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오딘이여, 부탁입니다. 아들을, 에리히를 구해주세요.”

 “헬레네. ……대신 오딘이여,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젊은 부부가 병원에서 필사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들의 아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몸이 약해 의사에게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들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기도하는 일뿐이다. 설령 불확실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신들에게 매달리는 것밖에 수단이 없었다. 의사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놀이판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엔 수많은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건 체스가 아니다. 놀이판 위에는 사람의 형태를 한 무수한 말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노인, 한 사람은 젊은이. 일찍이 신이라 숭배 받았으며 새로운 신의 등장으로 잊혀진 자들이었다. 주변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어느 이야기에 의해.

 

 “어떤가? 이 이야기는.”

 “무척이나 그대 취향의 이야기군. 유혈과 화염, 파괴와 재생, 그리고 너무나도 짧은 삶. 내 취향은 아니다. 나라면 좀 더 잘 쓸 수 있어.”

 젊은이가 매력적인 웃음을 띄우자 노인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이 젊은이가 싫지는 않았다. 때로는 배알 꼴리는 일도 있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 신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두머리에 대한 불손한 언동에 불만스런 표정을 보였다. 그들은 이 젊은이 때문에 심한 꼴을 당했었다. 하기야 비슷한 정도로 도움도 받았기에 입밖으로 비난할 순 없었지만.

 

 “호오, 어떻게?”

 “그대는 영웅이 좋은 모양이군. 강하고 밝게 빛나는 자가. 하지만 그런 자는 강하긴 해도 무르다.”

 노인은 불만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그가 고른 인물은 무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영웅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인은 무엇보다 영웅을 좋아했다. 옛날부터.

 

 “평범한 자가 때로는 유연하고 강하다는 거다.”

 “호오, 하지만 이야기에 쓸 수 있는가?

 노인은 은연중에 평범한 남자는 쓸 수 없다고 도발했다. 영웅이라면 이야기에 쓸 수 있다. 이야기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 수 있다. 주변 신들도 끄덕였다. 하지만 젊은이는 웃는 걸 그치지 않았다.

 

 “시험해 보지.”

 “호오, 말은 몇 개 필요한가?”

 “하나다.”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다들 놀라고 있다.

 “하나? 평범한 말을 하나인가. 그걸로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젊은이는 도발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대를 향해 젊은 부부가 소원을 빌고 있을 터다. 아들을 구해주길 바란다고.”

 “알고 있네. 하지만 구해줄 순 없지. 불쌍하지만 그 아이의 운명은 정해져 있어.”

 “그걸 쓰도록 하지.”

 젊은이가 손을 휘둘러 공중에서 말을 잡았다. 그리고 그 말을 지긋이 봤다.

 

 “너에겐 노른의 힘이 깃들어 있다. 평범한 자지만 그 평범함이 널 움직이고 주변을 움직이겠지. 가거라. 가서 너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하라. 나와 닮은 자여. 젊은 부부여. 잃어버린 생명을 대신해 새로운 생명을 주마. 받도록 해라. 그 생명이 우주를 움직이겠지. 대가는 너희들의 목숨이다.”

 주변에 항의의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 젊은이는 아무렇게나 말을 놀이판에 던졌다. 그리고 놀이판 위에 작은 파문이 생겼다.





제국력 465년

 에리히 발렌슈타인 탄생.

 

제국력 477년

 사관학교 입학.

 

제국력 481년

 제국문관시험 합격. 사관학교 졸업, 소위 임관, 병참통괄부 제3국 제1과 배속.

 

제국력 482년

 중위 승진.

 

제국력 483년 6월

 에리히 발렌슈타인, 제5차 이제르론 요새공방전에서 보급임무에 공적을 인정받아 대위 승진. 제359유격부대에 작전참모로 배속.

 

동년 9월

 에리히 발렌슈타인, 변경성역에서 군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사이옥신 마약밀매 사건을 발각. 적발에 의한 공적을 인정 받아 소령 승진.

 

동년 12월

 에리히 발렌슈타인, 아레스하임 성역 회전 승리의 공적을 인정 받아 중령 승진.

 

제국력 484년 1월

 순항함 체르프스트 함장 겸 제1순찰부대 사령.

 

동년 10월

 트라운슈타인 산 버팔로 밀렵 적발에 있어 공적을 인정 받아 대령 승진.



 조금씩, 조금씩 파문이 커져간다. 노인은 어이없게, 젊은이는 즐겁게, 그리고 주변 신들은 불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제국력 485년 1월

 제285유격부대 참모장.

 

동년 3월

 밴플리트 성역 회전.

 

동년 4월

 밴플리트 성역 회전 승리의 공적을 인정 받아 준장 승진.

 

동년 10월

 제6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제국력 486년 1월

 제6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 승리의 공적을 인정 받아 소장 승진.

 병참통괄부 제3국 제1과 과장 보좌.

 

동년 4월

 황제 붕어. 제도소란을 미연에 방지한 공적을 인정 받아 중장 승진.

 병참통괄부 제3국 국장 보좌.



 언제부턴가 파문은 놀이판을 뒤흔들 정도로 커져있었다.

 “보라,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이다!”

 젊은이가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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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7월 15일. 이제르론 요새. 양 웬리.


  “그럼 지구교와 페잔의 연결점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렘샤이트 백작은 그렇게 말했다는군.”

  “…….”

  “제국에서 지구교의 잔당이 페잔으로 향하는 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동맹에서도 주의했으면 한다고.”

  화면에는 그린힐 총참모장이 나타나있다. 표정은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 뭐 확실히 좋지 않은 보고다. 변함없이 지구교와 페잔의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페잔의 쿠브르슬리 제독에게도 말했지만 그도 곤란해 하더군. 군인보다는 경찰의 일이니까 말이야.”

  어려운 일이다. 지구교도와 일반시민의 구분이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동맹은 페잔에서 시민을 억압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다.


  “정부에서는 제국이 페잔에서의 혼란, 소란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걸 이용하여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귀관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있을 수 있는 일이겠죠.”

  “우리들도 동감이다.”

  그린힐 총참모장이 끄덕였다. 우리들이라는 건 보로딘 본부장, 뷰코크 사령장관, 우란푸 부사령장관도 같은 의견이라는 건가.


  “노리고 한 짓이라 생각하는가?”

  “…….”

  “정부, 군부 내부에선 제국이 고의로 페잔을 화약고로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목소리가 있어.”

  총참모장이 지긋이 날 봤다. 어두운 눈을 하고 있다. 의심암귀. 그런 말이 생각났다.


  “가능성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페잔을 이쪽으로 넘긴 건 아니겠죠.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국은 지구교를 이용하여 페잔을 혼란에 빠뜨릴 생각을 했으리라 봅니다. 지구교의 본거지를 토벌한 것은 제국이 외정 할 준비가 됐다. 그런 의미일 겁니다.”

  “다시 말해, 전면공세를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군.”

  “예.”


  그린힐 총참모장이 끄덕였다. 제국은 동맹과 다르다. 신앙의 자유 따위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언제라도 지구를 토벌할 수 있었겠지.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때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란이 끝나고 이제 곧 1년 반이 된다. 나라가 장기원정에 버틸 수 있을 만한 체력을 가지고 안정되었다는 거겠지.


  내가 그런 말을 전하자 총참모장이 또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7개 함대를 가지고 제국군을 요격하게 된다. 앞으로 1년, 시간이 있었다면. 그렇게 됐다면 1개 함대를 더 편성할 수 있었을 텐데……. 편성을 서두르고 있지만 시간에 맞을지 어떨지……. 시간에 맞춘다고 해도 훈련도는 낮겠지.”

  “…….”


  “그에 비해 제국군은 20개 함대를 동원할 것이다. 그 대병력이 페잔, 그리고 이제르론 회랑 두 방면에서 처들어오게 돼.”

  막대한 병력이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주력은 페잔으로 들어올 거라 생각하지만, 귀관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총참모장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양면작전을 강요받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정부의 방침을 듣지 못한 건 아니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에 대한 것을 시민에게 공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제안하자 총참모장이 희미하게 끄덕였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제국에서 발렌슈타인 원수는 아무런 피해도 없이 그걸 파괴했다. 한 번 최고평의회 내부에서 토의되었지만, 방어체제가 갖춰지지 못한 지금, 공표하면 시민은 패닉을 일으킬 것이라며 각하된 것 같다.


  “아이란즈 국방위원장에게 상담해 보지. 위원장은 전쟁이 시작되면 이제르론, 페잔 두 회랑에서 교착상태로 끌고 간 뒤 화평을 생각하고 있어. 제국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때야말로 화평의 찬스지만,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인간도 나오겠지. 특히 의회라든가 말이야. 자신은 안전한 장소에 있다고 생각하며 무책임한 말을 하겠지.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 그런 인간도 조금은 생각하게 될 거야.”

  총참모장의 입가가 조금 비뚤어졌다.


  “앞으로 방어계획을 책정해야만 하네. 귀관도 참가해야해. 잘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컴컴해진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양면작전. 적은 병력을 더욱 분할하게 된다. 교착상태를 노린다고 하지만, 위험하진 않을까? 실패하면 각개격파 당하고 만다……. 병력을 유효하게 쓴다면 제국군을 동맹령 깊숙이 끌어들여 전 병력으로 결전을 벌인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겠지.


  문제는 이제르론 요새, 페잔을 방폐한다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걸 동맹시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혼란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교착상태로 만들어 화평을 맺어도 상황을 보면 이제르론 요새, 페잔을 제국에 돌려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폐해도 문제는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


제국력 489년 8월 5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유스티나 발렌슈타인.


  거실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자 남편이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컵이 두 개밖에 없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유스티나, 아버님은 서재일까?”

  “아뇨. 아까 전 재향군인회로 나가셨어요. 무슨 일 있나요?”

  “아니, 그게 아니야. 컵이 두 개밖에 없어서 무슨 일인가하고 생각해서 말이야.”


  “모처럼 휴일이니까 둘이서 느긋하게 지내라고 하셔서……. 마음을 써주셨어요.”

  남편이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 반대했는데…….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셔도 좋은데……. 유스티나. 아버님께 사양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전해주지 않을래?”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안 됐나.”

  “네. 당신이 말하시는 게 어때요?”

  “한 번 말해봤지만 말이야. 아버님은 고집이 있으시니까…….”

  남편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남편과 나를 가능한 한 둘이서 있게 하려고 한다. 남편이 다망하여 휴일을 취하지 못하는 걸 꽤나 신경 쓰고 있는 듯하다.


  남편에겐 코코아와 쿠키를, 나에겐 홍차와 쿠키를 준비했다. 코코아의 달콤한 향기가 방을 떠다닌다. 오랜만의 휴일. 남편이 이렇게 집에서 쉬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언제나 휴일이라는 건 말만 그렇고 사람을 만나거나 개인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일이 많다.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당신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게 괴롭지 않으신가요?”

  “……어째서 그런 질문을?”

  “아버지 앞에선 누구나 긴장하니까요. 당신은 어떤가하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코코아를 한모금 마시고 “딱히 괴롭진 않네.”하고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남편은 극히 평범하게, 나보다도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대하고 있다. 정말 피가 이어진 부자처럼.

  “아버님은 어떨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게 괴롭진 않으실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뻐하고 계세요. ……어째서 그런 말을?”

  내가 질문하자 남편이 애매한 미소를 띠웠다.


  “아버님에게 있어서 나는 쓰기 어려운 부하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서 말이야.”

  “어머.”

  “생각해 보면 꽤나 문제아였다고 생각해. 잘 참고 써주셨지. 아버님과 같은 입장이 되어서 알았어. 사람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번 그렇게 생각해.”

  더듬더듬거리는 어조였다.


  고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직 20대 중반이다. 세간의 기준에서 보면 애송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인 거다. 그런데도 남편은 제국에서도 굴지의 실력자가 되었다. 주변에 있는 부하는 다들 남편보다도 연상이겠지. 마음 편히 쉴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침울한 표정으로 코코아를 마시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 가슴이 아팠다.


  “아무쪼록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 괜찮아. 무리는 하지 않아.”

  남편이 부드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다. 남편의 입장에선 무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많다. 군부만이 아니라 내정에까지 관여하고 있으니까. 나는 무리는 하지 말아달라고 불가능한 소원을 말하고, 남편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의미 없는 대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까 무리는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뿐이다. 이 무슨 무력한……. 남편이 곤란하다는 듯한 웃음을 띠우고 있는 것도 나에 대한 죄악감 때문이겠지. 냉혹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지만, 마음이 차가운 사람은 아니다.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생각하는 건 건강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안하네. 유스티나. 네게는 항상 걱정만 하게 만들어.”

  내가 항변하려고 하자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몸이 약한데도 바빠서 제대로 쉴 수도 없어. 덕분에 부부다운 일도 무엇 하나 할 수 없지. 원래라면 오늘도 함께 나가거나 쇼핑이라도 어울려주고 싶지만…….”

  남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남편의 목숨을 뺏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도 저택 주변엔 경호하는 병사가 대거 있다. 나조차 외출은 가능한 한 삼가고 있다. 퀸멜 사건을 잊을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남편이 죽을 뻔했다.

  “이래서야 뭘 위해서 결혼한 건지……. 아버님이 나가시는 게 당연하지. 한심한 남편이야. 나는.”

  고개를 숙이고 젓고 있는 남편이 사랑스러웠다. 밖에선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사람이 내 앞에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웠다.


  “저는 후회하고 있지 않아요.”

  “유스티나.”

  행복해요. 저는. 당신과 함께 이렇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말하고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남편이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고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진심이다. 남편과 결혼한 일을 후회하고 있지 않다.


  “이제 곧 우주는 평화롭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기리라 생각해. 조금만 더 참아줘.”

  “네.”

  전쟁이 다가왔다.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안다. 최근 개인실에서 잠자코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잦아졌다. 그 때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하다. 전쟁에 대한 걸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주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전쟁. 정말로 평화롭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


우주력 489년 8월 5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티타임이 끝나자 거실에는 나 혼자만이 남았다. 유스티나는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날 혼자서 느긋하게 쉬게 만들고 싶은 거겠지. 난 한상 그녀를 외롭게만 만들고 있다. 미안하다. 유스티나. 언젠가 반드시 보답할게.


  아버님은 재향군인회인가……. 곤란하네. 거기엔 늙은이가 많으니까. 친근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손자가 어떻다느니 증손자가 어떻다느니 라는 이야기가 많다고. 그렇게 되면 뮈켄베르거도 손자를 바라게 되겠지. 나에겐 말하지 않겠지만 유스티나에겐 때때로 묻고 있다는 것 같다. 뭐, 때때로고 가볍게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아이인가. 지금은 곤란하다. 유스티나가 임신했다는 걸 알면 바보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유스티나의 목숨을 노리게 될 것이다. 피힘해야 하나? 하지만 말이지. 유스티나가 슬퍼하겠지……. 그걸 생각하면 피임도 할 수 없다.


  지금부터 임신한다고 치면 출산은 내년이겠지. 올해 연말엔 출병준비로 바쁠 것이다. 그리고 새해가 밝으면 동맹령을 향해 출병하게 된다. 군사행동 기간은 대체로 반년에서 1년. 출산, 육아, 가장 힘든 시기에 곁에 있을 수 없다. 덧붙여 돌아오면 바로 페잔 천도다. 역시 아이를 낳는 건 페잔으로 간 뒤가 좋을까?


  피임. 유스티나에게 상담해 볼까. 아마도 그녀는 싫다곤 하지 않겠지. 하지만 슬픈 표정을 지을 것이다. 보고 싶지 않다고. 유스티나의 그런 얼굴은. 지금도 걱정만 끼치고 있으니까. ……머리가 아파왔다. 뮈켄베르거에게 상담해볼까.


  지구를 제압하고 나서 한 달인가. 슬슬 지구교의 잔당도 페잔으로 집결했겠지. 제국의 출병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동맹이 페잔의 중립성 유지에 실패했다, 혹은 반제국적인 활동을 행했다는 것이 적당하다. 지구교가 어떻게 움직일지, 루빈스키가 그걸 어떻게 이용할지…….


  지구교는 지금 상태의 페잔에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페잔을 생각대로 할 수 없다. 뭐라 해도 자치령주인 페이워드는 그들 뜻대로 되지 않을 테고, 자유행성동맹군이 주류하고 있다. 말하자면 점령통치하에 있는 셈이다. 자치령주를 괴뢰에게 맡기고 동맹군을 철수하게 만드는 걸 원하겠지.


