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엔 아빠가 있지?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데…….”

  “이벤트 상대가 아버지다. 포기해라.”

  “에, 그래!? 싫은데…….”

  나는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가려 했지만, 계단을 밟음과 동시에 배가 울었다.


  윽, 배가 고파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단 밥을 먹자. 부엌에 들어가서 내 키보다 작은 문 2개의 냉장고를 연다.

  “……아무것도 없어…….”

  냉장고에는 설탕과 소금, 간장과 식용유가 들어가 있을 뿐 식재료는 하나도 없었다. 냉동실에도 얼음뿐.


  부엌 찬장이나 서랍까지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과자는커녕 컵라면도 통조림도 아무것도 없다. 쌀조차 없다.

  포기하고 아빠와의 이벤트를 진행하기 위해 텔레비전 소리가 나는 거실로 향했다.

  아빠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다.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이다. 지방 디지털 튜너가 배선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연결되어 있다.


  “사쿠라코. 술 사와라.”

  내가 있다는 걸 눈치 챈 아빠는, 술병을 올리고 내게 500엔을 두 개 던졌다.


  “저기, 저녁밥 재료도 사고 싶은데.”

  그 술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천엔으로 저녁밥 재료까지 사는 건 무리겠지.

  “저녁밥이라고? 그런 건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술이나 사와!”


  필요 없을 리가 있나!

  “아침도 저녁도 먹지 못해서 배고프다고……. 빵 하나라도 좋으니까 뭔가 먹고 싶어.”

  “시끄럽다! 빨리 사와!”


  발밑으로 병이 떨어지고 쿵하고 무거운 소리가 울었다. 서둘러 집을 나와 터벅터벅 뒷골목을 걷는다.

  어디서 사면될까? 편의점에 술을 팔던가?

  “배고프네…….”


  “쉿쉿! 절로 가라!”

  하얀 앞치마를 입은 요즘 보기 힘든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낡은 모자를 쫓아내고 있다.

  아니다. 모자가 아니다. 털이 푸석푸석하고, 여기저기 빠져있어서 모자 같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개다!


  “자, 잠깐만요. 우와!”

  개를 감싸고 몸을 작게 만다. 빗자루는 있는 힘껏 내 왼손등에 직격했다. 찡하고 저릴 정도로 아프다.

  아, 아주머니. 너무 손대중이 없잖아요! 이런 작은 개를 상대로!


  “엉? 레이센인의 바보 년, 네 개야? 빨리 데려가 버려! 정말. 너희 집은 제대로 된 게 없다니까……!”

  “제, 제 개가…….”

  아니지만. 아주머니는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끄응, 하고 개가 울고, 꼬리를 흔들며 내 뺨을 핥았다.

  개의 눈은 하얗게 바래있다. 이거, 백내장이다. 털도 그렇고, 아주머니에게서 도망칠 때의 휘청거리는 발걸음도 그렇고. 꽤 나이 먹은 개인 거겠지. 개목걸이는 없다. 이런 아이가 개목걸이 없이 달아났다고 생각하기 힘드니까, 분명 버려진 걸 거다.


  “너, 이제 눈, 보이지 않는 거구나. 곤란하네. 나, 자신의 밥을 먹는 것도 곤란한데…….”

  쫓아내는 것도 할 수 없기에 개를 안고서 걷는다.

  뒷골목을 청소하고 있던 허리가 굽은 아주머니에게 ‘오니고로시’라는 술을 파는 가게를 묻는다.


  아주머니의 설명대로 걸으니 오래된 나무틀에 유리문이 달린 잡화점이 있었다.

  개(흰색과 검은색의 얼룩이니까 ‘부치’라고 부르기로 했다)를 가게 앞에 기다리게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앉아, 라고 했더니 정말 앉아서 놀랐다. 똑똑한 개다.


  “실례합니다…….”

  가게 안에는 복대와 하얀 내복을 입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아앙? 하고 신문에서 시선을 올린다.

  무서워 보이는 사람이네. 아, 오니고로시 있다. 오니고로시는 980엔이었다. 역시 저녁밥은 살 수 없다.


  추욱하고 어깨를 떨궜을 때, 스커트 주머니에서 찰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돈 소리――그런가. 모모카씨에게서 돌려받은 200엔. 넣은 채로 잊고 있었다! 해냈어. 빵을 살 수 있어!

  딸기잼의 빵에 손을 뻗으려다가――. 한단 아래의 개통조림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개용 통조림.

  대특가, 2개에 200엔.

  나 혼자서 밥을 먹고, 부치에게 밥을 주지 않을 순 없지.


  빵을 되돌려 놓고, 오니고로시와 개통조림을 카운터에 놓는다.

  “계산, 부탁드려요.”

  “네게 팔 물건은 없어.”


  에!? 어, 어째서!?

  “뭘 놀라는 거야? 너처럼 ‘가게가 더럽다’느니 ‘냄새나’라느니, 일하고 있는 내게 ‘패배자’라느니 있는 대로 지껄이는 빌어먹을 년에게 팔 물건은 없다. 빨리 나가 버려.”

  우와아……. 사쿠라코 그런 캐릭터였나.


  “무례한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과할 수밖에 없다. 찬장에 오니고로시와 통조림을 되돌려 놓는다.

  통조림을 되돌려 놓았을 때, 야키소바빵이 눈에 들어와서, 꼬르르륵하고 배가 울고 말았다.

  야키소바빵이 먹고 싶다. 빈곤함이 몸서리게 슬프다.


  편의점을 찾아야지.

  “뭐야 너. 배고픈 거냐?”

  “…….”

  말을 할 기운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 돌고 멍하고 울면, 이거 네게 주지.”

  아저씨가 손에 든 것은 바구니에 든 당근(하나)였다.


  빙글, 빙글, 빙글, “멍! 감사히 받겠습니다! 앗싸, 당근 글라세 해서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어이, 잠깐 멈춰 야! 여기선 ‘뭘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빌어먹을 아저씨’라고 말해야 하는 거잖아! 뭘 평범하게 돌고 있는 거냐, 겨우 당근 때문에! 정말로 돌아버리면 이 아저씨가 엄청 나쁜 사람이 되잖아!”


  “겨우 당근이 아니에요! 귀중한 식량입니다. 돈이 없으니까 오늘 저녁밥 못 먹을 참이었다구요. 빙글 도는 정도로 받을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돕니다.”

  “뭐냐 대체. 너, 마치 다른 사람 같다고.”


  다른 사람입니다. 아무튼 당근을 뺏기지 않기 위해 확실히 잡고 있다.

  “영문을 모르겠네……. 뭐 됐어. 술과 통조림도 가져와. 팔아줄 테니까. 당근도 빼앗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잡지 말라고. 부러진다.”


  다행이다. 이걸로 아빠에게 혼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개통조림 살 돈이 있으면 밥을 사라고. 너희 집에 개 같은 게 있던가?”

  “아까 전에 늙은 개를 보호했어요.”

  “늙은 개? 가난한 주제에 키울 수 있냐?”


  “무리지만……, 이 밥이 없어지기 전에 맡아줄 사람을 찾을 거에요.”


  통조림 두 개로는 아무리 버텨도 내일가지다. 내일, 바로 학교에서 물어보자.

  아저씨는 투덜투덜 뭔가 말하면서 종이박스와 오래된 신문까지 줬다.

  팔에 술병이 든 봉투가 파고들어서 아프지만, 흔들리지 않게 신경 쓰면서 종이박스를 안고 집에 돌아간다.

  부치가 세 마리 들어가도 아직 공간이 남을 정도의 종이박스 안에서, 부치는 기분 좋게 자고 있다.


  아빠가 눈치 채면 화낼 테니까, 몰래 부치를 내 방으로 옮기고서 아빠에게 술을 가져간다.

  식기장 안에 쓰지 않을 것 같은 접시를 꺼내서, 박스 안에 물과 개밥을 넣자 부치는 느긋한 속도로 개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밥을 준비한다. 조리실습에서 배운 당근 글라세. 내가 유일하게 잘 하는 요리다.


  아빠에게도 작은 접시에 올려 가져가 봤지만, 아빠는 “이런 가난해 빠진 걸 먹을 수 있겠냐!”라며 접시를 뒤집어 버렸다. 응. 예상은 했었다. 다행이다. 조금밖에 올리지 않아서.

