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박자가 좋은 노래를 부르면서, 얼핏 기억나는 댄스를 춘다.

  딱하고 마지막 포즈를 취하고 앉은뱅이 책상 위에서 꽃꽂이를 하고 있던 사요코씨에게 몸을 내밀었다.


  “――이런 느낌으로, 굉장히 멋있다구요. 키리오군! 나도 저런 커다란 무대 위에서 춤추거나 노래하거나 했으면……!”

  사요코씨는 고개를 숙이고 배를 잡고 작게 떨고 있었다.

  “왜 그래요? 어딘가 몸이라도……!?”

  “아뇨……. 괜찮아요. 단지 사쿠라코씨의 노래와 댄스가 너무나도 개성적이라……후후후후후후.”

  포, 폭소하고 있다. 음치라는 자각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을 텐데……!


  ―♪

  아, 전화다.

  키리오군에게서 온 전화였다.

  이번에야말로 본인일까?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도 한 순간 빠르게 전화가 끊기고 만다.

  어라?

  되걸어 봐도 받지 않는다.


  뭘까?


  뭐 됐나. 문자나 보내두자.


  ‘라이브 티켓 고마워! 키리오군 엄청 멋있었어! 신곡 CD 절대로 살 테니까! 모모카씨도 감동했었어!’


  거기까지 치고 나서, 안 된다. 하고 자신의 문자를 지운다.

  멋있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한 사람에게 멋있다고 보내면, 뭔가, 기대하게 만들 것 같아서 안 되겠지.

  뒤에 적은 모모카씨도 감동했다고 하는 것도 아무리 그래도 안 된다. 모모카씨 거의 자고 있었으니까 바로 거짓말인 거 들통날 거다.


  ‘라이브 티켓 고마워! 신곡 CD 절대로 살 테니까! 리더라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를 키리오군이라고 착각했어. 죄송하다고 전해주지 않을래?’


  좋아. 그럼.


  “아, 그래. 연습도 해둬야지…….”

  “연습?”

  “네! 악역다운 대사를 모모카씨에게 배워서, 월요일에 모두들 앞에서 말하려고 생각해요. 봐주세요.”


  일어나서, 한 손을 돈 표시로 하고, 나쁘게 보이도록 찌릿하고 눈꼬리를 올린다.

  “역시 대기실에 가는 게 좋았네. 그것도 그럴 것이,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오호호호호!”

  “0점!!!!”


  의견을 구하기 전에 0점을 받아버렸다……!

  “0, 0점!?”

  “완전 빵점이에요. 과정도 없고 이건 안 되겠네요. 어째서 갑자기 연극조가 되는 건가요?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여요.”

  확실히……!!

  다시 생각해보자!

  “역시 대기실에 가는 게 좋았네. 그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그헤헤헤헤.”

  “웃음소리는 그만둘까요.”


  “역시 대기실에 가는 게 좋았네. 그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돈 제스쳐를 좀 더 확실하게 보여주세요. 그러는 편이 임팩트가 있어요.”

  “역시 대기실에 가는 편이 좋았어! 그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완벽해요! 80점!”


  “80점인데 완벽한 건가요……?”

  “사쿠라코씨는 100점을 노리는 것보다 평균점을 노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좀 더 연습하고 나서 자도록 하자.


  ――――


  “사쿠라코씨. 오늘은 비가 크게 온다고 하니까 우산을 잊지 않도록 해요.”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서는 내게 사요코씨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무심코, 돈 발언에 정신이 팔리고만 나는, 확실하게 우산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집을 나설 땐 어렴풋하게 흐린 정도였는데, 역이 보일 때 쯤에는 빌딩 위에 서면 손이 닿을 것 같을 정도로 두텁고 검은 구름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뚝.


  목덜미에서 등줄기에 차가운 물방울이 흘러서, 히약,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올 뻔했다.

  내 머리카락 긴데, 전혀 막지 못할 정도로 굵은 빗방울이다!


  쫘아아아아악!


  후둑후둑하는 정도가 아닌 호우가 단번에 하늘에서 떨어진다.

  우와, 큰일이다. 빨리 역으로 들어가야!


  이 시기의 사쿠라오카 고등학교 교복은 춘추복이다.

  여학생은 긴소매 셔츠와 리본과 스커트 뿐.

  남학생은 긴소매 셔츠와 바지 뿐.


  춘추복이라는데 하복보다 방어력이 낮은 느낌이 든다.

  하복은 재질이 의외로 확실해서 그런 걸까. 하복의 방어력이 5라면, 춘추복은 2밖에 없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나 혼자뿐 일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눈 깜짝할 사이에 축축해져서 살에 닿는 부분이 기분 나쁘다.

  젖은 부분은 어깨만으로 끝났지만……, 이거 학교에 도착할 때엔 홀딱 젖게 되겠네.


  모처럼 사요코씨가 주의해줬는데 잊어버리다니 내가 봐도 한심하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소에는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모모카씨 일행이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먼저 등교한다고 했던가.

  아니아니, 악역인 내가 히로인의 도움을 기대하다니. 있을 수 없어.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소나기가 되어 주세요.

  내 소원도 무심하게 역 밖은 물통을 뒤집어엎은 것 같은 장대한 호우였다.


  “거기 여학생, 우산 없어? 내 우산 같이 쓰고 갈래?”


  내 등 뒤에서 그런 대화가 들렸다. 좋겠네. 나도 누군가 불러주지 않을까. 이럴 때엔 여학생의 이점을 살리고 싶다.

  아니아니, 역시 악역이라면 달려야지.

  뜀박질로 역에서 학교까지 힘낸다.


  위가 아플 정도로 전력으로 달렸지만, 학교에 도착할 때엔 쥐어짜면 수도꼭지처럼 물이 나올 정도로 젖어버리고 말았다…….


  “안녕―…….”

  “안녕. 사쿠라코. 굉장한 비네――――”


  모모카씨가 뒤돌아봄과 동시에 말을 잃고 모모카씨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사사사쿠라코, 속옷 보이고 있어. 그렇긴 커녕 블라우스가 달라붙어서 살이!”

  “에? 그렇게 비춰? 우와, 부끄럽네. 화장실에서 속옷 벗고 올게.”

  “바보냐아아아!! 그런 짓을 했다간 보일 거 안 보일 거 다 보이잖아! 어이, 거기! 이쪽 보지마아아아!”


  모모카씨가 미쳐 날뛰며 가방을 남학생에게 던진다.


  “추, 추리닝은……아, 그런가. 소풍이 있어서 집에 가져갔지! 어떻하지…….”

  “우오, 사쿠라코씨! 나체처럼 되었어요!”

  “아, 딱 좋은 타이밍. 야마토군. 교복 벗어.”


  갑자기 노상강도스런 말을 내뱉는 모모카씨에게 놀라고 만다.


  “괜찮아. 화장실에서 물 짜고 올 테니까――”

  “화장실까지 그런 모습으로 있을 생각입니까? 됐으니까. 자.”


  야마토군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셔츠를 벗어 내 어깨에 걸어줬다.


  “추리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집에 있으니까요. 학생회 휴게실에 가보죠. 예비의 셔츠를 빌려줄 테니까.”

  “예비가 있어? 다행이다. 살았어.”

  “미안해 야마토군…….”

  젖은 옷 위에 걸쳐줬기에 야마토군의 옷까지 젖고 말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당신의 홀딱 벗은 것 같은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싫으니.”


  “이오리, 너, 꽤 몸 대단하네…….”

  “어떻게 된 거야. 그 상처.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있잖아.”


  윽.


  반 남학생들의 지적에 야마토군이 숨을 삼킨다.

  싸움에 강한 것도 있어서, 야마토군의 몸에는 확실하게 근육이 붙어 있었다. 복근도 갈라져 있고, 싸우다가 얻은 상처자국도 몇 개 남아있다.


  “그, 교통사고가 있어서, 그 때 상처로.”

  “몸 단련하고 있네. 얌전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의외야.”

  “그게, 교통사고에 당한 건 몸이 약해서라며 아버지가 축구와 야구와 럭비와 수영을 시켜서.”


  야마토군, 그 설정은 좀 무리가 있는 게 아닐까?

  상냥한 아주버님이 무시무시한 스파르타 아버지가 되었어.


  “그보다도 빨리 가자고. 자, 두 사람 다.”

  “네.” “응.”


  모모카씨에게 팔을 잡혀 폭도를 달린다.


  학생회실에는 임원 전원에게 수납장이 주어지고 있다.

  야마토군은 자신의 수납장에서 제대로 다리미질 되어 있는 셔츠와 수건을 나에게 건냈다.


  “수건도 있다니 준비가 좋네. 다시 봤어 내숭쟁이 양아치군.”

  “그거 날 말하는 건가?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말라고입니다. 싸움이 있을 때를 위해서 준비해둔 겁니다. 피라도 튀면 곤, 란”


  야마토군이 부자연스럽게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비에 젖을 때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준비해둔 겁니다.”

  “그렇네. 피가 튄 교복을 입고 교실에 돌아갈 순 없으니까. 내숭 피우는 것도 큰일이네. 양아치군도.”

  “말 돌렸으니까 그냥 흘려주세요!”


  야마토군은 시선을 돌린 채로 내 어깨에서 셔츠를 벗기고 입은 다음 교실을 나가려고 한다.


  “야마토군, 이쪽을 입지 않을래? 그 교복 젖어버렸고, 아무리 그래도 미안해.”

  “됐어요. 이 정도는 금방 마를 테고. 밖에 나가 있을 테니까 옷 갈아입고 오세요.”

  야마토군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말한 뒤 학생회실을 나갔다.

  “윽…….”


  “호의는 감사하게 받고 빌리도록 해. 자, 감기 걸리니까 빨리 갈아입자.”

  “응…….”


  빌린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피부를 훔치고 야마토군의 셔츠를 입는다.

  내 키는 대충 145. 야마토군의 키는 아마도 170보다 조금 큰 정도다.


  야마토군의 옷을 내가 입자 스커트까지 쏙하고 셔츠에 가려지고, 소매에서 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스커트를 타올로 감싸고 팡팡하고 두들겨 물을 빼주고 있던 모모카씨가 뿜었다.


  “완전히 남친 셔츠 차림이네. 스커트까지 다 가려졌잖아. 똑바로 서봐.”


  들은 대로 바로 선다.

  “가슴 펴봐.”

  들은 대로 가슴을 편다.


  모모카씨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하아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옷이 없으니까 비쳐 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다행이다……사쿠라코가 빈유라서.”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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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고 기다리던 키리오군의 라이브 날이 마침내 찾아왔다!

  “좋아!”


  평소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투 사이드 업으로 만들고 나서 책상 위에 뒀던 작은 스탠드 미러 앞에서 한번 돈다.

  응. 제대로 묶여있다.


  “사요코씨. 다녀올게요.”

  거실에서 자수를 하고 있던 사요코씨에게 인사를 하자 사요코씨는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을 더더욱 무섭게 만들어 날 노려봤다.


  “사쿠라코씨. 그 모습으로 콘서트에 가는 건가요?”

  “으, 응. 이상한가?”

  퍼커와 하프팬츠와 가방. 평범한 복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안돼요. 자, 다시 한 번 갈아입죠.”


  사요코씨는 날 방으로 끌고 가서 옷을 벗겨버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사요코씨가 오고 나서 언제부턴가 반짝반짝 화려한 미니스커트나 탱크톱이 서랍장 안에 늘어났었던가.

  늘어났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어떤 옷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사요코씨는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라며 서랍장에서 옷을 꺼내며 날 코디네이트 해줬다.

  수제 비즈 목걸이까지 달아줘서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다.


  모모카씨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버스 정거장이다.

  약속 시간보다 몇 분 일찍 도착했는데 모모카씨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아, 모모카씨 멋있네! 예뻐!”


  모모카씨의 사복은 어른스럽고 멋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 나는 모모카씨를 선배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모모카씨는 그런 착각을 화내지도 않고, 반대로 기뻐해준 만큼 사복도 연상으로 보이는 걸 좋아하는 거겠지.

  커다란 꽃무늬와 점으로 치장된 갈색 계통 스커트와 롱부츠가 무척 잘 어울린다.

  이런 멋진 사람과 걸을 수 있다니 뭔가 기쁘네. 모델하고 같이 걷는 느낌이다. 퍼커와 하프팬츠 같은 걸 입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사요코씨에게 감사해야지.


  “어머? 싫어라! 정말 사쿠라코 너무 칭찬하잖아.!!”

  퍼억하고 등을 맞아서 개그 만화처럼 있는 대로 바닥에 박힌다.

  “하지만 기쁘네. 고마워. 사쿠라코의 옷도 귀여워! 시폰 미니스커트라니 사쿠라코의 이미지에 딱이야.”

  박힌 곳에서 파닥파닥하며 올라와 나뭇잎을 몸에서 털어낸다.


  “이거, 스커트가 아니야.”

  내가 입고 있는 것은 척 보면 3단 프릴? 로 보이는 미니스커트다.

  하지만 이거, 안은 바지인 것이다!


  펄럭하고 스커트를 들춰 안을 보여주자, 있는 힘껏 모모카씨에게 촙을 먹었다.


  “아파……, 어째서…….”

  “이런 곳에서 보이는 게 아니야! 정말. 변하질 않는다니까.”

  “바지인데도 안되는 건가요?”

  “안되는 게 당연하잖아! 초등학교 2학년에서 1학년으로 강등이야.”

  뭐, 뭘? 지금도 옛날도 나는 엄연한 고등학생 1학년인데요.


  공연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탑의 간판에는 키리오군의 모습이 있어서, 정말 아이돌이구나하고 감동하고 만다.


  “우와, 상점. 사람들이 엄청 많네.”

  “귀찮으니까 빨리 자리로 가자.”

  굿즈는 회장 밖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사고 있는 건 라이브 티켓을 산 사람만이 아닌 듯 긴 뱀처럼 행열이 이어지고 있다. 저기에 줄섰다간 절대로 공연에 늦을 거야.

  키리오군의 굿즈 사고 싶었는데 아쉽다. 모모카씨에게도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받은 티켓을 보면서 자리를 찾는다. 우리들 자리는 스테이지 앞의 앞에서 3번째 열이라는 굉장히 좋은 좌석이었다!

  “모모카씨 굉장해 이렇게 가까운 자리!”

  “그렇네요.”

  “여기서라면 목소리를 높이면 키리오군에게 닿을지도! 다행이네 모모카씨!”

  “그렇네요.”

  “아, 이제 슬슬 시작할 시간이야!”

  “그렇네요.”


  스테이지가 바로 앞에 있어 텐션이 만빵이 된 바로 그 때, 객석 조명이 꺼지고 스테이지에 빛이 작열하며 화려한 음악이 공연장을 흔드는 거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라이브는 예상 이상의 박력입니다!!

  노래도 댄스도 멋있어서, 근처에 있는 여자애들처럼 소리 높여 날뛰고 만다.


  조용한 음악,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이 세계에 방금 왔을 뿐인 나조차 들은 기억이 있는 박자 좋은 노래 (이거, 키리오군 그룹의 노래였구나!) 노래뿐만이 아니라 멤버들의 농담 섞인 대화가 있든가 하는 흥분의 도가니 와중.


  또 조명이 꺼지고 공연장 안이 암흑에 싸인다.

  잠시 시간이 있은 뒤, 스테이지를 스팟라이트가 비춘다.


  화려한 무대장치가 사라지고, 넓은 느낌의 스테이지 한 가운데에 있는 건――――.


  키리오군, 단 한 사람이었다.


  키리오군의 솔로!?


  화려한 연출도 연주도 없이 조용한 피아노 반주가 공연장에 흐른다.


  ――아, 이거――.


