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3월 3일 23:30. 그라이프스 함대 기함 비스바덴.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조금이다. 조금만 더 하면 발렌슈타인의 목을 딸 수 있어!”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 쫓아라! 쫓는 거다!”

  내 등 뒤에서 크레이머 대장과 프펜더 소장이 흥분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딱’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누가 손가락을 튕긴 거겠지. 꽤나 흥분하고 있는 듯하다.


  하긴 흥분하고 있는 건 그들만이 아니다. 함교에 있는 사람 전부가 화면 영상에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화면에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쫓는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의 함대의 모습이 있다. 전술 컴퓨터 모니터도 도망치는 적을 쫓는 아군을 표시하고 있다.


  전황은 유리하게 보인다. 하지만 아군의 좌익은 통제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남은 우익은 적의 좌익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전군에 후퇴명령을 내려라. 그 전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너 준장과의 회선을 연결해라.”


  내 말에 함교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믿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들리지 않았나? 빨리 회선을 연결해라!”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아군은 보시는 바대로 이기고 있습니다. 어째스 후퇴하는 겁니까!”


  프펜더 소장이 스크린을 가리킨다. 눈에는 분노의 색이 있다.

  “…….”

  “조금이면, 앞으로 조금이면 발렌슈타인의 목을 딸 수 있습니다! 어째서 지금 후퇴명령을 내리는 거니까!”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프펜더 소장에 대한 분노보다도 피곤함을 느꼈다.

  “프펜더 소장. 적의 우익 예비는 어디에 있나?”

  “예비?”


  내 말에 프펜더 소장은 의심쩍다는 듯이 답했다. 어리석은……. 참모가 전황에 일희일비해서 어떻게 하나. 어째서 전국 전체를 보려하지 않는가. 아니, 그건 나도 마찬가진가. 이렇게 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역시 그에게 미치지 못하나……. 아직이다. 아직 포기하지 마라. 승부는 나지 않았다.


  “적의 예비는 점점 진형을 이동하고 있다. 이제 곧 클라이스트 대장의 측면을 물어뜯겠지.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좌익은 무너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후퇴하는 거다.”

  내 말에 순식간에 함교의 흥분이 사라졌다. 모두 불안한 눈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구, 궁핍한 술수입니다. 속아선 안 됩니다. 설령 저게 클라이스트 대장의 측면을 찌른다 하더라도 그 전에 발렌슈타인을 쓰러뜨리면 이쪽의 승리입니다.”

  “…….”

  “각하!”


  프펜더 소장의 눈에 핏발이 서있다. 현실과 소망의 구별도 하지 못하게 됐나…….

  “아직도 모르겠나! 적의 우익은 점점 진형을 갖추고 있다. 이건 함정이다. 우리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그리고 우리 군의 좌익은 그 함정에 점점 빠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서둘러라!”


...


제국력 488년 3월 4일 00:00. 브라운슈바이크 함대 기함 베를린.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각하.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에게서 통신이.”

  “그라이프스가?”

  내 말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의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화면에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 늦어 페르너 준장도 나타났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다.

  “각하. 지금부터 후퇴명령을 내립니다. 바로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후퇴명령?”


  공작의 표정에는 의심의 색이 있다. 우세하게 공격하고 있는데 어째서 후퇴하는가. 그런 생각이겠지.


  “후퇴하는 건가.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예. 가이에스하켄을 이용하여 적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었습니다만, 함정에 걸린 건 이쪽인 것 같습니다. 적은 이쪽의 좌익을 점점 포위하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조급히 후퇴해 주십시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말에 새삼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봤다. 확실히 적은 점점 진형을 취하고 있다. 이쪽은 눈앞의 화면에 보이는 도망치는 적의 모습에 눈을 뺏기고 있다. 이쪽의 우위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날 봤다. 아마도 총사령관의 의견을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내가 끄덕이자 공작도 크게 끄덕였다.

  “알았다. 바로 후퇴하지. 하지만 적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까?”


  공작의 말에 침묵이 떨어졌다. 확실히 공작의 걱정도 당연하다. 그리고 불안은 그 외에도 있다.“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대로 가면 전멸합니다.”

  “그렇지. 전멸하는 것보다는 낫나…….”


  “아무튼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안으로 후퇴하십시오. 거기까진 적도 쫓지 못할 겁니다.”

  확실히 그렇겠지. 하지만 적이 그걸 허락할까? 내 의문을 입에 담은 건 안스바하 준장이었다.


  “하지만 적도 그건 상정한 바겠지요. 혼전 상태로 끌고 가 병행 추격 작전을 노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경우 가이에스하켄은 쏠 수 없습니다. 조금씩 적에게 우위를 넘겨줄 뿐입니다.”


  “그럴 경우 아군을 포함해서 적을 날려버립니다.”

  “!”

  “그라이프스. 진심인가? 아군사살을 하겠단 건가?”


  “진심입니다. 아군을 포함해서 적을 날려버리는 걸로 적의 추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것밖에 수가 없습니다.”

  “소관도 총사령관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아연해하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대해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페르너 준장이 아군사살을 권했다. 두 사람 모두 깊이 생각했는지 고뇌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다. 확실히 그것밖에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공작도 같은 생각이었겠지. 천천히 끄덕였다.

  “……알았다. 바로 후퇴하도록 하지.”


  통신이 끊어진 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엄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안스바하 준장이 공작에게 질문했다.

  “공작. 왜 그러십니까?”

  “안스바하. 슈트라이트. 모두 얌전히 후퇴해주리라 생각하나?”

  공작의 질문에 나와 안스바하 준장은 답할 수 없었다. 공작이 말한 대로다. 가장 큰 문제는 그거겠지…….


...


제국력 488년 3월 4일 00:3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각하. 메르카츠 제독의 통신입니다. 적이 후퇴를 시작했다고.”

  오퍼레이터가 목소리를 높여 보고했다. 화면에는 후퇴하기 시작하는 적 함대의 모습이 있다. 아무래도 그라이프스도 눈치 챘나…….


  “각하, 정면의 적이 공격합니다!”

  발트하임이 경악하며 소리를 높였다. 전군이 후퇴를 시작하는 와중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만이 공격하고 있다. 공적에 눈이 팔렸나. 예상한 일이지만 어리석은…….


  “전군에 명령. 반격하라!”

  “예.”

  내 명령에 오퍼레이터가 반응했다. 하긴, 메르카츠는 이미 반격을 취하고 있겠지. 당연히 좌익은 메르카츠의 지시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나머진 내가 담당하고 있는 우익이다.


  “바렌, 루츠 제독에게 명령! 바로 클라이스트 함대 측면을 찔러 격파하라! 비텐펠트 제독에겐 하일만 자작의 함대를 공격하라 전해주세요.”

  “예.”

  “참모장, 전 함선에 명령. 헬더 자작의 함대를 공격하라!”


  클라이스트는 정면에서 뮐러, 파렌하이트, 측면에서 바렌, 루츠의 공격을 받게 된다. 게다가 하일만 자작은 후퇴행동에 들어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그의 지원은 없다. 클라이스트는 예상 외로 벅찬 상대지만, 4배의 적을 상대 한다면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 뒤엔 그들을 하일만 자작, 헬더 자작의 후방으로 돌린다. 이걸로 적의 좌익에게 이겼다. 나머진 아이제나흐와 켐프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르나프 남작을 어디까지 두들길 수 있을까다. 두 사람이 그들의 후퇴를 막을 수 있다면, 그쪽의 뒤에도 함대를 돌릴 수 있겠지. 유감이로군. 그라이프스. 승패를 정하는 건 그쪽의 우익이 아니다. 이쪽의 우익이다. 네가 지휘를 반쯤 방폐한 좌익이, 널 패배로 몰아가겠지…….


...


제국력 488년 3월 4일 1:00. 브라운슈바이크 함대 기함 베를린.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각하!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의 함대가 후퇴하지 않습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함대를 계속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됐다. 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있는 건 절망감뿐이다.


  안스바하와 슈트라이트도 아무 말 없이 화면을 보고 있다.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맞았으면 하는 예상은 항상 빗나가고, 맞지 않았으면 하는 예상만이 현실이 된다. 대신 오딘은 굉장히 심술궂은 신인 것 같다. 사람에게 희망보다도 절망을 주려고 한다.


  함교는 웅성거리고 있다. 소용없을 거라곤 생각했다. 이미 그라이프스가 설득을 하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에게 명령해 그들 간의 통신을 연결했다. 나는 맹주다. 마지막까지 그 책임을 던져선 안 되겠지.


  화면에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이 나타났다. 두 사람 모두 흥분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눈이 이상할 정도로 핏발이 서 있다. 발렌슈타인의 목에 흥분하고 있는 거겠지.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 병사를 물려라. 후퇴명령이 나왔을 것이다.”

  “어째서 후퇴하는 겁니까! 앞으로 조금이면 저 애송이의 목을 딸 수 있습니다. 물러설 수 없습니다!”

  “하일만 자작의 말이 맞습니다. 공작과 총사령관은 적을 너무 두려워합니다. 그래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일만 자작은 모르는 바도 아니다. 이게 첫 출진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키포이저에서 실전을 경험한 헬더 자작까지 눈앞의 먹잇감에 눈이 팔리다니…….

  “경들은 힐데스하임 백작과 같은 실수를 저지를 생각인가. 병사를 물리는 거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전 저자의 양친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의심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저자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를 이제야 죽일 수 있습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저자는 우리를 멸하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들은 끝장입니다. 공작이 병사를 물리겠다면 우리들만이라도 저자를 쫓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은 통신을 끊었다.


  공포인가. 저 두 사람을 움직이게 한 것은 욕심이 아니라 공포…….

  “안스바하, 슈트라이트, 난 실수했던 건가.”

  “…….”

  내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답하지 않았다. 모르는 건가. 아니면 나와 같은 마음인 건가.


  “나는 그들이 자신의 지위, 권력을 지키는 것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와 마찬가지로, 멸망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


  “나는 멸망할 것을 각오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별 수 없는 일이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각오가 없었다. 없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는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슈트라이트가 무슨 말인가 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끊었다.

  “각하, 카르나프 남작에게서 통신입니다!”

  “이런이런. 바쁘구먼.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할 수 없는가……. 연결하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이 후퇴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카르나프 남작은 지금까지 양족의 원호를 받으며 싸워왔다. 적어도 가이에스하켄을 쏘기 전까진 그랬다. 그게 이 후퇴에 와서 헬더 자작의 원호를 받지 못한다. 불안하겠지. 표정이 굳어있고 눈이 동요하고 있다.


  “별 수 없다. 그들은 방치해라.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명령대로 후퇴하는 거다.”

  “그래서야 헬더 자작과 하일만 자작은…….”

  “카르나프 남작. 우리들은 그라이프스 총사령관과 연계하여 후퇴한다. 알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클라이스트 제독이 고립되고 맙니다.”


  카르나프 남작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 말대로다. 클라이스트는 고립한다. 그리고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는 적에게 포위되고 있는 클라이스트의 함대가 보이고 있다.


  “카르나프 남작, 우리들은 그라이프스 총사령관과 연계하며 후퇴한다. 늦으면 클라이스트처럼 포위된다. 살아남을 것을 우선해라!”

  “공작…….”


  아연해하는 카르나프 남작을 남기고 통신을 끊었다. 살아남는다. 하지만 뭘 위해서 살아남는가? 3개 함대를 잃었다. 손해는 더욱 늘어나겠지. 아마도 더 이상 전투는 무리다. 뭘 위해서 살아남는가?


...


제국력 488년 3월 4일 3:00. 그라이프스 함대 기함 비스바덴.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이제야, 이제야 함대가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까지 후퇴했다. 적은 이제 쫓아오지 않는다. 가이에스하켄을 두려워한 거겠지. 혹은 쫓을 필요도 없다. 그런 걸지도 모른다.


  반격에 나선 메르카츠 제독이 이끄는 적 좌익에 아군은 철저하게 박살났다. 고속이동을 행하여 바르텐베르크의 측면에서 배후로 나온 적의 예비에 의해 바르텐베르크, 람즈베르크 백작의 함대는 괴멸했다.


  남은 함대는 하우징거 남작, 콜비츠 자작, 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리고 카르나프 남작의 5개 함대. 병력은 5만 척도 되지 않는다. 통솔되지 않는 아군을 이끌고 후퇴전. 피로와 허무감만이 남았다.


  침울해진 함교에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울렸다.

  “각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통신입니다.”

  “알았다.”


  화면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나타났다.

  “그라이프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공작의 얼굴은 초췌하다. 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이다. 거기에는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공작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사실이 날 더욱 채찍질했다.


  “면목 없습니다.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패배는 제 책임입니다. 총사령관으로 임명해주신 공작의 신뢰를 배신했습니다.”

  “그렇지 않네. 그라이프스. 경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싸울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좀 더 무참하게 패배했을 거야. 경에겐 감사하고 있네. 잘해주었네.”


  공작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다음 싸움에 대해서 공작은 입에 담지 않았다. 이제 이 이상 싸울 수 없다. 싸워도 자멸할 뿐이거나, 아니면 배신자가 나올 뿐이다. 이제 공작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총사령관인 나의 역할이겠지.


  “그라이프스. 부탁이 있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럼, 도망쳐주게.”

  “!”


  도망쳐라? 내게 도망치라고…….

  “이제 이 이상 싸울 수 없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혀도 개죽음일 뿐이겠지. 그 말로는 비참할걸세……. 총사령관인 경이 도망친다면 다른 이들도 도망치기 쉽겠지. 요새에 돌아가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하네. 거기엔 딸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라이프스.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전장을 이탈합니다.”

  “미안하군. 그라이프스. 경에게 괴로운 일을 맡겨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마지막에 큰 역할을 맡게 되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공작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공작에게서 전군에 대해 전장을 이탈하라는 통지가 있었다. 내 함대가 전장을 이탈한다. 잠시 뒤 모두가 내 함대의 뒤를 따른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는 공작의 함대만이 돌아간다.


  아마도 모두가 총사령관임에도 불구하고 도망친 날 비난하겠지. 하지만 이걸로 엘리자베트님을, 사비네님을 지킬 수 있다. ‘거기엔 딸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라이프스. 부탁하네.’ 공작의 그 말이 생각난다. 공작. 저는 긍지를 가지고 최후의 일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공작의 함대를 향해 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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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3월 3일 21: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이제 곧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갑니다.”

  발레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주의를 환기했다.

  “오퍼레이터에게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그리고 적 함대의 움직임에 주의하도록 전해주세요. 어떤 사소한 거라도 보고하도록.”

  “예.”


  발레리가 오퍼레이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걸 들으면서 전술 컴퓨터 화면을 봤다. 화면에는 아군이 적을 밀어붙이는 상황을 표시하고 있다. 비텐펠트 켐프의 돌진은 과연 대단하다.


  그라이프스가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면, 카르나프 남작, 하일만 자작은 이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걸 알았겠지. 그럼 가이에스하켄을 쏘든가, 혹은 예비를 내보내 이쪽의 공세를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적의 예비는 움직이지 않는다. 양군 모두 예비를 쓰지 않고, 그라이프스가 준비한 예비 병력은 이쪽에 비해 적다. 그걸 생각하면 예비는 쓰기 힘들겠지. 게다가 여기서 예비를 써도 열세를 조금 더 견딜 뿐이다. 대세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라이프스가 비장의 패로서 예비를 쓰려 한다면 전국을 바꿀 결정적인 장면에서 쓰려 할 것이다. 역시 여기선 가이에스하켄을 이용하려 하겠지. 괜찮다. 여기까진 다소 차질이 있었지만 나의, 아니 작전회의의 상정 대로다. 그리고 그라이프스에게 있어서도 상정 대로겠지.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후의 전개를 그라이프스는 어떻게 읽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들은 그라이프스의 생각을 어디까지 읽었는가. 거기가 승패를 나눌 것이다.


  “적 함대, 회피행동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함대, 급속대피! 정면의 적과 같은 방향으로 전속으로 대피하라! 적은 가이에스하켄을 사용한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와 나의 명령에 순식간에 함교의 공기가 긴박해졌다. 오퍼레이터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피명령을 내기 시작한다. 이 함교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소란이다. 정면의 헬더 자작이 천정 방면으로 대피하고 있다. 내 함대도 같은 방향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비추는 영상에 우익부대가 회피행동을 취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모니터에 표시에는 아직 거기까지 비추고 있지 않다. 모니터에 반영하기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주포를 발사하려하고 있습니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빨리 회피하는 거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발트하임 참모장이 포효하는 듯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당황하는 것 같은 발트하임의 표정이 웃겼다. 내가 알고있는 한 총기함 로키가 이렇게까지 긴박한 소란에 싸인 적은 없다. 무심코 얼굴이 풀렸지만, 발레리가 엄한 표정으로, 남작부인이 기가 막힌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서둘러 표정을 고쳤다.


  실제로 웃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화면에 보이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어느 한 점이 급속히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곧 가이에스하켄이 발사되겠지. 겨드랑이 아래가 끈적하게 기분 나쁜 땀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함선이 사정거리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겠지. 단지 적과 마찬가지 방향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문제는 적이 아군을 죽여서까지 이쪽에게 치명상을 입히려할지 아닐지다. 작전회의에서도 그게 문제가 됐다.


  적에는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가 있다. 그 두 사람이 아군사살 때문에 한직으로 쫓겨났다. 아마도 아군사살은 업을 것이다. 하지만 한다면 헬더 자작과 날 노리겠지. 나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잘 모르겠다. 문제는 그라이프스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그게 일단 첫 번째 승부처가 된다.


