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9년 3월 15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하아, 지쳤다……. 침대에 들어가 시간을 보니 3월 15일도 끝나려하고 있다. 오늘은 말도 안 되는 하루였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옆에 누워있던 유스티나가 말을 걸었다.


  “괜찮나요? 많이 지치셨죠?”

  안되겠군. 침대에 들어가서 한숨을 내쉬다니, 그녀에게 실례겠지. 희희낙락하지 않더라도 극히 태연하게 침대에 들어가야. 난 웃음을 띠며 유스티나에게 답했다.


  “괜찮아. 너야말로 지쳤지?”

  “전 괜찮아요. 하지만 당신은 요즘 최근 계속 늦게까지 일하고 계셨잖아요? 피로가 쌓이신게 아닌가 생각해서…….”

  유스티나가 날 보고 있다.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가슴이 아프다……. 지금은 거짓말이더라도 빙그레.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정말 내일 괜찮겠어요? 바쁘시다면 중지해도…….”

  “그럴 필요는 없어. 내일은 예정대로 프로이덴 산장으로 가자. 저쪽은 추울테니까 그것만은 주의해야…….”


  유스티나는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봤지만 납득했겠지, “예.”라고 답했다. 그녀도 신혼여행은 가고 싶을 것이다. 뭐, 멀리 갈 수도 없으니까. 프로이덴의 산장으로 가는 걸로 참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프로이덴의 산악지대는 오딘의 중심시가지에서 봐서 서쪽에 있다. 승용차로 약 6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그 주변에 있는 산장 대부분이 귀족의 소유물이었다. 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건 작년 내란에서 귀족들 대부분이 망해서 소유자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안네로제가 립슈타트 전역 후에 살았던 것이 이 프로이덴에 있는 산장이었다.


  지금 현재, 그 소유주가 없어진 산장은 정부가 관리하고 있지만, 이게 또 문제가 되고 있다. 관리비가 말도 안 되게 나오는 것이다. 방치한다는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영문도 모를 녀석들에게 악용 될 수밖에 없다. 오딘의 중심시가지에서 6시간 정도라니, 지구교에게 있어서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바라는 물건일 거다.


  그런고로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산장을 팔려고 기를 쓰고 있다. 다소 시가보다 싸게 팔아도 원래 그냥 얻은 거고 관리비가 없어지는 걸 생각하면 크게 버는 셈이다. 열심히 팔아치우려고 하고 있다. 담당하고 있는 건 재무성이지만, 나한테도 겔라흐 자작이 직접 판매를 요청하러 왔다. 사지 않을 순 없으니까 말이지. 이번 유스티나와 신혼여행으로 쓰는 게 그거다.


  일주일 동안 프로이덴에서 유스티나와 지낸다. 프로이덴은 오딘보다 두 달은 봄이 늦다. 이 시기라면 1월 중슨의 기후니까 춥겠지. 대부분을 산장 안에서 지내게 되겠지만. 뭐, 느긋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다. 날씨가 좋은 날엔 밖으로 나가볼까. 유스티나도 기뻐하겠지.


  요 보름은 정말 바빴다. 신혼여행으로 내일부터 일주일동안 자리에 없을 거라고 하니까 괜시리 더 결제문서가 이쪽으로 돌아왔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있으니까 문제없을 텐데, 아무래도 메르카츠 자신이 내가 있는 사이에 결제를 받아두라고 주변에 말한 것 같다. 데스크워크가 싫은 사람이란 곤란해…….


  하지만 정말로 바빴던 이유는 변경성역 개발계획 작성이었다. 변경에서 올라온 요청서를 기본으로 뭐부터 손봐야 할지 정했지만, 뭐, 이게 굉장히 심했다. 정하기까지 만만찮은 시간이 걸렸다. 완성이 된 게 3일 전이었다.


  덕분에 결혼식에 대한 건 전부 유스티나에게 던져뒀다. 다시 말해 노인장들에게 맡겼다는 거다.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이젠 어떻게든 되라, 그런 기분이었다.


  변경성역 개발계획의 책정, 개발 실시와 관리는 신영토 점령통치 연구실이 행하게 되었다. 엘스하이머와 오스마이어가 중심이 되어 공부, 재무, 수송, 민생, 자치에서 관료가 와서 돕게 되었지만, 관료들은 이 녀석도 저 녀석도 돈이 드는 계획을 싫어한다.


  정부는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 했던 말은 뭐였냐고 말하고 싶어진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엘스하이머와 오스마이어는 리히터들에게 항의하자고 했지만 그만두게 했다. 리히터들도 자신들의 일로 바쁘다. 이쪽의 일 따위 머리에 없겠지. 사람을 보냈으니까 끝. 나머지는 그쪽에서 잘 해줘라. 그런 거겠지.


  난 우주항 확장과 발전소 건설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했다. 지금 변경에 있는 우주항은 모두 소규모에 작다. 앞으로 개발이 진행되면 물자 수송, 교역선 왕래로 펑크가 나버릴 거다. 그 전에 확장한다. 확장하면 모두가 정부는 진심으로 변경을 개발하려하고 있다고 인식하겠지. 페잔 상인들의 왕래도 늘어날 테고, 자본투입도 늘어날 거다.


  발전소도 마찬가지다. 라이프라인을 충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개발 따위 할 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발전소를 건설한다, 그것만으로 그 행성에 관심을 가진 기업이 나타나겠지. 덧붙여 말하자면 우주항 확장과 발전소 건설, 이 두 가지로 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다.


  변경에 가면 일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도 모인다. 그리고 돈도 움직인다. 다시 말해 경제가 활성화하는 거다. 당연히 세수도 늘어난다. 그렇게 말하며 설득했지만 녀석들은 새파랗게 질려 반대했다. 돈이 들어서 별 수 없다고 하는 거다. 귀족들이 사라졌으니까 그런 만큼 세수가 늘어난 것이다. 재정 적자도 문제없다고 재무성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관료들은 변함없이 변경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이다. 현실문제로서 변경을 개발하지 않으면 어떻게도 할 수 없다. 페잔을 점령하고 동맹을 보호국으로 한다. 처음엔 삐걱거릴지 몰라도 10년만 지나면 안정되겠지.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돈 먹는 벌레인 군을 비대화해둘 수도 없다. 군을 축소하고 국가를 정상적인 형태로 되돌려야만 한다. 다시 말해 병사를 제대하게 하여 민간으로 돌린다는 거지만, 당연히 그들을 받아낼 접시가 필요하다. 그게 변경이다.


  변경을 개발하여 경제를 활성화한다. 그에 의해 일도 늘어난다. 제대한 병사에게서 희망자를 모집해 변경으로 이주를 권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 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만한 사회환경, 경제환경을 만들어 둬야만 하는데, 그런 부분을 관료들은 이해하고 있지 않다. 전쟁이 끝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150년이나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다. 별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


  결혼식 전에 개발계획서를 책정하는 것만이라도 정리해두고 싶은데 전혀 진전이 없다. 그런 데다가 변경에선 어떻게 되고 있냐고 질문이 들어온다. 클라인게르트 자작은 결혼식에선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걸어오기까지. 지긋지긋하다.


  결국 할 마음 없는 녀석들을 의지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해 관료들은 전부 돌려보냈다. 우주항 확장과 발전소 건설은 병참통괄부에 맡기면 된다. 중요한 건 일단 그걸 실시하는 일이다. 제국이 진심으로 변경을 개발하려한다는 걸 모두가 인식하겠지.


  나머진 페잔을 이용하는 걸 생각해보자. 녀석들의 자본을 제국으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거다. 페이워드가 동맹을 편드는 태세를 취하고 있지만 페잔의 경제계가 제국과 대결을 싫어하면 그것만으로 페이워드와 동맹을 곤란하게 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 가면 관료들도 협력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지. 사태는 내가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움직였다. 난 에렌베르크에게 정부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병참통괄부를 쓰겠다고 보고했다. 거긴 군무성의 관할이니까 일단 양해를 구한 거다. 노인장은 눈썹을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제없음.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리히터, 브라케, 질버베르히, 글룩이 우주함대사령부 사령장관실로 날아왔다. 모두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갑자기 “죄송했습니다.”라고 리히터가 말하고 모두 고개를 숙였다. 나도 깜짝 놀랐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발레리는 블라스터를 뽑기 위해 자세를 잡았을 정도다.


  녀석들, 고개를 올리더니 다시 한 번 “죄송했습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리고 내게 다시 한 번 협력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주항 확장은 수송성에, 발전소 건설은 공부성에 맡겼으면 한다고 글룩과 질버베르히가 울 것 같은 눈으로 간원하는 거다.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래도 에렌베르크가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이야기가 다르다고 불만을 토로했던 것 같다. 놀란 리히텐라데 후작은 리히터들을 호출하여 혼쭐을 냈다. 혼이 난 리히터들은 바보 같은 부하들을 전원 잘라버리고 내게로 날아왔다는 거다. 아무래도 저 부하들은 리히터들에게 잘 협력하고 있다고 보고한 것 같다. 참 얕보이고 있었구만. 나도 그렇고 리히터들도 그렇고.


  뭐, 협력해 주겠다고 한다면 감사하다. 하지만 전부 맡겨버리면 또 우쭐하게 만들어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절반은 녀석들에게 맡기고 나머지 절반은 병참통괄부에게 맡기기로 했다. 리히터들은 불만스러운 것 같았지만, 내가 관료들은 신용할 수 없다. 만일 일처리에 허술한 부분이 있으면 용서 없이 일을 뺏어버리겠다고 말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 이러저러해서 개발계획서 책정, 이라는 임시적인 물건이 만들어졌다. 일단 저쪽에서 10년간 우주항 확장과 발전소 건설을 행한다. 그리고 기술자도 육성한다. 지금 이대론 절대적으로 기술자가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다.


  우주항엔 관제관, 정비사, 소방사. 발전소에는 발전생산요원, 보안요원 등등이 필요하다. 그들을 육성해야만 한다. 그리고 배치다. 배치는 베테랑도 포함하여 제국 전체에서 재편성한다. 변경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우대를 하는 것도 생각해둬야만…….


  행성 내의 개발도 동시 진행해야만 한다. 인프라 정비, 교육, 의료, 순서대로 진행한다. 이쪽도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의사, 교육자, 인프라의 보수, 수리 요원……. 통상 도로, 상하수도 정비……. 이런이런.


  5년째가 되면 한 번 계획을 다시 살핀다. 아마도 그 시점에서 새로운 우주항이 필요하다든가, 증설이 필요한다든가 요청이 들어오겠지. 관료들의 말대로, 개발을 일단 진행하면 한도 없이 돈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 제국 안에서 버려진 토지 따위 존재해선 안 되는 거다.


  전쟁이 사라지면 인구도 늘어난다. 그 늘어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한다. 적어도 그 점에서 오딘과 변경의 격차가 있는 건 이상하다. 세금을 거두는 이상, 최저한의 보장은 정부가 해야만 하겠지. 세금을 걷는 것만을 열심히 해서 어떻게 하나.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이 높아질 뿐이다.


  변경개발 계획이 완성됐기 때문이겠지. 결혼식에 출석한 클라인게르트 자작, 바르트바펠 남작, 뮌처 남작, 뤼데릭 백작 모두 싱글벙글이었다.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해도 오한이 든다. 저 결혼식에서 우거지상의 아저씨들 얼굴이라니 보고 싶지 않다.


  무참한 결혼식이었다. 모두 기뻐하고 있었지만 난 조금도 기쁘지 않다. 두 번 다시 저런 경험을 하는 건 사양이다. 절대로 유스티나와 떨어지지 않을 테고, 떨어져도 재혼하지 않는다. 절대로다. 유스티나를 소중히 해야지.


  첫 번째 순서부더 납득이 가질 않았다. 식 자체는 9시부터. 피로연은 10시 반부터라는 거였지만, 나와 유스티나의 준비가 있으니까 7시에는 신무우궁에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7시에 신무우궁으로 가자 곧바로 빈방으로 끌려갔다. 거기에 기다리고 있던 건 리히텐라데 후작이었다. 악당 면상으로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다. 난 군복으로 식을 올릴 거니까 옷을 갈아입을 필요 없다고 했지만, 노인장은 히쭉히쭉 웃었다. 그때는 정말 오싹했다. 오늘은 결혼식이 아니라 내 제삿날인가 했을 정도다.


  “군복으로 상관없지만 말이지. 망토와 띠는 이걸로 해라.”

  그렇게 말하고 꺼낸 건 코발트블루의 망토와 하얀 띠였다. 내가 그런 건 싫다고 하니까, 꽤나 싫은 얼굴로 내 망토를 검지로 찔렀다.

  “결혼식일세. 검은 망토 따위 논외. 그 거무튀튀한 띠도다. 전 우주에 방송되는 거니까 조금은 꾸미거라.”


  거무튀튀라고 할 것까진 없잖아. 거무튀튀는. 차분하다고 해달라고. 뭐, 확실히 수수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맘에 들어하는 거라고. 게다가 하얀색 띠? 덧붙여 붉은 색으로 선이 둘러져 있다……. 라인하르트라도 이런 건 걸치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납득했다고 봤겠지. 늙은이는 이번엔 구두를 꺼냈다. 구두는 문제없다. 오늘 신고 있는 구두는 제대로 닦아놓았다. 하지만 노인장이 꺼낸 구두는 단순한 구두가 아니었다. 시크릿슈즈다. 그냥 보면 단순한 구두로 보이지만, 힐이 5센티 가까이 있다. 내가 아연해하고 있자 노인장이 히쭉히쭉하는 웃음을 더욱 크게 했다. 너, 정말로 귀족인가? 아무리 봐도 시대극에 나오는 악덕 할아범. 대관 같은 사람에게 순회방문하는 보부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부는 하이힐을 신고 티아라를 쓴다. 그렇게 되면 경보다도 키가 크게 보이겠지. 그래선 조금 폼이 나지 않을게야. 거기서 말일세, 바로 이거, 지, 꽤나 좋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고 노인장은 “받아라.”라며 내게 구두를 떠밀었다. ……미안하구만. 어차피 난 키가 작다고. 유스티나는 하이힐을 신고 걷기 힘들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는 식에서 하이힐을 신는 걸 싫어했을 것이다. 그걸 무리하게 신긴 거겠지. 내게 시크릿슈즈를 신기고 웃기 위해서다. 이 빌어먹을 할아범. 너 같은 녀석이 있으니까 이 세상에 싸움이 사라지지 않는 거다. 지옥에 떨어져라. 사탄의 동생 같으니.


  식이 시작되고 나서도 처참했다. 유스티나는 힐 때문에 넘어질 뻔하고, 내가 그녀를 잡아주는 게 조금만 더 늦었으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곁에서 도와주는 여관이 “상냥한 서방님이라서 다행이네요.”라고 말했지만, 당연하지. 내가 잡아줬으니까,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미담으로 끝났지만, 이대로 넘어지기라도 해서 엉당방아라도 찧었으면 은하의 웃음거리가 됐을 거다. 위험한 순간이었어.


  뮈켄베르거는 새신부의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었지만, 꽤나 몸짓이 딱딱했다. 평소의 위엄 있는 뮈켄베르거 따위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의붓딸이라도 딸은 귀여운 것 같다. 혹시 몸짓이 딱딱한 건 주례가 황제라서 그런가? 뭐, 이해할 순 없지만 부탁이니까 날 노려보는 건 그만두라고. 난 유스티나를 꼬셨던 기억이 없다.


  그렇다 해도 프리드리히 4세도 곤란한 일이다. 하필이면 주례라니. 처음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묘하게 주례가 기분이 좋다고 생각해 잘 봤더니 황제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머리가 아프다고. 노인장들. 정무는 내팽겨 쳐놓고 흉계에만 열중한 것이 틀림없다. 조금은 일해라! 날 본받으라고!


  뭐, 그건 그렇고 프리드리히 4세의 주례는 꽤나 훌륭했다. “그대 건강할 때도 병들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부유할 때도 가난할 때도, 이를 사랑하며 이를 경애하며 이를 위로하며 이를 도우며,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진심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라면서 엄숙하게 묻는다.


  이런 건 역시 황제로서의 경험 덕분이겠지. 나라면 부끄러워서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반지를 끼우고 키스를 하자 프리드리히 4세는 만족스럽게 끄덕이고 “여기에 두 사람은 경사롭게 부부가 되었다. 짐, 은하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이를 인정하며, 이에 축복하노라.”라고 선언했다.


  선언이 끝나고 무슨 영문인지 구호가 터져나왔다.

  “지크 라이히!”

  “지크 카이저 프리드리히!”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되나? 내 결혼식이겠지……. 머리가 아파온다……. 황제는 만족하고 있고 가장 앞에서 울면서 소리치고 있는 건 뮈켄베르거였다. 영문을 알 수 없다…….


  그 뒤에 찬송가 312번을 불렀지만, 이게 또 대단하다. 반주는 메크링거, 성가대엔 무슨 영문인지 비텐펠트가 있다. 저 폐활량으로 낭랑하게 찬송가 312번을 부르고 있다. 녀석, 직업을 실수했군. 오페라 가수라도 됐으면 제국 제일의 가수가 됐겠지. 하지만 메크링거의 반주에 비텐펠트가 노래를? 원작에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식이 끝난 뒤엔 피로연이었지만, 이것도 또 어처구니 없는 피로연이었다. 주빈이 하인츠 겔러였다. 평민인 겔러 부부가 황제 프리드리히 4세,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다…….


  일부러 이렇게 한 거군. 평민과 황제가 같은 테이블에서 환담을 나눈다. 그걸 전 은하에게 보내는 것으로 제국이 변했다는 것, 프리드리히 4세의 소탈함을 어필하려는 거겠지. 꽤나 훌륭한 수다. 하지만 말이지. 덕분에 겔러 부부는완전 긴장중이다. 불쌍하게도…….


  사회는 궁내상서 베른하임 남작. 건배 선창은 프리드리히 4세였다. 베른하임 남작은 긴장해서 몇 번이나 혀를 깨물고, 리히텐라데 후작은 그럴 때마다 야유하고 황제는 웃어버리는 꼴이었다. 이 꼴을 보면 아무리 봐도 흔해빠진 샐러리맨들의 모임으로 밖에 보이질 않겠지. 일부러 방송할 필요가 있는가 몇 번이나 의문스럽게 여겼다.


  여흥도 대단했다. 함대사령관 전원이 노래를 부른다든가, 처음엔 무슨 농담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이게 또 메크링거의 반주로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메르카츠 제독도다. 아이제나흐도 있었지만, 아마 저건 립싱크겠지. 나중에 만일을 위해서 정말로 립싱크였는지 어떤지 곁에 있는 로이엔탈에게 물어봐야지…….


  하지만 말이지. 노래가 페잔의 아이돌 그룹의 노래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것도 여자 아이돌 그룹이라고? 배꼽 내놓고 허리를 흔들며 춤추는 아가씨들의 노래다. 그런 걸 메르카츠나 슈톡하우젠에게 부르게 하지 말라고. 노인장들이 진지한 얼굴로 부르고 있지만 내심 머리를 부여잡고 있겠지……. 흑진주 홀은 폭소였다…….


  나와 유스티나는 계속 한단 높은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것도 또 고통이었다. 쉴 새 없이 축하의 말을 하러 오는 녀석들이 있는 거다. 녀석들 덕분에 편히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녀석들은 사진을 찍고 술을 따르려고 한다. 난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전부 진저에일로 응대했다.


