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알았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 대신 나도 하나 부탁이 있는데. 이오리군, 내 망상에 협력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없었던 일로 해주지 않겠어?”

  모처럼 생긴 동료지만, 모모카씨의 역하렘 멤버이기도 하고, 이 만화 세계의 주요등장인물이기도 한 ‘이오리 야마토’군의 손을 빌릴 수는 없다.


  안경을 쓰고 흑발 스트레이트라서 엑스트라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겉모습에 속아버렸다.

  소라군이 은발에, 키리오군이 금발이니까, 다음은 적발이나 청발, 혹은 레인보우의 기묘한 머리색이 올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흑발로 원점회귀할 줄이야.


  “어째서입니까? 협력은 할 겁니다. 학생회장과 귀국자녀와 아이돌을 일단 당신에게 붙인 다음에, 당신을 차게 만들면 되는 거지? 너, 얼굴은 귀여우니까 평범하게 고백해 버리라고. 십중팔구 오케이해 줄 테니까. 글고, 그 뒤에 내가 가서 ‘내 여친에게 손대지 말라고!’라며 한 방 때려눕히고 헤어지게 만들면 그걸로 끝이지?입니다.”


  잠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너……, 문제 일으키면 퇴학당할 거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아! 그, 그랬지 참……! 학생회장이라도 때렸다간 문제가 될 게 뻔하잖아.”

  “누굴 때려도 문제는 문제야!”


  “위험해. 나, 기본적으로 성장환경이 나쁘니까.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때리고 보자는 생각을 하고 말아……! 사쿠라코씨. 혹시 내가 싸움이라도 했다간 말리세요. 부탁합니다.”

  “그 정도라면 맡겨줘. 힘내서 말릴테니까.”


  이오리군에게 무척 맛있는 탕수육을 받았으니까.

  싸움을 말리는 정도는 해야겠지.


  불량군들의 등장으로 중단된 식사를 재개한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탕수육을 먹고 야키소바빵도 평정한 뒤, 나는 이오리군과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키리오군의 주변엔 여학생들이 무리지어 모여있었다. 모모카씨도 또한 즐겁게 반 친구들과 대화중.

  평화로운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가능하면 모모카씨와 키리오군이서 즐겁게 대화하고 있어줬으면 하지만, 사치스러운 말은 할 수 없다.


  “아, 어서와. 그림자 캡짱.”

  “어서와아.”

  교실에 들어가자 숏컷에 눈매가 늘어진 차색머리의 여학생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주변에 앉은 애도 즐겁다는 듯이 인사한다.


  “다, 다녀왔어……!”

  역시 내가 악역이라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구나……!

  기뻐서 저도 모르게 눈이 빛나고 만다.


  “어이, 반짝반짝하지 말라고. 평범하게 바보 취급 당하고 있으니까, 너.”

  이오리군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악역 따위, 바보 취급당해도 싼걸.


  나는 재빨리 이 사명을 해결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다.

  빨리 하지 않으면 아빠와 엄마의 기일이 지나고 만다.


  “그치.”

  “응, 확실히.”


  나도 모르게 멈춰 선 내 앞에서, 여학생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끄덕였다.

  “이오리군, 이거 벗어봐.”

  숏컷을 한 애가 이오리군이 답하기도 전에 안경을 뺏는다.


  “아, 저기.”

  날카롭게 찢어진 눈이 겉으로 드러난다. 눈은 삼백안이고 불량군들을 노려볼 때에 보인 박력은 엄청났지만, 보통 때엔 눈매가 조금 나쁠 뿐인 착한 사람으로 보인다. 눈이 크고, 짧긴 하지만 밀도가 높은 속눈썹 때문에, 바싹하고 눈 주변에 테두리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어중간하게 험한 얼굴이니까,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여 큰일을 겪은 거겠지.

  겉보기가 완전히 야쿠자였다면, 오히려 그런 식으로 얽히는 일은 적었으리라 생각하고.


  “역시, 이오리군은 안경이 없는 편이 좋아.”

  “안경 캐릭터가 아니라는 느낌이고. 렌즈로 하는 편이 좋다니까. 아까워.”

  “안경 돌려주세요.”


  이오리군이 미간을 찌푸린다. 왠지 모르게 엄청 믿음직스럽지 못한 얼굴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겠지.

  때려서 돌려 받을 수도 없고 말이야.


  헌데 이 여학생, 이오리군이 실은 선배 불량배들에게 경어로 인사를 받을 정도의 본격파 불량이라는 걸 알았다간 허리가 빠지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렌즈로 하라니까.”

  장난 치는 여자의 손에서 나는 안경을 뺏었다.


  “네, 안경 몰수.”

  “아.”

  “남의 물건을 뺏으면 안 된다고.”

  “아아, 방해하지 말라니깐.”

  “나는 그림자 캡짱이니까. 귀여운 여자아이를 방해하는 것이 사명인 것이다.”

  “뭐야 그거 진짜 짱나. 내가 사쿠라코를 괴롭혀 버릴까~”


  허리까지 내려와서 거치적 거릴 정도로 긴 내 머리카락을, 숏컷 여자가 당긴다.

  “아우.”

  가볍게 당긴 것일 뿐이지만, 머리카락을 잡히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기에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고 만다.


  “어이, “스톱!” “그만둬.””

  이오리군과 나와――모모카씨의 목소리가 겹쳤다.

  이오리군이 여자의 손을 강하게 때려서 떨구려는 기세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당황하며 내가 막는다. 그 사이에 모모카씨가 찰싹하고 가볍게 숏컷 여자의 손을 때렸다.


  “사쿠라코를 괴롭히면 안 돼. 사쿠라코를 괴롭혀도 좋은 건 나뿐이니까.”

  모모카씨가 내 어깨에 손을 대고 머리 위에 턱을 올렸다.

  그 상태로 딱딱 이빨을 울리는 거니까, 턱이 머리를 때려서 정수리가 은근히 아프다.

  이빨이 울릴 때마다 “아우, 아우.”하고 바다사자처럼 울고 만다.


  “그게, 사쿠라코가…….”

  “남의 안경을 뺏은 쪽이 나빠. 쿠몬씨도 내가 쿠몬씨의 눈을 뭉개버리면 곤란하겠지? 안경을 쓴 사람에게 안경을 뺏는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거, 곤란하단 수준이 아닌데…….”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눈높이까지 올리고, 빙글빙글 돌리는 모모카씨에게 숏컷 여자――쿠몬씨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마침 그 때, 수업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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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전에 갑자기 회선이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어쩌면 통신기 팔찌가 고장난 걸까.

  서,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신님이 주신 물건이다. 백엔샵에서 파는 볼펜도 아니고, 하루만에 못쓸 물건이 되다니 있을 수 없겠지!?


  아니라고 해주세요 신님!


  몸을 옆으로 하고 울상 지으며 팡팡 팔찌를 때리고 있자, 이오리 야마토군이 왜인지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저기”하고 내 어깨를 손끝으로 찔렀다.


  “진짜로……, 저 놈들하곤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까,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무서워? 뭐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되묻고 만다.

  이오리군도 또 깜짝 놀란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를.”

  “별로 무섭지 않아.”


  그야 아까 전의 얼굴은 무서웠지만, 나를 향한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이오리군은 소녀만화 등장인물이다. 여자아이를 때리다니 생각하기 힘들다.

  소년만화라고 해도, 히로인에게 맞는 일은 있어도 히로인을 때리는 주인공은 없으니까.

  화나게 하지 말자는 생각은 들지만, 무섭거나 하지는 않다.


  “그런……가……. 다행입니다.”

  이오리군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 세우고 있던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

  지금까지 계속 여자아이가 무서워했던 거겠지. 뭐 불량군이니까. 자업자득일 테니까 거기는 어쩔 수 없다.


  “괜찮아. 나, 보기엔 여자아이지만, 마음은 훌륭한 남자니까 무서워하거나 하지 않아. 너의 첫 여자사람친구가 되어주지.”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하자, 뺨이 잡히고 늘어졌다.


  “아라라라” (아파파파)

  “왠지 빡칩니다.”

  “포력안대안대!” (폭력반대반대!)


  파닥파닥 손을 쳐서 떨어뜨린다.

  화가 났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이오리군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상한 선배에게 인사 당한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모모카씨에게도.”

  “말하지 않지만……, 어째서?”

  “저런 종류의 놈들하고 친구라고 보이기 싫은 겁니다. 저, 평범하고 진지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으니까.”


  헤에. 그런건가!

  “불량에서 개심한 거네. 훌륭하네.”

