찮을 줄은 생각하지 않았어…….”


  탄식하는 에리히를 곁눈질하며 귄터를 봤다. 그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치적 연계인가……. 두 국가가 제국을 적으로 두고 협력체제를 취한다는 거겠지만, 확실히 성가신 일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화두 때문인지 조금 쓴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침묵 후,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에리히가 고개를 저었다.

  “한탄해도 소용 없지. 그쪽 이야기를 듣자. 경의 요청대로 귄터 키슬링도 있어.”


  에리히의 말에 귄터가 씨익하고 웃었다. 악덕 콤비로군. 이 두 사람에겐 꽤나 아픈 꼴을 당했다. 처음엔 사관학교, 마지막엔 내란인가……. 이제부터 커피가 더더욱 써지게 되겠군…….

  “지구에 보낸 첩보원이 돌아온다.”

  “언제?”

  “앞으로 2주일 지나면 오딘에 도착하겠지.”

  에리히와 귄터가 흘깃하고 시선을 교환했다.


  “지구에 보낸 첩보원은 세 명. 지금 돌아오고 있는 건 한 명뿐이다. 그들은 지구교도가 퀸멜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우연하게 관여한 인물이 지구교도인 것인가, 아니면 지구교가 교단으로서 관여하고 있는 것인가. 그걸 확인하도록 명령했다.”

  “…….”

  에리히도 귄터도 말이 없다. 단지 표정은 엄하다. 이쪽을 지긋이 보고 있다.


  “그들의 연락에 의하면 상세한 건 오딘으로 돌아와서 보고하겠지만 딱히 지구교에 의심스런 점은 없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아직 남아서 조사를 계속하겠다고…….”

  에리히가 또 귄터와 시선을 교환했다.


  “문제는 없다고?”

  “그래.”

  “다른 두 사람은 남아서 조사하고 있다?”

  “그래.”


  에리히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생각해? 귄터. 잡아먹힌 걸까.”

  “아마도……. 다른 두 사람은 정보원으로서 이쪽의 정보를 빼앗기고 있다. 그런 거겠지. 더 이상 얻을 정보가 없어지면 이쪽으로 보내겠지. 2중 스파이로서…….”

  “이쪽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

  에리히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면목 없어. 경의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 것 같군.”

  “아니. 멈추지 않은 건 나다. 나는 그럴 위험성이 높다고 알면서도 그걸 실행하도록 했지. 책임은 나에게 있어.”

  내 말에 에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군. 또 이 녀석에게 짐을 씌우게 된다.


  “지구에 보낸 세 사람이지만, 광역수사국 제6과의 최고책임자가 나라는 걸 알고 있나?”

  “솔직히 말해, 알 수 없어. 알고 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내 말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모를 가능성도 있다. 그런 거로군. 안톤.”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경우엔 알고 있다고 보는 편이 좋겠지. 경의 신변이 위험하다.”

  에리히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 되겠다. 더더욱 이 녀석의 짐을 늘리고 있다……. 몸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내가 아니야. 루게 사법상서의 신변경호가 필요해. 시급히다.”

  과연. 그쪽이 있었나. 광역조사국은 사법상서의 관활 안이다.

  “경의 말대로다. 시급히 경호를 배치하지. 경에게도…….”

  “나는 괜찮아. 이미 헌병대가 붙어 있어.”

  “그런가.”

  귄터가 맡기라는 듯이 끄덕였다.


  “그래서, 그 외에는?”

  “나와 안스바흐 준장은 이 기회에 그들을 이용하고자 생각하고 있어.”

  “…….”

  “지금 현재 광역조사국 제6과는 오딘의 지구교 지부를 감시하고 있어. 그들에겐 지구교에 수상쩍은 점이 없다는 보고가 들어갔다. 그러니 지부의 감시를 풀자고 생각하고 있지만…….”


  에리히가 몇 번인가 끄덕였다.

  “과연. 지구교는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감시를 푼다. 그 뒤에 헌병대가 은밀하게 감시하자는 건가. 귄터를 불러달라고 한 건 그런 이유로군.”

  “그 말대로다. 이쪽 감시를 푼다면 그는 지구교와 접촉할 것이다. 아마도 지구교를 찾으리라 생각해.”


  지구교가 이쪽의 첨보원을 2중 스파이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도 같은 수법을 쓸 뿐이다. 그를 믿는 듯이 행동하여 상대를 함정에 빠뜨린다. 어느쪽이 더 상대를 속일 수 있을지 경쟁하게 된다.


  에리히가 귄터에게 시선을 향했다.

  “귄터. 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경의 의견은?”

  “지구교를 제압하는 건 최우선 사항이다.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하지.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문제? 에리히를 봤지만 아무래도 짐작가는 데가 없는 것 같다.

  “명령계통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헌병대와 광역조사국 제6과. 어느 쪽이 위에 서는가. 체면 문제가 아니야. 그쪽과 공동작업을 하게 되니까.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나중에 성가신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


  “확실히 그렇군.”

  내 말에 에리히도 끄덕였다.

  “안톤. 광역조사국 제6과가 지휘를 잡아줘.”

  “괜찮나? 그걸로.”


  귄터를 고르리라 생각했다. 제6과의 전신은 사회질서유지국이다. 에리히에게 있어선 헌병대 쪽이 더 신용할 수 있겠지.

  “지구교 문제는 광역조사국 제6과가 받은 일이다. 그렇게 결정했었지. 게다가 귄터도 헌병대도 한가하지 않아. 이 이상은 과중노동이다.”


  귄터에게 시선을 향하자 쓴웃음을 짓고 있다.

  “좋은 건가?”

  “에리히의 말대로다. 그쪽에게 맡길게.”

  “알았다.”


  “귄터. 지부 감시지만, 경은 직접 관여하지 말아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서 안톤에게 보냈으면 해.”

  “알았다.”

  “부탁할게. 경은 일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알았어. 경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귄터가 쓰게 웃고 있다. 회의가 끝나자 잡담이 시작됐다. 이번에 오랜만에 나이트하르트도 포함해서 넷이서 마시러 가자는 이야기가 됐지만. 다들 바쁘다. 언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사령장관실을 나온 다음 귄터에게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고 우주함대 사령부의 살롱으로 권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부탁한다. 솔직히 그다지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없다면 조금 살풍경하다.


  “바쁜가?”

  “뭐, 이것저것 있지. 페잔에도 사람을 보내고 있지만, 국내에도 말이야. 조금 성가신 일이 일어나고 있어.”

  “국내?”

  내 질문에 귄터가 끄덕였다.


  “부정부패의 적발이다.”

  “부정부패?”

  “아아. 사이옥신 마약사건 수준의 체제를 취하고 있어.”

  정신이 멍해졌다. 그 사건은 헌병대가 총력을 기울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것과 같다? 그렇게나 부정부패 사건이 많은 건가?


  “농담이겠지.”

  “농담이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귄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울한 표정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하지만 부정부패?


  “내란 전에 부정부패의 대부분은 귀족이 얽혀 있었다. 헌데 지금은 그 귀족이 몰락했다. 지금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던 놈들이 이번엔 자신들이 꿀을 빨 차례라고 기세를 부리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헌병대가 총력을 기울일 정도의 상태가 되는 건가?”

  귄터가 이번엔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이 사건을 처음 눈치 챈 건 에리히였지.”

  “그런가.”

  “내란에 노획한 함선을 매각하던 때에 부정이 없는지 조사해달라고 했었어. 그걸 조사해보니…….”

  귄터가 어깨를 으쓱했다.


  “고구마 넝쿨처럼 줄줄이 비리가 나오더군. 같은 사람이 몇 가지나 되는 비리에 관여하고 있었지. 뇌물을 주고 부당하게 싸게 산 배를 해체하여 부품을 운송성, 공부성에 신품으로서 팔아치우고 있었다. 물론 사는 쪽도 알고서 사는 거야. 다들 한통속이 되어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귀족의 후배들인가…….”

  어이가 없었다. 범죄도 악인도 신분은 상관없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뭐, 그런 거다. 그게 계기로 군, 정부에서 부정부패의 조사가 시작됐다. 말도 안 되는 소동이야. 개혁파의 상서들은 격노하고 있어. 녀석들의 부정부패를 위해 개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며 말이야…….”

  “…….”


  “거기에 겹쳐 변경성역 개발도 시작됐다. 개발이 시작되면 이권도 생기지. 단물을 빨기 위해 손을 모아 기다리는 놈들이 많아.”

  “그래서 경들이?”

  귄터가 끄덕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마셨다. 과연. 사령장관실에서 마신 것에 비하면 격이 떨어진다.


  “맛없군. 귄터.”

  “음. 맛없다. 그보다도 에리히 쪽이 너무 맛있었던 거겠지. 너무 사치 아닌가?”

  “그 말도 맞군. 그 녀석은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까 모르는 거야.”

  “과연. 한 번 조사할까. 비리가 나올지도 몰라.”

  서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역시 맛없다.


  “변경성역 귀족들도 이 사건을 알고 꽤나 걱정하고 있어. 자신들이 먹잇감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과연…….”


  과연. 상황은 알겠다. 그렇다 해도 에리히 녀석, 잘도 눈치 챘군. 사이옥신 마약, 이번의 부정부패, 저 녀석에겐 대체 눈이 몇 개나 달려있는 건가? 아니면 코인가? 군인보다도 경찰 쪽이 어울리는 거 아닐까.


  하지만 묘하군. 광역조사국에선 그런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사실이라면 제2과 부근이 움직여도 괜찮을 것이다. 게다가 보안성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군은 어쨌든 성청에 대해서 움직일 수 있을 텐데…….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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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4월 10일. 페잔. 길베르트 파르마.


  상매 상담이 끝났다. 자유행성동맹, 최근엔 이 이름도 익숙해 졌지만 처음엔 반란군이라 부를 뻔해서 몇 번이나 말을 더듬었다, 출신의 상인과의 거래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끝났다.


  제국과 동맹 사이에선 현재 전투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양국 모두 국내는 평온한 상태에 있다. 동맹에선 주전파에 의한 쿠데타가 미수로 끝나고 현 정권의 기반이 강해졌다. 그리고 제국은 국내의 사회개혁에 의해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변경성역에 대한 개발은 상인에게 있어서 맛있는 사업이다. 많은 상인들이 기대를 기울이고 있다. 페잔은 동맹 점령 하에 있다곤 해도 경제 환경은 결코 나쁘지 않다.


  페잔 국제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며칠 전 페잔에서 행해진 여론조사에 대해서 생각했다. 무차별적으로 2만 명을 인터넷에서 골라서 한 조사다. 하나는 이대로 제국이 동맹에 의한 페잔 점령을 인정할지에 대해서였지만, 회답 중 93%가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 뭐,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


  두 번째는 페잔 반환이 평화 속에 이뤄질 것인가, 아니면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조사였지만, 48%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37%가 전쟁이 일어난다고 답했다. 나머지 15%는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마지막 질문은 페잔 반환의 시기에 대해서였지만 5년 이내에 이뤄진다고 대답한 사람이 17%, 5년에서 10년 이내에 이뤄진다가 34%, 10년 이상이라고 대답한 것이 49%였다.


  재밌는 앙케이트다. 페잔인은 제국은 내정을 중시하여 전쟁은 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과거 제국에서도 이러한 시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명군 막시밀리언 요제프 2세 폐하의 시대 때엔 내정을 중시하여 외정은 행하지 않았다. 개혁을 우선한다면 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페잔 반환에 바로 착수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뭐라 해도 전쟁에는 돈이 든다. 그리고 개혁에도 돈이 든다.