  옥상에서 들은 러브송이다.


  상냥한 키리오군의 목소리가 애절해서, 그만큼 소란이던 관객들이 물을 맞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지켜볼 뿐인 짝사랑의 사랑노래.

  눈물을 흘리는 애까지 있었다.


  ………….


  곡이 끝남과 동시에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고 말았다.

  노래의 여운 때문에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다. 노래는 이미 끝났는데 아직 노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 못박힌 듯한 주박에서 풀려나와 헉하고 제정신을 찾아 나는 모모카씨를 되돌아봤다.


  “굉장하네. 키리오군……. 그치, 모모카씨.”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보는 바람에 그런건지 눈에 뜬 눈물을 닦아내며 모모카씨를 돌아보니――.


  “쿨―”


  모모카씨는 뒤로 등지고 고개를 젖힌 채 폭면하고 있었다!!


  히로이이이이이이인!!!!


  “이, 일어나 모모카씨! 키리오군 힘내서 불렀는데 그거 너무하잖아! 모처럼의 라이브라고! 제대로 응원하자!”

  “아……미안 사쿠라코……자장가 같아서 나도 모르게……끝나면 깨워줘.”

  “그러니까 자면 안된다고! 일어나!”

  나는 그야말로 설산에서 조난한 사람을 깨우는 것마냥 모모카씨를 깨우려고 했지만……. 모모카씨는 마지막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사쿠라코. 화내지 마.”

  모모카씨가 눈을 뜬 것은 앵콜까지 끝나고 난 뒤였다.

  “화낼거야! 키리오군 힘냈는데 자버리다니…….”

  귀엽게 고개를 기울여도 내 화는 풀리지 않아!

  “폭면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노래였다는 거야.”

  “그런 걸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콘서트 공연장 통로는 아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텐션 높게 친구들과 소란을 피우거나, 꿈을 꾸는 듯한 여자애들 뿐이라고 하는데. 히로인이라는 사람의 이 덤덤함은 대체 뭐라는 걸까.

  나조차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평소보다 조금 목소리가 높은데.


  휴대폰이 울리고 당황하여 가방에서 꺼낸다. 키리오군에게서 온 전화였다.

  “모모카씨, 키리오군에게서 온 전화야.”

  내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을 확인도 하지 않고 텐션 높게 말을 하고 말았다.


  “굉장히 좋았어! 신곡도 정말 좋은 노래였네. 절대로 CD 살테니까.”

  “사쿠라코?”


  ……어라??


  키리오군의 목소리가 아닌데? 성인 남성의 목소리다.


  “사쿠라코인데요……???”


  “처음뵙겠습니다. 리더인 타카다입니다. 키리오가 언제나 신세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다! 아까 전까지 목소리 듣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전화 너머로 듣는 사람 목소리는 인상이 다르다. 응.


  “이쪽이야말로. 언제나 키리오군에게 잘해주셔서.”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예전 엄마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배끼고 만다.


  “괜찮으면 대기실까지 놀러오지 않을래?”

  에!

  개인적으론 어떻게 되어 있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모모카씨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직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에게 너무 흥미가 없다.

  지금 상태로 놀러갔다간 말도 안 되는 발언이 날아갈 것 같다. 멤버 사람들 앞에서 ‘재미 없었다’라든가, ‘자고 있었다’라든가 말하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든가.


  “초청 감사합니다. 하지만 묘하게 소란을 피워서 일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사양하겠습니다. 키리오군에게 잘 전해주세요.”

  “그래? 헤에?”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는다.


  “아이돌군에게서 뭐래?”

  “키리오군이 아니었어. 리더 하는 사람이야. 대기실까지 놀러 오라고 권했지만, 거절했으니까.”


  “에? 대기실에 가고 싶었는데.”

  “저――――정말로!? 그럼 잠깐만 기다려.”

  재차 물어볼 테니까!

  설마 모모카씨가 흥미가 있었다니 생각도 못했다!

  아까 전의 ‘폭면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노래였다.’라는 건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었구나. 의심해서 미안!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는 내게 모모카씨가 씨익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돈을 의미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럴게, 녀석들에게 싸인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이 못된 히로인! 못된 히로인! 못된 히로인!”

  “꺅!”

  꺅꺅 웃으며 도망치는 모모카씨의 등을 파닥파닥 때리면서 쫓아간다.

  “그런 건 말이야. 악역인 나의 대사라고! 모모카씨가 말해선 안돼!”

  “악역이라니 뭐가? 히로인이라니 그게 뭐야?”

  “하지만, 굉장히 좋은 대사일지도……. 좋아. 학교에서 만나면 써보자!”


  다음주 점심시간에라도 키리오군에게 말해보자.

  모두 앞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제대로 연습해둬야지. 후후후후. 나는 돈에 환장한 여자. 역할렘군들을 싸잡아서 물러나게 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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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종이 울리고 소라군이 “사쿠라의 진짜 쌍둥이는 나다.”라고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간다.


  야쿠오지씨는 샤프펜을 자신의 책상에 꽂아 까득까득 기스를 내면서 “저딴 호모 죽어죽어죽어죽어”하고 주문을 외웠다.

  모모카씨가 “좋았어! 잘했어 소라.”하고 주먹을 쥐고 소라군을 칭찬했다.

  나중에 소라군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고, 야쿠오지씨에겐 친구에게 죽어란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해야지.


  어라?


  키리오군이 없는데?

  조퇴했나? 하지만 가방은 있는데……?


  서, 설마! 모모카씨에게서 공기군이라는 말을 들은 충격으로 옥상에서 몸을 던지려는 건 아니겠지!?

  키리오군은 모모카씨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 모모카씨에게 공기라고 듣는 건 얼마나 큰 충격일까. 첫사랑조차 아직인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는 “키리오군 찾아올게.”라고 말하고 교실에서 뛰쳐나왔다.


  향하는 곳은 옥상이다!


  신님, 모쪼록 키리오군이 자살 같은 거 하지 않도록! 이라니 신님이란 거 그거였다아아아! 괜찮을까. 괜찮겠지!? 키리오군 서두르면 안돼!!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에 도착하고 키리오군의 모습을 찾는다.

  어, 없어……!

  설마 벌써 뛰어내린 뒤인 건……!!?


  옥상은 장해물이 달린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나 같은 건 도중까지 오르는 것도 겨우다.

  하지만 키리오군은 노래하며 춤추는 아이돌이니까 단련되어 있는 만큼 평범한 남자보다 체력도 신체능력도 높다. 전에 있던 세계에서 친구, 료가 그랬다. 댄스를 하는 사람은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으니까 점프력이 장난 아니라고. 이 정도 간단하게 올라갈 수 있겠지.

  어쩌면 이미 떨어진 뒤 일지도 모른다.

  밑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닐까.

  심장이 두근하고 뛰어 오른다. 무릎에서 아래가 급속하게 차가워졌다.

  울타리에 뺨을 붙이면서 운동장을 내려 본다. 아래는 벽돌로 만든 통로다. 나무 그림자로 지면이 보이지 않는 장소도 있어서, 이쪽저쪽 돌아다니며 아래를 확인해본다.


  옥상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고 있자 펜트하우스의 그림자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소리――키리오군의 목소리다!


  ――――사, 살아있었다아아. 다행이야아아아아!


  안심에 휘청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다행이야. 무서웠어!!

  떨어졌으면 어쩌나하고 생각했어! 사람이 죽는 건 절대로 싫어…….


  또다시 마지막으로 본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고 말아서 몸에서 힘이 빠져 옥상 바닥에 엎어진다.


  튀어나갈 듯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시끄럽다.


  머릿속에 망해가 된 양친의 모습이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 건 싫다.

  웃고 있던 때의, 건강했던 때의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공회전하여 제대로 돌지 않는다.


  몸을 웅크리는 내 귀에 키리오군의 노래소리가 들어왔다.


  ――――.


  역시 예쁜 목소리다. 나는 목소리가 작은 것도 아닌데 “뭐라고?”라며 다시 질문 받기도 한다. 하지만 키리오군의 목소리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사람의 관심을 끈다.


  이것이 가수의 목소리란 거겠지.


  노래의 내용은 사랑 이야기였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첫눈에 반해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 거려서, 말을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그런 달콤하고 애절한 사랑의 노래.


  우와.

  우와, 좋네……!

  사랑이란 건 좋은 거구나……!

  아빠와 엄마도 이런 사랑을 했었던 걸까?

  둘이서 나란히 부엌에 선 모습을 떠올리고 조금 웃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행복했던 때가 돌아왔다.


  몸에도 힘이 들어오게 되어 어떻게든 일어선다.


  이미 노래는 끝나고 말았지만 나는 작게 박수를 쳤다.

  “……사쿠라코? 수업은? 어째서 여기에.”

  “키리오군은 역시 가수네! 이런 장소인데도 굉장한 박력이었어! 게다가 굉장히 좋은 가사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로 감동했어!”

  펜트하우스에 기대어 앉은 키리오군 옆에 나도 엉덩이를 내린다.


  내리고 나서 생각난 거지만, 내가 혹시 엄청 방해를 한 건 아닐까.

  키리오군이 여기에 있는 건 아마도 모모카씨에게 폭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곁에 여자애가 있으면 진정하고 싶어도 진정할 수 없지 않을까. 이상하게 신경 쓰게 된다고.

  나도 굉장히 침울했을 때 옆에 모모카씨가 있으면 역시 맘 편하게 침울하고 있을 수 없고.

  남자는 침울해졌을 때조차 여자애 앞에선 멋있어 보이려는 생물인 거다.


  “미, 미안. 방해해서.”

  “방해가 아닌데?”

  일어나려는 순간 팔을 잡혀서 나는 그 자리에 새삼 앉았다.


  “지금 곡, 라이브에서 발표할 신곡이야.”

  키리오군이 쑥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신곡!? 그런가. 발표되기 전에 듣게 되다니 기쁘네. 훔쳐 들은 보람이 있어.”

  “내 솔로 라이브는 비싸다고.”

  “우정가격으로 주스 하나에 봐주세요. 캔이 아니라 패트로도 상관 없으니까.”

  “사쿠라코니까 말이야. 부치 할인으로 무료로 해주지.”

  “그럼 부치에게 감사해야겠네.”

  씩하고 웃으니 키리오군도 웃었다.


  “사쿠라코는 노래, 좋아해?”

  키리오군이 울타리 너머의 거리풍경을 보면서 질문한다.

  “엄청 좋아해! 노래방 점수는 60점밖에 나오지 않지만 말이야. 평가 코멘트에선 ‘힘차게 부르면 뭐든지 좋다.’였다고. 노래방 기계까지 평가가 방치 수준이지만.”

  아쉬운 듯이 말하자 키리오군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다행이다. 공기라고 불린 것 때문에 침울하진 않은 것 같다.


  이건, 그건가.


  키리오군은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으니까 모모카씨처럼 차갑게 대하는 여자에게 두근거리는 전개다!

  소녀만화의 남주인공이니까 말이야. 싸움을 걸어오는 여주인공에게 ‘이 녀석은 평범한 여자들하고 다르다! 재밌어. 내 여자로 만들어 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쿠라코가 와줘서 다행이야. 모모카에게 공기라고 불려서 조금 기가 죽었었으니까.”

  아, 무리였다.

  너희들, 만화 등장인물인 주제에 어째서 그런 부분은 인간적인 걸까?

  좀 더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난동 부려도 좋다고. 그러니까 피치매직이 연재중단된 거야.


  “처음 만났던 날, 사쿠라코, 나에게 고백했었지? 하지만 내가 OK하니까 바로 거절하고. 명백하게 상태가 이상했어.”


  윽.

  싫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넘어가서 몸이 굳고 만다.

  그 당시엔 정말……면목 없습니다.

  “어쩌면 모모카가 명령한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설마! 모모카씨가 그런 명령을 할 리가 없어!”

  “응. 그렇지. 모모카는 나한테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고. 나와 티콜초코, 어느 쪽이든 원하는 걸 선물하겠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티콜초코를 선택할 것 같은걸.”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렇지 않아! 모모카씨는 조금 입이 험할 뿐이고, 친구를 생각하는 좋은 아이라고. 키리오군에 대한 것도 쑥쓰러워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고, 실제론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초콜렛을 선택하다니. 그런.”

  “그럴까? 모모카는 나와 티콜초코가 동시에 강에 떨어질 것 같으면 망설임 없이 티콜초코를 구하리라 생각하지만…….”

  “괜찮아. 망설임 없이 키리오군에게 손을 뻗을 테니까!”

  “‘타카나시군은 강에 떨어져도 스스로 올라올 수 있지만, 초콜렛은 젖으면 먹을 수 없게 되잖아.’라고 말할 것 같은데…….”


  ………….

  굉장히 그럴 것 같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 사쿠라코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러니까. 하고, 키리오군은 말을 꺼냈다.


  “전부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고백해도 될까?”


  ――또, 이 이벤트인가.

  너희들은 이제 그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되어주지 않을까?

  일일이 레이센인 사쿠라코에게 한 눈 팔지 말고, 빨리 모모카씨를 봐주세요.


  “안됩니다. 전부,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


  그리고 나의 양친처럼 행복한 생활을 보내길 원한다.


  망설임 없이 거절하자 키리오군의 몸이 천천히 기울어간다.


  “예상은 했었는데……. 지금 말하는 게 아니었어……. 사쿠라코가 먼저 고백한 주제에 너무하잖아…….”


  정말 그래. 마음 깊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있어도 마음이 상한 키리오군에게 추가타를 날려서 어쩌자는 건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말하는 일 하는 일 전부 반대 효과만 내고 있다.

  이럴 거라면 옥상 따위 오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 허벅지 위에 키리오군의 머리가 올라 부드러운 금색 머리가 퍼진다.


  신 선배가 내가 했듯이 퐁하고 머리를 쓰다듬을까 생각했지만 그만뒀다.


  빨리,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주세요.

  절실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키리오군은 바로 일어나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꽉하고 붙잡는다.


  “나,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이번 라이브에서도 힘내서 멋진 모습 보여주겠어!”


  좋아. 하고 주먹을 쥐며 기합을 넣고 있다. 의외로 긍정적이다……. 하긴 연예인이니까. 긍정적이지 않으면 해먹을 수 없을까.

  그런 자세로 모모카씨의 마음을 사로잡아주세요. 키리오군! 나도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을 좋아하게 되도록 힘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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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쿠오지씨는 나와 같은 리본을 쓰고, 나와 같은 머리를 하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사쿠라코, 이거, 봐.”

  가방 안에서 주머니를 꺼내 내 책상 위에 올린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주머니다.

  “……소지품도 전부 사쿠라코와 같은 것으로 했어. 필통도, 펜도, 손수건도.”

  슥하고 몸을 기울어 다가오기에 나도 모르게 뒤로 몸을 젖히고 만다.


  “……우리들, 절친이지?”

  “으, 응.”

  절친이라는 건, 몇 년이나 사귄 상대, 그야말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사이가 좋은 친구를 뜻한다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이번달부터 알게 된 사람에게 쓰는 건 조금 위화감이 있다. 하지만 여자애란 방금 알게 된 상대라도 바로 절친이라고 하기도 하니까 말이야.

  나와 야쿠오지씨도 절친이겠지.


  오늘 1교시는 실습실에서 수업이다.

  교과서와 필통을 한 손에 들고 의자에서 일어난 내 손을, 야쿠오지씨가 꽉하고 잡았다.

  “……같이 가자.”

  “응.”


  “네네, 거기 지나가요~”


  야쿠오지씨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모모카씨가 나와 야쿠오지씨 사이를 억지로 지나가서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모모카씨에게 팔을 붙잡혀 실습실까지 달려가게 됐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또 야쿠오지씨가 내 손을 잡았다.


