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나는 교실 뒤에 붙어 있는 거울을 들어다 보고, 투 사이드 업 머리모양을 확인했다.


  언제나 마찬가지, 레이센인 사쿠라코의 전투 스타일이다.

  이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만화 캐릭터는 강한 여자아이가 많으니까, 나도 뭔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다음이야말로 모모카씨에게 지지 않겠어!


  가슴 큥 빔의 동영상이 괜시리 반에 확산하고 있다는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쓰이지 않는다. 쓰이지 않는다면 쓰이지 않는다는 거다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나.

  우우……, 하지만 역시 우울해지고 만다.


  그 뒤, 탈의실에서 스커트라는 걸 잊고 남자 시절처럼 체육복 바지를 벗고 말아, 쿠몬씨가 폭소하고 말았다.


  “아하하하하, 뭐야 그 팬티……! 곰돌이 모양, 진짜 쩔어, 배, 배가 아파,” 라며 사물함을 팡팡 때리면서.

  곰돌이 팬티가 뭐가 나쁘다는 거야! 귀엽잖아! 곰돌이 얼굴이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그려진 팬티지만, 그렇게 이상한가? 나로선 잘 모르겠어. 정말.


  모모카씨까지 “사쿠라코는 여러 가지 의미로 초등학생 2학년이지……. 팬티도 그렇지만 멘탈이라든가 행동이라든가.” 라며 질렸단 투로 말했다.

  확실히 스커트가 있는데 팬티 차림이 된 나에게도 잘못은 있지만, 저학년은 너무하다고 항의하고 싶다.


  단숨에 주변 여자들도 주목하고 말았고.

  서둘러 입고 있던 블라우스를 당겨 감췄으니까, 다른 여자들에겐 팬티가 보이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하아…….”


  도시락을 가지고 교실을 나온다.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향하는 곳은 학생회실이다.

  보좌부 설명을 한다든가 만다든가로, 신 선배에게 불린 것이다.

  “사쿠라코, 그 도시락, 혹시 신의 도시락?”

  옆에 걷고 있던 모모카씨가 고개를 갸웃한다.


  “으, 응. 내가 빈곤하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전철에서 받아서…….”

  “제길, 신 그 녀석……. 내가 만든다고 말해뒀는데. 나도 사쿠라코 것까지 만들어왔는데…….”

  모모카씨가 양손으로 들고 있던 도시락……이 아니네. 찬합을 고쳐 잡으며 신음했다.


  “신, 나보다도 요리 잘한단 말이지. 이것도 사쿠라코가 먹어줬으면 하지만, 같이 먹으면 차이가 보이고 마니까……, 오늘은 혼자서 먹을게.”

  호, 혼자서!? 찬합에 들어간 그 양을!?


  “그런, 나도 먹게 해주면 기쁘겠는데. 여자아이가 만든 요리 먹어 본 적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나 대식가니까 이 정도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나도 도시락 사오고 말았어.”

  뒤따라온 키리오군이, 보자기에 싸인 비싸 보이는 도시락을 내 도시락 위에 얹었다.

  어디에서 사온 건지, 도시락은 아직 따뜻하다.


  “………….”

  무척이나 호화로운, 고급스러워 보이는 도시락.


  “키리오군, 이거, 받아도 될까? 지금 먹는 게 아니라……, 집에 가져가고 싶은데.”

  “응. 그러도록 해. 사쿠라코를 위해서 준비한 거니까. 좋을 대로 해도 돼.”


  내 수제 요리도, 야마토군의 가게에서 나온 요리도 먹지 않은 아버지.

  이 비싸 보이는 도시락이라면 먹어줄지도 모른다.


  신 선배가 지정한 교실은, 평범한 교실과 전혀 달랐다.

  문 옆에는 문이 2개 달린 작은 냉장고가 놓여 있고, 냉장고 위에는 오븐렌지가 올라가 있다.

  식기창에는 다기나 식기가 있고, 거기에 무려 다다미에 테이블까지 있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


  “오, 왔나. 앉도록 해.”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신 선배가 손짓했다.

  단차 앞에서 구두를 벗고 위에 올라간다.


  “할 이야기는 있지만, 밥 먹고 난 다음에 하도록 하지. 찻주전자와 찻잎도 있으니까 좋을대로 써도 돼.”


  “실례합니다.”

  문이 열리고, 야마토군과 소라군도 들어온다. 다 모인 참에 우리들은 도시락을 열었다.


  “우와아.”

  누, 눈부셔……. 다양하고 때깔 좋은 내용물에 깜짝 놀라고 만다.

  햄버그에 작은 반숙 달걀이 놓여있고, 오이는 꽃 모양? 이라고 해도 좋을까. 아름답게 계단 모양으로 잘려 있어서, 뼈 있는 튀김이 늘어서 있다.

  야채와 고기가 밸런스 좋게 들어있는 도시락이다.


  “대단해, 맛있어 보여……, 신 선배. 감사합니다잘먹겠습니다!”

  “입에 맞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말이야.”

  “맛있어……!”

  “사쿠라코는 가끔 사람 말을 듣지 않지.”


  가장 먼저 튀김을 집어 들고 육즙과 소스에 감동하고 만다.


  “크윽……. 신은 진짜, 요리 센스 좋단 말이지. 이것만은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하겠어.”


  모모카씨가 보자기를 풀고 찬합을 나열한다.


  치킨 튀김, 교자, 슈마이, 강낭콩과 당근의 고기말이, 미트볼.

  고기뿐이다!


  “오, 우리 집 할망구도 그런 도시락 만들지 않아입니다.”

  “너 말이야. 야채도 좀 먹으라고. 그런 식생활 하니까 가슴만 커지는 거야.”

  “성희롱 반대애.”

  “가슴이……! 커져……!”


  저도 모르고 반응하고 말았다.


  다섯 명의 시선이 내 가슴을 향한다.


  “그 꼬맹이 체형에 거유가 돼면 밸런스 나쁘니까 그대로가 좋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이돌군.”

  “나는 여자아이의 신체적 특징에 대해서 이러저러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

  “아아? 뭔 착한 아이인 척 하는 거냐, 짜증나네요.”

  말릴 사이도 없이, 야마토군이 키리오군을 걷어찼다.


  “어이!”

  신 선배가 하드커버의 책으로 있는 힘껏 야마토군의 머리를 때린다.


  “뭐하는 거야!”

  “야마토군!” “화내지 마!”


  주먹을 쥔 야마토군을, 나와 신 선배가 동시에 멈춘다.


  “넌 부회장으로 임명된 거다. 이제부터 항상 사람들의 눈앞에 있다고 인식해둬. 절대로 폭력은 휘두르지 마. 오히려 말리는 편에 서라. 네 과거를 알고 있는 녀석들이 2학년 3학년에 있으니까 머리에 피가 올라가면 발밑이 무너지는 꼴이 될 거다.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때는, 상대방이 먼저 휘둘렀을 경우뿐이다.”


  “식사중에 날뛰다니. 폭력남. 천박하다.”

  소라군이 짧으면서 심한 폭언을 내뱉는다.


  “때리면 안 된다면, 저런 종류의 빌어먹을 자식은 어떻게 보답하면 되는 겁니까?”

  야마토군이 이마에 핏줄을 세우면서 소라군을 지적했다.


  “입으로 보답해. 현대 일본에 살고 있는 거의 100%의 인간이 폭력 따위 휘두르지 않고도 살고 있다고.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자각해라.”

  모모카씨가 소라군을 노려봤다.

  “소라도 입학식 날에 신을 걷어 차려고 했잖아? 네가 이오리군에게 천박하다고 말할 자격 없어.”


  신 선배는, 무기로 쓰고 있던 하드커버 책을 야마토군에게 건냈다.

  책 제목은 “원숭이라도 알 수 있는 올바른 경어독본”


  “경어가 엉망진창이니까 그걸로 다시 공부하라고. 다음에, 네가 먼저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면 용서 없이 정학이니까 기억해 두고.”

  “귀찮구만. 나, 학생회 역시 그만두겠어.”


  도시락을 잡고 일어서려는 야마토군에게, 나는 저도 모르게 몸으로 덮쳤다.


  “안돼. 야마토군!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한 건 야마토군이잖아! 정학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억누르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고, 수업료 면제도 있다면 학교 공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지식도 얻을 수 있고. 그런 생활이 하고 싶었던 거잖아!”


  “……………….”


  “내가 곁에 있을 때엔 내가 절대로 말릴 테니까. 둘이서 힘내자.”


  야마토군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다다미에 다시 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후우. 다행이다.


  모처럼, 역하렘 요원들이 모였는데. 흩어지면 또 작전을 재검토 해야 되니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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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으로 나가자, 남자든 여자든 거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체육 수업은 1반과 2반 합동으로, 남녀별로 행해진다.


  아직 모두 모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운동장에 있는 학생은 모두 합쳐 60명 정도는 있는 걸까.

  키리오군도 야마토군도, 아, 소라군도 있다! 그런가. 소라군은 1반이었구나.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하츠키 모모카씨!”


  그런 많은 학생들이 있는 와중, 난 모모카씨에게 딱하고 손가락을 세워 풀네임으로 외쳤다.

