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488년 1월 5일. 메르카츠 함대 기함 네르트링겐.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리히텐라데, 트라바하 방면을 공략하고 있던 우리들과 프레이아 방면을 공략하고 있던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의 함대는 샨타우 성역에서 합류했다. 내게 있어서 티아매트 다음으로 감회가 깊은 장소다.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반란군을 쳐부순 건 작년 8월. 그로부터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리히텐라데는 당연하지만, 트라바하에서도 전투는 없었다. 귀족연합군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투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근경까지 갈 때까진 없겠지. 하긴, 전투는 없어도 할 일은 있다. 트라바하에선 귀족연합군에 참가하고 있는 귀족의 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인행성이 3개, 무인행성 중에서 광물자원을 산출하는 행성이 2개, 마찬가지로 광물자원을 생산하는 위성이 3개, 그리고 소행성대가 존재한다.


  거기에는 우리들에게 저항하는 병력, 함대전력은 없었다. 영지를 경비하고 영지민을 억제하기 위한 아주 약간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방치하면 귀족연합군의 자금면에서 원조를 계속할 것이 틀림없다. 트라바하는 오딘에서 멀지 않다. 충분히 개발된, 풍부한 성계인 것이다.


  귀족들이 남긴 통치자, 병사를 항복하게 하고, 주민들에게 제국 정부의 직할지가 됐다는 것을 전한 것을 렌텐베르크 요새의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 연락했다. 나머진 사령장관과 오딘에 있는 정치가들의 일이다. 재무성 관료들이 꽤나 바빠지겠지.


  메르카츠 함대 기함 네르트링겐에 있는 회의실에 각 함대사령관이 모였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 켐프, 케슬러, 클레멘츠, 아이제나흐,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렌넨캄프, 그리고 나.


  “지금부터 샨타우 성역 제압에 들어간다. 샨타우 성역 제압은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네.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몇 사람이 끄덕인다.


  “문제는 그 뒤다. 우리들은 리텐하임에서 브라운슈바이크를 지나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향하게 된다.”


  “적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전력을 집결하고 있습니다만, 리텐하임 후작,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잠자코 그걸 허락하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리텐하임, 브라운슈바이크에 침공하면 요격하지 않겠습니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과 클레멘츠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전투가 가까워지고 있다.

  “클레멘츠 제독의 말대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거다. 적이 나올 가능성은 적지 않아. 모두 충분히 조심하도록.”


  “적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엔?”

  “……적은 만만찮은 각오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겠지. 메크링거 제독. 방심할 수 없네.”


  20만 척 가까운 대군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보다도 전력이 많다. 그게 회의실의 공기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메르카츠 제독이 회의실을 나간 뒤 남은 멤버들끼리 잠깐 대화했다. 화두가 된 것은 슈타덴 대장의 발하라 성역 침공 작전에 대한 것이었다. 삼방면 분진합격과 각개격파. 슈타덴 대장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는가? 그는 어디서 실수했는가? 그 실수를 적확하게 찌른 사령장관의 용병술, 한 때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로엔그람 백작에 대한 건 이야기로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에게 있어, 아니 적어도 내게 있어 올 것이 왔다는 것뿐이므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타인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는 남자. 그렇다면 저건 당연한 결과겠지.


  일부러 이야기를 할 일도 없다. 아마 모두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고의로 그 이야기를 피하는 부자연스런 공기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한 때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


제국력 488년 1월 12일. 루츠 함대 기함 스키르니르.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 이제야 한 숨 쉴 수 있을 것 같다. 그대도 조금 쉬게나.”

  코르넬리아스 루츠 제독이 날 신경써서 말을 걸었다. 하긴, 루츠 제독 자신이 꽤나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감사합니다. 제독도 조금 쉬세요.”

  “고마워.”


  코르넬리아스 루츠 대장. 올해 32세가 된다고 들었다. 하얀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흥분하면 눈동자가 연보라색을 띤다고 하는데, 난 아직 본 적이 없다.


  재기발랄한 타입은 아니지만, 견실하고 안정한 역량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성격도 온화하지만 연약, 우유부단하지 않다. 안심하고 곁에 있을 수 있다. 내게 대해서도 편견 때문에 벽을 만드는 일도 없다. 사람 위에 서는 인물이란 이런 사람 같은 인물을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로엔그람 백작이 지휘관 지위를 박탈당하고 열흘, 바쁜 열흘간이었다. 모두 로엔그람 백작을 잊기 위해서 일부러 바쁘게 움직였다는 것도 있을지도 모른다.


  발텐베르크 성계 제압전이 끝나고, 함대는 지금부터 키포이저 성계로 향하게 됐다. 확실히 쉴 수 있는 건 지금 뿐이겠지. 키포이저 성계로 가면 또 바빠질 것이 틀림없다.


  전투다운 전투는 없었다. 이쪽이 진격하는 것만으로 귀족연합군의 영토는 버려진다. 본래 영지를 지켜야만 할 사람들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퇴거했다고 한다.


  기개가 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 전력이 전혀 다른 것이다. 개죽음을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루츠 제독도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 같은 전투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점령한 행성은 주민들의 자치에 맡겼다. 이쪽은 내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행성간의 치안유지에 주의를 쏟는 것에 전념. 약탈을 엄금한 것도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가 됐다.


  변경에 와서 안 것은, 귀족에 의한 행성통치의 심각함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민은 자신들의 허가 없인 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존재였다. 약탈의 엄금, 극히 당연한 것을 행해도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특권은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나는 지금까지 마린도르프 백작가를 존속하게 하기 위해 사령장관의 아군이 됐다. 솔직히 귀족에 대해서 과세를 하고 그 권력을 억제한다는 정책에 공조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변경에 와서 사령장관이 행하려고 하는 개혁이 제국에게 필요하다는 걸 잘 알았다. 확실히 제국은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귀족이라는 일부의 특권계층에 의해 뿌리까지 뽑혀 먹혀버리겠지.


  변해야만 한다. 이번 내란은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다. 제국의 미래를 정하는 싸움인 거다. 마린도르프 백작가가, 나 자신이 새로운 제국의 성립에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그걸 다시 한 번 생각해야만 하겠지.


...


우주력 797년 1월 12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최고평의회 의장 집무실은 긴장에 싸여있다. 스크린에는 제국의 고등변무관, 렘샤이트 백작이 비추고 있다. 집무실에 있는 건 트류니히트, 호안 루이, 보로딘 통합작전본부장, 그리고 나.


  요즘 보름 정도 기간, 렘샤이트 백작과 우리들은 2, 3일마다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하긴, 회의 내용이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병사를 물려라. 이건 제국의 내정문제다.”라는 렘샤이트 백작에 대해 “병사는 물릴 수 없다. 물리면 제국과 동맹의 관계는 더욱 악화한다.”라고 답하는 트류니히트.


  제국군은 3일 전부터 페잔까지 2일의 거리에서 멈추고 있다. 동맹군이 페잔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페잔 점령을 하면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는 거겠지.


  지금 상태에서 함대를 파견한 건 나름대로 효과를 보고 있다. 제국이 단독으로 페잔을 점령하는 걸 막고 있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제국의 인내도 슬슬 한계겠지.


  이제부터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트류니히트의 말대로 공동점령을 실현할 것인가. 제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엔 페잔에서 전면철퇴도 있을 수 있겠지……. 당연히 우리들도 엄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트류니히트 의장. 동맹은 제국과의 전쟁을 바라고 있는 것이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트류니히트의 대답에 대해 렘샤이트 백작의 표정이 엄해졌다.


  “그럼 병사를 물리시오. 이대로는 제국군과 경들의 함대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오.”


  “전쟁은 바라던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쪽의 사정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페잔의 점령을 인정하면, 우리들의 정권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 등장하는 건 제국에 강한 적의를 가진 정권이 되겠죠.”


  “내겐 경들도 충분히 제국에 적의를 가지고 있는 걸로 보이오만?”

  렘샤이트 백작이 비아냥 가득 찬 어조로 이쪽을 야유했지만, 트류니히트는 신경 쓰지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되면 저번 포로교환의 합의 따위 순식간에 날라버리고 말겁니다.”


  “……포로교환의 합의가 날라가버리면 곤란한 건, 제국보다도 경들일 테지. 아닌가?”

  렘샤이트 백작이 잠시 동안의 침묵 후, 낮은 목소리로 협박하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하지만 제국도 전선을 늘리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겠죠.”

  트류니히트와 렘샤이트 백작의 시선이 서로 빗나가는 일 없이 충돌한다.


  “……꽤나 더러운 분이시구먼. 트류니히트 의장. 경들은 제국의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는 듯 하네만. 나중에 이 빚은 꼭 갚게 될 것이오.”

  “이용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이대로는 서로에게 곤란한 일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

  “어떻습니까? 저희들은 서로 반목하는 것보다 협력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트류니히트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는 듯이 렘샤이트 백작에게 말했다. 렘샤이트 백작도 트류니히트에게 맞춰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다면?”

  “……페잔의 공동점령.”


  트류니히트의 말에 렘샤이트 백작이 눈썹을 모았다. 그리고 표정에 쓴맛을 섞어 내뱉듯이 말한다.

  “말도 안 되는. 그런 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오?”


  “저희들은 페잔의 내정에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페잔은 어디까지나 제국내의 일개 자치령입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건 제국과 함께 페잔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들이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공동점령이라는 이름이라는 것이오?”

  중얼거리는 듯한 어조로 렘샤이트 백작이 질문했다.


  “맞습니다. 실권은 그쪽이 쥐어도 좋습니다. 저희들도 루빈스키에겐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습니다. 페잔이 진정한 의미로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제국과 동맹의 공동출병했다고 하면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

  “공동점령에는 나름대로 이점도 있습니다. 제국에게 동맹이 협력하고 있다고 하면, 페잔의 주민들도 쓸데없는 저항은 하지 않겠죠.”


  스크린에 비추고 있는 렘샤이트 백작이 희미하게 냉소를 띠웠다.

  “조금 그쪽에게 형편 좋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만?”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 반목하는 것보다는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확실히 그건 있지만…….”

  “어떻습니까? 공동점령. 받아들어 주시겠습니까?”

  렘샤이트 백작은 잠시 동안, 시선을 내리고 생각에 잠겼다. 집무실의 긴장이 더욱 커진다.


  “……내 권한에선 답할 수 없구려. 본국에 말해보지. 단, 그쪽의 함대가 현재 위치에서 멈추는 것이 전제요. 이 제안을 시간 벌기로 쓰는 건 용서할 수 없소.”

  “물론입니다.”


  스크린에서 렘샤이트 백작이 사라졌다. 집무실의 공기가 풀렸다. 커피를 타서 이제야 겨우 모두 한 숨 쉬었다.


  “잘 된 걸까? 트류니히트.”

  “적어도 렘샤이트 백작은 공동점령안에 나쁜 감정은 가지지 않은 것 같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가 교섭을 생각하는 듯한 눈을 하며 답했다. 그리고 호안이 말을 잇는다.

  “나머진 그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본국에서 발휘할 수 있는가인데…….”


  “일이 일이니까 말야. 낙관은 할 수 없어. 렘샤이트 백작의 영향력보다도 본국의 실력자들이 어느 정도 이성적인지. 체면을 생각하면 받아들이지 않겠지.”


  트류니히트의 말에 보로딘 통합작전본부장이 엄한 목소리를 냈다.

  “트류니히트 의장. 공동점령안이 제국에게 받아들어지지 않았을 경우, 함대는 후퇴하겠습니다만. 좋겠지요?”


  “아아, 상관없어. 전쟁은 하지 않는다. 이건 자네들과의 약속이니까 말야. 그리고 함대는 바로 침공을 멈춰주게. 제국의 불신을 사고 싶지 않아.”

  “알겠습니다.”


  보로딘 통합작전본부장은 커피를 다 마시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에 호안이 가볍게 쓴웃음 짓는다.

  “트류니히트. 자넨 군부에 신용이 없구만.”


  “지금까지 한 일이 있으니까. 별 수 없겠지. 하지만 그들은 의지가 돼. 단순한 주전파나 출세하는 것만 바라는, 머리에 똥만 찬 녀석들보다 훨씬 괜찮아.”


  “신뢰는 지금부터 쌓아 가면 돼. 일단 이번 페잔의 건이 어떻게 될지가 문제군.”

  “그렇지. 레벨로. 자네의 말대로야. 잘 되면 좋겠지만…….”


  제국에서 대답이 온 건 다음날인 13일이었다. 집무실에는 어제와 마찬가지의 멤버가 모여있다. 스크린에 비춘 렘샤이트 백작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징조다.


  “렘샤이트 백작. 제국 본국에서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그 전에 트류니히트 의장. 경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소.”

  “무엇인지?”

  집무실에 긴장이 높아졌다.


  “동맹은, 어떤 의미에서도 페잔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겠소?”

  “물론입니다. 저희들은 페잔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페잔이 제국 내의 일개 자치령이라는 건 알고 있으며, 그걸 존중합니다.”


  트류니히트가 정중한 어조로 답했다. 그 답이 제국 본국에서 회답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는 건 틀림없다. 어떤 의미로라도 오해가 생길 회답은 해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겠지. 렘샤이트 백작이 천천히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좋소. 그럼 제국 본국에서 온 회답을 전하지.”

  “…….”

  “트류니히트 의장. 제국은 동맹이 제안한 페잔 공동점령안을 정식으로 거절하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소.”

  트류니히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집무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이 일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1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경의 말대로였네. 백작부인은 약을 가지고 있었어. 그 부인이 폐하를 암살하려 했을 줄이야……. 믿을 수 없는 일이구먼……. 여자란 알 수 없는 것일세.”

  “…….”


  백작부인은 그 약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장소에서 체포되어 궁중에 두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에 헌병대에게 연행되었다. 오베르슈타인이 말한 대로지만, 설마 정말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추측이 맞아도 전혀 기쁘지 않다.


  스크린에는 하염없이 고개를 젓는 리히텐라데 후작이 나타나 있다.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마음은 알 수 있다. 알겠지만. 여성문제로 내게 푸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여심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행동양식은 더욱 모르겠다. 위로할 방법이 없다. 아니, 애초에 눈앞의 늙은이가 내 위로를 필요로 하리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화두를 바꾸는 편이 좋으려나…….


  “동침 중이셨습니까?”

  “아니.”

  별거였나. 리히텐라데 후작도, 수사에 임했던 헌병대도 다행이었겠지.


  젊은 총희와 동침중인 황제에게 향해 “그 여자는 독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떨어지세요.”라는 둥 말하기 힘들 테고, 그런 말을 들은 황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 틀림없다. 무시무시한 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


  “폐하는 뭐라고?”

  “그런가. 하고, 한 마디 뿐이셨네. 그것뿐이야.”

  “…….”


  리히텐라데 후작이 침울해하는 건 백작부인의 일보다도 프리드리히 4세의 일 때문인가……. 이 늙은이다운 일이다. 황제의 일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울 뿐이지만, 이 노인의 마음을 생각하면 흐뭇하기도 하다. 이 음모할아범이 타인을 생각하며 침울해하다니……. 한 번 나 때문에 침울해지게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폐하도 여인에 관해선 축복받지 못하신 분일세. 베네뮌데 후작부인, 그뤼네발트 백작부인…….”

  “그 모두 저희들이…….”

  “그렇구먼. 해야만 하는 일이었긴 했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닐세…….”


  리히텐라데 후작이 생각났다는 어조로 말했다.

  “발렌슈타인. 결국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옳았었는가?”

  “…….”


  “부인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배제하려고 필사였네만…….”

  “모르겠습니다. 저게 질투였는지, 아니면 백작부인에게 뭔가를 느꼈었던 건지…….”


  “혹은 양쪽인가……. 여자란 성가시군. 경도 조심하도록 하게. 여운이 나쁠 것 같으니까 말이야.”

  “…….”


  괜한 참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동감이다. 성가신 여자 따위 딱 질색이다. 문제는 성가신 여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성가시지 않은 여자 따위 이 세상에 있을까? 전생에서도 꽤나 고생했다. 있다고 한다면 분명 멸종위기종이겠지.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곤하시진 않습니까?”

  “그렇군. 경이 일으킨 덕분에 제대로 자지 못했어. 조금, 아니 꽤나 피곤하네. 하지만 쉴 수도 없지. 모두에게 말해야만 하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마세요. 후작이 쓰러지면 곤란합니다.”


  내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가볍게 쓴웃음을 띄웠다.

  “밤중에 두들겨 깨워놓고서 무슨 말을 하는지.”

  “면목 없습니다.”


  “책망하는 게 아니야. 내가 그 입장이더라도 같은 일을 했겠지. 훌륭한 통찰일세. 감사를 표하지.”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 희한한 일도 있는 법이다.


  “……아뇨. 좀 더 빨리 눈치 챘어야 했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꽤나 겸손하구먼.”

  “그쪽이야말로.”


  서로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다. 이렇게 쓴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도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만일의 경우가 생기면 대혼란이 일어났겠지. 저 아집 충만한 꼬마가 황제가 된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인다.


  리히텐라데 후작과 통신을 끊은 후, 귄터 키슬링이 연락을 해왔다. 발레리가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잠이 부족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걱정이겠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이게 끝나면 나도 좀 쉴거다. 덧붙여 난 지금 개인실에 있다. 본래라면 개인실에 여성사관이 있는 건 곤란하지만, 상대가 발레리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전에 “저도 남자니까 조금은 삼가세요.”라고 말했더니 코웃음 쳤다. 말도 안 되는 여자다.