  “가이에스하켄, 옵니다!”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지른다. 그것과 동시에 스크린에 거대하고 새하얀 빛이 작렬한다. 빛의 다발이 우주를 뚫고 지나갔다. 화면의 입광량이 조율되어 있기에 볼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실명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에너지량이다. 확실히 토르 해머에 필적한다. 직격하면 한 순간에 증발했겠지. 하지만 난 살아있다. 첫 번째 승부에선 이겼다는 거다.


  “참모장. 피해 상황을 확인하세요. 그리고 우익부대 전부에 후퇴명령을.”

  “예.”

  발트하이미 지시를 내려고 하기 전에 오퍼레이터가 소리를 질렀다.


  “전방의 적, 공격을 걸어옵니다!”

  발트하임이 날 봤다. 그 시선을 받고 화면을,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봤다. 확실히 스크린에선 헬더 자작이 공격을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모니터는 적이 총 반격을 개시하고 있다는 걸 보이고 있다.


  “각하…….”

  “참모장. 방금 전의 명령을 실행하세요. 그리고 후퇴는 가능한 한 무참하게 하도록.”

  “예.”


  난 발트하임이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는 걸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화면을 봤다. 적의 예비가 움직이고 있다. 목표는 어디지? 나인가, 아니면 메르카츠인가……. 날 향해서 오면 성가시겠지만. 어디, 어느 쪽이냐?


  적의 예비가 케슬러 방면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적은 이쪽의 좌익을 치려는 것 같다. 후방으로 나오려는 건가. 혹은 케슬러, 클레멘츠를 치려는 건가. 뭐, 그건 메르카츠의 책임범위다. 난 뿔뿔이 흩어진 우익을 수습해야…….


  그라이프스. 알고 있나? 서로의 함대 절반이 뿔뿔이 흩어졌다. 넌 남은 절반으로 승부를 걸려 하고 있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진 네 좌익은 누가 수습하지? 전면의 함대를 공격하며 좌익을 수습한다. 한다고 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 보나? 나라면 망설일 부분이겠지.


  내겐 메르카츠가 있다. 그리고 내 부대는 훈련된 정규군이다. 그러니 난 우익의 재편과 반격에 전념할 수 있다. 하지만 네겐 좌익의 재편성과 공격을 위임할 인물이 없다. 그리고 네가 이끄는 군대는 통솔이 먹히지 않는 귀족연합군이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1:10. 메르카츠 함대 기함 네르트링겐.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가이에스하켄이 우주를 찢었다. 무시무시한 에너지파였지만, 아무래도 아군의 피해는 적은 것 같다. 함교 크루도 모두 화면에 눈을 뺏겼다.


  “슈나이더 소령.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안부를 확인해주게.”

  “예.”

  내 말에 정신을 차린 슈나이더 소령이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다. 사령장관은 무사하다. 믿는 거다. 그런 생각에 답하는 듯이 오퍼레이터가 반응했다.

  “총기함 로키를 확인했습니다. 총기함에게서 우익부대에 대해 후퇴 명령이 나왔습니다.”

  “음.”


  예정대로다. 안심하는 한 편 긴장이 내 마음을 묶는다. 지금부터 아군 좌익은 내 관리하에 들어온다. 8개 함대, 약 10만척이 내 지휘로 움직이는 거다. 별 수 없는 긴장감이 몸을 감싼다.


  “각하. 적이 공격을 걸어옵니다.”

  슈나이더 소령이 긴장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전면의 적이 공격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그라이프스 대장은 전면공세에 나선 것 같다.


  아군의 후퇴명령을 새삼 내린다. 그 명령을 전하기도 전에 오퍼레이터가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적, 예비 부대를 투입했습니다!”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 적의 예비부대, 2개 함대가 이쪽을 향해 오는 것이 보였다. 목표는 케슬러 제독의 측면, 혹은 후방인가. 성가신 일이 됐다. 오퍼레이터에게 케슬러 제독 사이의 통신을 열라고 명령했다.


  “케슬러 제독. 아무래도 예비가 그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그런 듯합니다. 조금 일이 성가셔졌군요.”

  화면에 나온 케슬러 제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예비를 그쪽으로 향하게 하려 하네만.”

  케슬러 쪽에서 예비를 보내달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 이쪽이 먼저 말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케슬러 제독은 조금 생각하고 거절했다.


  “……아뇨. 예비 투입은 멈추십시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쪽에도 생각이 있습니다.”


  케슬러 제독이 씨익 웃으며 답하고, 그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적이 배후를 찔러 올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측면에서 포위를 선택할 거라고. 몇 번이나 그의 의견에 끄덕이며 새삼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신뢰가 두터운 이유를 이해했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2: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적이 가이에스하켄에 입은 피해는 거의 없었다. 적은 이쪽의 함대에 맞춰 회피행동을 취한 것 같다. 아군사살을 피했기 때문에 손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이에스하켄을 쓴 덕분에 아군의 좌익은 괴멸의 위기에서 해방됐다.


  지금 아군의 좌익은 후퇴를 하는 적을 쫓아 공격을 걸고 있다. 적은 돌파, 혼전으로 몰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함대의 연계를 취하지 못하고 이쪽의 공격에 고전하며 후퇴하고 있다.


  차라리 에리히를 헬더 자작과 함께 소멸해버리면 좋았을까……. 그렇게 하면 적의 혼란은 지금과 비교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익이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가이에스하켄이 발사되기 전에 후퇴를 시작했다. 에리히가 회피행동을 취했기에 공세를 취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쪽은 전군을 가지고 반격을 개시하고, 예비를 써서 케슬러 함대의 측면을 찌르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손해를 주지 못하고 있다.


  케슬러 함대는 후퇴하며 클레멘츠 함대와 협력하여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폴겐 백작, 발데크 남작을 뿌리치고 있다. 역시 적의 철퇴가 빨랐다. 그런 만큼 적은 여력을 가지고 후퇴하고 있다.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군요. 적의 측면을 무너뜨리질 못합니다.”

  브러울러 대령이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대령의 표정이 쓰디쓰다.

  “…….”

  “측면이 아니라 배후로 돌아가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어째서 측면을 찔렀는가. 아마도 측면을 무너뜨려 절반을 포위하는 걸로 승리를 확정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러는 편이 적에게 큰 손해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다. 그리고 예비를 후방으로 보내면 그 시점에서 적이 후퇴한다. 전과가 충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귀족연합은 오합지졸이다. 이 한 번의 전투에서 승패를 정한다. 그 생각이 총사령관의 선택지를 묶었던 걸지도 모른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간 포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군은 우세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침묵하고 있던 우리들을 격려하는 듯이 감리히 중령이 말을 했지만, 브러울러 대령은 끄덕이지 않았다.


  “어떨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조금씩이지만 전열을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우측으로?”


  브러울러 대령의 말에 나와 감리히 중령은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를 봤다. 모니터에는 피아의 상황이 나와 있다. 확실히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함대를 우측으로 이동하여, 케슬러 함대는 후퇴하면서 폴겐 백작, 발데크 남작과 정면으로 가려하고 있다. 이래선 포위는커녕 후방에도 돌아갈 수 없다.


  잘 되고 있지 않다. 맘껏 공격할 수 없다. 지금은 유리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유리가 지속되는 건 아니다. 어디선가 결정적인 전과를 올려야 하지만, 그 계기가 보이질 않는다. 나와 감리히 중령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비를 후방으로 돌려도 잘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승기는 오히려 좌익에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좌익?”

  앵무새처럼 되묻는 내게 브러울러 대령이 끄덕였다.


  “보시는 바대로 적은 가이에스하켄을 피하기 위해 대피행동을 취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적은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공격을 특기로 하는 지휘관이 모여 있습니다만, 그들은 모두 방어가 서툰 듯합니다.”

  “과연.”


  확실히 화면에 보이는 적들은 고생하면서 도망치고 있다. 덧붙여 전선을 유지하지 못하기에 서로 원호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집결하려 하고 있긴 하지만, 공세에 나설 때의 기세는 어디에도 없다.


  “예비를 좌익에 보내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상외로 큰 게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예상외로 큰 것?”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입니다. 아군의 철퇴를 원호하기 위해서겠죠. 최후미를 맡으려는 듯합니다.”


  서둘러 화면을 다시 봤다. 거기에는 아군의 퇴각을 원호하며 적의 추격을 가로막는 함대가 있었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3: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정면의 적, 공격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정면의 적, 헬더 자작인가……. 끈질긴 놈이다. 넌 내 스토커냐! 아니, 끈질기게 쫓아오도록 만들고 있는 건 이쪽이다. 불만을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긋지긋하다.


  “우측에서 하일만 자작의 함대도 공격합니다!”

  하일만 자작. 이 녀석도 아까부터 끈질기다. 어지간히 날 죽이고 싶은 것 같다. 리메스 남작가의 일이 있으니까. 저 건은 카스트로프 공작이 한 짓이지만, 녀석들은 그걸 모른다. 나도 딱히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녀석들, 굉장히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무작정 공격을 걸어온다.


  “비텐펠트 제독에게서 입전! 명령을!”

  이 녀석이든 저 녀석이든 시끄럽다. 또 한숨이 나왔다. ‘명령을’인가. 자기가 철퇴행동을 원호하고 싶다고 하는 거지만, 각하다. 네가 꼴불견을 보이며 도망치고, 내가 후위를 맡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이 쫓아오지 않는다. 뭐, 마음은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사령장관에게 후위를 맡기고 도망치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겠지.


  “비텐펠트 제독에게 답신. 이쪽에게 신경 쓰지 말고 철퇴하라.”

  “예.”

  “전 함선에 명령. 정면의 함대 중앙에 주포 3연 제사. 쏴라!”


  내 명령과 함께 함대에서 주포가 3번, 헬더 자작의 함대로 쏴졌다. 한 순간 적이 혼란에 빠진다. 있는 힘껏 찔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 하일만 자작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계속해서 우측의 함대 중앙에 주포 3연 제사. 쏴라!”

  주포를 발사하고 적이 혼란에 빠지는 게 보였다. 이걸로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녀석들, 내 목을 따고 싶어서 정신이 없는 것 같다. 협력하는 걸 잊고 있다. 이거라면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메르카츠는 좌익을 잘 수습하고 있는 것 같다. 적의 예비는 케슬러 함대의 측면에 붙지 못했다. 그리고 메르카츠는 아직 예비를 투입하지 않았다. 그라이프스는 이제 손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좌익은 이겼다. 나머진 우익이다.


  아군의 우익부대는 조금씩 집결하고 있다. 켐프 함대는 아이제나흐 함대와 행동을 함께하며 후퇴하고 있다. 파렌하이트는 뮐러와 함께다. 적을 유인하며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앞으로 1시간 정도면 집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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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3월 3일 19:30. 그라이프스 함대 기함, 비스바덴.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지금까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봐도 될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클레이머 대장.”

  내 뒤에 클레이머 대장과 프펜더 소장이 대화하고 있다. 확실히 순조롭게 적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끌어들이고 있다.


  단, 내심 조마조마하면서다. 그 부분을 프펜더는 알고 있을지……. 클레이머 대장은 헌병 출신이니까 이해하지 못하도 어느 의미 별 수 없지만, 프펜더가 모르고 있다면 참모로서 신용할 수 없다. 불안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적도 솜씨가 없군. 이대로 가면 순순히 가이에스하켄을 먹게 되겠지.”

  “이렇게나 전장이 한정되어 있으면 적에게도 수가 없겠죠.”


  안되겠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상대를 얕보고 있다. 전장이 한정되어 있기에 적에게 수가 없어? 농담이겠지. 적은 뭔가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쪽은 아직 그걸 탐지하지 못하고 있다.


  “가능하면 가이에스하켄을 이 손으로 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걸 맞고 산산조각나는 적을 보고 싶었다.”

  “소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녀석들을 가지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라겔 대장, 노르덴 소장이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포로로 잡혔다. 그 이후, 이 두 사람은 자신이야말로 육전의 전문가, 참모의 톱이라고 자부하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이 지금 요새가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건, 요새에 두기엔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지 그 외의 것은 없다. 경우에 따라선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을 이용하려 들겠지.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적의 우익, 더욱 전진합니다.”

  오퍼레이터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좌익부대에 후퇴하라 명령해라.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곳까지 물러나도록. 그리고 적의 돌파를 허락하지 마라.”

  “예.”


  좌익 다음엔 우익도 후퇴다. 그리고 그 뒤엔 좌익만을 후퇴하게 만들어 적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로 유인한다. 다행히 적의 우익에는 발렌슈타인도 있다. 일격을 먹으면 적은 혼란에 빠지겠지. 그 시점에서 총세를 가지고 반격에 나선다. 문제는 그때까지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다.


  적은 반드시 이쪽 좌익의 돌파, 혹은 혼전을 노릴 것이다. 여기부터가 진짜 승부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의 통신을 열어라.”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9:3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페르너 준장. 순서를 확인하도록 하지. 이제 곧 아군의 좌익이 후퇴를 시작하네.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아슬아슬한 선까지 물러나겠지. 그 뒤에 우익이 후퇴하네.”

  “예.”


  스크린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모습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표정에 피로의 색이 있다. 하지만 총사령관의 어조는 확실하고, 시선에도 흔들림이 없다. 괜찮다. 총사령관은 침착하다.


  “그 뒤에 또 좌익을 후퇴하게 만들고, 적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내로 유인하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좌익을 천정, 천저 방향으로 대피하게 할 걸세.”

  “우익은 후퇴하지 않는 겁니까?”


  내 질문에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끄덕였다.

  “가이에스하켄으로 노리는 건 적의 우익이다. 다행히 우익에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도 있다. 일격을 가하면 적은 혼란하겠지. 그 틈을 타서 총 반격이다.”

  “알겠습니다.”


  “적은 잘 걸려줄까요? 이쪽이 대피하면 거기에 맞춰 대피할지도 모릅니다만?”

  “상관없다. 처음부터 적이 거기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총사령관의 말에 저도 모르게 나는 브러울러 대령, 감리히 중령을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공작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래서야 적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습니다만.”


  “가이에스하켄은 미끼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적을 한 척도 격침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적이 대피한 후, 가이에스하켄을 쏜 후에 예비를 적 좌익의 측면으로 보낸다. 노리는 건 케슬러, 클레멘츠 함대의 격파다. 이쪽 정면에서의 공격과 연동하면 적의 좌익을 괴멸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겠지.”

  “!”


  “과연. 괴멸상태는 무리더라도 케슬러, 클레멘츠 함대를 격파하면 적의 중앙을 돌파할 수 있다! 그런 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흥분 섞인 말에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은근한 미소를 보였다.


  “적의 좌익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당연하지만, 가이에스하켄을 회피한 우익도 당황하겠지. 아군의 좌익은 그걸 친다. 전군으로 총 반격.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

  “예.”


  가이에스하켄이 미끼인가. 아무래도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은 제 6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의 에리히를 모방하려는 것 같다. 총사령관은 함대결전으로 승리를 굳히려 하고 있다. 에리히들이 가이에스하켄을 회피하면, 당연하지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혼자의 힘으로 이쪽의 반격을 막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적의 예비겠지.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하지만 이쪽의 예비가 거리 면에서 보면 케슬러, 클레멘츠 함대에 먼저 달라붙을 수 있다. 케슬러, 클레멘츠가 무너지면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충분할 정도의 승산이 있다. 아까 전부터 불안해하던 감리히 중령도 지금은 얼굴에 홍조가 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말대로다. 에리히,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0: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각하. 적 우익,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갔습니다.”

  발트하임이 내게 주의했다. 적은 좌익에 이어 우익까지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갔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오고 말았다고 해야 하나.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들도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전 함대에 명령. 발퀴레는 그대들의 용기를 사랑하니.”

  “예.”

  발트하임은 대답을 하고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퍼레이터가 복창하고 명령을 확인하고 있다. 이 명령이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이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발퀴레는 그대들의 용기를 사랑하니.”인가……. 확실히 지금부턴 용기와 인내를 시험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적은 예상외로 끈질기다. 이미 전투를 시작하고 5시간이 지났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빨리 적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길고 지긋지긋한 시간이었지만, 지금부터 바빠질 것이다. 코코아를 마실 여유는 없어지겠지.


  이쪽 우익은 아직 실력 전부를 보이고 있지 않다. 비텐펠트와 켐프도 많이 쳐서 7할에서 8할 정도의 힘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미 한참 전에 적을 압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저면에 있는 건 카르나프 남작, 하일만 자작이다. 실전 경험 따위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손대중을 한 공격이라도 막는 것이 전부였겠지. 그런 그들이 진심으로 공격하는 두 사람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성가신 일이다. 손대중하면서 적을 공격하라니……. 하지만 처음부터 전력으로 공격하면, 적은 이쪽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요새 근처까지 철퇴하여 나오지 않을 위험이 있다. 그렇게 하면 조기진압은 바랄 수 없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까지 끌어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뭐, 그것도 좌익부대보다는 낫겠지. 이쪽이 전력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보이기 위해 좌익에겐 손을 빼고 공격하라고 해뒀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휘권도 분리했다. 우익은 내가, 좌익은 메르카츠가. 내가 전력으로 공격하고, 메르카츠는 신중하게 공격하고 있다. 적이 그렇게 오해해 준다면 좋다.


  성가신 건 클라이스트와 바르텐베르크다. 이 녀석들은 실전경험이 풍부하니까 적당한 공격은 꿰뚫어볼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클라이스트에겐 파렌하이트와 밀러, 바르텐베르크에겐 메크링거와 렌넨캄프를 배치했다. 두 개 함대를 상대하는 거다. 벅차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겠지.


  그라이프스는 이쪽을 좀 더 요새로 끌어들이고자 생각하겠지. 지금은 아직 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곧 그건 불가능하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때 그라이프스는 어떻게 할지…….