  뒤집힌 접시를 정리하고 더럽혀진 글라세를 울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내 방에서 혼자서 당근 글라세를 저녁밥으로 먹는다.


  당근 하나로 배가 부를 리가 없는 게 당연하지만, 당분이 머리에 돌았기 때문인지, 사쿠라코에 대한 걸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일단은 개인정보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휴대폰을 본다.


  메일 수신이력에는 메일매거진과, 소거방지 락이 걸린 엄마의 메일밖에 없었다.

  발신이력에는 아빠에 대한 메일밖에 없고, 전화 착신과 리다이얼에 있는 것도 역시 아빠뿐이다.

  주소장도 봤지만, ‘선생’, ‘엄마’, ‘아빠’의 정보밖에 없다.

  어라? 이상하네.


  ‘저기, 신님. 사쿠라코는 세자리수 이상의 남성과 사귀었다고 했었지? 주소장에 가족밖에 없는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너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뭔가 치유 받는 느낌이구먼. 마쵸 대행진의 전직 여자는 죽이냐 죽이지 않느냐의 연락밖에 하지 않는데……. 미안하네. 이야기가 벗어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부 거짓말이야. 사쿠라코는 중학교에선 얌전하고 수수해서 친구도 만들지 못하는 아이라, 고등학교 데뷔를 힘내던 참이었던 게지.’


  ‘에엥……? 수수한 아이였어? 고등학교 데뷔에 힘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갑자기 남자와 키스하는 여자아이가 되다니. 너무 튀었잖아 사쿠라코…….’

  ‘자신은 먹는 것도 곤란할 정도로 가난한데, 다른 학교 친구들과 즐겁게 걷고 있는 모모카를 보고 어두운 감정이 폭발한 게지. 모모카는 중학교 시절의 자신과 같을 정도로 수수한 아이였는데. 어째서 저 여자만이 저렇게 행복한 것인가, 라는 느낌이야. 초반은 모모카를 괴롭히면서, 모모카에게 다가가는 모든 남자를 뺏는다는 전개가 되는군.’


  ‘하지만 나, 모모카씨를 괴롭힐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밉다고 말했는 데도 전혀 듣지 않고. 이거, 전개 이상해진 거지?’

  ‘완전히 이상해졌다. 하지만……, 아직 수정 가능한 범위이긴 하지. 아무튼 넌 네 명의 남자들과 플래그를 세워라. 피치 매직은 역할렘 만화야. 최종적으로 남자들이 모모카에게 반해서, 모모카가 사랑을 받으면, 이 세계(만화)의 창조신(작가)도 납득할 것이니.’


  ‘모모카씨, 미인이고. 스타일도 빠방한 느낌으로 박력 있고. 전혀 수수하지 않다고. 내버려 둬도 인기 만점일 거야. 절대로.’

  ‘이야기는 완급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위기에 몰리는 일도 없이 평범하게 있었더니 평범하게 인기 만점이었다는 만화야 말로 재미가 없잖은가.’


  그것도 그런가. 어렵네.

  밥은 아직 남아있지만, 배가 가득 찬 것인지 내 얼굴을 보며 부치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상자에서 꺼내자 달콤한 목소리를 내면서 내 손을 깨문다.

  귀엽다. 부치만이 나의 안식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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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기다려, 아래까지 같이 가자.”

  모모카는 불러 세우고, 사쿠라코를 쫓아 복도로 나왔지만 거기에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어라? 사쿠라코…….”

  달려서 계단까지 확인해 보지만 역시 없다.

  먼저 돌아간 것 같다.


  “괜찮을까…….”

  불안해진 모모카는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말하고 만다.


  레이센인 사쿠라코는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놀랄 정도로 위험해 보여서, 눈을 떼면 불안해지고 만다.


  전차 안에서 신에게 안겼을 때, 엉덩이를 잡혔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양호실에서 자고 있었을 때, 근처에 있던 소라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는데도 여기에도 역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남자에 대한 경계심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거다. 저래서야 마치 유치원생이나 보육원생이다.


  걸을 때에도, 지금 당장이라도 스커트가 말려 올라갈 것 같은 대담한 걸음 걸이라, 보고 있으면 참을 수가 없다.

  저런 무방비하고 성추행을 당해도 성추행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아이로선, 언제 위험한 꼴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뭔가, 행동이 지리멸렬한 것도 신경 쓰인다.

  갑자기 ‘미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엔 굉장히 놀랐다. 태연한 척을 하며 지나갔지만, 꽤나 상처 입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건지 너무 수수께끼다.


  사쿠라코에 대해서 오지랖이 심하단 건 알고 있다.

  정말로 싫어한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겠지만. 아무리 봐도 사쿠라코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지만…….”

  본인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


  그렇다 해도 작고 귀여운 아이다.

  때때로 생각 났다는 듯이 눈꼬리를 치켜 올리지만, 사쿠라코는 대부분 곤란하단 듯한, 망설이는 듯한, 저도 모르게 안고 싶어지는 소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

  웃을 때에도 ‘이 아이의 아군은 나 밖에 없는 게 아닌가.’싶은 착각이 들 정도의 만면의 웃음으로 미소 지으니까 참을 수 없다.


  과자와 우유를 건냈을 때의 기뻐하는 얼굴은 정말 좋았다. 사진으로 찍어서 액자에 걸어 놓고 싶을 정도다.

  여자인 자신조차 이렇게 귀여운데 남자들이라면 한 순간도 참을 수 없을 것이 틀림없다.


  “모모카. 사쿠라는?”

  낯익은 목소리에 뒤돌아본다. 은색의 머리카락과 적안. 그리고 여성스러운 풍모의 의붓동생이다.

  “돌아갔어. 사쿠라코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잖아?”

  “친구가 될, 뿐.”


  모모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같은 나이의 의붓동생을 바라봤다.

  양친이 재혼하고 아직 3개월. 이 의붓동생과 같은 지붕 아래에 살기 시작한 것도 같은 기간이다.


  그렇게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수상쩍은 남자다.

  여자라고 해도 통용할 정도의 귀여운 풍모에, 태생은 일본이지만 모친의 일 때문에 해외를 전전하며 이주하며 자랐기에, 어린아이처럼 더듬더듬 말한다.


  용모도 더해서, 더듬더듬이나마 성실하게 말하는 모습이 귀엽게 비친다. 하지만 아무래도, 방심할 수 없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입학 대표로 뽑혔다는 건 입학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이란 거다.

  물론 국어 성적도 높지 않으면 뽑힐 수 없다.

  필기로 점수를 딸 수 있는 사람이, 일상회화가 부자연스럽다는 건 조금 생각하기 힘들다. 일상회화를 더듬더듬 말하는 건 연기, 혹은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어라? 사쿠라코는?”

  “벌써 돌아갔어.”

  같은 질문에 이번엔 담백하게 답한다. 모모카의 소꿉친구며 이 학교의 학생회장이기도 한 남자, 칸자키 신이다.


  “그런가……. 그 아이, 위태로워 보이니까 데려다 주려고 생각했는데…….”

  “끌어안은 너도 충분히 위험하다고.”

  “아니, 설마 그렇게까지 무저항일 줄은 몰랐는걸. 이 오빠도 깜짝 놀랐어. ……연락처는 받았어?”


  “아직. 듣는 걸 잊어서.”

  “빨리 교환해 두라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네게 연락할 수 있도록 말이야.”

  “듣지 않아도 알고 있어.”


  돌연, 신이 소라의 머리에 춉을 날렸다.

  “익!”하고 소라가 비명을 삼킨다.


  “뭐, 하는.”

  “너, 신입생 인사를 내던지고, 게다가 선생님이 불러도 도망쳤지? 입학 첫날부터 눈밖에 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자, 학생지도실로 간다.”


  소라는 어금니를 드러내는 듯한 표정으로 신을 노려봤지만, 신의 시선이 돌아간 순간 옆면을 향해 하이킥을 날렸다.

  소라의 키는 170정도지만, 180의 신의 얼굴에도 닿을 높은 발차기였지만――.


  ――――팡!

  사각에서 뻗었을 터인 공격이 신의 손바닥에 막히고 만다.

