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엔 아빠가 있지?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데…….”
“이벤트 상대가 아버지다. 포기해라.”
“에, 그래!? 싫은데…….”
나는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가려 했지만, 계단을 밟음과 동시에 배가 울었다.
윽, 배가 고파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단 밥을 먹자. 부엌에 들어가서 내 키보다 작은 문 2개의 냉장고를 연다.
“……아무것도 없어…….”
냉장고에는 설탕과 소금, 간장과 식용유가 들어가 있을 뿐 식재료는 하나도 없었다. 냉동실에도 얼음뿐.
부엌 찬장이나 서랍까지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과자는커녕 컵라면도 통조림도 아무것도 없다. 쌀조차 없다.
포기하고 아빠와의 이벤트를 진행하기 위해 텔레비전 소리가 나는 거실로 향했다.
아빠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다.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이다. 지방 디지털 튜너가 배선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연결되어 있다.
“사쿠라코. 술 사와라.”
내가 있다는 걸 눈치 챈 아빠는, 술병을 올리고 내게 500엔을 두 개 던졌다.
“저기, 저녁밥 재료도 사고 싶은데.”
그 술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천엔으로 저녁밥 재료까지 사는 건 무리겠지.
“저녁밥이라고? 그런 건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술이나 사와!”
필요 없을 리가 있나!
“아침도 저녁도 먹지 못해서 배고프다고……. 빵 하나라도 좋으니까 뭔가 먹고 싶어.”
“시끄럽다! 빨리 사와!”
발밑으로 병이 떨어지고 쿵하고 무거운 소리가 울었다. 서둘러 집을 나와 터벅터벅 뒷골목을 걷는다.
어디서 사면될까? 편의점에 술을 팔던가?
“배고프네…….”
“쉿쉿! 절로 가라!”
하얀 앞치마를 입은 요즘 보기 힘든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낡은 모자를 쫓아내고 있다.
아니다. 모자가 아니다. 털이 푸석푸석하고, 여기저기 빠져있어서 모자 같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개다!
“자, 잠깐만요. 우와!”
개를 감싸고 몸을 작게 만다. 빗자루는 있는 힘껏 내 왼손등에 직격했다. 찡하고 저릴 정도로 아프다.
아, 아주머니. 너무 손대중이 없잖아요! 이런 작은 개를 상대로!
“엉? 레이센인의 바보 년, 네 개야? 빨리 데려가 버려! 정말. 너희 집은 제대로 된 게 없다니까……!”
“제, 제 개가…….”
아니지만. 아주머니는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끄응, 하고 개가 울고, 꼬리를 흔들며 내 뺨을 핥았다.
개의 눈은 하얗게 바래있다. 이거, 백내장이다. 털도 그렇고, 아주머니에게서 도망칠 때의 휘청거리는 발걸음도 그렇고. 꽤 나이 먹은 개인 거겠지. 개목걸이는 없다. 이런 아이가 개목걸이 없이 달아났다고 생각하기 힘드니까, 분명 버려진 걸 거다.
“너, 이제 눈, 보이지 않는 거구나. 곤란하네. 나, 자신의 밥을 먹는 것도 곤란한데…….”
쫓아내는 것도 할 수 없기에 개를 안고서 걷는다.
뒷골목을 청소하고 있던 허리가 굽은 아주머니에게 ‘오니고로시’라는 술을 파는 가게를 묻는다.
아주머니의 설명대로 걸으니 오래된 나무틀에 유리문이 달린 잡화점이 있었다.
개(흰색과 검은색의 얼룩이니까 ‘부치’라고 부르기로 했다)를 가게 앞에 기다리게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앉아, 라고 했더니 정말 앉아서 놀랐다. 똑똑한 개다.
“실례합니다…….”
가게 안에는 복대와 하얀 내복을 입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아앙? 하고 신문에서 시선을 올린다.
무서워 보이는 사람이네. 아, 오니고로시 있다. 오니고로시는 980엔이었다. 역시 저녁밥은 살 수 없다.
추욱하고 어깨를 떨궜을 때, 스커트 주머니에서 찰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돈 소리――그런가. 모모카씨에게서 돌려받은 200엔. 넣은 채로 잊고 있었다! 해냈어. 빵을 살 수 있어!
딸기잼의 빵에 손을 뻗으려다가――. 한단 아래의 개통조림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개용 통조림.
대특가, 2개에 200엔.
나 혼자서 밥을 먹고, 부치에게 밥을 주지 않을 순 없지.
빵을 되돌려 놓고, 오니고로시와 개통조림을 카운터에 놓는다.
“계산, 부탁드려요.”
“네게 팔 물건은 없어.”
에!? 어, 어째서!?
“뭘 놀라는 거야? 너처럼 ‘가게가 더럽다’느니 ‘냄새나’라느니, 일하고 있는 내게 ‘패배자’라느니 있는 대로 지껄이는 빌어먹을 년에게 팔 물건은 없다. 빨리 나가 버려.”
우와아……. 사쿠라코 그런 캐릭터였나.
“무례한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과할 수밖에 없다. 찬장에 오니고로시와 통조림을 되돌려 놓는다.
통조림을 되돌려 놓았을 때, 야키소바빵이 눈에 들어와서, 꼬르르륵하고 배가 울고 말았다.
야키소바빵이 먹고 싶다. 빈곤함이 몸서리게 슬프다.
편의점을 찾아야지.
“뭐야 너. 배고픈 거냐?”
“…….”
말을 할 기운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 돌고 멍하고 울면, 이거 네게 주지.”
아저씨가 손에 든 것은 바구니에 든 당근(하나)였다.