  페잔의 자치를 회복한다. 제국의 자치령주로 복귀하든지, 혹은 지금 상태를 이용하여 동맹의 자치령을 노리는지. 그리고 페잔을 근거지로서 재차 지구에 의한 우주정복을 생각한다. 제국과 동맹의 국력을 생각하면 제국으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지구교에게 있어서 동맹쪽이 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혹은 루빈스키가 그렇게 유도할지도 모른다. 그 방향으로 혼란이 일어나면 충분히 출병할 수 있다. 동맹은 페잔의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국의 이득을 취하려 했다. 그렇게 비난할 수 있다.


  동맹을 의지하는 건 무리가 있을까. 페이워드의 힘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구교의 바라는 바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제국의 자치령을 노릴 가능성이 높은가……. 하지만 어떻게 해도 방해가 되는 것이 페이워드겠지. 지구교는 반드시 페이워드를 배제하려 하든가 포섭하려 할 것이다.


  포섭은 어렵겠지. 페이워드는 자신의 뒷배경이 동맹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 동맹이 지구교를 부정하고 있는 이상 페이워드가 지구교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배제로군. 어떻게 배제하지? 모살인가? 좋은 수는 아니군. 동맹은 지구교가 움직이고 있다고 인식할 것이다. 지구교에 대한 추격은 엄격한 것이 되겠지. 제국에게 있어서도 지구교의 추격은 뭐라 할 수 없다.

  아니, 가능성은 있나. 페이워드를 모살하고 다음 자치령주를 장로위원회에서 선발한다. 당연하지만 지구교의 꼭두각시다. 장로위원회가 아직 지구교의 영향하에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 동맹은 인정하지 않겠지. 그렇게 되면 혼란이 생긴다. 중립성의 유지에 실패했다고 비난할 수 있다면 제국의 출병 기회가 생긴다. 루빈스키가 유도하겠지.


  기다려. 죽일 필요도 없나? 동맹이 밀어붙인 자치령주라며 비난하여 탄핵하면 되는 일이다. 일단 페잔인 사이에서 페이워드에 대한 불만, 동맹에 대한 불만을 부채질한다. 그 뒤 페이워드의 탄핵이다. 동맹도 페이워드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이게 진짜일까. 뭐, 중립성 유지를 쟁점으로 한다면 대충 이 정도겠지.


  렘샤이트 백작은 오딘에 돌아오는 편이 좋겠군. 페잔은 이제부터 혼란에 빠진다. 동맹측이 침정화에 협력하라 요구하면 좋지 않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선 렘샤이트 백작의 목숨이 위험하게 될지도 모르지. 고등변무관의 암살이라니 반제국활동 중에서도 가장 큰일이다.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상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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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7월 7일. 페잔, 고등변무관저. 피엘 샤논.


  문을 열기 전에 넥타이를 고치고 양복의 옷깃을 고쳤다. 문고리를 돌리고 문을 연다.

  “기다리게 했습니까?”

  “아뇨. 맘에 두지 마십시오. 말도 없이 찾아온 건 저니까요.”

  응접실 소파에는 초로의 제국인이 앉아 있다.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 제국의 고등변무관. 유창한 동맹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언제나 동맹어로 행해진다.


  천천히 다가가서 소파에 앉자 노인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희끗한 두발과 투명에 가까운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그 용모 때문에 렘샤이트 백작은 제국의 흰여우라고 불리고 있다. 흰여우는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다.

  “바쁘신 것 같군요. 샤논 변무관.”

  “페이워드 자치령주 각하의 호출을 받았었습니다.”

  “과연. 자치령주 각하입니까……, 그거 참…….”

  렘샤이트 백작이 의미심장하게 어미를 흐렸다. 하긴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이쪽이 페이워드와 친밀하다는 걸 보여도 눈에 띠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렘샤이트 백작에게 있어서 페이워드는 동맹의 괴뢰에 불과하겠지. 페이워드도 렘샤이트 백작과의 파이프를 두껍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제국과의 화평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딘의 볼테크 변무관을 경유하여 제국정부 고관 사이에서다. 리히텐라데 후작, 발렌슈타인 원수. 지금 현재로선 화평 공작이 잘 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신지?”

  렘샤이트 백작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제국정부에서 연락이 있었기에 동맹정부에 전해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제국정부에게서 온 정식 통지, 라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됩니다.”

  렘샤이트 백작이 무겁게 끄덕였다.


  제국에서 온 정식 통지인가. 아마도 지구교에 관한 무언가겠지. 정신 차려라. 방심하면 안 된다. 흰여우는 이쪽에 호의를 보이면서도 확실하게 제국의 실리를 확보하는 자다. 게다가 이쪽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말이다. 동맹이 몇 번이나 이 자 때문에 고배를 마셨는지…….


  “듣도록 하지요. 귀국에선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국은 군대를 지구로 파견하여 지구교단의 본거지를 공략했습니다.”

  “…….”

  “궤멸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지구교의 총대주교를 시작하여 간부 대부분은 본거지를 폭파하여 자결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을 포박할 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본거지를 쳤는가…….


  “그럼 지구교단은 머리가 뭉개졌다, 나머진 오합지졸이라고?”

  그렇게 묻자 렘샤이트 백작이 “헌데, 어떨까요.”하고 답했다.

  “군대를 파견하고 나서 지구공략까지 시간이 비어있습니다. 도망친 자가 없다고 하긴 힘들지요. 정부도 본거지를 궤멸했다고 했습니다만, 교단이 궤멸했다곤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더 주의가 필요합니다.”

  “과연.”

  제국은 지구교단의 궤멸에는 자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불확정요소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구교단과 페잔의 관계를 나타낼 증거는 있었습니까?”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태로선 아무것도. 교단의 본거지는 폭파되었기에 컴퓨터는 토사에 파묻히거나 파손된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오딘에 가져가 수복할 생각인 듯 합니다만…….”

  “미묘하다는 겁니까.”

  내가 말을 잇자 렘샤이트 백작이 끄덕였다. 잠시 동안 침묵이 떨어졌다.


  “실질적인 문제로, 페잔과 지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건 확실한 겁니까? 가능성으로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믿을 수 없으십니까?”

  “페이워드 자치령주 각하는 페잔과 지구교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증거는 없는 거다. 페잔과 지구의 연결고리가 없을 가능성도 있겠지. 애초에 여기 페잔은 지구교단의 지부가 없다. 공리적이며 현실주의자인 페잔인은 종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페잔은 전도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땅인 것이다.


  페잔에 있어 지구교의 활동은 극히 저조하다. 페잔인의 대다수는 지구교에 대하여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의 페잔인은 지구교가 동맹, 제국에서 일으킨 소란을 남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럼 어째서 제국이 페잔과 지구교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


  제국은 페잔을 지구교의 동료로 만들어 페잔 토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국은 동맹과의 싸움을 원하고 있다.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도화선이 페잔이겠지. 불을 붙이는 것이 지구교……. 나에겐 이쪽 가능성이 더 높은 걸로 보인다.


  “본래 자치령주 각하께선 바렌코프 전 자치령주 밑에서 보좌관을 했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자치령주가 되는 것이 예정된 분이 아니었죠. 페잔에게 있어서도 지구에게 있어서도 이 일은 비밀 중의 비밀입니다. 각하께서 아무 것도 몰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닙니까?”

  “…….”


  진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전 자치령주 아드리안 루빈스키다. 하지만 현재로선 루빈스키가 어디 있는지는 불명이다. 그리고 제국은 루빈스키의 거주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아들, 루퍼트 케셀링크는 오딘에 있다. 루퍼트를 오딘으로 데려간 것은 눈앞에 있는 흰여우였다.


  “양쪽에 연결고리가 있을지 없을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지구교가 도망칠 곳이 현재로선 페잔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국정부는 지구교의 잔당이 페잔에 집결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어떠한 행동을 일으키진 않을까, 그에 의해 페잔이 혼란에 빠져 그 중립성을 잃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슥하고 렘샤이트 백작이 몸을 내밀었다.


  “동맹정부의 입장에서 지구교의 움직임에 충분히 주의하셨으면 합니다. 페잔의 중립성의 회복과 유지, 그것은 동맹정부의 책임 하에 있습니다. 페잔 진주의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역시 거기를 찔러 왔는가. 소란이 일어나면 동맹은 조약을 깼다. 동맹에게 페잔을 맡겨둘 수 없다. 그렇게 주장하며 침공할 생각이겠지. 흰여우가 날 보고 있다. 대답을 기다리는 거겠지. 언질을 받는다. 그런 거다. 하지만 거부는 할 수 없다.


  “……본국 정부에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흰여우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그리고 내밀었던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본국에서 어떠한 보고가 들어오면 또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이걸로…….”

  “감사했습니다. 이후의 조사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습니다만…….”

  렘샤이트 백작을 배웅한 뒤 하이네센으로 연락을 취했다. 화면에 트류니히트 의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샤논 변무관, 무슨 일인가?”

  “렘샤이트 백작이 방문했습니다.”

  트류니히트 의장의 표정이 희미하게 굳어졌다.

  “그래서?”

  “제국군이 지구로 가서 지구교단을 제압했다고 합니다. 지구교의 총대주교를 시작하여 간부의 대부분이 자결했다 합니다.”

  “과연”하고 의장이 끄덕였다.


  “하기야 지구교단을 완전히 무력화 했다는 데에선 자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도망친 자도 있지 않을까하고 제국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구교의 위협은 감소는 했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그런 건가?”

  “네.”

  트류니히트 의장의 의견을 긍정하자 의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와 페잔의 관계지만, 뭔가 알았는가?”

  “지금부터 조사한다는 것 같습니다. 단지 교단의 본거지가 파괴되었기에 컴퓨터는 토사에 묻히거나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데이터 복구에는 시간이 걸린다. 렘샤이트 백작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꼬리를 잡을 수 없는가…….”

  “예.”

  꼬리를 잡을 수 없다. 아니 정말로 꼬리가 있는 건지……. 혹은 제국은 이미 꼬리를 잡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일부러 그걸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본거지는 무너뜨렸다. 이걸로 지구교단은 하이네센, 오딘, 지구라는 세 거점을 잃게 되었지.”

  “…….”

  “그들이 교단으로서 활동한다면 근거지가 필요할 것이야.”

  “……페잔입니까.”

  의장이 끄덕였다.


  “동맹과 제국의 지구교도가 집결하고자 한다면 지리적으로 봐서 페잔이 최선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동맹, 제국은 지구교를 적이라 인식하고 있지만 페잔은 그렇지만도 않아. 페잔과 지구에 연결점이 없다고 해도 놈들은 페잔으로 모이겠지.”

  “렘샤이트 백작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페잔의 중립성 회복과 유지는 동맹군 페잔 진주의 조건이라고.”

  트류니히트 의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이 제국의 목적이라는 가능성은 없습니까? 제국은 페잔에 불만분자를 모아 혼란을 일으켜 그걸 계기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페잔과 지구 사이의 연결점은 없을지도…….”

  “…….”

  의장은 침묵하고 있다. 앞으로 한 걸음이다.


  “페이워드 자치령주도 페잔과 지구의 연결점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잔에는 상업국가로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구교를 그 자리에 집어넣으면 부자연스러운 점이 사라져.”

  “…….”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 부자연스러움은 있다. 페잔은 너무나도 동맹과 제국 사이에서 전쟁을 부채질했다. 상업국가라면 화평과 전쟁을 적절하게 조절할 것이다.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고, 양국에서 이득을 착취한다. 페이워드에 의하면 바렌코프는 화평을 생각했다고 한다. 바렌코프는 양국에 적절한 휴식을 주어 착취할 것을 생각했겠지. 하지만 실현하는 일 없이 사고사했다. 페이워드는 루빈스키에 의한 모살은 아닌가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그 뒤에 있는 건 지구교겠지.


  “지금 신경 써야만 할 점은 지구교단의 잔당이 페잔에 집결하는 일. 그리고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다. 제국에 페잔 침공의 구실을 제공해선 안 돼.”

  “예.”

  “페이워드와 협력하여 혼란을 막아주게.”

  “알겠습니다.”

  “그럼”하고 말하며 통신을 끊었다. 컴컴해진 화면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페잔은 상업국가다. 선박 출입은 질릴 정도로 많다. 집결에 신경을 쓰라고 해도……. 또 한숨이 나왔다.


...


우주력 798년 7월 7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트류니히트의 호출을 받아 의장의 집무실로 가자 거기에는 이미 호안과 아이란즈가 있었다. 나를 보고 트류니히트가 가볍게 끄덕였다.

  “다 모였군. 페잔의 샤논 변무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국은 지구를 제압한 것 같아. 지구교단의 본거지를 괴멸상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들 서로를 돌아본다. 놀라지는 않는다. 올 것이 왔다. 그런 느낌이다.


  “흰여우에게서 인가?”

  “그래. 우리들에게 알려달라고 했다는군.”

  “그럼 지구교는 이걸로 끝인가?”

  내가 질문하자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까지 확신은 제국에게도 없는 것 같아. 큰 피해를 입혔다. 대충 그런 정도겠지.”

  호안이 불만스럽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레벨로. 지금 상태론 지구와 페잔을 이을 것이 없어.”

  다들 서로를 돌아봤다. 다들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폭발의 영향으로 컴퓨터 같은 것들이 지면에 파묻히거나 파손되었다고 한다. 복구에는 시간이 걸리겠지. 복구 된다면 말이지만…….”

  좋지 않다. 나 만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되면 페잔이 지구교단의 근거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하이네센에서 탈출한 지구교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페잔으로 향하겠죠.”

  “위험하군. 지금까지도 페잔은 동맹과 제국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장소였다. 제국은 내란을 수습하고 국내를 굳히고 있어. 소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아이란즈, 호안의 목소리가 침울하다. 상황은 좋지 않다.


  “그 일은 샤논 변무관에게도 주의를 줬다. 그도 페잔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제국이 침공하는 건 아닐까, 그것이 제국의 목적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렘샤이트 백작이 페잔의 중립성 회복과 유지는 동맹의 책임이라고 한 것 같아.”

  트류니히트의 말에 다들 얼굴을 찡그렸다. 누구라도 책임문제를 듣는 건 맘에 들지 않는 일이다.


  “지구교를 치면서 페잔 침공을 시야에 두는가. 문제는 그 침공이 한정적인 것인지 총력전인 건지로군.”

  내가 말하자 호안이 “우주통일인가”하고 중얼거렸다. 제국은 우주통일을 바라고 있다. 2년 전의 제국령 침공, 그 패배에서 동맹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제국이 페잔에서 일어날 소란을 계기로 전쟁을 걸고 싶어 한다. 그렇게 생각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국내가 어느 정도 굳어있는지. 원정을 바란다 해도 국내 정세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국방위원장. 군부에 상황을 설명하고 경고를 해두게.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준비만은 태만하게 해선 안 돼. 시급히 훈련을 행하여 단련해 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력 보충을 서둘러줘.”

  트류니히트의 말에 아이란즈가 고개를 저었다.


  “어렵겠군요.”

  “…….”

  “현재 새로이 2개 함대를 편성하여 정규함대는 7개 함대까지 회복했습니다. 다만 새로이 편성한 2개 함대는 전력으로서 쓰기에는 훈련 부족입니다. 앞으로 1년만 더 있으면 훈련도 마무리 되고 1개 함대 더 편성할 수 있겠습니다만…….”

  “…….”


  “지금 상태로는 이게 최대한입니다. 함선도 없고 거기에 탈 병사도 없습니다. 그 패전에서 잃은 장병을 보충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아이란즈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력이 불충분하다는 걸 고했다. 호안이 “시간인가”하고 중얼거렸다. 다들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트류니히트가 무거운 공기를 떨쳐내듯이 고개를 저었다.


  “알았다. 최선을 다해주게. 그리고 전의 명부에 대한 것, 뭔가 알았는가?”

  모두의 시선이 아이란즈로 향했다. 지구교단 지부에 있었던 명부. 지구교도 후보자 명부는 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준비한 것인가…….


  “명부를 조사하면서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기재된 이름은 플레어스타 그룹의 각종 기업에서 뽑힌 거였습니다. 편중된 부분이 없습니다.”

  “…….”

  편중된 부분이 없다? 광범위하게 지구교의 손이 뻗혀있다. 그런 건가?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아마도 지구교는 각 기업에서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겠죠. 플레어스타 그룹은 인사, 경리, 재무업무를 그룹 내에 있는 어느 기업에게 일괄적으로 위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정보를 얻은 거겠죠.”

  “과연. 이치에 맞군.”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인사를 잡으면 간단한 일이다. 급여계산을 행하는 데엔 배우자의 유무, 부양가족의 유무가 중요하게 얽혀있다.


  “지금 그 기업을 은밀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주십시오.”