  유스티나는 두 모금, 세 모금 정도는 샴페인을 마셨지만 그 뒤에는 그녀도 진저에일이었다. 그보다도 내가 마시게 했다. 공복에 샴페인이라니 마실 게 아니다. 주정뱅이 새신부라니 술자리에서도 웃을 수 없다. 그러다가 실패한 커플은 얼마든지 있다.


  피로연이 끝난 건 2시. 자 들어갈까 생각했더니 리히텐라데 후작이 아직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3시부터 연극 관람이라는 거다. 뭐어? 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피로연 다음에 연극 관람을 하는 거냐. 하지만 노인장은 굳건했다. 뭐라든가, 연극도 결혼식의 일부로 방송된다고 한다. 변경개발 비용차출을 위해서 참으라든가 말한다. 더럽다고. 늙은이들. 어떻게 말해야 불만을 말할 수 없을지 알고 있으니까.


  제목은 ‘샨타우’. 들은 적 없고 묘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더니 신작이라고 한다. 내용은 이제르론 요새 함락 후에서 샨타우 성역 회전까지를 장대하게 연출한 (내 말이 아니다. 노인장의 말이다) 연극이라고 한다. 제국 가극단이 샨타우 성역 회전 후부터 구상을 가다듬여 1년 걸려 각본을 만들었다. 그걸 이 결혼식에서 첫 공연한다고 한다.


  좋은 거냐? 그거. 뭐라고 해야할까. 저 싸움에선 페잔과 동맹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그걸 연극으로 만들어 전 우주에 방송한다? 동맹과 페잔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닌데도 늙은이들은 태연했다. 폭동이 일어나는 편이 연극의 평가가 올라가겠지. 라든가 말하고 있다.


  제정신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황제가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결국 휴식 1시간, 저녁 식사 시간이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6시간에 연극 관람을 끝냈다. 끝난 건 9시가 지나고 나서였다. 이제야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더니 인터뷰라든가 뭐라든가로 1시간 구속당했다. 끝났을 땐 완전히 늘어졌다.


  연극 내용에 대해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 6시간 동안만은 죽었으면 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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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3월 13일. 오딘 페잔고등변무관저. 니콜라스 볼텍.


  “과연. 그럼 그들은 페잔을 동맹령에 병합하려 생각했다는 거군요.”

  내 말에 페이워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말을 꾸미지 않고 말하자면 그렇게 되네. 뭐, 그들도 제국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싶지 않겠지. 점령이라는 형태를 취하며 지배력을 강화한다. 그런 거겠지. 속국, 아니 식민지 취급일까.”


  식민지 취급인가……. 뭐 그건 지금도 다를바 없다. 페잔은 점령 하에 있는 거다. 진짜 의미로 독립이 아니다. 아니, 페잔이 독립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명목상은 자치령인 것이다. 그렇다면 명실상부했다는 건가……. 비슷한 걸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곁에 서 있는 루퍼트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헌데, 화면 너머의 페이워드는 알고 있을지 어떨지…….


  뭐, 설령 알았다고 해도 페이워드는 표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겠지. 페이워드는 루퍼트가 루빈스키의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속임수나 마찬가지로 제국으로 데려왔는데 거기에 대해서 페이워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루퍼트에 대해서도 내게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무슨 거래 재료로 쓰겠지. 그 부분은 평가할 수 있다.


  자유행성동맹에서 쿠데타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미발로 끝났다고는 해도 규모는 크다. 현직 국방위원장, 함대사령관 3명을 포함한 고급군인, 거기에 경제계에서도 저명한 경제인 중에도 체포자가 다수 나왔다.


  페잔을 동맹령으로 병합하여 군사적으론 이제르론 회랑, 페잔 회랑을 동맹의 세력 하에 두는 것으로 제국을 막는다. 그리고 페잔의 경제력을 이용하여 국력을 회복한다. 그들이 노린 건 대충 이런 거겠지. 전쟁을 좋아하는 주전파와 욕심에 입에서 손이 나오는 경제인이 손을 잡은 것이다.


  페잔에서 쿠데타 세력을 체포한 건 페이워드였다. 페이워드는 이 건으로 페잔의 입장이 꽤나 개선되리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뭐, 누가 다음 고등변무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임자를 체포한 인간을 가볍게 다룰 순 없겠지. 페이워드의 기대는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페잔에서 사건이 일어난 건 2월 20일. 하지만 페이워드가 내게 알린 건 3일 뒤였다. 그때쯤엔 이쪽도 대충 그 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페잔에는 내게 호의를 가진 인간도 있다. 하긴 그 정도는 페이워드도 알고 있겠지.


  뒤처리가 바빴기 때문에 연락이 늦었다곤 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트류니히트 의장에게서 사전에 연락이 있었겠지. 알릴 생각이 있었으면 그 시점에서 알렸을 것이다.


  다시 말해 페이워드는 이쪽을 신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3일 후라곤 하지만 이쪽에 알려온 걸 보면 이쪽에 이용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3일 후라는 건 그런 부분의 미묘함을 보이는 숫자다. 그리고 올리베이라 체포 후엔 시시때때로 연락을 해온다. 이쪽과 거리를 좁히려는 거겠지. 혹은 지금까지 올리베이라에게 나와의 접촉을 금지당하고 있었다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동맹의 새로운 변무관은 정해졌습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난항하고 있는 것 같아. 이걸로 세 명 째니까 말이야. 트류니히트 의장도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


  페이워드의 얼굴이 그늘졌다. 이번 쿠데타 미수사건으로 협력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동맹에게, 아니 트류니히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지만.


  동맹의 약점은 군사력 저하만이 아니다.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페잔 주재 고등변무관을 봐도 알 수 있다. 제국은 렘샤이트 백작이 계속 그 자리에 있지만 동맹은 헨슬로우, 올리베이라, 모두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정치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제국은 개혁파라고 불리는 젊은 정치가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리히텐라데 후작, 겔라흐 자작들과 함께 제국을 바꾸고 있다. 옛 세력과 새로운 세력의 융합. 극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하면 군의 행동이 빠른 것 같더군. 제 9함대의 사령관이 쿠브르슬리 제독으로 정해졌다.”

  “쿠브르슬리 제독입니까. 과연.”

  전직 제 1함대사령관. 언젠가 통합작전본부장이 되리라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나쁜 인사는 아니겠지.


  “그쪽 상황은 어떤가? 볼텍 변무관.”

  “내일 모레엔 발렌슈타인 원수의 결혼식이 있습니다. 그 준비로 난리입니다. 거국적인 큰 행사니까요.”

  내 말에 페이워드가 웃었다.


  “개인의 결혼을 국가적 행사로 하는가……. 전제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군. 실수로라도 민주공화제국가에선 무리다. 하지만 나쁘진 않군.”

  “그렇지요. 나쁘진 않습니다. 황제, 군, 관료, 귀족, 그리고 평민……. 모두가 이 결혼식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뻐하지 않는 건 한 명뿐입니다.”

  페이워드가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한 사람은 발렌슈타인 원수겠지.”

  “알겠습니까?”

  “물론이지. 결혼식이라는 건 신부와 주변이 기뻐하는 일이다.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신랑의 흥은 깨지기 마련이지. 그렇지 않은가?”

  짐작 가는 데가 있다. 저도 모르게 쓴웃음 지었다. 페이워드도 웃고 있다.


  “케셀링크 보좌관에겐 아직 어려울까.”

  “아뇨. 큰 참고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자네도 그 몸으로 경험하게 될 걸세. 각오해 두게나.”

  “예에.”


  루퍼트의 뺨이 긴장하고 있다. 그는 놀림 받는 거에 익숙하지 않다. 어딘가 여유가 없다. 재미가 없는 것이다. 재능은 어쨌든 아비에게 그런 부분은 미치지 않겠지.


  “뭐, 즐거운 이야기는 이쯤으로 해두지.”

  페이워드가 웃음을 거뒀다. 어디보자, 아무래도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페이워드가 힐끔 루퍼트에게 시선을 보냈다.


  “전 자리를 피하는 편이 좋겠습니까?”

  “……아니, 언젠가 알게 될 일이다. 피할 필요는 없겠지.”

  루퍼트의 말에 대답하는 데에 조금 사이가 있었다. 다소 망설임이 있었다는 건가……. 루퍼트가 날 본다. 좋겠냐고 확인하는 거겠지.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저쪽이 좋다고 하는 거다.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동맹과 제국 사이에서 화평을 실현하고 싶네.”

  “화평, 말입니까…….”

  화면에서 페이워드가 끄덕이고 있다. 화평인가……. 루퍼트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건 동맹정부의 의뢰, 그런 겁니까? 아니면 자치령주 각하의 생각이라는 겁니까?”

  “양쪽 다다. 내가 동맹정부에 제안했고, 트류니히트 의장이 찬성했다. 말하자면 난 동맹정부의 대리인, 그런 거겠군.”


  페이워드가 웃음 섞인 말투로 내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바로 표정을 고쳤다.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다.

  “페잔의 자주, 독립을 회복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네. 그러기 위해선 제국과 동맹의 화평이 필요하다.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고 페잔의 중립을 새로이 보증하게 만든다.”

  “…….”


  괜한 건 말할 수 없다. 제국은 화평 따위 바라고 있지 않다. 페이워드에게 언질을 받을 듯한 걸 말하면 안 된다……. 이쪽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었는지, 페이워드는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페잔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양국의 화평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


  “지금까지의 페잔 정책은 제국과 동맹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었지. 확실히 그건 잘 되었네. 페잔만이 이득을 얻었지. 하지만 그 때문에 페잔은 제국과 동맹, 양국에서 불신을 샀네.”

  “…….”


  페이워드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한탄스럽겠지만 그게 페잔의 국가방침이었다. 그 이외에 양국의 눈을 페잔에서 돌리고 중립을 유지하는 방법은 없다고 역대 자치령주는 생각했던 거겠지.


  “페잔은 교역국가다. 절대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한다.”

  절대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한다라……. 이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알겠다. 교역국가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항상 타자를 필요로한다.


  “그 절대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하는 페잔이 타자인 동맹, 제국에게서 불신을 샀다. 그게 지금의 페잔으로 연결되고 있어.”

  “…….”


  말 그대로다. 페잔의 성립에서 100년이 지났다. 지금 현재, 제국에서 페잔의 지금 상태를 동정하는 사람은 없다. 요 100년간, 제국이 어떤 눈으로 페잔을 봤는가.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꼴좋다. 그런 거겠지.


  “앞으로의 페잔은 자주, 독립만으론 안 된다. 공존이라는 의식이 필요해. 그게 없으면 혼자만의 번영만을 탐하게 되겠지. 이번처럼 소외될 뿐이야.”

  “……그래서 화평입니까.”

  내 말에 페이워드가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이 이상 전쟁이 계속되면 제국과 동맹도 사회기반이 무너질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국가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지겠지. 다시 말해 페잔의 중립을 보장하는 국가가 없어지는 거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볼텍 변무관도 알겠지.”

  “…….”


  페이워드가 이쪽을 엿보듯이 보고 있다. 모르는 것도 아니다. 페잔에게 있어서 제국, 동맹의 붕괴는 악몽이다. 국가가 붕괴하면 몇 개의 지방정권으로 분열하겠지. 그들이 페잔의 중립을 보장하리라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군사력이 없는 페잔은 착취의 대상이 될 뿐이겠지. 그래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다. 최악의 경우엔 점령될 것이 틀림없다. 특히 동맹에게 그 위험성이 있겠지. 제국은 개혁을 행하고 있어 지금 당장 붕괴할 일은 없다. 웬만한 실패를 하지 않는 한은…….


  “제국은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지했다. 그리고 국내 정치체제를 드라마틱하게 바꾸고 있어. 제국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는 거다. 동맹에서 보자면 제국을 적대시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거지. 지금이라면 화평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확인한다. 아니, 말 한마디 한마디 씹는 것 같은 어조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납득시키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화평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제국은 동맹의 존속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페잔의 존속도 그렇습니다.”

  “알고 있네. 이쪽에도 제국의 망명자가 있으니까.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제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전쟁이 일어나면 제국은 두 회랑에서 일제히 침공하려 하겠지. 당연하지만 동맹은 그걸 막으려고 할 것이야. 동맹의 전력은 6개 함대. 이제르론에 2개 함대를 두고, 페잔에 4개 함대. 그런 거겠지.”

  “확실히 그렇겠죠.”


  “제국이 우위에 있긴 하네. 하지만 이제르론 요새가 간단히 떨어질 리가 없고, 페잔 회랑도 입구에서 싸우면 병력이 열세더라도 커버할 수 있어. 제국에게 있어서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국내의 개혁을 진행하는 지금, 이 이상 희생을 내는 건 하책이라고 생각하네. 손해가 커지면 국민이 불만을 품겠지…….”

  “그래서 화평을……, 입니까.”

  페이워드가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괜찮겠습니까?”

  페이워드가 사라진 화면을 보고 있으니 루퍼트가 말을 걸었다. 말은 기특하지만 그 눈에는 어딘가 재밌어하는 색이 있다.


  “말하는 것뿐이야. 화평을 맡은 건 아니다. 게다가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닌가?”

  “과연……, 하지만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말로는 하지 않지만, 발렌슈타인이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를 화내게 하는 건 아닐까하고 묻고 있다. 이쪽을 걱정하는 건 아닐테지. 재밌어 하는 거다.


  “코로 웃겠지.”

  “그건.”

  “내게도 코웃음거리다.”

  루퍼트가 아연해하고, 그리고 쓴웃음 지었다. “그건 조금…….”이라든가 말하고 있다. 나도 웃었다. 소리를 높여.


  저 자가 화평 따윌 받아드릴 리가 없다. 우주를 통일하여 페잔으로 천도한다. 신은하제국의 창립. 그 꿈을 위해서 문벌귀족들을 쳐부쉈다. 로엔그람 백작도 잘라 버렸다……. 그 사실의 무게를 동맹은, 페이워드는 이해하고 있지 않다. 아니면 이해하고 있는 건가. 이해하고 있으면서 발버둥 치는 건가…….


  “5년은 늦었지. 화평을 맺으려면 최소한 5년 전에는 행해야했다.”

  내 말에 루퍼트가 침묵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루빈스키가 자치령주가 된 게 제국력 482년, 5년 전이라면 루빈스키가 자치령주였다. 책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5년 전이라면 발렌슈타인은 아직 군 내부에 큰 영향력을 가지지 않았다. 거기서 화평을 맺어뒀으면 그는 극히 평범하고 유능한 사관으로 끝났겠지.

  “5년 전이라면 화평을 맺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려웠겠지.”


  내 대답에 루퍼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조금 생각에 잠기는 듯한 흉내를 내면서 질문했다. 눈을 이쪽을 시험하는 듯이 빛내면서.

  “불가능이 아니라?”


  “대등한 입장의 화평이란 건 불가능하겠지. 제국이 인정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어. 가능성이 있다면 복종이라는 형태의 화평이다.”

  “복종입니까…….”

  루퍼트의 목소리에는 의심쩍은 울림이 있다. 납득은 하고 있지 않다.


  “제국을 인정하고,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형태의 화평이지. 전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반란을 멈춘다. 그거라면 가능성은 있었겠지.”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동맹은 자치를 얻는다. 페잔과 마찬가지다. 형태는 자치령이라도 속내는 독립국이라고 해도 좋다.


  “동맹을 굴복할 수 있는 전망은 없었다. 그리고 긴 전쟁으로 제국은 피폐했지. 군의 힘이 늘어나고, 귀족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정부의 통치력이 약해져서 리히텐라데 후작은 염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때, 동맹이 복종을 요청했다면……. 형식적인 것이라곤 하지만 제국은 은하를 통일했다는 게 된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제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화평을 받아들었을 가능성은 아주 적을지도 몰라도 있었겠지.


  “하지만 동맹이 그걸 받아들었겠습니까?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보좌관의 말대로 일단 무리겠지. 최고평의회의장이 세 사람 정도 죽을 각오가 필요하겠군. 그래도 맺을 수 있을지 어떨지…….”

  “세 사람입니까…….”

  “다섯 명일까?”


  아연해하는 루퍼트의 표정이 재밌었다. 과연, 루빈스키가 날 상대로 말하던 기분이 이런 건가. 저걸로 꽤나 단련됐다. 지금 내가 루퍼트를 단련하고 있는 건 어떤 의미로 은혜를 갚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나왔다.


  “진심으로 화평을 맺으려면 100년은 늦었겠지.”

  “100년, 입니까…….”

  “그래. 100년 전이라면 화평을 맺는 건 더욱 간단했을 거다.”

  “…….”


  100년 전이라면 동맹의 힘은 제국보다도 훨씬 약소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화평은 어려워지지. 죽은 자의 대가가 커지게 되니까. 화평의 도래만으론 대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100년 전이라면 대가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겠지만…….”


  “100년 전의 정치가들이 판단을 잘못했다는 겁니까?”

  루퍼트의 뺨이 일그러졌다. 냉소겠지. 노골적으로 감정이 겉으로 나온다. 나쁜 버릇이다. 부친에겐 없는 결점이군. 발렌슈타인과 만나고보니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루퍼트와 동년대지만, 저 남자는 타인에게 감정을 보이는 법이 없다…….


  “아무도 이렇게나 전쟁이 길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좀 더 달랐을 거다.”

  “그리고 페잔은 전쟁이 길어지도록 움직였다고.”

  그 말대로다. 페잔에게 있어서 양국이 적대관계에 있는 건 바라마지 않던 일이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우주를 통일한다. 신은하제국의 성립이지만, 신제국의 제도는 페잔이 되겠지.”

  “……천도입니까.”

  루퍼트가 의표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그에게서 들었을 땐 놀랐으니까.


  신제국은 페잔의 허리를 내리고 한쪽발로 제국을, 또 한쪽발로 동맹을 밟는다. 페잔이 인류사회의 중심이 되는 거다. 그만큼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화평이라니…….

  “화평 따위, 웃기는 일이겠지…….”

  루퍼트가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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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2월 27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어떻습니까? 슈톡하우젠 제독. 새로운 기함의 승차감은.”

  “예.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슈톡하우젠의 얼굴은 풀려있다. 기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슈톡하우젠은 라인하르트 함대를 지휘하게 됐다. 지금까지 저 함대는 슈타인메츠가 사령관 대리로서 이끌고 있었지만, 역시 이제 슬슬 한계다. 슈타인메츠에게서도 어떻게든 해달라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이제야 사령관이 정해졌으니 그도 다행이라 생각했겠지.


  그의 기함은 슬레이프니르. 슬레이프니르급의 네임쉽이다. 이 녀석은 로키급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기함용의 고속전합으로 로키의 개량급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내 로키급이 만들어진 게 제국력 487년 초순이었으니까 마침 2년째다. 벌써 개량함이 나왔다. 세월이 빠르다.


  로키급을 기함으로 쓰고 있는 지휘관은 적지 않다. 나 외에도 클레멘츠, 슈무데, 루크너, 린텔렌, 루디게가 쓰고 있고 쓰기 쉬운 함이라는 점에선 모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 때문이겠지, 로키급을 쓰고 싶어하는 지휘관은 많다. 앞으로는 슬레이프니르급을 기함으로 쓰게 되겠지. 슈톡하우젠은 그 최초의 지휘관인 셈이다.