  “……이거, 줄게. 나와 같은 반지. 영원한 친구의 증거.”

  반지다. 야쿠오지씨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보였다.

  약지에 간단한 은색 반지를 끼우고 있다. 같은 반지를 내 왼손 약지에 끼우려고 하는데.

  “액세서리 소지는 금지입니다. 게다가 보좌부 부장인 사쿠라코씨가 소지하다니 다른 학생에게 모범이 되지 않아요. 몰수합니다.”

  야마토군에게 몰수당하고 말았다.


  “……몰수당했다.”

  “모처럼 선물해줬는데 미안해. 수업 끝나면 돌려받을 수 있도록 야마토군에게 부탁해볼게.”

  “……이제 필요 없어. 남자의 더러운 손으로 만진 반지 따위 사쿠라코의 손가락에 어울리지 않는걸.”

  “그, 그런가?”

  야마토군 딱히 더럽지 않은데?


  “……그 대신――”

  야쿠오지씨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있던 반지를 빼고 필통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따다닥하고 칼날을 꺼내고 반지가 있던 자리에 대더니――――쓱하고 얇은 상처를 냈다! 동그랗게 피가 뭉치더니 흐른다.


  히이이익!? 아, 아파! 보고 있기만 해도 아파아아!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야쿠오지씨!?


  “……사쿠라코의 손가락도, 같은 곳에 상처를 입혀. 쌍둥이의 증거…….”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알 수 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굳어버려서 도망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피가 묻은 커터칼이 눈앞에 다가오고 공포로 시야가 흐려진다. 그런 주제에 야쿠오지씨의 얼굴만은 선명하게 보여서 공포로 숨을 쉬는 것조차 잊는다.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어진 나를 모모카씨가 당겨줬다.

  모모카씨는 말도 없이 내 몸이 떠오를 정도의 기세로 달려서.


  학생회 휴게실까지 데려와줬다.


  야마토군도 키리오군도 동시에 학생회실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딱하고 문이 닫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외쳤다.


  “사이코씨였다아아아! 야쿠오지씨, 싸이코씨였어!! 어떻게 하지!”

  “““늦어!!!”””

  세 사람에게 동시에 꾸중을 들었다.

  “스스스스스로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무서워서 무리야! 게다가 커터칼로 베다니 절대로 싫어어어!”

  머리를 감싸고 덜덜 떠는 내 옆에서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공기군, 부탁이니까 야쿠오지씨를 어떻게 해줘! 공기군의 팬들 중에도 저런 타입 있잖아? 나, 저런 거 질색이라고! 여자애니까 때릴스도 없고!!”

  “에!? 공기군이라는 거 나!? 너무해!”

  “너무해? 어디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 공기로도 충분해. 아니, 공기는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네. 너 따윈 연기야 연기! 적어도 고체로 진화하라고.”

  우아아아아아! 모모카씨 대체 무슨 짓을!


  모모카씨는 키리오군에게 폭언을 뱉을만큼 뱉고서 내 왼손을 잡았다.


  “사쿠라코의 손에 반지까지 끼우려고 하다니……! 아아, 허락 할 수만 있다면 저 여자의 팔을 어깨에서 잘라버리고 싶어.”

  모모카씨가 내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말하는 게 굉장히 무섭네. 허락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면 안 되요.

  “그렇다 해도 사쿠라코의 손가락 말랑말랑해서 기분 좋네. 계속 만지작거리고 싶어. 공기군. 좋은 방법 생각났어?”

  “그 별명 그만둬. ……그렇네. 모모카도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를 하면 어떨가? 모모카가 더 사이가 좋다고 알면 물러날지도.”


  과연. 그런 수법이.

  나에겐 생각도 할 수 없는 방법에 감탄하고 만다.

  모모카씨는 뺨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인다.


  “그, 그런…….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라니. 부, 부끄러워.”

  “헤에. 모모카씨에게도 의외로 여성스러운 면이 있네요.”

  야마토군이 마음 깊이 놀랐다는 듯이 말한다.


  “후후후. 그래? 스님 머리가 되는 건 괜찮지만, 투 사이드 업이라니 너무 귀여워서 나에겐 무리야.”

  “앞의 말 취소합니다. 스님 머리는 괜찮냐고요. 무슨 기준이야.”

  “불상 퍼머도 모히칸도 괜찮지만, 사쿠라코 같은 귀여운 머리는 무리. 여심은 복잡한 거예요.”

  “여심이라고 안합니다요. 그거! 예능혼이잖아!”


  꺅꺅 다투고 있으니 소라군과 신 선배가 들어왔다.


  “오늘은 무슨 소란이야? 또 사쿠라코 때문?”

  신 선배가 옆을 지나며 내 머리를 퐁하고 쓰다듬는다.


  책상의자에 앉아 야쿠오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또 성가신 아이가 얽혀들어왔구나.”

  “얽혀 들어온 게 아니야.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이 애는.”

  옆에 앉아 있던 모모카씨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었다. 그 기세대로 콩하고 머리를 부딪치고 만다.


  “또인가.”

  “또야.”


  신 선배가 표정을 찡그리고, 그리고 말했다.


  “사쿠라코는 경계신이 부족하네.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윽. 야마토군과 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내가 손을 쓰는 것도 좋지만……. 또 같은 짓을 반복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신 선배는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쓰다듬고 한 번 고개를 끄덕인뒤 말을 이었다.

  “이번엔 가능한 한 스스로 대응해보도록 해. 안 되겠으면 오빠가 어떻게든 해줄테니까 말이야.”

  “네, 네…….”

  작아지는 기분으로 끄덕인다.

  “그러니까 그걸론 안 된다고! ‘내가’ 더 이상 무리야! 지금 당장 어떻게든 해줘. 신! 투 사이드 업이라니 무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내 옆에서 모모카씨가 난동을 부리며 신 선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댄다.


  미쳐 날뛰는 모모카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소라군이었다.

  “그럼 내가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가 될게.”

  “에.” “에.” “에.”

  “묶어줘.”


  소라군이 머리를 날 향해 내민다.

  “으, 응.”

  내 리본을 풀고 둘로 잘라서 자신의 머리를 다시 묶은 다음 소라군의 머리를 투 사이드 업으로 만든다.


  “어울려?”


  소라군의 머리카락은 조금 긴 느낌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어깨에도 닿지 않는, 남자로서 위화감 없는 레벨의 머리카락이다.

  그 머리카락을 투 사이드 업으로 하니 묶은 머리가 뿅하고 튀어나온다.

  “으, 응.”

  너무 어울려서 위화감이 대단하네. 여자가 남자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릇이 큰 신 선배나, 아이돌이라는 일 특성상 여장도 인형옷도 괜찮을 키리오군은 반응이 없지만, 평범한 학생인 야마토군은 있는 대로 질린 표정이다. 하지만 소라군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웃은 거 놀리는 건 싫어하는데 투 사이드 업은 괜찮은 건가. 스님 머리도 괜찮다고 하는 모모카씨도 그렇지만, 나는 이 남매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어요.


  “좋아. 소라. 오늘만은 용서할게. 사쿠라코와 쌍둥이 어필에 힘써달라고.”

  “응.”


  식사시간이 끝나고 소라군과 함께 교실로 돌아감과 동시에 야쿠오지씨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오늘부터 나와 사쿠라가 쌍둥이. 너는 타인이다.”

  “……사쿠라코를 만지지 마. 호모가 옮아.”

  “너야말로 사쿠라의 곁에 있지 마. 처녀귀신이 옮아.”


  소라군의 리본을 풀려고 야쿠오지씨가 손을 뻗는다. 소라군은 내 손을 잡고 움직여 야쿠오지씨를 물리쳤다.


  “초등학생 vs. 초등학생! 좋잖아. 바로 그 기세야 소라!”

  “싸움은 같은 레벨에서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야마토군이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모모카씨가 주먹을 쥐며 지켜보는 와중, 소라군과 야쿠오지씨는 수수한 싸움을 벌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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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박하고 있어?

  내가 모두를?

  “협박 같은 거 하고 있지 않아요?”


  이미지가 중요한 키리오군은 상관없다고 치고, 마이페이스스런 신 선배,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손이 나가는 야마토군, 방만한 소라군 세 사람이 협박하는 정도로 하는 말을 들을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럼 어째서 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 곁에 있는 거죠? 그 정도의 얼굴로 총애 받고 있다고 하지 마세요.”

  “에? 저 네 사람이 좋아하는 건 모모카씨에요.”


  “에?”


  “하츠키 모모카씨에요. 언제나 네 사람과 함께 있는 여학생.”

  아직 네 사람 모두 자각은 없는 것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모모카씨에게 끌리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기는, 만화의 세계지만 현실세계라는 모순된 세계니까.

  만화의 스토리에선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은 훌륭하게 이어져서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있다. 모모카씨가 ‘피치 매직’의 주역이며, 역하렘군들이 남주인공인 이상, 다섯 명이 끌리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 말하자면 운명적 사랑.


  악역으로서 전생한 나 같은 이레귤러가 있는 모순된 세계지만, 단 하나 진실이 있다.

  그건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사랑이다.


  저는 소녀만화 읽은 적이 없으니까, 소년만화로 치환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만화의 클라이맥스, 싸움은 점입가경에 접어들어, 주인공들이 서있는 곳은 푹 파인 대지와 붕괴한 빌딩 무리의 중앙.

  하늘에는 비구름처럼 몰아닥치는 수만의 적, 적, 적!

  신 선배, 야마토군, 키리오군, 소라군 네 사람은 모모카씨를 뒤돌아 보면서 말하는 거다.

  “내가 죽어도 너만은 지키겠어…….”

  모모카씨는 눈에 눈물을 글성이며 답한다.

  “나, 언제까지나 기다릴게……. 다들 반드시 돌아와……!!”

  그런 모모카씨에게 네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싸움에 나선다――――!


  엄청 타오르는 전개다!! 네 사람은 엉망진창이 되지만 모모카씨 곁으로 돌아가서 웃는 거다. “돌아온다고 했지?”라고! 모모카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바보.”라고 말하며 끌어안는다! 그야말로 왕도!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인연은 앞으로도 강고한 것이다!


  지금은 모모카씨와의 접점보다도 나와의 접점이 많으니까 내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고, 모모카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자각할 것이 틀림없다.


  애당초 날 좋아하는 건 야마토군뿐이라고.


  키리오군은 내 고백을 받아 들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푸치와 만난 기쁨에, 나를 하나님처럼 생각한 순간적 텐션의 결과물이다.

  만난 그 날에 고백을 해온 신 선배는 고백이 여자에 대한 인사 같은 거일 테고, 소라군에 이르러선 싫다든가 바보라든가 그런 소리를 들은 기억밖에 없다.

  이런 거 좋다 싫다 그런 레벨조차 도달하지 않았다고.


  “흐응.”


  누나가 심술궂은 웃음을 띄운다.

  “날 적으로 돌리는 게 무서운 거예요? 모모카라면 당신의 친구겠죠? 친구에게 밀어붙이다니 최악이네요.”


  에?


  “남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우쭐거리는 당신 같은 여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날 텐데, 그 친구에게 팔리기까지 하다니.”


  에?


  “모모카라는 사람, 가여워.”


  서, 설마……이 사람이――――!!


  “도우미씨! 도우미씨죠!?”

  나는 덤성 다가가 누나를 올려다 봤다.

  “하아? 갑자기 무슨? 내 이름은 줄리아에요. 노구치 줄리아.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


  아차! 여기는 현실이니까 도우미라고 말해도 자각 같은 게 있을 리 없나. 역하렘군들도 아직 자신이 역하렘요원이라는 자각 없을 정도니까 말이야. 여주인공도 그렇지만.


  “역시 도우미씨도 무척 예쁜 사람이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서류를 가슴에 품은 채 90도 가까이 고개를 숙인다.

  사랑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둔감 히로인, 모모카씨의 사랑을 도와주세요!


  나는 바로 도우미씨――가 아니라, 노구치 줄리아씨를 데리고 학생회실로 돌아갔다.


  “보좌부에 한 사람 부원을 추천합니다! 2학년 10반의 노구치 줄리아씨에요!”

  긴 탁자 위에서 서류나 컴퓨터 상대로 격투하고 있던 보좌부 3명+학생회장+부회장+회계 선배 2명+서기 선배 2명이 고개를 든다.


  “처음뵙겠어요~ 줄리라고 불러주세요. 신하고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 이번엔 여기서 잘 부탁해. 1학년 애들도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네.”


  줄리아씨는 내가 말하던 때보다 2옥타브 높은 목소리와 멋진 미소로 모두에게 인사한다.

  과연 사랑의 도우미씨! 남심을 확실하게 잡는 완벽한 인사다.


  “와아. 어려운 서류네요. 1학년인데도 작업할 수 있다니, 과연 니노마에군. 이오리군도 학년 2위라고 들었어요. 굉장하네. 나 2학년이지만 절대로 질거야~”

  줄리아씨가 야마토군과 소라군의 수중을 훔쳐보며 놀라움에 입가를 손바닥으로 누른다. 핑크색의 긴 손톱이 성인 여성 같아서 멋있네.

  “타카나시군, 이상한 여자애가 귀찮게 하지 않아? 언제나 상담해줘. 나, 여자친구 많으니까 힘도 될 수 있고.”

  키리오군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귓가에 속삭인다. 어라? 지금 줄리아씨가 날 노려봤는데? 아, 내가 키리오군을 협박하고 있다느니 말했었지. 날 경계하는 건 당연한가.

  그 상태로 ‘악역, 레이센인 사쿠라코’에서 모두를 지켜주세요!


  “하츠키씨도……,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줄리는 하츠키씨의 아군이니까…….”

  줄리아씨가 모모카씨에게 다가간다.

  우와아아.

  모모카씨도 줄리아씨도 예쁘니까 엄청 멋있네!!


  저도 모르게 서류를 쥐고 마는 내 앞에 신 선배가 의자를 울리며 일어섰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인원이 맞으니까. 인원이 부족해지면 부를테니 자, 나가나가.”

  “에? 잠깐, 어째서!?”

  신 선배가 눈 깜짝한 순간에 줄리아씨를 교실에서 내보내고 만다. 그리고 지친 표정으로 내게 향한다.


  “사쿠라코. 이상한 생물체를 주워오지 말라구. 아무리 여자애들에게 상냥한 오빠라도, 이런 바쁜 시기에 상대하는 건 귀찮으니까. 오빠와의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만다.

  “친구 좀 골라서 사귀라고 말한지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이겁니까…….”

  야마토군이 쿵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친다.


  “이상한 생물체라니 그런……! 저 사람은 모모카씨의 사랑을 응원해줄 소중한 사람이에요!”

  “하아? 내 사랑? 저 사람 모르는 사람인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어째서 내 사랑을 응원하는 거야??”

  “이제부터 알아가는 거야. 분명 모모카씨와 줄리아씨는 친구가 되리라 생각해!”


  역설하는 내 이마에 모모카씨가 손바닥을 대고 자신의 이마와 열을 비교한다.


  “열은 없는데……. 사쿠라코, 요새 피곤한 거 아냐? 조퇴할래? 이상한 헛소리 하고 있고.”

  헛소리가 아니야! 모모카씨에겐 모를지도 모르지만, 줄리아씨는 너에게 진정한 연심을 알려줄 소중한 사람이라고.

  “줄리아와 모모카는 물과 기름 정도로 타입이 다르다고. 친구가 되는 건 힘들지 않아?”

  “응. 저런 아이는 조금 상대하기 어려워.”

  신 선배의 말에 모모카씨가 곤란하단 미소로 끄덕였다.

  모모카씨는 줄리아씨에 대해서 좋게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이건 친구가 될 플래그임이 틀림없다.

