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렇게까지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에게 흥미가 없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건 큰일이라구요.

  내가 힘내서 미움을 받는 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역하렘군들이 “못써먹을 사쿠라코에 비하면 모모카는 무척이나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해도, 모모카씨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내가 함께 있으니까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속옷을 사러 갔을 때도 그렇다.

  나와 모모카씨만 쇼핑하러 가고 말았다.

  이거, 이상하지? 악역과 히로인이 함께 쇼핑하러 가다니.


  “그렇지요! 사요코씨! 속옷을 사러 가는 거, 본편에선 다른 전개였지 않았나요!?”

  나는 또 팡하고 여닫이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패치워크를 하고 있는 사요코씨의 옆자리 방석에 슬라이딩 정좌를 했다.


  “속옷을 사러……?”

  “네! 저와 모모카씨와 사요코씨가 가다니 이상하지요! 본편에선,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이서 속옷 사러 간 게 아닌가요!?”

  “저기…….”


  “모모카씨가 손에 쥔 하얀 레이스에 속이 비치는 속옷, 사실은 역하렘군들에게 보이기 위해 살 예정이지 않았나요? 신 선배나 키리오군이 모모카씨에게 선물한다……든가!”

  “본편에서 속옷을 사러 간다는 묘사는 없었는데요……. 있다고 한다면, 역하렘군들과 사러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요!! 역시, 제가 모모카씨와 함께 있는 것이 잘못이었어……! 좋아. 다음 작전은, 강경수단으로 합니다!”

  “드디어 다들 죽이는 건가요?”

  “아니에요! 제가 모모카씨를 괴롭히고 있다는 괴문서를 뿌리는 거에요. 예를 들어……, ‘하츠키 모모카는 레이센인 사쿠라코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레이센인 사쿠라코는 무저항인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악인’이라는 건 어떤가요!?”

  “어머.”

  “이걸 뿌려두면, 역하렘군들은 모모카씨를 지키기 위해서 절 멀리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아.”

  “좋아. 그렇게 결정 되면……!”

  “헤에.”

  패치워크에 열중하고 있는 탓인지 사요코씨의 대답이 중간부터 건성이 되고 말았지만, 내 생각이 틀림없을 것이다.


  가제식 노트를 방에서 가져와서 쓱쓱 글자를 써서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서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가장 큰 사이즈, A3로 복사해서 다시 사요코씨가 있는 거실로 달려간다.


  “사요코씨 다녀왔어요! 복사해왔어요! 봐주세요!”

  팡, 하고 식탁 위에 종이를 펼친다.


  거기에 써 있는 건 아까 전에도 말했던 “하츠키 모모카는 레이센인 사쿠라코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 레이센인 사쿠라코는 무저항인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악인.”이라는 문장.

  한 장에 써있는 문장의 수는 20개. 가제식 노트에 쓴 것을 복사했기에 조금 화질이 나쁘고, 횡선이나 구멍까지 복사됐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걸 잘라서 쓰는 거다. 10장 복사해왔으니까, 무려 120장이나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사쿠라코씨……. 적은 용돈에 자기 돈까지 보태서 괴문서를 만들어 오다니……! 노력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정좌한 사요코씨가 눈꼬리에 뜬 눈물을 닦고 있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내일 아침, 학교가 열리자마자 등교해서 이 괴문서를 서랍장에 뿌리자.

  사쿠라오카 고등학교 신발장은 덮개가 달린 박스 타입이 아니라, 책장 같은 선반에 이름표가 붙어있을 뿐인 간단한 것이다. 나 혼자라도 꽤 많은 양을 뿌릴 수 있겠지.

  칼로 잘라서 실내화에 넣기 쉽게 작게 접는다.

  지금까지의 나는 소극적이었다. 악역이니까 이 정도의 나쁜 짓은 해야지!


  다음날 아침, 찌라시를 편의점 봉투에 넣고, 문이 열리자마자 의기양양하게 학교에 등교했다.


  이 학교는 학년에 따라 등교할 현관이 다르다.


  가장 교문에 가까운 것이 3학년이고, 당연히 1학년의 신발장이 있는 현관은 교문에서 가장 멀다.


  나는 그림자 캡짱으로서 유명하게 되었기에 1학년이라면 얼굴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찌라시를 뿌리는 것이 나였다는 걸 들키면 계획이 파탄하고 마므로, 만일을 위해 2학년 신발장에 찌라시를 뿌리는 걸로 정했다.

  3학년은 시험으로 바쁘기 때문에 찌라시를 봐도 그냥 버려버릴 가능성도 있고, 나는 아무리 봐도 3학년으론 보이지 않으니까 만일 다른 사람이 보면 “어째서 하급생이 여기에 있는 거지?”라고 의심을 받고 만다. 2학년에 뿌리는 건 소거법의 결과다.


  열려 있는 현관에서 몰래 안을 훔쳐본다. 좋아. 아직 아침 연습하러 나오는 학생도 오지 않았어!

  샤샥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1학년과 다른 연지색 실내화에 찌라시를 넣어둔다.


  후후후. 나도 이걸로 떳떳한 괴롭힘 주도범 데뷔다! 이번에야말로 잘 될 것이 틀림없어!


  “좋은 아침―. 사쿠라코. 아침 빠르네. 오빠는 아직 눈이 떠지질 않아―…….”


  5개나 집어넣었을까.

  등 뒤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비닐 안에 손을 집어넣은 채 경직했다.


  “어라? 어째서 사쿠라코가 여기에……응? 뭐야 이거.”


  부스럭부스럭.

  종이를 펴는 소리가 들린다. 주륵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사쿠라코.”

  “네, 네.”

  “그 손에 든 비닐봉투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야, 양배추군이에요.”

  “헤에. 그립네. 오빠도 하나 먹게 주지 않을래?”


  “…………………….”


  “헛된 발버둥은 끝이야? 어, 그럼. 이 찌라시가 들어간 건 우리 반 신발장뿐인 것 같네. 회수회수……. 그럼 함께 학생회실로 갈까? 그 찌라시는 봉투째로 몰수야. 실내화로 갈아신고 와.”


  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났다…….


  신 선배가 이렇게 일찍 등교할 줄이야……!

  게다가 신 선배의 실내화 안에 넣고 말다니……!!


  학생회실의 대형 테이블.

  나는 신 선배와 마주보고 앉아 풀썩하고 고개를 숙이고 만다.


  “화내고 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굳지 않아도 돼.”

  신 선배가 위로하듯이 말을 꺼낸다.

  “이게 말이야. ‘하츠키 모모카는 레이센인 사쿠라코를 괴롭히고 있다.’라면 주의도 할 수 있겠지만 반대란 말이지……. 어째서 이런 짓을?”


  마음 깊이 이상하다는 듯한 질문에 나는 아무 답도 하지 못한 채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신 선배도 침묵한 채로 시간이 흘러간다.


  신 선배는 교문이 열리자마자 등교했다.

  졸리다고 했는데도 그런데도 일찍 등교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바쁜 거겠지.


  그런데도 침묵하고 있는 날 재촉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른이라 할지라도 바쁜 와중에 나와 같은 귀찮은 인간을 상대한다면 혀를 차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재촉하듯이 책상을 툭툭 두드리거나 할 거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 초조한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신 선배는 달랐다.


  잠자코 앉아서, 때때로 고개를 숙인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려줬다.


  수업 시작 20분 전에 울리는 종이 울린다.


  “사쿠라코. 이야기 할 수 있게 되면 이 찌라시의 이유를 말해주면 기쁘겠어. 내게 이야기 하기 힘들면 모모카에게도 괜찮으니까.”

  “………….”

  “모모카에게 이거, 전해둘게.”

  “에!?”

  “괜찮아. 저 녀석은 그리 보여도 책임감도 강하고 입도 단단하니까 사쿠라코에게 있어서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야마토군에게 불려 모모카씨가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모모카씨는 내가 만든 찌라시를 보고 슬프단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났던 날처럼 내 손을 잡아 교실로 들어가――――――.


  “아햐햐햐햐햐햐햐햐햐햐!”


  책상에 앉자마자 한 손으로 배를 잡고 한 손으로 팡팡 책상을 치며 대폭소했다!!!


  “하츠키 모모카는 레이센인 사쿠라코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 레이센인 사쿠라코는 무저항인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악인! 아햐햐햐햐햐햐햐! 배, 배가 아파.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파.”


  히히히히히히, 하고 웃으면서 책상에 엎드린다.

  “역시 웃을 수밖에 없지요. 이거……. 신 선배. 굉장히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어서 웃어도 웃을 수 없었지만.”

  야마토군이 괴문서를 가리키며 웃음을 참으며 모모카씨에게 묻는다.

  “신, 형제가 많다고. 위에도 있지만 아래에도 남동생이 둘에 여동생이 둘 있어. 어린애들은 어떤 것이 SOS로 연결 될지 모르잖아? 작은 변화라도 신경 쓰고, 이래저래 세심하다고.”

  “아아, 그래선가…….”

  키리오군이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어째서, 이런 짓을? 사쿠라. 모모카 괴롭히고 있지 않은데.”

  옆반에서 소라군까지 내 책상에 와서 엎드려 숙이고 있던 얼굴을 훔쳐봤다.


  “그렇네. 자, 사쿠라코. 어째서 이런 괴문서를 뿌리려 했는지 말해줘.”


  모모카씨가 찌릿하고 얼굴을 바로 잡고 날 향한 뒤 발을 꼰다.

  덧붙여 나는, 벌로서 책상 위에서 정좌를 강요받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잔재주는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저, 저는, 틈이 있으면 모모카씨를 괴롭히기 위해 획책하고 있는 나쁜 사람이에요. 그러니, 모모카씨와 떨어져야 해요!”


  소리치듯이 말하자 모모카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 지금 내 삶의 낙은 사쿠라코를 가지고 노는 일인데, 떨어지다니 절대로 싫어! 내 유일한 즐거움을 빼앗을 생각!? 사쿠라코는 귀신! 악마!”


  “악마는, 모모카다.”

  “사쿠라코씨. 화내는 편이 좋아요. 평생 놀려 먹을 생각이에요. 저거.”


  “모모카가 그러니까, 사쿠라코, 모모카에게서 떨어지고 싶어하는 거 아닐까?”


  “――――――그런 거야!!?? “아니에요!””


  키리오군의 말에 모모카씨가 크게 숨을 삼키며 내게 물었다. 반사적으로 부정했지만, 모모카씨는 허둥지둥 시선이 흔들리고 있다.


  “그, 그래? 그럼, 됐지만……. 사, 사쿠라코. 벌칙 정좌 풀어도 돼.”


  아아아아아, 모모카씨가 내게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신경 쓰고 있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부정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벨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와서 야마토군과 키리오군이 자리에, 소라군도 자신의 교실로 돌아갔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예상과 반대라서 책상에 엎드려 울고 싶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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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테마는, “나 자신이 미움 받는 것”이다.

  응.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던 거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있는 대로 네 사람에게 미움 받으면 되는 거야!


  예를 들면……그래, 좋아하는 것,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있는 대로 헐뜯는 거다!


  야마토군의 공부라든지, 키리오군의 아이돌 활동이라든지.

  좋아하는 걸 바보취급 당하면 누구라도 싫고――――상처 입는다.

  바로 정나미 떨어지겠지.

  좋아한다고 말해준 사람을 상처 입히는 건 마음 아프지만, 이것도 세계를 위해서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나는 전철에서 내렸다.

  평소와 같은 통학로다.

  신 선배는 부회장이기도 한 야마토군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여러 가지 있는 듯해서, 최근엔 꽤나 일찍 등교하고 있다는 듯하다.

  학생회장이란 큰일이네.


  “사쿠라코.”

  역 계단을 내려가자 모모카씨가 손을 흔들며 날 마중했다.

  어라? 오늘은 키리오군이 없네.


  “좋은 아침. 사쿠라코.”

  “좋은 아침!”

  키리오군은? 이라고 물으려고 함과 동시에, “모모카, 사쿠라코”라는 키리오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 적이 있는 자동차 조수석에서 키리오군이 손짓했다.

  “학교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타.”

  와, 고마워라.

  이건 또 낯익은 무서운 얼굴의 운전수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뒷자리에 앉는다.


  “이거, 줄게.”


  차가 출발하고 키리오군이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밀랍으로 봉해져 있는 고급스런 봉투다.


  “뭐야?”

  “라이브 티켓. 다다음주 토요일에 아카데미 홀에서 해. 괜찮으면 둘이서 보러 와.”


  라이브!? 대단해. 나, 라이브에 가 본 적 없으니까 가보고 싶어!

  부채라든가 팔고 있을까? 반 친구가 스테이지에서 노래 부르다니 상상할 수 없어! 기대 된다!


  핫!!


  그래. 여기서 헐뜯는 거야!

  뭐라고 말할까?

  키리오군의 무대 따위 봐도 재미 없어?

  하지만 보러 가고 싶으니까 티켓 몰수 당하면 슬픈데.

  어떻게 하―― “으음. 어떻게 할까. 나, 타카나시군의 그룹에 흥미 없고. 사쿠라코는?”


  시원스럽게 말하는 모모카씨에게, 나는 말이 막혔다.


  우오오오! 모모카씨! 히로인이 이 무슨 폭언을!

  그건 내 대사에요!

  모모카씨가 헐뜯으면 안 되잖아아아아!