  귄터 키슬링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꽤나 지쳐있는 것 같다. 헬쑥한 표정을 짓고 있다.

  “큰일이었던 것 같네. 귄터.”


  “간단히 말하지 말라고. 무시무시한 소란이었어.”

  “…….”

  헌데, 별로 황제가 동침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수라장이 된 것도 아닐 텐데…….


  “백작부인의 방을 조사하는 거야. 여성병사를 긴급소집 했지만, 모두 투덜투덜 불만이었어. 무리도 아니지. 밤 3시다. 애인과 함께 있던 도중에 불린 녀석도 있어. 약을 발견해서 다행이지 없었으면 폭동이 일어났을 거야.”

  키슬링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런이런. 여기서도 난 푸념을 듣는 역할인가.


  “그런가. 꽤나 민폐를 끼치고 말았지만, 로엔그람 백작의 체포와 맞출 필요가 있었으니. 별 수 없는 일이었어.”

  “알고 있어. 모두 불만은 가져도 납득은 하고 있어.”


  “백작부인은 저항하던가?”

  “아니. 그건 없었어. 어렴풋이 각오는 하고 있었던 것 같아.”

  “…….”

  키슬링이 신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각오를 하고 있었는가…….


  “체포되었을 때, 로엔그람 백작과 키르히아이스 준장을 질문했어. 체포됐다고 전했지만…….”

  “전했지만?”

  “키르히아이스 준장이 경을 그 약으로 암살하려고 했던 걸 알고 놀라더군. 애처로운 이야기다.”


  키슬링이 어떻게 달랠 길 없다는 듯이 말한다. 나도 동감이다. 정말 못해먹겠다. 이 무슨 뒷맛이 나쁜 사건인지.


  키르히아이스는 안네로제가 약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베르슈타인은 그 두 사람에게 따로따로 접촉했겠지. 안네로제와 키르히아이스는 서로가 음모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서로가 자신과 오베르슈타인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네로제는 키르히아이스가 아니라 라인하르트가 음모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녀가 키르히아이스에게 연락을 한 건 그런 이유다. 키르히아이스라면 라인하르트를 멈춰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론 키르히아이스의 등을 밀게 되었다……. 안네로제도 키르히아이스도 질릴 정도로 모략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백작부인이 폐하의 암살을 받아들이실 줄이야……. 부인은 폐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을까?”

  “…….”

  키슬링이 고개를 저으며 질문했다. 답은…… 필요 없겠지. 생각하는 점은 있지만, 맞을지 아닐지…….


  남작부인 저택에서 만났을 때, 부인에게 폐하를 원망하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15세에 후궁에 들어가 40년 가까운 나이 차이가 있는 남자의 애첩이 된 것이다. 애정을 가지라고 하는 쪽이 어렵겠지.


  생활은 곤란하지 않다. 동생의 장래도 부탁할 수 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가진 그들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안네로제가 알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애정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감사는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도 자신의 몸을 희생한 뒤의 감사다. 있다고 해도 왜곡된 것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인생은 15세에서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녀는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가 자유롭게 사는 걸 원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는 살기 위한 희망이었다…….


  10년 전부터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의 시간은 멈췄다. 단지 안네로제를 구하기 위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안네로제도 마찬가지였던 건 아니었을까. 그녀는 10년 전부터 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는 여자가 되었다…….


  헌데 내가 나타나 변화가 생겼다. 라인하르트의 입장이 점점 나빠져 최종적으로 배제되게 된 것이다. 안네로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 10년 전에는 자신의 미래를 뺏고, 지금은 자신의 희망을 뺏으려고 하고 있다.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때에 오베르슈타인이 접촉했다…….


  베네뮌데 후작부인인가……. 후작부인이 안네로제를 증오한 건 안네로제가 황제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안네로제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 불쾌한 여자로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안네로제의 마음이 황제가 아니라 라인하르트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챘겠지. 그러니 그녀는 안네로제와 라인하르트를 배제하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마음을 숨기고 황제의 첩으로 지내는 여자, 야심차게 출세하는 동생. 위험하다고 판단하기엔 충분했겠지. 단순히 질투라고 생각한 나나 리히텐라데 후작이 바보였는가…….


  “여자란 알 수 없는 것일세.”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이다. 정말 동감이다. 여자란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에리히. 오베르슈타인은 이걸로 끝일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으로 키슬링이 질문했다. 기분은 알겠다. 나도 불안하다. 아픈 꼴을 당했으니 말이야.


  “어떨까? 그렇다면 좋겠지만…….”

  “…….”

  “난 실패했을지도 몰라.”

  “실패? 뭘?”

  키슬링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야. 키슬링. 이번의 체포극에 대한 게 아니야.


  “열악유전자 배제법이야. 그걸 빠른 시기에 폐기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건.”

  “알고 있어. 루돌프 대제가 만든 법이다. 게다가 유명무실화되었지. 일부러 폐기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귄터.”

  “그래.”


  “하지만 말이야. 귄터. 그 법을 폐기했으면 오베르슈타인은 반역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

  키슬링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브륀힐트에서 그가 말했어. 루돌프 대제의 시대였다면 열악유전자 배제법에 의해 갓난아기일 때 죽었을 거라고. 루돌프 대제와 그의 자손과 그가 만들어낸 모든 것을……, 골덴바움조 은하제국 그 자체를 증오하고 있다고.”

  “…….”


  “그는 바보가 아니야. 제국이 루돌프 대제의 제국에서 새로운 제국으로 변하려고 하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도 반역자의 길을 선택했다. 왜라고 생각해?”

  “…….”


  “쿠데타의 성공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았어. 그것도 그는 알고 있었을 거야.”

  “……열악유전자 배제법인가.”


  “그래. 그는 그 법이 방치되어 있는 상황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법이야말로 루돌프 대제의 통치 기반이었지. 유전자야말로 전부. 혈통이야말로 전부. 바보 같은 소리야.”

  “어이어이. 불경죄라고?”


  키슬링이 놀리는 듯한 어조로 날 책망했다. 알고 있다. 밖에선 그다지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잘못 생각하고 있다곤 보지 않는다. 그 열악유전자 배제법에 의해 공화주의자들은 반역자가 되었다.


  그들은 제국을 빠져나가 자유행성동맹을 만들고, 150년에 걸쳐 제국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역사상 최대의 악법이겠지. 난 루돌프에 대해 존경심 따위 추호도 품을 수 없다.


  “그가 아무리 우수함을 발휘해도 그의 주변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지. 그를 인정하기 전에 기피했다. ‘갓난아기일 적에 죽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을지도 몰라. 경이라면 어땠으리라 생각해?”

  “그건……. 증오하겠지. 모든 것을.”


  “넌 필요 없는 아이다. 태어나선 안 될 아이다라는 말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야. 제국이 자신을 부정하는 이상, 자신도 제국을 부정한다. 당연한 감정이겠지. 그리고 그걸 결정한 것이 열악유전자 배제법이다.”

  “…….”


  루돌프가 행한 일이 전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열악유전자 배제법과 자신의 유전자에 대한 맹신, 그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루돌프를 폭군이라고 해도 좋다. 제국은 지금 루돌프의 주박에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오베르슈타인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오베르슈타인에게 있어서 그 법을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주박에서 탈출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제국이 변한다 해도 그 법이 있는 이상 자신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바로 곁에 제국을 멸망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로엔그람 백작이 있었지.”

  “…….”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기했다면, 오베르슈타인은 로엔그람 백작을 훌륭히 컨트롤해서 개혁에 협력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에리히, 그건.”


  “알고 있어. 제멋대로의 망상이다.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폐기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니, 달라지지 않았겠지. 그래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 후회가 남아.”

  “…….”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없었다면, 루돌프가 유전자를 맹신하지 않았다면, 오베르슈타인은 장애는 있지만 우수한 인물로서 주변에서 인정받았겠지. 저렇게 타인을 거부하는 성격이 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냉정침착하긴 하지만 냉혹하지 않은 오베르슈타인인가……. 주변도 신뢰했을지도 모른다. 동맹에서 태어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제국에 태어났다. 잔혹한 이야기다.


  혹시 오베르슈타인에게 태어날 세계를 선택하게 하면 그는 어떤 세계를 고를까. 열악유전자 배제법이 없는 제국인가. 아니면 동맹인가……. 아니면 지금의 제국을 골라서, 자신의 손으로 멸할 것을 바랄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1월 2일. 로엔그람 함대 기함 브륀힐트.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성가신 일이 일어났다. 브륀힐트 함교로 향하면서 긴장한 몸이 굳는 걸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곁을 걷고 있는 뮐러도 마찬가지겠지. 평소의 온화한 표정이 지금은 굳어있다. 그런 우리들의 뒤에는 만일을 위해서 데려온 병사, 30명이 있다.


  “제도 오딘에서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 대해 조사가 들어가는 동시에 그쪽에서도 로엔그람 백작, 오베르슈타인 준장을 체포, 구속하여 오딘으로 호송하세요.”


  “바렌 제독, 뮐러 제독이 브륀힐트로 가서 로엔그람 백작들을 구속할 것. 그 사이에 루츠 제독들은 만일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취하세요. 그들에 대한 혐의, 지휘권의 박탈, 구속은 제가 명령합니다. 또 그 장소에서 로엔그람 함대의 처우, 별동대의 금후 지휘체계도 발표합니다.”


  그렇게 명령하는 사령장관의 표정은 완전한 무표정이라 일절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제도 오딘에서의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 대한 조사, 그리고 별동대에 대한 체포, 구속…….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과 발렌슈타인 사령장관 사이에서 결정된 일이다. 우리들 별동대의 지휘관들은 우연,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결정까지의 경위를 알았다.


  거기에 의하면,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준장이 사령장관을 암살하려 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는 저번에 일어난 장미정원의 습격사건에도 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제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무성의 일제 수사에도 연동하고 있다는 거겠지.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기 위해선 사령장관이 방해이기 때문에 암살을 하려 했다고 한다. 음모에 가담한 건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준장. 로엔그람 백작이 관여하고 있는지는 불명……. 그리고 백작부인에 대한 혐의…….


  사실이라면 대역죄다. 단순한 권력투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음모에 대한 관여가 불명확한 로엔그람 백작도 그냥 끝나지 않겠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은 로엔그람 백작의 찬탈을 위해서 사령장관을 암살하려 한 것이다.


  우리들은 사령장관과 국무상서의 대화를 단지 놀라면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저 장미정원 습격사건에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관여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혹시 그렇다면 사령장관이 이대로 끝낼 리가 없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일이 벌어졌다. 사령장관은 적에 대해 용서가 없는 사람이다. 키르히아이스가 사령장관을 암살하려 한 건 사실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만든 건 사령장관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령장관이 살아있을 리가 없다. 일대 일로 사령장관은 키르히아이스를 상대할 수 없다. 아마도 뤼네부르크 중장쯤이 키르히아이스를 잡았겠지…….


  그들은 사령장관의 두려움과 악랄함을 모른다. 평소엔 온화한 분이지만, 그럴 마음이 생기면 어떤 악당이라도 맨발로 도망칠 정도의 악랄한 짓을 콧노래를 부르며 지휘하는 사람이다.


  난 저 제 1순찰부대에서 싫을 정도로 맛봤다. 아군인 내가 떨 정도였다. 키르히아이스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 정도야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겠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에리히 발렌슈타인. 영관시절의 두 사람을 섬겼던 건 우주함대 사령관들 중에서도 나뿐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천성의 군인, 군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로엔그람 백작과, 무슨 실수로 군인이 된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군인답지 않은 사령장관. 닮은 점이 있다고 한다면 일에 있어서의 과단함과 적에 대한 용서없음인가…….


  권모가……. 이번의 리히텐라데 후작과 사령장관의 대화에서 생각한 건 그거였다. 권모술수를 부리며 적을 때려 눕히는 사람. 리히텐라데 후작과 함께 오베르슈타인들의 음모를 읽어내고, 대응책을 생각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권모가였다.


  함교에 도착하니 거기엔 이미 슈타인메츠 참모장, 진처 준장,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 뤼케 중위가 있었다. 경례를 하는 그들에게 답례를 돌린다. 모두 긴장한 얼굴이다. 무리도 아니다. 그들도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준비는?”

  “이미 분함대사령관들은 브륀힐트로 향해서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5분이면 함교에 도착하겠죠. 로엔그람 백작, 오베르슈타인 준장에겐 지금부터 연락합니다.”

  내 질문에 슈타인메츠 참모장이 답했다.


  “그럼 5분 후엔 모두 여기에 모인다는 건가.”

  “예. 그리고 렌텐베르크 요새 사이에 회선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령장관은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고 하십니다.”

  “알았다.”

  데려온 30명을 함교 입구에 배치한다. 여차한 경우엔 그들의 힘을 빌리게 되겠지만, 가능하면 혼란하는 일 없이 처리하고 싶다.


  사령장관에게서 로엔그람 백작의 구속을 명령받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진처 준장에게 연락을 취하는 일이었다. 진처 준장에게서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 슈타인메츠, 뤼케에게 연락을 취해 한 명씩 사정을 말했다.


  반대하면 그 장소에서 진처 준장이 구속됐을 것이다. 하지만 전원 찬성했다.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는 어쨌든, 슈타인메츠, 뤼케가 찬성한 것은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로엔그람 백작의 행동에, 그리고 오베르슈타인의 행동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면 자신이 반란에 가담하고 있게 되진 않을까?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했다…….


  뤼케 중위가 로엔그람 백작에게 연락을 넣고 있다.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긴급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사령장관의 용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시급히 함교로 와주십시오.”


  그 곁에서 슈타인메츠 소장이 같은 내용을 오베르슈타인에게 전하고 있다. 오전 4시. 이 시간대에 불리는 것이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필요하다. 사령장관의 건강 문제 정도밖에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로엔그람 백작들이 오기까지, 뮐러 제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뮐러는 괴롭겠지. 그는 사령장관의 친구지만, 동시에 로엔그람 백작에 대한 걸 믿고 있었다. 의심하면서도 어딘가 믿으려고 했다…….


  “이런 날이 올줄은…….”

  “뮐러 제독. 경은 로엔그람 백작과 오래 알던 사이였지.”

  “준장으로 승진했을 때, 분함대사령관으로서 200척 정도의 함대를 이끌었습니다만. 상관이었던 것이 로엔그람 백작. 당시의 뮈젤 중장이었습니다.”


  “그때의 긍지는 잊을 수 없겠죠. 그런데…….”

  한숨을 내쉬는 뮐러의 마음을 잘 알수있다. 나도 준장이 되어 함대를 이끌었을 땐 기뻤다. 당연히 이끌었던 함대에, 소속한 함대에 대한 마음이 있다.


  나이트하르트 뮐러. 좋은 남자다. 성실하고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다. 사령장관의 친구지만, 그 일을 주변에 자랑하는 일도 없을뿐더러, 사령장관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일도 없다. 어디까지나 성실하게 일개 함대사령관으로서 임무에 힘쓰고 있다.


  로엔그람 백작 휘하의 분함대사령관들이 찾아왔다. 브라우히치, 알트린겐, 카르나프, 그뤼네만, 자우켄, 그로테발. 모두 유능한 자들이다. 나와 뮐러를 보고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했다. 그리고 로엔그람 백작, 오베르슈타인 준장이 함교에 나타났다. 대조적인 두 사람이다. 화려하고 예리한 로엔그람 백작과 음침한 오베르슈타인.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봐렌, 뮐러도 있었나.”

  “예. 저희들도 여기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기에.”

  로엔그람 백작이 의심쩍게 말을 걸었지만, 무난한 대답을 했다. 완전히 납득하지는 않았겠지만, 슈타인메츠 소장의 목소리에 그 이상 질문은 없었다.


  “각하.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통신입니다.”

  스크린에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나타났다. 함교에 웅성거림이 생겼다. 몸이 좋지 않다는 사령장관이 나타난 것이다. 놀랐겠지. 계속해서 루츠, 로이엔탈, 미터마이어의 모습도 나타났다.


  “사령장관? 몸이 편치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로엔그람 백작이 의심쩍게 말했다. 사령장관만이 아니다. 루츠 제독들의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겠지.


  “예. 별로 좋지 않습니다. 바로 5시간 전에 죽을 뻔 했으니까요.”

  사령장관의 말에 함교가 더욱 웅성거린다.


  스크린에 나타난 사령장관은 온화하게 말을 계속했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준장이 날 죽이려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키르히아이스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


  아연하게 로엔그람 백작이 중얼거렸다.

  “제가 살아있는 게 상황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말입니다.”

  “…….”


  스크린이 바뀌었다. 키르히아이스가 사령장관에게 블라스터를 겨누고 있다. 시야의 한 편에서 슈타인메츠, 진처, 뤼케 세 사람이 로엔그람 백작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유감이었지요. 장미 정원에서 습격이 실패했으니.”

  “…….”

  “부정하지 않는군요. 준장. 역시 관계하고 있었습니까.”


  그 말에 함교가 웅성거린다. 로엔그람 백작은 창백하다.

  “어째서 절 죽이는 겁니까? 키르히아이스 준장.”

  “시간 벌기입니까?”


  “아뇨. 단지 의문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날 죽이는 걸까하고.”

  “방해이기 때문입니다.”

  “방해라면?”


  “라인하르트님이 제국을 손에 넣고, 우주를 정복하는 데에 각하는 장해물인 겁니다. 각하만 없으면 라인하르트님은…….”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는 데에 전 방해입니까.”