  “으…….”

  “갑자기 발차기라니 너무한 거 아냐? 발 버릇 나쁘네. 진짜…….”

  “싫다. 놔. 살려줘. 모모카!”


  신에게 팔을 잡혀서 발을 구르며 저항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의붓동생에게 모모카는 고개를 저었다.

  “설교 정도는 듣고 오라고. 양호실에 옮겨주겠다고 한 학생들을 뿌리치고 사쿠라코를 양호실까지 데려간데다가, 양호실 기둥에 달라붙어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잖아? 네가 그렇게 저항하는 사이, 계속 우리들은 기립한 채로 기다렸다고. 자업자득.”


  의붓누나의 도움이 없다는 걸 알고, 소라는 더더욱 허리를 떨구고 양 발로 버텼다.

  “이거 놔. 큰놈.”

  “됐으니까. 나쁜 말은 하지 않을 테니 이 오빠가 하는 말을 들으라고. 어리광쟁이냐? 너는.”

  “놔!”

  “아, 진짜. 귀찮게 구네.”


  신은 은발의 머리를 한 손에 쥐고는, 쿵 하고 기둥에 부딪쳐서 뇌진탕을 일으키고 질질 끌고 갔다.

  “손대중은 해주라고. 그래도 내 의붓동생이니까.”

  “그럼 예의범절 정돈 가르치라고.”

  지친 목소리를 내는 뒷모습에 쓴웃음을 짓고, 모모카도 또한 하교하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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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카씨가 머리를 쓰다듬는 사이에 나는 다시금 팔찌에 손을 댔다.

  ‘바보! 속공으로 빈궁하다는 걸 밝혀서 어떻게 하나! 빈궁의 극치인 주제에 부자인 척한다는 것은 중요한 팩터라고! 뭐, 됐어. 그보다도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게냐? 모모카가 네게 가지는 호감도가 엉망진창이잖아.’

  ‘엉망진창이라니. 뭐가?’


  ‘원작대로의 전개라면 모모카는 지금, 네가 꺼림칙하다고 느끼고 있을 게다. 그런데, 너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지. 이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미움을 받아라.’

  ‘미움을 받다니 무리야……. 모모카씨, 날 친구라고 해주는걸.’

  ‘말해두겠는데.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피치 매직‘ 세계의 등장인물이다. 통행인이나 반 친구에 이를 때까지 전부 말이지. 종이 위의 존재에게 미움을 받든,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겠지.’


  ‘그, 그것도 그렇……얼까나?’

  쉬는 시간이 와서 선생님이 허둥지둥 교실에서 나갔다.

  좋아. 모모카씨에게 미움 받기 위하여 악역다운 행동을 취하겠어. 그 전에…….


  “이거, 받아주세요.”

  양손 위에 200엔을 올리고, 사극의 탐관오리가 정승에게 뇌물을 바치는 듯한 이미지로 돈을 돌려줬다.

  지갑 안에는 200엔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부족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괜찮다고 했잖아?”

  “받아주지 않으면 곤란해.”

  “어째서?”

  모모카씨가 이상하단 듯이 눈을 껌뻑였다.


  “그, 그게. 나는, 모모카씨를 미워하니까!”

  모모카씨를 가리키며, 배후에 콰광하는 문자가 나올 듯한 기세로 나는 말했다.

  실로 악역이다! 처음으로 나, 악역 다운 행동을 할 수 있었어!


  분명 모모카씨는 눈을 적시고 울면서 뛰쳐나갈 거야.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이오리 야마토’와 플래그를 세운다.

  이오리군. 아직 옥상에 있겠지? 불량이라니까 분명 있을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모모카씨를 울리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걸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거야!


  …….

  “흐응?”


  모모카씨가 몸을 내게로 돌렸다.


  길고 육감적인 곡선의 다리를 꼬고, 책상에 오른팔꿈치를 대고 뺨을 올린다. 왼팔뚝을 의자 뒤로 돌리고서, 아래로 쏘아보듯이 나를 본다.


  …….

  “어느 정도로, 미워?”

  “거짓말입니다농담입니다미안합니다듣지않은걸로해주세요죄송합니다.”


  아, 아우라가! 시커먼 아우라가 모모카씨의 후방에서 뿜기고 있어!!

  밀도가 높아서 모모카씨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아우라인데, 맹금류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안광만이 아우라 안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어!! 무서워, 이 사람 초 무서워!


  어째서야! 나, 제대로 했잖아! 졸개가 패왕에게 맞서는 듯한 이 절망감은 뭐야!?

  모모카씨는 매다! 혹은 독수리다. 그리폰이다! 나 같은 병아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나는 의자에 고쳐 앉아, 잠시 동안, 모모카씨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숙이고 떨었다. 뺨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정말, 그런 농담하지 마! 충격 때문에 울 뻔했잖아! 자, 이거. 아까 전부터 필요 없다고 했지?”

  모모카씨는 입술을 비틀며 화난 얼굴로 떨고 있는 내 손에 200엔을 올렸다.

  우우우우울뻔했다니, 거짓말이 심하다. 오히려 내가 울 것 같다구요. 모모카씨가 무서워서!


  내가 200엔을 받은 것을 확인하고, 모모카씨는 웃었다.

  가장 처음에 봤던, 눈꼬리가 내려간 예쁘고 부드러운 얼굴로.


  “밉다니. 두 번 다시 그런 말 하지마?”


  무서워요…….

  살짝 팔찌에 손을 댄다.


  ‘신님.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건가요…….“

  ‘어떻게든 저떻게든, 나도 예측 불가능이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연락해라. 일단 작전회의다.’


  길었던 학교 시간이 겨우 끝나고, 나는 종례 인사와 동시에 일어섰다.

  “이제부터 부활동 권유 보러 가지 않을래?”

  모모카씨가 권유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친구가 불러서 바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게다가……사정이 있어서 부활동은 할 수 없으니까.”

  “그래?”

  “응. 그럼 내일 봐.”


  손을 흔들고 교실에서 나간다.

  “잠깐 기다려. 아래까지 함께 가자.”

  하고 모모카씨가 말해서, 그럼. 기다릴까 하고 멈춰섰다. 그 순간, 나의 평형감각이 이상해졌다.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배경이 학교가 아니라, 사쿠라코의 방이 되었다! 신고 있던 실내화도 사라졌다.

  “우와!? 뭐야!? 어떻게 된거야?”

  “이 머저리가!!”


  접혀 있는 이불 위에 떨어지는 동시에, 딱, 하고 머리를 맞아서 너무 심한 아픔에 구르고 말았다.

  “뭐, 뭐하는 거야……!”

  신님이 불을 뿜을 듯한 기세로 격노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수고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너, 할 마음은 있는 거냐!”


  “할 마음은 있어도. 솔직히, 무리입니다…….”

  풀썩, 하고 이불 위에 쓰러진다.

  신님은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고 작은 팔을 꼬았다.


  “하나부터 열까지는 너무했다. 몇 가지 플래그는 세웠으니까. 뭐,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라고 하겠지.”

  훌륭한 낙제점이네요.

  “하지만 모모카의 움직임이 예측불가능이군……. 원래대로라면 너는 양호실에서 소라와…….”

  “소라군과?”


  신님은 고개를 젓고 말을 끊었다.

  “뭐, 됐어. 자, 1층으로 가라. 새로운 이벤트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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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먹어.”

  모모카씨는 싫은 얼굴 하나 없이 콩으로 만든 칼로리메이트와 팩으로 된 커피우유를 가져와 줬다!


  “가, 감사합니다……! 아침밥을 안 먹어서, 살았어요……!”

  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앉아 봉투를 연다.

  “경어는 필요 없어. 옆 짝꿍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주면 기쁘겠는데.”

  모모카씨가 상냥한 눈가를 살며시 가늘게 한다.


  “아……, 응. 저나야말로. 잘 부탁해!”

  저라고 할 뻔한 걸 당황하여 나로 바꾸자 일인칭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저나라니 뭐야?”

  모모카씨가 폭소하고서 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정말, 사쿠라코는 귀엽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신경 쓰인 건데. 오늘 아침부터 계속, 남자에게 성추행 당한 거 알고 있었어?”

  “성추행? 별로, 당하지 않았는데……?”