  오늘은 1회째 체육 수업. 종목은 체력 테스트다.


  “오늘 체력 테스트, 모모카씨에게 이기면, 꺅하는 소리가 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각오해주세요!”


  내 생전 체력 테스트 결과는


  (중학교 3학년 때)

  [50미터 달리기] 7.5초

  [악력] 45kg

  [공 던지기] 25m

  [제자리 멀리 뛰기] 200cm

  [장거리 달리기(1,500m)] 380초


  당연하지만 여자에게 질만한 수치가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모모카씨에게 이겨서, “어머,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군요.”라고 웃어주는 거다!


  “꺅.”


  모모카씨는 주먹을 입가에 대고 귀여운 포즈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저기…….


  “제가 이기면 말해주세요.”

  “응. 알았어. 그럼 내가 이기면 검지와 엄지로 하트마크를 만들어서 ‘가슴 큥 빔’이라고 말해줘!”


  뭐뭐뭐, 뭐야 그거!!

  부, 부끄러운 것도 정도가 있지!

  아니, 괜찮다. 당연히 내가 이길 테니까! 절대로 질까보냐!


  ――――변명 정돈 들어주세요. 전 힘냈습니다.

  전력으로 달려서, 전력으로 뛰고, 전력으로 힘을 내고, 끝났을 때엔 지면에 양손과 무릎을 대고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냐 하면.

  [50미터 달리기] 11.5초

  [악력] 16kg

  [공 던지기] 8m

  [제자리 멀리뛰기] 142cm

  [장거리 달리기(1,000m)] 360초


  그리고 모모카씨의 결과를 말하자면.

  [50미터 달리기] 6.7초

  [악력] 53kg

  [공 던지기] 28m

  [제자리 멀리뛰기] 310cm

  [장거리 달리기] 285초


  참패다.


  게다가 이 모모카씨의 수치, 설령 내가 생전의 몸이었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기록이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일까?

  소녀 만화 히로인이란 원래 이렇게 신체능력이 높은 걸까?

  소녀가 동경하는 여자란 이런 겁니까?

  연약하고 귀여운 소녀 (+덜렁이 속성이거나, +울보 속성)이 동경의 대상이 아닌 겁니까!?


  남자의 기록조차 뛰어넘는 여자라니, 여자라니이이이이!!


  “사-쿠-라-코♪ 약속, 잊지 않았지?”

  크으으으윽!


  모모카씨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얼굴을 엿보고 있다.

  난 단념하고 몸을 일으킨다. 해주면 되잖아.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기 없기다!


  모래 위에 정좌하고, 양 손으로 검지와 엄지로 하트마크를 만들어,

  “가, 가, 가, 가슴 큐웅 비임…….”


  “목소리가 작으니까 다시 한 번. 하트마크는 잘 보이게 좀 더 높게 올리고♪”


  너무해. 너무해!

  난 꺅하고 말하는 것만이 조건이었는데, 이래서야 괴롭히는 건 모모카씨다아아.


  뭔가, 나, “사람을 저주하려면 무덤 두 개”라는 격언을 몸으로 보이고 있지 않아!?

  눈물로 몸이 떨리는 것을 참으면서, 난 목소리를 끌어 올렸다.


  “가슘 큥 비임!!”


  “씹었다.” (폭소)

  “씹었네.” (폭소)

  “푸핫.” (누군가가 뿜었다)

  “귀여워!” (폭소)


  모모카씨는 실로 즐겁다는 듯이 폭소를 참고 있고, 언제부턴가 생긴 관객들에게서 폭소와 딴지가 날아온다.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서, 몸을 떨면서 고개를 숙여 긴 분홍색 머리카락에 숨어있자,


  “가슘 큥 비임!!”


  내 목소리가 재생되어 튕기듯이 몸을 일으킨다.

  소라군이 내게 스마트폰의 화면을 향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 흘러나오는 건 아까 전의 내 모습으로――.


  씨익하고 웃으며 소라군이 도망쳤다.


  “지지지지워주세요! 소라군!!”

  당황하며 뒤를 쫓아가며 외친다. 하지만, 도망치는 소라군과의 차이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더욱 멀어질 뿐이다.


  “소라―, 그 동영상, 나중에 내게도 보내줘―”


  모모카씨가 웃으면서 소라군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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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체육복이 들어있는 백을 한 손에 들고, 침울한 채로 흔들흔들 복도를 걷고 있었다.


  모모카씨와 키리오군, 그리고 소라군만을 학생회 보좌부에 입부하게 하려고 생각했는데, 말이 부족했던 탓에 내가 보좌부 부장으로 임명되고 마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여자 한 명, 남자 가득한 부활에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급접근을 노리고 있었는데, 이래서야 내가 해충이야…….


  아니, 잠깐만 기다려.

  이건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내 일을 하나하나 전부 모모카씨에게 떠넘겨서, “이 정도 서류도 할 수 없는 거야? 이 계집이!” 같은 느낌으로 매도하면 분명 다들, 날 벌레 보듯이 싫어해져서 모모카씨를 구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다! 나 대단해! 진짜 나쁜 년이다!


  다음 시간은 체육.

  나는 탈의실로 향하고 있다.

  체육은 원래부터 가장 좋아했던 수업이었고, 침울한 기분을 바로 잡고 내 앞을 걷고 있는 교복들을 따라가자, 돌연히 목덜미를 잡혔다.


  “사쿠라코 어디 가는 거야? 여자 탈의실은 이쪽이야.”

  “에.”


  무의식적으로 남자들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 어떻게 하지?

  여,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다니 그런!

  아니, 하지만 난 레이센인 사쿠라코다. 겉으로 보기엔 완전무결한 여자다. 남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다니 할 수 없다. 당연히, 갈아입을 장소는 여자 탈의실이겠지.


  흐갸아아아악, 죄, 죄악감이……!!


  뭔가 여장하고 훔쳐보러 몰래 들어가려 하는 범죄자의 기분이 되고 만다.

  모모카씨도 다른 여자들도 날 여자아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더욱 경우가 좋지 않다.


  하지만 이 학교는 화장실에서 갈아입는 것도 교실에서 갈아입는 것도 교칙으로 금지되어 있고…….

  아니, 하지만,


  “빨리 하지 않으면 늦을 거야.”


  문 앞에서 중얼중얼 생각에 빠져 있자, 모모카씨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여자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와아아, 치한이다! 나, 치한! 경찰 아저씨, 훔쳐보는 사람이 여기에!


  저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싱고하고 싶어졌지만, 고등학생 1학년에 체포되고 싶진 않기에 탈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아래를 내려다 보며 안으로 들어간다.


  비어있는 사물함을 두 개 발견하고, 나와 모모카씨는 서로 나란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사쿠라코, 왜 그래? 귀가 빨간데?”

  내버려 두세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숙인 채로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낸다.


  “혹시 부끄러운 거야? 보이고 싶지 않은 거라도 숨기고 있다든가아?”

  “흥야!”

  둥, 하고 뒤에서 뭔가가 부딪쳐서, 저도 모르게 몸을 작게 말고 비명을 지르고 만다.

  코에 걸린단 말이지. 이 목소리는.


  “쿠몬씨. 사쿠라코를 괴롭히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모모카씨가 내 등을 덮친 몸을 떨어뜨려 준다.

  내게 부딪친 건 야마토군에게서 안경을 벗긴 여자, 쿠몬씨였다.

  “괴롭히는 거 아냐. 이렇게 몰래몰래 하는 걸 보면 오히려 신경 쓰이는걸.”


  그, 그, 런가. 분명 이래서야 내가 치한이라고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황하며 몸을 일으키니, 어중간하게 단추를 푼 모모카씨의 가슴이! 가슴 계곡이 눈앞에! 들어오고 말았다.

  계, 계곡! 대단하다고, 모모카씨! 역시 몸매 좋다! 대단한 박력이다!


  계곡을 보는 건 처음이라, 저도 모르게 시선이 향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문뜩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고, 자신의 가슴 주변을 양손으로 만져본다.





  평평평평평평.


  흠.

  쇄골 → 배 → 쇄골로 기세 좋게 왕복하고 있는데, 아무런 장해물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몸이라면 야마토에게 가슴 작다고 들어도 당연하겠지――라고 납득하고 있자, 푸훗, 하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쿠몬씨와 모모카씨였다.

  모모카씨는 뒤를 돌아보고 어깨를 떨면서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쿠몬씨는 폭소하며 내 어깨를 때렸다.


  “사쿠라코, 괜찮아! 괜찮아! 분명 금방 커질 거라고!”

  “으, 응.”


  옷이나 빨리 갈아 입자.

  난 가디건과 블라우스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역시나 아직 조금 춥다. 어째서 탈의실에는 난방이 없는 걸까. 창작 세계니까 온냉방 완비 정도 해줘도 좋을 텐데――.


  “우햐.”


  캐미솔만 입은 상태가 된 내 어깨에 차가운 손바닥이 닿았다. 또 쿠몬씨였다.


  “사쿠라코, 브라 안 했어? 빈유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아?”

  “빈유인데 필요해?”

  서랍장 안에 브라는 없었으니까, 작은 사람은 입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빈유라도 필요한 게 당연하잖아!”