  아까 전의 웅성거림은 없다. 모두 창백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다. 서로를 돌아보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모두 알 수 없는 거겠지. 나 스스로 이렇게까지 결정적인 증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스크린이 바뀌고 사령장관이 나타났다.


  “거짓말이다.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어. 키르히아이스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어…….”

  로엔그람 백작이 창백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보시는 바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저번 장미정원 암살사건에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내무성, 궁내성과 짜고 혼란을 크게 하여, 거기에 편승하여 제국의 권력을 쥐려 했습니다. 그 모든 게 로엔그람 백작, 경을 위해서입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내가 그런 걸 바란다고 언제 말했나. 어째서냐…….”

  “그 답은, 오베르슈타인 준장에게 듣는 편이 좋겠죠. 이번 음모의 시나리오를 쓴 건 그니까요.”


  주변의 시선이 오베르슈타인에게 집중했지만, 그는 움츠리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다. 시선 따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이.

  “오베르슈타인. 그런 건가? 경이 키르히아이스에게 암살하라 시킨 것인가? 어째서냐.”


  “어젯밤의 사령장관 암살사건은 키르히아이스 준장의 독단입니다. 소관은 관계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외는 소관이 생각했습니다.”

  “약을 준비한 건 경이지요.”

  “그렇습니다.”


  “약?”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심장발작에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약으로 절 암살하려 했습니다. 자연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


  “어째서냐. 어째서 그런 짓을 했나. 내가 언제 그런 일을 부탁했나. 답하라! 오베르슈타인!”

  “각하에게 이 제국을 통치하게 만들기 위해선 다른 수단이 없었습니다.”


  “내가 저 자에게, 발렌슈타인에게 이길 수 없다고 하는 건가!”

  “…….”

  “답해라! 오베르슈타인! ……네놈.”

  로엔그람 백작이 격노한다. 오베르슈타인은 무표정한 채다. 백작이 초조하게 말을 하려는 때, 사령장관의 목소리가 흘렀다.


  “오베르슈타인 준장. 이 약 말입니다만,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도 넘겼습니까?”

  “……넘겼습니다.”

  “네놈, 누님을 휘말리게 했는가!”


  격노하여 뛰어들려는 로엔그람 백작을 슈타인메츠와 진처가 잡았다. 몸을 휘둘러 난리치려는 로엔그람 백작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약을 넘겼다. 역시 폐하를 암살할 생각이었나…….

  “모두 각하를 위해서입니다. 각하에게 남은 시간은 짧습니다. 서두를 필요가 있었습니다.”

  “짧다?”


  “유능하고 순종적인 사령장관이 있는 겁니다. 자유행성동맹이 약체화한 지금, 제국에 반의를 가진 부사령장관따위 불필요. 제국 상층부는 그렇게 생각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사령장관.”

  “……. 그렇지요. 언젠가 배제되었을 겁니다.”

  “!”


  “각하는 모르고 계시는 듯 합니다만, 극히 위험한 입장에 있었던 겁니다. 각하가 살아남기 위해선, 이번 내란을 이용하여 패권을 쥔다. 그 이외엔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소관은 어떤 일이라도 합니다.”

  “…….”


  “오베르슈타인 준장. 경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로엔그람 백작에게 걸었던 건가?”

  이상했다. 어째서 로엔그람 백작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가. 승산이 낮은 내기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걸 모르리라 생각할 수 없다.


  오베르슈타인이 손을 오른쪽 눈에 댔다. 그리고 손을 찌른다. 손 바닥 위에 작고 둥근 구체가 있다. 그리고 오른쪽 눈에는 기묘한 공동이 생겼다…….


  “보시는 대로 소관은 두 눈이 의안입니다. 루돌프 대제 시대라면 열악유전자 배제법에 의해 갓난아기일 때에 죽었을 테죠. 소관은 증오하고 있습니다. 루돌프 대제와 그의 자손과 그가 만들어낸 모든 것을……. 골덴바움조 은하제국 그 자체를.”

  “…….”

  대담한 발언에 모두 숨을 삼켰다. 이것만으로도 오베르슈타인의 사형은 틀림없다.


  “골덴바움 왕조는 멸망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소관 스스로 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관에겐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로엔그람 백작에게 협력했습니다. 골덴바움 왕조를 멸하고 싶어하는 로엔그람 백작에게.”

  “…….”


  말을 끝내고 오베르슈타인은 오른쪽 눈을 원래대로 돌렸다. 기묘한 공동이 사라진다. 흥분도 격앙도 없었다. 담담히 말하는 오베르슈타인의 모습에 기묘하기까지 압박감을 느낀 건 나뿐이었을까?


  “로엔그람 백작. 경의 별동대지휘관으로서의 권한을 박탈합니다. 바렌 제독. 그 몸을 구속하여 오딘으로 보내세요. 오베르슈타인 준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로엔그람 백작과 오베르슈타인 준장을 일단 독방으로 옮겨라.”

  “예.”

  “기다려라. 누님은 어떻게 되나. 누님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어떻게 되나? 말할 것도 없다. 대역죄에 얽혀 있다면, 사형은 피할 수 없다…….

  “누님은 관계없다. 누님을 휘말리게 하는 건 그만둬! 누님은 관계없어.”

  로엔그람 백작이 몸을 흔들어 호소하고 있다.


  “로엔그람 백작. 야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지 않겠고, 반의를 가지지 말라고도, 난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이 뒤틀어졌을 때의 각오도 가졌으면 하는군요. 그렇지 않으면 꼴불견일 뿐입니다. ……애들 장난이 아니야!”

  “…….”

  사령장관이 눈썹을 모아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로엔그람 백작과 오베르슈타인이 병사들에게 끌려간다. 로엔그람 백작이 몇 번이나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의 무실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무슨 뒷맛이 나쁜지.


  “슈타인메츠 소장.”

  “예.”

  “이 이후엔 사령관 대리로서 함대를 이끌어주세요. 경의 역량이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기대합니다. 각 분함대사령관도 슈타인메츠 사령관대리를 도와 임무에 임하세요.”

  “예. 반드시 기대에 응하겠습니다.”


  “그리고 별동대 총지휘는 루츠 제독에게 부탁하겠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큰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예.”


  루츠 제독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었다. 대군을 이끄는 건 무인의 소원이지만, 루츠 제독에게 있어서 결코 기쁜 상황은 아니겠지. 내가 그 입장이라면 머리를 감싸 쥘 것이다. 하지만 선임이며 능력도 있다. 도망치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프로이라인 마린도르프. 당신은 루츠 제독의 곁으로 가세요. 근경성역 평정을 위해 당신의 식견을 보여주세요. 알겠죠?”

  “알겠습니다.”


  “이번 건은 어디까지나 로엔그람 백작, 오베르슈타인 준장이 행한 일입니다. 별동대는 관계 없습니다. 동요하는 일 없이 변경성역 평정에 전념해주세요.”

  “예.”


  “그럼, 다음은 부탁드립니다.”

  사령장관이 경례했다. 우리들도 서둘러 경례로 답했다. 사령장관은 희미하게 웃고서 경례를 풀었다.


  우리들이 경례를 풀자 동시에 스크린에서 사령장관의 모습이 사라졌다. 렌텐베르크 요새와의 통신이 끊어졌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곁에 있는 뮐러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나도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이야. 뮐러…….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1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뤼네부르크는 방까지 따라왔다. 내가 집무석에 앉으니 방의 한 편에 있던 의자에 허리를 내린다. 그가 날 향해서 때때로 신경 쓰는 듯이 보는 걸 알았다. 왠지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치 채지 못한 척했다.


  하긴 저편도 그런 건 당연히 알고 있겠지. 평범한 녀석이라면 불편함에 방을 나가버렸겠지만, 그런 애교는 추호도 없는 녀석이다. 나가라고 해도 혼자는 위험하다면서 계속 앉아있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와는 오랜 사이다. 무턱대고 내쫓을 수도 없다.


  남작부인은 꽤나 충격을 받았지. 뭐, 친한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형되는 것이 결정된 거다. 태연하게 있는 게 더 이상하겠지. 남작부인은 힐더와 다르다. 힐더는 정치 센스가 풍부한 총명한 여성이지만, 남작부인은 호기심은 강하지만 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걸출한 정치 센스 따위 조금도 없다.


  원작의 남작부인은 라인하르트가 권력을 쥐기까지 때때로 관여하고 있지만, 권력을 쥔 후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립슈타트 전역 이후, 안네로제가 라인하르트의 곁을 떠난 것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키르히아이스를 잃은 후의 라인하르트의 변모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열 살 이상의 남자는 사형. 그런 걸 태연하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녀가 따라갈 수 있을 리라곤 생각할 수 없다.


  아마도 이번 사건으로 그녀는 내 곁을 떠나가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서워져서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내 곁을 떠난다고 해서 그것을 마음에 두지는 않는다. 난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 라인하르트와 크게 다를 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내게서 떠나야만 한다. 사람,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게 있다.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아마 예술의 세계로 가야만 하겠지. 패트론으로서 많은 예술가들을 키우는 거다.


  귀족다운 취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정치 세계에서 귀족으로서 특권을 휘두르려 한다면 용서하지 않겠지만, 정치에 관여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날 죽이려했다. 올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무장의 날 쏘겠다고 했을 땐 당황했다. 게다가 그 눈은 날 죽이고 싶어하는 눈이었다.


  그런 일을 할 녀석이 아니라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결국 사람, 궁지에 몰리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방심하지 말라는 거다. 확실히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대로, 내가 무른 거겠지…….


  눈앞의 캡슐이 있다. 키르히아이스가 내게 먹이려고 했던 캡슐이다. 심장발작에 가까운 증상을 일으킨다고 했지만……. 심장발작인가……. 심장발작……, 심장발작? 바보 같군.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각하, 각하!”

  “……뭡니까? 뤼네부르크 중장.”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통신이 들어왔다? 확실히 그렇다. 호출음이 들리고 있다. 눈치 채지 못했나……. 그런 눈으로 보지마라. 뤼네부르크. 난 괜찮아…….


  “발렌슈타인입니다.”

  “발트하임입니다. 함대사령관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함교로 와주십시오.”


  ‘사람이란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내가 무른 거겠지.’

  ……지나친 생각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신경질적인 것일 뿐이다.


  “발트하임 참모장.”

  “예.”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연락을 취하세요.”

  스크린에 나온 발트하임의 얼굴이 경악으로 차있다. 나도 동감이다. 아마도 어딘가 머리가 이상해진 거겠지.


  “각하. 이 시간에 국무상서를.”

  시간? 그게 무슨 상관이냐. 겨우 밤 2시 반이 아닌가. 자고 있는 거지 죽어있는 게 아니야. 두들겨 깨워라.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상관없습니다. 두들겨 깨우세요. 발렌슈타인이 급한 용건으로 말하고 싶어한다고…….”

  “예.”


  이제 뒤로 물러날 수 없군. 정말이지. 어째서 이런 바보 같은 생각만 하는 건지……. 아마도 바보라서 그렇겠지. 어쩔 도리 없는 바보다.

  “뤼네부르크 중장. 갑시다.”

  “예.”


  뤼네부르크가 기쁘게 답했다. 이 녀석, 어째서 그런 기쁜 표정인 거냐? 내가 귀찮은 일에 휘말릴 때마다 언제나 기쁜 표정을 짓는다. 정말 되먹지 못한 녀석이다. 어째서 난 이 녀석을 곁에 두고 있는 걸까? 전혀 모르겠다…….


...


제국력 488년 1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막달레나 폰 베스트팔레.


  함교는 혼란에 빠져있다. 함대사령관들과의 연락이 통했다고 생각하자 이번엔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을 부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당연하겠지. 발트하임 참모장이 국무상서의 집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는다.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지 말길 바란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시급히 후작과 연락을 취하고 싶다고 하시는 거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원수 각하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아까부터 계속 이런 상태다. 발트하임 참모장은 초조해하고 있고, 국무상서의 집사는 어딘가 우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국무상서의 위세를 이쪽에게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밤중에 주인을 일으키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그런 거겠지.


  함교에 사령장관이 들어왔다. 엄한 표정이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사령장관의 뒤에는 주변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면서 뤼네부르크 중장이 붙어 있다.


  그것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함교의 공기가 혼란에서 긴장으로 바뀐다. 두 사람은 여기를 나갈 때와 전혀 다르다. 마치 사냥을 나서는 맹수와 같이 흉흉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지휘관석에 앉는 사령장관의 질문을 들으며 발트하임 참모장이 면목 없다는 듯이 스크린을 봤다. 사령장관도 스크린을 본다. 엄한 표정이다. 싸움 와중에도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싸우는 남자의 표정이다.


  “발렌슈타인입니다. 중대한 용건으로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상담할 일이 있습니다. 후작을 불러주세요.”

  “하지만, 벌써 이런 시간…….”

  “두들겨 깨우세요.”


  사령장관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집사, 함교의 모두, 스크린에 나온 사령관들…….

  “이 건에 불상사가 발생했을 경우, 후작과 경이 책임을 물어주셔야 합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후작을 두들겨 깨우세요.”


  사령장관의 엄한 표정과 말에 집사는 새파래졌다.

  “…….”

  “빨리 정하세요. 후작을 부를 건지. 아니면 죽을 건지.”

  “자, 잠시 기다리십시오. 지금 주인을 부르겠습니다.”

  “바보가…….”


  집사가 서둘러 사라지는 것과 사령장관이 내뱉는 건 동시였다. 사령장관은 꽤나 초조해하고 있다. 어지간히 큰 일이 벌어진 거겠지. 모두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면목 없습니다. 후작에게 시급히 상담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대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괜찮습니까? 저희들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좋겠죠.”


  사령장관은 로이엔탈 제독과 이야기를 끝내고 오른손으로 왼팔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살짝 숙이듯이 시선을 내렸다. 그대로 왼팔을 계속 두드린다. 함교는 아플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모두 사령장관을 살피는 듯이 보지만, 사령장관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왼팔을 계속 두드릴 뿐이다. 그리고 한 번 크게 숨을 토했다.


  “무슨 일인가? 발렌슈타인.”

  리히텐라데 후작이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타난 건 집사가 사라지고 5분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사령장관이 팔을 두드리는 걸 멈췄다.


  “방금 키르히아이스 준장을 잡았습니다.”

  “그 건은 어젯밤에 들었네.”

  리히텐라데 후작이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조로 웃었다. 자고 있던 때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지만, 사령장관은 신경쓰지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제게 약을 먹이려고 했습니다. 이겁니다.”

  사령장관의 손에는 작은 캡슐이 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약에 집중했다.

  “그래서?”


  “이 약은 심장발작과 매우 비슷한 증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단 몸에 들어가면 검출하기 굉장히 어렵다던가. 타살이 의심될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도 이게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그런, 아얏!”

  항의하려고 하던 내 어깨를 강한 힘이 잡았다. 마치 어깨를 눌러 부술 것처럼.


  뤼네부르크 중장이었다. 중장이 강한 시선으로 날 보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소란피우지마. 다음엔 목을 비틀겠다.”고 중얼거렸다. 난 아픔을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중장은 가볍게 끄덕이고 한 번 강하게 어깨를 잡고서 풀었다.


  “경, 진심인가?”

  “진심이고 제정신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10월 말에 이 약을 손에 넣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백작부인도 손에 넣었겠죠.”

  “음.”

  리히텐라데 후작이 엄한 눈으로 약을 노려보고 있다.


  그런 약이 안네로제에게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폐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리히텐라데 후작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령장관의 억측이다.


  “장미정원의 일을 생각해보세요. 그때의 표적은 저와 후작이었습니다. 노이켈른 궁내상서가 궁중의 실권을 쥐고, 로엔그람 백작을 불러들어 협력하여 제국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오딘으로 돌아간 로엔그람 백작은, 궁중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나와 경을 암살한 노이켈른을 잡아 쿠데타를 진압하여 실권을 쥐려고 했지.”


  설마, 그런 일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놀란 표정을 짓지 않는다. 몇 사람은 끄덕이고 있다. 유괴사건이 일어났을 때, 라인하르트가 의심을 받았던 건 알고 있다. 이 사건에도 모두들 관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 내게 숨기고 있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물렀던 걸까? 어딘가 라인하르트들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게 사실에서 눈을 돌리게 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만다……. 난 어딘가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던 건가……. 그러니 나만이 키르히아이스의 체포에 납득하지 못하고, 사령장관에게 달라붙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로엔그람 백작이 군의 실권을 쥐기 위해선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직이 필요할 겁니다.”

  “음.”


  “폐하가 로엔그람 백작에게 그걸 허락할까요?”

  “아니. 그럴 리 없지. 다음 사령장관은 메르카츠로 정해졌다. 과연. 확실히 이상하구먼.”

  리히텐라데 후작이 사령장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사령장관은 한 번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오베르슈타인은 그 건을 몰랐을 겁니다만, 폐하가 간단히 백작을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너희들이 저나 후작을 죽였다고 폐하가 비난하셨을 경우, 백작은 어떻게 하리라 생각합니까? 백작이 음모의 건을 몰랐다고 한다면?”


  “과연. 오베르슈타인에게 있어 폐하는 방해물인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구먼.”

  “예. 죄는 노이켈른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습니다. 노이켈른 궁내상서가 우리들을 암살하여 실권을 쥐려고 했지만, 폐하의 신뢰를 얻을 수 없어, 오히려 폐하를 시해했다…….”


  “뒤를 잇는 건 에르빈 요제프 전하인가. 과연. 조종하는 건 어렵지 않겠구먼.”