  하기야 페잔이 이대로 동맹령이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뭐, 이 부분은 당연하다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전쟁이 일어날지 아닐지에서 의견이 갈렸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48%, 전쟁이 일어난다가 37%. 간단히 보자면 페잔인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확실히 최근 제국과 동맹은 다소의 알력이 있어도 협력 체제를 취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답한 사람이 절반에 가까운 건 그 때문이겠지. 하지만 알 수 없다고 답한 15%를 어떻게 봐야 할지…….


  판단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 경우 전쟁이 일어나리라 생각한 사람은 50%를 넘게 된다. 거기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48%에겐 희망론도 있던 것이 아닐까. 페잔을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희망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동맹이 아니라 제국에서 침공하는 형태로 시작되겠지. 현재 제국과 동맹의 군사력을 비교하면 동맹에서 침공하는 일은 일단 없다. 그렇다면 제국군이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는 것보다 페잔 공략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페잔 탈환의 명분을 봐도 그렇다. 페잔인에게 있어서 페잔이 전쟁터가 되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자신들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아픔도 느끼지 않고. 단지 피를 빨아들일 뿐이다…….


  “그것이 페잔이니까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쓴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음, 조금 모자르군……. 이 호텔은 페잔에서도 가장 격식이 높은 호텔일 텐데 이 커피는 어딘가 부족하다. 명문의 이름에 취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쓰게 웃었다. 나도 꽤나 페잔인스럽게 된 것 같다. 이름보다 실리를 중요시하고 있다.


  페잔의 반환이 5년 이내에 이뤄지리라 답한 사람이 17%, 5년에서 10년 이내라고 답한 사람이 34%, 10년 이상이라 답한 사람이 49%인가…….


  이것 또한 재밌는 수치다. 이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의 회답을 생각해 보면 페잔인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10년 이상이라 답한 사람이 49%, 전쟁은 회피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48%. 거의 같은 수치다. 그리고 5년에서 10년 이내에 반환할 거라 답한 사람이 34%, 전쟁은 회피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37%. 마지막으로 5년 이내에 반환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17%, 알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15%……. 미묘하게 수치가 맞아 떨어진다. 혹시 이 대답자가 겹쳐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페잔 반환에 10년 이상 걸린다는 것은 제국의 국내개혁이 한 단락 지어지기까지 10년 이상 걸린다고 판단한 거겠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있으면 자유행성동맹의 군사력은 재건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10년 뒤에는 페잔을 무리하게 확보하고 있지 않아도 동맹은 제국과 대등하게 대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더욱이 제국의 개혁이 진행되어 있다면 제국과 동맹의 공존은 가능하리라 보고 있는 거겠지. 페잔을 무리하게 확보하는 것으로 제국과의 긴장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동맹은 제국에게 페잔을 반환하고 협조 관계를 유지한다. 제국도 교섭으로 페잔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면 무리하게 전쟁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페잔은 중립을 되찾고 번영을 계속하는 것이다. 장밋빛 미래로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극히 낙관적인 미래이긴 하다. 페잔인의 약 절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면 페잔인이라는 건 낙관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절반밖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비관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꽤나 고민하게 만드는 수치다.


  누군가 보고 있나? 목덜미 주변이 찌릿찌릿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본다. 라운지에 사람은 많지만 수상쩍은 사람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커피 컵을 테이블에 두고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낸다. 페잔에 오고 나서 마련한 필수품이다. 머리를 정돈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배후를 살핀다. ……역시 수상쩍은 사람은 없다.

  “기분 탓인가…….”


  페잔 반환은 5년에서 10년 이내에 행해지리라 답한 사람이 34%, 그리고 전쟁은 회피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37%……. 5년에서 10년이라면 동맹군 재건 도중이겠지. 그 상태에서 페잔을 반환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 반환하면 제국군이 페잔 회랑에서 대거 침공할 수밖에 없다. 재건 도중인 군대로는 어려운 싸움이 된다. 동맹으로선 페잔을 확보하여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다시 말해 페잔의 반환은 어렵다는 것이 된다.


  한 편 제국이지만, 5년에서 10년 사이에 개혁이 일단락 지어지면 꽤나 여유가 있을 것이다. 약소한 동맹을 칠 좋은 기회겠지. 발렌슈타인이 그걸 두고 보고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페잔인이 생각한 건 그 부분이겠지.


  확실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능성은 또 하나 있는 듯하다. 개혁이 일단락 지어지지 않을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페잔 반환을 바란다면 제국은 국내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국내의 불안을 돌리기 위해서 외부에 대하여 강하게 나간다. 자주 있는 일이다. 이 경우 어중간하게 물러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도달하는 지점은 전쟁이겠지…….


  마지막으로 페잔 반환 시기가 5년 이내라고 답한 사람이 17%. 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15%. 5년 이내라면 개혁은 막 시작된 참이겠지. 회답자는 제국은 개혁의 결실을 맺는 것보다도 페잔 탈환을 우선하리라 보고 있다. 다시 말해 꽤 빠른 시점에서 제국은 페잔 탈환에 착수하리라 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한 건 그런 이유겠지. 동맹군은 거의 재건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제국과의 전쟁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반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페잔을 반환하면 제국군이 동맹령에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


  제국이 페잔 반환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동맹에 침공을 꾀하는가, 또한 동맹은 그걸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에 따라서 전쟁인지 교섭인지가 정해진다. 그렇기에 알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 아닐지…….


  “헌데, 어떻게 될지…….”

  제국은 지금 사회개혁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제국, 동맹 사이는 평온한 상태에 있으며 제국은 전쟁보다도 교섭을 우선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실제로 며칠 전 방송된 결혼식을 봐도 제국은 평화공세를 동맹에 대하여 걸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걸 생각하면 제국이 페잔 반환에 움직이는 것은 10년 뒤가 아닐지 생각하고 싶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저 자가 그걸 허락할 것인지. 동맹이 전력을 갖추는 것을 잠자코 기다릴 것인가……. 조금 생각하기 어렵다. 저 자는 그걸 허락할 정도로 무르지 않다. 그리고 제국 내부에선 권력투쟁 같은 걸로 발을 잡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페잔 반환은 빠른 시점에서 일어나겠지.


  커피를 다 마셨다. 슬슬 돌아갈까……. 자리에서 일어나 요금을 내고자 카운터로 향한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큰 목소리는 아니다. 어딘가 주변을 신경 쓰는 듯한 목소리지만, 천둥과 같은 울림이다. 돌아보고 싶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15분 후, 507호실.”


  등 뒤에서 한 남자가 나를 지나간다. 본 적 있는 뒷모습이다. 역시 저 자인가……. 그렇다면 아까 전의 시선은 그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23분. 예정변경이다. 앞으로 5분 안에 507호실로 가야만…….


  지불을 끝내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침착해라. 시간은 있다. 천천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걷는 거다. 주변이 수상쩍게 볼만한 행동을 취하면 안 된다. 그가 혼자 있으리란 법은 없다. 신경 쓰는 거다. 그리고 어째서 접촉한 것인지……. 아군이 되라는 건가. 아니면 배신자로서 규탄할 생각인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방에 도착한 것은 3시 27분이었다. 방 안을 확인한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 상매 상담에 썼던 때 그대로다. 접촉한 것은 우연인가……. 일부러 이쪽을 마크하고 있던 건 아닌 것 같다. 아니, 방심하지 마라. 아직 알 수 없어…….


  총집에서 블라스터를 꺼내 에너지팩을 확인한다. 문제없다. 사격모드를 포획용으로 고치고 블라스터를 총집에 되돌렸다. 3시 32분. 앞으로 6분. 의자를 이동한다. 끝났을 때, 나머지 시간은 3분이 되었다. 심호흡을 하고 방금 움직인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똑똑하고 소리가 들린 것은 3시 37분이었다. 블라스터를 오른손에 쥐고 발소리를 죽이고 문에 다가간다. 문구멍에서 남자 한 명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함정인가? 자물쇠를 조용히 해제하고 시급히 문에서 떨어져 방으로 돌아왔다. 손님에게서 사각이 되는 장소에 몸을 숨기고 숨죽여 기다린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걷는 기색이 있다. 아무래도 저쪽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이 보였다. 역시 이 녀석인가……. 그가 나를 봤다. 곤혹스런 표정을 띄우고 있다.

  “살아 있었군. 프레겔 남작…….”

  “……오랜만이다. 라트부르프 남작.”


  라트부르프 남작이 내 블라스터를 봤다. 그리고 나를 본다.

  “만일을 위해서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

  “……오해하지 말게. 단지 그립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도 그렇다. 저쪽 의자에 앉게.”


  라트부르프 남작이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의자에 앉는다. 문에 가까운 쪽 의자다. 그의 입장에선 등 뒤가 되니까 문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정면에 앉았다. 여기라면 항상 문을 볼 수 있고 만일의 경우 라트부르프 남작을 인질로도 삼을 수 있다. 하기야 인질로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죽었지. 프레겔 남작은 죽었다. 여기에 있는 건 페잔 상인, 길베르트 파르머다.”

  그대로 서로 입을 닫았다.


  “……묘한 이름이군. 무슨 일이 있었나?”

  “……백부님에게 죽을 뻔한 것을 발렌슈타인이 살려줬다.”

  “살려줬다?”

  “아아, 살려준 거지. 벌써 3년이 되는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인 라트부르프 남작에게 3년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미터마이어 소장을 죽이려고 했던 일. 뮈젤, 아니. 로엔그람 백작이 방해한 일. 대립하고 있을 때에 백부가 발렌슈타인과 함께 나타난 일. 그리고 백부가 나를 죽이려 했던 일…….


  “그 뒤 나는 비밀리에 페잔으로 쫓겨났다. 백부님과 관련되어 있던 상인에게 맡겨져 상인으로서 키워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지.”

  “……그런가, 그런 일이…….”

  라트부르프 남작이 고개를 젓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느낌이다.


  “어째서 나라는 걸 눈치 챘나?”

  머리모양을 바꿨다. 표정도 이전에 비하면 딴사람처럼 부드러워졌다. 가까이에서 보면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리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라트부르프 남작은 옛날과 다르지 않다. 그가 나에게 접근했다면 몰랐을 리가 없다.


  라트부르프 남작이 웃음을 띄운다.

  “목소리다. 경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봤다. 꽤나 바뀌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

  목소리인가……, 확실히 목소리는 바꿀 수 없다.


  “겨우 경을 찾아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이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확인했을 때, 손거울로 뒤를 확인하는 걸로 경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숨기는 일이 있다. 그렇기에 조심하고 있다. 그렇겠지?”

  그렇게 말하고 라트부르프 남작은 천천히 가슴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블라스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가 꺼낸 것은 손거울이었다.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라트부르프 남작도 웃고 있다. 모두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인가…….


  “경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웃음을 거둔 라트부르프 남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과라면?”

  “……저번 내전에서 프로이라인들을 납치한 그룹 중 한 사람이 나다.”

  “…….”


  “그때엔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리텐하임 후작을 죽음에 몰게 하게 되고 말았다. 싸움을 피하려고 했던 공작들이 옳았던 거야…….”

  “……지난 일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라트부르프 남작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영지 바꾸기가 잘 되지 못했던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고……. 그 책략은 내란을 막는 것보다도 브라운슈바이크, 리텐하임 두 가문을 구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른 귀족들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협력해온 자신들을 버리는 일이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그들이 백부님들을 내란에 끌어들인 것도 그러한 불만이 이유였을 것이다. ……적어도 귀족의 절반이라도 구할 책략을 생각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경은 어째서 내란에 참가하지 않았나? 아니, 책망하는 것이 아니야. 그저 궁금하게 여겼을 뿐이다.”

  “참가하고자 생각했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이 말렸던 거다.”

  “발렌슈타인이…….”