  버티려고 하면 분쇄 당한다. 도망치면 진형이 무너져 패배가 정해진다. 그렇다면 그라이프스는 가이에스하켄을 써서 진형을 만회할 수밖에 없겠지. 예정보다도 빨리 요새주포를 쏘게 된다. 당연히 이쪽도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쉬워진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0:3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준장, 적의 공격이.”

  “알고 있다. 주포의 발사 준비는?”

  “언제라도.”

  감리히 중령의 표정에 긴장이 보인다. 브러울러 대령의 표정도 굳어있다. 나도 아마 비슷하겠지.


  아군이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부터 적 우익의 공격이 한층 격렬해졌다. 아마 혼전으로 몰고 가 이쪽이 가이에스하켄을 쏘지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상황은 좋지 않다. 이대로라면 돌파당할 수밖에 없다.


  “준장. 예정보다도 빨리 주포를 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군요. 대령. 하지만 이쪽의 목적은 예비를 써서 적의 좌익을 공격하는 겁니다. 문제는 없겠죠.”


  내 말에 브러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 끄덕였다. 그래. 문제는 없는 거다. 조금쯤 적의 공격이 강해졌다고 해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에게서 통신입니다. 화면에 비칩니다.”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화면을 봤다. 화면에 긴장한 표정의 공작과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얼굴이 나타났다.


  “적의 공격이 격렬해졌다. 억지로라도 혼전으로 몰고가려 하고 있어.”

  “…….”

  “페르너 준장. 적은 이제 곧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네. 그 시점에서 가이에스하켄으로 적을 공격해주게.”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표정이 쓰다. 예상 이상으로 적의 공격에 괴로워하고 있다.


  “조금 더 끌어올 수 없겠습니까? 그러는 편이 적을 혼란하게 만들기 쉽고, 역습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만.”

  내 의견을 각하한 건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아니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었다.


  “유감이지만 무리다. 카르나프 남작과 하일만 자작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아까 전부터 예비를 보내달라고 비명처럼 구원요청을 하는 참이었다.”

  공작도 총사령관도 표정이 괴롭다. 쫓기고 있는 것이다. 예비를 내놓으면 적의 좌익을 공격할 수 없다. 내놓지 않으면 진형이 붕괴한다. 질서를 갖춘 행동 따위 할 수 없어진다.


  “알겠습니다. 적이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에 들어온 시점에서 공격합니다.”

  내 말에 공작과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끄덕였다.

  “음. 부탁하네. 페르너. 그리고 실수로라도 아군을 쏘지 말게나.”

  “예.”


...


제국력 488년 3월 3일 21:00. 그라이프스 함대 기함 비스바덴.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이제 곧 적 우익,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에 들어옵니다.”

  “가이에스부르크에게서 입전입니다. 10분 전.”

  오퍼레이터의 말에 합교의 공기는 한 순간 긴장을 높였다. 단 그 긴장감에는 불안 외에도 희망도 있겠지. 모두의 표정에는 기대하는 기색이 있다.


  “앞으로 5분에 좌익에 대피명령을 내려라. 틀리지 마라. 5분 전이다.”

  내가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리자 프펜더 소장이 질문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괜찮겠습니까? 조금 시간이 적다고 생각합니다만.”

  “5분으로 충분하다.”


  저도 모르게 엄한 어조가 됐다. 가이에스하켄은 미끼인 거다. 한 척도 격침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페르너 준장에게 말하는 걸 이 남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공작도 아군 희생자를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만만찮은 적보다 무능한 아군이 훨씬 신경에 거슬린다…….


  내가 불쾌하다는 걸 이해했겠지. 프펜더 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났다. 클레이머 대장도 아무 말 없이 대기하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가 생기지만 별 수 없다. 나머진 시간이 지나는 걸 기다릴 뿐이다.


  “앞으로 5분입니다! 좌익에 대피명령을 내립니다!”

  “서둘러라!”

  오퍼레이터가 앞으로 5분이라고 고했을 때, 난 슬슬 기다리다 지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아직 5분 지나지 않았나?’하고 오퍼레이터에게 소리칠 참이었다.


  “아군 좌익, 대피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적 우익도 대피행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었는데도 적은 냉정하다. 이쪽의 행동을 보고 가이에스하켄이 오리라 판단했다. 이래서야 가이에스하켄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주는 건 힘들다.


  역시 가이에스하켄은 결전병기에는 부족하다. 그건 요즘 최근 이제르론 요새 공략전을 보면 안다. 반란군은 토르 해머를 극히 경계하고 있다.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일은 없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인가…….


  아군을 희생할 각오가 없으면 적을 유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클라이스트나 바르텐베르크도 틀리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아군사살’의 오명을 받았지만, 적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화면은 대피행동을 하는 적, 아군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비추고 있다. 요새의 한 점이 급속히 새하얗게 빛났다. 그것과 동시에 적 아군의 대피행동에 박차가 가해졌다.


  가이에스하켄의 발사를 기다리고 있던 내 귀에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적 좌익, 후퇴합니다!”

  “!”


  말도 안 되는. 무슨 일이냐. 어째서 지금 후퇴하나! 페르너 준장이 우리들을 희생해서라도 일격을 적에게 가하리라고 메르카츠 제독은 판단했나? 아니면 만일을 위해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후퇴했나? 하지만 이대로 두고 보면 적을 놓치고 만다!


  “적 좌익에 예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후퇴하고 있습니다!”

  후퇴하고 있다……. 이쪽의 움직임을 읽은 건 아니라는 건가. 그럼 취할 수는 하나다! 망설이지마라. 세바스찬 폰 그라이프스!


  “전군에 명령, 반격하라!”

  “예.”

  “폴겐 백작, 발데크 남작에게 전하라. 가이에스하켄 발사 후, 적 좌익 부대의 측면을 공격, 분쇄하라!”

  “예.”


  내가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새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에너지파가 우주를 찢었다. 반격 개시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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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3월 3일 15:00. 브라운슈바이크 함대 기함 베를린.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적과의 거리, 100광초.”

  “적, 옐로존에 돌입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떨리는 목소리에 함교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실전은 오랜만이다. 긴장이 몸을 감싼다. 자신의 심장이 맥동하는 것이 확실하게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정도로 자신은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함교는 점점 더 조용해진다.


  클롭슈톡 후작의 반란을 진압한 일도 있지만, 저건 전투라고 할 수 없다. 곁에 있는 안스바하 준장도 다소 긴장을 한 듯이 보인다. 그도 이만한 회전은 처음일 것이다. 긴장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지휘관석에 앉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아까 전부터 지긋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전술 컴퓨터의 화면을 본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너 준장의 말이 신경쓰입니까?”


  내 질문에 공작은 잠자코 끄덕였다.

  “신경 쓰이는군. 발렌슈타인은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페르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라이프스의 말대로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아무래도 불안하다.”


  출격 직후, 페르너가 적의 진용에 대해서 알려왔다. 그리고 그의 생각도. 그의 말대로 적의 진용은 부자연스럽다. 의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냐고 한다면 페르너 자신조차 단언하지 못했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말대로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알겠지만, 적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페르너들에게 맡기지요. 그들 쪽이 후방에 있기에 대국적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적입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지휘에 집중해주십시오. 잠시 동안은 방어하는 것만으로 벅찰 테지요.”


  “카르나프 남작, 헬더 자작, 하일만 자작……. 괜찮으리라 생각하나?”

  공작이 무거운 어조로 질문했다. 나를 보는 공작의 표정에는 불안이 있다. 그들의 전면에 위치하는 건 켐프, 발렌슈타인, 비텐펠트. 버틸 수 있을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헬더 자작은 이미 실전을 경험했습니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선 충분히 움직여줬다고 합니다. 전장에서 뭐가 필요한지 이해했겠죠. 문제는…….”


  “카르나프 남작, 하일만 자작이군.”

  “예. 그들은 실전의 엄함을 모릅니다. 공작과 헬더 자작, 그리고 클라이스트 대장이 지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스바하 준장의 대답에 공작은 떫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하긴 이런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그걸 염두에 두고서 이 포진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지원이라고 해도 이쪽도 정면의 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태에서 켐프, 발렌슈타인, 비텐펠트를 막을 수 있을까? 혼전은 피해야만 한다. 엄한 상황으로 몰리게 되겠지.


  적이 점점 다가온다. 그와 함께 함교의 긴장감도 높아진다. 싸움이 시작되면 많은 병사들이 죽게 된다. 하지만 이 긴장감을 계속해서 견디는 것과 싸움에 몰두하는 것 중 병사들에게 있어서 어느 쪽이 편할까?


  “적군, 옐로존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이제 곧 시작한다. 아마 포수의 손가락은 이미 발사 버튼 위에 올라가 그들은 숨을 쉬는 것조 잊고 그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


  “적, 사정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쏴라!”

  비명과도 같은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에 공작의 굵고 낮은 소리가 응했다. 그리고 기세 좋게 오른손이 내려간다!


  빛의 다발이 수백만 개, 귀족연합군에서 적을 향해 뿌려졌다. 동시에 적에게도 마찬가지로 빛의 다발이 귀족연합군을 덮친다. 결전이 시작됐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7:00.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적은 역시 우익과 좌익으로 지휘권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우익과 좌익의 기세가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예비가 움직였습니다…….”


  전술 컴퓨터의 화면을 보면서 브러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 말하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고 1시간 반이 지났다. 역시 적은 우익의 공세가 강하다.


  그리고 예비가 움직였다. 당초 중앙에 있던 4개 함대가 2개 함대씩 제각기 에리히,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에게 나뉘었다고 봐야겠지만, 너무나도 빤히 보이는 행동이다. 함정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전황은 좋지 않다. 켐프,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공세에 평판이 있는 사내들이 그 평판에 부끄럽지 않은 공격을 가하고 있다. 아군은 방어 일색으로 순식간에 밀려서 후퇴하고 있다.


  적의 우익이 누르고, 그에 의해 아군의 좌익은 별 수 없이 후퇴. 그리고 아군의 우익은 적의 우익, 혹은 예비에게 측면을 찔릴 위험이 있어 좌익이 후퇴하는 것에 맞춰 후퇴, 그리고 적의 좌익이 전진한다.


  전투를 시작하고 나서의 전투상황이다. 혼전상황이 되지 않았다는 것, 궤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다행이지만, 그 외에 좋은 요소가 없다. 덕분에 사령실의 공기는 싫을 정도로 무겁다.


  두 사람의 소녀도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울고 있지 않는 게 다행이다. 여기서 울기까지 하면 사기가 뭉텅 잘려나가겠지.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위험해서 할 수 없다. 어디의 바보가 두 사람을 유괴해서 이용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거다. 눈앞에 둘 필요가 있다.


  “페르너 준장.”

  브러울러 대령의 목소리에 시선을 향하자 망설이면서 질문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분이십니까?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만.”


  화면에는 격렬한 기세로 공격하는 에리히의 함대가 보이고 있다. 그 기세는 켐프, 비텐펠트, 파렌하이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그 기세에 끌려가듯 뮐러, 아이제나흐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외견대로의 성격이 아닙니다. 오히려 꽤나 격렬한 부분이 있는 사내입니다. 평소엔 신중하지만 여차하면 어떤 내기라도 크게 걸어옵니다. 아니, 본인은 내기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보고 나오는 거겠지만, 적으로 돌리면 얄미운 상대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혼전을 노리고 있는 걸까요? 혹은 좌익의 격멸?”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좌익의 공략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미끼일 가능성도 버릴 수 없지요. 진짜 목적은 우익일지도 모릅니다…….”

  “……우익입니까. 생각할 수 있는 일이군요. 확실히 적으로 돌리면 얄미운 상대입니다.”

  브러울러 대령이 얼굴을 찡그렸다.


  스스로 말하고 눈치 챘다. 화려하게 눈을 끌고 있는 적의 우익은 미끼일지도 모른다. 진짜 노리는 건 좌익을 이용한 공격이다. 지휘권을 나눈 건 그게 이유겠지. 이쪽이 에리히의 움직임에 휘둘리다가 틈을 보이면 메르카츠가 단숨에 공격한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의를 풀지 마라!


  전술 컴퓨터의 화면에 또 아군의 좌익이 밀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감리히 중령이 망설이면서

  “예비를 내보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제안했다.


  예비인가. 아군의 예비는 폴겐 백작의 1개 함대, 1만 3천 척. 발데크 남작의 절반 함대, 7천 척.합쳐서 2만 척이 있을 뿐이다. 적에게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적다. 그걸 지금 쓴다?


  “지금 예비를 쓰면 적이 예비를 쓸 때 대응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브러울러 대령. 이대로라면 아군은 후퇴할 뿐입니다.”

  “후퇴는 당초 예정했던 것이다. 적을 끌어들여 기회를 봐서 가이에스하켄으로 일격을 가한다. 그렇지?”

  말꼬리를 잡는 감리히 중령을 브러울러 대령이 보듬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적은 기세를 타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혼전, 혹은 돌파되어선 가이에스하켄을 쓸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아군까지 합쳐서 적을 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


  감리히 중령의 말에 브러울러 대령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상황은 좋지 않다. 아군은 계속 밀리고 있다.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어느 정도 상정한 일이다.


  문제는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을 때, 적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을지 없을지다. 예비를 써서 다소 여유를 가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령의 기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혹시 적, 아군을 함께 쐈을 경우, 그 때부터 귀족연합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 틀림없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다. 적을 끌어들이기 위한 소모품으로 쓰이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겠지. 에리히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공격을 걸고 있을 것이다.


  “경이 말하고 싶은 건 알겠다. 하지만 예비 투입을 판단하는 건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권한이다. 우리들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일이 아니야. 게다가 아직 돌파된 것도 혼전이 된 것도 아니야.”

  브러울러 대령이 감리히 중령을 달랬지만, 감리히 중령은 인정하지 않았다.


  “총사령관에게 의견을 진언해보면 어떻습니까?”

  “그건 그만두는 편이 좋겠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총사령관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어.”

  브러울러 대령이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동감이다. 후방에 있는 우리들이 총사령관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은 해선 안된다.


  “브러울러 대령의 말대로다. 중령.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을 믿도록 하지. 우리들이 총사령관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을 취하면, 전선의 지휘관들 중에도 같은 행동을 취하는 자가 나올 수밖에 없어.”


  “소관은 총사령관을 가볍게 보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도 있는 거다. 우리들은 총사령관의 입장을 약하게 하는 일을 해선 안돼.”

  감리히 중령은 마지못했지만, 내 말에 끄덕였다.


  “대령의 말대로 아직 돌파를 당한 것도, 혼전이 된 것도 아니야. 조금 침착하지. 중령, 적의 우익에 휘둘리지 마라. 좌익이 진짜라는 가능성도 있는 거다.”


  아군의 좌익은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조금씩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에 다가오고 있다. 예정대로다. 휘둘리지 마라. 침착하는 거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8: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꽤나 끈질기군요.”

  감탄하는 듯이 뤼네부르크가 말했다. 난 잠자코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 적의 좌익이 끈질기다. 뤼네부르크의 발언에 응하는 듯이 발트하임이나 슈마허도 빈번하게 적의 끈질김에 감탄(?), 혹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면 솔직하게 감탄할 수 있을 테지만, 싸우고 있는 본인으로서 잠자코 코코아를 마시면서 끄덕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지…….


  그라이프스의 지휘도 좋지만,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싸웠던 헬더, 클라이스트가 잘 싸우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그다지 기쁜 일이 아니다. 귀족연합군은 싸우면 싸울수록 끈질겨지고 있다. 마치 이쪽이 녀석들을 단련해주고 있는 듯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적이 끈질겨지는 건 다음이 없다는 공포심 때문도 있겠지만, 이길 수 있다는 희망도 있기 때문이겠지. 절망만으론 여기까지 정연하게 싸울 수 없다. 어딘가에서 자멸하게 된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주포를 이용하여 이쪽을 격파하려는 거겠지. 주포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가기까지 돌파하도록 만들지 않겠다. 혼전으로 만들지 않겠다. 적이 노리는 건 그런 것일 거다. 알고는 있지만, 역시 성가시다.


  화면을 보면 아군이 적을 밀어붙이고 있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우리 함대도 꽤 격렬하게 적을 공격하고 있다. 원래 분함대사령관 중에 투르나이젠이나 크납슈타인, 그릴파르처 등 유능한 지휘관들이 모여있는 거다. 이 정도는 해주겠지.


  그들은 원작에서 평가되면서도 어딘가 색이 바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원래 실력은 있다. 젊은 호프들인 거다. 지금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이상한 야심을 가지지 않고 무훈을 쌓아가면 다음 세대를 짊어질 사람들이 되겠지.


  투르나이젠, 크납슈타인, 그릴파르처, 알고 있나? 키포이저 성역 회전 전에 내가 말한 말을. 영웅 따위 되려고 하지 마라. 되려고 하는 순간 자신은 자신이 아니게 된다.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을 잃은 녀석에게 주변이 보일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자신도 주변도 보이지 않는 녀석이 된다. 그런 녀석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파멸 뿐이다. 너희들은 원작에선 파멸했다. 이 세계에선 파멸하지 말라고…….


...


제국력 488년 3월 3일 19:00. 제국군 총기함 로키. 클라우스 발트하임.


  전황은 결코 좋지 않다. 아군은 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돌파한 것도 아니고, 혼전 상태로 끌고 들어가 가이에스하켄을 봉인한 것도 아니다. 적은 점점 후퇴하며 이쪽을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 안으로 끌어들이려하고 있다.