  “가요. 가! 절대로 갈 테니까 고마워!! 모모카씨.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 돼. 키리오군의 그룹의 팬이었지!?”

  “하?”

  엄청나게 이상하단 표정을 짓는 모모카씨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음―음―하고 신음하는 모모카씨의 목소리를 막기 위해 나는 좁은 차 안에서 큰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굿즈, 팔고 있을까? 부채 가지고 응원하는 거 해보고 싶었어! 반짝반짝 빛나는 펜 같은 것도 텔레비전에서 보고 동경했어.”

  텐션 높게 말을 계속하자, 무서워 보이는 운전수씨가 웃는 얼굴로 키리오군에게 말했다.

  “키리오님. 팸플릿을 선물하는 건 어떻습니까?”

  “에? 팸플릿!?”


  그런 것도 있어!?

  “보, 보고 싶어요!”

  내가 몸을 내밀자 키리오군은 조수석 서랍에서 팸플릿을 꺼내 내게 건냈다.

  “여기 있어.”

  “고마워!”


  팸플릿 표지는 전체적으로 하얗고 심플한 디자인이다.

  표지에 찍혀 있는 건 키리오군도 포함해 남자만 10명. 키리오군이 가장 어려보이네.


  전에 인기투표에서 최하위였다……, 라는 말을 키리오군이 했었지만. 이렇게 보면 키리오군이 가장 멋있다. 그런데 최하위?

  토크가 괴멸적으로 안 된다든가, 노래를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못한다든가 그런 걸까.


  좋아. 이 화제를 가져 가보자.

  인기투표 최하위라는 건 타인에게 듣고 싶지 않은 화제겠지.

  키리오군의 그룹을 헐뜯는 것은 모모카씨에게 선수를 빼앗겼으니, 키리오군 한 사람을 헐뜯어서 평가를 내리는 작전이다.

  그렇다기 보단, 이대로 가면 모모카씨만이 악역이 되고 만다. 어떻게 하든 만회해야.


  “키리오군. 인기투표에서 가장 아래였다고 했었지?”

  “아아. 그, 사기 투표 말입니까.”

  답해준 건 운전수씨였다.


  “사기?”

  “켄자키씨. 사기라는 증거는 없어요.”

  키리오군이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사기라고밖에 볼 수 없잖습니까. 키리오님은 굿즈 판매량도 그룹 안에서 1위인데 최하위라니.”

  마침 학교 앞에 도착해서 우리들은 차에서 내렸다.

  운전수씨에게 감사를 표하고 차를 마중한다.


  “타카나시군의 그룹 인기투표, 특별방송으로 했었지? 그거, 짜고 친 고스톱이었어?”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말아줄래. 이상한 소문이 흐르면 곤란하니까.”

  등교시, 사람도 많은 와중에 시원스레 고스톱 발언한 모모카씨를 키리오군이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미리 짰단 소문은 있었지. 키리오군이 가장 인기 없다니 믿을 수 없고.”


  쿠몬씨가 돌연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침 등교하던 도중이었던 것 같다.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바싹 달라붙은 쿠몬씨를 키리오군이 살짝 떼어 놓는다.

  “내 실력이야.”

  “절대로 투표조작이라고 생각한다니까. 키리오군은 그룹에서 가장 어리고, 맨날 다른 멤버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고, 경력도 가장 짧으니까 키리오군이 탑이면 다른 멤버들의 체면이 무너지는 걸.”

  떼어졌는데도 또 달라붙으며 아래에서 키리오군의 얼굴을 살핀다.

  키리오군, 언제나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상대하는 것도 큰일이겠네.


  나는 쿠몬씨가 껄끄러우니까 모모카씨의 그림자에 숨어서 지나가도록 하자.


  쿠몬씨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조심 교실에 들어간다. 쿠몬씨는 내게도 모모카씨에게도 눈도 주지 않고 키리오군에게만 말을 걸고 있으니 긴장할 필요 없었네.

  키리오군은 가방을 두고 바로 교실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학생회 보좌부 부원이 된 것을 이용해서 학생회실을 피난처처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근시일 내에 모모카씨도 학생회실을 이용하게 만들어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 친밀감을 높이게 하고 싶네.


  “사쿠라코, 정말로 타카나시군 라이브에 가는 거야? 아이돌의 라이브라니 지칠 뿐이라고.”

  모모카씨가 책상에 상반신을 쓰러뜨리며 불만을 토하기 시작한다.

  이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그래도 키리오군에게 흥미가 너무 없다. 연애라든지 말하기 이전 문제다.


  “라이브 보러 가면 분명 모모카씨도 감동할 거야! 반 친구가 스테이지에 서는 거라고. 응원하자!”

  “나, 엔카밖에 듣지 않는 걸. 일본인의 마음이라고 엔카. 딴따라 거리는 팝송에는 흥미 없어.”


  너 정말로 소녀만화 주인공? 나 슬슬 화내도 될까?


  목에 힘준 목소리로 엔카를 부르기 시작한 모모카씨를 보며 슬퍼지기 시작해서, 나는 얼굴을 양손으로 덮고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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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쿠키, 제가 만들었다고 한 거 거짓말이에요! 사요코씨가 만든 거에요. 여러분에게 요리 잘한다고 듣고 싶어서 거짓말 했어요. 죄송합니다!”


  밤. 나는 그 메일을 다섯 명에게 일제히 송신했다.


  재난을 뒤집어 복으로 바꾸는 거다.

  나는 타인의 공적을 훔치는 악녀.

  이 메일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환멸할 것이 틀림없다.


  모모카씨 “타인이 만든 것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다니 믿을 수 없어.”

  신 선배 “사쿠라코에 대한 것, 그동안 잘못 본 것 같네.”


  분명 이런 느낌의 대답이 오겠지!


  가장 먼저 수신한 건 키리오군의 답장이었다.

  어떤 매도가 써있을까 두근두근하면서 휴대폰을 열어보자!


  “쿠키 맛있었어! 사요코씨라는 건 도우미씨 말하는 거지? 요리 잘 하는 사람이구나. 또 먹고 싶으니까 사요코씨에게 레시피 알려달라고 해서 둘이서 만들자.”


  ………….

  안 된다. 키리오군은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나의 악의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난적이다.

  계속해서 찾아온 수신 메일은 신 선배.

  이번이야말로 미움 받을 수 있도록!

  간절히 빌면서 살짝, 버튼을 누른다.


  “거짓말 한 벌로, 이번에 둘이서 데이트야(하트)”


  아,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에요. 신 선배……!

  색이 바랜 다다미에 통, 하고 주먹을 치고 만다.

  아, 소라군에게서도 메일이 왔다. 날 싫어한다고 말해준 소라군이라면, 분명 매도가 올 터!


  “하트 쿠키 만들어줘.”


  아……?

  내 메일, 제대로 읽었어? 소라군.

  아연해하고 있자 모모카씨에게서도 대답이 왔다.


  “사요코씨에게 답례 메일 했더니, 만든 건 사쿠라코라는 대답이 돌아온 건에 대해서.”


  에!? 어, 어느새 모모카씨와 사요코씨 메일주소 교환한 거야!?

  부자연스러운 행갈이가 있어서 스크롤을 해보니, “다른 애들에게도 말해 뒀으니까☆ 칭찬해줘(하트)”


  끝났다……. 빠르게도 내 계략이 노출되고 말았다…….


  풀썩, 하고 이불에 쓰러져 다시금 수신되는 메일을 눈으로 본다.

  신 선배와 소라군과 키리오군에게서 대답이 있었다. 내용은, 신 선배와 소라군이 “그럴 거라 생각했다.”였고, 키리오군이 “어째서 자신을 나쁘게 보이고 싶은 거야?”라는 질문이다. 키리오군에게 “내가 학교를 주름잡는 악의 캡짱이니까야!”라고 의미불명스런 답장만을 보내고, 나는 그 날 토라진 채로 자 버렸다.


  이세계에 전생한 피로가 쌓여있던 건지, 나는 다음 날 토요일, 9시까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오늘은 11시부터 야마토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아침, 휴대폰에 온 메일은 키리오군에게서 온 메일뿐이었다.

  야마토군에게서 답장, 결국 오지 않았네. 어쩌면 화내고 있을지도! 해냈어. 야마토군의 환멸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고!

  라고 기대하며, 나는 의기양양하게 알바에 나섰다.


  오늘도 가게는 대성황이라, 아주버님과 아주머님도, 나도 우왕좌왕 엄청 바빴다.

  “사쿠라코, 밖을 좀 쓸어줄 수 있을까? 가게 앞이면 되니까.”

  “네. 다녀올게요.”

  야마토정의 손님은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라, 대부분 입에 담배를 물고 온다.

  가게 앞에 버려진 담배를 치우는 것도 내 일인 거다.


  빗자루로 싹싹하고 청소하고 있자, 목까지 잠근 학생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다섯 명, 가게 앞에 멈춰섰다.

  다섯 명 모두 자못 체육계열 부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의 학생이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었네. 꽤 싸지 않아?”

  “식당은 전부터 있었다고. 우리들이 그냥 지나서 햄버거 먹으러 갔을 뿐이지.”

  “정식집은 들어가 본 적이 없었네.”

  “저, 저기. 여기 가게 사람입니까? 여기, 맛있나요?”

  가장 키가 작은 남자가, 우물쭈물 뒤집힌 목소리로 말을 건다.

  “굉장히 맛있어요! 양도 많으니까 강추에요! 포장도 가능해요.”

  야마토정의 식사는 정말로 맛있으니까 무심코 텐션 높게 소개하자, 남학생들은 서로를 돌아보고서 “가끔씩은 이런 가게에서 먹는 것도 좋지.”라는 말을 나누고서 들어왔다.


  나는 황망히 빗자루를 정리하고 들어가서 바로 세면대에 손을 씻고 물을 내놓는다.


  “어머나. 학생들이 오다니 드문 일이네. 부활동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야?”

  “아, 네.”

  “그 교복, 마츠야마 고등학교지? 무슨 부?”

  “축구부임다…….”

  아주머님의 말을 들은 남학생들이 쩔쩔 매며 대답하고 있다.

  “그럼 오늘은 아줌마의 서비스로 밥 곱빼기로 해줘야겠네. 뭘로 할 거야?”

  “그러니까…….”

  “사쿠라코, 슬슬 휴식 취해도 좋아. 자, 오늘 식사다.”


  아주버님이 카운터 위에 식판을 올렸다.

  카, 카레 정식이다!

  된장국엔 두부와 미역이 들어있고, 작은 그릇이 두 개. 하나에는 시금치 나물과 또 하나는 샐러드와 소스가 든 크로켓!

  무엇보다도 카레에는 고기가 잔뜩――――!

  “와아아! 감사합니다잘먹겠습니다! 카레다……!”

  저도 모르게 환성을 지르고 만다.


  “잘 됐네. 사쿠라코.”

  “카레에 기뻐하다니 아이구나.”

  “사쿠라코가 없어지면 쓸쓸해지니까 빨리 돌아와줘.”


  단골손님들의 야유를 받으면서도 나는 식판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 이거. 야마토에게도 가져가라.”

  “네!”

  야마토군의 밥도 마찬가지로 카레 정식이다.

  자신의 분량을 부엌 테이블에 놓으면서 야마토군의 식판도 받으러 가자, “카레 정식, 5인분.”이라며 아주머님이 아주버님에게 주문을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등학생들도 카레 정식을 주문한 것 같다.

  마음은 알겠다. 다른 사람이 먹고 있으면 자기도 먹고 싶어지기 마련이지.


  야마토군에게서 메일 대답은 아직, 없다.

  분명 화내고 있겠지. 나는 식판을 손에 쥐고 두근두근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야마토군. 밥 가져왔어.”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다.

  없는 걸까?

  여닫이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야마토군이 책상에 엎드려 폭면을 취하고 있었다.

  책상 스탠드까지 켜진 채다.


  “야마토군. 이불에서 자지 않으면 감기 걸려…….”


  부르면서 어깨를 흔들자, “아?”하고 노려본다.

  야마토군은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냥 있어도 눈매가 나쁜 얼굴로 노려보기까지 하니 깜짝 놀랐지만, 화난 게 아니라 그저 잠이 덜 깼을 뿐인 것 같다.


  “잘 거면 이불에서 자야지. 밥 먹을 거야? 먹지 않을 거면 랩 씌워두고.”

  “……먹어. 배 고픕니다.”


  멍하니 돌아오는 대답과 동시에 야마토군의 배가 운다.

  야마토군은 휘청휘청하면서 방을 나가서 세수하고 온 건지 잠이 깬 얼굴로 돌아왔다.


  “아침 10시까지는 깨어 있었을 텐데 그때부터 기억이 없네입니다……. 그보다 먼저 먹고 있어도 괜찮았는데.”

  야마토군은 서둘러 내 반대편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하며 인사를 하고, 나는 재빨리 카레를 입에 넣었다. 조금 맵지만 향이 풍부하고 맛있어……! 크로켓도 바삭해서 행복하다.

  잠시 동안 말없이 밥을 먹고, 메일 화두가 나오지 않는 것에 속이 탄 내가 말을 꺼내봤다.

  “메일 보낸 거, 봤어?”

  “메일……?”

  야마토군은 아무래도 메일 확인조차 하지 않았는지, 딸칵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화면을 보고 어이없단 듯이 반쯤 눈을 뜨고서 버튼을 누른다.