  놀란 거겠지. 힐끔힐끔 나를 보고 있다.


  “내란에 참가하면 이번이야말로 죽게 된다. 백부님을 괴롭게 하게 된다고…….”

  “그런가.”

  “TV전화로 백부님과 이야기 했다.”

  “……그래서.”

  “백부님은 나를 헤르 파르머라고 불렀어.”

  “그런가……, 헤르 파르머라고 불렀는가…….”


  미적지근한 분위기가 풍긴다. 라트부르프 남작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혹시 죄악감에 몸을 숙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화두를 바꾸는 편이 좋겠지.

  “경은 지금 뭘 하고 있나? 제국으로 돌아갈 걸 준비하고 있나?”


  내 질문에 라트부르프 남작이 표정을 숨겼다.

  “아니. 발렌슈타인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 불만분자의 동향을 살피는 역할이다.”

  “…….”

  내 침묵을 비난이라 여겼던 건지 그가 자조했다.

  “보수는 귀족으로의 귀환이다. 영지도 받지. 그러기 위해서 이전의 동료들을 찾고 있는 거다……. 웃어도 된다고.”

  이번엔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낮고 음울한 웃음소리다.


  “……웃지 않아. 살아남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귀족으로서 죽여달라고 부탁했지. 하지만 받아들어지지 않았어.”

  “…….”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다. 해줄 말이 없다.


  “동료를 찾는 것으로 동료의 폭발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발렌슈타인이 말했다. 나를 스파이로 쓰기 위해서 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그 말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귀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런가…….”


  귀족으로서의 삶인가……. 전에는 그것이 긍지였다. 귀족이야말로 제국의 선민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고 있다. 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를……. 귀족으로서의 긍지, 긍지가 아니라 주박이겠지. 나는 운 좋게 그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라트부르프 남작은 도망치지 못하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런 얼굴 하지 말게. 프레겔 남작.”

  “…….”

  “발렌슈타인은 나쁜 상사가 아니야.”

  “그런가.”


  라트부르프 남작이 웃고 있다. 어딘지 따끔따끔한 웃음이다. 보고 있는 쪽이 괴로웠지만 시선을 피하면 그는 더욱 괴로워하겠지. 이쪽도 웃으며 그를 봤다.


  “며칠 전, 이 페잔에서 반란군의 고등변무관, 함대사령관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지.”

  “본국의 쿠데타에 관여했다는 놈이군.”

  라트부르프 남작이 끄덕였다.


  “그 쿠데타에 란즈베르크 백작이 얽혀있다는 것 같다.”

  “설마…….”

  내 말에 라트부르프 남작이 웃었다. 어딘지 요망한 웃음이다. 예전엔 이렇게 웃는 남자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것만이 아니야. 다른 사람에겐 알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지. 아무래도 주변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 꽤나 신중한 상태야.”

  “……말도 안 되는.”

  “정말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서투른 시나 만들던 남자였을 것이다. 타인을 의심한다? 온실 속의 도련님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모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라트부르프 남작이 이쪽을 보고 있다. 심각한 표정이다. 그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뒤에 있다는 건가.”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괴사건도 그가 지도했다. 누군가가 그의 배후에 있어…….”

  누구지? 페잔? 아니, 루빈스키인가? 혹은 동맹인가…….

  “그래서, 지금은 그걸 살피고 있는 중인가?”


  “아니, 그건 중단하고 있어.”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다가가는 건 위험하다. 죽음을 각오할 필요가 있겠지. 라트부르프 남작이 소리 내어 웃었다. 내가 안심하는 표정을 보인 것이 우스웠던 거겠지.


  “솔직히 그의 배후를 찾으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지. 어차피 소모품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키슬링 소장, 그는 내 상관이지만. 그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발렌슈타인이 중단하라 했다고 한다.”

  “발렌슈타인이…….”


  “아아. 무리하게 만들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는 것 같아.”

  “그런가.”

  변함없이 무른 남자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아직 살아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웃음소리가 나왔다. 라트부르프 남작도 웃고 있다.


  “슬슬 실례하도록 하지. 헤르 파르머. 만나서 다행이었다.”

  “나도 그래. 라트부르프 남작.”

  “언젠가 제국에 돌아가면, 경과 술을 마시고 싶군.”

  “아아. 그땐 방문하도록 하지.”

  자리에 일어나 그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란즈부르크 백작 알프레드인가……. 대체 뒤에 누가 있는 건지…….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건 예상이 간다는 것인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혹시 라트부르프 남작이 스파이라는 걸 그들이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꽤나 위험하다. 한 번 발렌슈타인과 말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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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오늘은 소관과 클레멘츠 제독이 알현에 입회합니다. 아마도 이쪽에 돌아오는 건 저녁 무렵일 테지요.”

  메르카츠 제독이 가느다란 눈을 부드럽게 뜨고 있다. 단단한 몸을 회색 망토가 감싸고 있다. 뮈켄베르거도 회색 망토였지만, 역시 근엄한 노장은 회색이 잘 어울린다.


  “수고합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클레멘츠 제독에게도 수고를 끼치는군요.”

  알현 입회 따위 메르카츠나 클레멘츠에게 있어선 반드시 감사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비텐펠트나 아이제나흐가 입회하는 것보단 낫다. 그 두 사람이 알현에 입회할 때면 나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적어도 다행인 점은 프리드리히 4세가 녀석들을 재밌어 한다는 점이다. 의외로 색다른 걸 좋아한다.


  “아니아니, 이전에 비하면 알현도 꽤나 편해졌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온화하게 답하는 메르카츠에게 나도 끄덕였다. 내전에 의해 많은 귀족이 멸망했다. 그에 의해 재미없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알현을 요구하는 귀족도 줄어들었다. 알현은 이전에 비해 극단적으로 편해지고 있다. 메르카츠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하기야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전엔 알현 입회는 우주함대에서 나와 라인하르트, 메르카츠뿐이었지만, 내란이 끝난 뒤엔 각 함대사령관도 입회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람스도르프와 오프레서가 죽었다. 다시 말해 알현에 입회하는 무관이 우주함대의 사령관들밖에 없게 되었다.


  군 내부에서도 우주함대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에렌베르크와 슈타인호프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또한 함대사령관 중에선 입회를 원하지 않는 자도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쩐지 모르게 원작에 가까운 느낌이다. 군부의, 그것도 우주함대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은 무단주의인가……. 게다가 그 정점이 나라니 지긋지긋하다. 이 부분은 충분히 주의해야만 한다. 무력을 써서 일을 해결하는 건 본래 하책인 것이다.


  “사령장관의 오늘 일정은?”

  “오늘은 하루 종일 우주함대 사령부에 있을 예정입니다. 이 뒤에 브라케 민생상서, 리히터 자치상서가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메르카츠가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호오, 보아하니 변경성역의 개발에 대해서입니까? 각하야말로 고생이십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부사령장관.”

  메르카츠가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아, 이거 안되겠군. 우주함대 내부에선 내가 변경성역의 개발에 관여, 아니 책임자가 되는 것에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이 많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지만 테러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케슬러, 클레멘츠, 메크링거가 크게 걱정하고 있다. 그 세 사람은 지구교에 대한 것도 알고 있으니까. 몇 번이나 내게도 충고를 했다.


  단지 오늘 이야기는 변경성역 개발에 대해서가 아니겠지. 그보다 다른 일일 거라고 나는 보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서 며칠 전에 이야기가 있었다. 그 노인이 제대로 두 사람에게 설명하면 될 것을……. 뭐,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무슨 말을 해도 녀석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지. 게다가 노인장 나름대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하지만 말이지. 난 군부의 넘버3라고. 민생성과 자치성의 우두머리가 머리를 맞대고 만나러 오는 건 좀 아니잖아……. 나중에 저 노인씨에게 제대로 말해야만 하겠군. 이대로 가면 군부의, 아니 우주함대의 영향력이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정말이지. 어째서 내가 이런 걱정을 해야만 하는 건지…….


...


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오이겐 리히터.


  눈앞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A4 사이즈의 자료를 읽고 있다. 그렇게 두꺼운 것은 아니다. 20장 정도의 자료다. 읽으면서 때때로 고개를 갸웃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고개를 갸웃하는 때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 페이지를 읽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


  사령장관이 자료를 다 읽고 회의탁자 위에 자료를 뒀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고 오른쪽 중지로 가볍게 회의탁자를 두드렸다.

  “각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눈앞의 청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반응은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그 정도인가……. 그리고 그런 그를 나와 브라케가 보고 있다. 신영토 점령통치 연구실 안에 있는 작은 회의실은 침묵에 둘러싸였다. 사령장관의 손가락이 내는 툭툭하는 가벼운 소리만이 작은 회의실에 울린다.


  회의탁자 위에는 자료가 올라와 있다. 표지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다. 그보다도 아무 것도 적을 수 없다. 자료 내용은 금후 제국의 통치체제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의 황제에 의한 군주전제정권, 이걸론 황제의 자질에 의해 제국의 정치가 좌우되고 만다. 그걸 어떻게 막고 국가를 안정할 수 있을지가 이 자료의 주안점이다.


  “의회정치의 도입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국신민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황지의 폭정을 막는다……. 그러기 위해선 의회정치를 도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의해 제국신민에게 폭군과 싸울 수 있는 제도와 견식과 힘을 주지 않으면…….”


  사령장관의 중얼거림에 브라케가 열정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어떻게든 의회정치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나도 같은 마음이다. 지금은 괜찮다. 황제는 명백히 개명적인 정책을 취하며 국정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도 그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없어지면……. 가령 100년 뒤에는 어떨까? 지금 이대로 폭군에 의한 폭정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인재가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폭정을 막을 제도도 없다……. 이대로 가면 제국은 황제의 폭정에 우롱당하는 꼴이 되겠지. 경우에 따라선 제국의 존속 그 자체까지 위험해 질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이 있는 사이에 제국의 정치체제를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황제의 악정 따위에 제국이 흔들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되는 거다. 거기에 대항할 수 있을만한 인재와 제도를 만들어야만…….


  의회정치 도입에는 저항이 강하겠지. 뭐라 해도 제국의 정치제도에는 없었던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반란군인 자유행성동맹이 쓰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지금 제국은 동맹을 압도하고 정복하려 하고 있다. 어째서 패배자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어야만 하는 것인가. 당연히 반발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애초에 동맹이 지금 열세에 있는 것도 민주공화정이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어떠한 형태라도 제국신민을 정치에 관여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처럼 통치되고 착취될뿐인 존재여선 안 된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으로 제국신민의 정치적식견을 높이고, 황제의 폭정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부여한다……. 다행히 사령장관은 평민의 권리 확대에는 적극적이다. 제국에 헌법을 만들려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의회정치의 중요성, 필요성도 이해해 주겠지…….


  하물며 우리들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원내각제는 행정부가 입법의 영향을 받기 쉬워, 불안정한 상황에 되는 일이 자주 있다. 동맹을 보면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받는 건 피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행정부와 입법부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회에선 입법권 및 황제입법안에 대한 거부권, 탄핵재판권, 황제지명인사의 승인권, 예산안에 대한 발의권, 승인권을 부여한다.


  탄핵재판권은 의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황제를 폐위할 수 있는 권리다. 황제지명인사의 승인권도 황제가 명백히 부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인사를 행하는 일이 없도록 의회가 검사할 권리다. 이에 의해 제국이 폭군의 폭정에 처하는 일이 없게 한다.


  행정부의 수장은 황제로 하고, 황제는 제국재상 혹은 국무상서의 보필에 의해 제국의 행정을 행한다. 황제는 입법권, 행정권, 군지휘권, 그리고 의원입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권리로서 가진다…….