  이름도 좋다. 로키급은 마신 로키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슬레이프니르급은 신수 슬레이프니르, 대신 오딘이 타고 다니던 다리 여덟 개 달린 군마에서 따왔다. ‘말 중의 최고’니까. 기합용의 고속전함에는 어울리는 이름이겠지.


  브륀힐트는 실험함으로서 이용될 것이 정해졌다. 슈톡하우젠이 그대로 기함으로서 쓰는가 생각했지만, 역시 피한 것 같다. 뭐, 라인하르트가 그렇게 된 이상 피하고 싶은 건 별 수 없겠지.


  애초에 여러 가지 기능을 포함하고 있던 실험함적인 요소가 강했던 함선이다. 본래 역할로 돌아갔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한 때는 우주함대의 총기함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불운한 함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의 활약을 생각하면 라인하르트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브륀힐트답다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슈톡하우젠 곁에 있던 렌넨캄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사령장관 각하. 저희들은 지금부터 훈련에 임하겠습니다.”

  수염이 참 훌륭하지. 조금 더 사내다웠으면 모습이 살았을 텐데 지금 이대로는 조금 수염과 용모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수염을 자르라곤 할 수 없지만.


  “알겠습니다. 충분한 성과를 얻을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슈톡하우젠 제독. 렌넨캄프 제독.”

  “예.”

  두 사람이 경례한다. 내가 답례하고 함께 경례가 끝나자 두 사람은 사령장관실에서 나갔다.


  자리에 앉아 서류 결재를 시작한다. 눈앞의 미결함에서 서류를 꺼냈다. 유급휴가 취득서인가……. 켐프로군. 아마도 가족 서비스인지 뭔지겠지. 꽤나 아이를 좋아하니까 말이야. 뭐, 지금 시기라면 문제없나. 모두 계속 일하고 있었으니까. 휴식도 중요하다. 사인하고 즉결함에 넣었다.


  이제부터 슈톡하우젠은 함대훈련에 들어간다. 본래 슈톡하우젠의 함대는 라인하르트가 단련한 함대다. 훈련도는 문제없다. 나머진 슈톡하우젠이 함대에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거기서 렌넨캄프가 거기에 동행하여 훈련에 협력하게 됐다.


  묘하지. 렌네캄프가 묘하게 좋은 녀석이다. 이번 슈톡하우젠의 훈련에도 자신이 먼저 손을 들어 협력하겠다고 말을 꺼냈고, 다른 함대사령관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원작에선 묘하게 거북하게 격식 차리는 딱딱한 느낌의 중년남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샨타우 성역 회전에선 내 지휘 하에 있었지만, 무훈을 올리는 일에 열중하는 일도 없었고, 주변과 경쟁하거나 다투는 일도 없었다. 켐프와는 특히 사이가 좋은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연장자고 실전파니까 말이야. 마음이 맞는 거겠지. 이 세계의 렌넨캄프는 솔직하고 믿음직한 지휘관이다.


  미결함에서 서류를 꺼냈다. 이번엔 뭐지. 로이엔탈에서 온 거로군. 내년도의 연수인가. 베르겐그륀에게 함대사령관 연수를 받게 하고 싶은가……. 좋지 않을까? 지금 녀석은 중장인가. 문제없지. 사인을 하고 이것도 즉결함에 넣었다.


  함대사령관 연수는 필수지. 분함대사령관은 어쨌든 함대사령관은 반드시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나, 계속 병참통괄부에 있었으니까 받지 않았지.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받을까? 그것도 뭔가 이상한데.


  ……잠깐만, 뷔로는 어떻게 하고? 녀석들 거의 캐리어가 같지? 하나가 연수를 받고 또 하나는 없다? 그건 위험하겠지. 미터마이어. 만일을 위해서 미결함을 뒤졌지만 미터마이어의 신청서는 없었다. 안 되겠네. TV전하로 미터마이어를 불렀다.


  “미터마이어 제독, 뷔로 중장에게 함대사령관 연수를 받게 할 예정은 넣었습니까?”

  내 질문에 미터마이어는 눈을 끔뻑끔뻑했다. 이 녀석, 생각이 없구만.

  “아뇨. 넣지 않았습니다만.”


  “로이엔탈 제독에게서 내년도, 베르겐그륀 중장에게 함대사령관 연수를 받게 하고 싶다는 신청서가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로이엔탈에게서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이쪽도 시급히 신청서를 준비하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통신을 끊었다. 이런 건 상급자가 끊는 게 예의니까 말이야. 내가 끊지 않으면 미터마이어는 언제까지나 TV전화 앞에 있어야만 한다. 그럼, 미터마이어만의 문제가 아니군.


  “피츠시몬즈 대령.”

  “예.”

  “각 함대사령관에게 내년도 연수 수강신청을 시급히 내도록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 함대의 발트하임 참모장에게도 부탁합니다. 참모장 자신의 연수 신청도 하도록.”

  “예.”


  “렌넨캄프 제독과 슈톡하우젠 제독에겐 오딘에 돌아오고 나서라도 좋다고 전해주세요.”

  “예.”


  일단 이걸로 됐다. 또 서류가 늘어나겠군. 언제쯤 되면 서류가 없어질 날이 올까……. 눈앞의 미결함에는 서류가 10센티 이상 쌓여있다……. 지금쯤 미터마이어가 로이엔탈에게 불만을 말하고 있겠지. 너무하지 않냐고.


  사령장관실의 여성부사관들도 렌넨캄프에 대한 걸 친근하게 느끼며 ‘수염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주의해야하나 생각했지만, 악의를 품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정도가 심하면 발레리가 주의하겠지. 그런 걸로 난 방치하기로 했다.


  원작의 렌넨캄프는 불운한 남자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렌넨캄프가 라인하르트와 만난 건 비교적 빠르다. 라인하르트가 소령이고 렌넨캄프가 대령일 때다. 렌넨캄프가 라인하르트를 부당하게 취급했던 일은 없다. 하지만 라인하르트가 원수부를 열었을 때, 그 막하에 렌넨캄프가 불리지 않았다…….


  굴욕이었겠지. 렌넨캄프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곤 생각할 수 없다. 어째서 자신이 선발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립슈타트 전역 후, 렌넨캄프는 라인하르트에게 소속됐지만, 그 심경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다음 서류는 뭐지? 저번 내전에서 노획한 함선의 판매금에 대한 보고서인가. 군함으로선 쓸 수 없고, 수송선으로도 쓸 수 없는 녀석이군. 아마도 해체해서 부품 단위로 팔든가, 재활용 하겠지. ……괜찮을까? 부정 같은 건 없겠지?


  이전엔 귀족들이 이런 종류의 부정에 얽혀 있었다. 다시 말해 평민이 관여할 수 없었다는 거지만, 귀족이 몰락했으니까 말이야. 지금은 평민이 이런 일에 얽혀있을 것이다. 위험하군. 한 번 키슬링에게 조사를 부탁할까……. 일단 이 서류엔 사인해두자. 즉결이다.


  렌넨캄프는 라인하르트의 부하가 되고나서 본의가 아닌 나날이 계속됐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동료에 비해서 명백히 공적이 부족하다. 진지한 그에게 있어서 마음이 내키질 않았을 테고 고통이었겠지. 렌넨캄프가 전술적인 승리에 고집한 것도 그게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장에 나가고 나서도 불운이 계속 됐다. 양을 상대로 했기에 연속으로 패배한 것이다. 상대가 나빴다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적어도 본대에 배속되었으면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공적을 올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소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찾았겠지.


  그리고 마지막엔 고등변무관이다. 자신이 그런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렌넨캄프도 알고 있었겠지. 라인하르트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뽑았는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설마 여차하면 잘라버릴 생각이었다곤 그의 성격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고민은 했겠지만 최선을 다해 일에 임하려고 생각했겠지…….


  이번엔 무슨 서류지? 여성부사관의 출산휴가와 교대요원 보고인가. 어째서 이런 서류까지 내게 오는 거지? 내게 올 서류가 아니겠지. 애초에 어디의 여성부사관……, 여긴가. 우주함대사령부의 사령관실인가. 그러고 보니 배가 부른 여성이 있었지. 그녀인가…….


  책임자는 나로군……. 정중히 기밀유지서약서까지 붙어있다. 후임자는 누구냐. 코르넬리아 브뤼메르 상사? 들은 적 없는데, 괜찮은가? 본래 소속은 병참통괄부 제 3국 제 1과……. 직원명부를 조사해둘까.


  과연. 코르넬리아 아더 하사. 아니, 상사인가. 결혼해서 성이 바뀐거군. OK. 문제없음. 사인하고 즉결함……, 잠깐 기다려. 그녀, 결혼했다는 거지? 임신하고 또 교대요원인가……. 독신자인 편이 안전한가? 생각이 지나친가.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는 생길 수 있다. 사인하고 즉결함이다.


  운이 없었지. 렌넨캄프. 마지막까지 운이 없었다. 라인하르트와 만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 좋은 방향으로 바뀐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나쁜 방향으로 변한 사람도 있다.


  렌넨캄프는 후자였다. 적어도 이 세계에선 만족스런 일생을 보냈으면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어렵지 않다. 길을 잘못 들지 말라고. 렌넨캄프. 지금 이대로,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진지한 군인이면 된다…….


  켐프와 루츠, 파렌하이트, 슈타인메츠도 모두 죽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가 안심하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 한 명이라도 많이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간단하지. 입으로 말하는 거라면…….


  다음은 뭐지? 내게 사관학교에서 뭔가 말하라고 적혀있다. 각하로군. 애초에 이런 이야기는 젊은 녀석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잘한다고. 인생의 무게가 있으니까 젊은 녀석들도 기뻐하며 듣는다. 내가 아니라 메르카츠에게 부탁하자. 비고란에 강의자로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을 추천이라고 적고 즉결함이다.


  동맹에서 쿠데타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페잔의 렘샤이트 백작에게 트류니히트의 통신이 있었다. ‘일부의 무분별한 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지만 미연에 방지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 알 살렘 중장은 쿠데타에 관여한 혐의가 있었기에 구속했다…….’


  렘샤이트 백작의 연락에 의하면 쿠데타 규모가 꽤나 크다. 브론즈 중장, 루글랑주 중장, 에벤스 대령, 크리스찬 대령, 베이 대령, 마론 대령, 하베이 대령, 포크 예비역 준장……. 여기까지는 원작대로다. 그리고 그린힐이 참가하지 않고 전직 우주함대사령장관 로보스 퇴역대장이 들어갔다.


  실전부대는 더 대단하다. 루글랑주만이 아니다. 알 살렘, 르페브르도 관여하고 있다. 3개 함대라고 하면 지금 동맹에선 과반수가 쿠데타에 관여하고 있다는 게 된다. 그리고 네그로폰테와 올리베이라…….


  네그로폰테가 트류니히트를 배신했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주전파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이상, 네그로폰테는 뼛속 깊은 주전파, 반제국감정의 소유자라는 건가.


  그게 원인이라 트류니히트를 배신했다고 하면, 지금의 트류니히트는 역시 화평추진파라는 것이 된다. 양이 트류니히트에게 협력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여우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다.


  쿠데타파의 목적은 네그로폰테를 수반으로 한 군사정권의 수립이라는 거겠지. 올리베이라, 르페브르, 알 살렘이 관여한 걸 생각하면 노리는 건 페잔의 영구점령인가. 이제르론과 페잔을 제압한다. 페잔의 경제력을 이용하여 경제재건, 군사재건을 꾀한다. 그런 거겠지.


  아마도 경제계도 관여했겠지. 오히려 기름을 부은 건 경제계라는 가능성도 있다. 미발로 끝나긴 했지만 쿠데타의 규모는 원작보다도 이쪽이 더 크다. 동맹정부도 뒤처리가 큰일이겠지.


  신경 쓰이는 건 지구교겠군. 녀석들이 무관계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렘샤이트 백작을 통해서 동맹에겐 지구교의 관여에 대해서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난 트류니히트의 경호실장을 임했던 베이가 지구교의 앞잡이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부터 지구교의 앞잡이이며, 군 내부에선 주전파로서 활동했다. 그리고 그린힐이 쿠데타를 생각했을 때에 그 맴버가 됐다.


  지구교는 쿠데타 계획을 알았을 때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트류니히트를 구하여 지구교의 장기말로 할 것을 생각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뒤, 트류니히트를 숨겨준 지구교도는 날마다 트류니히트에게 베이는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바람을 넣었겠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배신자를 경호실장으로 할 리가 없다. 한 번 배신한 자가 두 번 배신하지 않으리란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베이를 조사해보라고 해볼까……. 안 되겠군. 근거가 없다. 의심스럽게 여겨지겠지……. 그래도 맘처럼 되지 않는군. 쿠데타가 성공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다면 언젠가 페잔에서 구원요청을 받아서 출병한다. 그런 형태를 취할 수 있었다. 게다가 페잔의 게릴라 활동도 기대할 수 있었다. 덧붙여 동맹군끼리 싸워주면 더할 나위 없다. 정말이지 맘처럼 되질 않는다.


  침울할 일 뿐이군. 다른 일을 생각하자. 쿠데타라고 한다면 이번 쿠데타에 린치 소장은 참가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도 참가할 수 없었다. 그는 동맹에 돌아가지 않고 제국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돌아가기 힘들겠지. 양이 군의 간부가 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돌아가면 어쨌든 비교당할 것이 틀림없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알코올 중독인 것 같고.


  지금은 망명자 취급으로 군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나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야만 하겠지만……. 내가 직접 만나서 정해야겠지. 묘한 녀석에게 시키면 린치는 또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다. 취급에 주의해야…….


  “사령장관 각하.”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눈앞에 뷔로가 몸이 굳어서 서있다. 손에는 서류를 들고 있다. 그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뭔가 움직임이 딱딱하단 말이지.


  “이 서류를 부탁합니다. 미터마이어 각하에게서 사령장관 각하께 드리도록 말을 들었습니다.”

  서류를 받는다. 다른 것도 아니다. 뷔로의 연수 신청서다. 문제없다. 사인하고 즉결함에 넣었다.


  “각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45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라든지 해버리고 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야겠군. 일단 날씨 이야기라도 할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예. 오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비였지. 다음 서류를 보자. 내가 서류를 손에 쥐자 뷔로는 경례하고 방을 나갔다.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다…….


...


제국력 489년 2월 27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폴카 악셀 폰 뷔로.


  사령장관실을 나오자 쓰러질 정도의 피로감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벽에 기대어 심호흡을 할 정도였다. 그런 날 몇 사람의 여성부사관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 이 마음은. 제국 최대의 실력자의 눈밖에 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니…….


  우리 사령관은 참 맘이 편해서 좋지. 내 연수 따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로이엔탈 제독은 제대로 베르겐그륀에 대해서 생각해줬는데……. 네가 부러워. 베르겐그륀.


  덧붙여 그걸 사령장관에게 지적당하다니……. 미터마이어 제독은 ‘역시 사령장관은 경에 대한 걸 맘에 들어하고 계시는군. 부러운 일이다.’라고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 전혀 부럽지 않다. 넌 사령관에게도 잊혀진 불쌍한 녀석이다, 라고 사령장관에게 비웃음 당한 기분이다.


  거기에 사령장관은 어려운 얼굴로 서류를 보고 있고, 최악이다.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걸까. “오늘은……”, 오늘은 대체 뭐였을까? 기분이 좋지 않아? 웃겨줬다? 불쾌한 얼굴이었으니까 말이지. 설마 내 얼굴을 보고 오늘은 액일이라고 생각한 건……. 한숨이 나왔다. 액일이다. 정말 오늘은 액일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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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신무우궁.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아침, 평소와 마찬가지로 8시 반에 뮈켄베르거 저택을 방문하여 발렌슈타인 원수를 마중하러 가니, 원수는 리히텐라데 후작의 호출을 받아 이미 신무우궁으로 나갔다고 원수 부인이 미안하다는 듯이 알려줬다. 아무래도 어젯밤, 아니 아마도 심야겠지만, 호출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른 시간에 호출이 정해졌으면 내게도 연락이 있었겠지.


  뮈켄베르거 저택에서 물러나 문을 나가려하니 원수의 호위관들이 찾아오는 참이었다. 사정을 말하고 함께 신무우궁으로 서두른다.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우주함대사령부에서 기다리라는 전언이 있었지만 그렇겐 할 수 없다. 호위도 없이 슬렁슬렁 돌아다니다니. 말도 안 된다.


  신무우궁에 도착하자 호위관들은 빈방에서 대기에 들어갔다. 난 원수를 찾는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국무상서의 집무실에 있다고 한다. 급히 집무실로 향해 문 앞에 선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군인이 나타났다.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의 부관이다.


  집무실 안에는 국무상서, 발렌슈타인 원수 외에도 군무상서와 통수본부총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야기 내용은 꽤나 군사면이 강한 거겠지. 국무상서와 발렌슈타인 원수만이라면 아무래도 정치색이 강해진다.


  이상한 사람이다. 제국군 3장관 중 한 명,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서 실전부대의 탑인데도 정치면에선 군무상서의 상담 상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변경성역 개발 책임자이기도 하다. 본인은 “어째서 내가.”라며 말하고 있지만 내심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변경성역 개발안을 즐겁게 보고 있었으니까. 대체 원수의 진짜 직업은 뭔지…….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의 원수가 나타났다. 순서대로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 발렌슈타인 원수. 세 사람 모두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특히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는 벌레를 씹은 것 같은 얼굴이다.


  세 사람의 원수가 서로를 돌아봤다. 은근히 끄덕이고 에렌베르크 원수가 가장 먼저 떨어졌다. 부관이 뒤를 쫓는다. 그대로 5분 정도 지나 슈타인호프 원수가 떨어지고, 그 뒤를 부관이 쫓았다. 그 사이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괴로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었다.


  거기서 5분 정도 지나서 발렌슈타인 원수가 걷기 시작했다. 세 원수가 한 번에 움직이지 않는 건 테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일어난 내란에서 몇 번인가 발렌슈타인 원수를 암살하려 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이후, 제국군 3장관이 함께 이동하는 일은 없어졌다…….


  복도를 오가는 직원, 궁신들이 발렌슈타인 원수에게 인사한다. 거기에 답하면서 출구로 향하자 빈방에서 호위관들이 나타나 원수 앞뒤에 섰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보면서 원수를 호위한다. 신무우궁을 나가 승용차에 올라타고 우주함대사령부로 향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곁에 앉은 원수의 표정에선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알고 싶다곤 생각하지만 묻는 건 삼갔다. 알아도 좋은 일이면 원수가 말해주겠지…….

  “자유행성동맹에서 쿠데타가 있었습니다.”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쿠데타는 미수로 끝났다, 라고 해야겠죠.”

  원수는 정면을 보고 있다. 아무래도 원수에게 있어선 기대에서 벗어난 일이었던 것 같다.


  “주전파에 의한 것입니까?”

  내 질문에 원수는 말없이 끄덕였다. 그리고 은근한 미소를 띠웠다. 자조?

  “가능하면 지들끼리 싸워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조금 형편이 좋은 이야기였을까요…….”

  역시 자조다. 토라진 느낌이 왠지 귀엽다.


  “주전파는 괴멸했다. 동맹군은 일치단결했다. 그런 겁니까?”