  “빈유라고 해서 브라 없이라니 안돼!”

  “치한이라도 만나면 어쩌려는 거야!? 빈유라도 맨가슴을 누가 만지는 건 엄청 싫다고! 적어도 돈 지불하라고 쓰레기 놈들!”


  내가 붙임머리 운운하며 얽혔던, 히가시하라씨, 키타하라씨, 난바라씨가 입을 모아 말하는 터에 빈유가 게슈탈트 붕괴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난한 거야, 내 가슴은.


  “사쿠라코는 꽤 대담하네. 아까 전까지 새빨개져 있길래, 부끄럼쟁이라고 생각했는데. 블라우스 벗어버리고.”

  에?


  키타하라씨의 말에 눈치챘지만, 주변에서 속옷 차림인 여자는 없었다.

  캐미솔만 입은 건 나뿐이다.


  다른 여자들은 모두, 중간까지 블라우스를 벗고, 머리에서 입은 체육복에 재주 좋게 팔을 넣어 속옷차림을 보이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차! 남자 시절엔 상반신 다 벗고 갈아입었으니까 무심코 그대로의 감각으로 갈아입고 말았다.

  여자들은 자신의 몸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 한다는 걸 잊고 있었어.

  다른 여자들의 나신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에 의식이 전부 향하고 있었다.


  아직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고, 주변에는 모르는 아이들뿐이니까, 맨몸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는 의식도 있겠지만, 추우니까 바로 갈아입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둘러 나도 체육복을 입는다.


  “나, 싸고 귀여운 속옷집 알고 있어. 함께 갈까? 스포츠 브라도 캐미솔 브라도 귀여운 거 잔뜩 있으니까 보기만 해도 즐겁고. 내 취향의 브라 착용해 준다면 선물해 줄게.”


  모모카씨가 놀리는 것처럼 케헤케헤하고 웃는다.


  나, 빈곤하니까 속옷 살 돈 따위 없다.

  모모카씨는 내게 속옷을 선물해주기 위해서, 내가 사양하지 않도록 성희롱 아저씨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걸 알기에 슬퍼진다.


  난 모모카씨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역시, 안 된다!


  이 이상 모모카씨와 친해지면 안 된다!

  나는 이 세계에서 제대로 악역으로서,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사고로 죽은 나의 친부모님은 어디 기댈 데도 없는 고아였다.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양친의 무덤을 관리해줄 사람이 없다.

  그야 두 사람은 보험금을 남겨줬고, 무슨 일이 있었을 때에 변호사님이 모든 관리를 해주기로 이야기가 끝났기에, 나 혼자 남았어도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있다면, 전 재산을 절에 기부하여 무덤 관리를 부탁하도록 내가 변호사님에게 부탁도 했다.

  그래도 역시, 돌아가고 싶어!


  바퀴벌레로 환생하는 것도 절대로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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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어, 어떻게 된 거야. 사쿠라코!? 뺨의 그 상처! 미안, 아프지 않았어?”

  뺨은 완전 멀쩡합니다. 주로 내장적인 부분이 괴로웠습니다.

  “멀쩡해. 그렇게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폭력은 위험해. 한 번 시작되면 멈추기도 힘들고 더 심해지니까. 누구에게 맞았어?”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이번엔 소라군이다.

  소라군은 소녀 같은 귀여운 얼굴에 분노와, 어딘가 괴로워 보이는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모모카씨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두 사람도 함께 있었나.


  “……신경써 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해결할 수 있다면, 맞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을 터. 사쿠라에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자격, 없어.”


  그, 그런 말을 들으면, 반론할 여지도 없습니다만.


  신 선배에게는 말한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에게 맞았다고 말하는 건 역시 부끄럽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만다.

  거기, 저기.

  걱정하는 모모카씨와 키리오군, 질문해 오는 소라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자, 뒤에서 “사쿠라코씨”라고 이름으로 불렸다.


  이번에는 야마토군이었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동시에 부드러웠던 야마토군의 표정이 굳었다. 시선은 물론 내 뺨의 상처로 향하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피치 매직”의 주요 등장인물이 전원 집합했다!

  하필이면, 내가 상처를 입은 이런 날에.

  “시, 신님 도와줘―!!”

  나는 당황하며 팔찌에 손을 대고 신님을 불러보지만, 신님에게서의 대답은 없었다.


  “얼굴, 누구에게 맞은 겁니까?”

  야마토군이 신 선배, 소라군, 키리오군을 돌아가면서 가리켰다.

  우와아아아! 최악의 착각을 하고 있어!!


  “아무도 때리지 않았어! 다들 상냥하고 좋은 사람들이야!”


  내 목소리 따위 들리지도 않는 듯이, 야마토군은 안경을 벗고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다.

  완전히 싸움질 할 태세다!


  “누구, 너.”

  응전할 생각 만만하단 모습으로 소라군이 한 발 나섰다.


  자, 잠깐 기다려.

  너희들은 모모카씨의 연인이 될 사람들이라고.

  싸움 같은 거 해선 안 돼!

  모모카씨를 사이좋게 나눠 가질 사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모모카씨를 나눠 가지다니 무섭다. 모모카씨를 분해해서 각자 가져가는 스플래터 광경을 상상하고 말았다.)


  “아, 아니라니까! 이 상처는――――”


  어떻게 말을 꾸며야 할지 멈칫하고 있는 내 머리에, 삐리릿하고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

  만화에서도 몇 번이나 봤잖아! 이런 장면에 가장 적절한 설득방법!


  “그래! 넘어졌어! 계단에서 얼굴부터 꽈당하고! 아야야, 아팠지 참!”


  “……” “……” “……”


  침묵이 가득 찼다.

  그런데다가,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소라군과 야마토군이 노려보는 바람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 발 물러서고 만다.

  너무 어설퍼서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 내 변명을 거들어 준 것은 신 선배였다.


  “사쿠라코가 왜 상처를 입었는지는 내가 들었어. 대응도 할 테니까 오빠에게 맡겨 두라고. 너희들도, 타인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말 하나나 둘 정도는 있겠지? 억지로 들으려고 하지 말라고.”


  날 노려보고 있던 소라군과 야마토군이 놀란 표정으로 신 선배를 본다.


  “……저 녀석에게는 말했는데도, 나에게는 말할 수 없다는 겁니까?”

  “사쿠라.”


  야마토군과 소라군이 추궁하지만, 나는 단지, 미안, 하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소라군은 쇼크 입은 표정으로――.


  “사쿠라는 바보!”

  그렇게 외치고 달려가고 말았다.

  “넌 초딩이냐! 바보라고 하는 쪽이 바보라고. 소라!”

  “시끄러 돼지!”

  소라군의 등을 향해 모모카씨가 외치자, 소라군은 뒤돌아 모모카씨를 욕했다.


  “죽고 싶은가 보네. 저 빌어먹을 꼬맹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모모카씨는 뿌드득하고 관절을 울렸지만, 도망치는 소라군을 쫓는 일 없이 날 뒤돌아 봤다.


  “사쿠라코, 나에게도 말할 수 없어?”

  모모카씨의 표정이 너무 슬퍼보인 나머지, 말이 막히고 만다.

  “그만 해. 모모카. 사쿠라코는 내게도 스스로 말한 게 아니야. 유도심문으로 들은 거라고.”


  에!?

  그, 그런가. 모모카씨에게 맞은 거지, 라고 한 그거, 유도심문이었던 건가.

  모모카씨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우으. 신 선배에게 당했다.


  “……그래. 알았어. 말하고 싶지 않다면 묻지 않겠지만, 우리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줘. 사쿠라코가 아프면 나도 슬퍼. 말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되면, 반드시 말해.”

  “으…….”

  “대답할 땐 응♪이겠지?”

  “……응. 미안.”


  학교로 걸어가기 시작한 내 곁에는 모모카씨, 반대편에는 키리오군이 섰다.

  키리오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차피 또, 누군가를 위해서 상처입은 거겠지? 그런 작은 몸으로 매일 그런 상처를 만들면, 걱정 때문에 잠도 잘 수 없다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야.”

  단순한 부자 싸움인걸.


  날 좋은 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키리오군에게 뭐라고 대답할깨 착각하고 있자, 뒤에서 따라오는 야마토군과 신 선배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딱 좋다. 오빠가 말이야. 너와 이야기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이오리 야마토군. 나, 옛날, 아주 약간이지만 밤놀이 했던 때가 있어서 말이야. 네 소문도 들었다는 거지 이게. 무기 가진 남자 10명 상대라도 맨손으로 이겼다며? 대단하네. 오빠 존경할 것 같아. 그래서 붙은 별명도 알고 있어. 분명, 대량파괴병기의 야마토군이었나?”

  “뭐어!?”

  야마토군이 기성을 올리다가 목에 소리가 막혀 엄청난 기세로 기침한다.


  “너 이자식, 그거 착각입니다. 나, 평범한 일반인이고, 싸움 따위 조금도 했던 적 없고. 그런 부끄러운 별명이 붙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혹시 붙인 녀석이 있다면 진짜로 반쯤 죽여버릴 거고.”