  내 휴대폰이 울렸다. 메일 착신을 알리는 아이콘이 뜨고, 이름이 표시 된다. ―― “이오리 야마토.”

  확인하자, 제목이 “바보.”

  본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무참한 메일이다.


  “……눈앞에 있으니까 직접 말하세요.”

  “바보네요. 어째서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들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사요코씨와 모모카씨가 메일 주소 교환했다는 거 몰라서.”

  “……너, 악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하츠키 모모카를 괴롭히는 건 포기하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그 여자,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새끼 고양이가 장난치는 거라는 정도밖에 느끼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가지고 놀고 있지 않습니까?”


  야마토군이 내게 휴대폰을 향한다. 화면이 재생된다. 거기에 나온 건 내 모습이고, 검지와 엄지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눈에 눈물을 글썽이는 내가 “가슘”이라고 외치려고 하는 순간, 야마토군에게 달려들어서 전원 버튼을 연타하여 동영상을 끈다.


  나도 포기할 수 있다면 포기하고 싶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돼.”

  내가 그렇게 선언하자, 야마토군은 수저를 접시 위에 올리면서 말했다.


  “……뭐, 내게 그걸 말릴 자격 따윈 없나. 패배할 거라고 알고 있어도 달려들 수밖에 없는 때도 있지. 나도 이길 수 없으리라 알고 있으면서도 니노마에 소라에게 이기고 싶어서 공부하고 있고.”


  “소라군?”

  그러고 보니, 소라군은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발됐던가? 대표로 선발되는 건 입학시험에서 수석인 학생이다.

  소라군은 언동이 어린애 같아서 좀처럼 실감이 들지 않지만, 말도 안 되게 머리가 좋겠지. 성적이 평범보통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구름 위의 존재다.


  “야마토군, 힘내고 있으니까 중간고사에서 소라군에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시험까지 한참 멀었는데 밤 늦게까지 공부할 정도니까. 소라군이 이렇게 일찍부터 공부하리라곤 상상할 수 없고.

  야마토군은 젓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마 무리가 아닐까? 그 녀석 머리, 장난 아닙니다에요. 네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 그 녀석 옆집 주소 말했었지?”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 때, 나는 입속에서 말이 맴돌고 머리가 헛돌고 있었다. 내 대신 답한 건 소라군이다.


  “너네들이 구급차로 옮겨타고 난 뒤에 들어보니, 그 녀석, 옆집 번호만이 아니라 그 거리에 있는 모든 명찰 전부 기억하고 있었단 겁니다.”

  “에!?”

  “한 번 본 건 전부 기억한다고 했지요. 나는 공부를 좋아하긴 하지만 평범한 바보니까. 그런 종류의 진짜 천재의 발밑에라도 미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때려 넣듯이 된장국을 마시고 식판 위에 되돌린 다음 야마토군이 계속 말했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3년간,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이기고 싶어요. 서로 힘냅시다.”

  “응!”


  전우를 얻은 기쁨에 몸을 내밀은 날, 말리는 듯이 야마토군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네가 모모카씨를 괴롭히는 것 이상으로 그 여자가 남자 세 사람과 붙는 것이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 여자, 절대로 신 선배에게도 소라에게도 아이돌군에게도 전혀 관심 없다구요.”

  “그, 그렇지, 않아.”

  모모카씨는 신 선배, 키리오군, 소라군, 그리고 야마토군과 맺어지는 거니까. 전혀 관심 없다니 있을 수 없다.

  “나, 여자에 대해선 전혀 모릅니다만, 신경 쓰이는 남자가 있다면 도시락 안에 고기만 넣는다는 짓은 하지 않지 않을까? 신 선배, 모모카씨의 도시락 보고 질렸었고.”

  윽. 구체적으로 지적당하니……. 조금만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야마토군은 모모카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라면?”

  “귀엽다든가, 사귀고 싶다든가, 내버려 둘 수 없다든가. 그런 거.”


  “없다고. 애초에, 내버려 둘 수 없다니 뭡니까? 그 녀석 체력 테스트 결과, 너도 봤잖아. 악력 53킬로라고. 나라 해도 60킬로 근처밖에 되지 않는데. 어디의 여자 고릴라야. 네가 필사적으로 팔 덜덜 떨면서 해도 16킬로였던 옆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53킬로였다고. 완전 쩔었다니까. 저거 절대로 진심을 내서 한 게 아니라고요. 팔 근육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진심으로 하면 70킬로는 가볍게 넘는 거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야마토군에게 풀썩하고 고개를 숙이고 만다.


  “야마토군은 어떤 여자가 취향이야?”


  야마토군은 으음, 하고 신음하고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지키고 싶은 여자일까? 부조리하게 심한 꼴을 당해도, 제대로 자신과 마주하는 아이――라니, 이거 너 말인가.”

  “에?”

  “아버지가 폭력을 휘둘러도, 밥을 먹이기 위해서 힘냈던 거지? 대단하잖아.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야마토군은 문뜩 젓가락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쿠라코씨.”

  “응?”


  “좋아합니다. 사귀어 주세요.”


  ……………….


  나는 저도 모르게 방석 위에서 정좌하고 손가락 세 개를 나란히 붙인 뒤 깊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기절하겠습니다…….”


  “………….”

  “………….”

  “………….”


  아, 아차! 너, 너무 놀라서 틀렸다! 거절하겠습니다!


  “세이브. 지금 이거 세이브죠? 기절하겠습니다면 아직 거절당하지 않았어.”

  내가 정정하기 전에 야마토군이 그렇게 말했다.

  “아, 아니야! 거절하겠습니다라고 하려던 걸 틀린 거라고!”

  “아니, 이미 끝났습니다. 정정은 할 수 없어요. 기절하겠습니다로 마감했습니다.”

  “뭐야 그 초딩스런 논리는! 애초에 기절한다는 게 뭐야!?”

  “기절하는 거죠? 온몸이 뒤집어지면서.”

  “너무 의미불명이야!”


  좀 더 반론하고 싶었지만, 휴식시간은 30분이다. 늦어도 5분 전에는 돌아가고 싶다. 쓸데없는 말만 하고 있다간 모처럼 맛있는 카레 정식을 남기게 된다.

  나는 당황하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 너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좋다고 말했던 거 기억해 주세요.”

  “……기억해 두겠지만. 야마토군의 마음엔 답할 수 없어.”

  “그래도 말입니다.”


  부조리하게 심한 꼴을 당해도, 제대로 자신과 마주 볼 수 있는 아이――.

  혹시 내가 제대로 악녀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모모카씨는 분명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나와 마주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 모모카씨의 모습을 보고 야마토군은 모모카씨를 좋아하게 됐겠지.


  모모카씨를 괴롭히지 못한 채로 역하렘군들과 붙이는 건, 힘들 것 같네…….

  아니, 하지만! 모모카씨는 좋은 사람이야. 이대로 모두 함께 있으면 언젠가 분명 야마토군도 모모카씨를 좋아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지리멸렬한 행동만 하고 있는 내게도 조만간 질리게 될 테고. 내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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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만화의 히로인, 하츠키 모모카씨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밥 살 돈도 없었던 내게 먹을 것을 주고, 아버지가 쓰러져서 불안정해졌을 때에도 곁에 있어 주고.

  아무리 악역으로서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해도 이런 좋은 사람을 괴롭히다니 내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 맹세했다.


  히로인을 괴롭혀서 역하렘군들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미움을 받을 행동을 해서, 모모카씨가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이 되자, 라고!


  모모카씨는 요리도 잘 하고, 스포츠 만능이고,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솔직히 말해서 일부러 돋보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행상 역하렘군들은 한 번씩, 나, 악역인 레이센인 사쿠라코와 사귀고……, 그, 야한 일을 하고 나서, 나를 차고 모모카씨와 붙게 되는 단계를 밟게 되어 있다. 이 “악역의 레이센인 사쿠라코와 사귀고 야한 일을 하고 나서”를 뛰어넘기 위한 고육책이다.


  뭐라 해도 내가 악역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역하렘군들은 스토리 진행 그대로, 내게 호의를 가지고 만 것이다.

  일단은 그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이 세계에 멸망의 징조가 없는 이상, 내 생각은 틀림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럼, 여기서 문제가 있다.

  무슨 짓을 해야 미움을 받을까?

  단지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사쿠라코와 달리, 모모카는 좋은 아이다!”라고 역하렘군들이 생각하게 만들어야만 하니까 어렵다.


  그래! 맛없는 과자로 환멸작전은 어떨까!


  모모카씨는 무척 요리를 잘 한다.

  내가 완전히 망친 과자를 가지고 가면 다들 요리를 잘 하는 모모카씨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사요코씨, 나. 좋은 생각이 났어요! 과자를 만들게 해주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 나는 1층으로 내려가 사요코씨가 있는 거실의 미닫이문을 팡! 하고 열었다.


  “과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센베이를 먹고 있던 사요코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역하렘군들에게 미움 받기 작전, 제1탄이에요. 제가 맛없는 과자를 가지고 가서 환멸받는 거예요! 예를 들면 소금과 설탕을 반대로 넣은 쿠키라든가. 어떤가요 이 작전!?”

  사요코씨는 피치매직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의견을 듣고 싶어서 나는 슬라이딩을 하는 듯이 사요코씨 옆에 있는 방석에 정좌했다.

  “후후, 재밌네요. 나이스 아이디어에요. 단, 저도 협력하게 해주세요.”

  사요코씨가 일어났다.

  “에? 스스로 만들 테니까 괜찮아요?”

  쿠키 레시피는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나올 테고, 느긋하게 쉬고 있던 사요코씨의 손을 어지럽힐 정도의 일도 아니다.


  “연재 중단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저는 ‘피치매직’이 가장 좋았어요. 생전에 저의 단 하나뿐인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라……. 그야말로 종이 끝이 닳을 정도로 읽었었죠.”

  사요코씨가 멀고 그리운 곳을 보는 듯한 눈을 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것도 하지 못하는 생전의 저를 몇 번이나 면회하러 와줘서……. 두 번이나 전생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모모카씨 같은 건강하고 상냥한 여자아이였어요.”

  “사요코씨…….”

  “‘세기말 마쵸 대행진’을 완결한 보상을 주겠다는 말을 신님에게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이 세계에 가고 싶다고 할 정도에요. ……피치매직을 완결하기 위해서, 어떤 하찮은 일이라도 협력하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사쿠라코씨.”


  “……네. 부탁드립니다!”


  둘이서 부엌에 서서 바로 쿠키 만들기를 시작한다.


  우선 재료.

  쿠키도 생전에 조리실습에서 만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과자 만들기를 실습할 때엔 여자들이 전부 이끌었기에 솔직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요코씨가 말하는 대로 가루를 채에 거르고 버터를 냄비에 넣고 녹인다.

  여기서 설탕을 넣자는 말을 듣고 소금을 넣으려 하지만.


  “안 돼요. 사쿠라코씨. 소금만 넣어선 맛없어지지 않아요. 설탕도 함께 넣어서 맛없음이 더더욱 두드러지는 거에요.”

  “그런 건가요?”


  “네. 이런저런 맛이 섞이게 됨으로써, 사람은 맛없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소금만이라면 단지 ‘짜다’는 것뿐이라 맛없다는 것과는 다르지요.”

  과연!!

  “짜기만 한 쿠키라면, 조금 참으면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설탕과 소금을 잘못 넣는 여자아이는 덜렁거리는 걸로 보여서 귀엽게 보이고 말아요. 사쿠라코씨가 바라는 건, 요리를 못해서 환멸받는 거겠죠?”

  응! 사요코씨가 하는 말대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요코씨를 올려다본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요코씨의 협력. 굉장히 든든해요!”

  “후후. 힘내서 완결짓도록 해요.”

  “네!”


  알기 쉬운 지도를 받은 덕분에, 작업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깜짝 놀라는 사이에 반죽이 완성됐다.

  사요코씨는 여기서 생활하게 되고 나서 자신의 생활용품도 다수 가지고 들어왔다.

  부엌용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으로, 대필뿐이었던 렌지가 커다란 오븐렌지로 바뀌고, 냉장고도 문 2개짜리에서 문 5개짜리로 바뀌었다.

  식칼도 한 종류밖에 없었는데 회칼에서 중식칼까지 가져왔고, 쿠키나 케이크용의 형태틀까지 있어서 놀랐다.

  가장 흔한 별형, 하트형뿐만이 아니라 곰돌이 모양까지 있다!

  작업을 끝내고 오븐에서 굽고서 약 15분.


  “와, 대단해. 예쁜 쿠키!”

  “꽤나 손재주가 있으시네요.”

  완성한 쿠키는 유백색으로 맛있어 보이게 구워졌다.

  “사요코씨의 가르침이 좋았던 거에요! 기쁘다. 맛없게 만든 것이 아까울 정도야. 사요코씨. 이번 토요일. 제대로 된 쿠키 만들고 싶으니까, 또 함께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하나 맛을…….”

  “그럼 안 돼요.”

  얼마나 맛없게 만들어 졌는지, 확인하려고 뻗은 손을 딱하고 잡혔다.


  “어째서?”

  사쿠라코씨. 제대로 실패작품을 만들었다고 연기할 수 있나요? 사쿠라코씨는 연기가 무척 서투시니까, 모두 함께 먹고서 처음으로 맛없어! 라며 리액션하는 편이 리얼리티가 있어요. 게다가 맛도 보지 않은 요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놓는 사람은 환멸받기 마련입니다.“


  과연! 역시나 여성!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다니.


