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그립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했던 사탕이다! 너무 커서 먹으면 입 안이 가득찼었지만 맛있었지.

  누가 던진 걸까?


  주변을 둘러보는 내 머리에 또 따콩, 하고 맞았다. 이번엔 싸라기 설탕이 묻은 눈알사탕! 우와아! 이것도 그립네……! 막과자 가게에서 틈만 나면 샀었다. 줄을 당기면 복권이 나오도록 되어 있어서, 귤 형태를 한 당첨을 뽑으려고 했었지.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지만.


  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생각하던 동시에, 옥상 한 가득 대량의 사탕이 떨어졌다!


  “우와, 뭐야 이거.”

  “사탕?”

  “어디에서 떨어진 거지? 비행기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패프러츠키스 현상?”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우와아아아! 오렌지에 포도에 딸기에 메론, 꽈배기 모양에 봉이 달린 캔디에 츄파츕스까지이!


  “굉장해! 다들, 남김없이 주워가자!”

  “남김없이는 무리 아닐까?”

  “괜찮아. 나는 그림자 캡짱이니까! 여기에 있는 모든 재보는 나 혼자만의 것이다! 후하하하!”

  “오오, 대단해. 지금 그거 악역스러웠어요. 먹을 것이 얽히면 강해지네요.”


  “어이 사쿠라코! 상의로 받으려고 하지 마! 안이 보이잖아아아!”


  “아.”


  야마토군이 몸을 숙이고 검은 사탕을 주웠다.


  “어이, 소라.”

  “왜?”

  뒤돌아보는 소라군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 듯이 꽉 잡는다.

  아까 전의 검은 사탕을 소라군의 입에 넣은 것이다.

  소라군은 보고 있는 사이에 새파랗게 되어, 야마토군의 배를 노리고 발차기를 한다. 야마토군은 가볍게 피하며 소라군에게서 도망쳤다.

  “야마토, 죽인다!” 퉤하고 발밑에 사탕을 뱉고서 입을 닦고, 소라군은 야마토군과 싸우기 시작한다.

  “뭘 먹인 거야……? 살미아키인가. 심한 짓을 하네.”

  신 선배가 야마토군의 손에서 떨어진 사탕 포장지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소라, 어떤 맛이었나요? 세계에서 제일 맛 없는 사탕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서 신경 쓰여서요.”

  “한 번 먹어봐! 죽어!”

  꽤나 굉장한 맛이었던 건지, 소라군은 눈에 눈물까지 띄며 야마토군에게 발차기를 하고 있다. 야마토군은 악동스런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피한다.


  “세계에서 가장 맛 없는 사탕? 어떤 맛이었던 걸까?”

  나도 신경 쓰인다. 또 하나 떨어져있지 않을까?

  “고무맛이라든가 송진맛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과연 먹을 생각은 들지 않네.”

  모모카씨도 쓴웃음을 지으며 소라군이 뱉은 사탕을 휴지로 잡아 비닐봉투에 버렸다.


  유감스럽게도 사탕의 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그래도, 대충 모은 것만으로도 수백 개나 돼!

  꽤 큰 산처럼 되어서 환성을 올리며 양손으로 감싸 올려 하늘로 던지고 만다.

  “금은보화라도 찾은 것 같네요.”

  보화야! 이런 사탕의 산,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걸.

  신 선배가 스포츠백을 가져와서 넣을 수 있을 만큼의 사탕을 넣어서 학생회 휴게실로 가져갔다.

  가방에서 골판지 상자로 옮기고, 각자 좋아하는 사탕을 골라간다.

  “파인애플과 민트 가져갑니다.” “오빠는 레몬으로 할까.” “모모카씨는 뭘로 할 거야?”

  으음, 하고 입 안에서 중얼거리며 모모카씨는 입을 열었다.


  “단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골판지 상자에 들어있는 것이 젓갈이나 명란젓이라면 기쁘게 받겠지만.”


  “위험해. 상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로테스크야. 모모카…….”

  나도 골판지 상자가 젓갈과 명란젓으로 가득 찬 모습을 무심코 상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거, 정말 어디에서 떨어진 걸까……? 비행기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잠깐만 기다려, 혹시, 이거, 이 세계의 이변일지도 몰라!

  “사쿠라코?”


  나는 당황하며 일어서서, 팔에 사탕을 품은채로 복도를 달려갔다.


  “신님!”

  인사도 잊고 양호실로 들이닥친다.

  신님이 말했던 대로, 양호실은 남학생들로 가득했다. 남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신님 앞에 선다.


  “어머, 무슨 일인가요. 레이센인씨……에잇.”

  의자에 앉아 예쁜 하얀 발을 꼬고 있던 신님이 딱하고 손가락을 울린다. 또 교실이 세피아색으로 물들었다. 남학생들까지 세피아색이 되어 굳어버려 조금 무섭다.


  “이 바보가! 학교 안에서 신이라고 부르면 어쩌나! 내 이름은――”

  “하늘에서 사탕이 떨어졌어! 혹시 이거, 세계가 끝날 전조일까!?”


  “그러니까 평범하게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잖은가. 이 세계는 의외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다고. 애초에, 사탕이 떨어지다니 그런 이변 들은 기억이 없어.”

  “하, 하지만……!”

  “귀찮구만. 호이.”


  또 한 번 손가락을 울리자 신장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앞치마 차림의 여자가 내 옆에 섰다.

  사요코씨다!

  SF영화의 홀로그램 영상처럼 반투명하게, 저쪽 풍경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사요코씨!”

  “어머, 사쿠라코씨. 신님까지. ……거기는 학교인가요? 무슨 일인가요?”

  “하늘에서 사탕이 떨어진 것 같아서 말이야. 세계의 종말이 아니냐고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게지. 너도 아니라고 설명해주게.”


  “하늘에서……? 그런 팬시한 이변, 들은 적도 없어요. 세계가 끝날 전조는 살벌한 현상들뿐인 걸요.”


  “그런가요……?”


  “네. 안심해주세요. 그보다도 그 돈의 재스쳐 해봤나요?”

  윽.

  “그 표정을 보니 실패한 것 같네요. 혹시, 재스쳐가 오케이가 되지 않았나요?”

  “어, 어떻게 그걸……!?”

  “80점이라고 했었죠? 후후후. 재스쳐가 돈의 재스쳐였다면 100점이었는데. 유감이네요.”

  “아, 알고 있었는데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사요코씨는 배신자!”


  꽤 진심으로 화내고 있는데, 사요코씨는 즐겁게 웃을 뿐이다.

  부, 분하다……!

  사요코씨는 웃음을 남긴 얼굴로 신님을 향했다.


  “헌데, 신님. 슬슬 사쿠라코씨에게도 설명하는 게 어떤가요?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았지요?”

  중요한 부분?


  “뭐, 그렇지.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다고. 스토리조차 멀쩡하지 않은 세계니까 어차피 망할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무슨 소리? 신님과 사요코씨를 두리번두리번 보고 만다.

  사요코씨가 검지를 세우고 말한다.


  “생전의 이름, 기억나지 않죠?”


  ――――에.


  생전의, 이름?

  내, 이름――――.


  “기, 기억, 나지 않아……!!?”


  료, 레이, 케이스케, 준타로.

  친구 이름은 기억나는데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아버지와 어머니――――안 돼. 단 두 사람뿐인 육친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어째서!?


  “뭐, 그렇게 당황하지 말거라. 이름을 잊은 것도, 이름을 잊은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도, 다시 태어나 인과가 끊어졌기에 그런 거니.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생각나니까 말이야.”


  “신님은 또――――” 찌지지직하고 노이즈가 일고 사요코씨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세피아였던 풍경의 색이 돌아왔다.


  “슬슬 교실로 돌아가세요. 여러분도. 수업이 시작하고 말아요.”

  신님이 검지를 세우고 웃는다. 아까 전까지 거만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상냥한 말투와 미소였다.


  입을 모아 인사하는 남자들과 섞여 나도 교실로 돌아간다.

  내 이름……기억 나지 않는다.


  지금은 레이센인 사쿠라코니까, 전생의 이름은 필요 없다. 지금까지도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하지만, 뭐랄까. 중요한 것이 쏙하고 빠진 듯한 허무감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대로.


  아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아무튼 이 이야기를 제대로 완결 짓는 데에 전력을 다하는 거야!


  마음을 다잡자!!


  수업을 끝내고 방과후, 나와 모모카씨, 그리고 몰래 따라온 야마토군 세 사람은 동쪽 교사 5층으로 발을 옮겼다.

  줄리아씨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저번에 본 예쁜 미소가 거짓말처럼, 무척이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같은 정도의 무서운 얼굴의 여학생을 10명 이상이나 데리고 왔다.

  본 적이 있는 학생도 있다. 복도에서 키리오군의 메일주소를 물어본 학생이다.

  모모카씨는 여유만만한 표정인데, 나는 갈팡질팡하면서 여학생들에게 다가가는데――.


  “모모카, 사쿠라코, 여기에 있다.”

  “아, 줄리아씨.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인가요? 이런 데에서.”


  소라군과 키리오군이 빙그레 웃으며 우리 뒤에서 나타났다.

  줄리아씨들은 한 순간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억지웃음을 짓는다.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다, 다시 한 번 보좌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탁할까 해서…….”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는 거였다…….


  “뭐……, 저거 절대로, 내가 너희들에게 울며 사정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괜한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 바보 남자놈드으으으을!!”


  모모카씨가 비쳐 날뛰며 키리오군과 소라군에게 달려든다. 여기 최상층이고, 자료실밖에 없으니까 우연히 지나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싸움이라니까 걱정 돼서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가 통할 것 같냐아아아아!”

  “모모카씨 폭력은 안 돼에에에에!”


  내 만류도 무심하게 완전히 격노한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에게 액스봄버를, 소라군에게 샤프슈터를 걸어 녹아웃시키는 거였다…….

  모모카씨, 너는 소녀만화 히로인인데 어째서 그렇게나 서브미션이 능숙한 걸까!?

  바닥에 쓰러져 엎어진 키리오군과 소라군 옆에 앉아 나는 단지, 신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화내더라도 귀엽게 화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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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회의 업무가 바빴기에, 우리들 여섯 명은 매일 학생회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산처럼 쌓인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서 담소할 여유도 없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먹는 일도 흔치 않았다.

  그런 바쁜 시기도 겨우 끝나고 업무도 안정되었기에 오늘은 옥상에서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 전에 등교한 키리오군과 합류하여 계단을 오른다.


  “어라?”

  선두에서 걷고 있던 야마토군이 옥상 문을 열고서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다니 드문 일이네.”

  뒤를 이어 옥상으로 나온 키리오군이 둘러보며 말했다. 키리오군의 말대로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 선배가 크게 기지개를 피면서 키리오군에게 답한다.

  “아침에 호우가 왔으니까 젖어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여기 옥상, 방수가공되어 있으니까 꽤 빨리 마르는데 말이야.”

  “굉장해. 전세 옥상이잖아. 한 가운데 쓰자. 한 가운데.”

  모모카씨가 발빠르게 옥상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원을 지어 앉은 모두와 함께 나도 허리를 내리고――――.


  “키리오군.”

  눈을 반짝 빛내며 내 앞에 앉은 키리오군에게 몸을 내밀었다.

  자, 어제 연습한 성과를 보일 때다! 80점짜리 나의 악역 모습을!


  “역시 대기실에 갈 걸 그랬네. 모두에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바―앙.


  어디에선가 그런 효과음이 들린 듯한 기분이 든다.

  연습한 보름이 있어서 사요코씨에게서 배운 대로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자, 어떠냐. 키리오군! 어떻게 답할 거냐!

  “내 동료를 돈벌이 도구로 생각하다니……환멸했어.”일까!?

  아니아니,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지는 말자.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용하려고 했던 거네. 조금 충격이야.”정도일지도 모른다.

  두근두근하여 키리오군의 행동을 기다린다.


  키리오군은 나와 같은 재스쳐를 취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오케이? 그렇게 중얼거린 키리오군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떠 있다.


  토, 통하지 않아……!!??


  “사쿠라코씨. ‘돈’의 재스쳐라면 손바닥이 위로 가게 해야지.”

  엑!? 야마토군의 머리에 어깨가 흔들리고 만다.

  “그 재스쳐, ‘오케이’”

  소라군이 같은 재스쳐를 나에게 보였다.

  저, 정말이다……! 팔을 앞으로 내민 덕분에 돈의 재스쳐가 아니게 되어버렸어! 이거 완전히 오케이야!


  “과연. 사인이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였던 거구나.”

  “그래. 원래 소스는 나였지만 말이야. 사쿠라코. 내가 했던 듯이 자연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 돼.”

  모모카씨가 돈의 재스쳐를 취하고 사악한 얼굴로 웃으면서 간단하게 소재를 밝혀버린다.


  “모모카씨이이이이이”


  당황하며 입을 막아보지만 키리오군이 납득했다는 듯이 웃었다.

  “아아, 이거 모모카가 했던 거구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사쿠라코는 부치를 보호해줬을 때 사례금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돈에 욕심을 내다니 이상하다고 말이야.”

  “아니야!! 나의 오리지널이에요! 모두의 사인을 받아서 팬들에게 팔아치워 큰돈을 벌 생각이었어요게헤헤헤헤.”

  모모카씨의 입을 막으면서 키리오군에게 반론한다. 어떻게든 이 못된 히로인의 만회를 해야만……!!


  “얼마나 필요해?”

  키리오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에?


  “전에도 말했지만, 나 꽤 벌고 있으니까 돈이 필요하면 말해. 사인을 팔다니 귀찮은 짓 하지 않아도 100만 단위라면 방과후에 바로 준비할 수 있으니까.”

  “죄송합니다돈이필요하다니거짓말입니다”

  당황하며 엎드려 절하며 부정한다.

  옆 자리의 모모카씨가 아까 전의 나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1만엔 줘(하트) 사쿠라코랑 크레이프 먹으러 가게.”

  “응.”

  귀엽게 부탁하는 모모카씨와 간단하게 지갑을 꺼내는 키리오군 사이에 끼어들어 나는 괜시리 파닥파닥하고 팔을 휘두르고 말았다.


