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으로서 억지로 전생한 레이센인 사쿠라코.


  그녀는 악역의 역할을 다하고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도 허무하게,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투름 때문인지, 모모카가 너무 강했던 탓인지, 모모카가 역할렘군들과 이어진다는 바른 결말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즐겁게 웃는 히로인 하츠키 모모카나, 역할렘 요원인 칸자키 신, 니노마에 소라, 이오리 야마토, 타카나시 키리오들에게 작가는 만족한 거겠죠.


  세계는 안정된 겁니다.


  사쿠라코가 악역으로서 힘냈던 것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 아빠와 엄마의 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냈던 것인데, 결국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작가에게서 받은 선물인 ‘맛있는 먹을 것’이나 ‘잃은 양친이 만들어 준 요리와 같은 맛의 레시피’ 같은 것을 때때로 찾으면서, 앞으로도, 매일 소란스럽고 즐겁게――――행복하게, 살아가겠죠.


  사랑해선 안 되는 상대 (라고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말아, 괴로워한다든가 하면서.


  회전틀 안에서 전력질주하는 햄스터처럼, 사쿠라코의 공회전은 아직도 계속됩니다.


(끝)



Posted by 추리닝백작
,


  다음 날.


  삐빅, 하고 울리는 체온계를 확인한다.

  표시된 숫자는, 36.5도.


  좋아, 열이 내렸어!


  오늘은 꿈도 보지 않았고, 어제 실컨 잤으니까 기분도 상쾌하다.


  “사쿠라코씨, 아침이에요.”

  “네에!”


  계단에서 부르는 사요코씨에게 답하면서 방을 나선다.

  “사쿠라코씨?”


  계단 아래에 서 있던 사요코씨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무슨 일일까?


  사요코씨가 한 발 내딛자, 오래된 계단이 삐걱하고 소리가 난다.

  그리고 내 앞까지 와서.


  ――――입체영상이 교차하는 것처럼, 내 몸을 스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잠시 경직하고 있다가 서둘러 되돌아 본다.


  “사쿠라코씨, 무슨 일이에요? ……어머, 얼굴이 새빨갛잖아요. 굉장한 열! 잠깐 기다려요. 체온계 가져올 테니까.”


  사요코씨는 그렇게 말하고서 서둘러 방에서 나왔다.


  “사요코씨!!”

  등 뒤에서 외치지만, 사요코씨는 되돌아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방 안에는 내가 없는데!


  체온계를 한 손에 들고 와서 또 나의 몸을 스쳐 지나가 방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걸로 열을 재봐요.”


  그 말은 들은 기억이 있다.

  어제 들었던 말과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사요코씨는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사요코씨, 사요코씨!!”


  되돌아 봐줬으면 해서 소리를 지르고 어깨를 잡으려고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손이 스쳐지나간다.


  “어째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38도나 되잖아요. 자, 이걸 머리 아래에 베고 있어요.”


  나는 없는데. 이불만 있는데. 접어 놨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서 사요코씨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얼음 베개를 뒀다.


  뭐야 이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반쯤 울면서 학교로 달린다.


  물건에는 닿을 수 있지만 개찰구도 날 인식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뛰어넘어 전철에 올라탄다.


  “완결 패턴C로구만. 작가가 죽어도 다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미완성의 완결일세.”


  반투명해진 내 옆에서 아이 모습으로 돌아온 신님이 말했다.


  “피치매직 작가가 새롭게 연재를 개시한 게야. 그랬더니 그 연재가 히트도 히트, 대히트에 1등 당첨인 게지. 피치매직 뭐야 그거 맛있어? 라는 상태가 되어 버린 거겠지.”


  저녁노을이 창문에서 비추고 있는데, 내 발밑엔 그림자가 없다.


  “여기, ‘피치매직’의 세계는 이대로, 미래영원, 오늘을……, 아니, ‘어제를’ 반복하게 되네. ‘사탕의 비’나 ‘소풍 날 야마토가 가져온 고기가 고급육으로 변했던 일’, 그리고 ‘아주머니의 조림’같은 건, 작가가 너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거였겠지.”


  나는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어떻게든 열었다.


  “이 세계는 현실세계와 같다고 했는데, 이런 결말이구나.”

  “작가의 기분 하나로 멸망하는 빈약한 세계일세. 결말 따위 몇 십 개나 있어.”


  여기는 학생회실.


  모모카씨가, 야마토군이, 소라군이, 키리오군이, 신 선배가,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다.


  “사쿠라코, 괜찮을까…….”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모카씨가, 책상에 턱을 괴었다.


  “걱정이네요. 어제는 건강했었는데.”


  안경이 없는 야마토군이 등받이에 등을 대고 의자를 굴린다.


  “메일, 할게.”


  스마트폰을 꺼낸 소라군을 신 선배가 말렸다.


  “됐어. 소라. 자고 있는 중이면 어쩔거야. 오빠도 보내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 참고 있어.”

  “윽…….”


  “사쿠라코가 없으니 썰렁하네.”


  키리오군이 한숨을 내쉬고, 그런 모두에게, 모부야마 선배가 조용히 차를 돌리고 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럼, 너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주지.”


  신님이 지팡이를 들었다.


  “………………저기, 신님.”


  지팡이를 잡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신님을 부른다.


  “뭐냐?”


  “…………너는 이 세계의 신님이지?”


  “아아.”


  “그럼, 혹시 이 세계의 시간을……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까?”


  “간단하지.”


  신님은 간단하게 답했다.


  “변칙 패턴이라곤 하지만 완결된 세계니까 말이야. 작가의 손에서 떨어진 이상, 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나 혼자일세. 움직이는 것 정도야, 간단하게 할 수 있어. 단.”


  신님은 한 번 멈추고 말했다.


  “너는 두 번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 이 세계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게지.”


  신님의 은색 머리카락이 빛난다.


  “그래도 좋은가?”


  나는 발을 내민다.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손을 만져보려고 하지만, 역시, 내 손은 그 사람의 손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더 이상, 말할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안녕이라고, 고할 수도 없다――


  그런, 나는,


  나는.


  “나는, 이 세계의 사람들과――모두와, 좀 더 좀 더 있고 싶어……. 신님.”


  모쪼록, 시간을.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 좋은 게로군.”


  “――――응.”


  내 대답에 신님은 휴우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심각했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쾌활하게 말했다.


  “다행이다! 실은 돌아갈 수 없다네. 전생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내 직속의 세계뿐이니까 말이야. 네가 온 세계는 관활 밖, 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네.”


  “그럴 거라 생각했어.”

  조금 웃고 만다.


  “혹시 예상하고 있었는가?”


  “응.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시점에서 각오하고 있었어. 분명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신님은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자애에 찬 미소를 짓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완결한 보상이다. 적어도……보여주도록 하지.”


  지팡이가 찰랑, 하고 울었다.


  주변이 시커멓게 된다.


  멀리에서 빛이 다가와서, 영화관 안처럼 암흑 속에 커다란 화면이 떴다.


  거기에 있는 건, 본 적 있는 묘지의 광경.


  그리고――――그리운, 학생복 차림의 남자가 네 명.


  “어이, 료. 꽃병 씻고 오라고.”

  “오우, 그보다 이거, 꽃병이라고 하는 건가?”

  “몰라. 통하니까 됐잖아.”

  “물통에 물 담아와야지. 묘지에 뿌릴 거니까 도우라고.”

  “뿌릴 때엔 아래부터야. 갑자기 머리부터 뿌렸다간 xx가 깜짝 놀라니까.”

  “알고 있다니까.”


  료, 레이, 케이스케, 준타로.


  일찍이 내 친구들이 우리 집의 묘지를 닦아주고 있다.


  “다, 들.”


  내 이름은 들리지 않는다. 예쁜 꽃도 모두의 얼굴도 선명하게 보이는데, 내 묘지에 세겨진 이름만은 어렴풋해서 보이지 않는다.


  준타로가 선향에 불을 붙이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우리들 시험 때 찍어도 빗나가고, 불리고 싶지 않을 때 선생이 지목하고, 다들 한 결 같이 운 없으니까 제대로 죽지 못 할 거라고 중학교 시절에 말했지. 진짜로 너, 꼴사납게 죽었잖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하는데.”


  “그만두라고!”

  케이스케가 준타로의 등을 걷어찬다. 라이터 불이 손에서 떨어져 준타로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선다.

  “무슨 짓이야. 이런 개새!”

  준타로가 뒤돌아보면서 고함치지만, 케이스케는 웅크린 무릎 위에 얼굴을 올리고, 한 손을 후두부에 올리고 있었다.

  “제길.”

  “웃기지 말라고 빌어먹을! 울지 말라니까! 울었다간 나까지 울고 싶어지잖아. 새꺄!”

  주저앉은 케이스케의 머리를 이번엔 레이가 두들긴다.

  “그만둬. 괜한 데에 화풀이 하는 레벨이 아니라고.”

  “시끄러! 빌어먹을, 웃기지 말라고! 얼마 전까지 같이 놀았는데. 이런.”

  고개 숙인 레이의 발밑에 작은 물병이 떨어졌다.


  “짜증난다고. 언제까지 훌쩍훌쩍 울고 있을 거야? 그래서야 xx가 성불할 수 없잖아.”


  꽃병을 씻어 온 료가 돌아왔다.

  양초와 향초에 불을 붙이고, 네 사람은 내 묘지 앞에서 손을 마주했다.


  긴 시간, 그러고 있다가, 겨우 일어섰다.


  “……xx, 천국에서 아빠 엄마랑 만났을까.”

  “만났겠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네.”


  료가 하늘을 향해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보고, 붉어진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저기, 신님. 나는 저쪽 세계에 돌아가지 못하지만……신님이라면 갈 수 있어?”


  “무리지. 하지만, 사람 꿈 속에 나오는 정도라면 할 수 있네.”


  신님은 상냥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쟤들에게 전해줬으면 좋겠어. 나는……행복하다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그리고.”


  울 것 같은 걸 참으면서 웃는 바람에, 이상한 표정이 되고 만다.

  입술이 떨린다. 눈 밑이 뜨거워서 저리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말했다.


  “친구로 있어줘서, 고마워, 라고.”


  신님은 끄덕이고, 그리고 사라졌다.


  이상한 공간도 사라지고, 나는 원래 장소, 학생회실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쿠라코!? 언제부터 있었어!? 등교했었구나! 열은 내렸어?”

  “무리하면 안 된다고――――무, 무슨 일이야!? 어째서 울고 있어!?”

  “어, 어이, 설며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한 건 아니겠지!?”

  “사사, 사쿠라코, 울지마.”

  “무슨 일이야? 자, 과자 줄 테니까 오빠에게 말해보렴.”


  몸이 떨리는 걸 참지도 못하고 소리를 내며 우는 나에게, 다들 다가와서 입을 모아 위로한다.


  모모카씨에게 등이 휘어질 정도로 강하게 안겨서 괴로웠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닿을 수 있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기뻐서 더더욱 울고 말았다.


  오늘만은, 이라며 학생회 일을 내버려 두고 다함께 거리에 나와 놀았다.

  노래방에 가고, 게임센터에 가고, 그리고 야마토군의 집에서 밥을 먹고.

  그리고 언젠가 있었던 가정방문 때처럼, 모두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다들 돌아가고 현관문을 닫고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사요코씨가 나에게 성대한 박수를 보냈다.


  “신님에게서 사정은 들었어요. 세계의 안정, 축하해요!”


  “작가씨가 질렸을 뿐이니까, 내 공적이 아니지만 말이야.”


  “오늘까지 이어져 왔던 건 당신이 열심히 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사요코씨의 질문에 나는, 주먹을 꾹 쥐고 답했다.


  “악역으로서의 임무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모모카씨와 역할렘군들 사이의 사랑의 큐피트로서 힘내려고 생각합니다. 모모카씨와 네 사람이 결혼해서, 신 선배를 닮은, 소라군을 닮은, 야마토군을 닮은, 키리오군을 닮은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분명 다섯 명을 이어보이겠어요. 뭔가 자신이 생겼습니다!”


  “자신!!!!????”


  사요코씨의 절규에 팡하고 창문이 깨졌다.

  뭐,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나에겐 여러 가지로 경험치가 있으니까 말이야. 힘낼 거야!


  아, 핸드폰이 울고 있다. 모모카씨에게서 온 전화다!


  “무슨 일이야? 모모카씨.”


  통화를 연결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는 나와 반대로, 전화기 너머의 모모카씨의 목소리는 낮았다.


  “내일, 혼나야겠네.”

  “어, 어째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지만 벌을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상하네.”


  언젠가 들었던 대사를 남기고, 통화가 끊겼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학교에서 귀가한 나는 휘청휘청 거실로 들어가 방석 위에 양손을 댔다.

  상냥한 음색의 거문고를 타고 있던 사요코씨가 쿡하고 웃는다.


  “이번엔 무슨 일인가요?”


  나는 방석에 엎어진 채로, 비명 같은 소리를 짜냈다.


  “모모카씨가, 모모카씨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어요……! 하는 일 아닌 일 전부 제대로 되질 않아……! 이 이상 아무런 수단도 생각나지 않아서――――이렇게 된 이상 모모카씨를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모모카씨를 악역에게 죽은 비극의 히로인으로서 독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하는 수밖에 없어!!


  “자자, 진정하세요.”

  우갹하고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는 나를 웃는 얼굴로 사요코씨가 말렸다.

  잡힌 손목에서 뚝하는 소리가 나며 식칼이 바닥에 떨어진다.


  부, 부러지는 줄 알았어……!


  “괜찮아요. 분명 다음 찬스가 있으니까.”

  사요코씨가 내 팔을 잡은 채 웃는 얼굴로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하지만, 하지만! 모모카씨가 너무 강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펼친 손수건을 양손에 쥐고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다.