  “로엔그람 백작은 반란을 진압하고 대역죄인을 물리친 영웅입니다. 이제부터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생각에 잠겨있다. 사령장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침묵에 함교는 아플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 말하고 싶은 건 알겠네. 하지만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그런 짓을 할까? 지금까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네만.”

  “그렇기에 더더욱 좋습니다. 누구도 백작부인을 의심하지 않겠죠. 폐하와 로엔그람 백작. 어느 쪽을 골라야만 한다면 백작부인은 어떻게 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있는 것 같군.”

  “그렇지도 않습니다.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령장관의 말에 리히텐라데 후작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반인가……. 폐하의 목숨이 걸린 일일세. 백작부인을 조사하도록 하지.”


  안네로제가 조사된다. 어째서 그런 일이……. 그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을 상관하지 않고 계획이 착착 정해진다. 헌병대가 궁중에 들어가는 건 1시간 반 후, 거기에 맞춰 별동대도 라인하르트의 구속에 움직인다.


  따로따로 행동했을 경우, 서로에게 연락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경우 백작부인이 자살, 혹은 폐하를 시해할지도 모른다. 그런 거였다.


  정말 안네로제가 약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사령장관과 리히텐라데 후작의 대화. 아주 조금의 단서만으로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걸까…….


  정치계의 엄함, 거기서 사는 남자들의 가열함, 맹렬함, 혹렬함, 아주 약간의 실수가 목숨을 뺏는 세계……. 그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령장관이 몇 번이나 내게 알렸던 경고. 그 의미를 겨우 알 것 같았다.


  저건 이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난 어리석게도 그걸 경시했다. 자칫 잘못하면 난 오베르슈타인에게 이용되던가, 혹은 사령장관에게 이용당해 엉망진창이 됐겠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요행에 지나지 않는다.


  상담은 어느 샌가 끝났다. 사령장관은 지휘관석에서 온화한 표정을 띠고 있다. 주변에는 피츠시몬즈 중령이 있을 뿐이다.

  “각하.”


  나는 망설이면서 말을 걸었다. 사령장관은 의심쩍은 표정을 보였다. 피츠시몬즈 중령이 방심 없이 자세를 잡고 있다.

  “면목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사령장관은 내 말에 희미하게 쓴웃음을 짓고 끄덕였다.


...


제국력 488년 1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은하영웅전설 원작을 읽으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무척이나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버밀리온 회전을 머리에 떠올리겠지. 하지만 난 암리처 회전 후에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죽은 것이야말로 강운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4세의 죽음에 대해서 라인하르트는 앞으로 5년, 아니 2년만 살아 있으면 범한 죄악에 어울리는 죽음을 보여줬을 거라고 마음속을 중얼거리고 있다. 키르히아이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프리드리히 4세가 앞으로 1년 더 살았더라면, 죽은 건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국 상층부엔 라인하르트를 위험시하는 사람들이 넘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르론 요새 함락후의 일이지만, 제국군 3장관과 리히텐라데 후작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보면 그들은 라인하르트의 지위가 오르는 걸 심하게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장미정원에서의 황제와 리히텐라데 후작의 대화. 거기에 동맹군 침공을 알았을 때의 리히텐라데 후작과 겔라흐 자작의 대화…….


  리히텐라데 후작, 겔라흐 자작, 그리고 제국군 3장관. 그들 사이에서 라인하르트는 소모품이었다. 동맹이 건재하다면 이용하지만, 그 뒤엔 배제……. 암리처 회전에서의 대승리는 충분히 배제의 계기가 될 수 있었겠지.


  라인하르트를 배제할 구실은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다. 초토작전이다. 그 작전으로 변경성역 2억 명은 아사지옥에 빠졌었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 짓이었는지는 립슈타트 전역 때에 변경성역에서 부과 3개월 미만 사이에 60회 이상의 회전이 일어났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당연하지만 변경성역 귀족들의 분노도 격심했을 것이다. 라인하르트를 처단하면, 변경성역의 주민, 귀족들, 그 양쪽의 환심을 살 수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가질 터인 변경성역에 대해 라인하르트를 처단하는 것으로 그 죄를 라인하르트 개인의 것으로 만든다…….


  카스트로프 공작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려 한 제국이라면, 라인하르트를 잘라버리는 것도 쉬운 일이었겠지.


  승리의 개선에서 정신을 차리면 처형장이라는 거다.

  “단지 이기면 좋다는 승리법은 우주함대를 이끄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다.”

  그 한 마디로 라인하르트에게서 우주함대를 박탈할 수 있겠지. 그 뒤는 말할 것도 없다.


  우스운 것은 라인하르트가 그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엔 앞으로 2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의 자신을 둘러싼 정치상황을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이 강운을 눈치 채지 못한다.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죽은 걸로 모든 게 변했다. 제국은 언제 내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리히텐라데 후작은 라인하르트의 배제를 일단 중지하고 손을 잡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과 싸울 것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라인하르트의 황제의 길이 열린 것이다.


  난 지금까지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자연사했다고 생각했다. 라인하르트는 무척이나 운이 좋다고. 하지만 이번의 키르히아이스가 쓴 약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저건 자연사가 아니다.


  오베르슈타인은 라인하르트들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눈치 챘다. 그러니 손을 썼다. 먼저 동맹에 대해 대승을 하여 라인하르트의 군사능력을 보인다.


  다음으로 프리드리히 4세를 암살하여 제국에 후계자 분쟁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에르빈 요제프를 추대하게 한다. 이 중 라인하르트의 승리와 에르빈 요제프의 추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프리드리히 4세의 암살이다.


  오베르슈타인은 어떤 수단으로 안네로제와 접촉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위기를 호소하고 프리드리히 4세의 암살을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안네로제는 실행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운이 좋다.


  혹시 두 사람의 접촉에는 남작부인이 관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황제암살을 눈치 챘을 가능성도 있겠지. 그녀가 라인하르트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엔 그런 이유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암리처 회전 후, 오베르슈타인은 키르히아이스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넘버 2 불요론이지만, 사실은 키르히아이스와 안네로제의 접근을 경계한 건 아닐까?


  안네로제가 황제암살을 키르히아이스에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말도 안 될 심각한 사태가 됐겠지. 키르히아이스는 오베르슈타인을 용서하지 않을 거고, 라인하르트도 두 사람의 불화의 원인이 뭔지 관심을 가질 것이 틀림없다. 그야말로 파멸적인 사태다.


  키르히아이스의 사후, 오베르슈타인은 안네로제와 대화를 나눴다. 무슨 말을 하고, 뭘 말하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회담 후, 안네로제는 이해했을 것이다. 오베르슈타인은 자신에게 타인의 접근을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프로이덴의 산장으로 옮긴 것도 그게 원인이겠지.


  “저는 죄가 깊은 여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뭘까. 키르히아이스에 대한 속죄였을까? 내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4세를 암살한 것이 그녀라면, 거기에 대한 무게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4세가 죽었기에 골덴바움 왕조는 소멸하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골덴바움 왕조가 몰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걸 이해했을 것이다.


  그녀가 왜곡된 모습이라도 안전하고 유복한 생활을 유지하고, 라인하르트를 출세하게 할 수 있었던 건 프리드리히 4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배신한 것이다. 거기에 대한 사죄의 마음도 있던 건 아니었을까…….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1월 2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막달레나 폰 베스트팔레.


  제국력 488년 이틀째가 시작하고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발렌슈타인 함대의 사령부 요원에게 긴급히 집합명령이 내려왔다. “시급, 총기함 로키로 집합하라.”. 악담을 뱉으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위안 정도로 대충 화장을 하고 함교로 향한다.


  방을 나오니 옆방에서 마찬가지로 피츠시몬즈 중령이 나오는 중이었다. 마침 좋다. 이걸로 혼자 늦게 가는 일은 없어졌다. 서둘러 옆으로 다가가 중령에게 말을 걸었다.

  “중령, 대체 뭐가…….”

  “서둘러요. 남작부인.”


  중령은 내 말을 끊고 바삐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리지는 않나요?”

  “밤중에 사령부요원이 달리면 주변이 불안해합니다.”


  침착한 어조였다. 과연. 확실히 그렇겠지. 중령은 벌써 몇 번이나 이런 경험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서두른 발걸음으로 걷는 중령의 뒤를 뒤처지지 않도록 쫓았다. 답답한 마음을 참으며 함교로 향한다.


  함교에 도착하니 사령장관을 중심으로 이미 전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이 곁으로 가니 몇 명이 날카로운 눈빛을 향했지만, 중령은 주눅드는 일 없이 침착하게 말했다.

  “늦었습니다.”


  사령장관은 무표정으로 끄덕인다. 무거운 공기로 싸여있다. 사령장관의 옆에는 잔이 놓여 있다. 아름다운 와인글라스다. 안은 투명하니까 아마도 물이겠지. 사령장관이 무표정하게 물을 마시고 있다……. 주변의 무거운 공기도 그렇고,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닌 게 확실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원 모였지요?”

  “아직 키르히아이스 준장이 오지 않았습니다만.”

  사령장관의 말에 크루젠슈텔른 부사령관이 주의를 구하는 듯이 말했다. 긴장해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확실히 지크가 없다. 어떻게 된 걸까. 지각을 할만한 애는 아닐 텐데…….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오지 않습니다.”

  사령장관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고했다. 모두 의심쩍은 시선을 교환하는 중, 뤼네부르크 중장과 슈마허 준장만이 누구와도 시선을 교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여기에 우리들이 모인 것도 그게 관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크는 어떻게 된 걸까.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독방에 있습니다.”

  “!”

  “그는 날 죽이려고 했습니다. 저번 장미정원의 습격사건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모두 얼어붙었다. 꿈쩍도 할 수 없는 와중, 사령장관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담담히 말을 계속했다. 정말로 죽을 뻔한 걸까…….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가.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선 내가 방해가 되니까. 그런 거였습니다.”


  지크, 어째서 그런 짓을……. 가슴이 옥죄이는 듯이 아팠다. 사령장관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령장관이 와인글라스의 물을 마셨다. 설마, 지크는 함정에 빠졌다? 암살은 날조?


  “로엔그람 백작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무거운 분위기 중, 발트하임 참모장이 곤혹해하는 듯한 어조로 사령장관에게 질문했다.


  “백작이 어디까지 사건에 얽혀있는 지는 모릅니다. 일단 일절의 권한을 박탈하고 오딘으로 돌려보냅니다. 나머진 헌병대의 일이겠죠.”

  “…….”

  “각 함대사령관에 대한 연락을 준비해주세요. 제가 직접 이야기합니다. 제일 먼저 별동대를. 단, 브륀힐트는 빼주세요. ……질문은?”


  질문은 없었다. 모두, 각자의 준비를 위해서 자리를 떠난다. 남은 건 사령장관, 뤼네부르크 중장, 피츠시몬즈 중령, 나……. 사람 수가 줄어들어도 무거운 분위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각하.”

  조금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령장관이 날 본다. 그리고 바로 시선을 와인글라스로 향했다. 한 순간이었지만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 시선이었다. 말을 건 것을 후회했지만, 그래도 듣고 싶은 일이 있다.


  “지크를, 키르히아이스 준장을 함정에 빠뜨린 건가요?”

  “남작부인!”

  뤼네부르크 중장이 낮은 목소리로 날 갈책했다. 하지만 사령장관은 오른손을 들어 중장을 막았다.


  “예. 싱거웠습니다. 그는 모략에 어울리지 않아요.”

  “알고 계신다면 어째서 그런 짓을.”

  내 비난에 사령장관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와인글라스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다. 시선도 와인글라스에 향한 채다. 이제 물도 남아있지 않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가 날 죽이려고 한 건 사실이고, 그들이 찬탈을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남작부인도 희미하게 눈치 채고 있었겠죠? 비난이라니. 의외입니다.”

  “!”


  뤼네부르크 중장과 피츠시몬즈 중령이 숨을 삼키는 걸 알았다. 눈치 채고 있었겠죠. 그 말이 귓가를 울린다. 확실히 그렇다.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겠지. 라인하르트의 행동이 모두에게 의심쩍게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암살 따위를 할 비겁함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지크가…….


  “키르히아이스 준장처럼 비겁하다는 둥, 재미없는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전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가 죽었을 수도 있었겠죠. 아니, 실제로 한 번은 죽을 뻔 했습니다. 하지만 난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단지 그런 겁니다.”


  사령장관이 어렴풋이 웃음을 띠며 날 보고 있다. 어딘가 요염한, 무서운 웃음이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이쪽을 가늠하는 듯이 차갑게 빛나고 있다. 넌 그들의 야심을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너도 그들의 일당 중 한 명이다. 그렇게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엔그람 백작이 각하를 암살하라고 명령한 걸까요?”

  “아뇨. 그건 아니겠죠. 그는 그런 비겁함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백작을 구속이라니……. 그렇게까지 그가 방해인 건가요?”

  “남작부인.”

  이번엔 피츠시몬즈 중령이 날 책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라인하르트를 감싸는 것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난 마음 어딘가에서 이 사람이라면 라인하르트를 능숙하게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인하르트는 타인에게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


  “방해?”

  사령장관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날 봤다. 그리고 쿡쿡 웃더니 마지막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고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남작부인. 로엔그람 백작은 패자입니다. 패자는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아요. 제가 그를 방해라고 생각한 게 아닙니다. 그가 저를 방해라고 생각한 겁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은 그 마음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충실하게 말이죠.”

  “…….”


  로엔그람 백작은 패자. 사령장관의 말이 귀에 남았다.

  “저는, 정점에 서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언제나 그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라인하르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저건 언제의 일이었을까. 확실히 샨타우 성역 회전 다음이었다. 내 소원 따위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바보 같은 소원이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추억에 빠져있던 날 사령장관의 목소리가 깨웠다.

  “남작부인. 이 건에 관해서 불만을 가지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표현하는 건 그만두세요. 이건 제국의 총의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총의?”


  사령장관이 날 신경써주고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총의? 총의라는 무슨 말일까. 사령장관이 시선을 내게 향했다. 어딘지 애처로운 시선이다.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 그리고…… 저. 저희들 사이에서 로엔그람 백작은 제국의 불안정요소였습니다. 이번 내란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를 이용하려 하고 있지요.”

  “…….”


  “제국은 이제부터 페잔, 자유행성동맹을 포함하여 은하를 통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국 내부의 불안정요소를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


  “문벌귀족도 로엔그람 백작도 제국의 불안정요소인 이상 배제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정을 걸었습니다.”

  “그럼 지크를 함정에 빠뜨린 건 역시…….”


  내 말에 사령장관은 끄덕였다.

  “예. 진짜 목적은 로엔그람 백작의 배제입니다. 키르히아이스 준장만을 배제해도 어떤 의미도 없으니까 말이죠.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원수, 슈타인호프 원수도 이 건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


  탄식이 나올 것 같았다. 곁에 있는 피츠시몬즈 중령이 숨을 삼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인하르트가 우주함대 내부에서 미묘한 입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함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야심적이고 패기에 넘치는 창빙색 눈동자. 그 눈동자는 주변에서 위험시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배제되려고 하고 있다. 사령장관은 내게 그들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알고 있다. 사령장관은 이전부터 내게 그들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래도 들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안네로제,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은 어떻게 됩니까?”

  “이제 그만하시오. 남작부인.”

  뤼네부르크 중장이 나를 제지했지만 무시하고 사령장관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됩니까?”

  “…….”

  사령장관은 또 와인글라스를 보고 있다.

  “알려주세요. 각하!”


  내 질문에 사령장관은 탄식을 뱉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 불행한 분입니다. 백작부인만 없었으면 로엔그람 백작의 급격한 대두도 없었겠죠. 키르히아이스 준장도 평온한 일생을 보냈을 것을…….”


  시선을 피하며 타인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사령장관에게 무심코 버럭했다.

  “각하! 얼버무리지 마세요. 그녀는 어떻게 됩니까?”

  “이제 그만두세요!”

  피츠시몬즈 중령이 목소리를 올렸다. 강한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안네로제는 내 친구인 거다.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일도 있을 수 있겠죠.”

  조용한 목소리가 흘렀다.

  “그런…….”

  항의하는 날 사령장관은 손을 올려 막았다.


  “백작부인이 제 암살에 가담했다는 일은 없겠죠. 하지만 로엔그람 백작이 찬탈을 바랬다고 한다면 당연히 백작부인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녀의 처우에 대해선 최종적으로는 폐하가 판단을 내리게 되겠습니다만, 리히텐라데 후작의 의견이 크게 영향을 미치겠죠.”

  “…….”


  리히텐라데 후작……. 엄한 눈빛을 가진 노인. 후작은 안네로제를 어떻게 할까. 베네뮌데 후작부인의 일이 생각났다. 사령장관이라면 후작에게 안네로제의 목숨을…….

  “소용없습니다.”


  놀라서 사령장관을 봤다. 사령장관은 또 와인글라스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리히텐라데 후작에 대한 제 첨언을 기대하고 있다면 소용없습니다. 후작은 제가 로엔그람 백작에게 무르다고 화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첨언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겠죠. 그 무른 부분을 때려 고쳐주겠다면서 말입니다.”


  “무른 겁니까?”

  “예. 너의 그 무른 부분 때문에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화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말대로입니다. 저의 무름이 싫어질 정도입니다.”

  사령장관이 어렴풋이 웃음을 띠웠다. 어둡고 어딘가 자신을 조소하는 듯한 웃음이다. 무심코 가슴을 때리고 싶어졌다. 이 사람이 물러? 대체 리히텐라데 후작은 얼마나 엄하다는 걸까…….