  “친구에게 돈을 주다니 안 돼! 간단하게 돈을 꺼내다니 그것도 안 된다고!!”

  “에에. 괜찮잖아. 세상에서 돌고 도는 게 돈인걸. 모아두는 녀석들이 뱉어내지 않으면 경제는 돌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겠지만 크레이프를 사는 데 1만엔이나 필요하다고 부탁하는 모모카씨도 간단하게 돈을 내려고 하는 키리오군도 뭔가 슬퍼! 뭐가 슬픈지는 잘 모르겠지만!


  “1만엔이라니 큰 돈, 안 된다고……!!”

  “그래? 아이돌군에게 있어서 1만 따위 용돈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서민이 말하는 ‘노트 잃어버렸으니까 종이 한 장 빌려줘.”와 부자의 “돈 잃어버렸으니까 1만엔 한 장 줘”는 같은 가치라든가 그렇다고.“

  “메이지 시대의 졸부 이야기에 있었지요. 돈다발에 불을 붙여 조명으로 쓴다든가.”

  야마토군이 도시락통 뚜껑을 닫으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돈에 불을 붙이다니 그런 벌 받을 짓은 할 수 없어……. 하지만 사쿠라코가 곤란할 때엔 도와주고 싶으니까.”

  아니. 정말로 괜찮으니까, 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모모카씨가 텅 빈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면서 그래, 라며 중얼거렸다.

  “사쿠라코, 오늘 방과후엔 한가해?”

  “오늘은 아르바이트 날이니까, 4시 반까지라면 시간 있어.”


  ““““바이트!?””””


  키리오군, 소라군, 신 선배, 모모카씨의 목소리가 겹쳤다.


  “사, 사쿠라코, 바이트하고 있었어!?”

  “응.”

  “어디서!? 또 속아서 이상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

  또?

  “이상한 장소가 아니에요. 우리 집, 정식점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답한 것은 야마토군이다.

  “내숭쟁이군의!? 어째서 그렇게…….”

  “그러니까 그 별명은 그만 두라고. 사쿠라코씨가 전에 당근밖에 먹지 않았다고 했었죠. 우리 집, 일급 낼 수 있고 밥도 나오니까 스카우트 한 거예요.”

  “몰랐었어……!”

  모모카씨가 굳어버리고 만다.


  “방과후, 무슨 일 있어?”

  벗어난 이야기를 돌리자, 모모카씨가 경직에서 돌아왔다.

  “저번 주에 줄리아라는 사람이 불렀었어. 사쿠라코와 함께 동쪽 교사 5층에 오라고.”

  오오! 마침내 서포트씨가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이번에야말로 사이좋게 되어서 모모카씨가 사랑의 어드바이스를 받아야지.


  “호출? 그럼 나도 갑니다.”

  야마토군의 안경 너머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 어째서 야마토군이 오는 걸까나?


  무서운 얼굴을 한 야마토군에게, 모모카씨가 휙하고 손을 흔든다.

  “여자들 싸움에 남자를 데려가다니 그런 꼴사나운 짓은 할 수 없어. 괜한 참견이야.”


  싸움!?

  호출이라는 거 싸우자는 거였어!?

  어느새 그런 일이……?

  그러고 보니, 그런가. 줄리아씨가 보좌부에 들어가는 걸 모모카씨가 막았으니 화났다는 거구나. 큰일이다. 어떻게든 줄리아씨의 기분을 풀어야.


  “저도 여자들 싸움에 끼어들 생각 없어요. 혹시 저쪽에서 남자를 데려왔다간, 모모카씨와 사쿠라코씨만으론 위험하겠죠? 적당하게 숨어 있을 테니까.”

  “음. 그것도 그럴지도……. 사쿠라코가 위험해지면 나와. 나는 혼자라도 괜찮으니까.”

  “네…….”

  “나, 나야말로 혼자라도 괜찮으니까! 모모카씨를 지켜줘 야마토군!”

  자랑은 아니지만, 전의 세계에서 친구들이 싸울 때 말린 적이 있었다(나 혼자서 말린 게 아니라, 싸우려는 두 사람을 세 명이서 말란 거지만). 나는 다소 맞아도 괜찮으니까, 평범한 여자인 모모카씨를 지켜줬으면 한다.


  “괜찮아. 사쿠라코. 모모카는 혼자서 1개 사단 정도의 인원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니까. 오빠가 보장해.”

  “1개 사단. 대략 2만 명에서 7만 명. 평균적으로 1만 명 정도의 집단.”

  신 선배의 딴지에 소라군이 설명을 더한다.


  “하, 할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남자가 상대라면, 대략 30명 정도가 한계일까……. 어째서 나약한 여자애로 태어났을까……. 힘이 없는 게 분해.”

  “농담도.”

  야마토군이 질린다는 듯이 신음한다.

  안 된다. 야마토군이 좋아하는 타입은 지켜주고 싶어지는 사람인데 모모카씨의 언동이 크게 벗어나고 있다. 어떻게든 해야…….


  “헌데 사쿠라코. 어째서 그런 커다란 셔츠를 입고 있는 거야? 그거 남자 옷이지?”

  돌연히 신 선배가 말했다.

  “네. 우산을 잊어서 교복이 다 젖어 버려서. 야마토군이 빌려준 거예요.”


  “다 젖어…….”


  신 선배는 한 박자 쉬고 나서,


  “그럼, 그 아래는 나체……!”


  하고 시선이 험악해졌다. 그와 동시에 쿵!! 하고 모모카씨가 신 선배에게 박치기를 작열했다.

  “우와, 굉장한 소리가 났어요.”

  “주변 빌딩에서 메아리가 돌아오고 있어…….”

  야마토군과 키리오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크악하고 괴로워하는 신 선배의 멱살을 모모카씨가 잡아 올린다.

  “너 적당히 하라고. 사쿠라코에게 성희롱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 귀는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아니면 뇌가 없는 거야?”

  “모모카씨, 저기, 신경 쓰지 않으니까.”


  모모카씨를 당황하며 말리자, 등줄기가 갑자기 시원해졌다.

  응? 하고 뒤돌아 보자, 소라군이 내 옷 끝을 손가락으로 잡고, 옷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모모카씨는 소라군의 멱살을 잡고, 탁탁하고 옥상 울타리를 오른다. 기역자 형태로 안쪽으로 휘어진 울타리인데 간단하게 끝까지 올라가곤, 울타리 위에 섰다.

  멱살을 잡은 채로 소라군을 공중에 내 건다.


  “유언은 들어주겠어.”

  “미안해. 누나. 이제 하지 않을 테니까 용서해줘.”


  모모카씨의 팔 하나로 5층 옥상에서 매달린 소라군이, 하느님에게라도 비는 듯이 두 손을 모아 위를 올려다 보며 모모카씨에게 간청했다.


  “모모카씨이이이! 소라군을 죽이면 안돼에에에!”

  모모카씨가 손을 놓으면 소라군은 15미터 아래 지면으로 추락하고 만다.

  나도 또한 소리치며 울타리를 올라가려고 하지만, 30센티 정도 올라가는 정도로 손가락에 박히는 철사가 아파서, 철사에 걸린 발까지 미끄러져서, 미끌하고 옥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남자 한 명 데리고 3미터나 되는 울타리를 오르다니. 모모카씨의 신체능력 너무 대단하잖아……!!


  “너도 남자에게 성희롱 당하면 제대로 위기감을 가져!!”


  옥상에서 떨어진 아픔에 부들부들하고 있자 모모카씨에게 일으켜져 끼릭끼릭하고 몸이 죄어진다.

  상당한 아픔과 괴로움에 “게엑”하고 괴수 같은 비명을 지르고 만다.


  신 선배, 소라군, 나와, 계속하여 징계를 끝낸 모모카씨는, 펜트하우스 한편에서 헉헉 숨을 거칠게 내쉬며 “지, 지쳤다…….”라며 신음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모카씨.”

  “차 마셔요.”

  “고마워.”

  키리오군에게서 받은 패트병을 받아 모모카씨는 단숨에 들이마신다.


  옥상에 쓰러져 있던 내 머리에 툭, 하고 작은 돌이 떨어졌다.

  뭘까?

  몸을 일으켜 확인한다.

  녹색 바닥에 구르고 있던 건 자두맛 사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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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회실에는 졸업한 선배가 두고 간 드라이어가 있다.

  젖은 스커트와 머리카락에 써서, 거의 말랐을 때 쯤에 야마토군이 들어왔다.


  “슬리퍼 빌려왔어요. 양말도 젖었죠?”

  “와, 고마워.”


  신발장 앞은 비 때문에 굉장히 혼잡해서, 사람들에게 치이며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이 겨우 였다.

  양말이 젖어서 벗고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행동조차 취하지 못하고 젖은 양말을 신은 채로 실내화로 갈아 신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축축한 소리가 날 정도로 실내화까지 젖고 말았다.


  의자에 앉아 실내화와 양말을 벗는다.


  “우와, 발, 작아.”


  맨발을 보고 야마토군이 놀란다.


  “여자는 대단하네요…….”


  뭐가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깊이 감탄했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덧붙여 나는 250이야.”

  모모카씨가 자랑스럽단 포즈로 말한다.


  “나하고 거의 비슷하잖습니까. 뭐……당신은 여자라든가 남자라든가 째째한 구분에 들어가지 않는 인간이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고릴라라든가 고질라라든가.”

  “배짱 좋네. 내숭쟁이 양아치군. ‘이오리 야마토는 대량파괴병기’라고 외치면서 복도를 누벼줄까?”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간 걸 용서해주세요――――라니, 어이, 사쿠라코씨.”


  살짝 학생회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야마토군에게 들키고 만다.

  ‘이 뒤는 젊은 두 사람에게 맡기도록 하죠.’라고 중매를 선 아줌마 기분으로 자리를 떠나려는 데 벌써 들키다니.


  사요코씨가 나와 야마토군의 대화를 듣고 기뻐하며 상을 때려 쪼갠 기분을 잘 알았어.

  야마토군과 모모카씨가 사이 좋게 대화하는 걸 듣고 이쪽까지 간지러운 듯한 부끄러운 듯한 기쁜 기분이 되고 만다.


  싱글벙글한 미소를 띤 채 뒤돌아 본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한 손을 휙휙 휘두른다. 접지 않은 소매가 팔의 움직임을 따라 휙휙 움직인다.


  “위험해. 귀여워.”

  “귀엽네. 가능하면 학교가 아니라 내 방에서 저 모습으로 있어줬으면 할 정도로.”


  귀여운가.

  흠. 귀엽게 보이는 건 별로 좋지 않네.

  일단은 제대로 소매를 접고…….


  나머진 한시라도 빨리 셔츠가 마르길 비는 수밖에.


――――


  “에, 그럼. 이 문제를……. 그렇지. 레이센인씨. 부탁할게.”

  수학시간.

  안경을 쓴 여선생의 부름에 나는 “네”하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괜찮겠지……?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손에 쥔다.


  윽.


  문제가 적혀 있는 곳은 칠판의 가장 높은 곳이었다.


  팔을 있는 힘껏 뻗어서 등을 핀 상태로 겨우 수식을 쓰기 시작한다.


  5……4……6……,


  우으, 팔이 덜덜 떨린다. 장딴지에 쥐가 걸릴 것 같다. 균형을 잃고 슬리퍼가 맨발에 스치며 삐빅,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레이센인씨, 옷, 어떻게 된 거야?”

  “비, 비에, 젖어서, 이오리군이, 빌려줘서.”

  “셔츠가 스커트까지 가리고 있네.”


  알고 있어요.


  다시 한계까지 발돋음을 해서 쓰기 시작한다. a2……√. 15+…….


  “선생님. 다음은 제가 풀겠습니다.”

  에. 야마토군의 목소리가 들리고,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고 만다.

  “그렇네. 이오리군에게 이 뒤를 부탁할게. 학생에게 이상한 플레이를 시키고 있는 기분이야.”


  플레이?


  “괜한 짓 하지 말라고 이오리” “여학생의 이런 모습 볼 기회 좀처럼 없으니까.”

  남학생에게서도 여학생에게서도 야유가 날아오며 야마토군의 등에 지우개가 날아온다.

  야유 와중에 자신 없었던 문제에서 해방되어 야마토군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3교시가 끝나고.


  슬슬 마르지 않았나 싶어서 학생회실로 말려둔 옷을 확인하려 갔지만, 아직 옷은 젖은 채였다.


  “어이, 레이센인 사쿠라코.”

  여자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학생회실 입구에 키가 큰 여성이 있다.


  검은 정장을 입고, 발끝까지 닿을 것 같은 긴 은발을 한 멋진 여성――――서서서서, 설마.


  “시, 신님……??!!”


  “그렇다. 오랜만이구먼.”

  여성은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어째서 어른 모습으로――아니, 신님이니까 연령을 올리는 것 정돈 간단한 걸까.


  “대단해……! 그렇게 쥐꼬리만한 꼬맹이었는데, 어른이 되면 멋있는 여성이 되는 거네! 예쁘게 성장해서 다행이야!”


  휙, 퍽!

  있는 힘껏 손칼로 맞아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고 만다.


  “아파…….”

  “누가 쥐꼬리만한 꼬맹이냐! 신에게 대하여 변함없이 무례한 녀석이구먼!”

  “칭찬한 건데…….”

  “칭찬이 아니야!!”


  휘청휘청 일어나서 말한다.


  “어째서 여기에? 신님, 이 세계를 버린 게 아니었어?”

  “흠. 뭐, 까고 말해 8할 정도는 내버리고 있었지만……, 최근 다른 세계가 순조로워서 말이야. 심심풀이로 찾아온 게야.”


  시, 심심풀이……!?


  “너 같은 꽝을 뽑지 않기 위해서, 환생자를 선별하는 획기적인 수단을 생각한 게다. 이 방법대로 하고 난 뒤로, 내 수고가 6할이나 감소한 게지. 굉장하지 않나?”


  신님은 엣헴인게지, 하고 커다란 가슴을 피면서 말했다.