  “이제 곧 골든위크지요? 다들 모여서 어딘가 놀다 오세요. 분명 지금보다 더욱 사이가 좋아질 테니까.”

  “놀러……?”

  “네. 유원지라도 수족관이라도 동물원이라도. 분명 즐거울 거예요.”


  “――――――.”


  과연……. 그, 그렇지. 지금이야말로 그걸 쓸 때다!


  허둥지둥 계단을 올라가 서랍을 뒤집으며 찾는다.


  안에서 꺼낸 것은!


  “한 장, 두 장, 세 장……. 후후후후후후후후.”


  봉투에서 지폐를 한 장, 두 장 세면서 바닥 위에 나열한다.

  그렇다. 내가 꺼낸 것은 키리오군에게서 사례로 받은 30만 엔!


  왠지 모르게 쓸 수 없어서 서랍장에 넣어둔 채였다.


  “스무 장, 스물 한 장…….”

  “무슨 일 인가요? 사쿠라코씨. 폐가의 유령 같은 목소리로……. 어머, 이런 큰돈은 어디서 났어요?”


  내 모습이 신경 쓰인 거겠지. 2층으로 올라온 사요코씨가 미닫이 문을 열었다.

  바닥 위에 나열된 큰돈에 눈을 크게 뜬다.


  “후후후후후, 이거 부치 보호했을 때 키리오군에게서 받은 사례에요.”

  “당신, 밥 먹을 돈도 없었었죠? 이런 큰돈이 있는데 어째서 쓰지 않았어요?”

  “친구에게서 돈을 받다니 미안해서, 쓰지 못했어요.”

  “정말……. 사례금인 거죠? 곤란할 때에 쓰지 않고서 어떻게 할 거예요. 사쿠라코씨를 도와주고 싶다는 키리오씨의 마음도 있었을 텐데.”

  사요코씨가 내 머리에 딱밤을 날린다.

  30장까지 세고 나서, 머리에 생긴 혹을 누르면서 사요코씨에게 몸을 내밀었다.


  “쓰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이름하야, ‘모모카씨와 역할렘군들 급접근작전’! 이 돈으로 골덴위크에 모두 다 함께 숙박 여행에 가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당일 꾀병으로 펑크 내면 모모카씨와 역할렘군들만이 여행을 가게……! 후후후후후, 분명 다들 사이가 지금보다 더 깊어질 것이 틀림없어요!”

  “어머어머어머, 굉장해요! 대단한 생각이에요!”

  “그렇죠!?”


  칭찬을 받아 기뻐지고 만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작전을 세웠지만, 하나하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 작전만은 성공하게 할 거다!


  “일정이 정해지면 말해주세요! ‘사쿠라코씨가 꾀병 부릴 셈이니까 당일에 마중하러 오세요.’라고 모모카씨에게 연락해 둘 테니까.”


  에?


  “에…………무슨.”

  “네?”


  “저‥‥지금‥‥, 모모카씨와 역할렘군들의 급접근작전이라고 했었죠……???”


  “아무리 스토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즐거운 여행을 펑크 내다니 안돼, 에요.”


  우와아아아아!!


  “사, 사요코씨는 배신자!”

  “앞으로 몇 번 더 이런 대화를 하면 학습하는 걸까요.”


  눈물을 글썽이며 어깨를 퐁퐁 때리는 나에게 사요코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이제, 절대, 사요코씨 따위 믿지 않아! 오히려 아무도 믿지 않아! 나는 혼자서 싸울거야아!!


  그 날, 그렇게 굳게 맹세하고 잠에 들었다.


  그 때문인지, 심한 악몽――――을 보고 말았다.

  혼자서 모모카씨와 마주 서서, 모모카씨에게 덤벼들었다가 반격을 당하고, 덤벼들었다가 반격을 당하고, 덤볐다가반격, 덤볐다가반격덤볐다가반격.


  다들 내 등 뒤에서 웃고 있는 와중, 역할렘군이 한 사람, 옆에 섰다.

  함께 있어. 그런 말을 듣고, 뺨에 키스를, 당하는, 꿈.


  그런 꿈을 봐서 그런지, 나는 다음날 심한 열을 내고 말았다.


  ――――어째서 그런 꿈을 꾼 걸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불 속에서 난리치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무엇보다도 모모카씨의 서방님을 더럽히는 것 같은 짓을 해서 가슴이 아프다.


  “38도나 되잖아요. 자, 이걸 머리 아래에 베고 있어요.”

  “네…….”

  들은 대로 머리를 올리고 얼음주머니를 벤다.


  영문도 모르는 채 악역하라는 말을 듣고, 이 세계에 떨어졌다.

  신님은 무리난제만 말하고,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사요코씨는 실은 적이었고, 모모카씨는 드바이나 아부다비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이 세계에 왔을 때엔, 밥조차 없어서 매일 서러웠다.


  옆에 있어주고, 아군이 되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우으. 열 때문인지 괜히 더 마음이 약해진다.


  “갑자기 이런 고열이 나다니, 어제 너무 난리를 쳤기 때문일까요. 학교에는 연락해 둘 테니까, 느긋하게 쉬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먹고 싶은 거!?


  “고, 고기가 먹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라는 일이 꽤 있지만, 나는 감기가 걸려도 열이 나도 식욕만은 떨어지지 않는다. 건장한 위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다.


  “그럼 분발해서, 부드러운 스테이크로 하도록 할까요.”

  “!!!”


  스테이크!? 해냈다!

  약해진 마음이 단숨에 뛰어오른다.

  밥이 기대되네.


  아, 모모카씨에게도 오늘은 쉰다고 연락해둬야지.


  메일을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나를 걱정하는 내용에 나도 또한 답장을 하는 도중, 메일 수신 표시가 흐른다.


  역할렘군들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표시되자 또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이불 안에서 난리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조금 기뻐져서, 가장 먼저 그 사람에게 답장했다.


  그 날은 어물어물 잠을 자면서 하루를 끝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점심밥을 먹은 뒤, 신 선배에게서 학생회실 열쇠를 빌리고 나와 모모카씨는 서로 의자에 마주앉았다.


  모모카씨는 똑바로 내 눈을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사쿠라코, 전에……, 저 네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었지?”


  에!?


  “으, 응…….”


  말하자는 게 연애에 다한 거였구나!


  “……전에는 심한 짓을 해서 미안. 성희롱남이라든가 여장남이라든가 폭력남이라든가 공기군이라고 했던 거, 사과할게.”


  얌전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모카에게, 나는 튕기듯이 등줄기를 피고서 크게 숨을 마셨다.


  어――――어쩌면, 모모카씨, 겨우, 사랑에 눈을 떠준 걸까나!?


  해해해해해해냈다――――!


  겨우 모모카씨가 자각한 거구나! 다행이야. 길었어. 정말 길었어!

  누구일까?

  누구를 좋아하게 된 걸까?


  역시 신 선배? 아니면 함께 살고 있는 소라군일까!? 어쩌면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은 야마토군일지도 몰라! 아니, 키리오군이라는 가능성도 있어. 라이브 멋있었고!


  “괜찮아! 그 네 사람은 그 정도에 풀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의자 다리를 가각하고 미끄러뜨려 급속하게 모모카씨에게 다가가서 예쁜 손을 잡는다.

  남자를 한방에 넉아웃 시키리라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얇고 예쁜 손이다.

  신 선배와 소라군은 맘에 두지 않고 있는 것 같고, 키리오군은 풀 죽었었지만 벌써 딛고 일어났스니까!

  모모카씨의 서방님들은 강하다고!

  누구!? 대체 누구를 좋아하게 된 걸까!?


  “그 녀석들, 한 사람 한 사람만 보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놈들이니까 어울리지 않지만, 하지만 네 사람 동시에 사귄다면 납득할 수 있어.”


  오오오오오!?

  설마하던 네 사람 동시……!?!?


  역시 대단하다 모모카씨. 나 같은 사람은 복수의 사람과 사귄다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오는데, 역시나 역할렘 만화의 히로인!


  “나, 사쿠라코의 사랑을 응원할게!”


  ……………….

  ……………….

  ……………….

  ………………?


  에?


  “키리오군도 야마토군도 말해보면 꽤 괜찮은 놈들이고. 소라는 버릇없지만, 나도 어쩔 수 없던 야쿠오지씨와 싸워서 사쿠라코를 지키고 있고, 신도, 저렇게 보여도 믿음직한 녀석이니까.”


  에???


  “그런 좋은 점도 있지만, 결점도 크니까 사쿠라코와 어울리지 않네……하고 고민하고 있었어……. 하지만 눈치 챘어! 한 사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네 사람과 동시에 사귀면 되잖아! 귀찮은 일이 일어나면 신에게, 야쿠오지씨 때문에 곤란하면 소라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키리오군에게, 특공이 필요할 때엔 야마토군에게 의지하는 역할 분담도 되고!”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무무무무무무슨 말일까나!? 저, 저저,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사랑이라니 뭐!? 사랑이라니 뭐야 그게!!”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전에 네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물어봤잖아. 나, 그때 핑하고 왔어. 사쿠라코는 저 네 사람을 좋아하니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는 거라고. 내가 네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물러날 생각이었던 거겠지. 정말, 사람이 좋으니까.”


  “아니야아니라고아니면아닌데다전혀아니에요오오오! 저 네 사람과 행복해져야 할 사람은 모모카씨야! 모모카씨, 좀 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자! 모모카씨는 저 네 사람과 연인 관계가 되면 행복하게 돼!”


  다른 활용법을 늘어놓는 듯이 연호하며 부정하자, 모모카씨는 “쑥쓰러워하지 않아도 돼~”라며 싱글벙글 웃을 뿐이다.


  이, 이렇게 되면 말하는 수밖에 없어!

  이 세계가 만화 세계고, 모모카씨는 히로인이라고……!

  의자를 울리며 일어나서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나는 목소리를 꺼냈다.


  “모모카씨,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고등학교에서 심심하지 않도록 신님이 보내준 이상하고 귀여운 천사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니야! 모모카씨, 들어줘. 나는……이 세계의 악역이야. 그리고 너는――――이 세계의 히로인이야!!”


  딱, 하고 모모카씨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드디어 나는 말했다!

  말하고 말았다!!!


  “흐응. 그래서 사쿠라코.”


  “흘려듣지 마세요! 정말이야. 여기는 역할렘 소녀만화 ‘피치매직’의 세계고, 모모카씨는 그 작품의 히로인이야. 모모카씨가 이 세계의 중심이고, 이 세계의 주역이야!!”


  “역할렘 만화의 주역?”


  “그래! 많은 남자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야. 모모카씨라고!”


  모모카씨는 눈을 빛내며 내게 몸을 기울었다.


  “그럼 상대는 어떤 사람!? 재벌집 후계자라든가, 어디 왕국의 황태자라든가, 한 나라를 없앨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자라든가, 어둠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마피아의 보스라든가!?”


  기대 잔뜩 하고 질문하는 모모카씨에게,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식은땀을 흘린다.

  우물쭈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말을 쥐어짠다.


  “에, 그, 그러니까. 이 학교의 학생회장이라든가 정식집의 아들이라든가 의붓동생이라든가……아, 아이돌도 있어!”


  모모카씨는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듯이 어깨를 떨궜다.


  “근처에 있는 놈들 대충 나열했을 뿐이잖아……. 그런 거 히로인 같은 거 아니야.”


  입술을 내밀고 부부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나, 나에게 그렇게 말해도 곤란합니다.


  “그런 성가신 거짓말 하지 않아도 돼. 사쿠라코. 나는 저런 녀석들에게 1미리도 흥미 없으니까. 오히려 최근 짜증나네, 라고 생각할 정도니까. 장래에 드바이나 아부다비에서 석유왕 낚아 채는 것이 목표고.”


  아아아……모모카씨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조차도 이만큼이나 예쁘니까, 장래의 모모카씨는 그야말로 동양미인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절세의 미녀가 되겠지.

  호화한 의자에 앉아 높은 웃음소리를 내는 오리엔탈 뷰티와 그 사람에게 달라붙은 많은 남자의 모습이 환각처럼 보인다.


  어어어어어쩌지――――!!!


  모처럼 오해를 풀기 위해 모두를, 좋아하지 않다고 연호했는데도 결국 믿어주지 않은 채로――.

  손이 잡히고, 이미 수업이 시작 된 교실로 들어가는 거였습니다…….


  “하츠키씨, 레이센인씨! 어째서 이렇게 늦은 거야!?”

  쨍쨍한 목소리의 미술 선생님에게 혼나고 말았다.

  그림자 캡짱 소재라도 꺼내서 얼버무릴까 하는 나보다 빨리, 모모카씨가 귀여운 포즈로 말했다.


  “죄송해요~. 배가 아파서 물 같은 설사가 멈추지 않아서 화장실에 있었어요~♪ 레이센인씨가 약을 가져와 줘서 살았어요~♪”


  “뭐……!? 여자가 그런 말을 큰 목소리로 하는 게 아니야! 이제 됐으니까 자리에 돌아가요!”

  “네에~”


  “아니야, 아니에요! 제가 모모카씨에게 심술을 부려서 교실에 오지 못하게 한 것이 이유고.”

  “됐으니까. 자, 자리에 앉아 사쿠라코.”


  목덜미를 잡혀 자리로 끌려간다.


  어쩌지!

  어쩌지!?

  정말로 어쩌지……!


  빙글빙글 사고가 공회전 해서 전혀 수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설마 모모카씨가 이런 착각을 하고 있었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상담……, 아, 그래!


  수업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은 채로, 5교시가 끝나자마자 나는 달렸다.