  “아니야! 애초부터 불량이 아니야! 눈매가 나쁘다느니 행동거지가 나쁘다느니 트집 잡지 시비 걸지, 덤벼드는 놈들 모두 반쯤 죽여놓는 사이에 불량이라느니 3대째 마피아라느니 양키라느니 야쿠자의 후계자라는 소리나 듣고……!”


  무척이나 울분이 쌓여 있었던 거겠지. 이오리군은 옥상 바닥을 주먹으로 때리면서 목소리를 짜냈다.

  “나, 평범하게 공부 좋아한다고! 중졸부터 가게를 뒤이으라고 시끄러운 부모를 필사적으로 설득해서 이 학교 진학 코스에 다니는 걸 허락받았어. 절대로 평온하게 졸업해서 대학까지 가주마……!”


  “고, 공부가, 좋아……!!?”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기 싫어서 싫으면서도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전혀 현실감이 없는 말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퍼즐 같잖아? 수학은 그대로 게임처럼 풀 수 있으니까 재밌고, 한자도 문자의 성립까지의 역사가 풍부하니까, 숙어쯤 되면 예술이 아닌가 싶을 정도야. 영어에 있어선 이해할 수 있게 되기만 해도 여러 국가 녀석들하고 주고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즐겁지만 말이야. 역사는 먼 옛날부터 쌓여 온 것들이 어떻게 굴러가고 어떻게 바뀌는지 흥미 깊고, 이상에 의해 세계가 전혀 다른 두 세력으로 분리하고 흘러가는 것도 엄청 흥미로워.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세워지는 걸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아무튼 이 학교 진학 코스는 편차치도 높고 교사진도 프로뿐이니까 수업 시작하는 것이 엄청 즐겁다고.”


  우와아아아, 알 수 없어. 내겐 그런 감성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도 특대생 대우라서 돈이 들지 않으니까 용서해준 거나 마찬가지야. 문제가 일어났다간 눈 깜짝한 사이에 퇴학당하고 맙니다. 그러니 저런 종류의 놈들하고 동류라고 보이기 싫다고입니다.”


  특대생이라니……성적우수자에게 수업료 전액면제……인.

  한 학년에 성적우수자 세 사람까지라고 입학 안내서에 써 있었다.

  세 사람에서 떨어지면 그 순간부터 수업료 면제도 박탈된다는 것도.


  “머, 머리 좋나 보네…….”

  “가난하니까, 공부밖에 할 일이 없었던 겁니다. 게임기, 아버지의 슈퍼 패미콤 밖에 없고. 고등학교에선 안경 쓰고 경어 써서, 수수하게, 평범하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으로 있고 싶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얼굴을 감추듯이 안경의 위치를 바꾸면서, 이오리군은 간원하듯이 말했다.

  “아까 전의 일. 못 본 걸로 해주세요. 나도 당신의 망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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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캡짱씨는 하츠키――모모카씨에게 무슨 짓을 당한 겁니까?”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만다.


  “무슨 짓을 당했다니?”

  “헛스윙만 하고 있습니다만, 모모카씨를 괴롭히고 싶은 거죠? 원한이 있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진심으로 미워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무슨 짓이라도 당했나 해서.”


  “아, 아니야!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어! 모모카씨는 나 같은 이상한 사람에게도 야키소바빵을 주는 좋은 사람인걸.”

  나는 옥상 울타리에 등을 대고, 다리를 뻗고 앉아 있다.

  허벅지 위에 올려둔 먹다 남은 야키소바빵을 살짝 만진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 시비를 거는 거지?”


  아.

  안경군의 경어가 무너졌다.

  아까 전에 교실에서 대화했을 때도 평범하게 대화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경어였던 걸까?


  앗!

  설마 나를 무서워하고 있는 건가!?

  그런가. 이제야 겨우, 나, 악역으로서 이 세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받는 존재가 되기 시작한 거야!


  이 안경군. 명백히 엑스트라 느낌이 나는 걸.

  못생겼다는 건 아니지만, 평범한 느낌이고, 머리카락도 그냥 씻었다는 느낌의 스트레이트고. 무엇보다 흑발이고.

  평범군에게 라면 이야기해도 좋을까.


  혼자서 힘내는 것도 피곤해졌고.


  “………….”


  내 눈앞에는 여자아이들의 그룹이 있었다.

  작은 도시락통을 손에 들고 즐겁게 소란을 피우는 여자아이들, 그리고 더욱 그 너머 넓은 마을 풍경을 보면서, 나는 툭하고 말을 흘렸다.


  “이 세계는 모모카씨가 주역인 만화 세계야.”


  안경군은 “뭐어?”하고 곤혹스런 목소리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모모카씨를 괴롭히는 음험한 악역. 그렇게 스토리가 정해져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모모카씨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돼.”


  “뭐야 그거.”

  “나의 망상.”


  씩, 하고 웃으며 답하자. 안경군은 곤란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 바람이 불고, 안경군의 스트레이트 흑발과 나의 핑크색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내 진짜 모습은 여기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극히 평범한 고등학생 남자야. 머리 위에 화분이 떨어져서 고등학교 입학식 전날에 죽었지만.”

  “평범한 남자??”


  “응. 죽은 후, 조금만 더 있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신님에게 잡혀서, 이 세계에서 악역을 하라고 날려 보내진 거야. 생전의 내 양친, 내가 죽기 전 2개월 먼저 사고로 죽었으니까……, 천국에 가면 만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안경군은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텅 빈 도시락통을 닫으면서 말했다.

  “괴롭히는 네가 악역이라는 건, 스토리는 괴롭히는 만화인 겁니까?”


  “아니야. 소녀 만화. 모모카씨가 여러 남자들과 사랑하고, 역하렘을 만드는 스토리야. 내가 읽은 적은 없으니까 자세하겐 모르지만……. 일단 내가 그 남자들과 사귀고, 그러고 나서 그 남자들이 나를 호되게 차고, 모모카씨와 연인이 된다는 이야기 같아.”

  덧붙여 야한 짓도 해야만 하는 것 같지만, 그건……숨겨두자. 안경군이 질릴 것이 눈에 뻔하고.


  “진짠가. 엄청 재미없어 보이네. 아니, 재미없어 보이네요.”

  “실제로 재미없었다고 생각해. 연재 중단된 만화라고 하니까……, 저기, 무리해서 내게 경어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반 친구고. 나, 너를 괴롭히거나 하지 않으니까.”


  안경군은 표정을 찡그리고, 또 후두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곤란할 때의 버릇인 것 같다.

  “무리해서 쓰고 있는 건 맞지만……. 내 사정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도, 협력해 드릴까요?”

  “에!? 지, 진짜!? 괜찮아!?”


  정말로 무리해서 쓰고 있는 것 같아서, 군데군데 경어가 이상하지만, 거길 찌르는 것보다 먼저 몸이 나서고 만다.

  “모모카씨와 누구를 붙이면 되는 건가요?”

  “에, 학생회장인 칸자키 신 선배, 신입생 인사했던 니노마에 소라군, 그리고, 아이돌인 타카나시 키리오군――”


  휴대폰 착신 멜로디가 들린다.

  “잠깐 죄송합니다.”


  안경군이 휴대폰을 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안경군의 어머니인 걸까.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 나왔다.


  “야마토! 너 오늘은 제대로 돌아오는 거겠지!?”


  내가 모모카씨와 붙여야 하는 사람은, 칸자키 신 선배, 신입생 인사를 한 니노마에 소라군, 그리고, 아이돌인 타카나시 키리오군, 그리고.


  불량인――――이오리――――,


  “시끄럽네. 목소리 넘 크다고. 돌아간다니까. 고등학교는 제대로 다닌다고 했잖아. 경어도 쓰고 있고, 아, 진짜 짜증난다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미안……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학생회장과 귀국자녀와 아이돌인가. 과연 소녀 만화. 상대방 스펙 쩌네, 로군요.”


  안경군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불량, 이오리, 야마토, 군.


  “………….”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 내 시야에 더러운 실내화가 몇 개인가 눈에 들어왔다. 감색과 검붉은색. 2학년과 3학년이다.

  이 학교는, 체육복과 실내화의 색이 학년에 따라서 다르다.

  그렇다곤 해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입학했을 때의 색이 그대로 올라가는 거다.

  지금 3학년이 감색, 2학년이 검붉은색, 그리고 우리들 1학년이 녹색.

  내년, 지금의 3학년이 졸업하면, 다음 1학년의 색은 감색이다. 세 가지 색이 루프한다.