  “그 방법은, 다시 말해!!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을 환생시킨다!! 굉장한 명안이지!!”

  “오히려 가장 처음부터 취했어야 할 조건이지. 그거.”


  좀 더 말하자면 캐릭터나 스토리에 애착이 있는 팬이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님은 “변함없이 애교가 없는 녀석이구먼.”하고 투덜투덜 말하면서 한 손을 올렸다.

  신님의 손바닥이 빛난다.

  팟하는 소리가 들리고 학생회실 전체를 비출 정도로 강력한 빛이 뿜어졌다.

  반사적으로 감은 눈동자를 열자, 신님의 손에 본 적 없는 지팡이가 있었다.


  조잡한 동작으로 신님이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러자 세계가 갑자기 세피아 색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이거……!”

  “시간을 멈춘 게다. 너와 느긋하게 대화하고 싶으니 말이야.”


  신님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를 당겨 앉는다. 나도 거기에 따라 의자에 앉는다.


  “스토리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잘 하고 있는 것 같구먼. 이 세계는 의외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어.”

  “그럼 좋겠지만……, 모모카씨가 전혀 아무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게다가 이상해. 모모카씨는 소녀만화 히로인이지? 그런데 엔카가 좋다든가, 신체능력이 굉장하든가, 키리오군의 라이브에서 잔다든가, 행동이 이상하다고. 이거, 나 때문일까?”


  신님이 손을 휘두르며 웃는다.


  “아니야. 아니야. 전에도 말했지? ‘피치매직’은 연재중단 만화라고.”


  퐁하고 소리가 나고 신님 손 안에 나도 알고 있는 소녀만화 잡지가 나타난다.


  “독자 앙케이트에서도 굉장한 혹평이지. ‘그림은 귀여운데 히로인 내용물이 아저씨.’ ‘히로인이 중년 아저씨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자보다 더 강해서 꺼림칙하다.’ ‘언동이 귀엽지 않다.’ ‘역할렘 남자들이 지킬 필요가 없다.’ ‘사쿠라코 따위 주먹 한 방에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제니게바.’”


  또 퐁하는 소리와 함께 잡지가 사라졌다.


  “뭐, 주인공이 너무 개성적이라 독자층인 여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말하자면 연재중단 될만 하여 연재중단 된 모에하지 않은 히로인인 게지.”


  그랬던 건가…….

  “어떻게 하면 모모카씨가 역할렘군들과 사랑하도록 할 수 있을까?”

  “몰라.”

  모, 모르다니……!


  “그건 하츠키 모모카와 접촉하고 있는 네가 더 잘 알겠지. 건투하게.”

  그런 적당한.


  “그럼 ‘피치매직’의 최종회는 어땠는데?”

  내가 묻자, 처음으로, 신님은 으음하고 말을 흐렸다.


  “해피엔딩은 아닐세.”

  연재중단 되었다면, 해피엔딩은 힘들겠지.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같은 느낌이 될 것 같고.


  “조심해서 들어라.”

  “응.”

  무척이나 심한 전개였던 걸까?


  신님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악역, 레이센인 사쿠라코가 아버지에게 목 졸려 죽는다. 그걸로 문제 해결되어 잘됐네, 잘됐어. 라네.”


  우엑!?


  “주, 죽는 거야!!? 거짓말!?”

  “사쿠라코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때때로 돈을 훔치고 있었다. 그 현장을 마침내 들키고 말아, 알코올에 취해 판단력도 이성도 없던 아버지에게 목을 졸려 살해당한 거지. 그걸로, 끝.”


  그, 그런!!


  “뭐, 지금은 아버지는 시설에 들어가 있으니 이 결말은 있을 수 없어. 안심하게.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 채고 대처해 준 칸자키 신에게 감사해 둬.”

  “감사합니다……신 선배……! 그보다 너무해! 그런 결말이라면 좀 더 일찍 알려줬으면 했어!!”


  “그렇게 화내지 말게. 지금은 확실하게 미래가 변했으니까 말이야……. 사쿠라코는 모모카를 괴롭히는 악역이긴 했지만, 가정환경에는 동정할 수 있는 점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망으로 끝낸 것이, 작가에게 있어서 한이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모르겠네.

  작가가 나를 내버려두고 있는 것도, 사쿠라코라는 캐릭터에게 애착이 있기 때문일지도.


  “그럼, 어디. 슬슬 시간을 원래대로 돌릴까. 나는 1주일 정도 이 세계에 있을 생각일세. 무슨 일이 있으면 오게.”

  “오라니, 어디에.”


  신님은 힐을 딱하고 울리며 섰다.


  “양호실이야!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걸세. 양호실의 미인 선생. 부상을 입은 에자키 나츠코를 대신하여 한 주 동안의 대역인 게지! 섹시 선생을 보고자 남학생들이 모이고 모여서.”


  “아, 신님, 마법으로 내 교복 말릴 수 없어?”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지 말게. 신은 건조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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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박자가 좋은 노래를 부르면서, 얼핏 기억나는 댄스를 춘다.

  딱하고 마지막 포즈를 취하고 앉은뱅이 책상 위에서 꽃꽂이를 하고 있던 사요코씨에게 몸을 내밀었다.


  “――이런 느낌으로, 굉장히 멋있다구요. 키리오군! 나도 저런 커다란 무대 위에서 춤추거나 노래하거나 했으면……!”

  사요코씨는 고개를 숙이고 배를 잡고 작게 떨고 있었다.

  “왜 그래요? 어딘가 몸이라도……!?”

  “아뇨……. 괜찮아요. 단지 사쿠라코씨의 노래와 댄스가 너무나도 개성적이라……후후후후후후.”

  포, 폭소하고 있다. 음치라는 자각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을 텐데……!


  ―♪

  아, 전화다.

  키리오군에게서 온 전화였다.

  이번에야말로 본인일까?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도 한 순간 빠르게 전화가 끊기고 만다.

  어라?

  되걸어 봐도 받지 않는다.


  뭘까?


  뭐 됐나. 문자나 보내두자.


  ‘라이브 티켓 고마워! 키리오군 엄청 멋있었어! 신곡 CD 절대로 살 테니까! 모모카씨도 감동했었어!’


  거기까지 치고 나서, 안 된다. 하고 자신의 문자를 지운다.

  멋있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한 사람에게 멋있다고 보내면, 뭔가, 기대하게 만들 것 같아서 안 되겠지.

  뒤에 적은 모모카씨도 감동했다고 하는 것도 아무리 그래도 안 된다. 모모카씨 거의 자고 있었으니까 바로 거짓말인 거 들통날 거다.


  ‘라이브 티켓 고마워! 신곡 CD 절대로 살 테니까! 리더라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를 키리오군이라고 착각했어. 죄송하다고 전해주지 않을래?’


  좋아. 그럼.


  “아, 그래. 연습도 해둬야지…….”

  “연습?”

  “네! 악역다운 대사를 모모카씨에게 배워서, 월요일에 모두들 앞에서 말하려고 생각해요. 봐주세요.”


  일어나서, 한 손을 돈 표시로 하고, 나쁘게 보이도록 찌릿하고 눈꼬리를 올린다.

  “역시 대기실에 가는 게 좋았네. 그것도 그럴 것이,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오호호호호!”

  “0점!!!!”


  의견을 구하기 전에 0점을 받아버렸다……!

  “0, 0점!?”

  “완전 빵점이에요. 과정도 없고 이건 안 되겠네요. 어째서 갑자기 연극조가 되는 건가요?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여요.”

  확실히……!!

  다시 생각해보자!

  “역시 대기실에 가는 게 좋았네. 그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그헤헤헤헤.”

  “웃음소리는 그만둘까요.”


  “역시 대기실에 가는 게 좋았네. 그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돈 제스쳐를 좀 더 확실하게 보여주세요. 그러는 편이 임팩트가 있어요.”

  “역시 대기실에 가는 편이 좋았어! 그게, 사인을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완벽해요! 80점!”


  “80점인데 완벽한 건가요……?”

  “사쿠라코씨는 100점을 노리는 것보다 평균점을 노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좀 더 연습하고 나서 자도록 하자.


  ――――


  “사쿠라코씨. 오늘은 비가 크게 온다고 하니까 우산을 잊지 않도록 해요.”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서는 내게 사요코씨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무심코, 돈 발언에 정신이 팔리고만 나는, 확실하게 우산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집을 나설 땐 어렴풋하게 흐린 정도였는데, 역이 보일 때 쯤에는 빌딩 위에 서면 손이 닿을 것 같을 정도로 두텁고 검은 구름이 거리를 덮고 있었다.


  뚝.


  목덜미에서 등줄기에 차가운 물방울이 흘러서, 히약,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올 뻔했다.

  내 머리카락 긴데, 전혀 막지 못할 정도로 굵은 빗방울이다!


  쫘아아아아악!


  후둑후둑하는 정도가 아닌 호우가 단번에 하늘에서 떨어진다.

  우와, 큰일이다. 빨리 역으로 들어가야!


  이 시기의 사쿠라오카 고등학교 교복은 춘추복이다.

  여학생은 긴소매 셔츠와 리본과 스커트 뿐.

  남학생은 긴소매 셔츠와 바지 뿐.


  춘추복이라는데 하복보다 방어력이 낮은 느낌이 든다.

  하복은 재질이 의외로 확실해서 그런 걸까. 하복의 방어력이 5라면, 춘추복은 2밖에 없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나 혼자뿐 일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눈 깜짝할 사이에 축축해져서 살에 닿는 부분이 기분 나쁘다.

  젖은 부분은 어깨만으로 끝났지만……, 이거 학교에 도착할 때엔 홀딱 젖게 되겠네.


  모처럼 사요코씨가 주의해줬는데 잊어버리다니 내가 봐도 한심하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소에는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모모카씨 일행이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먼저 등교한다고 했던가.

  아니아니, 악역인 내가 히로인의 도움을 기대하다니. 있을 수 없어.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소나기가 되어 주세요.

  내 소원도 무심하게 역 밖은 물통을 뒤집어엎은 것 같은 장대한 호우였다.


  “거기 여학생, 우산 없어? 내 우산 같이 쓰고 갈래?”


  내 등 뒤에서 그런 대화가 들렸다. 좋겠네. 나도 누군가 불러주지 않을까. 이럴 때엔 여학생의 이점을 살리고 싶다.

  아니아니, 역시 악역이라면 달려야지.

  뜀박질로 역에서 학교까지 힘낸다.


  위가 아플 정도로 전력으로 달렸지만, 학교에 도착할 때엔 쥐어짜면 수도꼭지처럼 물이 나올 정도로 젖어버리고 말았다…….


  “안녕―…….”

  “안녕. 사쿠라코. 굉장한 비네――――”


  모모카씨가 뒤돌아봄과 동시에 말을 잃고 모모카씨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사사사쿠라코, 속옷 보이고 있어. 그렇긴 커녕 블라우스가 달라붙어서 살이!”

  “에? 그렇게 비춰? 우와, 부끄럽네. 화장실에서 속옷 벗고 올게.”

  “바보냐아아아!! 그런 짓을 했다간 보일 거 안 보일 거 다 보이잖아! 어이, 거기! 이쪽 보지마아아아!”


  모모카씨가 미쳐 날뛰며 가방을 남학생에게 던진다.


  “추, 추리닝은……아, 그런가. 소풍이 있어서 집에 가져갔지! 어떻하지…….”

  “우오, 사쿠라코씨! 나체처럼 되었어요!”

  “아, 딱 좋은 타이밍. 야마토군. 교복 벗어.”


  갑자기 노상강도스런 말을 내뱉는 모모카씨에게 놀라고 만다.


  “괜찮아. 화장실에서 물 짜고 올 테니까――”

  “화장실까지 그런 모습으로 있을 생각입니까? 됐으니까. 자.”


  야마토군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셔츠를 벗어 내 어깨에 걸어줬다.


  “추리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집에 있으니까요. 학생회 휴게실에 가보죠. 예비의 셔츠를 빌려줄 테니까.”

  “예비가 있어? 다행이다. 살았어.”

  “미안해 야마토군…….”

  젖은 옷 위에 걸쳐줬기에 야마토군의 옷까지 젖고 말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당신의 홀딱 벗은 것 같은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싫으니.”


  “이오리, 너, 꽤 몸 대단하네…….”

  “어떻게 된 거야. 그 상처.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있잖아.”


  윽.


  반 남학생들의 지적에 야마토군이 숨을 삼킨다.

  싸움에 강한 것도 있어서, 야마토군의 몸에는 확실하게 근육이 붙어 있었다. 복근도 갈라져 있고, 싸우다가 얻은 상처자국도 몇 개 남아있다.


  “그, 교통사고가 있어서, 그 때 상처로.”

  “몸 단련하고 있네. 얌전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의외야.”

  “그게, 교통사고에 당한 건 몸이 약해서라며 아버지가 축구와 야구와 럭비와 수영을 시켜서.”


  야마토군, 그 설정은 좀 무리가 있는 게 아닐까?

  상냥한 아주버님이 무시무시한 스파르타 아버지가 되었어.


  “그보다도 빨리 가자고. 자, 두 사람 다.”

  “네.” “응.”


  모모카씨에게 팔을 잡혀 폭도를 달린다.


  학생회실에는 임원 전원에게 수납장이 주어지고 있다.

  야마토군은 자신의 수납장에서 제대로 다리미질 되어 있는 셔츠와 수건을 나에게 건냈다.


  “수건도 있다니 준비가 좋네. 다시 봤어 내숭쟁이 양아치군.”

  “그거 날 말하는 건가?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말라고입니다. 싸움이 있을 때를 위해서 준비해둔 겁니다. 피라도 튀면 곤, 란”


  야마토군이 부자연스럽게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비에 젖을 때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준비해둔 겁니다.”

  “그렇네. 피가 튄 교복을 입고 교실에 돌아갈 순 없으니까. 내숭 피우는 것도 큰일이네. 양아치군도.”

  “말 돌렸으니까 그냥 흘려주세요!”