  “글쎄요. 주전파라는 건 뿌리가 깊으니까 말입니다. 이걸로 끝인지 어떤지……. 단지 현재 군 수뇌부의 힘이 강해진 건 사실이겠죠. 만만찮은 상대가 더욱 만만찮아질 것 같습니다.”


  원수는 한 점을 보고 있다. 뭘 보고 있는 걸까. 언젠가 일어날 싸움인가. 혹은 원수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적, 양 웬리인가…….

  “페잔의 올리베이라 변무관, 그리고 제 9함대사령부의 면면은 자치령주, 페이워드씨가 구속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도 페잔과 동맹의 관계가 좋아요. 좋지 않은 상황이군요.”


  과연. 원수가 생각하고 있던 건 그쪽인가. 페잔이 동맹에 협력적이라면 페잔 방면에서의 침공작전은 꽤나 수고스러울지도 모른다……. 좋지 않다고 원수가 중얼거리는 기분도 알 것 같다.


  “이 후의 예정은 어떻습니까?”

  “10시부터 슈톡하우젠 상급대장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후부턴 변경성역 개발 건으로 상담이…….”


  내 대답에 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톡하우젠 상급대장과 만나기 전에 메르카츠 부사령장관과 만나고 싶군요. 부사령장관의 예정을 확인해주세요. 제가 부사령장관실로 갑니다. 그리고 11시부터 각 함대사령관을 회의실로 모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마도 이 건을 메르카츠 제독에게 전하고 그 뒤에 모두에게 전하려는 거겠지. 휴대용 PC를 올려 메르카츠 제독의 예정을 확인한다. 다행이 메르카츠 제독은 오전 중에 예정이 없었다. 이쪽은 문제 없다. 시급히 연락을 넣어 시간을 잡는다. 그리고 회의실을 잡아 함대사령관들에게 회의소집 메일을 보냈다.


  “끝났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령장관이 끄덕였다. 마침 우주함대사령부가 보였다. 시간은 9시 20분. 슈톡하우젠 상급대장이 10시에 오니까 9시 50분엔 메르카츠 부사령장관과의 회담을 끝내야만 한다.


...


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토마 폰 슈톡하우젠.


  우주함대사령부. 여기에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제국력 483년에 이제르론 요새사령관으로 임명됐으니 6년 정도는 오딘을 떠나있었다는 거다. 당연하지만 여기에 오는 것도 6년 만인가. 변함없이 썰렁한 복도다. 제국이 나날이 변해가는 데 그 시작점인 우주함대사령부의 복도는 어떤 변화도 없다…….


  포로교환이 행해지고 약 두 달이 지났다. 내가 오딘에 돌아온 것이 2월 5일. 귀환 직후 국무상서에게서 자택 요양을 명령 받아 2월 20일엔 우주함대사령부로 출두를 명령 받았다.


  그때의 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상급대장으로 승진됐다고 듣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하며 사양했다. 하지만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은 전원 1계급 승진하게 됐다. 경이 그걸 사퇴하면 다른 자들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라는 말을 들어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약 2년에 걸친 포로생활은 확실히 내 심신을 좀먹었겠지. 날마다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그 걸로 주변의 눈을, 비난을 두려워했다. 자신이 요새를 지켰다면 젝트는 죽지 않았을 거다. 300만 명의 제국 병사가 죽지 않았을 거다.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다…….


  아내에겐 야위었다는 말을 듣고, 딸에게선 흰머리가 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괴로운 2년간이었다. 그리고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지금, 내 마음은 오로지 휴식을 바라고 있다. 상급대장으로 승진한 것도 무거운 짐에 불과했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거절하고 싶다…….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지 못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젝트……. 아마도 군으로 복귀하는 건 무리겠지. 혹은 한직으로 돌려질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나는 어딘지 모르게 퇴역을 바라고 있다…….


  약속 시간 10분 전, 조금 빠른가 생각했지만, 내방을 고하자 사령장관실로 입실을 허락받았다. 문을 열자 소란스럽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소리가 날 놀라게 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TV전화음과 받아드는 여성부사관들의 목소리, 서류를 뒤적이는 소리와 서둘러 걷는 여성부사관의 발소리. 과연, 소문은 들었지만 뭐라고도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다. 전투중이라도 이렇게까지 소란스럽진 않겠지.


  압도될 것 같은 기분으로 방을 보고 있자 키가 큰 여성사관이 다가왔다.

  “슈톡하우젠 각하. 소관은 사령장관 각하의 부관을 임하고 있는 피츠시몬즈 대령입니다. 사령장관 각하는 이제 곧 돌아오실 테니 이쪽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가리킨 건 집무석 곁에 있는 응접 세트였다. 감사를 표하고 소파에 앉자 바로 여성부사관이 웃는 얼굴로 커피를 꺼내왔다. 헌데, 경멸하는 눈으로 보리라 생각했지만…….


  커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고 있자 사령장관실의 문이 열리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급한 발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당황하며 기립하여 경례한다. 사령장관의 답례를 기다리고 예를 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다리게 한 것 같군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약속 시간까진 아직 5분 남았습니다.”

  소파에 앉으면서 눈앞의 청년을 봤다.


  눈앞의 원수는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다. 헌데, 사령장관은 이쪽에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원수는 거의 접점이 없다.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제 6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 정도다. 밀고 들어온 반란군을 그가 순식간에 격퇴한 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뒤에 그는 국내의 내란을 막기 위해 원정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내가 포로가 되기 전에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 됐다. 평민이며 20세 전후로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취임.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제국군 3장관이 틀림없었겠지. 하지만 평민이라면 이게 한계다. 아깝다고 생각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그 뒤 이제르론 요새 함락 후,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취임. 반란군을 깨부수고, 문벌귀족을 폐하고, 국내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제국 제일의 실력가며 그 일거수일투족에 우주가 반응한다.


  저 패전에서 모든 것이 변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었던 로엔그람 백작은 부사령장관으로 강등. 그 후 비명에 죽음을 맞이했다. 2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을 정점으로 하는 문벌귀족도 망했다. 이 2년 사이에 제국은 전혀 다른 나라인가하고 생각할 정도로 변하고 말았다. 그 중심에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있다…….


  “충분히 휴양은 취하셨습니까?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덕분에 몸 상태는 문제 없습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사령장관은 웃음을 보였다. 군인답지 않은 온화한 미소다. 아무래도 위화감을 느낀다.


  “조금 더 빨리 포로교환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습니다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틀림없이 고생하셨겠죠. 사과하겠습니다.”

  사령장관이 고개를 숙였다. 주변의 여성부사관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


  “가, 각하. 그런 말씀 삼가십시오. 각하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소관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저대로 포로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언젠가 참지 못하고 자살했겠지. 귀환할 수 있었던 것엔 정말 감사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만, 포로 중에는 귀환을 목전에 두고 돌아가신 분도 있는 듯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사령장관이 시선을 숙이고 고개를 젓고 있다. 확실히 포로교환 전에 죽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을 사령장관이 질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자신을 책망하는 건 삼가십시오. 많은 자들이 돌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해야겠지요…….”

  잠시동안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사령장관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크게 숨을 내쉬고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앞으로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상급대장께선 함대를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우주함대의 정규함대는 아닙니다만, 거기에 준하는 함대로서 제 지휘하에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소관에겐…….”

  그걸 이끌 자격이 없다.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했지만 사령장관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언젠가 저는 이제르론 요새 탈환작전을 일으킵니다. 그렇게 먼 일은 아닙니다. 대충 2년 내외겠죠…….”

  “…….”

  “그 작전에는 상급대장도 참가하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소관에겐 그 자격이 없습니다. 소관의 실태에 3백만 명의 병사가 죽었습니다. 젝트, 엘라흐, 포겔, 모두 죽었습니다.”

  내 말에 사령장관은 말없이 끄덕였다. 표정엔 아까 전까지 있던 웃음은 없다. 나의 노고를 이해하는 색이 있다.


  “그렇지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모두, 원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원통, 원통했겠지. 살아있는 나조차 한스러웠다. 부끄러웠다. 죽었던 그들은 얼마나 한스러웠을지……. 하지만 젝트들은 그런 한스러움을 겉으로 보이는 일 없이 제국 군인으로서 죽었다.


  “젝트, 엘라흐, 포겔……. 원래라면 로엔그람 백작이 그들의 원한을 풀어야겠지요. 하지만 백작은 이제 없습니다.”

  “…….”

  사령장관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령장관은 로엔그람 백작의 죽음을 아까워하고 있는 걸까.


  “지금 그들의 원통함을 가장 이해하고 있는 건 상급대장, 당신이겠죠. 그들의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건 당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건 나뿐…….


  “저와 함께 이제르론 요새를 되찾지 않겠습니까? 그들도 당신이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살아서 수치를 당하더라도 살도록 하자. 그리고 언젠가,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한다.


  “11시부터 함대사령관을 모아 회의를 엽니다. 슈톡하우젠 제독도 참가하도록 하세요.”

  “소관도, 말입니까.”

  “당연하지요. 제독은 이제 제 지휘 하에 있습니다. 제 지시를 따라주세요.”

  눈앞에서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는 사령장관이 있었다.


  사령장관실을 나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방을 향했다. 11시까지 아직 20분 정도 있다. 부사령장관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회의 전에 한 번 인사를 해두는 편이 좋겠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쾌히 날 마중했다. 어깨를 두드리며 방으로 함께 들어가 소파에 앉도록 권했다.


  “그 얼굴을 보니 함대사령관이 되는 걸 승인했군.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함대사령관은 모두 젊어서 말이지. 경이 와주다니 감사한 일이다. 좋은 이야기 상대가 생겼어.”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함대사령관으로선 결코 노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부사령장관이 이야기 상대가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다. 지금의 우주함대는 정말 젊은 지휘관들이 모여있다고 실감했다.


  “그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번엔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웃음소리를 올렸다.

  “불안한가?”

  “다소 불안은 있습니다.”


  내 대답에 부사령장관이 끄덕였다.

  “뭐, 이전에 비하면 군은 꽤나 통풍이 좋아졌네. 덕분에 나 같은 무뢰배라도 부사령장관을 맡을 수 있지. 경도 괜한 일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직무에 힘쓰는 게 좋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부사령장관은 몇 번인가 끄덕였다.

  “뭔가 듣고 싶은 일이 있는가?”

  “그럼 하나, 사령장관의 사람 됨됨이를…….”

  “흠. 사령장관의 사람 됨됨이인가…….”


  온화해보이는 인물로 보였다. 재능이 있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령장관실에서 한 이야기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어떨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일까? 로엔그람 백작의 죽음에도 사령장관이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모략가로서의 일면을 가진 사령장관에게 한 점 불안이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안심하고 따라가도 되는 건가.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하고…….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네만, 특필해야 할 것은 참을성이 강하다는 점이겠지.”

  “참을성, 말입니까.”

  내 질문에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끄덕였다.


  “자신보다도 연상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다. 꽤나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더군. 생각하고 있는 것의 절반이나 말하고 있을지 어떨지……. 하지만 불만을 겉으로 보인 적은 없네. 그것을 주변이 눈치 채게 하는 일도 없어.”

  “…….”


  “앞선 내란에선 나도 되돌릴 수 없는 실태를 범했네. 오딘에 임박한 슈타덴 대장의 함대를 놓치고 말았지. 부사령장관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질책을 받아도 별 수 없었지만, 주의를 받았을 뿐이고 그 이상 질책은 없었네. 당시 난 부사령장관으로 취임한 참이었으니까 말이야. 내 입장을 고려한 거겠지.”

  “…….”


  그 건에 대해선 나도 알고 있다. 오딘까지 다가온 슈타덴 대장을 사령장관이 직접 중상의 몸을 이끌고 출격, 병력에 있어 2배의 적을 격파했다. 사람들은 사령장관의 무훈에 감탄하여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실태를 눈치 채지 못했다. 혹은 중시하지 않았다…….


  “로엔그람 백작과는 그런 부분이 다르지.”

  로엔그람 백작인가…….

  “백작은 대역죄에 관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사실입니까?”

  내 질문에 부사령장관은 고개를 저었다.


  “로엔그람 백작 개인은 음모에 가담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군. 하지만 백작의 주변이 가담했다. 그뤼네발트 백작부인도다. 백작을 군의 정점으로 세우고, 언젠가 황위를 찬탈하게 한다……. 백작이 없었다면, 아니, 백작의 불만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라 생각하네. 무관계라곤 할 수 없지.”

  “…….”


  “로엔그람 백작은 불만을 숨기지 않았네. 저 대역사건은, 백작의 불만이 만들어낸 거라고 난 생각하고 있어.”

  어딘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였다. 메르카츠 제독 스스로, 저 사건에 대해선 생각하는 부분이 있겠지.


  “능력이 있어도 그걸 제어하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일세. 사람으로서의 그릇과 재능. 그 조화가 이뤄지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지……. 로엔그람 백작을 위험시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사령장관을 위험시한 사람은 없네.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날 보고 있다. 온화한 표정이다. 믿어도 좋겠지.


  “슬슬 회의 시간이군. 회의실로 가볼까.”

  “그렇군요. 첫날부터 지각할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방을 나간다. 그 뒤를 따라서 방을 나왔다. 앞으로 여기가 내 직장이 된다. 젝트. 다시 한 번 난 이제르론 요새로 돌아가겠지. 경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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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머리맡의 TV전화가 수신음을 울리고 있다. 화면 한편에 번호가 표시되어 점멸하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의 번호다. 일어나야한다. 보류 버튼을 누르고 살짝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유스티나를 일으키고 싶진 않다.


  쌀쌀하군. 가운을 걸치고 방을 나왔을 때였다.

  “여보…….”

  일으키고 말았나……. 유스티나가 상반신을 일으켜 날 보고 있다. 불안한 표정이다. 무리도 아니다. 밤중에 남편이 불려나가면 누구라도 불안하겠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이쪽이 불안해진다.


  “긴급한 연락이 들어온 것 같아. 길어질 것 같진 않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자고 있어.”

  “예…….”

  일부러 큰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긴 유스티나에게 있어서 위안도 되지 못하리란 건 알고 있다.


  침실을 나와 통신실로 향한다. 사방 2미터 정도의 작은 방이다. 방음완비, TV전화, FAX등의 통신장치만이 있다. 뮈켄베르거는 군의 중진이었다. 당연히 기밀에 접하는 일이 많았다. 가족을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 괜한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겠지. 저택에 들어오는 연락은 모두 여기에서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쓰고 있다. TV전화 수신 버튼을 눌렀다. 노인, 날 기다리고 있겠지.


  “면목 없습니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밤늦게 미안하네. 쉬고 있었는가.”

  화면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시각은 2시를 지나고 있다. 오딘의 겨울은 춥다. 깊은 밤이 힘든 건 나보다도 리히텐라데 후작이겠지. 게다가 이전엔 내가 밤중에 후작을 두들겨 깨웠었다. 불만을 말할 순 없다. 괜한 일로 일으킬만한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노인장. 괜찮은가? 추워보이는데.

  “페잔에서 묘한 일이 일어났네.”

  “묘한 일이라고 하신다면?”


  화면에 보이는 리히텐라데 후작이 곤혹한 표정을 짓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페잔인가. 그렇다면 지구교인가. 아니, 묘한 일이라고 했지.

  “렘샤이트 백작의 연락이네만, 반란군의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구속되었다고 하네.”

  “…….”


  “그것만이 아니야. 주류하고 있던 함대 사령관을 시작해 주요인물들이 구속되었다고 하더군.”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게, 렘샤이트 백작의 말로는 페이워드라고 하더군.”

  “…….”


  과연. 확실히 묘하다. 추위도 잊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곤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괴뢰인 페이워드가 자신을 조종하던 인형사, 올리베이라를 구속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맹에서 독립이라도 할 생각인가. 제국으로 향방을 바꿨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력은 이쪽이 위다.


  “페이워드에게서 사전에 렘샤이트 백작에게 연락이 있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더군. 묘하지?”

  “확실히.”

  리히텐라데 후작도 같은 생각을 했는가…….


  사전에 렘샤이트 백작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돌발적으로 일으켰는가. 혹은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어리석은 자인가……. 아니 그 전에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지.


  “자유행성동맹은 렘샤이트 백작에게 뭔가 말했습니까?”

  “그게 말일세. 렘샤이트 백작은 그런 일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하더군. 더더욱 묘하지 않은가?”

  동맹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거기에 눈치 챘는가…….


  “모르리라 생각합니까?”

  리히텐라데 후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

  동감이다. 일단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하이네센의 승인을 받고 움직였다는 것이 된다…….


  “독립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먼.”

  “인형사가 바뀌었습니까……. 새로운 인형사는 하이네센이군요.”

  “그렇겠지.”

  올리베이라는 해고인가. 문제는 무슨 원인으로 해고됐는가다.


  “하이네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헌데……, 올리베이라만이 아니라 함대사령관까지 구속되었다면…….”

  리히텐라데 후작이 날 봤다. 그 앞은 내가 말하라는 건가.


  “단순한 파면이 아니군요. 쿠데타이든가, 혹은 거기에 속하는 무언가. 올리베이라와 함대사령관의 구속은 거기에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겠지.”

  쿠데타. 아마도 주전파에 의한 거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턱을 쓰다듬고 있다. 턱이 가늘어서 그다지 어울리지 않다니까.


  가능성은 둘이로군. 하이네센에서 쿠데타 계획이 발각됐다. 올리베이라와 함대사령관은 거기에 관여했다. 그래서 구속되었다……. 또 하나는 하이네센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 세력은 페잔을 직접 컨트롤 하기 위해 올리베이라와 함대사령관을 구속했다. 대충 그런 거겠지.


  쿠데타인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는군. 페잔에 주류하고 있는 건 제 9함대, 알 살렘 중장이지만,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일 남자인가? 루글랑주라면 알겠지만 알 살렘……. 아무래도 딱하고 감이 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페잔은 쿠데타와 무관계, 하이네센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녀석들이 페잔을 직접 컨트롤 하려 했다…….


  “문제는 하이네센이겠죠. 지금 하이네센을 지배하고 있는 게 누구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으음”하고 말하고 끄덕였다.

  “……경우에 따라선 내란이 되겠는가.”

  “가능성은 있군요.”


  가능성은 있다. 원작에서도 내란이 일어났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누가 일으키나? 그린힐인가? 하지만 정부와 군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보인다. 아무래도 알 수 없다. 판단재료가 너무 적다…….


  “정보가 필요하군요. 판단재료가 너무 적습니다.”

  “동감이구먼. 렘샤이트 백작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내일, 아니 오늘인가. 아침 8시에 신무우궁으로 와주게.”

  8시인가. 늙은이는 아침이 빠르군. 벌써 3시라고.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 원수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연락을 해두지.”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긴 뒤 방을 둘러봤다. 그림 한 점 없는 살풍경한 방이다. 오딘의 겨울엔 어울리는 방이겠지. 어떻게 할까. 벌써 3시다.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락을 할까……. 연락을 하니 바로 상대가 나왔다.


  “에리히인가.”

  “다행이군. 일어나 있었나? 귄터.”

  “경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지.”

  키슬링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양하지 말라고. 용건이 있을 땐 얼마든지 연락해.”

  “아아, 그렇게 할게.”

  “페잔의 대한 거로군.”

  내 질문에 키슬링이 끄덕였다.


  “알고 있었나.”

  “올리베이라와 제 9함대사령관이 페이워드에게 구속된 건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들었다. 정보원은 렘샤이트 백작이다.”