  “……그럼 폐하에게 직접 부탁하면.”

  “설령 총희라 할지라도 동생이 대역죄에 얽혀 있다고 하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처벌이든 내려지겠죠. 게다가 키르히아이스 준장, 오베르슈타인 준장이 관여하고 있었던 건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슨 일입니까?”

  내 질문에 사령장관은 무표정해졌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그들은 궁중에서 일어난 유괴사건, 쿠데타 사건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저 사건에는 내무, 궁내, 그리고 근위과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나 사람이 죽었습니다.”

  “…….”


  “근위병총감 람스도르프 상급대장은 자살, 노이켈른 궁내상서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도 딸을 빼앗겨 본의가 아닌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괴된 두 사람은 폐하의 혈족이십니다.”

  “본의가 아닌?”


  내 질문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겠지. 사령장관은 한 순간 놀란 표정을 내게 보였다. 그리고 생각났다는 듯이 한 번 끄덕였다.


  “아아, 남작부인은 몰랐지요. 그들은 사실 반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승산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예의 유괴사건 때문에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 모든 것에 저 두 사람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내무성, 궁내성과 짜고 혼란을 크게 만들어, 거기에 편승하여 제국의 권력을 쥐려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로엔그람 백작을 위해서입니다.”


  “…….”

  “로엔그람 백작의 소원은 제 2의 루돌프 대제가 되는 것. 그리고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을 되찾는 것…….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이번의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백작부인은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에게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죠…….”

  마지막은 극히 사무적인 어조가 됐다. 너무나도 싸늘해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령장관이 와인글라스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강하게 밀었다. 와인글라스가 쓰러지고 그 충격으로 마른 소리를 내며 굴렀다.


  “아름답고, 단단하며, 그리고 위험합니다. 유연함 따위 어디에도 없지요. 사용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깨지고 맙니다……. 불편하네요. 성가시기도 합니다. 전 좀 더 튼튼하고 부서지기 어려운 머그컵을 좋아합니다.”


  사령장관은 지긋이 구르고 있는 와인글라스를 보고 있다. 아니,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이쯤으로 해두지요. 전 다시 개인실로 돌아가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불러주세요.”


  결코 강한 어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이상 질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목소리, 사람의 위에 설 수 있는 인간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뤼네부르크 중장이 뒤를 쫓듯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리를 일어서려고 한 피츠시몬즈 중령에게 고개를 저어 말렸다. 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지만, 중령은 어깨를 떨어뜨리고 얌전히 자리에 앉고, 뤼네부르크 중장이 사령장관의 뒤를 쫓았다.


  피츠시몬즈 중령이 떠나가는 사령장관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한 순간 강한 시선으로 날 노려본 뒤, 한숨을 내쉬고 와인글라스를 봤다. 중령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아름다운 잔이라고 생각한다. 평소라면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만이 들었다. 이런 잔,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8년 1월 1일. 렌텐베르크 요새.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렌텐베르크 요새 내에 전용 개인실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사령장관 전용 집무실은 있지만, 밤 늦게 쉴 때엔 반드시 총기함 로키로 돌아가서 쉰다. 환경이 바뀌면 잘 자지 못한다고 한다. 의외로 신경질적인 부분이 있다.


  그 때문에 사령부 사람은 총기함 로키와 렌텐베르크 요새에 각기 떨어져 쉬게 되었다. 매일 밤 절반이 렌텐베르크에, 나머진 총기함 로키에서 쉬게 되어 있다.


  오늘 밤은 나와 발트하임 참모장이 로키에, 뤼네부르크 중장과 슈마허 준장이 요새에서 쉬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각 분함대사령관들이 요새에서 쉬고 있다.


  피츠시몬즈 중령과 베스트팔레 남작부인은 부관이라는 입장이기에 항상 사령장관과 행동을 함께하기 위해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쉬는 일이 없다. 뭐, 총기함에 있는 편이 여성에게 안전할지도 모른다.


  사령장관실의 앞까지 왔다. 밤 23시. 사령장관은 벌써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되돌릴 수 있겠지. 어떻게 할까. 돌아갈까……. 블라스터를 뽑는다. 그리고 사령장관실의 문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아직 일어나 있다.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만 입은 러프한 모습으로 집무책상에서 콘솔을 보고 있다. 뭔가 조사라도 하는 듯하다. 날 한 순간 봤지만, 바로 시선을 콘솔로 옮겼다. 블라스터에 눈치 채지 못했나…….


  천천히 사령장관에게 다가간다. 사령장관실은 집무책상과 소파, 벽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안쪽 방에는 침대가 있겠지. 옆에는 욕실과 화장실, 세면대가 있겠지. 사령장관까지 앞으로 3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발을 멈췄다.


  “무슨 용무입니까? 키르히아이스 준장……. 벌써 밤도 깊었습니다. 가능하면 내일로 해줬으면 합니다만.”

  “죄송합니다만, 각하에게 내일은 이제 없습니다.”


  내 말에 사령장관은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꽤나 뒤숭숭한 대사로군요. 게다가 블라스터를 뽑고 있잖습니까. 무슨 속셈입니까?”

  “말했을 겁니다. 각하께선 여기서 죽으셔야 겠습니다.”


  사령장관은 날 찬찬히 바라봤다.

  “이제야 겨우 상처도 나았습니다만……. 키르히아이스 준장. 전 비무장입니다만. 쏠 겁니까?”

  “……쏘겠습니다.”


  내 말에 사령장관은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과연. 쏘겠습니까. 다르다는 거군요.”

  “웃지 마십시오. 뭐가 웃깁니까?”


  솔직히 재미없었다. 공포도 보이지 않고 단지 웃고 있는 사령장관이 증오스러웠다. 그렇다. 증오스러운 것이다. 이 사람은 항상 나와 라인하르트님 앞에 있었다. 우리들이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항상 시치미 때는 얼굴로 앞을 걷고 있었다. 우리들을 조소하는 듯이…….


  “그렇지요. 웃을 때가 아니지요. 하지만 블라스터로 사살은 현명한 생각이 아닙니다. 의심 받을 거예요. 준장.”

  그 말대로다. 사살은 위험하다. 그래서야 라인하르트님에게도 의심이 간다.


  “사살은 하지 않습니다. 각하께선 이 약을 먹어주셔야 겠습니다.”

  주머니에서 캡슐을 꺼냈다. 사령장관은 잠자코 보고 있다. 눈에는 흥미롭다는 색이 있다.


  “이 약은 심장발작에 가까운 증상을 일으킵니다. 게다가 이 약은 한 번 체내에 들어가면 검출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타살을 의심받을 일은 일단 없습니다.”


  “내가 순순히 그걸 먹을 거라고 라도?”

  사령장관은 입가에 쓴웃음을 띠우고 있다. 조소도 냉소도 아니라, 어딘지 즐기는 듯이 보였다. 무슨 생각이냐.


  “먹게 합니다. 거부하실 경우엔 전신을 마비하게 만들고 입에 물립니다.”

  “과연. 블라스터를 포획용으로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령장관은 몇 번인가 끄덕였다.


  “언제부터 그 약을 준비했습니까?”

  “각하의 막료가 됐을 때부터입니다. 가능하면 이 약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유감이었지요. 장미 정원에서 습격이 실패했으니.”

  “…….”

  “부정하지 않는군요. 준장. 역시 관계하고 있었습니까.”


  그 말대로다. 저 사건만 잘 되었다면 지금쯤은 라인하르트님이 우주함대를 지휘하고 있을 터였다.

  “어째서 절 죽이는 겁니까? 키르히아이스 준장.”


  “시간 벌기입니까?”

  “아뇨. 단지 의문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날 죽이는 걸까하고.”

  “방해이기 때문입니다.”


  “방해라면?”

  “라인하르트님이 제국을 손에 넣고, 우주를 정복하는 데에 각하는 장해물인 겁니다. 각하만 없으면 라인하르트님은…….”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는 데에 전 방해입니까.”

  사령장관은 그렇게 말하고 쓴웃음을 띄웠다. 이제 끝내도록 하자.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건 불쾌하다. 죽이는 것도 불쾌하지만 함께 있는 쪽이 훨씬 불쾌하다.


  “마지막에 남길 말은 있습니까?”

  “그렇군요. 죽음에 시시비비는 없으리니. 아니면 꿈속의 꿈인가……. 어느 쪽이든 진부하군요.”


  그렇게 말하고 사령장관은 또 쓰게 웃었다. 진부할까. 어느 쪽이든 인상에 남는 말이다. 적어도 난 잊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하고 사령장관은 또 쓴웃음 지었다. 진부한가. 어느 쪽이든 인상에 남는 말이다. 적어도 난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스스로 먹겠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먹겠어요. 이쪽으로 약을 주세요.”


  집무책상으로 캡슐을 던졌다. 캡슐이 집무책상 위를 구른다. 사령장관이 캡슐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쪽을 보고 웃었다. 아까 전까지의 재밌어하는 웃음이 아니다. 차가운, 그리고 경멸하는 웃음.


  “이걸로 자살은 할 수 없게 됐군요. 준장.”

  “?”

  “연극은 이만 끝내도록 할까요.”


  “그렇게 하지요.”

  배후의 벽장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다! 바보 같은! 뒤돌아보며 블라스터를 향하려고 한 순간 손목에 무언가가 부딪쳤다. 충격으로 블라스터가 손에서 떨어진다.


  한 순간 시선이 블라스터로 향했다. 그리고 다리를 걸려 균형을 잃고 바닥에 손을 댄 순간, 재차 몸에 강한 충격을 받아 날아갔다. 일어나려고 한 순간 머리에 차가운 무언가가 들이밀어졌다…….


...


제국력 488년 1월 1일. 렌텐베르크 요새.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움직이지 마라. 키르히아이스 준장.”

  “수고하네. 슈마허 준장.”

  “뤼네부르크 중장이야말로.”


  슈마허 준장은 블라스터를 키르히아이스 준장을 눌러 붙이면서 답했다. 어설펐군. 키르히아이스. 등을 돌리려면 만일을 위해서 벽장 속을 확인했어야 했다. 사령장관을 죽이는 데에 너무 신경이 쏠렸나.


  키르히아이스를 바닥에 눌러 붙이고 양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거기에 더해 양 발에도 수갑을 채웠다. 그 뒤에 몸을 일으켜 의사에 앉게 했다. 나와 슈마허 준장이서 키르히아이스의 뒤에 선다. 사령장관이 천천히 키르히아이스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두 사람 모두. 키르히아이스 준장. 준장이 오리라고 생각해서 벽장 속에는 뤼네부르크 중장, 욕실에는 슈마허 준장에게 대기하도록 했습니다. 쓸데없는 짓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


  “모두 듣도록 하겠습니다.”

  “말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사령장관은 키르히아이스의 거절의 말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거절해서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사령장관 속의 짐승이 환희의 목소리를 지르는 걸 알 수 있었다. 키르히아이스. 이 앞은 네게 있어서 틀림없이 지옥이다. 내가 보증하지. 너희들이 사령장관이 진심을 다하게 만들었다. 그 두려움을 충분히 맛보도록 해라…….


  “어제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서 연락이 있었죠.”

  “…….”

  “숨겨도 소용없습니다. 준장의 방에는 감시 카메라와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어느새.”

  “뭘 위해서 요새와 로키를 교대하며 쉬게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


  “환경이 변하면 잘 잘 수 없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군인이라구요? 어디에서든 잘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사령장관은 쿡쿡 웃음소리를 냈다. 키르히아이스의 놀란 표정이 이상한 건가, 아니면 생각 없이 걸린 것이 웃겼던 건가…….


  “감시 카메라와 도청기는 이 방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의미를.”

  사령장관의 그 말에 키르히아이스가 곤혹한 표정을 보였다.


  “곤란하군요. 저희들이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

  “장미 정원의 습격사건. 그리고 날 죽이는 이유. 확실히 로엔그람 백작이 제국을 찬탈하기 위해서였죠.”


  사령장관의 즐거워하는 말에 키르히아이스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몸이 조금씩 떨기 시작했다.

  “어제 백작부인에게서 연락이 있었고, 오늘 준장이 날 죽이려고 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뤼네부르크 중장.”


  “백작부인이 준장에게 사주했다. 그렇게 생각하겠죠. 이번 일련의 음모의 뒤에는 백작부인이 있다는…….”

  “안네로제님은 관계없어! 그 분을 휘말리게 하지마!”


  키르히아이스가 몸을 내밀고 의자에서 떨어지려고 한다. 목덜미를 잡고 의자로 돌렸지만, 키르히아이스는 몸을 뒤틀며 계속 날뛰었다. 그런 모습을 사령장관은 웃음을 띠며 보고 있다.


  “백작부인이 관계없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정하는 건 경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이 의미를.”

  “비겁한……. 비겁하잖습니까! 사령장관!”


  비겁. 그 말에 사령장관의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은 알겠다. 암살을 하려고 했으면서 비겁이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같은 마음이었겠지. 슈마허 준장이 차갑게 내뱉었다.


  “비겁? 자신이 하려고 했던 짓이 뭔지 알고는 있는가? 경에게 그런 말을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키르히아이스 준장. 모략에 비겁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속는 쪽이 얼간이일 뿐입니다. 비겁하다는 말은 최고의 칭찬입니다. 그만큼 상대를 분하게 만들었다는 거니까요.”

  “…….”

  키르히아이스는 입술을 깨문 채 지긋이 사령장관을 노려보고 있다.


  “백작부인을 살리고 싶으면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으세요.”

  “……그렇게 하면, 살 수 있다고.”

  “저 분이 음모에 관여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겠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건 준장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라는 겁니다.”

  “…….”


  “내무성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필사적일 겁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자신의 죄를 덮어 씌우려고 하겠죠. 백작부인은 좋은 표적일 겁니다.”

  “…….”


  “준장이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하면 백작부인에 대한 변호도 되겠죠. 하지만 하나라도 거짓말이라도 하면 백작부인에 대한 증언도 신빙성이 낮아집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라인하르트님은, 로엔그람 백작은 어떻게 됩니까. 로엔그람 백작도 이번 건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키르히아이스가 애원하는 듯한 시선으로 사령장관을 봤다. 어리석은. 백작부인과 백작은 입장이 다르다. 그 정도도 모르는가. 아니, 알아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애처로운…….


  “로엔그람 백작은 죽어주셔야 겠습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님은…….”

  “누구를 위해서, 뭘 위해서 날 죽이려고 한 겁니까? 키르히아이스 준장.”

  “…….”


  “이건 전쟁인 겁니다. 나와 경, 그리고 오베르슈타인 준장의. 경들은 로엔그람 백작을 중심으로 한 제국을 만들려고 했다. 나는 경들과 다른 제국을 목표로 했다. 제국은 하나. 패배한 자는 사라질 수밖에요…….”


  어딘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어조였다. 사령장관은 어딘가 로엔그람 백작을 죽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그런, 부탁합니다. 라인하르트님…….”


  “그럼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겁니까! 백작이 날 죽이라고 했습니까! 자신들이 멋대로 시작해서 이제 와서……. 웃기지마!”

  “!”


  사령장관의 생생한 감정이 키르히아이스를 때렸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가슴을 쥐며 사령장관은 키르히아이스를 노려보고 있다. 사령장관은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로엔그람 백작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걸 슬퍼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령장관의 표정이 보였다. 슈마허 준장과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을 수밖에 없다.


  사령장관이 손을 키르히아이스의 눈앞에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예의 캡슐의 있다.

  “고르세요. 여기서 자살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걸 말할 것인가.”


  차가운 목소리다. 아까 전의 격정은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령장관의 마음은 아직 흔들리고 있다. 아까전의 감정이 화염이라면 지금은 얼음이다. 상냥함 따위 어디에도 없다. 시선까지 얼어붙을 것 같이 차갑다. 그 차가운 시선으로 키르히아이스를 응시하고 있다.


  “자살하면 백작부인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셋이서 발할라에 간다. 그것도 좋겠죠. 어떻게 할 겁니까?”

  키르히아이스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다. 목덜미에서 땀이 흐르고, 몇 번이나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좋겠죠.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그 걸 잊지 마시길. 키르히아이스 준장.”


  사령장관이 부드럽게 말했다. 표정에도 웃음이 있다. 그거라면 평상시의 사령장관이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가면의 웃음이었다. 마음을 숨기는 가면의 웃음…….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12월 29일. 페잔. 아드리안 루빈스키.


  “동맹의 대답은 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루퍼트가 어딘지 재밌어하는 어조로 말을 걸었다. 곤란한 녀석이다. 조금 더 내심을 숨길 수 있으면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래서야 너무 뻔해서 조금 재미가 없다.


  “그렇군. 동맹이 함대를 파견한 건 어디까지나 동맹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 현재 동맹에는 제국과 사이를 틀만한 여유가 없다고……. 내게도 반제국활동을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


  스스로 말하고 무심코 쓴웃음이 나왔다. 트류니히트는 무척이나 성실한 표정으로 날 걱정하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반제국활동을 그만 두라고. 역시 동맹에서 최고 자리에 설만하다. 적어도 루퍼트보다도 재밌게 해준다.


  “과연. 동맹은 제국 사이에 화평의 길을 찾겠다는 겁니까. 웃긴 일이군요. 차라리 녀석들에게 알려주는 게 어떻습니까? 발렌슈타인은 동맹과의 공존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고.”

  루퍼트가 트류니히트를 조소했다.