  “당했어. 신은 갑자기 안기나 하고, 소라는 당장이라도 닿을 듯이 접근하고. 저런 건 바로 싫다고 하지 않으면 위엄해. 여자아이니까.”


  그런가…….

  확실히 그 말대로다. 끄덕이고 나서 신경 쓰였던 점을 물었다.

  “소라군이라니. 모모카씨의 지인?”

  “지인이라고 해야하나……. 의붓동생이야. 내 아버지와, 쟤 어머니가 재혼했을 뿐이니까. 피가 이어진 건 아니지만. 성도 다르고.”


  설마하던 동생! 하지만 주인공의 형제남매란 만화의 주요등장인물이니까. 납득.

  콩 칼로리메이트와 우유를 배에 넣은 덕분에 조금은 안정됐다.

  “맛있다……! 고마워 모모카씨. 교실에 돌아가면 돈 줄 테니까.”

  “필요 없어. 친해진 기념 선물. 겨우 200엔이지만.”

  “그럴 순 없어. 자, 교실로 돌아가자.”


  교실이 어딘지 몰랐기에, 앞을 걷는 모모카씨의 뒤를 따라간다.

  길고 풍성한 흑발의 포니테일이 걸을 때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린다.

  쭉 뻗은 배근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허리의 라인과 스커트에서 뻗어 나가는 어른 여자 같은 섹시한 다리가 눈을 끈다. 실은, 가슴도 크다.


  이게 ‘수수하고 어른스런 여자아이’라는 거니까, 소녀만화는 알 수 없단 말이지.

  덧붙여 내 몸은 전체적으로 평평하다. 가슴 없음. 남자인 내가 위화감 없을 정도로 없다. 불쌍한 사쿠라코.

  교실은 선생님의 학교 설명 와중이었다.


  “양호실에서 돌아왔습니다.”

  “오우. 그럼, 너희들도 자리에 앉아라. 아아, 겸사겸사 자기소개도 할까? 레이센인부터.”

  “에!? 아, 네!”


  반 친구들의 주목을 받으며, 나는 당황하며 창문 근처의 자기 자리에 서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악역답게, 눈에 꾹하고 힘을 넣어서.

  “처, 처음뵙겠습니다. 레이센인 사쿠라코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것뿐인가?”


  앉으려고 했지만, 선생님의 말에 다시 일어서고 만다.

  달리 무슨 말을 하라고?

  “너, 남자 좋아하는 듯한 얼굴이잖아. 남친 모집중입니다, 라든가. 경험은 세자리수입니다, 라든가. 말하지 않는 건가?”


  휘청.

  덜컹! 하고 의자에 무릎을 부딪치고, 풀썩, 하고 그 자리에 앉고 만다.

  나, 그런 얼굴이었어……?


  싸악하고 얼굴에서 피가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선생님. 저질이에요.”

  모모카씨가 차갑게 내뱉는다. 그 뒤를 따르듯이 남자들도 여자들도 “그건 아니야.” 라든가 “짜증.” “최저.” “있을 수 없어.”라는 둥 야유가 날라 간다.


  “아니아니, 미, 미안하다. 하지만 너도 나쁘다고. 레이센인. 조금만 움직여도 팬티가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농담에 충격 받지 말라고.”

  “……스커트, 처음부터 이 길이였어요…….”

  쾅, 쾅하고 머리 속에서 종이 울린다.


  “에, 자른 게 아니야?”

  앞자리의 여자의 질문에,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그야 이 몸, 악역이고. 겉모습이 나빠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자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충격이 크다.

  “아, 아니. 선생님이 잘못했다. 자, 레이센인도 흘려 들으라고. 응?”

  응, 이 아니야……. 사람을 호색광처럼 말하고서…….


  무릎 위에 쥔 양손에 손끝이, 우연히 팔찌에 닿았는지 신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소개를 고쳐라! 잊고 있었지만 이것도 중요한 전개다. 내 말을 따라 그대로 말하는 거다!’


  “으, 응. 죄송합니다. 자기소개 고치겠습니다! ‘내 이름은 레이센인 사쿠라코. 사귀었던 남자 숫자는 세자리수 정도일까. 내 눈에 들면 남친으로 삼아줄 테니까. 남자들, 내 눈에 들도록 전력을 다하도록.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 집은 레이센인 재벌의 직계. 무례한 짓을 하면, 가족 통째로 바닥에 내앉을 각오를 하라고.’”


  “………….” “………….”

  우와아…….

  뭐야 이 자기소개…….


  신님의 말을 자동서기 상태로 반복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

  이거, 악역 정도가 아니야. 완전히 머리 이상한 사람이잖아.

  “사쿠라코. 그렇게까지, 선생님을 도와주지 않아도 돼.”

  모모카씨가 슬픈 눈동자로 나를 봤다.

  “벼, 별로 도와주거나 그런 게…….”


  내 말에 주변 학생들이 답한다.

  “아니, 완전히 그거잖아. 레이센인 상냥하네.”

  “선생님 진짜 최악이에요. 이거.”

  “응. 완전 끔찍. 레인센인이 불쌍해.”


  학생들이 입을 모아 선생님을 공격한다.

  “아니, 하하, 하……. 하지만 레이센인. 네 집, 분명. 사쿠라오카 8번지였지? 선생님도 학생 시절 8번지에 살고 있었지만, 집세 싼 빌라나 판자집이 많은 곳 아니야. 재벌이라니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 아아, 하지만 최근 커다란 저택이 들어섰지! 정원이 이 교정만큼 넓은――. 거기가 네 집인가?”

  “아뇨. 판자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회사가 망해서. 친척들도 절연 했으니까.”


  진짜로 부자라고 오해를 받았다간 큰일이 날 것이기에 당황하며 부정하니, 쩌적하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으로 선생님이 굳었다.

  “서, 선생님――.”

  단지 책망하는 눈으로 보던 학생들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사쿠라코. 이제 됐어. 앉어.”

  덜컹하고 의자를 울리고 모모카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즈키 모모카입니다. 사쿠라코의 친구입니다. 사쿠라코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설령 선생님이라도.”

  그것만을 말하고 모모카씨는 자리에 앉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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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식에선 키 순서로 나열했다. 우리 반, 1학년 3반의 담임은 30대 정도의 남자 선생이다.

  선생님에게 불려 대열을 만들자, 무려 내가 대열의 최선두인 데다 단상의 바로 앞이었다. 키가 작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여자들 중에서 가장 작다니…….


  기립한 채로 국가 제창과 교가 제창이 끝났다.

  다음은 재학생, 학생회장의 환영인사다.


  아.

  단상에 올라온 건 아까 전의 형, ‘칸자키 신’이었다. 아침에 봤던 조금 늘어져 보이는, 가벼운 분위기는 어디에 갔는지 청량하고 믿음직스러운 상급생의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종이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인사를 마쳤다.


  “멋있다. 학생회장.” “그렇네.” “여자친구 있을까?” “있겠지.”

  여기저기에서 여자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감선생의 인사, 교장선생의 인사가 진행되던 때엔, 이미 나는 안 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시야가 뿌옇게 보인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라서 확증은 없지만, 이거 아마도 빈혈이다.

  아침밥 먹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배가 고프다.


  “계속해서, 신입생 대표, 인사.”

  여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체육관을 울린다.

  앞을 지나간 것은 은발에 적안을 한 남자였다. 여성스러운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사람, 절대로 주요 캐릭터다!

  대표자군도 또한 암기하고 있는 거겠지. 연설용 종이도 없이 단상에 오르는 계단에 발을 올린다.


  어라? 체육관 안이 컴컴해졌다. 전기가 끊어졌나? 아니면, 비?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어 올려보지만, 주변은 더더욱 컴컴해질 뿐이다.

  대표자군이 당황하며 다가와 내게 손을 뻗었다.


  에?

  꾸벅하고 몸이 기운다. 나는 대표자군의 팔 안에 떨여졌다.

  아아, 결국 쓰러진 건가.

  대표자군이 받아준 거구나.


  “괜찮아?”

  남자치고는 달콤한 목소리로 들리지만, 시야가 어질어질해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대답을 할 수 없다.

  등과 무릎에 팔이 들어가고, 몸이 뜬다.


