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광역조사국 제6과. 안톤 페르너.
“알프레이트 벤델.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회의실로 가지 않겠나? 나도 바로 가지.”
내 부름에 “예”라고 답하고 벤델이 일어선다. 힐끗 이쪽을 봤지만 벤델은 그대로 회의실로 향했다.
그가 회의실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스바흐 준장의 시선을 느낀다. 시선을 향하자 그가 희미하게 끄덕였다. 이쪽도 주변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살짝 끄덕인다. 알프레트 벤델……. 지구교에 포섭되었을 터인 남자. 광역조사국 제6과에 보내진 이중 스파이…….
일부러 미소를 띠우며 회의실로 들어간다. 주위에선 내가 기분이 좋은 걸로 보이겠지. 회의실에 들어가자 깊숙한 자리에 벤델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라면 회의실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겠지. 우연히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고른 것인지. 가장 가까운 옆자리에 앉는다. 벤델은 이쪽을 살피는 듯한 표정이다.
“미안하군. 호출해서.”
“아뇨. 그래서 제게 무슨?”
좋은 기분, 좋은 기분. 자신에게 반복하여 되새긴다. 말을 낮추고 벤델에게 속삭인다.
“놀라지 말라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가 경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사령장관이?”
벤델이 놀라서 날 보고 있다. 목소리에는 의심하는 빛이 있다. 하기야 갑자기 에리히가 만나고 싶다고 전하면 누구나 “어째서”라고 생각하겠지.
“아아, 예의 지구에 대한 건이지만. 경에게 듣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저기, 그건. 무슨 뜻입니까? 어째서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호오, 의심쩍은 표정이군. 아무래도 에리히가 광역조사국 제6과의 진정한 최종책임자라는 건 모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히의 파일을 조사했다……. 역시 지구교의 표적은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렇게 봐야 하는가…….
“그런가. 경은 몰랐나. 광역조사국 제6과의 진정한 최종책임자가 사령장관이라는 걸.”
“아뇨. 모릅니다. 그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놀라고 있군. 음. 좋은 느낌이다.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공안사건에 관해선 우리들 광역조사국 제6과가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제국의 안전보장에 관해선 책임자를 통일하는 편이 좋다고 해서 말이야.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최종적인 책임자가 되어 있어.”
“루게 사무상서 각하도 그걸 인정하고 있다는?”
“물론이다. 일단 보고는 사무상서 각하에게도 들어가고 있지만 책임자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다.”
“…….”
신사실 발견. 그런 거겠지. 벤델의 눈이 붕 떠있다. 호기심의 눈이 아니다. 곤혹스런 눈이다.
“아, 그렇지. 이 사실은 극비다. 우리 과에도 어렴풋하게 눈치 챈 인간이 있겠지만 외부에 알려지면 위험해. 사령장관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되면 좋지 않으니까 말이야. 경도 입밖에 내지 말라고.”
“예.”
벤델이 끄덕이자 나도 응응하는 듯이 끄덕였다.
“그래서 사령장관께선 제 보고에 의문스런 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불안한 듯한 목소리군. 날 살피는 듯한 눈빛이다. 여기선 오히려 낙천적인 목소리를 내는 편이 좋겠지.
“어이어이, 착각하기 말라고. 그렇지 않아. 경의 보고는 이미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 보고가 끝났다. 지구에 관해선 문제없다는 걸로 각하께서도 납득하고 있어.”
“그럼 대체…….”
“조금 전에 다른 일 때문에 사령장관과 만났는데 말이야. 그 때 지구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사령장관이 물어보신 거다. 그러다가 경에 대한 걸 말하자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시더군.”
“…….”
고민하고 있군.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좋아 좋아. 여기서 조금 정에 호소해 볼까.
“공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사람이니 평소엔 그런 말을 좀처럼 하지 않지만……. 뭐, 사령장관은 나와 사관학교 동기생이니까 그렇겠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렇습니까.”
아직 납득하지 않고 있군. 조금만 더. 이번엔 조금 침통한 표정을 하는 편이 좋겠군.
“게다가 조금 지친 것 같더군.”
“지쳤다?”
“그래. 군대만이 아니라 변경 개발, 거기에 부정부패 적발 등등 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어. 지치기도 했겠지.”
“그렇겠군요.”
조금은 믿었나…….