  “쓸데없겠지.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내가 동맹과 제국을 이간질하려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글세. 어떻게 해야 할까?”


  집무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루퍼트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몸을 숨깁니까?”

  “…….”

  아직 젊구만…….


  루퍼트를 잠자코 응시한다. 내가 응시하자 루퍼트는 자리가 불편한 듯하다. 루퍼트. 네겐 세 가지가 부족하다. 하나는 참는 일이다. 그리고 참는 일을 배우기 위해선 시간과 경험이 필요해.


  네게는 그 세 가지가 부족하다. 네가 날 뛰어넘기 위해선 적어도 앞으로 15년은 걸리겠지. 그걸 알면 길게 살 수 있겠지만, 넌 모를 거다. 유감스러운 일이군. 네게 있어서도, 내게 있어서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동맹은 필사적으로 제국 사이의 관계개선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국이 페잔 회랑을 자유롭게 쓰게 만드는 건 불안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3개 함대를 파견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도망치는 건 하책이군. 가능한 한 오래 버텨서 제국군을 페잔으로 침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는 편이 제국과 동맹의 관계를 긴장하게 만들 수 있겠지. 내기에 거는 것은 내 목, 꽤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루퍼트. 너도 이 게임에 참가하도록 해라.


  문제는 그 뒤다. 도망친 후, 어디에 자신의 기반을 둘까……. 지구교인가? 하지만 페잔을 잃은 지구교는 스스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지겠지. 그렇다면 언젠가 그 정체가 겉으로 나온다.


  지구교의 강점은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크다. 그 정체가 알려지면 강점이 사라진다. 적당한 곳에서 인연을 끊어야겠지. 그리고 이용해준다. 일단 거기까지로군. 그 앞은 불확정요소가 너무 많다.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지.


  음모, 모략도 세련되면 예술과 다를 바 없다. 아무래도 제국에는 날 뛰어넘는 남자가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은하를 통일하여 우주를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말도 안 된다. 혼란 속에서야말로 음모와 모략이 빛나는 거다. 내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 평화 따위 내겐 필요 없다. 철저하게 저항해주지.


...


제국력 487년 12월 30일. 오딘, 군무성, 군무상서실.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이제 곧 올해도 끝나겠구먼.”

  “그렇군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꽤나 일이 많은 1년이었던 기분이 드는군요.”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가 감탄 깊게 일 년을 되돌아봤다. 확실히 일이 많았지. 그런 주제에 일 년이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의 말대로구먼.


  “작년 이맘쯤이군요. 제 3차 티아매트 회전에서 원정군이 돌아온 건.”

  “그런가. 그건 작년의 일이었는가. 좀 더 이전에 일어난 일인 기분이 들었네만…….”


   “경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세. 봄에는 제 7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에서 대패를 맞았지. 그리고 여름엔 샨타우 성역 회전에서 대승리를, 가을에는 칙령을 포고하여 겨울엔 제국을 둘로 나누는 내란이 일어났네. 이 무슨 바쁜지…….”


  “내년엔 어떻게 될까요.”

  “바빠지지 않을까. 군무상서. 3년 안에 페잔 경유로 반란군을 침공하겠다고 하니까 말이야.”


  “슈타인호프 원수의 말대로일세. 사람을 쓰는 게 험한 애송이니 말이야. 편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말게나.”

  모두 서로를 돌아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바쁜 건 맞지만, 일하는 보람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구먼. 괴롭다고 생각한 일은 없다.


  “그래서 예의 플로토라는 자, 뭔가 불었는가? 소문에는 아무 것도 불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하네만.”

  “플로토 대령은 모두 불었습니다.”


  모두 불었다? 그렇다면 소문은 헌병대가 고의로 흘린 건가…….

  “그래서, 어땠는가? 군무상서.”


  “플로토들은 카스트로프를 떠난 후, 바로 내무성 사회질서유지국과 접촉했다고 합니다.”

  “…….”


  카스트로프? 설마하고 생각하네만, 15년 전의 일, 그 자들의 짓이라는 건 아니겠지?


  “플로토들은 카스트로프 공작의 명령으로 증거인멸 공작, 혹은 범죄행위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내무성에는 그 범죄 기록이 있었습니다. 경찰조직을 쥐고 있는 겁니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죠. 사회질서유지국은 자신들에게 따르지 않으면 기록을 공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


  “그 이후 그들은 내무성의 뒷일을 행하게 됐습니다.”

  “기다려라. 사회질서유지국이 아닌 겐가?”

  “일은 반드시 사회질서유지국만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플로토들은 사회질서유지국이 아니라 내무성의 재산이 됐다는 거겠죠.”


  에렌베르크가 혐오를 담아서 말한다. 군인이면서 범죄에 손을 물들이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내무성의 뜻대로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에렌베르크에게 있어서 화딱지 나는 마음이 있겠지…….


  “유괴사건은 랭 사회질서유지국 국장의 명령으로 행해졌습니다. 플로토의 이야기로는 사전에 궁내성, 근위병 사이에 유괴사건의 협력체제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플로토들은 어떤 걱정도 없이 유괴를 실행했다고…….”


  “…….”

  “어제 아침 일찍, 내무성 국장 이상의 직에 있는 자를 일제히 체포했습니다. 내무상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렌베르크가, 슈타인호프가 눈으로 답을 보충했다.


  “좋겠지. 실수가 없게 하게나.”

  “예.”

  아무래도 일 년 마지막 날까지 바빠지겠구먼. 이래서야 신년도 바쁠 것이 확실하겠고.


  “헌데, 플로토 대령은 내무성과 로엔그람 백작의 연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었는가?”

  “아뇨. 거기에 대해선 아무 것도.”

  “…….”

  어차피 단순한 도구인가. 도움이 되질 않는군.


  “헌데, 리히텐라데 후작은 카스트로프 공작이 10년 전, 발렌슈타인의 양친을 죽인 걸 알고 계셨습니까?”

  에렌베르크가 이쪽을 추궁하듯이 질문했다. 역시 범인은 플로토였는가. 악연이구먼…….


  “……알고 있네.”

  “그럼, 발렌슈타인은.”

  “저것도 알고 있네. 에렌베르크 원수.”


  방에 침묵이 떨어졌다.

  “후작이 알려준 겁니까?”

  “아니. 이미 알고 있었네. 어느 인물에게서 진상을 들었다고 했네만. 누구에게서 들었는지는 상상이 가네.”


  “발렌슈타인이 황제의 어둠의 왼손이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까?”

  슈타인호프가 망설이는 어조로 질문했다. 과연. 그걸 묻고 싶었는가. 에렌베르크와 슈타인호프도 반신반의하는 정도겠지…….


  “나도 한 때 의심했던 일이 있네. 하지만 아닐세. 황제의 어둠의 왼손은 그림자에서 움직이는 걸세. 눈에 띠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 아마도 저것에게 알려준 자가 어둠의 왼손인 건 아닌가하고 생각하고 있네.”


  “그건 대체…….”

  “경들은 몰라도 좋네. 나도 확증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


  아마도 그 노인이겠지만. 장본인이 죽은 지금에 와선 모든 게 어둠 속이구먼. 무리하게 파낼 필요도 없겠지. 그러한 짓을 해도 어떤 도움도 되질 않아…….


...


제국력 487년 12월 31일. 렌텐베르크 요새.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지크. 미안해요. 당신도 바쁠 텐데.”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무슨 일 있었습니까?”

  스크린에 나타난 안네로제님의 표정엔 고민하는 듯이 그림자가 있다. 조금 헬쑥해보이기도 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일을 끝내고 렌텐베르크 요새에 있는 개인실로 돌아가니 안네로제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락해 줬으면 한다고. 안네로제님에게서 연락을 바라다니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오늘, 내무성에 헌병대가 일제 수사에 들어갔어요.”

  “!”

  “저번에 있었던 엘리자베트님, 사비네님의 유괴에 내무성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해요.”


  헌병대가 내무성을 일제 수사……. 유괴사건의 조사. 그것만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어째서 안네로지님은 내게 그걸 알리려고 하는 건가…….


  “그렇습니까. 제도도 소란스럽군요. 안네로제님도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지크. 난 괜찮아요. 그보다도 라인하르트의 일인데…….”

  “라인하르트님이 무슨?”


  안네로제님이 시선을 숙였다. 무슨 일일까. 라인하르트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

  “2주일 전부터 오딘에 어느 소문이 흐르고 있어요.”

  2주일 전, 우리들이 오딘을 빠져나간 뒤인가…….


  “소문, 입니까.”

  안네로제님은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저번에 일어난 발렌슈타인 원수 습격사건인데, 군부의 일부가 가담한 자가 있다는, 그런 소문이에요.”

  “!”


  “모두가 그러더군요. 발렌슈타인 원수를 방해라고 생각하는 건 라인하르트라고. 라인하르트가 발렌슈타인 원수를 암살하려 한 것이 아닌가하고…….”


  “…….”

  “이번 헌병대가 노리는 것도 사실은 라인하르트가 아닐까요? 동생이 유괴사건에도 관여하고 있었다고 하면…….”


  안네로제님의 안색은 창백하다. 이 소문에 심하게 떨고 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이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

  “리히텐라데 후작이 라인하르트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리히텐라데 후작……, 그럼 소문은 고의로 흘린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이 건은 발렌슈타인 원수도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리히텐라데 후작의 독단? 노리는 건 라인하르트님의 배제…….


  “지크. 정말 라인하르트는 괜찮을까요? 전 그게 걱정이라…….”

  “괜찮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이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믿어주세요. 그보다도 이 건을 라인하르트님에게 말씀하셨나요?”


  “아뇨. 말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까. 라인하르트님은 변경성역 평정으로 바쁘실 겁니다. 이런 소문으로 마음을 어지럽히면 안 되겠죠. 안네로제님도 그다지 신경쓰지 마시길.”


  안네로제님이 날 보고 있다. 간절한 시선이다. 가슴이 아프다.

  “믿어도 좋은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 라인하르트님이 그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네로제님의 얼굴에 겨우 안심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크. 동생을 부탁해요. 저 아이가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없도록 지켜봐주세요. 혹시 그런 징조가 보이면 꾸짖어주세요. 라인하르트는 당신의 충고라면 받아들일 거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안네로제님. 라인하르트님에 대한 제 충성심을 믿어주세요.”

  “고마워요. 지크. 미안해요. 무리한 부탁만해서. 하지만 당신 이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내게도 동생에게도 없어요. 용서해주세요…….”


  “…….”

  그렇지 않습니다. 전 두 사람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무심코 그런 말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네로제님은 분명 괴로운 표정을 짓겠지.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소문이 흐른 시기, 리히텐라데 후작의 움직임, 그리고 헌병대가 내무성을 일제 수사……. 각각이 독립한 움직임이 아니다. 연동해서 움직이고 있다. 확실하게 상대는 이쪽을 압박하고 있다.


  아마도 발렌슈타인 원수는 저 사건의 진상을 눈치 챘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님에 대한 삼가를 버리려는 걸까? 아니면 리히텐라데 후작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어느 쪽이든 이대로는 라인하르트님이 위험하다.


  라인하르트님은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니, 저 사건에는 우리들 중 누구도 관여하고 있지 않다. 모두 미발인 채로 끝났다. 증거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내무성 사람이 나나 오베르슈타인 준장의 관여를 증언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괜한 트집이라고 뿌리쳐버리면 된다.


  다소의 의심이 라인하르트님에게 쏠릴지도 모르지만, 라인하르트님은 무관계인 거다. 나를 물고 넘어지는 일은 가능하다. 아니, 물고 넘어지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발렌슈타인 원수가 방해다.


  원수가 있으면, 군의 지휘관은 원수와 메르카츠 제독으로 충분하다고 모두 생각하겠지. 하지만 원수가 없으면 후임은 메르카츠 제독이던가 라인하르트님 중 어느 쪽이 선발된다. 메르카츠 제독은 저번 프레이아 성역 제압에서도 슈타덴 대장의 함대를 놓치는 등, 실태를 범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메르카츠 제독과 라인하르트님 어느 쪽이 사령장관에 어울리는지. 모두 고민하겠지. 설령 메르카츠 제독이 사령장관이 되어도 라인하르트님을 배제할 수 있을까.


  망설이겠지. 만일의 경우를 위해 온존하지 않을까? 여차할 때엔 안네로제님에게도 힘을 빌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님이 죄를 면할 가능성은 꽤 높을 것이다.


  발렌슈타인 원수만 없으면 라인하르트님이 이 제국에 두려워할 상대는 없다. 일시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되어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망설이면 안 되겠지. 라인하르트님을 지키기 위해서…….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12월 28일. 오딘. 귄터 키슬링.


  시각은 오전 1시를 넘고 정적이 밤의 거리를 지배하고 있다. 자동차 안에서는 모르겠지만, 밖은 꽤나 추울 것이 틀림없다. 그 거리 안을 한 사람의 남자가 천천히 걷고 있다. 장신에 코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다.


  “준장. 타겟을 확인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플로토 대령입니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마이크를 입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자동차에 있는 건 신뢰할 수 있는 아군 뿐이지만,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라져. 계획대로 확보하라. 방심하지 말라고.”


  부하들이 날 보고 있다. 가볍게 끄덕이고 말을 걸었다.

  “차를 출발해라. 천천히 말이야.”

  “예.”


  자동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방을 걷고 있는 플로토 대령의 모습이 보인다.

  그 플로토 대령이 멈춰 섰다. 앞에서 두 명, 뒤에서 두 명, 플로토 대령을 둘러싸는 듯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스피커를 보내라. 이제 사양할 필요 없어.”

  자동차가 급속히 플로토 대령에게 다가간다. 이걸로 녀석은 당황하겠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도망치려 할 것이다.


  예상대로다. 플로토 대령이 한 순간 뒤를 돌아보고, 앞을 강제로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잡혀서 오히려 오른팔을 꺾여 태세가 무너진다. 순식간에 잡혔다. 유감이군. 플로토 대령. 그 네 명은 헌병대에서도 고르고 고른 격투술의 달인들이다. 경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야.


  플로토 대령이 잡힌 장소로 다가갔다. 자동차에 내려와 플로토 대령에게 다가간다. 대령이 이쪽을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수고했군. 부상은 없나?”

  “없습니다. 의외일 정도로…….”

  “쉬웠나.”

  “예.”


  희미하게 쓴웃음을 띠며 플로토 대령을 잡고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그 도중에 플로토 대령이 몸을 비틀며 반항했지만, 오히려 팔을 꺾여 신음소리를 냈다.


  “플로토 대령. 나는 헌병대의 키슬링 준장이다.”

  “…….”

  “경을 체포한다. 경의 친구들도 이제 곧 잡히겠지. 모두 불어줘야겠어. 내무성과의 연결, 유괴사건에 대해서 말이야.”

  “…….”

  플로토 대령의 눈에 절망의 색이 떠올랐다.


  “우주항에선 우리들로 변장하다니, 꽤나 시건방진 짓을 한 것 같지만, 헌병대를 얕보지 말라고. 확실하게 빚은 갚도록 하겠어.”

  “…….”


  “경에게 이름이 팔린 바움러 대령도 헌병대 본부에서 기다리고 있다. 각오해두게.”

  “…….”


...


우주력 796년 12월 28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무슨 속셈이신지?”

  “무슨, 이라고 하시면?”

  “딴청 부리지 마시오. 페잔 회랑 방면을 향해 동맹정부가 함대를 파견한 건 알고 있소이다. 무슨 속셈인지 묻고 있소.”


  트류니히트의 답에 스크린에 비춘 렘샤이트 백작은 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투명한 눈동자가 지금은 싸늘함을 보이고 있다. 꽤나 분노한 것 같다.


  “제국은 사전에 동맹정부에 대해 페잔에 군사를 파견한다는 걸 전했소. 그렇지요?”

  “…….”


  “그 때, 제국이 페잔의 중립을 범할 생각도 없다는 것도 전했을 것이오. 그런데도 동맹정부는 제국에 대해 어떤 양해도 없이 페잔으로 군사를 파견했소. 배신, 아니 적대행위라고 해도 좋지.”


  렘샤이트 백작의 어조가 점점 더 엄해졌다. 이쪽에게 배신당했다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트류니히트가 날 보지만, 나도 어떻게 지원해줄 방법이 없다. 이 건에 관해선 렘샤이트 백작의 말이 일리 있고, 그건 트류니히트도 알고 있다.


  애초에 교섭상대를 말빨로 구슬리는 건 나보다도 트류니히트가 훨씬 능숙하다. 내 도움 따위 필요하지 않겠지. 어떻게 렘샤이트 백작을 구슬리는가. 어디 한 번 실력을 보자는 마음이다.


  “렘샤이트 백작. 확실히 군사 파견에 대해선 그쪽에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선 이쪽의 실수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습니다. 거기에 대해선 마음 깊이 사죄합니다. 하지만 군의 파견에 대해선 이쪽도 사정이 있었기에 행한 일입니다. 그쪽에 대한 적대행위가 아니라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트류니히트는 성실한 표정으로 렘샤이트 백작에게 말을 걸었다.

  “적대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겁니까?”

  “그 말대롭니다. 제국이 페잔의 루빈스키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는 마음은 알겠습니다. 동맹정부도 그에겐 꽤나 고배를 마셨으니까요.”


  “…….”

  “렘샤이트 백작. 제국은 루빈스키에게 반제국활동을 멈추게 한다고 했습니다만, 현실로는 루빈스키의 배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다는 겁니까? 반대라도 하겠다는?”