  “응. 그렇게 할게요. 결과 보고, 기대해주세요!”


  사요코씨에게서 투명한 래핑봉지를 받아 쿠키를 넣고 핑크 리본으로 입을 막는다.

  내일이 기대돼!


  그리고, 그 내일.

  나는 쿠키를 가방에 숨기고 등교했다.


  전철 안에서 신 선배와 만나고,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모카씨와 키리오군과 합류하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받는다.

  3교시 종류 후, 짧은 쉬는 시간. 모모카씨는 반대편 여자아이와 잡지를 펼치고 스커트가 어떻다느니 이야기하고 있다. 앉아만 있어서 지쳤고, 조금 복도라도 걷고 올까.


  같은 생각을 한 학생이 많은 건지 교실 안 만이 아니라 복도에도 활기찬 대화 소리가 흘러 넘친다.

  화장실에 동행하는 여자, 가슴 정도 높이의 선반 위에 노트를 펼치고 다른 반 친구의 노트를 배끼고 있는 남자, 창문 밖을 보면서 담소하는 학생들. 나는 그런 소란을 곁눈으로 보며 정처 없이 걷는다. 그러자.


  “아, 뒷골목 캡짱.”

  복도 창 너머로 빼빼로를 물고 있는 본 적 없는 남학생이 말을 걸어 왔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이마가 보일 정도로 짧게 자른 본 적 없는 남학생이다.

  뒷골목 캡짱이 아닙니다. 그림자 캡짱입니다.


  명찰을 보니 1학년 11반. 이렇게 먼 반까지 내 평판이 전해지다니. 좋아. 나. 실로 악역이 아닌가.


  “너, 밥 먹을 돈도 없어서 강에서 물고기 잡으며 생활하고 있다니 사실?”

  “하고 있지 않아. 덧붙여 말하자면 강에서 잡초 먹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생당근을 뜯어 먹었다는 것도, 맨발로 꽃을 팔러 걸어 다녔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니까.”

  “뭐야 그거. 그런 소문까지 있는 거야? 재밌구만.”

  재밌지 않습니다.


  “이거 줄게.”

  “에?”


  남학생이 빼빼로 봉투를 하나 내게 내밀었다.

  “받아도 돼?”

  점심 전에 딱 배가 고팠던 터라 감사하다.

  받으려는 순간, 꾹, 하고 등이 무거워졌다.


  “어이. 모르는 사람에게서 물건을 받으면 안 돼요.”

  귀에 익숙한 모모카씨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내려온다.

  모모카씨는 날 등에서 안으면서 빼빼로 봉투를 남학생에게 돌려줬다.

  “사쿠라코를 먹이로 길들이려고 해도 안 돼.”


  남학생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모모카씨는 내 손을 잡고 걷는다.

  “잠깐 눈을 떼었을 뿐인데 금방 사라져 버린다니까. 찾았잖아.”

  “미, 미안?”

  뭔가 사과하는 것도 이상한 기분이라 어미가 의문표가 되고 만다.


  “빼빼로라면 나도 가지고 있으니까 먹고 싶다면 말해. 뭐가 좋아? 알알이 스트로베리, 비터 쵸코, 노멀, 이것저것 있어.”

  모모카씨가 가방을 책상 위에 뒤집자 후두두둑하고 빼빼라고 가득 떨어졌다.

  보, 보물산 재래……!

  저도 모르게 손을 뻗고 만다.

  노멀 빼빼로를 한 봉지 받아서 모모카씨와 절반쯤 먹고 나서 나는 말을 꺼냈다.

  “오늘은 나도 과자 가져왔어. 수제작 쿠키. 다른 사람 분량도 만들었으니까, 점심 시간에 먹자.”

  “에!? 정말!? 기뻐! 굉장히 기대돼!”

  모모카씨가 포니테일에서 휘릭하고 소리가 날 정도의 기세로 날 돌아봤다.

  윽.

  이렇게까지 즐거워 하면, 조금 죄악감이.


  학생회 업무도 있어서 우리들의 점심은 학생회 휴게실에서 먹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바로 신 선배, 소라군, 야마토군, 키리오군, 모모카씨, 그리고 오늘도 차를 준비해 준 모부야마 선배에게 과자를 건냈다.

  모부야마 선배에게만 살짝, “맛 없으니까 남겨 주세요.”라고 속삭이고.


  “굉장해로군요! 맛있어 보여!”

  야마토군이 변함없이 미묘한 경어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사쿠라코. 잘 먹겠습니다.”

  키리오군이 변함없는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웃고,

  “하트, 부서졌어…….”

  소라군이 시무룩하게 (하트가 부서진 건 불가항력입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유감이네. 소라. 평소 행실의 문제야.”

  모모카씨가 소라군을 놀리고,

  “그럼 잘 먹겠습니다.”

  신 선배가 가장 먼저 리본을 풀고 쿠키를 입에 넣는다.


  후후후. 소금이 든 쿠키로 아비규환이 되는 것도 모르고, 순진할 따름이다…….

  나는 재차 악면상으로 씨익하고 웃어 보지만.


  “소금 쿠키인가. 맛있네.”

  “와, 맛있어! 수제 소금 쿠키를 만들 수 있다니 대단하네. 사쿠라코! 나, 도전한 적 있지만, 버터는 뭉치고 소금맛이 엉망진창이라 기분 나쁜 물건이 탄생했었는데!”

  “맛있어.”

  “맛있네……. 절반은 방과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할까.”

  천천히 먹는 키리오군의 옆에서, 야마토군은 말없이 단 숨에 다 먹어버린다.


  “에!!??”


  당황하며 나는 쿠키를 입에 넣는다.


  마, 맛있어……!?!? 어떻게 된 일!?


  나는 아연하게――――.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전속력으로 하교했다.


  ―――――


  “사요코씨! 그 쿠키, 엄청 맛있었어요!?”

  구두를 벗고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사요코씨는 부엌 테이블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차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손에는, 내가 구운 쿠키가!! 그러고 보니, 래핑하는 도중, 양이 적지 않나? 하고 생각했지만, 설마 사요코씨가 옆에서 훔쳤을 줄이야……!


  “아무리 이야기를 위해서라고 해도, 먹지 못할 물건을 일부러 먹는 행위는,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먹을 것으로 장난치면, 떽, 이에요.”


  사요코씨는 웃는 얼굴인 채로, 내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때렸다.


  “어라? 사요코씨, 협력해 준다고. 피치매직의 완결을 위해서 협력해 준다고 했잖아요!? 내 환청이었나요!?


  빨개진 이마를 누르면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절망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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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류한 우리들은 바로 모모카씨의 추천이라고 하는 속옷점에 갔다.

  가게와 가게 사이의 통로에 건설한 듯이, 옆으로 짧고 안으로 긴 가게였다. 개방되어 있는 입구에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럼, 어디. 사쿠라코의 브래지어는 뭐가 좋을까? 브라 입은 적 없으니까, 스포츠 브라나 캐미솔 브라가 괴롭지 않고 추천이지만.”

  “에?”

  속옷을 산다는 거, 내 속옷 말하는 거였나? 그러고 보면, 빈유라도 브라를 착용해야만 한다고 했었지.


  으음. 뭐가 좋을까?


  “고르기 전에 사이즈부터 재볼까?”

  점원을 부르려고 하는 모모카씨를 사요코씨가 말렸다.

  “괜찮아요. 모모카씨. 사쿠라코씨의 사이즈는 제가 알고 있으니까.”

  “어, 어째서 사요코씨가 알고 있는 건가요?”

  깜짝 놀라 말한 것은 나였다.

  “사요코는 사쿠라코씨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알고 있답니다.”

  사요코씨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미소짓는다.

  ……피치매직을 읽어봤다는 거겠지만, 자신의 몸을 알고 있다니 조금 부끄럽네.


  “사쿠라코씨의 탑은 ○○센티, 언더는 ○○센티에요.”


  사요코씨가 검지 손가락을 세워 선언하는 듯이 말하자 모모카씨가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불쌍한 아이…….”

  불쌍!? 내 가슴은 불쌍한 건가. 가난하다느니 불쌍하다느니 그런 말을 들으면 조금이지만 슬퍼진다.

  내 입장에선 가슴이 크면 조금은 복잡한 마음이겠지만…………부끄러운 기분이 되니까 작은 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간 뒤에, 진짜 사쿠라코가 이 몸에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하면, 역시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 좋겠지.


  모모카씨는 캐미솔 앞에 멈춰 섰지만……, 나는 “가슴이 커진다! 위협의 브라”라고 크게 써 있는 구매광고 앞에 멈추고 말았다.

  펄럭펄럭, 반짝반짝거리는 다른 속옷과 달리 심플한 브라지만, 심플하기에 더욱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걸로 할까……, 사요코씨. 제 사이즈에 맞는 거, 있어요?”

  “어머. 무리해서 크게 만들지 않아도, 사쿠라코씨는 가슴이 작아도 충분히 귀엽다고 생각해요?”

  “으……, 저도 작아도 상관 없긴 하지만……, 진짜 사쿠라코가 이 몸으로 돌아왔을 때, 작은 채면 가여우니까.”

  모모카씨나 쿠몬씨, 그뿐만이 아니라 반의 여자들에게까지 빈유빈유 연호 당하는 몸이다. 이대로는 가엽다.


  “진짜 사쿠라코?”

  사요코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이것도 모르고 계시는 군요.”

  툭하고 중얼 거리고서, 속옷 중 하나를 잡았다.

  “사쿠라코씨의 사이즈에 맞는 건 이거네요. 세탁용으로 같은 걸 몇 개인가 더 사도록 할까요.”

  모르고 있다니, 뭘까?


  “에― 그런 속옷 귀엽지 않아―. 하지만 사쿠라코의 기분을 생각하면 반대도 할 수 없어―. 재미없어―.”

  모모카씨가 내 어깨 위에 고개를 올리고 부부하고 불만을 토한다.


  “아, 그래! 베이비돌 사지 않을래? 이쪽으로 와.”


  갑자기 손을 잡혀 가게 안으로 끌려간다.

  모모카씨는 즐비하게 의복이 놓여 있는 진열대 앞에서 발을 멈췄다.


  “베이비돌은 절대로 사쿠라코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꺄아아아! 이런 속옷이 있다니 몰랐어요. 귀여워요! 사쿠라코씨. 이거 사도록 하죠. 절대로 어울릴 거에요!”

  사요코씨가 바리톤 보이스로 가게 안을 울렸다. 충격파가 달려 천장 일각이 풀럭풀럭하고 내장이 벗겨져 떨어진다.


  저도 모르게 천장을 올려다 보는 내 어깨를, 커다란 손바닥이 독수리의 턱처럼 크레인처럼 잡아 올려, 거울 앞까지 당겼다. 돌연히 제트코스터의 최고속력 이상의 속도로 휘둘려서 뚜둑하고 목이 울리고 눈이 부시다.


  “봐요! 굉장히 어울려요. 사쿠라코씨!”

  “아앙, 정말. 사요코씨도 참.”

  모모카씨가 사요코씨를 손바닥으로 쳤다. 이 무슨, 가느다란 팔에서 나온 장난치는 듯한 장저였는데, 200킬로는 되는 듯한 커다란 몸이 기울었다.


  “본인의 허락도 없이 옷을 대선 안 되요. 사쿠라코가 속옷 차림이 되는 걸 상상하고 말았잖아요.”

  “꺅. 그렇지요. 저도 참. 못볼 꼴을 보이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사쿠라코씨.”

  사요코씨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서고, 흑색 레이스로 꾸며진 핑크색의 베이비돌? 이 내 눈앞을 풀럭하고 지나간다.


  으응……?


  아! 그런가.

  고개가 꺾인데다가,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있어서 이해가 늦었지만, 바로 모모카씨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양복점에 들어가면 시착하기 전에 양복을 몸에 대고 거울에서 확인한다.

  그거는 “입으면 어떤 느낌이 될까?”라고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사요코씨의 손에 들린 흑색 레이스로 치장된 핑크색의 투명한 속옷 차림이 되면 어떤 느낌일지, 사요코씨와 모모카씨에게 확인되고 말았다는 거……!


  “와―와―와―, 부, 부끄러워……! 너무해요. 사요코씨!”


  “정말로 죄송해요. 하지만 굉장히 어울렸어요. 이거, 사쿠라코씨에게 선물해도 좋을까요?”

  “안돼요! 절대로 그런 거 입지 않을 테니까요!”


  애초에 베이비돌이 뭐야!? 캐미솔처럼 보이는데, 레이스가 달려서 펄럭거리고 투명하고, 앞이 쩍하니 벌어져 있고 단추도 없고, 이거 정말로 속옷? 입는 의미 없잖아!


  “에? 입지 않아? 나도 사쿠라코에게 선물하고 싶었는데…….”

  모모카씨의 손에는 흰색 레이스(하지만 투명)의 베이비돌이 있었다.

  두두두두렵게도 내게 입으라고 두두두두렵다.


  “스, 스스로 살 테니까 됐어. 그거, 모모카씨에게 어울리니까.”

  “에. 하지만 나, 이런 에로귀여운 속옷 사도 봐줄 사람 없고 말이야.”

  “나도 보여줄 사람 없어!”

  “내가 있잖아.”


  조금도 웃지 않는 진지한 얼굴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전율하고 만다.