  그래. 2학년 교실이 있는 층으로!


  화려한 용모의 그 사람은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찾은 것은 당연히, 도우미씨인 노구치 줄리아씨다!


  “줄리아씨이이이이, 모모카씨가 이상한 방향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줄리아씨의 어드바이스가 필요해요. 부탁이에요. 모모카씨에게 사랑의 어드바이스를 해주세요오오오!!”

  “꺄아아아악――오, 오지마―!! 이 역병신이이이이!”

  줄리아씨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올리며 도망쳤다.


  “여, 역병신!? 아니에요. 상담할 게 있어요. 말을 들어주세요오!!”


  있는 힘껏 쫓지만 쫓아갈 수 없어서, 하지만 줄리아씨는 자판기 앞에서 발을 멈췄다.


  말없이 푸딩을 2개 사서, 나에게 넘긴다.


  “이거 줄 테니까 두 번 다시 줄리를 찾지 말아줘. 줄리도 더 이상 당신들에게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그, 그런…….


  위자료가 아니라 위자푸딩을 받고, 나는 아연하게 그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우와아아, 느, 늦잠 잤다……!”


  벌써 7시 20분! 아직도 스누즈 상태인 휴대폰 알람벨을 끄면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다.

  알람이 울렸는데도 일어나지 못한 건 처음 알바 했던 날 이후로 처음이다. 어제 소풍에서 너무 난리쳤던 걸까?


  서둘러 몸단장을 하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평소엔 아침밥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을 사요코씨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젯밤에 이쪽 세계에서 만든 친구나 신님과 함께 마시러 나갔던 것이다.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함께라며 차려입고 나갔었다.


  이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은 건, 남자 집에 머물고 있다든가 그런 걸까?

  어쩌면 남친이 생겼다든가?


  사요코씨에게 애인이 생기면 외롭네……. 누나를 딴 남자에게 뺏기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하지만 조금은 안심일까나.

  소라군을 뺏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밥솥을 열어 확인하자 밥이 남아 있었다. 좋아. 아침밥은 낫토밥으로 하자.

  나도 슬슬 요리를 배워야지. 된장국 정도는 만들지 않으면 사요코씨가 없는 날 식사가 적적해지고.


  “안녕.”


  현관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인사를 하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

  누구일까.

  빙글빙글 섞고 있던 낫토를 식탁에 두고 현관으로 나간다.


  “아,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현관에 있던 건 두 집 떨어진 후유노씨집의 아주머니였다.


  “어머, 사쿠라코만 있니?”

  “응.”

  “그럼 이거, 너무 많았던 걸까. 많이 만들어서 가져온 건데.”

  아주머니는 한 손에 안고 있던 커다란 밀폐용기를 나에게 건냈다.

  반투명한 밀폐용기 안에 들어있는 건 야채와 닭고기 조림이었다.


  “우와아아! 이렇게 많이. 대단해!”

  당근, 우엉, 곤약, 죽순, 표고버섯, 깜짝 놀랄 정도로 많다!


  “엄마가 죽은 뒤로 조림 같은 건 전혀 먹지 못해서 기뻐!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 기세로 기뻐하는 내 머리에 아주머니의 손이 올라왔다.

  “!”

  아주머니는 주름이 생긴 상냥한 눈매를 가늘게 하고 내 눈을 잠시 들여다 보고선 말했다.


  “그럼 이번에 조림 만드는 법 알려줄 테니 집으로 오렴. 아주머니는 스파르타식이니까 각오하고.”

  자, 자기 무덤 팠다……. 나, 사과 깎기도 못하는데.

  “부, 부드럽게 부탁드립니다…….”

  단숨에 텐션이 떨어지고 말아, 더듬더듬 답하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작은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목소리로 웃었다.


  감사를 표하고 배웅한 뒤, 재빨리 조림을 작은 접시에 옮긴다.

  밥이 단숨에 호화롭게 됐어.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


  당근을 입에 넣고, 경직하고 만다.

  천천히 씹기 시작하고, 삼킨다.


  …….


  엄마의, 조림, 하고, 같은, 맛.


  “――――――!!”


  단숨에 눈물이 흘러 넘쳐서, 양손으로 얼굴을 잡지만 손바닥 사이로 뚝뚝하고 눈물이 흘러 넘쳤다.


  정신을 놓으면 큰 목소리로 울 것 같아서 입을 억지로 닫는다. 윽, 하고 목 깊은 곳에서 말이 막힌다.

  울면서 밥을 먹고, 도시락통에 밥과 조림을 잔뜩 넣어서 다시 한 번 얼굴을 씻고 집을 나선다.


  이제와선 아주머니의 권유가 무척 감사하다. 스파르타든 뭐든 조림 만드는 법, 열심히 배우자.

  나는 엄마를 도운 일이 없으니까 엄마가 죽고 나서 엄마의 맛이 나는 밥을 전혀 먹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또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제대로 배워서, 이번엔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거다!


  가방을 가지고 뒷골목을 달린다.


  “아, 빌어먹을 꼬맹이. 제대로 공부하고 오라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사쿠라코, 안녕. 다녀와요.”

  “안녕하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잡화점 아저씨나 뒷골목을 청소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돌려준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다. 아! 머리를 묶는 걸 잊었다. 뭐, 괜찮나. 학교에서 묶으면 되지.


  전철은 혼잡해서 앉을 자리는커녕 잡을 철봉도 전부 다른 사람이 잡고 있다.


  손잡이……꽤 높단 말이지.

  팔을 뻗어서 어떻게든 잡는다.


  우으……. 턱걸이라도 하는 기분이야.

  차라리 이대로 매달려버리고 싶다.


  음?


  앞에 앉은 아저씨, 내 배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우와, 팔을 있는 대로 올리고 있으니까 배가 보이고 있어. 역시 모르는 사람에게 보이고 있으면 부끄럽네. 장소를 바꿔야지.

  차량을 이동해서 이번엔 여자 앞에서 열심히 손잡이를 잡는다.


  키가 작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네. 적어도 앞으로 25센티는 컸으면 한다.


  “안녕. 사쿠라코.”

  “안녕하세요.”


  신 선배다. 전철에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또 배를 내놓고……. 모모카에게 머리 조일 거야. 자, 손잡이가 아니라 오빠 손을 잡으렴.”

  선배가 손잡이에 걸려 있던 내 손을 선배의 팔로 옮겼다.

  좋아서 내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신체적 사정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예요.

  말에 감사하며 신 선배의 팔을 잡는다.


  우와.

  대량파괴병기인 야마토군을 한 손으로 억누를 만하네. 굉장히 탄탄해.


  “혹시 울었어? 웬일로 머리도 내리고 있고. 무슨 일 있었니?”

  걱정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는 신 선배에게 당황하며 부정한다.


  “아니에요! 굉장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근처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조림이 죽은 엄마가 만들었던 조림하고 똑같은 맛이라……! 기쁘고 기뻐서 아침부터 크게 울어서. 이번에 만드는 법 배울 거예요!”

  또 그리운 맛이 생각나서, 얼굴이 웃음으로 녹아버릴 것 같다.


  “……아주머니라니, 누구?”

  “후유노씨 집의 아주머니에요. 두 집 옆의.”

  “아아, 후유노씨인가. 구급차 소동 때 신세 졌었지……. 오빠도 함께 배우도록 할까. 조림 잘 못 만들고.”

  오오!? 그건 감사하다. 신 선배는 요리를 잘 하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그럼, 모쪼록 함께!”


  사쿠라오카역 앞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모모카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사쿠라코, 신!”

  “모모카씨!”


  계단을 내려가려는 도중, 신 선배의 손에 잡혔다.


  “달려 내려가는 건 금지야. 또 팬티가 다 보인다고.”

  그, 그랬다. 아직 스커트에 익숙하지 않아……. 다 보여도 괜찮도록 안에 속바지라도 입을까?

  “일단은 빤히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자. 유치원생 같아서 보는 사람이 아슬아슬하다고.”


  도중에서 목소리로 나온 것 같아서 신 선배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신 선배에게 잡힌 채로 계단을 내려가고, 모모카씨에게 달려간다.


  “안녕!”


  모모카씨는 첫날처럼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저기, 사쿠라코.”

  “응?”


  모모카씨가 앞에서 걷고 있기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등에 대답한다.


  “점심 먹고 난 뒤에, 둘이서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아?”


  “응!”


  드문 일이네. 웬일일까.

  역할렘군들과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낸 적은 있지만, 모모카씨가 새삼스럽게 대화하자는 말을 하는 건 처음이야.


Posted by 추리닝백작
,


  자, 그러면. 스텔스계 엑스트라, 모부야마 우스시입니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소풍날입니다.


  저는 지금, 화창한 푸른 하늘 아래, 1학년 보좌부 부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온화한 산길을 걸어 목적지인 앵화산 정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2학년인 제가 어째서 1학년과 함께 걷고 있는가 하면, 저의 기본 스킬인 스텔스 기능 때문입니다.

  반을 정할 때, 어디의 반이든 들어갈 수 있도록 분투했습니다만, 결국 어디의 반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겁니다.

  그건 고사하고 선생님까지 잊어버려 자신의 반의 바비큐에도 참가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솔직히 예상 범위 내의 일이었습니다.


  바비큐는 무시하고 도시락을 싸가자. 그리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느긋하게 먹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반 분류의 자료를 보고 있던 신군이 제가 혼자라는 걸 눈치 채고 보좌부 1학년들 반에 섞어준 것입니다.


  “너희들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오빠 대신 우스시에게 감시역을 맡길 테니까, 예절 바르게 행동 하라고. 특히 야마토하고 모모카하고 소라. 사쿠라코도 혼자서 우왕좌왕 행동하지 않도록. 무슨 일을 할 때든 우스시하고 함께 해.”

  ““““네에.””””


  반에서 잊혀졌을 뿐인데. 그런 말로 나의 체면을 세워준 신군에게는 머리가 오르지 않습니다.


  “바비큐, 바비큐, 바비큐.”


  내 옆을 걸으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건 사쿠라코입니다. 무척이나 바비큐가 기대되는 거겠죠.

  보폭 때문인지 제가 한 발자국 걷는 옆에서 두 발자국 걷는 모습이 열심히라 무척이나 귀엽습니다.


  앞을 걷고 있는 건 학생회 부회장인 야마토군.

  그의 등에는 커다란 가방이 있는데, 손에는 세 개나 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오리, 내 것도 들어 달라고.”

  “네. 좋아요.”


  남자가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야마토군에게 건냅니다.

  야마토군은 싫은 표정 하나 없이 받습니다.


  “내숭쟁이군. 언제까지 내숭 부리지 말고 적당히 거절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네 개나 들다간 쓰러져. 우리들 반의 짐도 지고 있는데.”

  모모카씨가 걱정스럽단 듯이 야마토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저, 이런 거 동경하고 있었어요.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러기는커녕 꼬붕 같은 취급을 받는 평범하고 얌전한 반 친구 포지션에……!”

  “………………뭐, 내숭쟁이군이 그걸로 만족하고 있다면 더 말하지 않을게…….”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듯이 모모카씨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요.


  뒤에서 끼릭끼릭끼릭, 하고 소리가 들리고, 사쿠라코가 부앙하고 스피드를 올려 앞의 두 사람을 쫓아갔습니다.


  소리의 정체는 커터칼입니다.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니 굉장한 고양이등을 한 여자가 “후후후후후.”하고 지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웃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야쿠오지씨입니다. 아까 전에 사쿠라코에게서 소개받았습니다. 저도 자기소개를 했습니다만, 이쪽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어깨까지 늘어진 흑발은 노파처럼 흐트러지고, 핏발이 설 정도로 부릅 뜬 눈은 동공과 흰자위가 극명하게 갈려 삼백안은커녕 사백안. 신장은 160을 넘는데도 체중은 아마 30킬로 정도겠죠. 하프팬츠에서 뻗은 다리에는 뼈가 보일 정도입니다.

  볼이 홀쭉하고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여윈 여자가, 사쿠라코와 같은 리본을 묶은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 형태에, 가방도 스니커도 사쿠라코와 같은 걸 쓰고 커터칼을 울리며 웃고 있는 겁니다.


  무섭습니다.


  리얼 호러입니다.


  갑자기 속도를 올려 지친 건지 사쿠라코의 속도가 느려져서 뒤에 걷는 사백안 여자와의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또 여자는 커터칼을 끼릭끼릭 울리고 다시 사쿠라코가 속도를 올립니다. 사쿠라코는 완전히 울 것 같은 표정입니다.


  “소풍에 커터칼은 필요 없지. 이거 내가 맡을게.”


  여자의 손에서 키리오군이 커터칼을 빼앗습니다.

  여자는 “커터칼, 돌려줘…….”하고 키리오군을 보지 않은 채 항의하지만, 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서 “저주할거야저주할거야저주할거야저주할거야”라고 반복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뭐야 이거 기분나빠.” “키리오군, 상관하면 안 돼.”

  키리오군의 곁을 지키고 있던 여자들이 질려하며 키리오군에게 팔짱을 낍니다.

  아이돌이니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키리오군의 곁에 있는 여자들의 수가 대단하네요. 두 자리는 가볍게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좁은 산길에서 수고할 따름입니다.


  “……라코…….”


  응?

  야쿠오지씨가 또 뭔가 말하기 시작하네요.


  “사쿠라코오오! 그거, 어디서 산 거야아아!?”

  “히이이익!?” “우와아아!?” “꺄아아악!?” “뭐뭐뭐뭐야!?”

  야쿠오지씨가 가느다란 몸에서 나왔다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쨍쨍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공기조차 떨릴 것 같은 성량에 하늘을 가리던 나무에서 이파리와 곤충이 대량으로 떨어집니다!