  야마토군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분노 때문인지 동요 때문인지, 목소리가 완전히 떨리고 있다. 거기다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흉흉한 것들이라 자기 스스로 파괴병기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응응. 실제로, 그렇게 말한 녀석은 두들겨 맞아서 병원행이었다고 들었어. 너, 오늘부터 학생회 부회장이야. 오빠의 보좌 부탁해.”

  “뭐어!? 뭐야 그거!”

  “학생회 임원은 전교생 튜표로 결정되지만, 학생회 부회장과 학생회 보좌부라는 건 학생회 회장이 정할 수 있다고. 대량파괴병기군이 입학한다고 들었을 때부터 모쪼록 부탁하자고 생각했다는 거지―”

  “그 별명 지껄이지 말라고입니다. 그보다 나, 집 가난해서 성적 떨어지면 학비 나오지 않게 되니까, 괜한 일 할 여유 없고.”

  “괜찮다니까. 학생회 부원은 학비면제되니까 말이야. 덧붙여, 중요서류만 놓여 있는 제2도서실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있거나 말거나.”

  “에.”

  “고서에 흥미 없습니까아?”

  “……………………”


  야마토군은 긴 침묵을 가지고서,


  “뭐, 1년 정도라면 어울려 줘도 괜찮습니다.”


  라고 꺾였다.


  학생회 보좌부라는 건 뭘까!!?

  학생회 보좌를 하는 부활 같은 것일까??

  거, 거기에 모모카씨와 키리오군, 그리고 소라군도 입부하면, 나머진 자동적으로 모모카씨의 역하렘이 결성되는 건 아닐까!?

  모모카씨, 미인이고 스타일도 좋고, 같이 부활에서 힘내다 보면 끌릴 수밖에 없겠지! 분명!


  이 전개라면, 내가 괜한 짓을 하지 않아도 다들 모모카씨를 좋아해줄 것이 틀림없어!


  마치 새카만 구름 아래, 한줄기 빛이 비춘 듯한 기분이다.

  분명 이것이 최초이자 최후의 찬스다!


  “신 선배!”

  “응?”


  “학생회 보좌부에, 모모카씨와 소라군, 그리고 키리오군을 입부하게 해주세요!”


  내 돌직구 요청에 모모카씨와 키리오군이 “에.”하고 놀랐다.


  “그거 좋네.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을 정도야.”


  해냈다아아!

  학생회가 나오는 만화는 인기가 있으니까, 이 전개로 가면 연재 중단이 아니라 완결할 수 있지 않을까? 전2권 정도로!

  이 세계(만화)의 신님(작가)도 이걸로 만족할 것이 틀림없어!

  “피치 매직”(완)이네. 분명!


  “응. 그럼, 입후보해준 사쿠라코가 부장이고, 모모카가 부부장, 키리오군과 소라가 보좌야.”


  신 선배가 “이야, 다행이야.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서 말이야.”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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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있었던 메일 교환.


  ○모모카씨의 메일

  “내일 도시락, 기대하고 있어!”


  ○나의 대답

  “괜찮아 (*´∀`*) 돈 받았으니까, 자신의 몫은 스스로 챙길 수 있습니다. 만들어 와도 안 먹을 거니까! ( *`ω´)


  내 도시락 때문에 모모카씨가 일찍 일어나는 것도 미안하고.“


  ○키리오군의 메일

  “내일, 쇠고기 스테이크의 찬합 도시락을 사쿠라코의 몫까지 가져갈 테니, 같이 먹자.”


  ○나의 대답

  “괜찮아 (*´∀`*) 스스로 사 갈 거니까, 도시락은 필요 없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다음날 아침.


  응……?

  지금, 몇씨지?

  휴대폰, 어디……?


  어라? 언제나 침대 맡에 두고 있는 휴대폰이 어째서 이불 안에 있지? 딸칵하고 열고서――.


  거기에 표시되어 있는 “다시 알림. 7시 45분.”이라는 표시에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우와아아, 지, 지각!!


  단숨에 눈을 뜨고 후다다닥 계단을 내려와 부엌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밥을 먹었구나!”하고 기뻐하거나, 쓰레기통을 향해 빌어먹을 아저씨라고 외치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서둘러 얼굴을 씻고 이빨을 닦고 제복을 갈아입고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뒷골목을 빠져나가는 도중, 또 나에게 잡화점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어이, 빌어먹을 꼬맹이.”

  “네네네네!?”


  달리고 있던 기세 그대로 돌아봤기에, 긴 머리카락이 펄럭 뜨고서 내 몸에 사락사락 흐른다.

  언제나 투 사이드 업으로 묶고 있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었기에 빗기만 했다.


  “어제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거창하게 싸우던 것 같잖냐. 뺨, 부풀어 올랐다고. 이거 붙여 둬.”

  아저씨가 파스를 내게 내밀었다.


  “아…….”


  그런가. 나와 아버지가 어제 했던 싸움, 밖에서도 들렸던 건가…….


  “너 말이야. 술 마시고 있는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괜히 달라붙는 건 그만 둬라. 다음엔 뺨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잖냐.”

  “……밥을 먹지 않는 게 걱정돼서, 무심코.”


  “그런가.”


  작게 자른 파스를 뺨에 붙여준 아저씨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고, 나는 역까지의 길을 달려갔다.

  아침밥은 걸렀다곤 해도, 어제 과일 펀치까지 받은 덕분에 빈혈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준 야마토군에게 감사하면서, 전철 손잡이를 잡고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좋은 아침, 사쿠라코.”


  아, 칸자키 신 선배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왠일로 건강하네. 이거.”


  포옥, 하고 내 머리 위에 도시락 보자기가 올라왔다.


  “에?”

  “오빠가 주는 도시락. 사쿠라코가 밥을 먹을 돈도 없어서, 당근을 날로 먹으며 굶주림을 버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


  “누, 누구에게 들은 거에요!? 전혀 달라요! 당근은 제대로 당근 글라세로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대체 누가 그런 뿌리도 근거도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장한 소문을 퍼뜨린 거야!?


  “그럼, 맨발로 꽃을 팔러 다닌다는 소문도 거짓말인가? 강가에서 잡초 먹었다는 소문도?”

  “어째서 그런 소문이…….”


  머리 위에 올라온 도시락을 신 선배에게 돌려준다.


  “일부러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편의점에서 사왔으니까 괜찮아요.”

  “그거, 내 직접 만든 요리. 모처럼 일찍 일어나서 만들었으니까 먹어줘. 두 사람 분량이나 먹을 수 없으니까.”

  “에!? 지, 직접 만든……!? 선배, 요리 할 줄 알아요?”


  선배는 “실은 프로급이다.”라고 웃었다. 대단해…….

  나, 밥 짓는 것 정도밖에 못하는데. 한심하다.


  “제대로 모모카에게 싸다귀는 날려줬어?”

  “에에!? 싸다귀?”


  이, 이번엔 무슨 이야기야!? 어째서 내가 모모카씨에게 싸다귀를 날려야 하는 거야!?

  신 선배가 내 뺨을 가리켰다.


  “그거, 모모카에게 맞은 거지? 그 녀석, 금방 폭력 휘두르니까.”

  “아니에요아네요! 모모카씨는 관계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오해다!

  신 선배는 모모카씨와 러브러브 커플이 되지 않으면 곤란한데, 말도 안 된다.


  “모모카씨가 아니면 대체 누구야?”

  “그, 그건…….”

  “말하기 힘들다는 건 역시 모모카라는 거지?”


  그러니까 아닙니다!

  좋아. 여기선 제대로 말해두자.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라고 말하는 건 조금 부끄럽지만, 모모카씨가 당치도 않은 오해를 받는 것보단 낫다.


  “아, 아버지와 싸웠을 뿐이에요. 모모카씨가 폭력을 휘두를 리가 없잖아요! 모모카씨가 천사처럼 상냥하고 따뜻하고 웃음이 예쁘고 그리고 스타일이 좋은 최고의 여자라는 건 신 선배가 가장 잘 알잖아요? 소꿉친구에 항상 가까이에 있는 것이 당연할 정도입니다만, 더할 나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쵸, 신 선배!”


  “아, 미안. 너무 길어서 후반부는 흘려들었어.”


  흘리지마아아아아!!

  으그그극하고 선배의 옆얼굴을 노려보고 만다.

  선배는 곤란하단 듯한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양호실에서 겁 줘서 미안해. 상태가 나빠 보여서 데려다줬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어. 그것만은 믿어줘. 무리하게 모모카와 붙이려고 하지 않아도, 사쿠라코를 덮치거나 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

  아뿔싸.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 양호실에서 오열해서 모모카씨가 신 선배를 오해하게 만든 채였어!


  “아아아아아”

  “아?”


  동요한 나머지 말이 헛나오고 만다.


  “아니에요! 그건 제가 나쁜……!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 저 때문에 모모카씨와도 싸우게 되어서, 아아아 어떻게 하지. 모모카씨에게 설명도 하지 않았어. 저저저전화.”

  허둥지둥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나를, 선배가 “전철 안이니까 연락은 나중에.”라면서 살며시 말렸다.


  “그렇게 큰일이 아니니 괜찮다니까. 나와 모모카가 싸우는 거야 항상 있는 일이니까.”