  사령장관이 다시 자료를 손에 쥐고 팔락팔락하고 페이지를 넘긴다. 손을 멈추고 어느 페이지에 시선을 가져갔다.

  “20년 후에는 의회를 연다. 당초엔 남자에 대해서만 참정권을 부여한다. 30년후엔 여자에 대해서도 부여한다. 입니까…….”


  “지방자치체에선 좀 더 빠르게, 10년을 목표로 의회를 열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녀구별 없이 부여하고, 여기서 여자에게는 정치에 참가하는 걸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브라케의 말에 사령장관이 희미하게 끄덕이고 있다.


  사령장관이 브라케에게 시선을 향한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는 보였습니까?”

  “네.”

  “그래서 후작은 뭐라고?”


  사령장관의 질문에 브라케의 표정이 썩는다.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겠지.

  “안 된다고…….”

  “안 된다, 입니까……. 그밖에는?”

  “아뇨. 아무 말도.”

  사령장관이 쓴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시선을 자료로 향한다.


  사령장관이 자료를 손에 쥐면서 중얼거리듯이 “안 된다, 인가……. 좀 더 말할 것이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쓴웃음을 흘린다. 브라케는 불만있는 표정이다. 여기선 내가 말하는 편이 좋겠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 리히텐라데 후작은 귀족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구세력의 분이라고 해도 좋겠죠. 내정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해도 국체 개혁에는 꼭 적극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사령장관은 쓴웃음을 짓고 있는 채다.


  “각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까 전에도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슬슬 진심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만.”

  더더욱 사령장관의 쓴웃음이 커졌다.


  “그렇군요…….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떠한 생각으로 부정했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단순한 감정론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량이 작은 분이 아니니.”

  “그럴까요.”

  브라케가 있는 대로 의심스럽단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장관이 또 쓴웃음을 흘린다.


  “두 사람 모두 후작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만, 저도 이 제안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조금, 아니 꽤나 무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브라케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는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스스로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의회도입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생각도 하지 못한 반응이다. 사령장관은 평민들의 권리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회정치의 도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사령장관이 수중의 자료에 눈을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쓴웃음을 볼 수 없다.

  “목적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땅이 발에 닿고 있지 않다고 해야할지……, 조금 서두르고 있는 걸로 보이는 군요.”


  서두르고 있다? 브라케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브라케가 입을 열었다.

  “서두르고 있다, 입니까…….”

  “네. 리히텐라데 후작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반대할 수밖에 없겠죠. 저 사람은 제국의 위기를 보고 지나칠만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제국의 위기를 보고 지나칠 사람이 아니다……. 그 말에 너무 거창하다고 반발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제국의 위기를 보고 지나칠 사람이 아니라면 사령장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정치체제에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함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권리라는 건, 주긴 쉽지만 빼앗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한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건 알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을 가로 막는 브라케의 무릎을 찌르고 입을 막자 사령장관이 쿡하고 웃었다.


  “30년 후에는 제국신민 전체에게 참정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지만 통일 뒤의 동맹시민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진다. 그렇지요?”

  사령장관이 확인하는 듯이 말했다. 브라케가 한 순간 나에게 시선을 향하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30년 후에는 우주가 통일됩니다. 그 때엔 그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합니다. 그들은 동맹에서 의회정치에 의한 통치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으면 제국에 대해 불만을 가지겠죠. 100억을 넘는 사람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신제국의 통치는 안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30년 후에는 제국신민 전부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 그런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말이 중간에 끊어졌기 때문이겠지. 조금 불만스럽게 브라케가 답했다. 사령장관이 그런 브라케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 일부러로군. 의외로 성격이 나쁘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의해 국정에 참가할 권리를 부여했다……. 그럼 이 경우 의무는 무엇일까요?”

  사령장관이 브라케와 나를 교대로 봤다. 의무인가……, 납세? 혹은 병역일까?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면…….

  “……폭정의 저지일까요.”


  내 말에 사령장관이 희미하게 웃음을 띄웠다. 쓴웃음인가?

  “뭐, 그것도 있겠죠. ……제가 생각하는 의무란 제국신민으로서 제국의 안정과 번영에 진력하는 것, 대충 그런 겁니다.”

  과연. 일반적인 개념으로서의 의무인가……. 아까전의 웃음은 쓴웃음이군……. 저도 모르게 이쪽도 쓴웃음을 짓게 됐다. 브라케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극히 당연한 것이긴 합니다만, 제국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여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제국인으로서 자각할 것과 그것에 대한 긍지가 필요합니다. 신영토가 된 구동맹령 사람들에게 그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병합후 바로 동맹시민에서 제국신민으로 의식이 바뀌리라…….”


  “……30년 간, 제국을 보고 있는 겁니다. 제국이 변화한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브라케가 떫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답했지만 사령장관이 그것을 부정했다.

  “제국을 이해하는 것과 제국인이 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브라케 민생상서.”


  사령장관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브라케의 말이 맘에 들지 않은 것 같다. 혹은 무르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확실히 나와 브라케도 사령장관이 지적한 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무르다고 생각해도 별 수 없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제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의사가 없는 인간이 선거에 입후보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국신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의사가 없는 인간이 대표자를 뽑는다…….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가 없죠. 정부를, 폐하를 항상 적대시하는 행동,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반제국활동을 하는 사람이 의원으로서 제국의 통치에 관여하게 됩니다. 인구비율로 생각하면 의원전체의 3분의 1이 그런 사람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제국의 위기, 과언이 아니겠죠.”


  엄한 말이다. 말만이 아니라 어조와 시선도 진지하다. 나와 브라케도 반론할 수 없다.

  “자신들이 뽑은 대표가 반제국활동을 하고 있다면 구동맹시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동맹시민인 채입니다. 결코 제국신민이 될 수 없죠. 제국은 동맹을 점령하고 은하를 통일하긴 했어도 통치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사령장관이 한숨을 토했다. 서두르고 있었는가……. 개혁을 진행함에 따라 제국신민은 개혁을 지지하고 협력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참정권을 부여하면 동맹시민도 협력해줄 것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발에 땅에 닿고 있지 않다……. 사령장관의 말이 생각났다. 나도 브라케도 개혁을 서두른 나머지 동맹을 점령한다는 것을, 동맹시민의 감정을 경시했다. 사령장관이나 리히텐라데 후작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들은 개혁을 행하는 것에만 사로잡혀 국가의 위기를 보고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에 불과하겠지.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국신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한다. 황제에 의한 폭정을 저지한다. 그러기 위해선 의회정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봐도 목소리가 어둡다. 나약한 어조다. 옆에 있는 브라케도 어깨를 떨구고 있다. 아까전까지 보였던 의욕은 어디에도 없다.


  “의회정치 그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겠죠. 문제는 사람입니다. 의원을 누가 어떻게 고를 것인가……. 제국신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사람을 뽑아야만 합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겠죠.”

  “과연.”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사령장관은 의회정치 도입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사람인가……. 선거로는 안 된다는 거로군. 그를 대신할 선출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


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의욕만만하게 왔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엔 침울해졌나……. 뭐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황제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서 의회제 민주주의를 도입한다. 나쁜 발상은 아니다. 두 사람이 생각한 건 아메리카의 대통령제도에 가깝겠지. 황제는 종신 대통령으로서 혈통에 의해 선출된다고 생각하면 극히 닮았다.


  하지만 통합직후의 구동맹시민에게 선거로 의원을 고르게 하는 건 너무 무모하겠지.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경우엔, 방금 전까지 전쟁하고 있던 나라 사람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게 된다.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다고. 이념만 앞서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제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제국의 역사는 잘 알고 있다. 황제의 폭정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의회제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있다.


  제도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할 때의 난점을, 결점을 알고 있다곤 할 수 없다. 의회제 민주주의의 결점이라고 한다면 중우정치로 타락하기 쉽다는 점이다. 대중의 표심을 얻기 위해 다들 발버둥치겠지. 하지만 나는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는 의회제 민주주의의 결점, 그건 주권자인 국민이 총명하며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의회제 민주주의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책임의 소재가 극히 애매하다는 점.


  지지율을 신경 쓰며, 낙선할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가에게 있어서 주권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최중요사항일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어리석고 감정적인 판단을 취하면 정치가도 거기에 휘둘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건 개인으로선 이성적인 행동을 취해도 대중이 모이면 무책임한 행동을 하기 쉽다. 다시 말해 국민주권에 의한 의회제 민주주의라는 것은 극히 빈약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인류는 아직 그것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제국은 황제주권에 의한 전제정치에 의해 국가가 통치되고 있다. 다시 말해 황제가 악정을 펼치면 황제를 살해하는 것으로 제국은 악정을 막았다. 유혈제 아우구스트 3세가 그 예다. 그는 자신의 목숨으로 악정의 책임을 졌다. 아니, 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한 것이다. 주권자인 황제가 폭군이 아니라면, 명군이 아니더라도 극히 평범한 사람이기만 하면 제국은 그 나름대로 기능했다. 좋게도 나쁘게도 책임은 황제에게 있다. 그럼 동맹은 어떨까…….


  이제르론 요새 공략 후, 제국령 침공에서 대 패배를 맛보았다. 샌포드 정권은 총사임하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 그 때, 주권자인 동맹시민은 출병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바라며 등을 밀었다. 그 시점에서 제국령에 대한 대규모 출병 따위 무모할 뿐이었을 것이다. 주권자인 동맹시민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졌을까?


  전쟁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병을 지지한 건 잘못된 거였다고 말했을까? 정부, 군부를 책망하며 끝이 아니었을까. 전쟁을 한 건 나쁘지 않았다. 전쟁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자신들이 전쟁을 지지한 것에 대해선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겠지.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극히 애매하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군주제 전제정치도 의회제 민주정치도 주권자가 바보면 기능하지 않는 건 같다. 그 차이는 주권자가 한 사람인가 다수인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주권자가 책임을 지기 쉬운 군주제 전제정치와 책임을 지기 어려운 의회제 민주정치. 어느 쪽이 정치체제로서 우수한 것일까.


  언젠가 이 두 사람에게 내 이런 생각을 전해야만 하겠지. 그 뒤에 제국의 통치제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한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겠지. 사실은 내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편이 빠르겠지만 그래선 안 된다. 내가 너무 눈에 띄는 건 안 되는 일이고, 이 두 사람은 이것저것 생각하며 성장해야만 한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안 된다.”라고만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 개혁자로만 끝나는 건 바라지 않는다는 거겠지만, 전도다난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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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페잔 고등변무관저. 에리히 발렌슈타인.


  “어떻습니까. 조금은 진정 됐습니까?”

  “예. 이제야 쌓였던 서류를 모두 처리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나 서류라는 건 쌓이는 건지……. 이상한 일입니다.”

  내 말에 볼텍이 가볍게 웃음소리를 냈다.


  “뭐, 별 수 없습니다. 서류라는 건 무슨 이유인지 쌓이는 녀석이니까요. 모두, 서류를 결제하는 걸 싫어하는 군요. 결제를 하면 증거가 남으니까 말입니다…….”

  “과연.”

  과연,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난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니까 결제문서에서 도망칠 수 없지만, 메르카츠는 부사령장관이다. 가능하면 내게 맡기고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음. 꽤나 좋다. 희미하게 오렌지향이 나니까 오렌지 껍질이라도 넣었나……. 이게 꽤 코코아와 어울린다. 실로 맛있다.


  어제 볼텍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우주함대사령부로 오겠다고 했지만, 기분전환을 포함해서 내가 고등변무관저로 가겠다고 했다. 정답이었지. 볼텍은 꽤나 좋은 호스트다.