  깜짝 놀란 사쿠라코가 도망치고, 모모카씨가 사쿠라코를 등뒤에 숨기고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나 저까지도 비명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아비규환의 도가니를 만든 본인은 핏발이 선 눈을 더욱 붉히며 귀기가 돌 정도의 표정으로 사쿠라코에게 달려듭니다!


  “사쿠라코……그 햄스터 마스코트. 하고 올 거라는 말, 없었잖아……!! 어디서 산 거야!?”

  “헤, 아, 에, 아.”


  사쿠라코는 갈팡질팡하면서도 어떻게든 진정하고 “이건,”하고 목소리를 짜냈습니다.


  “사, 산 게, 아니야. 사, 사요코씨가 양모 펠트로 만들어 준 거야. 오늘 아침, 완성됐다고, 받아서…….”

  야쿠오지씨가 말한 건 사쿠라코의 가방에 붙은 너무나도 귀여운 햄스터 마스코트입니다.


  설명 도중에 야쿠오지씨가 햄스터를 떼어내려고 하여 사쿠라코가 필사적으로 저항합니다.

  모모카씨도 야쿠오지씨를 떨쳐내려고 하지만, 야쿠오지씨는 찰거머리처럼 집요하게 사쿠라코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쿠라를 만지지 마.”


  야쿠오지씨를 사쿠라코에게서 떨어뜨리니 건 소라군이었습니다.

  소라군은 반이 다른데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걸까요?

  야쿠오지씨의 머리의 리본 중 하나를 빼앗아, 바보바보라며 어린애처럼 악담을 남기고 산길을 올라갑니다.


  그야말로 지옥의 망자가 이럴까 싶을 정도의 박력으로 야쿠오지씨는 소라군을 쫓아갔습니다. 그녀의 무시무시한 노성이 꼬리를 물고 숲을 울립니다.

  소라군은 괜찮을까요. 만일에 잡혔다간 야쿠오지씨에게 잡아먹힐 것 같습니다만.


  여담입니다만, 이 소동은 사요코씨라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야쿠오지씨에게 줄 햄스터를 만드는 것으로 진정되었습니다.


  이러저러 소동은 있었습니다만, 무사히 산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화앵산 정상은 예상 이상으로 설비가 갖춰져서, 바비큐 설비만이 아니라 트레이닝 설비나 긴 롤러식 미끄럼틀 같은 것도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집니다.

  놀이기구는 뒤로 미루죠. 일단 바비큐 준비에 착수합니다!


  남자 팀이 철판을, 여자 팀이 식재료 준비를 합니다.

  식재료는 집이 식당이라는 점도 있어서 야마토군이 준비해왔습니다.


  시설 스탭에게서 식칼과 도마를 빌려 지정된 장소에서 조리를 시작합니다.


  “피망, 양파, 감자, 비엔나, 옥수수랑, 버섯, 고기에……어라?”

  “우와아아아!”

  “굉장해. 좋은 고기잖아! 분발했네. 야마토군.”

  모모카씨와 사쿠라코가 동시에 환성을 올립니다.

  야마토군이 꺼낸 고기는 지방이 희긋희긋하게 붙은 고급 고기였던 겁니다! 이건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사쿠라코는 눈 안에 하트마크가 뜰 정도로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아니……평범한 고기를 가져올 생각이었지만……. 뭐, 됐나. 저는 판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밑 준비 부탁합니다.”

  “응! 맡겨줘! 일단은 식초를―”

  모모카씨가 가방에서 꺼낸 식초를 고기에 뿌리려고 하고, 야마토군이 꽉하고 팔을 잡아 멈춥니다.

  “잠깐 기다려요. 어째서 식초를?”


  “모모카, 요리, 못해.”


  답한 것은 은색 머리카락의 소라군입니다.

  모모카씨의 가방에서 귀여운 토끼모양의 밀폐용기를 꺼냅니다.

  꺼낸 용기 안에서 야마토군은 컬러풀한 꼬치에 꿰여 있는 미트볼을 손에 쥡니다.


  보기엔 맛있어 보이는 평범한 미트볼입니다. 뭐가 문제인 걸까요?


  야마토군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하나를 입에 넣고――――. 쿨럭, 하고 기침하며 당황하여 입을 막았습니다.

  진지해 보이는 검은 프레임의 안경으로도 감출 수 없을 정도의 흉악한 얼굴로 미트볼을 씹어 넘깁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도 죽이고 온 것 같은 박력으로 내뱉었습니다.


  “설탕과자고기맛……!!”

  …………….

  좀 상상하고 싶지 않네요…….

  무척이나 달았던 걸까요?


  “그러니까, 나, 모모카의 요리, 못 먹어.”


  듣고 보니 모모카씨는 언제나 도시락이었지만 소라군은 빵을 가져왔었지요.


  “모모카씨는 요리 못하는 게 아니야! 이 미트볼도 굉장히 맛있는걸!”

  마찬가지로 먹은 사쿠라코는 정말로 행복하다는 듯이 뺨을 누르며 야마토군에게 말합니다.

  야마토군은 실망했다는 듯이 답합니다.

  “사쿠라코씨가 우리 집 요리를 칭찬해줬을 땐 기뻤습니다만……. 그냥 미각치였던 거군요.”

  “미각치가 아니야! 모모카씨의 요리도 야마토군 집의 요리도 굉장히 맛있어! 모모카씨. 미트볼 더 하나 먹어도 괜찮을까?”

  “응! 먹어먹어. 사쿠라코를 위해서 만들어 온 거니까.”

  “먹으면 안 됩니다. 독입니다!”

  “실례네.”


  결국 식재료 밑 준비는 야마토군이, 바비큐 판 설치는 모모카씨가 하게 되었습니다.


  “우와, 철판 꽤 무거워!” “불, 붙지 않는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주변 남학생들도 망설이는 와중, 모모카씨는 재빨리 숯에 불을 붙이고 호잇하고 판 준비를 끝냈습니다. 도울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덧붙여 키리오군은 소라군 반의 여학생들에게 끌려가 그쪽 준비를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라군은 혼자서 땡땡이입니다. 게임하고 있습니다. 멍하게 보고 있는 저도 땡땡이와 다름없습니다만. 야마토군의 친구라고 하는 작은 남학생과 함께 어쩔 줄 모르고 서있고 말았습니다. 덧붙여 같은 반인 야쿠오지씨는 소라군의 옆에 서서 “죽어……죽어……”하고 주문을 걸고 있는 와중입니다.


  “신씨, 늦네요.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까요?”

  야마토군이 산처럼 식재료가 쌓인 쟁반을 테이블에 두었습니다.

  “20분 정도 걸릴 것 같다는데. 먼저 먹어도 된다고 연락 왔어.”

  “고기!”

  역시 정식집 아들이네요. 야채와 고기 처리가 능숙하지 않습니까…….

  요즘은 남자도 요리를 할 수 없으면 안 되는 시대인 걸까요? 신군도 그렇고 야마토군도 그렇고, 겉보기와 다르게 능숙합니다.


  바로 각자 좋아하는 식재료를 늘어놓고 굽기 시작합니다.


  “고기 맛있어……! 행복해. 바비큐로 하길 잘했어. 고마워 야마토군……!”

  “별말씀을.”

  “아차……. 밥 먹고 싶어졌네. 가져올 걸 그랬어.”

  모모카씨가 유감스럽단 듯이 눈썹을 내립니다. 확실히 고기가 맛있는 것도 있어서 밥이 먹고 싶어져 참을 수 없습니다. 유감입니다.


  사쿠라코씨가 후헤헤헤, 하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뭔가 주섬주섬하며 가방에서 2단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주먹밥 가져왔어! 내용물은 명란젓하고, 연어하고, 가다랑어포하고, 갓하고, 매실하고, 다시마! 구워 먹자!”

  오오오오오오!!

  일제히 환성을 지르고 맙니다.


  “이렇게 많이, 무거웠었지? 말했으면 들어줬을 텐데.”

  키리오군이 면목 없다는 듯이 사쿠라코씨에게 수고의 말을 전합니다.

  “밥의 무게는 행복의 무게니까 괜찮아. 그보다 키리오군은 뭐 먹을 거야?”

  “……연어 부탁합니다.”

  “나는 매실.”

  소라군까지 나타나 주먹밥을 철판에 올립니다. 저도 가다랑어포를 얻어서 간장을 조금만 뿌려서 철판에 올립니다.


  아아, 이렇게 즐겁고 맛있는 소풍은 처음일지도 모릅니다.

  반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자신의 스텔스 스킬에 처음으로 감사하고 맙니다.


  그런 저의 마음에 물을 끼얹는 듯이, 옆 테이블에서 좋지 않은 웃음소리가 울립니다.


  “어이, 이거 네 몫이야. 모처럼 가져왔으니까 전부 먹으라고.”

  “이것도~”


  …………불쾌한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옆 테이블을 이용하고 있는 2학년 남학생이 얌전해 보이는 남학생 상대로 새카맣게 탄 고기나 야채, 파의 껍질을 올린 접시를 건내고 있던 겁니다.

  세 명이 모여 검게 탄 식재료를 접시에 모아 넘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까지 와서 괴롭히지 않아도.

  얌전해 보이는 남학생은 주변의 재촉에 못이겨 시커멓게 탄 무언가에 젓가락을 댔습니다.


  그 때.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있네요.”


  야마토군이 일어서서 얌전해 보이는 남학생에게서 접시를 빼앗아 내용물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앙? 뭐야 너. 짜증나네 1학년이냐?”

  “농담도 이해 못하는 거야?”

  히이이익.

  젓가락을 판에 내려치며 2학년 두 사람이 일어섭니다.

  나 따위는 그것만으로도 쫄아서 도망칠 것 같습니다만, 야마토군은 그대로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습니다.


  “깝치지 말라고. 밥으로 사람 괴롭히는 거 아냐.”

  “아앙? 진짜 짜증나네 이 자식.”


  이, 일촉즉발의 분위기입니다!

  크, 큰일입니다. 선생님을 불러와야!


  선생님을 부르러 가려고 제가 일어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또 한 명의 2학년이 야마토군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빠직, 하고 아플 것 같은 소리가 울리고 안경이 날아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안경알이 부서집니다.


  “뭐――안경 변상해! 병신새끼가!”

  야마토군이 단숨에 격노하여 주먹을 내지른 2학년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잠깐 딴지 걸게 해주세요! 맞은 아픔보다 안경입니까!? 화낼 거라면 맞은 거에 대해서 화내자구요. 어째서 안경!?

  하지만 역시나 대량파괴병기. 일격에 2학년생을 날려버리는 굉장한 공격력입니다. 아니 잠깐, 싸움은 진짜 안 된다구요. 학생회 부회장님!


  “너, 너 이자식.”

  2학년생이 동요하고 있어도 야마토군의 폭주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2학년 제군들. 동요하고 있는 주제에 맞서 싸우려는 것도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마토군의 강함에 깜짝 놀랐기에 동요한 거겠죠? 이런 때 정도는 솔직해 지자구요. 도망치자구요! 본능의 경고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야마토군은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 있는 힘껏 지면에 내팽개치고, 남은 한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으려고 하며――――.


  “네네. 거기! 싸우면 안 되지!”


  달려온 신군이 야마토군의 팔을 잡아 배후에서 들어 올렸습니다.


  “뭐! 아파! 놓으라고 씨바!”

  “자자, 진정하자―. 싸우면 안 된다고.”

  “아프다고 했잖아!! 어째서 날 억누르는 거야! 먼저 싸움을 건 건 저쪽이라고!!”

  “일방적인 싸움이 되었기 때문이야. 머리 좀 식히라고.”


  야마토군은 뿌리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맹수처럼 울음소리를 올리고 배후에서 잡고 있는 신군에게 발차기를 넣으려고 했습니다.

  “적당히 하지 않으면 지면에 꽂아 버린다. 야마토.”

  신군은 가볍게 피하면서 한 손으로 야마토군의 양 손을 잡아 올려 견갑골 사이, 목의 뿌리 부근을 손등으로 때렸습니다. 야마토군은 충격에 컥, 하고 숨을 삼킵니다.

  “……! 역시 싸움 약하다는 거 거짓말이었잖아! 제길……!”

  “오빠는 오빠니까 말이야. 역시 후배에게 져선 안 되는 거지.”


  야마토군은 분하다는 듯이 지면을 걷어 찹니다. 콘크리트 바닥과 스니커인데 쿵하고 무거운 타격음이 울립니다. 우와, 저 각력으로 차였다간 간단하게 기절할 것 같습니다.


  “야마토군. 이제 그 쯤에서.”

  더욱 난리를 치려는 야마토군의 팔을 퐁하고 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쿠라코입니다.


  “――――야, 야마토……군……?”

  야마토군의 친구라는 몸집이 작은 남학생, 우노군이 신음하듯이 야마토군의 이름을 속삭였습니다.


  두려움에 새파랗게 질린 우노군을 보고 야마토군도 싸악하고 소리가 날 기세로 새파래졌습니다.

  겨우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신을 차린 거겠죠.


  야마토군이 동경하고 있다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기는커녕 조금 꼬붕 취급을 할 정도로 평범하고 얌전한 반 친구 포지션”은, 빠르게도 반납 확정인 것 같습니다.


  “말리지 않아서 미안. 하지만 야마토군이 틀린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무심코 지켜보고 말았어.”

  한 손에 고기가 쌓인 접시를 확실하게 잡고 있습니다만, 사쿠라코의 표정은 무척이나 침울합니다.


  “아니……, 나야말로. 난리 쳐서 죄송합니다. 머리가 식었습니다. 소동을 피웠습니다…….”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며 야마토군은 광장으로 발을 옮겨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신, 내숭쟁이 양아치군을 말릴 필요 없었는데. 이놈들이 그쪽 학생에게 숯을 먹이려고 했기에 말렸던 거야. 먼저 때린 것도 그쪽이었고.”