  “그럴 수는 없어요! 모모카씨에게 엎드려 절하기든, 백팔배든, 이배이박수일배든 뭐라도 해서 사과하겠어요!”

  “모모카는 신도 부처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모모카씨……!”


  마침 그때,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사쿠라가오카역에서 전철이 멈춰서, 나는 저도 모르게 모모카씨를 부르면서 문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조작하며 통화를 연결한다.


  “네에, 모모카입니다아. 사쿠라코가 전화해 주다니 기쁘네.”

  “모모카씨. 아니야, 오해야! 신 선배는 나를 덮친 게 아니라, 내가 전부 나쁜 거야! 내가 싫어하는 신 선배를 억지로……!”

  “무슨 일이야 사쿠라코? 아니라니, 어디의 무슨 이야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팬티 다 보여준다든가, 옷을 벗었을 뿐이고.”


  “어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사쿠라코, 조금 진정하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말해도 좋을 내용이 아니게 됐어요.”

  “아!”


  역 앞의 작은 광장에 모모카씨가 있다!

  휴대폰을 한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저도 모르게 계단을 뛰어내려 모모카씨에게 달려들었다.


  “모모카씨! 들어주세요. 신 선배를 덮친 건 나야!”

  “팬티가 보여. 스커트도 짧은데 뛰어내리면 안 돼.”

  “아무 것도 모르는 신 선배를 억지로 덮쳐서.”

  “곰 아저씨 팬티가 다 보였었다고.”

  “내가 선배를 덮쳐버려서, 모모카씨와 신 선배 사이를 찢고 말아서…….”

  “색기란 눈 씻고 봐도 눈꼽 만큼도 없는 팬티가 적어도 10명 이상의 남자 눈에 보였다고! 완전 다 보였다니까!”

  “정말로 미안! 신 선배는 아무 것도 나쁘”

  “사람 말을 들어어어어!!!”


  모모카씨가 양손으로 내 몸을 뿌득뿌득 안아서 조르――조르며 들어 올렸다.

  “으갸악―”

  나와나와! 속이 나와! 내장적인 속이 나오고 있어!


  “기다려, 기다려 모모카씨! 사쿠라코, 얼굴에 상처가 있어!”

  모모카씨의 어깨 위에 손바닥이 올라왔다.

  키리오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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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토정의 폐점은 9시다. 하지만 폐점 후에 가게 청소가 9시 30분까지 걸린다.

  내가 담당하는 곳은 손님이 쓰는 구역 전반. 가게 안을 쓸고 테이블이나 의자를 닦고, 테이블 위의 조미료나 젓가락을 보충하거나, 앉는 자리의 방석을 모아서 쌓거나 바닥을 닦거나 꽤나 바쁘다.


  “겨, 겨우 끝났다……!”


  겨우 끝냈을 쯤에는,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오우, 수고했어. 꽤나 일 잘 하잖아. 자, 가게에서 남은 거다. 가지고 가렴.”

  아주버님이 보관용기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용기 안에는, 주먹밥 다섯 개와 꼬치 고기! 거기에 감자 샐러드까지 들어있다!

  이 가게는 식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와서 바로 보이는 쇼 케이스에 주먹밥이나 샐러드, 생선 따위를 낱개로 사서 가져갈 수도 있다.

  몇 개인가 남았기에 버리는 걸까? 하고 걱정했지만, 설마 받을 줄이야!


  “이!? 이렇게나!? 받아도 괜찮나요!?”

  “오우. 될 수 있으면 빨리 먹으렴.”

  “감사합니다……!”


  “사쿠라코, 이거, 오늘 알바비야. 열심히 했으니까 조금 더 넣어뒀어.”


  “에에에!? 그, 그런……! 밥까지 받았는데.”

  “사양하지 말고. 야마토! 사쿠라코 데려다 주렴!”

  “오우.”


  계단에서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야마토쨩이 내려왔다.

  “데려다 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 혼자서도 괜찮으니까.”

  야마토쨩의 자택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말하는 내 머리에, 야마토쨩이 푹 하고 무거운 모자를 씌웠다.


  응? 모자가 아니야. 헬멧이다.


  “오토바이입니다. 오우사키라면, 뒷길 통하면 바로 가니까.”

  “오토바이!?”


  가방을 가슴에 품고 서둘러 야마토쨩의 뒤를 따라간다.


  “우와아아아아, 대단해! 강해 보여! 멋있네!”


  오토바이는 크고 단단해 보여서 굉장히 멋있었다.


  “강해 보인다는 건 뭐야.”

  “야마토쨩, 오토바이 탈 줄 알다니 대단하네. 나 따윈 자전거 밖에 탈 줄 모르는데…….”


  “이제 적당히, 야마토‘군’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는데.”

  “에? 어째서? 여자애에게 군을 붙이다니 그럴 순 없어.”

  “아직도 그 설정 고집하는 중입니까. ……뭐 됐나……. 저기, 나. 여자라는 거 다른 사람이 아는 거 싫으니까.”


  설정?

  하지만 그것도 그런가.

  여자애가 남자애 몸에 들어가면 누구나 남이 아는 건 싫겠지. 좋아. 조심하자.


  “오토바이, 타본 적 없으니까……. 꼭 달라 붙고 싶은데, 야마토군. 남자인 내가 몸을 만자도 괜찮아?”


  폭주족 만화에선,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앞 사람을 잡는 게 아니라 앉은 자리를 잡고 몸을 지탱하기도 한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섭고.


  “좋아요. 그보다, 제대로 붙잡지 않으면, 반대로 제가 무섭습니다.”

  “고마워!”


  뒤에 앉아 야마토쨩――아쿠쿠, 야마토군의 몸에 팔을 두른다.

  여자애 몸을 만지다니 처음이니까 긴장하게 되네.


  …….


  내 몸, 야마토군의 어깨까지밖에 가지 않는다……. 으응, 역시 작네…….


  음. 뭔가 다리가 싸해……, 그러고 보니 짧은 스커트에 허벅지까지 보이니 바람도 통할만한가.

  어라, 이거. 스커트 말릴까나?

  말려도 앞에선 보이지 않도록, 야마토쨩에게 잘 붙어두자. 야마토군의 허리를 허벅지로 꽉 붙잡는다.


  야마토군의 집에서 우리집까지 전철로 3정거장이나 떨어져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니 순식간이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야기로 듣는 것보다 훨씬 타기 편했다. 차종에 따라서 다른 걸까?

  꽉 붙잡고 있었는데, “정말, 가슴 없네요.”라는 말을 들은 건 분했지만.


  “데려다 줘서 고마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알바도 해줘서 살았고. 다음엔 주말에 부탁합니다.”

  “응! 나야말로 잘 부탁해!”


  집에 돌아가자 아버지가 지루하다는 듯이 뉴스를 보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 어제부터 한끼도 먹지 않은 거 아닐까?


  “――――――!”

  컵을 가진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숨을 삼킨다.


  좋아. 야마토군 가게에서 받은 밥을 내놓자.

  주먹밥 두 개와 고기 꼬치, 감자 샐러드.

  내가 만든 당근 글라세와 달리 가난해 보이는 밥이 아니니까, 이거라면 아버지도 먹겠지.


  “아버지, 이거 저녁밥.”


  접시에 올려 아버지가 앉은 밥상 위에 올렸다.

  알바를 시작한 것을 말하려고 하는 내 앞에서, 아버지는 접시를 식탁 위에서 던져버리려고 했다. 발라당 뒤집힐뻔한 접시를 아슬아슬하게 받아낸다.


  “뭐냐 이 쓰레기는!”

  “뭐, 뭐하는 거야! 쓰레기가 아니라 저녁밥! 레스토랑에서 파는 주먹밥과 고기니까 제대로 먹으라고! 술만 먹으면 몸을 망치잖아!”

  나는 다시 접시를 테이블 위에 돌리면서, 고함 친 아버지에게 고함으로 대답했다.


  “자식이 부모가 하는 일에 대답하지 마!”

  “자식이니까 말하는 거야! 타인이었으면 내버려 뒀다고!”


  “시끄러워!!”


  퍽, 하고 뺨을 맞아서 가볍게 머리가 흔들린다. 하지만 어떻게든 주먹밥은 사수했다.


  “으――술만 마시지 말고 밥도 제대로 먹어!”


  “내가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으면 나가!! 당장 집에서 나가!!”

  “그럼 그쪽도 술만 마시지 마!! 아버지가 술만 마시고 있는 동안엔 절대로 나가지 않아!! 밥 먹어!!”


  “시끄럽다――!”


  아버지가 술병을 휘둘러서, 장난이 아니기에 나는 방을 빠져나와 2층으로 도망쳤다.

  파탁! 아버지가 장지문을 닫는 소리가 2층까지 들려왔다.


  그런가. 아버지는 술병으로 공격하는 사람이었다. 너무 화나게 하면 위험하네. 주로 내 목숨이.


  정말이지. 모모카씨를 괴롭히는 것만으로도 큰일인데, 생활비도 벌고,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의 밥걱정에서 집안싸움까지 해야하다니, 소녀 만화의 악역이란 바쁜 거구나…….


  다음날 아침.


  주먹밥을 올려 뒀던 접시가 부엌에 있길래, 먹었다고 생각하고 기뻐했지만――――.