  처음엔 헐뜯던 두 사람이 서로 주먹을 나누고 사이가 좋아진다는 건 만화의 정석이니까!


  “좋아. 완성……이고, 오늘 일은 일단 끝났으니까. 보좌부의 방과후 활동은 패스다. 도와줘서 고마워. 수고했어.”

  신 선배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학생회실을 나왔다. 아, 나, 서류를 전부 보내지 않았어. 5교시 후에 쉬는 시간에라도 배달해둬야지.


  줄리아씨는 방과후에도 우리들의 교실까지 찾아왔다.


  “아, 줄리아씨!”

  복도에서 작게 손을 흔드는 줄리아씨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뒤에서 있는 힘껏 뒷목을 잡혔다.

  모모카씨다.

  “솔직하게 자백해. 저 여자에게 어떤 과자로 길들어 진거야.”

  “과, 과자? 아무것도 받지 않았는데.”

  “거짓말. 사쿠라코가 이렇게 반기다니, 맛있는 과자를 받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이 먹보.”

  “우.”

  볼을 있는 대로 잡힌 아픔에 바둥바둥하고 만다.


  “모모카씨. 그만두세요. 사쿠라코씨는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요. 아마도 의미불명의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당신과 친구가 될거라든가 말하고 있고.”

  “응. 나도 야마토군과 같은 의견일까.”

  “착각 같은 거 아니야! 모모카씨. 오늘은 세 사람이서 타코야키 먹으러 가자. 사요코씨가 맛있는 가게 알려줬어.”


  타코야키 먹으면서 사랑이야기다. 줄리아씨라면 모모카씨의 연심을 잘 끌어내줄 것이 틀림없다.


  “정말!? 응. 둘이서 가자! 갓 튀김타코 3팩~”


  응?


  모모카씨는 가방도 없이 복도로 나가서 줄리아씨와 마주섰다. 나도 당황하며 뒤를 쫓는다. 한손에는 내 가방, 또 한손에는 모모카씨의 가방을 가지고.

  “민폐니까 어장관리 하고 싶으시면 보좌부와 관계없는 장소에서 하세요. 자, 지금이라면 저 두 사람을 낚든지 덮치든지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아요.”

  모모카씨가 키리오군과 야마토군을 가리키며 시원하게 말한다.

  줄리아씨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덧붙여 내 미소도 얼어붙었다.

  먼저 냉동상태에서 빠져나온 건 줄리아씨였다.

  “뭐어어? 영문 모를 소리 하지마. 덮칠 리가 없잖아! 보좌부도, 당신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저는 보좌부 부부장이에요.”

  “부, 부부장이라서 뭐가? 줄리는 부장인 사쿠라코에게 입부 허가를 받았으니까!”

  “보좌부 인원 증감에 대해서 결정하는 건 저에요. 사쿠라코의 의견 따위 손톱만큼도 통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쿠라코의 생사여탈권도 저에게 있습니다.”


  나, 나의 생사여탈권이 모모카씨에게 있었다니!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생사여탈의 의미를 찾아보고 만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주는 것도 뺏는 것도 마음대로 타인을 다루는 것.“

  히이이이익. 공포로 몸이 떨린다. 나나, 나, 나, 악역이라든지 말하고 있었지만, 모모카씨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사형당하는 거 아닐까. 아니, 괜찮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바이올런스 히로인은 아니겠지? 소녀만화고.


  “남자 놈들은 굽든지 삶든지 맘대로 해도 좋으니까. 사쿠라코와 보좌부는 관여하지 말아주세요. 자, 돌아가자. 사쿠라코. 마요타코 5팩~”


  생사여탈의 충격으로 아직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짰다.


  “모모모모모모카씨, 저저저점심시간에도 말했지만, 줄리아씨는 모모카씨의 친구가 되리라 생각해요! 함께 타코야키를 먹으러 가요.”

  “싫엉.”

  모모카씨가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귀여운 포즈와 목소리로, 하지만 확실하게 거부한다.


  “주, 줄리도 싫어! 이런 여자와는 절대――”

  꾹, 하고 내 몸이 무거워진다. 헉, 하고 줄리아씨가 말을 삼킨다.


  “트러블?”


  소라군이 등 뒤에서 날 안고 있다. 이마에 턱을 올리고 있어서 아프다. 이 자세, 모모카씨에게도 당한 적 있다고. 소라군과 모모카씨, 혈연은 없지만 역시 남매구나.

  점점 키가 줄어들 것 같으니까 하지 말아줬으면 하지만.


  줄리아씨는 아직 굳어있지만, 빙글하고 뒤꿈치를 돌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사라지고 만다.

  아아아아……. 모처럼 찾은 도우미씨가…….


  “어이, 소라. 여자에게 달라붙지 말라입니다.”

  야마토군이 교복을 당겨서 나에게서 소라군을 떨어뜨린다.

  “야마토의 경어, 아직도 이상해.”

  “네놈의 끊어 말하기 보단 낫습니다.”


  “자, 사쿠라코. 타코야키 먹으러 가자.”

  다투는 소라군과 야마토군, 말리려고 하는 키리오군을 내버려 두고, 모모카씨는 나를 끌고 타코야키 가게로 향했다――라니, 내가 여주인공과 사이가 좋아지면 어쩌라고……정말…….


  사요코씨가 추천해준 타코야키 가게는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었다. 오래된 외견의 가게에 타코야키라고 적힌 간단한 간판이 걸려있다.

  “헤. 타코야키 전문점이네. 가게 안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희안하네.”

  “어서오세요.”

  안에 들어감과 동시에 아주머니가 미소로 마중했다.


  가게는 비어있었기에 4인석에 앉는다. 내가 문을 등지고, 모모카씨가 그 정면에. 동시에 내 옆자리에 휘청하고 사람그림자가 앉았다.


  “히익!”


  모모카씨가 꿈틀하고 몸을 떨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은 야쿠오지씨였다.

  “까, 깜짝 놀랐다……! 야쿠오지씨, 따라왔었구나…….”


  여, 역시 대단해 야쿠오지씨! 선배인 줄리아씨 상대로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모모카씨를 놀라게 하다니.

  하지만 정말 언제부터 따라왔던 걸까. 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


  야쿠오지씨는 역시나 고개를 돌린 채 모모카씨에게 답했다.


  “……사쿠라코가 불렀으니까.”

  응? 불렀던가?

  ……?

  사람이 많은 편이 좋으니까 아무래도 좋은가.

  “아가씨들, 무슨 타코로 먹을래?”

  아주머니가 벽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메뉴가 적힌 종이가 걸려있다.

  카레, 치즈, 참치, 소힘줄 등등 종류가 풍부하다!


  뭘로 할까!

  “튀김타코하고 마요타코하고 소힘줄타코하고 소세지타코 3접시씩 주세요.”

  모모카씨가 망설임 없이 주문한다.

  “집에 가져가니?”

  “전부 여기서 먹을 거에요.”

  나는 치즈로 할까.

  “치즈 주세요.”

  “……나도 치즈.”


  손을 들어 주문하자 야쿠오지씨도 나와 같은 식으로 손을 들어 주문했다.


  역시나 사요코씨가 추천해준 만큼 타코야키는 무척 맛있었다!

  안에 든 치즈는 말랑말랑하고, 표면에 흐르는 치즈에서 풍성한 향기가 나서 참을 수 없어. 오코노미야키의 치즈도 맛있지만, 타코야키도 맛있네.

  모모카씨가 하나 교환해 달라고 해서, 나는 무척 고민한 뒤 소세지와 교환하기로 했다.

  도중에 야쿠오지씨기 모모카씨의 허락도 없이 소세지를 뺏어서 치즈를 준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 가게에는 또 오기로 하자.

  이번엔 역할렘군도 불러서. 라니, 오늘도 부르면 됐잖아. 이제와서 눈치 챈 나. 정말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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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하렘군들과 모모카씨를 붙이는 일에 초조해진 나머지 내 눈은 이러저러 흐려져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모모카씨가 복도에서 신 선배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신경 쓰여서 무심코 시선을 향하자 딱하고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신 선배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서 나도 손을 흔들었지만……분명 저거, ‘방과 후 쇼핑에 갈 테니까 와줘(하트) 사쿠라코에겐 비밀이야.’ ‘좋아. 저녁밥은 네 수제 요리를 먹게 해줘(☆)’스런 소녀만화적 대화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신 선배와 모모카씨는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네.


  “……레이센인씨.”

  앞자리의 야쿠오지씨가 불러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왜?”

  “……리본, 줘.”

  리본? 아, 머리카락을 묶고 있는 리본 말인가.

  예비 리본을 사요코씨에게서 받았던가. 가방 안에서 주머니를 꺼낸다.

  주머니 안에는 배가 고플 때를 대비한 사탕(고양이 밥을 뺏어먹으려고 했다고 쥐어졌다)와 작은 거울과 접이식 빗. 그리고 내가 덜렁거린다며 반창고까지 들어있다.

  엉키지 않도록 나비 모양으로 묶어둔 리본을 꺼내서 야쿠오지씨에게 건낸다.


  “자, 여기.”


  리본 같은 걸 어디에다 쓰는 걸까? 이상하게 여기고 있자 야쿠오지씨는 자신의 머리를 투 사이드 업 모양으로 묶었다.


  “……어울려?”

  “응! 어울려.”


  야쿠오지씨는 꽤나 등이 굽었다.

  허리를 쭉 피면 좀 더 어울릴 테지만, 역시 그렇게까지 지적하는 건 실례일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우리들, 쌍둥이 같네.”

  “그렇네.”


  갑자기 주머니를 뺏어서 내용물을 책상 위에 뿌린다.

  뭐, 뭐야!?

  “……이 빗, 어디서 산 거야? 이 거울은? 사탕은? 주머니는?”

  아아, 뭐야. 그런 게 듣고 싶었던 건가…….

  “전부 100엔샵이야. 우리 집, 가난하니까.”

  “사쿠라코.”

  아, 모모카씨가 돌아왔다.


  “신이 말이야. 소풍날 딱 점심쯤에 화앵산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밥은 함께 먹자는데. 괜찮지?”

  “그것뿐?”

  “? 그것뿐인데?”


  모모카씨는 의외로 부끄럼쟁이구나.

  내 상상이 완벽하게 맞는다곤 할 수 없지만, 꽤 긴 시간 대화했는데 소풍에 대한 것만 이야기 했을 리가 없잖아. 두 사람만의 비밀을 소중히 하고 싶은 걸까?


  체력 테스트 결과가 남자보다도 높고, 유행가보다 엔카를 좋아하고, 펀칭 머신으로 280kg의 기록을 내놓지만, 역시 모모카씨도 여자인 거네. 히로인답게 행동해 달라고 생각해서 미안. 모모카씨는 멋진 히로인입니다.


  기쁜 마음에 싱글벙글 웃고 있자 모모카씨가 갑자기 안아 올려서 내 몸을 조였다.


  “꾸엑――”


  괴로운 나머지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파닥파닥 몸부림 친다.

  “어, 어째서.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꾸짖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하네? 라며 모모카씨가 팔짱을 끼고 머리 위에 ? 마크를 띄운다.


  “하츠키씨, 사쿠라코와 이야기 하지 말아줘.”

  야쿠오지씨가 창밖을 향한 채로 모모카씨에게 중얼거렸다.


  “네?”

  “에??”


  나도 모모카씨도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사쿠라코와 나는 쌍둥이 자매야. 나 혼자만의 친구야……. 그 증거로, 봐봐. 머리 모양이 같잖아? 이제부터 소지품도 전부 맞출 테니까.”


  모모카씨가 굳었다.


  대단해! 야쿠오지씨!

  내가 아무리 괴렵혀도 꿈쩍도 안하던 최강의 여자아이를 말 한마디로 경직하게 만들다니!


  “모모카, 학생회실로 가자. 오늘도 일이 많으니까 빨리 가지 않으면 점심 식사도 못 할거야.”

  키리오군이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모모카씨의 어깨를 두드린다. 모모카씨는 겨우 헉하고 정신을 차렸다.


  “으, 응. 가자. 사쿠라코.”

  일어나려는 내 손을 야쿠오지씨가 꽉하고 잡았다.

  “……사쿠라코는 나하고 같이 먹을 거야…….”

  어! 이건 실로 기쁜 제안이라고.

  내가 없어지면 역하렘군들과 모모카씨만의 식사가 되는 거잖아.

  그 말에 따라 자리에 돌아가려 하자 야마토군이 옆에 서서 말했다.


  “지금은 학생회 업무가 바쁜 시기이기에 한시라도 아까운 상황입니다. 학생회 부회장 권한으로 지시합니다. 보좌부 부장, 레이센인 사쿠라코씨. 점심은 학생회 휴게실에서 부탁합니다.”

  “윽. 아, 알겠습니다…….”


  확실히 쉬는 시간에도 일거리가 들어오는 상황인걸. 고집은 부릴 수 없나.


  복도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교실과 꽤 떨어지게 되자 야마토군이 내숭을 벗고서 나를 갈책했다.


  “너 적당히 하라고! 성가신 여자에게 너무 잘 얽힌다고입니다. 모모카씨도 그렇고 저 야쿠오지도 그렇고. 친구 정도는 가려 사귀어라입니다!”

  “같은 취급하지 말아줘어어어!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싸이코는 아니야. 나는!”

  모모카씨가 한 손을 있는 힘껏 휘두르면서 항변한다.

  “사쿠라코씨를 감금한다고 했잖아. 충분히 같은 레벨입니다!”


  성가셔?

  “별로 야쿠오지씨 싸이코가 아니야? 여자아이가 흉내 내는 거 보통 있는 일이고……. 모모카씨도 감금하겠다는 거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언제까지나 그거 가지고 툴툴 거리면 안 돼. 야마토군.”

  “이거라고.”

  야마토군이 마음 깊이 싫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사쿠라코는 정신을 차리면 스토커한테 찔려 있을 타입이네. 나 진심으로 걱정이야.”

  키리오군이 내 팔을 잡았다. 잠깐, 아파. 아프다고!

  “나……. 야쿠오지씨 같은 사람은 어떻게 취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여자아이니까 때릴 수도 없고……!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 거야!? 투망으로 잡아서 창문에다 걸어두면 되는 거야!?”

  모모카씨가 머리를 잡으며 으갹하고 기성을 지른다.


  그건 둘째치고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학교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지만, 야마토군이 말한 대로 최근 우리들은 어쨌든 바쁘다. 느긋하게 대화할 여유도 없이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고, 서류나 컴퓨터 화면 상대로 격투한다.


  오늘 내 일은 반 위원장들에게 보낼 서류를 배포하는 일이었다. 나는 컴퓨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서류도 잘 분류하지 못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포 정도 밖에 없단 말이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휴대폰 걸라고. 바로 달려 갈 테니까.”

  “부탁합니다.”

  모모카씨와 야마토군, 키리오군이 강조해서 말했다. 첫 심부름을 나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같아서 흐뭇하다.

  그렇다 해도 여자아이 상대로 걱정이 심하다고. 정말…….


  “레이센인씨.”


  서류를 손에 쥐고 학교를 돌고 있으니 뒤에서 이름을 불렸다.

  있는 대로 걱정을 받은 뒤이기에 조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평범한 두 사람의 여학생이었다.

  본 적 없는 학생이었기에 무심코 실내화 색을 확인하고 만다. 1학년이었다.

  누구였더라?


  “레이센인씨가 키리오군의 강아지를 보호했다며. 정말?”

  뭐야. 키리오군의 팬인가.

  “응. 정말이야. 진짜 머리 좋고 귀여운 강아지였어.”