  그러니 실내화만으로도, 그것이 몇 학년인지 알 수 있는 거다.

  조심조심 고개를 들자, 가장 좋은 장소를 차지하고 있던 드레드, 빡빡이, 장발 불량의 면면이 등 뒤에 손을 대고 서 있었다.


  “““이오리씨. 입학 축하드립니다!!”””


  학교 안을 울릴 정도의 낮은 목소리에,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안경군은 안경을 벗고, 위협하는 듯한 얼굴로 선배들을 노려봤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군이라고 생각했던 얼굴이었는데, 좌우로 찢어진 눈과 삼백안 눈동자를 꺼내고 보니 사람을 2, 30명은 죽인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박력이 있었다.


  히이, 하고 거친 불량들이 한 발 물러난다.


  “꺼져. 이제 나는 너희들하곤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두 번 다시 말 걸지 마.”


  지옥에서 울리는 듯한, 등줄기가 얼어 붙을 듯한 목소리에 선배들이 새끼거미가 흩어지듯이 도망갔다.


  “――아, 저건, 그, 친척 형과 친구라서 말이야. 장난삼아서 저러는 거야. 잊어주세요.”


  진짜 그림자 캡짱이 내 옆에……아니, 그림자 캡짱은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도, 이 사람이 이오리군이었다니 어떻게 하면 좋아……!!!


  ‘신님, 큰일이야! 또 저질렀어……!!’

  팔찌에 손을 대고 불러 봐도, 돌아오는 건 허망한 침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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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씨름으로 여자아이에게 순살 당하고, 괄호치고 웃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귀까지 새빨개져서 멍하니 서있었다.


  “우…….”

  우와아아아아!


  소리치고 싶어지면서도 입을 막고 말없이 문을 향해 달린다.

  “거기! 야키소바빵 가져가!”

  후두부를 향해 던졌는지 머리 위로 스쳐지나가는 빵을 어떻게든 붙잡아서 교실에서 도망친다.


  부끄러움과 한심함에 털래털래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생각났다는 듯이 떠오른 공복이 쳐들어 와 복도 한 가운데에서 멈춰섰다.

  어디로 가지…….

  교실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터벅터벅 걷고 있자 옆으로 계단이 보이고, 왠지 모르게 위로 위로 올라간다.

  그러고 보면, 첫날 째에 모모카씨가 옥상에서 남자와 플래그를 세울 예정이었지. 그렇단 건, 옥상은 잠겨 있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야키소바빵을 먹자.


  손 안에 있는, 모모카씨가 준 야키소바빵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아니, 나, 그림자 캡짱 선언했으니까. 분명 슬슬 반 친구들도 다들 내가 악인이라는 걸 눈치 채기 시작했을 거다.

  야키소바빵도, 불쌍해 보이는 히로인에서 강탈했다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응. 제대로 악역을 하고 있는 거야!


  ――――하아.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더할나위 없는 한심함에 어깨를 떨구고 옥상으로 나온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따뜻한 햇살과 머리 위 한바탕 펼쳐진 푸른 하늘 덕분에, 침울해진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옥상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그룹을 지어 앉아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다.


  윽.


  옥상 구석, 벤치가 놓인 가장 좋은 장소를, 드레드헤어나 스님, 장발 등등에 보기에도 안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다.

  분명 저 안에 모모카씨와 플래그를 세울 예정이었던 불량군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불량들을 피하고, 텅 빈 장소에 허리를 내리고 팔찌를 만진다.

  ‘신님, 저기, 실패했습니다.’

  ‘보고는 필요 없다. 시종일관 보고 있었으니.’

  ‘저, 저기……. 미안. 배가 고파서, 사고력이 없어졌습니다…….’


  ‘미안하단 말로 끝나면 천벌따위 필요 없다! 바보가! 무사는 냉수를 마셔도 이를 쑤신다는 말을 모르는 거냐!’

  ‘알고 있지만 무리! 나, 옛날부터 한끼라도 굶으면 참을 수 없었는걸! 배가 고프면 안 된다고. 생각할 힘도 없어지지, 슬퍼지지.’

  ‘그럼 키리오의――’


  지직, 하고 잡음이 들어왔다.


  ‘신님?’

  ‘뭐야――소리――? 통신――상태――’


  잡음이 더욱 커지면서, 신님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뚝하는 소리와 함께 회선이 끊겼다.


  “시――시, 신님!? 잠깐, 응답해주세요! 혼자가 되어도 곤란하다고. 신――”

  “레이센인씨?”


  갑자기 이름을 불려서 붕 뜰 정도로 놀라며 고개를 올린다.

  반 친구인 안경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내려보고 있었다.

  안경군은 시선을 피하고, 망설이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다, 다시 나를 내려본다.


  “――아, 그러니까. 누구랑 대화하고 있던 건가요?”

  “그……그게, 저, 전파를 수신하고 있었습니다.”

  안경군을 향해 등을 돌리며, 난간 너머의 경치를 보며 양손을 핀다.


  “……그런 것 같네요. 과연 그림자 캡짱. 전파도 수신할 수 있다니 대단하네요.”

  안경군이 쓰게 웃는다.

  웃도록 하여라. 웃는 게 좋아. 나도 기행 만발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다고.


  안경군은 내 곁에 책상다리로 앉았다. 손에는 도시락이 있었다.

  “어라? 교실에서 먹고 있었는데, 어째서 일부러 여기에……?”

  “하즈키씨와 타카나시군이 내 자리 앞에서 소란을 피워서 도망쳐왔어요.”

  ……과연.


  “이거.”

  “에?”

  작은 밀폐용기였다.


  “밥, 먹지 않았다고 했었죠?”

  “피, 필요 없어. 도시락을 뺏다니 그런 건 할 수 없어.”

  “우리집, 밥집이라서, 남은 밥을 담는 거라서 항상 도시락 양이 많아요. 혼자서는 다 먹을 수 없으니까 드세요.”


  그런!

  그럼, 사양 없이 잘 먹겠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하며 받아 들은 밀폐용기 안은, 타, 탕수육이었다……!!

  고기다아아아!!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탕수육을 양손으로 잡으니 몸이 떨린다.

  함께 건네준 플라스틱 이쑤시개를 써서 재빨리 튀김을 입 안에 넣는다.

  우와아아아 무지막지 엄청 맛있어……!!


  “무, 무척 맛있네! 분명 대성황 레스토랑이겠지! 이런 밥을 매일처럼 먹을 수 있다니 부럽네……!”

  “레스토랑이 아니에요. 아저씨밖에 오지 않는 낡은 밥집. 그거, 파인애플 들어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탕수육 파인애플 엄청 좋아요!”

  “………….”


  안경군은 잠시 침묵하고 입을 열었다.

  “탕수육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녀석은 태어나 처음 조우했습니다. 어둠의 캡짱은 대단하네요.”

  그림자 캡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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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카나시 키리오는 점심시간의 활기가 넘치는 복도를 걸으며 생각을 굴려본다.


  레이센인 사쿠라코.

  그녀가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하다는 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양친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설마 계모에게 괴롭힘을 받는 다든가, 양친이 병으로 쓰러져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든가, 심각한 상황인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도와야 하는 걸까…….’

  키리오는 100만 단위를 융통할 수 있을 정도로 벌이가 좋다. 돈을 건네는 것도, 사쿠라코를 손이 닿는 곳에 두고 키우는 것도 간단했다.


  하지만, 키리오는 사쿠라코를 연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주 잠깐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사쿠라코는 무척 좋은 아이다.


  털이 빠져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늙은 개를 보호해줄 뿐만이 아니라, 개 대신 빗자루에 맞고, 자신의 밥을 빼서라도 개를 챙겨줄 정도의 아이인 거다.


  그런 아이가 가볍게 돈을 받거나, 가볍게 자신의 도움을 받을 리가 없다. 아까 전의 사례도 잘못하면 거절 당할 뻔했다.

  건네면 건넬수록 부담이 되겠지.


  곤란에 빠진 사쿠라코에게 돈을 건네는 거야 간단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여자아이를 돈으로 사는 거나 마찬가지인 형태가 되고 만다.

  그것뿐이 아니라, 사쿠라코 스스로가 돈의 대가로서 연인이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함께 살다니 말도 안 된다.


  그래서야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드르륵하고 문을 연다――――그리고, 동시에 몸집이 큰 여자가 억누르며 야키소바빵을 입에 집어넣어, 울상이 된 사쿠라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괴롭힘 반대!!!”