“뭐, 기분전환이 된다면, 그렇게 생각해서 말이야. 경에게 있어선 생각하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사령장관을 알아두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야. 어떨까? 무리하게 강요하진 않겠지만.”
“……알겠습니다. 만나겠습니다.”
“그런가. 그럼 6월 10일이다. 나와 함께 우주함대 사령부로 가지. 비워둬.”
“10일입니까. 꽤 나중이군요…….”
“일정이 쌓여 있어서 시간을 비우기 힘든 거야. 시간은 아침 10시, 오전 전체다. 경우에 따라선 점심식사도 함께 할지도 몰라. 기대 되는군.”
“예…….”
벤델을 두고 앞서 회의실에서 나왔다. 벤델이 회의실을 나온 것은 내가 나오고 1분 30초 정도 뒤였다.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보인다. 보통이라면 제국 최대의 권력자와 만난다. 출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흥분, 혹은 불안을 보이게 되겠지만……. 헌데, 벤델. 어떻게 움직일지…….
...
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얼마 전에 메르카츠가 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고 하더군.”
“네. 원래는 제게 온 의뢰였습니다만, 그런 건 연장자가 하는 편이 경험도 풍부하고 능숙하리라 생각했기에 메르카츠 제독을 추천했습니다. 분명 3월 보름쯤에 갔을 겁니다만…….”
“과연.”
장인어른이 2번, 3번하고 끄덕이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서 장인어른과 유스티나는 커피를, 나는 코코아를 마시고 있다. 헌데, 무슨 일이 있었나?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 어제 사관학교에서 묘한 말을 들어서 말이지.”
“어제, 입니까.”
어제엔 장인어른이 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했을 것이다. 묘한 말을 들었다는 건 학생에게 질문을 받았다는 것일 테지. 하지만 묘한 말? 우주함대 사령장관까지 했던 자에게 묘한 말인가…….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장인어른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꼭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스티나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짐작 가는 데는 없는 듯하다.
“묘하다면 대체 무슨 말을 들으신 겁니까?”
“그게 젊을 적과 나이를 먹고 나서를 비교하면 전쟁에 대한 생각, 기분, 행동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과연…….”
“본래라면 너에게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강의에 나오는 건 나나 메르카츠 같은 늙은이들 뿐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면목 없습니다. 아무래도 민폐를 끼친 것 같군요.”
내가 사과하자 장인어른이 손을 흔들며
“아니, 민폐는 아니야. 신경 쓰지 마라.”
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도 그건 신경 쓰입니다. 장인어른께선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알고 싶은가?”
“제가 들을 수 있다면.”
장인어른이 커피컵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렇군, 말해볼까.”하고 중얼거렸다.
“젊을 적에는 전쟁에 대해서 진중하게 생각했지. 나이를 먹고 나선 대담해졌다. 그렇게 학생에겐 대답했다. 이상하단 표정을 짓더군. 그 이상은 질문하지 않았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반대가 아니겠습니까. 젊을 적이 대담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내 곁에서 유스티나도 끄덕이고 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젊을 적에 스스로 세웠던 작전, 자신의 지휘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고민도 많이 했다.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은지, 희생을 적게 만들 수 있지 않을지.”
“…….”
“나이를 먹고 나선 그러한 고민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건 아니군. 고민이 적어지지…….”
“익숙해 진다, 그런 걸까요.”
“그런 거겠지.”
“…….”
장인어른이 커피를 마시려고 하다가 손을 멈췄다. 뭔가 생각하고 있다.
“……희생을 치루는 데에 익숙해진다. 아니, 그렇지 않군. 둔해진다고 해야 하나. 희생을 치루는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용병가로선 성숙했다고 해야 하겠지. 그만큼 전투에 집중할 수 있고, 침착하게 지휘를 할 수 있으니까…….”
“과연. 무서운 일이군요……. 아, 실례했습니다.”
안 되겠군.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나왔다. 서둘로 사과했지만 장인어른은 화내지 않았다.
“아니, 네가 말한 대로다. 무서운 일이지. 손해가 2천척을 넘기면 10만에서 20만 명의 희생자가 나온 것이 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아아, 2천척인가’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사람으로선 어딘가 이상해진 거겠지…….”
“…….”
확실히 장인어른의 말은 이해할 수 있다. 10만척 이상의 군대가 싸우는 와중에 2천척의 손해라고 해도 그만한 아픔은 느끼지 않겠지. 손해율은 전체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10만명 이상이 죽은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인으로서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게 만든다. 이전엔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겠지. 군대를 그만 두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꽤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죄 깊은 일이다…….”