  “알겠다. 자네에겐 수고를 끼치고 있지만, 잘 부탁하네.”

  트류니히트가 아이란즈의 노고를 치하했다. 실제로 동맹에서 가장 바쁜 정치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리고 그 고생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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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7월 5일. 오딘, 신무우궁. 안톤 페르너.


  “꽤나 애먹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루게 백작의 말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지구는 본거지니까요. ……오딘에서 있었던 지구교단 지부를 강제조사했을 때도 꽤나 저항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엔 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무거운 공기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신무우궁 남원에 있는 한 일실. 저번에 썼을 때도 어둡고 음침한 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더욱 음울함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높으신 분이 쓰는 방인 것 같지만, 독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구만. 이 방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네 명의 남자가 모여있다. 나와 안스바흐 준장, 내 정면에 사법상서 루게 백작과 우주함대 사령장관 에리히 발렌슈타인 원수…….


  “변함없이 자살행위와도 같은 몸을 사리지 않는 저항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이옥신 마약을 사용한 세뇌입니까. 성가시군요.”

  루게 백작의 탄식에 에리히가 “네”하고 끄덕였다.

  “당초 장갑척탄병은 근접전을 행했습니다만, 바로 거리를 취하는 싸움으로 바꿨습니다. 최루탄, 섬광탄, 장거리음향장치……. 교단측에서도 방독 마스크, 차광 마스크를 쓴 신도가 있었기에 최루탄, 섬광탄의 효과는 한정적이었습니다만, 장거리음향장치는 꽤나 유효했다고 합니다.”

  루게 백작이 “호오”하고 소리를 냈다.


  “단지 그건 꽤나 많은 전력을 소비합니다. 그렇기에 장기간 운용할 수 없습니다. 몇 번이나 배터리를 교환하며 충전하면서 사용했다든가. 그 부분은 개량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게다가 기재가 너무 커서 수송이 쉽지 않다는 결점도 있습니다.”

  에리히가 조금 얼굴을 찡그렸다.


  “과연. 효과는 있지만 운용에는 난점이 있다. 그런 거로군요.”

  루게 백작이 끄덕이고 있다.

  “예. 개량 여지는 있겠죠. 바렌 제독이 그 점을 전투보고에 기재하였기에 개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군무성 경유로 병기개발부문, 민간업자에게 개량하라는 명령이 내려가겠지. 지구교 대책만이 아니다. 폭도 대책에도 유효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두 사람, 너무 담담하구만. 흘깃 보면 냉담하다고 해야 할지 무관심하다고 해야 할지. 사이가 나쁜 건 아닌지 착각할 녀석이 나오는 건 아닐지 모를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지구교의 총대주교 말입니다만, 마지막엔 스스로 폭사했다고 합니다.”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발렌슈타인 원수.”

  에리히가 고개를 저었다.


  “좀처럼. ……천년 가까이 내려온 원념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겐 끝나지 않겠죠.”

  “과연. 그렇다면 문제는 후계자로군요. 대체 누가 그 뒤를 이을지…….”

  “글쎄요. 누가 이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디로 갈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페잔, 이로군요.”

  에리히가 끄덕였다.


  “자유행성동맹에서도 지구교는 탄압받고 있습니다. 도망칠 장소는 페잔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페잔은 원래 지구가 만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연결점도 있겠지요. 어떠한 편의를 봐줄 사람도 있겠고.”

  “헌병대가 페잔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들이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토벌군이 지구에서 갖가지 물건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걸 분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갖가지 물건, 이라 하시면?”

  “서류, 컴퓨터 기기, 무기, 포로 등입니다. 그들이 자폭했기에 파손되거나 땅속에 파묻혔던 물건도 있습니다.”

  “그건 좀 벅찬 일이군요.”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정말로 벅찬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확실히 나도 꽤 힘든 일일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확실히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그들에 대한 걸 거의 모릅니다. 그들의 조직이 어디까지 뻗혀 있는가. 그걸 지지한 재정기반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만, 조사하고 싶습니다.”

  “과연. 본거지를 친 이상 다음은 그쪽이라는 거로군요.”

  루게 백작이 끄덕이고 있다.


  “지구는 자원이 고갈된 별입니다. 그들이 지구에서 수익, 대부분이 관광, 순례에 의한 수익일 텝니다만, 그것만을 의지했다곤 생각하기 힘듭니다. 나머진 신자에게서 거둔 헌금일 텝니다만, 그것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에서 활동자금을 구할 것인지…….”

  루게 백작과 에리히가 서로를 돌아봤다.


  “흥미가 생기는군요.”

  루게 백작의 말에 에리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흥미가 생깁니다. 대체 어디에 연결되어 있을지…….”

  “말도 안 되는 곳에 도달할 것 같군요.”

  “네.”

  어이어이, 두 사람 모두 웃을 일이 아니라고.


  “알겠습니다. 이쪽에서 조사하도록 하지요.”

  루게 백작이 나와 안스바흐 준장을 봤다. 물론 거부하지 않는다. 에리히가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말했다.

  “그 외에 뭔가 있습니까?”

  “아뇨. 이쪽에선 아무 것도. 그쪽은 있습니까?”

  “딱히 없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끄덕인다. “그럼 이걸로.”하고 말하며 에리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서 경례하려고 했지만 에리히가 필요 없다는 듯이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그것을 배웅하고 나서 루게 백작이 입을 열었다. 변함없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이다.


  “들은 대로다. 받아들일 준비를 해두게.”

  “예.”

  “그리고 페잔으로 사람을 보내고 싶네.”

  “페잔에 사람을? 괜찮겠습니까?”

  안스바흐 준장이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반대하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루게 백작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만일을 위해서다. 헌병대가 인원부족이 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보내면 좋겠습니까?”

  내가 묻자 루게 백작은 “그렇군.”하고 조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5인 단위로 10조. 보내도록 할까.”

  50명인가. 많다곤 할 수 없지만 적다고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여성만으로 구성된 조를 2개 준비하게. 그리고 임무 중 다른 조와의 연락은 취하지 못하도록 주의하게.”


  묘한 말을 한다. 안스바흐 준장을 봤지만 준장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알리지 마라. 단독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라는 겁니까?”

  루게 백작이 희미하게 웃고 있다. 드문 일이다.

  “그 말대로다. 페르너 과장보좌. 페잔은 적의 영역이니까 말이야. 만일의 경우 손해를 될 수 있는 한 작게 만들고 싶네.”

  안스바흐 준장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고 답하자 백작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


제국력 489년 7월 5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발렌슈타인.


  루게 백작들과 헤어진 뒤, 국무상서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다행하게도 리히텐라데 후작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도 한 숨 쉬기 위해 사람을 내쫓은 것 같다. 미안한 짓을 했나하고 생각했지만, 사양하지 말라며 환영을 받았다.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 홍차를 대접 받았다. 둘이서 소파에 앉아 티타임이다.


  “무슨 일 있었는가?”

  “네. 묻고 싶은 일이 있어서.”

  “흠. 어차피 또 성가신 일일 테지.”

  “뭐, 다소는.”

  입이 나쁘네. 하기야 리히텐라데 후작의 표정은 밝다. 짓궂은 말, 이라는 거겠지.


  “지구 말입니다만,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라면?”

  “아, 실례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을 어떻게 하시겠냐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쪽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응응하는 듯이 끄덕였다.


  “지구교단이 괴멸하여 통치자가 사라졌습니다만.”

  “생각해두지 않았네. 그렇군……. 방치해 둘 순 없겠지.”

  리히텐라데 후작이 내 얼굴을 살핀다.

  “그럴 순 없겠지. 그렇게 해서 한 번 실패했습니다. 제2의 지구교단이 생길지도 모르고, 지구 그 자체를 이용하려 드는 자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뭐라 해도 인류발상의 땅입니다. 혈통서는 좋죠.”

  리히텐라데 후작이 쓴웃음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제국의 직할령쯤이 적당한가.”

  “그렇게 되겠군요.”

  리히텐라데 후작이 턱에 손을 댔다. 생각에 잠길 때의 포즈로군.

  “인구는 어느 정도 있을꼬.”

  “1천만 명 정도입니다.”

  “1천만! 그렇게나 있는가.”

  “예.”


  노인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베스타란트조차 300만 명이었다. 1천만 명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제국의 변경성역으로선 많은 편이다.

  “거기엔 이미 자원도 고갈되고 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네만…….”

  “900년 전의 무차별공격으로 괴멸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 이래 대지가 오염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주민들의 평균수명도 짧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1천만 명이 살고 있는가……. 자업자득이라곤 하지만 너무한 이야기로고.”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업자득인가. ……확실히 그렇다. 지구는 그런 말을 들어도 별 수 없는 짓을 했다.

  “그 1천만 명이네만, 전부 지구교도인가?”

  “아마도 그렇겠죠. 지구에 살고 자들이니까요. 하기야 지구교단의 지배자처럼 광신자인가 하면 의문이 남습니다. 그야 선민사상은 있겠지만.”

  “과연.”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응. 나쁘지 않다. 노인도 홍차를 턱 밑에 가져가고 있다. 마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향기를 즐기고 있다. 의외로 순수하군.


  “지구에게서 떨어뜨릴까. 그리고 지구를 무인행성으로 한다. 자원도 산업도 없지. 그런 행성에 1천만 명이나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게야. 폐기는 이상한 생각이 아니겠지.”

  “…….”

  “사람이 살지 않으면 문제도 생기지 않아. 주민에게 있어서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편이 장래성이 밝지. 어떨까?”

  뭐, 그렇지. 확실히 맞는 말이다. 폐기는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사람을 없애버리면 된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한 번 했었다.


  “무인행성으로 이주라면 괜찮겠습니다만, 유인행성이 된다면 틀림없이 선주민들이 싫어하겠지요. 반대가 심할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교도 따윈 사이옥신 마약을 쓰는 광신도, 범죄자입니다. 틀림없이 배척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상해사건으로 발전하겠지요.”


  리히텐라데 후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말해 이 노인도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치명적인 결점은 아니다. 개발을 방폐한 무인행성 따위 얼마든지 있다. 거기로 이주하게 만들면 괜찮을 뿐이다. 단지 하나부터 시작하는 일이기에 돈은 들겠지. 문제는 다른데에 있다.


  “그리고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주 그 자체를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왜인가.”

  “아까 전에도 말했습니다만, 광신자는 아니더라도 선민의식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구에서 떨어지면 그걸 잃게 되는 일이 됩니다. 얌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특히 나이가 든 자들은 그런 마음이 강하겠지요. 그걸 마음의 지지로 삼아 살아왔을 테니까요. 이쪽도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성가시군.”


  리히텐라데 후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알겠다. 나도 한숨을 내뱉고 싶은 기분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은 다들 그 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일단 폭동이 일어나면 단숨에 폭발하겠지. 1천만 명이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된다. 그걸 진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지. ……악몽이군.


  “경. 무슨 생각 없는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여기에 왔으리라 생각하기 힘드네만.”

  교활한 영감이군. 그런 기대에 찬 눈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말이지. 내게도 그렇게 좋은 수는 없어.

  “강제가 아니라 이주를 희망하는 자를 모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전제로서 지구교를 버려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흠. 강제가 아니라 희망자인가…….”

  리히텐라데 후작이 생각에 잠기며 홍차를 마셨다.


  “이주하는 자는 어떤 형태로서 우대하도록 하지요. 이주하기 쉽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주 후, 어느 일정 기간에 걸쳐 직접세 면제, 그리고 이주에 드는 비용 지원, 대충 그런 것들입니다. 그렇게 하면 노인들은 어쨌든 젊은 사람 중에선 이주를 희망하는 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앞날은 깁니다. 누구라도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싶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흘깃하고 날 봤다.

  “과연. 경, 무서운 생각을 하는군. 단숨에 안락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지구를 늙어 죽게 만들겠단 겐가.”

  “…….”


  “수십 년 뒤에는 지구는 노인들만의 별이 될지도 모르겠지. 마치 지구 그 자체 같구먼.”

  노인이 희미한 미소를 띠운다. 냉소, 조소일까.

  “죽음이 결정된 건 아닙니다.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지구에 사는 사람에게 정하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하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궤변이군. 아마도 지구는 쇠락하게 된다. 왜냐하면 리히텐라데 후작은 지구를 폐기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우대책이 발표되겠지. 나도 지구는 폐기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 있어 지구라는 별은 인류로서 짐덩이에 불과하다. 인류발상의 땅, 지구. 그 자체가 인류에게 있어 어둠의 유산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유산이 긍정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없다. 리히텐라데 후작도 궤변이라고 생각했겠지. “뭐, 그런 걸로 해둘까.”하고 말했다.


  이야기는 끝났다. 이주할 무인행성을 여기서 정할 필요는 없다. 공부상서 질버베르히에게 맡겨두면 되겠지. 그가 적당히 골라줄 것이다. 나는 리히텐라데 후작과 차를 마신다. 하찮은 이야기를 하면서 지구에 대한 걸 생각했다. 어째서 지구는 인류에게서 버려졌는가…….


  900년 전, 지구는 인류사회의 맹주였다. 하지만 좋은 맹주였다곤 할 수 없다. 오만하고 타 행성을 착취하여 그것을 지구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맹주였다. 권리의 근거는 지구가 인류발상의 별이니까, 단지 그것뿐이었다. 지구에는 리더십도 숭고한 이념도 없었다. 단지 의미 없는 선민사상과 오만과 탐욕뿐이었다.


  결국 그것이 원인이 되어 몰락했다. 그것도 완벽할 정도로 붕괴했다. 당시 인류, 지구에 사는 인류를 빼고 대다수가 그것을 원한 것이다. 그렇게나 미움을 받았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자업자득이라고 한 말이 그걸 의미하고 있다. 몰락한 뒤에도 인류의 지구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구 몰락 후의 인류가 목표로 한 것은 탈지구적인 우주질서에 의한 은하연방의 성립이다. 철저한 지구부정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은하연방이 지구를 무시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연방에게 있어서 지구 구제 따위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선택지였다. 당연하지만 무시를 당한 지구는 연방을 원망했겠지. 증오했을 것이 틀림없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지구를 부정하는가. 지구야말로 인류발상의 땅이 아닌가, 하고.


  무시당하는 것만큼 상처 입는 일도 없다. 자신의 존재의의조차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구 이외의 별이라면 그렇게 되었겠지. 아마도 무인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는 지구야말로 인류발상의 땅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있었다. 아니 지주가 아니지. 주박이다. 지구에 사는 인간은 그것에 달라붙었다. 그것이 지구교도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1천만 명의 인간이 자원도 산업도 고갈된 지구에 남은 것은 그 주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은하연방 정부에게 있어서 지구교단의 성립은 어떻게 보였을까? 지구는 과거의 번영에 달라붙으려고 하고 있다.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을까? 지구를 바라보는 연방의 눈은 꽤나 싸늘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시선이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지구는 과거의 번영에 달라붙어 연방을 원망했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은 은하연방에서 은하제국으로 변해도 계속되었다. 900년에 걸쳐 계속된 것이다. 이제 와서 지구에 온정을 베풀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염을 제거하고 경제원조를 해도 쓸모없다. 지구가 가진 인류에 대한 적의는 그런 일로 사라지지 않는다. 900년간 걸쳐 계속된 주박의 원한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에는 다음 두 가지를 경시해선 안 된다고 써 있다. 첫째는 인내와 관용은 타인과의 적대관계를 풀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보수나 원조를 줘도 적대관계를 호전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 원래 세계의 일을 생각해 보면 그 말대로 라고 납득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독일과 뮌헨 협정을 맺었지만 돌아온 것은 반년만의 협정 파기와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이었다. 또한 소련과 미국은 독일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로 동맹을 맺었고, 미국은 소련에게 막대한 지원을 해줬지만 독일이 사라지자 두 나라는 냉전 상태에 들어갔다.


  리히텐라데 후작이 지구에 대하여 온정이 아닌 폐기를 생각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유감이지만 제국에는 지구에 대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그리고 지구교단이 생각한 건 지구의 주박 그 자체였다. 인류는 이제 지구의 주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를 우주로 내보낸다는 역할을 끝냈으니까…….


...


ps.

번역가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판단하여 일부분 도려내어 창작한 부분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9년 6월 24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눈앞 화면에는 듬직한 얼굴의 남자가 있다. 변함없이 남자답네. 바렌. 이혼남에 아이까지 있지만 인기 있겠지.

  “상황을 알려주세요.”

  “예. 현재 육전부대가 상륙하여 지구교 본부 정찰과 진로설정을 명령해두었습니다. 앞으로 4, 5일 정도로 끝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원작에선 콘라트 린저가 했던 일이다. 린저에겐 율리안, 포플란들의 협력이 있었지만 이번엔 그게 없다. 정찰대는 다소 고생할지도 모른다.