  “사진, 있어?”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가지고 있던 푸치의 사진을 두 사람에게 보였다. 바보 같은 얼굴로 자는 모습은 언제 봐도 뿜을 정도로 재밌다.

  “에―” “아―”

  두 사람은 미묘한 표정으로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웃을 거라 생각했는데 빗나갔다.


  “혹시, 키리오군의 메일 주소……안다든가 그래?”

  “알고 있지만…….”

  ““알려줘!!!””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압박하고 들어왔다.

  “무, 무리야. 타인의 메일 주소를 멋대로 알려주다니…….”

  “괜찮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테니까! 부탁해!!”

  “미안. 그럴 수 없습니다.”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고 이 이상 무슨 말을 듣기 전에 뒤꿈치를 돌린다.

  날카롭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뭐야 저거. 꼴깝.”이라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서 등줄기를 떨고 만다.

  무무무, 무섭다고!


  재빨리 도망쳐서 다행이다. 저 상태로 계속 압박이 들어왔으면 절대로 거절하지 못했을 거야. 집에 걸려오는 세일즈 전화도 좀처럼 끊을 수 없어서 계속 말을 하게 될 정도로 근성 없고.

  키리오군. 아이돌이니까 개인 정보 취급에는 신경을 쓰고 있을 텐데. 내가 흘리거나 해선 헛수고가 될 테니까.


  휴대폰에 잠금 설정도 해놓지 않았었네. 나중에 설정해 두자.


  “아, 미안합니다.”

  휴대폰을 신경 쓰던 탓에 키가 큰 여자와 어깨를 부딪치고 만다.

  “기다려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사과하고 곁을 지나려고 했더니 또 불려졌다.

  이번엔 뭐야? 키리오군의 메일 주소라면 알려줄 수 없어.

  와.

  예쁜 사람이네. 내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모모카씨에게지지 않을 정도로 예쁜 누나였다.

  어딘가 졸린 것 같은 눈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부드러울 것 같은 갈색 머리카락, 도톰한 입술과 입술 끝의 점이 무척 섹시하다.


  “할 이야기가 있어. 잠깐 와요.”

  “네, 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앞을 걷는 누나를 따라간다.


  누나가 향한 곳은 부활 건물이었다.

  점심 시간이기에 당연히 아무도 없다.


  “당신, 키리오군, 소라군과 함께 등교하고 있다는 것 같네요.”

  빙글 돌면서 선배가 갑자기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것만이 아니라 신군이나 야마토군도 알쫑거린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들 사이에 있는 거죠? 맞춰 볼까요. 그들의 약점을 잡고 협박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같은 빈약한 여자를 상대할 리가 없는 걸.”


  딱하고 내게 손가락을 세운다.


  “어떤 수를 써서 협박했는지 자백하세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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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이른 아침, 졸려서 멍한 길을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학교로 나아간다.

  신 선배와 야마토군만으론 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와 모모카씨, 소라군도 일찍 등교하여 학생회 업무를 돕게 된 것이다.

  키리오군만은 예능 활동이 바빠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하고 있기에 나의 부장 권한으로 면제했다.

  무리해서 몸을 망쳤다간 큰일이니까 말이야. 일과 공부가 최우선이야.


  오늘 업무는 소풍에 대해서다.

  이 학교는 1학년과 2학년의 합동 소풍이 있다.

  목적지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화앵산과 유원지, 동물원 세 장소. 반 다수결로 행선지를 결정하고 버스로 목적지까지 향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화앵산이다. 다함께 바비큐를 할 수 있다면 즐거울 것이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을 테니까.

  다수결 결과 유원지와 한 표차로 우리 반은 화앵산에 갈 것으로 결정 됐다. 소라군의 1반도 또한 화앵산이다.


  신 선배의 반은 동물원이었다. 단 신 선배는 학생회장이기에 교장선생이나 교감선생과 함께 3개 장소를 순회할 예정이 짜여있다.

  반 친구들과도 놀 수 없다니, 학생회장이란 큰일이네…….


  예비종이 울림과 동시에 일을 중단하고 서둘러 학생회실을 나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간다.

  나, 모모카씨, 도중에 일에 참가해준 키리오군, 학생회 부회장 야마토군 네 사람은 1학년 2반 교실로, 소라군은 1반으로다.

  “아, 좋은 아침. 야마토군.”

  “좋은 아침입니다.”

  교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은 야마토군이 우노군과 인사를 나눈다.

  야마토군은 신 선배에게서 받은 ‘원숭이라도 알 수 있는 경어독본’으로 공부한 덕분인지 교실 안에선 완벽한 경어를 쓰고 있다.

  출석번호가 가장 뒤인 우노 쇼타군(신장 153cm에 목소리가 작은 안경 남자)이라는 친구도 생겨서 야마토군이 바라던 성실하고 얌전한 학생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다. 모모카씨가 지적했듯이 경어이기에 괜히 더 눈에 뜬다는 건 비밀이지만 말이야.


  “안녀엉, 키리오구운!”

  “안녕.”

  키리오군은 여전히 교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다. 여학생 중에는 쿠몬씨도 섞여 있어서 교차한 팔을 키리오군 책상 위에 올리고 즐겁게 말을 하고 있다. 여학생만이 아니라 교복을 개조하고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피어스를 달고 있는 화려한 남학생들도 모여서 뭔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모모카씨도 앞자리 여학생과 대화를 시작하고――――.


  헉!!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눈치 채고 말았다.


  나, 친구가 없어!!!


  입학식 날, 배가 너무 고파 쓰러져서 자기소개도 못했으니까 반 친구들과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했다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곤 모모카씨밖에 없잖아! 나(악역)의 가장 친한 친구가 모모카씨(히로인)이라니……!

  이건 큰일이다. 제대로 친구를 만들어서, 적어도 교실 안에서라도 모모카씨와 행동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면.

  이대로 가면 체육 시간에 ‘두 명이서 짝을 지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간 모모카씨와 짝지을 수밖에 없어……. 그건 둘째치고 모모카씨가 없으면 외톨이다! 나, 여자친구, 만들어야……!!


  “저기, 야쿠오지씨.”


  내 한자리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성이 희안한 여학생, 야쿠오지씨다.

  사요코씨와 닮은 보브숏의 흑발을 하고 있고, 눈이 가려질 정도로 앞머리를 길게 하고 있다. 언제나 혼자고 다른 여학생과 함께 있지 않으니 딱 좋아! 아무리 지금의 내가 여자라곤 해도, 많은 여자들과 대화하는 건 긴장하니까 말이야.


  “……왜?”

  야쿠오지씨는 어깨 너머로 고개만을 돌려 대답을 했다.


  “자리가 가까운데 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 야쿠오지씨는 어디에서 등교하고 있어? 나, 오우사키인데.”

  “……카노사키에서.”

  “카노사키? 그거, 어디에 있어? 지리 잘 몰라서 전혀 모르겠다니까.”

  “……전철로 2시간.”

  “에!? 그렇게 멀리서 다니는 거야!? 등교 고생하겠네.”

  “……별로.”


  선생님이 들어오기까지 불과 2, 3분간, 야쿠오지씨와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친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진짜 여자아이가 아니니까 대화의 맥이 다른 거겠지.


  언제나 마찬가지로 체육복 차림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칠판에 커다랗게 ‘소풍에 대해서’라고 썼다.


  “오늘은 소풍에서 함께 다닐 반을 정하도록 하자. 기본적으로 남자 세 명, 여자 세 명이다. 사람 수가 맞지 않으면 남녀 수는 달라져도 상관없지……만, 철판 수가 정해져 있으니까 한 반의 사람 수는 여섯 명이야. 시간은 10분 이내로. 정하지 못한 녀석들은 선생님이 맘대로 반을 짤 테니까 다들, 힘내라!”


  힘내라 라니, 뭘 힘내면 되는 걸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가. 이 기회에 야쿠오지씨와 친해지자!

  “저기, 야쿠오지씨. 함께 반을 짜지 않을래?”

  모모카씨의 초청을 받기 전에 서둘러 야쿠오지씨의 등을 두드린다.

  “……상관 없는데.”

  좋아. OK를 받았어.


  나머지 한 명, 함께 행동할 여자가 있으면 꼭 동료로――라고 생각하며 교실을 둘러보는 나에게 모모카씨가 속 시원하게 고했다.

  “그럼 나와 사쿠라코와 야쿠오지씨네. 딱 세 명!”

  그, 그렇겠지요…….

  뭐, 거절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모카씨와 떨어지는 건 포기합니다.

  “사쿠라코씨, 모모카씨, 괜찮다면 우리들과 함께 반 꾸리지 않겠습니까?”

  야마토군이 우노군을 데리고, 조용하고 얌전하게 제안한다.

  물론 대환영이다. 모모카씨는 요리를 잘 하니까, 이 소풍을 계기로 좀 더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식당 아들인 야마토군이 모모카씨의 식칼부림에 반한다든가!

  좋아. 남은 한 사람은 물론 역하렘군들 중 한 명인 키리오군밖에 없다.


  키리오군은 여러 반에서 초청을 받아서 곤란하고 있다.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쉽게 무시할 순 없는 거겠지.

  아이돌은 꿈을 파는 직업이다.

  차가운 말 한 마디, 차가운 거동 하나가 팬을 환멸하게 만든다.

  키리오군은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서 조차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도록 행동이 제약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레이센인 사쿠라코의 ‘그 일에 대해서 밝혀도 괜찮아?’라는 뻔히 보이는 협박에 걸릴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고. 솔직히 말해서 나 같은 일반 시민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생이야.


  하지만!


  악역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장인 나의 명령은 최우선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 이런 곳에서 보좌부의 권력이 도움이 될 줄은! 신 선배의 착각이 발단이라고 해도 보좌부 부장이 되어서 다행이야.


  “키리오군.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학생회 보좌부 부장의 명령이야!!”

  딱하고 손가락을 향하며 키리오군에게 명령한다.


  “――응.”

  키리오군은 초청하고 있던 반 친구들에게 야유를 받으면서도 우리들 반으로 들어왔다. 물론 옆에서 키리오군을 뺏은 나에게도 무지막지한 야유가 날아왔지만, 그림자 캡짱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방해하는 것이 사명이니까 말이야. 뭐라고 해도 좋아.

  이걸로 6명의 반이 결정됐다.

  “나도 함께 들어가고 싶어.”

  쿠몬씨가 통하고 나에게 부딪혔다.

  “무, 무리야! 맴버 전부 정해졌는걸. 다른 사람과 반을 짜.”

  “에!? 너무해! 우리들 친구인데!”

  어, 언제부터 친구가 됐던가요??

  의문표를 날리는 나는 상관없이 쿠몬씨는 야쿠오지씨에게 달려들었다.

  “야쿠오지씨. 부탁해! 물러나줘! 나 사쿠라코와 같은 반을 하고 싶으니까!”

  이봐!

  “먼저 정해진 사람을 밀어내는 짓을 하면 안돼!”

  “나도 사쿠라코와 모모카와 같은 반을 하고 싶은걸! 친구인데 다른 반이라니 괴롭힘이야!”

  괴롭혀지고 있는 건 이쪽이라고!

  우노군이 가져와준 반 결정 용지에 쿠몬씨가 이름을 쓰려고 펜을 잡는다. 안된다니까!

  “쿠몬씨.”

  말리려는 날 신경도 쓰지 않는 쿠몬씨를, 모모카씨가 불렀다.


  “중간에 끼어들면, 안 돼.”


  모모카씨는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다.

  성모와도 같은 자애에 가득찬 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쿠몬씨의 몸에 수천 개나 되는 살의라는 이름의 화살이 꽂히는 것을.


  “………….”


  쿠몬씨는 말도 없이, 살짝 펜을 두고 물러났다.

  내가 달려들면서까지 저지해도 멈추지 않았던 쿠몬씨를 미소 하나로 뿌리치다니……. 역시 모모카씨. 굉장한 안력이다.


  오늘은 반을 정할 뿐이고, 식재료나 바비큐 자리를 결정하는 건 내일로 미뤘다.


  바쁜 대화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하여, 아무 일 없이 끝난 뒤 짧은 쉬는 시간에 소라군이 2반 교실에서 찾아왔다.


  “소풍, 모모카씨의 반에 들여보내줘. 나, 반에 친구 없으니까. 외로워.”

  소라군은 어두운 얼굴로 모모카씨의 소매를 잡는다.


  오오, 대환영이야! 역하렘군들이 얽혀오다니 무척이나 감사하다.

  내가 기쁨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복도 창문에서 화사한 여학생 두 명이 소라군을 불렀다.


  “여기 있네. 소라군. 바비큐 리퀘스트 없어? 지금까지 마시멜로하고 파인애플하고 사과가 정해졌어.”


  모모카씨가 짙은 시선으로 소라군을 노려본다.

  “친구 있잖아.”

  소라군은 눈을 피하며 팔짱을 끼며 모모카씨에게 달라붙는다.

  “여자들밖에 없는걸. 누나 반에 들어가게 해줘.”

  “짱나. 죽어.”

  하지만 모모카씨는 가볍게 잘라버렸다.


  “모모카는 돼지.”

  소라군도 간단하게 본성을 드러내며 모모카씨를 매도한다.


  다음 순간, 모모카씨가 소라군에게 용서 없는 프론트 초크를 걸었다. 남자 상대로 프로레슬링 기술을 거는 모모카씨에게, 교실 안은 질색의 폭풍이 분다.

  “포, 폭력은 안 된다고 그랬잖아. 모모카씨!”

  소라군의 반 친구 여학생들이 굉장한 형색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잠깐, 그만둬!”라고 모모카씨를 멈추려고 힘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필사적으로 모모카씨의 팔을 파닥파닥 때려서 소라군을 구출한다.


  소라군은 개방된 태세 그대로 내 책상에 엎어져서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혼자만 언제나 따돌림…….”

  “반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됐으니까 그만 꺼져. 방해니까. 너희들 이거. 끌고 가라고.”

  마치 물건처럼 소라군의 목덜미를 잡아 옆의 여자들에게 들이민다.


  순간 번뜩인 생각에 나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그래! 소라군. 우리 반 옆자리에 앉아! 옆자리라면 모두 함께 먹을 수 있어! 저기, 괜찮지?”

  소라군과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확인하자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에―…….”

  소라군의 반은 여자들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소라군을 노리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 소라군이, 다른 사이좋은 여학생 근처에 있는 건 재미없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반에는 최종병기스런 아이돌군이 재적하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모으고 있는 여학생에게 살며시 속삭인다.


  “이쪽 반에, 키리오군이 있어요. 사이좋게 될 찬스에요.”

  “!!!!!”

  여학생이 눈을 빛내며 손을 건낸다. 굳게 악수하고, 어디 자리를 잡을까 획책한다.

  좋아. 이걸로 역하렘군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어! 스스로 생각해도 해냈다. 나!


  “……사쿠라, 고마워.”


  소라군이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


  “천만에요.”

  그러고 보니 소라군이 웃는 얼굴은 처음 보네.


  “헤에, 소라가 솔직하게 웃다니 처음 봤어.”

  아무래도 모모카씨도 소라군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희한하다는 듯이 얼굴을 훔쳐본다.

  순식간에 소라군은 토라져서 고개를 돌렸지만, 모모카씨가 히쭉하고 웃고――――입 좌우에 손바닥을 세우고 교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니노마에 소라가 웃었다!!”

  “뭐, 그만.”

  소라군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습으로 하얀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 모모카씨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둬. 모모카!”

  “니―노―마―에―소―라―가―웃―었―다―

  “모모카씨!” “모모카!”

  나도 당황하며 모모카씨의 입을 막는다.

  아무리 그래도 소라군이 불쌍하잖아.