  “에, 꺄악.” “오, 의외로 힘 센데?” “레알 공주님 안기 처음 봤다.” “여자아이 귀엽네!” “응. 정말 아가씨 같다.”

  수십 개의 여러 목소리가 함께 귓가에 들려온다. 하지만, 뇌로 말을 이해하기 전에, 내 의식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우으.

  흐릿하게 시야가 밝아진다.

  눈을 뜨자, 아까 전의 대표자군이 코앞에 있었다.


  우와. 깜짝 놀랐다! 백발적안이라니 익숙하지 않으니까 괜히 더 놀라고 만다.

  ……어라? 아까 전보다 훨씬 숨 쉬기 편하다.

  몸을 내려보자, 교복의 가디건이 벗겨지고 블라우스의 단추도 목 근처의 하나가 풀려있다.


  아아, 어쩐지 호흡하기 쉽다 했다……. 꽤나 괴로우니까. 여자 교복이란 게.

  “몸, 어때?”





  가까운 거리에서 대표자군이 물어본다. 조금 떨어져 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다지……. 덕분에 살았습니다. 인사 전이었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여기는 양호실이겠지.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 주변엔 커튼이 쳐져있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대로 일어섰다간 대표군과 머리를 부딪치고 만다. 조금만 몸의 위치를 바꿔서 상반신을 일으킨다.


  “일어서, 괜찮아? 양호선생, 자고 있으라고, 했어.”

  “괜찮아요. 손을 번거롭게 했습니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침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무거운 머리를 무릎에 올렸다.

  아무래도 좋지만, 이 사람. 말이 듬성듬성거리네. 귀국자녀라든가 그런 걸까? 아니면 말하는 게 느긋한 사람인가.


  “사쿠라.”

  “네?”

  “속옷.”

  속옷이 뭐더라……?

  아아, 팬티가 보인다는 건가? 스커트를 입고 무릎을 세우고 앉았으니까 보이고 말지.


  “죄송합니다. 흉한 꼴을…….”

  황색 바탕에 파란색 땡땡이였다. 이 싸 보이는 모양, 어디서 봤다 했더니 생전에 내가 쓰던 속옷과 같은 모양이다.

  여자상대로 속옷을 보이면 치한이지만, 곁에 있는 것이 남자인 대표군이라서 그냥 그대로 앉아 있는다.

  보기 싫으면 대표군이 눈을 돌리겠지.


  아무래도 좋지만, 내 이름은 사쿠라가 아니라 사쿠라코에요.

  또 시야가 휘청휘청하네……. 조금만 더, 자고 있을까……. 그보다도 배가 고파……. 엄청 고파……. 껌이라도 좋아요. 누가 나눠주세요…….

  풀썩, 하고 역시 침대에 쓰러지고 만다. 스르륵하고 온몸에 매달리는 긴 머리카락이 짜증난다.


  누워있자 더더욱 현기증이 심해졌다.

  “으, 응.”

  현기증을 쫓기 위해서 몸을 둥글게 만다.

  “사쿠라.”

  그러니까 나는 사쿠라코라니까. 그리고 역시 거리가 너무 가까워. 귓가에 숨소리가 들린다. 간지러우니까 좀 더 떨어져주세요.


  “소라.”

  아, 모모카씨의 목소리다. ……소라라니, 대표자군의 이름인가?

  “사쿠라코는 내 친구야. 손대지 마.”

  “……….”

  “소라.”

  “……알았어. 말, 들어.”


  대표자군이 내게서 떨어지고, 커텐 너머로 사라진다.

  “……모모카씨.”

  “저 녀석이 무슨 짓 했어?”

  “……아무 짓도 안했어요? 그보다도…….”

  “왜?”


  “뭔가, 먹을 거, 없나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히로인이기도 한 하즈키 모모카를 괴롭히는 이 작품의 악당은, 수치를 무릅쓰고 모모카씨에게 구걸을 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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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카씨가 나와 손을 잡은 채로 “1학년……이지요?”라고 질문했다. 걷는 속도가 떨어졌기에 키카씨의 옆에 나란히 섰다.


  “네. 키카씨는 3학년인가요?”

  “제, 제가 그렇게 연상으로 보이나요? 기뻐요……!”

  키카씨는 붉게 물든 뺨에 손바닥을 댔다.


  “에, 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른스럽게 행동하자고 정했어요. 대성공! 후후후후.”

  그, 그런거야? 연상으로 보여서 기뻐한다는 건, 실제론 좀 더 젊다는 거겠지?

  여자는 실제 연령보다 나이 들어 보이면 화를 낸다는 선입견이 있었으니, 조금 놀라고 만다.


  키카씨는 뺨을 물들인 채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1학년이고, 하즈키 모모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하.

  하즈키 모모카아아아아!?

  내가 괴롭힐 예정인 히로인이잖아아아!


  뻥이겠지!? 진짜로!? 아니, 아직 동성동명일 뿐인 다른 사람이라는 가능성은 있어! 분명 그렇다.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신님!

  먼 산을 보면서도 나는 자기소개를 한다.

  레이센인이라는 이름은 부르기 힘들기에, 키카씨는 나를 사쿠라코라고 부르기로 했다.


  모쪼록, 동성동명일 뿐인 다른 사람이길!

  전에 없을 정도로 기도하며, 운동장에 게시되어 있는 반 구성표를 보러 간다.


  ――――같은 반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 가니, 옆자리였습니다.

  동성동명의 하즈키 모모카씨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틀림없다. 이 키카씨가, 내가 괴롭힐 상대다.


  초반부터 저질러 버렸다아아.

  이제 기력도 없이, 나는 책상에 뺨을 대고 엎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몸 상태 아직도 안 좋나 보네. 양호실로 갈까? 입학식 괜찮아?”

  키카씨가 불안하다는 듯이 날 돌아보고 있다.

  신경 쓰지 마시길.

  친절하게 대해준 하즈키 모모카씨를 괴롭힐 수도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일 뿐이니.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의문스럽게 생각하던 것을 키카씨에게 질문했다.

  “키, 키카씨라는 별명은, 어째서……?”

  이런 본명에 스치지도 않는 별명만 없었으면, 분명 좀 더 빠른 단계에 눈치 챘을 텐데!


  “하츠‘키’ 모모‘카’. 성하고 이름에 어미를 따서 키카.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건 아침에 봤던 남자뿐이지만 말이야. 너도 나를 모모카라고 불러주면 기쁘겠어.”

  과연…….

  본명에 스치기는 했구나.

  아니, 그보다 눈치 못 챈다고. 그런 별명으론!


  으갸악하고 책상에 손톱을 세우고 싶어진다.

  책상에 엎드려서 뻗은 팔의 끝, 찰랑하고 팔찌가 흔들렸다. 보석에 손을 대고 호출해 본다.


  ‘신니임, 살려줘요오.’

  ‘뭐냐. 슬슬 학교에 도착할 쯤인가?’

  해냈다! 겨우 응답이 돌아왔어!

  ‘어째서 대답해주지 않은 거야!’

  ‘처음에 말했잖은가. 나도 다망한 몸이라 너에게 계속 붙어 있을 순 없다고.’


  신님이 지쳤다는 듯이 말을 계속했다.

  ‘세기말 마쵸 대행진 세계에 여자를 마쵸맨으로 성전환해서 보냈더니, 예상 외로 햣하해서 말이야. 말리는 데에 바빳던 거다. 아무리 적이라도 전의도 없는 자를 박살내다니, 정말이지……투덜투덜.’

  ‘……큰일이었네. 하지만 이쪽도 큰일이야. 적어도 이 세계의 만화를 보여줘. 스토리를 몰라서야 움직일 수가 없어.’

  ‘그건 무리다. 세계의 창조물을 가져가는 짓은 할 수 없어. 머잖아 세계가 붕괴하고 만다.’


  제약이 있는 건가. 불편하네에.

  ‘그럼, 가능하면 상세하게 스토리를 알려달라고.’

  ‘전차 안에서 하츠키와 칸자키는 만났는가?’

  ‘칸자키?’