  “그 뒤의 예정은?”

  “한 곳을 빼고 각 출입구를 미사일 공격으로 차단한 뒤, 장갑척탄병을 투입할 생각입니다.”


  이것도 원작과 같다. 지하요새니까 말이야. 공략 방법은 아무래도 비슷하게 되겠지.

  “지금까지 요새 안의 인간이 도망쳤을 가능성은 있습니까?”

  바렌이 처음으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희들이 오고 나선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봉쇄를 돌파하여 도망친 우주선은 없었고, 그걸 시도한 우주선도 없습니다.”


  지구교를 토벌하자 결정한 것이 9일이다. 그로부터 2주나 지났다. 도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뭐, 총대주교는 남았을지도 모른다. 드 빌리에는 어떨까? 도망쳤다고 한다면 도망처는 페잔일 것이다. 루빈스키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어느 쪽이 이길지…….지지 말라고. 루빈스키.


  “바렌 제독. 장갑척탄병의 장비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총화기, 토마호크, 크로스보우, 나이프입니다.”

  뭐, 표준적인 장비다.

  “최루탄과 섬광탄, 그리고 장거리음향장치를 준비할 수 있습니까?”

  “그건, 가능합니다만.”

  조금 의표를 찔렸나. 바렌은 망설이고 있다.


  “지구교는 신자에게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하여 세뇌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던져 저항할 것입니다. 장갑척탄병도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럴지도 모릅니다.”

  바렌이 표정을 어둡게 한다. 희생이 커지는 걸 기뻐할 지휘관은 없다.


  “그러니 최루탄과 섬광탄, 장거리음향장치로 그들의 저항력을 깎아 내리고자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제압도 쉬워질 테지요.”

  “과연.”

  “아아, 그리고 방독 마스크도 준비하는 편이 좋겠죠. 지구교측도 비슷한 수단을 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응. 좋은 느낌이다. 바렌도 응응하고 끄덕이고 있다. 최루탄은 눈물, 콧물, 기침. 섬광탄은 빛과 소리로 시각과 청각을 뺏는다. 장거리음향장치는 내이를 공격하여 평형감각을 뺏는다. 어느 것도 직접적인 살상능력은 없지만 전투력은 확실하게 뺏는다. 상대방의 전투력을 뺏고 제압하면 장갑척탄병에게 걸리는 부담도 크지 않을 것이다. 미치광이가 상대라면 육체면보단 정신면에서 스테미나가 깎이니까 말이야. 원작에선 꽤나 심한 상황이었다.


  “교시, 감사합니다. 시급히 준비하도록 하죠. 각하께서 신경써 주셨다는 걸 알면 병사들도 기뻐하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생각이 미쳤을 뿐입니다. 너무 과장하진 말아주세요.”

  아니 정말 너무 과장하지 말았으면 한다. 잘 될지 어떨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렌은 고개를 저었다.


  “각하께서 항상 저희들을 생각하신다는 건 소관이 잘 알고 있습니다. 소관도 각하의 배려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혹시 지구교도에게 죽었다면 이 함대는 말도 안 되는 혼란에 빠졌겠죠. 희생된 호위에 대하여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만, 각하의 배려에 의해 저희들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희생? 무슨 말이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아니, 일단 침착해라. 바렌은 임무수행중이다. 불안을 줘선 안 돼. 이 이야기를 들을 사람은 따로 있다.

  “바렌 제독.”

  “네.”

  “저는 지구교는 제국의 적입니다만, 동시에 인류의 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 근거지를 쳐부숴주세요.”

  “예. 반드시 기대에 응하겠습니다.”

  서로 경례하며 통신을 끊었다.


  발레리에게 페르너와 키슬링을 불러 달라 부탁하고 그동안 쌓인 결제 처리, 보고서 확인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읽은 것은 헌병대와 병참통괄부 감찰국에서 보낸 합동보고서였다. 헌병대와 감찰국은 부정부패에 관여한 군인을 수사하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거의 대부분이 상습범인 것 같다. 귀족들이 사라지기 전부터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금액이 적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겠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머리가 아프다고. 보급이나 병기제조부문은 부정부패가 일어나기 쉽다. 본래라면 감찰이 좀 더 엄하게 쥐어짜지 않으면 안 되지만 아무래도 힘이 약하다. 원래부터 미움을 받고 있는 부서였으니까 말이야. 전쟁과는 직접 관계가 없기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강화해두는 편이 좋겠군. 수사능력도 있고 돈의 움직임도 아는 녀석을 감찰로서 배치한다. 감찰을 강화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억지력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에게 상담해야겠군.


  다음으로 읽은 것은 변경개발 보고서였다. 돈이 든다. 계획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써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개발을 멈춰라. 그게 무리라면 페이스를 늦춰라. 변경 귀족에게 맡기라는 거로군. 돈이 든다는 건 알고 있다고. 바보 자식들이. 그렇다고 해서 멈춰서 어쩌자는 거야. 아무 것도 변하지 않잖아.


  변경을 바꾸기 위해선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홋카이도를 봐라. 메이지부터 줄곳 투자하고 개발했기에 그만큼 발전한 거다. 눈앞의 일이 아니라 100년 뒤를 생각해! ……의식개혁이 필요하군. 관료들은 변경을 짐덩이로 생각하고 있다. 거기는 이제부터 발전할 보물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뤼네부르크에게서 온 서류도 있다. 장갑척탄병에 의한 모의전투? 보러 오라고? 목적은 새로 개발한 신장갑복의 기능성 확인? 다시 말해 옛 장갑복과 새 장갑복의 모의전인가. 내게 효과를 확인하게 만들어서 신형 장갑복을 조기도입하려는 거겠지. 예산획득이 목적인가. 새로 부임한 장갑척탄병 총감으로서 실력을 보일 자리라는 거다. 본인은 지구교 토벌에 가고 싶어했지만, 부하에게 맡기라고 말하며 기각했으니까 말이야. 총감다운 일을 하기 시작했잖아. 뤼네부르크. 좋겠지. 보러 가볼까. 출병도 코앞에 닥쳤다. 새 장비의 피로연이 다음 원정이 될지도 모르겠군.


  30분 정도 서류를 보고 있자 페르너와 키슬링이 나타났다. 함께 만나서 온 것 같다. 두 사람을 응접실로 초대했다. 두 사람에겐 커피, 나에겐 차가운 물을. 두 사람이 맛있게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여기의 커피는 꽤나 고급품이라고 했었지.


  “안톤. 지구교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질문하자 페르너는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유감이지만 그다지 좋은 보고는 없어. 일단 포로로 삼은 지구교 신도들이지만, 사회복귀는 무리다. 앞으로는 약물 의존증 치료라는 명목으로 감옥 안에서 넣어두는 수밖에 없어. 감옥에서 나오는 일은 없겠지. 그보다 밖으로 보내면 위험하다. 범죄가 일어나겠지.”


  이번엔 키슬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렇게 되나. 예전에 사이옥신 마약 적발에 관여한 적이 있다. 그때 환자 치료 상황도 확인했었다. 사이옥신 마약 치료 센터, 병원 같은 이름이지만 실제론 감옥이었다. 사이옥신 마약에 대한 의존이 심한 환자 대부분은 구속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지구교 신도는 세뇌될 정도로 의존이 심하다…….


  “치료비도 만만찮겠지.”

  “귄터. 우리들은 그 일로 곤란해하고 있어.”

  뭐지? 묘한 말을 하는군. 페르너.

  “치료비를 낼 사람이 없는 거야. 독신이나 신변을 맡길 친척도 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했으니까. 치료비는 정부가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한숨이 나왔다. 지구교 놈들은 정말 좋은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뒤처리는 제국에게 맡기는가. 그 쓰레기 놈들. 신도를 방치하면 범죄를 저지른다. 그걸 막기 위해선 감금할 수밖에 없다. 루돌프라면 전부 죽였겠지. 마약에 중독된 열악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가장 심플하고 싼값인데다 후환도 없는 해결책이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 아니, 지금의 제국은 그걸 해선 안 된다. 열악유전자 배제법과는 결별했으니까. 치료에 드는 비용은 언젠가 지구교에 청구한다. 놈들의 활동자금을 그대로 치료비로 해버리겠다. 바렌에게 돈줄이 될 물건이 없는지 찾게 하자. 싫어할까나.


  “일반적인,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하지 않은 신도들이지만, 다들 지구교의 진실을 알고 떨어지고 있어.”

  “……지구교 관련에서 처음으로 들은 긍정적인 보고로군.”

  페르너가 어깨를 움츠렸다. 안 되겠군. 꽤나 비아냥이 들어 있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단, 만일을 위해 감시는 붙여 놨다. 다시 말해 광역조사국에게 있어서 부담은 줄어들지 않아.”

  기분이 나빠진다. 지긋지긋하다.


  “지하에 숨은 신도는 있을까?”

  내가 질문하자 페르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알 수 없어. 알 수 없는 이상 있다고 생각하고 탐색하고 있다. 광역조사국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그 놈들이 사이옥신 마약의 금단증세 때문에 폭발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또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일반시민 중에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광역조사국에서 지구에 잠입한 조사원이 두 명 있었지. 어떻게 됐어?”

  “연락은 없어.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런 거겠지.”

  페르너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다시 말해 그 두 사람은 지구교의 꼭두각시가 되었다고 확정했다는 거다. 지구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지만 참혹한 상황이다. 도저히 승리라고 할 수 없다. 더욱 일찍 처 부숴야했다. 지구교의 무시무시함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는데……. 놈들을 가장 경시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인가. 우울해진다…….


  “그 두 사람에 대한 것, 바렌 제독에게 보고해둬. 지구교가 두 사람을 써서 제국군을 혼란에 빠지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알았다. 바로 보고하지.”

  “그 외에는?”

  “지금 현재로선, 그 외에는 없어.”

  이 자식이. 아직도 숨길 작정인가?


  “안톤. 바렌 제독이 지구교도에게 습격 당했던 때에 희생자가 나왔다고 들었다. 정말인가?”

  안색이 변했군. 페르너. 키슬링도 변했다. 이 놈도 알고 있는데 숨겼군.

  “사실이라면 어째서 나에게 보고하지 않은 거지? 안톤, 귄터.”

  “…….”


  두 사람 모두 답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이놈들은 날 신경 쓰고 있는 거다. 보고하면 내가 괴로워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잠자코 있는 것은 내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으면 하지 말라고.

  “두 번 다시 하지 마. 나에게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 알겠지?”

  두 사람이 끄덕였다.


  “미안하다. 숨길 생각은 아니었어. 바렌 제독에게서 뭔가 성과가 나온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 보고하자고 생각했다.”

  페르너가 기가 죽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녀석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다. 연기라고 생각하자. 그러지 않으면 이놈들이 한 짓을 인정하고 말 것 같다.


  “바보 같은 소릴 하지 마. 희생에 어울리는 성과가 나온 걸로 내가 납득하리라 생각했나? 희생이 나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안스바흐 준장에게도 그런 짓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줘.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번엔 제대로 처벌할 거야. 시급히 그 일의 보고서를 내놔.”

  두 사람이 끄덕였다.


  “귄터, 페잔에서 움직임은?”

  “지금으로선 없다.”

  “페잔에서 눈을 떼지 말아줘. 제국만이 아니야. 동맹에서도 지구교는 배척받고 있어. 그들이 도망칠 곳은 페잔밖에 없어. 페잔에는 루빈스키도 있으니까.”

  키슬링이 끄덕였다. 루빈스키는 반드시 지구교를 써서 소란을 일으킬 것이다.


  녀석들이 페잔에 집결하기까지 앞으로 한 달에서 한 달 반은 걸릴 것이다. 소란이 일어나기까지 거기서 더욱 한 달에서 한 달 반인가. 소란이 일어나는 것은 대략 9월에서 10월이 되겠군.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가 이동요새가 되는 것이 10월 상순. 출병 준비와 이동요새 운용실험과 최종조정으로 두 달. 출병은 12월인가 새해가 밝고 나서가 될 것이다. 스케줄은 문제없다. 때가 익어가기 시작하는군. 슬슬 통수본부와 조율에 들어갈까…….


...


제국력 489년 7월 1일. 오딘, 신무우궁, 장미정원. 프리드리히 4세.


  장미를 보고 있으니 “폐하”하고 배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국무상서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디보자, 언제부터 거기에 있던 건지……. 일어나라 말하니 국무상서는 한 번 인사하며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군부에서 보고가 올라왔기에 폐하께 전해드리고자 하여…….”

  “여기까지 왔다는 겐가.”

  “그렇사옵니다.”

  국무상서가 고개를 숙였다.


  “지구교에 대한 것인가?”

  “군부가 지구를 제압했다고 하옵니다.”

  “그런가. ……신도들은 강고하게 저항했겠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사옵니다.”

  국무상서는 시선을 내리고 있다. 말하지 않는 건가……. 오딘에서도 심한 피해가 나왔다. 근거지인 지구라면 더욱 더 그렇겠지.


  “지구교는 이제 끝인가? 반란군 영토에서도 탄압받고 있다 들었네만.”

  “아마도 페잔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하고.”

  “그런가. 거기는 지금 반란군의 지배하에 있었지.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저희들이 노리는 바이옵니다.”

  국무상서가 희미하게 웃었다. 노리는 바라. 다시 말해 페잔이 혼란에 빠지는 걸 바라고 있다는 건가.


  “출병이 있는가?”

  “그렇사옵니다. 아마도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대규모 출병이 있을까 하고.”

  “흠. 발렌슈타인이 그렇게 말했는가.”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도 입을 모았사옵니다.”

  군부의 총의인가. 우주통일. 드디어 그 날이 다가오는가…….


  “그럼 이 장미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

  “제도를 페잔으로 옮길 테지?”

  “황송하옵니다만, 그렇게 되리라 사료되옵니다.”

  국무상서가 또 고개를 숙였다.


  “좋은 의안이로세. 짐에게 불만은 없어. 뜻대로 하도록 하게.”

  “황송하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장미정원은 아깝기 그지없사옵니다.”

  국무상서가 장미정원을 둘러봤다.

  “신경 쓰지 말게. 장미 따위 어디에서라도 키울 수 있으니.”

  원래부터 좋아서 시작한 장미정원이 아니었다. 달리 할 일이 없기에 했을 뿐. 미련 따위 없다. 눈앞에서 활짝 핀 장미를 보면서 생각했다. 미련 따위 없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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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6월 15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냐?”

  “잠깐 기다려줘. 레벨로. 이제 곧 아이란즈가 온다. 그가 자네들을 불러달라고 한 거야.”

  트류니히트의 말에 호안과 서로를 돌아봤다. 아이란즈의 용건인가. 그렇다면 지구교일까. 그러고 보니 뭔가를 발견했다고 했지만, 무슨 진전이 있었다는 건가…….


  “길어질 것 같나?”

  “그럴지도 몰라.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지.”

  “그렇다는군. 호안.”

  “과연. 기다려 주도록 할까.”

  셋이서 소파에 앉아 아이란즈 국방위원장을 기다린다.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두서 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이야기다.


  10분 정도 지나서 아이란즈가 트류니히트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달려온 것 같다. 조금 숨이 거칠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관없네. 앉게나. 무슨 일인가.”

  트류니히트의 말에

  “조금 성가신 일이 판명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라고 답하면서 아이란즈가 앉았다. 성가신 일? 트류니히트, 호안을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구교단의 압수물에서 명부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명부? 지구교 신도를 기록한 것인가? 그렇다면 대수확이로군.”

  지구교단이 얼마나 많은 신도를 품고 있는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걸 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란즈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레벨로 위원장.”

  “아니다? 신도의 명부가 아닌 건가? 그럼 무슨 명부인가? 트류니히트도 호안도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기운이 빠진 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아까 전까지 보이던 엄격함이 사라졌다.


  “확실히 체포하거나 사망한 신도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엔 신도 일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구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그리고 행방불명된 사람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아니, 어느 쪽인가 하면 지구교와 관계없는 사람의 이름이 더 많았습니다…….”

  “틀림없는가? 그건.”

  트류니히트가 질문하자 아이란즈가 끄덕였다.


  “틀림없습니다. 의장. 헌병대가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지구교와의 관계도 없을뿐더러 사이옥신 마약 반응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지구교와는 무관계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알 수 없군. 무슨 명부인가? 그건. 어쩌다가 거기에 있을 뿐인, 의미 없는 명부인 건가?”