  모모카씨는 여자아이니까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웃거나 쑥쓰러워 하는 걸 놀림 받으면 꽤나 부끄럽다고!


  “윽…….”

  소라군은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교실에서 도망친다. 그 소라군이 한 마디도 없이 사라지다니.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거겠지. 불쌍하게도…….


  “모모카씨, 지금 그건 너무했어!”

  “말했지. 사쿠라코. ‘날 돼지라고 부른 거, 뼛속 깊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라고. 조금이지만 마음이 풀렸어.”


  모모카씨가 실로 즐겁다는 듯이 가슴을 폈다.

  정말, 조금만이라도, 히로인스러운 행동을 해주지 않을까나…….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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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

  사랑 할 기색이 부스러기도 없는 모모카씨에게 이리 맞고 저리 맞은 뒤, 어깨를 떨어뜨린 채 터벅터벅 좁은 길을 걷고 있자, 어딘지 모르게 잡화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빌어먹을 꼬맹이.”


  ……? 왜 부르는 걸까?

  터벅터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간다.

  아저씨는 된장국용의 접시를 한 손에 들고 마루 아래를 훔쳐보며 날 부르고 있다.


  ?

  아무리 내가 작다고 해도 그런 장소엔 들어갈 수 없어요?


  “어이, 빌어먹을 꼬맹이. 나와라.”


  ???

  잘 모르는 채 터벅터벅 아저씨 옆에 나란히 앉자 아저씨가 날 보고 놀란다.


  “무슨 일이냐? 용건이라도 있냐?”

  “……부르셔서 왔습니다.”

  “아?”


  아저씨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선, 바로 “아~아~아~”하고 납득했다는 듯한 소리를 내고, 그리고 웃었다.

  “네가 아니야. 여기에 살고 있는 들고양이다. 우리집에서 키울까 생각했지만 좀처럼 다가오지 않아.”

  “들고양이?”


  나도 마루 밑을 훔쳐본다. 깊은 곳에서 두 눈이 빛나고 있다.


  “정말이지. 언제쯤이면 친해질 수 있을지.”

  아저씨는 지면에 손을 댄 태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넌 사쿠라코겠지? 레이센인 사쿠라코. 이제부턴 제대로 이름으로 불러줄 테니까, 빌어먹을 꼬맹이에 반응하지 말라고.”

  아저씨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턱하고 두드렸다.


  하지만 난 아저씨의 손에 들린 접시를 보고 말았다.

  반짝이는 하얀 밥과 수북이 쌓인 두부 된장국. 그리고 그 위에 오른 멸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네코맘마를 먹은 적이 없다. 예절에 어긋난다고 혼났지만 정말 좋아했다.

  아저씨는 네코맘마를 바라보는 나에게, 농담 섞인 웃음을 보내며 접시를 내밀었다.


  “먹을거냐?”


  ―――――


  “사요코씨 있어!?”

  아저씨가 유리가 깨질 정도로 굉장히 험악하게 우리 집의 현관을 열었다.


  “어머……. 타카다씨 아니에요. 무슨 일이신가요?”

  현관에서 사요코씨가 고개를 내민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에게 밥을 줘! 고양이 먹이를 먹으려고 했다!”

  목덜미를 잡혀 출러덩 드리워진 날 사요코씨에게 들이민다. 날 사쿠라코라고 불러 주겠다고 했는데 또 빌어먹을 꼬맹이로 돌아가고 말았다.

  먹지 않았습니다. 아슬아슬 미수입니다. 게다가 그건 고양이 먹이가 아니라 네코맘마라하는 훌륭한 요리입니다.


  “어머……, 도시락, 그 분량으론 부족했었나요? 고양이의 밥을 뺏어먹으려고 하다니, 엉덩이 팡팡이에요.”

  그러지마세요엉덩이가부서지고맙니다


  “네코맘마가 아니라 좀 더 좋은 걸 배 한가득 먹어라. 오늘 저녁은 마파두부라고 사요코씨가 저민 고기에 두부를 가득 사갔으니까 말이야.”

  “마파두부!?”

  “네. 마파두부에요.”

  “앗싸-!! 고맙습니다. 사요코씨! 된장국도 먹고 싶어요.”

  “네네. 바로 만들 테니까 기대해 주세요.”


  두부 가득한 맛있는 마파두부와 양배추 된장국을 먹고 목욕탕에 들어간 다음 거실에서 비즈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는 사요코씨 옆에 앉아 목걸이의 섬세한 세공에 깜짝 놀라고 난 다음.


  점심시간의 실패를 생각하고 나는 단숨에 텐션이 떨어져 식탁 위에 쓰러졌다.


  “설마……, 또 흉계가 실패로 끝난 건가요?”

  사요코씨가 웃음을 참으면서 핵심을 찌른다.

  “네…….”

  “실패는 잊고서 다음을 기대하죠. 이번에야말로 잘 될 거예요.”


  “그럴까요…….”

  방석에 앉은 채,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떨구고 만다.

  “모모카씨에게 역하렘군들에 대한 걸 어떻게 생각하나 확인했는데요……. 성희롱남과 여남과 폭력남과 공기남이라고 했어요.”

  “어머…….”

  “어떻게 하면 모모카씨가 사랑을 할 건지 난 전혀 모르겠어요…….”


  둘만 둬도 전혀 진전이 없고, 진전은커녕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뭘 해도 제대로 갈 것 같지가 않아…….

  이렇게 되면 전혀 다른 수단을 생각해야만.


  으음, 으음, 으음……. 아, 그래.


  “사요코씨. 역하렘 만화, 읽은 적 있나요?”

  “네에. 여러 가지.”

  “그럼, 저기, 약속적 전개는 없나요?”


  지금은 완전히 피치매직 스토리에서 벗어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역하렘 만화에 공통하는 “약속”적 전개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사요코씨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 보며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사랑의 도우미로서, 말하는 동물이나 마스코트 캐릭터가 있는 경우가 많을까요.”

  “도우미?”

  “네. 말하는 동물이 없을 때엔,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가 도우미라는 경우도 있네요.”

  “친구인가……. 모모카씨, 학교에 친구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친구가 되는 사람이 도우미 캐릭터가 될지도 몰라요?”

  “! 그런가!”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이 잘 되지 않는 것은, 그들 사이에서 서야 할 역할인 내가 사랑을 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 적이 없으니까, 사랑을 모르는 것도 당연한 걸. 이런 사람이 타인의 연애에 끼어든다는 것도 황송하다. 좋아. 연애방면은 도우미씨에게 맡기자. 누구일까? 빨리 나와주면 기쁘겠는데.


  피, 피, 피, 피, 피.


  가벼운 전자음이 좁은 거실을 울렸다. 내 핸드폰의 착신음이다. 야마토군에게서 온 전화였다.


  “네, 사쿠라코입니다.”

  내가 말하자 거의 동시에 야마토군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집에 있는데?”

  “근처에 모모카씨는 없지요?”

  “없지만…….”

  어째서 그런 걸 묻는 걸까. ――헉! 그런가!


  “모모카씨에게 전화하고 싶은 걸까!? 전화번호 알려줄게! 하지만 잠깐 기다려. 모모카씨에게 확인하고 나서 답장을 줄테니까…….”

  “아니라고 입니다. 모모카씨가 널 감금한다고 했으니까 무슨 일 당하지 않았나 신경 쓰였던 것 뿐입니다.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어요.”

  에에……?

  “감금이라니 농담일 게 뻔하잖아. 전에도 말했지? 모모카씨는 영문도 모르는 행동을 취하는 내게도 상냥하게 대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너의 그 위기감 부족이 무섭다구요.”

  “야마토군이 모모카씨를 오해하고 있을 뿐이야…….”


  좋아. 여기선 제대로 전해두는 편이 좋겠네. 분명.


  “모모카씨는 겉과 속이 같은 성격의 상냥한 사람이야. 야마토군, 전에 내게 좋다고 말했지만, 아마도 그거 착각이라고 생각해. 야마토군은 모모카씨를 좋아하게 되면 행복하게 될 거야.”


  야마토군은 잠시 침묵했다.

  침묵 뒤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겨우 뿌리쳤다는 듯한 침울한 목소리였다.


  “너에 대해서, 좋아한다고 했던 거 민폐였습니까?”


  에.

  난 한 순간 대답에 망설이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민폐였으니까.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냉장고 내용물도 신경 쓰이고, 생전 친구들과 대화도 나누고 싶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묘를 지키고 싶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역하렘군들을 빨리 모모카씨와 붙여서 ‘피치매직’을 완결하고 싶었다.


  내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미안……, 난 널 좋아할 수 없으니까.”


  잠시 동안의 침묵.


  “혹시, 소라인가 신인가 키리오가 좋다든가 그런 겁니까?”

  야마토군의 목소리는 땅 아래에서 울리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깊은 곳에서 싸늘해지는 듯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거의 척수반사로 대답한다.


  “아니야! 그것도 전에 말했지. 모모카씨와 붙이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이번엔 침묵을 두지 않고 평소와 같은 야마토군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그거 다행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알려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야마토군은 통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휴대폰을 귀에 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걸로 좋은 걸까.

  틀렸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모모카씨와 역하렘군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에 야마토군을 불필요하게 상처 입혔을지도 모른다.

  겨우 경직에서 되돌아와 휴대폰 전원을 끊으려고 했지만――, 사요코씨가 반대측에서 귀를 대고 있었기에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청춘이네요……!! 사요코는 두근두근이 멈추지 않아요!!”


  팡! 쩍!


  사요코씨가 난리를 치다가 앉은뱅이 식탁을 두드려 쪼갠다.

  기뻐하는 도중에 면목 없지만, 나와 야마토군의 관계는 그런 게 아니야.

  식탁이 반으로 쪼개진 충격으로 방 안에 흩뿌려진 비즈를 주우면서 나는 일의 진상을 말했다.


  “사요코씨, 피치매직을 읽은 적이 있으니까 알고 있겠죠? 야마토군이 날 좋아한다는 건 그런 스토리니까에요. 현실세계가 아니니까 재밌을 일은 없다구요.”

  “어머?”

  사요코씨는 입가를 누르며 날 돌아봤다.

  “자신의 발언이 모순되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모순?”


  사요코씨는 악동의 표정으로 웃고서 뒤를 이었다.

  “그들이 사쿠라코씨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스토리 대로니까’라면, 모모카씨도 그들에게 끌리지 않으면 이상해요. 끌리지 않으니까 곤란해 하고 있던 거죠?”


  “에?”


  “사쿠라코씨에 대한 호의는, 스토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감정이에요. ……헌데.”

  따콩하고 이마를 맞아서 비명을 지르고 만다.

  “무, 무슨?”

  “진지하게 호의를 전하는 상대방을 향해 착각이라고 말하면 떼찌에요. 고백이라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하, 하지만……, 야마토군은 모모카씨와 붙은 캐릭터고.”

  진지한 얼굴로 혼나서 나는 우물쭈물 변명을 한다.

  사요코씨는 화난 얼굴인 채로 뒤를 이었다.


  “전에도 설명했었죠? 이 세계가 붕괴할 때는 불필요한 부분이 전부 사라진다고.”

  “네…….”

  갑작스레 화제가 전환되어 망설이면서도 기억을 더듬으며 끄덕인다.

  “지구의 연령은 약 45억년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기분 하나로 붕괴하는 세계가,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고 생각합니까?”

  새――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지구는 옛날옛적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태어났을 때부터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고, 그 구석에서 살고 있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망연하고 있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요코씨가 느긋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이 세계가 태어난 것은, 제1화 개시 시기. 하츠키 모모카의 입학식 날. 4월 6일이에요.”


  입학식 날?


  “이 세계에서도 땅 아래에서 수천 년 전의 화석이 발굴되고, 수백 년 전에 그려진 족자나 골동품도 존재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세계가 태어난 것은, 4월 6일. 불과 보름 전이에요.”


  ……????

  의미를, 알 수 없다.


  “철학의 사고실험 중 하나. 세계 5분전 가설이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모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사실은 5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에요. 여기는 그것이 가설이 아닌 세계죠. 5분 전이 아니라 4월 6일이지만. 덧붙여 보충하자면, 내가 이 세계에 온 것도 4월 6일이에요. 처음 만난 날에 사쿠라코씨, 말했었죠? ‘나와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벌써 해결하다니.’――라고. 그건, 아닙니다. 저는 마쵸 대행진 세계를 30년 걸려서 평정하고 왔어요.”


  “에!!? 30년!!?”

  “네. ‘세기말 마쵸 대행진’은 장기연재작품이었으니까 그만한 세월이 걸리고 말았지요. 사쿠라코 입장에서 보자면 전 미래에서 왔다는 느낌일까요?”


  “그런, 엉망진창이야.”


  “그렇네요. 엉망진창이에요. 신님은 역시 신님이라는 걸까요. 공간도 시간도 초월해서 생명체를 이동시킬 수 있다니.”


  …….


  “이 세계의 기반은 피치매직이지만, 여기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캐릭터’가 아니에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개인이에요. 이전에도 말했었죠? 제가 본 세계의 종말 전조에 대한 이야기. 그건 제가 ‘아군이 될 터인 라이벌 캐릭터’를 처형했으니까 일어난 일이에요.”


  에?


  “무고한 백성을 몇 십만 명이나 죽인 그를 어떻게 해서든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였어요. 아군이 될 터였던 라이벌 캐릭터 진영의 캐릭터도, 내 부하도, 꽤 많은 수가 날 버리고 떠났지요. 그 세계가 정말로 만화였다면, 적당히 타협하고 아군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아니었죠. 그들은 각자 생각하고, 자신의 정의에 따라서 움직였어요. 만화와 이 세계는 같은듯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세계에요.”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여기가 만화의 세계지만 만화의 세계가 아니야?

  그런 거 이상하다.

  이 세계가 만들어진 시기도, 잘 생각해 보면 말이 맞지 않잖아.


  “잠깐만요. 잡화점 아저씨가 말했어요. 사쿠라코는 패배자라고 자신을 매도한 빌어먹을 꼬맹이라고……!”

  이건 내가 이 세계에 온 4월 6일보다 이전에 사쿠라코가, 이 세계가 존재했다는 증명이 될 것이다.


  “그런 기억이 있을 뿐이에요. 잡화점의 타카다씨 자신이, 태어난 것은 4월 6일인걸요.”


  “――――――!!??”

  “속옷점에서 진짜 사쿠라코가 불쌍하다고 하셨죠? 이 세계가 태어난 건 4월 6일이고, 당신이 이 세계에서 태어난 것도 같은 날일 거예요. 진짜 사쿠라코는 존재하지 않아요……. 여기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세계. 하지만 저는, 가끔씩 생각하고 말아요. 제가 살고 있던 세계는 정말로 현실세계였는가 하고.”


  무슨 의미?

  되물어보고 싶지만 몸이 식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공포감에 떠는 날 두고, 사요코씨는 다음 말을 계속했다.


  “저희들의 세계도, 어쩌면 누군가가 주인공으로서 살고 있는 작품 세계였을지도 몰라요. 제가 말하는 현실세계와, 당신이 말하는 현실세계는 다른 세계일지도 몰라요…….”


  사요코씨는 만들다 만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어딘가 슬픈 눈동자는, 손 안의 목걸이가 아니라 머나먼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나는 몸 아래에 두고 있던 방석을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왜 그러시나요?”

  “무서워졌습니다.”


  사요코씨가 쿡하고 웃는다.


  “무섭게해서 죄송해요.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여기는 저희들이 살고 있던 세계와 무엇 하나 다르지 않는 걸요.”


  반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인데,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는 건가……무서운데…….


  이 세계는 하츠키 모모카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4월 6일에 만들어 졌고, 하지만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칸자키 신 선배, 이오리 야마토군, 타카나시 키리오군, 니노마에 소라군들은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고…….