  “무, 무슨 일이 있어도 보이고 싶지 않아요. 보이면 부끄러워서 심장발작으로 죽습니다.”

  “팬티 보여도 괜찮은데 이건 안 된다니. 사쿠라코의 기준을 알 수 없네.”


  모모카씨가 입술을 삐죽인다. 귀엽게 삐져도 싫은 건 싫으니까 안 됩니다.


  베이비돌을 들고 실망하는 두 사람을 어떻게든 뿌리치고, 가슴이 커지는 브라만을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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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고만 있을 순 없다.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악역으로서 열심히 모모카씨를 괴롭히는 거야!!


  신 선배도 야마토군도 키리오군도 소라군도 좋은 사람이다. 이 네 사람에게라면 모모카씨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모모카씨와 네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그림이 된다.

  나는 피치 매직의 한 사람의 팬으로서 모모카씨와 네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다(원작 읽은 적 없지만)!


  그렇게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나는 전철 안에서 콱하고 눈에 힘을 줘서 악면상을 만들었다.

  이미지는 여우다. 여우가 빙의한 듯이 교활하고 심술궂은 여자가 되는 거다.

  헌데, 어째서 여우는 교활하단 이미지가 있는 걸까?

  겉모습도 귀엽고, 신님의 심부름꾼이 되기도 하는데 이상하네…….


  “사쿠라코, 아버지에게 무슨 일 있었어?”

  “에? 아, 아무 일 없는데.”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모카씨가 다가와서 내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그래. 다행이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 있었나 걱정했어. 이대로 술이 빠져서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네.”


  전  의  상  실.

  모처럼 달라 붙은 여우가 도망치고, 눈꼬리가 내려가고 만다.

  역시 불가능하다.

  이렇게나 걱정해주는 상냥한 여자아이에게 심술을 부리다니 무리다.


  공략법을 바꿔야만.


  으음, 으음, 으음…….


  그래!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받는다는 건 어떨까!!??

  내가 굉장히 한심한 짓을 해서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방향으로 가는 거다.

  이거라면 모모카씨를 괴롭히지 않더라도 한심한 나와 비교하여 모모카씨가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할 것이 틀림없다.

  악역이다! 굉장히 완벽한 악역이다!

  좋아. 이 방법으로 가자!


  …………………….


  “학생회 서류를 전부 모모카씨에게 밀어 붙여서 ‘이 계집이!’라고 매도한다.”라는 것도 있지만……. 끝도 없이 사람을 괴롭힐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나란 싫은 인간이었구나. 자신의 싫은 부분을 알고 말아 조금 눈물이 떠오르고 만다. 게다가 여자아이를 괴롭히다니 최악이야.

  하지만 여기선 마음을 귀신으로 만들어서 향하는 거다. 베지터나 다스 베이더 같은 멋있는 악역을!


  “사요코씨는 어떤 사람이었어? 괴롭히진 않았어? 괜찮아?”

  모모카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상냥한 사람이었어. 얼굴은 조금 무섭지만 밥이 굉장히 맛있어.”

  오늘 아침밥은 밥과 된장국과 계란프라이, 연어 절임이었다! 엄마가 살아있을 적의 밥 같아서 정말로 기뻤다.


  “나도 빨리 만나고 싶네――, 아, 그래! 사쿠라코. 오늘 함께 쇼핑하러 가자. 사요코씨도 불러서 세 명이서.”

  모모카씨의 초청에 내 안에서 레이저 빔과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와 머리 옆을 비췄다.

  사요코씨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지만, 겉모습은 세기말 마쵸 대행진의 남자주인공이다.

  주먹 일격으로 졸개 적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단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세기말의 패자. 아무튼 굉장히 무섭다.

  모모카씨라 해도 여자아이다. 커다랗고 우락부락한 사람은 무섭겠지.

  사람은 야쿠자와 아는 사람과 사이좋아지고 싶지 않은 법이다.

  무서운 사람과 아는 사람인 나에게, 모모카씨도 분명 멀어질 것이 틀림없어!

  미움 받는 전개의 제1탄이다!


  “연락해 볼게! 방과후, 기다려지네.”

  제빨리 휴대폰을 꺼내서 메일을 친다.

  사요코씨의 대답은 “절대로 갑니다(하트) 기대 되네요(하트 둘)”이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과후.


  역하렘군들도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 나는 대환영이었지만, 모모카씨가 오늘은 속옷점에 간다고 거절했다.

  다들 그렇다면 별 수 없다고 포기하는 와중, 소라군만이 그래도 따라오겠다고 주장했다.

  “억지 부리지 말라니까. 착한 아이니까 오빠랑 같이 집보고 있자. 남자가 속옷점에 들어가면 미움 받으니까 말이야.”

  “그래 바보 소라. 자신이 입는 속옷 보이는 거 부끄러우니까. 다른 손님들에게 폐도 되고.”

  신 선배와 모모카씨가 타이르지만, 소라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여자 교복 입고 가. 여자 모습이라면, 문제 없어.”

  “문제 있는 게 당연하잖아!”


  퍼억!!

  모모카씨가 소라군의 배에 주먹을 넣었다. 무거운 타격음이 들리고 소라군이 실신한다. 축 늘어져 쓰러지는 소라군을 옆에 서 있던 키리오군이 지탱했다.


  “그럼 내일 봐. 바이바이. 타카나시군. 그거, 교실의 태우는 쓰레기통에라도 넣어둬.”


  모모카씨는 손을 흔들고 걸어간다. 나도 당황하며 인사하고 모모카씨의 뒤를 따른다.

  “소, 소라군. 여자아이 모습 할 수 있어?”

  모모카씨에게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질문하고 만다.

  “저 녀석,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니까. 저번에는 스마트폰 사기 위해서 엄마가 말하는 대로 고양이귀 붙이고 고양이 흉내도 냈고.”

  그건……, 어떤 의미론 대단하다. 나는 부끄러워서 무리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 5분 전이었다.

  커다란 시계가 설치되어 있는 석조 공원이다.

  공원이라고 해도 놀이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 근처에 조금 넓은 정도의 공간에 단지 벤치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지만, 만남 장소로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나 우리들과 마찬가지인 학생, 담소하는 정장 차림의 남성 등등으로 벤치는 전부 차 있어서, 나와 모모카씨는 머리 위로 3미터는 있는 시계를 지탱하는 기둥 근처에 서 있다.


  사요코씨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사요코씨 만나는 거 기대되네.”

  모모카씨가 펄럭하고 움직여서 포니테일을 한 긴 흑발이 흔들렸다.

  훗훗훗. 몇분 뒤에는 그 웃음이 얼어붙는 것도 모르고 순진할 따름이다.


  악역처럼 뺨에 손을 대고 악면상을 만들어 보니, 모모카씨가 얼굴을 훔쳐봤다.


  “뭔가 나쁜 일 꾸미고 있지?”

  윽. 실수했다. 보이고 말았다.

  “이번엔 무슨 짓을 해서 날 꺅하고 말하게 할 생각? 자백해.”

  꽉하고 뒤에서 안고서, 허리를 꾹하고 안아 당긴다.

  “우와, 모, 모모카씨!”

  있는대로 등에 가슴이! 가슴이 닿고 있어요!


  “자, 뭘 꾸미고 있는지 불어. 불기 전까지 놓지 않을 거야.”

  “그그그그그만두세요. 나쁜 짓이라니 그런! 나 같은 소인배가 모모카님을 거역하다니 생각한 적도 없사와요!”

  “정말로 소인이란 말이지. 키라든가 가슴이라든가 어흠어흠.”

  헛기침조차 하지 않고 어흠어흠이라고 소리를 내며 일부러라는 듯이 말을 끊는다.

  뿌리치려고 바둥바둥거리고 있으니, 옆을 걷고 있던 정장 누나(4인조)가 우리들을 보고 쿡쿡하고 웃었다.


  “고등학생 귀엽네.”

  “작은 쪽 아이 힘내.”

  “뭔가 마음이 푸근해졌어. 사이 좋아 보여서 좋네.”


  모모카씨는 웃음으로 감사하다고 답했지만, 에쁜 누나들의 웃음을 받은 나는 단지 부끄러울 뿐이라 어딘가 숨고 싶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딱 그럴 때.


  쿵, 쿵.


  낮은 땅울림이 들려왔다.

  아, 이 발소리는!

  땅울림이 들리는 쪽을 살피니, 역시 있었다.


  “사요코씨이!”


  멀리서도 한눈에 판별할 수 있다. 2미터를 가볍게 넘는 여성에게 나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사요코씨는 자수가 들어간 가디건과 장딴지까지 완전히 감추는 롱 스커트라는 청초함이 풍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요코씨의 모습을 본 순간, 아이는 울기 시작하고 가로수에서 꽃을 쪼고 있던 작은 새가 꺄아꺄아하고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다.

  벤츠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소하고 있던, 아무리 봐도 야쿠자 같은 풍체의 남자들이 아연하게 입을 열고 담배를 떨어뜨린 뒤 길을 연다. “뭐, 뭐야 너는!”하고 품속에 손을 넣는 사람까지 있었다. 사요코씨가 눈도 주지 않아서 그 사람이 품에서 뭘 꺼내려고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기말을 다스리는 패자답게 사요코씨의 안광은 광기에 차 있다. 발을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지면이 흔들리고, 그 거대한 주먹은 도로변에 세워진 빈약한 가로수 따위 일격에 분쇄하겠지.

  과연 세기말 마쵸 대행진의 주인공. 단지 걷고 있을 뿐인데도 아이까지 우는 대박력이다.


  “사쿠라코씨! 기다리셨습니다.”


  사요코씨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달리지 않아도 좋아요.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사요코씨는 쿵! 하고 굉음을 울리며 최고 속력까지 올려 다가왔다.

  그 박력이라 함은, 마치, 100킬로 이상으로 달려오는 10톤급 트럭!!!


  주변에서 비단을 찢는 듯한 비명과, “위험해!” “도망쳐!”라는 절규가 들린다.

  도, 도망쳐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리가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삼키며 몸을 움츠릴 뿐이다.


  쿠우우……웅……!


  땅울림이 나와 모모카씨의 몸을 흔들었다.

  사요코씨가 우리들의 1미터 앞에서 강하게 지면을 차며 멈춘 것이다.

  커다란 몸이 단숨에 정지한다.


  하지만 너무나 빠른 스피드에서 오는 풍압에, 나와 모모카씨의 긴 머리카락이 펄럭하고 높게 오른다.


  치, 치이는 줄 알았어……!!


  그 기세 그대로의 돌격을 받았다간 우리들 확실하게 하늘 높이 올라서 지면에 부딪쳐 죽었을 거야!

  공포에 질린 나머지 덜덜 떨면서도, 핫, 하고 서둘러 모모카씨를 돌아봤다.

  과연 모모카씨도 이건 무섭겠지! 이것도 저것도 내팽개치고 싶어지겠지!


  “처음 뵙겠습니다! 하츠키 모모카라고 합니다. 사쿠라코에게서 이름은 들었습니다. 아야노코지 사요코씨였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에!? 어라!?


  나조차 무서웠다고 하는데, 모모카씨는 얼굴이 굳은 것 같지도 없이, 빙그레 웃으면서 사요코씨에게 인사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모모카씨의 이야기는 사쿠라코씨에게 이러저러 많이 들었어요. 무척이나 잘 대해주고 있다든가.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굉장히 영광입니다. 모모카씨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모쪼록! 저도 사요코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화하는 여자 두 사람. 내 작전은 훌륭하게 실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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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은뱅이 식탁에 앉은 내게 사요코씨가 따뜻한 차를 내줬다.


  “제가 맡고 있던 ‘세기말 마쵸 대행진’ 세계는 완전히 안정되었습니다.”

  사요코씨는 반대편에 앉아서 온화한 표정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목소리는 다다미를 울리는 바리톤 보이스. 그리고 날 향해 정좌한 모습에는 산이 서 있는 것과 같은 박력이 있지만.


  “안정……!? 대단해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벌써 완결했다니!”


  “완결……? 그렇, 네요. 작가가 이야기에 완전히 만족했으니까, 완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세기말 대행진의 세계는 앞으로도 계속, 계속 이어질 테지만. 그야말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멍하니 있자 사요코씨가 뒤를 이었다.


  “만화는 완결하면 그걸로 끝. 번외편이나 속편이 나오지 않는 한 그 뒤가 이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작가가 만족한 뒤에도 계속 이어져요. 일찍이 우리들이 살고 있었던 세계와 마찬가지로.”

  “그런가요. 다행이에요.”

  “다행?”

  “예. 그것도 그럴 것이, 완결한 뒤에 모모카씨나 다른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하면 슬프고. 제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 다들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소리지요?”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사요코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반복한다.


  “신님과 약속했어요. 제가 제대로 피치 매직을 완결한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해 준다고. 실패하면 바퀴벌레씨로 전생시킨다고 했지만요.”

  “원래 세계로――○×#∑$――”

  “사요코씨?”


  돌연 사요코씨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됐다. 외국어인 걸까?


  “죄송합니다. 이 세계에서 터부시 되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터부에 닿게 되면 발음조차 할 수 없게 돼요.”

  발음을 할 수 없다?

  “……? 그럼, 종이에 쓸 수 있나요?”

  발음을 할 수 없다면, 종이에 쓰면 된다고 나는 가볍게 생각했지만, 사요코씨는 고개를 저었다.