  끈질기다. 실로 끈질기다. 우리들은 4시간 가까이 싸우고 있다. 적은 후퇴는 하고 있지만 혼란에 빠지진 않았다. 귀족연합군이 여기까지 정연하게 싸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적의 분전에 감탄의 소리를 지르는 중,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침묵을 유지한 채 전황을 보고 있다. 때때로 코코아를 마시지만 표정은 변함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참모장. 앞으로 얼마나 지나면 가이에스하켄의 사정거리로 들어갑니까?”

  사령장관이 시선을 전술 컴퓨터의 화면으로 향한 채 질문했다.


  “이대로 가면,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약 1시간 후, 아군이 들어가는 건 더욱 1시간 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대답에 슈마허 준장이 끄덕였다. 괜찮다. 틀리지 않았어.

  “앞으로 2시간입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군요.”


  내 대답에 사령장관의 은근히 끄덕이고 웃음을 보였다. ‘진짜 싸움’, 사령장관의 그 말에 함교의 공기가 긴장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와중, 사령장관만이 온화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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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3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코르넬리아스 루츠.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서 각 함대사령관은 총기함 로키로 집합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저번에 총기함 로키의 회의실에 집합하고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같은 회의실에서 저번과 마찬가지 순서로 모두가 앉았다.


  “생각보다 귀족들이 신중하군. 좀 더 간단히 폭발하리라 생각했는데…….”

  메크링거 제독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령장관의 도발은 꽤나 신랄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꽤나 신랄? 농담이겠지. 클레멘츠. 장미정원 운운에서 난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었다고.”

평소의 

  메크링거 제독의 말에 회의실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모두 서로를 돌아보며 웃고 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도 평소의 근엄함을 어딘가에 두고 잊은 듯이 얼굴을 피고 있다.


  “하지만 사령장관은 그다지 수준이 좋지 않다고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정말인가? 루츠 제독. 믿을 수 없군.”

  비텐펠트 제독이 의심쩍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몇 사람인가가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뭐,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엔 믿을 수 없었다.


  “사실이다. 비텐펠트 제독. 뤼네부르크 중장에게 들었으니 틀림없겠지. 통신을 끝낸 뒤에 꽤나 실망하시며 뤼네부르크 중장에게 부탁하는 편이 나았다 하셨다고 한다.”


  내 말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고, 다시 웃었다. 저만큼이나 신랄한 통신을 한 뒤에 납득하지 못하고 실망하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떠올린 거겠지.


  “이런이런. 문벌귀족들은 저 통신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무척이나 분노에 미쳤겠지. 하지만 그걸 억누른 거다. 녀석들, 방심은 할 수 없어.”


  로이엔탈 제독의 물음에 미터마이어 제독이 답했다. 그의 어조에는 쓴맛이 있다. 도발행위가 잘 되지 않았기에 겸연쩍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이들도 그런 걸 느꼈겠지. 웃음을 거뒀다.


  “끌어낼 수 없다는 건, 힘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렇게 되겠지. 귀족연합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하게 될거야.”

  “좋지 않군. 적이 노리는 바라는 거겠지?”

  켐프 제독과 렌넨캄프 제독의 표정이 그늘져 있다. 정말 동감이다. 사태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제 도발행위가 생각처럼 효과를 올리지 못하고 생각한 사령장관은 미터마이어 제독과 함께 스스로 출격했다. 우리들은 모두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사령장관은 “혼자가 아니다. 미터마이어 제독도 함께니까 괜찮다.”라고 웃으며 듣지 않았다.


  아마 사령장관은 도발행위가 잘 되지 않아서 면목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는 미터마이어 제독을 신경쓴 거겠지. 저건 미터마이어 제독의 책임이 아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다. 내가 해도 같은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책임을 느끼고 마는 것이 사람이다. 사령장관은 미터마이어 제독과 함께 출격하는 걸로 그에 대한 신뢰를 표시한 거겠지.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 함께 출격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힐데스하임 백작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사령장관의 도발행위는 꽤나 대담했다. 적 앞에 행진을 하는가하고 생각하면 장시간에 걸쳐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 더욱 진형을 바꿔 함대 훈련 흉내까지 냈다. 적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뒤집히는 일이었겠지만, 도발에 응하는 일은 없었다.


  하긴, 속이 뒤집히는 것은 사령장관도 마찬가지였겠지. 사령장관이 당초 생각했던 적을 도발하여 요새에서 끌어내어 싸운다는 방침은 실패한 것 같다. 3월 말까지 변경성역 평정까지 포함하여 내란 진압을 하려면, 꽤나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여기에 집합을 명령한 건 새로운 방침이 내려진다는 거겠지. 켐프 제독, 렌넨캄프 제독의 말대로 아마 힘으로 밀어붙이게 된다. 사령장관에게 있어서 마음이 무거운 명령이 되겠지.


  사령장관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전원이 기립하여 경례로 맞이하려 하자 사령장관은 손으로 그걸 막았다.

  “무용합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사령장관의 말에 곤혹을 느끼면서도 자리에 앉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묻는 것 같은 시선이 회의실에 가득 찼다. 사령장관은 초조해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표정에 초조함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전 요새 근처에서 싸움은 불리하다고 봤기에 적을 끌어내어 싸우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적을 도발하여 끌어내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사령장관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적의 목적은 명백합니다. 이쪽을 요새 근처로 끌어들여, 배수의 진을 펼치는 것으로 자신들을 궁지에 몰린 생쥐로 만들려는 겁니다. 그에 의해 건곤일척의 싸움을 걸려고 하는 거겠죠.”

  또 모두가 끄덕였다. 배수의 진, 궁지에 몰린 생쥐, 건곤일척, 그 말이 회의실에 무겁게 울린다.


  “생각해보면 하찮은 잔재주를 한 셈입니다. 저 통신 따위, 적에게 있어서 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였겠죠. 미터마이어 제독에게도 무의미한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조하는 어조였다. 사령장관의 표정에는 웃음이 있지만 쓴웃음에 가깝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경우, 적을 끌어내기 위해서 도발행위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사령장관의 책략이 무의미하다는 건 결과론이겠죠. 자신을 책망하는 건 그만두십시오.”

  케슬러 제독이 사령장관을 위로했다. 그 말이 맞다. 저 시점에서 도발이 실패로 끝나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겠지. 사령장관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귀족연합은 의외로 만만찮고 신중합니다. 클롭슈톡 후작의 반란진압시에 비교하면 꽤나 다릅니다만. 어찌된 일일까요?”

  로이엔탈 제독이 의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기분은 알겠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은 편한 싸움이 아니었다. 고전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좋다. 예상하고 있던 귀족들의 싸움과는 명백히 다르다. 힐데스하임 백작의 폭주가 없었다면 승리는 누구에게 굴러갔을지…….


  “필사적이라는 거겠지. 우리들이 이기면 귀족 그 자체가 힘을 잃는다. 권력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야.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인 거다.”

  로이엔탈 제독에게 답한 건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었다. 그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필사. 그 이상으로 성가신 건 없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뒤를 이었다.

  “그 필사적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잔재주 같은 도발로 이기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승리에 익숙해져서 적을 너무 가볍게 보고 만 것 같습니다.”

  사령장관의 목소리에는 쓰디쓴 울림이 있다. 어지간히 이번 실패를 신경 쓰고 있는 듯하다.


  “전군을 가지고 적과의 싸움에 임합니다. 조기에 내란을 진압할 필요가 있는 이상, 이쪽에서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세를 걸면 적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득책이라곤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사령장관은 서두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메크링거 제독이 간언했다.


  “그렇지요. 그 말대로입니다.”

  “그럼.”

  “메크링거 제독.”

  사령장관은 웃음을 띠우면서 말꼬리를 잡으려는 메크링거 제독을 막았다.


  “적은 스스로를 궁지에 몰린 생쥐로 하려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몰릴 때야말로 나오는 힘을 노린 거겠죠. 궁지에 몰린 생쥐이기에 강합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 궁지에 몰린 생쥐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이 적을 무너뜨리는 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에게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겁니까. 하지만 그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밀려야 된다는 거겠죠?”

  “적은 존망을 걸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적인 겁니다. 이쪽도 나름대로의 각오를 해야겠지요. 편하게 이길 수 있는 싸움 따위 없어요.”


  사령장관이 날 봤다. 아니 봤다고 느꼈다. 사령장관의 말대로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힐데스하임 백작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멸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힌 적도 마찬가지라는 거겠지.


  그리고 편하게 이길 싸움 따위 없다. 아무리 압승으로 보여도 승패는 종이 한 장 차이에서 결정 난다. 그걸 알 수 있는 건 실제로 그 전투에 참가했던 자들뿐이다.


  “메크링거. 여기는 사령장관의 생각에 따르지. 편하게 이길 수 있는 싸움 따위 없네. 그건 경도 제 3차 티아매트 회전에서 느꼈겠지.

  “그건 그렇지만.”

  클레멘츠 제독이 메크링거 제독을 설득했다. 메크링거 제독도 납득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사령장관이 말을 계속했다.


  “지금부터 작전과 포진을 설명합니다. 단시간에 생각한 것이니까 구멍이 있겠죠. 그걸 이 장소에서 모두 함께 수정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군회의입니다. 사양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한 걸 말씀해주세요.”

  전제와 함께 사령장관이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알고 곤혹과 놀람이 회의실에 넓어지기 시작했다.


...


제국력 488년 3월 3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안톤 페르너.


  “정찰부대에서 보고입니다! 적, 대병력을 가지고 요새를 향해 접근중!”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대회관이 긴장했다. 저번, 에리히가 스스로 정찰에 나온 이래, 근시일 내에 공격을 할 거라 본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정찰부대를 내보냈지만, 아무래도 오늘이 결전의 날인 듯하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적이 온 것 같군.”

  “예. 아무래도 오늘이 결전의 날인 듯합니다. 전군에 요격명령을 내리죠.”

  “음.”

  총사령관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대화에 대회관의 긴장이 더욱 높아졌다.


  “전군, 적을 요격하라.”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명령과 함께 각 함대의 사령관이 출격준비에 들어갔다. 출격준비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다. 함대는 이미 요새 밖에 대기중이다. 연락정으로 자신의 함대로 향할 뿐이다.


  “페르너, 뒤를 부탁하네.”

  “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강한 시선을 향해온다. 경례를 하자 공작은 힘있게 끄덕였다.


  뒤를 부탁한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타이밍을 봐서 가이에스하켄으로 적에게 일격을 가하는 것. 또 하나는 최악의 경우 엘리자베트님을 지킬 것. 공작이 대회관에서 나가는 걸 배웅하며 사령실로 이동했다.


  요새사령실에는 이미 리처드 브러울러 대령, 아돌프 감리히 중령이 있었다. 그리고 여성이 두 사람, 엘리자베트님과 사비네님…….


  “앞으로 어느 정도면 적이 오나?”

  “대충 2시간 정도겠죠.”

  감리히 중령이 답했다. 2시간. 그 정도 있으면 충분히 준비를 취할 수 있겠지.


  예정에 따르면 함대는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 밖에서 진형을 짜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적과 싸우지만, 적이 병력이 더 많을 테니 아마 전국은 이쪽이 밀리는 형태로 이동할 것이다. 당연히 아군은 가이에스하켄 사정거리 안으로 후퇴한다. 그리고 시기를 봐서 함대는 천정과 천저방면으로 급속이동하여 적을 가이에스하켄으로 공격한다.


  타이밍이 어려운 작전이다. 하지만 이길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밖에 없겠지. 혼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혼전이 되면 함대를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또 하나는 적에게 측면을 찔려서 혼란에 빠지는 일이다. 귀족연합군의 훈련도는 결코 높지 않다. 정면은 어쨌든 측면의 공격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점점 함대가 요새에서 멀어져간다. 쓸데없는 혼란을 막기 위해 이미 함대의 포진은 정해져있으며, 그 포진대로 이동하고 있다.


  함대 좌익에서 클라이스트 대장, 하일만 자작, 헬더 자작, 카르나프 남작,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콜비츠 자작, 하우징거 남작, 람스베르크 백작, 바르텐베르크 대장이다.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함대 3만척 중 절반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달리 폴겐 백작과 발데크 남작이 예비로서 후방에 대기한다.


  하일만 자작, 콜비츠 자작, 발데크 남작은 리메스 남작가의 재산상속 때문에 에리히의 양친을 죽였다는 인물들이다. 본인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진짜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단지 그들에게 있어서 제국 굴지의 실력자에게 원한을 사고 있다는 건 대단한 공포겠지. 굉장히 떨고 있다. 다른 사람은 에리히에 대한 반발감 때문에 이 내란에 참가하고 있지만, 그들은 공포 때문에 참가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선 에리히를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폴겐 백작. 이 인물도 에리히와 관계가 없지 않다. 이 인물의 동생은 사이옥신 마약의 밀매상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의 내무성 경찰총국차장 할텐베르크 백작의 여동생과 약혼자이기도 했다.


  동생이, 여동생의 약혼자가 사이옥신 마약의 밀매상인이라는 걸 알게 된 폴겐 백작, 할텐베르크 백작은 은밀히 그를 전선으로 보내 전사하게 만들었다. 원래대로라면 그걸로 끝이었을 테지만, 에리히가 사이옥신 마약을 적발하게 되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할텐베르크 백작은 사이옥신 마약의 밀매조직의 존재를 알면서 방치했다는 것이 밝혀져 자살, 폴겐 백작도 동생이 사이옥신 마약 밀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으로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질책만으로 끝난 건 백작 자신은 사이옥신 마약에 아무 관련도 없었기 때문에, 또 동생을 전장으로 보내 전사하게 만든 것도 백작가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동정을 샀기 때문이었다. 귀족에게 있어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백작의 행위는 별 수 없는 것이었다고 여겨졌다.


  백작이 귀족연합에 참가한 건 그 건으로 에리히를 원망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또 백작은 할텐베르크 백작의 자살 때문에 내무성에 큰 빚을 만들었다. 그것도 하나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적이 나타났습니다! 화면에 투영합니다!”

  오퍼레이터가 보고를 한 것은 두 시간을 조금 지났을 쯤이었다. 사령실의 공기가 긴박해진다. 그리고 화면에 적이 나타났다. 압도될 것 같은 대함대다! 시야의 끝에 두려움에 떨며 화면을 보는 두 사람의 소녀가 보였다.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 적, 아군의 세력이 표시됐다.

  “적 함대의 지휘관을 특정해라.”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만.”

  오퍼레이터가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답했다.


  “상관없어.”

  이 정도의 대함대, 그것도 거리는 아직 꽤 멀다. 특정은 간단하지 않겠지. 하지만 양군이 전화를 교환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다. 지휘관을 특정하는 건 그때까지 하면 된다.


  조금씩 양군이 다가간다.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 그렇게 불안한 얼굴을 하지 마시길. 아직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아군은 이깁니다.”

  두 사람이 긴장한 얼굴에 어렴풋이 미소를 띠웠다. 두 사람을 진정하게 하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했다. 브러울러 대령, 감리히 중령도 합쳐 온화한 시간이 흘렀다. 10분, 아니 15분이나 이야기 했을까. 오퍼레이터가 삼가는 듯이 말을 걸었다.


  “페르너 준장.”

 “알았나?”

  “예. 적의 함대사령관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적은 우익에서부터 파렌하이트, 뮐러, 비텐펠트, 발렌슈타인, 켐프, 아이제나흐, 케슬러, 클레멘츠, 메르카츠,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메크링거 제독입니다. 또한 예비로서 우익측 함대 뒤에서부터 바렌, 루츠,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제독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술 컴퓨터의 모니터에 보이는 적 정황과 오퍼레이터의 보고를 맞춰본다. 묘하다. 납득이 가질 않는다. 브러울러 대령, 감리히 중령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묘하군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중앙에 없습니다.”

  브러울러 대령이 모니터를 노려본다. 동감이다. 보통 총사령관은 중앙에 진을 둔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봐도 에리히의 위치는 우익 근처다. 무슨 일이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은 좌익에 있습니다. 우익과 좌익으로 지휘를 나누고 있다는 걸까요?”

  감리히 중령이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에리히는 무력한 사령장관이 아니다. 지휘권을 분할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진형의 형태를 보면 확실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외에도 묘한 일이 있다.


  “적의 예비 말이지만, 묘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과연, 확실하게.”

  “……조금 묘하군요.”

  내 말에 브러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 조금 생각하고 동의했다.


  적의 예비는 바렌, 루츠, 미터마이어, 로이엔탈이 배치되어 있다. 보통 예비는 공세에 강한 지휘관을 고른다. 미터마이어, 로이엔탈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바렌, 루츠는 무슨 일일까? 그들 두 사람은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수세에 강한 지휘관이다.


  그 한편 본래 예비로 둬야 할 비텐펠트, 파렌하이트는 전선에 나와 있다. 포진도 그렇고, 지휘관의 배치도 그렇고, 납득이 가질 않는 일들뿐이다. 나라면 예비에는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외에 켐프, 렌넨캄프를 고른다. 에리히, 경,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혼전을 노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감리히 중령의 말에 나와 브러울러 대령은 서로를 돌아봤다.

  “혼전인가……, 가이에스하켄을 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군.”

  “예.”


  과연. 다소 억지더라도 돌파력이 있고 혼전에 강한 지휘관을 골랐다는 건가. 게다가 배치에서 보자면 적은 우익의 공격력이 강하다. 에리히는 스스로의 손으로 승리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우익을 혼란에 빠뜨려 격멸한다. 지휘를 분할한 건 그 때문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알리지. 혹시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이 눈치 챘을지도 몰라. 하지만 눈치 채지 못했다면 위험한 일이 된다.”