  ‘칸자키 신. 3학년으로 모모카의 소꿉친구일세. 모모카는 이 녀석에게 은근한 연심을 품고 있는 게야. 그런데도 칸자키는 모모카 눈앞에서 네게 고백하고 말지. 그리고 너는 모모카에게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칸자키에게 키스를 하고, 입술을 핥는다――라는 일이 전차에서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키스는 했는가?’

  ‘했을 리가 없잖아!! 뭐야 그거! 소녀만화란 그런 거야!?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키스를 하다니 있을 수 없잖아!’

  ‘소란피우지 마라. 시끄러워.’


  “사쿠라코? 입학식 시작하니까 체육관 집합이래. 일어설 수 있어? 아니면 양호실 갈래?”

  “괘, 괜찮아. 응.”


  ‘어이……, 설마. 지금 목소리는 모모카가 아니겠지…….’

  신님이 분노가 묻은 목소리로 신음하듯이 말했다.

  ‘네. 그 말대로입니다. 모모카씨입니다.’

  ‘바보냐, 너는! 시작하자마자 스토리가 바뀌어버렸잖아!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신님은 꽤나 분노하신 것 같다. 무리도 아니지만.

  ‘저기, 나. 지금 생각하는 건데.’

  ‘뭐인가.’

  ‘네가 인선 미스한 거 아닐까나, 하고.’

  ‘남 탓으로 하지 마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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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아.

  손바닥으로 잡은 두터운 어깨나, 단단한 몸의 감촉에 놀라고 만다.

  나는 꽤나 괴롭힘 당하는 역할이라서, 남자로선 몸집도 작고 얼굴도 여자 같다는 소릴 들었으니까, 장난 삼아 안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늠름한 녀석에게 안긴 적은 처음이다. 근육 있는 사람이란 이런 건가!


  아니, 몸이 사쿠라코니까 그런 걸까? 무지막지하게 늠름하게 느껴져서 까고 말해 무섭다. 큰데다가 높은데다가.

  초대면의 여자아이를 갑자기 안아 올리다니. 스킨십이 과도한 사람일까.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터인 나의 생전(전세?)의 친구들의 모습도 생각하고 만다. 그 놈들도 스킨십이 심했지.


  “죄송함다아. 이 아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조금 지나가게 해주세요. 죄송함다아. 형님, 누님도 길 좀 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아.”

  형은 자리를 피해주는 승객 (아저씨나 아줌마다)에게 애교 있게 말을 하면서 통로를 지나갔다.


  빈자리에 조심스럽게 날 앉힌다.

  “작은 아이가 사양 같은 걸 해선 안 되지. 몸 상태가 안 좋을 땐 자리를 쓰라고.”

  앞에 수그리고 앉아서 내 얼굴을 살펴본다.


  “네, 네에…….”

  “잠깐. 여자아이를 함부로 안지 말라고! 미안해요. 이 녀석, 옛날부터 어거지스런 면이 있어서……. 깜짝 놀랐죠?”

  키카씨가 사과한다.


  깜짝 놀랐지만, 몸 상태가 안 좋은 나를 생각해서 한 일이었으니 불만을 말할 순 없다.

  “저기……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부, 부끄러우니까 안는 것은 조금…….”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감사를 표하자, 남자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랑 사귈까?” 라고.

  사귄다?


  “오빠의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고. 소중하게 여길 테니까.”

  어째서냐. 지금 방금 만났을뿐인데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니 어떻게 된 일이냐.

  “아뇨……저기, 평범하게 거절하겠습니다…….”

  “거절하는 게 평범한 거야!? 나, 그렇게 못났나? 이유는?”


  아니, 이쪽이야말로 이유를 알고 싶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뭔가요……?”

  “첫눈에 반했다. 운명을 느꼈어.”

  “어, 얼굴이 좋다는 거겠죠? 나, 성격 나쁜 사람이니까. 제대로 알고 보면 절 미워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사귈 수 없습니다. 친절을 베풀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나는 하즈키 모모카씨를 괴롭혀야 한다는 사명이 있고. 괜한 남자까지 상관하고 싶지 않다.

  “―――――”

  “적당히 하라고.”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키카씨였다. 아까 전까지 봤던 상냥한 인상이 거짓말처럼, 만지면 찢어질 듯한 얼음의 칼날 같은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아이에게. 너, 최악이야.”

  “미안하다고.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서 미안. 오빠는 저쪽 차량으로 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노려보지 말라고 키카. 너, 무서우니까 말이야.”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형은 표표한 웃음으로 키카의 어깨를 두드리고 옆 차량으로 갔다.

  “사쿠라오카, 사쿠라오카. 이제 곧 사쿠라오카역에 도착합니다.”

  아, 정기권의 종착역이다.


  일어서자 키카씨가 내 손을 잡았다.

  “……?”

  “얼굴 보기 안 좋아요. 점점 몸 상태가 나빠진 거죠? 정말 미안해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사양하지만, 키카씨는 내 손을 끌어주었다.

  여자끼리라곤 하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 건지 주변 이곳저곳에서 시선을 느껴져서 부끄럽다.

  하지만, 여자와 손을 잡고 걷는다니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란 상황이인데 조금 감격하고 만다.

  키카씨의 손바닥이, 내 손바닥 보다 큰 것이 유감스럽지만.


  “우와, 저 아이, 귀여워…….”

  “저 미덥지 못한 얼굴, 참을 수 없네. 괴롭히고 싶어져.”

  “바보가. 뭐, 이해는 하지만.”

  아까 전의 형과 같은 교복을 입은, 불량해 보이는 남자들이 이쪽을 가리킨다.

  미덥지 못하다? 키카씨는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았으니까,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날카로운 표정인데. 어째서 미덥지 못하다고 하는 거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딱 그 시점에. 나의 얼굴이 빵집 쇼케이스 윈도우에 비춰보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꼬리를 내리고, 마음 약해 보이는 표정――.

  날 말한 거였나!


  안돼. 얼굴에 힘을 줘야지. 나는 악역이니까 말이야. 이제부터 만날 하즈키 모모카씨를 괴롭히기 위해서라도 나빠 보이는 얼굴을 해둬야지.

  키카씨가 멈춰서서, 그 남자들에게 고개를 향했다.


  “히, 히이익!”

  “죄송합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남자들은 덜덜 떠는 표정으로 도망친다.

  내게선 키카씨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 하나만으로 남자들을 쫓아내다니. 대단하네 키카씨…….

  미인이 화나면 무서운 법이지. 도망치는 것도 별 수 없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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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곳은 짐작도 가질 않지만, 어쨌든 걸어가려고 했을 때―――멈춰 섰다.

  이 집에 돌아와야만 하잖아! 제대로 길은 기억해 둬야지.


  새삼 사쿠라코의 집을 돌아본다.

  도장조차 되어 있지 않다. 먼지가 낀 듯한 오래된 집이었다.

  벽은 제대로 다듬질도 되지 않은 나무판이고, 지붕은 기와도 아니고 함석지붕으로, 비가 흘러내리는 통로가 부서져서 지붕에서 늘어져 내려와 있다.

  정원은 없이 집 앞이 바로 골목길이다. 현관 옆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우체통에는 ‘레이센인’이라고 달필 문자로 쓰여진 종이가 껴져있다.

  주변 집도 이 집도 비슷할 정도로 오래되어 엉망진창이다.


  현관 앞의 길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 쓰레기통이 있다든지 자전거가 있다든지 해서 지나가기 힘들다.

  여기, 정말 소녀만화의 세계?

  아무리 악역이라고 해도 조금 더 좋은 생활을 해도 벌은 받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나는.


  왼쪽 길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막다른 길이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찻길로 나가고 나선, 어쨌든, 사람들의 흐름에 끼어 걷자.

  큰길로 나가면 분명 이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정도는 있을 것이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차가 지나다니는 길가로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며 필사적으로 장소를 기억해둔다.


  아, 주소를 적어 둔 간판이 있다. 여기는 오우사키쵸 8번가인가. 좋아. 기억했다. 이걸로 집 위치를 잊어도 이 근처까진 문제 없이 돌아올 수 있어.

  큰 길로 나가자 여기저기 통행인이 있어서, 그들이 향하는 곳으로 나도 따라간다.

  분명 이 앞에 역이나 버스역이 있을 것이 틀림없다.