“장인어른…….”
“아버님…….”
장인어른이 날 봤다. 쓴웃음을 띄고 있다.
“현역의 사령장관인 너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을까?”
“아뇨. 바란 것은 저입니다.”
“……뭐, 너라면 무익한 희생자를 내는 일은 없겠지.”
“충분히 신경 쓰고자 생각합니다.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음.”
잠시 동안 침묵이 있었다. 불편하군. 그렇게 생각했을 때, TV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구원을 받은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번호를 확인하자 페르너에게서 온 전화였다. 예의 건이겠지. 좋은 타이밍에 연락하지 않는가. 과연 나의 친구다. 보류상태로 하고 장인어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통신실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TV전화 수신버튼을 누르자 페르너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다리게 했나?”
“아니, 그렇지 않아. 대화할 수 있나?”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살았어.”
내 말에 페르너가 흥미 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싸우기라도 했나?”
“그렇지 않아. 그건 아니지만 불편한 때도 있어.”
“호오, 흥미 깊군. 그건.”
“그보다도 이야기를 들을까? 어땠나?”
페르너가 조금 유감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나와 유스티나가 부부싸움이라도 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바움러 준장에게서 연락이 있었다. 예의 첩보원이 조금 전 지구교도와 접촉했다고 한다.”
“틀림없나?”
“틀림없어. 교단지부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접촉했다고 하더군. 꽤나 고전적이지?”
페르너가 비아냥에 가득찬 웃음을 보였다.
“별 수 없겠지. 녀석들은 오래된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으니까. 전통적인 방식을 좋아하는 거야.”
페르너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에게 너무한 말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웃고 있는 너도 공범이겠지.
“그래서 그 외에는?”
“접촉한 지구교도는 시급히 교단지부로 돌아갔다. 꽤나 서두르는 모습이더군.”
“…….”
“그 뒤 교단지부장인 고드윈 대주교도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유죄, 라는 건가…….”
“그렇겠지.”
페르너가 끄덕였다.
“바움러 준장과 6월 9일의 준비를 진행해주길 바래.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고. 안톤.”
“아아, 충분히 주의할 거야. 기다리기 힘들군. 그 날이.”
동감이다. 이걸로 페잔, 지구, 하이네센, 모든 곳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지구교의 꼬리를 잡아 해가 닿는 곳으로 끌어내게 되겠지.
...
제국력 489년 5월 31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다행이란 표정을 짓고 있더군. 아무래도 불편했던 것 같아.”
“아버님.”
아버님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군대의 일은 알지 못한다. 전쟁터도 전쟁도……. 하지만 승리를 얻기 위해선 극히 힘든 결단이나 괴로움이 있으리라는 건 알 수 있다. 아버님이 말한 것은 무겁고 괴로운 내용이었다. 남편에게 있어서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걱정할 필요 없어. 옛날부터 저것을 보고 있으나 장병에게 쓸데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가 아니니까. 출세욕이나 야심과는 인연이 없는 자다. 걱정할 필요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아버님은 같은 말을 두 번 썼다. 안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심이겠지.
“아버님은 괴로우신 건가요.”
“응?”
“아까 전의 말을 하실 때 아버님이 괴로워 보이셨으니까…….”
내 말에 아버님은 잠시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괴로운 것이 아니다. 무거운 거지.”
“무겁다?”
“자신이 죽게 한 사람들, 죽인 사람들. 그 죽음이 쓸데없지 않았다는 증거를 세우지 않으면 안 돼. 그게 무거운 것이다.”
아버님이 날 보고 있다. 그리고 말을 계속한다.
“그 무게를 누구보다도 느끼고 있는 것의 너의 남편이겠지. 그러니 지금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어. 아무리 괴롭다 하더라도 던져버리는 일 없이 걷고 있지. 다들 저것을 칭송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게야. 저것에게 있어선 의무이며 속죄이며 서약이기도 하니…….”
“의무이며 속죄이며 서약……. 아버님, 저 사람은 언제 거기에서 해방될까요?”
“……그걸 정할 수 있는 건, 저 자 뿐이다.”
“…….”
아버님은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질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편은 평생 그걸 짊어지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나는 계속 그 모습을 보고 살아가야 할 것이 틀림없다. 그게 얼마나 괴롭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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