  호안의 발언에 아이란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조사를 진행하며 그 명부에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공통점인가. 아이란즈는 그 공통점을 문제시하고 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 명부에 적혀 있는 전원이 어느 기업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혹은 소속되어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호안 위원장.”

  트류니히트, 호안을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또다시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번엔 트류니히트가 호안을 대신하여 아이란즈에게 물었다.


  “어느 기업 그룹이라고 했지? 대체 어디인가?”

  “그것이, 플레어스타 그룹입니다.”

  플레어스타 그룹? 동맹에서도 꽤나 큰 기업 그룹이다. 병기, 가전, 금융, 화학, 물류, 갖가지 분야에 진출한 기업이다. 트류니히트가 날 보고 있다. 기분은 알겠다. 전의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트류니히트의 질문에 아이란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명부에 이름이 적힌 사람입니다만, 대부분이 독신자, 혹은 요즘 몇 년 사이에 결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잠시 동안 침묵이 떨어졌다. 아이란즈가 우리들을 순서대로 돌아봤다.

  “저는 그 명부가 신자의 명부가 아니라 신자 후보자 일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호안인가, 트류니히트인가…….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하면 당연합니다만 그 인격, 행동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걸 알리지 않기 위해선…….”

  “가족과의 접점이 없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 최선인가…….”

  “네.”

  트류니히트가 나와 호안을 봤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이란즈 위원장의 생각을?”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내가 답하자 호안이 끄덕였다. 그걸 보고 트류니히트도 끄덕였다. 독신자를 중심으로 신자를 늘렸는가. 사실이라면 교활한 수법을 생각해냈다.


  “진실을 알고 싶군. 진실을……. 혹시 그것이 정말 후보자 리스트라면 누가 그걸 준비했는지 의문이 남아. 일개 기업이라면 모를까 그룹이라면…….”

  “그룹 내부에서도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되는군. 개인정보를 조사뿐만이 아니라 선별까지 한 거다.”

  트류니히트와 내 대화에 다른 두 사람도 끄덕였다.


  “전에 말했던 협력자의 말예일까? 레벨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가능성은 있겠지. 페잔을 만든 인간의 말예가 지구교에 협력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아.”

  트류니히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이란즈에게 시선을 향했다.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명부 작성자를 쫓아주게. 반드시 찾아야해.”

  “알겠습니다. 만일을 위해 사망한 교단신도들 중에 다른 기업 그룹과 연결점이 있는 자가 없는가, 헌병대가 지금 확인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 하나라고 확정할 순 없지.”

  과연. 가능성은 있겠지. 후보자 명부는 하나만 있다곤 할 수 없다. 다른 명부는 폐기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행방불명된 자들입니다만, 혹은 이미 신도가 되어 지하로 숨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방치하면 테러 활동을 행할 위험성도 있겠죠. 헌병대가 행방을 쫓고 있습니다.”

  “음.”

  이쪽도 가능성은 있다. 본거지는 쳤지만, 아직 안심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희미하지만 지구와 페잔의 연결점이 보인 것 같다…….


...


제국력 489년 6월 16일. 오딘. 울리히 케슬러.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풍성하게 담배 연기가 코를 찔렀다. 가게 안은 뿌연 빛과 연기로 결코 시계가 좋다곤 할 수 없다. 당구를 치고 있는 손님은 딱히 많지 않다. 테이블도 몇 자리 비어 있다. 하지만 가게 안에 담배 연기는 조금도 약하지 않다. 군복에 냄새가 배이겠지. 여기에 온 다음날은 반드시 군복을 갈아입게 된다.


  마스터에게 시선을 향하자 상대방도 슬쩍 이쪽에 시선을 향했다. 희미하게 눈인사하며 끄덕인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먼저 온 것 같다. 이대로 천천히 안으로 향한다. 막다른 문을 열자 온화한 곡선을 그리는 나선계단이 나타난다. 1층은 풀 바지만, 2층은 싱글스 바다. 그리고 지하 1층이 창고고 그 아래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걸로 되어 있다.


  문을 열고 나선계단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풀 바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2층 싱글스 바로 향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계단을 오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1층의 창고, 도아에는 전자열쇠가 붙어있다. 이 전자열쇠의 암호번호를 알고 있는 건 몇몇 사람뿐이다. 어느 조직에 소속한 자, 황제의 검은 왼손이라 불리는 자들…….


  전자열쇠의 암호번호는 한 달에 한 번, 폐하의 지시를 받아 내가 변경한다. 변경 수속을 행하는 건 풀 바의 마스터. 당연하지만 그도 우리 조직의 구성원……. 아니, 2층 싱글스 바의 책임자도 조직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이 건물 자체, 황제의 검은 왼손이 가진 시설 중 하나다.


  암호번호를 누르고 열쇠를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똑바로 걸어 막다른 문을 열자 또 계단이 나온다. 단 이번엔 나선계단이 아니다. 아래로 내려갈 뿐인 일방통행 계단이다. 그 계단을 천천히 내려간다. 이 건물에는 없을 터인 지하 2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하 2층. 막다른 골목이다. 그 아래엔 아무것도 없다. 철제의 중후한 문이 있지만, 자물쇠는 무엇 하나 붙어 있지 않다. 만일 부외자가 여기까지 와도 그 허술함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 방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방 안에선 밖에 사람이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지하 1층의 전자열쇠를 해제한 시점에서 지하 2층에도 신호가 가기로 되어 있다. 아니, 그 전에 풀 바의 마스터는 내가 아래로 향했다는 것을 알렸을 것이다.


  두껍고 튼튼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방 안에는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키슬링이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했나?”

  “아뇨. 저도 5분 정도 전에 온 참입니다. 커피가 되기까지 앞으로 조금 더 걸리겠죠. 겨울이었다면 참기 힘든 참입니다.”

  “그렇겠군.”


  테이블 위의 커피 메이커에서 희미하게 커피 향기가 풍긴다. 제국제의 물건이 아니다. 페잔제의 물건이다. 일상품에선 제국은 페잔, 자유행성동맹에 미치지 못한다. 한심한 이야기다.


  키슬링의 정면에 앉았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키슬링이 입을 열었다.

  “성가신 놈들입니다.”

  “…….”

  “바렌 제독이 기함 샐러맨더에서 습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동승하고 있던 광역조사국 인원이 제압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어. 확실히 성가신 놈들이군. 어느 사이에 함대에 침투했는지…….”

  하물며 침투한 곳이 기함, 샐러맨더다. 함대사령관들은 다들 지구교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품고 있다.


  “제압하던 와중, 광역조사국 인원이 한 명 사망했습니다.”

  “사망?”

  놀라며 내가 반문하자 키슬링이 끄덕였다.

  “나이프로 다리를 베였다고 합니다. 독이 묻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눈치 챈 시점에선 이미 늦었다든가. 페르너 준장에게서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듣지 못했군. 우주함대에선 조금도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네만…….”

  키슬링이 고개를 저었다.

  “광역조사국이 그 사실을 숨기고 보고했습니다.”

  “숨겼다?”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너가 숨긴 것이 아니다. 광역조사국이 숨겼다. 어떻게 된 일인가?


  “바렌 제독 암살은 미수로 저지한 이상, 지구 토벌에 관해선 문제없다. 굳이 보고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된 일입니다.”

  “말도 안 돼. 무슨 생각이냐. 광역조사국은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 비밀을 만들 생각인가!”

  키슬링이 무표정하게 날 보고 있다. 경은 그걸 그냥 보고 있었다는 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키슬링.


  “지구교 건에선 이미 광역조사국, 헌병대에서 꽤 많은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 이상 사령장관에게 부담을 걸고 싶지 않다고…….”

  한숨이 나왔다.

  “끝까지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경들은. 확실히 이 문제의 책임자는 사령장관이다. 예상 이상으로 사상자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말할 수 없었다.


  “지구에 대한 잠입조사에 반대하는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안스바흐, 페르너 두 준장이 억지로 설득하는 식으로 행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령장관의 염려가 맞았죠. 조사원은 지구교의 앞잡이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사태가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그걸로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그 건으로 광역조사국이 사령장관에게서 책망을 듣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렌 제독의 호위는 사령장관에게서 받은 의뢰였습니다. 그 건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얼마나 괴로워하실지…….”

  “……어쩔 수 없다. 정점에 선다는 건 그런 괴로움을 동반하는 일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허락받지 못한다. 그 괴로움은 타인과 나누는 것도 할 수 없다. 정점에 사는 자의 괴로움이라는 건 그런 거다. 그렇기에 정점에 서는 자는 주위 사람에게 경외를 받는 것이다.


  “그들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

  “그러니 적어도 어떠한 전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겁니다. 실태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령장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싶다. 그것뿐입니다.”

  그러니 경은 보고도 넘어갔다는 건가…….


  “보고는 하는 거겠지.”

  “네.”

  “전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반드시.”

  “……알겠다. 나도 기다리지.”

  키슬링이 고개를 숙였다. 곤란한 녀석들이다.


  “키슬링 소장. 나도 경에게 전해야 할 일이 있다.”

  “예.”

  “며칠 전 폐하께서 말씀이 있으셨다. 이번 지구교 사건, 폐하께선 심히 마음이 아프시다고 한다.”

  “…….”


  “폐하께서 하명하신 일이다. 들어라.”

  “예. 삼가 받들겠습니다.”

  키슬링이 자세를 바로했다.

  “지구교, 페잔. 어느 쪽이든 골덴바움 왕조가 만든 오점이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에게 협력하여 이것을 반드시 없애라. 결코 그 존속을 허락해선 안 된다.”

  “예.”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지시를 내린다. 발렌슈타인 사령장관을 지키라는 말씀이 있었다. 알겠나?”

  “예. 반드시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음. 광역조사국과도 연계하여 반드시 그 임무를 다해라.”

  “예.”


  결국 커피를 마시는 일 없이 이야기는 끝났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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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798년 6월 11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TV전화 화면이 최고평의회 빌딩의 기자회견실을 비추고 있다. 많은 수의 기자, TV국이 모여 화면 너머에서도 웅성거림과 열기가 이 트류니히트의 집무실까지 전해져오는 것 같다.

  “슬슬 시간인가? 레벨로.”

  “슬슬이지. 호안. 저녁 뉴스에는 맞추겠지.”


  우리들의 대화가 끝남과 동시에 트류니히트와 아이란즈 국방위원장이 기자회견실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플래시가 찰칵찰칵하고 터졌다. 두 사람이 눈부신 척도 하지 않고 단상 위에 오른다. 플래시가 멈췄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 트류니히트가 말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보기 좋은 웃는 얼굴이 아니다. 표정에 침통함을 띄고 있다. 이 연기자 놈.


  “오늘 동맹정부는 지구교단 하이네센 지부에 대하여 강제조사를 강행하였습니다.”

  그 순간 또 플래시가 터졌다. 눈부신 빛이 화면을 둘러싼다. 트류니히트가 손을 들자 플래시가 잦아들었다.

  “지구교단에게 폭력주의적 파괴활동의 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파괴주의적 파괴활동. 많은 기자가 국내보안법을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지구교단은 조사에 대하여 총화기로서 대항하였습니다. 교단, 그리고 조사에 임한 헌병대 양쪽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상세한 건 아이란즈 국방위원장이 설명하겠습니다.”

  트류니히트가 시선을 아이란즈에게 향하자 아이란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교단은 헌병대에 의한 조사를 거부하고 교단내부로의 출입을 방해했습니다. 헌병대는 방해를 배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만, 지구교단이 총화기로서 저항하였기에 헌병대도 여기에 응전. 제압했습니다. 헌병대가 사살한 신자는 80명을 넘었습니다. 부상한 후 사망한 신도, 자살한 신도를 포함하면 사망자는 120명을 넘고, 지금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체포된 신자는 50명을 넘었습니다. 또한 아무런 부상 없이 체포된 신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헌병대의 피해입니다만, 약 40명이 사망, 부상자는 60명을 넘었습니다.”

  기자회견실이 싸늘하게 조용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지구교도, 헌병대, 양쪽 합쳐 300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거겠지. 질문이 나온 건 조금 지나서였다.


  “트류니히트 의장. 제국에서 지구교가 탄압받았고, 동맹에서도 지구교가 탄압이라도 해도 좋을 조사를 받았습니다. 여기엔 관계가 있습니까?”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느낌의 젊은 남자가 질문했다. 어조도 꽤나 힐문조다. 정부가 하는 일은 비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제국의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라고 생각했나. 매스컴에 자주 있는 타입이다.


  “저희들이 강제조사를 강행한 것은 제국에게서 어느 자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실이 웅성거렸다.

  “그 자료에는 제국이 지구교단을 제국의 공적으로서 인정하는 것과 그 이유, 더욱이 조사의 상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제국은 지구교단이 제국만이 아니라 동맹에게 있어서도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료를 보낸 것이 아닌가하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꽤나 소란스럽군.”

  “당연하겠지. 호안. 제국도 동맹도 지구교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뭐, 그렇군.”


  “그건 대체 어떤 내용의 자료입니까?”

  이번엔 다른 자다. 흥분하여 물어 뜯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제국정부가 지구교단에 대하여 강제조사를 강행한 것은 지구교단이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에리히 발렌슈타인 원수의 암살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탄성이 일었다. 지구교단이 제국 굴지의 실력자를 암살하려고 했다. 빅뉴스겠지.


  “강행조사 결과, 제국에서도 지구교단은 총화기로서 저항하여 교단관계자 약 150명이 사망, 정부측에서도 3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곳저곳에서 탄식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동맹에서도 제국에서도 이상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망설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제압후 압수한 자료에서 제국군은 지구교단이 발렌슈타인 원수 암살을 계획했다는 것, 더더욱이 과거 두 차례 있었던 암살미수사건, 한 번은 내란 발발시, 또 한 번은 내란 종결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만, 그 두 사건에도 지구교단이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얻었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실이 웅성거렸다. 동맹에서도 그 내란 발발시의 암살미수사건은 크게 보도되었다. 출병 소란의 원인이기도 하다.


  “발렌슈타인 원수는 군부의 중진일 뿐만이 아니라 현재 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개혁의 진두지휘자이기도 합니다. 제국에선 지구교단은 제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원수를 암살하려 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분석은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뭘 위해서 혼란을 일으키려는 겁니까. 그 목적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젊은 여성기자의 목소리다.

  “거기에 대해선 현재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뭔가 알게 되면 이쪽에 연락이 있겠지요.”

  지구토벌로 페잔과의 관계가 보이게 되면……. 하지만 그땐 천지가 뒤집힐 정도의 난리가 일어나겠지. 오늘 회견 따위 소꿉장난으로 보일 것이다.


  조용하게 침묵하는 와중, 최초 질문한 안경이 또 트류니히트에게 질문했다.

  “방금 전 트류니히트 의장은 지구교단에게 폭력주의적 파괴활동의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건 발렌슈타인 원수의 암살을 말하는 겁니까?”

  의기만만하군. 제국 원수의 생사 따위 동맹에게 있어서 폭력주의적 파괴활동과 관계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트류니히트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제국이 보낸 자료에는 그 외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트류니히트의 말에 기자회견실이 웅성거렸다. 변함없이 연출이 능숙하군. 관객을 애태우는 기술을 잘 알고 있다. 호안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도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짓고 있다.


  “지구교단지부에서 사이옥신 마약이 발견되고 신도들에게서도 사이옥신 마약의 섭취가 확인되었다. 신도들이 광신적이라 할 수 있는 저항을 보인 것은 사이옥신 마약 투여에 의한 세뇌가 원인이라고.”

  기자회견실에 커다란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기자들이 흥분하여 입을 모아 뭔가 말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어”려나.


  트류니히트가 또 손을 올려 소란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기자회견실을 천천히 둘러본다.

  “동맹정부는 동맹시민의 생명의 안전과 그 기본적 인권의 존중을 지켜야만 합니다. 사이옥신 마약의 위험성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구교단이 그것을 신도에게 투여, 그것을 이용하여 동맹시민을 세뇌하고 있다는 일은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강제조사는 동맹시민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처치였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실이 싸늘하게 조용해졌다.


  “그래서 사이옥신 마약은…….”

  안경이 물고 늘어진다. 트류니히트를 대신하여 아이란즈가 답했다.

  “교단지부에서는 사이옥신 마약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도들에게서 사이옥신 마약의 섭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교단이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하여 신자들을 세뇌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회견실의 기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끄덕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녀석들도 지구교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 것 같다.

  “여기서 동맹정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지구교단은 종교단체가 아니며, 동맹시민의 안전과 기본적 인권의 존중을 짓밟는 폭력주의적 파괴활동을 행하고 있는 반사회적 무장집단이라고. 그러므로 동맹정부는 지구교단에 대하여 국내안보법을 적용하여 교단 활동의 정지, 즉시 해산을 명령합니다.”