  오딘에 있는 페잔 고등변무관저. 그 응접실에서 나는 볼텍과 만나고 있다. 나와 볼텍은 소파에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앉아있지만, 발레리와 루퍼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란히 앉아서 대기하고 있다. 젊은 남자를 곁에 앉혔으니 발레리도 괜찮은 기분이겠지.


  응접실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다. 젊은 여성의 그림이다. 의상을 보면 제국의 여성, 아마도 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기품 있는 웃음을 띠고 이쪽을 보고 있다. 일단 틀림없이 이 그림은 제국에서 구한 것일 거다. 이름 있는 화가의 작품일까? 메크링거라면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인을 보면서 마시는 코코아는 각별하지만, 이 여성, 지금도 살아있을까? 살아 있다고 하면 집은 작년 내란에서 무사했을까……. 혹시 지금은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귀족을 멸망하게 한 건 나니까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신경이 깎인다.


  “어제, 페잔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페이워드 자치령주입니까.”

  내 질문에 볼텍이 끄덕였다. 과연, 보고인가……. 페이워드와 짜고 제멋대로 굴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거군. 여기에 관해선 볼텍의 자세는 일관되어 있다.


  “자유행성동맹의 새로운 고등변무관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나와 볼텍의 사이에선 반란군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극히 자연스럽게 자유행성동맹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뭐, 은하의 절반을 점령하고 있는 성간국가가 반란군이라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다.


  “이름은 피에르 샤논. 대의원이로군요.”

  “…….”

  피에르 샤논? 레벨로 정권 아래에서 국방위원장에 임했던 샤논인가? 레벨로가 추천했다는 걸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각하는 샤논을 알고 계십니까?”

  안되겠군. 볼텍이 날 이상하단 눈으로 보고 있어. 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나.

  “아뇨. 모릅니다. 어떤 인물입니까?”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국방문제를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긴 이번 쿠데타 준동에 관계가 없었다고 하니까 주전파라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과연.”


  국방문제 전문인가……. 역시 그 샤논이겠지. 레벨로 밑에서 국방위원장이었으니까 트류니히트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봐도 된다. 군사에 관해서도 광신자는 아니었다. 현실을 중시하는 타입. 대충 그랬지. 뭐, 레벨로 정권 하에서 국방위원장이라니, 주전파에겐 무리겠지만…….


  “만만찮은 상대 같군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헨슬로우나 올리베이라보단 만만찮겠죠.”


  내 말에 볼텍이 쓴웃음을 흘렸다. 나도 웃음소리를 냈다. 올리베이라는 어쨌든 헨슬로우와 비교하다니 너무했지……. 뭐라해도 저건 페잔의 애완견이었으니까. 기르고 있던 건 루빈스키와 눈앞에서 쓴웃음을 짓고 있는 볼텍이었겠지.


  또 한 모금 코코아를 마셨다. 볼텍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쩐지 모르게 느긋한 기분이 됐다. 아무래도 난 볼텍이 좋은 것 같다. 곤란한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지장은 없다. 상관없겠지.


  정신을 차리니 볼텍이 곤란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안되겠군. 난 표정을 풀고 볼텍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가볍게 웃자 저쪽도 입가에 웃음을 띠웠다.

  “조금 피곤하신 게 아닙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코코아가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취해버리고 말았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헌데, 동맹과의 화평에 대해서입니다만. 들으셨습니까?”

  “예. 리히텐라데 후작에게서 들었습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사령장관 각하에게 상담하시도록 말씀드렸습니다만. 각하의 생각은?”

  “헌데…….”


  헌데, 어떻게 할까…….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건 프로이덴의 산장에 있을 때, 다시 말해 신혼여행 중이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말하길, “볼텍에게서 반란군과의 화평에 대한 타진이 있었다. 경에게 맡길 테니 적당히 처리해라.”. 일방적으로 말하고 일방적으로 끊었다. 그것뿐이었다. 컴컴해진 TV전화 앞에서 잠시 멍하니 앉아있을 정도였다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저 늙은이. 귀찮은 일은 전부 내게 던져둔다. 조금은 스스로 처리해줬으면 한다.


  뭐, 화평 따위 있을 수 없으니까. 내게 던져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화평의 화두 그 자체가 불쾌했든가……. 문벌귀족을 쳐부수기 위해 내란까지 일으켰다. 모든 건 신은하제국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생각하면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있어서 화평 따위 듣는 것조차 논외인 이야기겠지.


  “화평이라고 하셨습니다만, 페이워드 자치령주 개인의 생각이십니까?”

  내 말에 볼텍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트류니히트 의장의 의뢰의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긴, 페이워드 스스로, 화평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자유행성동맹이 화평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는 건가……. 쿠데타 준동으로 주전파를 쳐부순 지금이야말로 호기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페이워드는 제국과 동맹 사이에 화평을 맺지 않는 한 페잔의 독립은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 양자의 생각이 일치했다…….


  볼텍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내가 페잔을, 동맹을 점령하여 우주를 통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화평을 제안했다는 건 진심인가? 아니면 그냥 포즈인가…….


  “화평이라고 해도 항구적인 것은 될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거겠죠. 자유행성동맹이 국력을 회복하기까지 임시변통. 길어야 10년의 화평일까요……. 뭐, 일시적이라곤 하지만 은하에 평화가 찾아오는 건 평가하겠습니다만, 동맹의 국력이 회복되면 또 전쟁이 벌어집니다. 제국에게 있어선 어떤 메리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볼텍은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내가 말을 끝내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시작했다.

  “페이워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국은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열악유전자 배제법도 폐지하고 동맹과 제국이 대립할 정치적 요인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양국 사이에 화평을 맺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하고 말입니다.”


  “과연……. 볼텍 변무관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화평은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에 볼텍은 조금 눈을 깔고 생각하는 듯이 침묵했다. 과연. 아까의 발언도 페이워드의 생각으로서 말했다. 자신이 생각한 게 아니다. 알아달라는 건가. 아무래도 포즈인 것 같군…….


  “……확실히 정치적인 대립점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감정이겠죠. 동맹시민, 제국시민, 지금까지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아픔을 뛰어넘고 화평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어떨지……. 어렵지 않을까 전 생각합니다.”


  그 말대로다. 페이워드는 150년 동안이나 전쟁을 치루고 있다는 사실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 어차피 페잔에서 양국의 전쟁을 관람하고 있었다는 거다. 전쟁의 아픔을 알고 있지 않다.


  그에게 있어선 전사자의 수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겠지. 그 숫자의 그림자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지 않다. 애초에 페잔에는 전쟁고아나 전쟁미망인은 없으니까. 모르겠지. 볼텍은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제국에 있다는 게 크겠지. 가까이에서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을 보고 있다. 전사자의 수를 단순한 숫자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르론 요새 함락 후, 동맹은 제국령에 대규모 출병을 행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바보 같은 소리다. 동맹에겐 그런 짓을 할만한 여유는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요새를 중심으로 방어전을 전개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그럼 어째서 저런 바보 같은 출병이 일어났는가…….


  군 내부의 주도권 싸움, 나나 페잔이 부채질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동맹시민 사이에 제국령으로 침공하여 일격을 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맹시민의 마음엔 길고 긴 세월동안 침공을 받아왔다는 것에 대한 울분, 아니 원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겨우 10년의 화평으로 그 원념이 사라질까?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샨타우 성역 회전에선 1천만 명 가까이 동맹군 병사가 죽은 거다. 그 원한이 10년으로 사라질까? 10살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20세가 되었을 때, 그 원한을 잊을 수 있을까…….


  “페이워드도 화평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 시점에선 제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입니다. 화평을 받아들이다니 논외라고 제국 중신들은 생각하겠죠. 하지만 페이워드는 화평은 제국에게 있어서도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메리트 말입니까…….”

  내 말에 볼텍이 끄덕였다.


  “제국이 동맹으로 침공하기 위해선 이제르론, 페잔 두 곳에서 동시에 작전을 실시하게 되겠죠.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는 난공불락. 페잔 회랑도 장소에 따라서 대군이 도움이 되지 않는 협소한 장소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선 전쟁이 교착 할 위험도 있다는…….”

  볼텍이 날 보고 있다. 과연. 내가 정말로 우주를 통일할 수 있을지 확인하려한다. 그런 건가…….


  “확실히 이제르론 요새는 난공불락이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양 제독은 동맹군 제일의 명장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겠죠.”


  동맹측은 전쟁의 교착화도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있겠지. 주전파가 쿠데타를 생각한 건 교착에 의해 두 회랑을 지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트류니히트들은 거기까지 낙관하고 있지 않다. 언젠가 버틸 수 없으리라 봤다. 그렇기에 화평을 생각하고 있다…….


  “전쟁이 교착하면 지금 제국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개혁에도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국 내에서 전쟁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자들도 나오지 않을까 페이워드는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전쟁의 장기화입니까……. 확실히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군요.”


  헌데, 어떻게 할까? 동맹이 이제르론 방면으로 전개할 수 있는 병력은 많아야 2개 함대다. 이쪽이 침공하면 양은 요새 주변에서 방어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양 웬리는 귀찮지만, 이제르론 요새는 무서워할 필요 없다. 여차하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부딪치면 된다.


  양이 그걸 막으려고 하면 함대를 밖으로 꺼내 요새의 엔진을 공격할 수밖에 없지만, 그때엔 이쪽의 함대로 양을 치면 된다. 엔진을 파기하기 전에 양의 함대는 불덩어리가 되겠지. 저건 제주권을 확보하고 나서야 가능한 작전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부러 손속을 보일 필요도 없겠지. 오히려 페이워드를, 동맹을 방심하게 만드는 편이 좋다. 아니,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과연. 페이워드 자치령주의 염려는 잘 알겠습니다. 교섭은 어쨌든, 화평에 대해선 이쪽도 생각해보죠.”


  볼텍이 이쪽을 보고 있다. 속내를 살피는 듯한 시선이다. 내가 본심에서 말하는 건지 살피려는 거겠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다. 이런, 식어버렸군. 향도 사라졌다……. 모처럼 맛있는 코코아가 쓸모  없어졌다. 남은 것을 단숨에 목에 넘겼다…….


...


제국력 489년 3월 28일. 오딘, 페잔 고등변무관저. 니콜라스 볼텍.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헌데……. 케셀링크 보좌관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다지 감명을 받은 듯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뭐, 그렇군.”


  감명인가. 조금 더 좋은 단어가 없었을지……. 이 남자의 나쁜 점이다. 아무래도 말에 빈정거림을 섞고 만다. 루빈스키에게도 그런 점이 있었지만, 아들에 와서 더 강하게 나오는 것 같다. 불쾌하게 느꼈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무마했다.


  이미 발렌슈타인 원수는 부관과 함께 우주함대사령부로 돌아갔다. 지금은 루퍼트가 내 앞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생각해보겠다고는 했습니다만…….”

  “언질은 주지 않았지.”

  “예.”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교섭에 대해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말하자면 제국 그 자체가 화평교섭에 대해서 어떤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다.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과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을 뿐이다.


  “자치령주 각하에겐 어떻게 전하실 겁니까?”

  “케셀링크 보좌관. 그렇게 이쪽을 시험하는 듯한 말투는 그만두게.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루퍼트가 건실한 어조로 사과했다. 그래도 시선에는 그런 느낌이 없다. 어딘가 대담한 색이 있다. 과연, 눈은 마음의 창인가…….


  “상대에게 불필요한 경계심을 품게 만들게 된다. 교섭자로선 2류겠지. 발렌슈타인 원수를 본받도록 하게. 그는 경계를 하게 해도 그걸 완화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

  “…….”