  야마토군은 시선을 돌린 채로 내 어깨에서 셔츠를 벗기고 입은 다음 교실을 나가려고 한다.


  “야마토군, 이쪽을 입지 않을래? 그 교복 젖어버렸고, 아무리 그래도 미안해.”

  “됐어요. 이 정도는 금방 마를 테고. 밖에 나가 있을 테니까 옷 갈아입고 오세요.”

  야마토군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말한 뒤 학생회실을 나갔다.

  “윽…….”


  “호의는 감사하게 받고 빌리도록 해. 자, 감기 걸리니까 빨리 갈아입자.”

  “응…….”


  빌린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피부를 훔치고 야마토군의 셔츠를 입는다.

  내 키는 대충 145. 야마토군의 키는 아마도 170보다 조금 큰 정도다.


  야마토군의 옷을 내가 입자 스커트까지 쏙하고 셔츠에 가려지고, 소매에서 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스커트를 타올로 감싸고 팡팡하고 두들겨 물을 빼주고 있던 모모카씨가 뿜었다.


  “완전히 남친 셔츠 차림이네. 스커트까지 다 가려졌잖아. 똑바로 서봐.”


  들은 대로 바로 선다.

  “가슴 펴봐.”

  들은 대로 가슴을 편다.


  모모카씨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하아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옷이 없으니까 비쳐 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다행이다……사쿠라코가 빈유라서.”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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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고 기다리던 키리오군의 라이브 날이 마침내 찾아왔다!

  “좋아!”


  평소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투 사이드 업으로 만들고 나서 책상 위에 뒀던 작은 스탠드 미러 앞에서 한번 돈다.

  응. 제대로 묶여있다.


  “사요코씨. 다녀올게요.”

  거실에서 자수를 하고 있던 사요코씨에게 인사를 하자 사요코씨는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을 더더욱 무섭게 만들어 날 노려봤다.


  “사쿠라코씨. 그 모습으로 콘서트에 가는 건가요?”

  “으, 응. 이상한가?”

  퍼커와 하프팬츠와 가방. 평범한 복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안돼요. 자, 다시 한 번 갈아입죠.”


  사요코씨는 날 방으로 끌고 가서 옷을 벗겨버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사요코씨가 오고 나서 언제부턴가 반짝반짝 화려한 미니스커트나 탱크톱이 서랍장 안에 늘어났었던가.

  늘어났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어떤 옷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사요코씨는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라며 서랍장에서 옷을 꺼내며 날 코디네이트 해줬다.

  수제 비즈 목걸이까지 달아줘서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다.


  모모카씨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버스 정거장이다.

  약속 시간보다 몇 분 일찍 도착했는데 모모카씨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아, 모모카씨 멋있네! 예뻐!”


  모모카씨의 사복은 어른스럽고 멋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 나는 모모카씨를 선배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모모카씨는 그런 착각을 화내지도 않고, 반대로 기뻐해준 만큼 사복도 연상으로 보이는 걸 좋아하는 거겠지.

  커다란 꽃무늬와 점으로 치장된 갈색 계통 스커트와 롱부츠가 무척 잘 어울린다.

  이런 멋진 사람과 걸을 수 있다니 뭔가 기쁘네. 모델하고 같이 걷는 느낌이다. 퍼커와 하프팬츠 같은 걸 입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사요코씨에게 감사해야지.


  “어머? 싫어라! 정말 사쿠라코 너무 칭찬하잖아.!!”

  퍼억하고 등을 맞아서 개그 만화처럼 있는 대로 바닥에 박힌다.

  “하지만 기쁘네. 고마워. 사쿠라코의 옷도 귀여워! 시폰 미니스커트라니 사쿠라코의 이미지에 딱이야.”

  박힌 곳에서 파닥파닥하며 올라와 나뭇잎을 몸에서 털어낸다.


  “이거, 스커트가 아니야.”

  내가 입고 있는 것은 척 보면 3단 프릴? 로 보이는 미니스커트다.

  하지만 이거, 안은 바지인 것이다!


  펄럭하고 스커트를 들춰 안을 보여주자, 있는 힘껏 모모카씨에게 촙을 먹었다.


  “아파……, 어째서…….”

  “이런 곳에서 보이는 게 아니야! 정말. 변하질 않는다니까.”

  “바지인데도 안되는 건가요?”

  “안되는 게 당연하잖아! 초등학교 2학년에서 1학년으로 강등이야.”

  뭐, 뭘? 지금도 옛날도 나는 엄연한 고등학생 1학년인데요.


  공연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탑의 간판에는 키리오군의 모습이 있어서, 정말 아이돌이구나하고 감동하고 만다.


  “우와, 상점. 사람들이 엄청 많네.”

  “귀찮으니까 빨리 자리로 가자.”

  굿즈는 회장 밖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사고 있는 건 라이브 티켓을 산 사람만이 아닌 듯 긴 뱀처럼 행열이 이어지고 있다. 저기에 줄섰다간 절대로 공연에 늦을 거야.

  키리오군의 굿즈 사고 싶었는데 아쉽다. 모모카씨에게도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받은 티켓을 보면서 자리를 찾는다. 우리들 자리는 스테이지 앞의 앞에서 3번째 열이라는 굉장히 좋은 좌석이었다!

  “모모카씨 굉장해 이렇게 가까운 자리!”

  “그렇네요.”

  “여기서라면 목소리를 높이면 키리오군에게 닿을지도! 다행이네 모모카씨!”

  “그렇네요.”

  “아, 이제 슬슬 시작할 시간이야!”

  “그렇네요.”


  스테이지가 바로 앞에 있어 텐션이 만빵이 된 바로 그 때, 객석 조명이 꺼지고 스테이지에 빛이 작열하며 화려한 음악이 공연장을 흔드는 거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라이브는 예상 이상의 박력입니다!!

  노래도 댄스도 멋있어서, 근처에 있는 여자애들처럼 소리 높여 날뛰고 만다.


  조용한 음악, 분위기가 고조되는 음악, 이 세계에 방금 왔을 뿐인 나조차 들은 기억이 있는 박자 좋은 노래 (이거, 키리오군 그룹의 노래였구나!) 노래뿐만이 아니라 멤버들의 농담 섞인 대화가 있든가 하는 흥분의 도가니 와중.


  또 조명이 꺼지고 공연장 안이 암흑에 싸인다.

  잠시 시간이 있은 뒤, 스테이지를 스팟라이트가 비춘다.


  화려한 무대장치가 사라지고, 넓은 느낌의 스테이지 한 가운데에 있는 건――――.


  키리오군, 단 한 사람이었다.


  키리오군의 솔로!?


  화려한 연출도 연주도 없이 조용한 피아노 반주가 공연장에 흐른다.


  ――아, 이거――.


  옥상에서 들은 러브송이다.


  상냥한 키리오군의 목소리가 애절해서, 그만큼 소란이던 관객들이 물을 맞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지켜볼 뿐인 짝사랑의 사랑노래.

  눈물을 흘리는 애까지 있었다.


  ………….


  곡이 끝남과 동시에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고 말았다.

  노래의 여운 때문에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다. 노래는 이미 끝났는데 아직 노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 못박힌 듯한 주박에서 풀려나와 헉하고 제정신을 찾아 나는 모모카씨를 되돌아봤다.


  “굉장하네. 키리오군……. 그치, 모모카씨.”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보는 바람에 그런건지 눈에 뜬 눈물을 닦아내며 모모카씨를 돌아보니――.


  “쿨―”


  모모카씨는 뒤로 등지고 고개를 젖힌 채 폭면하고 있었다!!


  히로이이이이이이인!!!!


  “이, 일어나 모모카씨! 키리오군 힘내서 불렀는데 그거 너무하잖아! 모처럼의 라이브라고! 제대로 응원하자!”

  “아……미안 사쿠라코……자장가 같아서 나도 모르게……끝나면 깨워줘.”

  “그러니까 자면 안된다고! 일어나!”

  나는 그야말로 설산에서 조난한 사람을 깨우는 것마냥 모모카씨를 깨우려고 했지만……. 모모카씨는 마지막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사쿠라코. 화내지 마.”

  모모카씨가 눈을 뜬 것은 앵콜까지 끝나고 난 뒤였다.

  “화낼거야! 키리오군 힘냈는데 자버리다니…….”

  귀엽게 고개를 기울여도 내 화는 풀리지 않아!

  “폭면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노래였다는 거야.”

  “그런 걸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콘서트 공연장 통로는 아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텐션 높게 친구들과 소란을 피우거나, 꿈을 꾸는 듯한 여자애들 뿐이라고 하는데. 히로인이라는 사람의 이 덤덤함은 대체 뭐라는 걸까.

  나조차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평소보다 조금 목소리가 높은데.


  휴대폰이 울리고 당황하여 가방에서 꺼낸다. 키리오군에게서 온 전화였다.

  “모모카씨, 키리오군에게서 온 전화야.”

  내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을 확인도 하지 않고 텐션 높게 말을 하고 말았다.


  “굉장히 좋았어! 신곡도 정말 좋은 노래였네. 절대로 CD 살테니까.”

  “사쿠라코?”


  ……어라??


  키리오군의 목소리가 아닌데? 성인 남성의 목소리다.


  “사쿠라코인데요……???”


  “처음뵙겠습니다. 리더인 타카다입니다. 키리오가 언제나 신세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다! 아까 전까지 목소리 듣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전화 너머로 듣는 사람 목소리는 인상이 다르다. 응.


  “이쪽이야말로. 언제나 키리오군에게 잘해주셔서.”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예전 엄마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배끼고 만다.


  “괜찮으면 대기실까지 놀러오지 않을래?”

  에!

  개인적으론 어떻게 되어 있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모모카씨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직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에게 너무 흥미가 없다.

  지금 상태로 놀러갔다간 말도 안 되는 발언이 날아갈 것 같다. 멤버 사람들 앞에서 ‘재미 없었다’라든가, ‘자고 있었다’라든가 말하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든가.


  “초청 감사합니다. 하지만 묘하게 소란을 피워서 일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사양하겠습니다. 키리오군에게 잘 전해주세요.”

  “그래? 헤에?”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는다.


  “아이돌군에게서 뭐래?”

  “키리오군이 아니었어. 리더 하는 사람이야. 대기실까지 놀러 오라고 권했지만, 거절했으니까.”


  “에? 대기실에 가고 싶었는데.”

  “저――――정말로!? 그럼 잠깐만 기다려.”

  재차 물어볼 테니까!

  설마 모모카씨가 흥미가 있었다니 생각도 못했다!

  아까 전의 ‘폭면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노래였다.’라는 건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었구나. 의심해서 미안!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는 내게 모모카씨가 씨익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돈을 의미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럴게, 녀석들에게 싸인 받으면 이걸 벌 수 있는 걸.”


  “이 못된 히로인! 못된 히로인! 못된 히로인!”

  “꺅!”

  꺅꺅 웃으며 도망치는 모모카씨의 등을 파닥파닥 때리면서 쫓아간다.

  “그런 건 말이야. 악역인 나의 대사라고! 모모카씨가 말해선 안돼!”

  “악역이라니 뭐가? 히로인이라니 그게 뭐야?”

  “하지만, 굉장히 좋은 대사일지도……. 좋아. 학교에서 만나면 써보자!”


  다음주 점심시간에라도 키리오군에게 말해보자.

  모두 앞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제대로 연습해둬야지. 후후후후. 나는 돈에 환장한 여자. 역할렘군들을 싸잡아서 물러나게 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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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종이 울리고 소라군이 “사쿠라의 진짜 쌍둥이는 나다.”라고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간다.


  야쿠오지씨는 샤프펜을 자신의 책상에 꽂아 까득까득 기스를 내면서 “저딴 호모 죽어죽어죽어죽어”하고 주문을 외웠다.

  모모카씨가 “좋았어! 잘했어 소라.”하고 주먹을 쥐고 소라군을 칭찬했다.

  나중에 소라군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고, 야쿠오지씨에겐 친구에게 죽어란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해야지.


  어라?


  키리오군이 없는데?

  조퇴했나? 하지만 가방은 있는데……?


  서, 설마! 모모카씨에게서 공기군이라는 말을 들은 충격으로 옥상에서 몸을 던지려는 건 아니겠지!?

  키리오군은 모모카씨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 모모카씨에게 공기라고 듣는 건 얼마나 큰 충격일까. 첫사랑조차 아직인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는 “키리오군 찾아올게.”라고 말하고 교실에서 뛰쳐나왔다.


  향하는 곳은 옥상이다!


  신님, 모쪼록 키리오군이 자살 같은 거 하지 않도록! 이라니 신님이란 거 그거였다아아아! 괜찮을까. 괜찮겠지!? 키리오군 서두르면 안돼!!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에 도착하고 키리오군의 모습을 찾는다.

  어, 없어……!

  설마 벌써 뛰어내린 뒤인 건……!!?


  옥상은 장해물이 달린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서 나 같은 건 도중까지 오르는 것도 겨우다.

  하지만 키리오군은 노래하며 춤추는 아이돌이니까 단련되어 있는 만큼 평범한 남자보다 체력도 신체능력도 높다. 전에 있던 세계에서 친구, 료가 그랬다. 댄스를 하는 사람은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으니까 점프력이 장난 아니라고. 이 정도 간단하게 올라갈 수 있겠지.

  어쩌면 이미 떨어진 뒤 일지도 모른다.

  밑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닐까.

  심장이 두근하고 뛰어 오른다. 무릎에서 아래가 급속하게 차가워졌다.

  울타리에 뺨을 붙이면서 운동장을 내려 본다. 아래는 벽돌로 만든 통로다. 나무 그림자로 지면이 보이지 않는 장소도 있어서, 이쪽저쪽 돌아다니며 아래를 확인해본다.


  옥상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고 있자 펜트하우스의 그림자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소리――키리오군의 목소리다!


  ――――사, 살아있었다아아. 다행이야아아아아!


  안심에 휘청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다행이야. 무서웠어!!

  떨어졌으면 어쩌나하고 생각했어! 사람이 죽는 건 절대로 싫어…….


  또다시 마지막으로 본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고 말아서 몸에서 힘이 빠져 옥상 바닥에 엎어진다.