  트류니히트의 발언이 끝남과 동시에 플래시가 터지며 화면이 눈부실 정도의 빛에 싸였다.


  트류니히트가 돌아온 것은 회견이 끝나고 15분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늦지 않았나. 어디 붙잡혔나?”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가 쓴웃음을 띠웠다.

  “끈질긴 것이 하나 있어서. 곤란한 참이야.”

  안경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입에는 담지 않았다.


  “꽤 좋은 회견이었다. 시민을 지키는 의장의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이 잘 표현되었어. 동맹시민도 감동했겠지.”

  “동감이군. 이걸로 또 지지율이 올라가겠어.”

  “고마워.”

  호안과 내가 야유하자 점점 트류니히트의 쓴웃음이 커졌다. 뭐 지지율이 올라가면 정국 운영이 쉬워지는 건 확실하다. 나쁜 일은 아니다.


  “기자들도 꽤 쇼크를 받은 것 같군.”

  “그래. 나는 그들 앞에 있었으니까 말이야. 반응이 잘 보였지. 그들 얼굴에는 지구교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어. 지금까지는 묘한 교단이라고는 생각했겠지만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속았다는 분노도 있겠지.”


  “나 스스로 놈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대로 우국기사단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오한이 들어.”

  트류니히트의 얼굴에는 틀림없는 혐오와 증오의 빛이 있었다. 호안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단 표정을 짓고 있다. 집무실에 무겁고 괴로운 공기가 떨어졌다. 조금 사이를 두고 호안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했다.


  “……아이란즈는 어떻게 됐나? 꽤나 늦는데.”

  “아니, 그는 국방위원회로 돌아갔어. 옥상에서 헬기로 말이지.”

  “…….”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점이 있는 것 같아. 교단에서 압수물 중에 수상한 것이 있었다고 하더군. 확인해 봤지만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말이야…….”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묘한 이야기다. 대체 뭘 발견한 것인지……. 트류니히트가 곤혹스럽단 표정을 띠고 있다.


...


제국군 489년 6월 13일. 오딘, 광역조사국 제6과. 안톤 페르너.


  “반란군에서도 지구교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나.”

  “그런가 보군. 저쪽에서도 꽤나 격하게 저항한 것 같아. 100명 이상의 신도가 죽었다고. 어처구니 없는 놈들이다.”

  어처구니 없는 놈들. 광역조사국, 헌병대에서도 약 30명이 희생됐다. 부상자는 그 두 배 이상이다. 강제조사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론 시가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로 동맹도 동맹시민도 지구교가 위험하다고 인식했다. 동맹정부는 지구교에 대하여 활동 정지와 교단 해산을 명령했어.”

  “이걸로 지구교는 제국에서도 동맹에서도 비합법 조직이 된 거로군.”

  화면 너머로 에리히가 끄덕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아무래도 루빈스키 한방 먹은 것 같아.”

  “루빈스키? 무슨 말이냐?”

  이번엔 소리 높여 에리히가 웃었다.

  “제국, 동맹 양쪽에서 지구교단을 탄압하고 있어. 그리고 본거지인 지구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지. 그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얌전히 해산하리라곤 생각하기 힘들군. 지하로 숨어 반격의 기회를 노리겠지.”

  에리히가 끄덕였다.

  “그렇겠지. 일단 지구를 대신할 새로운 거점이 필요할 거야. 제국도 동맹도 지구교단을 적이라고 인식했어. 근거지를 준비하기엔 부적당하겠지. 그렇다면…….”

  “페잔인가…….”

  에리히가 또 끄덕였다.


  “과연. 페잔에서 소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루빈스키에게 있어서 절호의 도구로군.”

  에리히가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어딘지 무서운 웃음이다. 언제부턴가 권력자의 웃음이 어울리게 되었다…….


  “루빈스키는 제국이 지구교를 의심하고 있다고 통찰했다. 페잔의 배후에 지구교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통찰했다. 우리들이 그 일로 동맹과 협력하고 있다는 것도 상정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동맹에선 주전파의 쿠데타가 실패했다.”

  “……동맹을 지구교단이 조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겠군.”

  내 말에 에리히가 끄덕였다.


  “언젠간 지구교단은 탄압받아. 탄압받은 지구교단이 페잔으로 도망쳐 올 것이라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렇게 되면 페잔은 불온분자의 소굴이 되겠지. 제국도 동맹도 그걸 허락할 정도로 무르지 않아. 루빈스키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겠지. 경우에 따라선 지구교단이 자신을 산제물로 삼아 살아남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과연. 루빈스키에게 있어서 지구교단이 페잔으로 오는 건 백해무익인가…….”

  “그 말대로야. 자신 혼자라면 도망쳐 다닐 수 있겠지만 지구교가 왔다간 공멸의 길밖에 없어. 그렇게 생각한 거지. 그래서 배반했다.”


  “……루빈스키에게 있어서 지구교단은 방해물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구교단은 자신들이야말로 루빈스키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에리히의 말에는 비아냥이 어려있다. 방만과 바보는 동의어인가. 일찍이 문벌귀족이 그랬다. 방약무인하기에 현실이 보이지 않았다.


  “루빈스키는 제국이 페잔으로 침공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 명분을 구하고 있다는 것도 간파했으리라 생각해. 배반 시에 그걸 요구할 거라고 말이야.”

  “지구교단이 페잔에 근거지를 두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자고 생각한 건가…….”


  “그 말대로야. 지구교단에는 다음이 없어. 조금 궁지에 몰리면, 아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게 폭발하겠지. 그 뒤엔 지국군이 그들을 처리한다. 루빈스키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방해물을 제거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페잔 침공 명분을 제국에게 진상했다. 교단은 멸망하고 루빈스키는 살아남아…….”


  이야기가 끝났다. 에리히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에리히, 루빈스키에 대한 처리…….”

  “서두를 필요는 없어. 이번엔 한방 먹었지만 이쪽도 불이익을 당한 건 아니야. 지구교단도 쳐부쉈고 페잔 침공의 명분도 이제 곧 손에 들어온다.”


  “그럼 나머진…….”

  에리히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조심하고 있을 거야. 루빈스키는. 소란 와중, 그 소란이 끝난 뒤가 가장 위험하니까 말이야. 그를 처리하는 건 그 뒤가 좋겠지. 제국군이 하이네센으로 침공했을 쯤 말이야.”


  “모두의 시선은 하이네센으로 향하고 있겠군.”

  “지구교단의 잔당인가, 혹은 그의 배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페잔인인가. 그를 원망할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확실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루빈스키의 처리다. 한 번 귄터와 말해볼 필요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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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6월 7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에리히 발렌슈타인.


  “지구교단 지부에서 사이옥신 마약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박한 자들에게서도 사이옥신 마약이 검출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신자들이 그렇게까지 강고하게 저항한 건 세뇌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답하자 안스바흐가 끄덕였다. 오늘의 그는 지구교의 조사상황에 대해서 보고하러 왔지만 표정이 어둡다. 이 응접실은 언제나 어두운 이야기만 오간다. 손님을 접대하기는커녕 사람을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이야기만 오가고 있다. 가끔은 밝은 이야기로 웃고 싶다.


  “체포한 신자들입니다만, 사회복귀에는 시간이 걸리겠죠. 약물 의존에서 갱생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특히 사이옥신 마약은 상습성이 강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후생시설에 들어갈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겠군요.”


  갱생할 수 있다면 좋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불가능한 사람이 더 많겠지. 갱생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제359유격부대, 통칭 카이저링 함대에 있을 때에 알았다. 사이옥신 마약을 손에 넣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약물에 의존할 가능성도 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다. 안스바흐도 안타깝단 표정을 짓고 있다…….


  “알프레트 벤델의 주거지를 수색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나왔습니까?”

  안스바흐가 고개를 저었다. 예상한 대로다. 결국 버림패의 하나에 불과했다는 거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만, 최근 사람이 변했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합니다.”

  “…….”


  이것도 안타까운 이야기다. 사람이 변한 게 아니다. 아들이 약물중독에 제국의 적이라 인정된 조직 중 한 명이라는 걸 안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사태가 움직인 건 사실이지만 잠입조사를 해선 안 됐다. 안스바흐와 페르너 앞에선 말할 수 없지만 잠입조사를 하도록 한 건 내 잘못이겠지. 그렇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잠입조사원은 아직 두 사람 있지요.”

  “예.”

  “아마도 그들도 사이옥신 마약을 투여 받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보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적어도 그들만이라도 어떻게든 구하고 싶지만……. 어렵겠지. 안스바흐도 괴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면목 없습니다. 각하의 염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관과 페르너 준장의 인식이 가벼웠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결단한 건 저입니다. 그리고 그에 의해 사태가 움직인 것도 사실. 희생에 걸맞는 전과는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필요한 희생이었던 겁니다.”

  “…….”

  끔찍한 변명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괴로운 건 나 혼자만이 아니다. 안스바흐도 그리고 여기에 없는 페르너도 괴로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사이옥신 마약 말입니다만, 입수처가 지구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지구가 구입하고 있는 흔적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지구 그 자체가 사이옥신 마약 제조를 행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지금의 지구는 아무런 산업도 없는 별이다. 거기로 향하는 것은 순례자와 호사가, 관광객들뿐이겠지. 사이옥신 마약 제조 따위 간단할 것이 틀림없다.


  “유감입니다만, 압수한 자료 안에 지구와 페잔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없었습니다.”

  “…….”

  “역시 고드윈 대주교가 자살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만.”


  “다른 사람에게선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까?”

  “유감입니다만…….”

  안스바흐의 표정이 고통스럽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실제로 원작에서도 정보는 고드윈에게서의 자백이었다.


  “별 수 없지요. 거기에 대해선 지구에서 입수할 것을 기대하도록 합시다. 바렌 제독은 내일 지구를 향해 출발합니다만 그쪽에서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안스바흐가 끄덕였다.

  “지구로 향할 동행자는 이미 선출해 놨습니다. 지구에 도착하여 정보수집을 할 사람이 20명. 그리고 함대사령부의 호위로 10명. 총 30명이 동행합니다.”

  “…….”


  괜찮을까. 뭐, 괜찮겠지.

  “반란군, 아니 자유행성동맹입니다만. 그쪽에 보낼 자료에 대해선 페르너 준장이 지금 정리하고 있습니다. 내일엔 각하께 제출할 수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동맹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마도 제국보다도 신앙의 자유에 대해서 시끄러우니까. 혹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머진 바렌들이 무엇을 발견할지로군…….


  “각하. 헌병대, 광역조사국은 협력하여 국가의 요인 경호를 행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엔 본인의 자각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충분히 주의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주의하지요.”

  안스바흐는 날 지긋이 보고 끄덕였다. 의외로군. 나는 생각보다 사려가 부족한 애송이로 보이는 것 같다. 일단은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자각이라는 말의 의미 정도는 알고 있어.


  뭔가 알아내면 또 보고하러 오겠다 말하고 안스바흐가 돌아가자 그와 교대하듯 바렌이 찾아왔다. 내일은 출격이니까. 인사라도 하러 온 거겠지.

  “각하. 내일 출격하기에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수고하십니다. 급한 일이라 고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예.”


  예상대로인 건 좋지만,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우리들은 순찰부대부터 알아온 사이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말이지. 바렌은 그 당시의 이야기를 그다지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뭐, 함선 조작조차 전혀 몰랐고 바렌에게 업혀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자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혹은 그 사건 때문인가. 궁중이 얽혀 있으니까 입을 다물고 있는 건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고지식하다니까…….


  “지구에선 지구교도의 괴멸은 당연하지만, 정보 수집도 중요한 임무가 됩니다. 광역조사국과 협력하여 임무를 수행하세요.”

  “예.”

  “그리고 지구교는 군사력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테러에 의해 이쪽을 혼란하게 만들려고 할 겁니다. 사령부에는 일단 광역조사국의 호위를 붙입니다만 충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신경 쓰세요.”

  응. 이걸로 됐나. 나머진 본인의 운 나름이다.


  “배려 감사합니다. 사령장관 각하께서도 신변에는 충분히 주의하십시오.”

  “그렇군요. 신경 쓰겠습니다.”

  이상하군. 바렌도 나를 지긋이 보고 있다. 난 그렇게 주의력 산만하게 보이는 걸까.


...


제국력 489년 6월 7일. 오딘. 우주함대 사령부. 토마 폰 슈톡하우젠.


  “묘한 것이 나왔군요. 부사령장관.”

  정말이다. 지구란 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곳인지……. 경은 지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되물었다.


  “인류 발단의 땅. 대충 그것 정도군요. 최근 묘한 종교가 유행하고 있다곤 생각했습니다만…….”

  “나도 비슷한 정도로군.”

  나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지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도 머리를 갸웃하고 있다. 부사령장관실에서 노인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묘한 것이 튀어나왔다.


  “이 소란, 언제쯤까지 계속 되리라 생각합니까?”

  “글쎄. 두 달이나 세 달, 대충 그렇지 않을까. 지구토벌도 바렌 제독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길게 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무슨 일 있는가? 슈톡하우젠 제독.”


  “실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세 말입니다만…….”

  “?”

  “그것에 워프와 통상항행용 엔진을 붙인다고 합니다. 샤프트 기술대장이 행한다고 합니다만, 소관이 그 운용책임자로 명령 받았습니다. 이제르론 요새 공략에 쓴다고 합니다만…….”

  내 말에 부사령장관이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 가는 데가 있는 것 같다.


  “과연. 그것인가.”

  “알고 계십니까?”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끄덕였다.

  “이전부터 그 이야기는 있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이제르론 회랑으로 가져간다. 혹은 페잔 회랑으로 가져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군사작전이 아니라 반란군, 페잔에 대한 모략의 일환으로서였다. 그러니 우리들도 잘 알지는 못해. 이야기만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행할 줄이야…….”

  과연. 모략의 일환인가…….


  “사령장관에게서 들었을 때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만, 이제르론 회랑 내부에 근거지를 만든다는 이야기일까요?”

  “그렇지도 모르지. 장기전이 가능하게 되면 반란군에 대한 압력은 결코 적지 않아.”

  “과연.”

  요새에 있는 손상을 입은 전함의 수리능력, 부상자의 수용능력, 보급, 통신능력인가……. 확실히 과소평가는 할 수 없다. 끄덕이고 있자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희미하게 미소를 띠웠다.


  “혹은 요새주포를 이용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한다는 겁니까.”

  “음. 요새주포로 손해를 입히고 함대에 의하여 공격을 강행한다. 공략의 가능성은 통상공격보다도 훨씬 높겠지. 반란군의 함대도 출격하기 힘들 것이야. 간단히 출격하면 요새주포의 표적이 되니까.”

  “그렇겠군요.”


  그럴지도 모른다. 근거지로서 쓰는 것보다도 요새공략병기로서 요새를 쓴다. 요새에는 요새를 가지고 싸운다는 거다. 부사령장관이 말하는 대로 함대를 가지고 싸우는 것보다 훨씬 공략 가능성은 높겠지. 나도 이제르론 요새사령관을 역임했을 때 요새주포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감탄보다도 탄식을 뱉은 적이 있다.


  “장착은 언제쯤 끝나는가?”

  “작업에는 네 달 걸린다고 합니다. 그 뒤 소관의 운용시험과 미세 조정으로 약 두 달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반년인가……. 반년 뒤에는 원정이 가능하게 된다는 건가.”

  “그렇게 됩니다.”

  메르카츠 부사령장관이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긴다.


  “과연. 시간에 여유가 없군.”

  “네. 반년 후에 원정이라면 지구교에 대한 대응에 지연할 수 없습니다.”

  원정 준비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 달에서 세 달이 필요하다. 지구교에 대한 대응에 머뭇거리고 있으면 원정 준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요새는 준비하는 것일 뿐인가? 원정 그 자체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걸까?


  “원정은 좀 더 나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시기에 지구교를 치는 것은 원정 전의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원정 시기는 올해 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새해가 밝자마자 행해질 가능성은 있겠지.”

  “과연.”


  원정에 나서면 장기간에 걸쳐 군대는 국내에 부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국내의 군사력, 경찰력이 저하하는 것이다. 원정 전에 불안요소를 제거해 둔다는 부사령장관의 생각에는 충분히 근거가 있겠지…….


...


우주력 798년 6월 10일. 하이네센, 최고평의회 빌딩. 죠안 레벨로.


  “성가신 일이 됐군.”

  트류니히트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던졌다.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왜 그래? 무슨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나?”

  “오딘의 지구교도는 사이옥신 마약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이옥신 마약?”