  난 리히텐라데 후작과의 대화 내용을 키슬링에게 전했다. 키슬링은 때때로 끄덕였다.


  “내게는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 노르덴 소장이 연락했다.”

  “도움이 되는 것 같네.”

  “무척이나. 반란군이나 지구교의 접촉은 없지만 페잔의 상황은 알 수 있어. 도움이 되고 있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묘한 말이로군. 게다가 키슬링의 어조에는 자조의 색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라트부르흐 남작이 묘한 말을 했다.”

  “…….”


  “올리베이라가 구속된 직후, 람즈베르크 백작과 연락을 취했다고해. 그때 백작이 이렇게 말했다더군. ‘이걸로 또 제국으로 돌아갈 날이 늦어졌다.’”

  자신의 표정이 엄해지는 걸 알 수 있다. 과연. 그런 건가.


  “백작은 올리베이라들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건가. 남작은 그걸 몰랐다…….”

  “그런 거지. ……라트부르흐 남작이 사과하더군. 람즈베르크 백작을 너무 쉽게 봤다고. 자신들과 상의하는 일 없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키슬링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라트부르흐 남작 이상으로 키슬링이 충격을 먹은 것 같다.


  “성장한 걸까?”

  키슬링이 웃었다. 나도 웃는다.

  “바보. 농담을 하고 있을 땐가?”

  “농담이 아니야. 성장한 것이 아니라면 옆에서 바람을 넣은 녀석이 있겠지. 포로가 되었던 녀석들을 조심하라고 말이야. 문제는 그 녀석이 누군가다. 올리베이라들이라면 괜찮아. 그렇지 않다면 문제다.”


  “루빈스키, 혹은 지구교인가.”

  “……글세 대체 뭐하는 작자일까. 뭐, 되먹지 못한 녀석인 건 확실하지만 말이야.”

  또 키슬링이 웃었다.

  “저쪽도 이쪽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어.”

  틀리지 않다. 타인을 조종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사람 따위 되먹지 못한 녀석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걸로 알았다. 하이네센에선 주전파가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지만 실패했단 거겠지. 올리베이라들은 주전파에 관여하고 있었다. 혹은 그런 혐의가 있었기 때문에 구속되었다.”

  “페이워드는 하이네센의 지시로 움직였다. 그런 건가.”

  “그런 일이겠지.”


  주전파가 무너졌나……. 가능하면 내란으로 국력을 소모해줬으면 고마웠겠지만, 훌륭하게 빠져나온 것 같다. 만만찮군. 트류니히트는 생각보다 만만찮다. 방심할 수 없다.


  주전파의 뒤에는 지구교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저쪽도 알고 있겠지만, 하이네센에 조사를 의뢰해야만 하겠지. 안스바흐와 페르너에게도 전해둘 필요가 있겠지.


  “귄터. 라트부르흐 남작에게 전해주지 않겠어? 내가 감사하고 있다고.”

  “알았다.”

  “그리고 무리하지 말라고도 전해줘. 혹시나 의심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무리는 금물이다.”


  키슬링이 날 지긋이 보고 있다. 혹시나, 아니 아마도 확실하게 람즈베르크 백작 옆에서 바람을 잡고 있는 녀석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기 위해선 다소 무리도 별 수 없다고…….


  “부탁해. 귄터.”

  침을 박아놓자. 라트부르흐 남작은 이쪽에 협력적인 것 같다. 쓰고 버릴 수는 없다.


  “알았다. 전해두지.”

  키슬링이 쓴웃음을 짓고 있다. 아마도 내가 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라트부르흐 남작이 이쪽의 협력자라는 걸 들키면 세츨러 자작, 노르덴 소장도 위험해진다.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그 뒤에 안스바흐, 페르너에 대한 연락을 키슬링이 행할 걸 확인하고 통신을 끊었다. 안되겠군. 벌써 4시가 다되어간다. 그래도 앞으로 2시간 정도는 잘 수 있나……. 아니, 생각해야 할 일도 있다. 아마도 잘 수 없겠지. 유스티나,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통신음으로 일어났을 때 그녀도 눈을 떳었다. 자고 있다면 괜찮지만…….


...


제국력 489년 2월 20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밤중에 통신이 들어와 방을 나가고 나서 돌아오지 않는다. 10분, 30분, 1시간, 그리고 2시간이 지나려하고 있다. 뭔가 성가신 문제라도 일어난 걸까……. 아니, 밤중에 남편을 호출한 거다. 중대한 문제가 일어난 건 틀림없다.


  남편은 가운을 입고 나갔지만, 혹시 춥지는 않을까. 뭔가 입을 걸 가지고 남편에게 갈까 생각했지만, 중요한 이야기 중에 방해하고 싶지 않다. 그 정도의 마음씀씀이도 할 수 없는 여자라고 보이고 싶지도 않다……. 이 무슨 답답한 일인지.


  신경 쓰지 말고 자라는 말을 들었지만, 도저히 잘 수가 없다. 남편이 국가의 중신인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별 수 없다고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기다리며 잘 수 없는 밤을 보내고 있는 걸까.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남편이 발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온다. 아마도 날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거겠지. 눈을 감고 자는척한다. 남편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


  옷을 벗는 소리가 들린다. 가운을 벗은 남편이 침대에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자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때였다. 남편이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잘 수 없게 됐다. 남편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부자연스럽게 긴장하는 느낌이 들고, 호흡도 괴롭다.


  그대로 시간이 지났다. 5분? 10분? 갑자기 남편이 쿡쿡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자는 척 하는 건 서툴군. 유스티나.”

  “……눈치 채고 계셨나요?”

  슥하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에게 시선을 향하자 남편은 몸을 내 방향으로 향했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온화한, 상냥한 웃음. 나도 남편으로 몸을 향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성가신 일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까 전에 한숨을 내쉬고…….”

  “아아,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꽤나 만만찮아.”


  남편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맘처럼 되지 않는 일이 있나요?”

  “?”

  “모두, 당신은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하는 걸요.”


  내 말에 남편이 웃었다.

  “맘처럼 되지 않는 일들뿐이야. 내 주변에는 맘처럼 되지 않는 사람들뿐이니까 말이야.”

  “어머, 그런 사람이 있나요?”


  남편이 날 재밌다는 듯이 보고 있다.


  “아아. 자는 척을 하고 날 속이려하는 너라든지.”

  “어머.”

  “이쪽으로 와.”

  남편이 웃으면서 날 끌어안았다. 약삭빠르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맘처럼 되지 않는 건 이 사람, 언제나 이렇게 날 맘대로 조종하니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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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2월 19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최고평의회 빌딩 회장실에 네 사람의 남자가 모였다. 이 방의 주인인 최고평의회의장 욥 트류니히트, 보로딘 통합작전본부장, 호안 루이 인적자원위원장, 그리고 나, 재무위원장 죠안 레벨로.


  모두 하나같이 표정이 굳었다. 특히 트류니히트의 표정이 험악하다. 이 남자가 이렇게나 험악한 표정을 짓는 건 드문 일이다. 국방위원장, 네그로폰테가 쿠데타에 참가하고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겠지.


  “그래서 계획은 괜찮은가?”

  “문제는 없습니다. 이미 헌병대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남은 건 페잔과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 뿐입니다.”

  내 말에 보로딘 본부장이 답했다. 그 대답에 모두가 트류니히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알고 나서 4일이 지났다. 이 4일간, 트류니히트는 극비에 페이워드를 상대로 페잔에 있는 쿠데타 세력 진압방법에 대해서 조율했다. 겨우 결론이 났다고 한 것이 어제다.


  “페잔은 문제 없어. 페이워드는 협력을 약속했다. 그에게 있어서 페잔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쿠데타 따위 허락할 수 없겠지. 괜찮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어조였다.


  “그에게 지구교에 대한 걸 말했나?”

  “아니, 거기까지 말하진 않았어. 언젠가 말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말이야. 단지, 신변에 주의하라고 충고해뒀다.”

  호안과 트류니히트가 말하고 있다.


  “그는 렘샤이트 백작에 대한 연락도 자신이 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절했다. 거기까지 페이워드에게 부탁하면 제국에게 이쪽이 발등에 불이 붙었다는 걸 보이게 될 테니까 말이야.”

  트류니히트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입니까…….”

  “그는 이제 곧 여기에 오네.”

  “…….”


  “괜찮네. 보로딘군. 그와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 다음엔 그의 신병을 자네에게 맡기게 되겠지. 다른 녀석들의 체포도 바로 착수해주게.”

  보로딘 본부장이 말없이 끄덕였다.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이 의장실에 온 것은 30분 정도 지나서였다. 그 30분은 뭐라고 할 수 없다. 1분 1초가 그 10배로 느껴졌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장실 분위기가 더더욱 무거워졌다. 그가 왔을 때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문제는 이제부터라는 건데…….


  “의장,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아, 자네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네그로폰테는 어딘지 근심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방에 있는 것에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거기에 불안한 모습은 없다. 한 순간이지만 정말로 이 남자가 쿠데타에 관여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자넨 내게 불만이 있는가? 쿠데타에 관여하고 있다고 들었네만?”

  트류니히트의 말에 의장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보로딘 본부장이 조용히 오른손에 블라스터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인정하지 않겠지. 혹은 저항할지도 모른다.


  “이제야 눈치 채셨군요……. 걱정했습니다. 이대로 눈치 채지 못하시면 어쩌나하고.”

  네그로폰테는 저항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인가. 네그로폰테는 쿠데타에 관여하고 있다는 걸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엔 조금도 꿍꿍이속이 없다. 게다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호안, 보로딘을 봤다. 그들도 곤혹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말인가? 네그로폰테군. 자넨 사실은 쿠데타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건가? 진실을 말해주게. 자네와 나 사이가 아닌가.”

  트류니히트의 어조는 어딘가 매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네그로폰테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주전파와 함께 쿠데타를 계획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트류니히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어째서? 어째서인가? 네그로폰테.”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트류니히트 의장.”

  “날 위해서? 무슨 말인가. 그건.”

  “이 나라에 끈질기게 달라붙어있는 주전파를 일소하기 위해서입니다.”

  “!”


  나도 모르게 네그로폰테의 얼굴을 봤다. 온화한 표정이다. 어디에도 패기나 야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 표정인 채로 네그로폰테가 말을 계속했다.


  “당신도 그건 알고 있겠죠. 그것 없이는 페잔 반환, 제국과의 화평 따위 불가능하다는 걸.”

  “……네그로폰테.”


  “이전부터 생각했습니다. 동맹이 제국과의 협조노선을 걸을 수 있을지 어떨지……. 물론 제국이 그걸 받아들일지 아닐지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 국내가 정리되지 않으면 제국에 대한 제안 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항상 방해가 되는 게 주전파입니다. 그건 당신이 의장이 되고 나서의 고생을 보면 압니다. 항상 주전파에게 배려하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국내 정리에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호안이 끄덕이는 게 보인다. 그 말대로다. 동맹정부는 항상 주전파에 대해 배려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행동이 제약되고 시간이 걸리는 거다. 다시 말해 제국이 자유롭게 수를 쓰는 데에 반해 항상 후수를 둘 수밖에 없다. 그걸 누구보다도 초조하게 여긴 건 트류니히트겠지.


  “다시 말해 자네는 쿠데타 계획을 탐색하기 위해 주전파에 다가갔다는 건가?”

  트류니히트의 말에 네그로폰테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쿠데타를 계획한 건 접니다.”

  “네그로폰테군…….”

  “그렇습니다. 제가 쿠데타 계획의 주범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이번엔 우습다는 듯이 네그로폰테가 웃었다. 아까부터 웃고 있는 건 이 남자뿐이다…….


  “왜냐?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가? 탐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

  질문한 호안에게 네그로폰테가 답했다.


  “제가 주전파에 접촉한 건 예의 페잔 회랑에서 일어난 동맹군과 제국군의 조우전 직후입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주전파를 탐색할 뿐이라고……. 하지만 지구교에 대한 걸 알고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지구교. 그 말에 모두가 시선을 교차했다.

  “동맹시민으로서 반제국감정, 주전론이 있는 건 별수 없다. 하지만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 세력을 이용하는 존재는 용서해선 안 된다…….”


  “그래서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건가.”

  트류니히트가 신음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네그로폰테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온화하고 냉정했다.


  “그렇습니다. 의장. 불평분자, 불만분자로는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배제해도 그들에게 동정의 눈이 가면 역효과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반역자로서 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그거라면 문제없이 배제할 수 있습니다.”


  “…….”

  “절 반역 주모자로서 체포하십시오. 전 어리석게도 당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스스로 이 나라의 지배자가 될 것을 바란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쿠데타 계획을 들키고, 설득되어 모든 것을 자백했다……. 그에 의해 쿠데타의 참가자를 체포했다고.”


  “그러는 것으로 나의 입장을 지키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입어선 안 됩니다. 최고평의회의장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강한 존재여야만 하는 겁니다…….”

  네그로폰테는 타이르는 듯이 말했다.


  “왜냐.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가. 내가 자네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언제 말했나. 어째서냐?”

  고뇌하는 말을 사람이 그 몸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의 트류니히트가 그렇겠지. 목소리가, 표정이 전부가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잠시 동안 모두가 침묵했다. 네그로폰테는 괴로워하고 있는 트류니히트를 보고 있다. 그리고 느긋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계속 생각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전 무엇인지 하고…….”

  “…….”

  “전 맹우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맹우는 레벨로 위원장이며, 호안 위원장이었죠. 전 수없이 많은 추종자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네그로폰테군……. 자네는…….”


  “착각하지 마십시오. 의장. 전 그걸 유감스럽게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불만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제 기량이 당신의 맹우가 되기엔 뭔가가 부족했던 거겠죠.”

  “…….”


  “그렇기에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추종자 중 한 명이기에, 교체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뭔가 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쿠데타를 생각한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아니 저만이 할 수 있는 쿠데타를.”

  “네그로폰테군…….”


  트류니히트가 뭔가를 참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 트류니히트를 네그로폰테는 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웃음을 띠고 분위기에 맞지 않을 정도로 밝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즐거웠습니다. 의장. 아주 조금 당신을 악담하고, 아주 조금 주전론을 말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주전파는 절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 오더군요. 조금만 더 있었으면 진짜로 쿠데타를 일으켜버릴 뻔했습니다.


  익살을 부리듯이 네그로폰테가 말한다. 그가 트류니히트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뭐라 할 수 없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자 트류니히트가 신음하듯이 답했다.


  “차라리 일으켰으면 좋았겠지. 그랬으면 자넬 증오하고 경멸할 수 있었을 걸세. 일으키는 편이 좋았어…….”

  “의장…….”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숙이고, 그 뒤를 이어 네그로폰테도 고개를 숙인다.


  “제 후임은 아일랜즈로 부탁합니다.”

  “아일랜즈……. 그는 알고 있는나?”

  두 사람 모두 작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다.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도,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이해해줬습니다. 그라면 이 쿠데타 계획에서 얻은 성과를 충분히 이용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네그로폰테가 나와 호안을 봤다.

  “의장을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단지 끄덕였다. 호안도 마찬가지다.


  “보로딘 본부장.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로 폐를 끼쳤다. 아일랜즈와 잘해주게. 의장을 부탁하지. 의장에겐 자네들의 협력이 필요하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헌병대를 불러주게. 날 체포하게.”

  “이미 수배는 끝났습니다.”


  보로딘 본부장의 말에 거짓말은 없었다. 3분도 기다리지 않고 헌병대가 의장실로 찾아왔다. 보로딘 본부장과 헌병대가 네그로폰테의 신병을 구속하고 데려가려한다. 그 뒷모습에 트류니히트가 말을 걸었다.


  “네그로폰테군.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게 있네.”

  “…….”

  “내가 있었기에 자네가 있는 게 아니야. 자네가 있었기에 내가 있었네. 자네는 내가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친구였네. 잊지 말아주게. 그것을.”


  네그로폰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게 그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의장실을 나갔다.


  “레벨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

  “주전론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거기에 휘둘리고 있어. 그런 끝에 네그로폰테에게 뒤처리를 맡겼다. 그것도 그를 희생해서 말이야…….”


  울고 있는가, 트류니히트……. 샨타우 성역에서 1천만 명이 죽어도 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넌 네그로폰테를 잃은 것에 이렇게 동요하고 있다.


  “정신차려라. 트류니히트. 그런다고 해서 네그로폰테가 기뻐하리라 생각하나? 넌 최고평의회의장이다. 그걸 잊지마.”

  “난 친구를 위해서 우는 것도 할 수 없나.”


  울음과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언제나 밝고 냉혹하며 낙관적인 이 남자가 이렇게나 자학적인 웃음을 띠고 있다. 네그로폰테 바보 자식. 넌 올바른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바보 자식이다.


  “오늘만은 용서해주지. 하지만 내일은 용서하지 않아. 알았나?”

  “오늘만은 용서해주는 건가……. 자넨 상냥하군. 레벨로.”

  “시끄럽네! 빨리 눈물이나 닦게. 자네의 눈물 따위 보고 싶지도 않아. 오늘은 액일이다!”


  트류니히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울면서 웃고 있다. 정말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녀석이다. 이쪽까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호안도 코를 울리고 있다. 네그로폰테 바보 자식. 너 때문이다. 오늘 하루는 정말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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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2월 15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네그로폰테가…….”

  “……트류니히트, 괜찮은가?

  “……괜찮다. 레벨로.”

  레벨로 위원장이 마음 여기에 없다는 것 같은 모습의 트류니히트 의장을 걱정했다. 괜찮다고 답하고는 있지만 안색이 창백하다.


  “그린힐 총참모장, 쿠데타가 일어날 일시는 임박하고 있는 건가?”

  호안 위원장이 곁눈질로 트류니히트를 보면서 물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죠. 시급히 그들을 구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급히 그들을 구속한다.’ 그 말이 방을 울렸다.

  “준비는 되어 있나?”

  “내일 모레엔…….”

  “구속은 가능한가…….”

  트류니히트 의장의 중얼거림에 그린힐 총참모장이 끄덕였다.


  “가능한 한 피해는 최소한으로 해야만 하겠죠. 이 이상 병력이 감소하는 사태는 피해야만…….”

  뷰코크 사령장관의 발언에 모두가 끄덕였다. 이제야 겨우 포로교환이 실현되어 병력 증강을 꾀할 수 있게 됐다. 실수로라도 동지를 잡는 일은 없게 해야만 한다.


  “게다가 내란이 일어나게 되면 제국이 어떻게 움직일지…….”

  “제국은 군사행동을 일으키리라 생각하는가? 우란푸 부사령장관.”

  우란푸 부사령장관의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질문했다. 이제야 진정한 것 같다.


  “총력을 가해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령 3개 함대라도 제국이 움직이면 동맹에게 있어서 충분히 위협적입니다. 그리고 제국에겐 그럴 만한 여력이 있습니다…….”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란이 일어났을 경우, 제국이 3개 함대를 이제르론 방면으로 움직이면 제 13함대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내란 제압은 사령장관 직솔의 제 5함대뿐으로 하게 되겠지. 뷰코크 사령장관만으로 르페브르, 루글랑주 두 명을 상대하게 된다. 극히 불리한 상태겠지.