  “유감이지만 문자도 안 됩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 규칙이에요.”


  발음도 할 수 없고 종이에 써도 이해할 수 없다니. 무슨 뜻일까?

  ――아, 잠깐만. 전에 있던 세계에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뭐였지? 굉장히 어려운 이름이었던 듯한――기억 났다. 보이니치 필사본이다.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인, 케이스케가 인터넷에서 발견했다면서 난리치며 복사본을 학교에 가져왔었다.

  그려져 있는 그림도 문자도 전혀 의미불명이라, 많은 학자들이 해독을 시도해 보지만 내용이 뭔지도 알 수 없는 책.


  그런 느낌이 될지도. 뭔가 무섭네.


  등골이 오싹하고 추워져서, 따뜻한 온기에 손을 향한다.

  왼손에 찬 팔찌가 찰랑하고 소리를 낸다.


  “맞다. 이 팔찌. 통신기였는데 부서져서……. 신님과 연락을 취할 수 없어요. 신님, 뭔가 말하지 않았나요?”

  “말했었어요.”

  “무슨!?”


  “‘이제 그 세계는 안 된다. 바퀴벌레로 바꿔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라. 바보가.’라고 합니다.”

  “우와아아아아그러어어어언!!! 절대로 싫어어어어!!! 나 잠깐 야한짓하고 오겠습니다. 집 좀 봐주세요!”

  “진정하세요.”

  “진정할 수 없어요오오오 바퀴벌레라니 싫다싫어싫다싫어싫어!”


  크악하고 괴수처럼 소리치는 내 어깨를 사요코씨가 안는다. 손바닥이 너무 커서 어깨는커녕 앞으로는 가슴, 뒤로는 척추까지 쏙하고 들어와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괜찮아요. 이 세계는 순조롭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멸망의 징조도 전혀 보이지 않는 걸요.”


  다다미에 앉아서 엎드린 내 등을 쓰다듬으면서 사요코씨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리톤 보이스지만.


  “며, 멸망의 징조?”

  “네. 멸망할 세계에는 점점 세계가 붕괴하는 징조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그렇네요.”


  사요코씨가 텔레비전을 튼다. 흘러 나오는 건 뉴스 방송이었다. 버라이어티, 드라마, 홈쇼핑 등등 채널을 바꾼다.


  “보세요. 괜찮아요.”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눈물을 훔치며 커다란 몸을 올려본다.


  “멸망하는 세계에 이렇게 많은 텔레비전 방송은 존재하지 않아요. 단지 길고 길게 같은 화면만이 흘러갈 뿐이에요. 제가 본 건, 뉴스 캐스터가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하고 반복할 뿐인 장면이었어요.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잠자코 흥미깊게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어요. 하지만 말이죠. 뉴스 내용에 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 그건, 그렇네요. ‘오늘은’뿐인 뉴스로는 할 이야기가 없는 걸요. 재밌어서 웃길 정도였어요.”


  뭐야 그거! 그거 웃을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


  “텔레비전만이 아니에요. 고층 빌딩 뒷면, 지평선 너머, 바다 속에 있는 많은 나라들. 그것들이 전부 암흑 속에 잠겨가요. 이 세계에 필요한 등장인물,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 이외의 모든 것이 어둠에 먹혀 사라지고 마는 거에요.

  피치 매직 세계도, 제가 있던 마쵸 대행진 세계도,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던 세계도, 모든 세계가 거대한 PC로 운영되고 있다고 상강하면 이해하기 쉬울까요? 멸망해 가는 세계는 중요한 부분 이외는 제거됩니다. 빈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 불필요한 데이터가 사라지듯이.“


  “그, 그런.”


  “이 세계는 전부 창작품이고, 먼 곳에 보이는 산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하고 어렸을 적에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멸망해 가는 세계는 그런 식으로 붕괴합니다.”


  사요코씨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 괜찮아요. 단언해도 좋을 정도로. 이 세계는 외국은커녕, 우주의 별들조차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당신은 순조롭게 이 세계를 키우고 있어요. 안심하세요.”


  “으, 응…….”


  사요코씨와의 이야기가 일단락 지어지고, 나는 그 날 한 교시 지각해서 학교에 등교했다.


  “사쿠라코, 안녕! 기다렸어!”


  신발장 앞에서 모모카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시에 등교해? 라고 메일이 모모카씨에게서 왔기에 답장은 보냈지만, 설마 신발장까지 마중하러 왔을 줄은.


  “모모카씨…….”


  “사쿠라코, 등교해서 괜찮아? 오늘 정도는 쉬면 좋은데.”

  “얼굴색 나빠요.”

  “사쿠라, 아버지, 이제 돌아오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상담했으면 좋겠네. 나 일하고 있고. 적금도 꽤 있으니까 사양하지 마.”


  아, 다들 있어.

  나는 가방을 앞에 가지고, 깊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저기, 여러분. 정말로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아버지도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르고……, 여러분 덕택에 살았어요.”


  깊게 감사하며 고개를 올리자, 머리에 툭, 하고 뭔가가 닿았다.

  “우, ……모, 모모카씨…….”


  모모카씨가 머리 위에 주먹을 대고 있었다. 나는 눈치 채지 못하고 고개를 올려서, 자진납세 하듯이 머리를 맞고 말았다.


  “섭섭해. 사쿠라코. 곤란할 때엔 서로 돕는 거잖아? 친구니까.”

  “그래. 사쿠라코가 이상하게 사양하니까 오히려 신경 쓰인다고. 좀 더 가볍게 오빠에게 기대줬으면 하니까 말이야.”

  “사쿠라는, 역시 바보다. 감사할 때가 아니야.”

  “나 따위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다음에는 제대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부치를 도와준 은혜도 아직 갚지 못했고.”

  “폭력 휘두르지 않도록 감시해주는 거였죠? 그럼 그 보답으로 사쿠라코씨에게도 뭔가 해주고 싶어요.”


  입을 모아 위로를 받아, 나는 이제 미안하다는 말도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피치 매직”을 사자. 절판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날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사요코씨가 마중 나왔다.


  “사쿠라코씨. 신님에게서 연락입니다. ‘이 세계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완전히 스토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작가의 모모카와 역하렘 놈들을 붙이고 싶다는 소원은 달라지지 않았겠지. 제대로 근본악의 악역으로서 모모카를 괴롭혀서 우리들의 모모카를 괴롭히지 마라, 라며 남자 놈들이 생각하게 만들도록 힘내는 거다!’라고, 합니다.”


  모, 모모카씨를 괴롭힌다……!!!???


  그래 맞어. 나, 모모카씨를 괴롭히는 악역이었어!!

  어째서 괴롭혀야 할 모모카씨와 병원에서 일박하게 된 거야 나는 바보바보바보바보오오오오!! 이렇게나 신세 진 사람에게 심술이라니 못한다고!


  “저기, 사요코씨. 세계가 멸망해도, 주요등장인물은 평화롭게 살아갈까요!?”


  텔레비전이 망가져도, 이 세계의 용량이 줄어들어도, 모모카씨와 신 선배, 야마토군, 소라군, 키리오군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좋잖아.

  모모카씨를 괴롭혀서 괴롭게 만들바에는 차라리 그러는 쪽이 좋――!


  “유감스럽지만, 그건 무리에요. 작가에게 완전히 버려진 세계는 썩어서 녹고 맙니다.”


  끄악―. 나는 또 괴수처럼 소리를 내며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 모모카씨……! 그렇게나 신세를 졌는데, 나, 또 널 괴롭히지 않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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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나는 결국…….


  신 선배를 데리고 하교하게 되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모모카씨는 물론이고 야마토군, 키리오군, 소라군까지 함께.

  어째서 이런 일이.


  나는 낡은 자택의 현관 앞에서 가방을 안고 꾹 눈을 감았다.

  아버지, 모쪼록 외출하고 있기를!!


  소원을 품고 현관의 슬라이드 도어를 조심조심 연다.


  우.


  내 소원도 허망하게 아버지는 술병을 안고 복도 한 가운데에서 벌렁 자빠져 자고 있었다.


  “아, 아빠. 이런 데에서 자면 안 돼!”

  아직 추운 계절인데 널마루 위에서 자다니.


  당황하며 현관을 올라간 내 발이 뭔가를 밟았다.

  뒹굴, 하고 발밑이 움직이고――중심이 단숨에 이동해서 비명을 지를 여유조차 없을 정도의 기세로 몸이 뒤로 기울었다.


  “위험해!”

  완전히 균형을 잃은 날 뒤에 있던 모모카씨가 안아줬다.

  “미, 미안. 모모카씨.”

  부드러운 몸으로 막아줘서 무사했지만, 모모카씨가 없었다면 현관 콘크리트에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내가 밟은 건 술병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곳에까지 놔두다니 위험하네.


  “설마 아버님도 밟고 구른 건 아니겠지?”


  에?


  신 선배가 구두를 벗고 복도에 올라와 내가 밟고 만 술병을 복도 옆으로 치우면서, “레이센인씨”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머리 아래에, 피, 피, 피가.


  “아, 아빠!?”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대고 흔들려고 하고 말았다.

  “안 돼. 움직이지 마. 모모카, 사쿠라코를 잡아줘.”

  “아빠, 아빠, 아빠!!”

  강한 힘으로 아버지에게서 뜯어져서, 꼭하고 안겨졌다.


  “호흡은……하고 있네. 심장소리도 이상 없지만……. 레이센인씨!”


  가슴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러 보지만, 역시 아버지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신 선배는 바로 119로 연락했다.


  “구급차를 부탁합니다. 부상자는 후두부를 맞아서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주소는 오우사키쵸 8번가――. 사쿠라코. 여기 주소는?”


  주소? 주소 따위 몰라.

  여기 몇 번지 몇 호였지?


  “아, 우.”

  “8-4. 옆집 주소긴 하지만, 우체통에 써 있었어.”


  머리가 공회전하는 통에 무슨 말도 하지 못하는 나 대신 답해준 건 소라군이었다.

  신 선배는 끄덕이고 주소를 전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세한 상태도.


  나는 아연해서, 쿵, 쿵, 하고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들렸다.


  “사쿠라코, 맥도 호흡도 이상 없으니까 목숨에 지장은 없을 거야. 아버지는 괜찮으니까. 천천히 심호흡해.”


  모모카씨의 목소리가 어딘지 멀리서 들린다.

  괜찮아? 괜찮은 걸까?

  그것도 그럴 것이.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을 때도, 전화 한 통이었다.


  “진정하고 들으세요.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앞에 펑하고 플래시가 번쩍였다. 빛 안에는, 머리판도 없는 간소한 침대에 눕혀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머리까지, 천이,


  “싫어……!! 싫어, 싫어!”

  “사쿠라코”

  부드러운 몸이 더욱 강하게 날 안는다.


  “소라, 키리오, 야마토. 한 명 큰길, 한 명 뒷골목 앞, 한 명은 집 앞에서 구급차와 대원 유도를 부탁해. 길가의 자전거나 양동이도 들것의 방해가 될 것 같다면 치워줘.”

  “알았다.” “예.” “오케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구급차가 와서, 모모카씨와,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채인 아버지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치료실에 들어가고 나서 병원에서의 시간은 무척이나,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시간으로 치자면 얼마나 지난 걸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선, 마치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척이나 길고 무서웠다.


  “레이센인씨. 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에게 불려 의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의사가 말한 내용은――――.


  “안심하세요. 아버님의 뇌에 이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일을 위해서 하루 입원하고 상태를 지켜보겠습니다만……. 뭐, 문제 없겠죠. 두 바늘 정도 꼬맨 정도의 상처였어요.”


  들은 순간, 안심한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부터 휘청휘청 힘이 빠지는 내 몸을, 함께 있던 모모카씨가 지탱해 줬다.


  “다, 다행이다아아아……!! 저,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있는 힘껏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하고서, 아버지가 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제대로 의식을 찾은 상태였고, 나는 얼굴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술만 마시니까 넘어지는 거야!! 걱정했으니까. 아빠 바보!!”


  내 진짜 아버지와, 레이센인 사쿠라코의 아버지는 얼굴도 체형도 하나도 닮지 않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래도, 인연이 닿아 부모자식이 된 상대다. 건강하게 살았으면 한다. 아버지가 피를 흘리고 있었던 쇼크로, 난 심장발작 일으켜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울면서 화내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시끄럽다며 벽 쪽을 향해 누워버려 말조차 듣지 않았다.

  “아빠는 바보바보바보바보!”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데, 나는 한심하게도 감정적이 될 뿐이고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구급차를 불러 주고, 보험증을 가져와 준 것은 신 선배고.

  간병인으로서 병원에 머물게 된 나를, 혼자 두는 건 걱정된다면서, 간병인은 한 사람뿐이라는 병원측을 설득하여 함께 묵어준 것은 모모카씨고.

  “밥 먹을 여유도 없죠? 간단하게 먹을 걸 가져왔습니다.”라며 야마토군이 밀폐용기에 튀김이나 고기가 든 주먹밥을 가져워 줬고.

  소라군과 키리오군이 텅 빈 집의 문단속도 해주고, 소라군은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하고, 키리오군은 차가 필요해지면 언제든지 연락해 달라고 해서.


  모두에게 도움을 받아서,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실에서.


  “실례한다.”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신장 180센티 이상은 될 듯한 정장 차림의 형님을 두 사람이나 데리고 있는, 50대 중반 정도의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나타났다.