  렘샤이트 백작의 눈이 한층 더 엄해졌다.


  “말도 안 됩니다. 루빈스키를 배제하는 것만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동맹이 반대할 일은 없습니다.”

  “…….”

  트류니히트가 온화하게 말을 걸지만, 렘샤이트 백작의 표정은 엄한 그대로다.


  “단, 제국이 페잔을 점령한다는 건 곤란합니다. 우리들은 동맹시민에게 포로를 돌려받기 위해 페잔을 내버려뒀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트류니히트의 표정이 엄해졌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동맹시민은 포로교환보다도 페잔 회랑의 확보, 혹은 중립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하겠죠. 저번의 공동선언 따위 순식간에 날아갈 수밖에 없어집니다. 서로에게 있어서 그건 불행한 일이겠죠.”


  “관계 없소이다.”

  “관계 없다면?”

  “그렇소. 제국에는 관계없는 일이오. 지금 트류니히트 의장이 말씀하신 일은 동맹 내부의 문제지요? 동맹정부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며, 제국에는 관계없는 일이오. 아닙니까?”


  스크린을 통해 트류니히트와 렘샤이트 백작은 서로 노려보고 있다. 확실히 동맹 내부의 문제다. 렘샤이트 백작은 동맹 내부의 문제를 제국으로 가져오지 말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내정 문제는 항상 외정에 밀접하게 관계된다. 백작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다시 말해, 원칙론을 내면서 페잔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일 뿐이다.


  “…….”

  “게다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만. 페잔은 제국의 일개 자치령이오. 독립국이 아니오. 그 성립의 특이성 때문에 제국은 페잔의 중립을 인정하고 있으나 독립은 인정하지 않았소.”


  “…….”

  “이건 어디까지나 제국 내부의 문제요. 동맹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이 이상 군사를 전진시킨다면, 제국령에 대한 침범이며, 적대행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소. 바로 병사를 물리도록 하시오.”


  훌륭한 일이다. 내정문제는 자신의 손으로 정리해야 하는 일이며, 타인의 힘을 빌릴 생각이 없는가……. 수미일관하고 있다. 이래서야 헨슬로우 따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겠지.


  “…….”

  “이 이상 동맹이 군사를 전진시킨다면 기뻐하는 건 루빈스키뿐이오. 결과로서 동맹은 루빈스키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이 되오.”


  “…….”

  “요즘 최근 루빈스키의 반제국활동도 실제론 동맹정부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니오? 우리들이 루빈스키를 잡으면 그게 알려지고 만다. 그러니 군사를 파견해서 우리를 통제하려 한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럼 그걸 증명해주시길 바라오. 입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입니다. 기대하겠소. 트류니히트 평의회의장.”


  “만만찮군.”

  “아아. 정말이다. 역시 제국의 흰여우라고 해야하나.”

  “칭찬하는 건 좋지만 말이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냐? 트류니히트.”


  의장실에서 커피 향기가 풍긴다. 불모라고 해도 좋을 대화에 지친 신경이 조금씩 풀린다. 괜찮다면 강한 술을 원하던 참이다.


  렘샤이트 백작과의 대화는 전혀 실리가 없었다. 백작은 병사를 물리라고 하고, 트류니히트는 물릴 수 없다고 한다. 언제 결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렬하지 않고 끝난 게 이상할 정도다.


  “수확은 있었어. 전쟁은 피할 수 있겠지.”

  “정말인가?”

  저도 모르게 의심 깊은 목소리가 나왔다. 트류니히트가 쓴웃음을 짓고 날 보고 있다. 그리고 커피를 입으로 옮기면서 자신에게 확인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동맹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국도 전쟁은 바라지 않는다. 그만큼 충돌해도 결렬하지 않았던 것이 그걸 증명하고 있어. 서로 전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교섭하고 있는 것이야. 합의점은 있으리라 생각해.”


  “그래서, 어떻게 결판 지을 생각인가?”

  “……페잔의 공동점령. 그런 거겠지.”

  “공동점령? 그런 걸 제국이 인정하리라 생각하나?”


  공동점령. 원칙을 말하자면 페잔은 제국의 자치령이다. 자국의 영토를 어째서 동맹과 공동점령해야만 하는 건가. 당연히 반발하겠지. 하지만 트류니히트는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국의 소원은 루빈스키의 배제다. 페잔의 점령이 아니야. 페잔을 점령하기라도 하면 동맹이 반발하리란 건 제국도 알고 있어. 전선을 이 이상 넓히고 싶지 않은 제국에게 있어선 페잔 점령은 좋은 수라곤 할 수 없지.”


  “…….”

  “하지만 점령하지 않으면 루빈스키를 배제하는 건 힘들겠지. 그렇다면 동맹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루빈스키를 배제하기 위해선 페잔의 공동점령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조금 자신의 경우에 좋게 해석하고 있는 듯이 보이네만.”

  내 대답에 트류니히트는 어렴풋이 쓴웃음 지었다. 그리고 ‘뭐, 들어주게.’하고 말을 계속했다.


  “물론 공동점령이라고 해도 형식뿐이다. 점령 후의 페잔에 대해선 제국이 주도권을 쥐게 되겠지. 동맹정부는 동맹의 안전보장이 위협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거기에 반대할 필요가 없어.”


  “……다시 말해 동맹은 명목을 쥐고, 제국은 실리를 쥔다. 그런 건가.”

  “그런 거다.”

  “하지만 그걸로 납득할까? 제국과 동맹이.”


  입에 머금은 커피가 쓰게 느껴진 건, 트류니히트의 생각에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제국, 동맹보다도 자신이 가장 납득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피해야만 하는 일은 페잔을 제국 단독으로 점령하는 일이다. 그리고 페잔을 내버려뒀다고 비난받는 일이지. 아닌가? 레벨로.”


  “…….”

  확실히 트류니히트의 말대로다. 무엇보다도 피해야 할 일은 그거겠지.


  “페잔의 독립을 지키는 일 따위 지금의 동맹엔 무리다. 정의의 아군이 되는 것이 무리라면, 악당이 되어서라도 동맹의 이득을 확보할 수밖에.”

  트류니히트가 자조를 섞어 말했다. 그리고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어떤 맛이 날지…….


  “확실히 그렇네만. 페잔에선 제국이 주도권을 쥐게 되겠지. 그걸 동맹시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정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 지금의 동맹에겐 제국의 단독점령을 막는 게 최대한이라고. 그렇기에 포로교환으로 병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지.”


  “다시 말해 제국과의 협력관계는 부술 수 없다. 그런 건가.”

  “그런 거다.”

  의장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제국과의 협력관계. 그 뒤에 있는 건 화평일 테지만, 가능할까? 문제는 제국이다. 제국이 이번 내란에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제국 말이네만. 공동점령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나?”

  “제국은 전제군주국가다. 시민의 지지 따위 필요 없어. 그리고 제국의 지도자들은 바보가 아니야.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자네의 나쁜 점은 너무 낙관적이라는 거로군. 트류니히트. 어째서 렘샤이트 백작에게 공동점령을 말하지 않았나?”

  “지금은 아직 안 돼. 조금 더 서로의 군대가 가까워지고 나야 제국에게 있어서도 받아들이기 쉽겠지.”


  과연. 마지막까지 몰리고 나면 받아들이기도 쉬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외줄타기인 점도 있다. 과연 그렇게 잘 될지……. 시트레에게 상담해야 하겠지. 제국에선 군인의 힘이 동맹보다도 강하다. 그 부분을 시트레는 어떻게 볼까…….


  “헌데 예의 건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트류니히트.”

  “루빈스키의 구원요청인가.”

  “그래.”


  어제, 루빈스키가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 페잔의 독립을 침범하려는 제국군을 쫓아달라고. 보상은 당연하지만, 경제협력과 자금원조였다. 무슨 일이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페잔인 다운 보상이다. 하긴,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건 그 이외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유감이지만 페잔의 독립 따위를 위해서 동맹을 위기에 처하게 할 순 없어.”

  “동감이다.”


  많은 동맹시민이 그렇게 생각하겠지. 동맹과 제국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에 그 피를 마시며 몸집을 불린 것이 페잔인 것이다. 똑똑한 생존방식일지도 모르지만, 존경받을 생존방식은 아니다. 모두 어딘가에서 페잔의 모습을 기피하고 있다.


  “페잔의 독립 따위 이 나라에선 정치적 대의에 지나지 않아. 모쪼록 지금까지 본 재미만큼 갚을 준비를 해야겠지. 꽤나 엄한 징수가 될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트류니히트는 웃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12월 25일. 오딘, 군무성, 군무상서실. 에렌베르크 원수.


  “예의 아돌프 에커트. 그리고 바움러 대령이라 자칭한 남자 말입니다만. 그 정체를 알았습니다.”

  “……어떤 자인가. 라프트 중령.”

  두 사람의 사관이 신묘한 표정으로 눈앞에 서 있다. 한 명은 헌병대의 라프트 중령. 또 하나는 정보부의 슈미들린 중령. 그리고 이아기를 듣는 건 나와 슈타인호프.


  “그의 이름은 칼 폰 플로토 대령입니다. 군무상서 각하.”

  “…….”

  칼 폰 플로토 대령. 스크린에 그의 얼굴이 표시된다. 날카로운 눈을 한 30대 후반의 남자. 슈타인호프는 엄한 눈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다.


  발렌슈타인이 렌텐베르크 요새를 함락했다. 오프레서는 전사, 토벌군은 순조롭게 군대를 전진하고 있다. 이쪽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조급하는 건 금물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니 이번엔 슈미들린 중령이 답했다.

  “플로토 대령은 올해 7월부터 행방불명이었습니다. ……그때까진 어느 귀족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귀족이란, 혹시 란즈베르크 백작인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플로토 대령이 섬기던 건 카스트로프 공작입니다.”

  “카스트로프? 오이겐 폰 카스트로프 공작인가! 저 남자가 섬기고 있었다는 건가?”


  무심코 슈타인호프와 서로 돌아봤다. 슈타인호프는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7월부터 행방불명? 7월이라고 하면……. 슈미들린 중령을 보자 중령은 어렴풋이 끄덕였다.


  “플로트 대령이 행방불명이 된 건, 카스트로프 공작이 사고사하고 나서 부터입니다. 막시밀리안의 반란 때엔 이미 카스트로프에는 없었습니다.”

  …….“


  플로토는 카스트로프 공작이 사고사하는 것과 동시에 행방을 숨겼다…….

  “저 남자, 카스트로프 공작을 오랫동안 섬겼는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였으니, 18년 전이 됩니다.”

  “…….”


  이번엔 라프트 중령이 말하기 시작했다.

  “카스트로프 공작은 갖가지 의옥사건에 관여했었습니다. 사법성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증거를 지운 적도 적지 않습니다. 그 전용 팀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플로토 대령의 역할은 카스트로프 공작의 명령을 받아, 그 팀을 이끌어 증거를 말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바보 같은. 카스트로프 공작은 군인을 범죄의 뒤처리로 쓰고 있었다는 건가!”

  “진정하라. 군무상서.”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듣는 게 먼저다. 라프트 중령. 계속하게.”


  라프트 중령이 우리들을 보면서 말하기 힘들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플로토 대령은 주변에 카스트로프 공작이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 죽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심코 슈타인호프의 얼굴을 봤다. 슈타인호프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린다.

  “……어리석은.”


  “알고 있습니다. 저건 페잔의 공작입니다만, 플로토 대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명의 군인과 함께 카스트로프를 떠났습니다. 아마도 증거 말소 팀의 멤버였겠죠.”


  라프트 중령은 한 순간 슈미들린 중령과 서로를 돌아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플로토 대령과 함께 카스트로프를 떠난 인간 중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그 자는 대령과 함께 헌병으로 위장하고 있던 것을 감시 카메라의 화상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팀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무성과의 연결점은 찾았나?”


  “그 자가 내무성으로 출입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내무성과 연결점이 있는 건 틀림없습니다. 이제 곧 플로토 대령과 닿습니다. 닿는 대로, 그들을 일제히 체포할 생각입니다.”


  헌병대의 라프트 중령, 정보부의 슈미들린 중령이 돌아갔다. 아무래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슈타인호프 원수. 조금 의문이 있네.”

  “뭔가? 에렌베르크 원수.”


  “플로토 대령들은 어째서 군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확실히 그들은 증거 말소에 협력했다. 하지만 반란진압에 협력했다면 용서 받을 수도 있었겠지. 카스트로프 공작에게 강요 받았다고 해도 좋아. 어째서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슈타인호프가 떫은 표정을 띄웠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걸세. 에렌베르크 원수.”

  “무슨 말인가……. 경, 뭘 알고 있나?”


  슈타인호프의 표정은 더욱 떫어졌다. 그리고 플로토 대령을 비추고 있는 스크린을 봤다.

  “반란 진압 후, 정보부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 조사원을 카스트로프로 파견했네…….”

  “…….”


  “유감이지만, 목걸이에 대해선 거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네. 위성 그 자체는 박살났으니 말이야. 잔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서, 헛수고라고 해도 좋겠지……. 원래라면 거기서 끝났을 거다. 헌데…….”

  “…….”


  슈타인호프의 뺨에 어두운 웃음이 떠있다. 그리고 날 봤다.

  “그들은 어느 물건을 발견하고 말았다네. 군무상서.”

  “어느 물건?”


  “그들은 우연히, 오이겐 폰 카스트로프 공작의 유품 속에서 퀸멜 남작가에 관한 문서가 있는 걸 발견한 걸세.”

  퀸멜 남작? 확실히 카스트로프 공작과 혈연관계가 있었을 테지만…….


  “그 안에는 발렌슈타인 변호사 부부의 이름과 플로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네. 그리고 리메스 남작가의 일도…….”

  “무슨 의미인가. 그건…….”

  불길한 예감이 든다. 설마……. 슈타인호프의 웃음이 커졌다.


  “10년 전, 리메스 남작가의 상속 문제에 얽혀, 발렌슈타인 변호사 살해 사건을 지시한 건 카스트로프 공작, 실행자는 플로토 대령이라는 걸세.”

  “……바보 같은. 저건 리메스 남작가의 친족이 행한 것이 아니었는가?”


  내 말에 슈타인호프는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카스트로프 공작가와 퀸멜 남작가는 혈연관계에 있었네. 퀸멜 남작가의 당주는 병약했기에, 거기에 파고들어 카스트로프 공작은 퀸멜 남작가의 횡령을 획책한 걸세. 그리고 발렌슈타인 변호사는 퀸멜 남작가의 고문 변호사였지.”


  “……횡령하기 위해선 발렌슈타인 변호사가 방해였다는 건가.”

  “그런 게 되겠지. 플로토 대령들이 카스트로프 공작이 발렌슈타인에게 죽었다고 생각한 건 복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카스트로프를 떠난 건 신변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다시 말해, 그들은 군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어둠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자신의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그 사건이 이번 사건에도 얽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10년 전부터의 인연, 악연이라고 해도 좋겠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발렌슈타인이 살아있는 이상 군으로 돌아오지 못하네. 발렌슈타인을 깊게 원망하고 있는 남자. 내무성에게 있어서 플로토는 쓰기 좋은 도구겠지…….”


  슈타인호프의 목소리가 방을 무겁게 울렸다. 그것만으로도 침묵이 떨어진다. 아마 나도 슈타인호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설마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슈타인호프 원수. 발렌슈타인은 알고 있을까?”


  “……모르네. 양친의 죽음에 관해서 발렌슈타인은 거의 말하지 않으니까. 군의 실력자가 되고 나서도 그걸 조사한 흔적은 없었네. 그걸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


  발데크 남작가, 콜비츠 자작가, 하일만 자작가. 그 사건은 이 세 가문 중 누군가가 일으켰다고 되어 있다. 발렌슈타인은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가. 아니면 이미 진짜 범인을 알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어디서 그 비밀을 알았는가…….


  “에렌베르크 원수. 발렌슈타인이 황제의 어둠의 왼손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아네만…….”

  “!”

  슈타인호프가 날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슈타인호프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


제국력 487년 12월 25일. 슈무데 함대 기함 앙그르보더. 에그몬트 슈무데.


  함대는 아이젠헤르츠에서 보급을 하고 있다. 페잔까지 앞으로 열흘이면 도착하겠지.

  “일단은 순조롭군. 슈무데 제독.”

  “그렇군요.”


  스크린에 페잔 주재 고등변무관 렘샤이트 백작이 비추고 있다. 새하얀 두발과 투명한 눈을 가진 인물이다. 얼마 전에는 포로교환 공동선언으로 제국 전토에 그 얼굴이 흘렀었다.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이겠지.


  순조, 순조라고 하는 건 무슨 일에 대한 걸까. 여기까지 진군의 대한 거라면 그야말로 순조라고 해도 좋겠지. 아니면 내란 토벌에 관한 것일까? 확실히 이쪽도 순조롭다. 다만 조마조마 하긴 하지만.


  토벌군이 출격하자마자 사령장관이 습격을 당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니 귀족연합군이 오딘으로 밀고 들어왔다. 사령장관 스스로 적을 각개격파. 그 후에 렌텐베르크 요새를 공략. 오프레서 상급대장은 전사…….


  엉망진창이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일희일비했다. 사령장관이 무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다. 열로 휘청휘청 거리면서 반란군과 교섭한다든가, 오딘을 사실상 계엄령 하에 둔다든가……. 하지만 지금은 사령장관인 것이다. 조금 더 침착할 순 없는 건가.