  튀어나갈 듯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시끄럽다.


  머릿속에 망해가 된 양친의 모습이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 건 싫다.

  웃고 있던 때의, 건강했던 때의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공회전하여 제대로 돌지 않는다.


  몸을 웅크리는 내 귀에 키리오군의 노래소리가 들어왔다.


  ――――.


  역시 예쁜 목소리다. 나는 목소리가 작은 것도 아닌데 “뭐라고?”라며 다시 질문 받기도 한다. 하지만 키리오군의 목소리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사람의 관심을 끈다.


  이것이 가수의 목소리란 거겠지.


  노래의 내용은 사랑 이야기였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첫눈에 반해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 거려서, 말을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그런 달콤하고 애절한 사랑의 노래.


  우와.

  우와, 좋네……!

  사랑이란 건 좋은 거구나……!

  아빠와 엄마도 이런 사랑을 했었던 걸까?

  둘이서 나란히 부엌에 선 모습을 떠올리고 조금 웃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행복했던 때가 돌아왔다.


  몸에도 힘이 들어오게 되어 어떻게든 일어선다.


  이미 노래는 끝나고 말았지만 나는 작게 박수를 쳤다.

  “……사쿠라코? 수업은? 어째서 여기에.”

  “키리오군은 역시 가수네! 이런 장소인데도 굉장한 박력이었어! 게다가 굉장히 좋은 가사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로 감동했어!”

  펜트하우스에 기대어 앉은 키리오군 옆에 나도 엉덩이를 내린다.


  내리고 나서 생각난 거지만, 내가 혹시 엄청 방해를 한 건 아닐까.

  키리오군이 여기에 있는 건 아마도 모모카씨에게 폭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곁에 여자애가 있으면 진정하고 싶어도 진정할 수 없지 않을까. 이상하게 신경 쓰게 된다고.

  나도 굉장히 침울했을 때 옆에 모모카씨가 있으면 역시 맘 편하게 침울하고 있을 수 없고.

  남자는 침울해졌을 때조차 여자애 앞에선 멋있어 보이려는 생물인 거다.


  “미, 미안. 방해해서.”

  “방해가 아닌데?”

  일어나려는 순간 팔을 잡혀서 나는 그 자리에 새삼 앉았다.


  “지금 곡, 라이브에서 발표할 신곡이야.”

  키리오군이 쑥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신곡!? 그런가. 발표되기 전에 듣게 되다니 기쁘네. 훔쳐 들은 보람이 있어.”

  “내 솔로 라이브는 비싸다고.”

  “우정가격으로 주스 하나에 봐주세요. 캔이 아니라 패트로도 상관 없으니까.”

  “사쿠라코니까 말이야. 부치 할인으로 무료로 해주지.”

  “그럼 부치에게 감사해야겠네.”

  씩하고 웃으니 키리오군도 웃었다.


  “사쿠라코는 노래, 좋아해?”

  키리오군이 울타리 너머의 거리풍경을 보면서 질문한다.

  “엄청 좋아해! 노래방 점수는 60점밖에 나오지 않지만 말이야. 평가 코멘트에선 ‘힘차게 부르면 뭐든지 좋다.’였다고. 노래방 기계까지 평가가 방치 수준이지만.”

  아쉬운 듯이 말하자 키리오군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다행이다. 공기라고 불린 것 때문에 침울하진 않은 것 같다.


  이건, 그건가.


  키리오군은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으니까 모모카씨처럼 차갑게 대하는 여자에게 두근거리는 전개다!

  소녀만화의 남주인공이니까 말이야. 싸움을 걸어오는 여주인공에게 ‘이 녀석은 평범한 여자들하고 다르다! 재밌어. 내 여자로 만들어 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쿠라코가 와줘서 다행이야. 모모카에게 공기라고 불려서 조금 기가 죽었었으니까.”

  아, 무리였다.

  너희들, 만화 등장인물인 주제에 어째서 그런 부분은 인간적인 걸까?

  좀 더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난동 부려도 좋다고. 그러니까 피치매직이 연재중단된 거야.


  “처음 만났던 날, 사쿠라코, 나에게 고백했었지? 하지만 내가 OK하니까 바로 거절하고. 명백하게 상태가 이상했어.”


  윽.

  싫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넘어가서 몸이 굳고 만다.

  그 당시엔 정말……면목 없습니다.

  “어쩌면 모모카가 명령한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설마! 모모카씨가 그런 명령을 할 리가 없어!”

  “응. 그렇지. 모모카는 나한테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고. 나와 티콜초코, 어느 쪽이든 원하는 걸 선물하겠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티콜초코를 선택할 것 같은걸.”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렇지 않아! 모모카씨는 조금 입이 험할 뿐이고, 친구를 생각하는 좋은 아이라고. 키리오군에 대한 것도 쑥쓰러워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고, 실제론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초콜렛을 선택하다니. 그런.”

  “그럴까? 모모카는 나와 티콜초코가 동시에 강에 떨어질 것 같으면 망설임 없이 티콜초코를 구하리라 생각하지만…….”

  “괜찮아. 망설임 없이 키리오군에게 손을 뻗을 테니까!”

  “‘타카나시군은 강에 떨어져도 스스로 올라올 수 있지만, 초콜렛은 젖으면 먹을 수 없게 되잖아.’라고 말할 것 같은데…….”


  ………….

  굉장히 그럴 것 같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 사쿠라코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러니까. 하고, 키리오군은 말을 꺼냈다.


  “전부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고백해도 될까?”


  ――또, 이 이벤트인가.

  너희들은 이제 그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되어주지 않을까?

  일일이 레이센인 사쿠라코에게 한 눈 팔지 말고, 빨리 모모카씨를 봐주세요.


  “안됩니다. 전부,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


  그리고 나의 양친처럼 행복한 생활을 보내길 원한다.


  망설임 없이 거절하자 키리오군의 몸이 천천히 기울어간다.


  “예상은 했었는데……. 지금 말하는 게 아니었어……. 사쿠라코가 먼저 고백한 주제에 너무하잖아…….”


  정말 그래. 마음 깊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있어도 마음이 상한 키리오군에게 추가타를 날려서 어쩌자는 건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말하는 일 하는 일 전부 반대 효과만 내고 있다.

  이럴 거라면 옥상 따위 오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 허벅지 위에 키리오군의 머리가 올라 부드러운 금색 머리가 퍼진다.


  신 선배가 내가 했듯이 퐁하고 머리를 쓰다듬을까 생각했지만 그만뒀다.


  빨리,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주세요.

  절실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키리오군은 바로 일어나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꽉하고 붙잡는다.


  “나,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이번 라이브에서도 힘내서 멋진 모습 보여주겠어!”


  좋아. 하고 주먹을 쥐며 기합을 넣고 있다. 의외로 긍정적이다……. 하긴 연예인이니까. 긍정적이지 않으면 해먹을 수 없을까.

  그런 자세로 모모카씨의 마음을 사로잡아주세요. 키리오군! 나도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을 좋아하게 되도록 힘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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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쿠오지씨는 나와 같은 리본을 쓰고, 나와 같은 머리를 하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사쿠라코, 이거, 봐.”

  가방 안에서 주머니를 꺼내 내 책상 위에 올린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주머니다.

  “……소지품도 전부 사쿠라코와 같은 것으로 했어. 필통도, 펜도, 손수건도.”

  슥하고 몸을 기울어 다가오기에 나도 모르게 뒤로 몸을 젖히고 만다.


  “……우리들, 절친이지?”

  “으, 응.”

  절친이라는 건, 몇 년이나 사귄 상대, 그야말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사이가 좋은 친구를 뜻한다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이번달부터 알게 된 사람에게 쓰는 건 조금 위화감이 있다. 하지만 여자애란 방금 알게 된 상대라도 바로 절친이라고 하기도 하니까 말이야.

  나와 야쿠오지씨도 절친이겠지.


  오늘 1교시는 실습실에서 수업이다.

  교과서와 필통을 한 손에 들고 의자에서 일어난 내 손을, 야쿠오지씨가 꽉하고 잡았다.

  “……같이 가자.”

  “응.”


  “네네, 거기 지나가요~”


  야쿠오지씨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모모카씨가 나와 야쿠오지씨 사이를 억지로 지나가서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모모카씨에게 팔을 붙잡혀 실습실까지 달려가게 됐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또 야쿠오지씨가 내 손을 잡았다.


  “……이거, 줄게. 나와 같은 반지. 영원한 친구의 증거.”

  반지다. 야쿠오지씨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 보였다.

  약지에 간단한 은색 반지를 끼우고 있다. 같은 반지를 내 왼손 약지에 끼우려고 하는데.

  “액세서리 소지는 금지입니다. 게다가 보좌부 부장인 사쿠라코씨가 소지하다니 다른 학생에게 모범이 되지 않아요. 몰수합니다.”

  야마토군에게 몰수당하고 말았다.


  “……몰수당했다.”

  “모처럼 선물해줬는데 미안해. 수업 끝나면 돌려받을 수 있도록 야마토군에게 부탁해볼게.”

  “……이제 필요 없어. 남자의 더러운 손으로 만진 반지 따위 사쿠라코의 손가락에 어울리지 않는걸.”

  “그, 그런가?”

  야마토군 딱히 더럽지 않은데?


  “……그 대신――”

  야쿠오지씨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있던 반지를 빼고 필통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따다닥하고 칼날을 꺼내고 반지가 있던 자리에 대더니――――쓱하고 얇은 상처를 냈다! 동그랗게 피가 뭉치더니 흐른다.


  히이이익!? 아, 아파! 보고 있기만 해도 아파아아!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야쿠오지씨!?


  “……사쿠라코의 손가락도, 같은 곳에 상처를 입혀. 쌍둥이의 증거…….”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알 수 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굳어버려서 도망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피가 묻은 커터칼이 눈앞에 다가오고 공포로 시야가 흐려진다. 그런 주제에 야쿠오지씨의 얼굴만은 선명하게 보여서 공포로 숨을 쉬는 것조차 잊는다.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어진 나를 모모카씨가 당겨줬다.

  모모카씨는 말도 없이 내 몸이 떠오를 정도의 기세로 달려서.


  학생회 휴게실까지 데려와줬다.


  야마토군도 키리오군도 동시에 학생회실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딱하고 문이 닫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외쳤다.


  “사이코씨였다아아아! 야쿠오지씨, 싸이코씨였어!! 어떻게 하지!”

  “““늦어!!!”””

  세 사람에게 동시에 꾸중을 들었다.

  “스스스스스로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무서워서 무리야! 게다가 커터칼로 베다니 절대로 싫어어어!”

  머리를 감싸고 덜덜 떠는 내 옆에서 모모카씨가 키리오군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공기군, 부탁이니까 야쿠오지씨를 어떻게 해줘! 공기군의 팬들 중에도 저런 타입 있잖아? 나, 저런 거 질색이라고! 여자애니까 때릴스도 없고!!”

  “에!? 공기군이라는 거 나!? 너무해!”

  “너무해? 어디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 공기로도 충분해. 아니, 공기는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네. 너 따윈 연기야 연기! 적어도 고체로 진화하라고.”

  우아아아아아! 모모카씨 대체 무슨 짓을!


  모모카씨는 키리오군에게 폭언을 뱉을만큼 뱉고서 내 왼손을 잡았다.


  “사쿠라코의 손에 반지까지 끼우려고 하다니……! 아아, 허락 할 수만 있다면 저 여자의 팔을 어깨에서 잘라버리고 싶어.”

  모모카씨가 내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말하는 게 굉장히 무섭네. 허락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면 안 되요.

  “그렇다 해도 사쿠라코의 손가락 말랑말랑해서 기분 좋네. 계속 만지작거리고 싶어. 공기군. 좋은 방법 생각났어?”

  “그 별명 그만둬. ……그렇네. 모모카도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를 하면 어떨가? 모모카가 더 사이가 좋다고 알면 물러날지도.”


  과연. 그런 수법이.

  나에겐 생각도 할 수 없는 방법에 감탄하고 만다.

  모모카씨는 뺨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인다.


  “그, 그런…….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라니. 부, 부끄러워.”

  “헤에. 모모카씨에게도 의외로 여성스러운 면이 있네요.”

  야마토군이 마음 깊이 놀랐다는 듯이 말한다.


  “후후후. 그래? 스님 머리가 되는 건 괜찮지만, 투 사이드 업이라니 너무 귀여워서 나에겐 무리야.”

  “앞의 말 취소합니다. 스님 머리는 괜찮냐고요. 무슨 기준이야.”

  “불상 퍼머도 모히칸도 괜찮지만, 사쿠라코 같은 귀여운 머리는 무리. 여심은 복잡한 거예요.”

  “여심이라고 안합니다요. 그거! 예능혼이잖아!”


  꺅꺅 다투고 있으니 소라군과 신 선배가 들어왔다.


  “오늘은 무슨 소란이야? 또 사쿠라코 때문?”

  신 선배가 옆을 지나며 내 머리를 퐁하고 쓰다듬는다.


  책상의자에 앉아 야쿠오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또 성가신 아이가 얽혀들어왔구나.”

  “얽혀 들어온 게 아니야.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이 애는.”

  옆에 앉아 있던 모모카씨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었다. 그 기세대로 콩하고 머리를 부딪치고 만다.


  “또인가.”

  “또야.”


  신 선배가 표정을 찡그리고, 그리고 말했다.


  “사쿠라코는 경계신이 부족하네.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윽. 야마토군과 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내가 손을 쓰는 것도 좋지만……. 또 같은 짓을 반복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신 선배는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쓰다듬고 한 번 고개를 끄덕인뒤 말을 이었다.

  “이번엔 가능한 한 스스로 대응해보도록 해. 안 되겠으면 오빠가 어떻게든 해줄테니까 말이야.”

  “네, 네…….”

  작아지는 기분으로 끄덕인다.

  “그러니까 그걸론 안 된다고! ‘내가’ 더 이상 무리야! 지금 당장 어떻게든 해줘. 신! 투 사이드 업이라니 무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내 옆에서 모모카씨가 난동을 부리며 신 선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댄다.