  “하지만 그것도 그들을 구속할 수 있으면 문제 없습니다. 전 문제는 하이네센보다도 페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잔? 그건 무슨 의미인가. 페잔의 알 살렘 중장이 쿠데타에 관여하고 있다는 건가? 총참모장.”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에 레벨로 위원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지만, 총참모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 살렘 중장만이 아닙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도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페잔 반환에 소극적입니다만, 그건 페이워드를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제국과의 화평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


  트류니히트 의장, 레벨로, 호안 위원장의 표정이 굳는다. 아무래도 그린힐 총참모장도 그 가능성에 눈치 챈 것 같다……. 문제는 페잔이다. 이쪽을 어떻게 제압해야 할지…….


  “동맹이 당초 페잔 방면에 3개 함대를 동원했을 때, 그들은 모두 페잔 침공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파견군에는 올리베이라 변무관도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페잔을 점령해야 한다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겠죠.”

  “…….”


  그린힐 총참모장의 이야기가 끝나도 아무도 말을 이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 잠자코 생각에 잠겨있다. 잠시 뒤 보로딘 본부장이 망설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알 살렘, 르페브르, 루글랑주. 그들은 제국령 침공작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본래라면 패배한 우리들은 한직으로 쫓기고, 그들이 군부의 중추에 앉아도 이상하지 않았지요.”

  “…….”


  “하지만 실제론 우리들의 군의 중추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국 사이에서 화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들은 패배자며 배신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겠죠.”


  본부장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뷰코크 사령장관은 눈을 감고, 우란푸 부사령장관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신들이 군의 중추부에 있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주전파 따위가 중추부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주변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도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주전론을 부채질하면서 이제 와서 제국과 화평, 협조노선을 걷고 있어. 그들에게 있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겠지……. 쿠데타인가. 확실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군…….”

  보로딘 본부장의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하이네센은 수습할 수 있네. 문제는 페잔인가……. 어떻게하면 그들을, 올리베이라나 알 살렘을 붙잡을 수 있을까?”

  호안 위원장의 질문에 모두가 침묵했다. 서로 시선도 나누지 않는다. 잠시 뒤 그린힐 총참모장이 호안 위원장에게 답했다.


  “……가장 좋은 건 제 9함대의 인간에게 붙잡게 하는 겁니다만, 과연 누가 아군일지 알 수 없습니다. 제 9함대의 인간을 쓰는 건 위험하겠죠…….”

  “수가 없다는 건가…….”

  호안 위원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듯이 토했다.


  “페이워드를 쓰는 건 할 수 없겠습니까?”

  내가 제안하자 모두가 내게 시선을 향했다.

  “그는 제국과 동맹의 화평, 그리고 페잔의 독립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쿠데타 성공은 악몽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반드시 협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협력은 해줄지도 모르네. 하지만 그래선 페이워드에게 빚을 만드는 것이 되겠지. 그런 만큼 그의 정치적 지위도 오르겠지…….”

  레벨로 위원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확실히 그런 점도 있겠지만, 다른 수가 없다. 뽑아들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트류니히트가 입을 열었다.


  “상관없네. 레벨로. 페이워드의 정치적 지위가 오르면 볼텍도 평화교섭에 긍정적이 될지도 몰라. 나쁜 이야기가 아니야. 어차피 페잔은 반환할 생각이다. 이쪽의 제어 하에 둘 필요는 없어. 협력자로 충분하다.”

  “그것도 그런가…….”


  트류니히트 의장은 끄덕이고 레벨로 위원장에서 우리들로 시선을 바꿨다.

  “페이워드에겐 내가 말하지. 그쪽에서 준비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그것과 맞춰 이쪽도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녀석들을 구속한다.”


  보로딘 본부장이 그린힐 총참모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총참모장이 끄덕이자 본부장도 거기에 끄덕이고 의장에게 답했다.

  “그다지 길게 기다릴 순 없습니다. 그것만은 잊지 말아주십시오.”

  “알고 있네. 자네들이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양 제독은 이제르론 요새로 돌려보냅니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제국의 동향이 걱정입니다. 그는 이제르론에 있어줘야만 하겠죠. 그리고 뷰코크 사령장관, 우란푸 부사령장관도 함대로 돌아가시도록 부탁합니다.”

  보로딘 본부장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그리고 본부장이 한 순간 내게 시선을 향하고서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만일에 대비해 트류니히트 의장의 명령서를 받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를 진압하고, 국내의 질서를 회복하라고.”

  “그건 자네에게 말인가, 아니면 뷰코크 사령장관에게 말인가?”


  “제게 부탁드립니다. 그걸 기본으로 뷰코크 사령장관, 우란푸 부사령장관, 양 제독에게 제가 명령을 내립니다.”

  “알겠다. 내일 아침 일찍 자네에게 보내지.”


  어떻게든 대응책은 마련됐다. 문제는 시간이겠지……. 아마도 요 며칠이 승부가 된다. 어느 쪽이 기선을 제압하는가. 그 나름이다.


...


제국력 489년 2월 15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발레리 린 피츠시몬즈.


  어제 우리들은 오딘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기분은 긍정적으로 말해도 좋지 않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최악이다. 평소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일을 하고 있을 사령장관이 지금은 벌레를 씹은듯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다. 덧붙여 마시고 있는 게 물이다.


  리첼 중장, 구즈만 소장도 사령장관과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일을 하고 있다. 여성직원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사령장관실은 평소의 활기 직장이 아니라 찌릿찌릿한 긴장감 있는 직장이 되고 있다. 제플 입자라도 충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자신의 결혼식 때문이다. 사령장관은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은 수수하게 행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리히텐라데 후작의 수배로 신무우궁의 흑진주 홀에서 식이 치러지게 됐다. 민간 호텔이나 교회에선 테러 위험이 있다는 거지만, 나름대로 이치는 맞다.


  하지만 흑진주 홀에서 행해지는 이상, 폐하의 출석은 피할 수 없다. 말하자면 국가적 행사가 되고 말았다는 거다. 참석자도 당연히 호화찬란하다고 해도 좋을 면면들이다. 군부, 정부의 고관, 황족, 귀족……. 귀족들 중에는 변경성역 귀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제국은 내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로 단결하고 있다는 걸 내외에 보여야만 하겠지. 변경성역 귀족들도 부르면 기뻐할 테고, 경이 얼마나 폐하의 신임을 받고 있는가하는 증거를 그들의 눈에 보이는 일도 될 게다. 개혁이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고 안심하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사령장관은 반론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반론다운 반론이라고 해봐야 경비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도 무자비하게 분쇄됐다.

  “경비는 1 제국 마르크도 들지 않네. 페잔 방송회사에서 방송료를 받는 것으로 해결했지. 남은 돈은 변경성역 개발자금으로 돌릴 걸세. 문제는 하나도 없어.”


  결혼식은 3월 15일에 행해진다. 앞으로 한 달이나 남았지만, 이 우거지상이 계속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오딘 도착 후, 뤼네부르크 대장이 사령장관을 놀렸지만, 사령장관은 힐끔 시선을 향하는 것만으로 묵살했다.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했겠지. 대장은 재빨리 퇴장했고, 그 이후 사령장관을 놀리는 어리석은 자는 없다. 함대사령관들도 신묘한 표정으로 결재서류를 가져온다. 하긴, 모두 사령장관이 없는 곳에선 웃고 있다. 결혼식을 기대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사령장관도 모두가 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괜히 더 기분이 나빠진다. 하지만 슬슬…….


  “각하. 슬슬 기분을 고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렇게 계속 언짢은 표정이시면 주변에 대한 영향도 좋지 않습니다.”

  “…….”

  안 되겠네……. 힐끔 노려보는 데다가 입가는 시옷자가 되어 있다.


  “자택에서도 그렇게 언짢은 표정으로 계신 건가요?”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합니까?”

  “아뇨…….”


  아이쿠야. 화나게 만들었나. 뭐, 집에선 그럴 수 없다고 나도 생각한다. 아내와 뮈켄베르거 원수 앞에서 이런 볼멘 얼굴이 가능할리 없다. 위험하다. 어떻게든 하고자 생각해서 말을 걸었지만 지뢰밭에서 춤추고 있는 것 같은 기분밖에 들지 않는다. 누가 도와주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리첼 중장, 구즈만 소장 모두 모른 척이다.


  “대령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전 우주에 제 결혼식이 방송되는 거라구요? 좋은 안주거리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한숨 섞여 말하는 사령장관에게 대해 ‘그건 각하가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식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했다간 사령장관의 눈에서 토르 해머가 날라 올 것이 틀림없다.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성대하게, 모두 함께 기쁨을 나누자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포로교환에서 돌아온 병사도 사령장관이 포로교환에 진력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식장에 열석할 순 없어도 식을 눈으로 보고 축복하고 싶다고 생각하겠죠. 평민들도 그렇습니다.”


  조금은 기분을 고쳐 주리라 생각했지만 쓸모없었다. 사령장관은 불쾌하다는 듯이 날 보고 빈 잔을 내밀었다.

  “물을 주세요.”

  “예…….”


  평소라면 코코아를 타오라고 했겠지……. 어딘가 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사령장관도 언제까지나 부루퉁한 모습으로 있을 수 없을텐데.


  우리들을 구해준 건 제국광역수사국의 안스바흐 준장과 페르너 준장이었다. 사령장관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을 응접실로 불렀다. 사령장관의 모습이 응접실로 사라지자 사령장관실에 안도의 분위기가 퍼졌다.


  “리첼 중장, 구즈만 소장. 조금은 도와주세요.”

  내가 말을 걸자 리첼 중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리지. 피츠시몬즈 대령. 귀관이 달래지 못하는 걸 우리들이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옆에서 구즈만 소장이 끄덕이고 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는 사령장관을 달래는 사람인가?


...


제국력 489년 2월 15일. 오딘 우주함대사령부. 안톤 페르너.


  사령장관실 분위기가 찌릿찌릿했다. 아마도 에리히의 결혼식이 원인이겠지. 에리히는 거창한 일을 싫어하니까. 전 우주에 방송이라니. 에리히에게 있어선 괴롭힘, 아니 학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겠지. 있는 대로 우거지상일 것이 틀림없다.


  내 입장에서도 지뢰를 밟을 생각은 없다. 여기는 안스바흐 준장에게 맡기고 난 가능한 한 침묵을 지키도록 하자.

  “사령장관 각하. 지시하셨던 지구교와 사이옥신 마약에 대한 것입니다만.”

  “뭔가 알았습니까? 안스바흐 준장.”


  “오딘에는 지구교 지부가 세 곳 있습니다. 그 중 한 지부에서 신도중에 몇 사람인가 사이옥신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혐의가 있습니다.”

  에리히는 잠자코 듣고 있다.


  “단, 지구교가 조직으로서 사이옥신 마약을 신도에게 투여하고 있다는 증거는 지금 시점에서 없습니다. 지금 상태에선 우연히 신도중에 사이옥신 마약 사용자가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에리히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코를 울렸다. 희한한 일이다. 이 녀석은 좀처럼 타인 앞에서 불쾌한 표정, 몸짓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코를 울렸다. 어지간히 결혼식이 맘에 들지 않는가보다.


  “지금 저희들이 취할 수단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예. 하나는 혐의가 있는 지부에 대한 강제수사. 또 하나는 지구에 대한 잠입수사입니다.”

  에리히는 안스바흐 준장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각하. 저희들의 입장에선 지구에 사람을 파견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

  “주변을 탐색하는 것보다 심장부에 들어가는 편이 증거를 얻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안스바흐 준장이 지구로 직접조사를 제안하고 있다. 지금까지 에리히는 지구로의 직접조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를 자극하지 말고 방심하는 상태로 두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있었겠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벽에 부딪치고 있다. 이 주변에서 타개하고 싶다고 나와 안스바흐 준장은 생각하고 있다.


  “잠입수사입니까…….”

  “예.”

  “위험합니다. 미라를 잡으러 갔다가 미라가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다지 추천할 수 없습니다.”

  에리히가 고개를 젓고 있다. 과연. 에리히가 두려워하고 있는 건 그쪽인가.


  “확실히 위험은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교를 방치하는 건 더욱 위험하겠죠. 망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스바흐 준장의 말에 에리히는 눈썹을 찡그리고 생각하고 있다.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신중하게 부탁합니다.”

  “예.”

  안스바흐 준장이 날 보고 끄덕였다. 나도 준장에게 끄덕인다. 이걸로 겨우 지구교의 실태를 잡을 수 있겠지. 지금부터가 지구교와의 진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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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2월 15일. 하이네센 통합작전본부. 양 웬리.


  “어이구야. 파티도 이젠 지치는 구만.”

  “그래도 환영식전에 비하면 낫지요.”

  “확실히 그렇군.”

  나와 우란푸 제독의 말에 모두, 보로딘 본부장, 뷰코크 사령장관, 그린힐 총참모장이 각자 다른 표정으로 끄덕였다.


  “국방위원장은 환영식전에서 꽤나 기합이 들어가 있었지요.”

  “지금도 바보 녀석들을 상대로 기세를 올리고 있겠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저 남자의 머릿속을 뒤집어 보고 싶네.”

  ‘저 남자’, 보로딘 본부장의 말엔 국방위원장에 대한 경의의 파편도 없었지만, 누구도 그런 점을 지적하려하지 않았다.


  “예의 건, 이야기 나눌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질문하자 보로딘 본부장이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사태는 긴급을 요하고 있으니 말이야. 귀관들의 요청도 지금 여기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감사합니다.”


  오늘 2월 15일은 귀환병 환영식전과 축하 파티가 행해졌다. 환영식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허한 미사여구와 히스테릭한 군국주의적 열광으로 끝났다. 저 2시간 동안 평생 쓸 인내심을 다 써버린 기분이다. 큰 목소리로 외치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한심스러워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우리들은 축하 파티를 빠져나와 통합작전본부의 응접실에 있다. 이제 곧 트류니히트 의장을 포함한 정치가들도 오겠지. 오늘은 이제부터 정부, 군부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모여 의견을 교환하게 되어있다. 동맹시민이 포로교환으로 난리일 때에 우리들은 몰래 모여서 회의라니……. 높아지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의장들이 온 것은 30분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트류니히트 의장 외에도 레벨로 재무위원장, 호안 인적자원위원장이 함께였다.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은 축하파티에 남았다. 의장이 퇴석하는 이상, 국방위원장은 남는 편이 좋다고 진언한 건 보로딘 본부장이었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었다…….


  “그럼, 일단 자네들에게 먼저 할 이야기가 있네.”

  트류니히트 의장이 말을 꺼냈다. 희안한 일도 있다. 보통 잡담을 하면서 그 장소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한다. 그게 없다면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 이쪽의 용건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일단 저쪽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군복조는 모두 시선을 교환하고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거겠지.


  “페잔의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재밌는 말을 하더군. 페잔의 자치령주, 마르틴 페이워드가 제국과 동맹의 공존을 위해 페잔에서 평화교섭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호오.”라는 보로딘 본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말을 계속한다.

  “그래서 올리베이라 변무관은 어떻게 했습니까?”

  “일고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 괴뢰 주제에 무슨, 이라고 라도 생각했겠지. 뭐, 그래도 일단 내게 보고는 올렸지만.”


  꽤나 쓴웃음을 섞은 어조로 트류니히트 의장은 우리들에게 설명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페이워드의 제안에 부정적이었던 건, 페이워드가 제국에 붙으려는 게 아닌가하고 의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페이워드는 제국에 있는 볼텍 변무관을 통해 제국에 접촉하려 생각하고 있어. 그 건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과연. 평화 교섭을 구실로 볼텍과의 관계를 수복하여 제국과 내통한다. 지금 상태의 제국과 동맹의 전력 차를 생각하면 당연히 나오는 발상이겠지. 하지만 정말로 그것뿐일까? 혹시 화평 그 자체를 좋게 보지 않았다면…….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군요.”

  뷰코크 사령장관이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보로딘 본부장, 그린힐 참모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제국은 동맹의 멸망을 바라고 있다. 화평 의지는 없다. 그렇게 생각해도 가능하다면 화평이라는 생각이 있는 거겠지.


  “포기하는 건 아직 이르군요. 뷰코크 사령장관. 트류니히트 의장은 페이워드와 직접 이야기하고, 그에게 제국과의 화평교섭을 진행하고 싶다고 의뢰했습니다.”

  어딘지 야유를 머금은 어조로 뷰코크 사령장관을 주의한 건 호안 위원장이었다.


  “괜찮습니까? 의장. 그가 배신할지도 모릅니다만?”

  야유 받은 걸 좋지 않게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한 순간이지만 뷰코크 사령장관은 호안 위원장을 보고, 그리고 트류니히트 의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페이워드가 동맹을 배신하려고 한다면, 멋대로 제국과 교섭을 시작하겠지. 그럼 말리는 의미가 없어. 게다가 화평은 무리더라도 제국의 내부 정보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정보원은 조금이라도 많은 편이 좋겠지.”


  “볼텍 변무관은 제국편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상관없네. 그린힐 총참모장. 화평쯤 되는 이야기라면 제국에게 강한 파이프를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 현실문제로서 볼텍 변무관 이외의 사람은 없겠지.”

  몇 사람인가가 동의하는 듯이 끄덕이고 있다. 그 말은 틀림없다.


  “과연……. 교섭을 진행하는 건 페이워드, 볼텍 라인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걸 최종적으로 감독하는 건 누구입니까? 올리베이라 변무관입니까?”

  불안하단 표정으로 우란푸 부사령장관이 물었다. 아마도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교섭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겠지. 트류니히트 의장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나다. 페이워드의 보고는 나와 올리베이라 변무관에게 올라오고, 내 지시를 따라 화평교섭을 행하게 되지. 올리베이라 변무관은 조언자로서 내게 조언하는 입장이 되네.”


  트류니히트 의장도, 화평교섭을 일고도 하지 않았던 올리베이라 변무관을 감독자로서 하면 무슨 트집을 잡아서 교섭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페이워드도 하기 힘드리라 봤는가. 하지만 무시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래서 조언자인가……. 잘 될까……, 내 생각이 지나친 걸까.


  “페이워드와 이야기해서 알아낸 게 있네. 제국과 동맹의 화평이라는 건 그의 생각이 아닐세.”

  “?”

  묘한 말을 했다. 페이워드의 생각이 아니야? 그럼 화편교섭을 꺼낸 건 누군가? 설마하고 생각하지만 볼텍? 모두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루빈스키 전에 있던 자치령주, 바렌코프의 생각이라고 하더군. 페이워드는 바렌코프의 측근으로서 신뢰 받았다고 한다.”

  “기다려주십시오. 확실히 바렌코프는 사고로 급사했습니다. 그건…….”


  저도 모르게 말을 꺼낸 내게 트류니히트 의장이 끄덕였다.

  “지구교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암살일 가능성이 있겠지. 페이워드는 지구교에 대한 건 모르는 것 같다. 바렌코프도 거기까진 이야기하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페이워드는 바렌코프가 루빈스키에게 암살됐다고 생각하고 있어. 루빈스키가 자치령주가 되었을 때, 페이워드가 보좌관을 그만둔 건 그 때문이다.”


  의외의 사실이다. 모두 아연해하고 있다. 하지만 바렌코프가 동맹과 제국의 화평을 주선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암살의 가능성이 있다. 페이워드가 루빈스키를 의심한 건 부자연스럽지 않다.