  나와 호안의 목소리가 겹쳐서 저도 모르게 서로를 돌아봤다. 호안은 믿을 수 없단 표정이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착각 아닌가? 그 마약은 위험하다고 굳이 말하는 것조차 어리석을 정도로 위험하겠지.”

  “신도들은 그걸 써서 세뇌 당한 상태였다고 하는군. 제국은 지구교가 동맹에서도 같은 짓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평의회의장 집무실에 침묵이 떨어졌다. 트류니히트, 호안, 그리고 나……. 다들 침묵하여 서로를 돌아보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거기에 뭐라고 써 있어?”

  트류니히트가 내던진 서류를 호안이 턱으로 가리켰다. 제국의 렘샤이트 백작이 보낸 메일에 첨부된 문서를 인쇄한 것이다.


  “오딘의 지구교도지부를 제국이 강제조사했다고 하는군.”

  “강제조사? 그럼 보도는 진실인 건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겠지.”

  트류니히트가 호안의 질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끄덕였다. 어제 매스컴 일부가 제국이 지구교단을 탄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많은 신도가 이유도 없이 죽었다고 보도했지만…….


  “지구교도가 발렌슈타인 원수 암살을 획책한 용의가 있었다고 한다. 강제조사를 행했지만 지구교는 꽤 격하게 저항했다고 하는군. 교단측의 사망자는 150명을 넘었다고 써있어.”

  “150명? 그게 조사인가? 전쟁을 잘못 말한 거겠지.”

  호안의 놀란 목소리에 트류니히트가 끄덕였다.

  “지구교도는 총화기로 저항했다고 한다. 시가전에 가까웠을지도 몰라. 덧붙여 포로는 60명을 넘고 있어.”


  호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총화기로 저항? 마치 군대로군. 포로보다도 사망자가 더 많다는 건…….”

  “제국측에도 30명 정도가 죽었다. 용인하기 힘든 사태야.”

  용인하기 힘든 사태. 그 말대로다. 지구교도가 시가전을 행한다? 사망자가 150명?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교단지부를 제압한 후, 압수한 자료 중에 지구교도가 발렌슈타인 원수 암살미수사건에 관여한 증거가 있었다고 한다.”

  뭘 위해서 발렌슈타인 원수를 암살하려 했는지 물을 필요도 없겠지. 제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다.


  “페잔과의 관계는? 제국과 동맹을 공멸하게 만들려고 했다는 증거는 찾은 건가?”

  내 질문에 트류니히트는 고개를 저었다.

  “유감스럽지만 없었다고 한다.”

  “그런가…….”


  호안에게 시선을 향했지만 그도 고개를 젓고 있다. 사태는 진전되었지만 결코 좋은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진 않다. 중요한 부분을 알 수 없다.

  “제국은 지구교단을 제국의 공적으로 인정했다. 지구토벌을 위해 함대를 파견하기로 했다는군.”

  “제국은 진심으로 지구교를 뭉갤 작정인가.”

  “그 말대로야. 호안.”


  잠시 동안 집무실에 침묵이 돌았다.

  “트류니히트. 어제부터 매스컴 일각에선 제국이 지구교단을 탄압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어. 동맹정부의 견해를 듣고 싶다는 질문도 나오고 있지. 지금 현재 조사중이므로 답하기 어렵다고 대답해뒀지만……. 어떻게 할 거냐?”


  트류니히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검지로 톡톡 책상을 때리고 있다. 신앙의 자유가 얽혀 있기에 성가신 문제다. 열 번 정도 두들긴 뒤 입을 열었다.

  “이쪽도 조사에 들어가지.”

  “괜찮은 건가?”라고 묻자 트류니히트는 말없이 끄덕였다. 트류니히트도 진심이 됐다는 건가…….


  “그러는 편이 좋겠지. 발렌슈타인 원수 암살만이라면 제국과 지구교의 문제다. 하지만 사이옥신 마약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 보고 넘어갈 순 없어.”

  호안의 발언에 트류니히트가 우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있지만 이대로 가면 제국에서 쫓겨난 지구교도가 대거 동맹으로 들어오겠지. 놈들은 더 이상 다음이 없어. 이 나라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할지……. 강제조사로 지구교를 친다. 놈들에게 동맹으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걸 보여야…….”

  쓰디쓴 어조다. 과연. 그쪽이 더 위험한가. 방치하면 테러리스트를 끌어안게 된다.


  “조사에는 헌병대를 쓰도록 하지. 경찰로는 대응할 수 없을 위험성이 있으니까 말이야.”

  “마치 전쟁이로군. 트류니히트.”

  희미하게 야유가 들어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류니히트는 화내지 않았다.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말대로야. 레벨로. 이건 전쟁이다. 지구교를 가볍게 볼 순 없어…….

  트류니히트의 말이 맞다. 성가신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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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489년 6월 6일. 오딘, 신무우궁. 에리히 발렌슈타인.


  신무우궁 남원에 있는 한 방에 다섯 명의 사내가 모였다. 제국군 3장관과 국무상서 리히텐라데 후작, 사법상서 루게 백작이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군인과 문관으로 나눠져 각자의 의자에 앉아 있다. 표정은 다들 한결 같이 엄격하다. 새벽부터 노인들의 엄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운 빠지는군.


  “루빈스키가 경에게 접촉해왔다?”

  “예. 소관의 독단으로 루빈스키를 받아들었습니다. 사후승인이 됩니다만 허락해 주십시오.”

  “아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맘에 두지 말게.”

  리히텐라데 후작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이 끄덕였다.


  “하지만 보좌관이라니……. 그놈 참.”

  “정말 그렇습니다.”

  “루빈스키는 적당한 곳에서 처리해야 한다. 뭐, 놈도 조심하리라 생각하지만…….”

  “예. 그렇게 하도록 수배하겠습니다.”


  무서운 노인들이지. 처리를 명령하는 리히텐라데 후작도 그렇지만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세 사람. 뭐,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비난할 순 없다.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니네. 점점 자신이 평범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


  군무상서가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겨우 지구교와 페잔의 관계가 입증되었군. 발렌슈타인.”

  “예. 단, 물증은 없습니다.”

  “음.”

  군무상서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다른 세 사람도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지구교의 성가신 점이다. 좀처럼 꼬리를 잡을 수 없다.


  “9일 예정이었던 강제조사 말입니다만. 앞당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전 중에 준비를 갖추고 오후부터 행하기로…….”

  “…….”

  다들 날 봤다.

  “루빈스키가 이쪽을 눈치 챈 이상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교가 그의 배신을 눈치 챌지도 모릅니다.”


  “사령장관의 말이 맞겠죠. 지구교가 루빈스키를 어디까지 신용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혹은 의심받고 있다는 생각이 있어 이쪽으로 배신한 걸지도 모릅니다.”

  루게 백작이 내 위구심을 대변했다.


  “그리고 루빈스키는 이쪽이 알프레트 벤델을, 지구교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지구교도 알고 있다고?”

  슈타인호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능성은 제로가 아닙니다. 이쪽이 의심하고 있다곤 생각하고 있겠습니다만……. 정체를 잡고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다. 확증을 얻지 못했다. 그런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다들 끄덕였다.


  “하지만 가능하겠나? 시간이 없지만.”

  이번엔 에렌베르크가 질문했다.

  “9일로 예정되어 있던 강제조사를 앞당길 뿐입니다. 이미 소관과 루게 백작이 헌병대, 광역조사국에 가능한지 아닌지 타진했습니다.”


  루게 백작, 페르너, 안스바흐, 밤중 2시 반에 호출을 받아 깜짝 놀랐었지. 하기야 이야기 내용에 더욱 더 놀랐지만. 페르너와 안스바흐 두 사람이 헌병대와 바움러에게 확인을 하고 가능하다는 회답이 있었던 것이 세시 반이다. 불쌍하게도 유스티나는 내가 침실에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늙은이들에겐 아침 6시에 연락을 넣어 이 회의에 소집하도록 했지만, 노인들은 아침이 빠르다. 다들 일어나 있었지.


  “가능한 거로군?”

  나와 루게 백작이 리히텐라데 후작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후작이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에게 시선을 향했다. 두 사람이 끄덕였다. 그걸 보고 후작이 “좋겠지”라고 허가를 내렸다.


  “잠시 동안 부자유할지도 모릅니다만 신변 경호를 엄중하게 해주십시오.”

  “알고 있네. 하지만 그건 누구보다도 경에게 해야 할 말이겠지. 지구교는 경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루게 백작에게서도 들었어.”

  “충분히 주의하겠습니다. 슈타인호프 원수. 하지만 상대방도 궁지에 몰리면 손에 닿는 대로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주의가 필요합니다.”

  “음.”

  노인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지긋지긋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상대는 미치광이니까 말이야. 여차 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덤비겠지. 성가신 놈들이다.


  “그리고 원정 준비를 시작하려고 생각합니다. 빠르면 반년 뒤에는 페잔에서 소란이 발생합니다. 시기를 놓치지 말고 단숨에 페잔, 이제르론을 공략해야겠죠.”

  리히텐라데 후작이 모두의 얼굴을 봤다. 거기에 응하여 다들 끄덕였다. 결정됐군.

  “좋겠지. 그래서 그 외에 뭔가 있는가?”

  리히텐라데 후작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의가 끝난 뒤 루게 백작과 상의 끝에 헌병대와 광역조사국에는 루게 백작이 연락하게 됐다. 명령계통은 통일하는 편이 좋고 내가 광역조사국에 연락하면 벤델이 눈치 챌지도 모른다.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다. 루게 백작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꽤 믿음직스런 노인이다. 내 아버지와 친했다고 하지만 어떤 관계였을지……. 신경 쓰이는 점이군.


  우주함대 사령부로 돌아가자 키슬링에게서 연락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아마도 페잔의 일이겠지. 딱 좋다. 이쪽도 연락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그 자를 여기에 부를 필요가 있다. 발레리에게 부탁하고 나서 회의실로 가 키슬링에게 연락했다.


  “에리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가. 귄터. 바움러 준장에게서 이야기는 들었나?”

  “아아, 들었어. 루빈스키가 배신했다고? 예상외로군.”

  “광신자들 소굴인 지구교와 루빈스키는 어울리지 않는 거지. 결렬은 당연한 일이었다. 뭐, 이쪽으로 배신한 건 조금 예상하지 않았지만.”


  파고들 만한 틈이 있다고 본 걸까. 그렇다면 꽤나 얕보였군……. 처리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일단 받아들이고 감시 하에 둘까……. 그 뒤에 병사하게 만든다. 악성 뇌졸중이라든지. 수술 미스는 자주 있는 일이다. 드물지도 않다. 의료 미스를 호소할 사람은 없겠지.


  “그래서 페잔이지만. 어떻게 할 건가?”

  “이 건은 나도 경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루빈스키지만, 그는 아군이다. 행방을 쫓는 건 멈추지.”

  “좋은 건가? 그걸로.”

  의심쩍은 표정이다. 키슬링은 루빈스키를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처리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불쌍한 놈이로군. 루빈스키. 다들 널 죽이고 싶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페잔에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먼저다. 여기서 탐색하면 이쪽을 경계해서 움직임이는 것이 느려질 가능성이 있어. 조사하는 건 소동이 일어나고 나서면 돼.”

  “과연. 일단 소동인가. ……방심하게 만드는 일도 되겠군.”

  “그렇지. 그를 배제하는 건 그 뒤다.”

  키슬링이 끄덕이고 있다. 그리고 표정을 고쳤다.


  “이쪽에도 보고할 일이 있다. 란즈베르크 백작에 대한 거다.”

  “무슨 일 있었어?”

  “후원자를 알아냈다. 알버트 베네딕트. 페잔 상인이지만 극히 평판이 나쁜 자다.”

  알베르트 베네딕트? 원작에선 나오지 않았군. 어떤 놈이지? 이 녀석이 루빈스키와 엮여 있던 걸까?


  “라트부르프 남작에게 들었지만 내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귀족과 얽혀 꽤나 악덕 벌이를 했다고 한다. 귀족의 몰락은 꽤나 아팠겠지.”

  “그 자가 란즈베르크 백작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가?”

  악덕상인과 광대시인? 아무래도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란즈베르크 백작은 꼴 좋게 조종 당하고 있는 건가…….


  “아니, 두 사람이 만난 건 내란이 끝나고 나서다. 내란 전에는 연결점이 없어. 이 건에 대해선 란즈베르크 백작의 옛 가신에게 확인했으니 틀림없겠지.”

  “…….”

  “알버트 베네딕트에 대해서 조사했지만, 전 페잔 자치령주, 아드리안 루빈스키와 밀접한 관계라는 소문이 있었다. 만일을 위해 볼테크 변무관에게 확인해봤어.”

  “……그래서.”

  화면에 비춘 키슬링이 웃음을 띠었다. 냉소 종류다.


  “알버트 베네딕트는 확실하게 루빈스키와 연결되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페잔 자치영주부와 말이야. 그는 페잔의 배후를 돕고 있었던 것 같아.”

  “배후?”

  키슬링이 끄덕였다.


  “파괴공작이라든가 암살, 혹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교섭이다. 그는 페잔의 비합법적인 활동 부분을 맡고 있었던 거다. 때론 귀족과 손을 잡고 비합법적인 일도 했다는군. 그것 자체가 귀족의 약점을 잡는 일이 된다.”

  “……볼테크 변무관이 그렇게 대답한 건가?”

  “떫은 표정으로 말이야.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과연.”


  과연 그렇군. 페잔의 어둠을 맡은 남자인가. 그런 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원작에서라면 루빈스키 옆에서 협력하고 있던 건 도미니크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신뢰관계에 있다곤 거짓말로도 말하기 힘든 상태다. 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페잔에서의 일을 통해 귀족들의 약점을 잡아 벌고 있었나. 산전수전의 만만찮은 자겠지. 란즈베르크가 조심스럽게 될만도 하다. 당연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좋지 않게 보고 있을 것이다. 돈줄이었던 귀족을 뭉갠 것이다. 제국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베네딕트와 현 자치령주 마틴 페이워드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

  “우연일까?”

  “…….”

  “이쪽이 베네딕트에 대해서 조사하자 동시에 루빈스키가 경에게 연락해왔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힘들군.”


  아마도 지금도 두 사람은 연결되어 있겠지. 지구교가 의심하고 있는 흔적이 있다. 그리고 베니딕트의 존재를 탐지하여 거기에서 자신의 관여가 명백해졌다고 루빈스키는 생각했겠지. 그리고 내가 지구교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탐지했다. 뒤이어 자신이 포위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에 밴신을 결단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키슬링은 “대충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이라고 끄덕였다.


  “알버트 베네딕트를 주시해둬.”

  “알겠다.”

  혹은 루빈스키는 베네딕트와 란즈베르크 백작 두 사람을 소란에 이용하여 처리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 땐 상황에 따라서 이쪽이 붙잡아야 한다. 루빈스키에게 최후를 가져다 줄 도구가 되겠지.


  키슬링과 전화를 끝내고 회의실에서 나오니 발레리가 응접실에 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키슬링과 대화하는 도중 그 자가 온 것 같다. 꽤나 서둘러서 왔나 보지. 혹시 나에 대하여 어려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응접실에선 샤프트 기술대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게 했군요. 샤프트 대장.”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관도 지금 막 온 참입니다.”

  어조가 딱딱하군. 예전에 너무 겁을 줬나.


  “부른 것은 대장에게 부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탁이라 하심은?”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루빈스키가 실종된 이후, 샤프트에 대하여 페잔에서의 접촉은 없다고 키슬링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이번은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통상항행용 엔진을 붙였으면 합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그걸 실행할 생각이십니까? ……그럼 이제르론 회랑에?”

  “네. 그럴 생각입니다.”

  샤프트가 신음 소리를 올렸다. 이제르론 요새 공략. 그걸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연하지만 상상은 간다. 흥분하고 있는 거겠지.


  “알겠습니다. 바로 작업에 착수하도록 하죠. 그럼 언제까지 끝내면 되겠습니까?”

  “그렇군요. 10월 상순까지는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샤프트가 또 신음했다.


  “10월입니까. 그럼 장착 작업에는 4개월이 주어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 뒤 운용실험에 1개월. 최종조정기간으로 1개월.”

  “과연.”

  전부 합해 반년이다. 루빈스키의 페잔 소란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지만 충분히 시간에 맞출 수 있겠지.


  “운용실험은 슈톡하우젠 제독이 행하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운용결과를 보고 최종조정을 행합니다. 괜찮습니까?”

  “알겠습니다.”

  “뭔가 질문은 있습니까?”