  쓰레기통 안에 주먹밥과 고기와 감자 샐러드를 발견하고, 나는 진심으로 격노했다.


  아아아아아버지, 이 썩어빠질 아저씨!! 고기까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가 먹을 걸 그랬어…….

  씻고 불에 구우면 먹을 수 있을까……. 쉽게 단념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손을 넣어 꼬치를 꺼내자, 고기에서 털털거리며 잿빛 가루가 떨어졌다. 다, 담뱃재 위에 버렸어……! 우으으으, 아까워……!!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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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짓하고 있냐. 이 바보 아들이이이!!”

  “꺅!”

  “우와아!?”


  갑자기 방 안으로 닥친 거대한 물체에 걷어 차여, 야마토군이 핀볼처럼 가볍게 책장에 충돌했다.


  “야, 야마토쨩!”

  “집 안에서 여자아이를 덮치다니 배짱 한 번 좋잖니. 야마토! 너무 허튼 짓을 했다간 길모퉁이 이토 동물병원에서 거세해 버릴 테니까 알아 두라고!! 괜찮니. 너. 미안하구나. 바보 아들이 무례한 짓을 해서……, 헌데 어머나. 이 무슨 귀여운 아가씨!”


  방 안으로 닥친 거대한 물체란, 야마토군의 어머니였다.

  야마토군의 키는 170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한층 더 크다. 일격으로 고등학생 남자를 가볍게 날려버리다니 대단한 각력이다.


  “너 이런 귀해 보이는 아이를 어디서 데려온 거야. 얼굴도 손도 쬐끄마네……, 내게 딸이 있었다면 분명 이런 아이일 게 틀림없어. 마치 햄스터 가구나. 너무 작아서, 아줌마 실수로 밟아버릴 것 같구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말에 아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둥근 배를 통하고 두드렸다.


  “빌어먹을 할망구! 책장을 향해 걷어차지 말라고! 책이 상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변상해 달라고!”

  “기세가 좋잖니. 한 번 머리 부근을 꾹 눌러 줄까.”


  “저, 저기. 그, 그 쯤에서……! 저, 저를, 부디, 여기서 일하게 해주셨으면, 해서.”


  서로 노려보는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싶어서, 나는 팔을 휙휙 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어? 너 같은 예쁜 아가씨가 우리 집에서 알바? 설마 야마토. 협박해서 데려온 건 아니겠지……!?”


  아주머니가 야마토군의 정수리를 붙잡고, 한 팔로 뿌득뿌득 들어 올린다.


  “아, 아주머님……! 아니에요! 저, 집이 가난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 일하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야마토쨩에겐 감사하고 있어서……!”


  “아아……. 그래서 일급으로 해달라는 거였구나. 너, 귀여운 얼굴인데도 고생하고 있네. 자, 앉으렴. 이것도 먹어도 되니까.”


  아주머니가 내민 예쁜 그릇을 받는다. 아, 안에는 무려, 찹쌀 경단이 들어간 과일 펀치!


  “우와아아아아.”


  그릇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내게, 아주머님에게서 해방된 야마토군이 어지러진 제복을 고치면서 어이없단 듯이 말한다.


  “과일 펀치 정도에 얼마나 기쁜 거야. 눈 안에 하트마크가 보인다구요.”

  “장사꾼으로써 뭔가 해주는 보람이 있는 아이네. 배를 채우고 나서, 한 숨 쉬고 난 다음에 내려오렴. 이거 입고.”


  아주머님에게서 하얀 옷? 을 받고 나자, 아주머님은 바로 가게로 내려가고 말았다.

  나는 커다란 등을 배웅하고서, 말랑말랑한 찹쌀 경단을 입에 넣는다.


  우으으……! 달콤한 맛에 입안이 행복하다……!


  “남자였던 것 치고는 달콤한 것 좋아하나 보네요. 얼굴, 녹아내릴 것 같아요.”

  “맛있는 것은 달콤한 것도 매운 것도 다 좋아해! 전생에선 친구와 함께 바케츠 파르페 먹으러 가곤 했고.”

  “바케츠 파르페?”

  “4천엔 이상 하느 커다란 파르페. 남자 다섯 명이서 달려들어 도전했었어.”


  그리운 추억이다. 먹는 보람이 있어서 즐거웠지.


  “헤에. 남자친구들 많은가 보네요.”


  갑자기 목소리가 낮아져서 깜짝 놀라고 만다. 혹시, 화내고 있나?


  야마토쨩. 남자아이 몸에 들어가서 친구 만들지 못하게 된 걸까.

  ……그것도 그런가. 나도 여자친구 만들 마음이 들지 않고. 성전환의 폐해지.

  신님은 어째서 일부러 성전환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 괴롭힘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


  “생각해 보면, 그 아이돌군도 널 맘에 들어하는 것 같았지요. 너도 남자 세 명이서 사귀겠다고 했고. 의외로 남자 좋아한다든지 그런 겁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나는 남자니까, 남자아이와 사귈 수 없다고 했잖아!? 신 선배나 키리오군, 소라군과 사귀어야 하는 건, 그게 만화의 스토리이기 때문일 뿐이고……. 하지만, 가능하면 나와 사귀지 않는 채로, 모모카씨와 사귀어 주는 게 이상적이지만.”


  “전 남친은 몇 명?”

  “그러니까, 없다고!”


  디저트까지 남기지 않고 받은 뒤, 식기를 부엌으로 가져가고서 나는 받은 옷에 팔을 넣었다.

  하얀 옷은 소매 앞치마였다.


  “와, 소매 앞치마라니 그립네. 초등학교 이후인가. 야마토쨩, 어울려?”

  “……제복을 완전히 가리고 있네요. 소매 앞치마만 입고 있는 것 같아.”


  확실히 빌려준 소매 앞치마가 워낙 커서, 내 허벅지 절반까지 내려왔다.

  머리를 절반 정도 올린 리본을 풀어서, 하나로 뭉쳐서 고쳐 묶는다.

  좋아. 완벽!


  “머리, 리본으로 나비 묶기 해서 묶으니 귀옆네.”

  칭찬해 준 야마토쨩을 보며 웃은 뒤, 나는 조심스레 식당 부엌으로 들어갔다.


  야마토쨩의 아버지인가? 중화 냄비를 휘두르고 있던 아주버님이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손을 멈추고 만다.


  “당신! 타고 있어.

  아주머님이 팡하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아주버님의 등을 때린다.


  “어이쿠, 그럼 안 되지. 이야, 엄마에게 듣기는 했지만, 진짜로 귀여운 아이 아니야. 아저씨 쑥쓰러워지네.”

  “멍청한 소리 하는 게 아니야. 사쿠라코양……이었지?”


  “아, 네. 레이센인 사쿠라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니깐. 우리 가게, 너무 봐서 지긋지긋한 홀아비 아저씨들만 오지 않는 가게니까.”


  “손님을 향해서 너무 봐서 지긋지긋하다는 건 좀 너무하네. 혹시, 거기 그 끝내주는 아가씨는 알바인가?”

  카운터에 앉은 아저씨가 날 향해 젓가락을 향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당황하며 인사했다.

  “어째서 너 같은 예쁜 아이가 이런 더러운 가게에서.”

  “더러운 가게라서 미안하구만. 매일처럼 들리는 입이 잘도 말해.”


  아주버님이 얼굴을 찡그리며 답한다.


  “이거 좋다. 통근하는 즐거움이 생겼구만.”

  “우리 손녀의 중학생 시절이 생각나는구먼.”

  “아가씨, 냉수 부탁해.”

  좌석에서까지 야유가 날라와서 허둥지둥하고 만다. 냉수? 라고 반응하려는 내 어깨에 아주머님이 손바닥을 올렸다.


  “냉수는 셀프라고! 물 놓은 데에서 스스로 따라 마셔! 알고 있잖아.”

  “젊은 아이가 따라줬으면 하는 거라고.”

  “끈질기네. 네 일은, 그렇지.”


  아주머님이 정중하게 내 일의 순서를 설명해줬다.


  손님이 들어왔으면 냉수를 내놓고 주문을 듣고, 아주버님에게 전하고, 요리를 손님에게 내놓고, 끝나면 식기를 챙겨서……라는 작업이 내 일이다.


  “귀여운 아이가 들어왔네. 할멈이 죽으면 나랑 재혼 안 할래?”


  몇십명째인가의 손님이, 내게 그렇게 말하며 엉덩이를 만졌다.

  우와아아, 아마도 80세 정도의 할아버지일 텐데 엉덩이를 만지다니, 에, 에로할범이다……!

  이런 사람, 실제로 있었구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미지와의 조우에, 나는 잠시 동안 엉덩이를 만지게 놔두고 말았다.


  아주머님이 눈치를 채고, 찰싹하고 에로할범의 손을 쳐냈다.


  “잠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신! 쫓겨나고 싶어?”

  “조금 정도는 괜찮잖은가. 할범의 소소한 장난이여.”

  “명백한 치한 아니야!”


  내가 원인으로 아주머님과 손님이 싸우게 되면 곤란하니까, 당황하며 사이에 끼어 든다.


  “감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엉덩이 만지는 것 정도는 괜찮으니까…….”