  방석을 뒤집어쓴 채 빙글빙글 생각한다.


  ――.

  ――――.

  ――――――――…….


  어라? 이거, 반대로 좋은 일 아니야?


  그럴게, 모모카씨나 역하렘군들이 진짜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타입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연인으로서 좋아하게 될 타입이란 그렇게 바뀌는 게 아니니까.

  이게 만화 캐릭터라면 독자의 인기투표 1위인 캐릭터와 붙는다든가, 죽을 터였던 적 캐릭터가 아군이 된다든가 해서 작가의 마음에 따라 쉽게 뒤집히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여기가 진짜 세계고, 모모카씨들이 진짜 사람이라면, 모모카씨도 역하렘군들도 친밀하게 되기만 하면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래. 바로 그거야! 사요코씨.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 분명 금방 잘 되리라 생각해요.”

  “어째서……그렇게 되는 건가요?”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모모카씨도 야마토군도, 지금은 진짜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고 마음 깊숙한 곳에선 서로 끌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어요! 나머진 계기만 있으면 분명……! 도우미씨만 나와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 틀림없어요!”


  사요코씨는 모든 걸 품을 듯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힘내세요.”라고 응원했다.


  빨리 도우미씨 나오지 않을까나!

  나는 들썩들썩하며 내일에 대비해 예습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이 해결되니까 공부도 잘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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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 학생회실에서.

  각 부활에 배포할 서류를 봉투에 넣고 있는데, 풍기위원인 야자키 선배가 곤란하단 표정으로 들어왔다.


  “학교 건물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과, 주의를 줘도 쓰레기를 불법 투기를 그만두지 않는 여학생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이야기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학생은 신 선배, 야마토군, 소라군이 향하고,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는 여학생을 설득하는 일엔 나와 모모카씨와 키리오군이 맡기로 했다.


  천재일우의 찬스다.

  여기서 내가 없어지면 키리오군과 모모카씨의 둘만의 시간!

  초청 받은 라이브에 대한 거라든가, 학생회에 대한 거라든가, 공통 화제도 잔뜩 있고 분명 좋은 분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저기, 키리오군, 모모카씨. 여자에게 주의 주는 일 정도 혼자서 괜찮으니까 둘이서 쉬고 있어! 봐봐. 저기 자판기에서 주스라도 마시면서.”

  두 사람의 등을 민다.

  “상대는 풍기위원의 말도 듣지 않는 여자야. 혼자서 괜찮겠어?”

  “응. 맡겨줘!”

  나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탕치며 답한다.


  그럼, 그 말을 받아 들어서, 라며 자동판매기로 향한 두 사람을 배웅하며 나는 호쾌하게 문제의 여학생이 있는 장소로 발을 옮겼다.

  있다있다.

  통로 근처 벤치에 세 사람, 그리고 그 앞 통로 정원석에 앉아 있는 것이 네 사람. 도합 일곱명의 여자 그룹.

  즐겁게 담소하면서도 스낵 과자나 단 빵 봉지를 정원 위에 버리고 있다.

  음.

  쓰레기 불법 투기도 그렇지만 실내화 그대로 밖에 나와 있잖아. 신발 색깔로 봤을 때 3학년이다.

  나는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삐리리, 하고 불면서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지적했다.


  “스레기는 제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하?”

  “또 왔어. 귀찮게끔.”

  선배들은 풍기위원 사람들이 주의해도 듣지 않은 것 답게 내 모습을 봐도 동요하지 않는다.

  나를 힐끔 보면서도 바로 무시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나 수단을 찾고 있자 쓰레기 불법 투기나 실내화 따윈 아무 일도 아닌 무시무시한 문제를 눈치 채고 말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선배, 있는 대로 발을 벌리고 있어 팬티가 완전 다 보인다.

  이, 이거, 알려주는 쪽이 좋겠지?

  지금의 나는 여자아이니까 알려줘도 성희롱이 아니지!?


  은근슬쩍 다가가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 저기, 팬티 보여요?”


  선배는 볼 모양의 초콜렛 과자를 먹으면서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래서?”


  에? 팬티 보이고 있으니까 알려준 건데, 그래서라고 되물어도 곤란하다. 우물쭈물하고 있자 선배는 더욱 날 밀어붙인다.

  “그래서 뭐? 팬티가 뭐 어쨌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알려준 내 배려도 무심하게 선배는 큰 목소리로 팬티라고 입으로 내뱉는다.

  “팬티?”

  옆에 앉아 있단 선배가 되묻는다.

  “내 팬티가 보이고 있대.”

  “더러우니까 보이지 말라는 거 아냐?”

  옆의 선배가 아하핫하고 웃는다.

  “아, 아니에요!”

  당황하며 부정하자 통로 근처의 정원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앉은 채로 말을 걸어왔다. 우와, 이 사람들도 다리를 벌리고 있으니까 팬티가 다 보여!

  “그보다 너, 입학식에서 쓰러졌던 아이지? 가까이에서 보니까 되게 귀엽잖아.”

  팬티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우왕좌왕하면서 나도 입을 연다.

  “선배들도 예뻐요. 하지만, 저기, 팬”

  “우와, 아부하기 시작했어. 1학년에 아부 말할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아? 나는 1학년 때 엄청 바보였다고. 누나 여동생 할래?”

  팬티에 대해서 말을 꺼내려고 해도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으며 선배는 내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스다듬었다.

  “너 여동생 있잖아.”

  “그년 귀엽지 않다고. 멋대로 남의 가방 가져가고 진짜 죽여버리고 싶고.”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지 말아주세요. 밖에 나올 때엔 실내화를 갈아 신어주세요. 팬티 보이고 있어요.

  단지 이것만 말하고 싶은데, 내가 입을 열 틈도 없이 말이 오간다.

  “히익.”

  갑자기 다리를 쓰다듬는 터에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백스텝으로 물러서고 말았다.


  “우와, 다리 매끈매끈. 부럽다. 젊다는 거 좋네.”

  “뭐야 그거. 우리들도 아직 젊다고. 쭉쭉빵빵이니까.”

  쭉쭉빵빵이라는 말이 재밌었는지 일제히 웃는다.

  “나도 만질거야. 아, 시원해서 기분 좋아.”

  또 끈적하게 다리를 만지는 턱에 머리카락이 곤드설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긴 머리카락도 예뻐서 부럽네에. 찰랑찰랑하잖아.”

  허벅지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빗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경직되어 있자.


  “학생회 보좌부입니다.”


  커다란 목소리가 아닌데도 사람의 귀를 때리는 존재감 있는 달콤한 목소리가 울렸다.


  키리오군이다.


  깊이를 모르는 지저호수와도 같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빛을 숨긴 푸른 눈동자로 선배들을 일별하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공포와도 닮은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에 긴장감이 거짓말인 것처럼 분위기가 풀린다.


  “쓰레기는 주변에 흐트러뜨리지 말고, 소지하고 있는 봉투에 넣어주세요.”


  벤치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던 선배도, 정원석에 앉아서 늘어지고 있던 선배도 당황하며 다리를 닫는다.


  주변에 흩어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키리오군의 손에서 “저희가 할 테니까!”라며 쓰레기를 뺏으려던 선배가 키리오군의 손가락 끝에 닿아서 “아…….”라며 두근거리는 소녀만화 전개가 있거나 해서, “괜찮아요.” “아니, 정말로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는 주울 생각이었어요.”라며 말하면서 편의점 보우에 쓰레기를 넣어줬다.

  눈 깜짝한 사이에 깨끗해져서 아까 전까지의 포학함이 거짓말인 것처럼, 빌려온 고양이처럼 예절 바르게 배회한다.


  “실내화도, 밖에 나올 때엔 갈아 신어주세요. 더욱 좋은 학교 만들기에 협력 부탁드립니다.”

  반짝반짝 눈부신 웃음을 보이면서 머리를 숙인 키리오군에게 선배들이 높은 목소리로 “네에.”하고 대답한다.


  무사히 불법 투기하는 선배들에게 주의할 수 있었지만…….

  키리오군과 모모카씨가 둘만 있던 시간 따위 3분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거, 대화가 가능한 시간이 아니지.


  대화는커녕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말한 것 때문에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을 때리는 최악의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이건 극히 좋지 않다.

  점심이 끝나고 우리들 1학년조는 모여 교실로 돌아간다.

  1학년 2반 교실에 야마토군이 들어가고, 키리오군이 들어가고, 뒤를 이어 들어가려고 하는 모모카씨를 잡아 복도 창가 앞으로 끌고 온다.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네?”

  답하는 모모카씨는 무척이나 상냥한 표정이다.

  풍성한 흑발. 긴 속눈썹으로 치장된 눈꼬리가 내려간 눈은 소녀만화 히로인으로서 어울리는 품위 있는 풍모.


  나는 벤치에 앉아 있던 선배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까치발을 들어 입의 옆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모모카씨에게 소곤하고 속삭였다.


  “신 선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연애담따위 부끄러워서 하기 힘들지만,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다.

  그게 그럴 것이, 아무리 그래도 모모카씨의 태도가 너무 신랄하다.

  일단은 역하렘군들에 대한 모모카씨의 평가를 확인해둬야!!


  “신? 여자만 밝히는 성희롱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소꿉친구로서 부끄러울 뿐이야. 사쿠라코를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안아 올린 것도 믿을 수 없어. 다음에 또 그러면 싸대기를 날려줄 테니까 안심해.”


…….

  예상 이상으로 엄격한 대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에, 그럼. 소라군은?”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거니까, 조금은 신경 쓰이거나 하겠지?

  모모카씨는 주먹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뿌드득하고 관절을 풀었다.

  “오만하며 무례한 의붓동생. 돼지라고 불렀던 일, 뼛속깊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


  “야, 야마토군은!?”

  “내숭쟁이 양아치. 눈에 띄고 싶지 않으니 경어를 쓴다는 거 이상하지. 오히려 반대로 눈에 띈다고.”


  “그럼, 키리오군은……!?”


  “키리오군이 누구였지?”


  모모카씨의 대답에, 내 눈앞이 컴컴해졌습니다.


  이, 이상해……!

  여기까지 전방위로 흥미가 없다니!


  너무 심한 충격에 복도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힘이 빠진 몸을 일으킨다.


  “타카나시 키리오군 말이야…….”

  “아아, 아이돌군, 키리오라는 이름이었구나.”


  “멋있어, 라든가. 좋아, 라든가 그런 거 없어!?”

  “전혀 없어.”


  즉답하는 모모카씨의 표정은, 실로 멋진 웃음이었습니다.


  “서, 설마 사쿠라코. 그 중에 신경 쓰이는 남자가 있는 거야!? 안돼, 안돼! 사쿠라코에겐 좀 더 제대로 된 멋있는 남자가 어울리니까! 성희롱남과 여남과 폭력남과 공기남이라니, 절대로 인정할 수 없으니까!”


  무너지고 주저앉은 내 얼굴을 모모카씨가 훔쳐보며 어깨를 흔든다.

  미래의 서방님들에게 이 무슨 폭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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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갖가지 정보가 흘러넘치고 있다.


  범죄, 시사, 정치, 경제.

  정보를 얻는 매체도 신문, 텔레비, 잡지 등등 갖가지.

  하지만 발신된 정보가 전부 진실만 있는 건 아니다.

  이름을 떨치는 이 나라 굴지의 매스미디어조차 임팩트 있는 뉴스를 구하다가 몇 번인가 모르게 조작을 행한 전례가 있다.

  소비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자의적인 각색, 편향보도라 하는, 어느 일정한 감정을 대중들에게 부채질하고자 하는 행동에 대해선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신문도 방송국도 일개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각자의 의도에 따라 보도에 각색을 넣어, 혹은 의도적으로 일부 정보를 숨긴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 사쿠라오카 고교 3학년 13반, 토죠 슌은 바라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눈과 발로 진실을 잡는 프리 저널리스트를.


  ――그렇게, 뜻은 높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서 세상 속의 동향보다도 눈앞의 도시락이 소중하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책상을 적당히 마주대고, 새로 생긴 친구들과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이 학교에는 쓸데없이 반 수가 많아서 한 학년에 15반이나 있다. 그렇기에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 유감이다.


  고등학교 생활 2년간, 그럭저럭 즐거웠지만, 이렇게나 반 멤버가 바뀌는 상태에선 인간관계가 희박하게 느껴지고 만다.

  초등학교에선 반이 하나, 중학교에선 반이 두 개 정도인 학교에서, 동급생은커녕 선배, 후배들까지 사이가 좋았던 짙은 소년시대를 지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새롭게 생긴 친구들과 담소하면서도 일종의 쓸쓸함을 느낀 그때.


  드륵, 하고 문이 열리며 여자가 교실에 들어왔다.

  실내화인데도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면서 바로 내게로 향해서 온다.


  학생 수 2천명을 가볍게 넘는 사쿠라오카 고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유명인, 연극부에 소속된 여자, 노구치 쥴리아다.

  키 170센티 정도의 조금 큰 키이긴 하지만, 웨이브 진 세미롱 머리카락에 통통한 입술, 그리고 뺨의 보조개가 섹시한 거유의 미소녀다.


  그런 미소녀가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나에게 딱하고 손가락을 세웠다.


  “당신, 신문부 부장이 됐지요. 학생회 활동을 조사하세요!”

  “……뭐?”

  “뭐, 가 아니에요! 밥을 먹고 있을 때에요? 빨리 가요!”

  의자를 삐걱, 하고 차여서 나는 교실에서 끌려가게 됐다.

  등을 밀리는 이유도 모르는 채, 메모 용지와 펜을 손에 들고 학생회실 앞에 끌려오는 꼴이 되고 만다.


  웃기지 말라고. 아직 식사 도중이었는데 어째서 내가!

  라고, 불만을 말하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생각하고 만 것이다.


  이걸 기회로 이 거유와 사이좋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아니, 그럭저럭 얼굴은 아는 사이긴 한다고. 연극부는 화제성이 있으니까, 신문부로서 취재하는 일도 많았고.

  그게 아니라 함께 놀러 가거나 하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만 것이다.

  쥴리아의 성격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어. 얼굴에 어울리지 않고 난폭하고 오만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저 거유를 보면 전부 용서하게 된다. 거유 만세. 가슴은 세계를 구한다.


  ……장래, 거유녀에게 하니 트랩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쥴리아의 요망은 ‘새로운 학생회 임원, 혹은 보좌부 부원을 협박할 수 있는 특종을 가져와라.’였다.


  이거야 원 무리한 주문을 하는 사람이다.

  타인을 협박할 소재가 그렇게 굴러다닐 리가 없잖아.

  그래도 저 거유가 어쩌고 저쩌고 투덜투덜 불만을 말하고 있으니, 학생회 휴게실 문이 열리고 칸자키 신이 나왔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계단 그림자에 몸을 숨긴다.

  계속해서 새로운 부회장인 이오리 야마토, 보좌부의 은발과, 화제의 아이돌 타카나시 키리오군. 그리고 귀여운 두 사람의 여자가 나타났다.

  한 사람은 입학식 때 쓰러졌던 아이군.

  보좌부 회장이 됐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꽤 작네.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가 되지만, 부회장 이름이 이오리라는 말을 듣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생각했던 나의 두근두근을 돌려줬으면 한다.

  설마 이오리가 성이고 눈매 나쁜 안경남이었을 줄은 실망에도 정도가 있다.


  뭔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얼굴이 잘생기고 반짝반짝거리는 뒤를 따르면서, 어딘지 모를 특징 없는 세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세 사람 모두 풍기위원 완장을 달고 있다.


  “바쁜 와중에 미안하네. 칸자키……. 우리들만으론 어떻게도 할 수 없어서.”