  “지구는 동맹과 제국을 전쟁으로 피폐하게 만들어 공멸하게 하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바렌코프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페이워드의 이야기에 의하면 바렌코프는 이대로 전쟁이 계속되면 공멸보다도 먼저 제국의 통치력이 약체화하여 유력귀족들이 독립, 지방정권을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을 계속한다.

  “독립한 귀족들은 자신의 손으로 제국의 재통일을 목표로 하겠지. 그 때 필요하게 되는 건 돈이다. 그들이 간단하게 돈을 손에 넣으려 한다면 당연하지만 그 눈은 페잔으로 가겠지. 그들은 앞을 다퉈 페잔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고 해도 좋다. 군비는 돈이 필요하고 전쟁을 하려면 더더욱 돈이 필요하다. 경제력의 뒷받침 없이 전쟁 따위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동맹도 잠자코 있지 않겠지. 페잔을 다른 자의 손에 넘길 수 없다며 출병할 것이 틀림없어. 페잔은 독립을 빼앗기고, 부를 빼앗기고 단숨에 몰락한다. 바렌코프는 그렇게 생각했지…….”

  방 안에서 트류니히트 의장의 목소리만이 흐른다.


  “아마도 바렌코프는 지구가 바라는 공멸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했다고 보네. 그렇다면 지구의 복권 따위를 협력할 때가 아니다. 페잔의 번영을 지켜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페잔의 번영을 지키기 위해선 페잔의 중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립을 보증하는 제국, 동맹 양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렇기에 제국, 동맹의 화평을 주선하려 했다. 라는 겁니까.”

  “그런 걸세. 양 제독. 그리고 그게 지구에게 알려져 역린을 건드렸다…….”


  바렌코프의 생각은 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에게 있어선 용서할 수 없는 일이겠지. 자신들은 피폐와 빈궁에 신음하고 있는데, 그런 자신들을, 창조주인 자신들을 버리고 페잔만이 번영하려하는 바렌코프의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공포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바렌코프에게 있어서 지구는 방해물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화평 주선 후, 혹은 주선 중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지구의 음모를 제국에게 전해서 그 음모를 분쇄했을 것이 틀림없다. 지구도 그걸 알았겠지.


  “페이워드가 이 시기에 자치령주가 된 것도 단순히 개인의 야신 때문이 아닌 것 같다. 그는 바렌코프의 유지를 이어 동맹과 제국의 화평을 성사하고 싶어 하고 있어. 그게 페잔의 중립유지와 번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네.”


  “과연. 의장이 페이워드에게 화평교섭을 맡기는 것도 그런 이유로군요.”

  보로딘 본부장의 말에 트류니히트 의장이 끄덕였다. 모두 어딘지 모르게 감개깊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바렌코프를, 그리고 그 유지를 이으려하는 페이워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는 일이 있어도 사람의 유지는 이어진다는 건가…….


  “상황 증거이긴 합니다만, 지구교의 음모가 존재할 가능성은 높아졌군요.”

  “하지만 물적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네.”

  “양 제독이 제국에게 그걸 의뢰했습니다만, 이쪽에서도 페잔의 장로회의를 조사하면 어떻습니까? 이대로는 그냥 기다릴 뿐입니다.”


  우란푸 제독과 보로딘 본부장의 대화에 모두가 시선을 교차했다. 우란푸 제독의 초조함도 이해할 수 있다. 예의 페잔 성립에 협력한 사람이지만, 샌포드 전직 의장 이외에도 협력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지구와의 연결점은 보이지 않았다. 지구는 교묘하게 모습을 숨기고 있다. 결코 꼬리를 보이고 있지 않다.


  잠시 뒤 레벨로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만두는 편이 좋겠지. 그들을 조사하면 이쪽이 지구의 존재를 눈치 챘다고 상대방에게 알려주게 되네. 우리들은 지구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몰라. 그런 우리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어드밴티지가 이쪽이 지구의 존재를 눈치 챘다는 걸 저쪽이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그 우위를 버릴 순 없어.”


  유일한 어드밴티지. 그 말에 우란푸 제독이 얼굴을 찡그렸다. 믿음직하지 못한 어드밴티지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래도 어드밴티지라는 점은 틀림없다. 레벨로 위원장을 지원하려는 거겠지, 그 뒤를 트류니히트 의장이 이었다.


  “레벨로의 말대로야. 지금 시점에서 장로회의를 조사하면 지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 ……경우에 따라선 페잔에서 폭동을 일으킬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페잔 점령을 주장하는 사람이 또 힘을 얻겠지. 지금은 삼가야 할 때다.”


  “그럼 언제 그들을 조사하는 겁니까? 이대로 계속 방치하는 겁니까?”

  어딘가 납득하지 못하겠단 어조의 우란푸 제독에게 대해, 트류니히트 의장이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제국에서 증거가 제시되었을 때, 그걸 제국 시민에게 제시했을 때다. 그 때야말로 지구교를 단번에 적발할 수 있겠지…….”


  잠시 동안 모두 침묵했다. 그 침묵을 깨려는 듯이 보로딘 본부장이 헛기침을 했다.

  “트류니히트 의장. 군에서도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지구에 대한 것인가?”

  “아뇨. 주전파에 대해서입니다.”


  정치가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레벨로 위원장이 탐색하는 듯한 시선을 향해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조금 성가신 일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그린힐 총참모장에게 맡기겠습니다. 총참모장. 부탁하네.”


  정치가들의 시선이 그린힐 총참모장에게 모인다. 엄한 시선이지만, 총참모장은 기죽는 일 없이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정치가들이 또 서로를 돌아봤다. 그들의 얼굴이 경악에 차있다. 트류니히트 의장이 억누른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무슨 말인가? 그건.”


  “지금까지 저희들은 정보부를 이용해 주전파의 동향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정보부의 브론즈 중장의 보고는, 주전론을 부채질하고는 있다. 동향은 주시해야 하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경계해야 할 점은 지금 시점에선 보이지 않는다. 그런 거였습니다.”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이 조용히 방에 흐른다. 그리고 트류니히트 의장을 시작하여 정치가들은 잠자코 듣고 있다. 아까전의 경악은 이미 없다.


  “어제 일입니다. 정보부의 바그다슈 중령과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령은 저에게 언제 그들을 구속하여 조사할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전 의미를 알지 못하고, 무슨 일이냐고 그에게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만, 브론즈 중장은 의도적으로 주전파의 움직임을 은폐하고 허위로 보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


  트류니히트 의장의 얼굴이 고통을 참는 듯이 일그러졌다. 의장만이 아니다.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레벨로 위원장이 강한 어조로 내뱉었다.

  “바보 녀석들이!”


  그 격렬한 어조에 그린힐 총참모장이 잠시 동안 시선을 레벨로 위원장에게 향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계속했다.

  “바그다슈 중령의 말에 의하면 페잔에서 예의 분쟁이 있었던 때부터 주전파의 사관들 사이에서 회합이 몇 번 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지구에 대한 일, 그리고 포로교환에 대한 일에 눈이 팔려, 브론즈 중장의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브론즈 중장은 주전파의 일원이며, 그가 허위 보고를 한 것은 우리들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란 건가……. 그들이 노리는 건 쿠데타라고 자네들은 보고 있다고…….”

  호안 위원장이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틀림없는가? 단순한 불평가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렇게 봐도 좋은 건가?”

  트류니히트 의장의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시선은 엄격하다. 착각은 용서되지 않는다. 그런 거겠지.


  “회합에 참가하고 있는 건 제 11함대 사령관 루글랑주 중장, 제 3함대사령관 르페브르 중장, 에벤스 대령, 크리스찬 대령, 베이 대령, 마론 대령, 하베이 대령……, 그리고 전직 우주함대 사령장관 로보스 퇴역대장, 포크 예비역 준장……. 함대사령관이 둘이나 있습니다. 단순한 불평가들의 집합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해도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이 방에 흘렀다. 그대로 모두 침묵한다. 모두, 총참모장의 말이 무게를 되씹고 있는 거겠지. 의장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레벨로 위원장은 고개를 흔들고, 호안 위원장은 시야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르페브르 중장은 초조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나? 저번 실태로 경질될 것이라고…….”

  레벨로 위원장이 질문했다. 쿠데타 따위 믿고 싶지 않겠지만, 인식이 너무 허술하다. 지금은 의심해야 할 시점이겠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가능성?”

  “저 페잔의 분쟁은 동맹내부에 긴장감과 제국에 대한 적의를 강화하기 위해 행해진 게 아닌가 하고.”

  “…….”


  “실제로 저 사건이 일어난 계기, 훈련예정지를 누가 뒤바꿨는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습니다. 르페브르 중장의 명령으로 제 3함대 사령부 전원이 관여됐다, 그리고 은폐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서 사실관계가 확실하지 않은지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총참모장의 말 뒤에 작게 악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호안 위원장이 빈번하게 고개를 젓고 있다.


  “음모에 참가하고 있는 건 군인만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트류니히트 의장이 의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총참모장은 한 순간 망설임을 보였지만, 의장을 바라보고 조용히 말을 계속했다.


  “국방위원장이 그들의 회합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 판명됐습니다.”

  “!”

  전원의 시선이 트류니히트 의장에게 향했다. 의장이 안색이 창백하다. ‘말도 안 되는’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트류니히트 의장. 그 건에 대해서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 듣지 않았네.”

  갈라진 목소리였다. 의장이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다. 의장의 몸을 떨게 하는 건 분노, 공포, 아니면 굴욕일까…….


  “쿠데타는 꽤 이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던 건 포로교환 전에 실행하면, 그걸 이유로 제국이 포로교환을 거부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포로교환이 끝난 지금, 그들의 발을 묶는 건 없어졌습니다. 정권을 탈취하고 군의 재편을 행하여 페잔을 점령한다. 아마도 그걸 노리는 거겠죠.”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쿠데타에 참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지. 페이워드의 화평교섭을 일고하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린힐 총참모장의 말로는 뷰코크 사령장관은 올리베이라 변무관에 대해 꽤 강한 불안을 품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사령장관의 염려가 맞은 걸지도 모른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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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2월 4일. 오딘 신무우궁. 오이겐 리히터.


  “괜찮습니까? 사령장관에게 변경성역 개발을 맡겨서.”

  “별수 없지. 그들이 바란 거니까 말이야.”

  남 일처럼 말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난 발언자를 봤지만, 상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일을 빼앗긴게 불만인가?”

  “…….”

  참지 못하고 말을 계속한 내게 리히텐라데 후작은 짓궂은 미소를 띠우며 반문했다. 싫은 말을 하는 노인이다. 마치 내가 사령장관에게 불만이 있는 듯이 들리지 않는가.


  “말 돌리지 말아주세요. 리히터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닙니다. 당초 한 이야기에선 사령장관을 다소 바쁘게 만들어라, 그런 거였습니다. 이쪽의 입장에서도 변경성역 시찰을 맡길 사람이 따로 없었으니까 그 이야기에 응했습니다만, 이런 일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되는 대로 변경성역 귀족들의 요망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만, 그걸로 좋은지 저희들은 묻고 있는 겁니다.”


  브라케가 진지한 어조로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물었다. 후작은 우리들을 보면서 재미없다는 듯이 코를 울렸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남자들이구먼. 조금은 발렌슈타인을 보고 배워라. 저건 놀리는 맛이 있다네. 그렇지? 겔라흐 자작.”


  후작의 질문을 받은 겔라흐 자작은 곤란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봤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답했다.

  “그러한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건 후작뿐입니다. 제게는 도저히…….”

  리히텐라데 후작이 또 코를 울렸다.

  “아무래도 경들은, 곤란한 일이구먼…….”


  신무우궁 남관 일실, 어둠침침한 방에 우리들,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 재무상서 겔라흐 자작, 민생상서 브라케, 자치상서인 내가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변경성역 건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이쪽으로 끌려왔다. 적당한 의자에 앉아있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음침한 방이다.


  “군에서, 주로 함대사령관들에게서 입니다만, 고충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령장관의 부담을 늘리지 말아달라고. 사법성, 보안성, 헌병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령장관의 권한을 주면 주는 만큼 테러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 겔라흐 자작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큄멜 남작이 사령장관을 죽이려고 했던 걸 생각한 거겠지. 거기에 뒤잇는 자가 없다곤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해도 지금 변경을 개발할 수 있는 건 그 이외엔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변경성역 귀족들은 정부 사람 따위 누구도 믿지 않아.”

  겔라흐 자작이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그 말에 이번엔 나와 브라케의 표정이 떫어진다. 어색한 분위기가 방에 충만하다.


  “성가신 일이구먼.”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모두가 끄덕인다. 정말이지 성가신 일이다. 변경성역 개발, 그걸 행하기 위해 처음 수를 쓴 것이 실태조사였다. 올바른 정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건 10월 15일 칙령이 포고된 후 바로 실행되었지만, 시원찮은 결과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문벌귀족들이 협력하지 않는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 이외의 귀족들, 변경에 정착하고 있는 영주들도 이쪽에 비협조적이었다. 당초 우리들은 그 건을 이쪽에 협력하다가 문벌귀족들의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란이 끝나고 나도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이쪽의 요구에도 어딘지 회의적이고 협력요청에는 소극적인 태도가 눈에 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 각 성청의 관료들 사이에서도 변경성역 개발에 소극적인 태도가 보이는 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판명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물어보고 겨우 알았다. 지금까지 정부가 변경성역을 무시해온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그 빚을 갚고 있는 중인 거다.


  귀족들이 비협조적, 관료들도 소극적, 원래라면 자신의 눈으로 변경을 시찰하고, 현지의 귀족들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은 그밖에도 많다. 오딘을 떠날 순 없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사령장관에게 변경 시찰을 부탁한 거지만, 설마 이런 일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별 수 없는 일이긴 하네. 변경의 귀족들은 우리들, 예부터 이 자리에 있던 정치가 따위 믿지 않아. 경들도 마찬가지다. 개혁파, 개명파로 알려졌어도 정말 관료들을 움직일 수 있을지, 그들은 의심하고 있는 걸세.”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러졌다. 나만이 아니다. 브라케와 겔라흐 자작도 발언자인 리히텐라데 후작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확실히 후작의 말대로다. 변경에 관해선 관료들의 반응은 싫을 정도 둔하다. 그들을 써서 변경성역을 개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건 사령장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정가로서 실적 따위 없고, 각 성청에 대한 영향력도 우리들 이상이라곤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귀족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브라케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런 브라케를 리히텐라데 후작이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보고 고개를 저었다.

  “모르고 있구먼. 확실히 발렌슈타인에겐 내정가로서 실적은 없네. 하지만 저 자는 하겠다고 한 일은 반드시 하니까 말이야.”

  “…….”


  “10월 15일 칙령 포고 때, 개혁에 반대한 자들을 때려눕히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문벌귀족을 때려눕혔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도 폐하의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무너졌네. 변경성역 귀족들에게 있어서 믿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어딘가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말하자 겔라흐 자작이 신묘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귀족들은 말일세. 발렌슈타인의 내정가로서의 실적을 믿은 게 아닐세. 저 자 그 자체를 믿은 걸세. 저 자라면 한 말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게다가 경들을 추천하여 개혁을 주창한 건 저 자라는 걸 모두 알고 있지…….”

  “이렇게 되는 건 필연입니까?”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저 자가 장미정원에서 총에 맞았을 때, 경들은 카스트로프에서 돌아왔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가?”


  브라케가 날 봤다. 그리고 조금 우물거리며 답했다.

  “……그건, 사령장관에게 만일의 경우가 있으면 개혁은 어떻게 될까 생각했습니다.”

  그 말대로다. 그때의 불안은 잊을 수 없다. 사령장관에게 만일의 경우가 있을 때, 개혁은 어떻게 될까. 리히텐라데 후작에겐, 겔라흐 자작에겐 개혁을 지속할 의지가 있을까? 그 불안만이 우리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그렇겠지. 저 자야말로 개혁의 선두라고 경들은 생각했네. 그 마음은 경들만의 것이 아니야. 변경 귀족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이대로 발렌슈타인에게 변경성역을 맡길 걸세. 경들은 저 자의 지시에 따르게. 제국정부가 진심으로 변경성역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이해할 걸세.”


  “관료들도 말입니까?”

  “관료들도다.”

  어딘지 짓궂은 색이 있는 브라케의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무겁게 끄덕였다. 그리고 브라케에게 냉소를 띠고 물었다.


  “아무래도 저 자에 대해 가장 모르는 건 경들인 것 같구먼.”

  “그렇지는.”

  항변하는 브라케를 무시하고 후작은 말을 계속했다.


  “내무성은 분할되어 이전의 힘을 잃었네. 궁내성은 전례성과 통합되었다고 해도 실제론 궁내성 사람과 전례성 사람의 자릿 싸움일세.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판단된 사람은 좌천되고 있지. 저 자를 화내게 하면 어떻게 되는가? 관료들이 가장 뼛속 깊이 알고 있을 걸세.”

  “…….”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후작은 은근한 미소를 띠고 말을 계속했다.

  “뭐, 좋은 기회일세. 언젠가 발렌슈타인은 이쪽으로 오게 되겠지. 여기서 실적을 쌓게 해둘까.”

  “이쪽?”

  이쪽이란 정치가라는 걸까? 질문을 한 내게 리히텐라데 후작이 끄덕였다.


  “지금 이대로는 위험하네. 이대로 가면 제국 정치는 왜곡되고 말아.”

  왜곡? 무슨 말일까? 저도 모르게 브라케를 봤다. 하지만 그도 의심쩍은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리히텐라데 후작과 겔라흐 잦가은 침울하다고 해도 좋을 표정이다.


  “리히텐라데 후작. 그건 개혁이 제국의 정치를 왜곡하고 있다는 겁니까?”

  브라케가 어딘지 화내는 표정으로 질문했지만, 후작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게 아닐세. 개혁관 관계 없는 곳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네……. 아니,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나……. 문제는 말일세. 군부와 정부의 역학관계가 역전하는 걸세.”


  군부와 정부의 역학관계가 역전한다……. 군부의 힘이 정부의 힘을 능가하고 있다는 건가. 그렇기에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정치가로 한다……. 다시 말해 사령장관의 힘으로 군부를 억누르겠다는 건가? 혹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두 사람은 보고 있는 걸까. 군부에서 떨어뜨려 사령장관의 힘을 억누르려고 한다? 권력쟁탈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건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경들도 알고 있겠네만, 발렌슈타인은 수년 후엔 페잔을 함락하고 반란군을 항복하게 만들 생각일세. 그렇게 되었을 경우, 무슨 일이 제국에서 일어날지……, 경들은 생각해본 적 있는가?”

  “…….”


  무슨 의미일까? 후작은 꼭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개혁이 진행되고 우주가 평화가 되겠지만, 그 한 편 문제가 있다. 생기리라 보고 있다. 하지만 대체 뭐가 있는 건가……. 브라케를 봤지만 그도 곤혹하고 있다.


  우리들이 침묵하고 있지 겔라흐 자작이 뒤를 이었다.

  “문벌귀족, 페잔은 멸망하고, 동맹은 보호국이 된다. 군부의, 아니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위세는 일찍이 없을 정도로 커지겠지. 관료들도 그 위세에 복종한다는 거다. 대항세력은 없다고 해도 좋겠지.”

  “…….”


  이야기 내용보다도 그 어조와 표정이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느릿느릿하고 어딘지 중얼거린다기 보다는 신음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리고 표정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절망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할 정도다.