  “아, 그랬군. 그럼 너희들, 소풍 끝난 뒤엔 학생지도실 가라고. 먼저 때렸으니까 안경도 변상해야 하니까. 정말이지. 소풍에서까지 일 벌이지 말라고.”


  우노군은 새파랗게 된 채로 굳어있습니다. 야마토군은 안경을 쓰고 있으면 평범하게 얌전해 보이는 남학생으로 보였으니, 저런 변모에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죠. 오히려 평소부터 어느 정도 양아치스러움을 보이고 있던 편이 충격이 적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서툴게 좋은 아이처럼 굴었던 탓에 오히려 갭이 극심해진 게 아니었을까요.


  “우노군. 야마토군은 저렇긴 하지만……. 멀리하지 말고 지금처럼 친구로 있어주지 않을래? 약한 사람에게 손을 드는 사람이 아니야. 지금도 타인을 감싸고 싸운 거였고.”

  사쿠라코가 우노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웃는 얼굴로 말을 겁니다.


  “윽…….”


  “야마토군은 우노군 같은 상냥하고 평범한 친구를 만들고 싶어했으니까.”

  우노군은 잠시 주저하고 있었지만――――

  “응.”

  하고 사쿠라코에게 미소를 보이며 끄덕였습니다.


  우노군은 몸집이 작습니다만, 사쿠라코는 우노군보다 훨씬 훨씬 몸집이 작습니다.

  그런 그녀조차 야마토군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겠죠.


  신군이 옆자리에서 괴롭힘 당하고 있던 남학생과 한 사람 분량의 식재료를 가져와 우리들 테이블에 찾아왔습니다.


  “소동을 피워서 미안하네. 이제 끝났으니까 괜찮아.”

  주목하고 있던 주변 학생들에게 신군이 말하자 겨우 안심한 것처럼 팽팽했던 분위기가 풀어졌습니다.


  잠시 담소하면서 식사를 진행하고 있자 사쿠라코가 일어났습니다.


  “야마토군 찾아올게.”

  “내버려 두면 되지 않아?”

  “그다지 먹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두면 배가 고파서 돌아가는 길에 쓰러질지도 모르고.”


  사쿠라코는 고기가 잔뜩 든 쟁반과 접시를 한 손에 들고 광장을 잰걸음으로 나아갑니다.

  나도 또한 그런 그녀의 등 뒤를 따릅니다. 신군에게서 말을 들었으니까요. 사쿠라코가 혼자가 될 때엔 붙어 있으라고. 이 정도의 임무는 다해야지.


  사쿠라코는 벤치를 찾지 않고 풀을 헤치며 숲 속을 들여다 봅니다.

  어째서 그런 장소를……? 그렇게 의문스럽게 생각한 동시에, 푹 숙인 고개를 발견했습니다.


  “아, 여기 있네. 야마토군. 슬슬 돌아와.”


  야마토군은 사쿠라코의 키 정도 되는 나무 그늘에 무릎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밥 먹던 도중이었는데.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거야.”

  “잠시 혼자 있게 해주세요…….”


  사쿠라코는 접시와 젓가락을 야마토군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하고, 고기 가져왔어.”

  오오! 야마토군을 위한 고기였던 거군요. 무심코 찾는 도중에도 고기를 놓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야마토군은 맛있게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접시를 받아 책상다리로 자세를 고친 다음 마음 깊이 후회스럽단 목소리를 쥐어짰습니다.

  “제길, 나 어째서 거기서 끊어져버린 걸까요……! …………우노군, 뭔가 말했었나요?”

  머뭇머뭇하며 받은 질문에 사쿠라코는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깜짝 놀란 것 같지만 설명해 뒀으니까. 불은 꺼두지 않을 테니까, 진정 되면 돌아와.”


  사쿠라코는 가볍게 물러나 발걸음을 돌리려고 합니다.


  “――됐어요. 돌아갑니다.”

  “그래?”


 야마토군은 단념했다는 듯이 일어서 모두가 있는 장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야마토군을, 모두, 우노군도, 웃음으로 마중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


  “짐, 들어줄게요.”

  오는 길에 야마토군에게 짐을 넘겼던 반 친구들에게 야마토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안경이 없는 것뿐인데도 흉악함이 8할 이상 증가했습니다. 웃어도 커버할 수 없는 흉흉함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반 친구들은 딱하고 발걸음을 멈추고서 머뭇머뭇 돌아보고, 양손을 저었습니다.


  “아아아냐, 괜찮아! 스스로 들 테니까!”

  “아, 아침엔 미안!! 저, 정말로 미안했어.”


  갈팡질팡 떠나가는 그들은, 완전히 쫄고 있었습니다.


  야마토군은 또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말았습니다만. 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어떻게든 위로하려 힘쓰는 사쿠라코에게 맡기고, 우리들은 먼저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버스 시간에 늦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두 사람.



Posted by 추리닝백작
,


  대소동 호출 뒤에, 모모카씨와 헤어진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야마토정으로 향했다.

  가게는 오늘도 손님이 많아서 단골 에로할범씨가 온다든가, 단신부임의 샐러리맨 포장손님이 차례로 온다든가 우왕좌왕 다망했다.

  사람 수가 떨어졌을 때 쯤, 학생복 차림의 다섯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아, 어서와요! 오늘도 와줬네.”


  마츠야마 남고 축구부 사람들이다.

  이 다섯 명은 여기 단골이 되어줬다.


  “야, 사쿠라코!” “너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사쿠라코다!” “오늘은 있네.” “배고프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돼. 다들 소중한 손님이니까.”

  소란스럽게 들어오는 다섯 명을 자리에 안내한다.

  “에……, 그러면, 사쿠라코…….”

  미츠테루군이 더듬더듬 내 이름을 불렀다.

  왜? 하고 답하는 것보다도 빨리,


  “저와 사귀어 주세요!”

  휘릭하고 고개를 숙이며 갑자기 고백을 하기에 깜짝 놀라고 만다.

  한 순간 틈을 두고 말았지만, 당황하며 거절했다.

  “미안, 지금은 남친 만들 생각 없으니까.”


  “……윽.”

  미츠테루군은 그대로 식탁에 엎어졌다.

  “그럼 나하고 사귀지 않을래? 엄청 소중히 할 테니까!”

  편승하는 것처럼 코우타군이 몸을 내밀며 말한다.

  “내가 더 소중히 할 거라고. 나하고 사귀자.”

  계속해서 스스무군까지.


  우와아.

  뭔가 이런 분위기 그립네.

  생전 친구들도 이런 느낌이었지.

  단골이 된 오코노미야키 식당에 귀여운 알바가 들어왔을 때, 누가 먼저 고백할지 싸웠던가…….


  “그러니까 지금은 남친 만들 생각 없다니까.”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리운 옛날을 생각한 덕분에 마음 쓰지 않고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옛끼. 여기는 헌팅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사쿠라코는 여기 간판아가씨니까 아저씨의 눈에 드는 남자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어.”

  주방에 서 있던 아주버님이 달걀을 한 손에 들고 웃으며 말한다.

  “그렇지 그렇지. 사쿠라코는 나하고 재혼할 거니까 말이야.”

  내 엉덩이에 손을 뻗는 에로할범씨를 휙하고 피한다. 후후, 슬슬 익숙해진 거다. 하고 방심한 순간 엉덩이를 잡히고 당황하며 옆으로 도망쳤다.

  빠각하는 굉장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아주머님이 찌그러진 쟁반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재, 쟁반, 세로로 찌그러졌는데요! 아마도 80세쯤 되는 할아버지를 그렇게 때려도 되는 걸까요!? 에로할범씨, 살아있나요!?


  “윽, 역시 무리였나.”

  마츠테루군이 쓰러져 있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귀는 건 포기할 테니까, 응원하러 오지 않을래? 이번에 종합운동회장에서 시합할 거야. 우리 남학교니까 여학생이 응원하러 오는 것만으로도 엄청 텐션이 오르니까 친구랑 같이――”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내 양쪽 어깨에, 뒤에서 손바닥이 올라왔다.

  오른쪽에서 금색이, 왼쪽에서 은색이 빛난다.

  키리오군과 소라군이었다.


  “가지 않아.”

  “거절합니다.”


  소라군이 위협하는 듯한 얼굴로, 키리오군이 재고할 여지도 없다는 듯한 웃음으로 거절한다.

  코우타군이 “타, 타카나시 키리오……!?”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말을 잃는다.


  “사쿠라코는 사쿠라오카 학생회 임원이니까, 응원요청하고 싶으면 학교를 통해서 부탁해줬으면 좋겠네. 이 아이를 혼자 가게 하면 오빠들도 걱정이니까.”


  마지막으로 내 머리에 손바닥을 올리고, 신 선배가 위에서 마츠테루군들을 내려본다.

  역할렘군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박력에 축구부 다섯 명이 의자 위에서 뒤로 물러난다.


  “어, 어째서, 여기에.”

  어물어물 뒤를 돌아보자, 모모카씨가 귀여운 행동으로 아주머님에게 과자상자를 건내고 있었다.


  “처음 뵙겠어요. 아주버님, 아주머님! 저, 야마토군과 사쿠라코와 같은 반인 하츠키 모모카라고 해요♪ 이거, 괜찮으시면 받으세요!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 앵매당의 모나카!? 줄을 서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일부러 고맙네. 설마 야마토에게 이런 품위 있는 친구가 생기다니……!”

  “사쿠라코도 그렇고, 역시 제대로 된 학교에는 제대로 된 아가씨가 많구만. 고등학교에 가는 거 쓸데 없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네.”

  아주머님과 아주버님이 모모카씨에게 감탄하며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끄덕인다.


  “우후후. 감사합니다. 사쿠라코에 대한 거, 잘 부탁해요. 저 아이, 실수투성이에 덜렁이에 지레짐작하다 혼자 속아 넘어가고 여자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남성에 대해서 위기감이 얕은 아이지만, 노력가에 좋은 아이니까요.”


  깊게 고개를 숙이면서 모모카씨가 날 뒤돌아 보며 팔을 뻗어 손바닥을 휘둘렀다.


  “와 버렸어♪”


  와 버렸어―!!


  “좋은 가게네.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나서 더더욱 배가 고파져.”

  “텔레비전. 있어.”

  소라군이 리모콘을 손에 쥐고 갑자기 채널을 바꾼다.

  “어이 꼬마! 이 시간엔 뉴스를 보는 걸로 정해져 있어. 채널 바꾸지 말라고!”

  “오늘의 냥코 볼 거야.”

  단골 아저씨 상대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기 시작했다.


  갑자기 등장한 역할렘군들과 모모카씨에게 망설이고 만다.

  안 돼. 나. 제대로 일을 해야지.

  나 같은 덜렁이를 고용해준 아주머님과 아주버님에게 민폐를 끼치고 만다.

  마음을 다잡고 네 사람을 자리에 안내하고 물을 내놓았다.


  “사쿠라코, 이거. 받아주지 않을래?”

  의자에 앉은 키리오군이 나에게 CD를 건냈다.

  뒤집힌 채로 건내진 CD.

  눈에 띄는 로고에 적혀 있는 곡명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일 정도로 감동한 키리오군의 솔로곡이었다.

  “에!? 이, 이거, 음반샵에서 찾았는데, 발매는 다음 달이라고 들었는데……!! 받아도 될까!?”

  “응. 받아주면 나도 기뻐.”

  “고마워……!! 연습해서 노래방에서 마구 부를 거야……!! 아, 하지만 예약도 했으니까 제대로 살 거야! 보관용하고 감상용으로 두 장 예약했어!”

  내 말에 키리오군이 굉장히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몇 장이라도 선물할 테니까, 일부러 살 필요 없어.”

  “어째서? 제대로 살 거야. 이 곡 굉장히 좋아하니까 응원하고 싶고 대히트해서 홍백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면 하는 걸.”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동한 곡이다. 인기폭발해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한다.


  “배고프다. 뭐 먹을까나.”

  모모카씨가 테이블에 앉는다.


  “모모카도, 괜찮으면 이거 받아주지 않을래.”

  키리오군은 모모카씨에게도 같은 CD를 건냈다.

  “나, 강아지 키우고 있지 않으니까 필요 없어.”

  모모카씨는 건내준 CD를 받지도 않고 거절한다.

  “강아지?”

  키리오군이 이상하단 표정으로 반문한다.


  “그럴 것이, 키리오군의 CD 같은 걸 받아도 프리스비로 날리는 것 외엔 쓸 방도가 없는 걸. 개를 키우고 있으면 놀아주겠지만 혼자서 CD를 날리며 노는 것도 말이지.”


  히로이이이이이인!!


  저도 모르게 달려드려는 나와 달리, 키리오군이 안 돼! 하고 소리쳤다.

  “금속제 물건을 장난감으로 쓰다니, 입에 상처가 나니까 절대로 안 돼. 안전한 공식용 플라잉 디스크는…….”

  미국산이 어쩌고 일본산이 어쩌고, 그런 설교를 하기 시작한 키리오군을 두고, 모모카씨는 뒤집혀 있는 CD의 앞면을 본다.


  아.


  재킷에 그려진 건 여자아이였다.


  머리색은 핑크에, 투 사이드 업을 한, 뒷모습의 여자 아이.


  “뭐야 이거. 사쿠라코잖아.”

  모모카씨가 어이없단 듯이 말한다.


  ――――.


  거기에 있는 건 당연히, 내가 아니다. 모델의 뒷모습이다. 하지만 핑크 머리를 투 사이드 업이라니. 아마 이 세계 안에서 찾아도 나 밖에 없겠지.