  나도 모르게 외치며 몸집 큰 여자에게서 사쿠라코를 빼낸다. 사쿠라코와 함께 있어서 크게 보였을 뿐, 여자의 키는 그렇게 크진 않았다.


  “괴롭힘이 아니야. 사랑의 채찍이야.”

  “과도한 체벌을 하는 부모의 변명이잖아! 빵을 입에 처넣으며 울리다니 괴롭힘이잖아!”


  가슴을 꾹, 하고 손바닥으로 눌리는 느낌에 키리오는 시선을 옮겼다. 사쿠라코였다.

  얼굴을 돌린 사쿠라코가 열심히 빵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야! 내가 모모카씨의 야키소바빵을 강탈하려고 했는데, 모모카씨는 야키소바빵을 먹게 해준거야. 모모카씨는 여신처럼 상냥하고 마음씨 착한 사람이야! 오히려 내가 모모카씨를 괴롭히고 있다고! 그, 그렇지?!”


  사쿠라코가 뒷자리에 있던 남자에게 말을 돌렸다. 소란에 젓가락을 멈추고 있던, 안경을 쓴 얌전해 보이는 남자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에……? 뭐……??”

  “에에, 가 아니야! 아까 전에 내가 모모카씨에게 말했잖아! ‘모모카씨를 괴롭히고 괴롭혀서 이 세상의 지옥을 보여주겠다 그헤헤헤’적인 말을 했잖아!”

  “말 안했는데.”


  말했어! 라고 외치는 사쿠라코였지만, 그녀가 반을 둘러보며 “그치!”라고 불러도 끄덕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 안했잖아. 레이센인씨는, 어째서 그렇게 자신을 나쁘게 보이려고 하는 거야?”

  아까 전의 안경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그건…….”

  사쿠라코는 머리를 감싸고 우으으으하고 신음하고, 만면의 웃음으로 “그래! 나는 이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그림자 캡짱이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허어…….”

  손가락질을 받은 안경 남자만이 아니라, 이 반에 있는 학생들 전체 머리 위에 (곤란)이라는 명조체의 거대한 문자가 떠올랐다. ()붙이고.


  “사쿠라코 사쿠라코, 여기에 앉아봐.”

  사쿠라코에게 모모카라 불린 여자가 손짓을 하며 의자를 잡아당겼다.

  사쿠라코는 갸우뚱하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 자리에 앉은 모모카는 책상 위에 팔뚝을 대고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

  “손.”


  사쿠라코는 깜짝 놀랐지만, 손이라는 말에 짐작이 갔는지 눈을 빛냈다.

  “팔씨름? 후후후, 날 가볍게 보지 말라고. 꽤 힘 쎄니까.”

  두 사람의 손바닥이 겹쳐졌다.


  “간다. 사쿠라코. 하나, 둘, 셋.”


  셋이라는 말과 동시에, 뿌득!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기세로 사쿠라코의 손이 책상에 달라붙었다.

  “으갸악!”

  아파 보이는 비명이 교실을 울린다.


  “약해. 약하다고. 강하다고 해서 전력을 냈는데, 정글리안 햄스터 이하야.”

  “아파파파……! 어, 어째서야! 나(僕), 그럭저럭 힘이 있었을 텐데! 여자에게 순살이라니……!”

  “그림자 캡짱(웃음).”

  “괄호치고 웃음이라고 하지 마!”


  괄호치고 웃음이라고 하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꾸짖는 모모카에게, 분해 보이는 사쿠라코가 달라붙지만, 그만큼 사쿠라코가 무력하다는 거니까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말에 웃는 것이 당연하다.


  “헌데 사쿠라코는 보쿠코였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같아서 귀여워.”

  “에!? 아! 아아아아아니야! 저는평범한여자아이랍니다!”

  “클리셰네요.”


  싱글벙글 즐거워 보이는 모모카. 아무래도 정말로 괴롭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키리오는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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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가자.”


  또 타카나시군이 내 손을 잡아끌고 걷는다. 이번엔 떨쳐내려고 해도 떨쳐낼 수 없어서, 발을 멈추고 버티거나 붕붕 손을 흔들며 저항하거나 왼손으로 떼어 내려고 하면서도 끌려가서 큰길까지 왔다.


  “도우미가 마중하러 올 거야. 학교에는 연락해 뒀으니까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을 테니 안심해.”

  그건 됐으니까 손을 놓아주세요.


  슬슬 화가 나려고 했기에 왼손으로 탁탁 두드렸지만 전혀 놔주지 않고,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에 태워졌다.


  “키리오님. 여기에, 연락하신 사례입니다.”

  “고마워.”

  운전석에 앉아 있던 20대 중반의 형이 타카나시군에게 봉투를 건냈다.

  꽤나 연상인 것 같은데 ‘님’자를 붙여서 말하는 건가. 도우미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현역 아이돌이란 대단하네. 살고 있는 세계가 달라.


  타카나시군은 도우미에게 받은 봉투를 그대로 내게 건냈다.

  “사쿠라코, 여기. 너에게. 푸치를 보호해준 사례야.”

  “에?”


  두툼한 봉투를 받고서, 끈으로 묶인 입구를 연다.

  안에 들어 있던 것은――――――.


  “!!!???”

  생전 처음으로 보는 큰돈이었다! 돈다발이다! 언뜻 보기만 해도, 20……아니, 30만은 들어 있을 것 같아!


  “어어어, 어어째서.”

  “사실은 지금 당장이라도 식사에 데려가고 싶지만, 만일을 위해서 푸치에게 수의사에게 보여야만 하니까……. 먹어야만 하는 약도 있고. 돈만 건내다니 면목 없지만, 받아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큰돈은 받을 수 없어!!”

  나도 모르게 타카나시군에게 봉투를 돌려주고 말았다.


  무리무리! 그야, 배는 고프지만, 밥은 먹고 싶지만, 이렇게 큰돈을 반 친구에게 받다니 너무 무리야! 아무리 푸치를 찾았다고 해서, 돈다발이라니 너무 심하다!


  “푸치를 찾아 준 사람에게 주려던 현상금이야. 나, 보호해주는 사람에게 30만 엔 주겠다고, 편의점 게시판에도 붙였고, 인터넷에도 올렸으니까.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려.”

  “하지만………….”


  우으……. 받고 싶지 않아. 받고 싶지 않지만.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나란 녀석 이런 인간이었구나…….

  친구에게 돈다발을 건내받고 말다니…….

  가난이 밉다. 슬프다. ……분하다.


  “네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야. 내게 있어서 푸치는 둘도 없는 형제니까. 30만 엔이라도 부족할 정도야.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해줬으니까, 부담이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응. 고마워…….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으…….


  한심하다. 한심하지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 속에, 살짝, 30만 엔이 든 봉투를 넣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장 가까운 편의점 앞에서 내린다.

  도시락 490엔. 크림빵 90엔. 오렌지 주스 150엔. 주먹밥 120엔…….

  생전에 받았던 용돈은 한 달에 5천 엔. 가볍게 물건을 샀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상품의 가격이 무겁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연어 주먹밥, 120엔.

  손을 뻗고서, 그만 뒀다.

  그대신 팔찌에 손을 댄다.


  ‘신님.’

  ‘뭐냐?’

  ‘사쿠라코, 밥은 어떻게 했던 거야?’

  ‘그런 거 잠깐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잖은가.’

  ‘……? 친척 사람에게 얻어 먹었다든가?’


  ‘아냐아냐. 아버지의 지갑에서 슬쩍 했던 거다. 아버지는 봤던 대로 알코올 중독자에 술이나 마시고 잠이나 자니까. 다소 돈이 빠져나가도 눈치 못 채고, 한 번 잠에 들면 좀처럼 깨질 않아.’


  에!?


  ‘너도 머잖아 지갑에서 슬쩍해서 고기를 배한가득 먹고 떡을’

  ‘그런 짓 할 수 없어! 돈을 훔치다니 나에겐 무리!’

  ‘이것도 무리 저것도 무리……. 아이의 양육은 부모의 의무잖은가.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니까, 다소 돈을 훔친다고 해서 벌은 받지 않겠지.’

  ‘우으…….’


  ‘아, 테이블 위에 200엔을 두고 있다는 묘사가 있었지.’

  ‘200엔?’

  ‘아아. 이게 사쿠라코가 가지는 하루 식비인 것 같군. 단 200엔으로 제대로 된 식사는 할 수 없으니까. 역시 돈을 슬쩍 할 수밖에 없겠지만.’


  생각해 보면 확실히 부엌 테이블 위에 200엔이 있었다!