  아주머님이 엄청나게 곤란한 표정으로 날 봤다.


  “너, 그런 겉모습인데도 배짱이 좋네. 하지만 말이야. 괜찮다든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 가게에서 일한다고는 해도, 다른 집의 아가씨니까 변태 에로할범에게 내주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잖니. 다음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쟁반으로 머리를 때려버리렴. 옆으로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쳐도 되니까. 자, 휘두르기 연습.”


  들은 대로 쟁반을 아래로 내려치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손님상대로 폭력을 휘두를 근성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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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타하라, 남바라, 히가시하라, 여자 세 사람은 교실에서 도망치듯이 나간 사쿠라코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레이센인 사쿠라코가 머리카락을 뽐낼 예정이었던, 붙임머리를 화두에 올렸던 여자들이다.


  이 세 사람은 중학교가 같았고,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된 운도 좋고 사이도 좋은 그룹이다.


  레이센인 사쿠라코는 이 세 사람을 적으로 돌리고서 서서히 교실에서 있을 곳을 잃는다는 전개가 되었을 터였지만.

  사쿠라코가 공복 때문에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하고 만 것이다. 또 다시, 서서히 이야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당근 밖에 먹지 않았다니…… 좀 심하지 않아?”

  난바라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이, 굉장히 몸집도 작은데……. 혹시 영양부족이라든가 그런 거?”

  “우와. 있을 법해!”


  히가시하라가 손바닥에 들어올 듯한 작은 도시락통에 젓가락을 내리면서 말했다.

  다이어트 중이기에 야채만이 눈에 띄는 도시락이다.


  먹고 싶지만 참는 일은 있어도, 먹을 것이 없었던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배고픔을 호소한 사쿠라코의 목소리는, 마치 사라진 엄마 고양이를 부르다가 지친 아기 고양이 같은, 힘없이 나약한 목소리였다.

  눈꼬리를 내리고 입술을 떨면서, 큰 눈동자를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저 아이, 이대로 가다가 쓰러지는 거 아니야……? 나, 내일 도시락 만들어 와야지.”

  키타하라가 결심을 한 듯이 끄덕인다.


  “그럼, 나도 만들어 올래!”

  “나도. 세 사람이서 순서 정할까?”

  “나, 나도 참가해도 괜찮을까?”

  즐겁게 대화하는 세 사람에게, 옆자리 남자가 손을 들어 참가했다.

  “나, 도시락 내 손으로 만드니까. 한 사람 분 만드는 것도 두 사람 분 만드는 것도 다를 바 없고.”

  그 곁에 있던 남자도 또, 이야기에 참가하려고 몸을 내민다.

  “나도 나도! 모처럼이니 레이센인을 초대해서 다 함게 먹지 않을래?”

  “좋네.”


  사쿠라코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주려고 활기차게 이야기 하던 차에,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


  여자 목소리와 남자 목소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하츠키 모모카와, 타카나시 키리오다.


  쨍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에, 대화 하던 남자와 여자가 얼어붙은 웃는 얼굴로 조심스레 돌아본다.


  “도시락은 내가 만들어 올 테니까, 필요 없어요.”

  “도시락은 내가 준비할 테니까, 필요 없어.”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했냐고 딴지를 걸고 싶을 정도의 호흡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답했다.

  목소리는 차갑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람 좋아 보이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마도, 겉모습만은 관리하고 있는 거겠지만, 내심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사쿠라코에게 괜한 짓하지 마.”라고――.


  “타카나시군도 만들어 오지 않아도 돼요. 내게 맡겨. 나, 사쿠라코의 친구니까.”

  “사쿠라코는 내 형제를 구해준 소중한 은인이야. 내게 맡겨줬으면 좋겠네.”


  딱하고 선언하는 키리오에게 모모카는 불쾌하다는 듯이 답했다.


  “타카나시군……. 자신이 연예인이라는 자각은 있어? 타카나시군 같은 사람이 특별취급을 하면, 사쿠라코가 여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거야.”

  “괜찮아! 절대로 그런 일은 없도록 이 학교에 있는 팬클럽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테니까.”

  “구두약속 따위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아. 계약서라도 쓰게 한다면 다르지만.”

  “계약서……? 예를 들자면 어떤 거?”

  “으음. 혹시 사쿠라코를 괴롭히면, 정수리에서 목덜미 근처까지 종으로 찢는다……든가.”

  “무셔!!”


  ‘아, 진짜. 시끄럽구만…….’


  책상 앞에서 소란이 일고 있어서, 이오리 야마토는 도시락을 챙기고 교실을 나왔다.

  창문 밖 하늘은 쾌청하다. 이런 날엔 옥상에서 먹는 것도 좋을까. 하고 야마토는 계단으로 발을 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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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다시 씻고, 쟁반에 놓인 고기 정식을 조심조심 2층으로 옮긴 뒤, 야마토군과 앉은뱅이 식탁에서 마주앉는다.


  갓 구운 뜨끈뜨끈한 고기는 부드럽고 달콤짭짤한 소스가 일품이라, 오랜만에 먹는 쌀이 굉장히 달콤하게 느껴져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역시 하얀 밥은 맛있네! 반찬으로 나온 호화로운 두부 튀김도, 두부에까지 맛이 베어 밥이 술술 넘어갑니다!


  “우와아……! 굉장하네. 야마토군 네 요리.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네.”

  “……무척이나 굶었나 보군요…….”

  “된장국도 절임도 맛있어……!”


  “그래서, 당신의 걱정을 하나 해결해 주겠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응. 고민 해결됐어! 맛있는 밥을 먹고 힘이 돌아왔습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알바하지 않겠습니까?”


  알바……!?


  “나, 고등학교에선 공부에 전념하고 싶으니까 가게 일을 도울 수 없다고 했더니, 양친이 꼭지가 돌았는지 알바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겁니다. 시급 800엔에 식사 제공. 빈곤한 나머지 당근만 먹었다든가 했었지? 여기서 일하면, 밥도 먹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


  그, 그런가! 돈이 없으면 일하면 되는 거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저 같은 모자란 사람이라도 좋다면, 부디, 부디, 일하게 해주세요……! 전력을 다해 성심성의, 업무를 다하겠습니다……!”

  “하나하나 야단스럽네. 조금 침착하라고――뭐, 됐어. 그럼 오늘 당장 이 뒤부터 부탁합니다. 돈은 일급으로 해주도록 이야기도 끝냈으니까.”

  “이, 일급으로 내주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죠? 바로 쓸 수 있는 돈이 없으면 곤란할테고.”

  “고마워……!”


  다행이다아아아, 이걸로 밥 걱정 할 필요가 없어졌어!!


  밥을 다 먹은 야마토군이 주전자에 전기포트의 뜨끈한 물을 내리면서 생각났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하츠키 모모카. 좋은 여자네요. 역시 소녀만화 주인공이라고 해야할지……. 네가 머리끄댕이가 잡혔을 때, 굉장히 능숙하게 커버했고……. 나는 무립니다. 바로 머리에 피가 올라버리고 맙니다.”


  “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좋아졌어!? 사랑해!? 내 여자가 되라고 말하러 갈 거야!? 나, 모모카씨의 휴대폰 번호 알고 있어. 전화 걸어줄 테니까 고백할 거야!?”


  대단하다. 스토리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잖아!

  좋아. 야마토군. 너는 하면 할 수 있는 아이라고 믿고 있었어!!!


  “………….”

  “어, 어라? 고백하지 않는 거야?”


  “아니, 난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모모카씨보다 네가 더 좋고. 여자 손을 때리려고 했을 때, 막아줬었지?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

  “뭘 총 맞은 새 같은 표정을 짓는 거야.”

  “아니……, 잠깐 기다려.”


  나――다시 말해, 레이센인 사쿠라코는 이 만화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게다가 이오리 야마토군도 또한, 나와 사귀고 걷어 찬 뒤에 모모카씨와 맺어지는 역할을 담당한 등장인물이다.


  그러니까, 나, 그러니까 레이센인 사쿠라코를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너한테 말했었지? 내 속은 극히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라고.”

  “아아, 그 망상.”


  “망상이 아니야! 진실이야! 그만두자. 남자끼리 좋아한다니 추우니까!”

  “문제 없어요.”

  “있잖아! 엄청 많이! 적어도 나는 싫어! 남자와 사귀다니 절대로 무리!”


  “그러니까 문제 없다니까요. 그것도 그럴 것이, 나, 속은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인 걸요. 정신을 차리니 눈매 더러운 불량으로 태어났을 뿐.”

  “에……!!?”


  그, 그런, 설마……!?

  하지만, 그 신님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것도 그럴 것이 세기말 마쵸 대행진에 여자를 성전환 해서 보냈다고 했었다.

  야마토군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성전환 당한 뒤 보내졌을 뿐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그……그런, 야마토군이 여자아이였다니……!!”

  “몸은 남자와 여자고, 속도 남자와 여자니까 내가 사쿠라코를 좋아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 없죠?”


  “우으……!?? 무, 문제 없는 건가……!? 하지만, 나, 남자에게 좋다는 말을 듣는 건 조금……!”

  “나, 속은 여자인데. 남자라고 정해 버리다니 너무해요.”