  키리오군은 한 텀 쉬고, “응”하고 답했다.


  “사쿠라코에게 전하고 싶은 가사였으니까.”

  …….

  “키리오군, 저기.”


  받을 수 없습니다.


  테이블에 CD를 놓는다.


  그런데도 억지로 쥐어졌다.


  “깨든 버리든 팔든 좋으니까 지금은 받아줬으면 좋겠어.”


  ………….


  “사쿠라코, 추천 메뉴 있어?”

  망설이고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신 선배다.

  메뉴를 보면서 질문한다.


  “에, 그러니까.”


  그렇지. 지금은 일하는 중이었다.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받은 CD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마음을 다잡는다.


  “된장국 돈가스 정식이 추천이에요! 고기가 굉장히 부드럽고 깊이 있는 된장국 소스가 끝내줘요. 달걀도 말랑말랑한 반숙 프라이고.”


  “행복하다는 듯이 설명하네. 그럼 오빠는 그걸로 부탁할게.”

  “나도.”

  채널 싸움에 패배한 건지, 소라군이 돌아옴과 동시에 그렇게 손을 들었다.

  “나도 된장국 돈가스로 부탁할게요.”

  “나도! 그거랑 대합 장국하고 오징어 튀김하고 낫토하고 무하고 단호박의 끈적거리는 샐러드, 연골 튀김도!”


  축구부군들과 역할렘군들의 주문을 아주버님에게 말하는 때쯤, 주방 쪽에서 노성이 들렸다.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어이 거기, 어째서 네놈들이 여기에 있는 겁니까.”


  야마토군이다. 집에 돌아와서 그런지 안경을 벗고 흉악한 인상이 그대로 보이며 신 선배들을 노려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식탁을 걷어 찰 것 같은 박력에 축구부 일행이 깜짝하고 몸을 떤다.


  “사쿠라코가 민폐 끼치지 않고 있는 정찰하러 온 거야.”

  노려보고 있는데도 모모카씨는 미소 지으며 답한다.


  짤랑하고 식당 문이 열린다.

  “어서오세요!”

  거의 반사적으로 인사하며 웃는 얼굴로 돌아본다.

  허리를 숙이며 들어온 건, 천장에 스칠 정도로 키가 큰 여성――――사요코씨다!


  “어머, 어서오세요. 사요코씨.”

  “사요코씨, 와주셨네!”

  아주머님과 내가 동시에 인사한다.

  사요코씨는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외롭다며 내가 알바하는 날엔 이틀이 한 번 정도 여기에 밥을 먹으러 오고 있다. 단골 중 한 사람인 거다.

  “네. 실례하겠어요……. 어머, 모모카씨,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에요 사요코씨! 굉장한 우연!”


  모모카씨가 난리 치며 일어난다.

  소라군과 야마토군은 신장 210센티, 체중 200킬로(추정)의 사요코씨에게 완전히 질려 경직된 표정이다.


  “사요코씨라니……사쿠라코 집의 도우미씨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사쿠라오카 고등학교 학생회장인 칸자키 신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같은 반의 타카나시 키리오입니다.”

  신 선배와 키리오군이 일어서며 인사한다.

  “어머어머, 정중하기도 하지. 처음 뵙겠어요. 저는 아야노코지 사요코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면 사요코라고 불러주세요. 언제나 사쿠라코씨가 신세를 지고 있어요.”


  “모처럼 사요코까지 왔으니까 사쿠라코는 휴식 취해도 좋다. 야마토도 밥 먹어치워.”

  아주버님이 주방에서 그렇게 말했다.

  “와, 감사합니다!”

  “오, 오우.”


  모처럼 다들 모였으니 다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네 사람 자리인 식탁을 두 개 붙인다. 따끈따끈한 된장국 돈가스 정식을 모두에게 옮기고, 인사를 하고 먹기 시작한다.

  사요코씨를 경계하고 있던 야마토군과 소라군도, 다 먹을 때 쯤엔 완전히 친해졌다.


――――


  다들 추가주문 하면서 폐점할 때까지 잡담을 떨며 내 일인 폐점작업까지 도와줬다.

  언제나 9시 반까지 걸리는 일이 9시 10분에 끝나고 일찍 일어난다.

  선물로 팔다 남은 나물반찬을 받고, 신 선배, 키리오군, 소라군, 모모카씨, 사요코씨와 함께 밤길을 걷는다.


  “사요, 사요.”

  “네네.”


  소라군은 완전히 사요코씨와 친해져서 목에 팔을 두르고 등 뒤에서 안고 있었다.

  남자 한 사람이 전 체중을 실어 안고 있는데 사요코씨의 발걸음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속도가 떨어지는 일도 없다.


  “소라! 여성에게 안기는 게 아니야! 실례잖아! 미안해요. 사요코씨. 떨쳐버려도 괜찮아요. 무겁지요?”

  모모카씨의 마음 씀씀이에 사요코씨는 미소로 답했다.

  “괜찮아요. 문조보다도 가벼운걸요.”

  무, 문조보다는 무겁다고 생각해요!?


  큰 길로 나오자 키리오군의 도우미씨가 비싸 보이는 차로 마중하러 나왔다.

  키리오군과 거기서 헤어지고 우리들 다섯 명은 역과 버스 정거장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와 사요코씨는 전철, 신 선배와 모모카씨와 소라군은 버스다.

  교차로에서 헤어지고 각자 버스 정거장과 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소라군이 사요코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사쿠라코 집에서 묵을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소라. 여자들만 있는 집에 묵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자, 오빠와 돌아가자.”

  “주무세요. 사요코씨, 사쿠라코.”

  모모카씨가 귀엽게 손을 흔든다.

  “소라가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사쿠라코, 내일 또 보자.”

  신 선배는 휘릭하고 소라군을 사요코씨에게서 뜯어내고 난동을 부리는 소라군을 끌고 갔다.


  내일은 소풍이다.

  돌아가는 길 도중, 밤 늦을 때까지 가게를 열고 있는 잡화점에서 과자를 사서 컴컴한 집 현관을 지난다.

  나는 서둘러 욕실에 들어간 뒤, 거실에서 양모 펠트로 인형을 만들고 있는 사요코씨에게 다가갔다.


  “사요코씨.”

  “왜 그러시나요?”


  사요코씨는 정좌하고 있다. 그 앞에 나도 정좌했지만, 너무나도 앉은 키가 달라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래선 안 된다. 무릎을 세우고 사요코씨에게 슥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소라군은 모모카씨의 남편이니까, 옆에서 채가면 안 돼요.”


  가능한 한 무서운 얼굴을 만들어 그렇게 말한다.

  소라군, 처음엔 사요코씨에 대해서 무서워했었는데, 익숙해지고 나선 계속 사요코씨에게 붙어 있었다.

  신장 2미터를 넘는 사요코씨의 뒤를 쫓는 소라군은, 여자아이 같은 얼굴을 한 점도 있어서 굉장히 흐뭇한 광경이었지만…….


  “어머나.”

  사요코씨는 놀라며 입가를 가렸다.

  “괜찮은 걸요. 소라군은 외동아들이었으니까 나 같은 연상의 여자가 신기했던 거예요.”

  “절대로 아니에요. 소라군, 모모카씨를 좋아하게 될 정도니까, 믿음직한 누나 타입이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사요코씨는 소라군의 타입에 딱이니까 걱정이에요. 절대, 절대로, 옆에서 채가거나 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설령 소라군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도, 저는 저런 털도 나지 않은 풋내기에겐 아무런 흥미도 없는 걸요.”


  쿡, 하고 이마를 검지로 눌린다.


  그럼 괜찮지만…….


  사요코씨가 모모카씨의 사랑의 라이벌이 되다니 복잡한 일이 되지 않으면 좋겠는데.

  모모카씨보다도 사요코씨 쪽이 훨씬 여성스러우니까, 라이벌이 되면 소라군을 뺏기고 말아…….

  혹이 난 이마를 누르면서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얼굴을 흐리는 것이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와! 그립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사탕이다! 너무 커서 먹으면 입 안이 가득찼었지만 맛있었지.

  누가 던진 걸까?


  주변을 둘러보는 내 머리에 또 따콩, 하고 맞았다. 이번엔 싸라기 설탕이 묻은 눈알사탕! 우와아! 이것도 그립네……! 막과자 가게에서 틈만 나면 샀었다. 줄을 당기면 복권이 나오도록 되어 있어서, 귤 형태를 한 당첨을 뽑으려고 했었지.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지만.


  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생각하던 동시에, 옥상 한 가득 대량의 사탕이 떨어졌다!


  “우와, 뭐야 이거.”

  “사탕?”

  “어디에서 떨어진 거지? 비행기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패프러츠키스 현상?”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우와아아아! 오렌지에 포도에 딸기에 메론, 꽈배기 모양에 봉이 달린 캔디에 츄파츕스까지이!


  “굉장해! 다들, 남김없이 주워가자!”

  “남김없이는 무리 아닐까?”

  “괜찮아. 나는 그림자 캡짱이니까! 여기에 있는 모든 재보는 나 혼자만의 것이다! 후하하하!”

  “오오, 대단해. 지금 그거 악역스러웠어요. 먹을 것이 얽히면 강해지네요.”


  “어이 사쿠라코! 상의로 받으려고 하지 마! 안이 보이잖아아아!”


  “아.”


  야마토군이 몸을 숙이고 검은 사탕을 주웠다.


  “어이, 소라.”

  “왜?”

  뒤돌아보는 소라군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 듯이 꽉 잡는다.

  아까 전의 검은 사탕을 소라군의 입에 넣은 것이다.

  소라군은 보고 있는 사이에 새파랗게 되어, 야마토군의 배를 노리고 발차기를 한다. 야마토군은 가볍게 피하며 소라군에게서 도망쳤다.

  “야마토, 죽인다!” 퉤하고 발밑에 사탕을 뱉고서 입을 닦고, 소라군은 야마토군과 싸우기 시작한다.

  “뭘 먹인 거야……? 살미아키인가. 심한 짓을 하네.”

  신 선배가 야마토군의 손에서 떨어진 사탕 포장지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소라, 어떤 맛이었나요? 세계에서 제일 맛 없는 사탕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서 신경 쓰여서요.”

  “한 번 먹어봐! 죽어!”

  꽤나 굉장한 맛이었던 건지, 소라군은 눈에 눈물까지 띄며 야마토군에게 발차기를 하고 있다. 야마토군은 악동스런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피한다.


  “세계에서 가장 맛 없는 사탕? 어떤 맛이었던 걸까?”

  나도 신경 쓰인다. 또 하나 떨어져있지 않을까?

  “고무맛이라든가 송진맛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과연 먹을 생각은 들지 않네.”

  모모카씨도 쓴웃음을 지으며 소라군이 뱉은 사탕을 휴지로 잡아 비닐봉투에 버렸다.


  유감스럽게도 사탕의 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그래도, 대충 모은 것만으로도 수백 개나 돼!

  꽤 큰 산처럼 되어서 환성을 올리며 양손으로 감싸 올려 하늘로 던지고 만다.

  “금은보화라도 찾은 것 같네요.”

  보화야! 이런 사탕의 산,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걸.

  신 선배가 스포츠백을 가져와서 넣을 수 있을 만큼의 사탕을 넣어서 학생회 휴게실로 가져갔다.

  가방에서 골판지 상자로 옮기고, 각자 좋아하는 사탕을 골라간다.

  “파인애플과 민트 가져갑니다.” “오빠는 레몬으로 할까.” “모모카씨는 뭘로 할 거야?”

  으음, 하고 입 안에서 중얼거리며 모모카씨는 입을 열었다.


  “단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골판지 상자에 들어있는 것이 젓갈이나 명란젓이라면 기쁘게 받겠지만.”


  “위험해. 상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로테스크야. 모모카…….”

  나도 골판지 상자가 젓갈과 명란젓으로 가득 찬 모습을 무심코 상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거, 정말 어디에서 떨어진 걸까……? 비행기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잠깐만 기다려, 혹시, 이거, 이 세계의 이변일지도 몰라!

  “사쿠라코?”


  나는 당황하며 일어서서, 팔에 사탕을 품은채로 복도를 달려갔다.


  “신님!”

  인사도 잊고 양호실로 들이닥친다.

  신님이 말했던 대로, 양호실은 남학생들로 가득했다. 남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신님 앞에 선다.


  “어머, 무슨 일인가요. 레이센인씨……에잇.”

  의자에 앉아 예쁜 하얀 발을 꼬고 있던 신님이 딱하고 손가락을 울린다. 또 교실이 세피아색으로 물들었다. 남학생들까지 세피아색이 되어 굳어버려 조금 무섭다.


  “이 바보가! 학교 안에서 신이라고 부르면 어쩌나! 내 이름은――”

  “하늘에서 사탕이 떨어졌어! 혹시 이거, 세계가 끝날 전조일까!?”


  “그러니까 평범하게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잖은가. 이 세계는 의외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다고. 애초에, 사탕이 떨어지다니 그런 이변 들은 기억이 없어.”

  “하, 하지만……!”

  “귀찮구만. 호이.”


  또 한 번 손가락을 울리자 신장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앞치마 차림의 여자가 내 옆에 섰다.

  사요코씨다!

  SF영화의 홀로그램 영상처럼 반투명하게, 저쪽 풍경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사요코씨!”

  “어머, 사쿠라코씨. 신님까지. ……거기는 학교인가요? 무슨 일인가요?”

  “하늘에서 사탕이 떨어진 것 같아서 말이야. 세계의 종말이 아니냐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게지. 너도 아니라고 설명해주게.”