  아빠가 두고 잊어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가. 다행이다. 200엔이 있으면……200엔인가……뭘 살 수 있을까? 편의점이 아니라 슈퍼를 가보자! 떨이라든지, 색이 변한 거라도 먹으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른다.


  편의점을 나와 학교에 오늘 두 번째의 등교를 한다. 교실에 돌아가니 4교시 수업이 시작하던 참이었다.

  우리 반 담임은 나에 대한 폭언이 문제가 되었다든가 해서, 부담임이었던 20대 선생님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새로운 선생님에게 지각해서 죄송합니다하고 인사한다.


  “이야기는 들었어. 하지만, 다음에 학교를 무단으로 빠지면 페널티다. 운동장 다섯바퀴. 각오해 두라고.”

  농구부 고문을 맡고 있는 상큼한 선생님(단, 추리닝)은 “자, 다음 시간은 사진촬영이다. 다들 이동하자고.”하고 확 팔을 휘두르며 커다란 액션으로 학생을 재촉했다. 설교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템포 좋게 사진촬영이 끝나고 점심시간.

  이 시간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다. 신님에게 받은 지령은,


  ‘점심시간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하거라. 교실 정 중앙 자리에 뭉쳐 있는 여자들이, (엄마가 쫀쫀해서 붙임머리 할 돈도 주지 않아) (에, 진짜? 불쌍해.) (진짜 우리 가난해서 짜증난다니까. 좀 더 부모들 일하라고)라고 머리에 벌레라도 생긴 듯한 말을 하고 있는 데에, 너는 지나가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큰일이네. 그보다 너희들 붙임머리 필요해? 그 머리모양이 더 어울리는데.)라고 코웃음 치면서 긴 머리카락을 뽐내는 게야!’


  였다.


  붙임머리부침머리부침개마시쪙, 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 머리는 공복으로 한계지만. 이런 작은 이벤트 정도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힘내 본다.


  사진촬영을 끝내고 4층 교실에 도착했을 쯤엔, 나는 이미, 완벽하게 현기증이 나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교실에 들어간다.


  “사쿠라코, 휘청휘청하는데 괜찮아?”

  모모카씨의 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머리는 지금, 붙임머리로 가득이다. 자리에 앉아서 이벤트가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여기저기에서 젓가락이 부딪치는 절그럭 소리가 나고,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 냄새가 풍긴다. 배가……고프다…….

  “사쿠라코, 도시락 안 먹어? 왜 그래?”

  내 눈 앞에 손바닥이 오가지만, 반응할 기력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가 쫀쫀해서 붙임머리 할 돈도 주지 않아.”

  “에, 진짜? 불쌍해.”

  “진짜 우리 가난해서 짜증난다니까. 좀 더 부모들 일하라고.”


  겨우 대화가 들렸다!

  나는 서서히 일어나서 휘청휘청 교실 정 중앙까지 가서――――목소리를 짜냈다.


  “진짜 가난한 사람은……밥을 먹을 수 없다고…….”

  가난한 사람은 큰일이네,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 입에서 나온 것은 그런 말이었다.


  “어제부터 당근밖에 먹지 않았어……! 배가 고파서 배가 고픈데 배가 고파……! 쌀이 먹고 싶어……!”

  “잠깐, 레이센인!? 괜찮아? 울지 말라고.”

  “당근밖에 먹지 못했다니, 가난한 수준이 아니잖아? 위험하지 않아?”


  “사쿠라코.”

  휘청휘청 돌아선다. 모모카씨가 있다. 손에는, 야키소바, 빵……!





  거기에 눈이 박힐 것 같다. 모모카씨가 야키소바빵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움직할 때마다 시선이 쫓아가고,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모모카씨가 팔을 올리고 높이 올리고 말아서 닿지 않게 되어서, 폴짝폴짝 뛰며 팔을 휘두르다가 정신을 차린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빵을 뺏으려 하다니 안 된다. 신음하면서 터벅터벅 자리에 돌아간다.


  “장난 쳐서 미안해. 사쿠라코. 자, 이거 줄게.”

  모모카씨가 뒤에서 날 안으면서 내 손에 야키소바빵을 올린다.


  “저, 정말!?”

  “응. 사양하지 말고 먹어.”

  기쁘다! 야키소바빵! ――――아니, 안 된다! 나는 모모카씨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니까!


  “여, 역시, 필요 없어요!”

  “어째서? 나, 한 가득 샀으니까 하나 정돈 괜찮아.”


  코로케빵, 쵸코코로네, 샌드위치, 프랑크 소세지빵 등등, 산처럼 쌓일 정도의 빵이 모모카씨의 가방에서 후두두둑 책상 위로 흐른다.


  “!!!!!”

  보, 보물산이다……!

  지금 내겐 금괴처럼 빛나 보인다!


  “사양하지 말고 먹으렴.”

  내 손에 오른 야키소바빵도 또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피, 필요 없어요……! 그게, 저는 모모카씨의 적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모모카씨의 책상에 야키소바빵을 올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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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거 거짓말! 미안! 농담입니다!”

  “에…….”


  상처 입은 표정을 보고 따끔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쪽이 먼저 고백하고서, 이쪽이 거절하다니 비상식에도 정도가 있다.

  게다가 농담이라니 뭐야!

  벌 게임으로 고백하고 사람 마음을 뒤흔든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악의 행동이잖아 이거!


  “그, 그게. 나, 타카나시군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텐션이 올라서 고백하고 말았지만, 타카나시군에 대한 것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고백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생각해서. 타카나시군도 가볍게 받아들이면 안 돼. 내가 어떤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어떤 사람인지는 사귀고 나서도 알아갈 수 있잖아?”

  “……타카나시군은 아이돌이잖아?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뿌리거나, 타카나시군의 사진을 주간지에 팔아 치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괜찮아. 사무소의 힘으로 지울 수 있으니까!”


  라는 것은…….

  “……당한 적 있구나.”

  “윽…….” 타카나시군이 숨을 삼켰다.

  “그랬었지……. 상냥하고 좋은 아이여서,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트위터에 내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주변 사람에게 이것저것 말해서 큰일이……. 이제 두 번 다시 타인 따위 좋아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는데 바로 마음이 들떠서……. 나에겐 푸치만으로 충분한데…….”


  군데군데 털이 빠진 꼬리를 흔드는 푸치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완전히 침울해지기 시작해진 타카나시군에게 나는 당황하고 만다.

  상처 입은 사람을 거기에 더해 침울하게 만들다니 뭐하는 거야 나!

  “미미미, 미안! 상처를 벌릴 생각은 아니었어.”


  당항하여 타카나시군의 얼굴을 살핀다.

  ――――헛, 이건 설마!

  “혹시 나 싫어졌어!? 먼저 고백해 놓고 멋대로 거절하고, 괜한 말을 해서 상처를 벌리는, 무신경한 나 따위 때리고 싶을 정도로 싫어졌을까!?”

  “에, 에에……?”


  타카나시군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 그렇게 정서불안정한 사람으로 보여? 이 정도로 사람을 때리는 건 엄청 끊어지기 쉬운 사람뿐이지만…….”

  유감이다……. 날 미워하게 된다면 미션 성공이었는데……. 실망감 때문에 어깨를 떨어뜨리고 만다.


  “……실망한 것 같네. 내게 미움을 받으면 기쁜 거구나. 어째서? 누군가에게 무슨 소리 들었어?”

  에?

  “아, 아니야.”

  “아까 전의 고백도 이상했고. 누군가에게……, 내게 미움을 받도록 행동하라고 명령이라도 받은 걸까?”

  “아니야, 아니야! 아니니까! 그런 일 없어!”


  당황하며 부정한다. 내 배후에 악역이 있다고 보이면 큰일이다. 이 세계의 악역은 나니까. 만일에라도, 내가 ‘누군가의 명령으로 미움 받도록 행동하고 있는 피해자’라고 보이면 안 된다.

  “……메일 주소 교환하자.”

  타카나시군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우, 으음……. 이건 해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메일 주소 교환이란, 친구의 증거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나는 타카나시군에게 미움을 받아야만 한다. 메일 교환을 거절해서 미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 정답일까.


  “이거, 줄테니까.”

  타카나시군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게 보였다.

  뿜을 것 같은 입을 가린다. 푸치가 너무 재밌는 바보얼굴로 자고 있는 화면이 표시되어 있었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진을 받는다. 사쿠라코의 바탕화면은 기본 그대로였다. 푸치의 화면을 바탕화면으로 하고, 또 혼자서 뿜고 만다.