  이번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런이런. 과연 어디까지 알았을지…….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실전부대의 책임자에 불과하다. 본래 화평교섭을 운운할 입장이 아닌 거다. 현실은 어쨌든 원칙은 그렇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거기에 이야기를 돌렸다. 그리고 사령장관도 언질을 주지 않는다. 그 부분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화평 따위 논외라는 거겠지. 적당하게 얼버무려두기 위한 변명이다. 저 두 사람 사이엔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제국에게 있어 우주통일은 발렌슈타인만의 생각이 아니다. 리히텐라데 후작, 아니 제국 전체의 의지라고 봐야 한다.


  전선의 교착화에 대해서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무슨 수를 쓰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선의 교착화론 제국을 교섭으로 끌고 올 수 없다는 건 알았다. 유감이군. 페이워드.


  “코로 웃지 않은 것만이 다행인가.”

  “그건…….”

  루퍼트가 쓴웃음을 흘렸다.

  “헌데, 그럼 어떻게 할까…….”

  “…….”


  루퍼트가 이쪽을 보고 있다. 변함없이 이쪽을 시험하는 눈이다. 그럼…….

  “케셀링크 보좌관. 페이워드 자치령주 각하에 대한 보고는 자네가 해주게나.”

  “제가 말입니까? 하지만, 뭐라고.”

  “맡기겠네. 자네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본 그대로를 전하면 되는 일이니.”

  “…….”

  그걸 계기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데, 루퍼트는 페이워드에게 어떻게 전할까? 있는 그대로 전할까. 아니면 각색할까……. 각색한다면 누구를 위해서 각색할까? 나인가, 페이워드인가. 아니면…….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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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3월 28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월터 아일랜즈.


  “형편도 좋군. 뭐 그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건가.”

  TV영상을 보면서 떫은 표정으로 트류니히트 의장이 내뱉었다. 집무석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두들기고 있다. 드문 일이다. 여기까지 감정을 보이는 일은.


  “확실히 그렇겠죠. 하지만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정치적인 쇼의 의미가 강하리라 생각합니다만.”

  트류니히트 의장이 소파에 앉아있는 날 봤다.

  “확실히 그렇겠지. ……개방된 제국인가……. 군사만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이쪽이 밀리고 있어. 성가신 상대다.”


  이번엔 한숨 섞인 말이었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굉장히 의기소침하고 있다……. 의장의 시선이 또 TV로 향했다. TV는 발렌슈타인 원수의 결혼식 영상을 비추고 있다. 예의 ‘나가버릴 정도로 사랑해.’의 영상이다.


  개방된 제국……. 요즘 최근 매스컴에서 쓰이기 시작하는 말이다. 황제 주최의 결혼식. 황제 스스로 주례를 보고 피로연에선 평민과 친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전 은하에 흘러갔다. 또한 피로연 자체가 동맹시민에게서 봐도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맹시민 중에는 제국이 변하고 있다. 열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개방된 제국’은 그런 시민의 목소리를 매스컴이 표현한 말이다. 극히 제국에게 호의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혼식을 계획한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들으면 크게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뭐, 그래도 이번엔 이쪽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감사를 표해야겠죠.”

  내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굉장히 떫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안되겠군. 기분전환이 되리라 생각하고 한 말인데…….


  “쿠데타 사건으로 모두 어두웠으니까 말이지. 그걸 날려버려준 건 감사하고 있네.”

  재미없다는 목소리와 표정이다. 표정과 말이 이렇게까지 다르다니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지. 이런이런…….


  “헌데, 괜찮습니까? 바쁘신 건.”

  호출을 받아 의장실로 와보니 벌써 15분 가까이 TV영상을 보고 있다. 의장은 다망할 것이다. 이야기가 있다면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지. 이대로 있으면 아무래도 이쪽까지 신경이 깎인다.


  “아니, 세시쯤엔 긴급한 용건이 아닌 한 아무도 여기에 오지 않게 되어있네. 일에 쫓기기만 하면 안 돼. 때론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야……. 그렇다곤 해도, 언제까지 TV만 보고 있어도 별 수 없군.”

  그렇게 말하고 의장은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다. 역시 지쳐있는 것 같다. 뭐, 무리도 아니긴 하다. 예의 쿠데타 계획이지만, 그 규모는 예상보다 컸다.


  “수사는 어떻습니까?”

  “아직이다. 지금부터겠지.”

  네그로폰테는 참가자를 모으는 걸 우선했다. 정치, 군부, 관료, 경제……. 갖가지 분야에 있어 쿠데타에 관여했던 사람이 있다. 그 전부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예의 녀석들은?”

  내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내 정면에 앉았다.

  “직접 얽혀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녀석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군인, 경제인이 쿠데타에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


  경제인? 페잔 점령을 바라는 경제인이 쿠데타에 참가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구교와 친하고 지내고 있는 경제인?

  “군인은 알겠습니다. 녀석들은 주전파와 가까운 관계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경제인이라니…….”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 의장도 곤혹한 표정을 보였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네.”

  “…….”

  “……자넨 알고 있나? 레오폴드 라프가 이 나라에서 페잔 성립을 위해서 자본을 조달했다는 이야기를.”

  망설이면서 의장이 질문했다. 목소리도 작다. 이쪽의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작아졌다.


  “네그로폰테에게서 들었습니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알려줬다는 이야기지요.”

  의장은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혹시 그때 협력했던 자들의 말예일지도 몰라…….”

  “설마…….”


  트류니히트 의장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봤다. 의장도 이쪽을 보고 있다. 곤란한 표정이다.

  “설마…….”

  다시 한 번 같은 말이 나왔다.


  “모르겠네……. 모르는 일이지. 진실은. 지금까지 지구교는 페잔 뒤에 숨어서 행동을 해왔으니 말이야. 직접 지구교가 움직였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어. 혹시나하는 이야기다…….”

  “…….”

  생각에 잠겨있는 의장의 작은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제국에서도 지구교와 쿠데타의 관계에 대해서 신경 써서 조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요청이 들어온 건 2월 20일이었지.”

  “!”

  저도 모르게 의장의 얼굴을 봤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이 끄덕인다.


  2월 20일……. 네그로폰테를 시작하여 쿠데타 관여자가 체포된 게 19일이었다…….

  “제국에게 사전에 알렸었습니까?”

  트류니히트 의장이 고개를 저었다.


  사전에는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쿠데타라고 판단하고 지구교의 관여 조사를 요청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3월인데…….

  “방심할 수 없군요. 두려울 정도로 감이 좋습니다.”

  “만만찮은 상대다. 자네도 앞으로 녀석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알게 될거야.”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침묵했다. 의장실에는 결혼식 영상이 흐르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뭔가 야유를 날리고 황제가 웃고 있다. 화두를 바꾸는 편이 좋겠지.


  “화평 교섭은 잘 될 것 같습니까?”

  내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고개를 젓고 쓴웃음을 흘렸다.

  “잘 되지 않는군. 뭐, 그렇게 간단하게 잘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네. 지금 시점에선 화평의 가능성은 낮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어. 지금은 상황을 둘러보는 중이다.”

  “…….”

  “페이워드도 그런 부분은 알고 있어. 서로 장기전은 각오하고 있지.”


  화평인가……. 어려운 일이긴 하다……. 의장은 지금 시점에선이라고 했지만, 장래적으로도 가능성은 낮겠지. 하지만 화평을 맺으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다행히 제국은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점은 점점 적어지고 있는 거다.


  “오늘 자네를 부른 건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제 생각입니까.”

  트류니히트 의장이 날카로운 시선을 향해왔다. 평소의 사람 좋은 미소는 없다.


  “자넬 국방위원장으로 임명한 건 네그로폰테군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야. 난 그를 믿었다. 아마도 자네들 사이에선 쿠데타 발각 후의 전망에 대해서 몇 번이나 상의가 있었을 거다. 그렇기에 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넬 국방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게다가 그렇게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체포자가 나오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 말대로다. 그렇게 느긋한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체포자를 가장 많이 보이고 있는 게 군부와 국방위원회인 것이다. 벌집을 들쑤신 것 같은 소동이었다. 체포자의 구멍은 시급히 채워야만 한다. 쿠데타 발각 후 가장 바빴던 건 국방위원회와 군부였겠지.


  제 3함대 애플턴 중장, 제 9함대 쿠브르슬리 중장, 제 11함대에 호우드 중장을 배치했다. 각 함대의 사령부 요원, 분함대사령관 중에도 체포자가 나와 구멍을 매워야했다. 3개 함대가 정예라 불릴 수 있을 때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좋겠지. 자네도 한 달 가까이 국방위원장의 자리에 있으며 나름대로 생각했던 게 있었을 것이다. 국방위원장으로서, 자유행성동맹은 어떠한 국방방침을 가져야 하는지. 자네의 의견을 내게 들려주길 바라네.”

  “…….”


  TV에선 결혼식이 방송되고 있다. 이번엔 여성진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주함대사령부에서 일하는 여군들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노래 소리에 더욱 환성이 오르고 있는 걸 트류니히트 의장이 TV 리모컨을 눌러 영상을 껐다. 방에 정적과 긴장이 생겨난다. 그 압박감에지지 않도록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전 제국과의 화평을 맺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제국이 그걸 바라지 않는다는 점도 있습니다만, 대다수의 동맹시민도 그걸 바라지 않습니다. 주전파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져도, 동맹이 불리한 상황에 있다는 걸 알아도 화평은 바라지 않는다……. 시민은 이대로 국력 회복을 기다리고, 제국에 반격할 것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화평을 바라는 건 극히 소수의 시민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화평을 맺는 건 어렵겠죠…….”


  트류니히트 의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잠자코 날 보고 있다. 더더욱 압박감이 강해졌다.

  “이대로 가면 동맹과 제국의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걸 전제로 화평을 생각해야한다고 전 보고 있습니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잠자코 날 보고 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고 “싸움을 전제한 화평인가.”하고 중얼거렸다.

  “그건 강화라는 건가? 아일랜즈군.”

  “그렇습니다.”


  찌릿찌릿 아플 정도의 압박감이 몸을 감싼다. 뭔가 말하는 것으로 벗어나자고 생각했을 때였다. 의장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방에서 압박감이 사라졌다…….

  “전쟁이 일어나면 동맹은 6에서 7개 함대의 동원이 전부입니다. 제국은 적게 봐도 20개 함대는 동원하겠죠. 3배의 병력입니다. 이기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맹시민도 화평을, 강화라는 화평을 생각할 것입니다.”


  동맹시민은 제국에게 이기리라 생각하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형편 좋은 부분만을 보고 있는 거다. 형편 좋은 부분이란 이제르론, 페잔 양 회랑을 제압하고 있다는 것. 제국이 당분간 내정에 전념하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동맹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국이 침공하기까지 체제를 바로 세울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눈을 피하고, 보고 싶은 소망만을 현실로서 오늘을 살아간다. 그게 지금의 동맹시민이다. 우리들이 그들의 눈을 현실로 향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좋겠지. 제국이 대군을 가지고 침공해왔을 때, 그때가 되어야 동맹시민은 자신들이 현실을 거부하고 소망을 현실로서 인식하고 있었다고 이해할 것이 틀림없다. 현실이 보이면 동맹시민은 전쟁보다도 화평을 선택하겠지.


  쿠데타를 생각한 녀석들은 그것보다 조금 나았다. 녀석들은 제국의 공세는 필연적이라고 본 것이다. 조기에 제국군이 침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낫다고 하는 건 거기까지다. 거기서 생각한 것이 페잔을 점령해서 부를 착취한다는 산적 같은 발상이다.


  “강화인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화평을 맺는 건 무리인가…….”

  의장의 눈썹 사이에 주름이 생겼다.