  미쳐 날뛰는 모모카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소라군이었다.

  “그럼 내가 사쿠라코와 같은 머리가 될게.”

  “에.” “에.” “에.”

  “묶어줘.”


  소라군이 머리를 날 향해 내민다.

  “으, 응.”

  내 리본을 풀고 둘로 잘라서 자신의 머리를 다시 묶은 다음 소라군의 머리를 투 사이드 업으로 만든다.


  “어울려?”


  소라군의 머리카락은 조금 긴 느낌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어깨에도 닿지 않는, 남자로서 위화감 없는 레벨의 머리카락이다.

  그 머리카락을 투 사이드 업으로 하니 묶은 머리가 뿅하고 튀어나온다.

  “으, 응.”

  너무 어울려서 위화감이 대단하네. 여자가 남자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릇이 큰 신 선배나, 아이돌이라는 일 특성상 여장도 인형옷도 괜찮을 키리오군은 반응이 없지만, 평범한 학생인 야마토군은 있는 대로 질린 표정이다. 하지만 소라군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웃은 거 놀리는 건 싫어하는데 투 사이드 업은 괜찮은 건가. 스님 머리도 괜찮다고 하는 모모카씨도 그렇지만, 나는 이 남매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어요.


  “좋아. 소라. 오늘만은 용서할게. 사쿠라코와 쌍둥이 어필에 힘써달라고.”

  “응.”


  식사시간이 끝나고 소라군과 함께 교실로 돌아감과 동시에 야쿠오지씨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오늘부터 나와 사쿠라가 쌍둥이. 너는 타인이다.”

  “……사쿠라코를 만지지 마. 호모가 옮아.”

  “너야말로 사쿠라의 곁에 있지 마. 처녀귀신이 옮아.”


  소라군의 리본을 풀려고 야쿠오지씨가 손을 뻗는다. 소라군은 내 손을 잡고 움직여 야쿠오지씨를 물리쳤다.


  “초등학생 vs. 초등학생! 좋잖아. 바로 그 기세야 소라!”

  “싸움은 같은 레벨에서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야마토군이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모모카씨가 주먹을 쥐며 지켜보는 와중, 소라군과 야쿠오지씨는 수수한 싸움을 벌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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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박하고 있어?

  내가 모두를?

  “협박 같은 거 하고 있지 않아요?”


  이미지가 중요한 키리오군은 상관없다고 치고, 마이페이스스런 신 선배,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손이 나가는 야마토군, 방만한 소라군 세 사람이 협박하는 정도로 하는 말을 들을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럼 어째서 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 곁에 있는 거죠? 그 정도의 얼굴로 총애 받고 있다고 하지 마세요.”

  “에? 저 네 사람이 좋아하는 건 모모카씨에요.”


  “에?”


  “하츠키 모모카씨에요. 언제나 네 사람과 함께 있는 여학생.”

  아직 네 사람 모두 자각은 없는 것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모모카씨에게 끌리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기는, 만화의 세계지만 현실세계라는 모순된 세계니까.

  만화의 스토리에선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은 훌륭하게 이어져서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있다. 모모카씨가 ‘피치 매직’의 주역이며, 역하렘군들이 남주인공인 이상, 다섯 명이 끌리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 말하자면 운명적 사랑.


  악역으로서 전생한 나 같은 이레귤러가 있는 모순된 세계지만, 단 하나 진실이 있다.

  그건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사랑이다.


  저는 소녀만화 읽은 적이 없으니까, 소년만화로 치환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만화의 클라이맥스, 싸움은 점입가경에 접어들어, 주인공들이 서있는 곳은 푹 파인 대지와 붕괴한 빌딩 무리의 중앙.

  하늘에는 비구름처럼 몰아닥치는 수만의 적, 적, 적!

  신 선배, 야마토군, 키리오군, 소라군 네 사람은 모모카씨를 뒤돌아 보면서 말하는 거다.

  “내가 죽어도 너만은 지키겠어…….”

  모모카씨는 눈에 눈물을 글성이며 답한다.

  “나, 언제까지나 기다릴게……. 다들 반드시 돌아와……!!”

  그런 모모카씨에게 네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싸움에 나선다――――!


  엄청 타오르는 전개다!! 네 사람은 엉망진창이 되지만 모모카씨 곁으로 돌아가서 웃는 거다. “돌아온다고 했지?”라고! 모모카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바보.”라고 말하며 끌어안는다! 그야말로 왕도!


  모모카씨와 역하렘군들의 인연은 앞으로도 강고한 것이다!


  지금은 모모카씨와의 접점보다도 나와의 접점이 많으니까 내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고, 모모카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자각할 것이 틀림없다.


  애당초 날 좋아하는 건 야마토군뿐이라고.


  키리오군은 내 고백을 받아 들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푸치와 만난 기쁨에, 나를 하나님처럼 생각한 순간적 텐션의 결과물이다.

  만난 그 날에 고백을 해온 신 선배는 고백이 여자에 대한 인사 같은 거일 테고, 소라군에 이르러선 싫다든가 바보라든가 그런 소리를 들은 기억밖에 없다.

  이런 거 좋다 싫다 그런 레벨조차 도달하지 않았다고.


  “흐응.”


  누나가 심술궂은 웃음을 띄운다.

  “날 적으로 돌리는 게 무서운 거예요? 모모카라면 당신의 친구겠죠? 친구에게 밀어붙이다니 최악이네요.”


  에?


  “남자들에게 사랑 받으며 우쭐거리는 당신 같은 여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날 텐데, 그 친구에게 팔리기까지 하다니.”


  에?


  “모모카라는 사람, 가여워.”


  서, 설마……이 사람이――――!!


  “도우미씨! 도우미씨죠!?”

  나는 덤성 다가가 누나를 올려다 봤다.

  “하아? 갑자기 무슨? 내 이름은 줄리아에요. 노구치 줄리아.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


  아차! 여기는 현실이니까 도우미라고 말해도 자각 같은 게 있을 리 없나. 역하렘군들도 아직 자신이 역하렘요원이라는 자각 없을 정도니까 말이야. 여주인공도 그렇지만.


  “역시 도우미씨도 무척 예쁜 사람이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서류를 가슴에 품은 채 90도 가까이 고개를 숙인다.

  사랑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둔감 히로인, 모모카씨의 사랑을 도와주세요!


  나는 바로 도우미씨――가 아니라, 노구치 줄리아씨를 데리고 학생회실로 돌아갔다.


  “보좌부에 한 사람 부원을 추천합니다! 2학년 10반의 노구치 줄리아씨에요!”

  긴 탁자 위에서 서류나 컴퓨터 상대로 격투하고 있던 보좌부 3명+학생회장+부회장+회계 선배 2명+서기 선배 2명이 고개를 든다.


  “처음뵙겠어요~ 줄리라고 불러주세요. 신하고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 이번엔 여기서 잘 부탁해. 1학년 애들도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네.”


  줄리아씨는 내가 말하던 때보다 2옥타브 높은 목소리와 멋진 미소로 모두에게 인사한다.

  과연 사랑의 도우미씨! 남심을 확실하게 잡는 완벽한 인사다.


  “와아. 어려운 서류네요. 1학년인데도 작업할 수 있다니, 과연 니노마에군. 이오리군도 학년 2위라고 들었어요. 굉장하네. 나 2학년이지만 절대로 질거야~”

  줄리아씨가 야마토군과 소라군의 수중을 훔쳐보며 놀라움에 입가를 손바닥으로 누른다. 핑크색의 긴 손톱이 성인 여성 같아서 멋있네.

  “타카나시군, 이상한 여자애가 귀찮게 하지 않아? 언제나 상담해줘. 나, 여자친구 많으니까 힘도 될 수 있고.”

  키리오군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귓가에 속삭인다. 어라? 지금 줄리아씨가 날 노려봤는데? 아, 내가 키리오군을 협박하고 있다느니 말했었지. 날 경계하는 건 당연한가.

  그 상태로 ‘악역, 레이센인 사쿠라코’에서 모두를 지켜주세요!


  “하츠키씨도……,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줄리는 하츠키씨의 아군이니까…….”

  줄리아씨가 모모카씨에게 다가간다.

  우와아아.

  모모카씨도 줄리아씨도 예쁘니까 엄청 멋있네!!


  저도 모르게 서류를 쥐고 마는 내 앞에 신 선배가 의자를 울리며 일어섰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인원이 맞으니까. 인원이 부족해지면 부를테니 자, 나가나가.”

  “에? 잠깐, 어째서!?”

  신 선배가 눈 깜짝한 순간에 줄리아씨를 교실에서 내보내고 만다. 그리고 지친 표정으로 내게 향한다.


  “사쿠라코. 이상한 생물체를 주워오지 말라구. 아무리 여자애들에게 상냥한 오빠라도, 이런 바쁜 시기에 상대하는 건 귀찮으니까. 오빠와의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만다.

  “친구 좀 골라서 사귀라고 말한지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이겁니까…….”

  야마토군이 쿵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친다.


  “이상한 생물체라니 그런……! 저 사람은 모모카씨의 사랑을 응원해줄 소중한 사람이에요!”

  “하아? 내 사랑? 저 사람 모르는 사람인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어째서 내 사랑을 응원하는 거야??”

  “이제부터 알아가는 거야. 분명 모모카씨와 줄리아씨는 친구가 되리라 생각해!”


  역설하는 내 이마에 모모카씨가 손바닥을 대고 자신의 이마와 열을 비교한다.


  “열은 없는데……. 사쿠라코, 요새 피곤한 거 아냐? 조퇴할래? 이상한 헛소리 하고 있고.”

  헛소리가 아니야! 모모카씨에겐 모를지도 모르지만, 줄리아씨는 너에게 진정한 연심을 알려줄 소중한 사람이라고.

  “줄리아와 모모카는 물과 기름 정도로 타입이 다르다고. 친구가 되는 건 힘들지 않아?”

  “응. 저런 아이는 조금 상대하기 어려워.”

  신 선배의 말에 모모카씨가 곤란하단 미소로 끄덕였다.

  모모카씨는 줄리아씨에 대해서 좋게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이건 친구가 될 플래그임이 틀림없다.

  처음엔 헐뜯던 두 사람이 서로 주먹을 나누고 사이가 좋아진다는 건 만화의 정석이니까!


  “좋아. 완성……이고, 오늘 일은 일단 끝났으니까. 보좌부의 방과후 활동은 패스다. 도와줘서 고마워. 수고했어.”

  신 선배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학생회실을 나왔다. 아, 나, 서류를 전부 보내지 않았어. 5교시 후에 쉬는 시간에라도 배달해둬야지.


  줄리아씨는 방과후에도 우리들의 교실까지 찾아왔다.


  “아, 줄리아씨!”

  복도에서 작게 손을 흔드는 줄리아씨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뒤에서 있는 힘껏 뒷목을 잡혔다.

  모모카씨다.

  “솔직하게 자백해. 저 여자에게 어떤 과자로 길들어 진거야.”

  “과, 과자? 아무것도 받지 않았는데.”

  “거짓말. 사쿠라코가 이렇게 반기다니, 맛있는 과자를 받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이 먹보.”

  “우.”

  볼을 있는 대로 잡힌 아픔에 바둥바둥하고 만다.


  “모모카씨. 그만두세요. 사쿠라코씨는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요. 아마도 의미불명의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당신과 친구가 될거라든가 말하고 있고.”

  “응. 나도 야마토군과 같은 의견일까.”

  “착각 같은 거 아니야! 모모카씨. 오늘은 세 사람이서 타코야키 먹으러 가자. 사요코씨가 맛있는 가게 알려줬어.”


  타코야키 먹으면서 사랑이야기다. 줄리아씨라면 모모카씨의 연심을 잘 끌어내줄 것이 틀림없다.


  “정말!? 응. 둘이서 가자! 갓 튀김타코 3팩~”


  응?


  모모카씨는 가방도 없이 복도로 나가서 줄리아씨와 마주섰다. 나도 당황하며 뒤를 쫓는다. 한손에는 내 가방, 또 한손에는 모모카씨의 가방을 가지고.

  “민폐니까 어장관리 하고 싶으시면 보좌부와 관계없는 장소에서 하세요. 자, 지금이라면 저 두 사람을 낚든지 덮치든지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아요.”

  모모카씨가 키리오군과 야마토군을 가리키며 시원하게 말한다.

  줄리아씨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덧붙여 내 미소도 얼어붙었다.

  먼저 냉동상태에서 빠져나온 건 줄리아씨였다.

  “뭐어어? 영문 모를 소리 하지마. 덮칠 리가 없잖아! 보좌부도, 당신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저는 보좌부 부부장이에요.”

  “부, 부부장이라서 뭐가? 줄리는 부장인 사쿠라코에게 입부 허가를 받았으니까!”

  “보좌부 인원 증감에 대해서 결정하는 건 저에요. 사쿠라코의 의견 따위 손톱만큼도 통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쿠라코의 생사여탈권도 저에게 있습니다.”


  나, 나의 생사여탈권이 모모카씨에게 있었다니!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생사여탈의 의미를 찾아보고 만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주는 것도 뺏는 것도 마음대로 타인을 다루는 것.“

  히이이이익. 공포로 몸이 떨린다. 나나, 나, 나, 악역이라든지 말하고 있었지만, 모모카씨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사형당하는 거 아닐까. 아니, 괜찮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바이올런스 히로인은 아니겠지? 소녀만화고.


  “남자 놈들은 굽든지 삶든지 맘대로 해도 좋으니까. 사쿠라코와 보좌부는 관여하지 말아주세요. 자, 돌아가자. 사쿠라코. 마요타코 5팩~”


  생사여탈의 충격으로 아직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짰다.


  “모모모모모모카씨, 저저저점심시간에도 말했지만, 줄리아씨는 모모카씨의 친구가 되리라 생각해요! 함께 타코야키를 먹으러 가요.”

  “싫엉.”

  모모카씨가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귀여운 포즈와 목소리로, 하지만 확실하게 거부한다.