  내 말에 브러울러 대령과 감리히 중령이 끄덕였다. 화면 저편에서 양군이 점차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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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2월 2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근처까지 왔다. 하긴, 요새 그 자체는 아직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다. 적도 이쪽이 보이지 않겠지만, 요새 근처까지 왔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적의 정찰부대와 몇 번인가 접촉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다. 접근할까. 아니면 끌어낼까. 어쨌든 요새 근처에서의 전투는 그다지 좋지 않다. 언제 요새 주포, 가이에스하켄을 맞을까 걱정하며 싸우는 건 그다지 좋은 싸움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을 끌어내어 싸울 수밖에 없지. 저걸 하는 수밖에 없나……. 원작에서 보인 라인하르트의 도발행위, 하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지. 그거. 아무래도 너무 안하무인하다. 내 감각에서 보자면.


  라인하르트는 저런 성격이니까 타인을 모욕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만, 내겐 무리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패라도 하면 무참하고,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뭐, 원작에선 효과가 있었고. 해볼 가치는 있겠지만……. 다른 녀석에게 시킬까. 내가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뤼네부르크라든가가 잘 할 것 같고, 로이엔탈도. 비텐펠트도 가능하겠지. 의외로 메크링거 쯤이 좋을지도 모른다. 품위 있고 신랄하게 수염이라도 꼬면서 하면 지릴 것 같다.


  현실도피를 해도 별 수 없지. 일단 해볼까. 헌데, 어떤 식으로 도발해야 할까…….


...


제국력 488년 2월 25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토벌군이 근처까지 왔다고 한다. 변경성역을 평정하고 있었을 터인 별동대도 같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단 이쪽을 평정하려는 것 같다. 리텐하임 후작이 전사했기에 적은 기세를 타고 있는 거겠지. 그 기세를 그대로 이쪽으로 부딪치려 하고 있다.


  “공작 각하. 적군에게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오퍼레이터가 긴장에 찬 목소리를 냈다.

  “화면에 투영하라.”


  대회랑의 스크린에 발렌슈타인이 나타났다.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다. 그 웃음을 묘하게 그립게 느끼는 건 왜일까. 그러고 보면 이 남자의 얼굴을 벌써 몇 개월째 보지 못했다. 언제나 있는 것이 없으면 진정하지 못한다는 건 이런 건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에 쓴웃음이 뜨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힌 겁쟁이에 소심한 귀족들에게 고합니다. 경들에게 추호라도 용기가 있다면 요새에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결전에 임하세요. 하긴, 나약한 여자아이들을 납치하는 것 정도밖에 못하는 경들에게 전쟁 따위 무리였죠. 참.”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 배후에서 귀족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네 놈, 애송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조용하라!”


  발렌슈타인. 경의 말대로다. 이 정도의 도발에 흔들리는 자들 밖에 없으니. 싸움이라니 도저히 무리다. 다른 이가 없었으면 큰 목소리로 경에게 동의했겠지. 하긴, 그런 바보들을 이끌고 싸워야만 하다니 운명의 장난이로군.


  “힐데스하임 백작이나 라트부르흐 남작, 세츨러 자작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무슨 무참하고 무능한지! 역사에 남을 우열함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얌전히 투항하는 편이 좋겠죠. 항복하면 죽이지 않을 테고, 살아가는 데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도 드립니다.”


  “말도 안 되는. 우리들에게 물건을 베풀겠단 건가. 우쭐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소란하지 말라 했잖은가!”


  “일도 드리겠습니다. 그렇지요. 폐하의 장미 정원을 돌보는 건 어떻습니까? 폐하를 곁에서 섬길 수 있는 겁니다. 당신들에게 있어서 명예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겠죠. 하지만 장미가 시들면 사형이니까 주의력이 산만한 당신들에겐 무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발렌슈타인은 쿡쿡하고 웃었다. 배후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뭐, 다른 일도 있으니까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숨은 하나 밖에 없으니까 잘 생각해서 행동해주세요. 무의미하게 고집을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화면에서 발렌슈타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쿡쿡하고 웃고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저러한 말, 해두게 놔둬서 좋겠습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출격하여 우리들의 힘을 보여주지요!”

  “출격합시다!”

  젊은 귀족들이 머리에 피가 올라 다가왔다.


  “소란하지마라! 이 정도의 도발에 흔들려서야 어떻게 하겠나!”

  “하지만.”

  “모르겠는가! 발렌슈타인은 우리들을 여기서 끌어내려는 거다.”


  내 말에 젊은 귀족들이 입을 닫았다. 하지만 표정에는 아직 불만이 있다.

  “아이들 장난 같은 도발이다. 발렌슈타인은 지혜자라 생각했으나, 이 정도라니……. 대단치 않군. 핫핫핫.”


  내가 웃으니 겨우 귀족들도 흥분을 삼키고 웃기 시작했다. 성가신 일이요. 아군을 위로하기 위해 웃고 싶지 않아도 웃을 수밖에 없으니……. 시야 한 편에 그라이프스가 어렴풋이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


제국군 488년 2월 25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통신을 끝내고 한숨을 내쉬니 짝짝하고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니 뤼네부르크가 히쭉거리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 자식, 뭐가 재밌어? 놀리는 거냐?


  “이야, 꽤나 재밌는 볼거리였습니다.”

  “어차피 제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뤼네부르크 중장이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뤼네부르크가 웃었다.


  “아니아니, 소관 따위가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각하가 싸움을 받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싸움을 거는 건 훨씬 대단하군요. 놀랐습니다.”

  “…….”


  진심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발트하임과 슈마허도 끄덕이고 있다. 의외로군. 난 그렇게 싫은 녀석이 아니라고. 발레리라면 알아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찾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그 곁에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남작부인이 있다. 난 주변에서 이해받고 있지 않다. 고독할 따름이다.


  안되겠군. 침울해할 때가 아니다. 기분을 고치고 명령을 내렸다.

  “미터마이어 제독에게 연락. 귀족연합군을 도발하라. 적이 공격해왔을 경우엔 가능한 한 꼴불견으로 도망치도록.”

  “예.”


  미터마이어라면 잘 해주겠지. 뭐라 해도 원작에서도 귀족연합을 무지막지하게 도발했으니까. 일단 3일에서 4일인가. 그 정도는 미끼를 계속 뿌릴 필요가 있다. 이번 달 말까지 다음 달 초순이 고비다.


  “면목 없습니다. 적은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화면에는 면목 없다는 듯이 보고하는 미터마이어가 나와있다. 그가 도발행동을 시작하고 오늘로 4일이 지났지만, 귀족연합은 꿈쩍도 움직이지 않는다. 예상외다.


  “고생하셨습니다. 미터마이어 제독. 적도 필사적인 겁니다. 그렇게 간단하겐 되지 않겠죠.”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서둘러 참았다. 면목 없어하는 미터마이어의 앞에서 할 일이 아니다. 적이 물지 않는 건 그의 책임이 아니다. 침울하게 만들 일은 해선 안 된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띠웠다.


  “내일은 어떻게 합니까? 계속 합니까?”

  미터마이어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 없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헌데,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내일은 조금 취향을 바꾸도록 하죠.”

  “취향을 바꾼다고 하신다면?”

  “뭐, 그건 내일의 즐거움이라는 걸로 해둡시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미터마이어의 수고를 치하하고 통신을 끊었다. 이런이런.


  미터마이어와의 통신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뤼네부르크가 말을 걸었다.

  “예상외, 입니까? 저만큼의 열변이 쓸모없다니.”


  기쁘다는 듯이 말하지 마라. 이 자식.

  “미터마이어 제독 때문이 아닙니다. 제 생각이 너무 물렀던 거겠지요. 혹은 제가 싸움 거는 것이 서툴렀든지. 아마도 둘 다겠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뤼네부르크는 쓴웃음을 띠웠다.


  미터마이어를 감쌀 생각은 없다. 원작에선 그는 이 시기, ‘질풍 볼프’라 불리는 용장으로서의 이름을 확립하고 있지만, 이 세계에선 아직 거기까지의 명성은 없다. 적에 대한 임팩트가 약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코르프트 대위의 사건이 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무리더라도 젊은 귀족이라면 그의 도발을 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의도가 빗나간 것 같다. 내 나쁜 버릇이다. 아무래도 원작 지식을 끌어다 쓰는 일이 많다. 이 세계는 원작과 다르다는 걸 마음에 새겨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크게 다친다.


  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쪽이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적이 생각하는 대로다. 저쪽은 우리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건곤일척의 결전을 하려는 거다. 거기에 순순히 끌려가게 된다.


  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꽤 격전이 되겠지. 격렬한 싸움이 된다. 궁리가 필요하군.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선 궁리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내일은…….


...


제국력 488년 3월 1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각하. 적 함대가 왔습니다.”

  “정취가 없는 일입니다. 오늘로 5일 연속이 아닙니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정말이지. 발렌슈타인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젊은 귀족들이 조소한다. 지금이니까 조소 할 수 있는 거지, 첫날엔 적이 왔을 땐 출격하겠다고 숨을 헐떡이는 것을 말리는 게 쉽지 않았다.


  적의 함대사령관, 미터마이어 대장은 코르프트 대위의 건도 있다. 클롭슈톡 후작의 반란진압에 참가한 녀석들의 격앙은 굉장했다. 그들이 미터마이어를 조소할 수 있게 된 건 어제쯤부터다.


  “적 병력, 약 3만 척. 2개 함대입니다.”

  어제의 두 배인가. 단순하게 병력을 늘렸을 뿐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 갑자기 그 병력으로 공격할 일은 없겠지만, 발렌슈타인.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2개 함대라면 우리들이 도발에 응하리라고 생각했나?”

  “어차피 어리석은 평민인 거다. 별 수 없어.”

  오퍼레이터의 말에 주변의 귀족들이 조소한다.


  “적의 지휘관은 알 수 있는가.”

  “그라이프스 총사령관. 신경쓸 필요 없네. 어차피 2개 함대인 거다.”

  그라이프스는 귀족들의 조소를 신경 쓰지도 않고 화면을 보고 있다. 그도 뭔가를 느낀 거겠지. 아니면 당연한 조심인가.


  “전함 베이오볼프, 확인했습니다. 1개 함대는 미터마이어 제독입니다.”

  “남은 하나는?”

  “잠시 기다려주세요.”


  오퍼레이터의 답에 그라이프스가 초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변의 귀족들은 뭘 서두르고 있냐는 듯이 모멸을 담은 표정으로 그라이프스를 보고 있다.


  “이, 이건.”

  “침착해라! 누구냐!”

  오퍼레이터의 당황하는 어조에 그라이프스가 반응했다.


  “총기함 로키를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발렌슈타인 원수의 직할함대입니다!”

  “틀림없나!”

  “틀림없습니다! 화면에 확대합니다.”


  주변이 웅성거리는 와중, 화면에 칠흑의 함선이 나타났다. 틀림없다. 총기함 로키다. 가느다란 함수와 매끈한 함체. 지금까지의 제국군 표준전함과 명백히 함형이 다르다.


  대회랑에 침묵이 떨어졌다. 모두 불안하다는 듯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이 불안이야 말로 귀족들의 본심이다. 지금까지 조소하거나 출격을 구했던 건 허세에 불과하다. 그걸 증명하는 듯이 젊은 귀족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출격이다. 지금이야말로 발렌슈타인에게 우리들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그래. 출격이다!”

  “침착해라. 지금 출격해도 적이 도망칠 뿐이다. 어떤 의미도 없어.”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침착해라! 그라이프스. 경의 의견을 듣고 싶다. 발렌슈타인이 스스로 최전선에 나온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주변의 시선을 맞으며 그라이프스는 스스로의 대답을 확인하는 듯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도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미끼가 되어 이쪽을 격발하려는 거겠죠.”

  그라이프스의 말에 출격을 외친 젊은 귀족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겠지. 달리는?”

  “아마도 이쪽이 도발에 응하지 않으리라 보고 자신의 눈으로 우리들을 확인하러 온 거겠죠.”


  “확인하러 왔나……,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대군을 가지고 공격하러 올 심산으로 보입니다.”


  그라이프스의 말에 대회랑의 공기가 긴박해졌다.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누구나가 결전의 때가 왔다는 걸 안 것이다. 자연히 모두가 화면에 비친 로키를 바라봤다. 칠흑의 전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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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2월 20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이번 달 5일, 페잔 방면으로 침공하고 있던 슈무데 제독이 이끄는 4개 함대를 뺀 제국군 전 함대는, 적 본대의 격멸을 위해 브라운슈바이크 성계로 집결하라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명령을 받았다.


  3일 전, 루츠 제독이 이끄는 별동대가 집결, 그리고 오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도착하고 모든 함대가 모였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도착하고 바로 각 함대사령관에게 총기함 로키로 집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작년 12월 1일에 반란토벌을 위해 오딘을 떠난 이래 전원이 모이는 건 두 달 반 만이다. 사령장관이 오는 사이에, 총기함 로키의 회의실엔 담소의 목소리가 온화하게 올랐다.


  “부러운 일이다. 루츠 제독. 그만한 대회전을 지휘하다니. 무인의 명예겠지.”

  꽤나 웃음을 품은 어조로 파렌하이트 제독이 루츠 제독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사관학교에서 동기생이었다고 들었다. 마음 편한 상대겠지.


  “그렇지도 않아. 파렌하이트 제독. 이기기는 이겼지만, 생각하고 있던 승리는 아니었다. 자부라니 도저히 할 수 없어.”

  루츠 제독은 꽤나 쓴웃음을 섞어 답했다. 겸손이라고도 생각했지만, 로이엔탈, 바렌 등의 별동대 지휘관들이 모두 끄덕이고 있다. 아무래도 겸손이 아닌 것 같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은 꽤나 어려운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변경성역 평정을 중단하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략이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

  비텐펠트 제독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확실히 묘합니다. 사령장관은 어느 쪽이냐고 하면 신중한 성격입니다. 변경성역을 방치하고 본대 토벌을 우선하는 건 조금 믿을 수 없습니다.”

  “뮐러 제독의 말이 맞다고 나도 생각하네. 무슨 일이 있었겠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켐프 제독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지만, 모두 답하지 않는다. 아까 전까지의 온화한 분위기는 없다. 모두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인다.

  “알 수 없군. 하지만 이제 곧 사령장관이 오시네. 그 답은 사령장관이 알려주시겠지.”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그 사령장관이 회의실로 왔다. 전원이 기립하여 경례로 사령장관을 맞이한다. 사령장관은 답례하고 모두에게 자리에 앉도록 말하며 자신도 착석했다.


  “메르카츠 제독, 루츠 제독, 다른 여러분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귀족연합을 몰아넣을 수 있었습니다.”

  각 사령관들이 사령장관의 치하에 가볍게 답했다. 하지만 가장 고생을 한 건 사령장관이겠지. 자칫 잘못하면 죽을 뻔 했으니까.


  “급한 집결명령에 놀랐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변경성역 평정을 일단 동결하고 적 본대의 평정을 우선한 걸 의문스럽게 생각했겠죠.”

  몇 명인가가 사령장관의 말에 끄덕였다.


  “자유행성동맹에게서 제국정부에 대해 연락이 있었습니다.”

  동맹정부? 모두가 서로를 돌아본다.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어째서 여기에 반란군이 관계하는 건가…….


  “동맹령 내에서 주전론자들에 의한 제국 출병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병하면 포로교환은 백지가 됩니다. 전력 회복을 바라는 반란군에게 있어서 출병은 어떤 이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회의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 클레멘츠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도 동감이다. 동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모두의 곤혹함이 더욱 깊어졌다.


  “동맹은 페잔으로 진주했습니다. 사실상 페잔은 동맹의 점령하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동맹은 이제르론, 페잔 두 회랑을 얻었지요. 이쪽의 입장에선 감소한 동맹의 전력을 이제르론, 페잔 양쪽으로 더욱 분할할 수 있었다. 더욱 유리해졌다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동맹에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저도 모르게 사령장관에게 질문했다.

  “다른 생각이라고 하신다면?”

  “이대로 제국의 내란이 길어지면 포로교환에 의지하는 일 없이 두 회랑을 확보한 채로 전력 회복을 획책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동맹에 있다는 겁니다.”


  사령장관의 말에 회의실이 웅성거린다. 과연. 이제야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병론입니까. 제국의 혼란을 조장하겠다고.”

  내 말에 사령장관은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곤란하게도 귀족연합은 아직 15만 척이라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연합하면 내란을 장기화 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그리고 페잔을 이용하여 경제를 재건한다. 그렇게 하면 제국과의 협조 따위 필요 없다. 동맹은 두 회랑을 제압하고, 이전보다도 강대한 전력을 보유할 수 있다……. 그래서 동맹 내부의 주전론자, 그리고 페잔의 경제력에 눈을 돌린 경제인들이 출병론을 전개하기 시작한 겁니다.”


  “동맹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쪽에게 알렸다는 건, 신용해도 좋다는 걸까요?”

  로이엔탈 제독의 질문에 사령장관은 희미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사령장관은 같은 의견이 아닌 듯하다.


  “판단하기 어렵군요. 그들은 페잔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합니다. 전력이 분할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쪽에게 알린 것은 일부러 과대하게 말하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귀족연합의 전력을 조기에 격멸하게 만들어 국내의 주전론자, 경제인을 억누를 생각이라고 봅니다.”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편이 동맹에게 있어서 이득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당연합니다만 출병하는 쪽이 이득이 되리라 생각한다면 망설임 없이 출병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변경성역 평정을 일시중단하고 귀족연합 본대를 격멸하는 것은 그게 이유입니까. 그렇게 되면 그리 시간을 끄는 일은 좋지 않군요. 반란군에게 이쪽이 내란 진압에 고생하고 있다.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으니.”