  역시 예상대로라서, 주변 풍경이 일반 주택가에서 호화로운 맨션, 그리고 회사가 들어가 있을 듯한 무기질적인 빌딩으로 변해간다.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역도 보였다.


  헌데, 머리카락이 컬러풀한 건 나 혼자였다.

  행인들은 어른도 아이도 모두 머리카락이 검은색, 혹은 갈색, 심해도 금발이다.

  기묘한 머리색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주요 등장인물임이 틀림없다. 몇가지 색이나 있을까? 청색이라든가 적색이라든가 컬러풀할까.


  역 앞에는 벤치가 있어서, 나는 휘청휘청하며 거기에 앉았다.

  “하아.”

  뭔가. 의욕이 나질 않네…….


  적어도 이름대로 부자였더라면, 아직 좋았을 텐데…….

  가정환경이 너무 나쁘잖아. 생전에 내가 살던 가정은, 엄마가 전업주부에 아빠가 회사원으로 극히 평범한 가정이었기에 갭이 너무 심하다.


  아.

  나와 같은 제복이다…….

  소녀들의 단체 하나가 이쪽으로 향해온다.


  모두 다섯 명. 그 안에 네 명은 세일러복이지만, 한 사람만, 나와 같은 가디건의 교복을 입고 있다.

  즐겁게 반짝반짝 웃고 있는 것이 눈부시네…….

  저 사람들은 아버지가 술 마시고 주정부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제대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뿐일 테지. 부럽다.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힘이 나질 않아서 벤치에서 일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기분이 좋지 않나요?”

  내 앞에 한 여자가 허리를 내려 나와 눈을 맞춘다.


  아까 전에 봤던,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다.

  허리까지 닿을 것 같은 긴 검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고 있다.


  눈꼬리가 내려간, 상냥해 보이는 얼굴을 한 여자였다.

  취미는 거문고와 무용입니다. 라고 대답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침착하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3학년일까?


  “그, 조금, 인생에 고민이 좀.”

  “이, 인생!?”

  여자가 놀라며 내 말을 되풀이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곤란할 뿐이지요! 저, 저도 모르게 약한 소리가…….”

  몸이 좋지 않냐고 걱정해준 사람에게, 인생 상담을 가져가다니 나라도 질릴 것이다.

  양손을 저으며 말을 철회했다.


  “함께 갈까요?”

  “에?”

  “학교. 같은 학교죠? 사쿠라오카 고교.”


  자신의 교복을 보이면서 여자가 웃는다. 마음 깊이 안심할 수 있는, 예쁜 웃음이었다.

  “네.”

  여자 아이에게 끄덕이며 일어섰다.


  윽.

  혹시, 나, 꽤나 체구가 작지 않아?


  그녀와 나란히 서서 걸으며 키 차이에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여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시선의 위치가 낮다.


  150 정도일까……? 그 보다도 낮을지도 모르겠네.

  그녀는 꽤나 키가 커서, 16……5? 정도는 되겠지. 나와 머리크기의 절반 정도는 신장차이가 있다.

  개찰구가 눈에 들어와서 서둘러 가방을 뒤적였다. 다행이다. 정기권이 있어!


  거의 기다리지 않고 도착한 전차에 탄다.

  전차 손잡이를 잡고 선 내 얼굴이 거울에 비춘다.


  일단 머리카락. 긴 핑크색 머리카락을 머리 양쪽에, 한쪽만 검은 리본으로 묶고 있다.

  대부분의 머리카락은 내리고 있으니까, 트윈테일은 아니지만. 트윈테일 비슷한 것. 분명, 투 사이드 업이라는 형태다.

  얼굴은……뭐라고 해야하나. 악면상이었다.

  굉장히 귀엽지만, 눈꼬리가 올라가서 솔직히 무섭다. 입도 코도 작으니까 괜히 바싹 올라간 눈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키는 작았다.


  후.

  몸에서 힘을 빼자 무서웠던 사쿠라코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상냥하다고 해야 하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얼굴. 이 얼굴이라면 악역이라곤 할 수 없겠네.


  두 개 정도의 역을 지나갔을 때에,

  “어라? 키카. 너, 버스 통학이 아니었던가?”

  가벼워 보이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서, 나는 키카라 불린 여자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우와아. 엄청 잘생긴 형이네.

  목소리를 걸어온 건 교복을 입은 남자였다. 180은 될 것 같은 키에, 약간 긴 듯한 갈색 머리카락을 감고 말렸을 뿐이라는 느낌으로 흐트러져 있었지만, 더러워 보이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탄탄한 체형인 데다가, 쌍꺼풀이 깊고 눈이 날카로운데, 태도와 목소리 때문에 인상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3학년인가? 이 여자――키카의 남자친구일지도.


  “아야카 친구들하고 함께, 나나의 집에서 자고 왔어. 학교가 흩어지니까 마지막 이별 파티라고 해서.”

  “헤에. 입학식 전날에 잘도 하네. 아, 귀여운 애다.”

  “건들지 말라고.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니까. 그냥 가만히 둬.”


  “몸 상태가 나빠? 음, 그럼 이리와.”

  “잠깐, 무슨!?”


  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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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이거, 여자아이 몸인데요오!!?”

  “소녀만화의 악역이니까 말이야. 여자의 적은 대체로 여자인 게지.”

  “그럼 어째서 나인 거야! 나는 남자니까 여자의 적에 어울리지 않잖아! 우와! 가슴이, 몸이이이이!!”


  대소동.


  “진정했나?”

  “어떻게든…….”

  하지만 아직 다다미 위에 뒹군 상태지만. 여자아이 몸이 된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그럼 설명을 할 테니 잘 듣게. 그대는 이 ‘피치 매직’의 세계에서 악역 ‘레이센인 사쿠라코’로서 전생한 게야. 오늘은 교등학교 입학식. 만화의 초반부로군. 같은 반에서 너의 옆 자리에 앉는 여자, ‘하즈키 모모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다.”

  “잠깐 기다려. 그 전에, 너는 대체 뭐야? 이름은?”

  “아아……. 그 설명도 아직이었군. 나는 신이다.”


  엣헴, 인 게지. 라고 가슴을 피는 여자아이에게, 헤에……, 라고 밖에 대답할 길이 없다.

  확실히 이상한 힘이 있고, 신님인 걸 테지만……. 엄청 작네.

  왠지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자, 손을 맞았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돼? 신님이면 될까?”

  “좋을 대로 부르도록. ‘글래머러스한 누님’이라든가도 전혀 상관없으니.”

  “그래서, 나는 여기서 뭘 하면 돼?”

  “간단하게 무시당해 슬프구먼……. 뭐 좋아. 너는 모모카가 맘에 들지 않아,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터무니없는 이유로 중상하는 게야.”

  “중상……?”

  이라니,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너의 중상을 받은 모모카는, 충격을 받아 울면서 옥상으로 올라가지. 그리고 거기에 있던 불량아, ‘이오리 야마토’와 플래그를 세우게 되네. 제대로 하라고.”

  중상…….


  “아아, 그렇지. 네 손에 있는 팔찌 말이지만.”

  “팔찌……?”

  말을 듣고서 양손을 본다. 왼손에, 얇은 체인의 팔찌가 걸려 있다. 다이아몬드가 원 포인트로 박혀 있다. 가짜 다이아몬드……는 아닌 것 같다. 진짜 같다.

  이 방, 살풍경하지만 레이센인이라는 이름이고, 분명 부자인 거겠지.


  “사쿠라코가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물건이지. 계속 풀지 않고 몸에 지니고 있어. 그게 나와의 통신기가 되어 있네.”

  “통신기?”

  “아아. 나도 바쁜 몸이니까 말이야. 너에게 계속 붙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 다이어몬드를 만져봐라.”


  들은 대로 다이어몬드를 만져본다.

  ‘어때? 내 목소리가 들리나?’

  “우와, 깜짝 놀랐다.”


  신님의 목소리가 직접 머리 속에 들려서 깜짝 놀라 다이어몬드에서 손을 떼고 만다.

  “한 번 더 만져라. 거기, 너도 뭔가 말을 해봐.”


  조심조심 다이어몬드를 만지고 ‘아-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중’이라고 생각해봤다.

  ‘너, 꽤나 바보로구먼.’