빙글, 빙글, 빙글, “멍! 감사히 받겠습니다! 앗싸, 당근 글라세 해서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어이, 잠깐 멈춰 야! 여기선 ‘뭘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야 빌어먹을 아저씨’라고 말해야 하는 거잖아! 뭘 평범하게 돌고 있는 거냐, 겨우 당근 때문에! 정말로 돌아버리면 이 아저씨가 엄청 나쁜 사람이 되잖아!”
“겨우 당근이 아니에요! 귀중한 식량입니다. 돈이 없으니까 오늘 저녁밥 못 먹을 참이었다구요. 빙글 도는 정도로 받을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돕니다.”
“뭐냐 대체. 너, 마치 다른 사람 같다고.”
다른 사람입니다. 아무튼 당근을 뺏기지 않기 위해 확실히 잡고 있다.
“영문을 모르겠네……. 뭐 됐어. 술과 통조림도 가져와. 팔아줄 테니까. 당근도 빼앗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잡지 말라고. 부러진다.”
다행이다. 이걸로 아빠에게 혼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개통조림 살 돈이 있으면 밥을 사라고. 너희 집에 개 같은 게 있던가?”
“아까 전에 늙은 개를 보호했어요.”
“늙은 개? 가난한 주제에 키울 수 있냐?”
“무리지만……, 이 밥이 없어지기 전에 맡아줄 사람을 찾을 거에요.”
통조림 두 개로는 아무리 버텨도 내일가지다. 내일, 바로 학교에서 물어보자.
아저씨는 투덜투덜 뭔가 말하면서 종이박스와 오래된 신문까지 줬다.
팔에 술병이 든 봉투가 파고들어서 아프지만, 흔들리지 않게 신경 쓰면서 종이박스를 안고 집에 돌아간다.
부치가 세 마리 들어가도 아직 공간이 남을 정도의 종이박스 안에서, 부치는 기분 좋게 자고 있다.
아빠가 눈치 채면 화낼 테니까, 몰래 부치를 내 방으로 옮기고서 아빠에게 술을 가져간다.
식기장 안에 쓰지 않을 것 같은 접시를 꺼내서, 박스 안에 물과 개밥을 넣자 부치는 느긋한 속도로 개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밥을 준비한다. 조리실습에서 배운 당근 글라세. 내가 유일하게 잘 하는 요리다.
아빠에게도 작은 접시에 올려 가져가 봤지만, 아빠는 “이런 가난해 빠진 걸 먹을 수 있겠냐!”라며 접시를 뒤집어 버렸다. 응. 예상은 했었다. 다행이다. 조금밖에 올리지 않아서.
뒤집힌 접시를 정리하고 더럽혀진 글라세를 울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내 방에서 혼자서 당근 글라세를 저녁밥으로 먹는다.
당근 하나로 배가 부를 리가 없는 게 당연하지만, 당분이 머리에 돌았기 때문인지, 사쿠라코에 대한 걸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일단은 개인정보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휴대폰을 본다.
메일 수신이력에는 메일매거진과, 소거방지 락이 걸린 엄마의 메일밖에 없었다.
발신이력에는 아빠에 대한 메일밖에 없고, 전화 착신과 리다이얼에 있는 것도 역시 아빠뿐이다.
주소장도 봤지만, ‘선생’, ‘엄마’, ‘아빠’의 정보밖에 없다.
어라? 이상하네.
‘저기, 신님. 사쿠라코는 세자리수 이상의 남성과 사귀었다고 했었지? 주소장에 가족밖에 없는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너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뭔가 치유 받는 느낌이구먼. 마쵸 대행진의 전직 여자는 죽이냐 죽이지 않느냐의 연락밖에 하지 않는데……. 미안하네. 이야기가 벗어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부 거짓말이야. 사쿠라코는 중학교에선 얌전하고 수수해서 친구도 만들지 못하는 아이라, 고등학교 데뷔를 힘내던 참이었던 게지.’
‘에엥……? 수수한 아이였어? 고등학교 데뷔에 힘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갑자기 남자와 키스하는 여자아이가 되다니. 너무 튀었잖아 사쿠라코…….’
‘자신은 먹는 것도 곤란할 정도로 가난한데, 다른 학교 친구들과 즐겁게 걷고 있는 모모카를 보고 어두운 감정이 폭발한 게지. 모모카는 중학교 시절의 자신과 같을 정도로 수수한 아이였는데. 어째서 저 여자만이 저렇게 행복한 것인가, 라는 느낌이야. 초반은 모모카를 괴롭히면서, 모모카에게 다가가는 모든 남자를 뺏는다는 전개가 되는군.’
‘하지만 나, 모모카씨를 괴롭힐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밉다고 말했는 데도 전혀 듣지 않고. 이거, 전개 이상해진 거지?’
‘완전히 이상해졌다. 하지만……, 아직 수정 가능한 범위이긴 하지. 아무튼 넌 네 명의 남자들과 플래그를 세워라. 피치 매직은 역할렘 만화야. 최종적으로 남자들이 모모카에게 반해서, 모모카가 사랑을 받으면, 이 세계(만화)의 창조신(작가)도 납득할 것이니.’
‘모모카씨, 미인이고. 스타일도 빠방한 느낌으로 박력 있고. 전혀 수수하지 않다고. 내버려 둬도 인기 만점일 거야. 절대로.’
‘이야기는 완급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위기에 몰리는 일도 없이 평범하게 있었더니 평범하게 인기 만점이었다는 만화야 말로 재미가 없잖은가.’
그것도 그런가. 어렵네.
밥은 아직 남아있지만, 배가 가득 찬 것인지 내 얼굴을 보며 부치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상자에서 꺼내자 달콤한 목소리를 내면서 내 손을 깨문다.
귀엽다. 부치만이 나의 안식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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