  “그 말대로입니다. 렌넨캄프 제독. 우리들은 이제부터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향합니다. 그리고 귀족연합과 일전을 벌여 격파합니다. 변경성역 평정도 포함해 3월 말까진 이 내란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3월 말. 그 말에 또 회의실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혀있는 적 본대만이 아니라 변경성역까지 포함한다면 꽤 바쁘다. 사령장관은 자유행성동맹정부를 신용하지 않는다. 로이엔탈에게 말했듯이 이쪽이 불리해지면 꽤 높은 확률로 출병하리라 보고 있다.


  “질문은 있습니까? ……없으면 지금부터 2시간 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향합니다. 각 사령관은 바로 함대로 돌아가 준비에 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사령장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들도 일제히 기립해 경례한다. 사령장관은 답례하고 우리들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듯이 회의실을 둘러봤다.


...


우주력 797년 2월 2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괜찮은 건가? 레벨로. 여기는 평의회의원 이외엔 출입금지겠지?”

  방에 있는 소파에 앉으며 시트레가 말했다.

  “자넨 내 브레인이 아닌가?”

  “과연. 그랬었지. 참.”


  최고평의회 빌딩에는 원칙으로서 평의회의원, 그리고 그 스탭만이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이외엔 사전에 신청이 필요하고, 허가를 얻은 자만이 출입할 수 있다. 시트레는 내 브레인이다. 프리패스의 상태로 여기까지 왔지만, 그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 같다.


  “애초에 여긴 재무위원장에게 주어진 방이다. 여기까지 와서 할 말은 아니겠지?”

  “뭐, 그렇긴 하군.”


  시트레가 약간 몸을 비틀었다. 본래 군인이었기에 이 빌딩에 오는 걸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는 것도 있다. 마음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진정이 되질 않겠지.


  “그래서 어떤가? 시트레. 제국으로의 출병은.”

  “군부는 출병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다면 두 달 전, 아니 내란발발과 동시에 행해야했겠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부상을 입었을 때 말이야. 지금이라면 너무 늦어. 어떤 의미도 없다.”


  “내란발발인가. 하지만 그건.”

  “포로교환을 부정하는 일이 되겠고, 페잔 방면에서 군사활동도 불가능하게 됐겠지. 다시 말해 어차피 출병론 따위 불가능하다는 거다. 트류니히트 의장에게도 국방위원장 경유로 보고가 가게 될 거다.”


  “가게 될 거다?”

  “보로딘 대장이 네그로폰테 국방위원장에게 지금 보고하고 있어. 의장에게 보고가 도착하기까진 빨라도 앞으로 1시간은 걸리겠지. 의장보다도 먼저 결과를 알게 된 기분은 어떤가?”

  시트레는 그렇게 말하고 악동처럼 웃었다.


  “나쁘지 않군. 게다가 군부가 반대했다는 걸 들어서 안심했다. 출병론 따위 말도 안 되지.”

  “뭐, 동감이로군. 제국군 우주함대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의 명령에 따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 자신도 말이야. 중태설은 어떤 근거도 없다는 거겠지.”


  “근거는 없지만, 이걸로 출병론도 불이 꺼지겠지. 일단 안심이다. 그렇다해도 보고가 너무 느린 기분이 드는군. 트류니히트에게서 군부에 출병론 검토의뢰가 있은 건 3주 전이 아닌가?”

  “…….”

  방금까지 웃던 시트레가 무표정하게 침묵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있었나…….


  “시트레. 자네는 뭔가 알고 있는 건가?”

  “……군부는 고의로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를 늦췄다. 그들이 결론을 내린 건 2주일 전이다.”


  “무슨 말이냐. 어째서 2주일이나 보고를 느리게 해? 무슨 의미가 있나. 시트레.”

  무심코 그를 질책하는 어조가 됐다. 하지만 시트레는 무표정인 채다.


  “당초, 군부는 두 가지의 가능성에 대해 보고하려고 했다. 하나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스스로 지휘를 잡았을 경우다. 이 경우엔 원수의 중태설은 거짓이라는 게 되겠지. 아마도 내란은 조기에 진압될 테니 당연히 출병론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또 하나는 원수가 지휘를 잡지 않았을 경우……. 다시 말해, 원수의 중태설이 사실이었을 경우로군.”

  내 질문에 시트레는 끄덕였다.


  “자네가 말하는 대로다. 그 경우엔 은밀히 이제르론 방면으로 함대를 움직여 상황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착각하지 말라고. 레벨로. 그들은 무조건으로 출병론에 찬성한 게 아니야. 출병은 위험하고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국이 내란 진압에 꽤나 애를 먹고 있다. 그렇게 판단할 경우일 때만 제국령 재침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다.”


  “포로교환은 어떻게 되나. 군부도 그걸 바라고 있었을 테지?”

  “내란 진압이 늦어진다. 다시 말해, 포로교환은 좀 더 나중이 된다는 거지. 그때까지 주전파를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 트류니히트가 출병론의 검토를 하라고 한 건 그런 이유도 있겠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나라의 주전파의 뿌리는 대체 얼마나 깊은 걸까.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그렇게나 큰 패배를 맛봤는데도 아직까지 싸우자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다.


  “알았다. 하지만 자네는 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어. 어째서 보고가 늦어졌나?”

  “두려워 한거야.”

  “두려워했다? 묘한 말을 하는군. 뭘 두려워했다는 건가?”


  내 질문에 시트레가 은근한 미소를 띠웠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웃음이다. 그래. 그건 그를 내 브레인으로 초청했을 때였다. 그때와 같은 웃음을 띠우고 있다. 어두운 웃음이다.


  “군부가 출병에 찬성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어되지 못하는 것을, 이용되는 것을 두려워한 거다.”

  “…….”


  “그들은 출병에는 반대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 것일 뿐이다. 출병에 찬성 따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걸 두려워했다.

  “…….”


  “어차피 군대를 움직인다면 페잔에서 제 9, 제 11함대가 돌아오고 나서가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돌아오는 아슬아슬할 때까지 제국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보고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제 9, 제 11의 2개 함대는 앞으로 일주일이면 돌아오는 거였지.”


  “그래. 그리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발렌슈타인 원수 중태설은 근거가 없다고 알았으니까 말야. 그렇다면 출병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할 필요는 없다. 아닌가?”

  “그렇지……. 자네의 말대로야.”


  트류니히트 정권에 대한 동맹시민의 지지율은 굉장히 높다. 이전 정권이 20퍼센트 정도의 지지율밖에 얻지 못한 데에 반해, 페잔을 얻은 직후라는 것도 있어서 70퍼센트를 넘는 지지율을 얻고 있다.


  이 정도의 지지율이 있으니까 출병론을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지지율은 내려갈 테고, 출병론은 기세를 더하겠지. 그런 때에 군부가 출병에 찬성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시트레의, 군부의 두려움을 의미 없다고 웃을 수 없다.


  “레벨로. 자네는 화내고 있는가? 어째서 2주일 전에 보고하지 않았냐고. 자신을 믿지 않냐고.”

  시트레는 내게 질문했다. 조용하고 온화한 눈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알고 있었으면 어디선가 난 그걸 말하고 있었겠지. 출병론 따위 가능성이 있을 뿐이라고. 주전론자들에게 있어선 그 가능성만으로 충분한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주는가……. 고맙네. 그때 자네의 마음을 안 듯한 기분이 드네.”

  그때? 그때인가……. 자네가 통합작전본부장을 그만 둔 때, 내가 자네를 브레인으로 초청했을 때, 그리고 자네가 날 비난했을 때…….


  “자네가 날 믿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이번 일로 이해할 수 있었네. 가능성이 있는 이상, 위험은 회피해야만 하네. 그러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거겠지.”


  “하지만 난 실패했다. 샨타우 성역 회전이 일어난 건 잘못된 인물을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내게도 있어.”

  위험은 회피했을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보다 심한 것이었다. 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더욱 큰 위험을 품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지. 확실히 판단은 잘못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 때 자네가 날 신뢰하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그건 잘못이었어. 용서하게. 난 자네에게 심한 말을 하고 말았다…….”

  시트레가 고개를 젓고 있다. 그때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시트레. 자네는 그 패전에서 모든 걸 잃었다. 군인으로서의 명예, 명성, 지위, 권력, 그 전부를. 날 비난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그 입장에 있었더라도 비난했겠지. 자넨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야. 하지만 그래도 자넨 날 도와주고 있다. 자네야말로 신뢰해야 마땅한 인물이다.


  “시트레. 난 좋은 브레인을,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하네. 앞으로도 날 도와주겠나?”

  “아아, 물론이지.”


  손을 내밀자 시트레는 내 손을 잡았다. 커다란 손이다. 강한 손이기도 하다. 신뢰할 수 있는 남자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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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2월 10일. 오딘, 신무우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그래서 발렌슈타인은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언제 출발하나?”

  “내일에는.”

  “흠.”

  화면에 나온 슈타인호프 원수가 내 질문에 답했다. 그의 옆 화면은 에렌베르크 원수를 비추고 있다.


  “뭔가 다른 말은 없었는가?”

  “아마 공갈일 거라고 했습니다만, 내란 진압이 길어지면 진짜 출병을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변경성역 평정보다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략을 우선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겠지.”


  정말 변변찮은 녀석들이다. 슈타인호프 원수의 대답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반란군 녀석들은 페잔을 빨리 제국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의 내란이 빨리 정리되었으면 하겠지. 내란이 길어지면 페잔을 점령하자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 지금도 나오고 있겠지만, 그게 대세를 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출병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다. 그 후에 이쪽에게 시치미 뚝 뗀 표정으로 빨리 내란을 정리해 달라고 기특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마땅찮은 녀석들이다.


  “다른 건?”

  “공략이 조금 번거로울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없어보였습니다만…….”

  “평소의 일이다. 저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드물지.”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이 웃는 것이 보였다.

  “……뭔가 웃긴 일이라도 있는가?”

  “아뇨. 아무 일도 아닙니다.”

  두 사람이 표정을 고쳤다. 마땅찮은 녀석들은 반란군에만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제국도 마찬가진가.


  “발렌슈타인도 슬슬 일을 해도 좋겠지. 적당히 휴식도 질렸을 테니.”

  헌데, 어떻게 된 일일까. 에렌베르크와 슈타인호프가 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무슨 일 있었는가?”

  화면에 나온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떫은 표정으로 에렌베르크가 말했다.

  “실은 군 중앙병원에서 어떤 염려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군 중앙병원? 염려? 에렌베르크. 묘한 말을 하는군. 발렌슈타인에 대한 일인가.


  “발렌슈타인 원수의 건강관리는 완전한가하고.”

  “……무슨 말인가? 군무상서.”

  저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화면에 나온 두 사람의 표정이 떫다.


  “저번의 부상 말입니다만, 건강상태가 양호했다면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태는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발렌슈타인은 원래부터 몸이 건장하다고 할 수 없고,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격무에 시달리니까 말입니다. 꽤 무리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확실히 무리를 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하고 나서 너무 많이 일하긴 했지.


  “지금 저것이 쓰러져선 곤란하네.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사임하게 하고 좀 더 편한 입장에 두는 편이 좋겠나?”

  그렇다곤 해도 어디에 두나? 차라리 내무상서라도 줘버릴까. 저건 군인보다도 정치가가 더 어울리겠지.


  “그것도 일안이긴 합니다만, 후임이…….”

  “고민할 필요 없네. 슈타인호프 원수. 메르카츠가 있잖은가. 저것에 맡기면 어떤가?”

  내 말에 슈타인호프가 곤혹한 표정을 보였다. 에렌베르크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메르카츠로는 안되는가?”

  “메르카츠 상급대장이 무능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발렌슈타인의 뒤는 그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슈타인호프의 어조가 영 떨떠름하다. 이빨 사이에 뭔가가 낀듯한 어조다.

  “묘한 말이로군. 뭔가 불만이 있는가?”


  내 말에 이번엔 에렌베르크가 말을 계속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라는 직위는 조금 특수합니다. 병사를 고무하여 기뻐하며 사지로 끌고갈 수 있는 뭔가가. 위엄이라고 해야 하나, 화려함이라고 해야 하나. 능력 이외의 뭔가가 필요합니다. 메르카츠에겐 능력은 있습니다만, 그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메르카츠를 질책할 일은 아닙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란 그렇게나 어려운 직위인 겁니다. 능력만으로 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경들도 어려운가.”


  “저와 슈타인호프 원수도 함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 무훈을 세웠습니다. 결코 무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주함대 사령장관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되지 못했습니다. 메르카츠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능력 이외의 무언가가 저희들에게 없었다고 당시의 군 상층부는 판단했던 거겠죠.”

  “과연. 뮈켄베르거에겐 그게 있었나…….”


  내 말에 화면의 두 사람이 끄덕였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젊을 적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나가 그의 앞에선 자세를 바르게 할 정도의 위엄. 그리고 그건 나이를 먹어갈수록 강해졌습니다. 그런 무언가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에게 필요한 겁니다.”


  ‘위엄’, ‘화려함’, 에렌베르크가 말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다. 뮈켄베르거도 저 애송이, 로엔그람 백작도 어딘가 주변의 눈을 모으는 요소가 있었다. 뮈켄베르거에겐 ‘위엄’이, 저 애송이에겐 ‘화려함’이…….


  에렌베르크가 로엔그람 백작의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발렌슈타인에게도 그게 있는가? 그 부분이 아무래도 잘 모르겠군……. 저건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고, ‘위엄’이나 ‘화려함’ 따위 보이지도 않는데.


  “발렌슈타인에게도 그게 있는가?”

  내 질문에 에렌베르크는 또 곤란하단 표정을 보였다.

  “그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듭니다.”

  “……라고 한다면?”


  “저는 그가 아직 위관이었을 때부터 알고 있습니다. 그가 유능한 군관료, 참모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흠.”

  내가 끄덕이자 슈타인호프도 동의하는 듯이 끄덕였다.


  “하지만 예의 사건, 폐하가 쓰러졌을 때 말입니다만. 저것이 돌변했지요.”

  “그건가.”


  화면 안에서 에렌베르크가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 사건에서 나와 에렌베르크가 발렌슈타인에게 오딘의 치안을 맡겼다. 발렌슈타인은 훌륭하게 내란을 막았지만, 돌변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


  “돌변이라고 하면?”

  “오딘이, 제국이 내란에 돌입하지 않았던 건 발렌슈타인의 역량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나가 그를 때에 따라선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인식했습니다.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한 겁니다. 그리고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대군을 지휘 통솔할 수 있습니다…….”


  에렌베르크가 입을 다물자 이번엔 슈타인호프가 대신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 3차 티아매트 회전. 그 전투에서 발렌슈타인은 전군을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군율 위반의 책임을 지고 군을 그만두려 했습니다. 장병에게 있어서 그 이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은 없어진 겁니다.”


  “과연.”

  발렌슈타인이 가지는 무언가란, ‘위엄’도 아니고 ‘화려함’도 아니며, ‘신뢰’인가.

  “이상하긴 합니다만, 장병은 함대사령관의 경험도 없는 그를 누구보다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대승리. 장병에게 있어서 발렌슈타인 이상으로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어울리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럼 앞으로 조금 더 발렌슈타인에게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맡길 수밖에 없겠구먼.”

  “적어도 앞으로 3년은 발렌슈타인이 사령장관의 직위에 있어야 한다고 저나 슈타인호프 원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 다시 말해,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기 전까진가. 그 뒤라면, 평상시라면 메르카츠라도 문제없다는 건가. 고생하게 만드는구먼. 발렌슈타인. 어떻게든 그 고생을 가볍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헌데, 어떻게 해야 할지…….


...


제국력 488년 2월 15일. 페잔, 자치령주부. 요펜 폰 렘샤이트.


  “이거 렘샤이트 백작. 바쁘신 중에 발을 어지럽히게 됐습니다.”

  “아니아니. 신경 쓰지 마시구려. 헌데, 무슨 일입니까? 올리베이라 변무관. 일부러 자치령주부로 부르시다니.”


  방에 들어가자 집무석에 앉아있던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걸어왔다. 얼굴에는 만면의 웃음이 있다. 단,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방심할 수 없는 사내다.


  의식하여 웃음을 띠며 눈앞의 신임 올리베이라 고등변무관을 봤다. 원래는 학자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우월감이 흘러넘치는 관료로 보인다. 뭐, 페잔을 점령한 것이다. 자신이 넘쳐흘러도 이상하지 않다.


  그 증거가 이 방이겠지. 자치령주의 집무실. 페잔 점령 이후, 루빈스키의 탐색을 구실로 여기서 집무를 보고 있다. 페잔의 통치자는 자신이라고 주변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웃기는 일이다.


  “혹시 루빈스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습니까? 혹은 이미 신병을 확보하셨는지?”

  “아뇨. 유감스럽지만 아직 그의 행방은 찾지 못했습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루빈스키의 체포는 제국이 동맹에 페잔 진주를 인정한 조건 중 하나다. 올리베이라는 착임하자마자 루빈스키가 실종했다는 것으로 감점을 받았다.

  “과연. 곤란한 일이구려.”


  “실은 루빈스키가 실종하고 나서 오늘까지 페잔의 자치령주가 부재합니다. 언제까지나 공석으로 둘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백작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역시 그건가……. 며칠 전부터 눈앞의 사내가 동맹에 호의적인 인물이며 자치령주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을 찾고 있다고 부하에게서 보고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어울리는 인물을 찾은 것 같다.


  루빈스키 실종 때문에 아마 동맹 본부에서도 질책이라도 받았겠지. 자치령주에 동맹이 하는 말을 듣는 인물을 올려 감점을 만회하려는 건가. 그럼 말을 맞춰주도록 할까.