  “무리, 라곤 할 수 없습니다만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현실적인 건 싸운 뒤의 강화겠지요. 우리들은 화평과 강화, 두가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신음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강화라고 해도 항복과 마찬가지가 되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럴 위험성은 있습니다. 동맹군은 이제르론, 페잔 양 회랑에서 제국군과 최악이더라도 교착상태로 몰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 조약이 되고 말겠죠…….”


  내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맹군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엄한 조건이다. 두 회랑을 최대라고 해도 7개 함대로 지켜야만 하는 거다. 어느 한 쪽이 돌파되면, 하이네센까지 제국군을 막을 것이 없다. 한숨을 내쉬어도 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의장이 화평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도 끝내는 것이 어렵다. 하물며 동맹은 열세적인 입장에 있는 거다. 강화조약은 당연히 동맹에게 있어서 엄한 것이 되겠지…….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전국을 호전하게 만들면 조건은 완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적다. 절대적으로 병력이 부족한 것이다. 아마도 전국은 악화하고 강화 조건은 보다 엄한 것이 되겠지. 아니, 강화 그 자체가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동맹시민에게 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으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런 거겠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망명자에게서 얻은 정보다. 제국 내에서 발생한 카스트로프 반란에서 주모자 막시밀리언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써서 행성 카스트로프를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반란 진압으로 향한 발렌슈타인 원수의 앞에 속절없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단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는 모르고 있다……. 정부가 이 사실을 안 것은 제국 내란이 종결하고 포로교환에 들어간 시기였다. 그리고 이 사실은 동맹시민에겐 공표하고 있지 않다…….


  포로교환 전에 공표했으면 어떤 소란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포로교환을 원활하게 끝내기 위해선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포로교환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지금이라면 공표해도 문제 없겠죠. 오히려 화평교섭을 진행하기 위해선 공표하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무력하다는 걸 알면, 이리저리 시끄러운 의원들이나 하이네센의 동맹시민도 다소 생각하겠지. 녀석들의 고집도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면 조금은 얌전해질 것이다.


  “그렇군. 다음 최고평의회에서 이야기하지. 반대하는 자도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숨기는 것도 위험하다.”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 같은 어조였다.

  “그 외에는, 뭔가 있는가?”

  “페잔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말없이 이쪽을 보고 있다. 내가 페잔의 점령을 보다 강력한 것으로 해야 한다고 진언하고 있다 생각 했나…….

  “페잔을 자유행성동맹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페잔의 중립을 존중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등한 입장인가…….”


  의장이 눈썹을 모으고 중얼거린다. 꽤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이것 없이 전쟁이 일어나면 대 제국전에 있어 더욱 불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밖에 없어진다.


  “동맹정부는 페잔의 중립을 존중하며, 그 관계를 긴밀한 것으로 한다. 제국이 침공해왔을 땐, 제국은 페잔의 중립을 침범하려한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페잔을 아군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우리들의 후방지원을 받는 다든가, 혹은 제국에게 점령된 후에 사보타주 등으로 교란하게 합니다.”

  “……양 제독의 약자의 전략인가…….”

  의장이 날 보면서 중얼거린다. 그 말대로다. 약한 이상 조금이라도 아군을 만들어 제국을 고립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이번 쿠데타 준동은 호기입니다.”

  “호기?”

  “그렇습니다. 새삼 페잔의 중립을 존중한다. 동맹정부는 그 중립을 침범하는 일이 없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쿠데타의 주모자들이 생각했던 페잔 병합 같은 일은 절대로 없다. 언젠간 제국과 협의 하에 철퇴한다고…….”


  “그에 의해 페잔의 호의를 취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내가 끄덕이자 트류니히트 의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화평 교섭은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 그게 의장과 페이워드의 마음을 더 가깝게 만들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이 동맹과 페잔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화평 교섭……. 언젠가 행해질 강화교섭의 시험단계가 되겠지……. 나머진 어떻게 제국을 강화의 자리에 앉게 만드는가다. 최악이더라도 두 회랑에서 교착상태를 만들어야한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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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3월 15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요즘 동맹엔 어두운 뉴스가 많다. 저번 달에 일어난 쿠데타 때문이다. 처음엔 군인과 정치가들만의 쿠데타라고 생각했지만, 경제인이나 관료까지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이 수사 중에 발각됐다. 매일 취조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점점 규모가 커져갔다.


  쿠데타 소식이 들리자마자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이 참가하고 있었다는 것에 가장 크게 놀랐다. 위원장은 트류니히트 의장에게 있어서 가장 신뢰하는 부하였지만, 그가 의장을 배신하다니……. 최종적으로 의장의 설득에 의해 위원장이 모두 자백하여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믿을 수 없다.


  다수의 군인이 참가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욱 믿을 수 없는 점이었다. 현역 군인만이 아니다. 퇴역한 사람이나 예비역인 사람까지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로보스 퇴역 대장이라든가, 포크 예비역 준장이라든가. 그런 사람을 동료로 받아서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 걸까? 적을 물리치는 것보다 아군을 희생하는 것이 특기인 사람들인데……. 자멸할 생각이었을까?


  엄마도 쿠데타 소동이 일어났을 땐 불안했지만, 오늘은 싱글벙글이다. 오늘은 기대하고 있던 발렌슈타인 원수의 결혼식 날이다. 하이네센의, 아니 동맹의 TV방송국은 모두 원수의 결혼식을 방송하기로 되어있다. 페잔의 TV방송국을 중계해서 라이브로 방송하는 거라고 한다. 엄마만이 아니다. 모두 결혼식 방송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어떤 결혼식이 될지…….


  하이네센의 여성 주간지는 모두 결혼식에 대한 것으로 시종일관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적혀있다. 거기에 의하면 원수의 결혼은 황제의 명령이라고 한다. 이른바 정략결혼이라는 녀석이지만, 상대 여성, 유스티나 폰 뮈켄베르거는 원래부터 애인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뮈켄베르거의 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상대는 뮈켄베르거 원수의 영애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붓딸이라고 한다. 원수완 친척관계에 있는 집의 여성이라고 하지만, 집이 전쟁 때문에 몰락하고 의붓딸이 됐다고 한다. 귀족이라고 해서 편하게 사는 건 아니구나.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뮈켄베르거 가문은 군의 명문으로 본가는 백작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평민이니까 사실은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황제가 그걸 알고 불쌍하게 여겨 두 사람을 결혼시키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뮈켄베르거 원수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황제도 맘에 들어 하고, 언젠간 통수본부총장, 군무상서가 되리란 소리를 듣고 있다. 황제의 명령이라는 장식까지 붙으니까 오히려 기뻐하고 있을 거라고 엄마가 산 주간지에 써있었다.


  황제가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한 건 다른 이유도 있을 거라고 주간지엔 써있었다. 작년 내란에서 많은 귀족이 죽었으니 귀족끼리 결혼을 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으로 다른 귀족에게도 평민과 결혼하기 쉽도록 한다고 하든가. 그리고 군의 함대사령관들은 젊고 독신 남성이 많으니까 인기 급상승 중이라고 한다. 어딘가의 백작영애도 함대사령관과 사이가 좋다고 한다.


  어제 TV에서 이번 결혼식의 의의라는 테마로 토론회가 열렸다. 그 안에서 말한 거지만, 제국은 확실하게 변하고 있다고 한다. 평민의 권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번 결혼은 그걸 전 우주에 알리기 위해서 행해지고 있다든가. 그 때문에 결혼식도 궁중에서 행해진다고 말했다.


  난 어려운 일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궁중에서, 흑진주 홀에서 결혼식이라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신무우궁 안이 촬영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게 이번 전 우주에 방송되는 거다. 그것도 흑진주 홀…….


  흑진주 홀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원수봉을 수여받은 장소고, 우주력 796년 10월 15일 포고된 칙령이 선언 된 장소이기도 하다. 제국의 공식행사가 몇 번이나 치러진 역사적인 장소다. 그런 장소에서 결혼식. 원수의 결혼식은 어떤 결혼식이 될까.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방송이 시작되는 것 같다. 자, 가봐야지.


...


우주력 798년 3월 22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요 일주일간, 우리 반에선 결혼식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담임선생님도 결혼식 다음날 첫마디가 “어제 결혼식은 대단했지.”였다. 반 친구 모두가 “대단했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나도 동감이다. 그 결혼식은 정말 대단했다.


  흑진주 홀은 커다란 방이고, 정면에 주례를 보는 신부님이 있고, 선서용 받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받침대에서 입구까지 붉은 융단이 깔려있었다. 해설자(이 사람, 페잔인이었다)가 말했지만, 그 융단은 200명의 장인이 25년을 걸려 짠 거라고 했다. 나라면 도저히 그 융단을 밟을 수 없다. 엄마도 밟으면 벌받을 것 같다고 웃었다.


  융단 양편에는 식의 참여자가 있었다. 군인은 대장 이상의 계급을 가진 자, 문관은 각 성의 상서, 차관, 그리고 작위를 가진 귀족……. 그 이외엔 신랑신부의 극히 친한 인물이 불려왔지만, 참여자 대부분이 제국의 중요인물이었다.


  해설자는 제국 귀족이 평민인 원수의 결혼식에 참여하고 있다. 내란 후의 제국에는 대립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흥. 동맹도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했다. 이쪽도 대립은 없어졌어.


  해설자의 설명이 30분 정도 지났을까. 신부가 아버지인 뮈켄베르거 원수와 흑진주 홀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어온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군복이 아니었다. 검은색의 평범한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굉장히 위엄에 넘쳤다.


  처음 봤지만 멋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지 않은데도 역전의 명장, 그런 분위기가 풍기고 있다. 동맹군에는 저런 사람이 없다. 좋은 의미로 제국 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 원수가 멋있다고 했다. 특히 여자아이는 “할아버지 멋있어. 나도 손잡고 걷고 싶어.”라고 소란 피웠다. 미하 년, 멋있으면 누구라도 좋은 거지. 여자란 최악!


  새신부는 뭐라 트집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하얀색 드레스가 잘 어울린다. 머리에는 왕관 같은 티아라라는 장신구를 달았지만, 골덴바움 왕조 대대로 전해지는 티아라로 전에 이걸 쓴 건 구 리텐하임 후작부인, 지금은 크리스티네 황녀 전하라고 해설자가 말했다. 이번엔 특별히 허락이 허락됐다고 한다.


  웨딩드레스도 트레인? 그 질질 끌리는 녀석이지만, 이게 6, 7미터. 이것도 ‘로얄’이라 불리는 길이로 제국에선 황족 이외엔 사용금지라고 했지만, 특별히 사용이 허락됐다고 한다. 이유는 전 우주에 방송되니까. 꼴불견인 결혼식으론 제국의 위신에 상처가 난다. 그런 일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특별히 황제가 허락을 내렸다든가…….


  해설자가 신부의 의상은 귀족도 본래 허락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특별히 황족과 동등한 대우라고 말했다. 그걸로 묘한 말을 했다. 실은 발렌슈타인 원수는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손자라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나 특별취급 받는 걸 보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하긴, 묘한 소문은 그 외에도 있다고 한다. 뭐라든가. 원수는 리히텐라데 후작의 손자라든가……. 아무래도 원수가 평민인데도 관례를 깨고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된 것이나 원수가 되었기에, 사실은 권력자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소문이 흐르는 거라지만, 진짜 그것뿐일까?


  새신부인 유스티나 폰 뮈켄베르거는 상냥해 보이는 사람으로 커다란 녹색 눈동자가 무척이나 예쁜 사람이었다. 해설자도 새신부는 상냥한 여성으로, 원수가 부상을 입었을 땐 하루건너 하루마다 문병을 왔다고 했다.