  깜짝 놀라고 있는 푸치를 쓰다듬고 나는 일어섰다.

  “슬슬 나가자. 우리 아빠, 시끄러우니까. 학교 땡땡이 쳤다고 들키면 화내실 거야.”

  “응.”


  타카나시군이 한 손으로 푸치를 안고,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걷는다. 아니아니아니, 손을 잡고 걷다니 연인 같은 짓은 할 수 없다구요.

  파닥파닥 손을 휘둘러 뿌리치고 혼자 걸었지만, 이번엔 옆에 나란히 선 타카나시군이 허리 부근을 잡혀서 또 파닥파닥 거린다.

  “사쿠라코는……, 햄스터 같네. 움직임이 아기자기한 게 귀여워.”

  어라? 어째서 이름을……. 그런가. 아까 전에 주소 교환했을 때 내 이름도 같이 표시된 거다.


  “타카나시군도, 이런 장소에서 여자를 만져선 안 된다고. 들키면 어쩌게?”

  “괜찮아. 나, 다른 멤버에 비하면 전혀 인기 없고. 인기 선거도 표 차이 엄청 나게 최하위였으니까.”

  그런가, 라니 어떻게 대답하면 되는 거야?


  “오, 빌어먹을 꼬맹이 아니야. 잠깐 일로 와라.”

  위로해야 하나 웃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낯익은 목소리가 날 불러 세웠다. 잡화점의 아저씨였다.

  들은 대로 다가가자, 큼지막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어제, 개를 감싸다가 빗자루로 맞았지? 역시 멍이 들었잖아. 여기, 이거 붙여둬라.”

  아저씨의 말대로 빗자루로 맞은 오른손에 검푸른 멍이 들었다.

  파스를 손등에 붙여준다. 시원해서 기분 좋다. 이 아저씨, 상냥하네. 사쿠라코에게 ‘냄새 나’라든가 ‘더러워’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신경 써 주다니.


  “감사합니다.”

  손등을 쓰다듬으며 감사를 표한다.

  “오우, 형씨가 그 개의 주인인가?”

  “아, 네…….”

  “이 빌어먹을 꼬맹이에게 감사하라고. 가지고 있던 돈 200엔 전부, 너희 개의 먹이값으로 써버려서, 이 녀석의 어제 저녁은 당근 하나였으니까 말이야.”


  아저씨가 큼지막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흔들어서 휘청휘청한다.

  “당근, 하나……???”

  “아아? 너 같은 도련님은 모를 테지만. 그 날 먹을 밥에 곤란한 사람이 이 세상엔 썩을 만큼 있다고. 일본에도 말이지.”

  “그렇, 습니, 까. 사쿠라코. 푸치를 위해서 참아주다니. 미아,”

  “아아아, 아저씨! 그건, 아, 아니에요!”


  사쿠라코는 악역이야!

  비가 오는 날에 불량학생이, 종이박스 안에 버려진 강아지를 줍는 듯한 ‘악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좋은 녀석’ 같은 전개는 필요 없다고!

  “아, 아니야! 내 어제 저녁 식사는 푸아그라와 캐비아와 트뤼프와 대게니까! 하지만 그 개에겐 200엔의 개밥이야! 뭐라도 먹을 수 있는 빈곤한 거지에겐 빈곤한 200엔 짜리 개밥으로 충분하잖아!”


  언젠가 했던 자기소개 기분으로 팔을 꼬고 힘내 본다.

  타카나시군은 내 말 따위 완전 무시하고 있다. 아저씨의 머리 위에 싸아하는 공기가 흘러간다. 상처 입을 것 같으니까, 적어도 딴지 정도는 걸어주세요.

  아차, 조금 울 것 같다.


  팔을 꼰 채로 자신의 말에 후회하며 덜덜 떨기 시작했을 무렵, 타카나시군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깐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푸치를 안은 채로 떨어져 간다.


  “어이, 너. 친구 앞에서 괜한 말을 한 아저씨도 나쁘지만. 캐비아와 트뤼프와 포아그라와 대게는 아니야. 적어도 스키야키 정도로 해 두라고.”

  “아아아아저씨가 괜한 말을 하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어떻게 하실 거에요!!”


  부끄럽기도 하고, 괜한 말을 꺼낸 아저씨에게 화도 나고 해서, 아저씨의 어깨를 퐁퐁퐁퐁 때리고 있자 타카나시군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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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분이든, 개를 키울 수 있는 분은 안 계신가요!?”하고.


  “집 근처에서 개를 보호했어요. 크기는, 7킬로그램 정도에……. 색은 흰색과 검은색의 얼룩이에요. 꽤 늙은 개라고 생각합니다. 눈도 백내장이라서, 털도 빠졌지만, 화장실 처리도 잘 하는 얌전하고 좋은 아이에요. 누군가가――”


  반 친구들은 곤란하다는 듯이 서로를 돌아봤지만, 복도에 서 있던 다른 반 여자들은, 어느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느 사람은 경멸하듯이, 또 어느 사람은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 아니야? 늙은 개를 맡아 줄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뭐야 그거. 키리군 앞에서 좋은 사람 어필?”

  “진짜 짜증.”


  윽. 걸 팀의 냉소에 물러난다.

  “애초에 키울 수도 없는 걸 줍다니. 생명에 대해서 무책임하지 않아?”

  “그렇지. 주웠으면 마지막까지 보살펴야 하잖아. 각오가 없으면 줍지를 말아야지.”

  우윽. 성격 강해 보이는 반장타입 팀의 말에 한 발 물러선다.


  “또 버려지다니, 개가 불쌍해.”

  우으으으윽……. 상냥해 보이는 치유계 타입 팀의 불쌍하다는 말에 쓰러진다.


  교탁 아래에 숨고 싶어지는 충동을 참으면서, 맡아줄 사람이 없을지 교실을 둘러본다.

  확실히 불쌍하지만, 나도 무책임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키울 수 없으니까 별 수 없잖아. 누군가 맡아주세요. 제발 부탁이니까!


  여자아이 집단 안에서, 완전 금발에 화려한 얼굴 생김새를 한 남자가,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대담하게 다가왔다.

  “어디서, 주웠어?”

  “……오우사키쵸 8번지인데……?”


  “그거, 푸치야. 틀림없어! 내 가족이야! 네 집은 어디야? 지금 바로 안내 해줘.”

  지금 바로라니. 아직 하교시간이 아닌데. 라고 말할 틈도 없이 팔을 잡혀 끌어당겨졌다.


  “사쿠라오카 고교 앞에 택시를 부탁합니다. 행선지는 오우사키쵸 8번지입니다. 빨리 부탁드려요!!”

  금발의 남자는 스마폰으로 어딘가 연락하고 있다.


  저항하기는커녕, 가방을 책상에 두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그는 나를 학교에서 끌어내어 택시에 넣어지고 말았다.


  “아빠와 엄마가, 푸치를 버렸었어.”

  택시에 흔들리면서, 타카나시 키리오라고 자칭한 금발 남자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일에서 돌아왔더니, 푸치가 사라져서……! 나는 아이돌이고, 신축 맨션에 푸치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예쁜 개를 사라며 강아지를 사와서, 푸치를 버리고……!”


  이빨을 꽉 깨물고, 살짝 벌린 다리 사이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드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강하게 손을 쥐고 있다.

  “내가 번 돈으로 맨션을 샀는데, 설마 푸치를 버리다니! 푸치는 벌써 16세인데……!!”


  “상처나.”

  떨릴 정도로 강하게 쥔 주먹을 툭하고 가볍게 때린다.

  “푸치는 건강하니까 진정해. 무서운 얼굴을 하면 걱정할 테니까.”

  “응……, 고마워.”


  타카나시군이 겨우 미소를 보였다. 과연 현역 아이돌. 예쁘고 완벽한 웃음이다. 금발에 벽안으로 반짝반짝 눈부시다. 은발 적안의 소라군과 정 반대 색깔이네.


  뒷골목에는 택시가 들어갈 수 없기에 도중에 내린다. 나도 타카나시군도 자연스럽게 빠른 걸음이 되었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말아서, 아빠가 있다면 술병으로 덤비는 게 아닌가 전전긍긍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지만, 열쇠도 걸려 있지 않다니, 어떻게 된 거야? 뭐 훔쳐갈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지만.

  아빠에게 들키지 않도록 푸치는 서랍 안에 넣어뒀었다.