  “하늘에서……? 그런 팬시한 이변, 들은 적도 없어요. 세계가 끝날 전조는 살벌한 현상들뿐인 걸요.”


  “그런가요……?”


  “네. 안심해주세요. 그보다도 그 돈의 재스쳐 해봤나요?”

  윽.

  “그 표정을 보니 실패한 것 같네요. 혹시, 재스쳐가 오케이가 되지 않았나요?”

  “어, 어떻게 그걸……!?”

  “80점이라고 했었죠? 후후후. 재스쳐가 돈의 재스쳐였다면 100점이었는데. 유감이네요.”

  “아, 알고 있었는데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사요코씨는 배신자!”


  꽤 진심으로 화내고 있는데, 사요코씨는 즐겁게 웃을 뿐이다.

  부, 분하다……!

  사요코씨는 웃음을 남긴 얼굴로 신님을 향했다.


  “헌데, 신님. 슬슬 사쿠라코씨에게도 설명하는 게 어떤가요?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았지요?”

  중요한 부분?


  “뭐, 그렇지.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다고. 스토리조차 멀쩡하지 않은 세계니까 어차피 망할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무슨 소리? 신님과 사요코씨를 두리번두리번 보고 만다.

  사요코씨가 검지를 세우고 말한다.


  “생전의 이름, 기억나지 않죠?”


  ――――에.


  생전의, 이름?

  내, 이름――――.


  “기, 기억, 나지 않아……!!?”


  료, 레이, 케이스케, 준타로.

  친구 이름은 기억나는데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아버지와 어머니――――안 돼. 단 두 사람뿐인 육친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어째서!?


  “뭐, 그렇게 당황하지 말거라. 이름을 잊은 것도, 이름을 잊은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도, 다시 태어나 인과가 끊어졌기에 그런 거니.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생각나니까 말이야.”


  “신님은 또――――” 찌지지직하고 노이즈가 일고 사요코씨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세피아였던 풍경의 색이 돌아왔다.


  “슬슬 교실로 돌아가세요. 여러분도. 수업이 시작하고 말아요.”

  신님이 검지를 세우고 웃는다. 아까 전까지 거만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상냥한 말투와 미소였다.


  입을 모아 인사하는 남자들과 섞여 나도 교실로 돌아간다.

  내 이름……기억 나지 않는다.


  지금은 레이센인 사쿠라코니까, 전생의 이름은 필요 없다. 지금까지도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하지만, 뭐랄까. 중요한 것이 쏙하고 빠진 듯한 허무감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대로.


  아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아무튼 이 이야기를 제대로 완결 짓는 데에 전력을 다하는 거야!


  마음을 다잡자!!


  수업을 끝내고 방과후, 나와 모모카씨, 그리고 몰래 따라온 야마토군 세 사람은 동쪽 교사 5층으로 발을 옮겼다.

  줄리아씨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저번에 본 예쁜 미소가 거짓말처럼, 무척이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같은 정도의 무서운 얼굴의 여학생을 10명 이상이나 데리고 왔다.

  본 적이 있는 학생도 있다. 복도에서 키리오군의 메일주소를 물어본 학생이다.

  모모카씨는 여유만만한 표정인데, 나는 갈팡질팡하면서 여학생들에게 다가가는데――.


  “모모카, 사쿠라코, 여기에 있다.”

  “아, 줄리아씨.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인가요? 이런 데에서.”


  소라군과 키리오군이 빙그레 웃으며 우리 뒤에서 나타났다.

  줄리아씨들은 한 순간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억지웃음을 짓는다.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다, 다시 한 번 보좌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탁할까 해서…….”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는 거였다…….


  “뭐……, 저거 절대로, 내가 너희들에게 울며 사정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괜한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 바보 남자놈드으으으을!!”


  모모카씨가 비쳐 날뛰며 키리오군과 소라군에게 달려든다. 여기 최상층이고, 자료실밖에 없으니까 우연히 지나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싸움이라니까 걱정 돼서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가 통할 것 같냐아아아아!”

  “모모카씨 폭력은 안 돼에에에에!”


  내 만류도 무심하게 완전히 격노한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에게 액스봄버를, 소라군에게 샤프슈터를 걸어 녹아웃시키는 거였다…….

  모모카씨, 너는 소녀만화 히로인인데 어째서 그렇게나 서브미션이 능숙한 걸까!?

  바닥에 쓰러져 엎어진 키리오군과 소라군 옆에 앉아 나는 단지,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화내더라도 귀엽게 화내주세요……!



Posted by 추리닝백작
,


  학생회의 업무가 바빴기에, 우리들 여섯 명은 매일 학생회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산처럼 쌓인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서 담소할 여유도 없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먹는 일도 흔치 않았다.

  그런 바쁜 시기도 겨우 끝나고 업무도 안정되었기에 오늘은 옥상에서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 전에 등교한 키리오군과 합류하여 계단을 오른다.


  “어라?”

  선두에서 걷고 있던 야마토군이 옥상 문을 열고서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다니 드문 일이네.”

  뒤를 이어 옥상으로 나온 키리오군이 둘러보며 말했다. 키리오군의 말대로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 선배가 크게 기지개를 피면서 키리오군에게 답한다.

  “아침에 호우가 왔으니까 젖어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여기 옥상, 방수가공되어 있으니까 꽤 빨리 마르는데 말이야.”

  “굉장해. 전세 옥상이잖아. 한 가운데 쓰자. 한 가운데.”

  모모카씨가 발빠르게 옥상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원을 지어 앉은 모두와 함께 나도 허리를 내리고――――.


  “키리오군.”

  눈을 반짝 빛내며 내 앞에 앉은 키리오군에게 몸을 내밀었다.

  자, 어제 연습한 성과를 보일 때다! 80점짜리 나의 악역 모습을!


  “역시 대기실에 갈 걸 그랬네. 모두에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바―앙.


  어디에선가 그런 효과음이 들린 듯한 기분이 든다.

  연습한 보름이 있어서 사요코씨에게서 배운 대로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자, 어떠냐. 키리오군! 어떻게 답할 거냐!

  “내 동료를 돈벌이 도구로 생각하다니……환멸했어.”일까!?

  아니아니,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지는 말자.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용하려고 했던 거네. 조금 충격이야.”정도일지도 모른다.

  두근두근하여 키리오군의 행동을 기다린다.


  키리오군은 나와 같은 재스쳐를 취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오케이? 그렇게 중얼거린 키리오군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떠 있다.


  토, 통하지 않아……!!??


  “사쿠라코씨. ‘돈’의 재스쳐라면 손바닥이 위로 가게 해야지.”

  엑!? 야마토군의 머리에 어깨가 흔들리고 만다.

  “그 재스쳐, ‘오케이’”

  소라군이 같은 재스쳐를 나에게 보였다.

  저, 정말이다……! 팔을 앞으로 내민 덕분에 돈의 재스쳐가 아니게 되어버렸어! 이거 완전히 오케이야!


  “과연. 사인이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였던 거구나.”

  “그래. 원래 소스는 나였지만 말이야. 사쿠라코. 내가 했던 듯이 자연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 돼.”

  모모카씨가 돈의 재스쳐를 취하고 사악한 얼굴로 웃으면서 간단하게 소재를 밝혀버린다.


  “모모카씨이이이이이”


  당황하며 입을 막아보지만 키리오군이 납득했다는 듯이 웃었다.

  “아아, 이거 모모카가 했던 거구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사쿠라코는 부치를 보호해줬을 때 사례금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돈에 욕심을 내다니 이상하다고 말이야.”

  “아니야!! 나의 오리지널이에요! 모두의 사인을 받아서 팬들에게 팔아치워 큰돈을 벌 생각이었어요게헤헤헤헤.”

  모모카씨의 입을 막으면서 키리오군에게 반론한다. 어떻게든 이 못된 히로인의 만회를 해야만……!!


  “얼마나 필요해?”

  키리오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에?


  “전에도 말했지만, 나 꽤 벌고 있으니까 돈이 필요하면 말해. 사인을 팔다니 귀찮은 짓 하지 않아도 100만 단위라면 방과후에 바로 준비할 수 있으니까.”

  “죄송합니다돈이필요하다니거짓말입니다”

  당황하며 엎드려 절하며 부정한다.

  옆 자리의 모모카씨가 아까 전의 나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1만엔 줘(하트) 사쿠라코랑 크레이프 먹으러 가게.”

  “응.”

  귀엽게 부탁하는 모모카씨와 간단하게 지갑을 꺼내는 키리오군 사이에 끼어들어 나는 괜시리 파닥파닥하고 팔을 휘두르고 말았다.


  “친구에게 돈을 주다니 안 돼! 간단하게 돈을 꺼내다니 그것도 안 된다고!!”

  “에에. 괜찮잖아. 세상에서 돌고 도는 게 돈인걸. 모아두는 녀석들이 뱉어내지 않으면 경제는 돌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겠지만 크레이프를 사는 데 1만엔이나 필요하다고 부탁하는 모모카씨도 간단하게 돈을 내려고 하는 키리오군도 뭔가 슬퍼! 뭐가 슬픈지는 잘 모르겠지만!


  “1만엔이라니 큰 돈, 안 된다고……!!”

  “그래? 아이돌군에게 있어서 1만 따위 용돈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서민이 말하는 ‘노트 잃어버렸으니까 종이 한 장 빌려줘.”와 부자의 “돈 잃어버렸으니까 1만엔 한 장 줘”는 같은 가치라든가 그렇다고.“

  “메이지 시대의 졸부 이야기에 있었지요. 돈다발에 불을 붙여 조명으로 쓴다든가.”

  야마토군이 도시락통 뚜껑을 닫으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돈에 불을 붙이다니 그런 벌 받을 짓은 할 수 없어……. 하지만 사쿠라코가 곤란할 때엔 도와주고 싶으니까.”

  아니. 정말로 괜찮으니까, 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모모카씨가 텅 빈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면서 그래, 라며 중얼거렸다.

  “사쿠라코, 오늘 방과후엔 한가해?”

  “오늘은 아르바이트 날이니까, 4시 반까지라면 시간 있어.”


  ““““바이트!?””””


  키리오군, 소라군, 신 선배, 모모카씨의 목소리가 겹쳤다.


  “사, 사쿠라코, 바이트하고 있었어!?”

  “응.”

  “어디서!? 또 속아서 이상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

  또?

  “이상한 장소가 아니에요. 우리 집, 정식점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답한 것은 야마토군이다.

  “내숭쟁이군의!? 어째서 그렇게…….”

  “그러니까 그 별명은 그만 두라고. 사쿠라코씨가 전에 당근밖에 먹지 않았다고 했었죠. 우리 집, 일급 낼 수 있고 밥도 나오니까 스카우트 한 거예요.”

  “몰랐었어……!”

  모모카씨가 굳어버리고 만다.


  “방과후, 무슨 일 있어?”

  벗어난 이야기를 돌리자, 모모카씨가 경직에서 돌아왔다.

  “저번 주에 줄리아라는 사람이 불렀었어. 사쿠라코와 함께 동쪽 교사 5층에 오라고.”

  오오! 마침내 서포트씨가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이번에야말로 사이좋게 되어서 모모카씨가 사랑의 어드바이스를 받아야지.


  “호출? 그럼 나도 갑니다.”

  야마토군의 안경 너머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 어째서 야마토군이 오는 걸까나?


  무서운 얼굴을 한 야마토군에게, 모모카씨가 휙하고 손을 흔든다.

  “여자들 싸움에 남자를 데려가다니 그런 꼴사나운 짓은 할 수 없어. 괜한 참견이야.”


  싸움!?

  호출이라는 거 싸우자는 거였어!?

  어느새 그런 일이……?

  그러고 보니, 그런가. 줄리아씨가 보좌부에 들어가는 걸 모모카씨가 막았으니 화났다는 거구나. 큰일이다. 어떻게든 줄리아씨의 기분을 풀어야.


  “저도 여자들 싸움에 끼어들 생각 없어요. 혹시 저쪽에서 남자를 데려왔다간, 모모카씨와 사쿠라코씨만으론 위험하겠죠? 적당하게 숨어 있을 테니까.”

  “음. 그것도 그럴지도……. 사쿠라코가 위험해지면 나와. 나는 혼자라도 괜찮으니까.”

  “네…….”

  “나, 나야말로 혼자라도 괜찮으니까! 모모카씨를 지켜줘 야마토군!”

  자랑은 아니지만, 전의 세계에서 친구들이 싸울 때 말린 적이 있었다(나 혼자서 말린 게 아니라, 싸우려는 두 사람을 세 명이서 말란 거지만). 나는 다소 맞아도 괜찮으니까, 평범한 여자인 모모카씨를 지켜줬으면 한다.


  “괜찮아. 사쿠라코. 모모카는 혼자서 1개 사단 정도의 인원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니까. 오빠가 보장해.”

  “1개 사단. 대략 2만 명에서 7만 명. 평균적으로 1만 명 정도의 집단.”

  신 선배의 딴지에 소라군이 설명을 더한다.


  “하, 할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남자가 상대라면, 대략 30명 정도가 한계일까……. 어째서 나약한 여자애로 태어났을까……. 힘이 없는 게 분해.”

  “농담도.”

  야마토군이 질린다는 듯이 신음한다.

  안 된다. 야마토군이 좋아하는 타입은 지켜주고 싶어지는 사람인데 모모카씨의 언동이 크게 벗어나고 있다. 어떻게든 해야…….


  “헌데 사쿠라코. 어째서 그런 커다란 셔츠를 입고 있는 거야? 그거 남자 옷이지?”

  돌연히 신 선배가 말했다.

  “네. 우산을 잊어서 교복이 다 젖어 버려서. 야마토군이 빌려준 거예요.”


  “다 젖어…….”