  귀족의 딸이란 거만하고 방만한 공주님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구나. 가엽네. 원수 같은 되먹지 못한 놈과 결혼하다니……. 연인이라고 하지만 유스티나는 속고 있는 거다. 원수는 거짓말만 하는 되먹지 못한 놈이니까 말이야. 아마도 바로 이혼하고 싶어질 것이 틀림없다.


  반 여자아이들은 “대단하지 않아. 추녀. 처진 눈.”이라고 했지만, 너희들 보다 훨씬 귀엽고 예쁘다. 천박한 여자들은 모두 미녀를 질투한다. 우리 반은 학년 제일의 추녀 모임이다. 다른 반에서 지뢰 교실이라고 불리고 있다. 발을 들이밀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맨날 거기에 발을 들이밀고 있는데.


  두 사람이 신부의 앞에 도착하자 이번엔 발렌슈타인 원수가 흑진주 홀에 들어왔다. 포로 교환 식 때와 다른 코발트블루의 망토와 하얀 띠다. 띠에는 붉은색 선이 들어가 있다. 의외로 원수는 꽤나 꾸몄다. 하지만 엄마는 “원수는 검은색이 어울리는데……. 뭐, 결혼식에선 검은 색은 무리지. 하지만 유감.”이라면서 웃었다.


  엄마는 원수에게 무르다. 엄마만이 아니다. 반의 여자아이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말해두겠지만 원수는 적이다. 샨타우 성역에서 많은 동맹 군인을 죽인 적이라고. 마음을 풀어선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도 유스티나에게 무르잖아.”라고 말하며 반박한다. 전혀 모른다. 그녀는 제국인이지만 군인이 아니다. 극히 평범한 여자가 아닌가.


  신랑 신부가 주례 앞에 가자 주례가 맹세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하다. 이 주례.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해설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주례가 폐하와 닮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지. 굉장히 닮았다. 엄마도 닮았다고 말했다. 예의 칙령 포고 때 봤지만, 그때의 황제는 위엄이 있어서 멋있었다. 주례는 싱글벙글하고 있으니까 잠깐 눈치 채지 못했다. 그때와 느낌이 다르지만 굉장히 닮았다.


  식이 진행되는 도중, 엄마와 나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난 황제라고 했지만, 엄마는 황제가 아니라고 했다. 해설자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우유부단한 녀석. 하지만 역시 황제였다. 주례는 맹세의 말  끝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기에 두 사람은 경사스럽게 부부가 되었다. 짐, 은하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이를 인정하며, 이를 축복하노라.” 그걸 들은 순간 나도 엄마도 아연하게 서로를 돌아봤다.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황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굉장히 닮은 사람이 연기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크 라이히!”

  “지크 카이저 프리드리히!”

  아연해하고 있자 참여자들이 갑자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멋있다! 난 동맹 사람이지만 이런 때엔 제국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동맹에선 이런 구호가 없으니까 말이야. 흥이 오르지 않는다. 뭔가 좋은 게 없을까?


  구호를 들으면서 엄마가 “이걸로 원수는 이혼할 수 없게 됐네.”라고 말했다. 나도 동감. 황제 앞에서 맹세한 거니까 이혼은 할 수 없다. 새신부, 불쌍해. 저런 최악의 남자의 신부가 되다니. 게다가 이혼도 할 수 없다니. 아마 이것도 발렌슈타인 원수의 책략인 것이 틀림없다. 황제의 앞에서 맹세하는 것으로 유스티나가 이혼할 수 없게 만든 거다. 최악이다. 유스티나가 불쌍해.


  엄마가 “나도 이런 결혼식을 하고 싶었어.”라고 말했지만, 동맹에 태어났으니까 그건 무리라고. 하지만 동맹에서 한다고 하면 트류니히트 의장이 주례를 서는 걸까? 으음. 멋있지만 황제에겐 질 것 같네. 유감!


  구호가 끝나자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파이프 오르간의 음색이 굉장히 엄숙해서 뭐라고 할까,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결혼식은 역시 이래야……. 최근 식장에는 전자 오르간을 쓰는 게 많지만 분위기가 나질 않지.


  연주를 하는 건 수염의 메크링거 제독이었다. 포로교환식에서 봤으니까 기억하고 있다. 예술가 제독이 기분 좋게 연주하고 있다. 연주도 훌륭했다. 다재다능하다는 건 좋지. 나도 뭔가 시작할까 생각했지만 돈이 드니까 그만뒀다. 우리 집엔 아빠가 없으니까. 엄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굉장히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키가 크고 다부진 남자로 머리카락이 오렌지 색이었다. 엄청 큰 목소리로 낭랑하게 찬송가를 부른다. 감탄하고 있자 해설자가 비텐펠트 제독이라고 알려줬다.


  비텐펠트 제독이라면 흑색창기병을 이끌고 있는 제국의 명장이다. 샨타우 성역에서 대활약했고, 아랄콘 제독을 페잔 회랑에서 쳐바른 것도 흑색창기병이다. 그 사령관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대단해. 제국군인 중엔 다재다능한 사람이 많구나. 황제가 주례를 볼 정도니까 다른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찬송가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퇴출했지만, 유스티나가 넘어질 뻔했다. 아무래도 드레스의 옷자락을 밟은 것 같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양손으로 잡아서 지지했지만, 조금 위태로웠다. 남자라면 한 손으로 지지할 정도의 다부져야. 지금부터 몸을 단련할까…….


  결혼식이 끝나자 피로연이었다. 주빈은 원수의 아버지의 친우로 겔러라는 사람이었다. 평민이며 변호사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주빈? 모두 놀랐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겔러씨겠지. 그게 황제와 국무상서가 테이블이 같다고. 나라면 돈을 받아도 싫다. 돈을 내서라도 거절한다.


  결혼식은 굉장한 느낌이었지만, 피로연은 굉장히 소란스런 느낌이었다. 국무상서는 야유를 날리고, 황제는 그걸 들으며 웃고 있다. 모두 좋을 대로 행동해서 제국도 동맹도 피로연은 그다지 다르지 않구나하고 생각했다. 엄마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다고 말했다.


  피로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여흥이었다. 함대사령관 전원, 메크링거 제독은 여기서도 반주였으니까, 그를 빼고 20명 가까운 인원수로 노래를 불렀는데, 이게 깜짝 놀랐다. 노래가 ‘나가버릴 정도로 사랑해’. 지금 페잔에서 인기 급상승 중인 여성 그룹, 버츄얼 걸의 최신곡이다.


  굉장히 예쁜 누나들 열 명이 조금 야한 모습으로 결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 부른다. “가버려, 가버려, 완전히 가버려, 나 정신이 가버릴 정도로 당신을 사랑해.”라고 노래 부른다. 동맹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는 그룹으로 ‘나가버릴 정도로 사랑해’는 10주 연속으로 판매량 넘버 원. 리퀘스트 넘버 원이다. 그걸 은하제국 제독들이 불렀다!


  반 여자아이들이 때때로 흉내 내며 춤추지만, 돼지가 탭댄스를 추는 것 같으니까 반 남자들은 그게 시작되면 모두 보지 않으려고 한다. 보기 힘든 게 아니라 뿜을 것 같으니까. 웃으면 그 녀석들 정신이 나가버린다. 덕분에 우리 반은 남녀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선생님에게도 두통거리다. 하지만 남자들 때문이 아니다. 녀석들의 춤이 너무 같잖은 거다. 그리고 가버리지 않아도 좋다. 가버려도 전혀 귀엽지 않으니까.


  노래는 조금 능숙했다. 비텐펠트 제독이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 훌륭했다. 특히 로이엔탈 제독. 좌우의 눈동자 색이 다른 핸섬한 제독은 미성이었다. 엄마도 “얼굴도 잘생겼는데 목소리도 좋네.”라고 넋을 잃었다. 부탁이니까 아들 앞에서 그런 얼굴을 보이지 말라고. 엄마.


  제독들은 노래를 불렀지만 춤은 추지 않았다. 직립부동으로 노래를 불렀지만, 주변에선 “춤춰라.”, “댄스는 어쨌냐.”라며 입을 모았다. 황제도 같은 말을 했으니까 버츄얼 걸에 대한 걸 알고 있었겠지. 나도 TV 앞에서 마찬가지로 외쳤다. “춤춰라.”, “댄스는 어쨌냐.”라면서.


  이대로 춤추지 않고 끝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함대사령관이 버츄얼 걸의 노래를 부르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전 은하에 라이브로 흐르다니……. 하지만 내 생각이 얕았다. 제독들은 모두 제국 제일의 명장이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선 적의 의표를 찔러야만 한다…….


  1절이 끝나고 2절이 시작하기 전, 간주에 들어갔을 때였다. 제독들이 갑자기 춤추기 시작했다. 버츄얼 걸 같은 격렬한 춤이었다. 가장 연장자인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올해로 60세가 된다고 하는데, 그도 함께 춤추고 있었다. 제독들은 모두 머리카락을 날리며 격렬하게 춤을 췄다.


  한 순간 아연했지만 다음 순간에 모두 웃었다. 나도 엄마도 해설자도 피로연의 참석자도 모두 웃었다. 대폭소였다. 간주가 끝나고 2절이 시작하자 제독들은 춤을 멈추고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거기서 또 크게 웃었다.


  2절이 끝났을 때엔 모두 기대했다. 또 춤을 추리라고. 그리고 제독들은 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또 대폭소였다. 그리고 마지막 포즈도 완벽했다. 오른손을 내밀어 총을 쏘는 포즈를 취했다. 오른손 끝에는 발렌슈타인 원수가 있었다. 원수는 가슴을 억누르며 거기에 응했다. 거기서 또 대환성이 일었다.


  그 외에도 여흥은 있었지만 이게 제일이었다. 해설자도 몇 번이나 “아까전의 버츄얼 걸은 대단했지요.”라고 말했다. 피로연이 끝난 뒤엔 연극이었지만, 저건 논평하지 않겠다. 제국 측만 멋있게 쓰여서 재미없다. 확실히 도슨이라든가 포크라든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녀석들이지만, 동맹에도 양 제독, 뷰코크 제독, 우란푸 제독, 보로딘 제독 같은 명장은 있다. ……제국에 비하면 적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버츄얼 걸은 이전보다 인기가 높아졌다. 그리고 ‘나가버릴 정도로 사랑해.’도 매상이 올랐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은하제국 제독들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 그 결혼식 여흥 말이지만, 그게 대단한 인기를 끌며 매일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다.


  제독들의 브로마이드 사진도 팔리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비텐펠트 제독이고, 그 다음이 로이엔탈 제독이다. 의외로 인기가 있는 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일까. 그리고 그 이상으로 팔리고 있는 게 신랑 신부의 사진과 퇴역한 뮈켄베르거 원수의 사진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브로마이드는 페잔의 기업이 판권을 가지고 있어 이득은 그 기업에게 간다고 하지만, 거기서 일부가 제국으로 간다고 한다. 뭐라고 하던가, 그 돈은 제국의 개혁을 위해서 쓰여 진다든가. 매스컴의 일부는 구입을 멈추자고 호소하지만 모두 무시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려면 결혼식 방송 자체를 말았어야 했다고 모두 말한다.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하다고. 나도 동감이다. 이제와서 이상하다. 나도 엄마에게 비밀로 유스티나의 브로마이드를 가지고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유스티나다.


  페잔에선 제독들이 노래를 부른 영상씬을 팔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당연하겠지. 그럴게 샐러리맨들이 취해서 춤추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우리 반에도 남자들이 춤추고 있다. ……실은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매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춤추고 있다.


  엄마가 이제 자자고 한다. 벌써 10시다. 내일을 준비하고 침대에 들어가자. 하지만 그 전에 유스티나에게 인사를 해야지. 잘자, 유스티나……. 빨리 원수의 본성을 눈치 채고 헤어지라고. 그러는 편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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