  살짝 뚜껑을 열자 침상용으로 함께 넣어둔 내 이불 위에서 푸치는 임금님처럼 몸을 늘리고 당당하게 자고 있었다. 다녀왔어. 부치――아니, 푸치. 이름, 니어미스였네.


  “푸, 푸치…….”

  타카나시군이 천천히 팔을 뻗어 작은 몸을 쓰다듬는다.

  귀도 거의 들리지 않겠지. 푸치는 몸을 만지는 손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서――――


  “컹! 커커컹, 끄으응, 끄응…….”

  “푸치……! 건강해서 다행이야……!!”

  정말 기뻐 보이는 소리로 울며 타카나시군에게 뛰어들었다.

  ――정말 가족인 거네. 서로가.


  “다행이야. 푸치. 가족을 찾아서.”

  너무 기뻐서 영문을 모르겠는지, 푸치는 타카나시군의 팔을 물며 발버둥치고 있다.

  하고 있는 짓은 흉폭하지만, 소리는 명백히 어리광부리는 목소리였다.


  한 사람과 한 마리는 긴 시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회포를 풀고 있었다.


  아, 그렇지. 잊고 있었다. 타카나시군을 협박해서 사귀지 않으면 안 되었지.

  좋아. 지금 여기에서 말해보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부끄러운 대사고 말이야.


  “타카나시군. 내 남친이 되어도 좋아.”


  팔짱을 끼고 가능한 한 건방진 얼굴로 타카나시군에게 말했다.


  좋아. 완벽하다.


  타카나시군이 비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너 같은 오만한 아이,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지.”――


  “정말!? 나도 기뻐. 푸치 같은 노견을 보호해주는 상냥한 사람을 여친으로 할 수 있다니!”


  ‘신님신님!! 뭔가 평범하게 남친이 됐어 이거 어떻게 하면 돼에에에에에에!!’

  ‘바보냐! 타이밍이 너무 나쁘잖아! 철회해라! 네가 협박하는 관계가 아니면 또 이야기가 바뀌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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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카도 진정해. 덮치지 않았으니까. 사쿠라코가 갑자기 울어서 반사적으로 사과했을 뿐이고.”

  “아, 아이에요. 모모가시. 제가 잘모탄 거예요. 미안하빈다……!!”


  “사쿠라코. 저런 놈을 감쌀 필요 없어. 아니, 저건 남자도 사람도 아니야. 성욕이야. 성욕이 옷을 입고 걷고 있는 거야. 성욕에겐 인권도 권리도 없으니까 내가 처분해 줄게.”


  모모카씨가 박혀 있는 가위를 손에 들고 휘청하며 일어선다. 모모카씨의 손바닥 안에 예리한 가위가 빙그르하고 한 바퀴 돌고 손가락 끝에 멈췄다.


  “아니, 확실히 나, 여자아이 정말 좋아하지만, 사쿠라코 같은 작은 아이에게 억지로 덤벼들 정도로 짐승이 아니니깐.”


  “침대가 있는 방에서 남자와 여자 둘뿐. 거기다가 여자아이가 통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말이지. 한 순간이라도 널 좋아했었던 날 용서할 수 없어.”


  “아아. 옛날엔 오빠, 오빠하며 달라붙는 귀여운 아이였는데. 어째서 이렇게, 호전적으로 큰 걸까. 오빠는 슬퍼.”


  모모카씨와 칸자키 선배는 주위가 얼어붙을 것 같은 살기를 품고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다.

  내 예정대로라면 ‘나……, 이렇게 신을.’ ‘모모카에겐 내가 붙어 있어야……!’라는 애절한 전개가 되어야 할텐데. 어째서 이런 일이!


  “잠만요. 모모가시!”

  하사미 끝을 칸자키 선배에게 향하는 모모카씨의 발을 잡고서 필사적으로 말린다.


  “바퀴가, 바퀴벌레씨가 전부 나쁜 거예요! 바퀴벌레로 다시 태어나다니 절대로 싫어어어!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바퀴벌레? 다시 태어나?”


  모모카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 옆에 웅크려 앉아, 가위를 옆에 둔다.

  다행이야. 모모카씨와 칸자키씨가 싸우기라도 했다간 모든 게 끝날 뻔했어!


  나는 착란에 빠져 있다는 것이 되어 그대로 양호실에서 쉴 수 있게 됐다. 모모카씨도 칸자키씨도 나를 신경 쓰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커튼을 닫고서 침대에 누운 내 옆에 빛의 구슬이 나타난다.

  빛은 금새 사라지고 안에서 나타난 것은 당연하게도, 긴 은발의 신님이었다.


  신님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침대 주변의 커튼 전체를 빛의 막이 감쌌다.

  “뭐야, 이거…….”


  “목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한 게야. 이 빛 안에선 아무리 소란을 피우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밖에 있는 녀석들은 알 수 없지.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놈이로고. 떡 치는 것 정도로 이 소란이라니. 음란 핑크 주제에.”


  “음란이라니……. 나, 설마. 에로한 캐릭터야……?”

  신님은 깊게 끄덕였다.

  “에로도 에로. 그보다도 빗치다. 네 명의 남자 전원과 육체관계를 가지고, 네 명 전원에게 무자비하게 차이는 역할이니까 말이야.”


  “우.”

  “우?”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나는 휘청휘청하고 침대에서 내려와서, 커튼을 빙글빙글 말아 원형으로 만든 뒤 높은 위치에 매달았다.

  거기에 목을 넣고…….


  “아버지, 어머니.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만두지 못할까! 평소엔 둥실둥실두둥실 하는 주제에, 어째서 이런 때만 재주가 좋은 거냐! 쓱싹하고 목 맬 도구를 만드는 게 아니다!”


  “나한텐 무리야!! 남자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무리인데, 네 사람이라니! 죽는 편이 차라리 낫다아아!”

  “죽으면 바퀴벌레다! 바퀴, 바퀴벌레야!”


  싫어어어어어! 숨을 머금고, 나는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아, 알았습니다. 이제 야한 짓이든 뭐든 할테니까, 그 전에, 적어도, 고기를 배 한 가득 먹게 해주세요…….”

  “너…….”


  신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뭔가 굉장히 불쌍하구먼.”

  “진짜야! 나, 엄청 불쌍하잖아! 너무하다고.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야한 거 좋아하는 여자도 있을 거 아냐!? 어째서 나를 고른 거냐고오오!”


  수치도 타인의 눈도 신경 끄고 바닥에 쓰러져 엉엉 울고 있자, 신님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요즘 이리 생각하네.”

  “……뭐를?”


  흐느끼면서 신님을 본다.

  “인선 미스였구먼, 하고.”

  “그렇다고!! 그 말대로야! 미스도 미스, 대미스라고! 어떻게 할 거야 이거! 나, 절대로 이야기 그대로 진행할 수 없고, 이 세계 붕괴해 버리는 거 아냐!?”


  “뭐, 신경 쓰지 마라. 이 세계가 붕괴해도, 내 상사의 목이 날라갈 뿐이니까.”

  아아……, 상사씨. 불쌍하게도…….

  그보다도 신님에게도 상사란 게 있는 거구나. 어느 세계든지 살기 힘드네…….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있을 때도 아니지만, 야한 짓이라니 아아아아 무리무리무리. 어떻게든 회피할 방법은 없을까…….


  “슬슬 교실로 돌아가라. 세 번째 역할렘 맴버가 등교했을 테니까.”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세 번째는 ‘타카나시 키리오’. 네 반 친구로군. 대인기 아이돌그룹의 일원이다. 슬슬 등교해서, 반 안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을 쯤이야. 너는 키리오에게 뚜벅뚜벅 걸어가서, ‘내 남친이 되어도 좋아.’라고 말하는 거다.”


  “또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해야만 하는 거구나…….”

  “음. 네 말에, 키리오는 ‘너 같은 거만한 아이, 좋아할 수 없단 말이지.’라고 비웃고, 너는 ‘그 일, 퍼뜨려도 돼?’라고 의미심장한 대답을 하는 거다. 그 일이라는 것은 사쿠라코의 완전한 공갈이지만, 키리오는 뭘 퍼뜨릴지 알 수 없어 경계하여 네 말대로 한다는 거지.”


  이번엔 공갈협박인가……. 슬슬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야한 짓을 하는 것보단 낫나…….


  터벅터벅 교실로 돌아간다.

  교실은 확실히 대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복도까지 여학생이 넘쳐 흐르고 있다. 다른 반에서도 구경하러 온 걸까. 역시 아이돌그룹의 일원…….


  아!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그 녀석을 맡아줄 사람을 찾을 찬스잖아!