  “!!!!”


  확실히 그렇다!

  아무리 겉모습이 완전히 남자라고 해서, 야마토군을 남자라고 정해 버리다니, 나는 이 무슨 심한 짓을 해버린 것인가……!


  “미안해, 야마토쨩! 네가 말한 대로야. 나도, 겉모습이 여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여자라고 정해 버리면 슬픈데……, 자신이 당하면 싫은 일을 타인에게 하다니, 나, 남자로서 최악이야……! 사과해서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용서해주세요.”


  “아뇨. 용서할 수 없어요. 상처 입었습니다.”

  “으……! 어떻게 사과를 해야 좋을지……!!”

  “사과입니까……, 그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내 발을, 야마토쨩이 손으로 쓰다듬었다.


  “몸을 만지게 해주세요. 옛날 제 몸의 감촉, 잊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걸로 괜찮아? 간단한 일이야! 모쪼록 사양 말고.”

  몸은 어쨌든 둘 다 여자니까. 남자인 내가 사쿠라코를 만지는 것보다, 여자인 야마토쨩이 몸을 만지는 편이 완전히 자연스러운걸.


  “우와, 피부 새하얘. 인종이 다른 것 같네요.”

  확실히……, 야마토쨩의 피부는 탄 것도 아닌데도 겹쳐서 비교해 보면 색이 다른 것을 잘 알 수 있다.

  손바닥이 커서, 내 허벅지도 한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유감이었네. 내가 야마토쨩의 몸에 들어가고, 야마토쨩이 이 몸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허벅지를 만지는 야마토쨩의 손에 손을 겹쳐서 쓰다듬었다.


  불쌍한 야마토쨩. 원래 어떤 여자아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커다란 손을 가진 남자의 몸 안에 들어가다니.

  그것도 이것도 전부, 그 일처리 대충하는 신님 때문이다.


  야마토쨩이 얼굴을 올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서 내 가슴을 쥐었다.

  우햐햐, 뭔가 근질근질 거린다.


  “쬐끄만 하네. 되게 부드럽지만.”


  야마토쨩이 웃는다. 그, 그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여자아이 끼리라도 섬세함이 너무 없다. 사쿠라코가 불쌍하잖아!

  그렇게 화가 났지만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입을 열 수 없다.


  작은 가슴이라고 하는데도 손가락이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조금 무섭다.

  야마토쨩이 몸으로 덮쳐 와서, 그림자가 져서 몸 크기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알게 되어 심장이 꾹하고 눌리는 느낌이 든다.


  몸에 힘을 주고 있을 셈인데도 멋대로 몸이 부들부들 거려서――――.



※야마토가 여자라고 하는 건,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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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 겨우 하루가 끝났다…….

  5교시, 6교시는 아무 일도 없이 끝났지만, 나는 완전히 축 늘어져서 교문을 나섰다.


  이제 나 지쳤어.


  오늘도 이벤트 실패했고, 모모카씨에게 야키소바 빵을 받아버렸고, 이오리군을 일반인이라고 착각하고 내가 남자라는 것, 이 세계가 만화 세계라는 것을 말해버렸고, 그 때부터 몇 번이나 신님을 불러도 팔찌가 반응하지 않게 됐고……!!


  축 늘어져서 터벅터벅 교문을 빠져 나온다.


  “사쿠라코, 내일은 뭐 먹고 싶어? 나, 도시락 만들어 올 테니까 같이 먹자.”

  옆을 걷고 있던 모모카씨가 웃는 얼굴로 내 얼굴을 훔쳐본다.


  그렇다. 거기에 심지어, 나는 모모카씨와 함께 하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런…….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내일은 제대로 내 몫도 가져올 테니까.”

  “사양하지 마. 팔씨름으로 사쿠라코의 오른손을 복합골절! 및 근육박리! 와 인대손상! 을 입힌 사과니까.”

  “골절도 박리도 손상도 없어! 상처 하나도 없으니까!”

  “그랬던가?”

  “그렇다고! 봐!”


  모모카씨의 눈앞에 오른손을 펼치자 모모카씨가 쿡쿡 웃었다.

  나는 입술 끝을 앙다문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의미불명한 트집이나 잡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도시락까지 만들어 주려고 하다니, 모모카씨는 정말 상냥한 사람이구나…….


  “그럼, 내일 또 봐. 사쿠라코. 만일에 치한을 만나면 바로 연락하는 거야.”

  “으, 응…….”


  내는 개찰구 안에서 모모카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모카씨는 입학식 날에는 친구들 집에 묵었기에 오우사키역에서 전철을 탔을 뿐이고, 평소엔 버스로 통학하고 있다.

  그런데도 역 안까지 나를 배웅해준 것이다.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는데. 걱정이라고 하며.

  처음엔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큰일이었지만, 그건 어떻게든 사양할 수 있었다.


  나, 겉보기에는 작은 여자아이라도 속은 분명한 남자인데, 여자아이가 데려다 주다니 말도 안돼.


  자택이 있는 오우사키역은 여기, 사쿠라오카역에서 네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사쿠라오카역’에서 한 정거장 앞인 ‘사쿠라노키역’에서 내렸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상업시설이 나열하고 있는 통칭 ‘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다.


  넓은 역이라서 잘못 했다간 미아가 될 정도로 복잡하고, 오우사키역하고 두 정거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거리 전망까지 크게 다르다. 마치 대도시에 온 것 같다.

  자녀동반, 학생, 회사원으로 북적거리는 틈을 빠져나와, 내가 향한 곳은 강물이 흐르는 커다란 공원으로 둘러싸인 유리로 지어진 건물, 도서관.


  지도는 받았지만 필요 없었구나, 할 정도로 눈에 띄는 근대적인 건물이다.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책을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가 나열되어 있는 층, 거기를 빠져나오자 단번에 책 향기가 풍겨 나왔다.


  몇 개나 설치되어 있는 긴 책상 한 구석에서 책을 몇 권이나 쌓아두고 읽고 있는 이오리군을 찾았다.


  운이 나쁘게도 나와 모모카씨는 입학 처음부터 청소당번이었던 것이다.

  이오리군은 학교종이 울자마자 교실을 나와 그대로 여기로 발을 향했었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기에 어깨를 두드린다.


  “아, 미안. 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그거, 전부 빌릴 거야?”

  “응.”


  이오리군은 짧게 대답하고 두꺼운 책을 다섯 권이나 끌어 안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출 자동수속을 끝내고 도서관을 나왔다.


  “그럼, 내 집으로 가죠.”


  그렇다. 오늘, 나는 이오리군의 집에 실례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내 고민 중 하나를 해결해준다는 것 같다.


  이오리군의 집은 잡화점이나 식당이 몇 개나 있는 오래되었지만 활기찬 거리에 있었다.


  “오오오오! 대단해. 맛있어 보여……!!”


  쇼윈도에 장식되어 있는 구운 생선이나 카레의 샘플에 내 공복이 반응하고 만다.

  가게 이름은 ‘야마토정’. 투명한 문으로 안을 살펴보니 가게는 성황이고, 아직 저녁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이쪽.”

  손을 흔들어 부르기에 가게 옆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뒤쪽 현관에서 이오리군의 집에 실례한다.


  생선이나 고기를 굽는 냄새가 풍겨와서 더더욱 배가 고파지고 만다. 나, 이 냄새만으로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얀 밥조차 먹은 적이 없다……. 배가 고프다…….


  “엄마. 다녀왔어.”

  “아, 어서와. 짐 놓고 손 씻고 돌아오렴.”


  가게에서 대답을 한 거겠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멀고,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인사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90도에 가까운 급격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야마토군의 방은 2층 끝이고, 앉은뱅이 식탁이나 책장, 서랍장과 학습책상만 있는 살풍경한 방이었다.


  짐을 놓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가 손을 씻고――――.


  “밥, 여기에 둘 테니까! 조심해서 가져가!”

  또 2층으로 돌아가려고 한 나였지만, 이오리군 손에 잡혀서 부엌에 실례했다.


  거거거거, 거기에는, 맛있어 보이는, 고고, 고, 고기 정식이 두 개……!!


  “어머머마ㅜ아어ㅇ”

  “사람 말로.”


  “어, 어째서!? 호, 혹시라도, 이거.”

  “사쿠라코씨와, 제 밥입니다.”

  “나, 돈 없다고 했잖아! 시, 실례했습니다. 밥을 쓸모없게 해서 죄송합니다.”

  “돈은 필요 없다니까. 내가 배가 고파서 저녁밥을 일찍 준비해줬을 뿐이니까. 아무튼,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먹으면서 이야기 하죠.”

  “하, 하지만…….”


  “괜스리 그러지 말라고. 친구 집에서 밥 먹는 게 특이한 일도 아니잖아?”


  ――――――――!!!


  난 크게 숨을 삼키고, 저도 모르게 마루에 정좌하고 말았다.


  “하, 하얀 밥이라니 오랜만입니다! 괴, 굉장히 감사합니다……!!”

  “뭘 절하고 자빠진 겁니까! 손 씻은 것이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잠깐, 이리 와서 손 다시 씻으라고!”


  분노한 이오리에게 팔이 잡혀, 싱크대에 밀어졌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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