  신 선배는 한 박자 쉬고 나서,


  “그럼, 그 아래는 나체……!”


  하고 시선이 험악해졌다. 그와 동시에 쿵!! 하고 모모카씨가 신 선배에게 박치기를 작열했다.

  “우와, 굉장한 소리가 났어요.”

  “주변 빌딩에서 메아리가 돌아오고 있어…….”

  야마토군과 키리오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크악하고 괴로워하는 신 선배의 멱살을 모모카씨가 잡아 올린다.

  “너 적당히 하라고. 사쿠라코에게 성희롱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 귀는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아니면 뇌가 없는 거야?”

  “모모카씨, 저기, 신경 쓰지 않으니까.”


  모모카씨를 당황하며 말리자, 등줄기가 갑자기 시원해졌다.

  응? 하고 뒤돌아 보자, 소라군이 내 옷 끝을 손가락으로 잡고, 옷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모모카씨는 소라군의 멱살을 잡고, 탁탁하고 옥상 울타리를 오른다. 기역자 형태로 안쪽으로 휘어진 울타리인데 간단하게 끝까지 올라가곤, 울타리 위에 섰다.

  멱살을 잡은 채로 소라군을 공중에 내 건다.


  “유언은 들어주겠어.”

  “미안해. 누나. 이제 하지 않을 테니까 용서해줘.”


  모모카씨의 팔 하나로 5층 옥상에서 매달린 소라군이, 하느님에게라도 비는 듯이 두 손을 모아 위를 올려다 보며 모모카씨에게 간청했다.


  “모모카씨이이이! 소라군을 죽이면 안돼에에에!”

  모모카씨가 손을 놓으면 소라군은 15미터 아래 지면으로 추락하고 만다.

  나도 또한 소리치며 울타리를 올라가려고 하지만, 30센티 정도 올라가는 정도로 손가락에 박히는 철사가 아파서, 철사에 걸린 발까지 미끄러져서, 미끌하고 옥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남자 한 명 데리고 3미터나 되는 울타리를 오르다니. 모모카씨의 신체능력 너무 대단하잖아……!!


  “너도 남자에게 성희롱 당하면 제대로 위기감을 가져!!”


  옥상에서 떨어진 아픔에 부들부들하고 있자 모모카씨에게 일으켜져 끼릭끼릭하고 몸이 죄어진다.

  상당한 아픔과 괴로움에 “게엑”하고 괴수 같은 비명을 지르고 만다.


  신 선배, 소라군, 나와, 계속하여 징계를 끝낸 모모카씨는, 펜트하우스 한편에서 헉헉 숨을 거칠게 내쉬며 “지, 지쳤다…….”라며 신음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모카씨.”

  “차 마셔요.”

  “고마워.”

  키리오군에게서 받은 패트병을 받아 모모카씨는 단숨에 들이마신다.


  옥상에 쓰러져 있던 내 머리에 툭, 하고 작은 돌이 떨어졌다.

  뭘까?

  몸을 일으켜 확인한다.

  녹색 바닥에 구르고 있던 건 자두맛 사탕이었다.



Posted by 추리닝백작
,


  학생회실에는 졸업한 선배가 두고 간 드라이어가 있다.

  젖은 스커트와 머리카락에 써서, 거의 말랐을 때 쯤에 야마토군이 들어왔다.


  “슬리퍼 빌려왔어요. 양말도 젖었죠?”

  “와, 고마워.”


  신발장 앞은 비 때문에 굉장히 혼잡해서, 사람들에게 치이며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이 겨우 였다.

  양말이 젖어서 벗고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행동조차 취하지 못하고 젖은 양말을 신은 채로 실내화로 갈아 신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축축한 소리가 날 정도로 실내화까지 젖고 말았다.


  의자에 앉아 실내화와 양말을 벗는다.


  “우와, 발, 작아.”


  맨발을 보고 야마토군이 놀란다.


  “여자는 대단하네요…….”


  뭐가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깊이 감탄했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덧붙여 나는 250이야.”

  모모카씨가 자랑스럽단 포즈로 말한다.


  “나하고 거의 비슷하잖습니까. 뭐……당신은 여자라든가 남자라든가 째째한 구분에 들어가지 않는 인간이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고릴라라든가 고질라라든가.”

  “배짱 좋네. 내숭쟁이 양아치군. ‘이오리 야마토는 대량파괴병기’라고 외치면서 복도를 누벼줄까?”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간 걸 용서해주세요――――라니, 어이, 사쿠라코씨.”


  살짝 학생회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야마토군에게 들키고 만다.

  ‘이 뒤는 젊은 두 사람에게 맡기도록 하죠.’라고 중매를 선 아줌마 기분으로 자리를 떠나려는 데 벌써 들키다니.


  사요코씨가 나와 야마토군의 대화를 듣고 기뻐하며 상을 때려 쪼갠 기분을 잘 알았어.

  야마토군과 모모카씨가 사이 좋게 대화하는 걸 듣고 이쪽까지 간지러운 듯한 부끄러운 듯한 기쁜 기분이 되고 만다.


  싱글벙글한 미소를 띤 채 뒤돌아 본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한 손을 휙휙 휘두른다. 접지 않은 소매가 팔의 움직임을 따라 휙휙 움직인다.


  “위험해. 귀여워.”

  “귀엽네. 가능하면 학교가 아니라 내 방에서 저 모습으로 있어줬으면 할 정도로.”


  귀여운가.

  흠. 귀엽게 보이는 건 별로 좋지 않네.

  일단은 제대로 소매를 접고…….


  나머진 한시라도 빨리 셔츠가 마르길 비는 수밖에.


――――


  “에, 그럼. 이 문제를……. 그렇지. 레이센인씨. 부탁할게.”

  수학시간.

  안경을 쓴 여선생의 부름에 나는 “네”하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괜찮겠지……?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손에 쥔다.


  윽.


  문제가 적혀 있는 곳은 칠판의 가장 높은 곳이었다.


  팔을 있는 힘껏 뻗어서 등을 핀 상태로 겨우 수식을 쓰기 시작한다.


  5……4……6……,


  우으, 팔이 덜덜 떨린다. 장딴지에 쥐가 걸릴 것 같다. 균형을 잃고 슬리퍼가 맨발에 스치며 삐빅,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레이센인씨, 옷, 어떻게 된 거야?”

  “비, 비에, 젖어서, 이오리군이, 빌려줘서.”

  “셔츠가 스커트까지 가리고 있네.”


  알고 있어요.


  다시 한계까지 발돋음을 해서 쓰기 시작한다. a2……√. 15+…….


  “선생님. 다음은 제가 풀겠습니다.”

  에. 야마토군의 목소리가 들리고,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고 만다.

  “그렇네. 이오리군에게 이 뒤를 부탁할게. 학생에게 이상한 플레이를 시키고 있는 기분이야.”


  플레이?


  “괜한 짓 하지 말라고 이오리” “여학생의 이런 모습 볼 기회 좀처럼 없으니까.”

  남학생에게서도 여학생에게서도 야유가 날아오며 야마토군의 등에 지우개가 날아온다.

  야유 와중에 자신 없었던 문제에서 해방되어 야마토군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3교시가 끝나고.


  슬슬 마르지 않았나 싶어서 학생회실로 말려둔 옷을 확인하려 갔지만, 아직 옷은 젖은 채였다.


  “어이, 레이센인 사쿠라코.”

  여자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학생회실 입구에 키가 큰 여성이 있다.


  검은 정장을 입고, 발끝까지 닿을 것 같은 긴 은발을 한 멋진 여성――――서서서서, 설마.


  “시, 신님……??!!”


  “그렇다. 오랜만이구먼.”

  여성은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어째서 어른 모습으로――아니, 신님이니까 연령을 올리는 것 정돈 간단한 걸까.


  “대단해……! 그렇게 쥐꼬리만한 꼬맹이었는데, 어른이 되면 멋있는 여성이 되는 거네! 예쁘게 성장해서 다행이야!”


  휙, 퍽!

  있는 힘껏 손칼로 맞아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고 만다.


  “아파…….”

  “누가 쥐꼬리만한 꼬맹이냐! 신에게 대하여 변함없이 무례한 녀석이구먼!”

  “칭찬한 건데…….”

  “칭찬이 아니야!!”


  휘청휘청 일어나서 말한다.


  “어째서 여기에? 신님, 이 세계를 버린 게 아니었어?”

  “흠. 뭐, 까고 말해 8할 정도는 내버리고 있었지만……, 최근 다른 세계가 순조로워서 말이야. 심심풀이로 찾아온 게야.”


  시, 심심풀이……!?


  “너 같은 꽝을 뽑지 않기 위해서, 환생자를 선별하는 획기적인 수단을 생각한 게다. 이 방법대로 하고 난 뒤로, 내 수고가 6할이나 감소한 게지. 굉장하지 않나?”


  신님은 엣헴인게지, 하고 커다란 가슴을 피면서 말했다.


  “그 방법은, 다시 말해!!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을 환생시킨다!! 굉장한 명안이지!!”

  “오히려 가장 처음부터 취했어야 할 조건이지. 그거.”


  좀 더 말하자면 캐릭터나 스토리에 애착이 있는 팬이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님은 “변함없이 애교가 없는 녀석이구먼.”하고 투덜투덜 말하면서 한 손을 올렸다.

  신님의 손바닥이 빛난다.

  팟하는 소리가 들리고 학생회실 전체를 비출 정도로 강력한 빛이 뿜어졌다.

  반사적으로 감은 눈동자를 열자, 신님의 손에 본 적 없는 지팡이가 있었다.


  조잡한 동작으로 신님이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러자 세계가 갑자기 세피아 색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이거……!”

  “시간을 멈춘 게다. 너와 느긋하게 대화하고 싶으니 말이야.”


  신님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를 당겨 앉는다. 나도 거기에 따라 의자에 앉는다.


  “스토리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잘 하고 있는 것 같구먼. 이 세계는 의외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어.”

  “그럼 좋겠지만……, 모모카씨가 전혀 아무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게다가 이상해. 모모카씨는 소녀만화 히로인이지? 그런데 엔카가 좋다든가, 신체능력이 굉장하든가, 키리오군의 라이브에서 잔다든가, 행동이 이상하다고. 이거, 나 때문일까?”


  신님이 손을 휘두르며 웃는다.


  “아니야. 아니야. 전에도 말했지? ‘피치매직’은 연재중단 만화라고.”


  퐁하고 소리가 나고 신님 손 안에 나도 알고 있는 소녀만화 잡지가 나타난다.


  “독자 앙케이트에서도 굉장한 혹평이지. ‘그림은 귀여운데 히로인 내용물이 아저씨.’ ‘히로인이 중년 아저씨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자보다 더 강해서 꺼림칙하다.’ ‘언동이 귀엽지 않다.’ ‘역할렘 남자들이 지킬 필요가 없다.’ ‘사쿠라코 따위 주먹 한 방에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제니게바.’”


  또 퐁하는 소리와 함께 잡지가 사라졌다.


  “뭐, 주인공이 너무 개성적이라 독자층인 여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말하자면 연재중단 될만 하여 연재중단 된 모에하지 않은 히로인인 게지.”


  그랬던 건가…….

  “어떻게 하면 모모카씨가 역할렘군들과 사랑하도록 할 수 있을까?”

  “몰라.”

  모, 모르다니……!


  “그건 하츠키 모모카와 접촉하고 있는 네가 더 잘 알겠지. 건투하게.”

  그런 적당한.


  “그럼 ‘피치매직’의 최종회는 어땠는데?”

  내가 묻자, 처음으로, 신님은 으음하고 말을 흐렸다.


  “해피엔딩은 아닐세.”

  연재중단 되었다면, 해피엔딩은 힘들겠지.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같은 느낌이 될 것 같고.


  “조심해서 들어라.”

  “응.”

  무척이나 심한 전개였던 걸까?


  신님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악역, 레이센인 사쿠라코가 아버지에게 목 졸려 죽는다. 그걸로 문제 해결되어 잘됐네, 잘됐어. 라네.”


  우엑!?


  “주, 죽는 거야!!? 거짓말!?”

  “사쿠라코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때때로 돈을 훔치고 있었다. 그 현장을 마침내 들키고 말아, 알코올에 취해 판단력도 이성도 없던 아버지에게 목을 졸려 살해당한 거지. 그걸로, 끝.”


  그, 그런!!


  “뭐, 지금은 아버지는 시설에 들어가 있으니 이 결말은 있을 수 없어. 안심하게.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 채고 대처해 준 칸자키 신에게 감사해 둬.”

  “감사합니다……신 선배……! 그보다 너무해! 그런 결말이라면 좀 더 일찍 알려줬으면 했어!!”


  “그렇게 화내지 말게. 지금은 확실하게 미래가 변했으니까 말이야……. 사쿠라코는 모모카를 괴롭히는 악역이긴 했지만, 가정환경에는 동정할 수 있는 점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망으로 끝낸 것이, 작가에게 있어서 한이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모르겠네.

  작가가 나를 내버려두고 있는 것도, 사쿠라코라는 캐릭터에게 애착이 있기 때문일지도.


  “그럼, 어디. 슬슬 시간을 원래대로 돌릴까. 나는 1주일 정도 이 세계에 있을 생각일세. 무슨 일이 있으면 오게.”

  “오라니, 어디에.”


  신님은 힐을 딱하고 울리며 섰다.


  “양호실이야!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걸세. 양호실의 미인 선생. 부상을 입은 에자키 나츠코를 대신하여 한 주 동안의 대역인 게지! 섹시 선생을 보고자 남학생들이 모이고 모여서.”


  “아, 신님, 마법으로 내 교복 말릴 수 없어?”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지 말게. 신은 건조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싫네.”



Posted by 추리닝백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