  백발 섞인 잿빛 머리카락을 하고 있고, 눈매나 입가에 주름이 있음에도 늙었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관록이 전신에서 풍겨온다.

  누굴까……? 의사 선생님은 아니지? 정장이고.


  아버지는 아저씨를 보고, 빨갛게 충혈 된 눈을 있는 힘껏 뜨고 중얼 거렸다.


  “숙부, 너…….”


  에? 이 사람, 숙부님이야? 아버지의 숙부님이라는 건 내게 있어서 뭘까? 사촌? 육촌? 나도 숙부님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야? 아니, 잠깐 기다려. 아무리 그래도 친척이니까 이름도 모른다는 건 이상하겠지. 어떻게 하지. 이 사람 누구?


  아저씨는 아버지를 힐끔 볼 뿐, 내게 시선을 향했다.

  곁눈으로 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만다.


  “사쿠라코, 였던가. 만나는 건 처음이군. 나는……, 저놈 아버지의 동생인, 레이센인 히데노부다.”


  다행이다. 초대면이야!

  아버지의 아버지의 동생이라는 건, 할아버지의 동생이란 거지? 아버지, 40대 정도인데, 할아버지의 동생이 50대라니 너무 젊지 않아? 친척 없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일도 있구나.


  “네 아버지는 이대로 알코올 중독 교정 센터에 입원 시킨다. 이대로 가다간 앞날이 길지 않다고 의사에게서 연락이 있었으니 말이야. 입원비용은 이쪽에서 낼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에.”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하고 만다.


  의사 선생님의 연락? 나조차 모르는 아저씨의 연락처를, 어째서 의사 선생님이 알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여기, 개인병원인데도 MRI까지 있는 꽤나 큰 병원이다. 게다가――그러고 보니, 아무런 확인도 없이 개인실을 쓰게 해줬고.

  아버지는 회사가 망하고 나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부자였다고 신님이 말했던가. 할아버지가 부자라면 친척도 부자겠지.

  레이센인이라는 이름은 드물고, 부자에겐 부자의 네트워크가 있다든가 하는 걸까.


  “알코올이 빠질 때까지는 퇴원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둬라. 네 생활은 보장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생활비도 학비도, 그리고 네 곁을 지키고 시중할 상주 가정부도 한 명 붙인다. 입원이 길어지게 되면 대학 졸업까지 돌봐 주도록 하지. 이해했나?”


  너무나도 갑작스런 말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한다.

  항의한 것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우, 웃기지마! 누가 입원 따윌. 입원해서 숨을 참아야할 바에야 좋은 만큼 술을 마시고 빨리 죽는 편이 좋다!”

  용감하게 큰 목소리를 낸 주제에, 아저씨가 노려보자 입을 다문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이 아저씨가 무서운가보다. 확실히 나도 무섭긴 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금 한마디로 단숨에 마음 정리가 끝났어.

  “아빠, 술 마시지 않게 되나요? 밥 먹게 되나요?”

  “아아. 말했지? 알코올이 다 빠지기 전까지 퇴원시킬 생각이 없다고. 틀림없이 지금보다 건강하게 된다.”


  술을 참을 정도라면 좋은 만큼 술을 마시고 빨리 죽는 편이 좋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집에 있으면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실 생각이다.

  술을 껴안고 빨리 죽게 할 바에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저기. 가정부는 필요 없어요. 저, 생활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으니까요.”

  생전에도 혼자서 생활했던 거다. 가정부 같은 사치는 부릴 수 없다.


  “여자아이 혼자서 사는 건 안 되지. 네 학교에는 기숙사도 없으니까 말이야. 가정부가 싫다면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전학하게 되겠지만. 어떻게 할까?”


  저!? 전학!? 전학이라니 할 수 없어! 악역이 이야기 도중에 전학하다니……. 어떤 의미론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명백히 연재 중단 엔딩이잖아! 작자가 납득할리가 없어!


  “그, 그럼, 가정부를, 부탁합니다.”

  “아아. 이미 수배는 끝났다. 올해 성 사쿠라 여학원을 졸업한 22세의 여성이고, 이름은 아야노코지 사요코군이다.”

  사요코씨인가. 예쁜 이름이네.

  아저씨는 명함 지갑에서 두 장의 명함을 꺼냈다.

  “너희 아버지의 담당의와 입원처가 여기다. 면회시간은 점심시간 뿐이야. 요일에 따라서 면회시간이 다르니까 면회하기 전에 시간을 확인하도록. 이쪽은……, 내 연락처다. 가정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연락해라. 담당을 바꾸지.”


  아저씨에게서 받은 명찰을 양손으로 받는다.


  “여러가지 손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내가 고개를 숙이자, 아저씨는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좀 더 빨리, 손을 써야 했겠지. 회사를 망치고 술에 빠져 사는 친척이 있다는 걸 다른 녀석들이 싫어해서 말이야. 나야 말로, 너를 오랜 시간 방치해서 미안했다.”


  “아뇨. 그런.”

  부정하려고 하는 날 막고 아저씨가 계속 말했다.


  “그럼, 이 녀석은 이대로 병원으로 옮긴다. 이놈이 퇴원하기 전에, 집 안에 있는 알코올 종류는 전부 처분하도록.”

  “……네.”


  처음으로 웃은 아저씨에게 나도 웃는 얼굴로 답하고, 아버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아빠. 면회 갈 테니까 말이야. 제대로 술 참도록 해.”

  “웃기지마. 누가 입원 할까보냐! 술을 참다니 농담이 아니야!”

  “악.”

  날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정장 형님들이 막았다. 난동 부리는 몸을 침착하게 양쪽으로 잡고 옮겼다.


  “자네는……, 사쿠라코의 친구인가?”

  아저씨가 잠자코 일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고 있던 모모카씨에게 묻는다.

  “네. 하츠키 모모카라고 합니다.”


  “사쿠라코를, 잘 부탁하네.”

  “네.”


  우리들도 함께 밖으로 나왔다. 난동 부리다가 지친 듯이 축 늘어진 아버지와 아저씨와 부하씨 중 한 명이 검게 칠한 비싸 보이는 차에, 나와 모모카씨와 또 한 명의 부하씨가 다른 차에 타고, 각자 귀갓길에 올랐다.


  “……아버지, 입원해서 쓸쓸해 지겠네. 하지만……, 미안. 나 안심하고 말았어.”


  차 안에서 모모카씨가 툭하고 중얼거렸다.

  “안심?”

  “응. 이걸로 더 이상 사쿠라코가 상처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 이 정도,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이야. 저기 사쿠라코. 쓸쓸해지면 언제든지 말해줘. 우리 집,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벼우니까 언제라도 자러 와도 되니까.”

  “……고마워.”


  모모카씨는 내 가정부씨에게 인사하고 싶다고 했지만, 여자아이를 외박하게 만들었고, 오늘은 학교도 있다.

  반드시 소개한다는 약속을 하고서, 모모카씨를 먼저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내 집으로 향한다.

  뒷골목 앞에서 차를 내리고 부하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서, 슬슬 익숙해진 집으로 걷는다.


  가정부씨는 어떤 사람일까?


  “지, 지금 다녀왔습니다.”

  긴장하면서, 슬라이드식 현관을 연다.


  바바――――――앙.


  이라는 효과음이 들린 기분이 들었다.


  현관을 연 앞에는, 천장에 머리가 붙을 것 같을 정도로 키가 크고, 좁은 복도 벽에 양 어깨가 쓸리고 말 정도로 어깨가 넓은, 거대한 사람이 서 있었다.

  추정하기로 신장 210센치, 체중 200킬로!!

  생전에 아직 남자였을 때, 진짜 아버지와 함께 프로레슬링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근처에서 본 레슬러의 박력은 장난이 아니어서 혼이 빠질 뻔했다.


  그런 프로레슬러 따위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사람이 복도 정 중앙에 서 있었다!


  누구우우우!? 가, 강도……!? 아니, 혹시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하러 온 사람일까!? 빚 받으러 온 사람일지도!

  끝이 올라간 눈 위에 그어진 상처. 얇은 눈썹. 침을 박으면 튕길 것 같을 정도로 빵빵한 근육이 붙은 팔. 수박조차 한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손.

  나 따위는 일격에 분쇄할 것 같다. 빚쟁이라면 어떻하지. 돈 한푼도 없는데……!

  기, 기다려. 나, 이 사람. 어디선가 본 적 있어!!


  그래, 분명――――마쵸 대행진의 주인공!!!

  그쪽은 그림이고, 이쪽은 리얼이니까 완전히 일치하다곤 할 수 없지만, 틀림없다!


  하하하하지만 나보다도 훨씬 훌륭한 가슴이 있어! 여성!? 에!? 어, 어떻게된 일!?

  그러고 보니 머리형태도 다르다. 마쵸 대행진 주인공은 모히칸이었지만, 눈앞의 사람은 어깨에 닿을까 말까할 정도로,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 보브숏 헤어다.


  “어서 돌아오십시오. 사쿠라코씨. 저는, 가사를 담당하도록 레이센인님에게 고용 된 아야노코지 사요코라 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큰 목소리도 아닌데 발밑이 찌릿찌릿 울리는 저음 바리톤 보이스라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저, 저기!! 아니라면 죄송합니다만……. 세기말 마쵸 대행진에 전생하신 분……, 이지요?”

  “어머, 알고 계셨군요! 기뻐요!”


  마쵸씨가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하는 짓은 완전히 여자아이지만 파워는 장난이 아니라서 내 몸이 위아래로 쉐이크처럼 흔들린다.


  “어어어어째서, 작품 내와 같은 모습으로? 어째서 세기말 마쵸 대행진의 사람이 여기에??”

  쉐이크 된 탓에 휘청휘청 흔들리면서도 의문을 말한다.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어……!


  “저는……. 생전에는 무척이나 병약해서. 감기가 악화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조차 허락 받지 못하고 창문에서 밖을 보는 것만이 즐거움이어서……. 약한 자신의 몸이 너무 싫었어요.”

  마쵸씨, 가 아니라 사요코씨는 부끄럽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래서 이 몸으로 전생했을 때엔 기쁘고 기뻐서 참을 수 없었어요!! 어떠한 거한도 (발을) 찢어서 던지고 (팔을) 찢어서 던질 수 있다니, 너무 꿈과 같아서. 무심코 너무 많이 죽였을 정도로!”


  “저저저기, 이 세계는 소녀 만화 세계니까, 찢지 말아주세요! 던지는 것도 안 되니까요!”

  “괜찮아요. 전에 있던 세계에서도, 찢고 던진 것은 약한 인간을 난폭하게 다루거나, 아이들의 식량을 뺏은 천박한 놈들 뿐이었으니까 안심하세요.”


  그렇사옵니까.


  “주인공씨인데, 세기말 대행진의 세계에 없어도 되는 건가요? 어째서 이 세계에?”


  사요코씨는 끄덕이며 말했다.


  “설명하지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자신의 집인데도 실례합니다라고 인사하면서,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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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닷없이 시작해서 죄송합니다. 학생회 서기, 모부야마 우스시라고 합니다.

  2학년 2반에 재적하고 있습니다.


  이름 대로, 평범(모부)하면서도 그림자가 옅은(우스) 인간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반 전체를 둘러봤을 때,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타입의 그림자 캐릭터입니다.


  이 세상 속에는, 1학년 시절 6월에 반에서 가장 귀여운 여학생과 이름으로 서로 부르는 사이가 되고 축구부 주전 선수인 주제에, 자신을 평범하다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만, 제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런 것은 절대로 평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본인, 모부야마 우스시야말로 킹 오브 평범. 누구나 평범하다고 납득하는, 누구의 인상에도 남지 않는 정진정명 스텔스 평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여기, 다다미 교실, 학생회 담화실에 모여 있는 하츠키 모모카씨, 레이센인 사쿠라코씨, 니노마에 소라군, 타카나시 키리오군, 이오리 야마토군. 그들 전원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습니다만, 누구 한 사람 제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신군 만이 “언제나 고마워.”라고 답해서, 조금 놀라고 말았습니다.


  병원에 가면 순번 넘어가 버리고,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순번 지나가 버린다. 말해도 “에? 누구 뭐라고 말했어?”라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런 저인데도 어째선지 신군만이 언제, 어떠한 상황이든 신경 써주는 것이 수수께끼입니다.


  전임 학생회장은 무섭도록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은 아무리 작은 것도 용서하지 못하고, 필요하다면 학생의 가방 속까지 확인하려고 하는, 군율과도 같은 압정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 반동으로 이번 학생회장은 온화한 인상을 주는 이 칸자키 신군이 당선된 것입니다.


  하지만 신군은 온화하긴 해도 결정할 때엔 제대로 결정하고, 나와 같은 존재감 옅은 사람까지 신경 쓰며 배려해 주는 무척이나 이상적인 학생회장이었습니다.


  헌데, 어째서 제가 하급생들이 모여 있는 이 부실에 있는가 하면,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원래부터 이 방에서 점식식사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보좌부 멤버와 회장 보좌가 되는 부회장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라며, 테이블을 비워주고 다다미 끝에서 도시락을 펼치고 있습니다.

  테이블이 없는 건 불편하긴 합니다만, 벽을 등지고 먹는 것도 편한 감이 없잖아 있군요.


  헌데, 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도록 하지요.