  서둘러 교탁에 서서 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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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침이다! 어젠 잘 잤는가?’

  ‘배고프다.’


  ‘오늘도 이벤트가 한가득이야. 긴장하고 가라!’

  ‘배고프다.’


  ‘일단은 전철 안에서 칸자키와 재회부터로군!’

  ‘배고……프다…….’


  ‘어이, 말 좀 들어.’


  미안. 진짜로 힘이 안나. 술냄새 나는 거실 앞을 지나 술병을 안고 자고 있는 아빠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찬찬히 집에서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치에게 아침밥을 주면서, 진심으로 개밥을 먹을까 망설였다.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은 부치의 밥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 참았지만.


  부치는 역시 늙어서 산책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아, 집 뒤를 터벅터벅 돌아다니다가 용변을 본 뒤 바로 지면에 앉아 버렸다.

  앞으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거겠지. 적어도 천수를 누리게 하고 싶다. 어떻게든 맡아 줄 사람을 찾아야. 이대로 내가 키웠다간 아사해 버리고 만다. 내가 먼저 아사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결국 어제 먹었던 것은 당근 글라세뿐이었다. 당연히 아침밥도 없었다.

  배가 고프고 고파서 사고력이 사라진다.

  사고력이 없는 덕분에 이 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에 아무런 저항감도 들지 않았던 것은 좋은 일인가 아닌가.

  “어떻게 요리하면 비누를 두부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 때문에, 여자 몸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신님, 나, 뭘 하면 돼……?’

  ‘전철 안에서 너는 칸자키 신과 재회한다. 신을 유인하여 양호실로 가는 거다. 무사히 양호실까지 도착하면 다시 연락해라.’

  ‘알았어. 한 번 해볼게.’


  어제는 모모카씨와 함께 등교했지만, 오늘은 혼자서 등교한다.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다. 서 있으면 틀림없이 쓰러지겠지. 앉을 장소 없을까? 전철 안을 다 돌아보지만, 유감스럽게도 빈 자리는 없었다.


  어떻게든 찾아낸 좁은 공간.

  양 옆에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아저씨 두 사람에게, “제발 앉게 해주세요. 몸 상태가 안 좋아요.”라고 우는 얼굴로 간원했다.

  아저씨 두 사람은 넓히고 있던 다리를 좁히고, 자리를 비워줬다.


  안심하고 앉지만, 역시 내가 방해물인 거겠지.

  묘하게 팔을 움직여서 내 몸을 밀치거나, 손바닥으로 다리를 누르거나, 얼굴을 가까이 대고 위협한다.

  히익!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흘러 내렸던 머리카락까지 붙잡혔다……!


  잡아 당길 거라고 생각하고 긴장했지만, 잡히고 손바닥으로 노는 정도로 끝났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정도의 심술인 걸까…….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나중에 빗으면 되는 거고.


  “어이, 아저씨. 여자아이를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딸 정도 나이의 꼬맹이에게 치한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아?”

  아, 이 목소리.


  칸자키 선배였다.

  어제 전철 안에서 봤던 부드러운 표정도 아니고, 체육관 단상 위에서 봤던 당당한 표정도 아닌, 지금이라도 당장 덤빌 것 같은 흉악한 표정으로 내 양 옆의 아저씨를 교대로 노려본다.


  “치, 치한이라니 무슨 소리냐. 누명이다!”

  “예, 예의 없긴!! 학교에 연락할 테다!”

  마침 역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저씨 두 사람은 내가 먼저라는 듯이 전철에서 내린다.


  칸자키 선배가 빈자리에 앉았다.

  “……치한이 아니에요. 좁은 자리에 억지로 앉아서, 화나게 한 것 같아서…….”

  자리를 비켜준 친절한 아저씨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여기선 변호를 해두자.

  칸자키 선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냄새를 맡고, 몸을 비비고, 다리를 만지고, 머리를 만지는 것을 치한이 아니라는 건 무리가 있잖아? 사쿠라코, 너무 위기감이 없어.”

  저건 심술을 부렸던 게 아니었나. 뭐야. 치한이라면 좀 더 당당하게 앉아 있을 걸 그랬다. 사양한 나머지 작게 움츠러 들어 있던 게 바보 같다.


  “또 몸 상태 안 좋아? 어제도 체육관에서 쓰러졌고. 몸 약하네.”

  몸 상태가 나쁜 게 아니라, 엄청 배가 고픈 것이지만 말이에요.

  “칸자키 선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학교에 도착하면 양호실까지 안내해주지 않겠어요? 아직 위치를 잘 몰라서…….”


  이거, 꽤 좋은 변명일지도! 이거라면 자연스럽게 양호실까지 데려갈 수 있어.

  “알았어. 자고 있어도 돼. 도착하면 깨울 테니까.”

  “괜찮아요. 선배, 학생회장이셨네요. 어제 인사 멋있었어요.”

  실은 배가 고파서 잘 수 없어요.


  “역시 사귈래?”

  농담처럼 말을 꺼내는 칸자키 선배에게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든다. 그것도 그럴게 이 사람은 모모카씨와 사귀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분명 나는 악역이라는 이름의 큐피트 역이겠지.

  두 사람 사이를 뒤흔들면서, 칸자키 선배와 모모카씨 사이의 연애 감정을 자각하게 만드는 거다.


  칸자키 선배가 나를 신경 쓰게 되어서, 모모카씨가 불안해진 나머지 “……나……, 이렇게 신을 좋아했던 거네……. 신이 사쿠라코를 좋아하게 된 지금에 와서 겨우 내 마음을 알게 되다니……, 이런 건 너무해……! 하지만, 신……!”이라는 게 되어, 뜨거운 시선을 눈치 챈 칸자키 선배가 “어째서 저 녀석, 저런 눈을……. 제길, 어째서 나, 모모카에 대해 생각하면 이런 느낌이 드는 거냐……! 사쿠라코 따위 아무래도 좋아. 역시, 모모카에겐 내가 붙어 있어야……!!”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군요. 압니다!!


  응. 이런 종류의 전개는 소년 매거진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조금 애절하고 눈물 나는 전개지.

  좋아. 두 사람 모두. 사양 없이 나를 발판으로 삼아 행복으로 골인해 주세요. 응원하겠습니다!


  조금 텐션이 오른 나와 칸자키 선배는, 둘이서 양호실 문을 열었다.

  팔찌를 만지고 신님과 통신을 개시한다.


  ‘칸자키 선배와 양호실 침입에 성공했습니다. 오버. 다음 지령을 내려주세요. 대장.’

  “어라? 나츠코씨 안계시네……. 양호 선생님에겐 내가 연락해 둘 테니까 침대를 써도 좋아. 사쿠라코. 1년 몇반? 담임에게도 연락해 둬야지.”


  ‘유인 잘 했다! 훌륭하다!’

  처음으로 칭찬 받았다! 뭔가 기쁘네.

  ‘여기부터 나, 뭐 하면 돼?’

  ‘음. 일단 가방을 다리 밑에 두고, 가디건을 벗고, 블라우스의 단추를 세 개 정도 풀어라.’

  ‘라져.’


  들은 대로 옷을 벗고 단추를 풀고 침대 위에 앉아 선배를 향해서 다리를 연다.

  ‘자, 여기부터가 진짜다. 떡을 치는 거다. 거기서 떡을 치는 거다.’

  ‘떡? 그거 무슨 떡?’


  ‘섹스 말이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양호실의 대소동.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대혼란이다.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팬티를 뻔히 보이는 여자(나 말이다) (스커트 입고 있다는 거 잊고 있었다)에게 구급상자를 맞은데다가, 모모카씨에게 안면을 차인 칸자키 선배도,

  나와 칸자키 선배가 양호실에 가는 걸 복도 끝에서 우연히 목격한 듯이, 상태를 보러 온 모모카씨도,

  설마 에로한 짓을 해야만 된다니 상상도 못한데다가, 게다가 거절하면 바퀴벌래로 전생이라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절망하여 통곡한 나도,


  이미 전부 대혼란이었다.


  “아야야……. 잠깐 나, 좀처럼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겠는데. 사쿠라코, 지금 행동을 설명해주지 않을래?”

  “다가오지 마 짐승아!! 그 이상 사쿠라코에게 다가갔다간 다리에 이걸 박아줄거야!”


  소동 사이에 열린 구급상자에 들어있던 가위를 모모카씨가 테이블에 푹 찔렀다.

  리놀륨 코팅의 테이블이었는데, 가위가 똑바로 설 정도로 박혔다. 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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