  “확실히 그렇구려. 하지만 어디 좋은 인물이 있습니까?”

  “예. 다행하게도. 그 일로 백작의, 제국의 승인을 받고 싶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올리베이라 변무관은 출구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오게”라고 말했다.


  방에 들어온 건 50대 후반의 남자였다.

  “마르틴 페이워드씨입니다. 선대 자치령주, 바렌코프씨의 밑에서 보좌관을 맡았었습니다. 루빈스키가 자치령주가 되었을 땐 그와 맞지 않다는 걸 느끼고 보좌관을 사임했습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의 소개가 끝나자 페이워드가 긴장한 얼굴로 자기소개를 했다.

  “마르틴 페이워드입니다.”

  “어떻습니까? 렘샤이트 백작. 승인을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꽤나 긴장한 듯이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물었다. 페이워드도 마찬가지다. 괴뢰라도 자치령주가 되고 싶은가. 어리석은.


  “흠. 페이워드씨가 제국에 대해 불이익이 될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제국에게 있어선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전 루빈스키 전 자치령주와 다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럼 제국에게 있어서도 반대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로회의가 페이워드씨를 자치령주로서 인정할까요?”

  “문제 없습니다. 제국과 동맹이 지지하는 겁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승자의 여유. 아니, 오만인가. 기쁨을 표하고 있는 페이워드와 만족스럽다는 듯이 보이는 올리베이라 변무관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만이란 때때로 바보와 동의어가 된다. 알고 있는가? 이 남자…….


  “헌데, 제국 주재의 볼텍 고급변무관 말입니다만. 그 자리에 계속 임한다는 것으로 괜찮겠습니까?”

  “…….”

  내 말에 올리베이라 변무관과 페이워드가 서로를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엄하다. 역시 볼텍에 대한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오딘에 있는 편이 그쪽에게 있어서도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어떤지? 자칫 이쪽으로 돌아오게 하면 어리석은 자들이 그를 자치령주로 해야 한다고 소란피울 겁니다.”


  “과연. 확실히 그렇군요. 아니, 백작의 호의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미소를 띠웠다. 페이워드도 안심했다는 표정이다. 경쟁상대가 줄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볼텍 변무관 말입니다만. 보좌관을 한 명 페잔에서 보내줬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케셀링이라고 했습니까. 젊은 보좌관입니다. 일이 바빠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렇습니까.”


  “제게서 이런 일을 듣는 건 불쾌하리라 생각합니다만, 루빈스키가 실종한 이후, 누구에게 상담해야 좋을지 모르게 됐다고 하기에 이렇게 됐습니다. 어떠신지?”

  내 질문에 페이워드는 올리베이라 변무관을 봤다. 그 시선을 받고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은근히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를 볼텍 변무관에게로 보내지요.”

  페이워드의 답에 올리베이라 변무관이 만족한 표정을 보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기쁜 것 같다.


  올리베이라는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괴뢰를 자치령주로 했을 생각이겠지. 그리고 페잔을 동맹을 위해서 이용하려고 생각하겠지만, 페이워드에게도 감정이 있다. 과도하면 언젠가 페이워드 자신이 올리베이라에게 질리고 만다. 페이워드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반년, 혹은 1년인가……. 뭐, 그렇게 되기까지 모쪼록 페잔의 지배자를 즐기는 게 좋다. 올리베이라 변무관님…….


  제국고등변무관사무소에 돌아가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면회를 구하는 자가 왔다. 루퍼트 케셀링. 단정한 얼굴을 가진 청년이지만, 표정이 조금 어둡다.


  “루퍼트 케셀링입니다. 이번, 오딘의 고등변무관사무소에 착임하게 됐습니다. 볼텍 변무관에게서 요청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제게 무슨 일을 시키고 싶으신 건지?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십시오. 이쪽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페이워드에게 이쪽을 탐색하라는 말을 들었는가. 고생하는군.”

  “……그런 일은.”

  “볼텍 변무관은 관계없네. 경을 필요로하고 있는 건 제국이다.”


  내 답에 케셀링은 표정을 굳혔다.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답할 필요가 있는가?”


  “…….”

  “…….”

  “……아뇨. 없습니다.”

  “좋네.”

  표정은 창백하지만 나름대로 배짱은 있는가.


  “아버지에게서 연락은 있는가? 아니면 장소를 알고 있나?”

  케셀링은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신용은 없는가보군.”

  “…….”

  내 말에 케셀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경은 오딘에 도착하면 볼텍에게로 가라. 그리고 제국이 경을 보냈다고 하는 거다.”

  “볼텍 변무관은 저에 대해서…….”

  “알고 있네.”

  또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 역할은?”

  “일단 볼텍 변무관의 보좌다. 그 외엔 오딘에 도착하고 나서 보도록 하게.”

  “…….”


  “도망쳐도 좋네. 하지만 그 경우엔 동맹에 경의 진실을 알리게 되겠지. 제국에도 동맹에도 평생 쫓겨 다니게 될 걸세. 이 페잔에서도 말이지.”

  “…….”

  “제국을 얕보지 말게. 알았나?”

  목소리에 위압을 담아 말하자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루퍼트 케셀링이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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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7년 2월 4일. 하이네센. 어느 소년의 일기.


12월 5일.


  오늘 제국의 우주함대 사령장관, 발렌슈타인 원수가 습격 받았다는 정보가 제국에서 흘러왔다. 하지만 반신반의다. 원수는 방심할 수 없는 모략가니까 간단히 신용할 수 없다.


  전자신문도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흘렀지만, 원수는 무사했다. 이번에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소문을 흘린 것이 아닌가하고 적혀 있다. 모략만 쓰는 진짜 싫은 녀석이다.


  아마도 음침하고 암울하고 신용할 수 없는 인간이겠지. 최악이다. 내 곁에는 없었으면 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저런 게 동맹인이었다면 모두에게 미움을 받아서 절대로 출세하지 못할 것이다. 제국이니까 출세할 수 있었던 거지. 아마 황제를 잘도 구워삶았을 거다. 그러니까 제국은 안 되는 거다. 언젠가 반드시 쓰러뜨려야한다.


12월 10일.


  발렌슈타인 원수가 부상을 입은 건 사실인 것 같다. 그것도 꽤나 중상이라는 것 같다. 꼴좋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반드시 동맹군이 죽인다. 샨타우 성역 회전의 복수다. 그러니 이 내전에서 죽는 건 곤란하지만, 원수가 고통을 맛보는 건 전혀 문제없다. 좀 더 괴로워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모두 꼴좋다. 쌤통이다 라는 말이 들렸다.


  어른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쌤통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걸 기회로 제국령에 출병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포로교환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참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한 것 같다. 게다가 의외로 원수가 죽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의 의견을 보자면 지금 제국이 행하고 있는 개혁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행해지고 있는 거라고 한다. 원수는 평민 출신이라 평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귀족이 평민을 학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원수가 죽으면 제국의 개혁은 멈추고 만다. 제국은 이전과 아무런 변화도 없게 된다. 그렇게 걱정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화평파, 반전파라고 불리고 있다. 제국과의 사이에 화평을 맺어 전쟁을 끝내고자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제국과 화평? 말도 안 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식사를 할 때 엄마와 이야기 했지만, 엄마도 같은 의견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전쟁에 나가는 거엔 반대하고 있다. 모순되어 있다고 말하니 엄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날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난 군인이 된다. 그리고 제국과 싸우는 거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졸업할 때엔 우주함대도 원래 모습을 되찾을 거다. 그렇게 되면 반격이다. 그리고 샨타우 성역 회전의 복수를 하는 거다. 하지만 발렌슈타인 원수는 단순한 모략가인 게 아닐까?


12월 27일.


  새로운 정보가 제국에서 들어왔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반란군, 우리들이 아니다. 귀족들을 칭하는 거지만. 그들의 함대를 격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렌텐베르크 요새?를 공략했다고 한다.


  중상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거짓말이었던 거다. 특기인 모략으로 적을 방심하게 만들어, 끌어들인 뒤에 격파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한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발렌슈타인 원수가 건재하다는 걸 알았기에 출병론은 이제 누구도 지지하지 않으리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원래부터 포로교환을 하기 전까지 전쟁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강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여론조사에선 7할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원수가 건재하다고 알고 나선 좀 더 그 비율이 높아졌을 거라고 말했다. 나도 동감이다. 반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다.


  우리 반에서도 가족이 포로로 잡힌 아이가 있다. 빨리 포로가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내란이 빨리 끝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제국의 혼란이 길어졌으면 하지만, 조금 복잡하다.


  그 때문이겠지. 가족이 포로가 된 아이들은 그다지 이 일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조금 불쌍하다. 가족이 돌아온다는 걸 말하지 못하다니. 가능하면 내란이 시작되기 전에 포로를 돌려줬으면 했다.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은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제국의 내란에는 끼어들지 않겠다던가, 약속할 수 없었을까?


1월 5일.


  새해가 밝고 갑자기 빅뉴스가 제국에서 날라왔다. 제국의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로엔그람 백작이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반역을 일으켰다는 죄로 잡혔다고 한다. 뭐라 해도 황제가 되려 했다는 것 같다.


  로엔그람 백작이라고 하면 발렌슈타인 원수 이전에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사람이다. 제 7차 이제르론 요새공략전에서 대패배하고 부사령장관으로 강등됐다. 그거 때문에 불만이라도 가졌던 걸까.


  로엔그람 백작은 변경성역 평정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체포되었다면 변경성역 평정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란이 길어질지도 모른다고 모두 말했다. 가족이 포로로 잡혀 있는 아이들은 모두 슬퍼하는 것 같다.


  엄마도 곤란한 일이라고 했다. 이런 반역은 제국이니까 일어나는 것이고, 동맹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국은 좋지 않은 거다. 그렇게 말했다. 정말 동감이다. 발렌슈타인 원수도 황제가 되고 싶은 걸까? 그렇게 엄마에게 말했더니, 원수는 평민이니까 무리지. 라고 웃었다.


1월 19일.


  또 빅뉴스다. 밤늦게, 자고 있는 사이에 TV에서 흘러 나왔다. 정말 깜짝 놀랐다. 동맹군이 페잔에 진주했다! 뭐라든가. 페잔의 루빈스키 자치령주가 제국에 적대행위를 했다고 제국이 화낸 것 같다.


  제국은 4개 함대를 페잔으로 보냈지만, 그걸 안 동맹도 비밀리에 3개 함대를 보내서 제국을 통제했다고 한다. 그대로 가면 제국과 동맹 사이에 페잔을 누가 가질지 전쟁이 벌어질 참이었다. 하지만 제국은 내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페잔에서 전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동맹 사이에 협정을 맺어 페잔에 진주를 인정했다고 한다. 대승리다! 싸우지도 않고 페잔을 손에 넣었다. 이걸로 동맹은 이제르론과 페잔 두 회랑을 손에 넣었다! 엄마도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기뻐하며 소란 피웠더니 빨리 자라고 엄마에게 혼났다.


1월 20일.


  하룻밤이 지나고 페잔의 자세한 상황을 알았다. 페잔에는 제 3함대가 있다는 것 같다. 다른 함대는 하이네센으로 돌아온다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제국군이 탈환하는 건 아닌가 조금 걱정이다.


  루빈스키 자치령주는 도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바로 붙잡히겠지. 검은 여우라고 불리면서 제멋대로 굴었던 것 같지만, 쌤통이다. 전쟁으로 뱃속을 채우는 페잔의 황금만능주의자 놈.


  이걸 기회로 페잔에게서 돈을 돌려받자는 의견도 있다. 좋다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페잔 따위 점령해버리면 되는 거다. 제국에 돌려주다니 말도 안 된다.


  전자신문은 모두 트류니히트 의장을 굉장히 칭찬하고 있었다. 제국의 내란을 잘 이용해서 페잔을 손에 넣었다. 역대 의장 중에서도 최고의 의장이다. 그런 상황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최고의 의장이다.


1월 21일.


  트류니히트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페잔은 언젠가 제국에 돌려준다. 동맹과 제국은 페잔의 중립을 존중한다는 건 변함없다. 이번 진주는 루빈스키 자치령주가 중립을 깬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의장은 페잔을 동맹령으로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제국 사이에서 맺은 협정을 준수하겠다고 했고, 불만을 말한 기자에 대해서 국가로서 신의를 지켜야 하며 그 신의를 잃으면 이번 페잔처럼 되고 만다고 말했다.


  난 점령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장의 회견을 보고 훌륭한 사람은 역시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멋있었다. TV에서 몇 번이나 그 장면이 흘렀지만, 몇 번을 봐도 멋있었다.


  트류니히트 의장에 의하면 내란 종결 후, 포로를 교환하며 페잔을 제국에게 반환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페잔은 명목상 제국의 자치령이기에 제국에게 돌려주게 된다.


  보로딘 통합작전본부장도 페잔을 돌려주는 것에 찬성이라고 한다. 지금의 동맹에겐 두 회랑을 지킬 전력이 없다고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페잔은 중립인 편이 동맹을 위해서 좋다고 한다. 유감이다. 모두 그렇게 말했다.


1월 28일.


  최근 또 출병론이 나오고 있다. 이제르론, 페잔 두 회랑을 얻었으니 제국의 혼란을 길게 끌게 만드는 편이 동맹을 위해서 좋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페잔을 점령하여 동맹의 경제를 재건한다. 난 그다지 이 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이 의견에 의하면 포로교환이 없어지니까. 반 친구들도 포로교환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도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이 많은 병령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는 15만 척 이상의 함대가 모여있다고 한다. 그들과 협력하면 제국의 혼란을 길게 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발렌슈타인 원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그게 출병론에 기세를 살리고 있다. 원수는 렌텐베르크 요새를 공략하고 나서 계속 요새에 틀어박혀 있다. 혹시 정말로 상태가 나쁜 걸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소문이 흐르고 있다. 원수는 무리를 해서 렌텐베르크 요새를 함락하고 지금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져있다. 로엔그람 백작의 실각은 발렌슈타인 원수의 음모이며, 그 걸로 원수는 후회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 외에도 샨타우 회전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그 망령이 괴롭히고 있다든가…….


  어디까지 진짜인지는 모른다. 출병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소문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트류니히트 의장은 출병론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장이 힘내줬으면 한다. 포로교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멋진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줬으면 한다고 생각한다.


...


우주력 797년 2월 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최고평의회의장의 집무실. 그 집무실 화면에는 제국의 성계도가 표시되어 있다. 한층 크게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소재지. 그리고 푸르게 표시된 것이 오딘.


  그 외에 제국군의 함대가 황색 3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긴, 함대의 소재지는 꽤나 애매하다. 페잔 경유로 정보를 얻고 있기에 시차가 있다.


  “제국은 변경성역의 평정을 뒤로하고 귀족연합과의 결전을 우선하는 것 같군. 렘샤이트 백작에게서 아까 전에 연락이 있었다.”


  트류니히트의 말에 나와 호안이 서로를 돌아봤다.

  “네그로폰테는 안 불러도 좋은가?”

  내 말에 트류니히트는 은근한 미소를 띠웠다. 어딘지 모르게 악당의 웃음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어. 나와 렘샤이트 백작의 회견을 함께 했으니. 때론 그렇게 기분을 풀어주지 않으면 그도 불만스럽게 생각하니말야. 자네들만 중용하고 있다고.”

  트류니히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트류니히트 최고평의회의장도 여러 가지로 신경 쓰는군. 고생이야.”

  “착각하지 말라고. 호안. 난 그를 신뢰하고 있어. 자네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고 트류니히트는 윙크를 했다. 집무실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웃음소리가 진정하고 트류니히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발렌슈타인 원수도 변경성역 별동대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제국도 귀족연합군과 우리가 연합하는 걸 피하고 싶은 것 같아.”


  “괜찮은가? 발렌슈타인 원수는 에, 어디더라. 확실히…….”

  “렌텐베르크 요새다. 호안.”

  내가 옆에서 돕자 호안은 오른손을 올려 감사를 표했다.


  “그래. 렌텐베르크 요새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그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지? 출격이라니 할 수 있는 건가?”

  “괜찮겠지. 렌텐베르크 요새를 함락한 건 작년이다. 아무리 그래도 다 나았을 거야.”

  “하지만 말이지. 예의 소문도 있고 말야.”


  예의 소문인가. 호안과 트류니히트의 대화를 들으며 거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작년 12월 초순, 발렌슈타인 원수는 오딘에서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 꽤 중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달 안에 오딘을 침공해온 적함대를 격파, 거기에 더해 렌텐베르크 요새를 탈취하여 건재함을 보였다.


  당초 동맹에선 발렌슈타인 원수가 부상했다고 들렸을 때, 믿는 이는 적었다. 이전에도 그를 암살했다는 오보가 흘렸었다. 그에 속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상이 사실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꽤 중상이라는 소문이 흘렀을 때, 동맹에선 제국령 변경성역에 대한 출병론이 나왔다. 물론 강한 건 아니다. 제국 사이에 포로교환 협정을 맺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출병론은 나온다. 동맹 내부의 반제국감정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한숨이 나올 뿐이다.


  다행히 바로 발렌슈타인 원수가 적 함대를 격파. 렌텐베르크 요새를 탈취했다. 그걸로 출병론은 자연소멸했다. 위험했지. 당시 동맹은 페잔으로 극비리에 함대를 파견하고 있었다. 그때 출병론이 대세를 점했으면 함대가 어째서 페잔으로 향하고 있냐고 큰 소란이 일어났을 것이 틀림없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렌텐베르크 요새를 탈취한 후, 요새에 머물며 움직이지 않았다. 제도 오딘을 지키고, 제국군 전군을 후방에서 지원, 통솔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그게 또 동맹 안에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발렌슈타인 원수 중태설이다. 습격을 받았을 때 꽤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들었다. 렌텐베르크 요새는 함락했지만, 무리를 했기에 용태는 더욱 악화한 것이 아닌가……. 그게 원인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닌가…….