  “주, 줄리도 싫어! 이런 여자와는 절대――”

  꾹, 하고 내 몸이 무거워진다. 헉, 하고 줄리아씨가 말을 삼킨다.


  “트러블?”


  소라군이 등 뒤에서 날 안고 있다. 이마에 턱을 올리고 있어서 아프다. 이 자세, 모모카씨에게도 당한 적 있다고. 소라군과 모모카씨, 혈연은 없지만 역시 남매구나.

  점점 키가 줄어들 것 같으니까 하지 말아줬으면 하지만.


  줄리아씨는 아직 굳어있지만, 빙글하고 뒤꿈치를 돌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사라지고 만다.

  아아아아……. 모처럼 찾은 도우미씨가…….


  “어이, 소라. 여자에게 달라붙지 말라입니다.”

  야마토군이 교복을 당겨서 나에게서 소라군을 떨어뜨린다.

  “야마토의 경어, 아직도 이상해.”

  “네놈의 끊어 말하기 보단 낫습니다.”


  “자, 사쿠라코. 타코야키 먹으러 가자.”

  다투는 소라군과 야마토군, 말리려고 하는 키리오군을 내버려 두고, 모모카씨는 나를 끌고 타코야키 가게로 향했다――라니, 내가 여주인공과 사이가 좋아지면 어쩌라고……정말…….


  사요코씨가 추천해준 타코야키 가게는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었다. 오래된 외견의 가게에 타코야키라고 적힌 간단한 간판이 걸려있다.

  “헤. 타코야키 전문점이네. 가게 안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희안하네.”

  “어서오세요.”

  안에 들어감과 동시에 아주머니가 미소로 마중했다.


  가게는 비어있었기에 4인석에 앉는다. 내가 문을 등지고, 모모카씨가 그 정면에. 동시에 내 옆자리에 휘청하고 사람그림자가 앉았다.


  “히익!”


  모모카씨가 꿈틀하고 몸을 떨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은 야쿠오지씨였다.

  “까, 깜짝 놀랐다……! 야쿠오지씨, 따라왔었구나…….”


  여, 역시 대단해 야쿠오지씨! 선배인 줄리아씨 상대로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모모카씨를 놀라게 하다니.

  하지만 정말 언제부터 따라왔던 걸까. 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


  야쿠오지씨는 역시나 고개를 돌린 채 모모카씨에게 답했다.


  “……사쿠라코가 불렀으니까.”

  응? 불렀던가?

  ……?

  사람이 많은 편이 좋으니까 아무래도 좋은가.

  “아가씨들, 무슨 타코로 먹을래?”

  아주머니가 벽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메뉴가 적힌 종이가 걸려있다.

  카레, 치즈, 참치, 소힘줄 등등 종류가 풍부하다!


  뭘로 할까!

  “튀김타코하고 마요타코하고 소힘줄타코하고 소세지타코 3접시씩 주세요.”

  모모카씨가 망설임 없이 주문한다.

  “집에 가져가니?”

  “전부 여기서 먹을 거에요.”

  나는 치즈로 할까.

  “치즈 주세요.”

  “……나도 치즈.”


  손을 들어 주문하자 야쿠오지씨도 나와 같은 식으로 손을 들어 주문했다.


  역시나 사요코씨가 추천해준 만큼 타코야키는 무척 맛있었다!

  안에 든 치즈는 말랑말랑하고, 표면에 흐르는 치즈에서 풍성한 향기가 나서 참을 수 없어. 오코노미야키의 치즈도 맛있지만, 타코야키도 맛있네.

  모모카씨가 하나 교환해 달라고 해서, 나는 무척 고민한 뒤 소세지와 교환하기로 했다.

  도중에 야쿠오지씨기 모모카씨의 허락도 없이 소세지를 뺏어서 치즈를 준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 가게에는 또 오기로 하자.

  이번엔 역할렘군도 불러서. 라니, 오늘도 부르면 됐잖아. 이제와서 눈치 챈 나. 정말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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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하렘군들과 모모카씨를 붙이는 일에 초조해진 나머지 내 눈은 이러저러 흐려져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모모카씨가 복도에서 신 선배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신경 쓰여서 무심코 시선을 향하자 딱하고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신 선배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서 나도 손을 흔들었지만……분명 저거, ‘방과 후 쇼핑에 갈 테니까 와줘(하트) 사쿠라코에겐 비밀이야.’ ‘좋아. 저녁밥은 네 수제 요리를 먹게 해줘(☆)’스런 소녀만화적 대화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신 선배와 모모카씨는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네.


  “……레이센인씨.”

  앞자리의 야쿠오지씨가 불러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왜?”

  “……리본, 줘.”

  리본? 아, 머리카락을 묶고 있는 리본 말인가.

  예비 리본을 사요코씨에게서 받았던가. 가방 안에서 주머니를 꺼낸다.

  주머니 안에는 배가 고플 때를 대비한 사탕(고양이 밥을 뺏어먹으려고 했다고 쥐어졌다)와 작은 거울과 접이식 빗. 그리고 내가 덜렁거린다며 반창고까지 들어있다.

  엉키지 않도록 나비 모양으로 묶어둔 리본을 꺼내서 야쿠오지씨에게 건낸다.


  “자, 여기.”


  리본 같은 걸 어디에다 쓰는 걸까? 이상하게 여기고 있자 야쿠오지씨는 자신의 머리를 투 사이드 업 모양으로 묶었다.


  “……어울려?”

  “응! 어울려.”


  야쿠오지씨는 꽤나 등이 굽었다.

  허리를 쭉 피면 좀 더 어울릴 테지만, 역시 그렇게까지 지적하는 건 실례일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우리들, 쌍둥이 같네.”

  “그렇네.”


  갑자기 주머니를 뺏어서 내용물을 책상 위에 뿌린다.

  뭐, 뭐야!?

  “……이 빗, 어디서 산 거야? 이 거울은? 사탕은? 주머니는?”

  아아, 뭐야. 그런 게 듣고 싶었던 건가…….

  “전부 100엔샵이야. 우리 집, 가난하니까.”

  “사쿠라코.”

  아, 모모카씨가 돌아왔다.


  “신이 말이야. 소풍날 딱 점심쯤에 화앵산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밥은 함께 먹자는데. 괜찮지?”

  “그것뿐?”

  “? 그것뿐인데?”


  모모카씨는 의외로 부끄럼쟁이구나.

  내 상상이 완벽하게 맞는다곤 할 수 없지만, 꽤 긴 시간 대화했는데 소풍에 대한 것만 이야기 했을 리가 없잖아. 두 사람만의 비밀을 소중히 하고 싶은 걸까?


  체력 테스트 결과가 남자보다도 높고, 유행가보다 엔카를 좋아하고, 펀칭 머신으로 280kg의 기록을 내놓지만, 역시 모모카씨도 여자인 거네. 히로인답게 행동해 달라고 생각해서 미안. 모모카씨는 멋진 히로인입니다.


  기쁜 마음에 싱글벙글 웃고 있자 모모카씨가 갑자기 안아 올려서 내 몸을 조였다.


  “꾸엑――”


  괴로운 나머지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파닥파닥 몸부림 친다.

  “어, 어째서.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꾸짖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하네? 라며 모모카씨가 팔짱을 끼고 머리 위에 ? 마크를 띄운다.


  “하츠키씨, 사쿠라코와 이야기 하지 말아줘.”

  야쿠오지씨가 창밖을 향한 채로 모모카씨에게 중얼거렸다.


  “네?”

  “에??”


  나도 모모카씨도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사쿠라코와 나는 쌍둥이 자매야. 나 혼자만의 친구야……. 그 증거로, 봐봐. 머리 모양이 같잖아? 이제부터 소지품도 전부 맞출 테니까.”


  모모카씨가 굳었다.


  대단해! 야쿠오지씨!

  내가 아무리 괴렵혀도 꿈쩍도 안하던 최강의 여자아이를 말 한마디로 경직하게 만들다니!


  “모모카, 학생회실로 가자. 오늘도 일이 많으니까 빨리 가지 않으면 점심 식사도 못 할거야.”

  키리오군이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모모카씨의 어깨를 두드린다. 모모카씨는 겨우 헉하고 정신을 차렸다.


  “으, 응. 가자. 사쿠라코.”

  일어나려는 내 손을 야쿠오지씨가 꽉하고 잡았다.

  “……사쿠라코는 나하고 같이 먹을 거야…….”

  어! 이건 실로 기쁜 제안이라고.

  내가 없어지면 역하렘군들과 모모카씨만의 식사가 되는 거잖아.

  그 말에 따라 자리에 돌아가려 하자 야마토군이 옆에 서서 말했다.


  “지금은 학생회 업무가 바쁜 시기이기에 한시라도 아까운 상황입니다. 학생회 부회장 권한으로 지시합니다. 보좌부 부장, 레이센인 사쿠라코씨. 점심은 학생회 휴게실에서 부탁합니다.”

  “윽. 아, 알겠습니다…….”


  확실히 쉬는 시간에도 일거리가 들어오는 상황인걸. 고집은 부릴 수 없나.


  복도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교실과 꽤 떨어지게 되자 야마토군이 내숭을 벗고서 나를 갈책했다.


  “너 적당히 하라고! 성가신 여자에게 너무 잘 얽힌다고입니다. 모모카씨도 그렇고 저 야쿠오지도 그렇고. 친구 정도는 가려 사귀어라입니다!”

  “같은 취급하지 말아줘어어어!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싸이코는 아니야. 나는!”

  모모카씨가 한 손을 있는 힘껏 휘두르면서 항변한다.

  “사쿠라코씨를 감금한다고 했잖아. 충분히 같은 레벨입니다!”


  성가셔?

  “별로 야쿠오지씨 싸이코가 아니야? 여자아이가 흉내 내는 거 보통 있는 일이고……. 모모카씨도 감금하겠다는 거 농담인 게 당연하잖아. 언제까지나 그거 가지고 툴툴 거리면 안 돼. 야마토군.”

  “이거라고.”

  야마토군이 마음 깊이 싫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사쿠라코는 정신을 차리면 스토커한테 찔려 있을 타입이네. 나 진심으로 걱정이야.”

  키리오군이 내 팔을 잡았다. 잠깐, 아파. 아프다고!

  “나……. 야쿠오지씨 같은 사람은 어떻게 취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여자아이니까 때릴 수도 없고……!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 거야!? 투망으로 잡아서 창문에다 걸어두면 되는 거야!?”

  모모카씨가 머리를 잡으며 으갹하고 기성을 지른다.


  그건 둘째치고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학교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지만, 야마토군이 말한 대로 최근 우리들은 어쨌든 바쁘다. 느긋하게 대화할 여유도 없이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고, 서류나 컴퓨터 화면 상대로 격투한다.


  오늘 내 일은 반 위원장들에게 보낼 서류를 배포하는 일이었다. 나는 컴퓨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서류도 잘 분류하지 못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포 정도 밖에 없단 말이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휴대폰 걸라고. 바로 달려 갈 테니까.”

  “부탁합니다.”

  모모카씨와 야마토군, 키리오군이 강조해서 말했다. 첫 심부름을 나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같아서 흐뭇하다.

  그렇다 해도 여자아이 상대로 걱정이 심하다고. 정말…….


  “레이센인씨.”


  서류를 손에 쥐고 학교를 돌고 있으니 뒤에서 이름을 불렸다.

  있는 대로 걱정을 받은 뒤이기에 조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평범한 두 사람의 여학생이었다.

  본 적 없는 학생이었기에 무심코 실내화 색을 확인하고 만다. 1학년이었다.

  누구였더라?


  “레이센인씨가 키리오군의 강아지를 보호했다며. 정말?”

  뭐야. 키리오군의 팬인가.

  “응. 정말이야. 진짜 머리 좋고 귀여운 강아지였어.”


  “사진, 있어?”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가지고 있던 푸치의 사진을 두 사람에게 보였다. 바보 같은 얼굴로 자는 모습은 언제 봐도 뿜을 정도로 재밌다.

  “에―” “아―”

  두 사람은 미묘한 표정으로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웃을 거라 생각했는데 빗나갔다.


  “혹시, 키리오군의 메일 주소……안다든가 그래?”

  “알고 있지만…….”

  ““알려줘!!!””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압박하고 들어왔다.

  “무, 무리야. 타인의 메일 주소를 멋대로 알려주다니…….”

  “괜찮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테니까! 부탁해!!”

  “미안. 그럴 수 없습니다.”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고 이 이상 무슨 말을 듣기 전에 뒤꿈치를 돌린다.

  날카롭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뭐야 저거. 꼴깝.”이라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서 등줄기를 떨고 만다.

  무무무, 무섭다고!


  재빨리 도망쳐서 다행이다. 저 상태로 계속 압박이 들어왔으면 절대로 거절하지 못했을 거야. 집에 걸려오는 세일즈 전화도 좀처럼 끊을 수 없어서 계속 말을 하게 될 정도로 근성 없고.

  키리오군. 아이돌이니까 개인 정보 취급에는 신경을 쓰고 있을 텐데. 내가 흘리거나 해선 헛수고가 될 테니까.


  휴대폰에 잠금 설정도 해놓지 않았었네. 나중에 설정해 두자.


  “아, 미안합니다.”

  휴대폰을 신경 쓰던 탓에 키가 큰 여자와 어깨를 부딪치고 만다.

  “기다려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사과하고 곁을 지나려고 했더니 또 불려졌다.

  이번엔 뭐야? 키리오군의 메일 주소라면 알려줄 수 없어.

  와.

  예쁜 사람이네. 내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모모카씨에게지지 않을 정도로 예쁜 누나였다.

  어딘가 졸린 것 같은 눈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부드러울 것 같은 갈색 머리카락, 도톰한 입술과 입술 끝의 점이 무척 섹시하다.


  “할 이야기가 있어. 잠깐 와요.”

  “네, 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앞을 걷는 누나를 따라간다.


  누나가 향한 곳은 부활 건물이었다.

  점심 시간이기에 당연히 아무도 없다.


  “당신, 키리오군, 소라군과 함께 등교하고 있다는 것 같네요.”