  “아뇨. 딱히.”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샤프트는 뛰어오르듯이 방을 뛰쳐나갔다. 흥분하고 있는 거겠지. 이번에야말로 승진, 그런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뭐, 동맹군의 제국령 침공 때엔 페잔의 눈을 가리기 위해 승진시키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이번엔 그 부분도 평가해 줘야지. 2계급 특진은 무리겠지만 훈장 정도라면 내줘야겠지. 기술 장교로서 훈장이라면 기쁜 일일 것이다.


  그날 오후, 광역조사국, 헌병대는 협력하여 오딘의 지구교단지부에 강제조사에 들어갔다. 지구교단은 극렬하게 저항, 총화기로 광역조사국, 헌병대를 공격했다. 광역조사국, 헌병대가 사살한 신자는 100명을 넘었다. 부상을 입은 뒤 사망한 신도, 자살한 신도를 넣으면 사망자는 150명을 넘는다. 체포한 신자는 60명을 넘었다.


  교단지부장인 고드윈 대주교는 체포되기 전에 음독자살했다. 그에게서 정보를 얻을 순 없었지만 압수한 서류 안에서 지구교단이 장미정원에서, 퀸멜 남작 저택에서 날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강제조사에 앞서 광역조사국 제6과에선 알프레트 벤델을 체포하려고 했지만 벤델은 격하게 저항, 최후엔 벤델도 음독자살했다. 벤델이 사용한 독은 고드윈 대주교가 자살에 쓴 독과 동일한 것이었다.


  은하제국은 그 날 안에 지구교와 그 신자를 제국의 공적으로 선언, 지구토벌의 결정을 내렸다. 지구토벌지휘관은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이 임명되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제국력 489년 6월 6일. 오딘, 뮈켄베르거 저택. 에리히 발렌슈타인.


  누군가개 내 몸을 흔들고 있다. 그만둬. 난 지쳤어. 졸리다고.

  “당신. 일어나세요. 전화가.”

  전화? 아아, 확실히 수신음이 들리는군. 냅둬. 아니, 잠깐. 날 흔들고 있는 건 유스티나인가.

  “아아, 그런가. ……고마워. 유스티나.”


  겨우 상반신을 일으키고 내가 감사를 표하자 유스티나가 곤란하단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이런. 아내가 깨우기 전까지 전화가 왔는지도 모르는 남편인가……. 그거 곤란하군. 자신이 깨우기 전에 일어나. 그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겠지. 조금 지쳤군. 좋은 상황이 아니다.


  베갯머리의 TV전화가 수신음을 울리고 있다. 화면 한편에는 본래 표시되어야 할 상대방의 번호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비통지인가. 수상한 사람에게서 온 연락이라는 거다……. 시간은 오전 2시. 어쩌지. 끊을까? 무시하고 잔다는 선택지도……. 논외로군. 알지 못하는 이상 받아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지. 누구에게서 왔는지, 무슨 이야기인지……. 이 시간에 걸어왔다는 건 제대로 된 이야기는 아니겠지. 다시 말해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보류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당신, 괜찮나요?”

  “괜찮아. 유스티나. 걱정할 필요 없어.”

  걱정스런 표정이다. 가슴이 아팠다. 몸이 약하다는 것이 지긋지긋해진다. 엄마도 자주 그런 표정을 지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쉬고 있다고 제가 그렇게 전할까요?”

  “…….”

  그런 방법도 있나……. 아니, 안 된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 이상, 불안요소는 보여선 안 된다. 그러지 않더라도 내 건강상태는 다들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내가 나오지 않으면…….


  “당신…….”

  “아니,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신경 쓰지 말고 자요.”

  “네…….”

  신경 쓰지 말라는 건 무리겠지. 실제로 유스티나는 걱정스런 표정인 채다. 그래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끔찍한 이야기다. 그녀의 표정을 눈치 채지 못한 척하며 방에서 나왔다.


  침실을 나와 발걸음도 무겁게 통신실로 향한다. 정말이지 이 시간에 전화라니 어디의 바보냐. 짜증도 났지만 그 이상으로 의욕도 나지 않는다. 별 거 아닌 이야기라거나 잘못 건 전화가 아니길 빌 뿐이다. 한숨을 내쉬며 TV전화 앞에 앉아 수신버튼을 눌렀다. 헌데, 누가 나올지…….


  “밤중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사령장관 각하.”

  “아뇨.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쪽이야말로 면목 없습니다.”

  낮고 두터운 목소리다. 눈앞에 있는 것은 겸손한 말과는 반대로 반짝거리는 대머리에 뻔뻔한 웃음을 띠운 아저씨였다. 아드리안 루빈스키. 흑여우가 동굴에서 나왔다는 건가……. 일어날 만한 가치는 있었나 보다.


  “건강해 보이는 군요.”

  “덕분에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평화롭네. 이 녀석을 자치령주 자리에서 내쫓은 것은 나지만 그런 사실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 사이좋은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쪽 성격이 더 나쁜 걸까? 서로 상대방을 가리키는 데에 아무런 주저도 없겠지. 제3자에게 판정을 구하면 고개를 갸웃할 뿐일 것이다…….


  “용케도 이쪽 번호를 아셨군요.”

  “뭐, 제국의 중요인물 연락처는 일단 가지고 있으니까요.”

  “과연. 역시나, 아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당신에게 있어선.”

  “하하하.”

  루빈스키가 명랑하게 웃었다. 나도 목소리를 맞춘다.


  “동맹의 중요인물도, 입니까.”

  “뭐, 그렇습니다.”

  루빈스키가 은근슬쩍 자랑한다. 바보가. 이쪽은 그냥 인사치레로 말한 거라고. 그다지 호감 가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 결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부인이라고 하더군요. 단지 뮈켄베르거 원수와 동거하는 것은 큰일 아닙니까?”

  목소리에 희미하게 야유하는 빛이 있다. 끈질기네. 언제가 되면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이냐.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도 장인어른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거 참 훌륭합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나와 뮈켄베르거의 관계는 양호하다. 최근 손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 조금 곤란하지만. 하기야 나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 유스티나에게 말한 것 같다.


  루빈스키가 날 지긋이 보고 있다. 나도 상대방을 봤다. 루빈스키가 훗하고 웃었다. 이제 겨우 말할 기분이 들었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편이 좋겠군요.”

  “그렇지요. 인사는 이 정도로 합시다.”

  “…….”


  또 나를 지긋이 보고 있다. 애태우려는 건가, 아니면 날 관찰하는 건가…….

  “6월 10일. 광역조사국의 알프레트 벤델 조사관과 만난다고 하더군요.”

  “……알프레트 벤델. ……아아, 지구에 갔던 조사관이군요. 네. 만나서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루빈스키와 지구교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아직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끊으려 하고 있다……. 그런 걸까.


  “그만 두는 편이 좋겠지요. 각하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

  “믿을 수 없습니까?”

  “아뇨. 믿고 있습니다. 역시 그는 지구교에 포섭 되었습니까. 내란 이후, 지구교도는 몇 번이나 저를 죽이려고 했지요…….”

  루빈스키가 크게 끄덕였다. 지구교만이 아니지. 너도 날 죽이려고 했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다면 이번 알프레트 벤델과 만나는 것도…….”

  “뭐 그렇습니다. 증거가 없었으니까요. 시험해 보려고 생각했던 겁니다.”

  “위험한 일을 하십니다.”

  조금 다르지만, 뭐 오해하도록 놔두자.


  “귀하가 여기에 연락했다는 것은 페잔과 지구교가 뒤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런 거겠군요.”

  루빈스키가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페잔은 지구교의 어떠한 의도 하에 만들어졌습니다. 초대 자치령주, 레오폴드 라프는 지구교의 명령으로 움직였던 겁니다.”

  “…….”


  드디어 내 가설은 가설이 아니게 된다는 건가……. 꽤나 길었지. 이걸로 동맹에게도 설명할 수 있다. 아니, 무리로군. 정보처가 루빈스키라면 동맹이 나와 루빈스키가 연결되어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건 별로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처를 은닉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다.


  “제국과 동맹을 상쟁하게 만들어 서로 쓰러지게 한다. 그 뒤 혼란에 빠진 우주를 지구교라는 종교와 페잔의 재력으로 지배한다…….”

  “…….”

  “각하께선 별로 놀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군요.”


  그런가. 놀란 걸로 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군.

  “아니, 놀라고 있습니다. 상상은 했습니다만 진짜인가, 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증거는 있습니까?”

  내 질문에 루빈스키가 유감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딘의 지구교 지부, 지구에라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과연. 역시 그렇습니까.”

  지구교의 성가신 부분이지. 계획 변경 없음. 이대로 진행이다. 아니, 예정을 앞당기자. 이 자가 배신하여 지구교에 알리면 성가신 일이 된다. 가능하다면 오늘, 늦어도 내일엔 실행해야 한다. 그에 따라 지구교의 음모를 백일하에 드러낸다. 문제는 내 눈앞에 있는 이 자로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루빈스키 전 자치령주. 귀하의 호의에 감사합니다.”

  “기뻐하시는 듯하니 다행입니다.”

  “저는 당신의 친절에 어떻게 응하면 좋겠습니까? 가능하면 귀하의 희망에 응하고자 생각합니다만…….”

  뭘 발까. 뭐, 상상은 가지만…….


  루빈스키가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올 신제국에서 각하의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여기까진 예상대로군. 헌데, 어떻게 할까? 루빈스키가 겨우 땅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루빈스키는 또 지하로 숨겠지. 수중에 두고 있을까……. 하지만 상대방은 꽤나 강하다. 위험하기도 하다.


  “역시 어렵겠습니까?”

  “……어디 봅시다. 귀하께서 제국을 적대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귀하를 받아들이는 데에 반대할 사람이 많겠지요.”

  내 대답에 루빈스키가 끄덕였다. 별로 실망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예상한 대로다.


  “공적이 부족하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이번 한 건만으론 부족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렇게 됩니다. 제국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실 필요가 있겠지요. 반대하는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무언가를.”

  루빈스키가 두 번 세 번 끄덕이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페잔에서 제국이 동맹에게 전쟁을 걸기 위한 대의명분을 준비한다든가.”

  루빈스키가 지긋이 날 봤다. 그리고 훗하고 웃음을 띠었다.


  “과연. 언제까지 준비하면 됩니까? 상품에는 유통기한이 필요합니다만.”

  “일단 반년. 늦어도 1년.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길보를 기다리십시오.”

  자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것도 예상 대로인가. 이쪽이 계기를 찾지 못하고 곤란하고 있다. 파고 들 틈이 있다. 그렇게 봤는가. 애교가 없는 녀석이다. 그러니 너는 미움 받는 거다. 조금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이 좋은데…….


  “헌데 신제국에서 당신은 어떤 일을 원합니까? 안타깝게도 통상에 대한 일은 볼테크 변무관에게 맡기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가능하다면 당신의 바람을 들어주고자 생각합니다만.”


  내 질문에 루빈스키는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그런 척이겠지. 나와 볼테크가 친하다는 걸 루빈스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볼테크에게 뭘 바라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원래라면 루빈스키가 가장 바라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신 무엇을 원할 것인가?


  “각하의 보좌관이라는 건 어떻습니까?”

  생각 났다는 듯한 표정이군. 하지만 보좌관?

  “…….”

  “각하께선 군인이십니다만, 내정, 개혁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쓰임을 받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과연, 보좌관인가……. 괜히 역할을 정하는 것보다 보좌관인 편이 수비범위가 넓다. 게다가 애매한 만큼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영향력이 증감한다. 루빈스키라면 증대하는 건 간단하겠지……. 페잔인다운 발상이군. 자치령주 밑에는 보좌관이 몇 명이나 있다.


  “어떻습니까? 각하.”

  루빈스키가 살피는 듯한 시선으로 날 보고 있다.

  “좋겠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루빈스키 보좌관.”

  루빈스키가 이번엔 뻔뻔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니 넌 악면상이라는 거다.


  “저의 연락처입니다만…….”

  “그건 듣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괜찮습니까?”

  조금 놀란 표정이군. 이번엔 예상외였나?


  “상관없습니다. 만일의 일이 있어 당신에게 의심을 받는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동맹에게서 쫓기는 몸이니까요.”

  “……각하께선 신중하시군요.”

  루빈스키가 날 지긋이 보면서 끄덕이고 있다.


  나라면 일부러 번호를 상대방에게 전한다. 약한 입장의 인간이 강한 입장의 인간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해선 자신이 정직하다는 것과 숨기는 일이 없다는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사람으로서 애교를 보인다. 그 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만든다. 루빈스키. 너라면 어떻게 할까?


  “알겠습니다. 그럼 또 연락하도록 하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신이 끊기고 화면에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게 되었다. 유감이야. 루빈스키……. 너는 내 기대에는 응하지 못했군. 그렇게 했다면 조금은 나도 생각했을 테지만…….


  루빈스키는 나를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점수를 벌었다고. 하지만 현 시점에서 루빈스키가 배신한 것에 그렇게 큰 가치가 있다곤 생각할 수 없다. 99퍼센트, 제국에 의한 우주통일이 보이는 것이다. 제국에게 있어서 루빈스키의 존재는 어떤 의미에서 짐덩이에 불과하겠지. 적으로 두고 있는 편이 몸이 가벼울 정도다. 하기야 루빈스키의 입장에선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어차피 배신할 거라면 내란 중에 배신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황녀유괴도 없었고 장미정원에서의 습격사건도 없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리텐하임 후작은 변경에서 살았겠지만 내란은 꽤 작은 규모가 됐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귀족들에 대해서 군부의 힘을 보이는 것만으로 기득권층을 축소할 수 있었겠지.


  라인하르트도 죽지 않고 끝났을지도 모르지. 오벨슈타인과 키르히아이스를 처단하고 라인하르트의 작위를 박탈한 뒤 군대에서 추방. 안네로제도 마찬가지로 작위를 박탈한 뒤 후궁에서 추방한다. 아니, 오벨슈타인과 키르히아이스는 무기징역도 좋겠다. 살아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편이 라인하르트를 자기방폐하지 않고 얌전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페잔 방면에서도 제국과 짜고 동맹을 열세에 둘 수 있었을 것이고, 지구교 대책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누구나가 루빈스키의 공적을 인정했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고 끝났다. 혼란하지 않고 끝났다고. 방심할 수 없는 자지만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아군으로 삼아 이용하는 편이 좋겠지라고…….


  지구교에 너무 끌려 다녔지.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루빈스키는 지구교에 지나치게 끌려다닌 탓에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지구교와 인연을 끊자고 결심한 것도 페잔에 제국군이 침공한 뒤였다. 이쪽 세계와 마찬가지다. 페잔의 자치령주라는 강한 입장을 잃고 나서다. 너무 늦다고. 지구교에 끌려다니고 있다.


  지구교의 야망과 페잔의 번영은 최종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그 점은 루빈스키도 빠른 시점에서 알았을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적어도 샨타우 성역 회전 이전, 원작이라면 암리처 회전 이전에 지구교에서 독립했다면 꽤나 달랐을 것이다…….


  루빈스키의 본질은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인은 자신을 난세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태평성대에 어울리지 않나하고 난 생각한다. 기질과 재능이 일치하지 않았다. 로이엔탈과 마찬가지다. 로이엔탈은 반역자로서, 루빈스키는 타인을 번거롭게 만드는 음모가로서 끝나고 말았다…….


  안 되겠군. 재미없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일단은 루빈스키에겐 페잔에 소동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 소동을 틈타 녀석을 처리하는 것이 베스트로군. 뭐 저쪽도 그 부분은 조심하고 있을 테니까 꽤나 힘들겠지만…….

  루빈스키의 장기말은 뭘까? 란즈베르크 백작 알프레드인가……. 그렇다면 라트부르프 남작들에게서 보고가 있을 것이다. 그 선에서 루빈스키에 도달하여 루빈스키를 배제한다. 경우에 따라선 라트부르프 남작도 죽게 될지도 모르겠군…….


  키슬링, 안스바흐, 페르너들의 일이군. 최악의 경우 녀석을 받아들이는 것도 생각해야 하겠지. 보좌관을 한 사람으로 한정 지어선 안 된다. 또 한 사람 받아들이자. 루퍼트 케셀링크. 부자가 사이좋게 일을 하면 좋겠지. 서로의 발을 잡아당겨 실수를 하면 양쪽 다 처리한다. 그걸로 끝이다.


  리히텐라데 후작, 에렌베르크, 슈타인호프에게도 말해둘 필요가 있겠지. 소동을 일으키면 바로 군대를 페잔, 이제르론으로 보낼 필요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의 라그나로크 발동인가. 이제 곧 우주에서 전쟁을 없앨 날이 올 것 같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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