  “우리들이 뭔가 정치적 결단을 하려고 할 때, 항상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의향을 추측하게 되겠지. 그리고 군부 안에서도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제국 정치는 군부가 움직이게 되겠지. 후작이 걱정하고 계시는 건 그런 걸세.”


  “하지만 사령장관은 군부의 힘을 이용해서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령장관의 위세를 이용하려는 자를 용서하리라고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기우다. 이 두 사람이 생각하는 건 기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반론하자 리히텐라데 후작이 이쪽을 힐끔 봤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네. 문제는 군부가 정치를 움직인다는 것이 일상화 된다는 걸세. 저것이 살아 있는 간엔 좋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후엔 어떻게 되겠나? 어떤 형태든 제국의 정치는 무관적인 색채를 띠게 될 걸세.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수를 써둬야 한다는 걸세.”

  “…….”


  “지금은 아직 내가 살아 있으니까 괜찮네. 하지만……. 겔라흐 자작. 내가 죽은 뒤 경이 국무상서가 되었다면, 저 자에게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정무를 지휘할 수 있겠는가?”

  리히텐라데 후작의 질문에 겔라흐 자작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도저히 무리입니다. 어디선가 사령장관을 고려하겠죠.”


  “그렇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은 나와 브라케를 보면서 답했다. 알았는가. 라고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사령장관에게서 압박감 따위 느끼지 않았다. 그건 처음부터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개혁의 배경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개혁이 아니라 제국 정치 전체를 생각하면 어떨까. 역시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까? 아니, 위압감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매달릴지도 모른다. ……과연, 군부가 정치를 움직이는 것이 일상화하는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아마 브라케도 그렇겠지만, 개혁을 행하여 이 나라의 모순을 고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두 사람은 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들과 우리들의 차이가 나는 거겠지…….


  “발렌슈타인은 제국군 3장관의 한 명이라곤 해도, 서열로 보자면 군부에서 제 3위의 지위에 있네. 본래라면 상서인 경들이 지위가 더 높은, 제국의 중신일 테지만, 그런 경들이 군부의 일개 고관에게 삼가고 있네. 올바른 모습이라곤 할 수 없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린다.


  “사령장관에게 어떠한 지위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브라케의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이 희미한 웃음을 띠웠다.

  “제국 재상, 정도겠구먼.”

  “!”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다들 경악했다. 브라케가 이쪽을 보다가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망설이면서 질문했다.

  “하지만, 괜찮은 겁니까?”

  “별로 나는 상관없네. 저것이 뒤를 이어주면 편해질 테니까 말이야.”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다. 제국 재상! 이 1세기, 제국 재상의 자리가 채워진 적은 없다. 황제 오트프리트 3세가 황태자 시절에 제국 재상을 지냈던 것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엔 신하가 황제의 선례를 따르는 것을 피하며 국무상서가 제국 재상 대리로서 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 관례를 깨게 된다.


  놀라고 있는 우리들을 리히텐라데 후작은 웃음을 띠우며 보고 있지만, 그 웃음을 거두고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국무상서로는 안 되는 걸세. 국무상서는 어디까지나 제국 재상의 대리일 뿐이야. 기본적으론 다른 상서, 말하자면 군무상서와 동격일세. 저 자는 제국 재상으로서 이 나라의 문무의 정점에 서야하네.”


  “저 자가 바라는 바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이젠 물러설 수 없는 걸세……. 경들도 마음 깊이 세겨두게. 국가의 중신이 된 이상, 개혁을 행하는 것만이 그 임무가 아닐세. 국가의 행방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일세. 그거야말로 정사를 잡는다는 것이기도 하네. 그게 불가능하면 관료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네. 그걸 잊지 말게…….”

  “…….”


  “발렌슈타인은 그걸 할 수 있네. 그렇기에 모두가 저 자에게 의지하는 걸세. 저 자의 본질은 군인이 아닐세. 정치가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군의 일개 고관에 지나지 않네……. 역량 있는 인물이 그에 합당한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는가?”

  “…….”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나나 브라케도 끄덕일 수 없다. 이제와서 눈앞의 노인이 국무상서로서 제국의 키를 잡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압도적일 정도의 위압감이다.


  “본인에게 야심이 있다면 모반을 생각하겠지. 야심이 없으면 불필요하게 주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이렇게나 힘을 가지고 말면, 그건 국가의 불안정요소에 지나지 않아. 곤란하게도 저건 그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네.”

  “…….”

  한탄하는 듯한 어조였다. 후작은 사령장관의 행방이 위태롭다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걸 슬퍼하고 있다……. 이 사람은 사령장관이 좋은 거겠지.


  “저것을 국가의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선 제국 재상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네. 그러기 위해서라도 변경성역 개발은 실패할 수 없네. 알겠는가? 반드시 성공하게. 그렇게 하면 누구나 저 자야말로 제국 재상에 어울린다고 납득하겠지. 그거야말로 제국의 번영과 안정을 지키는 일일세. 부탁하지.”

  “예.”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국가란, 정치란 무엇인가. 국가의 중신으로서의 식견이란 무엇인가를 눈앞에서 배웠다. 나도 브라케도 후작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직 병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노인에게 언젠가 인정받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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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1월 10일. 오딘 제국광역수사국. 안스바흐.


  키슬링 소장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다. 표정이 엄중하다. 아마도 지구교가 사이옥신 마약을 쓰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거겠지. 옛날부터 종교와 마약은 강한 관계가 있다는 말이 있다. 지구교도 그 일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안스바흐 준장의 말씀은 알겠습니다. 설마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지구교, 그 자체가 사이옥신 마약의 제조자며 판매자입니다. 그리고 구입자는 신도들뿐…….”

  “그렇다면 확실히 그때 수사에 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말이 무겁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가하는 생각에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지구교와 사이옥신 마약이 관계하고 있다고 해도, 지구교가 모든 신도에게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하고 있을 리도 없다. 아마 그 일부에게 투여하고 있겠지. 그리고 사이옥신 마약과 세뇌에 의해 광신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키슬링 소장은, ……지구 순례를 알고 있는지?”

  “지구에 사람을 옮기는 거죠? 지구교의 신자도 있습니다만, 관광이 목적인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설마하고 생각합니다만…….”


  키슬링 소장은 이쪽을 보고 있다. 묻는 것 같은 표정이다. 나와 같은 걸 생각했을까?

  “사이옥신 마약은 지구에서 만들고 있다. 신자를 상습자로 만드는 건 지구에서 행하고 있다. 안스바흐 준장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구와 사이옥신 마약이 관계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순례는 페잔이 중계점이 되어 행하고 있습니다만, 순례자 중에는 동맹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설마……. 페잔의 입국관리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키슬링 소장이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동맹 사람이 페잔을 경유로 제국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지구가 페잔의 다른 얼굴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동맹에도 사이옥신 마약과 세뇌를 받은 신자가 보내진다…….


  “우리들은 지금 페잔으로 사람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경고가 있었습니다. 페잔을 중계점으로 지구교 신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키슬링 소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지구와 사이옥신 마약이 이어져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있다.


  “안스바흐 준장. 지구란, 지구교란 뭡니까? 큄멜 사건만이 아닙니다. 내란 때에도 녀석들이 관여했습니다. 모두 에리히, 아니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목숨을 노렸습니다. 준장은 대체 뭘 알고 있습니까?”


  지구란, 지구교란 무엇인가. 키슬링 소장이 얼굴을 굳히고 질문했다. 역시 거기에 도달하는가.

  “지구란, 페잔의 다른 얼굴입니다. 그들은 제국과 동맹을 공멸하게 하여, 지구에 의한 은하지배를 노리고 있습니다. 페잔과 지구교도 그를 위해 준비된 겁니다…….”

  내 말을 듣고 키슬링 소장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제국력 489년 1월 31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이야, 수고했네. 좋게 잘 해줬어.”

  화면에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우고 있는 리히텐라데 후작이 있다. 변경성역 시찰이 끝난 걸 보고하고 나서 계속 웃는 얼굴이다.


  “좋지 않아요. 전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구요? 군인입니다. 그런데 변경성역 요청서는 전부 제 곁으로 오게 됐습니다. 변경성역 개발 책임자는 제가 되고만 거라구요.”


  “뭐, 좋지 않은가.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니까 말이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이 망할 늙은이. 아까부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잖은가.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잖아!


  클라인게르트 자작령에서 생각한 내 나쁜 예감은 훌륭하게 적중했다. 어디에 가도 변경 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감은 심각했다. 요청서는 전부 내게 보내겠다고 한다. 리히텐라데 후작이든 겔라흐 자작이든 개혁파의 정치가든, 누구라도 좋으니까 문관에게 보내라고 해도 납득하지 않는다. “각하의 힘으로 실현해 주세요.” 오로지 그 말 한마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건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정부에 대해서 꽤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장. 귀여운 척해도 쓸모없다고. 솔직히 토해라. 난 화내고 있는 거다.


  “뭐, 무리도 아닐세……. 변경성역 개발에 대해선 그들에게서 몇 번이나 요청이 왔던 일일세. 경은 모르겠지만 10년 정도 전부터 매년마다 어딘가의 귀족이 요청서를 냈었지.”

  “그래서?”

  “전부 각하됐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각하의 이유는 뭡니까?”

  “당연한 일이지. 돈이 없기 때문일세.”

  가슴을 피지 마라. 노인장. 돈이 없는 건 자랑거리가 아냐. 돈을 만들고 나서 가슴을 피라고.


  “그들의 요청을 수용하여 어딘가 한 곳을 개발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우리도, 라며 찾아올 것이 불 보듯 뻔하지. 변경성역 전토를 개발하게 되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네. 전비를 조달하는 것만으로 빠듯한데 그런 여유가 어디 있겠나?”


  “귀족 전용의 금융기관은 쓰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이미 사라졌지만, 이라기보다 내가 짓밟아 버렸지만 귀족에겐 무이자, 무기한,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있었다. 저것을 쓰면 개발자금을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내 질문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손을 저어 부정했다.

  “저건 안 되네. 문벌귀족에겐 빌려줘도 변경의 빈곤귀족 따위에겐 돈은 빌려주지 않아.”

  여흥비는 내줘도 제대로 된 개발자금은 내지 않는가……. 짓밟은 게 정답이었군. 너무 늦게 짓밟았을 정도다.


  루돌프는 신뢰할 수 있는 부하에게 영지를 주고 그 개발을 위임했다. 애초에 저 금융기관은 그런 귀족들이 개발자금에 곤란하지 않도록 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녀석들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귀족도 노는 버릇이 들지 않았을 테고, 변경성역도 좀 더 개발되었겠지.


  “한 번 내무성과 재무성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그들의 요청을 실현하면 어느 정도의 세월이 걸릴까 계산한 일이 있었네.”

  “그래서?”

  “보고서에 의하면 대충 백년은 걸리리라 적혀 있었지. 그것도 일단 손을 대면 변경성역의 요청이 더욱 늘어나리라고 적혀 있었네. 개발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었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뭐,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전쟁 중에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먹는 변경개발 따위, 누구라도 엉덩이가 빠지겠지. 그것도 이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곤란하게도 말일세. 그 보고서가 그들 변경성역 귀족들에게 흘러갔네. 내무성인지 재무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료 중에 변경성역에서 매년마다 요청서가 오는 것에 질린 사람이 있었던 것 같네…….”

  “그래서 그들은 정부에겐 변경성역을 개발할 의지가 없다. 그렇게 판단했단 겁니까.”


  “뭐, 그런 거지.”

  “그게 10년 전…….”

  “그렇네. 그 이후 요청서가 정부에 오는 일은 없어졌지.”


  또 한숨이 나왔다. 노인장. 고개를 젓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말하자면 제국은 변경을 버렸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그걸 변경도 이해했다. 잘도 뭐, 변경성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군. 아니, 일으킬 만한 돈이 없었나…….


  원작에서 동맹군이 침공해 왔을 때 변경성역이 환영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을 동맹과의 전쟁에서 잃은 사람도 있겠지. 그렇게까지 동맹군을 환영하는 건 왜일까 생각했지만, 그런 건가. 변경성역의 입장에서 보면 동맹보다도 제국정부가 더 증오스러웠던 거겠지.


  클라인게르트 자작이 남은 것도 영주민이 어떻고 저떻고 보다도 정부 따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이제 와서 정부 따위 의지할 수 있을까보냐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다가 청야전술이다. 립슈타트 전역에서 변경성역이 난리법석을 피울만하다. 정말이지 변경성역이 무슨 동네북인가?


  뭐, 변경성역이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감은 이해했다. 하지만 어째서 나한테 오나?

  “변경성역이 정부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리히터나 브라케는 개혁파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변경성역은 어째서 그들까지 거부하는 걸까요? 제게 요청서를 내는 것보다 그들에게 내는 편이 좋을 텐데.”


  “뭐, 그렇게 말하지 말게. 개혁을 꺼낸 건 경일세. 녀석들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누구보다도 경을 믿을 수 있다는 거겠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번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말라는 게 아닌가. 정말 되먹지 못한 일이다.


  “협력은 해주시겠죠? 이번엔 실패할 수 없어요.”

  “물론이야. 브라케나 리히터들도 모두 협력은 아끼지 않을 걸세. 안심하도록 하게…….”

  기쁘게 말하지 말라고. 성가신 문제는 바로 내게 가져온다. 정말이지 되먹지 못한 노인장이다.


  “언제쯤 오딘으로 돌아오나?”

  “그렇군요. 앞으로 2주일 정도 걸리리라 생각합니다.”

  함대는 지금 빌렌슈타인 성계를 빠져나와 샨타우 성계로 향하고 있다. 거기에서 프레이아로 나와 발할라 성계다. 그 정도는 걸리겠지.


  “돌아오면 결혼식인가. 준비는 순조로운가?”

  “준비 따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매일 상담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고 있다구요. 우주함대는 메르카츠 제독이 어느 정도 커버를 쳐주고 있지만, 브라케, 리히터, 브룩도르프, 글룩……. 거기에 헌병대에 제국광역수사국……. 오딘에 돌아가면 그들에게 잡혀서 꿈쩍도 못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런 여유는 없어요.”


  리히텐라데 후작이 웃었다.

  “큰일이구먼. 헌병대와 제국광역수사국은 어쩔 수 없지만, 브라케들은 내버려 두는 게 어떤가?”

  “그렇게도 할 수 없어요. 변경에서 요청처가 도착할 테니까 말이죠. 그들의 기분도 맞춰줘야.”


  리히텐라데 후작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웃을 일이 아니라 구요.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게 전부 지금까지의 정부가 만들어 놓은 빚을 갚는 일이라 구요. 포로도 돌아올 테니 함대 재편도 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결혼식 준비라니 사람이 할 짓인가요?”


  이대로 식은 없다. 그렇게 갈 순 없을까. 어렵겠지. 유스티나도 식은 올리고 싶어하고, 뮈켄베르거도 그건 같은 마음일 거다.

  “과연. 그럼 조금 돕도록 할까.”


  화면에 나온 리히텐라데 후작이 기쁜 표정을 짓는다. 안돼. 이 늙은이에게 맡겼다간 뭐가 시작될지 알 수 없다.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스스로 하겠습니다.”


  “거창하게 하지 말라는 거겠지? 걱정 말게나. 뮈켄베르거와 상담해서 정할 테니 말이야. 그거라면 괜찮겠지?”

  식을 치루지 않을 순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맡기면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노인장과 뮈켄베르거?


  제대로 된 결혼식 준비 따위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건 반세기 가까이 이전 일이잖아. 참고로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출석자는 가까운 사람들만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권은 유스티나가 가지도록.”

  “물론이야. 이런 건 신부의 의견을 우선해야 하니까 말이지.”


  조금 걱정이지만, 유스티나는 삼가는 성격이고,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뮈켄베르거도 무시할 수 없겠지. 게다가 난 이런 건 서툴다. 결국엔 유스티나에게 맡기게 되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해도 마찬가지다.


  “……그럼 부탁합니다.”

  “오오, 그런가. 그럼 빨리 착수해야겠구먼. 뮈켄베르거에게 상담할까.”

  한 순간이지만 이 노인장에게 부탁한 걸 후회했다. ……괜찮다. 유스티나가 막아주겠지. 아마도, 괜찮을 거다…….


...


제국력 489년 1월 31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결혼식은 성대하게 해야겠지. 폐하의 희망도 있다. 유스티나에게 최종결정권을 주는 걸 보면 나름대로 생각한 것 같지만, 계집아이 한 명 구슬리지 못하면서 국무상서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뮈켄베르거의 입장에서도 딸의 경사스러운 모습을 호사롭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겠지. 아비의 마음이라는 거다. 게다가 저건 양녀니까 말이야. 아비의 입장에선 더더욱 호사롭게 하고 싶다고 생각할 테고, 딸은 아비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겠지.


  후후후, 허술하구먼. 발렌슈타인. 경은 중요한 부분이 허술하네. 이걸 기회로 그 허술함을 때려 고쳐주지. 일생에 한 번 있는 경사에서 그걸 확실하게 배우도록 하거라.


  일단 회장을 골라야겠지. 이건 이미 정해져있구먼. 흑진주 홀이야. 지구교라느니 뭐라느니 되먹지 못한 녀석들이 있으니까 말이지. 민간 호텔 따위 위험하지. 그렇게 말하면 발렌슈타인도 뭐라 하지 못하겠지.


  출석자는 군인은 대장 이상은 필수겠군. 정부 관계자는 각 성의 상서, 차관쯤인가. 나머진 발렌슈타인과의 친밀함으로 판단할까. 아아, 그것과 황족 분들도 출석해주셔야 하겠고, 변경성역 귀족들도 불러야겠지. 제국은 내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로 단결하고 있다는 걸 내외에 알려야 하니까 말이야.


  변경성역 귀족들도 불러주면 기뻐할테고, 발렌슈타인이 얼마나 폐하의 신임을 받고 있는가하는 증거를 그들의 눈에 보여줄 수도 있겠지. 개혁이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고 안심할 게다. 이건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야. 국가의 일대 프로젝트다. 발렌슈타인에겐 그렇게 납득시켜야겠지.


  식장의 모습은 방송해야만 하겠지. 그것도 제국 안에서만이 아니라 페잔, 동맹에도 말이야. 당연하지만 방영료도 받는다. 아무쪼록 크게 벌어들이겠다. 뭐라 해도 주빈이 폐하시니까 말이야. 폐하가 결혼식에서 축사를 읊으시다니 제국 이래 최초겠지. 발렌슈타인은 싫어하겠지만, 방송료를 변경성역 개발비용으로 쓰겠다고 하면 뭐라 할 수 없겠지. 그러기 위해서 참석자를 많이 불렀다고 하면 그것도 뭐라 할 수 없을 게야.


  즐겁구먼. 점점 좋은 제안이 나오니. 나머진 의상과 요리, 그리고 식차례로군. 이건 궁내성에게 맡길까. 녀석들은 요번 내란으로 대실태를 보였으니 말이야. 이번에 만회하라고 하면 필사적이 되겠지. 전례성처럼 뭉개지고 싶지는 않을 게야.


  헌데 그럼, 일단 한 번 폐하에게 보고를 드릴까. 녀석에게 있는 대로 일을 맡겨버려 식의 준비는 이쪽에서 하도록 한다……. 실로 훌륭한 책략이요. 폐하의 심계 앞엔 발렌슈타인도 갓난아기와도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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