  빙글 돌면서 선배가 갑자기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것만이 아니라 신군이나 야마토군도 알쫑거린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들 사이에 있는 거죠? 맞춰 볼까요. 그들의 약점을 잡고 협박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같은 빈약한 여자를 상대할 리가 없는 걸.”


  딱하고 내게 손가락을 세운다.


  “어떤 수를 써서 협박했는지 자백하세요. 레이센인 사쿠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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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이른 아침, 졸려서 멍한 길을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학교로 나아간다.

  신 선배와 야마토군만으론 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와 모모카씨, 소라군도 일찍 등교하여 학생회 업무를 돕게 된 것이다.

  키리오군만은 예능 활동이 바빠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하고 있기에 나의 부장 권한으로 면제했다.

  무리해서 몸을 망쳤다간 큰일이니까 말이야. 일과 공부가 최우선이야.


  오늘 업무는 소풍에 대해서다.

  이 학교는 1학년과 2학년의 합동 소풍이 있다.

  목적지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화앵산과 유원지, 동물원 세 장소. 반 다수결로 행선지를 결정하고 버스로 목적지까지 향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화앵산이다. 다함께 바비큐를 할 수 있다면 즐거울 것이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을 테니까.

  다수결 결과 유원지와 한 표차로 우리 반은 화앵산에 갈 것으로 결정 됐다. 소라군의 1반도 또한 화앵산이다.


  신 선배의 반은 동물원이었다. 단 신 선배는 학생회장이기에 교장선생이나 교감선생과 함께 3개 장소를 순회할 예정이 짜여있다.

  반 친구들과도 놀 수 없다니, 학생회장이란 큰일이네…….


  예비종이 울림과 동시에 일을 중단하고 서둘러 학생회실을 나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간다.

  나, 모모카씨, 도중에 일에 참가해준 키리오군, 학생회 부회장 야마토군 네 사람은 1학년 2반 교실로, 소라군은 1반으로다.

  “아, 좋은 아침. 야마토군.”

  “좋은 아침입니다.”

  교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은 야마토군이 우노군과 인사를 나눈다.

  야마토군은 신 선배에게서 받은 ‘원숭이라도 알 수 있는 경어독본’으로 공부한 덕분인지 교실 안에선 완벽한 경어를 쓰고 있다.

  출석번호가 가장 뒤인 우노 쇼타군(신장 153cm에 목소리가 작은 안경 남자)이라는 친구도 생겨서 야마토군이 바라던 성실하고 얌전한 학생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다. 모모카씨가 지적했듯이 경어이기에 괜히 더 눈에 뜬다는 건 비밀이지만 말이야.


  “안녀엉, 키리오구운!”

  “안녕.”

  키리오군은 여전히 교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다. 여학생 중에는 쿠몬씨도 섞여 있어서 교차한 팔을 키리오군 책상 위에 올리고 즐겁게 말을 하고 있다. 여학생만이 아니라 교복을 개조하고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피어스를 달고 있는 화려한 남학생들도 모여서 뭔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모모카씨도 앞자리 여학생과 대화를 시작하고――――.


  헉!!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눈치 채고 말았다.


  나, 친구가 없어!!!


  입학식 날, 배가 너무 고파 쓰러져서 자기소개도 못했으니까 반 친구들과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했다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곤 모모카씨밖에 없잖아! 나(악역)의 가장 친한 친구가 모모카씨(히로인)이라니……!

  이건 큰일이다. 제대로 친구를 만들어서, 적어도 교실 안에서라도 모모카씨와 행동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면.

  이대로 가면 체육 시간에 ‘두 명이서 짝을 지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간 모모카씨와 짝지을 수밖에 없어……. 그건 둘째치고 모모카씨가 없으면 외톨이다! 나, 여자친구, 만들어야……!!


  “저기, 야쿠오지씨.”


  내 한자리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성이 희안한 여학생, 야쿠오지씨다.

  사요코씨와 닮은 보브숏의 흑발을 하고 있고, 눈이 가려질 정도로 앞머리를 길게 하고 있다. 언제나 혼자고 다른 여학생과 함께 있지 않으니 딱 좋아! 아무리 지금의 내가 여자라곤 해도, 많은 여자들과 대화하는 건 긴장하니까 말이야.


  “……왜?”

  야쿠오지씨는 어깨 너머로 고개만을 돌려 대답을 했다.


  “자리가 가까운데 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 야쿠오지씨는 어디에서 등교하고 있어? 나, 오우사키인데.”

  “……카노사키에서.”

  “카노사키? 그거, 어디에 있어? 지리 잘 몰라서 전혀 모르겠다니까.”

  “……전철로 2시간.”

  “에!? 그렇게 멀리서 다니는 거야!? 등교 고생하겠네.”

  “……별로.”


  선생님이 들어오기까지 불과 2, 3분간, 야쿠오지씨와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친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진짜 여자아이가 아니니까 대화의 맥이 다른 거겠지.


  언제나 마찬가지로 체육복 차림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칠판에 커다랗게 ‘소풍에 대해서’라고 썼다.


  “오늘은 소풍에서 함께 다닐 반을 정하도록 하자. 기본적으로 남자 세 명, 여자 세 명이다. 사람 수가 맞지 않으면 남녀 수는 달라져도 상관없지……만, 철판 수가 정해져 있으니까 한 반의 사람 수는 여섯 명이야. 시간은 10분 이내로. 정하지 못한 녀석들은 선생님이 맘대로 반을 짤 테니까 다들, 힘내라!”


  힘내라 라니, 뭘 힘내면 되는 걸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가. 이 기회에 야쿠오지씨와 친해지자!

  “저기, 야쿠오지씨. 함께 반을 짜지 않을래?”

  모모카씨의 초청을 받기 전에 서둘러 야쿠오지씨의 등을 두드린다.

  “……상관 없는데.”

  좋아. OK를 받았어.


  나머지 한 명, 함께 행동할 여자가 있으면 꼭 동료로――라고 생각하며 교실을 둘러보는 나에게 모모카씨가 속 시원하게 고했다.

  “그럼 나와 사쿠라코와 야쿠오지씨네. 딱 세 명!”

  그, 그렇겠지요…….

  뭐, 거절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모카씨와 떨어지는 건 포기합니다.

  “사쿠라코씨, 모모카씨, 괜찮다면 우리들과 함께 반 꾸리지 않겠습니까?”

  야마토군이 우노군을 데리고, 조용하고 얌전하게 제안한다.

  물론 대환영이다. 모모카씨는 요리를 잘 하니까, 이 소풍을 계기로 좀 더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식당 아들인 야마토군이 모모카씨의 식칼부림에 반한다든가!

  좋아. 남은 한 사람은 물론 역하렘군들 중 한 명인 키리오군밖에 없다.


  키리오군은 여러 반에서 초청을 받아서 곤란하고 있다.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쉽게 무시할 순 없는 거겠지.

  아이돌은 꿈을 파는 직업이다.

  차가운 말 한 마디, 차가운 거동 하나가 팬을 환멸하게 만든다.

  키리오군은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서 조차도 마음을 풀지 못하고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도록 행동이 제약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레이센인 사쿠라코의 ‘그 일에 대해서 밝혀도 괜찮아?’라는 뻔히 보이는 협박에 걸릴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고. 솔직히 말해서 나 같은 일반 시민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생이야.


  하지만!


  악역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장인 나의 명령은 최우선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 이런 곳에서 보좌부의 권력이 도움이 될 줄은! 신 선배의 착각이 발단이라고 해도 보좌부 부장이 되어서 다행이야.


  “키리오군.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학생회 보좌부 부장의 명령이야!!”

  딱하고 손가락을 향하며 키리오군에게 명령한다.


  “――응.”

  키리오군은 초청하고 있던 반 친구들에게 야유를 받으면서도 우리들 반으로 들어왔다. 물론 옆에서 키리오군을 뺏은 나에게도 무지막지한 야유가 날아왔지만, 그림자 캡짱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방해하는 것이 사명이니까 말이야. 뭐라고 해도 좋아.

  이걸로 6명의 반이 결정됐다.

  “나도 함께 들어가고 싶어.”

  쿠몬씨가 통하고 나에게 부딪혔다.

  “무, 무리야! 맴버 전부 정해졌는걸. 다른 사람과 반을 짜.”

  “에!? 너무해! 우리들 친구인데!”

  어, 언제부터 친구가 됐던가요??

  의문표를 날리는 나는 상관없이 쿠몬씨는 야쿠오지씨에게 달려들었다.

  “야쿠오지씨. 부탁해! 물러나줘! 나 사쿠라코와 같은 반을 하고 싶으니까!”

  이봐!

  “먼저 정해진 사람을 밀어내는 짓을 하면 안돼!”

  “나도 사쿠라코와 모모카와 같은 반을 하고 싶은걸! 친구인데 다른 반이라니 괴롭힘이야!”

  괴롭혀지고 있는 건 이쪽이라고!

  우노군이 가져와준 반 결정 용지에 쿠몬씨가 이름을 쓰려고 펜을 잡는다. 안된다니까!

  “쿠몬씨.”

  말리려는 날 신경도 쓰지 않는 쿠몬씨를, 모모카씨가 불렀다.


  “중간에 끼어들면, 안 돼.”


  모모카씨는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다.

  성모와도 같은 자애에 가득찬 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쿠몬씨의 몸에 수천 개나 되는 살의라는 이름의 화살이 꽂히는 것을.


  “………….”


  쿠몬씨는 말도 없이, 살짝 펜을 두고 물러났다.

  내가 달려들면서까지 저지해도 멈추지 않았던 쿠몬씨를 미소 하나로 뿌리치다니……. 역시 모모카씨. 굉장한 안력이다.


  오늘은 반을 정할 뿐이고, 식재료나 바비큐 자리를 결정하는 건 내일로 미뤘다.


  바쁜 대화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하여, 아무 일 없이 끝난 뒤 짧은 쉬는 시간에 소라군이 2반 교실에서 찾아왔다.


  “소풍, 모모카씨의 반에 들여보내줘. 나, 반에 친구 없으니까. 외로워.”

  소라군은 어두운 얼굴로 모모카씨의 소매를 잡는다.


  오오, 대환영이야! 역하렘군들이 얽혀오다니 무척이나 감사하다.

  내가 기쁨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복도 창문에서 화사한 여학생 두 명이 소라군을 불렀다.


  “여기 있네. 소라군. 바비큐 리퀘스트 없어? 지금까지 마시멜로하고 파인애플하고 사과가 정해졌어.”


  모모카씨가 짙은 시선으로 소라군을 노려본다.

  “친구 있잖아.”

  소라군은 눈을 피하며 팔짱을 끼며 모모카씨에게 달라붙는다.

  “여자들밖에 없는걸. 누나 반에 들어가게 해줘.”

  “짱나. 죽어.”

  하지만 모모카씨는 가볍게 잘라버렸다.


  “모모카는 돼지.”

  소라군도 간단하게 본성을 드러내며 모모카씨를 매도한다.


  다음 순간, 모모카씨가 소라군에게 용서 없는 프론트 초크를 걸었다. 남자 상대로 프로레슬링 기술을 거는 모모카씨에게, 교실 안은 질색의 폭풍이 분다.

  “포, 폭력은 안 된다고 그랬잖아. 모모카씨!”

  소라군의 반 친구 여학생들이 굉장한 형색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잠깐, 그만둬!”라고 모모카씨를 멈추려고 힘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필사적으로 모모카씨의 팔을 파닥파닥 때려서 소라군을 구출한다.


  소라군은 개방된 태세 그대로 내 책상에 엎어져서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혼자만 언제나 따돌림…….”

  “반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됐으니까 그만 꺼져. 방해니까. 너희들 이거. 끌고 가라고.”

  마치 물건처럼 소라군의 목덜미를 잡아 옆의 여자들에게 들이민다.


  순간 번뜩인 생각에 나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그래! 소라군. 우리 반 옆자리에 앉아! 옆자리라면 모두 함께 먹을 수 있어! 저기, 괜찮지?”

  소라군과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확인하자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에―…….”

  소라군의 반은 여자들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소라군을 노리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 소라군이, 다른 사이좋은 여학생 근처에 있는 건 재미없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반에는 최종병기스런 아이돌군이 재적하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모으고 있는 여학생에게 살며시 속삭인다.


  “이쪽 반에, 키리오군이 있어요. 사이좋게 될 찬스에요.”

  “!!!!!”

  여학생이 눈을 빛내며 손을 건낸다. 굳게 악수하고, 어디 자리를 잡을까 획책한다.

  좋아. 이걸로 역하렘군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어! 스스로 생각해도 해냈다. 나!


  “……사쿠라, 고마워.”


  소라군이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


  “천만에요.”

  그러고 보니 소라군이 웃는 얼굴은 처음 보네.


  “헤에, 소라가 솔직하게 웃다니 처음 봤어.”

  아무래도 모모카씨도 소라군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희한하다는 듯이 얼굴을 훔쳐본다.

  순식간에 소라군은 토라져서 고개를 돌렸지만, 모모카씨가 히쭉하고 웃고――――입 좌우에 손바닥을 세우고 교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니노마에 소라가 웃었다!!”

  “뭐, 그만.”

  소라군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습으로 하얀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 모모카씨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둬. 모모카!”

  “니―노―마―에―소―라―가―웃―었―다―

  “모모카씨!” “모모카!”

  나도 당황하며 모모카씨의 입을 막는다.

  아무리 그래도 소라군이 불쌍하잖아.

  모모카씨는 여자아이니까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웃거나 쑥쓰러워 하는 걸 놀림 받으면 꽤나 부끄럽다고!


  “윽…….”

  소라군은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교실에서 도망친다. 그 소라군이 한 마디도 없이 사라지다니.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거겠지. 불쌍하게도…….


  “모모카씨, 지금 그건 너무했어!”

  “말했지. 사쿠라코. ‘날 돼지라고 부른 거, 뼛속 깊이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라고. 조금이지만 마음이 풀렸어.”


  모모카씨가 실로 즐겁다는 듯이 가슴을 폈다.

  정말, 조금만이라도, 히로인스러운 행동을 해주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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