  보좌부라는 건 학생회의 잡무 전반을 책임지는, 뭐, 말하자면 잡무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잘한 일이 많은데다가 수수하고, 그런 주제에 내신에 어떠한 반영도 없고, 학생회 임원과는 달리 수업료 면제 같은 메리트도 없기에 기피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대체로, 아무 것도 모르는 1학년에게 떠맡겨지는 것이 통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입후보가 있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학생회 일원으로선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의욕이 있는 분이 담당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좋으니까요.


  하지만 긴 흑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소녀, 하츠키 모모카씨의 아름다움에는 감탄하고 맙니다.

  동양 미인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기품 있고 아름다운 얼굴 생김새, 커다란 가슴, 곡선이 아름다운 다리, 허리에서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에로한 라인, 고등학생 1학년이면서 이 정도의 색기라니 두려움마저 느껴집니다.


  거기에 비하면 레이센인 사쿠라코씨는 조금 부족함이 있군요.


  귀여운 얼굴이긴 합니다만, 스커트가 팬티 봐달라고 하는 듯이 짧은 터에 남자에게 철없어 보이는 인상을 줍니다.

  신장이 너무 작은 것도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150은커녕 145 정도 될까 말까 의심스러운 정도. 신장이 너무 작은 탓도 있겠습니다만, 팔도 다리도 모두가 얇고 작아서, 섣불리 난폭하게 취급했다간 부서질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덧붙여 그 평평한 가슴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이입니까. 발육부진이라는 레벨이 아니에요.


  애초에 이런 종류의 여자는 저와 같은 그림자 평범 캐릭터에 대해서 신랄합니다.

  가능하면 얽히지 않도록 하지요.


  “어라? 차?”


  차를 눈치 챈 사쿠라코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합니다.

  신군이 날 가리키며 말하자 사쿠라코씨는 포근하고 상냥한 웃음으로 감사합니다 모부야마 선배! 라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놀랐습니다!


  설마 이런, 제대로 된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아이일 줄이야. “나 차는 쓰니까 싫어. 오렌지 쥬스 사와.”정도는 말할 거라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신군이 만들었다는 도시락을 먹는 모습도……, 굉장히 행복하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먹고 있어서 이쪽까지 표정이 풀릴 것 같습니다.

  이거이거, 맛있게 밥을 먹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대단히 좋은 것이군요. 이쪽까지 식욕이 돋을 것 같습니다.


  “오. 우리 집 할망구도 그런 도시락 만들지 않아입니다.”

  “너 말이야. 야채도 좀 먹으라고. 그런 식생활 하니까 가슴만 커지는 거야.”

  “성희롱 반대애.”


  어이쿠, 갑자기 가슴 이야기입니까.

  신군은 학생회장으로서 존경할 수 있는 동급생이긴 합니다. 하지만 여자아이에게 경박한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지요. 조금 귀여운 아이가 있다면 금방 꼬시려고 하고. 차여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강한 멘탈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대체로 성공하는 것이 또 화가 납니다. 분명 지금은 여자친구가 없다고 같은 반 여학생이 말하고 있었지요.


  “가슴이……! 커져……!”

  갑자기 사쿠라코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볼륨을 확인할 수 없는 장소 위에서 손을 쓱쓱 문질렀습니다.


  “큭.”

  절 포함한 그 장소에 있는 모두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쓱쓱 문질러도 없는 건 없습니다. 예,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모카씨가 웃음을 참으면서 사쿠라코씨의 앞에 젓가락으로 미트볼을 건냈습니다.

  사쿠라코씨는 기쁘게 앙하며 입을 열며 먹으려고 하는 것을.


  휙.


  직전에 미트볼이 도망치고 맙니다

  모모카씨가 진심으로 즐거워 하듯이 사쿠라코씨의 눈앞에서 미트볼을 이쪽저쪽으로, 먹으려고 하는 것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열심히 쫓아도 미트볼을 먹지 못하고, 사쿠라코씨는 입을 연 채로 울 것 같은 눈으로 모모카씨를 보면서――, 겨우 미트볼이 입 안에 들어와서 기쁜 웃음을 모모카씨에게 향했습니다. 아무래도 굉장히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레이센인 사쿠라코씨.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버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밥을 좋아하고 없는 가슴을 구하는 소동물이었습니다.


  저는 즉답할 수 있을 정도의 거유파입니다만, 작은 것도 꽤나 좋은 것이군요.


  헌데, 그렇게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사쿠라코씨를 니노마에 소라군이 삐졌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니, 잘 보니 그가 노려보고 있는 건 사쿠라코씨가 아니라 도시락인 것 같습니다.


  “신 선배. 이 햄버그도 맛있어요……!!”

  “다행이야. 그렇게까지 기뻐해 주다니, 오빠도 만든 보람이 있네.”


  아아, 과연.

  소라군은 아무래도, 사쿠라코씨를 기쁘게 하고 있는 “신 선배가 만든 도시락”에 질투하고 있는 것 같군요.


  소라군은 사쿠라코씨를 좋아하는 거겠죠.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다른 남자가 만든 도시락에 기뻐한다면 그야 재밌지 않겠죠.


  그렇게 보고 있으니 돌연, 소라군이 사쿠라코씨의 도시락에서 고기를 뺏어 먹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그것만이 아니라.


  “사쿠라, 싫어.”


  그렇게 사쿠라코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아이의 아집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삐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싫다는 말은 좀 허용하기 힘듭니다.


  질투심에 좋아하는 아이에게 심술을 부린다.

  이것도 일종의 츤데레 행동인 걸까요?


  보세요. 사쿠라코도 상처를 받지 않았―― “저, 소라군에게 말 걸지 않을 테니까! 소라군도 날 무시해도 돼!”다니,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네요.


  반대로 소라군이 쇼크를 받고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꽤나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여자아이에게 무시 당한 경험이 없는 거겠죠. 꼴 좋습니다.


  하지만 미움을 받고서 이렇게까지 기뻐하다니, 사쿠라코씨, 소라군이 무척이나 짜증났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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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토는 여자아이인데 어째서 이렇게 싸움을 좋아하는 걸까.


  성전환을 한 반동인 걸까.

  생각해 보면, 나도 평범한 여자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을 잔뜩 하니까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닌가. 신님과 연락을 취할 수 있다면 한 번 제대로 항의해 보자.


  아무튼 지금은 야마토가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휴우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도시락을 상대한다.

  햄버그 맛있어! 정말, 신 선배는 요리 잘 하시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남기는 파벌”에 속해있다.


  이번에 마지막까지 남기는 것은 굉장히 맛있었던 뼈 있는 튀김이다.

  그 맛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풀어지면서 밥을 먹고 있으니――――돌연 튀김이 들어올려졌다.


  “앗!?”


  소라군이다.

  모모카씨는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소라군은 어째선지 단 빵을 먹고 있다.

  그런 소라군이, 내 튀김을 훔쳐 먹으려 한다.


  “튀김……!!”

  멈추지만 이미 늦었다. 눈 깜짝한 사이에 먹히고 만다.

  나는 순간적으로, 소라군이 손에 쥔 팥빵을 한줌 찢어 입에 넣었다.


  “훔쳐 먹지, 마.”

  “먼저 훔쳐 먹은 건 소라군이잖아.”


  “어이, 거기도. 초등학생 같은 싸움 하지 마.”

  신 선배가 나와 소라군의 시야를 막는 듯이 손을 흔든다.


  “두 사람 모두, 반찬 나눠줄 테니까 먹는 거 가지고 싸우면 안 돼.”

  모모카씨가 내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그렇게나 많았던 반찬이 벌써 반쯤 사라졌다. 이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먹은 건가. 대식가라고 한 건 날 신경 써서 한 말이 아니었구나.


  난 감사하게 슈마이를 받았다.

  “응……, 모모카씨. 굉장히 맛있어……!”

  “그래? 다행이야. 하나 더 먹어도 돼.”


  껍질도 속도 부드러운 데다가 육즙이 가득……! 모모카씨의 말에 감사히 두 개째에 젓가락을 향하자,


  “사쿠라, 싫어.”


  소라군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싫어.

  싫어.

  싫어――――!!?


  “어이, 너. 말이 심하잖아입니다.”

  “니노마에군. 말이 심해.”

  아연히 젓가락을 멈추고 만 나를 보고, 야마토군과 키리오군이 말하지만, 아니야. 쇼크를 받은 게 아니야!


  “얼마나 싫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야? 역시 그렇겠지! 괜찮아. 이제부터 나, 소라군에게 말도 걸지 않을 테니까! 소라군도 날 무시해도 돼. 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거지? 모모카씨. 자리 바꾸자!”


  나는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해진 손을 붙잡고, 곁에 앉아 있던 모모카씨와 위치를 바꾼다.

  좋았어, 소라군! 이거, 아마도 내가 있는 대로 차였다는 거겠지? 싫어졌다는 거니까 같은 이야기겠지!?


  좋았어. 일단 한 사람. 여기부터 모모카씨와 소라군의 연애담 시작이다!


  “――――――”


  소라군이 긴 속눈썹의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날 봤다.

  ……어째서 소라군이 쇼크 입은 표정을 짓는 걸까? 싫다고 한 건 소라군인데.


  “꼴 좋다.”

  야마토군이 켁, 하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소라군은 반론하지 못하고 잠자코 눈을 반쯤 감았다.


  “………….”

  “아, 이런, 진짜 기죽었네. 나도 말이 심했다. 미안해. 니노마에.”


  야마토군. 안심해도 돼. 소라군이 날 싫어하는 건 스토리대로의 흐름이니까.

  지금은 쇼크를 입은 것 같지만, 바로 “레이센인 사쿠라코”가 미워서 미워서 참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소라가 나쁜 건 당연하지만. 사쿠라코도 조금 심하다고. 사쿠라코 같은 아이에게 ‘말도 걸지 않겠다’라고 들었다간, 이 오빠도 슬퍼서 울고 말 거야.”

  “에!? 신 선배도 날 싫어하게 됐나요!?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정”

  ““아니, 그건 이제 됐으니까.””

  키리오군까지 질렸다는 듯이 딴지를 걸고 말았다.


  식사 끝나고, 학생회 활동과 학생회 보좌부 활동내용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내용은 많지만 요점이 정리되어 있어서 알기 쉬웠던 터에 짧은 시간에 끝났다.


  업무 연락 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신 선배는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다른 멤버를 먼저 교실에 돌려보냈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 신 선배는 “그럼,” 하고 말을 꺼낸다.


  “사쿠라코. 오늘 아침 학교에 신고가 있었어. 부모에게서 식비도 받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게 식사를 권하다가 체벌을 받은 학생이 있다고. 이거, 사쿠라코 이야기지?”


  “우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앉아 있던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등이 바로 서며 조금 뛰어 오르고 말았다.


  “교사회의 의제로 올라 와 문제가 되어, 내게도 정보가 돌아온 거야.”


  누, 누가 그런 신고를――이라고 생각하는 내 머리에, 걱정하는 표정을 지은 잡화점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아저씨일지도.

  괜한 짓을 하셨다. ……라고 생각하는 건 내 아집이겠지.


  나라도 맞은 것이 모모카씨나 키리오군이었다면 역시 걱정하게 될 테니까.


  “………….”


  “오빠, 사쿠라코의 아버님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말이야. 오늘 집 방문해도 좋을까?”


  “하, 하지만.”


  “오빠가 방문하는 게 싫다면, 사쿠라코의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하게 될 텐데. 그래도 좋아?”


  ‘신님 신님―! 뭔가 더 이상 영문 모를 일이 되어 버렸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호출해 보지만 역시 대답이 없다. 이 몹쓸 신님! 몹쓸 팔찌!


  담임 선생님인가, 신 선배인가…….


  “이야기는 잘 들었어!”


  돌연 파앙! 하고 문이 열리며 모모카씨가 나타났다. 뒤에는 야마토군, 키리오군, 소라군도 있다.


  “모모카……. 훔쳐 들은 건가. 발소리 위장까지 해서.”

  “훔쳐 들은 게 아니야. 앉아 있으니 들렸는걸!”

  “오빠는 때때로 너가 진심으로 짜증날 때가 있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런 밀실에 여자아이와 두 사람만 있으려고 하는 쪽이 이상한 거지. 네겐 양호실에서 있었던 전과도 있으니까, 상황을 보기 위해서 돌아오는 게 당연하잖아?”


  “그, 그러니까 그건 오해!” 설명하려 하는 내 입을 모모카씨가 막았다.


  “어느 쪽으로 할 거야. 사쿠라코. 신으로 할 거야? 아니면 선생님으로? 어느 쪽으로 하든, 나도 방문할 거지만 말이야.”

  “에? 어째서? 여자아이가 오다니 위험해! 아버지 술병으로 공격하거나 하니까.”

  “……그런 위험한 아버지와 함께 사쿠라코는 살고 있는 거야?”

  “나는……가족이니까.”


  게다가 속에 든 건 남자고. 원래부터 죽은 사람인걸.


  “폭력 휘두르려고 하면 막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알코올 중독 아저씨. 우리 식당에도 오니까 취급에 익숙하고.”

  “응. 나도 멈출거야. ……사쿠라코. 상처 입은 이유. 제대로 말해줬으면 했어. 가족이니까 라는 건 가장 위험한 패턴이잖아.”


  우으.


  곤란하다. 아버지, 오늘 집에 없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신님에게 빌어 보지만, 신님이란 게 저거였단 말이지. 진짜 곤란하네…….



Posted by 추리닝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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