  그리고 로엔그람 백작의 실각이 일어났다. 원수와 백작은 미묘한 관계에 있다고 동맹에선 보고 있다. 둘 모두 젊다. 그리고 예전에 한때 상하관계가 반대였다. 중상을 입은 발렌슈타인 원수가 로엔그람 백작을 배제한 것이 아닌가?


  발렌슈타인 원수 중병설이 강해지는 것과 함께, 제국령 변경성역 출병론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페잔을 점령한 지금, 그 출병론은 더욱 더 강해지고 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귀족연합군의 주력이 건재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발렌슈타인 원수도 고생이 많군. 부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반란 진압이라니.”

  “무슨 남의 일처럼 말하는가. 주전파를 부채질 한 자네겠지? 트류니히트.”

  내 말에 트류니히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뭐, 그렇지만 말야.”라고 답했다.


  “하지만 페잔 진주는 길게 끌 수 없어. 길게 끌면 끌수록 반드시 점령하라는 목소리가 대세를 점하겠지. 내란도 마찬가지다. 길게 끌면 끌수록 거기에 끼어들라는 의견이 커지겠지. 그렇겠지? 레벨로. 호안.”


  트류니히트의 말에 떫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호안도 끄덕이고 있다.

  “제국의 내란은 조기에 종결하도록 한다. 그에 의해 출병론, 페잔 점령론을 억누를 수밖에 없어.”

  “…….”


  “그리고 포로교환을 실시한다. 제국 사이의 우호를 강조하며 페잔을 조기에 반환하는 수단을 생각하는 거야.”

  그 말대로다. 그렇기에 일부러 제국령 출병이라는 카드를 제국에게 보인 것이다.


  뽑은 것이 아니다. 보인 것이다. 뽑게 하고 싶지 않으면 조기에 내란을 끝내라. 그런 것이다. 그를 위해서 일부러 동맹 내부의 출병론을 모두가 알도록 부채질도 했다. 묘한 소문이 흐르고 있던 것도 이용했다.


  군부도 내란의 조기종결에 관해서 동의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제르론, 페잔 양 회랑에서의 공세는 악몽일 뿐이다.

  “원수가 정말 중태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내란의 조기해결은 어려울지도 몰라.”


  “그땐 정말 출병한다는 수도 있겠지.”

  “말도 안 돼. 장난이 아니라고. 트류니히트!”

  내가 큰 목소리로 외치니 트류니히트는 어깨를 움츠렸다.


  “가능성의 문제야. 레벨로. 포로교환은 바라는 바지만, 제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도 바라던 바다. 내란이 장기화되면, 그걸 계기로 제국이 이쪽과 화평을 생각한다는 가능성도 있어. 어떻게 동맹을 재건하는가. 제국을 무력화하는가. 그게 문제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뭐,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집무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트류니히트의 생각은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국령 출병은 꽤 위험한 선택지겠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게다가 군부는 어떻게 생각할까. 꽤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까. 군 상층부는 전력회복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피곤할 뿐인 출병은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같은 생각을 했겠지. 이번엔 호안이 트류니히트에게 묻기 시작했다.

  “출병에 대한 걸 군부에는 이야기 했는가?”

  “그린힐 총참모장에겐 말했다. 아니, 저쪽에서 물었지. 출병론이 이 이상 강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서 군부에도 검토를 해보라고 말했어. 그는 어려운 표정을 지었지만 알았다고 답했다. 검토의 여지는 있다는 거겠지.”

  “그런가…….”

  호안이 날 봤지만 끄덕이는 것도, 고개를 젓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한숨이 나왔다.


  “페잔에선 제국에게 당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쪽이 나설 차례다. 제국도 조금은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어줘야지.”

  군부가 어떻게 생각할지로군. 트류니히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특히 이제르론의 양 제독이 어떻게 생각할까. 무척이나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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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8년 2월 1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변경성역 회복 시도는 실패했다. 그저께부터 어제에 걸쳐 행해진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귀족연합군은 패퇴했다.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의 보고에 의하면, 아주 조금이면 이길 수 있었다고 한다. 힐데스하임 백작, 저 애송이가 서두르지 않았으면 이길 수 있었다고…….


  “역시 귀족연합군의 위태로움이 나왔군요.”

  그라이프스 총사령관의 말이 귀를 때렸다.

  “오합지졸, 이라는 건가.”

  그라이프스는 끄덕이고 말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시작하기까진 하나로 뭉칠 수 있습니다만, 시작하고 난 뒤엔 엉망진창이 됩니다. 자신만 생각합니다.”

  “심한 말이로군.”

  무심코 어조에 쓴맛이 묻어났다. 하지만 부정은 할 수 없다. 정말 사실이다.


  슈타덴은 일시적으로 메르카츠들을 뚫고 지나가 오딘까지 압박했다. 하지만 그 뒤엔 세츨러 자작, 라트부르흐 남작의 방만함에 휘둘리다 패배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한 발이면 이길 수 있을 때에 공적을 서두른다. 그리고 적은 항상 그 미스를 적확하게 찌르고 있다.


  “각오는 했지만, 리텐하임 후작을 잃은 건 아프군.”

  “확실히. ……하지만 수확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수확? 리텐하임 후작을 잃은 거다. 대체 어떤 수확이 있다는 건가.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헬더 자작, 하우징거 남작도. 그들은 이 싸움에서 협력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냉정한 그라이프스의 어조가 성질을 건드렸다.

  “그래서 뭐냔 말이냐! 계산이 맞는다는 건가! 리텐하임 후작이 죽었단 말이다!”


  내 노호에 그라이프스는 한 순간 눈을 감았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그라이프스!”


  “공작은 맹주이십니다! 리텐하임 후작의 죽음은 쓸모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신뢰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결전에서 도움이 되겠죠.”

  “……미안하네. 그만 감정적이 되어버렸네. 경의 말대로다. 후작의 죽음은 쓸모없지 않아.”


  그라이프스가 이쪽을 보고 있다. 냉정한 눈이다. 하지만 냉혹한 눈은 아니다. 의지의 힘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위에 서기 위해선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라이프스. 위에 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 항상 냉정할 것이 요구되니. 경이 없었다면, 난 감정에 맡겨 바보 같은 짓을 했을지도 모르네…….”


  그라이프스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망설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선 항상 그걸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걸 실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아 출세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전장에서 도태되는가.”


  그라이프스가 끄덕였다. 그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있다. 어째서 그가 한 번 입을 열고 닫았는가. 토벌군이 강한 건 그걸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연합군은 다르다.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해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살아온 귀족들이 지휘를 잡고 있다. 그거야말로 발하라에서, 키포이저에서 패배한 진짜 원인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나중에 모두에게 회전 결과를 주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이스트, 바르텐베르크 대장의 보고는 개인실에서 받았다. 다른 이들은 전투가 벌어진 건 알겠지만, 패배했다는 건 모른다.

  숨겨야 할 일이 아니고, 적당한 소문이 흘러선 좋지 않다. 정직하게 전해야겠지.


  “회랑에 모두를 모아주겠는가?”

  “예. 그 때, 지금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하는 겁니다. 협력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 제멋대로 움직이면 자신만이 아니라 아군까지 패배한다는 것을.”


  과연. 이 남자는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는가. 이번 패배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거다. 이 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감정적이 된 나 따위 전혀 믿음직하지 않았겠지. 한심한 일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리텐하임 후작파의 사람들이 솔직하게 받아들일지 어떨지…….”

  “확실히 그런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반역을 일으킨 이상, 항복을 해도 용서받을 일은 없습니다. 이제 뒤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걸 가슴 깊이 새겨 놔야 합니다.”


  그라이프스의 말대로다.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각오를 정해야겠지.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라고…….

  “신변에 주의해주세요.”

  “?”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묘한 걸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라이프스의 얼굴을 봤다. 그라이프스는 엄한 표정으로 한 발 내게 다가왔다.

  “어리석은 자가 공작의 머리를 선물로 항복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리텐하임 후작파의 사람만이 아닙니다. 모든 귀족에게 포함되는 일입니다.”


  그라이프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잠자코 있는 날 보면서 그라이프스는 끄덕이고 더욱 말을 계속했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변함없다.

  “공작만이 아닙니다.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의 신변에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두십시오. 죽이는 일은 없겠지만, 어떤 형태로 이용하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나도 자는 도중에 목이 잘린다는 무참한 최후는 사양하고 싶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입안이 끈적이는 듯 불쾌감이 있다. 공포 때문이 아니다. 제멋대로인 귀족에 대한 불쾌감이겠지.


  “그라이프스. 회랑에 모두를 모아주겠나. 1시간 후면 된다.”

  “1시간 후 말입니까?”

  “그래. 모두에게 말하기 전에 사비네에게 전해야만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겠지.”

  그라이프스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그라이프스와의 대화를 끝낸 뒤, 사비네의 방으로 향했다.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방에는 사비네만이 아니라 엘리자베트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불안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키포이저 성역 싸움이 일어난 걸 알고 있다. 사비네가 불안하게 생각해 엘리자베트를 부른 건가. 아니면 엘리자베트가 걱정해서 곁에 있는 건가. 곤란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찾아올 수도 없다. 두 사람 모두 곁으로 불렀다. 망설이며 다가온다.


  “사비네. 키포이저 성역에서 싸움이 일어난 건 알고 있겠지?”

  “예.”

  가느다란 목소리다. 이제 와서 이 아이에게 진실을 고해야만 한다는 잔혹함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사비네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은 나다. 도망치지 말라고 마음을 질책했다.


  “유감이지만, 아군은 패배했다.”

  “!”

  사비네. 그런 애절한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리텐하임 후작은 아군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전장에 남았다고 한다.”

  “그럼, 아버님은.”

  “……유감이지만, 전사했다. 훌륭한 최후였다고 들었다.”


  이내 사비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넘쳤다. 엘리자베트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사비네. 잘 듣거라.”

  “백부님.”


  사비네가 울면서 애절한 시선으로 날 봤다. 리텐하임 후작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떤 기분으로 이 아이를 두고 갔나? 무척이나 괴로웠겠지.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전장에 남았는가…….


  “리텐하임 후작은, 네 아버지는 반역자로서 죽었다.”

  “아버님!”

  사비네가 고개를 숙이고 엘리자베트가 날 비난하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자베트. 잘 들어라.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사비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네게도 관련된 이야기다.


  “그 일로 사비네, 넌 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

  “백부님…….”

  사비네가 고개를 올려 놀란 표정으로 날 본다.


  “사비네. 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훌륭히 싸웠다. 아군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전장에 남았다. 그리고 죽었다…….”

  “…….”


  “알겠니? 네 아버지는 반역자이긴 해도 부끄러워할 남자가 아니었다. 가슴을 펴라. 넌 결코 리텐하임 후작에 대해서 부끄러워해선 안 된다. 후작을 부끄러워하는 건 용서받을 수 없다. 알겠지?”


  사비네는 끄덕였다. 눈물은 멎었다.

  “저는, 아버님이 부끄럽지 않아요. 아버님은 절 누구보다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 부끄럽지 않아요. 전 빌헬름 폰 리텐하임 3세의 딸입니다.”


  “잘 말했다. 사비네. 넌 리텐하임 후작의 딸이다. 지금의 말을 후작이 들으면 널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지. 그 긍지를 잊지 마라.”

  “예.”


  사비네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흘러 넘쳤다.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거기에 잇듯이 엘리자베트도 울기 시작했다. 난 두 딸을 끌어안으며 두 아이가 다 울 때까지 잠자코 서 있었다.


  리텐하임 후작. 난 그대가 싫네.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했을 땐 잘도 살아있던 주제에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고 생각하자마자 죽어버리다니. 너무 멋대로가 아닌가. 게다가 잘도 그런 화려한 최후를 맞이하고. 난 어떻게 해야 좋은가. 덧붙여 사비네를 내가 위로해야 하다니……. 후작은 옛날부터 제멋대로에 눈에 띄고 싶어하는 데다가 무책임하다. 그러니 난 후작이 싫다는 거다…….


...


제국력 488년 2월 1일. 렌텐베르크 요새. 에리히 발렌슈타인.


  “그럼 리텐하임 후작은 전사한건가?”

  군무상서 에렌베르크 원수가 질문했다. 화면에는 에렌베르크 원수 외에도 슈타인호프 원수가 있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미묘하다.


  승리한 건 기쁘지만, 리텐하임 후작의 전사엔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겠지.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오래 알던 사이일 테고, 뭐라 해도 오딘에는 후작부인이 있다.


  “방금 별동대 총사령관 루츠 제독에게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투항하지 않고 싸웠다고 합니다.”

  “그런가. 마지막까지 싸웠는가…….”

  이번엔 슈타인호프 원수가 감탄 깊게 중얼거렸다.


  보고한 루츠에게 있어서 본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승리는 얻었지만, 마음속에서 그리던 싸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완전히 생각대로 이기는 일은 그렇게 있는 일은 아니다. 적의 병력의 3할을 섬멸하고, 리텐하임 후작도 전사한 것이다. 충분한 전과라고 말했지만, 납득한 것 같지 않았다.


  리텐하임 후작의 죽음이 너무 선명하고 강렬했던 거겠지. 언제 한 번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메르카츠 제독도 동석하는 편이 좋겠지.


  잠시 침묵이 있었다. 두 원수 모두 서로를 돌아보지도 않고 단지 잠자코 있다. 나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든, 두 사람의 마음에 있는 건 리텐하임 후작이겠지. 방해를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침묵을 깬 건 에렌베르크 원수였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되리라 보고 있는가?”

  “귀족연합에 의한 변경성역 회복은 저지됐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리텐하임 후작이 전사한 겁니다. 그들에게 있어 대타격이겠죠.”


  “음.”

  “변경성역에 있는 귀족연합의 영지는 아군의 원군은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이해했을 겁니다. 이쪽이 군사를 향하면 항복하든가, 혹은 도망치든가……. 앞으로 변경성역에서 대규모 전투는 없겠죠. 소탕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말에 화면의 노인들이 끄덕인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혀있는 적의 공략은 언제쯤이 되겠는가?”

  이번엔 슈타인호프 원수가 질문했다. 노인들의 시선은 엄하다. 아무래도 내란 종결 시기가 신경 쓰이는 것 같다.


  “본대는 느려도 이번 달 말에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근처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요새공략은 별동대의 합류를 기다리고 나서 하게 됩니다. 그럼 변경성역 평정에는 앞으로 두 달은 걸릴 테니 이동까지 합하면 세 달은 걸립니다.”

  “역시 세 달은 걸리나. 꽤나 나중이로군.”


  탄시하는 듯이 슈타인호프가 말했다. 별 수 없는 일이다. 원작과 다르다. 적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서 지금 상태에서 15만 척에 가까운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 메르카츠들만으론 병력면에서 열세다. 일부러 불리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묘하다. 그들이 이 정도의 일을 모를 리가 없다. 무슨 일이지?


  “변경성역 평정을 뒤로 돌리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먼저 공략할 순 없는가?”

  에렌베르크 원수가 묘한 말을 했다. 무슨 생각인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요새의 적을 놓치고 말았을 경우, 그 녀석들이 변경으로 돌아가기 쉬워집니다. 득책이라곤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노인 두 사람의 표정이 떫어졌다. 무슨 일인가? 에렌베르크의 생각은 즉흥이 아니다. 슈타인호프와 사전 협의가 있었던 거겠지.


  “무슨 일입니까? 뭔가 있었습니까?”

  내 질문에 서로를 돌아본 노인들이 떫은 느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무래도 동맹이 묘한 일이 된 것 같다.


  자유행성동맹에서 변경출병론, 예의 제국 내란을 길게 끌기 위해 시간을 벌자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페잔에 진주하게 되었기에 이제르론, 페잔 두 회랑을 얻었다. 나머진 시간 벌기를 해서 국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견, 아무래도 정치가, 군인의 주전파가 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출병하는 이상 당연히 포로교환은 없다. 주전파에게 있어서 병사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프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은 동맹의 협력노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더욱이 경제계가 그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페잔이다. 페잔을 적극적으로 동맹이 흡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과 결렬하는 편이 좋다. 지금처럼 제국의 지배권을 인정한 후의 진주 따위 논외인 것이다.


  제국과 결렬하고, 제국이 혼란하는 편이 페잔을 지배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동맹정부는 그들의 공세에게 밀리기 시작하고 있다…….


  동맹정부는 곤란하고 있다. 그들은 페잔이 독이 든 만두라는 걸 눈치 채고 있다. 먹기 전에 제국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무너지고 있다. 당황한 그들은 렘샤이트 백작을 통해 제국정부에게 빨리 내란을 진압하라고 전했다. 제국에게 있어서도 변경성역에 동맹군이 침공이라도 하면 곤란하겠지. 그런 거다.


  “동맹에 의한 페잔 지배는 전혀 상관없지만. 변경성역 출병이라는 건 그다지 좋지 않아. 특히 귀족연합군이 15만 척이나 되는 대군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연합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되네.”


  확실히 그 말대로다. 에렌베르크 원수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동맹에서 일어나고 있는 출병론도 그런 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양이 나온다면 최악이라고 해도 좋겠지.


  마음속에 그린 대로의 싸움은 할 수 없다. 아무래도 이번엔 내 차례인 것 같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전군을 집결해야만 한다. 그것도 전투를 단기간에 끝낼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렌텐베르크 요새에서의 휴식도 끝낼 때가 온 것 같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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