  나뿐만이 아니다. 페잔 방면군 사령관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정규함대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게 틀림없다.


  “헌데 반란군. 아니, 동맹군이군. 그들에게 움직임이 있었다.”

  “…….”

  “자유행성동맹군 3개 함대가 페잔으로 향해서 오고 있네. 그들은 란테마리오 성계까지 왔다고 하는군. 페잔까지는 앞으로 20일 정도 걸리겠지.”


  3개 함대인가. 전력은 아마 이쪽과 비슷하겠지. 하지만 지금의 반란군에게 있어서 마지막 전력이다. 그걸 내놓았다. 어떻게 봐야하는가? 어떻게 해서든 페잔 회랑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인가. 그러기 위해선 전쟁도 감수한다?


  “동맹정부에선 언질이 있었습니까?”

  “아니. 아직이다. 이 정보는 긴밀하게 지내고 있는 페잔인이 알려준 것이다. 2, 3일 후엔 페잔에서도 꽤 화두가 되겠지.”


  “…….”

  “뭐, 그 시점에서 동맹에 대해 항의할 생각이다. 이대로 가면 전쟁이 벌어진다. 그래도 좋은 거냐고 말이지.”


  렘샤이트 백작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다. 아무래도 이 분도 꽤나 만만찮은 남자인 것 같다. 하긴, 그런 만큼 반란군과의 교섭에서 믿음직하겠지.


  “이쪽의 일은 어떻습니까? 역시 소문이 돌고 있습니까?”

  “벌써 예전부터 소문이 돌고 있네. 통상로 호위를 위해서 함대를 움직이고 있다고 주변에 설득하고 있어.”


  “믿을까요?”

  “지금은 믿고 있겠지. 하지만 동맹군이 페잔으로 향하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확실히 그렇다. 제국, 동맹 양국이 군사를 페잔으로 향한다고 하면 어떤 바보라도 페잔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 순간부터 페잔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동맹군이 페잔에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20일입니까. 이쪽은 여유를 가지고 먼저 페잔에 도착하겠습니다만.”

  내 말에 렘샤이트 백작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네. 슈무데 제독. 페잔을 뺏겨서 곤란한 건 우리들이 아니야. 오히려 동맹이 초조하겠지.”


  “그럼?”

  “일부러 동맹군을 페잔으로 침공하게 하는 것이 리히텐라데 후작의 생각이시다. 경도 의미는 알겠지?”


  모르는 일은 아니다. 사령장관과도 이야기한 일이다. 지금의 동맹에 페잔, 이제르론 두 회랑을 유지할 만한 전력은 없다. 언젠가 동맹으로 침공할 때엔 제국은 두 회랑을 쓰게 되겠지. 그 때, 동맹은 페잔을 점거한 일을 후회할 것이 틀림없다.


  “그럼 우리들은 여기서 한 숨 쉬는 편이 좋겠군요.”

  “그러는 게 좋겠네.”

  “뭐, 5일 정도 여기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좋겠지. 쫓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쫓을 수 없네. 이정도로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동맹군은 꽤 대단한 기세로 페잔으로 향해 오겠지.”

  “…….”


  “그리고 쫓아서 도착해보면, 이번엔 그 노력을 쓸모없는 것으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녀석들을 개미지옥에 빠뜨려보세.”

  그렇게 말하고 렘샤이트 백작은 낮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7년 12월 24일. 렌텐베르크 요새.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강습양륙함이 렌텐베르크 요새에 붙는 건 문제 없었다. 적은 함대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함대의 포격으로 요새를 통제하고 그 사이에 강습양륙함으로 렌텐베르크 요새에 접선했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 앞이다. 예상대로 오프레서는 제 6통로에 제플 입자를 살포하고 있다. 화기는 일절 쓸 수 없다. 여기서 앞으로는 백병전이다. 오프레서가 상대라면 처참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길 수 있을지…….


  접선한 강습양륙함 중 한 척에 임시 지휘소를 설치하는 것과 동시에 감시 카메라를 요새 내에 설치하여 전황을 관찰하도록 한다.


  “뤼네부르크 중장. 공격준비 됐습니다.”

  “음. 베크만 대령, 크라나흐 대령. 슬슬 시작해주게. 단, 무리는 하지 말고.”

  “예.”


  백병전에 쓰이는 토마호크는 탄소 크리스털로 만들어져있다. 표준 사이즈는 전장 85센티, 중량 6킬로. 그걸 한 손으로 휘두르는 거지만, 오프레서는 전장 150센티, 중량 9.5킬로의 토마호크를 양손으로 쓴다.


  장갑척탄병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 2미터를 넘는 신장과 강고한 골격을 굳센 근육으로 감싸고 있다. 이 거체가 전장 150센티, 중량 9.5킬로의 토마호크를 쓸 때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면으로는 싸울 수 없다. 그럼 정면에서 싸우지 않으면 된다. 장갑복은 완전한 단열구조로 되어 있고,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2시간이다. 오프레서를 2시간 뱅뱅이 돌린다. 그가 장갑복을 벗을 때부터가 승부다.


  베크만과 크라나흐는 화려한 부분은 없지만 견실하고 진중한 자들이다. 전과에 휘둘리는 일 없이 냉정하게 싸울 수 있고,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개인전보다 집단전을 특기로 하고 있다.


  오프레서를 상대로 밀리면 피하고, 피하면 누른다는 시간 벌기 작전을 행하기엔 적임이겠지.


  “각하. 좀처럼 잘 되지는 않느군요.”

  “그렇군. 역시 안 되나.”

  “예.”


  ……4시간 지났다. 4시간 지나도 오프레서는 장갑복을 착용한 채로 계속 싸우고 있다. 그 사이에 이쪽은 베크만과 크라나흐가 교대로 싸우고 있지만…….


  스크린에는 베크만 대령의 지친 표정이 있다. 베크만과 크라나흐는 잘해줬다고 할 수 있다. 이쪽의 피해도 가능한 한 줄이고, 오프레서에게 4시간이나 시간을 번 것이다. 하지만 오프레서는 장갑복을 입은 채다. 내 어림짐작은 빗나간 것 같다.


  “아무래도 약물을 쓰고 있는 것 같군.”

  “아마 그렇겠죠.”

  오프레서는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흥분제인가. 각성제인가. 어느 쪽이든 시간을 버는 의미는 없어졌다.


  “다음엔 내가 나간다.”

  “각하!”

  베크만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 오프레서 상대로는 별 수 없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다. 무심코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 표정을 짓지 마라. 이래도 일단 오프레서 대책은 세워뒀어. 처음부터 내가 나가야 했던 걸지도 몰라.”

  “…….”

  “지금부터 그쪽으로 간다. 기다리게.”


  스크린을 끊고 장갑복을 입었다. 그리고 토마호크와 전투용 나이프를 준비한다. 토마호크는 이 날을 위해서 준비한 특제품이다. 전장 75센티, 중량 4.5킬로. 표준 사이즈보다 10센티 짧고, 1.5킬로 가볍다. 전투용 나이프는 두 개, 좌우 허리에 장비했다. 그리고 또 하나, 변형 나이프를 정면에서 보이지 않도록 배후에서 허리에 집어넣는다.


  사령장관의 말대로 함정을 거는 편이 좋았을까? 아니, 이건 나와 오프레서 사이에 결판을 지어야만 하는 맹세인 것이다. 그 날, 슐라흐트플라테를 먹었을 때부터, 장갑척탄병총감이 되고 싶다고 답했을 때부터 결정된 일이다. 피할 수는 없다.


  지금이 되어서 보면 베크만과 크라나흐를 처음에 내보낸 건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나서야만 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건, 역시 마음 속 어딘가 오프레서가 무서웠기 때문이겠지. 한심한 이야기다.


  내가 장갑복을 입고 나가자 오프레서의 부하들 사이에서 흥분과 같은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일단 나도 그 나름대로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오프레서 각하.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참전. 일기토를 희망한다!”


  싸움을 앞에 둔 고양된 기분과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차가운 기분이 마음속에서 혼합되고 있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은 지금쯤 눈꼬리를 올리며 화내고 있겠지. 하지만 이걸로 피할 수 없게 됐다.


  “늦지 않았나. 뤼네부르크. 겁에 질려서 나오지 않는가하고 생각 했다고.”

  오프레서가 앞으로 나왔다. 나와의 거리는 5미터. 대충 그런가.


  그래도 눈앞의 오프레서에겐 압도적인 위압감이 있다. 거대한 불곰이라도 앞에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다. 무심코 배에 힘을 넣는다. 먹히지 마라.


  “기다리게 한 것 같군요.”

  “흥. 죽을 각오는 되어 있는가. 뤼네부르크.”

  “그런 것, 소관에겐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 죽을 순 없다. 그와 약속한 것이다. 30년 후의 세계를 보자고. 난 반드시 살아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

  “호오. 잘도 말하지 않는가. 잔재주를 부렸지만, 내겐 통하지 않아. 모두, 손댈 필요 없다. 뤼네부르크. 일기토 받아들이지!”


  발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오프레서는 토마호크를 휘둘렀다. 뒤로 피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토마호크가 달린다. 빠르다! 한 순간 2미터 가까운 거리를 줄였다!


  오프레서의 몸이 흐르며 견갑골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을 땐 지나갔을 터인 토마호크가 반대 방향에서 보다 스피드를 올려 날 덮쳐왔다! 괴물 녀석. 다시 한 번 난 뒤로, 조금 좌후방으로 뛰었다.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이 남자를 상대로 방어는 있을 수 없다. 서툴게 방어하면 타격만으로 날라가버리던가, 충격으로 토마호크를 놓치고 만다. 오히려 위험하다. 막는 게 아니라 피할 수밖에 없다. 내가 표준보다도 가볍고 짧은 토마호크를 고른 것도 그게 이유다. 조금이라도 몸이 가벼운 편이 좋다.


  오프레서가 이번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일격을 날렸다. 나의 배를 노린다. 뛰어 물러가는 것과 동시에 우측으로 게걸음 친다. 그냥 뒤로 물러서지 마라! 상대에게 기세를 줄 뿐이다.


  오프레서가 머리를 노려왔다. 오프레서의 신장으로는 내 배를 노리는 것보다 머리를 노리는 편이 훨씬 멀리서 토마호크를 내밀 수 있다. 참아라. 여기선 아슬아슬한 곳에서 피해라! 눈앞을 토마호크가 스쳐 지나간다. 공기가 타는 냄새가 났다.


  이때를 기다렸다! 토마호크를 되돌릴 때까지가 승부다! 토마호크를 오프레서의 눈 앞에서 던진다. 그리고 오프레서의 발밑으로 뛰어든다! 뒤에서 예의 변형 나이프를 뽑아 오프레서의 발을 찌른다. 맹수의 포효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들으며 앞으로 구르듯이 도망쳤다.


  머리 위에서 금속음이, 계속해서 몸 곁에서 금속음이 들린다. 더욱 앞으로 도망쳐 오프레서를 봤다. 오프레서는 서 있다. 발 근처엔 떨어진 내 토마호크가 있다. 소리를 낸 건 이 녀석 이겠지.


  오프레서의 다리갑옷에는 내가 찌른 변형 나이프가 꽂혀 있다. 이 날을 위해서 준비한 무기다. 손잡이는 있지만, 그 앞은 화살촉과 마찬가지다. 칼날 끝 부분은 시옷자처럼 굽어있어서 빼기 힘들게 되어 있다. 무리하게 빼면 상처가 넓어져 아픔이 늘어날 뿐이겠지.


  오프레서를 힐긋 봤을 때,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이 몸의 크기다. 상반신의 웅대함. 그리고 토마호크의 크기를 보면 그 근육의 대단함에, 파괴력을 상상하고 탄식을 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프레서의 진정한 강함은 상반신이 아니다. 그걸 지탱하는 하반신에 있다. 상반신만의 남자라면 저 토마호크 돌리기는 불가능하다. 토마호크의 무게에 이끌려 균형을 잃는다. 일격밖에 볼게 없는 사내겠지.


  강인한 상반신. 특히 엄지발가락의 짓밟는 힘. 거기에 상반신의 파워가 맞아 들어갈 때, 민치 메이커, 오프레서가 탄생한다. 그럼 그걸 뺏으면 오프레서의 무서움은 반감되겠지. 그게 내 생각이다.


  “꽤 하지 않는가. 뤼네부르크.”

  “…….”

  나는 일어서서 전투용 나이프를 왼쪽 허리에서 뽑았다. 이제부터 이게 무기가 된다. 문제는 오프레서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가다.


  천천히 조금씩 오프레서와의 사이를 좁힌다. 뺨 아래에 땀이 흘러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잠시 동안밖에 싸우지 않았는데 땀을 흘리고 있다. 아니, 땀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진정한 건가.


  앞으로 한 발, 앞으로 한 발 내밀으면 오프레서의 토마호크 거리에 들어간다. 포기해야하나. 아니면 오프레서가 움직이는 걸 기다릴까……. 한 순간의 망설임, 그 순간에 오프레서가 움직였다! 서둘러 뒤로 물러난다. 때에 맞출 수 있을까!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함께 토마호크가 눈앞을 지나간다. 역시 파고드는 힘이 약하다. 그만큼 토마호크의 속도와 거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목은 몸통과 떨어지게 됐겠지.


  거리를 좁혔다. 오프레서의 몸이 흐르고, 토마호크의 역습은 오지 않는다. 텅 빈 옆구리에 전투용 나이프를 꽂는다. 더욱 파고들려고 한 그 순간, 외침소리와 함께 굉장한 힘으로 날아갔다.


  격심한 충격을 참으며 서둘러 일어섰다. 오프레서는 주저앉아 있다. 그 옆구리, 아마도 늑골 사이에 전투용 나이프가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나이프는 폐에 도달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발뿐만이 아니라 호흡의 괴로움도 오프레서를 괴롭히게 되겠지. 내 승리다.


  또 하나의 전투용 나이프를 뽑아 천천히 다가간다. 오프레서가 헬멧을 벗어 던졌다. 입에서 피가 나오고 있다. 날 보고 씨익하고 웃었다.


  “훌륭하다. 뤼네부르크……. 아무래도 내 패배인 것 같군.”

  “…….”

  “다리를 노리는가. 잘도 생각했군. 일기토에서밖에 쓸 수 없는 수지만.”

  오프레서가 몸을 숙였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항복하길 바랍니다.”

  “바보 같은 소릴 하지마라. 경이 내 입장이라면 항복할 텐가? 패자를 모욕하지 마라. 용사로서 대해라.”

  “…….”

  거절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과는 싸우지 못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 오딘은 날 가엽게 여기신 것 같군. 경이 와줬을 때, 일기토를 바랐을 때, 난 기뻤다. 감사하네. 뤼네부르크. 잘도 여기까지 찾아왔다.”

  “…….”


  “장갑척탄병, 부탁하네. 경이야말로, 용사 중의 용사다.”

  “……알겠소.”

  오프레서가 찔려 있던 전투용 나이프를 신음소리와 함께 뽑았다. 전투복 안은 피투성이겠지.


  “우리들 앞에 용사 없으며, 우리들 뒤에 용사 없다. 안녕이다. 뤼네부르크.”

  “…….”

  오프레서가 나이프로 경동맥을 끊었다.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천천히 오프레서의 몸이 쓰러졌다.


  “오프레서 상급대장은 전사했다. 이 이상의 싸움은 무용. 투항해라!”


  오프레서의 부하들은 그 자리에서 항복했다.

  “내게 어울리는 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뿐이다. 내가 죽으면 투항해라. 쓸데없이 죽지 마라.”


  오프레서가 생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오프레서는 죽을 장소를 구하고 있었다. 난 그 소원을 이뤄준 걸까. “패자를 모욕하지 마라. 용사로서 대해라.” 오프레서의 말이 들린다.


  이뤘다고 믿도록 하자. 나도 언젠가 죽을 장소를 구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건 30년은 나중의 일이될 것 같다.


  장갑척탄병 제 21사단은 렌텐베르크 요새 제 6통로를 확보했다.


...


제국력 487년 12월 24일. 제국군 총기함 로키. 에리히 발렌슈타인.


  렌텐베르크 요새 공략은 성공했다. 뤼네부르크가 제 6통로를 확보하고, 핵융합로를 제압하여 적은 이 이상 저항은 무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싱겁게 투항했다. 후진이 없는 거다. 처음부터 전의는 낮았을지도 모른다.


  뤼네부르크는 영웅이다. 모두가 오프레서를 쓰러뜨리는 그를 칭찬하고 있다. 하긴 본인은 꼭 기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지만. 어딘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오프레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타인은 모를 뭔가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괴로운 일이겠지. 오프레서가 죽은 지금, 이제부턴 뤼네부르크 혼자서 짊어지게 된다.


  뤼네부르크가 내게 “걱정을 끼쳤습니다.”라고 사과했다. 난 잠자코 단지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날 보고 뤼네부르크가 쓴웃음 지었다. 어쩐지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것 같아서 재미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뤼네부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남작부인이 뤼네부르크에게 말을 걸었다. 일기토 도중, 내가 뤼네부르크를 걱정해서 큰일이었다는 둥, 분노 때문에 손을 쓸 수 없었다는 둥. 쓸데없는 말을.


  남작부인의 이야기에 뤼네부르크는 곤란해하며,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닫았다. 주변은 모두 웃음을 참고 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만 하는 녀석들이다. 난 지쳤다고 말하며 개인실에서 쉬도록 했다. 내가 함교를 나가자 모두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쓸데없는 짓만 하는 녀석들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