  “괜찮다니까. 신경 쓰지 마. 학생회장이 내가 되고 나서 풍기가 흐트러졌다는 말을 들어도 곤란하니까 말이야.”


  칸자키는 턱하고 풍기위원의 어깨를 치고 다섯 명의 1학년에게 향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여자 쪽으로는 키리오와 모모카, 사쿠라코가 가줘. 야마토와 소라는 나와 함께야.”


  1학년들은 입을 모아 반론을 하고, 둘로 나뉘어 걸어 간다.


  어디로 가는 거지?

  어느 쪽을 쫓을까 한 순간 고민했지만, 역시 여기선 학생회장과 부회장을 쫓아야겠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거리를 띄우고 미행한다. 세 사람은 1학년 건물 뒤쪽으로 발을 향하고 있다.

  여기는 작은 세면장밖에 없는데다가 나무가 있어 머리 위의 창문에서 보여도 발견되기 어렵다는 이점도 있어, 학교에서 유일하게 타인에게 발견되기 어려운 장소라고 한다.

  몰래 만나고 싶은 커플이나 혼자서 느긋하게 있고 싶은 학생의 쉼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품행이 좋지 않은 녀석들의 모임장소도 되고 있다.


  우와, 있잖아.

  가장 큰 나무 그늘에 10명 정도의 남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학생수가 쓸데없이 많으니까 가끔 있단 말이지. 이런 종류의 바보가.

  모두 본 적 없지만……신장 180센티 이상은 되는 듯한 남자는 본 적이 있다. 이름까진 모르지만 복싱부 사람이다.


  칸자키들은 바로 남자들에게 향해갔다.


  “안녕하세요. 담배 피울 돈이 있다니 부자시네요. 이야, 나 같은 가난뱅이에겐 부러울 따름이에요. 하지만 위반이니까. 다들 처벌을 받아야겠네요.”

  칸자키가 웃는 얼굴로 남자들에게 말을 건다.


  남자들은 학생회장인가, 라든가, 칸자키인가, 라든가 혀를 차면서 입을 열고 귀찮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봤다.


  “그냥 봐주지 않을래? 학생회장씨. 다른 학생들을 신경 써서 이런 인적 드문 장소에서 피우고 있는 거니까.”

  복싱부 남자가 아직 길었던 담배를 버린다. 이런 종류의 녀석들에게 매너를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말이겠지만, 불을 밟아 끄지도 않는다.


  “이거이거 또, 아시면서. 담배는 교칙 위반은커녕, 법률위반이에요. 그냥 봐주면 혼나니까 안 돼요.”


  “네가 잠자코 있으면 문제 없겠지.”


  “그러니까 무리라니까요. 자, 불 끄지 않으면 화재가 일어날 거에요.”


  어디까지나 표표한 태도를 취하는 칸자키에게 복싱부 남자가 이마에 혈관을 돋으면서 땅을 밟듯이 걸으며 칸자키 앞에 섰다.

  사람 한 명 정도 공간을 띄우고 서로를 노려본다.

  반 순간, 나 따위의 동체시력으로는 판별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칸자키의 가슴께의 명치를 노리고 복싱부의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쿵! 하고 무거운 소리가 공기를 울린다.


  우와아, 아프겠다……!

  저도 모르게 위가 파열할 듯한 아픔을 환시하고 나까지 교복 가슴 주변을 쥐고 만다.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칸자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


  “폭력은 그만두세요.”


  칸자키의 목소리와는 다른, 조용한 목소리가 울린다.


  옆에 서 있던 이오리 야마토가 팔을 옆으로 뻗어, 손바닥으로 남자의 주먹을 받고 있었다.


  샌드백이라도 친 듯한 무거운 소리를 낸 일격을, 야마토는 손바닥만으로 막으며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

  숨을 삼킨 것은 나였는가, 그 장소에 있던 녀석들인가. 아니, 양쪽인가.


  야마토는 작은 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평균키에 몸집도 보통이다.

  그에 비해 복싱부 남자는 적어도 어림잡아 100킬로는 될 듯한 체격을 하고 있다.


  이만한 중량차가 있는데 흔들리지도 않다니!


  “어이, 그 녀석――야마토 아니야?”

  딱 굳은 웃는 얼굴로, 금발을 왁스로 올린 남자가 말했다.

  “에? 야마토라니. 대량파괴병기라든가 영문 모를 별명인?”

  “뭐? 정말? 이 안경이?”


  대량파괴병기――――라니, 들어 본 적 있네. 어딘가의 중학교인가에서 바보 같이 강한 녀석이 있다고. 설마 그게 저 부회장인가? 우와. 전혀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듣고 보니 인상 나쁘네. 안경 효과로 인상을 풀고 있는 거겠지만, 평범하게 악면상이야.

  남자들이 단숨에 전의상실하고 복싱부 남자도 한 발 물러선다. 이거 도망칠 생각이군.


  여기서 놓친다면 잡는 건 무리겠지.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 학교는 학생수가 쓸데없이 많다.

  신문부 소속인 나 조차도, 누구 하나 이름을 아는 남자가 없는 거다.

  복싱부 남자만이, 겨겨우 복싱부라고 알 정도.


  재빨리 여기서 도망쳐서 담배만 처분해 버리면 증거는 없겠지.

  칸자키 신이 모든 반을 돌아서 찾는다 하더라도 죄를 인정하게 만드는 건 무리일 것이다.

  세 사람이서 10명 전원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놓치면 귀찮게 된다. 자, 어떻게 할 건가? 학생회장님.


  여기서 한 명이라도 도망치게 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특종이다. 쥴리아도 납득해줄 것이 틀림없다! 아잣! 해냈다!


  “소라. 이 녀석들 이름 부탁해.”


  “3학년 6반, 와타나베 케이타. 3학년 7반, 복싱부 소속 야마노치 하쿠야. 2학년 13반, 야마무라 아키와 이노우에 아이소. 3학년 8반, 농구부 소속 콩고 치카오. 1학년 8반, 모모키 쥬로, 야구부 소속. 1학년 15반. 야마노치 요조라――――”


  귀찮다는 듯이 지면에 주저앉아 나뭇가지로 낙서하고 있던 은발 남자가 담담하게 반과 이름을 고한다. 소속 부활동까지도.

  남자들 얼굴이 단숨에 새파래진다.

  그 모습에, 이름도 소속부도 맞았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


  “운동부에 소속되어 있는 분도 계시는 군요. 안 돼요. 여러분. 잘못하면 부활까지 활동정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일단은 전원 일주일 근신처분을 받도록 하지요. 각 담임에게 연락해 두겠습니다.”


  “…………!!!”


  제길, 하고 갈색머리 남자가 칸자키를 향해 지면을 걷어차 모래를 날리지만, 슥하고 야마토가 앞으로 나와 칸자키의 모래에게서 막는다.

  흑색 안경을 비스듬하고 노려보자 “히익”하고 한심한 비명을 지르며 남자들이 도망친다. 그보다 진짜 무섭네. 저 녀석. 훔쳐보고 있는 나까지 반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이야, 너희들 도움 되네.”


  모두 도망치고 나서 칸자키가 소라와 야마토 어깨를 탁탁 두드린다.


  “야마토는 강하고 소라는 전교생 얼굴과 부활까지 기억하고 있고. 이 오빠 편해서 살았어.”

  1학년들은 우울하게 손을 걷어내며 칸자키를 노려봤다.


  “어째서 피하지 않은 겁니까? 당신이라면 반격하는 일도 할 수 있었겠죠.”

  “아니아니. 오빠 쫄아서 반격이라니 무리무리. 싸움 약하고.”


  칸자키의 경박한 말에 1학년 두 사람이 짜증난단 얼굴로 노려본다.

  그야 그렇겠지. 정말로 쫄았다면 맞을 것 같던 시점에서 무서워서 도망치든가 비명을 지르든가, 적어도 방어 태세를 취했을 것이다.


  “신, 끝났어?”


  보좌부원 중 한 명인 하츠키 모모카가 손을 흔들며 남자 세 명에게 다가갔다.

  반대 손에 풀썩하고 고개를 숙이고 비구름을 등에 진 보좌부장, 레이센인 사쿠라코의 손을 쥐고.


  “사쿠라코 무슨 일 있었어? 머리 위에 비구름이 보이는데…….”


  칸자키 신이 묻자 여자 두명 뒤에서 따라오던 타카나시 키리오가 답했다.


  “사쿠라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여자를 자신 혼자서 주의 주겠다고 나섰는데……. 반대로 잡혀서 발을 만져지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지거나 해서 놀아났습니다.”

  키리오의 설명에 칸자키와 야마토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남자들 곁에 모모카가 찌릿하고 눈썹을 올리고 있다.

  “사쿠라코가 혼자서 해결하겠다고 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아이돌군이 바로 나가버려서 망쳐버렸어.”

  모모카가 쾅하고 아이돌군의 등을 주먹으로 때린다.


  “아팟. 반쯤 울고 있는데 그냥 두면 불쌍하잖아.”

  “그래도 지켜보는 것이 남자의 주변머리란 거잖아. 사쿠라코가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참으라고.”

  쾅! 다시 모모카의 일격이 등에 들어간다.

  “아프다고! 진심으로 때리는 거 그만둬!”

  “이렇게 가볍게 때리는데? 나약하네.”

  고양이 펀치 정도인데. 라고 하나로 묶은 긴 머리를 흔든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 모습은 무척이나 사랑스럽지만.


  “아니, 쾅쾅 소리가 났다구요.”

  야마토가 딴지를 넣는다. 응. 내가 있는 곳까지 들릴 정도로 소리가 났어. 아마도 야마토군의 등, 새빨개지지 않았을까.


  “모모카. 이전에 게임센터에서 펀치 머신으로 280킬로 나왔어. 때리는 곳 부서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

  2, 280킬로!!?? 뭐야 그거! 나, 80킬로밖에 나오지 않는데!!

  “그건 고득점을 내는 요령이 있어. 내가 괴력인 게 아니라고.”

  “폭발음 같은 소리, 나서, 점원이 소화기 가지고 달려왔어.”

  “그 점원씨, 귀가 좋은가봐.”


  “쓸데없는 저항 하지 말라고. 모모카. 너, 힘 강하니까 남자 상대라고 해도 손대중은 하고. 다음에 저항하지 않는 인간 때렸다간 너도 정학처분 내릴 거니까.”

  “에, 너무해! 나약한 여자아이에게 정학처분이라니……. 그치, 사쿠라코.”

  “어, 그게……. 저, 저도 사람을 때리는 건 안 된다고…….”

  사쿠라코가 모모카에게서 시선을 피하면서 말한다. 응. 그 말대로지. 폭력이란 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야.

  좋은 아이네 사쿠라코.

  “……………………그것뿐?”

  모모카가 슬프다는 듯이 눈꼬리를 내린다.

  “그것뿐이라니 뭐가?”

  “야마토군에겐 말했잖아. ‘내가 절대로 막을 테니까, 둘이서 힘내자’라고. 내게는 말해주지 않는 거야?”

  “윽…….”

  “그 때 사쿠라코, 이렇게 찌릿해서 멋있었어! 사쿠라코가 남자아이였다면 좋았는데. 그랬다면 내 남친으로 삼고 매일 귀여운 옷 입히며 놀았을 텐데. 평생,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다른 여자 눈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 안에서 키워서…….”


  “모모카,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있어…….”

  “사고가 완전히 범죄자잖아……. 키운다니. 사람에게 쓸 말이 아니야.”

  “사쿠라코가 여자라 다행이군요. 저 여자 진짜로 한다니까요. 철창 달린 지하실 정도 간단히 만들어서.”


  무서운 말을 하는 모모카가 반짝하고 머리 위에 전구가 켜진 표정을 지었다.


  “여자아이라도 상관 없을지도.”


  “웃기지마!!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말라고입니다!”

  “시끄럽네. 야마토군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 없다고.”

  “사쿠라코씨는 내 친구이기도 하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당연하잖아!”

  이오리 야마토가 모모카에게 달라붙는다.


  “야마토, 괜찮아. 내가 모모카를 감시해.”

  “윽. 소라까지 야마토군의 아군이라니 너무해. 사쿠라코와 함께 살 수 있다고?”

  “그거와 이거는, 달라.”

  은발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모모카가 은발의 뺨을 당겨 올렸다. 그걸 사쿠라코와 아이돌군이 말리면서 소란 피운다.


  1학년은 건강하네.


  결국 담배를 피우던 녀석들을 놓친단 특종은 환상으로 끝났지만, 학생회 부회장이 원래 불량이었단 건 그럭저럭 괜찮은 정보인가.

  싫어하는 학생도 있을 테고, 소동이 벌어지면 이오리 야마토의 해임도 있을 수 있다.


  “새로운 학생회 임원, 혹은 보좌부 부원을 협박할 수 있는 특종을 가져 와라.” 이 조건은 충분히 달성했을 것이다.

  신문부는 모든 반에 배포되는 학원신문도 제작한다.

  모처럼 얻은 이 소재를 일면기사로서 쓰도록 하자. 분명 지금까지 없었던 반향이 있겠지.

  나는 손끝으로 펜을 돌리면서 숨어 웃었지만――――.


  “토죠 선배.”


  !!!????


  돌연, 부르는 소리를 들어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신문부 부장인 토죠 선배지요. 부비회의 때 만나고 처음 뵙네요.”

  칸자키 신이었다.


  나는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고 답한다.


  “아, 아아.”


  칸자키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가볍고, 그리고 온화한 웃음을 띄고 있다.

  오늘은 날씨도 쾌청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빛도 부드럽다. 차가운 겨울을 참아 온 식물을 보듬는 듯한, 온화한 온기가 대지를 감싸고 있다.

  나도 그 은혜에 속해 있었을 터다.

  그 증거로 햇빛이 직접 닿고 있는 얼굴이나 손은 정말로 따뜻하다.

  그런데도 등줄기만이 이상하게 차가워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방금 그거, 보고 있었지요?”

  칸자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본심을 말하자면 “어떤 그거?”라고 답하며 시치미를 떼고 싶었는데 전혀 할 수 없었다.

  칸자키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오리에 대한 것, 신문에 쓰는 건 봐주지 않겠어요? 아까 전에도 보셨죠? 저 녀석이 폭력 휘두르려고 하지 않은 거.”

  웃고 있는데 웃지 않는 칸자키의 안광에 찔리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단지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싸움도 했을지 모릅니다만, 바뀌려고 하고 있으니까 지켜봐 주자구요. 그쵸? 선배.”


  칸자키가 한 발, 한 발 다가온다.

  비명을 올리고 도망치고 싶은데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경직되어 있다.


  탁, 하고 어깨를 두드려서, 나는 또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칸자키가 1학년들과 함께 돌아가 소란을 피우면서 학교 건물로 돌아간다.

  저 녀석의 시선은 더 이상 없다. 알고 있는데도 나는, 경지된 채로 점심시간 종료 10분 전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기까지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거!? 그럼 방과후에 또 찾아 보세요! 절대로 약점을 잡아와!”

  쥴리아가 나를 잡는다.

  흔들리는 거유에 눈을 빼앗기면서도, 칸자키 신의 영문 모를 박력을 생각하며 특종을 가슴속에 봉인한다.


  “난 학생회에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까 봐주세요.”

  “웃기지 말아요! 당신 그래도 신문부 부장인가요!?”


  쥴리아에게 실컷 매도당하고 멱살까지 잡히며 흔들리지만, 아니 정말 무리입니다.

  거유와 좋은 사이가 될 기회를 놓치는 건 아깝지만 말이야. 말똥에 뒹굴러도 이승이 좋으니까 말이야.


  최종 라인을 간파하는 것도,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양인 거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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