  ‘너무해……. 뭔가 말해 보라고 해서 말했을 뿐인데……. 하지만 나, 악역이라니 마음이 무거워……. 여자아이 괴롭히다니 절대로 무리…….’

  ‘……그런가. 그럼 네가 의욕이 나도록 이 만화를 훌륭히 해피엔딩으로 이끌면 한 가지 보수를 주도록 하지.’

  ‘보수?’

  ‘다시 말해! 이 만화를 완결했을 때엔, 너를 원래 세계의 원래의 몸, 사고사 하기 한 시간 전으로 되살려주마!!’


  “에!? 저, 정말!?”

  “나는 신이야. 거짓말은 하지 않아. 그럼, 나는 이만 사라지지. 잘 하게나. 무슨 일이 있으면 팔찌로 부르면 돼. 거기, 아버지가 오는군. 바닥에서 자지 말고 빨리 일어서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신님은 사라지고 말았다.


  인사도 제대로 없이 여닫는 문이 열리고, 술을 손에 들고 코가 빨간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까지 집에 있을 생각이냐! 빨리 학교에 가버려!”


  히이이이익!? 뭐, 뭐야 이 사람!? 아, 아버지……!? 잠깐 기다려, 레이센인 사쿠라코라는 귀해 보이는 이름이라서, 분명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신님, 신님!’

  ‘뭐냐. 헤어지자마자.’

  ‘사쿠라코, 부자 캐릭터가 아니야!? 이상한 사람이 습격했어! 술병 들고서!’


  ‘부자였던 건 할아버지 세대까지로군. 네 앞에 있는 무능 아저씨가 회사를 망치고, 지금은 적은 유산을 갉아 먹으면서 술이나 처마시고 있는 사회의 짐덩어리일세.’

  ‘그그그, 그, 그런……!! 어, 어머니는 어떤 사람!?’

  ‘벌써 저세상 사람이야.’


  ‘돌아가셨어!? 다른 친척은!?’

  ‘친척들에겐 절연 당했고, 너는 외동딸이지. 부녀가정이라는 놈이구먼.’

  “빨리 가라고, 하잖아!”

  “우와아아아!?”


  아버지가 술병을 휘둘러서, 나는 보조백을 방패로 삼으ㅕ 필사적으로 피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뭐야 이 아버지, 엉망진창이잖아!


  계단을 내려온 끝이 복도였고, 서둘러 현관까지 달려간다. 새거나 다름없는 검은 슈즈를 신고, 덜컹덜컹하고 미닫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신님! 나, 학교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어, 어라? 대답이 없다.

  ‘신님, 신님, 신님!!’


  필사적으로 불러보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잠깐……. 나,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현관문 앞에서 나는 멍하니 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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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 전날에 15살이란 나이에 죽었다.


  맨션 아래를 걷고 있다가, 낚시 줄로 늘어져 있던 화분이 떨어져서, 보기에도 훌륭하게 머리에 직격해서, 어이없게.

  하다못해 30초, 아니 10초, 아니 3초라도 천천히 걸었다면, 나는 건강하게 등교할 수 있었을 텐데.


  죽었다고 해서 크게 충격을 받거나 슬프지도 않았다.

  2개월 전에 아빠와 엄마가 함께 사고로 돌아가신 참이었으니까.

  살고 있던 일가 주택을 처분하고, 값싼 아파트로 이사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여 겨우 생활이 안정된 참에 사고가 일어난 것은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아빠 엄마와 함께 죽고 싶었다.

  뭐, 그건 둘째치고, 적어도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야.

  지금까지 큰 상처도 없이, 병도 없이, 병원에 간 경험이라고 해봐야 치과 정도가 다인데. 태어나서 처음 겪은 사고로 즉사라니 생각도 못했다.


  사후의 세계 따위 믿지 않았으니까, 죽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했는데, 사망한 뒤의 나는 푹신푹신한 구름 위에서 눈을 떴다.

  멀리 ‘천국’이라는 간판을 늘어뜨린 커다란 문이 보인다.

  ‘천국이란 게 진짜 있었구나.’하고 감격하면서 구름 위를 걷는다.

  아빠와 엄마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기다려라.”

  불러 멈추는 소리에 뒤돌아 본다.

  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예쁜 은발의 긴 머리카락이 발 주변까지 퍼져있다.

  그거, 걷다가 밟지는 않을까?

  외국인일까? 하지만 원어민 수준의 깔끔한 국어고, 묘하게 말하는 투가 옛날 사람 같은 느낌이.


  “그대는 저 문을 건너서는 안 된다.”

  “……너도 죽었어? 그렇게 작은데 불쌍하게도……. 함께 천국으로 갈까?”

  여기에 있는 이상, 이 아이도 죽은 거라고 생각하여 손을 뻗었다.


  “가지 않아!”

  “어째서? 아,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든가 그런 거!? 나,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안녕!”


  ‘모월 모일, 모시각. 천국문 앞에서 고교생으로 보이는 남성이 유치원생에게 말을 걸어 데려가려고 했다.’라는 식으로 체포당했다간 참을 수 없다.

  저도 모르게 뛰어가려고 했지만,

  “그러니까 기다리라고 했잖은가!”

  소녀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발을 걸어, 구름 위를 구르고 말았다.


  “그대, 만화 세계에 환생해라.”

  환생?

  “주인공을 괴롭히는, 최악의 악역이 되어 이야기를 훌륭하게 해피엔드로 완결하는 거다.”

  “어째서?”


  여자아이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우리들이 읽고 있는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아무튼 모든 창작물이, 다른 차원에서 제대로 된 하나의 세계로서 성립하고 있다고 한다.


  “헤에. 그럼 원파크나 드래곤볼도 실제로 있는 세계가 있는 건가……. 다행이다. 나, 평범한 세계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세계에서도 딱히 볼거리 없는 고교생이었는데, 배틀 만화 세계에라도 태어났다면 15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그러니 너는, 소녀만화 ‘피치 매직’의 세계에 환생해서 악역으로서 활약하고 와라.”

  “어째서?”

  “피치 매직은 중간에 연재 중단되고 만 소녀만화다. 그렇기에 작가의 원념이 강한 나머지, 이대로 가다간 세계붕괴를 일어나는데다가, 다른 세계까지 휘말려 멸망할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기 전에 네가 막는 거다.”


  “그래서 어째서 내가? 소녀만화는 본 적도 없는데 무리야. 여자아이 괴롭히는 것도 무리고.”

  “그럼 ‘세기말 마쵸 대행진’ 세계의 주인공으로 환생하여 악역을 때려눕히는 역할이 좋은가?”


  “시시시시시싫습니다. 무리! 그 만화, 주인공도 마쵸지만 악역은 더욱 마쵸라서 내장이 푸확하는 만화잖아! 한 번 읽고서 앓은 적이 있어! 그것도 무리입니다! 이대로 천국으로 가게 해주세요!”

  “에잇, 귀찮다. 빨리 가버려라!”

  여자아이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되어――――.


  나는, 모르는 방에 서 있었다.


  세 번 접혀 놓여 있는 이불, 오래된 책상, 구멍이 숭숭 난 책장, 빛 바랜 다다미.

  꽤나 살풍경한 방이다.


  “무리라고 했는데…….”


  서늘하게 발 주변을 흐르는 바람을 느끼고 시선을 내린다.

  의복이 변했다.

  아까 전까진 사망 시에 입고 있던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엉덩이까지 밖에 오지 않는 엄청 짧은 플레어 스커트가 되었다! 여자옷이다!

  스커트에서 뻗은 다리는 새하얗고 아름다은 곡선으로――.

  사라락하고 다른 감촉도 느껴진다.

  머리카락이다.

  고개를 숙인 탓에 뺨 주변으로 떨어져 눈앞에 퍼진다. 허리보다 더 긴――피피피피.


  핑크!!


  “핑크색 머리카락!? 뭐야 이거!!”

  그보다 으악. 목소리도 처음 듣는 여자아이 목소리야!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에 위화감이 쩔어!


  “음란녀는 핑크라고 정해져 있는 거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휘릭하고 돌아본다.

  아까 전의 은발 여자아이가 다다미 위에 접혀 있는 이불 위에 앉아 홍차를 마시고 있다. 긴 머리카락이 이불 위에 잔뜩 퍼져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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